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칼럼] 자유주의, 어떻게 지킬 것인가?

김우택 한림대 명예교수
입력일 2018-11-26 14:26 수정일 2018-11-26 14:34 발행일 2018-11-26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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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택 한림대 명예교수

지금 나라 걱정하는 사람들의 우려는 두 가지 중 하나다. 나이 드신 분들의 큰 걱정은 국가안보이고, 청장년층의 걱정은 줄어드는 일자리와 거꾸로 가는 경제인 듯 보인다. 바깥 세계의 눈에는 북핵 문제가 바뀐 것이 하나도 없고, UN 대북제재도 그대로인데, 청와대 정부 여당 사람들은 우르르 평양 드나들더니 우리의 무장해제부터 하는 대북정책이 불안한 것이다. “이러다가 우리들도 김씨 세습왕조에서 숨죽이고 살게 되는 거는 아닌지요?” 카톡방에서 서로들 묻고 있는 것이다.

또 언론의 경제 뉴스는 매일 고용참사, 줄어드는 일자리, 자영업자들의 한숨소리가 느껴지는 폐업소식, 유령도시로 변해가는 과거의 산업단지들, 소득분배 악화, 국내외 연구기관들의 내년도 한국경제 전망치 하향조정 등 암울하기 짝이 없다. 현 정권이 완전 장악해 청와대 눈치 보느라 몸조심하는 신문 방송이 전하는 뉴스만 보아도 그 심각성이 짐작되는데도 어찌된 일인지 청와대는 소득주도 성장정책의 효과가 곧 나타날 것이라느니, 자동차와 조선업이 회복되고 있으니 “물 들어올 때, 노 젓자.”는 둥, 도무지 국민들이 납득할 수 없는 현실과 동떨어진 소리들만 하고 있으니 국민들은 더 답답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실 문제의 본질은 더 심각하다.

안보와 경제의 환경이 일반적으로 같이 움직이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국민들이 당면하는 이 두 가지 걱정의 뿌리는 하나이기에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그 뿌리는 현 집권세력의 反자유주의 이념이다. 이미 학생들이 사용하는 교과서에서는 자유민주주의의 자유를 빼기로 했고, 가능하다면 헌법에서도 자유민주주의의 자유를 빼려고 하는 세력이 국민들이 이해 못할 대북정책들을 남발하기에 안보불안이 생기는 것이다. 이 반자유주의 이념은 자유 시장경제에서도 이미 자유를 빼버렸다. 규제일변도의 정책으로 기업과 소비자들의 경제활동의 자유를 박탈하고 있으며, 세금폭탄과 국민연금을 통해 기업의 경영권을 장악하려는 시도 등 사유 재산권의 침해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회복을 기대할 수 있는 경기순환 주기 상의 불황과는 본질적으로 다르고, 또 무능에 기인한 정책실패와도 다른 유형의 문제다. 참고할 만한 사례로는 지구 반대편 베네수엘라의 지난 20년간의 행적이 있다.

◇ 태생적 한계가 만든 자유주의의 특성

자유주의의 태생적 한계는 개인의 자유의 핵심은 자율과 책임인데, 개인은 자신의 자유를 스스로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이다. 나의 자유권은 남들이 존중해 주지 않으면 나 혼자 지켜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는 흔히 발생하는 집단 따돌림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자유주의 사회의 유지는 여러 제도적 장치의 뒷받침이 요구된다. 또 제약 없는 개인의 자유권은 필연적으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게 되는 이해상충 문제가 있기 때문에 개인 자유권의 한계의 명확한 기준도 필요하다. 160년 전 J.S.밀이『자유론』에서 제시한 ‘남을 해치지 않는 한에서라는 No Harm Principle‘이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기준이다.

개인들 간의 자유권 행사와 관련된 분쟁을 조정하고, 시비를 가리고, 결론을 강제하는 일은 그런 권한을 위임받은 공권력의 영역이다. 그래서 자유주의 사회는 법치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그런데 개인의 자유에 대한 최대 위협은 국가권력이기 때문에, 개인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권리장전을 포함하는 것은 물론이고, 공권력의 자의적 행사를 명시적으로 금하는 헌법이 필수이다.

정부 기관 간에 견제와 균형이 가능토록 권력을 분산시키는 분권도 중요하다. 즉 자유주의는 입헌주의를 필요로 한다는 말이다. 자유주의 사회가 온전히 유지되기 위해서는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헌법 조항들은 권력의 의해 사문화될 수도 있다. 1215년 조인된 대헌장 (Magna Carta)이 17세기 초 튜더왕조가 끝날 때까지 400년 동안 사문화되었던 역사가 주는 교훈은 이를 막을 장치의 필요성이다.

그 장치로 민주주의가 필요하고 그래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로 함께 가는 것이다. 그런데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관계는 일찍이 토크빌이 간파한 바와 같이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대칭 관계가 아니다. 자유주의는 민주주의를 필요로 하지만 민주주의는 자유주의를 필요로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다수에 의한 폭정’이 자유주의가 아닌 민주주의의 예이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아닌 자유주의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 해야 할 숙제

이제 나라를 걱정하는 모든 이들은 걱정만 할 것이 아니라 고사 위기에 처한 한국의 자유주의를 구하기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할 것이다. 기댈 수 있는 수단으로는 아직 완전히 사문화되지 않은 헌법과 작동하는 민주주의 제도인 선거가 있다. 개인의 기본권 중, 언론의 자유에서 대중 매체에 재갈이 물리고, 개인들도 공적 발언에서 자기검열을 하게 되는 정도로 위축되었지만 아직 개인들의 언론 자유가 완전히 말살된 것은 아니고, 집회 결사의 자유 등 다른 기본권이 크게 훼손되지는 않았다.

권력 간의 견제와 균형을 위한 분권의 한 축인 사법권의 독립이 허물어지고 있는 상황이나 입법부에서의 야당의 견제 역할은 다음 총선까지는 유효할 듯하다. 이처럼 불리한 여건에서 치러질 자유주의를 지키기 위한 첫 전투인 2020년 4월의 총선까지 남은 시간은 1년4개월이다. 목표는 하한선을 집권 세력의 개헌시도 저지에 필요한 의석 확보에, 적극적으로는 야권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는데 두고 각오를 다져야 한다.

정치도 시민단체 활동도 해 본 경험이 없는 일반인들이 할 수 있는 행동은 별로 없어 보인다. 다만 한 가지 고무적인 현상은, 역설적이지만, 현 정권의 경제정책의 부정적 효과가 빠른 속도로 나타나고 있어 여론을 반전시킬 수 있는 소재가 된다는 사실이다. 작년 대선에서는 반자유주의 세력의 분노 마케팅에 휩쓸려 잘못된 선택을 했던 주변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이다. 반자유주의자들의 말이 아니라 정책과 행동으로 보여준 그들의 실체를 보고 다음 총선에 임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 같은 일말이다. 설득하려 하지 말고 스스로 깨닫도록. 그것도 지난 실수의 책임을 추궁하는 것으로 비쳐 그들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렇게 자유주의 지지 세력의 외연을 젊은 세대로 확장하는 일이 우선이다. 그러고 나서 총선이 가까워 오면, 야권이 분열로 자멸하는 실수를 막는 일에 나서야 한다. 야권 후보 난립으로 반자유주의 후보에게 승리를 거저 바치는, 교육감 선거에서 누누이 보아온 고질병이 도지지 않도록.

김우택 한림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