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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익숙하지만 낯선, 가장 비극적인 결말로 가는 지금! 매튜 본의 ‘로미오와 줄리엣’

매튜 본의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장면.(사진제공-LG아트센터)“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제가 앞으로 선보여야 할 작품으로 자주 언급되곤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 작업을 꽤 오랫동안 미뤘죠. 오페라, 발레, 영화, 공연 등 다양한 매체에서 이미 많이 다뤄진 작품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언젠가는 이 놀라운 프로코피예프 음악을 기반으로 (제 댄스컴퍼니) 뉴 어드벤처스만의 작품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죠.”세계적인 안무가 매튜 본(Matthew Bourne)의 말처럼 영국 거장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로미오와 줄리엣’(Romeo and Juliet)은 다양하게 창작되고 변주되며 소비돼 왔다. 한국은 물론 전세계 곳곳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은 끊임없이 무대에 올려지고 변주되는 작품이다. 하지만 그 주체가 매튜 본일 때는 좀 다른 기대를 가지게 된다. ‘로미오와 줄리엣’ 안무가 매튜 본.(사진제공=LG아트센터)“해답은 간단했습니다. 젊은 무용수들, 모든 부문의 젊은 창작자들에게 초점을 맞춘 프로젝트를 만들었죠. 어린 두 남녀가 겪는 궁극의 첫사랑을 그린 작품을 만들기 위해 젊은 세대의 말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재능과 그들의 시각에서 영감을 얻어야 했어요. 새로운 세대를 위한, 또 새로운 세대에 관한 ‘로미오와 줄리엣’이죠.” 매튜 본은 남성무용수들로만 표트르 차이콥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의 ‘백조의 호수’(The Swan Lake)를 꾸리고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현대적 뱀파이어 이야기로, 오페라 ‘카르멘’은 자동차 정비소를 배경으로 한 ‘카 맨’으로 변주하는 등 고전을 혁신적으로 재해석하며 명성을 쌓아온 안무가다. ‘백조의 호수’ ‘카르멘’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비롯한 ‘호두까기 인형’ ‘신데렐라’ ‘레드 슈즈’ 등 고전은 물론 동명 영화를 바탕으로 한 ‘가위손’, 뮤지컬 ‘올리버’ ‘메리 포핀스’ 등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영국 최고 권위의 올리비에 어워드 최대 수상자(9회)이자 미국 토니상 최우수 안무가상, 최우수 연출가상 등 40여개의 글로벌 시상식 수상자로 이름이 불렸다. 매튜 본의 ‘로미오와 줄리엣’ 포스터(사진제공=LG아트센터)“셰익스피어 작품에서 셰익스피어를 들어내는 작업”의 연속이었던 ‘로미오와 줄리엣’(5월 8~19일 LG아트센터 서울 시그니처홀)은 셰익스피어 작품의 정수로 여겨지는 시에 가까운 ‘대사’ 보다 음악에 집중한 작품이다. 작곡가 테리 데이비스와 15인조 앙상블이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Sergei Prokofiev)가 남긴 51개의 오리지널 스코어 중 30곡을 추려 순서를 재배치고 5곡의 신곡을 추가해 변주한다. “저에게는 프로코피예프의 믿을 수 없는 악보가 있었어요. 정말 현대적인 영화음악과도 같고 많은 부분에서 환상적인 댄스음악이죠. 그 음악을 대본으로 활용했어요. 셰익스피어의 원작처럼 첫사랑이 서사의 중심이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지만 그대로 따라가지는 않습니다. 현재 혹은 근미래를 배경으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결말로 가는 곳곳에 예상치 못한 놀라움이 숨어있죠.”원작에서 원수 집안의 자녀로 파티에서 운명적으로 만나 사랑에 빠졌던 로미오와 줄리엣은 ‘문제아’로 낙인찍힌 청소년들을 ‘교정’이라는 명분 아래 감금하는 상상의 공간 ‘베로나 인스티튜트’에서 조우한다. 새하얀 타일로 둘러싸여 경비원들의 규율과 통제가 삼엄한 베로나 인스티튜트에 대해 매튜 본은 “이곳은 소년원일까요? 학교? 감옥? 병원? 아니면 모종의 잔혹한 사회 실험이 자행되고 있는 곳? 이는 관객들의 몫으로 남겨뒀다”고 밝혔다.“공연의 배경은 ‘그리 멀지 않은’ 미래의 어떤 지점으로 특수한 역사적 배경이나 맥락도 없습니다. 어쩌면 이 청년들이 갇힌 이유는 그들이 사회가 장려하는 가치에 순응하지 않아서가 아닐까요? 전복적으로 보이는 행위를 ‘정상화’하기 위해 또는 부모에게 창피한 존재여서 그 곳으로 보내진 것은 아닐까요?”이처럼 상징적인 베로나 인스티튜트를 배경으로 어린 연인의 비극적 로맨스와 더불어 약물중독, 트라우마, 우을증, 학대, 성 정체성 등 현대 젊은 세대가 맞닥뜨린 갈등과 혼란을 담는다. 매튜 본의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장면.(사진제공-LG아트센터)“뉴 어드벤처의 ‘로미오와 줄리엣’에는 때로 보기 힘든 장면들이 있습니다. 특히 줄리엣의 참혹한 이야기가 그렇죠. 하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현실과 그 비극적 결과를 직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매우 심각하고 현대적인 주제들을 정직하게 다루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죠. 이 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 것이 놀랍지 않을 만큼 추하고 유혈이 낭자하고 원초적입니다.”이는  죽음도 갈라놓지 못한 순정, 극단적 선택, 여성을 대하는 방식 등 지금 시대에 자칫 오해하기 쉬운 이야기의 변주 이유기도 하다. 그가 “그 어떤 버전보다도 비극적이며 어쩌면 원작보다 가슴이 미어질지도 모를” 변주를 통해 “자신 안의 악마와 싸우는 강한 줄리엣, 경험이 부족하고 별난 로미오, 동성 커플, 감정적 깊이가 있는 악당 그리고 폭력과 그 결과에 대한 진실된 묘사”가 탄생했다.로미오 역의 파리스 피츠패트릭(Paris Fitzpatrick), 로리 맥클로드(Rory MacLeod), 잭슨 피쉬(Jackson Fisch)와 줄리엣 모니크 조나스(Monique Jonas), 브라이어니 페닝턴(Bryony Pennington), 한나 크레머(Hannah Kremer) 등 매튜 본의 ‘로미오와 줄리엣’에는 젊은 무용수들이 대거 발탁됐다. 이에 대해 매튜 본은 “그들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진심으로 듣고 싶었다”며 “오늘날 세계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과 젊은이들만이 가져올 수 있는 에너지와 통찰력을 원했다”고 이유를 밝혔다.매튜 본의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장면.(사진제공-LG아트센터)매튜 본은 가장 좋아하는 장면으로 ‘역사상 가장 긴 키스신’이 포함된 ‘발코니 듀엣’과 마지막을 꼽았다. 발코니 듀엣에 대해 매튜 본은 “캐릭터들이 진정한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첫 순간”이라고 전했다. “젊은 사람들이 사랑에 빠질 때는 매우 강렬해요.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그 젊은 감정과 흥분을 포착해 관객들이 청소년 시절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를 기억하기를 바랐습니다. 첫사랑은 때때로 어색하고 탐구와 발견의 흥분으로 가득하죠. 서로에게서 한 순간도 손을 떼지 못하고 끝없이 서로를 더듬으며 첫 키스로 나아가잖아요.”이에 “볼이나 입술에 가볍게 입 맞추는 흔한 방식이 아닌 도전적인 안무를 선보이고자 무용 역사상 가장 긴 키스신을 만들었다”며 “두 사람이 영원히 끝나길 원치 않는 순간, 관객들 모두가 간직한 그런 청춘의 추억을 포착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매우 생생하고 충격적인 장면”이라는 마지막 장면에 대해서는 “플롯에 큰 반전을 가미한 비극적인 사건들이 펼쳐진다. 지극히 현실적이며 깊은 감동을 준다”고 귀띔했다.매튜 본의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장면.(사진제공-LG아트센터)익숙한 고전의 재해석으로 무용은 어렵다는 편견을 깨는 데 힘을 쏟아온 그는 “많은 이들이 일종의 비밀 언어를 이해하거나 많은 정보를 미리 읽지 않으면 이야기를 따라갈 수 없을 것이라고 두려워한다. 하지만 저의 작업 방식은 사전 지식 없이도 따라갈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제 일이에요. 관객도 그들의 본능을 믿어야 합니다! 옳고 그름은 없어요. 각 개인이 보는 것뿐이죠.”LG아트센터를 시작으로 부산 드림씨터어(5월 23~26일) 그리고 중국 상하이, 베이징, 광저우, 타이베이, 가오슝 등 투어 후 매튜 본은 여름 뮤지컬 ‘올리버!’의 새로운 프로덕션 연출과 하반기 새로운 캐스트들과 꾸릴 ‘백조의 호수’로 행보를 이어간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5-08 18:30 허미선 기자

[B그라운드] D-7, 벌써부터 기대되는 디즈니+ '삼식이 삼촌'

진기주, 깜찍 하트.(연합)모두가 송강호의 ‘첫 드라마 도전작’에 주목했던 ‘삼식이 삼촌’이 베일을 벗었다. 하지만 팽팽한 기둥으로서 진기주와 타파니 영의 존재감이 유독 남다르다. 8일 서울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에서 열린 디즈니+ ‘삼식이 삼촌’ 제작발표회가 열렸다. 영화 ‘러시아 소설’,‘동주’로 대중을 열광시킨 신연식 감독이 연출을 맡은 이 작품은 전쟁 중에도 하루 세끼를 반드시 먹인다는 삼식이 삼촌(송강호)과 모두가 잘 먹고 잘 사는 나라를 만들고자 했던 엘리트 청년 김산(변요한)이 혼돈의 시대 속 함께 꿈을 이루고자 하는 뜨거운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다.이날 송강호는 “올해 영화 데뷔 28년, 연기 데뷔 35년인데, 첫 드라마라 낯설기도 하고 설렌다. 신인의 자세로 임했다”면서 소통과 도전을 위해 작품을 선택했음을 밝혔다. 이에 티파니 영 역시 “사실 제일 첫 번째 드라마 제작발표회인 데다 (배우로는) 신인이기 때문에 최대한 많이 보고 배우려고 했다. 현장에서 선배님의 패션 센스를 구경하는게 즐거웠다”면서 “대본과 스토리에 반했다”며 “캐릭터가 매력적이어서 함께 하고 싶었다”며 존경심을 표하기도.타피나 영이 극중 맡은 인물은 캐릭터들의 출신 배경인 올브라이트 재단 이사의 여동생이자 모종의 목적을 가지고 김산(변요한)에게 접근하는 당찬 캐릭터다. 김산의 여자친구인 주여진 역의 진기주는 특유의 당찬 매력을 또다시 발산할 예정이다. 그는 “글이 촘촘하고 치열하고 재밌었다. 대사들이 정말 좋더라. 제가 뱉어야 하는 대사와 들어야 하는 말도 너무 좋고 매력있어서 꼭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이날 송강호는 스스로를 ‘신인, 후배’라고 칭하며 “이제 드라마로 데뷔했으니 신인상을 주시면 감사히 받겠다”고 말해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기도.(연합)특히 신연식 감독은 ‘삼식이 삼촌’에 대해 “전 세계에서 밥 먹었냐는 질문이 일상인 나라가 대한민국이 유일한 거 같다. 6.25 직후 하루 한 끼도 먹기 힘든 시기를 반영했다”며 작품의 시작점을 알렸다. 이어 “삼식이 삼촌은 먹는 걸로 세상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캐릭터다. 그런데 주변에는 다 엘리트만 있다. 가장 진솔하고 순수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 세상을 먹는 걸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라는 특별 관람 포인트를 전했다. 오는 15일 공개되는 ‘삼식이 삼촌’은 오는 5개 에피소드를 공개한뒤 매주 2개씩 그리고 마지막 주 3개로 총 16개의 에피소드로 전세계 안방을 찾아간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2024-05-08 18:23 이희승 기자

[비바100] 세상 예민하고 까칠하더라도 이런 '꼰대'는 대환영! 영화 '오토라는 남자'

죽으려고 할 때마다 사연도 모르고 나타나는 옆집 여자 마리솔. (사진제공=소니픽처스)매니저를 불러 달랬더니 어려도 너무 어린 여자가 나온다. 대뜸 “학교는 나왔냐?”고 묻는 꼰대. 필요한 밧줄 5야드를 샀는데 인치로 계산해야 한다며 33센트 더 받는 마트의 처사도 어이없다. 전화를 해지하려고 하자 말일이 아니라고 6일치를 더 내라는 전화국도 이해가 안된다. 음악만 나오고 전화돌리기 신공을 펼치지만 죽으려고 마음먹은 오토(톰 행크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 영화 ‘오토라는 남자’ 속 오토는 6개월 전 아내를 잃고 직장에서도 강제 은퇴 당한 뒤 결국 자살을 계획 중이다.현장근무를 줄이더니 한참이나 어린 직원을 상사로 앉히며 굴욕(?)을 줬다. 사실 자신이 처음부터 가르친 후배라도 상사로 모실 수는 있었다. 오토는 매사에 칼 같고 원칙주의자인 자신을 피곤해하는 회사의 분위기를 알고 있다.사실 그는 이웃하고도 사이가 좋지 않다. 한때 절친이었던 루벤은 뇌졸중으로 대화가 되지 않고 그의 아내 아니타 역시 예전같은 친밀함은 없다. 모든 게 아내 소냐(레이첼 켈리)의 부재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사실은 지나치게 FM적인 오토의 성격이 모두와 멀어지게 했다. 살아생전 소냐는 “늘 상대방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해왔던 천사다. 규칙을 지키지 않고 배려를 모르는 사람들을 머저리라 부르며 분노하는 아내 덕분에 오토는 사회에 섞일 수 있었다.아내와 사별한 오토는 자살을 꿈꾸지만 이웃들이 그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영화의 공식 포스터. (사진제공=소니픽처스)아침부터 그가 하는 일은 분리수거장에 아무렇게나 버린 쓰레기를 제대로 분리하고 길가에 아무렇게나 주차한 차들을 구분해 내는 것이다. 인도에 아무렇게나 주차하고 유독 자신의 집 앞에 똥오줌을 싸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웃들에게 매일 이야기를 해도 “유별난 노인네”라는 말만 돌아온다. 평생을 산 타운 하우스가 처음부터 이렇게 무개념인 인간들로 채워졌던 건 아니었다. 집 근처의 숲을 베어 무리하게 집을 짓더니 어느새 사람들도 집을 팔고 떠나갔다. ‘다이 앤 메리카’라는 부동산 업체는 자신이 생각하는 ‘죽어버린 미국’을 뜻하는 것만 같다.세상사람들은 어느새 규칙은 지키지 않고 편리함만을 추구한다. 한술 더 떠 저렴한 집세를 찾아 이사오는 사람들은 라틴계 천지다. 이웃에 매일 허락없이 광고지를 던져대는 알바생은 알고 보니 트랜스젠더다. ‘오토라는 남자’의 원작은 스웨덴 소설 ‘오베라는 남자’에서 출발했다. 톰 행크스의 부인이자 제작자로서 할리우드를 사로잡은 리타 윌슨이 적극적으로 리메이크를 추진한 것으로 알려진다.깐깐한 백인 할아버지를 쥐락펴락하는 이민자의 아이들. 한민족이 아닌 한국을 대입해도 낯설지 않다. (사진제공=소니픽처스)소설 속 주인공은 자신이 정한 원칙을 지키며 충실한 삶을 사는 남자로 43년간 한 직장에 다니고 늘 아내와 커피를 나눠 마셨다. 우연히 기차역에서 마주친 소냐에게 “근처 군부대에서 복무 중”이라고 거짓말을 한 게 유일한 일탈이었다. 영화는 젊은 시절의 오토와 노년의 오토를 죽음을 결심할 때마다 교차시킨다. 밧줄을 목에 건 순간 앞집에 이사온 마리솔 (마리아나 트레비노) 부부는 자신이 가장 경멸하는 인도주차를 하고 천연덕스럽게 공구를 빌린다. 죽기로 나설 때마다 불필요하다 생각했던 이웃들과 지나가는 행인들이 도움을 청한다. 원칙주의자에다 까다로운 오토는 화를 내며 그들의 요구를 들어준다. 아내를 만난 기차길에서는 갑자기 심장마비로 선로에 떨어진 남자를 구하고 권총 자살을 하려는 순간 집안에서 쫓겨난 트랜스젠더가 “하룻밤만 재워달라”며 문을 두드리는 식이다.곧 셋째 출산을 앞둔 마리솔의 오지랖은 상상 이상이다. 이름도 생소한 멕시코 음식을 빌미로 운전연수를 부탁하고 어린 딸들을 맡긴다. 평생 아이가 없었던 오토는 경악하지만 도토리만한 아이들이 뭔 죄인가. 매사에 불의를 참지 못하고 몸싸움을 하는 자신을 “프로레슬러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 볼 줄 아는 귀요미들이다.친근한 아버지의 젊은 시절 이미지를 판박이로 닮은 실제 아들 트루먼 행크스(사진제공=소니픽처스)‘오토라는 남자’는 지극히 미국적인 영화다. 예전보다 달라진 위상으로 사회적 목소리를 내지만 여전히 알게 모르게 소외되는 부류들을 전면에 내세운다. 극 중 루벤과 오토가 갈라선 이유는 미국인이라면 파안대소할 에피소드다. 쉐보레 브랜드 충성도 120%인 오토와 포드를 거쳐 도요타로 갈아탄 루벤이 갈등의 이유다. 그렇게 이민자로 구성된 미국의 본질을 잃지않으면서도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는 주류가 여전히 존재함을 간과하지 않는다. 알고 보니 자신을 트랜스젠더라고 밝힌 남자는 소냐의 제자였다. 최대한 빨리 세상을 등지고 싶었던 오토는 기꺼이 이들의 등대가 돼주기로 마음먹는다.아무도 모르게 죽고 싶었던 그의 삶은 변한다. 부동산 회사가 계략적으로 노인들의 개인정보를 유출해 집을 빼앗었다는 걸 알고 대세인 SNS미디어를 통해 한방 먹인다. 이민자인 마리솔이 편한 오토매틱 운전을 고집할 때 “사랑만 보고 타지에 와서 애를 낳고 학위까지 딴 당신은 강한 사람이지 나약하지 않다”고 호통을 치며 단련시킨다.영화의 엔딩은 훈훈함 그 자체다. 톰 행크스는 영화 스태프로 경력을 쌓던 아들 트루먼 행크스를 카메라 앞에 세우며 싱크로율을 높였다. 젊은 시절 오토를 연기하는 그의 모습은 꼭 닮았으면서도 경력 40년 이상의 아버지와는 다른 신선함으로 시선을 끈다. ‘오토라는 남자’는 소설 원작 ‘오베라는 남자’와는 전혀 다른 매력의 영화다. 극장에서는 소리소문없이 묻혔지만 안방에서 ‘볼 맛’은 충분하다. 현재 왓챠, 웨이브,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2024-05-08 18:00 이희승 기자

[B그라운드] 만약 당신이 '라베'란 단어를 모른다면 당장 클릭!

김국진이 골린이 후배 두 명을 조련하는 골프 간달프로 변신한 ‘나 오늘 라베했어’의 제작보고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제공=MBC에브리원)적어도 한국에 ‘골린이’는 사라질 것같다. ‘골프초보’를 뜻하는 골프와 어린이의 줄임말이지만 MBC에브리원 신규 예능 프로그램 ‘나 오늘 라베했어’가 야심차게 포문을 열기 때문이다. 7일 오전 서울 앰배서더 풀만 호텔에서 방송인 김국진, 전현무와 가수 권은비를 필두로 프로 골퍼 문정현이 참석한 제작보고회가 열렸다.‘나 오늘 라베했어’는 골프 일타강사 김국진과 문정현 프로를 만나 ‘라베(라이프타임 베스트 스코어)’ 100타의 벽을 깨기 위해 도전한 전현무와 권은비의 도전기를 담은 성장예능이다. 김국진과 전현무가 지난 2013년 종영한 KBS 2TV 예능 ‘남자의 자격(약칭 남격)’ 이후 11년 만에 재회한 프로그램으로 제작단계부터 큰 화제를 모았다.SBS에서 ‘런닝맨’, ‘집사부일체’를 담당했던 이세영 PD는 “ 많은 분들이 김국진, 전현무 두 분이 애틋한 걸 모르실 거라고 본다. 찍으면서도 ‘이 정도였나’싶을 정도로 애틋했다”면서 “ 골프 실력보다는 잘하는데 못하는 것, 좋아하지만 뜻대로 안 되는 걸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드릴것”이라며 명랑 만화같은 성장 스토리를 예고했다.제목의 ‘라베’는 골프용어로 최고의 성적을 뜻한다. (사진제공=MBC에브리원)두 사람의 남다른(?) 속내는 제작보고회 내내 훈훈함을 자아냈는데 이날 김국진은 “처음 봤을 때 저 친구는 아나운서가 아니라 예능인이라는 걸 바로 느꼈다. 그런 모습이 굉장히 귀여웠다. TV를 잘 보지 않는데 전현무가 나오는 프로그램은 채널을 멈추고 본다. 이번에 같이 만나니까 너무 좋다”고 말했다. 전현무 역시 “처음고백하는 말인데 결혼을 하게 되면 주례로 모시고 싶은 분이다. 제가 외동으로 자라서인지 큰 형 같은 분이다. ‘남자의 자격’에서 못 한 것 하나가 골프인데 그걸 10 몇 년이 지나서 이루게됐다”고 화답했다.늘 화제의 의상을 입었던 권은비는 이번에도 패션퀸에 도전한다. 그는 “‘라베했어’를 통해 다양한 골프복을 입어봤는데 생각보다 예쁜 옷들이 많다”면서 “골린이의 입장이라도 흥미가 다시 생길 것”이라고 강조했다.이날 문정현 프로는 스포츠로서 기초와 연습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강조하는 모습이었가. 문프로는 “골프는 쉽게 늘지 않고 연습도 굉장히 필요한 운동이다. 구 분이 100타만 넘겨도 행복할것같다. ‘나 오늘 라베했어’에서 ‘나 오늘 행복했어’로 끝났으면 한다”고 말했다. 첫방송은 금일(7일) 오후 8시 30분이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2024-05-07 13:40 이희승 기자

[비바100] ‘천개의 파랑’ 박천휘 작곡가 “0과 1로 이뤄진 세상, 천천히 그리고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

‘천개의 파랑’ 작곡가 박천휘(사진제공=서울예술단)“제가 제일 처음 만든 곡이 콜리의 노래였어요. 소설 속에서 콜리가 세상에 처음 눈을 뜨는 순간이죠. 콜리는 칩이 잘못 끼워져 학습기능이 있는, 다른 로봇들은 1000개 단어밖에 모르는데 얘는 그 이상을 알고 싶어하는 로봇이에요. 그런 콜리가 다른 로봇들과 같이 화물차를 타고 가다가 처음으로 하늘을 보고는 ‘찬란하다’라는 말을 하는 장면이 있어요. 그 장면을 노래로 만든 넘버죠.”‘천개의 파랑’(5월 12~26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의 박천휘 작곡가는 “넘버를 쓸 때 순서에 상관없이 제일 잘 보이는 것, 제일 정확하게 보이는 것부터 쓴다. 그러면 나머지 곡들도 블록처럼 끼워 맞춰지기 시작하기 때문”이라며 “이 작품에서는 바로 이 장면이었다”고 밝혔다.“이 곡을 제일 먼저 쓰면서 고민은 로봇이 노래를 한다는 자체였어요. 과연 어떤 목소리로 노래할 것인지,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가 가장 큰 과제였어요. 전자음악을 하긴 해야하는데 로봇처럼 딱딱한 노래나 디지털 음악, 사이버 음악이어야 하나…(노래를) 안할 수는 없는데 어느 정도로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죠.”◇로봇 콜리가 처음 본 세상, 0과 1 그리고 ‘도’ ‘레’‘천개의 파랑’ 포스터(사진제공=서울예술단)“그렇게 고민하다가 생각난 게 0과 1이었어요. 이제 막 눈을 뜬 로봇인 콜리에게는 다 0과 1일 거예요. 그래서 음계의 시작점인 ‘도’ ‘레’로 음악을 만들어봐야겠다 했죠. 사실 ‘도’ ‘레’만은 아니에요. 도미, 도파, 레파 등 그 위에 ‘미’ ‘파’도 짚었으니 정확한 의미의 ‘도’와 ‘레’만은 아니죠. 사실은 굉장히 많은 것들이 있지만 딱 두 개 음만을 가지고 왔다갔다는 하는 것처럼 구현된달까요.”이는 ‘뱀프’(Vamp)라는 작법으로 심플한 리듬 패턴을 반복해 멜로디 라인을 구성하는 방식이다. 박천휘 작곡가는 “그 부분이 노래 전체에 계속 나오며 지배한다”며 “반복되는 모티프가 지배하는 건데 ‘천개의 파랑’에서 0과 1이 모티프”라고 부연했다.“모든 곡을 쓸 때의 제 스타일이에요. 맨 앞에 있는 단순한 2~4마디 정도의 반주를 만들고 그 위에서 모든 걸 해보죠. 모티프적인 작곡인데 그 모티프는 인물의 감정이 핵심입니다. 콜리가 노래를 하기 위한 감정의 핵심은 무엇일까 고민했죠. 얘는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세상을 처음 봤어요. 흔들리는 차 안에서 본 하늘도 같이 흔들렸을 거예요.”그 흔들림과 그런 하늘을 보면서 느꼈을 콜리의 흥분된 상태 등을 음악으로 표현하기 위해 떠올린 모티프가 디지털의 이진법을 구성하는 숫자 0과 1이었다. 이 모티프는 박천휘 작곡가의 표현대로 “콜리의 노래 뿐 아니라 이후의 다른 곡에서도 모티프로 사용하는 식으로 인물들의 인과성을 만들고 서로를 연결시키는 일종의 퍼즐놀이”다.“뮤지컬 음악은 결국 연결돼요. 반복을 왜,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죠. 극적인 상황이 달라짐에 따라 같은 음악이 어떻게 반복되는지를 계산하는 게 뮤지컬 작곡의 핵심이라고 저는 생각하는 것 같아요.”‘천개의 파랑’은 펜타곤 진호와 오마이걸 효정의 뮤지컬 데뷔작이기도 하다. 왼쪽부터 연재 역의 서연정·효정, 콜리 진호·윤태호(사진제공=서울예술단)‘천개의 파랑’ 뿐 아니라 그가 넘버를 꾸린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작은 아씨들’ ‘트레인스포팅’ 등 역시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렇게 반복되는 멜로디와 속도의 변화로 변주되는 넘버들의 핵심은 오롯이 인물의 감정, 상황의 변화다. “이 작품은 콜리가 추락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해 추락으로 끝나요. 빨리 달려야만 하지만 다리가 아픈 투데이를 위해 스스로 추락하는 걸 선택하죠. 맨 마지막에 그 첫 추락이 또 나와요. ‘천개의 파랑’에서 보여주는 3번의 추락을 음악적으로 어떻게 다르게 보여줄까 고민이 많았어요. 반주 형태가 다를 뿐 멜로디는 같아요. 떨어지는 추락의 순간은 찰나잖아요. 그 찰나의 순간에 콜리는 하늘을 봐요. 처음처럼. 마지막으로 보는 것도 하늘이고 이 아이가 보는 그 순간을 아름답게 표현하기 위해서 그 주변의 음악을 만드는 거죠.”‘천개의 파랑’ 박천휘 작곡가(사진제공=서울예술단)◇영상과 퍼펫의 조화로 엮어낼 인간과 로봇, 동물의 연대 “제가 여태까지 했던 작품 중 가장 위험한 작품인 걸 처음부터 알았어요. 제 의도들이 음악적 반복, 변주 등을 통해 얼마나 잘 표현될지 저도 기대 중입니다.”박천휘 작곡가가 이렇게 밝힌 ‘천개의 파랑’은 천선란 작가의 동명소설을 서울예술단이 무대화한 작품이다.펜타곤 진호와 오마이걸 효정의 뮤지컬 데뷔작으로 박천휘 작곡가를 비롯해 김태형 연출, 김한솔 작가, 김혜림 안무가, 박동우 무대디자이너, 고동욱 영상디자인, 이지형 퍼펫디자이너 등이 의기투합했다.‘천개의 바랑’에서 퍼펫은 “로봇을 표현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박천휘 작곡가는 “콜리가 로봇처럼 보이는 순간 이 작품의 맛이 안 살 것”이라며 “SF장르로 정확하게 가버리는 순간 뮤지컬로는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SF와 뮤지컬은 상극인 장르거든요. 뮤지컬은 노래를 한다, 서정적인 정서를 표현한다는 약속이 있는 판타지인 반면 SF는 영화 등의 매체에서 실제적으로 구현되는 데 익숙한 장르거든요. 그래서 SF라는 장르에 집착하는 순간 노래를 하면 안되게 돼버려요. 그래서 퍼펫이 적절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사실 이 작품의 장르는 SF가 아닌 것 같아요.”빠르게 기술들이 진보하는 미래, 경마장에도 사람들이 다칠까 혹은 무거워 한껏 달리지 못하는 말들이 더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도록 휴머노이드 기수가 도입됐다. 더불어 화재 진압을 위해 인간대원들의 안전장비 보다는 로봇들에 더 많은 예산을 쏟아 붓는 시대를 배경으로 그 기술들과 미래가 배제하고 지나쳐버림으로서 희미해진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다.‘천개의 파랑’ 연습현장(사진제공=서울예술단)한때는 최고 몸값을 자랑했지만 관절을 심하게 다쳐 빨리 달릴 수 없게 된 경주마 투데이, 누군가의 우연과 실수로 인지학습능력 칩이 장착돼 투데이의 고통이 느껴져 스스로 낙마하는 통에 하반신이 부서져 버린 휴머노이드 기수 콜리(윤태호·진호, 이하 가나다 순), 로봇 분야의 천재지만 넉넉지 않은 집안사정으로 꿈을 접어야만 하는 연재(서연정·효정), 어릴 적 병으로 장애를 갖게 돼 휠체어를 탄 은혜(송문선), 낡은 방화복 차림으로 화재현장에 출동했다 죽음을 맞은 남편에 대한 애도를 끝없이 반복하는 은혜와 연재의 엄마 보경(김건혜)….소외되고 상처입고 약해진 이들이 하반신이 부서진 채 버려진 콜리, 안락사를 당하기 직전의 투데이와 깊은 교감을 나누면서 연대하는 이야기다. 마냥 슬플지도 모를 상황에 처한 이들의 이야기지만 ‘천개의 파랑’은 때로는 쾌활하고 또 때로는 밝다. 미래의 이야기지만 차갑기 보다는 온기가 스며있기도 하다. ‘천개의 파랑’ 콜리 역의 진호(왼쪽)와 연재 효정(사진제공=서울예술단)“로봇인 콜리의 음악이 처음에는 되게 전자음악처럼 시작해요. 그 아이가 알고 있는 1000개의 단어들을 뱉어내는 자체도 한음의 멜로디를 쓰죠. 반주는 화려하지만 얘가 부르는 노래는 처음엔 진짜 로봇처럼 시작해요. 그리곤 바로 되게 서정적인 노래가 나와요. 콜리가 말을 달리면서 느끼는 감정들이 변주되죠.”투데이와 함께 하는 기쁨에 쓰이는 멜로디가 고통의 노래로도 변주되는 음악에 대해 “전자적인 요소와 인간적인 요소를 모두 써서 표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마지막 경주에서만큼은 가장 인간적인 합창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부연했다.“오히려 가장 아날로그스러운 사람의 목소리 합창이 위주가 된 그런 노래로 마지막 콜리와 투데이의 경주, 말에서 추락하는 콜리를 표현하고 있죠. 모든 음악이 세 번째 나오는 콜리의 추락, 그 한 순간을 위해 달려가는 느낌이에요. 그 한 순간의 꼭짓점을 위해 모든 음악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 순간 콜리의 희생에 약간 종교적인 느낌도 나는 것 같아요. 로봇이 희생을 한다는 게 되게 아이러니하잖아요.”극 중에는 크리스마스 합창, 박천휘 작곡가의 표현처럼 “경건하고 웅장한 성가 혹은 크리스마스 음악 느낌을 살린” 장면도 등장한다. “보경이 사고를 당하는 장면에 쓰이는 이 음악은 무반주 느낌의 크리스마스 합창”으로 표현된다. “아이러니죠. 어떻게 보면 가장 성스러운 순간에 보경은 끔찍한 사고를 당해요. (생존율) 3%, 그 가능성 때문에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게 되고 아이들을 얻게 되고 또 그 남자를 잃게 되고 콜리가 서로 미안해서 말하지 못하던 세 모녀의 연결고리가 되는 과정이 한 자리에서 일어나요.”◇단 3%의 가능성,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이 만드는 희망‘천개의 파랑’ 연재 역의 연정(왼쪽)과 콜리 윤태호(사진제공=서울예술단)“사실 ‘천개의 파랑’은 콜리의 눈으로 본 세상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콜리라는 인물 자체가 로봇이라기보다는 그냥 백지장 혹은 아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저는 이 얘기를 처음 보자마자 영화 ‘이티’(E. T)가 떠올랐어요. 아무 것도 모르는 어떤 매개체에 의해 가족이 변하는 이야기, 걔가 건네주는 아무 것도 모르는 순수한 희망 같은 그런 이야기요.”최첨단 기술이 일상이 되고 로봇들이 등장하는, 인간마저도 인간답지 못한 세계에서 희망과 연대를 이야기하는 ‘천개의 파랑’ 음악에 대해 박천휘 작곡가는 “좀 다양한 속도의 음악을 만들려고 했다”고 털어놓았다.“달리는 말, 바쁜 현대인들의 삶 등이 경마라는 걸로 알레고리(말하고자 하는 바를 그대로 드러내지 않고 다른 것에 빗대어 설명하는 방식)화된 작품이라는 생각도 들거든요. 그래서 천천히 달리기, 우리는 천천히 달리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 작품의 중요한 메시지 같아요.”이 메시지는 막바지에 배치된 ‘천천히’에 담긴다. 박천휘 작곡가는 “음악적으로도 같은 테마가 빠르게, 느리게 속도를 달리하며 변화된다”고 전했다. 더불어 킬링넘버로는 콜리의 이름을 지어주는 ‘브로콜리’를, 가장 좋아하는 넘버로는 1막 마지막 곡인 보경의 ‘3%의 가능성’을 꼽았다.‘천개의 파랑’ 작곡가 박천휘(사진제공=서울예술단)“쇼 스토퍼(Show Stopper, 극 진행과 상관없이 화려하고 신나는 장면) 같은 ‘브로콜리’는 C-27이던 로봇이 왜 콜리라는 이름을 가지게 됐는지를 보여주는 넘버예요. ‘콜리’라는 이름이 반복되는, 아예 신나려고 작정하고 쓴 노래죠. 중간에 프로그래밍하면서 복잡한 음악도 나오고 재밌어요.”그가 가장 좋아하는 넘버로 꼽은 ‘3%의 가능성’은 보경 역의 김건혜 서울예술단원이 “노래를 받자마자 다 외워졌다”면서도 “도무지 이어지질 않아서 저는 미쳐가고 있는데 노래는 듣기에 너무 편하고 드라마가 되게 많이 들어 있어서 한동안 멘붕에 빠져 있을 정도”라고 호소했던 곡이기도 하다.“사실 노래라는 건 기본적으로 반복이에요. 모든 노래는 반복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거든요. 반복을 안 하는 음악이라는 걸 별로 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보경의 이 노래를 만들면서는 좀 다르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우리가 살아 있는 매 순간이 이렇게 다 다른데 멜로디를 한번도 반복하지 않으면 어떨까 싶었어요. 그런데 그게 레치타티보(Recitativo) 같지 않고 노래 같이 들리면서도 후크가 되는 딱 한 부분만 반복을 쓰는 노래를 만들어 볼 수 있을까…그냥 또 도발적인 제 질문이었어요.”그는 “멜로디를 일부러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틀어서 조금씩 바꿨다”며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순간이 지나가는 것처럼 뭔가 박자도 엇박이고 음정에도 약간 이상한 도약이 있다”고 설명했다.“이 곡을 쓰면서 많이도 울었어요. 3%의 가능성이지만 가능성이 있다는 건 희망이라고 말하고 있거든요. 희망이라는 건 그런 거잖아요. 사실 연재, 은혜, 보경 등이 투데이에게 주려고 하는 건 겨우 두주의 삶이에요. 근데 그 두주의 삶이 있기에 그 다음에 희망을 걸게 되는 것 같아요. 두주 후에 투데이가 살아날 수도 있잖아요. 작지만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이 희망을 만드는 것이고 그것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천개의 파랑’은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는 이 순간에 대한 이야기죠.”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5-06 18:30 허미선 기자

[비바100] 당분간 이보다 더 섹시한 삼각관계는 없을지도! 영화 '챌린저스'

북미 개봉 오프닝 주 첫 주말에 수익만 1500만 달러(한화 약 206)를 기록한 ‘챌린저스’의 한 장면. (사진제공=워너브라더스코리아)아들의 친구와 사랑에 빠진 재벌 사모님, 교수 아버지의 조수와 사랑에 빠진 청소년에 이어 이번엔 삼각 관계다. 지난 4월 24일 개봉한 영화 ‘챌린저스’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테니스 세계를 배경으로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아슬아슬한 삼각관계를 ‘챌린저스’는 감독의 전작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전 세계 수입액인 4100만 달러(한화 약 564억)를 가뿐하게 넘을 모양새다. 이미 1900만 달러(한화 약 261억)를 벌어들였고 평단의 극찬까지 이어지며 ‘흥행과 작품성을 사로잡은 치정극’으로서 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사실 ‘챌린저스’는 남녀 간의 사랑으로 생기는 온갖 어지러운 감정을 뜻하는 ‘치정’(癡情)의 경계선이 모호하다. 극 중 아트(마이크 파이스트)와 패트릭(조쉬 오코너)은 10대부터 룸메이트였고 동시에 테니스를 배웠다. 그들은 코트에서 물과 기름으로 불렸지만 두터운 우정을 과시하며 이제 막 20대에 들어섰다.  젠데이아가 주연과 동시에 직접 프로듀서로 나선 ‘챌린저스’. (사진제공=워너브라더스코리아)동시에 한 여자를 생각하며 침대에서 스스로를 위로(?)한 적은 있었지만 적어도 이상형이 겹치는 경우는 드물었다. 테니스 천재 타시(젠 데이아)가 등장하기 전까지는.이미 스타로서 앞날이 보장됐던 타시와 달리 두 사람은 그저 왕성한 호르몬을 주체 못하는 또래의 남자였다. 타시는 결승전에 이기는 사람에게 자신의 연락처를 주기로 하고 운명처럼 패트릭과 연인이 된다.사실 두 남자에게 테니스는 전부였지만 친구를 이길 만큼의 존재는 아니었다. 하지만 타시의 등장으로 두 사람은 테니스로 서로를 이기고 싶어한다. 하지만 신은 아트에게도 기회를 준다. 프로 데뷔가 목표였던 패트릭과 달리 아트는 대학교에 진학해 선수가 아닌 삶을 준비한다. 사실 타시도 같은 학교를 간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금방 깨질 거라 생각했던 절친과 그 여자친구의 관계가 의외로 오래가는 게 신경 쓰일 뿐이다.‘챌린저스’는 두 남자 사이에 낀 여자의 갈등과 고민을 담은 영화가 아니다. 셋이 각자의 위치에서 팽팽하게 삼각형을 이룬다. 타시는 프로데뷔를 앞두고 패트릭과 큰 싸움을 하고 결국 부상으로 코트를 떠나는 비운의 선수가 된다. 하지만 진 게 아니다. 그의 옆에는 누구보다 근면하고 자신을 추앙하는 아트가 남편으로 존재한다.지금은 연패 슬럼프에 빠졌지만 그는 선수로서 착실하게 우승을 쌓아왔다. 아내이자 코치로서의 삶에 충만함을 준 존재다. 미디어와 언론은 두 사람의 스타성을 간과하지 않는다. 타시는 그런 스포트라이트를 즐기며 살아간다. 하지만 남편과 둘도 없는 친구였고 자신의 전 연인인 패트릭이 챌린저급 대회에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묘한 감정을 느낀다. 그와의 싸움 후 과한 경기력으로 무릎 부상과 함께 사라져야 했던 과거를 생각하면 분노가 치밀지만 여전히 야생마 같은 날 것의 게임을 하는 패트릭의 경기는 늘 흥분된다. 대회 참가 상금으로 생활을 하는 그는 전세계 200위 밖의 순위에다 숙박료가 없어 차에서 자는 신세다. 그에 비해 아트는 아내의 주도면밀한 관리체계와 성실함이 맞물려 세계적인 선수가 됐다.두 남자 사이에는 미묘한 기류가 흐른다(사진제공=워너브라더스코리아)다 가졌지만 불안한 남자와 아무 것도 없기에 자신만만한 남자의 미묘한 기류는 결국 코트 밖 사우나 실에서 충돌한다. 사실  ‘챌린저스’는 후반 20분을 위해 달려가는 영화다. 결승전에서 만난 두 사람을 바라보는 타시. 그리고 그 시선을 따라가는 아트와 뭔가 그 상황을 즐기는 듯한 패트릭의 미소는 세 사람의 과거를 교차시킨다.대놓고 드러내진 않지만 두 남자의 감정은 우정 이상이다. 영화 ‘아이 엠 러브’를 통해 엄마뻘 여성과 사랑에 빠진 남자의 불안과 환희를 동시에 쥐고 흔들었던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 특유의 필살기가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비밀스럽지만 아련하고 결국 모든 걸 걸었던 감정의 포텐이 터지는 과정이 반복되는데 그 과정이 세련되고 경이롭다.  극 중 선을 넘나드는 세 남녀의 아슬아슬한 관계를 부추기는 건 음악이 8할이다. 지금은 추억의 리듬으로 불리지만 리듬감 넘치는 테크노 사운드가 흡사 경기장 안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한번 봐선 안되는 영화가 있다. 여러 번 보게 만드는 ‘챌린저스’가  바로 그런 영화다.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2024-05-06 18:00 이희승 기자

[쁘띠리뷰] 참으로 클래식다운 유머! 제19회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가족음악회: 유머레스크’

가히 대단한 자신감의 발로이자 그래서 가능한 기획이었다. 그리고 지극히 클래식답다.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제19회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Seoul Spring Festival of Chamber Music) ‘가족음악회: 유머레스크’(Family Concert: Humoresque, 5월 4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는 각 분야의 대단한 비르투오소(Virtuoso)들의 조화가 돋보인 공연이었다. 사실 클래식으로 박장대소를 이끌어 내기란 쉽지 않다. 이에 잦지 않은 기획이기도 하다. 하지만 클래식에는 작곡가들이 저마다의 방식대로 비틀거나 박자를 밀당하는 등 다양한 방식의 유머들을 숨겨두고 있다. ‘유머레스크’는 그 유머들을 연주자들의 연출을 곁들여 관객들과 공유하는 음악극이다.제19회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가족음악회: 유머레스크’(사진제공=축제사무국)음악 속 유머를 진중하면서도 유쾌하게 풀어내 온 피아니스트 주형기를 주축으로 마냥 진지하고 고요하게만 보였던 예술감독이자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마저 큰 웃음을 자아내는 데 나섰다. 더불어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 MBC ‘나 혼자 산다’ 출연으로 눈길을 끌었던 대니구, 세계적인 비올리스트 신연 황과 김상진, 첼리스트 마리 할린크(Marie Hallynck), 피아니스트 무히딘 뒤뤼올루(Muhiddin Durruoglu)까지 한데 어우러졌다.공연이 시작하자마자 객석에서 전화벨이 울리고 졸면서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의 ‘엘리제를 위하여’(Baratelle in A Minor, WoO 59 ‘Fur Elise’)를 연주하다 바닥에 널브러지면서도 손은 건반 위를 떠나지 않는다. 두 피아니스트가 자리부터 악보, 건반 등까지를 유리하게 차지하기 위해 혹은 더 튀기 위해 아귀다툼이다.제19회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가족음악회: 유머레스크’(사진제공=축제사무국)하이든의 ‘현악4중주 no. 2 The Joke-피날레, Op.33’(String Quartet No. 2 ‘The Joke’-Finale, Op. 33)은 끝낼 듯 끝내지 않고 마지막까지 장난질이다. 야마하 피아노는 신용카드를 긁어야만 열리고 은행 ARS처럼 원하는 번호를 선택해야만 연주할 수 있는가 하면 한정된 연주 시간도 연장할 수 있다. 연주를 하던 연주자들이 ‘혼자라 외롭다’ 통곡을 하는가 하면 ‘하하하’ 소리를 내며 크게 웃어젖히기도 한다. 속도를 올리며 익숙한 레퍼토리마저 새롭게 해석하더니 급기야 신연 황은 폴 힌데미트(Paul Hindemith)의 ‘비올라 솔로 소나타’(Sonata for Viola Solo No. 1, Op. 25, 4th mov.)를 1분 17초여만에 끝내며 환호를 이끌었다.제19회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가족음악회: 유머레스크’(사진제공=축제사무국)자칫 유치해질 수도 혹은 ‘감히’ 클래식과 작곡가를 희롱하거나 웃음거리로 전락시킨다는 오해 또는 분노를 유발할 수도 있을 유머들은 숙련된 연주자들로 인해 한껏 클래식다웠다. 웃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진지한 연주도, 코믹 연기도 천연덕스럽게 소화하는 숙련된 연주자들로 객석의 웃음소리는 더욱 크고 선명해졌다. 그렇게 실력과 끼를 두루 갖춘 데다 서로에 대한 믿음까지 굳건한 베테랑들이 그리고 음악이 걸어오는 농담에 마냥 진지하고 엄숙하게만 연주되던 곡들은 ‘클래식다움’으로 객석에 박장대소를 선사했다. 다시 한번 반복하자면 가히 대단한 자신감의 발로이자 그래서 가능한 기획이었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5-05 12:27 허미선 기자

[비바100] 경이로운 먼나라, 괴이한 이웃나라

리우 카니발.세계 여러나라를 경험하다 보면 ‘이런 기이한 풍습도 있었나’ 하고 놀랄 때가 있다. 인류는 한 자손이라고 하지만, 오랜 세월 자신이 속한 지역에서 자신들만의 고유한 문화를 키우고 유지하며 사는 특이한 주목들을 만나게 된다. 이 책은 그렇게 오랜 역사 속에서 저마다의 풍속과 관습을 유지하며 종족의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는 다양한 인류의 이야기다. 기이하고 괴이하고 다채롭고 이색적인 세계 문화의 면면들을 살펴보자.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기이하고 괴이한 세계 풍속사|이상화|노마드◇ 다부 다처제 ‘조에족’, 형제가 아내 한 명을 공유하는 ‘록파족’ 아마존 정글에 130여 명이 모여 사는 조에족은 아랫입술과 턱 사이에 둥근 나무토막을 끼워 넣은 ‘뽀뚜루’로 유명하다. 다부 다처제로, 종족의 혈액형이 모두 A형이다. 고립된 생활 탓에 같은 부족끼리 족내혼이 많기 때문이다. 성을 개방함으로써 젊은 남녀들이 성적 요구를 해소할 수 있고, 그만큼 임신 확률도 높아져 종족 번식에 도움이 된다고 믿었다.히말라야 자락에서 양과 염소를 키우며 유목생활을 하는 록파족은 여성이 무척 귀해, 젊은 남자들이 결혼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함께 사는 모든 형제가 한 명의 아내를 공유한다. 형제들도 아무런 불만이 없다. 아이를 임신해도 그가 누구의 아이인지 절대 얘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누구의 아이든 똑같은 자녀로 키운다.◇ 중국 여성의 족쇄 ‘전족(纏足)’중국 전족 풍습.중국 미인의 10대 조건 가운데 ‘연보소말(蓮步小襪)’이 있다. 전족한 작은 발(蓮步)과 그 발을 싼 작은 양말(小襪), 즉 여성은 전족해서 발이 작아야 미인이라는 뜻이다. 전족은 송나라부터 청나라 때까지 1000년 넘게 이어온 고약한 풍습이다. 4,5세 된 아이의 양쪽 발가락을 억지로 꺾어 발바닥에 붙인 뒤에 꽁꽁 싸맸다. 그렇게 3년쯤 지나면 이상적인 3촌, 9㎝ 정도의 발 크기가 완성되었다고 한다. 처음에 전족은 한족의 귀족과 상류층의 상징이었다. 결혼한 여성의 도주를 막기 위해 혹은 출산에 유리하다고 해 그러했다는 얘기들도 있다. 청나라 때 전족 금지령이 내려졌다가 1930년대 후반 국민정부 때 완전히 사라졌다.◇ 대 이은 복수 ‘카눈’, 스스로 죽음을 맞는 ‘축치인’시베리아의 소수 유목민족 ‘축치(Chukchi)’인들은 러시아 제국에 맞선 용맹함으로 좀처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나이가 들거나 질병으로 죽게 될 상황이 오면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자살이 아니었다. 가까운 친척이나 친지들에게 죽여달라고 부탁했고, 부탁받는 사람들은 그를 죽여야 했다. 그래서 현재 이 부족은 거의 멸족 상태다.유럽 최대 빈국(貧國)에 속하는 알바니아에는 ‘피의 복수’를 허용하는 ‘카눈(Kanun)’이라는 관습법이 있다. 누군가에게 큰 피해를 입었거나 심하게 창피를 당하면 대를 이어 복수하는 풍습이다. 어느 한 쪽이 포기할 때까지는 보복과 복수가 끝나지 않았다. 복수를 포기하는 것은 가문의 수치이며 평생 조롱거리로 여겨졌다.◇ 오체투지(五體投地), 티베트만의 특이한 고행조캉 사원에서 오체투지에 열중하고 있는 티베트인들.오체투지는 108배, 3보 1배(三步一拜)와 함께 티베트 불교의 대표적 수행방법이다. 합장을 하고 열 걸음 정도 걷다가 몸을 구부려 무릎을 꿇고, 이어 양 손을 앞으로 내밀며 온 몸을 땅바닥에 붙인다. 이마와 양 팔, 양 발 등 오체가 모두 땅바닥에 닿으면 양 손을 조금 들어 기도하는 자세를 취했다가 반대 순서대로 같은 동작을 되풀이한다. 티베트인들은 신앙심이 투철해 평생 단 한 번이라도 성지(聖地)인 ‘라싸’ 순례를 숙원이라 여기고 몇 달, 몇 년이 걸리더라도 이런 오체투지를 감수하며 고행길에 나선다. 티베트가 워낙 황량한 자갈밭이라 무척 힘든 여정인데, 이들이 향하는 마지막 목적지는 티베트불교의 총본산인 ‘조캉 사원’이다.◇ 독특한 결혼문화… 탄자니아 자라모족과 베트남 자오족탄자니아의 자라모(zalamo)족은 신혼부부의 첫날 밤 모든 애정 행위를 감시원들이 바로 곁에서 지켜보는 독특한 풍습으로 유명하다. 성 경험이 풍부한 중년 여성들이 함께 들어가 신랑 신부의 알몸 신체로 정상 여부를 확인하고, 부부의 모든 행위를 관찰하고 평가한다. 서로에게 장애가 없는지 등을 확인하기로 양가가 사전에 합의했기에 가능했다.‘베트남의 스위스’라 불리는 사파(Sapa)에 사는 소수민족 자오(Dao) 족은 주말마다 열리는 장터에서 일종의 ‘사랑 시장’을 연다. 오며 가며 서로 눈이 맞으면 즉석에서 짝을 맺어 하룻밤 사랑을 나눈다. 아이가 생기면 마을의 경사로 여겼다. 성을 즐기려는 의도가 아니라 자녀를 많이 낳아 종족을 늘리려는 고육책이었다. ◇ 유랑민족 ‘집시’가 남긴 버스킹과 히피유럽에서 유랑하던 집시들은 버스킹과 히피라는 희대의 유산을 남겼다.유랑 민족 ‘집시(Gypsy)’는 전 세계에 700만~120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유럽 아리안족이 이동해 고대 인도에 정착했다가 추방당하면서 살 곳을 찾아 떠돌아 다니던 사람들이다. ‘집시’라 불리기를 싫어해 스스로는 남자 또는 남편을 뜻하는 ‘롬(Rom)’이라 부른다. 자주 이동해 고정적인 직업을 갖기 어려웠기에 여성들은 점쟁이, 남성들은 거리의 약장수가 많았다. 이들은 선천적으로 음악성이 뛰어났다. 이들이 남긴 유산이 거리 공연 ‘버스킹(busking)’이다. 먹고 살기 위해 거리에서 춤추고 노래하면서 관중들이 던져주는 동전 등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또 하나는 히피(hippy) 문화다. 꾸밈 없이 자연스런 모습과 생활태도가 트레이드 마크였던 집시가 바로 히피족의 모델이다.◇ 흑인 노예들의 애환이 담긴 ‘리우 카니발’브라질 리우 카니발.브라질을 식민지화한 포르투갈은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려 아프리카 흑인들을 대거 수입했다. 16~17세기 브라질 인구의 3분의 1이 흑인 노예였다. 토속신앙인 부두교를 믿었던 이들에게 가톨릭을 강요했지만 따르지 않자, 포르투갈은 가톨릭 종교 의식만이라도 따르라며 가톨릭 축제에 적극 참여하라 압박했다.흑인 노예들은 사순제나 사육제 같은 행사에 참여해 고향 아프리카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을 담아 쌓인 한을 쏟아냈다. 그들이 아프리카 고유의 리듬과 장단에 맞춰 격렬하고 신나게 춘 춤이 ‘삼바’였고, 이것이 리우 카니발의 시작이었다. 축제는 해마다 2월 초, 사순절 직전까지 약 5일 동안 리우데자네이로에서 열린다. 길이 약 700m의 삼보드로무 공연장을 가로지르는 축제 행렬이 장관이다.◇ 여성에 대한 매질과 명예살인이슬람권의 명예살인에 반대하는 시위대. (사진=AFP 연합)파키스탄 등 서남아시아의 원리주의 이슬람 국가들은 노골적으로 여성을 차별한다. 그 대표적 풍습이, 부정한 여성을 가족과 친척들이 처형하는 ‘명예살인’이다. 억울하게 성폭행을 당했어도 가차 없이 처형당했다. 명예살인에 관여한 남성들은 법적 처벌을 받지만 고작 6개월 형 정도다. 지금도 제도 존속 필요성을 국민들 절반이 지지한다고 한다. 남아메리카의 야노마미 족은 폭력적이고 호전적이다. 잦은 전쟁 탓에 성인 남자들은 모두 전사(戰士)였다. 자연스럽게 남성 우월주의가 형성되며 일부다처제가 되었다. 문제는 여성 폭력까지 정당화되었다는 점이다. 사랑 하는 여자일수록 더 심하게 매질을 당했고, 여자들은 오히려 이를 행복해 했다. 하지만 요즘은 매질을 피해 떠나는 여인들이 많다고 한다.◇ 일본의 한겨울 알몸 축제, 페루의 새해맞이 싸움 축제일본 하다카 마쓰리.혼슈 서부 오카야마(岡山)의 알몸 축제 ‘하다카 마쓰리’는 500년 역사를 자랑 한다. 1만 명 이상의 남자들이 전통 속옷인 ‘훈도시’만 착용한 채 알몸으로 한겨울의 차디찬 물속에 뛰어든다. 이 때 승려들이 던져주는 작은 나무 막대기 ‘싱기(神器)’를 잡으려는 치열한 몸싸움이 펼쳐진다. 이 막대기를 잡으면 일년 내내 행운이 따른다고 한다.페루의 ‘타카나쿠이’는 잉카 문명의 발상지인 쿠스코 인근 지역 토착 원주민들의 전통 축제다. 가족이든 이웃이든, 남녀 상관 없이 평소 사이가 안 좋았던 사람끼리 피 튀기는 주먹다짐 끝에 화해하는 축제다. 싸우다가 상대방이 넘어지면 멈춰야 한다. 싸우다 지치거나 다쳐 심판이 끝내고 화해시켜 주면, 사람들은 둘을 진심으로 축하해 준다.◇ 생니 뽑고 번지점프 시키는 성인식바누아투족 성인식.수단 남쪽의 다사나시(Daasanci)족은 물이 부족해 모래로 목욕할 만큼 열악해 생존력이 강하다. 특히 성인식은 잔인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10세 때 성인식을 치르는데, 아랫니 2개를 마취도 않고 뽑는다. 신음이나 울음을 터트리지 말아야 성인이 될 수 있다. 여성은 도망 못가게 두 발목에 쇠붙이로 된 족쇄도 채운다. 아이를 낳은 뒤에야 풀 수 있었다고 한다.남태평양 섬나라 바누아투(Vanuatu)의 로만데콘족은 난골(Nanggol)이라 불리는 성인식 날짜가 정해지면 나무로 30m 높이의 탑을 쌓는다. 성인이 될 소년들은 차례로 위로 올라가 두 발목을 칡넝쿨로 된 끈으로 묶고 번지점프 하듯이 뛰어내린다. 남자의 머리가 맨 땅에 닿아야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이 과정에서 목숨을 잃는 소년들도 많다고 한다.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사진=네이버포털·연합뉴스·게티이미지

2024-05-04 07:00 조진래 기자

[B그라운드] MBC 금토일 '사실상' 전현무 천하...'송스틸러'로 방점

3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 MBC 1층 골든마우스홀에서는 MBC 새 예능프로그램 ‘송스틸러’ 제작발표회가 개최됐다. 이날 제작발표회에는 전현무, 이해리, 장하린PD가 참석했다.br(사진제공=MBC)“일요일까지 방범을 찍어보겠다.”(전현무)전현무가 주말 예능 MC로 ‘MBC의 남자’로 거듭난다. 금요일에는 ‘나 혼자 산다’, 토요일에는 ‘전지적 참견 시점’, 그리고 새로 맡은 ‘송스틸러’가 그 주인공이다. 갖고 싶은 남의 곡을 대놓고 훔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신개념 음악 프로그램을 표방하는 ‘송스틸러’는 노래방 차트는 물론 커버 열풍을 불러일으키는 명곡들을 독보적인 해석으로 재구현, 신선한 무대를 예고한다.마이크를 잡은 전현무는 “아나운서 시험을 볼 때 두 번을 내쳤던 방송사라 더 책임감이 크다”면서 “내가하는 일요일 MBC 프로그램이 없더라. 기안84도 ‘태계일주’ 시즌4에 들어가니 ‘송스틸러’로 선의의 경쟁을 펼쳐보겠다”며 상 욕심에 대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파트너인 다비치의 이해리에 대해서도 남다른 고마움을 전했다. 그는 “사실 내가 보컬리스트들과의 공감에 한계가 있는데 해리씨는 공감에서 나오는 멘트가 있다. 무엇보다 알긴 오래됐지만 따로 만난적은 없었는데 2 0년 알고 지낸 여자 같은 편한 바이브가 있다.여러모로 100점 만점에 100점이다”고 강조했다.이에 첫 MC에 나선 이해리는 “전현무의 조언은 전혀 없었다. 근데 생각보다 다정하시다. 방송 때 많이 말도 걸어주시고, 긴장을 풀 수 있게 도와 주더라”면서 “앞으로 호흡을 맞춰가도록 하겠다”는 말로 화답했다. ‘송스틸러’는 파일럿 당시 레드벨벳 웬디, 선우정아, 정용화, 이무진등 실력파 가수들이 댄스곡부터 록, RB까지 장르불문 다채로운 무대로 화제를 모았다. 그 여세를 몰아 정규편성됐으며 오는 일요일 밤 9시 10분 MBC를 통해 시청자들을 만난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2024-05-03 12:44 이희승 기자

[B코멘트 in NY] 이번엔 이승택, 갤러리 현대 도형태 대표 “한 작가에 집중해 차근차근 해외로!”

베니스비엔날레 전시에 이어 프리즈 뉴욕에 이승택 작가를 단독으로 선보이는 갤러리현대 부스(사진=허미선 기자)“예전에는 다양한 작가들을 소개했다면 2년 전부터는 솔로 프레젠테이션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희 브랜드에 대한 자신감도 있고 한국 작가, 미술에 대한 관심도도 아주 극명하게 올라갔거든요.”그렇게 “한 작가에 힘을 싣기 시작한” 도형태 갤러리현대 대표가 프리즈 뉴욕 2024(Frieze New York, 5월 5일까지 The Shed)에서는 이승택 작가의 솔로부스를 꾸렸다.92세에 지난 4월 20일 개막한 베니스비엔날레 팔라조 로레단에서 제임스 리 바이어스(James Lee Byars)와 함께 하는 전시로 호평받고 있는 이승택은 최근까지 진행됐던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현재 진행 중인 로스앤젤레스 해머미술관 ‘Only the Young: Experimental Art in Korea, 1960s-1970s’ 등에 이어 프리즈 뉴욕 2024에서 50여점의 작품을 선보인다.베니스비엔날레 전시에 이어 프리즈 뉴욕에 이승택 작가를 단독으로 선보이는 갤러리현대 부스(사진=허미선 기자)이승택은 고드랫돌(발이나 자리 따위를 엮을 때에 날을 감아 매는 조금 길쭉하고 허리가 가늘게 생긴 돌)과 장승, 한지 등 민속적 재료를 활용하거나 물, 불, 바람, 연기, 불 등 비미술적인 재료를 전통 조각의 범주로 끌어들이는가 하면 묶음과 해체, 물질과 비물질 등으로 그 어떤 사조나 범주에도 얽매이지 않은 작품세계를 선보여 왔다. “1960, 70년대 작품들부터 신작들까지, 큰 스케일부터 포터블 사이즈까지 추려서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분들, 특히 구겐하임 전시를 보신분 들이 궁금해 하시거든요. 더불어 올초에는 이승택 선생님의 작품이 모마(MoMA, The Museum of Modern Art)에 컬렉션됐거든요.”이번 프리즈 뉴욕에서 선보인 그의 작품들은 고드랫돌, 한지, 노끈 등 한국 고유의 재료들로 구현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의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신조는 작품에 대한 호응도로 꾸준히 입증돼 왔고 이번 프리즈 뉴욕에서도 역시 그렇다.“동양적인 재료를 많이 쓰셨지만 돌, 세라믹, 캔버스, 로프 등은 전세계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죠. 이 선생님의 작품을 보시는 분들 역시 평범한 재료들로 파격적인 작업을 한 데 놀라움을 표하곤 합니다. 더불어 이 작업들이 2000년대가 아닌 1960, 60년대의 것이라는 데 또 놀라죠. 제가 처음 선생님 작업실에 갔을 때도 그랬어요. 진짜 기절초풍할 일이랄까요. 그런 맥락 때문에 세계 미술사에서도 이승택 작가님을 자꾸 비교·분석한다고 생각해요.”“이미 팔려나간 작품도 적지 않다” 귀띔한 도 대표는 이어 “그렇게 프리즈 뉴욕을 기반으로 차근차근 해외 무대로 진출하고자 한다”며 “마시밀리아노 지오니(Massimiliano Gioni) 뉴 뮤지엄(New Museum of Contemporary Art) 관장 등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이 한국 작가에 굉장히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뉴욕=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베니스비엔날레 전시에 이어 프리즈 뉴욕에 이승택 작가를 단독으로 선보이는 갤러리현대 부스(사진=허미선 기자)베니스비엔날레 전시에 이어 프리즈 뉴욕에 이승택 작가를 단독으로 선보이는 갤러리현대 부스(사진=허미선 기자)베니스비엔날레 전시에 이어 프리즈 뉴욕에 이승택 작가를 단독으로 선보이는 갤러리현대 부스(사진=허미선 기자)

2024-05-02 19:52 허미선 기자

[B그라운드 in NY] ‘황홀하게’ 북미 데뷔! 양혜규 ‘황홀망’, 프리즈 뉴욕 VIP 첫날 완판

첫날부터 줄을 길게 늘어선 프리즈 뉴욕 2024 풍경(사진=허미선 기자)그야말로 문전성시였다. 뉴욕 미술시장의 ‘메인 세일 시즌’(Main Sale Season)이라 불리는 프리즈 뉴욕 2024(Frieze New York, 5월 5일까지 The Shed)이 5월 1일(현지시간) 개막했다. 얼리버드 티켓이 일찌감치 매진되며 높은 관심도를 입증했던 프리즈 뉴욕은 첫날인 VIP데이 오픈시간(11시) 전부터 관람객들로 붐볐다. 출입구부터 길게 줄이 늘어섰으며 갤러리 부스 역시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뤘다.첫날부터 문전성시를 이룬 프리즈 뉴욕 2024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하우저앤워스(HauserWirth), 타테우스로팍(Thaddaeus Ropac), 에스더 시퍼(Esther Schipper), 가고시안(Gagosian), 페이스 갤러리(Pace Gallery) 등과 더불어 국제갤러리, 갤러리 현대 등 한국 갤러리들까지 25개국 60여 갤러리가 부스를 차려 관람객들을 맞았다.이번 프리즈 뉴욕에서 한국의 국제갤러리와 갤러리 현대는 각각 양혜규와 이승택의 솔로 부스를 차려 집중 조명한다.이 중 국제갤러리는 한국은 물론 뉴욕 현대미술관(MoMA),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독일 슈투트가르트 주립 미술관, 영국 테이트 등 글로벌 유수 기관과 갤러리들이 열광하는 양혜규의 ‘황홀망’(恍惚網) 연작 11점을 선보인다. 프리즈 뉴욕 2024 첫날부터 매진된 국제갤러리 양혜규 ‘황홀망’ 연작(사진=허미선 기자)‘아롱 연무 선녀 강하 넋터-황홀망恍惚網 #221’ ‘향 수묵 지질학 넋터-황홀망恍惚網 #223’ ‘아롱 무지개 해왕 승천 넋터-황홀망恍惚網 #224’ 등 3~4만 유로 선에서 가격대가 형성된 11점 중 8, 9점이 프리세일되더니 VIP 첫날 완판을 기록했다.국제갤러리 관계자의 귀띔처럼 “북미에서 처음 선보이는” 양혜규의 ‘황홀망’은 2021년 한국에서 첫선을 보인 후 꾸준히 진화하고 확장해온 연작이다.평면 매체에 대한 작가의 근원적인 관심을 반영하는 시리즈로 다양한 종류의 전통 종이를 결합한 콜라주 작품들이다. 연작의 출발점이었던 한국 전통 샤머니즘 뿐 아니라 멕시코의 파펠 피카도(Papel Picado), 슬로바키아, 중국의 소수민족인 몽족, 일본 등 전세계 샤머니즘이 융합된 형태로 진화했다. 재료 역시 한지에서 일본의 화지(和紙), 중국의 추피지(楮皮紙) 등 다양한 국가, 민족 등 샤머니즘에서 사용되는 것들로 다양해졌다.이번 프리즈 뉴욕에 전시된 작품들은 페어 속 전시처럼 구성됐다. 화려한 색감과 대형 사이즈, 유명세 등으로 무장한 작품들 사이에서 한지와 나무로 꾸린, 언뜻 상여나 제단처럼 보이는 틀에 ‘황홀망’들이 전시돼 눈길을 끈다.익숙하지 않은 끌림에 부스로 들어서면 작품을 비롯해 한국을 비롯한 프랑스 파리 샹탈 크루젤 갤러리(Galerie Chantal Crousel), 베를린의 바바라 빈 갤러리(Babara Wien Gallery) 등 이전에 선보인 ‘황홀망’과 전시 때마다 발행했던 책자까지 아카이빙돼 작품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양혜규의 평면에 대한 실험과 관심은 이번 프리즈 뉴욕을 시작으로 9월 아트 클럽 오브 시카고(Arts Club of Chicago)에서 열리는 개인전 ‘평평한 작업 2004-2024’(Flat Works 2004-2024)로 이어진다. 이 개인전에서는 ‘황홀망’을 비롯한 ‘래커 회화’ ‘신용양호자들’ ‘야채 판화’ 등 20여년 간 다양하게 탐구해온 평면 연작들이 전시될 예정이다.뉴욕=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프리즈 뉴욕 2024 첫날부터 매진된 국제갤러리 양혜규 ‘황홀망’ 연작(사진=허미선 기자)프리즈 뉴욕 2024 첫날부터 매진된 국제갤러리 양혜규 ‘황홀망’ 연작 아카이브(사진=허미선 기자)프리즈 뉴욕 2024 첫날부터 매진된 국제갤러리 양혜규 ‘황홀망’ 연작(사진=허미선 기자)

2024-05-02 19:52 허미선 기자

[B그라운드] '댕댕美본좌' 장기용, 우울증 걸린 초능력자로 3년만의 복귀

오직 행복했던 순간으로만 시간여행이 가능한 복귀주 역할의 장기용. (사진제공=JTBC)‘군필배우’ 장기용의 ‘연하남 매직’이 또 통할 것인가. 2일 오후 JTBC 새 주말극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제작발표회가 열렸다. 과거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의 송혜교,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의 이다희와 뽐냈던 남다른 호흡이 이번엔 ‘천의 얼굴’ 천우희와 이어지는 것.이날 장기용은 천우희와의 호흡에 대해 “언젠가 꼭 작품을 해보고 싶은 배우였다. 이번에 만나게 됐는데 제 로맨스는 달달할 수도, 슬플 수도 있지만 애틋함이 더 있어서인지 의지하며 촬영했다”고 말했다. 이에 상대배우인 천우희는 “처음 캐스팅을 듣고 주변에서 ‘둘이?’라는 의아한 반응이 있었다”고 밝히면서 “ 이상하고 묘하게 어울리는 느낌들이 장면마다 잘 담긴것 같다”며 드라마의 판타지적인 요소를 강조했다.우울증에 걸려 타임슬립 능력을 상실한 복귀주(장기용)와 수상한 침입자 도다해(천우희)의 이야기를 담은 공식 포스터. (사진제공=JTBC)‘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은 남다른 능력을 지녔지만 아무도 구하지 못했던 남자가 마침내 운명의 그녀를 구해내는 판타지 로맨스극이다. 극중 장기용은 우울증에 걸려 타임슬립 능력을 상실한 복귀주역할을 맡았다.“히어로물인데, 개성 있는 가족 구성원들의 캐릭터도 재밌었어요.이 역할을 하며 저조차도 예상할 수 없는 연기를 보여드릴것 같았습니다.”(장기용)‘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은 현대인의 고질병에 걸려 흔치 않은 능력을 잃어버린 초능력 가족과, 우연인 듯 운명처럼 얽히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그렸다. 복귀주의 누나이자 몸이 무거워져 날지 못하는 비행 능력자 복동희는 수현이, 두꺼운 안경 너머 비밀을 숨긴 복귀주의 사춘기 딸 복이나는 박소이가 열연한다. ‘설강화’ ‘SKY 캐슬’ 등을 연출한 조현탁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으며 오는 4일 첫 방송된다.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2024-05-02 16:16 이희승 기자

[비바100] 4050에겐 심금을, 2030는 정작 모를 인생 쓴맛단맛!

카카오톡의 프로필 사진이 의미하는 바는 상당하다. 하나의 사진 그리고 문장 하나에 상대방의 상태, 기분, 취향 그리고 각종 루머까지 추측이 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왓챠 오리지널 시리즈 ‘미나씨, 또 프사 바뀌었네요?’에서 물음표는 꽤 의미심장하다. 느낌표라면 반가움과 뭔지모를 시기, 질책이 교차하는데 물음표라서 더욱 감질난달까.올해 2월 왓챠에서 독점공개된 이 작품은 툭하면 프사가 바뀌는 여자 이미나의 20대 연애기를 그린 하이퍼 리얼리즘 로맨스 드라마다. “친구들의 프로필 사진이 모두 과잠(학과 잠바)으로 바뀌었다”는 시작 내레이션에서 짐작할 수 있듯 주인공 미나(김태영)는 원하던 대학에 떨어진 새내기다. 반수를 준비하고 있기에 학교의 모든 인간관계는 차단하고 잠수 중이지만 거절 못할 학교 모임에서 첫사랑 연우(임현수)를 만난다.처음부터 마음이 끌린 건 아니다. 지방대에 가는 바람에 늘 모범생에 최고 학벌인 언니와 비교당했던 그는 자신과 같은 ‘둘째 설움’을 겪은 그에게 동질감을 느낀다. 미나의 프사가 바뀌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다. 지나가던 길고양이 사진이 전부였던 과거는 묻고 100일을 시작으로 달달한 두 사람의 핑크빛 무드가 미나의 프사를 장식한다.김태영의 연기와 더불어 상대 남자들로 나오는 배우들의 모습은 이 작품의 백미다. 누구나 한번쯤 공감할 캐릭터들이 응축돼 재미를 더한다. (사진제공=왓챠)영원할 것 같은 첫사랑은 입대를 계기로 산산조각난다. 기꺼이 고무신을 자처했지만 방학 중 시작한 영화관 아르바이트에서 만난 복학생이자 감독 지망생 세준(고도하)은 뭔가 다르다. 7살이나 연상이라 그런지 동갑 남자를 만날 때와는 다른 성숙함이 매력적이다. 전세계 맥주를 맛보게 해준 오빠이자 기네스가 자신의 취향임을 키스로 알게 해준 남자지만 남다른 예술혼은 미나가 감당할 수 없는 분야였다. 캠퍼스 커플인 탓에 모두가 주목했고 흑역사로 남았던 첫사랑과 리드 당하는 느낌이 좋았지만 결코 같은 방향을 볼 수 없었던 연상남과의 연애 이후 미나는 연애를 중단한다. 취업만이 목표였기에 졸업 후 스터디 카페에서 만난 파마머리 재홍(박도규)은 진상 중의 진상이어서 거리낌이 없었다.대기업 합격만이 지방대 졸업생이자 취준생으로서 최고 목표였던 그는 성실함이 무기였지만 미나와 함께 늘 서류전형에서 탈락하는 신세다. 모텔비와 커피값까지 늘 정확히 더치페이하던 그는 중소기업으로 목표를 낮추고 결국 스터디 카페를 떠나는 미나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다. 둘은 수도 없이 고배를 마시며 동지이자 연인이 됐지만 함께 합격할 수는 없는 사이였다.에피소드들을 다 보고 다시 보면 재미있을 프로필. 주인공이 입고 있는 녹색은 늘 동경하는 아일랜드를 상징하니 눈여겨 볼 것.(사진제공=왓챠)‘미나씨, 또 프사 바뀌었네요?’ 중반부는 사회 초년생을 거쳐 세상 통달한, 하지만 여전히 어리고 미숙한 주인공의 인연들로 가득찬다. 각양각생의 에피소드가 1인칭 시점으로 펼쳐지는데 평범하면서도 사실적이다.최고의 정점은 완벽한 스펙남 장수혁(문시온)의 등장이다. 형부의 소개로 만난 그는 업계에서 알아주는 회사에 근무하고 차와 외모, 재력까지 완벽하다. 인스타그램에는 각종 스포츠와 자기 관리의 끝판왕인 일상 그리고 여행 사진이 가득하다. 말로만 인턴이지 곧 정규직이 될 거라 믿어의심치 않는 회사 동료조차 “저런 남자는 어떻게 만날 수 있냐?”며 부러워할 정도다.취업준비생일때의 미나씨. (사진제공=왓챠)하지만 그는 “입사동기도 곧 경쟁자”라면서 “사회생활에서 진정한 친구는 없다”고 늘 미나를 훈련(?)시킨다. 지금 생각해보면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들인데 당시에는 너무 정없고 차갑다고 느꼈다. 게다가 선물로 받은 건 죄다 영어수강권, XS사이즈 운동복 등 뭔가 얄밉다. 자신과 같은 급의 영어구사 능력과 조금 더 살을 빼라는 뜻인가 싶었는데 사실이었다. “정신 좀 차려. 너와 내가 급이 맞는다고 생각해? 난 마음에 드는 여자는 오마카세 데려가. 넌 내가 거기에 같이 가지 않고 사귄 첫 상대”라는 팩트폭격과 함께 길거리에 버려(?)진다.그 와중에 회사도 예정된 정규직을 대폭 줄이겠다고 선포하고 결국 유학파 출신인 다른 인턴이 선택된다. 짧지만 사회생활을 경험하고 나오는 길, 수혁이 찾아와 “정신차리라고 해본 말”이라며 사과하지만 미나는 이미 사회와 남자의 이중성을 절감한 뒤였다.한껏 멋내고 왔는데 시위를 해야하는 여자의 마음을 남자는 모른다. 게다가 남친을 “형”이라 부르는 여자 후배의 등장에 긴장감이 감도는 모습. (사진제공=왓챠)세월이 흘러 ‘미나씨, 또 프사 바뀌었네요?’는 업무 전 담타(담배타임)를 즐기는 미나의 모습을 비춘다. 대리를 달았지만 10명이 채 되지 않는 회사의 온갖 잡무에 시달리는 그는 사장에게 “일 안 해?”라는 말을 수시로 듣는다. 이제는 남자도 사랑도 믿지 않기에 데이트 어플로 만난 연하남 하준(이태형)은 부담없는 관계였다.이상형을 묻는 그에게 “퇴근 후 데려오는 남자”라고 대충 둘러댔는데 하준은 늘 자신을 데리러 온다. 문제는 스포츠카도 고급 세단도 아닌 전기 스쿠터란 점. 그것조차 신선하고 익숙해져 갈 즈음 몇 주째 잠수를 타더니 코인으로 대박이 났다며 플렉스를 하는 것도 귀엽다. 미나는 하준이 내일도 없이 사는 것을 보고 생각을 고쳐 먹는다. 늘 ‘언젠가는…’을 달고 살았는데 그와 함께라면 늘 원하던 아일랜드로 떠날 수 있을 것만 같다.자기애가 강한 남자는 늘 피곤을 부른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틀리지 않은 말을 한다는 게 얄미울뿐. (사진제공=왓챠)‘미나씨, 또 프사 바뀌었네요?’는 예상된 결말로 흘러간다. 총 다섯 번의 연애 끝에 결국 첫사랑 연우와 결혼을 앞둔 주인공의 모습. 하지만 이 작품이 그렇게 뻔하게 흘러간다면 오산이다. 대학동창의 결혼식에서 오랜만에 조우한 두 사람은 헤어진 시간이 허무할 정도로 “꼭 연애할 필요는 없잖아?”라는 말로 예비부부가 된다.미나는 서울대 출신으로 대기업에 취업하고 결혼해 바로 임신을 하며 엄마의 자랑인 언니에게는 질투를, 비교하는 엄마에게는 서운함을 느껴왔다. 하지만 결혼준비마저 유일한 피붙이에게 차별받자 결국 폭발한다. 한창 행복해야 할 시기에 찾아온 결핍은 또다시 연우와의 관계에 영향을 끼친다. 뒤늦게 찾아온 인연이 진정한 사랑일지 ‘미나씨, 또 프사 바뀌었네요?’는 정면으로 응시한다.지우고 싶던 흑역사지만 이 또한 미나의 성장에 큰 계기가 됐던 재홍. (사진제공=왓챠)결론만 말하면 두 사람은 이어지지 않는다. 그간 스쳐간 남자들 역시 미나의 인연이 아니었듯이. 이 작품은 그저 주인공의 연애담이라고 하기엔 인생의 상처, 인간관계에서 기반한 진정한 자아성찰을 담았다. 가장 중요한 건 가족과 주변인이 아닌 나 자신을 사랑해야 함을 가장 사실적이고 지루하지 않게, 핑크빛을 가장해 가장 투명하게 투과시킨 왓챠의 보석같은 존재랄까. 배우들의 연기는 굳이 말할 필요없이 반짝인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2024-05-01 18:30 이희승 기자

[비바100] "사랑하면 함부로 고칠 수 없다"는 도편수의 삶

목업 木業|신효선|궁편책차라리 ‘목수’라고 했다면 쉽게 손이 가지 않았을 것이다. 나무를 다루어 집을 짓거나 가구, 기구 따위를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하지만 ‘목업(木業)이라고 하면 뭔가 정겹다. 자신의 직업을 겸손하게 표현하면서도 긍지가 느껴지는 제목이다. 유명 번역가가 자신의 삶을 담은 에세이 제목에  ‘번역’이란 단어 뒤에 자신의 이름을 당당히 붙인 호기로움과는 사뭇 다른 진중함마저 느껴진다. 신간 ‘목업’은 전통건축사무소 ‘예조’를 운영 중인 저자 신효선이 대표라는 직함보다 더 선호하는 목수 혹은 도편수로서의 긍지가 응축됐다. “사랑하면 함부로 고칠 수 없다”는 신념에서 비롯된 그의 작업 방식은 과연 독특하고 획기적으로 유명하다. 조사 주기표와 분류 야장 등이 대표적 예이다. 또한 보물 제1746호 논산 노강서원 강당을 해체하는 데에만 7개월가량 할애한 것도 저자의 굳은 의지를 보여 주는 단적인 사례다. 일반적으로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았을 작업이지만 그의 손을 거치면 지나치리만큼 꼼꼼하고 경이롭다.업계에서 괴짜라는 꼬리표가 달린 저자의 파격적 행보는 역설적으로 정석에서 시작한다. 목업을 생업이자 3대째 가업, 조상의 유업, 민족의 과업으로 삼은 그는 현시대와 함께 호흡하는 전통 건축을 추구한다. 저자가 자신이 보유하고 출원 중인 전통 건축 관련 특허 기법, 그 모든 현장의 기록을 본서에 남긴 이유가 책 곳곳에 담겨있다. 그는 “과정을 바꾸는 사람은 외롭다. 그러나 분명 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그것이 목조 문화재 수리다. 불가사의란, 실은 몸과 마음을 던져 증험하여 지혜를 얻는 영역”이라 단언한다. 전문 서적인 만큼 독자가 실제 작업 과정을 하나하나 지켜보듯 이해할 수 있도록 지면의 절반을 차지하는 충분한 양의 현장 사진이 가독성을 더한다. “목조 문화재 보수 현장에 있다 보면 곳곳에 흩어져 있는 퍼즐 조각이 눈에 들어온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찾아내 맞추었다. 이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면 방법을 발견하게 된다. 이를 이론적으로 정리하고 다시 현장에서 구현하는, 지극히 짜증 나고 한없이 기쁜 작업을 해 왔다. 나는 세대와 세대를 넘어 대화를 나누어 보고 싶다. 이 책이 그 창구가 되어 주기를 기대한다.”저자는  제천 청풍 한벽루(보물 제528호)를 비롯한 열네 채의 목조 건물을 도편수로서 해체하고 수리, 조립했다. 논산 노강서원 강당(보물 제1746호)의 복구, 석조 배흘림기둥을 사용해 팔작집 다포계 양식의 일주문과 육각형 다포계 양식의 종각을 시공한 실력자다. 도리, 대량, 화방, 부연과 부머리 등 각종 전문용어로 나뉘는 챕터에 겁먹지 말자. 전통건축의 ‘ㄱ’을 모르더라도 나무의 나이테 같은 간결하지만 볼 수록 정겨운 문장이 가득하다.  무엇보다 ‘손수 지은 집’에 대한 로망이 있다면 필독을 권한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2024-05-01 18:00 이희승 기자

[비바100]브로드웨이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마크 부르니 연출과 제이슨 하울랜드 작곡가 “화려하게! 섬세하게! 더 비극적으로!”

지난 3월 29일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 개막한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제이슨 하울랜드 작곡가(왼쪽)와 마크 브루니 연울(사진제공=오디컴퍼니)“뮤지컬 ‘위대한 개츠비’를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왜 지금 이 작품을 하냐’였어요. ‘위대한 개츠비’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만들어졌어요. 작품의 배경이 되는 1920년대 사회를 살펴보면서 그들 역시 (1918년 시작된 스페인 독감) 팬데믹 직후였다는 게 눈에 띄었습니다. 그렇게 1920대 상황과 지금이 겹쳐 보이면서 공통점이 굉장히 많다는 걸 발견했죠. 관객들도 두 시대를 비교하면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지금’ 올리게 됐습니다.”작곡가 제이슨 하울랜드(Jason Howland)는 ‘지금’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 3월 29일~4월 24일 프리뷰, 4월 25일부터 본공연 브로드웨이 씨어터)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밝히며 “(관객들이 두 시대를 비교하면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작품의 음악을 만드는 시작점이기도 했다”고 부연했다.한국의 오디컴퍼니 신춘수 대표가 브로드웨이에 올린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중 제이 개츠비 역의 제레미 조던(왼쪽)과 데이지 뷰케넌 에바 노블자다(사진제공=오디컴퍼니)뮤지컬 ‘위대한 개츠비’는 ‘일 테노레’ ‘드라큘라’ ‘데스노트’ ‘지킬앤하이드’ ‘스위니토드’ ‘닥터 지바고’ 등의 한국 제작사 오디컴퍼니가 브로드웨이에 올린 작품이다.2020년 작가진 구성을 시작으로 2021년 대본과 음악 초고 완성, 2022년 내부 리딩에 이은 두 차례의 29시간 리딩과 워크샵, 2023년 뉴저지 페이퍼밀 플레이하우스에서의 월드 프리미어 공연을 거쳐 2024년 3월 29일 브로드웨이에 입성했다.마크 브루니(Marc Bruni) 연출의 설명처럼 “1925년 출간된 F. 스콧 피츠제럴드(F. Scott Fitzgerald)의 아주 유명한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원작으로 한다.”“큰 꿈을 가지고 있는 남자에 관한 이야기죠. 이 원작을 뮤지컬화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것을 이 상징적인 이야기와 결합할 방법을 찾아내는 작업이었습니다.”신흥부자들의 웨스트 에그(West Egg)와 대물림해온 전통적인 부자들이 사는 이스트 에그(East Egg), 마주 보는 두개의 반도가 미묘한 기류를 형성하던 1920년대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한다.지금은 남의 부인이 된 전 연인 데이지 뷰케넌(에바 노블자다 Eva Noblezada)을 되찾기 위해 악착같이 부를 축적해 매주 화려한 파티를 열어 부를 과시하는 제이 개츠비(제레미 조던 Jeremy Jordan)의 이야기다. ‘위대한 개츠비’는 그의 삶을 통해 1차 세계대전 후 찾아온 물질적 풍요 속에 드러나는 미국 사회의 치부, ‘아메리칸 드림’의 실체를 꿰뚫는다.오디컴퍼니 대표인 신춘수 프로듀서에 따르면 ‘위대한 개츠비’는 “프리뷰 첫주부터 ‘밀리언 클럽’(주당 매출 100만불 이상)을 달성했다.” 브로드웨이에서 밀리언 클럽은 극장주와의 계약에서 작품의 폐막 여부를 결정짓는 상징적인 수치이기도 하다.공연예술의 메카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막을 올린 ‘위대한 개츠비’에는 젊은 관객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29일까지(현지시간) 매회차 대부분 티켓이 팔려나갔다.지난 3월 29일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 개막한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제이슨 하울랜드 작곡가(사진제공=오디컴퍼니)“인물들의 내면을 음악으로 밖으로 끌어내는 데 중점을 뒀어요. 더불어 굉장히 화려하고 볼거리가 많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사치스러운 1920년대 파티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 파티와 캐릭터들이 당시에 가지고 있었을 감정의 대비를 염두에 두면서 음악을 썼어요. 화려한 파티와 캐릭터들의 내면이 잘 융화되면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음악이 필요했죠.”제이슨 하울랜드가 전한 이 화려하고 신나는 파티 분위기는 2막 중반부까지 이어진다. 당시를 풍미했던 재즈, 스윙과 현대적인 팝 음악을 매시업해 19인조 라이브 오케스트라가 선사하는 음악, 규범을 거부하는 여성을 지칭하던 플래퍼(Flapper)들이 추는 찰스턴 댄스(Charleston Dance)와 현대적 요소들이 결합한 안무, 관객들의 흥까지 끌어올리는 탭댄스, 스타일리시한 의상 등으로 자아내는 파티 분위기는 브로드웨이의 그 어떤 작품보다 화려하다.지난 3월 29일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 개막한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마크 브루니 연출(사진제공=오디컴퍼니)마크 브루니 연출은 “관객들이 1920년대 파티에 직접 가 있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더불어 이 화려한 파티의 구현은 극 후반에 몰아치는 비극의 극대화를 위한 배치이기도 하다.마크 브루니 연출은 “이 작품은 비극적인 사건의 연속이다. 어둡게 변하는 순간부터는 다시 밝아질 수가 없다”며 “그래서 가능할 때까지 등장인물들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했다”고 전했다.“그렇게 행복했다가 더 이상 행복한 삶을 살 가능성이 사라져버렸다고 생각했을 때부터가 비극의 시작이거든요. 개츠비는 이룰 수 없을지도 모를 꿈과 목표를 위해 계속 노력하고 노력하는, 될 때까지 도전하는 인물입니다. 개츠비 뿐 아니라 등장인물들 모두가 ‘나는 아직도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능한 길게 끌어가다가 비극의 싹을 틔우는 거죠.”이는 이 작품의 바탕에 깔린 아메리칸 드림의 허망함과도 궤를 같이 한다. 마크 부르니 연출의 말처럼 “실현이 안될 수 있음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뿐이다.”그럼에도 따라붙는 비극은 “파티가 화려하게 구현될수록 극대화된다.” 이는 마크 브루니 연출이 꼽는 “한국의 신춘수 프로듀서가 브로드웨이 제작자와는 남달랐던 차별점” 중 하나이기도 하다.“극 중 개츠비가 매주 주최하는 파티는 감히 누구도 베끼거나 재현할 수 없을 만큼 웅장하고 볼거리가 많아요. 원작 소설에는 다루지 않는 내용으로 이 사람이 얼마나 부자인지를 가늠하게 하죠. 이 작품을 디벨롭하는 과정에서 신 대표님이 늘 했던 말이 ‘더 크게, 더 화려하게, 더 웅장하게, 더 압도적으로 만드세요’였어요. 그래서 저희 창작진들은 정말 원없이 할 수 있었죠.”브로드웨이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중 제이 개츠비와 데이지 뷰캐넌(사진제공=오디컴퍼니)거대한 스케일의 파티 장면과 더불어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비극, 그 비극을 풀어내는 섬세함”도 마크 브루니 연출이 꼽는, 한국 프로듀서가 이끄는 ‘위대한 개츠비’만의 차별점이다. “2막에서 등장인물들에게 벌어지는 일들로 이 작품이 얼마나 비극적인지를 관객들이 잘 느낄 수 있도록 끌고 가야 했죠. 그 비극의 느낌을 섬세하게 살리는 것 그리고 우리가 상상만하던 1920년대의 웅장함과 화려함의 구현이 차별점입니다.”브로드웨이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공연장면(사진제공=오디컴퍼니)이에 동의를 표한 제이슨 하울랜드 작곡가는 오디컴퍼니 ‘위대한 개츠비’의 차별점으로 “여성 캐릭터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했다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원작 소설의 화자가 닉 캐러웨이(노아 리케츠 Noah J. Riketts)다 보니 대부분의 독자들이 그 사람의 시선과 해석에 따라 인물들을 이해하게 되죠. 여성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감정을 느끼지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어요. 하지만 저희 작품에서는 여성들이 직접 노래하며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도록 했죠. 1920년대라는 시대의 범주 안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요.”브로드웨이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공연장면(사진제공=오디컴퍼니)2021년 원작소설의 저작권 보호기간(사후 70년)이 만료되면서 오디컴퍼니의 ‘위대한 개츠비’ 뿐 아니라 적지 않은 프로덕션들이 공연을 준비 중이다. “저희 버전의 ‘위대한 개츠비’가 브로드웨이에서 오래오래, 상연할 수 있을 때까지 상연되기를 바랍니다. 원작소설의 저작권 보호기간이 만료되면서 보다 다양하게 각색된 ‘위대한 개츠비’가 이런 저런 형태로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렇지만 지금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라와 있는 ‘위대한 개츠비’는 저희 작품뿐입니다.”뉴욕=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4-30 07:00 허미선 기자

[비바100]브로드웨이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프로듀서 신춘수 “원작에 충실하지만 충실하지만도 않아요!”

브로드웨이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의 신춘수 프로듀서(사진제공=오디컴퍼니)“원작에 충실하지만 충실하지만도 않아요. 원작이 가진 주제의식과 씁쓸한 아이러니는 가져가면서 저희만의 유니크한 특별함을 얹었거든요. 저희만의 특별함이란 씁쓸한 아이러니를 더 깊게 하고 비극을 더 비극적으로 대비시키는 화려하고 웅장한 파티신이죠. 더불어 뮤지컬과 원작의 가장 큰 차이점은 관점이에요.”글로벌 공연예술의 메카인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3월 29일(현지시간) 프리뷰를 거쳐 4월 25일 정식 오픈한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 브로드웨이 씨어터)의 신춘수 프로듀서는 원작 소설과 뮤지컬의 차이점을 “화려함과 관점”으로 꼽았다.브로드웨이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중 제이 개츠비 역의 제레미 조던(왼족)과 닉 캐러웨이 노아 리케츠(사진제공=오디컴퍼니)“소설은 닉 캐러웨이(노아 리케츠)가 화자다 보니 그가 바라본 인물들의 이야기죠. 하지만 저희 뮤지컬은 제이 개츠비(제레미 조던 )를 비롯해 데이지 뷰케넌(에바 노블자다 )도, 조던 베이커(사만다 폴리)도 자신의 목소리로 심정과 자신의 이야기를 해요. 이에 닉만이 아니라 데이지, 조던, 톰 뷰캐넌(존 스트로제스키) 등이 바라본 개츠비를 표현할 수밖에 없어요. 그걸 흡인력 있는 음악으로 무대화한 거죠.”‘위대한 개츠비’는 뮤지컬 ‘일 테노레’ ‘드라큘라’ ‘데스노트’ ‘지킬앤하이드’ ‘스위니토드’ ‘닥터 지바고’ 등의 오디컴퍼니 대표이기도 한 한국의 신춘수 프로듀서가 2500만 달러를 들여 제작한 브로드웨이 뮤지컬이다. 그 중 절반 이상을 투자해 단독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린 신춘수 대표는 브로드웨이를 비롯한 미국은 물론 전세계 권리를 소유하고 있다.브로드웨이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공연장면(사진제공=오디컴퍼니)1925년 출간된 F. 스콧 피츠제럴드(F. Scott Fitzgerald)의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마크 브루니(Mark Bruni) 연출, 제이슨 하울랜드(Jason Howland) 작곡가, 케이트 케리건(Kait Kerrigan) 작가, 음악감독 다니엘 에드먼즈(Daniel Edmonds), 의상디자이너 린다 조(Kinda Cho) 등이 의기투합한 작품이다.뮤지컬 ‘뉴시스’ ‘보니 앤 클라이드’ ‘웨스트사이드스토리’ 등과 TV시리즈 ‘슈퍼걸’ ‘스매시’, 영화 ‘더 라스트 파이브 이어’ 등의 제레미 조던(Jeremy Jordan)이 제이 개츠비,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 뮤지컬 ‘미스사이공’에서 투이 역의 홍광호와 호흡을 맞췄던 에바 노블자다(Eva Noblezada)가 데이지 뷰케넌을 연기한다.브로드웨이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의 신춘수 프로듀서(사진제공=오디컴퍼니)2020년 작가진 구성을 시작해 2021년 대본과 음악 초고 완성, 2022년 내부 리딩에 이은 두 차례의 29시간 리딩과 워크샵, 2023년 뉴저지 페이퍼밀 플레이하우스에서의 월드 프리미어 공연을 거쳐 2024년 3월 29일 브로드웨이에 입성하기까지 꼬박 4년여가 걸렸다.프리뷰 첫주부터 ‘밀리언 클럽’(주당 매출 100만불 이상)을 달성하며 흥행 순항 중이지만 신 프로듀서는 여전히 살얼음판에 서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제작비 상승으로 티켓 값이 오르면서“100만불 클럽 달성이 예전처럼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의 주당 제작비는 90만불, 신춘수 프로듀서의 귀띔처럼 “100만불이면 손익분기점을 막 넘어선 정도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의 신춘수 프로듀서(사진제공=오디컴퍼니)더불어 몇주 이상 달성이 안되면 극장주 단독으로 ‘폐막’을 결정할 수 있는 100만 달러 매출은 냉혹한 브로드웨이에서 공연을 지속할 수 있는 생명선이기도 하다.매주 10억원 이상의 제작비가 빠져나가고 매주 ‘밀리언 클럽’을 달성해야 하는 상황, 매일이 살얼음판인 시간 속에서도 “안심할 수는 없지만 큰 기대를 가질만한 분위기와 긍정적인 신호”를 감지 중인 신춘수 프로듀서는 향후 미국 투어와 영국, 호주, 한국 등의 공연을 논의하고 있다.한국 공연은 “전혀 다른 공연이 될 것”이라는 신춘수 대표는 그 이유를 한국 배우들로 꼽았다.섬세한 감정 표현, 대사나 노래, 인물 등 뒤에 숨겨진 함의, 관객을 설득시키는 개연성 등을 만들어내는 데 탁월한 한국 배우들로 인해 “보다 업그레이드 될 것”이라는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이루지 못한 사랑, 자신이 가진 것을 과감하게 던져버리지도 못하면서 갈구하는 자유와 용기, 부자를 매혹시키며 부려보는 신분 상승의 욕심, 진정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 등 각자 ‘결핍’을 채우기 위해 절실하게 애쓰는 ‘위대한 개츠비’의 인물들은 이 작품의 브로드웨이 성공으로 ‘일 테노레’ 등 한국 창작뮤지컬의 브로드웨이 진출을 꿈꾸는 신춘수 프로듀서를 닮았다.더불어 이 작품으로 브로드웨이에 본격 데뷔하는 작가 케이트 캐리건, 의상디자이너 린다 조, 음악감독 다니엘 에드먼즈, 7명 배우와도 닮았다.“결국 원작이 말하고자 했고 저희 뮤지컬이 고수하고 있는 이 아름다운 비극을 통해 저마다의 ‘결핍’으로 꾸는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죠. 그 아메리칸 드림이 현대를 관통할 수 있도록 표현방법을 달리 했을 뿐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하는) 그 부분은 관객들 몫으로 열어두고 있습니다.”뉴욕=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4-30 07:00 허미선 기자

[비바100] 범죄, 가두는 게 능사일까

(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저자는 판사와 법무부 법무심의관을 거친 법조인이다. 그는 그동안 판사나 법무부 공무원의 입장에서만 범죄를 바라보다가 ‘알쓸범잡’ 방송 출연을 계기로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범죄를 바라보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범죄의 주요인이 무엇이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범죄를 억제할 수 있도록 사회의 환경과 구조를 바꾸는 것”이라고 강조한다.범죄사회|정재민|창비◇ 범죄는 ‘우리 주변’의 이야기다최근 범죄의 특징은 한 마디로 ‘무차별성’이다. 절대적인 범죄량이 주는데도 시민들의 불안이 더 커지는 이유도, 최근의 범죄가 시간과 장소 대상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10년 동안 마약범죄가 177%, 성 범죄는 40.8%나 늘었다.‘묻지마’ 살인 같은 흉악 범죄도 부쩍 늘었다. 온라인 기술 발전에 범죄자가 신원을 노출 않고도 범행 대상자를 직접 접촉해 범죄를 꾀하기가 훨씬 쉬워졌다. 상대를 개인적으로 모르니 잡힐 가능성도 낮고, 일말의 책임감도 덜하니 범행이 더욱 대담해지고 공격적이 된다.◇ 과학수사의 시작, 화성연쇄살인사건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추적한 영화 ‘살인의 추억’의 한 장면.1980년대 말의 화성연쇄살인사건은 국내 과학수사의 시작이었다. 범인의 O형 혈액형을 B형으로 잘못 추정해 엉뚱한 사람이 20년이나 억울한 옥살이를 했지만, 1990년 9차 살인사건 때 피해자 옷에서 채취한 정액 흔적을 일본에 보내 유전자 감식을 한 것은 최초의 과학수사였다.우리 DNA 분석기술이 처음 인정받은 것은 2006년 서래마을 영아살해사건 때였다. 프랑스인 부모의 칫솔 등에서 미량의 DNA를 추출해 유전자 검사로 범인임을 밝혀냈다. 이후 2010년부터 주요 범죄자들의 DNA를 채취해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했다. 화성사건의 진범도 그렇게 잡았다.◇ 판사의 형량이 낮은 이유국민들은 성폭행범 조두순이 ‘주취감경(酒醉減輕)’을 적용받아 징역 12년에 그친 데 분노했다. 미국은 100년 징역형이 잦고, 스페인은 4만 년 이상 징역형도 선고(실제 적용은 40년)되는데, 우리는 너무 형량이 약하다는 비판이 들끓었다.이런 약한 양형은 오판 시 파장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유죄판결 확정 전까지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고,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범행 이후에 만들어진 법으로 처벌할 수 없는 것도 한 이유다. 위법 입증의 책임도 모두 검사에게 있는 등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같은 원칙도 일반이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 나오는 이유다.◇ 형량 감경의 사유들방조범은 정범의 형량보다 줄어든다. 자수를 해도 감경할 수 있다. 심신미약 또는 피해자와 합의해 정상 참작할 사유가 생겨도 마찬가지다. 무기징역형을 감경하면 10년 이상 50년 이하의 징역이 된다. 유기징역은 상한과 하한 모두 절반 씩 감경된다.법원은 양형기준표를 참작해 형량을 결정한다. 판사가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그 이유를 판결문에 밝혀야 한다. 형을 높일 수 있는 가중 인자는 계획적인 범행, 반성 없음, 불특정 다수 피해자 등이다. 감경 인자는 자수, 피해자의 처벌 불원(不願) 등이다. 양형기준표는 징역 7~12년과 같이 범위를 제시해 줄 뿐, 결국 구체 형량은 판사의 몫이다.◇ 교도소는 감옥이 아니다?저자는 교도소가 ‘감옥’이 아니라 ‘교화 내지 교정하는 곳’이라고 강조한다. 범죄자는 ‘교도소에 갈 사람’ 보다는 ‘사회로 돌아갈 사람’이라는 것이다. ‘4년 전에 출소한 사람 중 3년 이내에 다시 수감되는 비율’을 재 복역률이라고 하는데 2021년에 24.6%, 2022년이 23.8%다.기결수 중 한번이라도 수감 경험이 있는 사람이 44.3%다. 4회 이상 수감자도 12.8%나 된다. 저자는 “교도소에서 교정이 완벽하게 이뤄져 출소자가 다시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면, 수형자 수는 해마다 절반씩 줄어 5년 정도만 지나면 현재의 5% 미만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말한다.◇ 드라마와 다른 현실의 교도소현실은 드라마에 나오는 교도소 모습과 많이 다르다. 큰 식당에서 단체로 밥을 먹지 않고 자기 방에서 배식을 받는다. 원칙적으로 누워 지낼 수 없고 벽에 등을 기댈 수도 없다. 바깥 운동은 하루 한 시간 정도만 가능하다. 밤 9시 취침인데 늘 불이 켜져 있다. 무더운 여름이 가장 힘들다. 선풍기를 새벽 1시에 끄기 때문이다.가장 심각한 문제는 과밀수용이다. 2023년 8월 기준 정원이 4만 9600명인데 실제 인원은 5만 8133명이다. 1인당 수용면적이 1㎡ 남짓이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과밀수용’이라며 각각 위헌 결정과 판결을 내렸으나, 교도소를 짓고 싶어도 반기는 지역이 없다.◇ 선진국 비해 너무 낮은 가석방률가석방은 재범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되는 수형자를 형 만료 전에 석방해 주는 처분이다. 형법상 무기형은 형기의 20년, 유기형은 1/3이 지나야 가능하다. 우리 가석방률은 2020년 기준으로 28.7%로 일본 58.3%, 캐나다 37.4%에 비해 낮다. 그나마 90%가 형기의 80% 이상을 마친 사람들이다.저자는 “법원의 선고 형량은 높이고, 가석방은 확대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장시간 관찰을 통해 재범 가능성 판단이 용이한데다 미리 사회에 내보내 적응할 수 있게 도울 수 있고, 무엇보다 교도소 운영비 및 과밀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사형제는 과연 정당한가2018년 현재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 106개국이 사형제를 폐지했다. 반면 미국 일본 중국 등 57개국은 사형을 실제 집행까지 한다. 우리를 포함해 28개국은 집행만 않는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1998년 이후 중단됐다. 2023년 현재 59명의 사형수만 존재한다.우리 국민 중 사형을 실제 집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51.7%, 현행 체제 유지가 37.9%, 사형제 폐지 의견이 7.8% 정도다. 법무부는 대안으로 2023년 8월에 가석방 없는 ‘절대적 종신형’을 신설하는 형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바 있다.◇ ‘범죄성’은 유전되나‘범죄학의 아버지’ 체사레 롬브로소는 범죄자의 골상(骨像)으로 ‘생래적 범죄인’을 가려내려 했다. 술잔 손잡이형 귀, 무성한 머리털, 적은 수염, 비대칭 머리, 크고 사각진 턱뼈 등이 범죄인의 특징이라고 단정했다. 황당한 얘기지만, 이것이 발전되어 ‘범죄성도 유전 되는가’ 라는 화두를 던졌다. ‘우생학(優生學)이 나온 배경이다.1916년에 미국 작가 매디슨 그랜트는 생각이 삐뚤어지거나 정신적 결함이 있는 자를 불임화해야 한다며 ‘위대한 인종의 소멸’이라는 책을 냈다. 이 책을 성경처럼 여긴 인물이 독일의 강제 불임화법을 통과시키고 야만적인 홀로코스트를 자행한 아돌프 히틀러였다.◇ 범죄를 잘 저지르는 성격이 있다?범죄자의 심리 분석을 통해 수사와 교정, 범죄 예방에 활용하려는 학문이 범죄심리학이다. 범죄자의 성장 배경을 분석하는 것도 무의식 속의 어떤 원인을 파악하기 위함이다. 최근에는 경제적 환경이 범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대처하려는 범죄사회학도 보편화되고 있다.경제 상황이 안 좋으면 가계 소득이 줄어 ‘생계형 범죄’가 늘어난다. 사회적 환경이 범죄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저자는 “범죄의 큰 원인이 사회에 있든 개인에 있든,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범죄를 억제할 수 있는 방향으로 사회의 환경과 구조를 바꾸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가능한가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범죄 발생의 가능성을 미리 예측하고 차단해 예방한다는 내용이다. 인공지능의 발달 덕에 마냥 꿈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윤리적 문제가 대두된다.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고, 국민통제 수단으로 남용될 여지도 있기 때문이다.현실에서 정부의 범죄 예방은, 전과자가 다시 범죄를 저지르지 않게 하는 ‘특별 예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재범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따라다니면서 감시하는 것’이다. 보호관찰관은 대상자의 위치를 늘 파악하고 정기 면담을 통해 확인이 필요한 사항들을 점검한다.◇ ‘보호관찰’은 재범 억제에 효과 있나우리나라에서 보호관찰은 1989년 7월 소년법에 처음 도입된 후 1997년 형법 개정 때 성인으로 까지 확대되었다. 준수사항을 위반하면 청소년은 선처 위주로, 성인은 집행유예 취소나 지명수배가 취해진다. 2018년부터는 벌금형 받은 사람에게도 보호관찰이 이뤄지고 있다.보호관찰 대상자가 또 범죄를 저지르는 비율은 평균 7%다. 성인은 약 5%다. 보호관찰관 1인이 100명 넘게 맡아, 영국(15명), 일본(21명) 등에 비해 인력 부족이 극심하다. 전자발찌 부착 이후 살인 재범률은 4.9%에서 0.1%로, 성 폭력 범죄는 14.1%에서 0.73%로 낮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소재 파악이 늘 힘들다고 한다.◇ 범죄 밝히는 데 필요한 ‘법’공소시효가 지나면 재판도, 처벌도 불가능하다.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는 25년, 무기징역형 범죄는 15년이 공소시효다. 국민의 공분 속에 이를 바꾼 것이 1999년 황산테러 피해자 ‘태완이’였다. 이후 살인죄에 한해선 공소시효 없이 끝까지 추적할 수 있게 되었다.2020년에 양부모의 학대 속에 숨진 ‘정인이’는 아동학대 금지법의 공로자다. 어린이집 교사 등이 세 차례나 아동학대 의심 신고를 했음에도 끔찍한 결과가 발생했다. 이후 친권자의 징계권 조항 삭제 법안 등이 입법화되었다. 출생신고가 안 된 아동들에 대한 전수조사와 사후 대책도 최근 속도를 내고 있다.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2024-04-27 07:00 조진래 기자

[B그라운드] 한국화된 사이먼 스톤, 전도연, 박해수의 연극 ‘벚꽃동산’…사람 그리고 모두의 이야기

연극 ‘벚꽃동산’ 창작진과 출연진. 왼쪽부터 무대 디자이너 사울 킴, 이현정 LG아트센터장, 사이먼 스톤, 전도연, 박해수, 손상규(사진=허미선 기자)“체호프의 작품, 특히 ‘벚꽃동산’은 무대에 올리기도, 그 의미를 잘 전달할 수 있는 사회를 찾기도 굉장히 어려운 것 같습니다. 과거와 전통, 혁신, 세대 간 갈등, 멜랑콜리한 점에서 오는 희망과 절망 등 이 작품이 가진 것들은 그만큼 급변하는 사회를 바탕으로 해야 하거든요. 한국이 가장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더 디그’(The Dig) 등의 영화감독이자 영국 내셔널씨어터,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 등과 협업한 연출가 사이먼 스톤(Simon Stone)은 연극 ‘벚꽃동산’(6월 4~7월 7일 LG아트센터 서울 LG시그니처 홀)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연극 ‘벚꽃동산’ 포스터(사진제공=LG아트센터)“한국은 외부적인 시선으로 보기에 굉장히 짧은 시간에 경제성장을 이뤘어요. 경제 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죠. 이 역시 굉장히 짧은 시간에 이룩했어요. 그 모습이 ‘벚꽃동산’에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벚꽃동산’의 한국화 이유를 이렇게 전한 사이먼은 “격동기를 맞던 시기의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이 한국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무려 27년만에 전도연을 무대에 오르게 한 연극 ‘벚꽃동산’은 ‘갈매기’ ‘바냐 아저씨’ ‘세 자매’에 이은 안톤 체호프(Anton Chekhov)의 4대 희곡 중 하나로 극의 배경인 1860년대, 그가 대본을 집필한 1905년 급변하던 러시아의 시대상이 고스란히 담겼다.어린시절의 추억이 서린 벚꽃동산까지 경매에 붙여야할 지경까지 몰락해 6년만에 고향에 돌아온 귀족 류보비 안드리예브나 라네프스카야(류바), 지속적으로 재정위기를 타파할 방법을 제안하지만 누구도 들어주지 않아 미칠 지경에 이르는 농노의 자식이자 신흥사업가 로파힌 예르몰라이 알렉세예비치 중심으로 펼쳐지는 풍자극이다.급변하는 사회상과 그에 따른 갈등, 혼란 등은 라네프스카야와 로파힌을 비롯해 라네프스카야의 딸 아냐, 수양딸 바랴, 그의 오빠 레오니드 안드레예비치 가예프, 사회주의에 심취한 만년 대학생이자 가정교사 페차 등 벚꽃동산 처리를 두고 저마다의 의견만을 개진하며 기묘한 관계로 얽히고설키는 상징적인 인물들 속에 담긴다.LG아트센터가 제작하는 ‘벚꽃동산’은 ‘메디아’ ‘입센 하우스’ ‘예르마’ 등 고전의 재해석에 탁월한 사이먼 스톤이 연출을 비롯해 각색까지 맡는다. 2024년 한국을 배경으로 하면서 캐릭터들도 류바는 송도영(전도연), 로파힌은 황두식(박해수), 가예프는 송재영(손상규), 아냐는 강해나(이지혜), 바랴는 강현숙, 트로피모프는 변동림(남윤호) 등으로 한국화해 변주된다.연극 ‘벚꽃동산’ 사이먼 스톤 연출(왼쪽부터)과 전도연, 박해수, 손상규(사진=허미선 기자)사이먼 스톤의 한국행에는 “무엇보다 독특한 위상의 한국 배우들”이 큰 몫을 했다. 그는 “2002년 멜버른 필름 페스티벌에서 아직 유명하지 않았던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를 보면서 한국 영화에 빠져들었다”고 털어놓았다.“그때부터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영화는 한국영화라는 생각을 갖게 됐죠. 한국 영화는 예술성과 상업성이 잘 어우러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배우들의 재능 같기도 합니다. 어떤 것들은 좀 이상하다 싶은데 배우들이 채우면서 좋은 영화로 만들거든요.”그는 “그렇게 제가 동경했던 배우들이 바로 옆에 있다는 게 너무 영광”이라며 “지금 제가 세계 최고의 행운아라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놓았다.연극 ‘벚꽃동산’의 박해수(왼쪽)와 전도연(사진=허미선 기자)“희극과 비극을 오가는 건 결코 쉽지 않은데 한국 배우들은 엄청나게 비극적인 상황에 젖어 있다가도 갑자기 웃음이 나는 희극으로 잘 넘어가는 재능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장르를 넘나드는 배우들이 저에겐 너무나 훌륭하게 다가왔죠.”사이먼 스톤은 전도연 캐스팅에 대해 “한국의 메릴 스트립이 필요했다”며 “이 작품에서 류바는 굉장히 어려운 역할이다. 어떤 걸 하더라도 사랑스럽고 매력적으로 보여야 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전도연 배우의 많은 영화들을 봤는데 나쁜 역할도, 선한 역할도 매력적이었어요. 그런 요소들을 이미 갖고 계셔서 (류바 역에) 굉장히 적합하다고 생각했죠. ‘벚꽃동산’이 담고 있는 당대 귀족층,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요소들은 보통 사람들의 고민과는 조금 다를 수 있어서 인간적인 면모로 관객들과 커네션을 구축해야 하거든요. 이에 가장 적합한, 정교한 배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박해수에 대해서는 “전세계에서 제일 좋아하는 배우”라며 “강렬한 느낌도 있지만 그 안에는 굉장히 연약함도 담고 있는 등 굉장히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다”고 이유를 밝혔다.“연약함과 강함을 오갈 수 있는 능력이 굉장히 뛰어나죠. ‘벚꽃동산’ 초반에 로파힌은 자신감도 없고 초조해 하는 인물이었어요. 그러다 작품 말미에는 굉장히 강렬한 인물로 부상하죠. 그걸 박해수 배우가 누구보다 잘 할 수 있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벚꽃동산’은 전도연이 ‘리타길들이기’ 이후 27년만에 서는 무대 복귀작이기도 하다. 2021년 사이몬 스톤이 연출한 ‘더 디그’를 인상 깊게 봤다는 전도연은 “장르적으로 연극이기는 하지만 ‘벚꽃동산’은 도전이라기보다 제가 해보지 못한 수많은 것들을 하는 과정 중 하나”라며 연극무대에 선뜻 오를 수 없었던 데 대해 “두려움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온전히 나를 관객에게 다 드러낼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어요. 이 작품 출연제의를 받고도 어떻게 하면 거절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메디아’라는 작품을 영상으로 보고는 배우로서 피가 끓었어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출연을) 결정했습니다.”연극 ‘벚꽃동산’ 손상규(왼쪽부터), 전도연, 박해수(사진=허미선 기자)박해수는 “사이먼과 처음 만나 저희 얘기를 많이 꺼내봤다. 저 박해수, 제 아버지 등 배우 각자가 꺼내놓은 이야기를 사이먼이 종합해줬다”며 “그렇게 ‘벚꽃동산’의 신흥세력과 가진 것을 지켜내려는 세력을 몰락해 가는 기업과 자수성가한 사업가로 대체해 조금은 더 우리 근처의 이야기들을 가져왔다”고 전했다. 손상규는 자신이 연기할 송재영에 대해 “나쁘기 보다는 무력한데 어떻게 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며 “굉장히 성공했던 집의 사람으로서 성공하지 못할 바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는 사람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고 전했다.전도연은 “사회 변화, 개혁 등은 어떤 건물이 갑자기 없어지고 갑자기 새로운 게 나타는 것들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개혁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사람이 바뀌어야 이 사회가 바뀌죠. 정체된 인간들과 변화하는 것에 대한, 한국적인 정서로 바뀌었지만 글로벌하게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4-26 18:30 허미선 기자

[비바100] ‘컨페션 투 디 어스’ 맨디 바커 “예쁜 쓰레기! 환경문제를 인식시키는 화법”

버려진 플라스틱, 쓰레기 등의 사진으로 환경 문제를 인식시키는 맨디 바커(사진=허미선 기자)“일종의 화법이랄까요. 영국 해변에는 분명 플라스틱이랑 쓰레기들이 있는데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예쁘고 다채롭고 화려하게 표현했죠. 그제야 관심을 가지게 되고 가까이 가 보고서야 그것이 쓰레기, 버려진 플라스틱이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기억에 남겨 환경문제를 인식시키는 화법이죠.”사진작가 맨디 바커(Mandy Barker)의 말처럼 예쁘고 아름답고 화려하다. 하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검은 바다 속에 버려진 축구공, 장난감, 노끈 등 쓰레기다. 혹은 그 버려진 플라스틱 쓰레기들을 토해내듯 내장에서 쏟아내고 죽어버린 붉은발슴새의 사체다. 지나치게 ‘예쁜 쓰레기’들로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우는 맨디 바커는 이를 “화법”이라고 표현했다.“버려진 플라스틱을 너무 많이 먹고 죽은 새들을 담은 ‘스틸(FFS)’(Still) 연작은 그 메시지 자체가 굉장히 쇼킹하죠. 배를 갈라놓을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은 이유는 너무 참혹해서 사람들이 보지 않을테니까요. 반면 아름다운 이미지에 감탄하며 관련 QR코드를 찍었을 때 참혹한 새의 현실, 환경오염 사태를 절감할 수 있죠. 그렇게 플라스틱 사용에 대한 생각이 바뀔 거라고 생각해요.”버려진 플라스틱, 쓰레기 등의 사진으로 환경 문제를 인식시키는 맨디 바커의 작품들(사진=허미선 기자)바다를 뒤덮은 존재들을 아름답고 화려하게 표현한 그의 ‘홍콩탕:1826’(香港湯:1826), ‘얕은’(Shoal), ‘유통기한’(Shelf-life), ‘수프’(Soup), ‘에브리’(Every) 등과 환경오염으로 죽은 새를 담은 ‘스틸(FFS)’) 연작, 2014년 세계적인 스포츠 축제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진행했던 ‘페널티’(Penalty) 시리즈 등은 중구문화재단이 새로 개관한 갤러리 신당의 첫 번째 사진전 ‘컨페션 투 디 어스’(Confession to the Earth, 9월 8일까지)에서 만날 수 있다. “제 작품을 보고 플라스틱 장난감을 사면 새가 먹을 거라서 안산다는 아이들도 있어요. 영국에서는 아나바다 운동도 확산되고 있죠. 모르는 사람들끼리 옷, 도구, 장난감 등을 쓰레기로 버리지 않고 바꿔 쓰고 나눠 쓰는 겁니다.”◇모두가 사진작가인 시대, 그럼에도 사진의 힘!버려진 노끈으로 환경 문제를 인식시키는 맨디 바커의 'SHELF-LIFE'(사진=허미선 기자)“제가 핸데스라는 무인도에서 사진작업을 한 적이 있어요. 대륙에서 약 5000km나 떨어져 있고 아무도 살지 않는 오지 중 오지죠. 2018년 세계에서 가장 플라스틱 오염이 심한 해변으로 꼽히기도 한 곳이에요. 그곳 생태, 기후, 환경오염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초대로 가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제가 가서 사진을 찍어 전시하지 않았다면 아무도 몰랐을 거예요. 물론 과학자들이 그 연구 결과를 리서치 저널 등에 발표했겠죠. 하지만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은 전혀 몰랐을 겁니다. 어쩌면 제 사진은 과학의 비주얼한 목소리가 아닌가 싶습니다.”그가 강조한 “사진이라는 매체의 힘”은 스마트폰의 고도화로 모두가 작품에 버금가는 사진을 찍을 수 있고 쉽게 공유할 수 있는, 인공지능(AI)이 예술의 영역에 빠르게 스며드는 시대에도 유효하다.“지금은 누구나 좋은 사진을 만들어낼 수 있는, 그런 시대죠. 사진은 굉장히 즉흥적인 행위이고 어렵지 않아서 누구나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중요한 건 사진을 찍는 행위가 아니라 그 사진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어떻게 스토리텔링되고 있는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지입니다.”이어 맨디 바커는 “사진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교육하고 메시지나 깨달음을 전달할 때 중요한 소통매체로서, 굉장히 파워풀한 도구 또는 예술형태로서 기능한다고 생각한다”며 “제 전시를 본 분들이 감동받아 저마다의 생활 중 아주 작더라도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면 굉장히 파워풀하다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사실 사진 자체가 세상을 바꾸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이 사진이 아니었으면 몰랐을 것들을 알려주죠. 특히 제가 찍는 사진들은 사람들이 갈 수 없는 오지의 제한된 구역까지 들어가 작업한 것들이에요. 제가 본 것을 사진을 통해 전 세계에 알리는 미디어인 셈이죠. 그 가치가 매우 크다고 생각해요. 이를 통해 기후 과학 분야에 어느 정도는 도움을 주거나 기여하고 있다고 자신합니다.”◇촘촘히 연결된 세계, 환경문제는 우리 모두의 몫버려진 플라스틱, 쓰레기 등의 사진으로 환경 문제를 인식시키는 맨디 바커(사진제공=중구문화재단)“한국의 바다 뿐 아니라 어디나 비슷해요. 플라스틱을 비롯한 썩지 않는 것들이 떠다니고 있고 이 때문에 죽거나 파괴되는 자연과 생태계가 있죠. 결국 제가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하는 환경 메시지는 특정 지역만이 아닌 전세계, 우리 모두의 문제죠.”그의 표현처럼 “핸데스 섬에 모여든 플라스틱의 국적은 25개.” 그렇게 그의 예술재료로 쓰인 쓰레기들은 세계 곳곳에서 모여든 것들이다. ‘페널티’ 시리즈 역시 “해변에 버려진 축구공을 보내달라”는 그의 SNS 게시물이 공유되면서 4개월만에 89명이 41개국섬, 144개 해변에서 보내온 769개의 쓰레기 축구공을 직접 그리고 배치해 표현한 작품이다.4개월만에 89명이 41개국amp;섬, 144개 해변에서 보내온 169개 쓰레기 축구공을 활용한 ‘페널티’. 이번 전시에서는 그가 강원도 속초를 방문했다 해변에서 주워온 축구공도 함께 전시돼 있다.(사진=허미선 기자)이 작품 앞에는 ‘컨페션 투 디 어스’ 개막 직전 방문한 한국의 강원도 속초 바닷가에서 그가 직접 주운 버려진 축구공이 전시돼 있기도 하다. 그렇게 오래 전 병속에 편지를 담아 띄우듯 한곳으로 모여든 플라스틱 쓰레기들로 지구는 역시 하나이며 서로 연결돼 있음을 목도하곤 한다. 그렇게 환경문제는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 모두의 몫이다. 최근 환경보호를 외치며 에코백, 텀블러 등의 사용이 늘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너무 많아져 오히려 환경오염의 원인이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들도 생겨나고 있다.“사실 이 상황들은 굉장히 작은 부분이에요. 개개인은 환경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죄책감을 느끼며 보호를 위해 뭔가 라도 해보려고 노력하죠. 하지만 문제는 개인이 아니라 제조사입니다. 제조사가 그렇게 만들지 않으면 소비자들은 사지 않았을 거예요.”버려진 플라스틱, 쓰레기 등의 사진으로 환경 문제를 인식시키는 맨디 바커의 작품들(사진=허미선 기자)더불어 경쟁하듯 ESG경영을 선포한 기업들의 ‘그린워싱’ 문제도 심화 중이다. 그는 “대부분의 회사가 ‘친환경’을 표방하며 관련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뭔가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고 짚었다. 이어 “음식물들은 다 소분돼 플라스틱으로 포장돼 있다. 어떤 초콜릿은 작게 하나하나 알루미늄 포일이나 비닐로 싸여 있다”며 “하지만 바나나, 오렌지 등은 비닐이나 플라스틱 포장이 전혀 필요하지 않다”고 밝혔다.“개인은 소분된 것들은 사지 않고 예쁘지만 독성물질이 쓰이는 핑크색 플라스틱 구매를 거부하는 것으로 소비자로서의 목소리를 내는, 아주 작은 행동과 실천으로 변화를 꾀하면 돼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플라스틱 자체를 너무 많이 생산하지 않는 겁니다.. 우리가 쓰는 모든 것들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질 필요는 없거든요.”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기보다는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맨디 바커는 조언했다. 그는 “해양 플라스틱 수거 사업도 좋지만 영구적일 순 없다”고 덧붙였다.버려진 플라스틱, 쓰레기 등의 사진으로 환경 문제를 인식시키는 맨디 바커(사진제공=중구문화재단)“제조사들이 플라스틱을 대량생산하지 않도록 혹은 소분하는 방식으로 만들지 않도록 하거나 분해성 소재를 사용하도록 하는 법령 마련과 더불어 이를 초기 기획단계부터 고려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합니다. 그래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죠.”◇지자체 공간, 버려진 옷 프로젝트 그리고 예술 “(‘컨페션 투 디 어스’전이 열리고 있는) 이 갤러리는 지역 커뮤니티 베이스이기 때문에 로컬 분들에게는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좋은 기회죠. 학생들은 물론 가족 단위, 노년층도 같이 혹은 따로 오시면 좋을 것 같아요. 오시는 분들에게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물이 아니라 개인 컵을 쓰게 하는 등 어려서부터 행동에 옮길 수 있는 정책들이 마련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중구문화재단에서 개관한 갤러리 신당에 이같은 바람을 전한 맨디 바커는 “이후 제주를 시작으로 부산, 대구 등을 방문 예정”이라며 “다음 프로젝트는 옷에 관련된 것”이라고 귀띔했다.“우리가 입고 있는 옷의 60~70%가 합성섬유예요. 폴리에스테르, 아크릴 등 대부분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있죠. ‘패스트 패션’(Fast Fashion) 성향이 심화되면서 사람들은 금방 싫증을 느낍니다. 어떤 옷은 한두번 입고 버려지기도 하죠. 그렇게 버려진 옷들을 영국의 한 해변가를 거닐면서 수거해왔어요. 그 옷들이 해조류처럼 보이게 연출하는 사진작업이죠.”이어 맨디 바커는 “1800년대 한 예술가가 출판한 해조류 도감의 형식을 차용할 것”이라며 “언뜻 해조류처럼 보이지만 해조류가 아닌, 버려진 옷인 작업이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버려진 플라스틱, 쓰레기 등의 사진으로 환경 문제를 인식시키는 맨디 바커(사진=허미선 기자)“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저는 1년 동안 옷이나 신발을 사지 않기로 약속했어요. 더불어 3가지 소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 많은 분들이 호응해 주시죠, 대부분의 옷들은 북반구에서 만들어져 버려지는데 그것들이 아프리카 가나나 칠레 아타카마 사막으로 흘러가곤 합니다. 그곳에 헌옷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태그조차 떼지 않은 새 옷도 적지 않아요.”향후 진행될 옷 프로젝트를 통해 “그런 옷들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싶다”는 맨디 바커는 “예술과 사진, 환경은 다 연결돼 있다고 생각한다. 이 세 매개를 통해 환경, 플라스틱에 대한 인식이 바뀌길 바란다”고 털어놓았다.“제 프로젝트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매일 사용하는 플라스틱, 과다 포장 등에 대해 깨닫고 변화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스스로 깨닫고 변화하는 것은 물론 자녀들을 교육시키고 주변으로 확산시켜 주세요.”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4-26 18:00 허미선 기자

[비바100] 베트남 전쟁에 맥주를 배달하러 갔더니, 다들 CIA인줄 알더라!

영화 '지상 최대 맥주배달 작전'.(사진제공=애플TV)입으로는 늘 ‘~할거야’라지만 말로만 끝내는 사람이 있다. 애플TV ‘지상 최대 맥주배달 작전’은 첫 장면부터 동네 술집에서 호기롭게 친구들에게 맥주를 사는 치키(잭 에프론)이 그렇다. 그나마도 밀린 외상값이 많은지 바 사장인 대령(빌 머레이)은 “더이상 맥주를 줄 수 없다”고 소리친다.일년의 반 이상을 갑판 위에서 지내는 치키는 부모님 집에 얹혀 사는 신세다. 주머니가 두둑하게 하선할 때는 동네의 인기남이지만 다음 배를 탈 때까지는 집안의 애물단지다. 어릴 적 성당 친구인 무리들과 어울려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오후 2시에 일어나는 게 일상. TV에서 나오는 베트남 전쟁의 참상은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한때 미국 최대의 맥주양조업체였던 블루리본이 등장해 사실감을 더한다. 장병들은 차갑지도 않은 맥주여도 본토에서 직접 가져온 맥주에 위로와 향수를 느낀다. (사진제공=애플TV)그런 그가 변한 건 절친의 사망과 정신을 차려보니 한집 건너 살거나 위 아래층에 모여 살던 레이놀즈, 콜린스, 파파스, 더건, 미노그 역시 참전 중인 사실을 알게 되면서다. 그 중 가장 친했던 토미는 실종상태다. 낄낄거리고 늘 취해있는 사이 동네는 암울한 분위기로 변해버렸다. 우울하게 모여 평소처럼 술을 마시던 치키는 “이 동네 청년들에게 너를 기다리는 맥주가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는 대령의 말에 “당장 베트남행 배에 올라 전달하겠다”고 호언장담한다.친구들은 늘 호기롭게 말했지만 결국 이룬 건 없는 치키의 말을 웃어 넘기지만 토미의 엄마만큼은 그의 결정을 믿는다. 늦은 밤 치키를 찾아와 묵주를 전하며 “아들이 참전할 때 주는 걸 깜박했다”며 심금을 울린다. 그 시절 수많은 엄마들이 그렇게 아들을 가슴에 묻은 사실을 깨달은 그는 “사망이 아닌 실종상태다. 꼭 찾아 전달하겠다”며 베트남행 보급선에 미련없이 오른다.단골 바(bar) 주인은 맥주를 무상제공하고, 동네를 상징하는 가방에 넣어준다. 몇 개월에 걸쳐 배를 타고 배달에 나선 극중 치키의 모습. (사진제공=애플TV)사실 그 역시 전날 밤의 실언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를 대하는 시선과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 것도 알아채고 있었다. 그간 치키는 동네에서 허울좋은 청년이었고 늘 방관자에 가까웠다.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시위를 할 때 시비가 붙는 경우도 있었다. 뉴스에서 내보내는 베트공들의 잔혹함과 야만성을 접한 사람들이 단지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후에야 반전을 외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상 최대 맥주배달 작전’의 시작은 사실 미국우월주의다. 스스로 “세계 최고의 맛”이라 자부하는 미국 맥주를 가져다 주는 말도 안 되는 일을 하기로 하지만 치키의 삶과 관점은 점차 바뀐다. 몇달만에 도착한 베트남에서 선장에게 단 며칠 간의 휴가를 받은 그는 “약속한 시간에 돌아오지 않으면 배는 떠날 것”이란 말에도 걱정하지 않는다. 내리자마자 헌병에서 근무하던 콜린스를 만나 미지근한 맥주여도 전달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속도라면 다른 친구들의 위치도 동선만 맞으면 3일만에 끝낼 수 있을것만 같다.민간인 임에도 군용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던 이유는 모두가 그를 군관계자로 여겼지, 맥주 배달꾼이라고는 도저히 상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진제공=애플TV)큰 가방에 맥주캔 만을 가득 채운 채 유독 당당하게 구는 치키의 모습에 미국 간부들은 그를 중앙정보국 직원으로 착각한다. 서류는 물론 사전 조율도 없이 총알이 빗발치는 현장에서 도도하게 구는 모습이 CIA요원이 아니면 할 수 없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진짜 모습은 민간인. 종군기자들만이 출입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그들이 묵는 호텔에 찾아가 시니컬한 기자 아서(러셀 크로우)의 비웃음을 받는다.베트콩을 최대한 더 많이 죽여야만 전쟁이 끝날 수 있다고 믿는 치키가 단지 친구들을 위로할 맥주를 들고 최전선까지 온 것에 대해 아서는 베트남 전쟁의 진실을 알려준다. 미국의 명분 없는 싸움에 젊은이들이 죽어나가고 있음에도 정부가 침묵하고 있고 온갖 인권 유린이 자행되고 있음을.치키의 고생과 갱생은 영화 중반부에 극에 달한다. 아무 것도 모른채 도착한 최전선에서 만난 친구 더건(제이크 피킹)의 비난을 한 몸받는다. 고작 50m도 안되는 곳에 대척하며 하루가 멀다하고 총알을 쏴대는 일상 속에서 그의 눈빛은 유순했던 과거와 달리 살기로 가득차 있었다. 그 곳에 ‘단지’ 맥주배달을 하러 왔다는 친구의 말에 분노하며 치키를 최대한 안전한 곳에 보내려 하지만 귀국선에 오르는 일은 멀고도 험하다.미군들의 횡포가 베트콩의 공격으로 바뀌는 뉴스의 진실을 알게 되는 치키. 아서가 목숨걸고 취재한 것은 결국 누구에 의해 바뀌는것일까. (사진제공=애플TV)그 과정에서 아서는 미국대사관이 공격당하는 순간을 목숨걸고 취재한다. 자국민 보호란 이유로 사이공 일반 시민들까지 무참하게 죽이는 걸 사진기에 담는다. 같이 귀국하자는 치키의 말에 “내가 있을 곳은 바로 이곳”이라며 폭탄이 터지는 곳으로 걸어가는 뒷모습은 장엄하기 까지 하다. 러셀 크로우는 이 캐릭터를 통해 조부의 직업을 체험했다며 촬영 내내 감격 했다는 후문이다. 결국 치키는 이름모를 미군의 시체가 성조기에 싸인 관이 가득찬 헬기에 몸을 싣고 귀국한다. 노래잘하는 꽃미남 배우로 치부됐던 잭 애프론의 인생 연기가 담긴 순간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베트콩을 헬기에서 밀어버리는 CIA요원의 잔인함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건 ‘지상 최대 맥주배달 작전’만이 가진 전쟁의 민낯은 아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친구들이 무사히 귀국해 일흔이 넘은 나이에 동네 단골바에 모인 순간은 남다른 감동을 안긴다. 맞다. 거짓말 같지만 이 이야기는 실화다. 미국판 포스터의 사진이자 실제 주인공이 전쟁터에서 찍은 사진은 종군기자가 취재해 전설로 남았다.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2024-04-24 18:30 이희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