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경제 칼럼]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이 분발할 때

복거일(소설가, 경제평론가)
입력일 2019-01-07 07:30 수정일 2019-01-07 07:30 발행일 2019-01-06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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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
복거일(소설가, 경제평론가)

어떤 개인에 관해서 가장 많은 것들을 알려주는 단일 정보는 그의 소득이다. 소득은 그가 자신의 욕구들을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의 크기를 알려준다. 소득이 적으면, 자신의 뜻대로 삶을 꾸려나가기 어렵다. 소득이 많으면, 빌 게이츠의 행적이 유창하게 말해주는 것처럼, 세상을 이리 바꾸어야 한다고 역설하는 대신 세상을 보다 낫게 만드는 사업들을 실제로 추진할 수 있다.

어떤 사회에 관해서 가장 많은 것들을 알려주는 단일 정보는 정치 지도자에 대한 구성원들의 지지도다. 지도자가 누리는 지지도는 사회적 응집력(social cohesion)의 크기를 알려준다. 지도자가 옳은 방향으로 사회를 이끈다고 믿어서 시민들이 지지하면, 그 사회는 응집력이 커서 효율적으로 움직인다. 지도자가 사회를 잘못 이끈다고 시민들이 판단해서 지지도가 낮아지면, 그 사회는 응집력이 약해져서 혼란스러워지고 비효율적이 된다.

2018년에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크게 바뀌었다. 연초에 문 대통령은 무척 높은 지지도를 누렸다. 이승만 대통령이 시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던 6.25전쟁 기간 이후, 아마도 가장 높은 지지도였을 것이다. 연말엔 문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민들보다 반대하는 시민들이 많아졌다.

이런 변화는 우리 사회의 응집력이 빠르게 약화되었음을 뜻한다. 사회적 응집력이 약해지면, 사회는 허약해진다. 사회 조직의 중심적 문제가 응집력의 확보니, 당연한 일이다.

문 대통령의 지지도가 낮아진 근본적 원인은 물론 현 정권의 국정 운영이 초라한 성적을 냈다는 사실이다. 특히 경제 분야에서 성적이 나쁘다. “물이 들어오니, 노를 젓자.”고 주문한 문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을 빼놓으면, 모두 살기 어렵다 하고 나라를 걱정한다. 거의 모든 지표들이 경제가 어려워졌음을 가리킨다.

이제 시민들은 현 정권의 경제 정책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들은 거의 다 민중주의적(populist)이어서, 처음엔 시민들 다수의 지지를 받았다. 따라서 그런 정책들이 비합리적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시민들이 묵은 지식을 버리고 새로운 지식을 얻었음을 뜻한다.

그러나 현 정권의 경제 정책들에 환멸을 느낀 시민들 가운데 그것들이 실패한 까닭을 명확하게 아는 이들은 드물다. 실패한 정책들의 대안들이 무엇인지 아는 이들은 더욱 드물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정책에 대해서 불만을 품고 그런 정책의 부정적 효과를 줄여달라고 현 정권에 요구하는 수준에 머문다.

이런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 현 정권의 정책들로 어려움을 겪지만 그것들을 대치할 정책들이 무엇인지 모르니, 시민들은 불만과 분노를 생산적 에너지로 변환시키지 못한다. 그리고 차츰 쪼그라든 자신의 처지에 적응하게 될 것이다. 경제를 제대로 살필 지적 자산이 부족하니, 민중주의적 정책들이 새롭게 화장을 하고 나타나면, 이내 그것들에 현혹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시민들이 경제에 관해 보다 깊은 지식을 갖추고 현재의 상황을 보다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문 대통령이 어떤 이념을 추종하고 그런 이념에서 어떤 정책들이 나왔고 그런 정책들이 왜 실패했으며 그것들보다 나은 이념과 정책들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긴요하다.

지금 현 정권의 경제 정책들에 대한 비판은 활발하다. 신문들마다 ‘최저임금제’의 문제점들과 ‘규제 완화’와 같은 처방들로 채워진다. 그러나 그런 정책들을 배출한 이념에 대한 논의는 아주 드물다. 그 이념이 대한민국의 구성 원리에 어긋나는 모습을 자주 보여도, 그것을 지적하고 경계하는 목소리가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케인즈가 일찍이 지적했듯이, 이념보다 더 강력한 것은 없다. 우리를 움직이는 것은 우리 뇌에 자리잡은 밈(meme)들이다. 그리고 서로 잘 어울리는 밈들이 모여서 ‘밈 복합체(memeplex)’를 이룬다. 이념은 가장 근본적 수준에서 우리 행태에 작용하는 밈 복합체다. 누구도 자신이 받아들인 이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현 정권의 이념은 본질적으로 전체주의다. 전체주의는 나름으로 진화를 해서 궁극적으로 민족 사회주의(national socialism)에 이른다. 처음엔 자신을 보편적 이념이라고 내세우지만, 차츰 강력한 힘인 민족주의와 결합하는 것이다. 국제공산당(Communist International)을 내걸어 온 세계의 지식인들을 현혹했던 러시아 공산당의 변모가 그 점을 잘 보여준다.

이런 변화는 식물 군락의 천이(succession)와 비슷하다. 헐벗은 땅이 나오면, 먼저 지의류가 땅을 덮고, 이어 풀들, 관목들, 양수림 교목들이 차례로 번창했다가 궁극적으로 음수림이 지배적 종이 된다. 이런 식물 군락의 천이에서 결정적 요소는 햇빛인데, 전체주의의 진화에서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은 민족주의다. 우리 사회의 좌파의 진화 과정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다.

전체주의를 추종하므로, 현 정권은 대한민국의 구성 원리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적대적이다. 수많은 시행착오들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책들을 바꾸려 하지 않는 이유가 거기 있다. 현 정권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이념이 성공하리라 믿는다. 추종자들에게 궁극적 성공의 믿음을 주지 못한다면, 이념은 이념이 못 된다.

이런 사정은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에게 분발을 요청한다. 자유주의자들은 자유민주주의가 어떤 이념이고 왜 가장 나은 이념인지, 시장경제의 원리가 무엇이고 왜 가장 나은 경제 체제인자, 시민들에게 알려야 한다. 그리고 그런 지식으로 현 정권의 전체주의 이념을 살피고 무슨 잘못들이 어떻게 나왔는지 시민들이 이해하도록 도와야 한다. 그렇게 해서 시민들의 가슴에 서린 불만과 분노가 생산적 에너지로 바뀌도록 도와야 한다.

복거일(소설가, 경제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