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전문가 기고

[국민관절주치의 고용곤 칼럼] 최신 인공관절 수술은 무조건 비싸다?

강남 연세사랑병원 고용곤 병원장 (정형외과 전문의)대부분의 사람들은 최신 의료기술은 아주 고가일 것이라 지레짐작한다. 때문에 치료 초기부터 아예 최신 의료기술을 배제하고 기존 치료법만 찾는 환자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최신 의료기술이라고 해서 모두 비싼 것은 아니다. 치료법을 선택하기 전 충분한 조사가 이뤄진다면 합리적인 비용으로 최신 의료기술을 시도해볼 수 있다.퇴행성 무릎관절염의 선진 의료기술로 손꼽히는 ‘3D 시뮬레이션 맞춤형 인공관절수술’을 기존 수술비용과 동일하게 시행한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필자의 병원은 ‘컴퓨터 시뮬레이션(가상수술)’과 ‘3D프린팅 기술’을 접목해 수술의 정확성을 대폭 향상시킨 ‘3D 시뮬레이션 맞춤형 인공관절수술’을 개발했다. 국내 최초로, 자체 기술로 이런 최신치료를 발전시켜 특허청으로부터 2종의 특허를 획득하기도 했다.3D 시뮬레이션 맞춤형 인공관절수술은 수술 전 3D 시뮬레이션(가상수술)을 통해 오차 범위를 최소화해 인공관절의 정확한 삽입 위치를 측정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로써 인공관절과 환자의 다리 간에 정밀한 하지정렬이 이뤄지고, 퇴행성 관절염 말기 환자들의 인공관절 사용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수술 전 자기공명영상(MRI) 또는 컴퓨터단층촬영(CT)로 정밀하게 스캔한 환자의 무릎 모형을 바탕으로 3D프린터를 이용해 맞춤형 수술도구(PSI)를 제작한다. 이는 인공관절의 삽입 위치를 정하기 위한 수술계획 과정을 대폭 축소시켜 전체적인 수술시간을 단축해준다. 크게 보면 환자의 출혈, 감염, 폐색전 같은 부작용, 합병증과 관련한 위험성을 줄이는 결과도 기대할 수 있다.3D 시뮬레이션 맞춤형 인공관절수술과 관련한 2건의 임상 연구결과(수술 성적표)는 지난 2015년 ‘Biomed Research International’에 이어 2016년 ‘Archives of Orthopaedic and Trauma Surgery’ 등 세계적으로 저명한 SCI(e)급 학술지에 등재됐다. 향상된 디자인의 수술도구를 실제 임상에 적용함으로써 하지정렬의 정확성을 높이고 수술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는 게 두 논문의 결론이다.과거에는 환자별로 차이 나는 무릎 모양과 크기를 고려하지 않고 인공관절수술을 시행했다. 이 때문에 수술을 받은 일부 환자는 수술 후 심한 통증이 지속되거나, 부작용으로 고생하는 경우가 간혹 나타났다. 또 기다란 수술도구를 이용한 하지정렬은 수술 시 출혈이나 감염 등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었다. 의료진의 숙련도에 따라 수술결과가 천차만별이었다. 또 기존 인공관절은 서양인 기준에 맞춰 제작돼 좌식문화를 갖고 있는 한국인과 맞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수술 이후 양반다리 또는 무릎꿇기 등 일상생활에 운동제한이 나타나는 게 그 부정적 결과였다.과거의 인공관절수술 단점들을 보완한 ‘3D 시뮬레이션 맞춤형 인공관절수술’이 최근 들어 기존 인공관절수술과 동일한 비용으로 시행되고 있다. 환자들은 더욱 정교하고, 안정성 있는 의료기술을 합리적인 비용으로 적용받을 수 있게 됐다. 그동안 최신 인공관절수술은 무조건 비쌀 것으로 간주하고 기존 인공관절수술을 고려해왔던 환자들에게 새로운 활로가 열린 것이다.강남 연세사랑병원 고용곤 병원장 (정형외과 전문의)

2019-01-10 11:00 강남 연세사랑병원 고용곤 병원장 (정형외과 전문의)

[시장 경제 칼럼]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이 분발할 때

복거일(소설가, 경제평론가)어떤 개인에 관해서 가장 많은 것들을 알려주는 단일 정보는 그의 소득이다. 소득은 그가 자신의 욕구들을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의 크기를 알려준다. 소득이 적으면, 자신의 뜻대로 삶을 꾸려나가기 어렵다. 소득이 많으면, 빌 게이츠의 행적이 유창하게 말해주는 것처럼, 세상을 이리 바꾸어야 한다고 역설하는 대신 세상을 보다 낫게 만드는 사업들을 실제로 추진할 수 있다.어떤 사회에 관해서 가장 많은 것들을 알려주는 단일 정보는 정치 지도자에 대한 구성원들의 지지도다. 지도자가 누리는 지지도는 사회적 응집력(social cohesion)의 크기를 알려준다. 지도자가 옳은 방향으로 사회를 이끈다고 믿어서 시민들이 지지하면, 그 사회는 응집력이 커서 효율적으로 움직인다. 지도자가 사회를 잘못 이끈다고 시민들이 판단해서 지지도가 낮아지면, 그 사회는 응집력이 약해져서 혼란스러워지고 비효율적이 된다.2018년에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크게 바뀌었다. 연초에 문 대통령은 무척 높은 지지도를 누렸다. 이승만 대통령이 시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던 6.25전쟁 기간 이후, 아마도 가장 높은 지지도였을 것이다. 연말엔 문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민들보다 반대하는 시민들이 많아졌다.이런 변화는 우리 사회의 응집력이 빠르게 약화되었음을 뜻한다. 사회적 응집력이 약해지면, 사회는 허약해진다. 사회 조직의 중심적 문제가 응집력의 확보니, 당연한 일이다.문 대통령의 지지도가 낮아진 근본적 원인은 물론 현 정권의 국정 운영이 초라한 성적을 냈다는 사실이다. 특히 경제 분야에서 성적이 나쁘다. “물이 들어오니, 노를 젓자.”고 주문한 문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을 빼놓으면, 모두 살기 어렵다 하고 나라를 걱정한다. 거의 모든 지표들이 경제가 어려워졌음을 가리킨다.이제 시민들은 현 정권의 경제 정책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들은 거의 다 민중주의적(populist)이어서, 처음엔 시민들 다수의 지지를 받았다. 따라서 그런 정책들이 비합리적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시민들이 묵은 지식을 버리고 새로운 지식을 얻었음을 뜻한다.그러나 현 정권의 경제 정책들에 환멸을 느낀 시민들 가운데 그것들이 실패한 까닭을 명확하게 아는 이들은 드물다. 실패한 정책들의 대안들이 무엇인지 아는 이들은 더욱 드물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정책에 대해서 불만을 품고 그런 정책의 부정적 효과를 줄여달라고 현 정권에 요구하는 수준에 머문다.이런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 현 정권의 정책들로 어려움을 겪지만 그것들을 대치할 정책들이 무엇인지 모르니, 시민들은 불만과 분노를 생산적 에너지로 변환시키지 못한다. 그리고 차츰 쪼그라든 자신의 처지에 적응하게 될 것이다. 경제를 제대로 살필 지적 자산이 부족하니, 민중주의적 정책들이 새롭게 화장을 하고 나타나면, 이내 그것들에 현혹될 수밖에 없다.당연히, 시민들이 경제에 관해 보다 깊은 지식을 갖추고 현재의 상황을 보다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문 대통령이 어떤 이념을 추종하고 그런 이념에서 어떤 정책들이 나왔고 그런 정책들이 왜 실패했으며 그것들보다 나은 이념과 정책들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긴요하다.지금 현 정권의 경제 정책들에 대한 비판은 활발하다. 신문들마다 ‘최저임금제’의 문제점들과 ‘규제 완화’와 같은 처방들로 채워진다. 그러나 그런 정책들을 배출한 이념에 대한 논의는 아주 드물다. 그 이념이 대한민국의 구성 원리에 어긋나는 모습을 자주 보여도, 그것을 지적하고 경계하는 목소리가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케인즈가 일찍이 지적했듯이, 이념보다 더 강력한 것은 없다. 우리를 움직이는 것은 우리 뇌에 자리잡은 밈(meme)들이다. 그리고 서로 잘 어울리는 밈들이 모여서 ‘밈 복합체(memeplex)’를 이룬다. 이념은 가장 근본적 수준에서 우리 행태에 작용하는 밈 복합체다. 누구도 자신이 받아들인 이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현 정권의 이념은 본질적으로 전체주의다. 전체주의는 나름으로 진화를 해서 궁극적으로 민족 사회주의(national socialism)에 이른다. 처음엔 자신을 보편적 이념이라고 내세우지만, 차츰 강력한 힘인 민족주의와 결합하는 것이다. 국제공산당(Communist International)을 내걸어 온 세계의 지식인들을 현혹했던 러시아 공산당의 변모가 그 점을 잘 보여준다.이런 변화는 식물 군락의 천이(succession)와 비슷하다. 헐벗은 땅이 나오면, 먼저 지의류가 땅을 덮고, 이어 풀들, 관목들, 양수림 교목들이 차례로 번창했다가 궁극적으로 음수림이 지배적 종이 된다. 이런 식물 군락의 천이에서 결정적 요소는 햇빛인데, 전체주의의 진화에서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은 민족주의다. 우리 사회의 좌파의 진화 과정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다.전체주의를 추종하므로, 현 정권은 대한민국의 구성 원리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적대적이다. 수많은 시행착오들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책들을 바꾸려 하지 않는 이유가 거기 있다. 현 정권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이념이 성공하리라 믿는다. 추종자들에게 궁극적 성공의 믿음을 주지 못한다면, 이념은 이념이 못 된다.이런 사정은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에게 분발을 요청한다. 자유주의자들은 자유민주주의가 어떤 이념이고 왜 가장 나은 이념인지, 시장경제의 원리가 무엇이고 왜 가장 나은 경제 체제인자, 시민들에게 알려야 한다. 그리고 그런 지식으로 현 정권의 전체주의 이념을 살피고 무슨 잘못들이 어떻게 나왔는지 시민들이 이해하도록 도와야 한다. 그렇게 해서 시민들의 가슴에 서린 불만과 분노가 생산적 에너지로 바뀌도록 도와야 한다.복거일(소설가, 경제평론가)

2019-01-07 07:30 복거일(소설가, 경제평론가)

[유영만의 교육시선(視線)] AI시대, 지식 아닌 지혜 쌓자

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인간지능으로 인공지능을 만들었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인간지능에 버금가는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인간에게는 복잡한 기능을 인공지능은 아주 쉽게 처리한다. 하지만 인간에게 쉬운 과제를 인공지능은 애를 먹으며 진땀을 흘린다. 인간의 지능으로 축적한 지식을 인공지능은 잠도 안자고 빠른 속도로 학습해서 잊어먹지도 않는다. 인간지능으로 축적한 인간의 지식은 인공지능도 딥러닝을 통해 습득한다. 인간이 오랫동안 축적해온 지식은 인간의 고유한 경쟁력을 드러내는 지표가 될 수 없다. 인공지능이 쉽게 넘볼 수 없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 지능을 넘어 지성, 지식을 능가하는 지혜를 개발하는 길에서 그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 문제는 지식은 가르칠 수 있지만 지혜는 언어를 매개로 가르칠 수 없다. 지혜는 오로지 당사자가 다양한 시행착오와 우여곡절을 겪으며 온몸으로 체험하는 가운데 체득된다. 지식의 단순한 누적이 지혜를 낳지 않는다. 지식을 가르치는 교육패러다임을 지혜를 깨우치는 교육 패러다임으로의 과감한 전환이 시급한 시점이다. 그렇다면 지능 및 지식과 지성 및 지혜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슈퍼제너럴리스트’의 저자 다카시 히로시는 ‘지능’이란 ‘답이 정해져 있는 물음’에 대해 재빨리 정확한 답을 내놓는 능력이지만 ‘지성’이란 ‘답이 없는 물음’에 대해 그 물음을 계속 되묻는 능력이라고 했다. 우리는 이제까지 누군가 던진 질문에 정답을 찾는 능력을 배워왔다. 미국의 저술가 캐빈 켈리도 비슷한 맥락에서 “기계(또는 인공지능)는 답을 하기 위해 존재하고, 인간은 질문을 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한다. 이제 주어진 문제에 대한 정답을 찾아내는 능력은 인공지능이 인간지능보다 뛰어나다. 인간은 단순히 주어진 문제에 대답하는 지식보다 그 대답이 무슨 의미인지를 해석하는 지혜를 갖고 있다. 동일한 대답도 누가 어떤 상황에서 대답하는지에 따라서 대답의 의미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같은 대답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힘은 지혜다. 예를 들면 사랑이 막 시작되는 단계의 연인들이 말하는 “사랑해”라는 말과 꽤 오랫동안 사귄 연인들이 주고받는 “사랑해”라는 말의 의미가 다른 것을 인공지능은 쉽게 이해할 수 없다. 인간지성으로 개발되는 지혜는 정답이 없는 딜레마 상황에서 발생하는 사건 속에 담긴 사연과 사고 속에 담긴 의도가 무슨 의미인지를 해석해내는 힘이다.인공지능이 동경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지를 실험했던 일본의 아라이 노리코 교수의 ‘대학에 가는 AI vs 교과서를 못 읽는 아이들’에 따르면 인공지능은 계산하는 컴퓨터기이기 때문에 수학적, 확률적, 논리적으로 계산할 수 없는 의미를 해석할 수 없다고 한다. 의미 독해 능력이 부족해서 결국 인공지능은 동경대학에는 갈 수 없었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일본의 상위 10% 대학은 능히 합격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인공지능이 하지 못하는 의미 독해를 할 수 있는 사람도 점차 줄어든다는 데 있다. 의미 독해는 지식을 축적한다고 생기지 않는다. 정해진 절차를 따라가면 답을 찾을 수 있는 알고리즘 기반 교육으로 의미 독해능력을 기를 수 없다. 인공지능을 능가하기 위한 인간지성은 이제 상황에 따라서 다양한 딜레마적 변수가 관여하고 이해당사자들의 숨은 의도와 그들이 지향하는 미묘한 역학적 관계가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읽어내는 지혜로 재무장할 필요가 있다.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2019-01-06 16:38 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시장경제칼럼] 공정거래법 개정안, 21세기 변화된 경제 환경에 적합한가?

황인학 한국기업법연구소 수석연구위원지난 11월 27일, 정부는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심의#8228;의결하고 국회에 넘겼다. 공정거래법은 1980년 12월, 국보위에서 제정되었다. 그 이후 지금까지 38년 동안 근 30회 가까이 땜질식 일부 개정을 해왔지만 전부 개정 추진은 이번이 처음이다. 차제에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을 추진하는 이유로 정부는 현행 법제가 21세기의 변화된 경제 환경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임을 강조한다. 참고로 정부가 전부 개정안을 제안한 이유의 전문(全文)은 다음과 같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의 제정 당시에 비하여 최근의 경제 환경 및 시장상황은 크게 변화하였고 공정경제에 대한 사회적 요구도 높아짐에 따라, 과징금 부과 상한을 높이고, 경성담합(硬性談合)에 대한 전속고발제를 폐지하며,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해서는 사인의 금지청구제도를 도입하는 등 민사, 행정, 형사적 규율수단을 종합적으로 개선하고, 경제력 집중 억제시책을 합리적으로 보완ㆍ정비하여 대기업집단의 일감몰아주기와 같은 잘못된 행태를 시정하고 기업집단의 지배구조가 선진화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피심인의 방어권을 확대하고, 공정거래위원회 조사의 적법절차를 강화함으로써 사건처리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등 전반적인 법체계 및 구성을 재정비하여 공정하고 혁신적인 시장경제 시스템을 구현하고, 21세기 변화된 경제 환경에 부합할 수 있도록 공정거래법제의 전면적인 개선을 하려는 것임.”이다.공정거래법의 전면 개편 필요성은 많은 이들이 공감할 것이다. 1980년대에 틀을 잡은 현행 공정거래법은 시대적 적합성 문제 외에 규제의 합목적성, 수단의 적정성과 관련하여 문제되는 조항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공정거래법은 경쟁 촉진에 주력하는 선진법제와 다르게 경제력 집중의 억제를 목표로 삼아 기업조직 구조와 경영활동을 사전 규제하는 등, 한국적 예외주의(Korea Exceptionalism) 규정이 많아 그간에도 논란이 많았다. 그래서 공정거래위원회가 금년 3월에 ‘전면개편특위’를 구성하면서 ‘과거 고도성장기·산업화 시대의 규제틀로는 변화된 경제 여건과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경제 현상을 효과적으로 규율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고 “공정하고 혁신적인 시장경제 시스템 구현을 위해 21세기의 경제 환경을 반영한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을 추진한다.”고 밝힌 것은 늦었지만 맞는 말이었다.그러나 정부가 확정한 개정안은 기업집단 법제만 놓고 보면 공정거래법 선진화의 취지에 역행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개정안은 현행 공정거래법 제3장(기업결합 제한 및 경제력집중 억제)을 제3장(기업결합 제한)과 제4장(경제력집중 억제)으로 분리하고, 경제력집중 규제를 오히려 강화했다. 결과적으로 개정안은 시대적·국제적 정합성을 무시하고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 공약만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기업집단과 경제력집중에 대해 그동안 새로운 발견과 지식이 늘었지만 개정안은 80년대의 인식 및 규제 태도와 전혀 다르지 않다. 비유하자면, 기존의 ‘규제 밥상’과 ‘규제 메뉴’를 그대로 둔 채 ‘규제 젓가락’의 개수와 길이를 늘린 것이 이번 개정안의 특징이자 한계이다.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최소한 다음의 4가지 원칙을 감안해 재고해야 한다. 첫째, 경제제도의 국제적 정합성(global compatibility) 원칙이다. 혁신 및 개방 경쟁시대에 우리가 뒤쳐지지 않으려면 공정거래법부터 우물 안 개구리 식의 한국적 예외주의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규제 법령은 국경의 울타리 안에서만 적용되지만 지금의 시장경쟁은 80년대와 달리 국경이 없다. 미국, 중국, EU 등 세계 총생산의 77%에 이르는 경제권과 자유무역협정을 맺고 경쟁하는 지금 상황에서, 한국 국적의 기업에만 적용되는 규제의 족쇄를 채우는 것은 국민경제를 자승자박(自繩自縛)하며 자해하는 행위에 다르지 않다. 국내외 기업들이 국경을 넘어 실시간으로 경쟁하는 시대에는 공정거래법을 비롯한 경제제도 또한 국제적 정합성 원칙에 맞게 고쳐야 한다.둘째, 공정거래법은 다른 모든 법제가 그렇듯이 새로운 지식과 사실의 발견을 반영해 올바른 방향으로 개정해야 한다. 정부 발의 개정안은 기업집단을 경제력집중의 수단이자 지배주주의 사익편취 수단쯤으로 보는 기존의 인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기업집단 법제에 관한 한, 현상 유지 편향(status quo bias)이 아주 강하다. 80년대에는 기업집단을 후진국에서 나타나는 기형적인 경제조직으로 보는 인식이 많았다. 그리고 계열 출자를 통해 소수의 지분을 가진 지배주주가 지배권을 독점하는 기업집단은 구조상 대리인 문제와 경영참호 문제가 심각해서 경영성과가 좋지 않을 거라는 주장도 있었다.그러나 1990년대 말부터 기업집단은 미국, 영국 등 일부 앵글로 색슨 국가를 제외하고는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전 세계에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이 확인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기업집단의 경영성과가 미국식 사업부제 복합대기업 모형보다 더 낫다는 연구결과도 잇따르고 있다. 이처럼 기업집단의 본질과 기능과 관련, 80년대의 인식과 지금의 평가는 판이하게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의 전부 개정안은 80년대 인식과 지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업집단에는 TPE(Tunnelling, Propping, Expropriation) 문제가 없지 않지만, 이 때문에 기업집단 자체를 원인 부정하는 듯 하는 지금의 규제 태도는 국민 경제적으로 득보다 실이 많다.셋째, 정책의 최적 조합(optimal mix of policies) 원칙 면에서 개정안이 적절한지 다시 볼 필요가 있다. 90년대 말 외환위기 전까지는 공정거래법이 대기업을 규율하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다. 경쟁 압력은 낮았고 기업지배 관련 제도의 공백은 심각했다. 10% 이상의 지분 보유를 금지함으로써 경영권을 과도하게 보호했던 구 증권거래법 제200조는 대표적 사례였다. 그러나 1997년에 동 조항이 폐지되고, 외환위기 이후 기업지배 관련 제도는 형식면에서 선진국 이상으로 보강되었다. 주주의 권리와 경영 투명성 요건은 강화되었고, 외국인 투자자에 의한 적대적 MA도 가능하게 바뀌었다. 이사회에 사외이사가 1/2이 넘도록 규제하는 등 내부통제장치도 대폭 보강되었다.더 나아가 회사법에 회사 기회의 유용 금지를 설치하는 한편, 상속증여세법에서는 계열거래를 일감몰아주기 증여로 의제하여 과세하는 등, 지금은 계열거래를 통한 TPE 문제를 규율하기 위해 다양한 제도적 장치가 보강되었다. 정책의 최적 조합을 감안할 때 이제는 공정거래법을 소비자 이익 중심의 경쟁법으로 구조조정 해야 할 시점이다. 다시 말하면 기업이 시장지배력과 계열거래를 통해 경쟁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행위 규율에 정책 역량을 집중시키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 발의 개정안은 거꾸로 갔다. 공정거래법 이외의 제도 변화를 감안해서 규제 메뉴를 조정하기는커녕 아직도 공정위 홀로 대기업 규제의 총대를 메고 있다는 가정 하에 기존의 규제 메뉴를 강화한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며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다.끝으로 경제력집중에 대한 사전 규제는 공정성과 효율성 원칙에도 반한다. 애플과 구글의 사례에서 보듯이 시장을 창출하고 독점하고자 하는 열망은 기업가 정신의 요체이자 경제와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다. 이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은 성장의 동기를 차단하겠다는 발상이나 마찬가지이다. 국민 경제를 위해 정부가 할 일은 기업의 성장 의욕을 막는 게 아니라 경제력의 부당한 남용을 막는 일이다. 대기업이 시장지배력 또는 우월적 지위를 부당하게 남용하여 경쟁을 제한하는 것은 소비자와 거래 상대방에게 피해를 줄 뿐만 아니라 기업가적 발견과정을 통한 경제발전의 기회를 봉쇄하는 폐단을 야기한다.경제력집중 규제는 경제학 이론 및 선진법제 실무와 불일치할 뿐 아니라 우리나라 헌법 정신에도 위배된다. 헌법 제119조 2항은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 방지’를 명시하고 있다. 공정거래법 제1조(목적)에서 ‘과도한 경제력의 집중을 방지’한다고 한 것과 확연히 다르다. 따라서 이 모든 것을 감안할 때 정부 발의 개정안의 제4장, 경제력집중의 억제는 경제력 남용의 억제로 제목을 바꾸고 공정거래법 체계와 내용을 다시 개정할 필요가 있다. 혁신 성장의 동기를 저해하지 않으면서 불공정 거래의 부작용을 막기 위한 올바른 방법은 경제력집중을 사전 예방하는 규제가 아니라 경제력의 남용을 효과적으로 규제하는 것이다.황인학 한국기업법연구소 수석연구위원

2018-12-31 07:30 황인학 한국기업법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시장경제칼럼] 소득주도성장, 성공할 수 있을까?

이승모(경제평론가)소득주도성장론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이다. 가계의 임금과 소득을 늘리면 소비도 늘어나 경제성장이 이루어진다는 이론으로, 포스트케인지언 경제학자들이 주장한 임금주도성장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임금주도성장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소득주도성장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임금을 받지 않는 자영업자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자영업자까지 고려하여 임금 대신 소득으로 변하게 되었다. ‘소득증가-소비증가-성장’이라는 선순환의 달성을 위해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인 소득주도성장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언급하면, 이것은 케인즈적 망상에 입각한 것으로서 결코 달성될 수 없다. 이것을 입증하기 위해, 우선 소득주도성장을 위해 현 정부가 추진하는 수단들의 분석을 통해 소득주도성장이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피력할 것이고, 그 다음 성장과 소득증대를 위한 성공적인 방법을 제시할 것이다.소득주도성장을 위해 현 정부가 추진하는 수단들은 최저임금제 실시,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을 지원하고 우대하는 것, 중소기업의 투자지원 정책 등이다. 일견 보면 이런 수단들은 임금향상과 고용증대를 통해 소득을 높임으로써 소비증가와 성장이라는 선순환을 초래할 것 같다. 과연 그런 결과를 초래할지 상기 수단들을 차례로 분석해보자.첫째, 최저임금제가 소득(및 고용) 증가를 초래하는가? 임금 상승으로 노동자의 소득이 높아질 수 있다. 그러나 최저임금제를 시행하면 실업이 발생하고, 그로 인해 노동자의 소득은 감소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실업의 근본적인 원인은 임금수준이 노동의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는 시장임금 수준보다 높게 강제되기 때문이다. 노동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는 시장임금 수준에서는 현 임금수준이 낮아서 스스로 일을 하지 않는 자발적 실업만 존재한다. 이런 실업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가 되는 것은 현행 임금수준에서 일하기를 원하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비자발적 실업이다. 일반적으로 실업이라는 것은 비자발적 실업을 지칭한다. 임금수준이 시장임금보다 높으면 기업의 노동수요는 감소하고 근로자의 노동공급이 증가하여 실업이 발생한다. 임금수준이 시장임금보다 더 높아지는 이유는 정부의 최저임금제 실시와 노동조합의 힘 때문이다. 따라서 최저임금제 실시로 근로자들의 전체소득은 높아지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소득불평등을 악화시킨다. 최저임금제 실시로 실업이 증가되고 있는 현상이 지금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자영업자들과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최저임금제를 폐지하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둘째,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이 소득(및 고용) 증가를 초래하는가? 공공 부문의 일자리의 창출은 조세를 통해 이루어진다. 조세의 증가로 민간 부문의 소비와 투자가 감소된다. 그로 인해 민간 부문에서 고용이 감소한다. 따라서 공공 부문 일자리 창출이 고용과 소득의 증가를 초래할 수 없다. 심지어 수축된 민간의 일자리가 증가된 공공 부문 일자리보다 가치가 크다. 왜냐하면 조세로 축소된 민간 부문의 일자리는 조세가 없다면 시장에서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재화를 생산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공 부문 일자리 창출은 오히려 국민소득을 감소시킨다. 중앙은행으로부터 정부자금의 조달, 즉 통화량 증가에 의한 공공 부문 일자리 창출도 궁극적으로 불황을 초래하여 소득 및 고용을 증가시킬 수 없다.셋째,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을 지원하고 우대하는 것이 소득(및 고용) 증가를 초래하는가? 아니다. 이것도 위와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우선 기업에 대한 지원, 즉 보조금 역시 조세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에 민간 부문의 고용과 소득이 감소한다. 또한 그런 지원과 우대는 인위적으로 경쟁력을 높여주는 특혜이므로 다른 기업들의 판매 감축과 도산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재화를 생산하는 기업들의 판매 감축과 도산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국민소득은 오히려 감소한다.넷째, 중소기업의 투자지원 정책이 소득(및 고용) 증가를 초래하는가? 그렇지 않다. 이것도 마찬가지다. 중소기업에 대한 투자지원 보조금은 조세로 충당되고, 또한 경쟁력을 높여주는 특혜이기 때문이다.이와 같이 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통하여 소득 향상 및 고용 증가를 달성할 수 없다. 일자리의 창출, 즉 실업의 해결책은 오히려 정부와 노조가 노동시장에 간섭하지 않고 임금결정을 시장에 맡기는 것이다.그렇다면 성장과 소득증대를 위한 성공적인 방법은 무엇인가? 성장의 핵심적인 요인은 절약, 즉 자본축적을 통한 기계, 도구 등 자본재의 증가이다. 자본재의 증가가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기 때문이다. 맨손으로 작업하는 것과 도구를 이용하여 작업하는 것을 비교해 보라. 따라서 소비의 증가로 인한 저축의 감소는 오히려 경제의 후퇴를 초래한다. 자본 소비를 통해 일시적으로 성장이 가능하지만 결국 자본의 감소로 후퇴하게 된다. 물론 소득의 증가로 소비와 저축이 동시에 증가한다면 성장할 것이다. 이 경우에도 성장의 요인은 소비가 아니라 저축이다. 이런 자본 축적은 정부의 간섭이 없는 자유시장에서 달성될 수 있다. 자유시장(진정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시장)에서는 누구든지 절약을 통해 자본 축적을 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진정한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는 사유 재산권이 보호됨으로써 자본 축적을 통한 이익을 자신들이 향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만약 정부가 소득을 증가시킬 수 있다면 저축 증가를 통해 성장이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측면에서 정부의 일자리 창출을 통한 소득주도 성장 정책은 옳은 정책이라고 볼 수 있을까?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전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소득은 생산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축의 증가 이외의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소득의 향상과 경제성장을 이룰 수 없다. 따라서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이상의 분석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것을 알 수 있다. 첫째, 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통하여 소득 향상 및 고용 증가를 달성할 수 없다. 둘째, 소득주도성장 패러다임은 성공할 수 없다. 셋째, 저축 증가를 통한 투자 증가 이외의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소득 증가와 경제성장을 이룰 수 없다.이런 결과는 다음을 시사한다. “성장, 일자리 창출, 소득 향상은 정부의 개입과 간섭이 허용되지 않는 자유시장, 즉 작은 정부만이 그것을 달성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자유시장이 형성되고 유지되도록 개인의 신체와 재산을 보호하는 임무에만 충실해야 한다.이승모(경제평론가)

2018-12-24 10:29 이승모(경제평론가)

[시장경제칼럼] 문재인 대통령, 경제를 알까? 모를까?

박동운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나는 최근 ‘나라와 세계를 바꿔 존경받는 7인의 정치가’라는 책 원고를 끝냈다. 내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훌륭한 정치가란 타고나는 것일까? 아니면 주어진 여건에서 스스로 노력하여 만들어가는 것일까?”라는 자문(自問)에 대한 대답을 얻기 위해서다. 또 이 책을 쓰게 된 목적은 ‘거꾸로 가는 정책만 고집하여’ 잘 나가는 한국경제를 침몰시켜 가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과 그의 추종자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다. 경종이란 바로 훌륭한 정치가들의 통치다.7인의 정치가들을 집권 순으로 쓰면, 리콴유, 박정희, 덩샤오핑, 마거릿 대처, 로날드 레이건, 넬슨 만델라, 그리고 앙겔라 메르켈. 나의 자문에 대한 대답이다. “훌륭한 정치가는 스스로 노력하여 만들어가는 것이다.”일찍이 중국을 ‘잠자는 사자’로 표현한 나폴레옹은 중국이 깨어나면 세계를 놀라게 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아놀드 토인비도 21세기는 중국의 세기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나폴레옹과 토인비의 예언대로, ‘중국 굴기’는 지금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중국 굴기’는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에서 비롯되었다. 덩샤오핑 이야기다.덩샤오핑은 가방끈이 매우 짧다. 사실상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다. 그는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1920년 16살에 근공검학단(勤工儉學團)의 일원으로 프랑스로 유학을 갔지만 생활고에 시달려 공부는 하지 못하고 1926년 1월 7일에 공산 혁명의 본산(本山)인 소련으로 갔다. 소련에서 1년 남짓 머물다가 중국으로 돌아와 혁명군에 가담했다. 그는 1933년에 마오쩌뚱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1차 실각을 당했고, 1969년에 마오쩌뚱의 반대편에 섰다는 이유로 2차 실각을 당했다.2차 실각 때는 3년 동안 하방(下方)생활을 하면서 홍위병으로부터 심한 핍박을 받았다. 3차 실각은 4인방에 의해 이뤄졌는데 마오쩌뚱의 죽음으로 곧 풀려났다. 그는 지지 세력의 쿠데타로 1978년 12월에 권력을 장악했다. 이 과정에서 덩샤오핑은 정치적으로 자신을 철저하게 만들어 갔다.덩샤오핑은 경제적으로도 자신을 철저하게 만들어 갔다. 그는 프랑스로 유학 갔다가 공부는 하지 못하고 6년 남짓 노동하며 프랑스 자본주의를 배웠다. 마오쩌뚱은 1958∼1960년간 대약진운동(大躍進運動)을 추진했는데, 실패하여 3,000만∼4,000만여 명이 굶어죽었다. 이를 비판한 덩샤오핑은 주자파(走資派)로 몰려 실각 당했다.그는 1978년 4인방과 피 말리는 권력투쟁을 벌이고 있는 중에도 중국을 하루 빨리 변화시키고자 싱가포르를 방문했다. 국가 주도의 빠른 자본주의적 경제개발을 위한 프로그램을 리콴유에게서 배우기 위해서였다. 리콴유는 덩샤오핑에게 경제개발 전략을 훈수했다. 리콴유는 당시 서구의 다국적기업들이 싱가포르에 진출하여 창조해놓은 부를 덩샤오핑에게 보여줬다. 싱가포르의 발전상을 둘러본 덩샤오핑은 리콴유가 이룩한 성과를 극찬했다.이를 리콴유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썼다. “중국은 우리가 과거에 그들을 도와주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덩샤오핑이 1970년대에 싱가포르를 방문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서구의 다국적기업들이 진출하여 창조해놓은 부(富)를 두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더라면, 덩샤오핑은 아마도 빗장을 열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후 그는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던 경제특구를 열었고, WTO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인 개방의 시대로 나아갔습니다.”덩샤오핑은 싱가포르에서 무엇을 보고 배웠을까? 덩샤오핑은 크기에서 중국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작은 도시국가 싱가포르가 이룬 눈부신 경제발전, 그 경제발전의 원동력은 ‘자유 시장경제’, 그리고 ‘서구의 다국적 기업을 통한 해외자본 유치’, 곧 경제개방이라는 것을 배웠다.덩샤오핑은 1978년 12월 18일에 중국공산당 11기 3중전회에서 권력투쟁에 종지부를 찍고 권력을 잡았다. 이어 덩샤오핑은 1978년에 농업부문에서 시장경제를 실험하면서 본격적으로 개방정책을 도입했다. 그는 미국과 일본의 자본과 기술을 받아들이기 위해 수교부터 맺었다. 1978년에는 한 때 전쟁을 벌인 일본과 중일우호조약을 맺었고, 1979년 1월에는 미국으로 날아가 미국과 정식으로 국교를 수립하여 미국으로부터 관세최혜국(MFN, Most Favored Nation) 지위를 얻어냈다.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사상은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으로 표현된다. 이 말은 본래 덩샤오핑의 고향인 쓰촨성의 속담에서 유래한 말인데, ‘흑묘백묘 주노서 취시호묘(黑猫白猫 住老鼠 就是好猫)’의 줄임말이다. ‘흑묘백묘론’은 마오쩌뚱이 추진한 대약진운동이 실패로 돌아가 3,000만∼4,000만여 명이 굶어죽자 덩샤오핑이 그 후유증을 치유하기 위해 제시한 말이다. 이는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라는 뜻이다. 이 말은 덩샤오핑이 미국에서 돌아오자마자 유명하게 되었다. 지금은 이 말이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중국 인민을 잘 살게만 하면 된다는 뜻으로 알려져 있다. ‘흑묘백묘론’은 덩샤오핑의 통치철학이다.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사상은 남순강화(南巡講話)에서 꽃을 피웠다. ‘남순강화’란 88세의 덩샤오핑이 1992년 2월 춘절을 전후해서 광둥성, 상하이 등 남부지방을 순회하면서 한 연설이다. 다음은 덩샤오핑 연설의 일부. “개혁개방만이 중국의 유일한 살 길이다. 개혁을 하지 않으면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개혁에 반대하는 사람은 누구든 물러나야 할 것이다.” “광둥성은 앞으로 20년 내에(주: 1992년에 한 연설로 ‘2012년 이전’을 뜻함) 타이완, 한국, 홍콩, 싱가포르 등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을 따라 잡아야 한다. 그들 사회의 썩은 분위기는 받아들이지 말고#8943;.” “자본주의가 하고 있는 많은 것들은 사회주의도 가져다 쓸 수 있는 것들이다. 가난이 사회주의는 아니다. 시장경제는 자본주의의 전유물이 아니다.”이제 문재인 대통령 이야기. 문재인 대통령이 대학시절 운동권에 몸담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문 대통령의 운동권 활동과 관련하여 한 교수가 내게 들려준 당시 에피소드. 그 교수는 어느 날 경찰서로부터 문재인 학생을 데려가라는 연락을 받고 그가 풀려나게 도왔다. 그 교수는 얼마 후 경찰서로부터 똑같은 전화를 받고 또 그를 풀려나게 도왔다. 물론 나도 그런 경험을 했다. 그런 상황에서 운동권 학생들은 공부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교수들은 염려했다. 그래서 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내가 선정한 ‘나라와 세계를 바꿔 존경받는 7인의 정치가들’처럼 ‘통치자로서 노력해서 자신을 가꿨는가?’ 생각해본다. 그의 경제정책을 놓고. 몇 가지 예를 든다.하나, 문재인 대선 후보는 법인세율을 올리겠다고 벼르더니만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22%에서 25%로 올려버렸다. 2017년 당시 170여 개국 중 사실상 한국만 올렸다.둘, 문 대통령은 공무원·공공부문 인력 81만 명 증원에 4조 원 든다고 했는데, 내가 처음으로 4조 원 아닌 40조 원쯤 든다고 지적했다. 국민을 속이고도 사죄가 없다.셋, 문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 직후 공항공사를 찾아가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다. 앞길이 창창한 한국의 젊은이들은 지금 ‘고용절벽’ 앞에 서 있다.넷. 문 대통령이 자랑스럽게 설치한 ‘청와대 일자리 상황판’은 진즉 작동을 멈췄다.다섯,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 엄청 올려 ‘일자리 소멸, 자영업자 폐업, 취약계층 분배 악화, 물가 상승 등’을 유발하고도 ‘긍정적 효과 90%’, ‘적게 올려 미안하다’고 말했다.여섯, 문 대통령은 ‘실험실 속의 소득주도 성장’에 함몰되었다가 ‘포용경제’도 주창한다.일곱, 문 대통령은 야당 시절 광화문 길거리에 앉아 민노총 파업에 박수를 친 빚 때문에, 민노총이 먹이사슬 최상층에 앉아 한국을 노조천국으로 만들어 가도 침묵뿐이다.이처럼 ‘거꾸로 가는 경제정책’ 때문에 한국경제가 이미 침체의 늪으로 떨어져 국책 연구기관 KDI조차 내년 성장률을 2.5%로 예상하고, 경제 고통지수도 7년 만에 최고라고 경고하지 않았는가! 심지어 좌파 경제학자 장하준 교수도 ‘한국경제는 비상사태’라고 경고하지 않았는가!주변 사람들이 이따금 내게 이런 질문을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무슨 발표 때나 외국 정상과 회담할 때 왜 손에 A4 용지를 들고 있나요?” 얼마 전 서울-속초 간 KTX 사고 관련 회의 때도 문 대통령의 손에는 어김없이 A4 용지가 들려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 과연 경제를 알까? 모를까? 질문의 대답은 김순덕 동아일보 논설위원이 최근에 쓴 칼럼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대통령한테 대리운전을 시킨다는 말까지 듣는 ‘전대협 청와대’가 걱정스러운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나도 걱정이다.박동운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2018-12-17 08:00 박동운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시장경제 칼럼] 명나라의 ‘탈조선’과 한국의 ‘탈원전’

안재욱 경희대학교 교수StartFragment지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탈원전’ 정책은 명나라의 ‘탈조선(造船)’ 정책을 상기시킨다. 명나라는 서양보다 훨씬 앞서 세계적으로 가장 뛰어난 조선술과 항해술을 갖춘 나라였다. 613년 전 1405년 영락제의 명을 받아 해외 원정을 떠난 정화(鄭和)의 함대는 명나라의 조선술이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보여준다.  정화의 함대는 240여척에 달했다. 거기에는 길이 137m, 넓이 56m의 대형 보선(寶船) 62척이 포함되어 있었고, 가장 큰 배는 3,000톤이 넘었다. 승선 인원도 2만8000여명이나 됐다. 정화는 1433년까지 7차례에 걸쳐 동남아와 인도, 아라비아 반도를 거쳐 아프리카 동부 해안까지 진출했다. 정화의 원정은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탐험보다 87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콜럼버스가 사용한 선박은 230톤짜리 3척이었다. 제일 큰 산타마리아호도 길이 27m, 넓이 9m에 불과했다. 인원은 88명밖에 되지 않았다. 정화 선단의 규모는 콜럼버스보다도 30배나 컸다.  영락제 사후 정쟁이 발생하고 유림세력이 권력을 잡았다. 그들은 유학의 이념에 집착했고, 무역과 외세에 대해 매우 적대적이었다. 이들의 영향으로 정부는 해상무역을 통제했다. 조선소를 폐쇄하고 돛대가 많은 대형 선박의 건조를 금지했으며, 정화의 원정 기록도 파괴했다. 1525년에는 모든 종류의 원양 항해용 선박의 건조도 금지했다. 이러한 정책은 국가의 발전을 심각하게 저해했음은 물론이다. 폴 케네디는 그의 저서 ‘강대국의 흥망’에서 이러한 조치들을 중국의 쇠락을 가져온 가장 큰 요인으로 들고 있다.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주한규 교수에 따르면 한국의 원전 기술력과 경쟁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이러한 우수한 기술력과 경쟁력으로 인해 우리의 원자력이 전자와 자동차 산업에 이어 핵심 산업으로 부상했다. 세계원자력협회(WNA)는 2010년 한국을 미국, 캐나다, 프랑스, 러시아, 일본에 이어 여섯 번째 원전수출국으로 분류했다. 원전이 가장 우수한 품질의 전기를 안정적이고 경제적이며 친환경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발전 시설이라는 인식이 세계적으로 확대되어 가면서 한국의 원전 수출국으로서의 입지가 강화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이 집권하면서 탈원전 정책을 들고 나왔다. 앞으로 20년 동안 더 운전할 수 있는 고리 원전1호기를 조기 폐쇄하고, ‘탈원전 로드맵’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2017년 24기에서 2022년 28기, 2031년 18기, 2038년 14기로 감축된다. 그리고 2023년 신고리 6호기를 끝으로 더 이상의 원전 건설은 없게 된다. 환경주의 이념에 집착한 산물이었다.  이러한 탈원전 정책은 경쟁력 있고 유망한 원전 산업을 고사시킬 뿐만 아니라 국민생활과 국가경제에 필수적인 에너지 공급에 차질을 빚게 할 것이다. 정부는 원전의 축소로 감소되는 발전량을 태양광, 풍력 등 청정에너지를 확대하여 공급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태양광과 풍력의 발전은 원전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에너지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의견이다. 태양광과 풍력이 만들어내는 전기의 품질은 원전에 비해 훨씬 나쁘다는 것이다. 태양광 발전은 햇빛이 비쳐야 가능하고 풍력 발전은 바람이 불어야 가능한데, 산악지대가 많고 바람이 그리 많이 불지 않는 한국은 지리적으로 태양광과 풍력 발전에 적합하지 않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태양광과 풍력 발전은 엄청나게 많은 건축 용지가 필요해 오히려 환경 파괴가 매우 심하다는 것이다.  에너지는 경제활동과 산업발전의 필수적인 요소다. 지속적인 경제발전과 국민생활의 질적 향상에 있어서 에너지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러므로 에너지 공급은 원활하게 이뤄져야만 한다. 탈원전 정책은 이에 역행하는 조치다. 명나라의 탈조선 정책이 중국을 쇠락시킨 것처럼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한국을 쇠락시킬 것이고 국민들을 불편하게 만들 것이다.  세계 최초로 원전을 운전했던 영국이 탈원전 정책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탈원전을 추진했던 대만은 국민투표를 통해 탈원전 정책의 폐기를 선택했다. 대만뿐만이 아니다. 일본도 탈원전에서 돌아서서 원전을 다시 가동했다.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는 것이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일이다.안재욱 경희대학교 교수

2018-12-10 08:15 안재욱 경희대학교 교수

[유영만의 교육시선(視線)] 가장 안전한 보험은 '체험'

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이제까지 교육을 통해서 길러내려는 인재상은 모범생이었다. 모범생은 말을 잘 듣는다. 하라는 대로 잘 따라서 한다. 주어진 일을 정해진 대로 처리하는데 능숙한 사람이 바로 모범생이다. 모범생은 규칙을 잘 지키고 매뉴얼대로 실행한다. 하지만 모범생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도전의식이 없다. 주어진 상황에서 모범답안을 찾는데 열중한다. 틀 밖에서 새로운 각도로 세상을 바라보거나 뜻밖의 질문을 하지 못한다. 학부모들은 자식이 커서 모범생이 되기를 원한다. 남이 걸어간 길, 안전한 길을 따라 별 탈 없이 잘 자라기만을 바랄 뿐이다. 모범생은 부모나 선생님의 칭찬을 먹고 자란다. 정해진 범위 내에서 뛰어난 성적을 올리면 칭찬을 받고, 그렇지 않고 기대하지 않은 일, 엉뚱한 일, 예상을 벗어나는 일을 하면 야단을 맞는다. 그래서 정상 궤도 안에서 별 다른 시련과 역경을 경험하지 않고 무럭무럭 자란다. 모범생은 정상적인 생각으로 정상적인 행동을 하는 정상적인 사람이다. 이들은 문제를 일으키기보다 문제에 대한 정답을 찾는다.이에 반해서 모험생은 주어진 길, 남이 걸어간 길을 뒤쫓아 따라가는 과정에 별 다른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8번째 습관은 성공한 사람의 뒤를 따라가지 않는다는 생각과 행동이다. 모험생은 자신의 가능성을 발굴하기 위해 이제까지 해보지 않은 일, 가보지 않은 곳, 읽어보지 않은 책, 보지 않았던 영화 등을 보면서 다양한 경험을 축적한다. 색다른 도전을 즐기면서 자신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스스로 찾아보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자신의 가능성이 어디까지인지는 가능성의 한계지점까지 가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모험생은 한계는 한 게 없는 사람들의 핑계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한계는 책상에서 머리로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한계는 한계에 도전하는 가운데 몸이 안다고 생각한다. 모험생은 누가 뭐라고 해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재미있게 즐긴다. 그것이 비록 돈이 안 되고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모험생은 색다른 질문을 먹고 산다. 이전에 성취했던 결과도 지금 시점에서 여전히 유효한 것인지를 끊임없이 묻고 묻는다. 모험생은 뜻밖의 결과를 찾기 위해 틀 밖에서 질문하고 관찰하고 탐색하는 일에 재미와 즐거움을 느낀다.모범생은 위험한 경험을 통해 배우기보다 책상에서 논리적으로 배운다. 할 수 있는 일과 그렇지 못한 일을 머리로 계산해서 판단하는 모범생에 비해 모험생은 생각한 바를 몸을 움직여 실험하고 모색하는 가운데 가능성 여부를 판단한다. 모험생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보험은 지금 경계를 넘어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모험과 이전과 다른 색다른 실험, 그리고 위험할 수밖에 없는 불확실한 세계로 도전해본 체험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체험이 축적될수록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하고 싶은 욕망과 의지, 도전에 필요한 체험적 노하우를 축적한다. 그리고 다음에는 이전과 다른 도전체험을 통해 자기만의 스토리를 만들어나간다. “모험이 부족한 사람은 좋은 어른이 될 수 없다.” 일본철도(JR) 광고 카피 중에 나오는 말이다. 어른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틀에 박힌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전체험을 통해 색다른 가능성의 세계로 진입한다는 의미다. 어른은 그만큼 겪어보지 못한 시련과 역경이 다가와도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체험적 지혜를 보유한 사람이다. 책상에서 배울 수 없는 체험적 지혜가 바로 모범생과 구분되는 모험생의 핵심 경쟁력이다.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2018-12-03 15:17 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시장경제칼럼] 공정거래법은 ‘계약의 자유’를 보호하는 법이 되어야 한다

전용덕 대구대 명예교수국무회의는 지난 11월 27일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여기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안보다 더 간섭적인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것은 공정거래법이 국회 논의 과정에서 정부안보다 더 통제적인 요소가 추가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공정위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 중대(경성) 담합에는 공정위의 전속고발제를 폐지하고 검찰이 독자적으로 수사 가능하도록 했다. 이것은 시민단체나 경쟁업체의 악의적인 고발이 가능하도록 하는 길을 열어둔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더 큰 문제는 공정위나 검찰이 담합을 규제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하는 점이다. 담합으로 지칭되는 행위는 ‘공동행위’이다. 결국 담합의 문제는 공동행위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예를 들어, 2명 이상의 사람이 모여 기업을 설립하고 나중에 그 기업의 주식을 공개한다고 가정하자. 이 때 일자리가 창출되고 재화가 생산되는데, 여러 사람들이 각종 공동행위를 하게 된다. 이 경우에 각종 공동행위는 명시적으로 또는 묵시적으로 ‘협력’하는 행위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것은 ‘사전적(ex ante)’ 공동행위이다.이제 유사한 업종에서 복수의 기업이 설립되었다고 가정하자. 그러나 그 후 경영 환경이 변하면서 복수의 기업이 공동행위(공정거래법에서 담합으로 지칭되는 행위)를 했다고 가정하자. 이것은 복수의 기업이 ‘사후적(ex post)’으로 협력 행위를 한 것이다. 그러면 복수의 기업이 사후에 공동행위를 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예를 들어, 수요의 급격한 감소 또는 가격의 인상에 따른 수요의 큰 변화가 예상될 때 사후 협력이 필요해진다. 그러면 사후 협력은 경제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사후 협력은 소비자의 효용을 만족시키는 방법이기 때문에 협력이 없을 때와 비교하여 소비자의 효용은 증대한다. 왜냐하면 사후 협력으로 가격을 인상했다면(이것이 공정거래법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행위이다) 가격의 인상으로 생산이나 판매가 줄어들지만 생산이나 판매에 사용되지 않는 자원이 더 효율적인 곳을 찾아 이동하기 때문에 경제 전체로는 자원배분이 더 좋아지게 되기 때문이다. 협력이 없을 때와 비교하여 그렇다는 것이다.공정거래법이 사전적인 공동행위는 문제 삼지 않지만 사후적인 공동행위는 담합으로 처벌하는 것은 ‘불공정한’ 것이다. 왜냐하면 두 행위 모두 협력 행위(그 점에서 두 행위는 ‘생산구조’ 중의 하나이다)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공정거래법이 처벌하고자 하는 행위인 담합은 사실은 협력 행위로서 소비자의 효용을 증대시키는 행위이고 담합을 처벌하는 공정거래법이 경제의 효율을 떨어뜨리는 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공동행위라도 기업이 정부의 허가를 받고 재화를 생산하거나 판매하면 그것은 독점이고 그 결과 독점에 따르는 부작용이 존재하지 않을 수 없다.둘째, 개정안은 일감 몰아주기(사익 편취) 규제 대상을 현재 ‘총수 일가 지분 상장사 30%, 비상장사 20%’에서 ‘상장·비상장사 모두 20%’로 통일하기로 했다. 여기에 총수 일가 지분 20% 이상 기업이 지분 50% 이상을 보유한 자회사도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포함하기로 했다. 개정안에 따라 규제를 하면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 기업이 203여 개에서 440여 개로 증가할 것으로 공정위는 예상했다. 이것은 기업이 그 만큼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경제행위가 억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더 큰 문제는 일감 몰아주기 자체를 규제하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점이다. 기업이 내부 거래를 하는 경우에 조직 비용, 경제계산의 문제 등이 발생한다. 그런 것들, 특히 후자 때문에 기업이 무한정으로 커지지 않는다. 기업이 시장을 통해 자원을 배분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각종 거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일감 몰아주기는 명백히 시장을 통한 거래는 아니다. 그러나 기업집단을 하나의 기업처럼 다룬다면 일감 몰아주기는 기업 내부 거래로 간주해야 한다.기업집단을 하나의 기업으로 간주하지 않고 기업들의 단순한 연합체로 규정한다면 일감 몰아주기는 시장 거래와 기업 내부 거래의 중간 단계에 있는 것이다. 결국 일감 몰아주기 규제의 타당성을 검토하기 위해서는 한국에서 기업집단을 어떻게 간주하는가 하는 지식이 필요하다.한국에서 기업집단은 총수 일가가 소유하고 ‘실질적으로(de facto)’ 지배하고 있는 조직체로 간주되어 왔다. 이것은 일감 몰아주기를 규제하는 것은 기실은 기업 내부 거래를 규제하는 것과 같은 것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히 일감 몰아주기를 규제하는 공정거래법 조항은 기업집단의 효율을 떨어뜨리는 규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셋째, 개정안은 자산 10조 원 이상의 신규 대기업 집단이 순환출자를 하는 경우에 의결권을 제한하도록 했다. 이것은 공정위가 신규 대기업 집단만은 순환출자를 통해 기업을 확장하는 길을 강력히 억제하겠다는 것이다.넷째, 개정안은 공익법인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총수 일가 지분을 합산하여 15%까지로 제한한다는 것이다. 다만 적응 기간을 위하여 개정안은 단계적 제한을 제시했다. 그러나 공익법인 100% 출자 회사의 의결권은 허용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경영권 방어를 더욱 어렵게 하는 개정안이다. 최근 행동주의 펀드의 경영권 공격이 빈번해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공익법인의 의결권 제한은 기업들의 경영권을 위협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끝으로, 순환출자 의결권 제한, 공익법인 의결권 제한 등은, 예외를 제외하면, 대기업 집단만을 규제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법 앞의 평등’이라는 원리를 위반하고 있다. 담합 규제, 일감 몰아주기 규제 등만이 공정거래법에 내포된 모순이 아니다. 공정거래법은 계약의 자유를 부정하는 조항들로 가득하다. 공정거래법은 계약의 자유를 보호하는 법이 되어야 한다.전용덕 대구대 명예교수

2018-12-03 08:00 전용덕 대구대 명예교수

[시장경제칼럼] 자유주의, 어떻게 지킬 것인가?

김우택 한림대 명예교수지금 나라 걱정하는 사람들의 우려는 두 가지 중 하나다. 나이 드신 분들의 큰 걱정은 국가안보이고, 청장년층의 걱정은 줄어드는 일자리와 거꾸로 가는 경제인 듯 보인다. 바깥 세계의 눈에는 북핵 문제가 바뀐 것이 하나도 없고, UN 대북제재도 그대로인데, 청와대 정부 여당 사람들은 우르르 평양 드나들더니 우리의 무장해제부터 하는 대북정책이 불안한 것이다. “이러다가 우리들도 김씨 세습왕조에서 숨죽이고 살게 되는 거는 아닌지요?” 카톡방에서 서로들 묻고 있는 것이다. 또 언론의 경제 뉴스는 매일 고용참사, 줄어드는 일자리, 자영업자들의 한숨소리가 느껴지는 폐업소식, 유령도시로 변해가는 과거의 산업단지들, 소득분배 악화, 국내외 연구기관들의 내년도 한국경제 전망치 하향조정 등 암울하기 짝이 없다. 현 정권이 완전 장악해 청와대 눈치 보느라 몸조심하는 신문 방송이 전하는 뉴스만 보아도 그 심각성이 짐작되는데도 어찌된 일인지 청와대는 소득주도 성장정책의 효과가 곧 나타날 것이라느니, 자동차와 조선업이 회복되고 있으니 “물 들어올 때, 노 젓자.”는 둥, 도무지 국민들이 납득할 수 없는 현실과 동떨어진 소리들만 하고 있으니 국민들은 더 답답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실 문제의 본질은 더 심각하다.안보와 경제의 환경이 일반적으로 같이 움직이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국민들이 당면하는 이 두 가지 걱정의 뿌리는 하나이기에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그 뿌리는 현 집권세력의 反자유주의 이념이다. 이미 학생들이 사용하는 교과서에서는 자유민주주의의 자유를 빼기로 했고, 가능하다면 헌법에서도 자유민주주의의 자유를 빼려고 하는 세력이 국민들이 이해 못할 대북정책들을 남발하기에 안보불안이 생기는 것이다. 이 반자유주의 이념은 자유 시장경제에서도 이미 자유를 빼버렸다. 규제일변도의 정책으로 기업과 소비자들의 경제활동의 자유를 박탈하고 있으며, 세금폭탄과 국민연금을 통해 기업의 경영권을 장악하려는 시도 등 사유 재산권의 침해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회복을 기대할 수 있는 경기순환 주기 상의 불황과는 본질적으로 다르고, 또 무능에 기인한 정책실패와도 다른 유형의 문제다. 참고할 만한 사례로는 지구 반대편 베네수엘라의 지난 20년간의 행적이 있다.◇ 태생적 한계가 만든 자유주의의 특성자유주의의 태생적 한계는 개인의 자유의 핵심은 자율과 책임인데, 개인은 자신의 자유를 스스로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이다. 나의 자유권은 남들이 존중해 주지 않으면 나 혼자 지켜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는 흔히 발생하는 집단 따돌림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자유주의 사회의 유지는 여러 제도적 장치의 뒷받침이 요구된다. 또 제약 없는 개인의 자유권은 필연적으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게 되는 이해상충 문제가 있기 때문에 개인 자유권의 한계의 명확한 기준도 필요하다. 160년 전 J.S.밀이『자유론』에서 제시한 ‘남을 해치지 않는 한에서라는 No Harm Principle‘이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기준이다.개인들 간의 자유권 행사와 관련된 분쟁을 조정하고, 시비를 가리고, 결론을 강제하는 일은 그런 권한을 위임받은 공권력의 영역이다. 그래서 자유주의 사회는 법치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그런데 개인의 자유에 대한 최대 위협은 국가권력이기 때문에, 개인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권리장전을 포함하는 것은 물론이고, 공권력의 자의적 행사를 명시적으로 금하는 헌법이 필수이다.정부 기관 간에 견제와 균형이 가능토록 권력을 분산시키는 분권도 중요하다. 즉 자유주의는 입헌주의를 필요로 한다는 말이다. 자유주의 사회가 온전히 유지되기 위해서는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헌법 조항들은 권력의 의해 사문화될 수도 있다. 1215년 조인된 대헌장 (Magna Carta)이 17세기 초 튜더왕조가 끝날 때까지 400년 동안 사문화되었던 역사가 주는 교훈은 이를 막을 장치의 필요성이다.그 장치로 민주주의가 필요하고 그래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로 함께 가는 것이다. 그런데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관계는 일찍이 토크빌이 간파한 바와 같이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대칭 관계가 아니다. 자유주의는 민주주의를 필요로 하지만 민주주의는 자유주의를 필요로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다수에 의한 폭정’이 자유주의가 아닌 민주주의의 예이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아닌 자유주의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해야 할 숙제이제 나라를 걱정하는 모든 이들은 걱정만 할 것이 아니라 고사 위기에 처한 한국의 자유주의를 구하기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할 것이다. 기댈 수 있는 수단으로는 아직 완전히 사문화되지 않은 헌법과 작동하는 민주주의 제도인 선거가 있다. 개인의 기본권 중, 언론의 자유에서 대중 매체에 재갈이 물리고, 개인들도 공적 발언에서 자기검열을 하게 되는 정도로 위축되었지만 아직 개인들의 언론 자유가 완전히 말살된 것은 아니고, 집회 결사의 자유 등 다른 기본권이 크게 훼손되지는 않았다.권력 간의 견제와 균형을 위한 분권의 한 축인 사법권의 독립이 허물어지고 있는 상황이나 입법부에서의 야당의 견제 역할은 다음 총선까지는 유효할 듯하다. 이처럼 불리한 여건에서 치러질 자유주의를 지키기 위한 첫 전투인 2020년 4월의 총선까지 남은 시간은 1년4개월이다. 목표는 하한선을 집권 세력의 개헌시도 저지에 필요한 의석 확보에, 적극적으로는 야권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는데 두고 각오를 다져야 한다.정치도 시민단체 활동도 해 본 경험이 없는 일반인들이 할 수 있는 행동은 별로 없어 보인다. 다만 한 가지 고무적인 현상은, 역설적이지만, 현 정권의 경제정책의 부정적 효과가 빠른 속도로 나타나고 있어 여론을 반전시킬 수 있는 소재가 된다는 사실이다. 작년 대선에서는 반자유주의 세력의 분노 마케팅에 휩쓸려 잘못된 선택을 했던 주변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이다. 반자유주의자들의 말이 아니라 정책과 행동으로 보여준 그들의 실체를 보고 다음 총선에 임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은 할 수 있지 않을까.올바른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 같은 일말이다. 설득하려 하지 말고 스스로 깨닫도록. 그것도 지난 실수의 책임을 추궁하는 것으로 비쳐 그들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렇게 자유주의 지지 세력의 외연을 젊은 세대로 확장하는 일이 우선이다. 그러고 나서 총선이 가까워 오면, 야권이 분열로 자멸하는 실수를 막는 일에 나서야 한다. 야권 후보 난립으로 반자유주의 후보에게 승리를 거저 바치는, 교육감 선거에서 누누이 보아온 고질병이 도지지 않도록.김우택 한림대 명예교수

2018-11-26 14:26 김우택 한림대 명예교수

[시장경제칼럼] 교육시장에 필요한 건 통제가 아닌 경쟁이다

송상우 보현한의원 원장교육 분야는 이미 정부에 의해 대부분이 통제되고 있다. 부도 위기가 아니라면 정부가 기업에 직접적으로 세금을 투입하거나 경영에 간섭하는 경우는 드물다. 반면에 정부가 교육기관에 세금을 투입하는 것과 그것을 빌미로 구체적인 교육과정에 간섭하는 것은 거의 무제한적으로 용인되고 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만 7세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만 18세까지는 철저하게 정부의 통제 하에 교육이 이루어진다. 교육의 전 과정이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설계되고, 전국의 모든 학생이 동일한 교재로 동일한 내용을 학습한다. 이 과정을 감독하는 사람들도 모두 공무원이다. 이렇게 보면 한국의 학교 교육만큼 철저하게 전체주의적인 것도 없을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이렇게 획일적인 교육 체계의 목표 중 하나가 학생 개개인의 타고난 개성을 잘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0~6세까지는 어느 정도 교육의 자율성과 다양성이 허용되는 시기다. 어린이집에 보내기 전까지는 각 가정의 부모가 전적으로 양육한다. 정부의 간섭으로부터 가장 자유로운 시기다. 이후 어린이집과 유치원으로 대표되는 기관들이 제공하는 보육 서비스는 아직은 민간에서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의무 교육 대상이 아니기에 보육 기관의 장들은 정부가 강요하는 일괄적인 교육 과정을 따르지 않고, 비교적 다양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최근 사립 유치원 지원금을 둘러싼 논란은, 그나마 정부 통제가 덜하던 유아 교육에 남아있던 약간의 자유마저 질식시킬 것으로 보인다. 기다렸다는 듯이 유아 교육도 의무 교육에 포함시키라는 목소리가 좌파 언론과 교육 단체를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사립 유치원에 간섭해야 할 이유로 저질 식사와 교사 자질 등이 단골로 등장한다. 이것은 우리의 경험과는 어긋나는 것이다. 정부의 개입과 통제가 다양한 분야에서 생산되는 상품과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것은 수많은 역사적 사례를 통해 입증된 사실이다. 동일한 자본과 노동력이 투입된다고 가정할 경우, 민간이 정부보다 훨씬 더 저렴하고 질이 좋은 재화를 생산한다. 같은 교육 분야를 봐도 중등교육에서 학교 밖 교육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인 점, 그리고 대학교육에서 국립대의 추락과 사립대의 약진이 그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왜 보육 서비스만은 민간서비스가 질이 낮은 것처럼 보일까?여기에는 투입 비용에 대한 오해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치원의 원아 당 얼마의 비용이 투입되는지를 잘 모른다. 그래서 흔히 국공립과 사립에 소요되는 비용이 비슷할 것으로 예상한다. 심지어 사립 유치원에 더 많은 경비가 소요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경제학자 김정호에 따르면 일반적 통념과 달리 사립 유치원과 국공립 유치원의 1인 당 보육비는 각각 53만원과 114만원이다. 여기에는 추후 유지 보수나 재건축을 위한 예비비는 빠져있어서 실제적인 차이는 그 이상일 것이다. 즉 현재의 사립 유치원들은 공립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 비용으로 거의 동일한 보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이런 착시는 학부모가 유치원에 직접 납부하는 비용 때문에 강화된다. 자녀를 국공립 유치원에 보내는 학부모들은 고작 1~2만원의 보육비를 낸다. 나머지 112~113만원의 비용은 정부에서 세금으로 메꾸는 것이다. 반면 사립 유치원은 정부 지원금 29만원을 제외한 나머지 24만원을 학부모가 직접 납부한다. 비슷한 조건이라면 24만원을 내는 유치원보다 단돈 일만 원을 내는 유치원에 선호가 몰리는 것은 당연하다. 접근성이 좋은 몇몇 국공립 유치원 입학 경쟁률은 인기 많은 의과대학 입학 경쟁률에 버금간다.이런 가격적인 장점에도 불구하고 모든 학부모가 국공립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방학이 1~2주일 정도에 불과한 사립에 비해 국공립은 방학이 무려 1~2달 정도이며 이 기간 동안은 부모의 보육 부담이 커진다. 게다가 국공립 유치원은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고 통학버스가 운행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아 부모가 직접 등·하원을 시켜야 하는 불편도 있다. 보육 서비스가 더 간절한 맞벌이 부부에게 국공립은 오히려 최악의 선택지이다. 이런 부분들 때문에 학부모 만족도는 오히려 사립이 공립보다 높다는 연구도 있지만,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 이유에선지 인기가 많은 일부 대도시 국공립 유치원을 포함해도 전체로 보면 정원의 80%를 못 채우는 실정이다.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사립 유치원에 지급되는 지원금을 꼬투리 잡아 사립 유치원에 대한 간섭과 통제를 강화하고, 동시에 국공립 유치원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은 잘못된 접근이다. 우선 사립 유치원 지원금이라는 용어부터 잘못되었다. 학부모가 낸 보육비는 엄밀히 말해 원장 개인의 수입이다. 아이사랑카드를 통해 사립 유치원에 지급된 돈은 학부모에게 지원된 돈이지 사립 유치원에 지원된 돈이 아니다. 만약 이것이 문제가 된다면 사립 유치원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의료기관도 횡령한 것이 된다. 예를 들어 아이사랑카드와 유사한 것으로서 고운맘카드가 있다. 이것은 임신 때부터 출산 후 60일까지 산모가 의료기관을 이용할 경우 정부에서 지급한 이 카드로 의료비를 지불할 수 있다. 산부인과뿐만 아니라 내과나 한의원 등 모든 의료기관에서 이용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각 의료기관은 사업용 계좌로 진료비를 입금 받으며, 공단에서 입금된 보험급여와 마찬가지로 명백한 의사 개인의 수익으로 취급된다. 의료기관에서는 이 돈을 가지고 진료에 필요한 의료장비나 소모품을 구입하거나 직원 월급을 주기도 하고 원장의 개인적 용도로 사용하기도 한다. 만약 이것을 누군가가 문제 삼는다면 의사들은 펄쩍 뛸 것이다.불량한 급식을 제공해서 대중들의 공분을 산 일부 사립 유치원들의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아이에게 폭력을 가한 불량 교사도 퇴출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문제점들이 정부의 감시·감독을 강화한다고 해서 시정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감시·감독 비용으로 막대한 세금만 낭비할 것이며, 감독기관과 유치원 사이의 유착관계 문제가 새롭게 떠오를 것이다. 다른 문제들과 마찬가지로 사립 유치원 문제에서 설립자의 도덕성이나 윤리에 대한 문제 제기는 본질을 비껴간 것이다. 지대 추구 자체를 비난할 것이 아니라 지대 추구가 어렵도록 환경을 변화시켜야 한다.근본적으로 이런 문제점들은 유치원 간의 경쟁을 통해 자율적으로 교정되어야 한다. 유치원 설립 기준을 완화하여 다양한 종류의 유치원들이 시장에 공급되도록 함으로써 학부모 선택권을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질이 나쁜 서비스를 제공하던 유치원들은 자율적으로 잘못된 행태를 시정하지 않는다면 소비자로부터 외면 받고 결국에는 퇴출될 것이다. 경쟁하지 않는 국공립 유치원을 확대하는 것은 대안이 될 수 없다. 이것은 비효율적인 보육체제를 확대해서 소중한 세금만 낭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정부가 유치원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에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이것이 단순히 교육에 국한된 문제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번 정부의 근본적 기조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더더욱 위험하다. 바로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에 기반한 한국 사회를 평등주의와 사회주의로 끌고 가려는 명백한 증거이기 때문이다.손대기 쉬운 교육 분야에서 시작해 불씨는 의료와 복지 분야로 이동하고 있다. 요양원은 이미 타깃이 되었고, 다음 차례는 아마 병의원이 될 것이다. 이 정부에서 밀어붙이는 ‘비급여 의료 서비스의 급여화’도 병의원이 자율적으로 제공하는 다양한 의료 서비스를 모두 정부 통제 하에 두겠다는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순진한 이들은 이런 정책을 통해 자신이 당장 부담하는 본인 부담금이 줄어든다고 좋아한다. 그러나 가격이 통제된 상태에서 의사들은 결코 자신이 제공하는 의료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거나 새로운 의료 기술을 도입하려고 시도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시도에 따르는 노력과 위험 부담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통제된 수가 체계 안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오직 원가 절감에만 매달릴 것이다. 결과적으로 늘어난 세금과 건강 보험료라는 간접적인 경로를 통해 이용자는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면서 도리어 질 낮은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게 될 것이다.궁극적으로 이런 흐름은 특정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행동 규칙 전부를 정부에서 결정하는 데까지 나아갈 것이다. 이들이 몇 시간 동안 일해야 할지, 어떤 곳에서 어떤 도구를 가지고 일해야 할지, 심지어 얼마나 벌어야 할지까지도 정부에서 결정하게 될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의 전형적인 모습이다.일부 사립 유치원의 문제를 전체 사립 유치원의 문제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보육 서비스에 대한 국가 개입을 정당화하는 결과만을 불러올 뿐이다. 우리의 관심과 분노가 실질적인 개선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잘 따져보아야 한다. 문제는 경쟁의 부족이지 통제의 부족이 아니다. 다시 말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다양하고 질 좋은 사립 유치원이지, 결코 더 많은 국공립 유치원이 아니다.“이 복잡한 사회가 파괴되지 않게 하려면 시장의 비인격적이고 겉보기에 불합리한 힘들에 대해 순종해야 하며, 이에 대한 유일한 대안은 마찬가지로 통제할 수 없고, 그래서 자의적인 다른 사람들의 권력에 순종하는 것이라는 점이다.”라는 하이에크의 지적은 오늘날 여전히 의미심장하다. 무슨 문제가 생기면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된다는 주장을 거의 자동반사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많기 때문이다. 경쟁에 따르는 어려움을 회피하고 싶거나, 조급함으로 인해 경쟁을 통해 긍정적 효과들이 도출되는 과정의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이들은 정부가 부과하는 강압적이면서 권위주의적 제약들이 더 고통스럽다는 점을 자주 잊어버린다.언론은 사립 유치원의 저질 급식이나 교사의 부족한 자질을 곧잘 지적하지만, 사립 유치원의 운영비가 공립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사립 교사의 급여와 복지가 공립 교사에 비해 훨씬 열악하다는 점은 좀처럼 언급하지 않는다. 동일한 자본과 노동력이 투입되었을 때, 정부에서 생산하는 재화와 서비스가 민간보다 열등한 것은 자명하다. 보육 서비스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우리가 더 나은 보육 서비스를 원한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부 간섭이 아니다. 오직 더 치열한 경쟁만이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더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송상우 보현한의원 원장

2018-11-19 11:12 송상우 보현한의원 원장

[시장경제칼럼] 종교 자유가 폭정 종식과 문명사회의 시작인 이유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장지구상에서 가장 가혹하게 종교 탄압과 종교인에 대한 공개 처형이 자행되는 곳이 바로 북한이다. 대외 선전을 위해 만들어진 성당, 교회 등 몇 개의 종교 시설은 북한을 방문하는 외국 신자 및 국제기구를 대상으로 허위 신자를 동원한 구걸 행각을 할 때만 활용되고 있다. 미국의 웜비어는 사망을 앞두고 풀려났지만 김동철, 임현수 목사 등은 지금도 북한에 억류되어 있다.그런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바티칸을 방문하여 교황의 북한 방문을 요청하는 어처구니없는 넌센스를 펼쳤다. 연이어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염수정 추기경을 만나 교황 방문이 성사되도록 카톨릭이 나서 달라고 부탁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정치구호로 삼아 살아오던 세력들이 70년 계속된 상황의 본질은 거론하지 않고 마치 북한에 종교의 자유가 존재하는 것처럼 전 세계를 상대로 거짓 선전을 천연덕스럽게 대행하고 있다. 인권 탄압과 종교 학살을 저질러온 북한 전체주의를 옹호하는 데 바쳐진 문재인 정부의 본질을 말해주는 것이다.유엔(UN)을 비롯한 국제기구는 물론이고 미국 국무부도 매년 세계 각국의 종교 탄압의 수준을 평가한다. 북한은 수단, 쿠바, 사우디아라비아 등과 함께 지구상에서 가장 종교를 탄압하는 나라로 분류되어 왔고 단 한 번도 최악이란 상황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실로 민족사 최악이다. 천주교 박해는 물론 개신교 탄압까지 가혹했던 봉건 왕조적 조선에서도 이미 150년 전부터 종교 자유의 길을 열었었다. 심지어 군국주의적 일제 식민지배 때도 선교사 활동과 종교 자유는 허용되었다.오늘날 한국 기독교의 태동과 확산은 대부분 1930년대 식민시대 때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150년 전의 조선이나, 90년 전의 식민지배 수준도 벗어나지 못한 종교 탄압과 문명 파괴를 계속하고 있다. 카톨릭 독점의 유럽에서 개신교가 본격 허용된 계기가 된 1648년 베트스팔렌조약과 비교하면 400년 가까운 역사 변화를 외면하는 처절한 신정 정치적 전제군주(專制君主)의 지배에 있는 것이다.종교 자유는 결코 종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상의 자유와 선택의 자유 및 자유경제 제도와도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종교 자유의 수준과 민주주의 수준이 정확하게 비례하고, 종교 자유 수준과 시장경제 수준이 거의 비례한다는 것은 각종 통계와 지표로도 확인된다. 실제 역사적으로나 현실에서나 특정 사회의 종교 자유 수준이 곧 그 나라의 정치적 자유와 민주주의의 수준이다.예를 들어 경제성장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중국은 물론이고, 상대적으로 높은 소득을 유지한다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등 대부분의 중동 국가에서 종교 자유가 허락되지 않는 사실은 소득 수준과 달리 종교 자유 수준과 민주주의 수준이 훨씬 더 밀접한 관계라는 것을 보여준다. 소득이나 경제 성장과 달리 중국이 보여주는 종교 탄압의 수준은 곧 공산당 독점의 중국의 정치 수준과 민주주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다.모든 폭정(暴政)적 독재는 인민의 사상까지도 지배하고자 한다. 독재 체제가 종교를 탄압하는 첫째 이유는 통치 대상인 인민들이 독재자 자신을 제외한 다른 대상을 숭배하지 못하게 하는 것에서 비롯되는 된 것이고, 스스로가 종교적 숭배 혹은 종교 지도자의 위치까지도 독점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 펼쳐졌던 정교일치(政敎一致)의 사회가 다 쓰던 수법이고, 근대 이후 중국, 북한은 물론 이란이나 사우디아라비아 등 대부분의 종교 탄압 국가는 종교적 신앙의 위치에 권력을 대신 갖다 놓고 숭배하게 하거나, 종교를 지배의 수단으로 삼는다.공산주의와 공산당이 종교를 ‘아편’으로 여기고 종교를 부정하는 이유는 바로 그 자리에 공산당과 독재자를 대체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일찍이 김일성은 스스로를 사이비 종교의 교주처럼 만들며 신의 위치에 자기 자신을 갖다놓는 신정(神政) 체제를 만들었다. 종교 방식을 원용하여 어릴 때부터 인간을 세뇌시켜 폭정에 대한 정당한 저항권을 박탈시키고 독재자를 숭배하게 하는 사상 통제를 위해서 종교 자유를 막아왔다.따라서 종교 자유를 허용한다는 것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허용한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더 이상 신격화된 존재로서의 권력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렇기에 종교 자유란 그 사회에서 정치권력이 국민의 비판 대상이 되고, 권력이 국민 선택의 대상이 되는 근대사회로 가는 출발점이자 시금석이다. 고대 찬란했던 문명을 상징했던 로마시대 이후로 유럽이 몇 백 년간 중세 암흑기(暗黑期)로 빠져 들어간 것도 바로 단일 종교가 모든 사상을 지배하고 정치권력과 유착하며 종교 교리 이외의 다른 선택과 삶의 방식을 부정했기 때문이다.종교가 정치권력이 되고 종교가 사상의 지배 수단이 되어 다른 가치와 다른 제도를 허락하지 않는 것이 바로 전체주의 지배의 단면이다. 그런 차원에서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통해 유럽이 암흑시대를 벗어던지는 계기가 된 것도 16세기 이후 종교 자유였다. 15세기 이후 카톨릭 구교와 프로테스탄트 간의 싸움과 전쟁은 비록 그 형식은 종교전쟁이었지만, 내용적으로는 사상과 경제활동의 자유를 둘러싼 전쟁이었고, 또한 종교와 분리된 주권체계를 만들겠다는 네덜란드와 스위스 등의 독립전쟁이기도 했다.중국도 그렇지만 북한에서 펼쳐지는 가혹한 종교 탄압은 종교 자유가 곧 표현과 사상의 자유는 물론이고, 개인들에게 정치적 선택의 자유로 이어진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종교를 선택할 자유가 주어진다면 그것은 체제와 사상에 대한 선택은 물론 정당과 지도자에 대한 선택의 자유까지 연결되는 문제가 되는, 곧 민주주의 문제인 것이다. 중국과 북한이 무슬림이든 기독교든, 종교 자유를 거부하는 것은 신격화되어 무오류와 무비판 대상이 되어온 독재자와 책임지지 않는 무한 권력의 담지자인 공산당의 위상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따라서 북한의 자유화와 민주화는 종교의 자유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종교 자유가 허용될 때 비로소 ‘백두혈통’이라는 김정은의 신격화된 위상이 땅으로 떨어지고, 북한 인민들도 김정은과 폭정 체제를 거부하는 자유 투쟁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북한의 종교 탄압을 감추며 북한에 종교 자유가 있는 것처럼 한국 국민과 전 세계를 속이는 것이야말로 보편 가치와 민족 가치를 저버리며 전체주의 독재와 야합하는 행동일 뿐이다.북한에 종교 자유가 주어지도록 하는 활동에 나서고, 북한 인민을 직접적 대상으로 하여 자유로운 종교 활동이 가능한 방안을 강구하고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자유와 민주주의 투쟁이다.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장

2018-11-12 08:29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장

[시장경제 칼럼] 공공기관 채용비리에 대한 근본적 해결

김영신 계명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공공기관은 흔히 ‘신의 직장’이라고 불린다. 심지어는 ’신도 부러워하는 직장’이라고 불리는 공공기관도 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취업 준비생들이 대기업보다 공공기관을 선호한다. 공공기관에 취업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채용비리도 다양하다. 금융공공기관, SOC 공공기관, 지방공공기관 등을 가릴 것 없이 채용과 관련된 구설수와 비리가 언론에서 뜨겁게 다뤄지고 있다. 급기야 정부는 1,453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최근 5년간의 채용에 대해 약 3개월 동안 전수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취업이 어려운 현실에서 ‘신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공공기관에 공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편법과 위법으로 취업한 사람들을 솎아내겠다는 것이다. 공공기관의 채용비리는 비단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경제가 어려워져 취업이 더욱 힘들어지고 공정사회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기 때문에 공공기관의 채용비리에 대해 더욱 분노하는 듯하다. 또한 공공기관의 규모가 커지고 그 수가 증가한 영향도 있을 것이다. 즉 채용비리의 모집단이 커졌다는 것이다. 전수대상 공공기관 중 공운법상 공공기관은 388개이고, 지방공기업법, 지방출자·출연법상 지방공공기관은 847개다. 또 공공기관이나 지방공공기관이 아닌 공직유관단체가 268개이다. 여기에 공공기관이 소유하고 있는 자회사와 출자회사까지 포함한다면 공공기관과 관련된 대상은 더욱 확대된다.공공기관의 채용비리는 신입사원 선발뿐만 아니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정 등 다양한 형태로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청탁받은 지원자의 서류나 면접 성적을 조작하는 것은 그나마 일반적이고, 심지어는 성적 점수와 관계없이 채용한 경우도 있다. 그런데 공공기관 채용과 관련된 문제는 비단 신입사원이나 비정규직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지난 수차례 정권 교체시기마다 공공기관 임원에 대한 낙하산 인사도 이 같은 관점에서 볼 때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공공기관의 기관장, 이사나 감사 등의 핵심 보직이 그동안 역대 정권의 전리품처럼 다루어져 오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공공기관은 임직원 채용과정에 태생적 한계가 있는 것이다. 모 언론사에 따르면 정부가 공공기관 채용비리와 관련하여 수사 의뢰한 64명 가운데 22명이 전·현직 기관장이었다고 한다.민간 기업에서 적절한 능력을 갖추지 못한 임원이나 직원들이 늘어난다면 그 기업은 시장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방만한 경영을 하거나 생산성이 낮다면 해당 기업은 시장에서 퇴출될 것이다. 더욱이 고객과 소비자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퇴출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다. 그러나 공공기관은 이 같은 상황에서 예외처럼 보인다. 2017년 기준 30대 공기업의 성과는 자산효율성(총자산회전율), 수익성(매출액영업이익률), 생산성(인건비 1원당 부가가치액) 등의 기준으로 볼 때 민간 기업에 비해 떨어진다. 즉 공공기관의 경영효율성이나 생산성이 민간기업보다 낮다. 재무건전성 측면에서는 더욱 취약한 구조를 나타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기관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다양한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에 민간 기업처럼 경쟁의 압력이나 생존에 민감하지 않다. 심지어는 만성적 적자구조와 경영 부실에도 불구하고 망하지 않고 존속할 수 있다. 그렇기에 많은 취업준비생들이 공공기관을 선호한다.공공기관은 국가 발전과정에서 핵심 사회간접시설을 건설하고 다양한 공익사업을 해 오고 있다. 하지만 공짜는 아니다. 국민의 세금이 밑바탕이고, 민간에서 담당할 수 있는 기회비용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공공기관 채용비리의 근본적 해결은 공공기관을 시장경쟁에 노출시키고 정치권과 관료의 영향에서 벗어나 경영의 독립성과 투명성을 보장할 때 가능할 것이다.김영신 계명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

2018-11-05 15:49 김영신 계명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

[유영만의 교육시선(視線)] 질문 바꾸면 파문이 일어난다

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우리는 지금까지 남이 낸 문제에 답을 찾는 교육을 받아왔다. 어려운 문제에 대해 빠른 시간 안에 정답을 찾는 사람이 우수한 학생 대접을 받아왔다. 이제 정답을 찾는 능력보다 그 누구도 던지지 않는 문제를 내는 능력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문제를 낸다는 것은 어떤 답을 기대할 것인지를 마음속에 그리는 일과 같다. 결국 좋은 문제를 내는 능력은 이전에는 없었던 색다른 답을 요구하는 능력과 같다. 4차 산업혁명의 변화가 가속화되면서 인공지능이 쉽게 할 수 없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 예를 들면 호기심을 기반으로 질문하는 능력이 미래 인재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능력으로 부각되고 있다. 기계도 질문할 수 있지만 알고리즘에 질문할 뿐이다. 호기심을 가지고 질문하는 동물은 인간뿐이다. 인간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타성이나 통념에도 시비를 걸며 색다른 질문을 던져왔다. 인공지능 기술이 아무리 발전한다고 해도 지나가다가 나무를 쪼는 딱따구리를 보고 ‘저렇게 나무를 찍어대는 딱따구리는 왜 두통에 걸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호기심을 기반으로 생기는 질문은 예측할 수 없다. 언제 어디서 어떤 질문이 생길지는 본인 자신도 모른다. 그만큼 질문은 이제까지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로 안내한다.이처럼 색다른 질문은 관문(關門)을 바꾸고 추가로 던진 반문(反問)이 마침내 반전(反轉)을 일으킨다. 질문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문을 열어준다. 꽉 막혔던 난관 속에서도 갑자기 혜안을 떠오르게 하고 전대미문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질문을 통해 아직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관문을 만난다. 질문은 현실에 안주하려는 나약한 우리들을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위험한 미지의 세계로 이끌어간다. 질문은 익숙한 집단의 소속감에서 벗어나 낯선 세계로 진입하려는 용기 있는 결단이다. 낯선 질문을 받으면 그 때부터 인간은 낯선 생각을 잉태하기 시작한다. 공부하는 삶으로 불길을 당기는 원천은 이전과 다른 질문이 내 가슴에 일으키는 파문이다. 온몸으로 퍼지는 파문은 수많은 질문을 양산한다. 질문은 지금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여기와 다른 세계로 이끄는 자석과 같다. 어제와 다른 물음을 던질 때 물음의 그물에 어제와 다른 답이 걸린다. 삶의 본질은 어제와 다르게 던지는 질문이라는 그물질에 걸린다. 세상을 향해 던지는 질문의 그물을 바꾸지 않으면 그물에 걸리는 답도 바뀌지 않는다.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질문이 많아진다. 마찬가지로 뭔가에 깊은 관심과 애정이 생기면 질문도 많아지기 시작한다. “우주가 우리에게 준 두 가지 선물,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능력”이라고 미국의 작가, 메리 올리버도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아서 질문을 던지는 일’이다. 결국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능력은 같은 능력이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는 질문이 많다가 사랑이 식기 시작하면 질문도 같이 없어지기 시작한다. 내가 하는 공부도 마찬가지다. 지금 하는 공부를 사랑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파고든다. 공부는 호기심의 물음표를 던져 감동의 느낌표를 만나는 여정이다. 감동의 느낌표도 호기심의 물음표가 낳은 자식이다. 내가 던지는 물음표의 성격과 방향이 내가 얻을 수 있는 느낌표의 방향과 성격을 결정한다.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2018-11-04 15:01 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시장경제 칼럼] ‘치명적 자만’의 질긴 생명력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 소장시장에서의 결과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흔히 빠져드는 오류 가운데 하나가 지시나 명령으로 이를 쉽게 더 좋은 방향으로 수정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어떤 것이 더 좋은 방향인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시장의 결과에 불만이지만 시장의 작동원리에는 눈뜨지 못한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에게서 그런 생각이 흔히 발견된다. 하이에크는 이런 생각을 ‘치명적 자만(fatal conceit)’이라고 부르고 그의 책 제목으로 삼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이런 ‘치명적 자만’ 현상이 목격되지만 최근 부쩍 심해지고 있는 것 같다.그런 사례들은 노동시장에서의 임금과 근로시간을 규제하는 최근의 정책들에서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비정규직을 제로로 만들라.”는 지시는 과거 구소련에서 병원들에게 목표 회생률 달성을 지시했던 사례를 연상시킨다. 이런 지시를 내린 것은 물론 정규직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 ‘비정규직이 존재하는 시장의 현실’을 바꾸겠다는 생각에서다. 비정규직이 존재하는 이유가 주로 고용자들의 ‘탐욕’ 때문이므로 이런 ‘탐욕’을 ‘강제’로 억제하면 비정규직도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있다.그러나 이런 생각은 그런 종류의 명령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한 구체적 사례를 성찰해보지 않은 결과이다. 예를 들어 구소련에서 중앙계획 당국이 병원들에 대해 회생률 목표 달성을 지시하고 그렇지 못하면 처벌을 한 적이 있었다. 만약 그 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살펴보았다면 아마도 ‘치명적 자만’으로부터 벗어나 그런 지시를 내리지 않았거나 최소한 좀 더 신중했을 것이다.구소련에서 사회주의 중앙계획 당국이 각 병원들에게 환자 회생률 목표를 종전보다 높여서 하달했다. 공식적인 통계적 결과는 각 병원의 회생률의 제고였다. 그렇지만 그렇게 된 이유는 너무나 불합리했다. 병원에서 성공적인 치료를 종전보다 더 많이 해서가 아니었다. 병원들이 회생 가능성이 낮지만 의사의 손길이 더 필요한 중태의 환자들을 거부하고 회생 가능성이 높은 건강한 사람들만 받아들여 진료했기 때문이었다. 즉 과거 사회주의 체제 아래의 구소련에서 환자의 회생률을 높이라는 명령이 공식적 회생률을 높였다고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중환자들을 병원 밖으로 내몬 결과였다.죽을병에 걸린 노인들은 통증 완화제조차 쉽게 얻지 못했다. 오죽했으면, 구소련에서 이를 체험한 말체프는 ‘병원 밖에서 통증을 이기지 못한 채 죽고 싶다면’ 사회주의 계획경제 아래에 있던 구소련과 같은 의료제도를 지지하라고 했겠는가. Yuri N. Maltsev, “What Soviet Medicine Teaches Us,” Mises Daily, August 21, 2009. 김이석, 《번영은 자유주의로부터》 나남출판사, 2013 중 의료사회화의 결과 참고.구소련 사회주의 중앙계획 당국이라고 해서 이처럼 시급한 치료가 필요한 중환자일수록 병원 밖으로 추방되길 바라면서 회생률 목표량을 병원에 하달했겠는가. 명령을 하고 엄중한 처벌로 다스리면 만사가 다 잘될 것이라는 ‘치명적 자만’이 문제였던 것이다. 물론 이 일은 구소련이 몰락하기 이전에 있었던 이야기다.서울시 산하 서울연구원이 ‘비정규직 제로’ 지시에 따라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정규직이 되지 못한 연구원 50여 명이 일자리를 잃은 사례도 고용을 안정시키려는 목적으로 시행한 정책이 오히려 일자리를 잃게 만드는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다. 회생 목표율 하달만큼 극적이지는 않지만 하이에크가 말한 ‘치명적 자만’이 의도와는 다른 엉뚱한 결과를 빚어냈다는 점은 마찬가지다.익명을 원한 서울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서울시 산하 기관의 비정규직이 100% 정규직으로 전환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비정규직 ‘0’이란 수치를 맞추기 위해 정규직이 안 된 이들을 밖으로 내몰고 있다.( 중앙일보, ‘비정규직 0 맞추려 비정규직 55명 퇴출’ 2018년 10월 24일자 1면) 즉 정규직보다는 일자리가 더 절실했을 이들이 정부가 명령한 비정규직 ‘0’의 달성을 위해 연구원 밖으로 쫓겨난 것이다. 구소련 정치인과 지식인의 ‘치명적 자만’이 다시 지금의 한국으로 시간과 장소를 옮겨 나타난 것이다. 정말 질긴 생명력이다.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 소장

2018-10-29 08:00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 소장

[시장경제 칼럼] 표류하는 대한민국

양준모 연세대학교 정경대학 교수‘평화는 경제다.’ 이해하기 힘든 구호이다. ‘사람중심경제’는 애매모호하다. 구호와 목표가 명확하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은 촛불 혁명으로 태어난 대통령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촛불 혁명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과연 문재인 정부는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 것인가.군사 혁명이나 프랑스 혁명이나 혁명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혁명은 이성적 절차보다는 힘에 의해 기존 체제를 무너뜨린다. 기존 체제는 국민적 합의 절차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다. 버크(Edmund Burke)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향후 프랑스에서 발생할 상황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프랑스 혁명 직후 버크는 향후 정부가 어떻게 구성되는가를 듣기 전까지는 사태의 판단을 유보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공권력의 행사 방식, 잘 훈련된 군대의 존재, 재정 운용의 효율성, 도덕과 종교, 재산권의 보호, 그리고 시민과 사회의 행태 등을 분석한 이후 프랑스 혁명은 단순한 일탈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문재인 정부의 성격은 정책 평가로 밝혀질 것이다. 그동안 실시된 정책들은 대한민국을 혼란에 빠뜨렸다. 이러한 혼란이 잠시의 일탈로 마감할지, 아니면 대한민국을 침몰시킬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정책을 통해서 한국을 어떻게 이끌어가고 있는가를 평가하는 것은 현재 우리의 의무임에는 틀림이 없다.‘국민이 주인인 나라’라는 구호가 있다. 과연 그런가. 사실 지금 국민은 수사 대상이다. 서울 중앙지검에만 97명의 검사가 투입됐다고 한다. 소위 적폐수사로 1254명이 단속되고, 346명이 구속됐다. 공공기관의 인사에 개입했다고 작년 7월부터 5개월간 15명이 구속됐다. 국정원 전·현직 직원은 178명이 조사를 받았다. 조사 받던 사람들 중에는 자살을 선택한 사람들도 있었다. 공기업 임직원, 변호사, 심지어 검사까지 자살을 선택했다.공권력 행사가 도를 넘고 있다. 180여만 원 뇌물을 받았다고 검사는 징역 5년을 구형했다. 대법원장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승진 소식이 들려온다. 대학 교수가 강의실에서 특정 사건에 대해 불편한 이야기를 했다고 명예훼손으로 법정구속 됐다. 말 한마디 잘못하면 구속되는 세상이다. 국민이 주인인가.‘더불어 잘사는 경제’를 만들겠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소득분배 악화는 매우 아픈 지점이라고 했다. 작년 5월만 하더라도 전년 대비 37.9만 명의 취업자가 증가했다. 올해 7월에는 0.5만 명으로 취업자 증가가 둔화됐다. 고용률은 떨어지고 소상공인들은 폐업을 선택하고 있다.‘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라는 구호도 있다. 국민에 대한 모욕이다. 내 삶은 내가 책임지고 지킨다. 모든 국민이 그렇게 노력해 왔다. 최저임금을 급상승시켜서 근로 기회를 빼앗는다는 비난이 있다. 정부의 책임이 크다. 근로 기회를 없애면 국민의 미래는 어두워진다. 일자리를 잃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 구호가 무색하게 느껴진다. 과연 선동의 끝은 어딘가.‘고르게 발전하는 지역’이란 구호의 정당성은 부동산 정책으로 무너진다. 강남 집값 잡겠다고 금리를 올리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강남에 살아보니 강남에 살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자신은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지도 않는다. 다른 지역 부동산 시장은 어려운데 서울 부동산 시장에만 관심을 집중한다. 수도권 이외 지역에서 미분양 사례가 늘고 있다. 지역에 따라서는 미분양 주택 수가 작년보다 22.9% 늘었다는 통계도 있다.‘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라는 구호는 섬뜩하기까지 하다. 평화를 내세우면서 안보를 해체하고 있다. 평화와 번영은 북한의 변화에서 시작한다. 북한의 핵은 그대로 있다. 북한의 장사정포도 그대로 있다. 다만 달라진 것은 이들을 방어할 수 없는 상태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제사회가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작금의 정부 태도도 이해할 수 없다. 우리 정부가 과연 북한의 핵을 제거하는 노력을 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오히려 북한의 핵을 용인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혹이 생긴다. 내막은 알 수 없으나 잘못된 선택이다.과연 대한민국이 더 정의로운 대한민국으로 바뀌고 있는가. 문재인 정부의 공공기관장 45%, 감사의 82%가 소위 ‘캠코더 인사’라는 보도가 있었다. 이미 2001년에 기관장의 업무추진비는 공개해야 한다는 판결이 있었다. 17년이 지난 지금, 업무추진비 공개로 현역 국회의원의 사무실이 압수수색을 당했다. 행정부를 견제해야 할 국회가 자기 의무를 버리고 권력 유지에 매몰되고 있다.우고 차베스는 베네수엘라의 기득권과 싸웠다고 한다. 군인으로서 쿠데타를 시도했다가 투옥된 경험도 있다. 혁명적 사고의 소유자이다. 대중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헌법을 고쳤다. 양당체제를 해체하고 복지를 강화했다. 권력에 대한 견제가 약화 됐다. 국민의 뜻이라는 미명으로 부정 선거, 인권침해, 그리고 반대파 진압 등의 반민주적 행태를 자행했다고 한다. 사법부의 독립성이 파괴되고 삼권분립의 원칙이 붕괴됐다. 보편적 무상 의료, 무상 교육, 가격 통제 등으로 단기적 인심은 얻었을지 몰라도 경제는 붕괴했다.한국이 베네수엘라의 길을 가는 것인가. 삼권분립의 원칙이 무너지고, 자유가 침해되고 있다. 포퓰리즘적 정책으로 정책 폐해가 커지고 있다. 사람들의 ‘경제’하려는 의지는 약화되고 대중의 탐욕은 정치 세력화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양준모 연세대학교 정경대학 교수

2018-10-22 08:30 양준모 연세대학교 정경대학 교수

[시장경제 칼럼] 민주정의 위기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개인 간의 사회적 협동이 이뤄지려면 타인의 생명과 자유, 재산에 대해 존중이 필요하다. 타인의 것에 대한 존중은 어떤 사회에나 존재했던 보편적 도덕률 때문에 가능했다. 자신의 생명과 자유, 재산이 존중받으려면 타인의 것도 존중해야 한다. 자신의 삶에 대한 결정권이 존중받으려면 타인의 결정권도 존중해야 하며 타인에게서 피해를 받지 않기를 원하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등 다양한 형태의 도덕적 규범이 발전했던 것이다.개인 간의 사회적 관계가 확대되면 보편적 도덕률을 지키지 않고 기회주의적으로 행동하려는 유인이 나타난다. 그런 점에서 사회적 협동에 필요한 최소한의 도덕률을 유지하고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개인의 생명과 자유, 재산을 지키기 위한 국가의 존재는 불가피한 것이었다.하지만 국가의 등장은 때에 따라 개인의 삶을 위협하게 된다. 국가의 권력자가 권력유지에 필요하다면 개인의 생명과 자유, 재산을 위협하였던 것이다. 국가의 과세권을 이용하여 개인의 재산을 약탈하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예전부터 개인의 삶을 빈곤하게 만든 것은 다양한 명목의 조세였던 것이다.어찌 보면 최근까지의 역사는 개인이 국가권력으로부터 자신의 생명과 자유, 재산을 지키려는 처절한 투쟁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투쟁을 통해 국가권력의 분산, 과세에 대한 동의, 적법 절차를 근간으로 한 민주정이 등장한다.그러나 민주정의 등장으로 개인의 생명과 자유, 재산이 국가 권력으로부터 위협받는 일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민주사회에서 정당들은 표를 얻기 위해 경쟁한다. 그리고 유권자는 자신에게 이익을 약속한 정당에 표를 던진다.최소한의 도덕률이 유지되고 국가권력이 배분할 수 있는 경제적 자원이 제한되어 있으면 표를 얻기 위한 정당들의 경쟁은 개인의 자유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경제적 자원이 커지면 정당들은 지지집단에 배분할 전리품을 챙기기 위해 과세를 통해 ‘합법적 약탈’을 행한다. 타인의 재산을 전리품으로 챙긴 유권자는 이를 부도덕하다고 여기지 않고 오히려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것으로 여긴다.예전에는 절대적 권력자라도 그 당시 지배적이었던 종교나 도덕률의 가르침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었다. 다수가 지지하더라도 도덕률에 어긋나는 일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민주정치의 원리인 다수결이 이제는 종교나 도덕률의 가르침을 대체하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과학적 진실을 왜곡한다. 다수의 지지 여부가 도덕의 기준이 되고 다수의 믿음에 어긋난 과학적 진실은 ‘기득권의 이익’을 위한 과학으로 매도되기도 한다. 이에 따라 국가권력이 어떤 제한도 받지 않고 ‘다수의 이름’으로 개인의 생명과 자유, 재산을 위협하기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다수결이 도덕률을 대체하고 과학적 진실을 왜곡하면 민주정은 위기를 맞게 된다.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고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사라지면서 사회분열의 위기가 초래되기 때문이다. 타인의 재산을 합법적으로 약탈할 수 있게 되면 누구도 열심히 일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경제가 어려워지면 국가 권력을 이용한 약탈에 더욱 의존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정치는 생사를 건 권력투쟁의 장이 된다. 학계나 언론을 비롯하여 사법부조차도 정치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권력투쟁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나아가 적대적 외부세력보다 국내의 경쟁 집단이 실질적 위협으로 인식된다. 그래서 적대적 외부세력은 용서할 수 있어도 국내의 경쟁 집단은 청산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지금까지 한국사회는 민주화와 경제적 성공을 함께 달성하였다. 하지만 이제는 민주화의 핵심인 다수결의 원리가 이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도덕적 규범이 사라져가면서 ‘다수의 횡포’가 새로운 도덕으로 여겨지고 있다. 광우병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과학적 진실은 다수의 잘못된 믿음 앞에 무력하였다. 소득주도 성장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반대의견은 ‘자본가의 이익을 위한 경제학’의 주장이라고 매도되고 있다. ‘부유세’라는 명분으로 부동산 등 재산이나 소득에 부과되는 ‘약탈적’ 수준의 조세는 ‘소득재분배’라는 명분에 몸을 감추고 있다.사회의 도덕률이 무너지면 사회는 투쟁의 장이 된다. 지금의 한국사회는 이미 투쟁의 장에 들어섰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를 벗어나기에는 너무 늦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길게 보면 역사에는 비약이 없다. 한국 사회가 겪어야 할 일이면 제대로 겪어야 한다. 그래야 역사적 교훈을 분명히 얻을 수 있고 다시는 잘못된 길에 들어서지 않을 것이다.정기화(전남대 경제학부 교수)

2018-10-15 09:34 정기화(전남대 경제학부 교수)

[시장경제 칼럼] '쓰레기 걱정'이 걱정스러운 이유

곽은경 자유기업원 기업문화실장재활용 쓰레기 대란 사태가 발생한 후 정부가 앞장서서 ‘플라스틱과의 전쟁’에 돌입했다. 정부는 ‘재활용 폐기물 관리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2030년까지 플라스틱 폐기물을 50%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 일환으로 2018년 8월 커피전문점과 패스트푸드점 내부에서 일회용 컵 사용을 금지한데 이어, 오는 11월부터는 대형마트와 슈퍼마켓에서의 일회용 비닐봉투 사용을 전면 금지할 예정이다. 플라스틱 폐기물 문제가 어제오늘 일도 아닌데 갑자기 이렇게 논란이 된 배경에는 중국이 있다. 세계 최대 쓰레기 수입국이었던 중국이 경제성장과 환경문제 등을 이유로 2018년 1월부터 플라스틱과 폐비닐 등, 24개 품목의 폐기물 수입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당장 여러 국가들이 플라스틱 폐기물 처리 문제에 봉착했다. 바다가 플라스틱 쓰레기로 덮이고 말 것이라는 우려와 공포도 확산되고 있다.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영국, 뉴질랜드 등의 국가에서도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플라스틱과 비닐봉투 사용을 금지하는 제도를 마련 중에 있다. 맥도날드, 스타벅스와 같은 다국적 기업도 플라스틱 빨대 대신 종이 빨대를 사용하며 플라스틱 줄이기에 참여하고 나섰다.환경보호를 위한 정책들은 좋은 의도라는 이유로 큰 반대 없이 시행되지만 대개는 ‘불편함’을 동반한다. 당장 일회용 플라스틱 컵 대신 다회용 컵 사용을 강제하자 깨끗하게 세척되지 않아 위생적이지 않다는 소비자들의 불만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종이 빨대를 사용해본 소비자라면 그것이 금방 녹아 흐물흐물해져 음료를 마시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개인 텀블러나 장바구니를 챙기는 것 역시 번거로운 일이다.소비자의 ‘불편함’을 강요하는 정책은 결코 환경을 보호할 수도, 효과적으로 플라스틱 배출을 줄일 수도 없다. 가볍고 내구성이 좋아 ‘기적의 소재’라고 불려왔던 플라스틱을 대체할 새로운 소재가 아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는 과학기술 발전을 통해 인간의 시간과 에너지를 덜 소모하는 방향으로 진보해왔다. 생활의 편리함을 제공하는 플라스틱을 포기하고 과거로 돌아가는 제도는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뿐더러 삶의 질 측면에서도 적합한 선택이 아니다.쓰레기 처리 문제를 효과적으로 풀기 위해서는 시장 참여자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유인이 필요하다. 바다에 쓰레기가 버려지는 주된 이유는 그곳이 공유지이기 때문이다. 반면 개인 소유의 양식장, 프라이빗 비치(private beach)는 관리를 스스로 잘하기에 쓰레기 문제를 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른바 ‘공유지의 비극’ 문제는 합리적 재산권 설정과 가격원리로 해결하라는 것이 경제학의 가르침이다.또 남의 땅에 몰래 버리는 비양심적 행위는 쓰레기를 버리는 비용이 클 경우 늘어난다. 쓰레기 처리 비용은 수익자부담 원칙에 의해 개인이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정부가 수거과정에서 처리 비용을 너무 높게 책정할 경우 사람들은 오히려 이를 회피하려고 하기 때문에 쓰레기 처리 문제가 더 어렵게 될 수도 있다. 인센티브를 고려한 합리적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미다.인류에게 ‘문제’란 발전, 혁신의 ‘기회’와 같은 뜻으로 해석된다. 중국의 폐기물 수입 중단으로 플라스틱 폐기물 처리의 가격이 올라간다면 쓰레기를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사람에게 새로운 이윤 창출의 기회가 생겨난다. 누군가는 이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머지않아 우리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효과적으로 처리할 방법을 얻게 될 것이다. 실제 분해가 잘되는 플라스틱, 얇지만 성능은 더 뛰어난 플라스틱 등이 등장하면서 폐기가 용이한 방향으로 과학기술은 계속해서 발전해 나가고 있다. 이와 함께 기업들은 쓰레기 소각과 매립을 효과적으로 하는 방법, 폐기물을 유용한 자원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계속해서 발견하는 과정에 있다.중세 유럽은 집 안에 화장실을 따로 두지 않아 거리에 분뇨와 쓰레기가 넘쳐났다. 이를 피하기 위해 귀족들이 굽이 높은 하이힐을 신었다고 알려져 있다. 유럽 사람들이 오물의 배출을 줄이기 위해서 덜먹고 화장실에 가는 횟수를 줄였다면 지금과 같은 하수 처리시스템은 결코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인간의 생존에는 필연적으로 쓰레기가 발생한다. 인류는 오랜 세월동안 쓰레기 더미에 파묻히지 않고 깨끗하고 쾌적한 삶을 누려왔다. 인간의 창의력은 무한하며 플라스틱 폐기물 때문에 생존을 위협받는 일 또한 결코 없을 것이다. 인간은 환경을 파괴해온 것이 아니라 더 살기 좋게 가꾸고 가치를 창조해왔기 때문이다.곽은경 자유기업원 기업문화실장

2018-10-08 08:08 곽은경 자유기업원 기업문화실장

[유영만의 교육시선(視線)] 체험해야 '생각하는 사람' 된다

유영만 한양대학교 교육공학과 교수교육은 이전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고능력을 육성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그런데 생각하는 사고능력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생각한다는 의미는 생각 사(思)라는 한자에 담겨 있다. 생각 사는 ‘밭 전(田)’과 ‘마음 심(心)’으로 이루어졌다.그렇다면 생각한다는 것은 밭에 관한 마음이라는 의미일까? 그렇지 않다. 여기서 밭을 지칭하는 한자 ‘전(田)’은 뒤통수 밑에 자리 잡고 있는 인간의 숨골, 즉 머리나 이성을 뜻한다. 그리고 그 밑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음 ‘심(心)’은 가슴을 지칭한다. 생각은 따뜻한 가슴과 차가운 머리의 합작품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까지 생각은 머리로만 하는 것으로 생각해왔다. 진짜 생각은 머리보다 가슴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뭔가 잘못해서 반성할 때 두 손을 머리보다 가슴에 대고 반성한다. 친정엄마가 아프면 가슴이 아프고 시어머니가 아프면 머리가 아프다. 나하고 관계가 깊을수록 가슴이 아프고 관계가 멀수록 머리가 아픈 것이다. 가슴으로 하는 생각이 진짜 생각이다.“생각은 잊지 못하는 마음이자 가슴 두근거리는 용기”다. 신영복 교수의 ‘담론’에 나오는 말이다. 생각이 논리가 아니라 마음이자 가슴 두근거리는 용기라는 생각은 생각에 관한 전혀 다른 생각이다. 심장이 뛰는 사람과 용기 있는 사람은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도전한다. 다 심장이 시켜서 하는 일이다. 머리로 생각만 하는 사람은 실천에 옮길 가능성이 거의 없다.“사(思)는 생각이나 사색의 의미가 아니라 실천의 의미로 읽어야 합니다. 그것이 무리라고 한다면 경험적 사고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글자의 구성도 전(田)+심(心)입니다. 밭의 마음입니다. 밭의 마음이 곧 사(思)입니다. 밭이란 노동하는 곳입니다. 실천의 현장입니다(179쪽).” 신영복의 ‘강의’에 나오는 말이다. 그래서 ‘논어’ 위정편에 나오는 學而不思則罔(학이불사즉망) 思而不學則殆(사이불학즉태)를 신영복 교수는 “실천이 없는 이론은 어둡고 이론이 없는 실천은 위태롭다”고 해석한 것이다. 생각은 책상에 앉아서 머리 굴리는 관념이 아니라 직접 밭이라는 현장에서 몸을 움직이는 노동이다. 우리는 이제까지 머리로 생각하는 논리적 사고가 생각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생각은 머리가 담당하는 뇌과학의 문제였다. 진짜 생각은 실천 속에서 이루어진다.몸을 움직여 실천할 때 비로소 가슴으로 느낌이 다가온다. 책상에 앉아서 머리로 이해할 수 있지만 체험하지 않고서는 가슴으로 느낄 수 없다. 사람을 행동하게 만드는 방법은 교육을 매개로 감동하게 만드는 것이다. 감동하게 만드는 방법은 나의 체험적 깨달음을 몸으로 전해주는 것이다. 몸으로 깨달은 체험적 지혜는 언어로 전달할 수 없다. “지식은 전달할 수 있지만, 그러나 지혜는 전달할 수가 없는 법이야. 우리는 지혜를 찾아낼 수 있으며, 지혜로써 기적을 행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지혜를 말하고 가르칠 수는 없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 나오는 말이다. 실천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생각과 체험적 지혜가 만나야 공감대가 형성된다. 공감능력은 책상에 앉아서 머리 쓴다고 길러지지 않는다. 직접 타자 입장에서 체험해봐야 한다. 공감대가 형성돼야 무한대의 감동 무대가 펼쳐진다.유영만 한양대학교 교육공학과 교수

2018-10-03 14:25 유영만 한양대학교 교육공학과 교수

[시장경제 칼럼] 주당 법정 근로시간만을 정하는 것이 최선

전용덕 대구대 명예교수현 정부는 ‘저녁이 있는 삶’(소위 ‘워라벨’)을 위하여 1주당 총근로시간을 52시간(법정근로시간 40시간에 연장근로시간 12시간을 합한 것)으로 제한했다. 연장근로시간 12시간에는 휴일근로시간도 포함된다. 이번 근로기준법 개정 전에는 1주당 총근로시간이 68시간(법정근로시간 40시간에 연장근로시간 12시간과 휴일근로시간 16시간을 합한 것)까지 가능했다. 이 번에 총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제한 한 배경에는 한국근로자가 그 어느 국가보다도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기 때문이라는 ‘암묵적 전제’가 깔려있다. 문제는 이런 전제가 과연 옳은가하는 점이다. 먼저 산업화 이후 일정시점부터 평균 취업시간은 지속적으로 감소해 왔다는 점을 알 필요가있다. 광공업의 경우, 1주당 평균 취업시간은 1976년 59.0시간으로 정점을 찍고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1998년에 49.2시간(이 때 처음으로 50시간 이하로 떨어졌으나 그 이후몇 년은 50시간을 약간 넘겼던 해도 있음), 2003년에는 49.6시간(이후의 모든 연도에서 주당 취업시간이 50시간 이하로 내려감), 2013년에는 45.0시간으로 감소했다.참고로 다른 산업이나 전체 가구로는 1주당 평균 취업시간이 2-3시간 짧았다. 최근에는 1주당 평균 취업시간이 2013년보다 약간 더 짧아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평균만을 놓고 보면, 장시간 노동은 1960-1990년대가 해당되고 2010년대 후반인 현재는 그렇다고 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한국보다 공업화를 훨씬 일찍 시작한 독일, 영국, 스웨덴 등보다는 현재 한국의 평균 취업시간이 상당히 긴 것은 틀림없다. 취업시간을 기준으로 근로자 수의 비중을 보면 어떻게 되는가? 1976년 광공업의 경우에,전체 근로자의 69.1%가 주당 54시간 이상, 전체 근로자의 18.2%가 주당 45-53시간을 노동했다. 둘을 합하면 87.3%로서 거의 대부분의 노동자가 주당 45시간 이상을 일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1976년에 대부분의 취업자는 장시간 노동했고 취업시간 35시간 미만의 불완전고용은 전체의 4.9%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2013년에 오면 상황은 달라진다. 광공업의 경우에, 주당 54시간 이상 취업자와 주당 45-53시간의 취업자는 전체 취업자의 각각 21.0%와 30.4%였다. 이것은 주당 45시간 이상의 취업자는 겨우 절반을 넘는 수준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 시기 특징적인 것은 주당 35시간 이하의 취업자가 전체 취업자의 11.1%이다. 1976년에 비하면 2013년에 불완전고용 취업자의 비중이높다는 것이다. 종합하면, 한국의 노동자가 장시간의 노동에 시달린다는 통념은 1960-1990년대에나 맞는 것이다.물론 한국보다 공업화를 일찍 시작했고 평균소득이 높은 서양의 몇몇 나라에 비하면 한국은 여전히노동시간이 긴 것은 맞지만 말이다.그러나 주당 54시간 이상의 장시간 취업자가 한국사회에서 일정한 몫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이들은 자발적으로 그렇게 한 경우라는 점이다. 그 경우에 법률로 노동시간을 규제하면 노동자 또는 기업 전체의 생산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예를 들어, 게임제작 업체들은 법 개정 이전부터 규제로 인한 생산성 하락을 염려했다. 또는 노동시간이 줄어들면서 소득이줄어들게 되면 노동자는 소득감소보다는 장시간 노동을 원할 수도 있다. 이것은 규제가 노동시간을 줄어들게 만드는 대신에 ‘저녁이 없는 삶’을 만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주당 취업시간이 54시간을 넘고 그런 노동이 순전히 자발적인 것이라면 주당 52시간 이상을 노동하지 말 것을 규정하는 것은 그 규정이 이제 규제로 작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록 정부가 그렇게 규제함으로써 일자리를 약간 늘릴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실증의 문제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미국은 법정근로시간을 주당 40시간만을 규정하고 있다.주당 40시간을 초과하는 근로시간에 대한 조건은 사용자와 노동자가 계약이나 협상에 의해 결정하도록하고 있다. 한국도 본격적인 공업화를 시작한지 50년이 넘었기 때문에 노사관계에 대한 규제를 필요 최소한으로 하여 스스로 정하도록 하는것이 최선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분석은 취업시간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한국의 노동자는 비공식 노동을 적지 않게 하고 있다. 비공식 노동이란 취업시간에는 들어가지 않지만 실질적으로는 노동시간에 포함해야 하는노동을 말한다. 대표적인 예가 정시 출·퇴근시간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것이다. 이런 시간은 비공식적인 것이기 때문에 정식으로 조사된 바도 없다. 그리고 주간 단위로는 그 시간이 적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그 시간이 업체마다 모두 다르겠지만말이다. 그리고 이 시간을 취업시간에 추가한다면 한국 노동자의 노동시간이 다른 나라 노동자보다 결코 짧다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법으로 규제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기업의 오너들이 사원들의 복지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방법밖에 다른 길이 없어보인다. 그리고 이것은 한국 노동자의 업무 스타일과도 일정 부분 관련이 있다. 이것은 기업 오너들이 약간의 인센티브를제공하여 바꿀 수 있을 것이다.전용덕 대구대 명예교수

2018-10-01 09:44 전용덕 대구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