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뮤지컬

[B그라운드] ‘프레스코화’ 앙쥴랭 프렐조카쥬 “벽화 너머로! 관객과 함께 하는 여행”

‘프레스코화’의 안무가 앙쥴랭 프렐조카쥬(가운데)와 벽 속 여인 클라라 프리셸(왼쪽), 벽 속으로 들어가는 남자 로랑 르 갈(사진제공=LG아트센터)“우리 삶에는 이해 못할 일들로 가득해요. 그리고 동화나 설화는 시대를 이야기하는 또 다른 방식이죠.”중국 기담집 ‘요재지이’ 중 ‘벽화’를 모티프로 한 ‘프레스코화’(11월 1~3일 LG아트센터)로 한국을 찾은 안무가 앙쥴랭 프렐조카쥬(Angelin Preljocaj)는 10월 31일 오전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기자들을 만나 설화나 동화를 바탕으로 작품을 꾸리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그는 ‘프레스코화’의 원작인 ‘벽화’를 비롯해 설화, 동화, 종교적 이야기의 독창적 재구성, 아름다운 시퀀스 창조, 서사에 대한 탁월한 해석력, 세밀한 내면묘사, 촘촘한 스토리텔링 등으로 무장한 작품들을 선보여 왔다.그 이유에 대해 프렐조카쥬는 동화 ‘백설공주’를 변주한 ‘스노우 화이트’를 예로 들어 “현대와 연관시킨다면 4, 50대 여인들이 본인의 아름다움, 젊음을 얘기하는 것들이 설화나 동화로 연관되는 지점”이라고 설명했다.‘프레스코화’의 안무가 앙쥴랭 프렐조카쥬(사진제공=LG아트센터)그는 ‘프레스코화’ ‘스노우 화이트’를 비롯해 문학 거장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신약성서에 기록된 예수 탄생의 일화를 다룬 ‘수태고지’, 석가모니의 해탈 여정 ‘싯타르타’, 성경 마가복음 14장 22절 ‘이것은 나의 몸이다’를 기초로 한 ‘MC 14/22’ 등으로 20세기 이후 프랑스의 가장 중요한 안무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지금과 맞닿은 16세기 이야기 “오늘날 점점 더 중요해지는 가상현실의 주제에 연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16세기 것이지만 요즘 이야기, 현대적인 면을 가진 오래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흥미로웠습니다.”프렐조카쥬는 중국의 설화 ‘벽화’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전하며 “테마적으로 ‘프레스코화’는 가상현실, 요즘 젊은 층이 즐기는 ‘포켓몬 고’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며 “존재하지 않는 캐릭터를 좇는 가상현실과 게임적 측면이 젊은 층에게 접근성을 가진 작업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프레스코화’는 파리의 시어터 드 라 빌(Theatre de la Ville)에서 젊은 관객들을 위한 새로운 발레 작품을 만들어 달라는 의뢰를 받아 꾸린 2017년 작품이다. 이에 대해 프렐조카쥬는 “프랑스는 젊은 관객들이 현대무용에 관심이 많다. 실질적으로 국장 내 점유율 중 젊은 관객 비율이 높은 편”이라며 “이 작품의 음악을 그룹 에어(Air)의 니콜라스 고딘에게 요청했다. 그의 음악을 좋아하지만 무용은 잘 모르는 팬들을 유입해 확장하는 방식”이라고 밝혔다.‘프레스코화’는 주효렴과 맹룡담, 발길이 닿는 대로 움직이는 젊은 여행자들이 오래된 절 한쪽 벽의 그림 속 여인에 매혹돼 빨려 들어가 겪게 되는 이야기다.앙쥴랭 프렐조카쥬의 ‘프레스코화’ⓒJean-Claude Carbonne(사진제공=LG아트센터)“드라마의 틀은 설화를 따르지만 춤은 움직임이라는 언어에 맞게 좀 더 시적으로 표현됩니다. 이야기는 감정을 느끼는 것이고 내러티브가 없는 편이어서 상징으로 많이 대체돼 있죠. 듀오댄스는 사랑이야기, 그룹댄스는 그 마을의 분위기와 의식적인 면을 많이 보여주고 있어요. 황금 갑옷을 입은 장군 장면은 상징적인 발레 신이죠.”이어 “등장인물들을 미니멀하게 갈 수도 있었지만 벽화 뒤의 또 다른 세계를 상징할 수 있는 그룹의 존재가 이야기를 풍부하게 한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프렐조카쥬는 동양적 이미지와 미장센에 대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머리카락이었다. 동양적인 캘리그라피, 붓글씨에서 영감을 받는 상징으로 이 작품을 관통한다”고 부연했다.span style="font-weight: normal;"‘프레스코화’ 벽 속 여인 클라라 프리셸(사진제공=LG아트센터)◇벽화 속 여인, 벽화로 들어간 여행자 그리고 안무가 프렐조카쥬“벽화 속 여인이 억압됐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남자가 자신의 세계에 들어와 사랑하다 떠난 후 혼자 남았을 때 자유를 얻었다고 생각합니다.”벽 속 여인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 무용수 클라라 프리셸(Clara Freschel)은 “무용은 움직임으로 표현하는 작업이다. 그 움직임 속에서 무용수로서, 벽 속 여성으로서 모든 것을 찾아가는 여정”이라며 “프렐조카쥬가 원하는 정확한 에너지, 형태 등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연기했다”고 밝혔다.무용수 로랑 르 갈(Laurent Le Gall)은 자신이 표현하는 벽화 속으로 들어간 남자에 대해 “작은 제스처로도 많은 것을 전달하는 역할이고 ‘프레스코화’는 섬세하고 시적인 작품”이라고 소개했다.“부드러운 면과 강렬한 면을 다 가지고 있죠. 듀오로 이뤄지는 사랑 신은 부드러운 흐름과 둥글게 흘러가는 면을 강조하죠. 반면 현실 세계로 돌아왔을 때는 환상의 폭력성과 강렬함이 강조되죠.”프렐조카쥬는 정확하고 섬세한 안무가다. 그는 “무용은 몸의 언어로 전달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디렉팅을 하는 편”이라고 스스로의 안무 스타일을 전하며 “글을 쓰는 작가가 세세하게 단어를 선택하듯 저 역시 사랑, 자유 등을 정확하게 표현한다. 동시에 어떤 부분에서는 무용수들과 함께 애기하며 찾아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앙쥴랭 프렐조카쥬의 ‘프레스코화’ⓒJean-Claude Carbonne(사진제공=LG아트센터)프렐조카쥬의 말에 로랑은 “이번 작품을 통해 즉흥적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흥미로운 경험이었다”며 “앙쥴랭이 무용수들의 제안을 빠르게 잡아내 안무로 구성하고 만들어 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이것 그가 가진 뛰어난 능력”이라고 부연했다. 클라라 역시 “앙쥴랭과 작업하다 보면 움직임의 강렬함을 느끼게 된다”며 “천재와 작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을 보탰다.“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그가 가진 몸 자체죠. 무용수에게 즉흥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여지를 주기도 하지만 그가 가진 몸의 움직임에서 특별함이 느껴지거든요. 양쥴랭이 가진 리듬감과 밀도는 대단해요. 연습을 하다보면 끝까지 밀어붙이곤 하는데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죠. 하지만 그 최대치 혹은 한계를 넘어서는 경험을 하게 돼요.” ‘프레스코화’ 벽 속으로 들어가는 남자 로랑 르 갈(사진제공=LG아트센터)클라라와 로랑의 말에 프렐조카쥬는 “창작을 할 때마다 무용수들이 새로운 것을 만들게 도와준다”며 “작품에 전념하고 집중하는 배우들에 저를 투영하게 되고 영감을 받게 된다”고 밝혔다.“무용수들이 뮤즈와도 같아요. 창작 때뿐 아니라 이미 오래도록 공연된 레퍼토리 작업을 할 때도 그렇죠. 20여전 전에 만들어진 작품이라도 지금의 무용수들과 함께 하면 현대적 해석과 에너지, 감성이 나오거든요. 예전 작품이지만 현재성을 가지는 흥미로운 과정이죠.”◇안무가 프렐조카쥬와 함께 하는 벽화 너머 세계로의 여행 ‘프레스코화’의 안무가 앙쥴랭 프렐조카쥬(사진제공=LG아트센터)“저는 ‘프레스코화’처럼 사진 한장에 발레에 빠져들었어요. 친구에게 빌린 책에 있던 발레리노 로둘프 누레예프(Rudolf Nureyev) 사진에 매료됐죠. 당시 전 유도를 배우고 있었는데 유도복을 입은 채 발레 클래스에 갔죠.”벽화 속 여인에 매료돼 그 속으로 들어갔던 남자의 이야기 ‘프레스코화’처럼 안무가 프렐조카쥬는 그렇게 탄생했다. 그는 안무가로서 가장 필요한 덕목에 대한 질문에 “대답은 간단하고 아름다울 것”이라며 말문을 열었다.“저에게 필요한 건 몸과 시간과 건강이에요. 이것만 있다면 아름답고 미스터리한 순간을 찾아갈 수 있죠. 몸은 굉장히 유일하고 특별한 것입니다. 종종 잘못다루기도 하지만 무용수들과 작업하면서 그들의 몸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생각해 내죠. 처음 구상한 아이디어보다 한발 더 멀리 나아간 결과물을 만들게 되죠.”그리곤 “첫 아이디어보다 멀리 나가지 못했다면 실패라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이며 “사진 한 장으로 발레와 무용에 빠져들었지만 단 한번도 후회한 적은 없다. 내 인생 자체가 그 춤에서 나왔기 때문”이라고 밝혔다.“관객 여러분께 함께 여행을 하자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벽화를 넘어서는 순간 다른 세계, 다른 현실이 펼쳐질 것이고 다른 코드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춤을 표현되는 곳으로 관객을 데리고 가는 게 제 작업이죠. 보통은 한 나라의 한 도시에서 공연을 해요. 하지만 이번엔 서울과 대전, 부산까지 가게 돼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기차로 이동할 건데 영화 ‘부산행’처럼 마지막 기차를 타게 될 것 같아요.”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19-11-01 15:00 허미선 기자

정희태, ‘미쓰리’ 이어 연극 ‘독심의 술사’-웹드 ‘구해줘 감대리’까지 열일 행보

tvN ‘청일전자 미쓰리’에서 열연 중인 배우 정희태가 연극 ‘독심의 술사’에 이어 웹드라마 ‘구해줘 감대리’의 출연을 확정하며, 무대와 브라운관을 넘나드는 활약을 예고했다. 11월 1일 개막하는 ‘독심의 술사’는 ‘톡톡’ ‘앙리할아버지와 나’ 등에 참여했던 이해제 연출이 대본과 연출을 맡은 작품으로, 지독한 의심병 환자인 남편과 과거를 철저히 숨기는 아내가 다소 엉뚱하지만 재기발랄한 독심술사에게 의뢰하면서 벌어지는 흥미진진한 심리 밀당전을 유쾌하게 풀어낸 뉴트로 낭만 코미디다.정희태의 연극 복귀는 2016년 연극 ‘취미의 방’ 이후 약 3년 만이다. ‘취미의 방’에서 고서(古書) 수집이 취미인 미즈사와로 분해 코믹열연으로 관객의 마음을 흔들었던 정희태는 ‘독심의 술사’에서 찰나의 생각까지 족집게처럼 알아맞히는 독심술사 나지광 역으로 합류하면서 재미를 더할 예정이다.뿐만 아니라 정희태는 11월 초 방송되는 OBS 웹드라마 ‘구해줘 감대리’에서 남부장 역으로 분해 열연을 이어간다.‘구해줘 감대리’는 만년 ‘을’의 인생에 지친 직장녀 감정인(정유민 분)이 자신의 감정을 꾹꾹 억누르며 사는 세상의 모든 을(乙)들을 위한 ‘은밀한 반란’ 이야기를 다루는 드라마다. 지난 3월 한국전파진흥협회 ‘2019년도 지역?중소방송 콘텐츠 경쟁력 강화’ 프로그램 제작지원 사업으로 선정되어 주목을 받은 바 있다.정희태가 연기하는 남부장은 어느 회사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현실 상사로, 감대리의 회사 생활에 다양한 고비들을 선사하며 재미와 공감을 전달할 예정이다.특히 정희태는 앞서 칸 국제영화제(2018) 쇼트필름 비경쟁부문 초청작 ‘나들이’에서 부부로 연기호흡을 맞췄던 이승연과 ‘구해줘 감대리’를 통해 또 한 번 부부로 만나, 찰떡 연기호흡을 자랑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기대를 높이고 있다.드라마와 영화 등 영역을 가리지 않는 호연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는 정희태는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라이프’ ‘흉부외과’ ‘자백’ 영화 ‘어린 의뢰인’ ‘진범’ 등의 작품에서 신스틸러로 활약하면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연기파 배우다.현재 tvN 수목드라마 ‘청일전자 미쓰리’에서 라인 타기의 귀재이자 처세술의 달인 TM전자 황지상 차장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치고 있다.한편 ‘구해줘 감대리’는 오는 11월 초에 유튜브, 네이버TV 등 온라인 플랫폼에서 방영되며, 연극 ‘독심의 술사’는 11월 1일부터 30일까지 동양예술극장 2관에서 공연된다.오수정 기자 crystal@viva100.com

2019-10-31 16:57 오수정 기자

'강렬 악역' 온다…뮤지컬 '위윌락유' 콘셉트 포토 '시선 집중'

영국 록밴드 퀸의 음악으로 이뤄진 뮤지컬 '위윌락유(We Will Rock You)'의 '킬러퀸', '카쇼기' 콘셉트 포토가 공개돼 눈길을 사로 잡는다.'위윌락유(We Will Rock You)'는 퀸의 주옥 같은 명곡 24곡을 짜임새있게 스토리텔링한 뮤지컬이다. 세상의 변화를 도모하며 혁명을 주도하는 '갈릴레오', '스카라무슈'와 세상을 통제하는 '킬러퀸'의 대립이 메인 스토리이다. '위윌락유' 제작사 엠에스컨텐츠그룹은 31일 주인공들을 위협에 빠뜨리는 '킬러퀸'과 '카쇼기' 역의 콘셉트 포토를 공개했다. 킬러퀸 역에는 서문탁, 김나윤이 캐스팅됐고, 카쇼기 역은 김종서, 최수형, 정상윤이 소화할 예정이다. 탄탄한 연기력과 뛰어난 가창력을 겸비한 배우들이 선보일 '위윌락유' 속 모든 것이 통제된 미래의 세계가 어떤 모습일지 기대감을 높인다.킬러퀸은 한때 지구라 불렸던 행성 아이플래닛의 무자비한 지배자로, 전세계적인 기업이자 모든 라이브 음악의 진압의 원인이 되는 글로벌소프트의 책임자다. 킬러퀸은 권력에 미쳐있으며, 냉정할 정도로 굳센 인물이다. 또 카쇼기는 킬러퀸의 수하로 모든 독창적이거나 창의적인 음악적 생각들을 없애고, 보헤미안의 뒤를 쫓는 일을 한다. 그에게 잡히면 '라이의 7개 바다(Seven Seas of Rhye)를 건너 잊혀진 시대로 보내진다.공개된 콘셉트 포토에서 '킬러퀸' 역의 서문탁과 김나윤은 레오파드 패턴의 의상과 강렬한 스모키 메이크업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또 그의 수하 '카쇼기' 역의 김종서, 최수형, 정상윤은 딱 떨어지는 수트핏에 선글라스, 그리고 독특한 메이크업으로 카쇼기의 냉정함을 엿볼 수 있다. '위윌락유(We Will Rock You)'는 영국의 각본가 벤 엘튼이 시나리오를 만들고 2002년도에 런던에서 초연했다. 세계 순회 투어 17개국에서 1,500만명 이상이 관람한 대형 뮤지컬이다. 해외에서 호응을 얻은 뮤지컬인 만큼 국내에서 새롭게 캐스팅된 배우들이 어떻게 한국의 '위윌락유'를 재현해 낼지 관심이 크다. 12월에 막을 올릴 한국에서의 '위윌락유(We Will Rock You)'는 잠실 종합운동장 문화광장에 위치한 '위윌락유' 전용 공연장인 로열씨어터에서 공연 예정이다. '위윌락유'만을 위한 전용 무대시설 등이 공연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줄 것으로 기대된다.김용준 기자

2019-10-31 11:17 김용준 기자

[B그라운드]모차르트 시대의 풍자와 냉소? 어쩌면 지금! 여기, 우리! 오페라 ‘돈 조반니’

오페라 ‘돈 조반니’(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수천명의 여자들을 유혹하거나 욕보이고도 죄책감이라곤 없다. 같은 여자를 수차례 유혹하는가 하면 결혼식의 신부를 납치해 농락한다. 자신에게 상처 입은 여자의 시녀를 유혹하기 위해 자신의 시종과 옷을 바꿔 입고 다시 한번 여자를 상처입힌다.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의 오페라 ‘돈 조반니’(Don Giovanni, 10월 30~11월 2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는 당시 타락했던 귀족들, 신분제도의 부조리, 부패된 사회상 등을 반영해 풍자한다.‘피가로의 결혼’ ‘코지 판 투테’와 더불어 다 폰테 3부작 중 하나로 모차르트와 성직자 출신의 이탈리아 대본가 로렌초 다 폰테(Da Ponte, Lorenzo)가 호흡을 맞춘 작품이다.오페라 ‘돈 조반니’(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프랑스 대혁명 2년 전인 1787년 프라하에서 초연된 자품으로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바람둥이 돈 조반니(한규원·정일헌 이하 조반니, Don은 귀족들에 붙이는 호칭, 여자 귀족 앞에는 Donna를 붙인다)를 비롯해 시종 레포렐로(손혜수·심기환), 귀족 여자 돈나 엘비라(정주희·오희진), 조반니의 침입으로 아버지 기사장(손철호)를 잃은 돈나 안나(이상은·권은주)와 약혼자 돈 오타비오(허영훈·선태준), 결혼식장에서 납치된 시골처녀 체를리나(강혜정·손나래)와 그의 남편 마제토(김경천) 등이 등장한다. 여자들을 희롱거리로 여기면서도 반성이라고는 할 줄 모르는 조반니, 그 주인의 악행에 분노하면서도 금화 3닢에 뒤치다꺼리를 마다하지 못하는 시종, 잇달아 유혹에 넘어가는 여자들, 끊임없이 덮치는 분노와 또 다른 피해로 상처투성이가 된 피해자, 여자를 소유물로 여기는 듯한 남자들 등이 끌어가는 프랑스 혁명 발발 직전의 이야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대를 닮은 풍경이기도 하다.모차르트 시대의 풍자와 냉소적인 시각으로 무장한 ‘돈 조반니’에 대해 이경재 예술감독은 “바람둥이 조반니의 악행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 전개 속에는 주인공 외에도 7명의 인물들이 함께 한다”며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들은 각기 다르지만 그들 모두는 삶의 주인공”이라고 설명했다.오페라 ‘돈 조반니’(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조반니 외의 다른 인물들이 그에 가리지 않고 저마다의 목적이 무대 위에서 보여지길 바랐습니다. 타이틀롤인 조반니의 짧은 아리아 두곡 외에 다른 등장인물들의 아리아가 10여곡이 넘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생각합니다.”정의롭든 부조리하든 사회 현상은 한 사람에 의해서 불거지지 않는다. 실행하는 이가 있고 적극 동조하거나 보고도 못본 척 눈감는 혹은 이해관계에 얽힌 조력자들이 있고 피해자들이 있다. 그 역학관계는 당시 뿐 아니라 지금 이 시대에도 유효하게 작용한다. 모차르트 시대의 풍자와 냉소적인 시각으로 무장한 ‘돈 조반니’가 지금 사람들에게 던지는 경고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19-10-30 19:00 허미선 기자

유회승이 해석한 퀸 음악은?…뮤지컬 '위윌락유', 기대감 'UP'

록밴드 퀸의 음악으로 이뤄진 뮤지컬 '위윌락유(We Will Rock You)'에 밴드 엔플라잉의 유회승이 전격 합류했다. '위윌락유(We Will Rock You)'는 퀸의 주옥 같은 명곡 24곡을 짜임새있게 스토리텔링한 뮤지컬이다. 세상의 변화를 도모하며 혁명을 주도하는 '갈릴레오', '스카라무슈'와 세상을 통제하는 '킬러퀸'의 대립이 메인 스토리이다. 유회승은 가수 정동하와 함께 남자 주인공 갈릴레오 역을 맡았다. 갈릴레오는 사회 부적응자이지만 보헤미안들이 기다려온 꿈의 인물로 그들을 수백 년 동안 숨겨져 있었던 곳으로 안내하게 되는 역할이다. 유회승은 가수 정동하와 함께 갈릴레오 역을 맡아 '위윌락유'의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전망이다.특히 갈릴레오 역의 정동하와 유회승은 KBS2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에 출연해 시청자들에게 한편의 드라마와 같은 무대들로 깊은 감동을 선사했던 가수들이다. 가창력은 물론, 감정 전달까지 탁월한 두 사람이 '위윌락유'에서는 관객들에게 어떤 감동을 선물할지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유회승의 합류와 함께 남녀 주인공들의 콘셉트 사진도 공개됐다. 보헤미안들의 꿈꾸던 인물 갈릴레오 역의 정동하와 유회승은 가죽 재킷으로 야성적인 매력을 배가 시키고, 한 손에는 일렉기타를 붙잡아 자유를 갈망하는 보헤미안 리더로서의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또 날카로운 재치와 걸크러쉬 매력으로 갈릴레오를 긴장하게 만드는 스카라무슈 역의 샤넌과 임소라는 빨간 가죽 재킷에 강렬한 눈화장, 다양한 액세서리로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두 사람도 어깨에 일렉트로닉 기타를 매고 음악을 향한 갈망도 표현하고 있다. 이 밖에 무자비한 킬러퀸 역할에 서문탁, 김태우, 김나윤이 캐스팅됐고, 카쇼기 역할에 김종서, 최수형, 정상윤. 버디 역에 서범석, 홍록기, 김재만. 비욘세 역에 정찬우, 임춘길, 안태준. 오즈역에 백주연, 오진영. 아레사 역에 최지원, 채시현 등 뮤지컬계의 쟁쟁한 배우들과 가창력을 자랑하는 보컬리스트들이 '위윌락유'에 캐스팅돼 많은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위윌락유(We Will Rock You)'는 영국의 각본가 벤 엘튼이 시나리오를 만들고 2002년도에 런던에서 초연했다. 세계 순회 투어 17개국에서 1,500만명 이상이 관람한 이력이 있다. 해외에서 호응을 얻은 뮤지컬인 만큼 국내에서 새롭게 캐스팅된 배우들이 어떻게 한국의 '위윌락유'를 재현해 낼지 관심이 크다. 12월에 막을 올릴 한국에서의 '위윌락유(We Will Rock You)'는 잠실 종합운동장 문화광장에 위치한 '위윌락유' 전용 공연장인 로열씨어터에서 공연 예정이다. '위윌락유'만을 위한 전용 무대시설 등이 공연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줄 것으로 기대된다.김용준 기자

2019-10-30 09:40 김용준 기자

[B코멘트] 뮤지컬 ‘팬레터’ 연습실에서 온 편지! 김해진 김재범·김경수, 세훈 이용규·백형훈·윤소호, 히카루 김수연

뮤지컬 ‘팬레터’ 연습실 공개현장의 배우들(사진=허미선 기자)11월 7일 개막을 앞둔 뮤지컬 ‘팬레터’(2020년 2월 2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가 연습실을 공개했다. 25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자유연습실 스튜디오A에서 공개된 연습 현장에는 세훈 역의 이용규·백형훈·문성일·윤소호, 김해진 김재범·김종구·김경수, 히카루 소정화·김히어라·김수연, 이윤 김지휘, 이태준 양승리·임별, 김수남 이승현·장민수, 김환태 권동호·안창용이 참석했다.이들은 ‘유고집’(김종구·이용규·김히어라·김지휘·임별·이승현·안창용), ‘그녀의 탄생과 죽음’(이용규·김지휘), ‘아무도 모른다’(김종구·이용규·김히어라), ‘눈물이 나’(김경수·백형훈·김지휘·임별·이승현·안창현), ‘그녀를 만나면’(김경수·백형훈), ‘거짓말이 아니야’(김경수·윤소호·소정화), ‘신인탄생’(윤소호·김수연·김지휘·양승리·장민수·권동호), ‘별이 반짝이는 시간’(김재범·문성일·김수연), ‘고백’(김재범·문성일)을 시연했다.뮤지컬 ‘팬레터’ 연습현장. 김해진 역의 김종구(사진=허미선 기자)뮤지컬 ‘팬레터’는 천재 소설가 김해진과 그를 동경하는 18세 소설가 지망생 정세훈, 해진과 소통하기 위해 세훈이 만들어낸 가상의 여류소설가 히카루, 칠인회 멤버 이윤, 김수남, 이태준, 김환태 등이 풀어가는 미스터리 판타지다. 천재소설가 이상과 김유정 그리고 경성시대 문인들의 모임인 ‘구인회’에서 모티프를 딴 작품으로 2015년 우수 크리에이터 발굴지원 사업 중 하나인 뮤지컬 공모전 ‘글로컬 뮤지컬 라이브’ 최우수 선정작이다.뮤지컬 ‘팬레터’ 연습현장(사진=허미선 기자)뮤지컬 ‘아가사’ ‘로기수’,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나 의문의 사건’, ‘모범생들’ ‘히스토리보이즈’ 등 김태형 연출과 ‘맘마미아’ ‘명성황후’ ‘러브레터’ 등의 김길려 음악감독이 극을 꾸렸다.2016년 초연부터 김해진과 세훈, 히카루로 분하고 있는 김종구·이규형, 문성일, 소정화·김히어라를 비롯해 김재범·김경수, 이용규·백형훈·윤소호, 김수연이 각각 김해진, 세훈, 히카루로 새로 합류했다.2016, 2017년 연달아 공연되며 사랑받았던 작품으로 김해진 김재범·김경수, 세훈 이용규·백형훈·윤소호, 히카루 김수연이 ‘브릿지경제’에 3연에 새로 합류한 소감을 전해왔다.뮤지컬 ‘팬레터’ 연습현장. 김해진 역의 김재범(사진=허미선 기자)한줄기 빛, 그럼에도 불구하고…해진 김재범 “해진은 어둠뿐인 인생에 한줄기 빛이 돼준 사람을 만났지만 그걸 받아들이고 인정하기엔 용기가 부족했던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뮤지컬 ‘팬레터’ 연습현장. 김해진 역의 김경수(사진=허미선 기자)작가의 손…해진 김경수 “새로 합류하게 돼 일단 너무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너무 훌륭하신 분들과 함께 하는 작업이라 늘 기쁘게 작업 중입니다! 이미 잘 만들어진 작품이고 좋은 캐릭터이기에 대본과 연출님 그리고 음악감독님의 디렉션을 잘 따르면서 캐릭터에 대한 제 생각을 잘 녹여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김해진의 작가로서의 고민과 작가의 손에 의미를 많이 부여해볼까 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뮤지컬 ‘팬레터’ 연습현장. 세훈 역의 이용규와 히카루 김히어라(사진=허미선 기자)마음에 닿을 때까지…세훈 이용규 “좋은 스태프들, 배우분들이랑 같이 작업하면서 하루하루 열심히 공부하고 배우고 있습니다. 모든 공연이 그렇듯 혼자 하는 공연은 없기에 연습하는 순간 상대방에게 집중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너무 잘 만들어진, 너무나도 사랑을 많이 받아온 작품이라 우선은 작품에 누가 되지 않도록 연습해서 공연하는 게 목표죠. 시간이 날 때마다 대본을 보면서 여러 상황 속 세훈이의 마음을 많이 들여다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뮤지컬 ‘팬레터’ 연습현장. 세훈 역의 백형훈(사진=허미선 기자)특별하지 않아도…세훈 백형훈 “히카루와는 서로 진심으로 아껴주고 해진 선생님은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마음이라면 제가 뭔가를 특별히 하지 않아도, 아니 하지 않는 것이 관객분들께 더 큰 감동을 드릴 것이라 믿습니다. 열심히 준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뮤지컬 ‘팬레터’ 연습현장. 왼쪽부터 세훈 역의 이용규, 히카루 김히어라, 세훈 백형훈, 히카루 소정화, 세훈 문성일, 히카루 김수연, 세훈 윤소호(사진=허미선 기자)문학도 그리고 그 안의 갈등들…세훈 윤소호 “많은 분들에게 사랑받은 ‘팬레터’라는 작품에 참여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세훈이 캐릭터를 기존 선배님들이 잘 구축해주셔서 많은 조언과 더불어 저만의 캐릭터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준비된 문학도로서의 모습 그리고 제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들에 중점을 두고 연습 중입니다.” 뮤지컬 ‘팬레터’ 연습현장. 히카루 역의 김수연(사진=허미선 기자)뜨겁고 순수한…히카루 김수연 “언니들이 표현하신 히카루가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아서 처음에는 잘해내야지 하는 부담이 컸던 것 같아요. 그런데 또 저라는 사람은 다른 것들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간 구축된 히카루에 제가 가진 것들을 녹여 자유롭게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히카루는 세훈이의 문학적 욕망에서 태어난 인격이고 그런 히카루가 가질 수 있는 문학에 대한 뜨겁고 순수한 열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드리고 싶어요! 열심히 즐겁게 연습하고 있으니 기대해주세요!”뮤지컬 ‘팬레터’ 연습현장. 김해진 역의 김재범과 세훈 문성일(사진=허미선 기자)뮤지컬 ‘팬레터’ 연습현장. 김해진 역의 김경수(왼쪽)와 세훈 백형훈(사진=허미선 기자)뮤지컬 ‘팬레터’ 연습현장. 세훈 역의 문성일(사진=허미선 기자)뮤지컬 ‘팬레터’ 연습현장. 김해진 역의 김종구(왼쪽)와 히카루 김히어라(사진=허미선 기자)뮤지컬 ‘팬레터’ 연습현장의 칠인회. 왼쪽부터 이윤 역의 김지휘, 이태준 양승리·임별, 김수남 이승현·장민수, 김환태 권동호·안창용(사진=허미선 기자)글·사진=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19-10-26 22:30 허미선 기자

[B사이드] 뮤지컬 ‘레베카’ 새 막심, 자칭 ‘노력 중독자’ 카이의 “여전히 진행 중인 공상노트”

뮤지컬 ‘레베카’ 막심 드 윈터 역의 카이(사진제공=EMK뮤지컬)“캐릭터를 설득시키고 설득당하면서 이해하는 과정을 겪고 있어요.”뮤지컬 ‘레베카’(11월 16~2020년 3월 5일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 새로운 막심으로 합류한 카이는 “지금까지의 너무 멋진 배우들, 선배들과는 또 다른 막심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뮤지컬 ‘레베카’는 영국의 여류 소설가 데프니 듀 모리에(Daphne Du Maurier)의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엘리자벳’ ‘모차르트!’ ‘마리 앙투아네트’ 등의 작가·작사가·작곡가 콤비 미하엘 쿤체와 실베스터 르베이가 넘버를 꾸렸다.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1940년에 로렌스 올리비에, 주디스 앤더슨, 조안 폰테인 등과 동명 영화로 만들어 사랑받았던 ‘레베카’는 무대 위에 등장하는 세 사람과 보이지 않는 한 사람에 의해 진행되는 서스펜스 스릴러다.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고 많은 이들의 입으로만 전해지는 레베카의 실종 혹은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극으로 2013년에 초연된 후 2014년, 2016년, 2017년에 이어 다섯 번째 시즌을 앞두고 있다.카이는 지난 24일 단독 콘서트 ‘서울클래식’으로 관객들을 만났다(사진제공=EMK엔터테인먼트)레베카의 남편 막심 드 윈터(류정한·엄기준·신성록·카이, 이하 시즌합류·가나다 순), 그에 첫눈에 빠져들어 맨덜리 저택에 입성한 화자(話者) 나(이지혜·민경아·박지연), 레베카에 대한 집착으로 기묘한 기운을 풍기는 집사 댄버스 부인(신영숙·옥주현·장은아·알리) 등 개성 넘치는 인물들이 탄탄한 만듦새에 안정성과 재미를 더 한다.◇채우기보다 덜어내기…카이만의 막심을 찾아서“손댈 곳이 없는 완성도로 동선 등이 바이블처럼 맞춰져 있어요. 그 안에서 배우만의 디테일과 색, 변화점을 찾아야하는데 아무리 창작성을 발휘해도 다른 것을 위한 다른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그게 가장 힘든 것 같아요. 완벽한 짜임새 안에서 자율성을 찾는 과정이 굉장히 디테일하고 쉽지 않는 작업이죠.”뮤지컬 ‘레베카’에 임하면서 어려운 점에 대해 털어놓은 카이는 “왕용범 연출님처럼 같은 역할을 하는 배우들이 서로의 런스루(공연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하는 연습)를 고의적으로 못오게 하는 경우도 있다. 서로 다른 캐릭터를 만들어가길 원하기 때문”이라고 전혀 다른 캐릭터 구축의 예를 들었다.이어 “극장 들어가서 다른 벤허들을 보면서 놀랐다”며 “민우혁, 한지상 배우의 벤허를 모니터하면서 저렇게까지 다를 수 있나 싶었다”고 덧붙였다. 이에 새로운 막심으로‘레베카’에 합류한 카이로서는 ‘전혀 다른 카이만의 막심’을 찾는 만만치 않은 과정을 보내고 있다.“어떤 뮤지컬을 하든, 삶을 살아가면서도 마찬가지인데 채워 넣기보다 덜어내기 혹은 비워 놓는 게 가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어렵죠. 막심을 하면서 ‘나’ 혹은 ‘댄버스 부인’ 등과 본의 아닌 경쟁 구도가 생겨요. 저는 이들에게 지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이들을 돋보이게 할 수 있을지를 고민 중이죠. ‘맥시멈’은 이들과 하나로 연합해 폭발력 있게 극을 가져갈 때의 상태 같거든요. 카이만의 막심 보다는 유기적으로 엮여서 ‘레베카’라는 작품을 만들어가고 싶어요.”◇‘엑스칼리버’부터 함께 하는 엄기준과 신영숙뮤지컬 ‘레베카’ 출연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막심 드 윈터 역의 엄기준, 덴버스 부인 신영숙, 막심 신성록, 덴버스 부인 장은아·알리(사진제공=EMK뮤지컬)“(엄)기준이 형은 저에게 있어서는 연기 지침서 같은 사람이에요. 형이 가지는 무대에서의 연기적 마음가짐을 통해 많이 배우는 좋은 시간이 될 것 같아요. 신영숙 누나는 ‘벤허’ 마지막 공연을 보러와 주셨어요. 끝나고 ‘(너를 보면서) 나 너무 많이 반성했어’라는 문자를 보내주셔서 몸둘 바를 몰랐죠.”아더왕의 전설을 변주한 뮤지컬 ‘엑스칼리버’를 함께 했고 ‘레베카’로 다시 만난 엄기준, 신영숙에 대해‘최고의 배우’라고 표현한 카이는 “(신영숙의 문자를) 칭찬 겸 잘하라는 격려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누나의 폭발적인 감성과 잘 화합을 이뤄보도록 하겠다”고 각오를 전하기도 했다.“이번 ‘레베카’에서 큰 변화는 없을 거예요. 캐스팅이 바뀜으로서 느껴지는 변화가 가장 크지 않을까 싶어요. 댄버스 부인으로 새로 합류한 알리도 그렇고 저와 상의하면서 연습 중인 신성록 배우가 그렇죠. 페어를 엮어서 골라보는 재미가 있을 것 같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신영숙·장은아 배우의 폭발적인 가창력과 분노를 굉장히 기대하고 있습니다.”◇자칭 ‘뮤지컬 덕후’ 카이 Pick ‘시티 오브 엔젤’ 뮤지컬 ‘시티 오브 엔젤’(사진제공=샘컴퍼니)“영화 ‘유주얼 서스펙트’ 급으로 추리가 안되는 스토리가 ‘레베카’의 장점 같아요. 초연을 보면서 ‘그래서 막심이 죽였다는 거야, 댄버스가 죽였다는 거야’ 싶었거든요.”스스로를 ‘뮤지컬 덕후’라고 칭한 카이는 “전혀 정보 없이 가도 예측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레베카’는 달랐다”며 “처음 보시는 분들은 물론 여러 번 보신 분들도 처음인 것처럼 보실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최근에 본 작품 중에는 ‘시티 오브 엔젤’이 너무 좋았어요. 인터넷 평도, 관객들 반응도 썩 좋지 않았지만 저는 상당히 재밌게 봤죠. 대한민국의 실력 있는 배우들, 스태프들이 풀가동된데다 지금까지 볼 수 없던 연출이었거든요. 한국적 감성의 뮤지컬에 익숙한 분들께는 낯설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저는 그 브로드웨이 감성이 신선했어요. 그 웰메이드 작품에 출연한 박혜나, 강홍석 등 배우들이 극을 잘 이끌어줬다는 생각이 들어요.”◇‘노력중독자’의 쉼 없는 행보, 여전히 진행 중인 공상노트 뮤지컬 ‘레베카’ 막심 드 윈터 역의 카이(사진제공=EMK엔터테인먼트)“제가 늘 쓰는 표현이 있어요. ‘모든 게 뜻대로 되지 않았지만 모든 게 뜻대로 됐다.’ 지금까지의 10년은 산을 오르는 듯한 여정이었어요. 차근차근 오르는 시간들 가운데 간절히 원했던 것들, 하고 싶었던 것들이 있었죠. 그것들이 이뤄지는 시기가 오니 그 10년이 너무 소중해요. 그래서 노력을 끊을 수가 없어요.”스스로를‘노력중독자’라고 표현한 카이는 “꾸역 꾸역 올라오다보니 나와 같은 마음을 겪고 있는 후배들이 있고 내 앞에서 걷고 있는 선배들이 있었다”며 “그들이 너무 소중하고 귀중하고 감사하다”고 털어놓았다.“저는 ‘무대예술은 열심히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야’라는 말, 소위 ‘셀프 칭찬에 속지 않아요. 스스로 가장 자랑스러운 부분이기도 하죠. 열심히 하고 또 열심히, 죽도록 열심히 해야한다고 생각해요.”그리곤 “열심히 하지 않아서 얻지 못한 것은 열심히 한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고 믿는다”며 고 덧붙였다. “팬들과 직업적 소명처럼 챙기는 하루 7~8시간의 잠이 쉼 없는 활동의 원동력”이라고 밝힌 카이는 “해외 진출의 꿈이 아직 ‘공상노트’에 남아 있다”고 귀띔했다.“얼마 전 중국에서 ‘엑스칼리버’를 소개하는 자리에 갔었어요. 그 열기가 정말 대단했죠. 공연이 끝나고 혼자 생각이 많았졌어요. 중국분들은 원래 영웅적인 소설을 좋아하잖아요. 영국의 영웅담에 ‘와호장룡’ 같은 중국적 멜로디에 열광하는 게 아닌가 싶었죠.”이어 “지난해부터 아시아 지역의 많은 무대에 오르다 보니 한국의 뮤지컬 수준이 높다는 걸, 그들이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눈높이가 동경에 가깝다는 걸 체감했다”며 “K팝 뿐 아니라 저 같은 사람이 담당하고 있는 음악을 널리 알리고 싶다는 공상을 멈추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뮤지컬이 크게 활성화되지 않은데다 전국민적인 문화가 아닌 중국에서 한국 뮤지컬을 소개하기 위해 능력을 발휘하고 싶어요. 가능하다면 중국에서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이들에게 지침이 되고 싶은 꿈을 키우고 있죠.”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19-10-26 14:00 허미선 기자

[B사이드] ‘백발의 프로그래머’를 꿈꾸는 연극 ‘킬롤로지’ 김수현이 전하는 전혀 다른 데이비와 폴 그리고 나의 아버지

연극 ‘킬롤로지’ 알런 역의 김수현(사진=강시열 작가)“최근 가장 큰 고민은 ‘킬롤로지’를 끝까지 잘 하는 거예요. 계속 공연을 하다 보면 무뎌지기도 하는 것 같아서 새로운 걸 찾으려고 애써요. 제 나름의 방법은 조사를 조금씩 바꾸는 거예요. ‘했는데’를 ‘했지만’으로 바꾸거나 ‘그때’ 하다가 ‘바로 그때’라는 식으로 알게 모르게 넣고 빼는, 저만 긴장하게 되는 방식이죠.”연극 ‘킬롤로지’(11월 17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아들을 잃은 아버지 알란(김수현·윤석원, 이하 시즌합류 순)으로 분하고 있는 김수현은 3개월여의 공연 동안 새로움을 이어가기 위해 “긴장하지 않거나 논리가 돌아가지 않으면 틀릴 수 있게 만들기도 한다”고 털어놓았다.‘킬롤로지는’ 폭력적인 게임 속 수법대로 살해당한 데이비(이주승·은해성)와 그의 무책임했던 아버지 알런 그리고 게임 킬롤로지 개발사 CEO 폴(이율·오종혁)의 독백으로 미디어 문제, 학교 폭력, 사회 부조리 등을 아우른다. 개인의 삶을 통해 사회 시스템의 문제를 파고드는 게리 오웬 작품으로 2017년 영국 로얄 코트에서 초연됐고 한국에서는 지난해 첫선을 보였다.◇시크한 이주승과 이율,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은해성과 오종혁연극 ‘킬롤로지’(사진제공=연극열전)“초연 때도 그렇고 재연 때도 제일 선배이다 보니 한마디 하는 게 너무너무 조심스러웠어요. 나이나 연차의 차이는 있지만 무대에서는 동등해야할 동료들이니까요. 정말 하나가 돼서 서로를 온전히 받아줘야하니까요. 게다가 배우가 충분히 생각해서 스스로 찾고 깨달았을 때 훨씬 풍성해지거든요. 특히 데이비나 폴에 대해서는 전혀 참견을 안했어요. 해석의 여지가 많은 작품이라 특히 더 조심했죠.”이렇게 전한 김수현은 전혀 다른 데이비와 폴에 대해 전하기도 했다. “(이)주승이와 (이)율이가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고 툭툭 던지는 시크한 데이비와 폴이라면 (은)해성이와 (오)종혁이는 굉장히 진지하고 있는 그대로를 솔직하게 보여주는 데이비와 폴”이라고 설명했다.“배우가 가진 개인적인 성향이나 기질이 다르니 표현은 조금씩 달라지지만 선택한 성향이 그런 것 같아요. 주승이와 율이도 초연과는 미묘하게 달라졌어요. 감정이 깊이까지 표현된다고 할까요. 발랄한 느낌이 강했던 율이의 폴도, 본인의 성향을 반영한 주승이의 데이비도 감정이 깊어졌어요.”◇어쩌면 또 다른 데이비 혹은 폴, 내 아버지에 대한 기억 연극 ‘킬롤로지’ 알런 역의 김수현(사진=강시열 작가)“이 작품을 하다보면 아버지와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나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당연히 저를 너무너무 사랑하셨어요. 하지만 대화도 별로 없고 무덤덤한 가족이었죠. 어머니는 어떻게든 다 같이 많은 것을 하고 싶어 하셨지만 아버지도, 그 아버지를 닮은 아들들도 표현을 잘 못하고 뭘 해도 무덤덤했어요. 참 서툴게도 살았구나 싶어요.”아버지와 가족에 대해 털어놓은 김수현은“데이비가 오랜만에 엉망진창이 된 알란을 만나 아빠에 대해 얘기할 때 저희 아버지가 훅 떠오를 때가 있다”고 토로했다.  “너무 개인적으로 감정에 빠져버리면 진행이 안되니 그럴 때는 일부러 다른 생각으로 감정을 가라앉히곤 하죠. 저희 아버지가 작년에 돌아가셨어요. 대전예술의전당에서 ‘백치’를 공연 중일 때였어요. 열흘 공연 중 중간쯤이었죠.”이어 “친구가 공연장 밖에 대기하고 있다가 저를 태우고 분당 장례식으로 가 밤새 있다가 새벽이면 또 다시 공연장으로 돌아가는 3일을 보냈다”며 “너무 정신이 없으니 슬픈 줄도 몰랐다”고 털어놓았다. 당시 공연 중이던 ‘백치’는 도스토옙스키 작품으로 진실되고 순결한 인간이 시대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모두를 파국으로 몰고 가는 비극이다. 이 작품에서 김수현은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으로 막대한 유산 상속을 받게 된 로고진을 연기했다.“손님이 오시면 절하고 공연은 또 공연대로 해야 하니 긴장을 하고 있었죠. 저는 너무 정신이 없어서 인지를 못했는데 ‘백치’의 제 첫 장면 첫 대사가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도 가족이 알리질 않아서 기차 안에서 하는 하소연이었어요. 저는 당시의 상황과 연결시킬 생각조차 못하고 연기에 집중했었는데 지인들은 너무 불안해하면서 보고 있었다고 하더라고요.”연극 ‘킬롤로지’ 중 아들 데이비 이주승과 아빠 알런 김수현(사진제공=연극열전)그 후로도 경황없이 바쁘게 시간을 보내며 아팠고 심하게 살이 내린 김수현은 “한참이 지났는데도 (아버지를 여읜 감정이) 발동될 타이밍이 없었다”며 “언젠가는 후폭풍이 올 것 같다”고 전했다.“가슴에 꽉 눌러놓고 그냥 완전히 잊은 것처럼 훅 지나갔거든요. 너무 억누르고 있어서 인지를 못하고 있었는데 굉장히 예민해져서 약도 못먹고 그랬죠. 저희 아버지는 성향 상으로는 조용한 소시민에 가까웠어요. 화려하지도, 겉모습이 중요하지도 않는 분이시죠. 대화도 거의 없었고 속 얘기도, 참견도 별로 안하셨어요. 추억도 많지 않아요. 가족여행을 간 적도 없거든요. 그저 막연하게 조각처럼 에피소드들이 있어요. 문득 저를 괴롭게 하는 몇 가지 조각들이죠. 언젠가는 오긴 올 것 같은데 어느 순간에 어떻게 올지 모르겠어요.”그리곤 얼마 전 공연을 끝내고 나오면서 쌍둥이 자매 출판인에게 받은 ‘아버지’라는 책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그는 “아버지에 대해 딸과 아들들이 쓴 글들을 모아둔 책”이라며 “저희 ‘킬롤로지’처럼 지나고서야 생각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소개했다.연극 ‘킬롤로지’ 알런 역의 김수현(사진=강시열 작가)“무관심하게 혹은 아무 생각없이 한 행동들을 돌이켜보는 글들이었어요. 언젠가 공연장에 좀 일찍 도착해 카페에 앉아 한 챕터를 읽었는데 자극적이지도 않은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에서 갑자기 감정이 훅 올라와 덮었어요. 살살 읽어야 겠다 마음 먹었죠.”◇가족이라는 이름…익숙해서 서툰“이 작품을 하면서 ‘아버지가 내 손 좀 잡아주지’ 싶다가도 ‘아니지 내 잘못이지’ 그래요. 자식으로서 핑계라는 것도 너무 잘 알아요.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 옳다며 하나의 길만 열어주고 사사건건 방해하거나 다른 선택은 차단해버리는 부모들도 많잖아요. 저의 부모님은 단 한번도 ‘안돼’라는 경우가 없으셨어요.”이어 “그런 면에서는 혜택을 입은 건데도 돌이켜보면 그래도 인생 선배로 사셨으니 충고라도 해주시던가 위로나 인정, 배려를 좀 해줘서 힘이라도 받았다면 어땠을까 싶다”며 “온전히 혼자 방황하지 않고 충고나 위로, 인정, 배려 등을 받았다면 지금보다 나아졌을까 혹은 망가졌을까 궁금해진다”고 덧붙였다.“저 역시 무덤덤한 집안 분위기를 따라가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TV드라마나 영화 중 식구들이 모여 밥을 먹는 등 화목한 광경이나 시시콜콜한 장면들을 연기할 때 그렇다고 느껴요.”그리곤 “공연이라면 미친 듯이 연습을 해 중화시켜 연기를 할 수 있는데 연습시간이 없는 영화나 드라마는 그런 장면들이 너무 괴롭다”며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문제도 안되는 장면이지만 저는 너무 괴롭고 그 장면을 실제처럼 하려니 또 괴롭다”고 덧붙였다.연극 ‘킬롤로지’ 알런 역의 김수현(사진=강시열 작가)“집중해서 해야하는 연기들은 오히려 마음이 편한데 경험이 없다보니 풀어져야 하는 장면이 너무 힘들어요. ‘이게 뭐라고 이렇게 힘든가’ 자괴감도 들고 지켜보는 사람도 답답하죠. 유산처럼 물려받은 것들이 배우로서의 딜레마 같아요. 제일 풀기도 어렵고 풀리지도 않는. 그래서 ‘킬롤로지’는 사회문제를 다루지만 당연하고 익숙한 가족에게 계속 마음을 써야하고 그 마음을 보여줘야 한다고 얘기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세상을 더 좋게 만드는 백발의 프로그래머를 꿈꾸다“저는 호기심이 엄청 많아요. 그래서 몰래몰래 준비하는 프로젝트나 꿈들이 있어요. 실현 가능성이 없으니 잘 숨겨뒀다가 실현가능해지면 공개하려고요. 그 중 하나가 백발의 프로그래머죠.”몇 가지 꿈 중 하나를 털어놓은 김수현은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관심이 많아서 혼자 틈틈이 공부 중”이라며 “제대로 하려면 2년 정도 집중할 시간이 필요한데 아직 못하고 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꼭 하고 싶어요. 개발하고 싶은 애플리케이션이나 프로그램이 있어서 시작했는데 제대로 공부해서 여러 가지 사회에 필요한 시스템을 개발하고 싶어요. 농민들도, 소비자도 힘들게 하는 지나친 유통과정 등 부조리한 게 너무 많잖아요. 그런 부조리를 프로그램으로 해결하고 싶은 욕망이 있어요. 모든 사람들이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돼 먹고 살 걱정 없이 스스로가 행복한 일,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어요. 언젠간 꼭 도전해볼게요!”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19-10-25 23:53 허미선 기자

[B사이드] 연극 ‘맨 끝줄 소년’의 클라우디오, 맨 앞줄 소년 전박찬과 맨 뒷줄 소년 안창현 “우리 또 만나게 되겠죠?”

연극 ‘맨 끝줄 소년’ 클라우디오 역의 안창현(왼쪽)과 전박찬(사진=강시열 작가)“처음 더블캐스팅을 제안받았을 때는 물음표였다가 (번갈아 무대에 설 사람이) 안창현 배우라는 얘기를 듣고 두 팔 벌려 환영했어요.”연극 ‘맨 끝줄 소년’(11월 17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재연까지 원캐스트로 클라우디오로 무대에 올랐던 전박찬은 새로운 클라우디오 안창현에 대해 이렇게 전했다. 2013년 ‘천국으로 가는 길’에서 남자와 소년으로 한 무대에 올랐던 두 사람은 5년만에 같은 역으로 만났다.스페인 대표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Juan Mayorga)의 동명 작품을 바탕으로 한 ‘맨 끝줄 소년’(12월 1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은 언제나 맨 끝줄에 앉는 소년 클라우디오(전박찬·안창현, 시즌 합류 순)와 문학교사 헤르만(박윤희)의 개인교습을 통해 미묘하게 상상과 현실을 오가며 인간의 욕망과 결핍, 창작욕구 등을 다룬다.연극 ‘맨 끝줄 소년’ 클라우디오 역의 전박찬(사진=강시열 작가)고(故) 김동현 연출, 손원정 드라마터그가 의기투합한 2015년 초연, 2017년 재연에 이어 세 번째 시즌에서도 클라우디오로 함께 하고 있는 전박찬은 새로 합류한 안창현에 대해 “안 지는 오래됐는데 5년 전 작품에서는 주고받는 대사도 없어서 ‘어떤 배우인가’ 생각하는 시간이었다”며 “반면 이번엔 늘 연습실에서, 개인적인 시간을 함께 하며 극에 대해 고민하고 서로 궁금한 것들을 알아가고 있다”고 털어놓았다.◇맨 앞줄 소년 전박찬, 맨 뒷줄 소년 안창현“재연 당시 공연을 볼 때도 그랬고 이번 연습 때도 늘 생각했던 게 저도 늘 맨 끝줄, 정확하게 얘기하면 맨 뒷자리 창가에 앉았어요. 클라우디오처럼 누군가를 보려고가 아니라 제가 안보이니까요.”안창현은 극 중 클라우디오와 비슷한 나잇대의 스스로에 대해 “관찰도 가끔 하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조금 다른 의미의 맨 끝줄 소년이었다”고 회상하며 “이 아이와 다른 점이 있다면 굉장히 밝고 쾌활했고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클라우디오와는 전반적으로 다르지만 스스로 관계의 문을 닫는, 그래서 차갑다는 느낌을 주는 면에서 비슷한 것도 같아요. 저 스스로는 밝으려고 노력하지만 혼자 있을 때는 좀 차가운 면이 있거든요. 클라우디오와는 좀 다른 느낌이지만 사람 관찰은 저도 재미있어요.”연극 ‘맨 끝줄 소년’ 클라우디오 역의 안창현(사진=강시열 작가)그리곤 “한국에서는 맨 뒷줄에 앉는 학생들에 대해 문제아, 일진 등의 이미지가 강한 것 같다. 저 역시 그랬지만 개인적으로는 맨 끝줄이 포근함을 주는 자리, 나만의 공간 같은 느낌”이라며 “사실 제일 안보이는 데는 맨 앞자리”라며 웃었다. “우리나라 선생님들은 맨끝 줄에 있는 사람들을 늘 주시하시잖아요. 그렇다고 늘 시선을 받고 있는 데 대한 불편함은 없었어요. 그 시기가 딱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전 ‘맨 끝줄 소년’을 하면서 옛날 생각이 자꾸 나요.”클라우디오와 닮은 점 그리고 ‘맨 끝줄’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안창현에 전박찬은 “전 중고등학교 내내 맨 앞줄에 앉았다”며 “맨 앞줄에 앉아 있어도 너무 평범해서 아무도 저를 보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연극 ‘맨 끝줄 소년’ 클라우디오 역의 전박찬(사진=강시열 작가)“게다가 말도 없고 내성적이고…존재감이라곤 없었어요. 연극이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보니 지금은 제 안에 있는 아이들(?)이 나오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굉장히 내성적이죠. 어려서는 더 심했어요. 학교에서 선생님이 시키는 건 다 하는 학생이었죠. 절대 선생님께 맞거나 교무실에 불려가 꾸지람을 들은 적도 없었어요.”그리곤 “클라우디오를 만나 청소년기의 저를 떠올리면서 재밌었던 건 저 역시 그 당시에는 아무 것도 재미가 없었다는 사실”이라며 “수학 학원도 열심히 다녔다”고 덧붙였다.“학교를 다니고 애들이 축구하면 축구하고…그 시절에는 연극 보기, 그거 하나만 재밌어 했던 것 같아요. 결국 클라우디오가 글쓰기에 보이는 뜨거움을 보면서 연극을 보려고 교복을 입은 채 대학로를 돌아다니던 시간, 그때 가졌던 열정들이 떠올라요. 그래서 클라우디오를 더 안아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뭔가 하나를 발견했잖아요.”연극 ‘맨 끝줄 소년’ 클라우디오 역의 안창현(왼쪽)과 전박찬(사진=강시열 작가) “연극영화과를 간다고 했을 때 다들 ‘네가?’라고 의아해 하며 보나마나 안될 것이라는 시각이 대부분이었다”는 맨 앞줄 소년이었던 전박찬도, “저 역시 그래서 연극영화과에 합격하자마자 당당하게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 자랑을 했다”는 맨 뒷줄 소년이던 안창현도 클라우디오를 닮은 ‘맨 끝줄 소년’이었다.“초연 당시 김동현 연출님, (현재의 연출인) 손원정 드라마트루그께서 함께 고민하시면서 ‘맨 끝줄 소년’은 맨 끝줄 사람들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라고 하셨어요. 결국 맨 끝줄 소년에 국한되지 않고 극중 모든 인물, 이 극을 소설 혹은 공연으로 본 독자와 관객이 함께 나아가는 의미로 쓰여진 게 아닌가 싶어요.”◇문화와 예술 그리고 수학, 결국 관점의 문제“예술론이나 문학론은 후아나(우미화) 대사 중에 좋은 게 많아요. 후아나가 던져주는 것들을 클라우디오로 만나게 되죠. 클라우디오가 헤르만 선생님을 만나 대화를 나눌 때도 개인적으로는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있어요. 하지만 예술론이든 문학론이든 ‘동의한다, 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관점의 문제 같아요.”후아나의 “중요한 건 문학은 아무 것도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거야. 우리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지 못한다고” “내 전시회도 마찬가지야. 예술은 아무 것도 가르쳐주지 않아” 등과 헤르만의 “윤리 수업이 아니야. 작문 수업이라고” 등 대사를 통해 전해지는 극중 문학론과 예술론에 대해 전박찬은 “관점의 문제”라고 표현했다.안창현 역시 “문화, 문학, 예술 등은 정답이라는 게 없다”며 “이 작품에서 얘기되는 예술론 역시 동의나 비동의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동의를 표했다.연극 ‘맨 끝줄 소년’ 클라우디오 역의 안창현(왼쪽)과 전박찬(사진=강시열 작가)“문학과 예술은 정답이라는 게 없지만 클라우디오가 좋아하는 수학은 맞고 틀리고가 정확하잖아요. 작가가 문학·예술과 수학을 일부러 묶지 않았나 싶어요. 수학 보다 문학과 예술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되거든요.”이렇게 전한 안창현은 “저 스스로도 열려 있는 것 같다 ‘난 상징을 몰라. 나한테 사과는 사과야’라는 헤르만 선생님 같은 사람도 있고 사과를 상징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털어놓았다. 연극 ‘맨 끝줄 소년’ 클라우디오 역의 안창현(사진=강시열 작가)“후아나의 ‘문학은 아무 것도 가르쳐 주지 않아’라는 대사를 통해 배우 안창현으로서 받은 질문들이 있어요. ‘그럼 뭘 가르쳐주지?’ 등을 저도 생각하고 관객들도 같이 생각해주시면 좋겠어요.”◇서로에 대한 고마움 “우리 또 만날 수 있겠죠?”“정말 해주고 싶은 말은 ‘난 정말 네가 부러워’예요. 그리고 잘 하고 있고 너무 고맙다.”안창현에 대해 이렇게 전한 전박찬은 “같은 인물로 같이 고민하는 순간들이 너무 귀하다”고 속내를 전했다. 이어 “진짜 좋아하는 사람한테만 하게 되는 말인데 ‘시간이 지나 또 다른 작품으로 만날 거니까 열심히 살자’고 얘기하고 싶다”고 말을 보탰다.전박찬의 말에 안창현은 “20대 중반이던 5년 전 ‘천국으로 가는 길’ 때도 형이 ‘꾸준히 하고 있다면 우리 언젠간 무대에서 다시 만날 거라고 얘기해주셨다”며 “진짜 열심히 하다 보니 만났다”고 기억을 떠올렸다.“오늘도 형이 ‘또 만나자’ 해주셨으니 우리 관계가 여기서 끝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형을 보고 있으면 늘 배우는 것들이 생기곤 해요. 이런 말을 하려니 부끄러워요. 하지만 진심인데요…전박찬 배우님의 존재 자체가 되게 힘이 되고 어떨 땐 위로가 되기도 했어요. 너무 고마운 것들이 많아서 말로 표현이 어려울 정도로 존재 자체로 고마워요.”◇“늘어가는 주름과 흰머리만큼 책임질 수 있는 삶”을 꿈꾸는 전박찬, “묵직한 사람”이고 싶은 안창현연극 ‘맨 끝줄 소년’ 클라우디오 역의 안창현(왼쪽)과 전박찬(사진=강시열 작가)“꿈이라기 보단 늘 고민하는 지점이에요. 어떤 배우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될지가 더 큰 것 같아요. 직업은 배우지만 저는 삶을 살아야하는 인간이잖아요. 요즘 정립되기 시작한 게 ‘매 순간 순간에 진실로, 최선 다해 살자’예요. 배우생활을 하면서도 일관되게 적용되는 부분이죠.”꿈이자 고민에 대해 이렇게 전한 안창현은 “앞으로도 지금 해왔던 것처럼 빛이 나고 싶다고 바라기보다 늘 가던 길을 묵묵히 가다보면 빛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부연했다.“그런 생각으로 오래 가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제 고등학교 선배님이신 이순재 선생님처럼요. 반짝하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굉장히 묵직하고 흔들리지 않는 배우이자 사람이 되고 싶어요.”전박찬은 “제가 언제까지 연극을 하고 배우를 하게 될지 혹은 언제까지 살지는 아무도 모른다. 계속 고민하지만 잘 모르는 것 같다”며 꿈에 대해 밝혔다.“이제 주름도, 흰머리도 늘어요. 언제까지 제가 배우를, 연극을 할 수 있을지, 어떤 사람이 될지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것과 똑같은 것 같아요. 자꾸만 늘어가는 주름과 흰머리만큼 책임질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고 싶어요.”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19-10-25 20:00 허미선 기자

[비바100] 뮤지컬 ‘친정엄마’ 제작자 잠적, 연극 ‘생쥐와 인간’ 조기폐막…끝이 없는 공연계 불황의 늪

“정말 진지하게 요즘 관객 다 어디 갔냐고 얘기하다가 공연 경쟁상대는 넷플릭스라고 말할 지경이에요.” ‘공연계 성수기’로 불리는 11월에 불미스러운 소식이 이어졌다. 22일 뮤지컬 ‘친정엄마’ 제작사 쇼21 대표 잠적 사실이 알려졌는가 하면 연극 ‘생쥐와 인간’은 조기폐막을 결정했다. 뮤지컬 ‘친정엄마’는 10주년을 맞아 지난 9월 6년만에 이화여자대학교 삼성홀에서 개막해 지난 주말 폐막했다. 고혜정 작가의 소설을 무대에 올린 작품으로 서울 공연 종료 며칠을 앞둔 18일 제작사 쇼21의 박모 대표가 잠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26, 27일로 계획됐던 부산 공연을 비롯해 대구, 강릉, 성남, 인천, 창원, 전주 등 9개 도시 공연이 줄줄이 취소됐다.뮤지컬 ‘친정 엄마’(사진제공=쇼21)박 대표는 지방공연 기획사로부터 판권료를 선납받은 뒤 잠적한 것으로 알려진다. 공연에 출연했던 나문희 소속사를 통해 박 대표의 해외 출국과 출연료 미지급 사실도 밝혀졌다. 나문희 뿐 아니라 김수미 등 출연 배우들, 스태프들 대부분은 출연료 및 페이 잔금이 미지급돼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배우와 스태프들 뿐 아니다. 부산 ㈜월드쇼마켓, 대구·강릉 ㈜엠플러스, 성남 빅윈이엔티, 인천 ㈜하늘이엔티, 창원 ㈜원앤원엔터테인먼트, 전주 ㈜엘티미디어 등 지방 공연기획사들의 피해도 불가피한 상태다.지난 9월 24일 개막해 11월 17일까지 공연 예정이던 연극 ‘생쥐와 인간’은 조기폐막을 알렸다. 제작사 빅타임엔터테인먼트는 22일 공식 SNS에 “장기간 이어진 공연계의 불황과 제작사 운영상의 어려움으로 관객 여러분과 약속한 공연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예정보다 앞당겨 10월 25일 조기폐막을 결정했다”고 알렸다.  ‘생쥐와 인간’ 관계자는 브릿지경제와의 통화에서 “전 스태프와 배우들이 모여 논의 끝에 조기 폐막을 합의했다”며 공연계 불황으로 인해 “공연 운영이 어려운 금전적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어 “더 끌고 가다 스태프나 배우 분들에게 폐가 될 것이라고 판단해 이쯤 마무리하기를 결정했다”며 배우들의 출연료나 스태프들 페이 지급에 대해 “일한 부분까지는 불미스럽게 미지급될 여지는 없다”고 덧붙였다. 연극 ‘생쥐와 인간’(사진제공=빅타임엔터테인먼트)1937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됐고 한국에서는 지난해 첫선을 보인 ‘생쥐와 인간’은 노벨문학상, 퓰리처상을 수상한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의 동명원작을 바탕으로 한 연극이다. ‘승산없는 싸움’(1936), ‘분노의 포도’(1937)와 더불어 노동자 3대 비극 시리즈 중 하나로 1930년대 대공황기의 미국 목장을 배경으로 한다. 아이처럼 순수하지만 큰 덩치와 주체할 수 없는 힘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레니(최대훈·서경수, 이하 시즌합류·가나다 순)와 고아로 자라 제대로 배우지 못했지만 영민한 조지(문태유·고상호)를 중심으로 노동자들의 비극적인 삶, 약자들 간의 차별과 상처, 허망하게 무너져버린 꿈에 대해 이야기한다.  ‘친정 엄마’ ‘생쥐와 인간’에 앞서 이번 달 초에는 대극장에서 소극장으로 옮겨온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가 조기폐막 소식을 알리기도 했다. 비단 조기폐막을 알린 작품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예매사이트에서 1열도 채 예매되지 않거나 공연장의 절반도 못채운 상태에서 공연을 진행하는 극들도 유독 많아졌다. 제작사 대표 잠적, 공연 취소 및 조기폐막 등 일련의 사태에 대해 다수의 공연관계자들은 “심화된 공연계 불황”과 “관객 쏠림 현상”을 주요원인으로 꼽았다. 그들은 “불황이 더욱 심해져  수익을 보는 제작사가 거의 없다고 할 정도”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한 공연 관계자는 “높은 대관료와 배우 개런티로 수익이 남는 구조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다. 제작자들은 최소 몇십억, 많게는 수백억의 빚더미에 앉아있다”며 “팬덤이 큰 몇몇 배우들에 의해 지탱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다수의 공연 관계자들은 “프로덕션마다 다르지만 회당 대관료와 배우 개런티의 비율이 같거나 3배까지 되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공연계 불황은 좋은 작품의 발굴·제작보다는 캐스팅에 사활을 거는 공연들의 만연, 그로 인한 팬덤 쏠림 현상, 몇몇 배우 및 창작진 겹치기 등의 악순환 구조를 심화시키기도 한다. 오죽하면 “공연 기획자나 제작자가 아니라 ‘섭외자’로 전락했다” “공연 최고의 마케팅은 배우” 등의 우스갯소리가 회자될 정도다. 하지만 공연계 불미스러운 사태의 원인을 제작자들과 관객들이 선호하는 배우들, 그 배우들을 따라 움직이는 관객들 탓으로만 돌리는 데 대한 비판의 소리도 높다. 한달에 한번 정도 연극이나 뮤지컬을 관람한다는 Y(44)씨는 “공연계는 관객을 소비자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의견을 밝혔다.그는 “제작사나 공연 관계자들은 ‘아무리 좋은 작품을 만들어도 관객들이 자신이 선호하는 배우만을 좇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좋은 작품’의 기준이 뭔지, 소비자인 관객을 무시하는 듯한 ‘너희들은 모르지만 좋은 작품’이 과연 좋은 작품인지 되묻고 싶다”고 꼬집었다. 대학로 거리.(사진=허미선 기자)이어 “불과 지난해만 해도 캐스팅 상관없이 볼 정도로 좋은 극들이 있었다. 물론 캐스팅이 경쟁력이 되는 극들도 있다. 하지만 그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소비자의 권리”라며 “지금은 소비자로서 관객이 캐스팅 상관없이 보기에 좋은 작품보다는 캐스팅이 중요한 극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한달에 한번이지만 볼 연극과 뮤지컬을 찾는 것도, 나에게 가장 적확하게 맞는 캐스팅 조합을 찾기도 어렵다”고 토로했다.한 공연 제작사 관계자는 “대관료나 일부 배우들의 높은 캐런티로 제작시스템 자체가 불균형인 것도 맞지만 인건비가 전반적으로 오르기도 했다. 최저시급 상승으로 일용직 페이가 오르고 그에 맞춰 정규 스태프들 임금도 상승했다”며 “제작사 입장에서는 지출해야하는 비용은 느는데 수익은 똑같고 함부로 가격을 올릴 수도 없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이어 “현재 공연계 문제의 원인은 한두 가지가 아닌 복합적”이라며 “그간 매년 경제는 점점 더 안좋아지고 관객은 없었지만 대학로의 주류 작품들이 계절의 영향을 받거니 시즌을 타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일찌감치 거리가 한산해지고 상점들도 일찍 문을 닫고 있다. 제가 대학로에서 일한 10년 간 최악의 불황”이라고 덧붙였다.또 다른 공연 관계자는 “그럼에도 초반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던 작품이 입소문을 타고 흥행하는 경우도 있다. 국가 경제가 전반적으로 침체일로인 상황에서 가장 먼저 줄이게 되는 것이 문화비”라며 “한정된 비용 안에서 좋은 작품 아니면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가 출연하는 공연 회차를 관람하는 건 당연하다. 공연 관람을 포기하고 영화나 넷플릭스 등으로 돌아서도 할 말이 없다. 결국 좋은 콘텐츠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19-10-25 07:00 허미선 기자

[비바100] 모차르트와 오펜바흐, 18세기와 19세기 그리고 풍자와 낭만…오페라 ‘돈 조반니’와 ‘호프만의 이야기’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왼쪽)와 오페라 ‘돈 조반니’(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 세종문화회관)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와 ‘샹젤리제의 모차르트’로 평가받는 자크 오펜바흐(Jacques Offenbach) 대표작들이 관객들 만날 채비 중이다. 18세기와 19세기를 대표하는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Don Giovanni, 10월 30~11월 2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와 탄생 200주년을 맞은 오펜바흐의 ‘호프만의 이야기’(Les Contes d Hoffmann, 10월 24~27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가 풍자와 낭만으로 무장하고 무대에 오른다.‘돈 조반니’는 ‘피가로의 결혼’ ‘코지 판 투테’와 더불어 ‘다 폰테 3부작 중’ 하나로 모차르트와 성직자 출신의 이탈리아 대본가 로렌초 다 폰테(Da Ponte, Lorenzo)가 의기투합한 작품이다. 프랑스 대혁명 2년 전인 1787년 프라하에서 초연된 ‘돈 조반니’는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바람둥이 돈 조반니(이하 조반니, Don은 귀족들에 붙이는 호칭, 여자 귀족 앞에는 Donna를 붙인다)에 당시 신분제의 부조리와 귀족들의 타락, 사회의 부패상 등을 반영해 비판하고 풍자한다. 오페라 ‘돈 조반니’ 출연진(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유쾌한 풍자와 더불어 ‘카탈로그의 노래’(Madamina, il catalogo e questo), ‘거기서 그대 손을 잡고’(La ci darem la mano),  ‘내 연인을 위로해 주세요’(Il mio tesoro intanto), ‘저 악당은 나를 배신했지만’(Mi tradi quell‘alma ingrata) 등 경쾌하고 아름다운 아리아로 유명한 작품이다.호색한 귀족 조반니와 하인 레포렐로, 귀족 여인 돈나 안나와 돈나 엘비라(이하 돈나 생략) 그리고 시골처녀 체를리나가 엮어 가는 사회풍자극이다. 조반니는 사회적 지위와 매력적인 외모를 무기 삼아 수천명의 여자들을 유혹해 순간의 쾌락을 즐기는 귀족이다. 약혼자로 위장해 여자의 침실로 숨어들었다 여자의 아버지를 죽이고 줄행랑을 치는가 하면 결혼식까지 올리고는 돌연 사라져 버리고 시골마을 결혼식에서 신부를 빼돌리는 등 조반니가 지나간 자리에는 피해 여성들이 잔재처럼 남는다.이번 ‘돈 조반니’는 서울시오페라단 이경재 예술감독이 연출했고 마에스트로 마시모 자네티(Massimo Zanetti)가 이끄는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연주한다. 이경재 예술감독은 “자유를 추구하는 조반니의 행적을 통해 등장인물 각자가 가진 도덕과 규범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볼 것”이라고 연출의도를 밝혔다. 바리톤이 타이틀롤인 몇 안되는 오페라 중 하나로 미국 샌프란시스코 오페라단 한국 최초 상근단원인 한규원과 독일 드레스덴 국립극장 등의 무대에 올랐던 정일헌이 조반니로 번갈아 무대에 오른다. 주인 조반니에 대한 증오를 불태우는 하인 레포렐로는 모차르트·마리아 칼라스 국제 콩쿠르 우승자로 독일 뉘른베르크, 비스바덴 등과 JTBC ‘팬텀싱어’ 멘토로 활약하기도 했던 베이스 손혜수와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 영국 로얄 오페라하우스, 프랑스 니스 오페라, 독일 쾰른 오페라 극장 등에서 주역으로 무대에 올랐던 심기환이 더블캐스팅됐다.한국을 대표하는 소프라노 성악가들이 조반니의 여자들로 대거 출연한다. 돈나 안나는 이상은과 권은주, 돈나 엘비라는 오희진과 정주희, 체를리나는 강혜정과 손나래가 번갈아 연기한다. 안나의 아버지로 조반니를 응징하는 기사장에는 베이스 손철호, 약혼자 돈 오타비오에는 테너 허영훈과 선태준, 체를리나의 남편 마제토에는 바리톤 김경천 등이 출연한다.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오펜바흐의 ‘호프만의 이야기’는 독일 낭만주의 대문호 E.T.A 호프만의 단편소설 ‘모래사나이’ ‘고문관 크레스펠’ ‘잃어버린 거울의 형상’ 세편을 바탕으로 꾸린 옴니버스식 연애담이다. 호프만의 이루지 못한 올림피아, 안토니아, 줄리에타와의 사랑이야기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포함한 5막짜리 오페라 판타지다. 1881년 파리 오페라 코미크 극장에서 초연돼 사랑받은 ‘호프만의 이야기’는 풍자나 사회 비판 보다는 낭만적이고 대중적인 이야기들로 꾸린 오페레타를 주로 작곡하던 오펜바흐가 말년에 작곡한 유일한 오페라다. 당시 유행하던 낭만주의와 서정성을 담고 있으면서도 사회가, 혹은 그 시대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요구하는 부조리하고 폭력적인 모습들에 대한 신랄한 풍자도 돋보이는 작품으로 로시니는 오펜바흐에게 ‘상젤리제의 모차르트’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 창작진과 출연진들(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가장 유명한 뱃노래 ‘사랑의 밤’(Nuit d’amour)을 비롯해 ‘비둘기는 날아갔네’(Elle a fui, la tourterelle), ‘아! 우리 둘이 함께하는 삶이여’(Ah, vivre deux!), 숲속의 새들(Les oiseaux dans la charmille) 등의 대표 아리아들이 유명 성악가와 마에스트로 등에 의해 연주되고 불린다. 오페라 ‘마농’으로 국립오페라단과 인연을 맺은 뱅상 부사르(Vincent Boussard) 연출과 세바스티안 랑 레싱(Sebastian Lang-Lessing) 지휘자, 소프라노 크리스티나 파사로이우(Cristina Pasaroiu)가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춘다.지휘자 세바스티안은 “오펜바흐의 ‘호프만의 이야기’는 제 마음 속 깊이 자리 잡은 작품”이라며 “오펜바흐는 홀로 프랑스로 이주했고 유태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데서 저와 공통점이 있다. 그의 작품을 맡을 때마다 고향으로 돌아간 느낌”이라고 밝혔다. 이어 “오펜바흐는 오페라 코미디, 오페레타 등을 많이 만들었는데 말년에 진지한 오페라를 만든 것이 ‘호프만의 이야기’다. 스스로의 삶에 대한 레퀴엠”이라고 덧붙였다. “제가 연주자들에게 이 작품에서 중요하게 가져가야할 의미는 예술가로서 우리 자신 반추할 기회라고 말한 바 있어요. 유령스럽고 프로이트적인 꿈의 세계, 초현실과 현실 등을 오가며 어느 상태인지 불분명하게 가고 있어요. 매일 걸어가는 여정과도 맞닿아 있죠.”이어 “인간의 사랑으로 성장하지만 실연으로 더 성장한다는 굉장히 독일스러운 말이 있다”며 “인간에게 고통이 있어야 성장한다. 예술가로서 겪고 있는 경험들이 고통스럽지만 성장의 밑거름이 된다”고 설명했다.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뱅상 연출가는 ‘호프만의 이야기’에 대해 “오펜바흐가 마무리 짓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작품”이라며 “어떤 레치타티보를 쓸 것인가 드라마터그를 어떻게 구성할지 가능성을 열어 두고 세바스티안과 공유 중인데 미완성 작품이라 매우 복잡하고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번 ‘호프만의 이야기’는 풍부한 음악적·연극적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며 “현실과 초현실, 코믹과 비극 등 작품이 가진 모든 요소들을 잘 아우를 것”이라고 연출의도를 전했다.이번 ‘호프만의 이야기’에서 가장 눈여겨 볼 것은 최대 1인 4역을 소화하는 성악가들의 연기 변신이다. 호프만 역의 장 프랑수아 보라스(Jean-Francois Borras)와 국윤종과 엄마 목소리 김윤희를 제외한 성악가들이 최소 두 개 이상의 캐릭터를 연기한다. 크리스티나 파사로이우와 윤상아가 호프만의 연인 스텔라를 비롯해 꿈 속의 사랑 올림피아·안토니아·줄리에타를, 양준모가 린드로프·코펠리우스·미라·다페르투토를, 위정민이 앙드레·고슈닐·프란츠·피티키나초, 김정미가 니클라우스·뮤즈 등을 소화한다.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마농’에 이어 ‘호프만의 이야기’로 한국 관객을 만나는 크리스티나는 “소프라노이자 인간으로서 ‘호프만의 이야기’는 큰 도전과제”라며 “육체적, 심리적으로 고도의 집중력을 요할 뿐 아니라 꼼꼼한 뱅상 연출의 미장센을 맞추기도 쉽지 않다. 더불어 퀵체인지, 라이트 콜로라투라 (Coloratura), 리딩 소프라노 등 다양한 레인지의 보컬을 요하기도 해서 어렵다”고 전했다국윤종은 호프만 역할에 대해 “5막에 걸쳐 사랑과 재탄생에 대한 예술가의 여정을 그린 캐릭터다. 2, 3, 4막에서는 편집증 증세, 메시아 증후군 등 자기분열을 통해 성장과정을 거친다”며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고 눈 돌릴 수 없게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1인 4역에 도전하는 양준모 역시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악마 역할 등 미묘하게 다른 부분들 있다”며 “각각 캐릭터와 음악적 표현이 달라서 많은 집중력을 요하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19-10-24 07:00 허미선 기자

[Pair Paly 인터뷰]연극 ‘맨 끝줄 소년’ 전혀 다른 클라우디오 전박찬과 안창현 “단단하거나 단정하거나”

연극 ‘맨 끝줄 소년’ 클라우디오 역의 전박찬(왼쪽)과 안창현(사진=강시열 작가)“클라우디오의 ‘이제 알았어요’라는 같은 한 마디도 호흡이 굉장히 달라요. 미묘하죠.”24일 개막을 앞두고 있는 연극 ‘맨 끝줄 소년’(12월 1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의 클라우디오 전박찬과 안창현은 “미묘하게 다르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전박찬은 “헤르만 선생님이 수업에서 ‘왜 그런지 모르겠어?’라고 묻는 장면에서 하는 클라우디오의 대답”이라며 “안창현 배우는 바로 캐치한다면 저는 좀 더 고민하고 캐치한다”고 부연했다.“굉장히 미묘한데 다른 느낌을 줘요. 안창현 배우도 고민의 시간을 가지고 대답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달라졌어요. 그게 굉장히 잘 어울리죠. 서로에게 맞는 호흡들이 새로 생겨난 것 같아요.”이어 “(손원정) 연출님도 저희에게 전혀 다른 디렉션을 하신다”며 “처음엔 ‘나도 저렇게 했으면 하시는 건가’ 좀 헷갈렸는데 아니었다. 다른 클라우디오를 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연극 ‘맨 끝줄 소년’ 클라우디오 역의 전박찬(사진=강시열 작가)연극 ‘맨 끝줄 소년’은 ‘다윈의 거북이’ ‘천국으로 가는 길’ ‘스탈린에게 보내는 연애편지’ 등으로 유명한 스페인 대표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Juan Mayorga)의 동명 작품을 바탕으로 한다.언제나 맨 끝줄에 앉는 소년 클라우디오와 문학교사 헤르만의 개인교습 과정을 통해 미묘한 상상과 현실의 경계, 인간의 욕망과 결핍, 창작욕구 등을 아우른다. 2015년 고(故) 김동현 연출, 손원정 드라마터그가 의기투합해 초연됐고 2017년 재연에 이어 세 번째 시즌을 맞는다. 초연부터 클라우디오, 헤르만 선생님으로 호흡을 맞춘 전박찬과 박윤희를 비롯해 안창현이 새로운 클라우디오로 합류했다.“24일이 굉장히 기대된다”는 전박찬은 “관객 속에 섞여서 안창현 배우가 하는 클라우디오를 볼 수 있다”며 소감을 전했다.“제가 하는 역을 다른 몸으로 본다는 게 재밌는 경험 같아요. 오히려 객관적으로 보는 시점이 생겼죠. 저 혼자 할 때는 보이지 않거나 고집하던 시각들, 표현들, 선택들을 마주하는 순간들이 많아서 재밌어요. 사실 미안함도 있어요. 3번째 공연이다 보니 이미 어떤 것들은 많이 정해져 있어서 그 안에서 자신만의 것을 만들어 내야하니까요.”미안함을 전하는 전박찬에 안창현은 “이미 응축된 고민의 덩어리들에 제 생각을 섞거나 새로운 감각으로 접근하면서 빠르게 스며들었다”며 “힘들다기 보다 그 안에서 저만의 호흡을 찾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이미 클라우디오 자체인 형이 있으니 연습과정 중에 ‘내가 잘 움직이고 있구나’ 식으로 이유나 정당성을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서로에 대한 부러움…단단한 전박찬, 단정한 안창현연극 ‘맨 끝줄 소년’ 클라우디오 역의 안창현(사진=강시열 작가)“형의 클라우디오는 꽉 찬 단단함이 있어요. 말의 단단함, 화술의 단단함…매력적이죠. 연습실에서도 그렇지만 무대에서 특히 그래요. 확 와닿는다고 할까요.”전박찬이 연기하는 클라우디오의 매력으로 “단단함”을 꼽은 안창현은 “형은 세 번째다 보니 문득 보이는 여유들이 있다”며 “형을 보면서 ‘저 때는 나도 여유를 가질 수 있겠구나’를 미리 인지할 수 있어서 좋다”고 덧붙였다. 전박찬은 안창현과 함께 한 연습에 대해 “깜짝 놀랐던 시간들”이었다고 표현했다.“저도 나름 초재연을 하면서 많은 시도들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안창현 배우는 정말 새로운 시도들을 하더라고요.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선들을 제시하죠. 그래서 어떤 것들은 ‘나 이거 좀 쓸게’라고 양해를 구하고 도움을 받기도 했어요. 한달 넘는 연습 동안 함께 하면서 부럽다는 생각을 했죠.”이어 “초재연을 하면서 고민들이 컸고 재공연 때는 많은 부분들을 바꿔내야 했다. 정신없이 달리던 초연과는 다른 호흡이 필요했기 때문”이라며 “안창현 배우는 이미 정해진 틀 안에서 찾아내야할 것들이 있어서 힘들 텐데도 빠른 속도로 잘 해내고 있어서 부러움을 느끼고 있다”고 부연했다.연극 ‘맨 끝줄 소년’ 클라우디오 역의 안창현(왼쪽)과 전박찬(사진=강시열 작가)“첫 런(처음부터 끝까지 공연과 똑같이 하는 연습)을 지켜보면서 참 단단하구나 싶었고 ‘단정한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한테는 없는 단정함으로 빠른 속도로 클라우디오와 그의 글쓰기에 접근하는 걸 보면서 부럽더라고요.”◇전혀 다른 클라우디오, 새로 추가된 네 줄의 대사“처음엔 클라우디오가 본 걸 글로 쓴 것을 표현하는 데 힘든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말들이지만 글이고 또 말처럼 들려야하기도 하죠. 어떤 때는 글이 아니고 현실의 대화인가 싶기도 하고…. 그렇게 왔다갔다하는 호흡을 연구하는 게 힘들었던 것 같아요.”이렇게 토로한 안창현에 전박찬은 “사실 저도, 안창현 배우도 아직까지 모르겠는 게 많아서 계속 고민하고 얘기 중”이라며 이번에 새로 추가된 대사에 대해 언급했다.“원작에는 있지만 저희 초재연 공연에서는 빠졌던 대사들이 이번에 추가됐어요. 저에게도, 안창현 배우에게도 처음 주어진 네줄짜리 대사들로 같이 고민 중이에요. 친구 라파네 집안을 돌아다니면서 거실, 책꽂이, 책, 앨범, 서재, 부부의 침실과 욕실 등을 들어가면서 하는 대사들이죠. 저는 초재연을 하면서 했던 것들이 있다 보니 어찌해야할 바를 모르겠더라고요.”이렇게 전한 전박찬은 “거기서 안창현 배우가 굉장히 희한한 순간을 만들어냈다. 은밀하고 재밌다”며 “스스로 ‘난 왜 저렇게 못하지’ 싶으면서도 재밌었다”고 귀띔했다.“안창현 배우한테서 빛이 났어요. 정말 따라할 수 없는 장면이어서 같이 고민하면서 제 식으로 풀어내려고 노력 중이죠.”연극 ‘맨 끝줄 소년’ 클라우디오 역의 전박찬(사진=강시열 작가)전박찬이 극찬하는 장면에 대해 안창현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던 것 같다. 제가 만든 동선 안에 대사가 자연스럽게 잘 맞물렸다”며 “이런 저런 시도를 하던 중에 연출님이 포착하시곤 ‘더 이상한 자세를 해봐’라고 하셨다. 그렇게 찾아졌는데 저 스스로도 재밌다”고 털어놓았다. 안창현의 설명에 전박찬은 “그 순간이 정말 강렬하다. 많은 걸 하지 않는데 많은 게 보이는, 부러운 지점”이라고 말을 보탰다.“안창현 배우가 하는 그 장면에서는 연출님의 코멘트가 거의 없는데 저한테는 말씀하시더라고요. ‘딱 그것이라면 너나 나나 알 거다’라고요. 다 다르지만 유독 다른 장면이죠. 쉽게 설명하면 같은 에어리어지만 몸의 위치나 표현방식이 달라요. 안창현 배우가 앉아서 시작한다면 저는 서서 시작하죠.”◇상상과 현실, 그 경계 “보는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권리”연극 ‘맨 끝줄 소년’ 클라우디오 역의 안창현(사진=강시열 작가)“클라우디오의 작문이 보고 들은 걸 그대로 썼는지, 어떤 제스처나 표정만 가지고 말을 따와서 쓴 픽션인지는 늘 고민하고 얘기하는 부분들 같아요. 시작부터 지금, 공연이 끝날 때까지 계속 고민하고 얘기하지 않을까 싶어요.”클라우디오의 작문 형태로, 상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에 대해 “끝날 때까지 고민하게 될 문제”라는 안창현에 전박찬은 “보는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권리”라고 말을 보탰다.“저희 둘도 가끔 그런 얘기를 해요. 보고 쓴 거냐, 상상한 거냐 아니면 창작이냐. 어떤 부분은 명확하게 정할 수 있거나 정해야만 해요. 하지만 또 어떤 부분은 마음껏 상상하도록 관객에게 맡겨둘 수 있는 것 같아요. 클라우디오의 작문은 처음부터 소설이 아니었어요. 작가지망생도 아니었죠. 헤르만 선생님이라는 제1독자가 원하는 것, 가르쳐 주는대로 쓰잖아요. 그러다 보니 헤르만 선생님이 얘기하는 좋은 소설이 된 것 같아요.”전박찬의 말에 재연 당시 관객으로 ‘맨 끝줄 소년’을 봤던 안창현은 “저도 관객으로 봤을 때는 제가 원하는대로 상상했던 것 같다”며 “저와 같이 본 사람들도 다 달랐다”고 전했다.“막상 공연에 참여하면서 대본을 읽어보니 관객으로 볼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더 보였어요. 하지만 ‘이건 이거야’라는 강요는 좋지 않은 것 같아요. 작품 자체가 관객들로 하여금 상상하게 하고 스스로 선택하게 하거든요. 약속된 것들을 제외하고는 일부러 어떤 의도를 넣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죠.”이어 “관객으로 공연을 봤을 때 이미지적으로 남았던 건 다른 사람들이 자고 있을 때 샤막(Shark-Tooth Curtain, 무대 장치나 무대 효과를 위하여 설치하는 그물 모양의 막) 뒤에서 클라우디오가 집안을 둘러보는 장면”이라며 “저도 같이 둘러 보는 느낌이 들어서 두근거렸다”고 털어놓았다. 이에 전박찬은 “이제는 볼 수 없습니다”라고 귀띔했다.연극 ‘맨 끝줄 소년’ 클라우디오 역의 안창현(왼쪽)과 전박찬(사진=강시열 작가)“모든 대사와 장면들은 그대로인데 재연까지는 샤막에서 바쁘게 움직였어요. 무대 가장 깊숙한 공간이다 보니 은밀함이 있었지만 굉장히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부분들도 있었죠. 게다가 그 신을 만들었을 때는 2015년이고 지금은 2019년이잖아요.”더불어 “클라우디오가 집안을 돌아다니는 건 글을 쓰기 위한 건데 자칫 범죄처럼 느껴지거나 위험한 패티시 혹은 관음증처럼 느껴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연습 중 무대 앞으로 나와도 보고 들어가기도 하면서 찾아낸 것들 중 선택을 했다. 새로운 지점들이 생기면서 장단점도 생겼다”고 변화 과정을 설명했다.“이 장면에서 아무 것도 표현하지 않고 담담하게, 정말 글을 쓴다는 마음으로 5문장들을 말해요. 원래 있던 5문장을 다르게 다룬다고 할까요. 사실 배우들은 뭔가를 표현하고 그 표현이 객석에 잘 전달되는 순간들이 너무 좋아요. 하지만 초연에서 4년이 지났고 한국 사회에도 많은 문제들이 있었죠. 미투, 세월호를 비롯한 참사들을 겪으면서 연극들이 바뀌었다고 생각해요. 소소한 변화지만 좋다, 나쁘다의 문제라기 보다 2019년에는 맞지 않나 싶어요.”span style="font-weight: normal;"연극 ‘맨 끝줄 소년’ 클라우디오 역의 전박찬(사진=강시열 작가)◇관계들, 계약으로 맺어진 헤르만·후아나 그리고 미묘한 에스테르“가장 명확하게 보이는 건 클라우디오와 헤르만 선생님의 관계죠. 그리고 평범해보이지만 소통이 안되는 헤르만과 후아나(우미화) 부부와 클라우디오의 글에서 보여지는 라파 아버지(이동영)와 에스테르(김현영)의 대화 단절이 미묘하게 닮아 있어요.”인물들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전한 안창현은 “저는 관계에 대해 정의 내리기 보다 글쓰기를 통해 헤르만과 좀 더 가까워지고 반전처럼 후아나를 만나게 되는 데 집중한다”며 “글을 쓰는 데 있어 헤르만 선생님이 마지막에 원했던 반전, 예상 못했던 결말로 가기 위한 시도나 행위”라고 부연했다.“클라우디오라는 인물 자체가 관계 맺기에 수월한 친구는 아니에요. 아픔과 상처로 인해 스스로 관계를 닫는 인물이죠.”전박찬은 “클라우디오와 헤르만은 이상하게도 거래 관계”라며 “클라우디오는 작문을 제출하고 책을 받고 작문에 대한 지도를 받는 거래로 이뤄진 관계”라고 말을 보탰다.“후아나 대사 중에 ‘너는 헤르만을 참 많이 닮았어’라는 말이 있어요. 정말 끔찍한 얘기죠. 클라우디오 입장에서 따라가다보면 그 순간에 들리는 그 대사가 굉장히 끔찍해요. 그 다음에 ‘너도 책 읽고 글 쓰는 걸 좋아하지? 블행해질거야’라는 끔찍한 대사가 따라오거든요. 이 대사 전까지 헤르만과는 거래 관계 같아요.”이렇게 설명한 전박찬은 “후아나도 인간적으로 맺은 관계라기보다는 작품, 소설을 완성시키기 위한 거래”라며 “두 사람(헤르만과 후아나)과는 이를테면 인물과 인물의 거래라기 보다 작가와 독자의 거래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극 중에는 다양한 관계들이 등장하죠. 제 입장에서 가장 미묘한 건 에스테르와의 만남 같아요. 클라우디오가 에스테르를 여자로 바라본다는 오해의 소지가 상당부분 있거든요. 그런데 클라우디오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어머니에 대한 결핍이 있는 아이잖아요. 친구 집에서 어머니를 봤는데 그 동안 겪어보지 못한 감정, 공기, 따스함을 가졌을 것 같아요. 글 안에서 키스하는 장면도 써내려가지만요.”그 장면에 대해 전박찬은 “그 부분도 실제 있었던 일인지 상상인지는 보는 분들이 생각하기에 따라 달라진다”면서도 “(키스장면이) 실제라 하더라도 저는 클라우디오가 에스테르에게 가진 감정이 순수하게 보이기를 추구하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섬뜩함과 불쌍함, 그 균형을 위한 클라우디오의 근육 연극 ‘맨 끝줄 소년’ 클라우디오 역의 안창현(왼쪽)과 전박찬(사진=강시열 작가)“클라우디오의 근육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물리적인 의미가 아닌, 말의 근육과 몸의 근육 등이요. 그 근육들이 잘 잡혀 있을 때 과하거나 모자라지 않게 무대에서 할 수 있는 것 같아요.”이렇게 전한 전박찬은 “이 작품이 관객들과 만나기 어려워지는 건 감정이입을 크게 하는 순간 균형이 깨져 버리기 때문”이라며 “이입되는 감정들은 가둬두고 클라우디오가 쓴 글로 나눠야 한다”고 토로했다. 이어 “초연 당시 어떤 관객분이 저의 클라우디오에 대해 ‘사이코패스 같다’고 하셨다. 저 역시 동의 했다”며 “잘못이나 반성 같은 깨달음이라기 보다는 제가 생각하는 클라우디오의 순수한 면이 너무 덮여버리는 데 대한 동의였다”고 털어놓았다.“당시의 저에 대해 동료나 선배들이 농담처럼 ‘숭악하다’ ‘음흉하다’ ‘음란하다’라고 하셨어요. 제가 몸을 날다람쥐처럼 썼던 것 같아요. 좋게 얘기하면 유연하고 나쁘게 얘기하면 마구마구 휘젓는 움직임이랄까요. 침대에 누워서 다리를 두 번씩 들고 그러다 보니 클라우디오라는 인물을 자칫 더 위험하게 보이게 하거나 다른 매력으로 접근하게 되는 지점들이 생겼던 것 같아요. 3번째 클라우디오를 만나고 안창현 배우가 깨끗하게 표현하는 것들을 보면서 자극을 받죠. 관객에게 제가 생각하는 클라우디오를 제대로 전달하려면 어떻게 해야할지를 다시 고민에 빠졌었어요.”연극 ‘맨 끝줄 소년’ 클라우디오 역의 안창현(사진=강시열 작가)그리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침대에 눕습니다”라는 전박찬에 안창현은 “저는 저만의 표현으로 눕습니다”라고 차별점을 설명했다. 보지 않은 상태에서는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두 클라우디오의 차별점에 대해 전박찬은 “물리적으로 무대에서 눕는 행동은 제가 하는데 안창현 배우는 다르게 눕는다”고 눙친다.“그래서 저는 많이 순화했다”는 전박찬에 안창현은 “제가 공연과 대본을 봤을 때는 ‘숭악하다’기 보다는 섬뜩한 부분은 있었다”며 “마지막 부분은 사실 좀 놀랐다”고 말을 보탰다.“순박한 걸 절대 놓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에요. 그 순박함이 제 장점 중 하나인 것 같기는 해요. 연출님께서 ‘창현이는 소름끼칠 정도로 섬뜩하거나 눈물 날 정도로 불쌍한 걸 잘하는 것 같아’라고 하셨어요. 중요한 건 클라우디오는 그 중간을 해야한다는 거죠. 중간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흔들리는 순간 아무 의도 없이 바라보는데도 ‘무섭다’거나 ‘너무 불쌍하다’고 느끼시는 것 같아요.”그리곤 “너무 무섭다거나 불쌍하다는 말을 한 100번은 들었다”는 안창현에 전박찬은 “저 역시 300번은 들은 디렉션”이라며 “이 작품이 그래서 어려운 것 같다”고 동의를 표했다.“별 것 안하는데도 불쌍해 보이고 무서워 보이고 하거든요. 그렇지 않아야만 완성되는 장면들이 너무 많아요. 아무 것도 안해야 하지만 또 뭔가를 쌓아가야하는 그런 장면들이죠. 연출님께서 ‘속은 채워 가둬두고 겉으로는 단단하게 하라’고 말씀하시는데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철저하게 계산해서 가두는, 쉽지 않은 그 과정을 견뎌내고 연습실에서 쌓았던 시간들을 무대 위에서 할 때 관객들도 동의하시는 것 같거든요.”그래서 관객들에게 동의 받는 “클라우디오의 근육이 중요하다”고 다시 한번 강조하는 전박찬에 안창현은 “스스로도 명확하지 않아서 힘들지만 연습을 통해 단련돼야 할 것 같다. 그러면서도 익숙해지지 않고 그 순간 살아 있으려고 애쓰고 있다”고 동의를 표했다.◇전박찬의 에스테르와의 만남, 안창현의 헤르만 선생님과의 수업연극 ‘맨 끝줄 소년’ 클라우디오 역의 안창현(왼쪽)과 전박찬(사진=강시열 작가)“공연 때마다 다른데 요즘에는 에스테르를 만나는 장면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사실 지금 가장 어려운 장면이기도 해요.”최근 가장 와닿는 장면에 대한 질문에 전박찬은 “모든 장면 장면들이 다 소중하고 중요해서…”라는 전제를 달며 “마지막 에스테르와의 만남”이라고 답했다.“사실 ‘맨 끝줄 소년’은 후안 마요르카 작품 중 가장 쉽게 쓰여진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작품은 ‘이게 뭐야’ 싶은 경우가 있는데 ‘맨 끝줄 소년’은 큰 상징이나 어려운 건 존재하지 않아서 잘 따라가다 보면 즐길 수 있는 정도거든요. 재공연 때는 후아나를 만나는 장면이 그랬는데 이번에는 에스테르를 만나는 그 마지막 장면이 가장 신경이 쓰여요. 매일 매일 바꿔서 뭔가를 하는데 매번 다른 감각들이 다가오는 게 참 신기하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고 그래요. 그래서 지금은 그 장면이 되게 좋아요.”안창현 역시 “모든 장면이 다 소중하다”며 “처음부터 중요하게 생각했고 요새 들어 점점 재밌어지는 부분들이 헤르만 선생님과 만나는 부분들”이라고 밝혔다.“요새 들어 엄청 재밌기 시작하더라고요. 런을 돌 때마다 미묘하게 바꿔가면서 한 다양한 시도들로 더 찾아지는 것들이 있거든요. 클라우디오의 글을 말로 읽는 것도 재밌지만 헤르만 선생님의 문학수업이 좋고 중요하게 느껴져요. 대화라기 보다는 헤르만 선생님이 거의 다 얘기하시죠. 그 말 속에서 들리는 의미들이 어느 순간 더 잘 들리고 흡수되기 시작한 것 같아요.”◇상상과 현실이 만나지는 순간들, 독자 그리고 2019년의 관객들연극 ‘맨 끝줄 소년’ 클라우디오 역의 전박찬(사진=강시열 작가)“클라우디오의 글쓰기는 헤르만 선생님이 30분을 주면서 지난 주말에 대해 서술하라는 데서 시작됐어요. 헤르만 선생님한테 ‘다른 사람 보여주라고 쓴 게 아닌데요’라던 클라우디오가 ‘다른 사람 보여줘도 돼요’라고 하면서 독자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 같아요. 선생님과 문학수업을 하면서 작가로서 글 쓰는 데 대한 재미와 흥미가 생기고 스스로를 존재하게끔 하는 이유가 생겨나지 않았나 생각해요.”이렇게 설명한 전박찬은 “글을 잘 썼으니 보여주라는 게 아니라 더 잘 쓰기 위한 선생님과의 순간”이라며 “순수한 작문에서 소설로 가는 과정에서 상상과 현실이 만나는 순간들처럼 독자들이 누릴 수 있는 몫으로 넘기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연극 ‘맨 끝줄 소년’ 클라우디오 역의 안창현(사진=강시열 작가)글을 쓰는 클라우디오가 독자들을 염두에 두기 시작하는 것처럼 전박찬과 안창현 역시 무대에서 관객을 만나고 소통한다. 이에 안창현은 헤르만의 대사 “질문이 독자들 마음에 꽂혀야 돼. ‘어떻게 될까?’ 독자에게 쉴 틈을 주어서는 안 돼. 긴장을 유지시켜야 돼. 작가가 독자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면 독자는 자기 마음을 줘. 사람들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해. 이야기 없는 인생은 아무런 가치가 없어”라는 대사를 인용했다.“실질적으로 공연을 하면서 그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클라우디오)가 쓴 글을 통해 관객들이 더 듣게 되고 집중하게 되고 긴장을 유지하면서 흐름이 끊기지 않게 따라와 주면 좋겠어요.”전박찬은 세 번째 클라우디오와의 만남에 대해 “사회도, 관객도 바뀌어서 고민이 많았다. 시대와 맞닿는 지점을 잡아가는 과정을 보냈다”고 털어놓았다.“위치도, 말도 바꿔내고 하는 건 2019년 관객들과 만나기 위해서였어요. 그리고 무대 위에 선 우리도 지금을 같이 살고 있잖아요.”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19-10-23 15:30 허미선 기자

[비바100] 저마다의 알리바이는 어떻게 역사가 되었나…‘다윈영의 악의 기원’ ‘알리바이 연대기’

창작가무극 ‘다윈영의 악의 기원’(왼쪽)과 연극 ‘알리바이 연대기’(사진제공=서울예술단, 국리극단)어쩌면 역사는 혹은 지금의 사회는 개인 저마다의 ‘알리바이’가 만들어낸 결과물인지도 모른다. 피고인이 범행 시에 그 범행 현장에 없었음을 증명하는 알리바이. 선하거나 악한 의도와 크고 작은 이유로 만들어낸 ‘알리바이’가 개인의 연대기를 만들어 대물림돼 사회를, 역사를 그리고 세계를 구성한다. 그렇게 개인이 만들어낸 ‘알리바이’는 사회를, 역사를 그리고 세계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국립극단의 연극 ‘알리바이 연대기’(11월 10일까지 명동예술극장)와 서울예술단 창작가무극 ‘다윈영의 악의 기원’(10월 27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은 이 같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고(故) 박지리 작가의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한 ‘다윈영의 악의 기원’은 지난해 초연됐던 작품으로 사는 곳에 따라 계급이 나뉘는 가상의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킬미나우’ ‘시티오브엔젤’ ‘레드북’ 등의 오경택 연출작으로 ‘최후진술’ ‘해적’ ‘미아 파밀리아’ ‘신흥무관학교’ ‘귀환’ 등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지닌 이희준 작가가 대본과 작사를, ‘쓰릴미’ ‘스위니토드’ ‘넥스트 투 노멀’ ‘빅 피쉬’ 등을 번역하고 ‘엑스칼리버’ ‘팬텀’ ‘더 라스트키스’ 등의 가사를 쓴 박천휘 작곡가가 넘버를 꾸렸다.창작가무극 ‘다윈영의 악의 기원’(사진제공=서울예술단)최상위 계층이 사는 1지구의 명문학교 프라임 스쿨에 재학 중인 열여섯 소년 다윈 영(최우혁)과 그의 아버지이자 교육부장관 니스 영(박은석) 그리고 그의 아버지 러너 영(최정수)의 이야기로 대물림되는 악의 연대기다.다윈이 니스의 친구였고 다윈의 첫사랑 루미 헌터(송문선)의 삼촌이기도 한 제이 헌터(신상언)의 미제 살인사건을 추적하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숨겨야만 했던 ‘알리바이’를 맞닥뜨리게 되는 과정을 따른다. 가수가 되고 싶었던 니스는 아버지 러너를 위해 더 높은 곳으로 오르는 선택을 해야 했다. 그런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비밀을 맞닥뜨린 다윈은 니스의 전철을 밟으며 악의 연대기를 이어간다.연극 ‘알리바이 연대기’(사진제공=국립극단)‘다윈영의 악의 기원’이 ‘알리바이’로 대물림되는 악의 연대기라면 연극 ‘알리바이 연대기’는 경계를 지켜야만 했던 소시민을 통해 한국 현대사를 아우른다. ‘생각은 자유’ ‘병동소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등의 김재엽 작·연출의 자전적 이야기다. 오사카에서 태어나 어린시절을 보내다 대구로 건너와 경계인으로 살아야 했던 아버지 김태용(남명렬)의 개인사와 태평양전쟁, 6.25전쟁, 유신정권의 탄생, 전교조, 미제사건으로 남은 장준하 서거 등 굴곡진 한국 현대사가 맞물린다.아버지의 ‘알리바이’는 대부분 장남에게 당부하던 “가운데 삶, 치우치거나 앞질러 가거나 너무 처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김재엽 연출은 “추리소설을 좋아하시던 아버지는 ‘알리바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다”며 “돌아가시기 전 탈영 얘기를 하시면서 속에 얘기 털어놓으니 시원하다고 하셨다. 그 상황을 문학적으로 은유해 ‘알리바이’라고 표현했다”고 설명했다.연극 ‘알리바이 연대기’(사진제공=국립극단)“관객이 이 연극을 읽어내는 방식을 연출가로서 다시 읽어내고 싶어요. 현재 사회가 경제문제, 정의로움의 문제 등 세상을 읽어내는 코드가 정치에 국한되기 보다는 다양해서 그 시각들을 다 포용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2013년 초연 이래 세 번째 시즌까지 아버지 김태용으로 분하고 있는 남명렬은 “초연 때나 지금이나 정치사회적 의미를 가진 연극이라고 생각한다”며 “내 개인의 삶과 사회가 연관되는 것들을 다시 한번 곱씹게 되는 작품”이라고 말을 보탰다. 재엽을 연기하는 정원조의 토로처럼 “극 중 병상이 아버지가 하는 ‘누가 옳은 사람인지 모르겠다’는 말이 와닿는” 시대다. 검찰개혁, 공수처 설치, 고위급 자녀들의 입시 비리 전수조사 등을 두고 양분되고 색깔론이 대두되는 시대다.“정치적 진영 논리든, 가치관의 차원이든 어딘가 합쳐지거나 수렴돼야 의견이 살아남는 시대”라는 김재엽 연출의 말처럼 “수렴되지 않은 개인 그리고 개인의 역사는 사회에 스며들기 쉽지 않다. 하지만 집단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개인들도 분명히 정치적 활동을 하고 있다.”“정치적 진영 논리든, 가치관의 차원이든 어딘가 합쳐지거나 수렴돼야 의견은 살아남는 시대”라는 김재엽 연출의 말처럼 “수렴되지 않은 개인 그리고 개인의 역사는 사회에 스며들기 쉽지 않다. 하지만 집단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개인들도 분명히 정치적 활동을 하고 있다.”내편 아니면 적, 극과 극으로만 양분돼야 하는 시대에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개인들의 정치적 활동, 그들의 ‘알리바이’도 눈여겨 보아야할 때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19-10-23 07:00 허미선 기자

[B그라운드] 채 아물지 않은 상처 딛고 미래를 향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비전 2030 "빠르게 아닌 바르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비전 2030을 발표 중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박종관 위원장(사진제공=PRM)“그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는 태풍에 부서진 난파선과 같았고 블랙리스트는 예술현장을 그리고 예술위를 할퀴고 지나갔습니다. 모두 아팠고 그 상처는 채 아물지 않았지만 우리는 끝나지 않은 과거와 시작되지 않은 변화 사이의 모호한 경계에서 머뭇거리지 않기로 했습니다.”22일 서울 종로구 아르코 대극장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 비전 2030’을 발표하며 박종관 위원장은 “새로운 출발 위해 나아가기로 했다”고 전했다. ‘창조의 기쁨을 함께 만드는 예술현장의 파트너’로 새 출발을 다짐한 예술위는 예슬인 전문가 6명, 위원 4명, 사무처 직원 5명으로 구성된 아르코 혁신 TF를 발족해 23개의 혁신 의제(조직혁신 10가지, 산업혁신 13가지)를 도출했다.박 위원장은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사무처에 소통혁신팀을 구성해 기관 전략 수립과 운영체계 혁신 등 혁신 의제 추진 등을 진행했다”며 “과거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위기를 헤쳐 나가기 위한 절박함과 기관 혁신 희망이 어우러진 과정이었다”고 설명했다.그 과정 끝에 ‘도전과 변화’ ‘공감과 협력’ ‘공공책무성’을 핵심가치로 ‘예술의 창의성과 다양성 존중’ ‘문화예술 가치의 사회적 확산’ ‘자율과 협력 기반의 기관 운영’이라는 ’3대 전략 목표를 세우고 6대 전략과제, 15개 세부과제를 설정했다.박 위원장은 “예술가의 창작터전을 튼튼히 하겠다, 예술로 풍요로운 삶 지키겠다, 삶과 사회를 치유하는 예술을 지원하겠다, 개방적 예술행정의 기준이 되겠다, 지율과 협력의 예술행정기관으로 거듭나겠다”는 5가지 원칙을 밝히기도 했다.5가지 원칙 중 지속가능한 예술가의 창작 터전 공고화를 위해 1년 단위의 단기 프로젝트 중심의 사업구조를 다년간 지원사업 체계로 개편해 창작활동 모든 과정을 지원하고 이종분야 교류 지원, 융복합 기술 매칭, 공유창작 플랫폼 신설 등 새로운 창작환경을 반영해 지원한다. 더불어 예비·신진예술인, 중견·원로예술인의 예술활동 및 경력에 따른 예술가 맞춤형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예술 단체의 자생력 강화를 위한 예술 단체 중장기 집중지원 사업을 대폭 확대한다.‘자율과 협력의 예술행정’ 혁신을 위해 공공성과 자율성 강화를 최우선 과제로 수립한 ‘기관운영체계 혁신’, 예술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정책 실현을 위해 다양한 지원 기구와 지역문화재단을 잇는 협치, 현장예술 중심의 생태계와 공론장을 형성하는 ‘현장 협력형 기관 운영’에 방점을 찍는다. 가칭 ‘예술가의 친구센터’ 신설로 예술인이 어렵게 여기는 계약, 정산 등 컨설팅을 지원하고 예술인의 고충, 애로상담지원 기능도 확대한다.박 위원장은 “성폭력, 불공정 임금지급 등 불공정한 환경 개선 제도와 기준 통해 공정하고 투명 창작환경을 고민하겠다”며 “미래 주역인 어린이와 청소년의 문화적 감수성을 풍부하게 하는 사업을 확대하고 문화 향유를 가로막는 사회적, 경제적, 지리적 장애를 차례로 해소하겠다”는 다짐을 전했다.이어 박 위원장은 “창작지원 예산을 2020년 667억원에서 2030년에는 2004억원 규모로 확대하고 3 대 7로 불균형을 이루는 창작과 향유 공연 지원사업도 바로잡겠다”고 이후 행보를 덧붙이며 다짐을 전하기도 했다.“이제 2030년 미래로 가기 위한 첫 걸음음을 뗐습니다. 말 그대로 첫걸음입니다. 토론과 숙의는 어쩌면 느린 길일 수도, 어려운 길일 수도 있으나 예술위는 빠르게 가기 보다는 바르게 가는 길을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2019년 연말까지 의제별로 다양하게 현장 사람들을 급하게 만나겠습니다.현장 목소리를 듣거 현장과 함게 비전 2030을 완성시키겠습니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19-10-22 23:26 허미선 기자

존 스타인벡 노동자 3대 비극 시리즈 중 하나…연극 ‘생쥐와 인간’ 조기 폐막

연극 ‘생쥐와 인간’ 레니 서경수와 조지 고상호(사진제공=빅타임엔터테인먼트)11월 17일까지 공연되기로 했던 연극 ‘생쥐와 인간’이 조기폐막한다. 제작사 빅타임엔터테인먼트는 22일 오후 공식 SNS에 “장기간 이어진 공연계의 불황과 제작사 운영상의 어려움으로 관객 여러분과 약속한 공연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예정보다 앞당겨 10월 25일 금요일을 끝으로 조기폐막을 결정했다”고 알렸다. ‘생쥐와 인간’ 관계자는 브릿지경제와의 통화에서 “전 스태프와 배우들이 모여 논의 끝에 조기 폐막을 합의했다”며 “공연계가 불황이다 보니 객석이 많이 안차서”라고 조기폐막 이유를 밝혔다. 이어 “제작사가 금전적으로 운영이 어려운 상황이라 더 끌고 갔다가는 스태프나 배우 분들에게 폐가 될 것이라고 판단해 이쯤 마무리하로 결정했다”고 덧붙였다.연극 ‘생쥐와 인간’ 조지 문태유와 레니 최대훈(사진제공=빅타임엔터테인먼트)‘생쥐와 인간’은 노벨문학상, 퓰리처상을 수상한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의 동명원작을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승산없는 싸움’(1936), ‘분의 포도’(1937)와 더불어 노동자 3대 비극 시리즈 중 하나다.1930년대 대공황기의 미국 목장을 배경으로 아이처럼 순수하지만 큰 덩치와 주체할 수 없는 힘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레니(최대훈·서경수, 이하 시즌합류·가나다 순)와 영민하지만 교육받지 못한 채 목장을 전전하는 조지(문태유·고상호)의 이야기다.노동자들의 비극적인 삶, 약자들 간의 차별과 상처, 허망하게 무너져버린 꿈에 대한 이야기로 1937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됐고 한국에서는 지난해 첫선을 보였다.관계자는 “25일 이후 공연은 전액 수수료 없이 환불되며 예매자 분들께는 콜백을 드릴 예정”이라며 “그외 관객분들의 요청이나 문의사항은 전화, DM(다이렉트 메시지) 등을 통해 가능한 범위에서 처리해 드릴 것”이라고 전했다.배우들의 출연료나 스태프들 페이 지급에 대해서는 “일한 부분까지는 불미스럽게 페이지급이 안될 여지는 없는 상황”이라며 “계약기간이 달라서 이미 페이 지급이 보장된 분도 있다. 그렇지 않은 분들도 계약기간에 따라 지급 보장이 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19-10-22 19:00 허미선 기자

[비바100] 단독 콘서트 ‘서울클래식’ 앞둔 카이 “스승 박인수 선생님과 함께 ‘향수’ 듀엣!”

카이(사진제공=EMK엔터테인먼트)“사실 너무 바빠요. 너무 바쁜데 안 바쁜 것처럼 살아요. ‘뇌내혁명’이라는 책에서 읽었는데 인간의 뇌에는 껐다 켰다 할 수 있는 스위치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콘서트 준비할 때는 그 스위치를 켜고 ‘레베카’에 가서는 그 스위치를 켜고…일종의 놀이로 받아들여져요.”이어 “임무 완수 과정을 즐기는 것처럼”이라고 덧붙인 뮤지컬 배우 카이는 자신의 바쁜 행보에 대해 ‘놀이’라고 표현했다. 이제 막 뮤지컬 ‘벤허’를 마치고 ‘레베카’(11월 16~2020년 3월 15일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연습에 본격 돌입했는가 하면 10월 24일에는 단독 클래식 콘서트 ‘카이의 서울 클래식’(LG아트센터)도 열린다. 2016년 9월 ‘내가 가만히 있으니까 가마니로 보이니’로 인연을 맺은 MBC 예능 프로그램 ‘복면가왕’에서는 고정 판정단으로 활약 중이기도 하다.“‘복면가왕’은 바쁜 중에도 꼭 출연하고 싶을 정도로 애정을 가지고 있어요. 가수 혹은 가수가 아닌 분들의 노래와 자세를 보면서 오랫동안 학교에서, 책으로도 배우지 못한 것들을 너무 많이 배워요. 다양한 무대에 수도 없이 섰지만 제가 가지지 못했던 마음들이 있죠. ‘복면가왕’을 녹화하는 스튜디오에 가면 콧바람을 쐬는 느낌도 들고 리플래시되고 그래요.”◇스승 박인수와의 ‘향수’ 듀엣, 공상이 현실이 되다 카이(사진제공=EMK엔터테인먼트)“사실 너무 바빠요. 짧은 기간 안에 너무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진행하고 있거든요. 어떤 의미에서는 계획 안에 있었던 것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요. 일례로 대학 때 삼성역 롯데면세점 광고판의 동방신기를 보면서 혼자 재밌게 ‘나중에 나도 저걸 찍을 수 있지 않을까’ 공상을 했어요. 그때는 100킬로그램이 넘을 때였죠. 더불어 포토북, 콘서트 등 공상들을 진짜 많이 했어요. 그런 의미에서는 계획 안에 있었던 것들이죠. 반면 너무 해보고 싶은 일을 덜컥 덜컥 받아들였는데 시기가 한꺼번에 몰려버린 건 계획에 없던 일이고 그래요.”며칠 앞으로 다가온 단독 콘서트에서는 넓은 의미의 ‘계획’이며 그의 수많은 공상들 중 하나가 현실이 된다. 서울 음대 스승인 성악가 박인수와 함께 무대에 올라 ‘향수’를 부를 예정이기 때문이다. ‘향수’는 시인 정지용이 1927년 발표한 동명 시에 작곡가 김희갑이 곡을 붙여 테너 박인수와 가수 이동원이 함께 부른 듀엣곡이다. 이 곡에 대해 카이는 “공전의 히트곡”이라며 “나중에 알게 됐는데 소위 ‘딴따라 음악’을 불렀다는 이유로 소속 단체에서 제명당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제 수많은 공상 중에 박인수 선생님이랑 함께 무대에 오르는 것도 있었어요. 대학교 1학년 때인가 ‘너 내일 뭐하냐? 나랑 ‘향수’를 불러야겠다’고 연락을 주셨어요. 경기도 행사였는데 보통 고학년의 노래 잘하는 선배들과 듀오를 하시는데 그 시기가 다들 연주회, 국제콩쿠르 등으로 공석이었거든요.”그리곤 “밤 10시 넘어서 동네 노래방으로 달려가 연습을 했다. 박인수 선생님이랑 ‘향수’를 부른다는 생각에 잠도 설치고 리허설을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원래 듀오 파트너이신 이동원 선생님이 나타나셨다”며 “예정도, 약속도 없이 나타나셔서 결국 저는 무대에 오르질 못했다”고 덧붙였다.p카이(사진제공=EMK엔터테인먼트)카이(사진제공=EMK엔터테인먼트)“무대 경험만큼 소중한 것이 없고 가르침이 없다 강조하시면서 크고 작은 무대에서 제자들이 더 빛을 발할 수 있게, 무대 경험을 쌓을 수 있게 노력하셨던 분이세요. 저 뿐 아니라 많은 제자들에게 애정을 쏟으셨죠. 저와의 에피소드가 유독 많았던 건 제가 좀 유별난 제자였기 때문이에요.”이어 “지시에 거부도, 반항도 많이 했다. 제 성격이 워낙 유별나서 어지간해서는 의견을 굽히지 않다 보니 선배, 스승님들께 오해도 받곤 했다”며 “언젠가 선생님께서 성깔, 도전의식이나 음악에 대한 애정 등이 유별나다며 본인을 많이 닮았다고 얘기하신 적은 있다”고 덧붙였다.“새벽에 웨이터로 일하는 주점에 찾아오셔서 주머니에 돈을 넣어주시면서 ‘노래할 사람이니 그만두면 좋겠다’는 가르침을 주시던, 아버지 같은 존재죠. 그 분께서 1991년에 발표했던 곡을 트리뷰트 개념으로 함께 했어요. 80세를 넘기신 스승님을 녹음실로 모셔서 이야기 하듯이 같이 녹음을 했어요. 이번 콘서트에도 유일한 게스트로 노스승께서 직접 참여해주십니다.”그리곤 “여전히 풍채도 좋으시고 건장하신 스승님께서 나이듦으로 인한 목소리 변화에 제자에게 해가 될까 걱정이 많으셨다”며 “20년 동안 모시면서 보지 못한 모습”이라고 말을 보탰다.“우리네 아버지 같은 뒷모습에 가슴이 찡했어요. 오래도록 잊지 못할 소중한 녹음이 될 것 같아요. 녹음과 콘서트 게스트로 모시는 캐런티로 멋진 연주복을 맞춰 드리기로 했죠. 장가들면서 어머니께 한복 맞춰드리는 것처럼요.”◇무대 위와 아래가 같은 정기열로! 카이(사진제공=EMK엔터테인먼트)이번 콘서트에서는 스승 박인수와의 듀엣을 비롯해 가수 카이만의 색채를 담은 곡들로 세트리스트를 꾸린다.카이는 “이렇게 일이 커지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며 “처음 스태프 회의하는 날 갔는데 기백억원을 들인 뮤지컬 ‘엑스칼리버’에서나 볼법한 영상, 음향 등의 스태프 대장(?)들이 다 모여 있었다.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구나’ 경각심을 가지게 됐다”고 털어놓았다.“클래식이라는 주제 안에서 최고의 것을 보여주자는 마음으로 고민을 많이 했어요. 한국관광공사 공연문화 홍보대사로 활동하면서 아시아 지역에서 많은 공연을 하면서 뮤지컬 넘버나 가요 등을 불렀어요. 그 과정에서 외국인, 교민, 관광객 등을 위해 노래할 때 카이의 본질을 보여줄 만한 한국적 음악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됐죠.”그 고민 끝에 ‘카이 인 코리아’ 앨범 발매와 기념 단독 콘서트를 결정했다. ‘카이 인 코리아’는 2014년 ‘카이 인 이탈리아’에 이은 5년만의 앨범으로 ‘향수’ ‘애모’ 등 가곡을 재해석해 담았다. ‘벤허’ ‘프랑켄슈타인’ 등에서 호흡을 맞춘 이성준 음악감독이 편곡은 물론 카이만을 위한 신곡도 작곡해 담았다.“뮤지컬은 역할로 무대에 선다면 콘서트에서는 정기열로서, 한명의 아티스트예요. 무대 위와 밖이 같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스타를 원하고 멋진 모습을 기대하죠. 지금까지 바뀌는 않은 저만의 몇 가지 지론 중 하나가 무대 위와 밖이 같은 사람이라는 거예요. 덜 빛나는 스타가 되도, 신비감이 좀 덜한 사람이 되더라도 전 무대 위와 아래가 같은 사람이고 싶어요. 분장으로 인해 외형적으로는 다르지만 언제나 정기열이라는 인간이자 아티스트 카이의 모습으로 무대에 설 겁니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19-10-22 07:00 허미선 기자

[人더컬처] 끊임없는 고민과 질문…연극 ‘킬롤로지’ 김수현 “누군가의 손을 잡아준다는 것”

연극 ‘킬롤로지’ 알란 역의 김수현(사진=강시열 작가)“분명 작가가 의미를 가지고 썼을 텐데 여전히 명확하게 잡히지 않는 단어들이 되게 많아요. 저희들끼리는 가능성 있는 몇 개의 의미를 약속하고 공연 중이긴 해요. 하지만 막상 답이 뭐냐고 하면 설명이 어려운 단어 혹은 키워드들이죠.”연극 ‘킬롤로지’(11월 17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아들을 잃은 아버지 알런을 연기 중인 배우 김수현은 “작가가 이러길 바란 건지, 저러길 바란 건지 모르겠는 부분들이 여전히 너무 많다”며 “그래서 계속 질문을 던지게 되고 더 많이 생각하게 되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연극 ‘킬롤로지’는 개인의 삶을 통해 사회 시스템의 문제를 파고드는 게리 오웬 작품으로 2017년 영국 로얄 코트에서 처음 무대에 올랐고 한국에서는 지난해 초연됐다. 게임 킬롤로지와 똑같은 방식으로 살해당한 16세 소년 데이비(이주승·은해성, 이하 시즌합류 순)와 그의 아버지 알란(김수현·윤석원), 킬롤로지 개발사 CEO 폴(이율·오종혁)이 저마다의 독백으로 미디어 폭력, 학교 폭력, 사회 부조리 등을 아우른다.연극 ‘킬롤로지’ 알란 역의 김수현(사진제공=연극열전)“초연 때는 가방에서 꺼내는 도구 순서까지 정했어요. 감정적으로 불안하다보니 어떤 이상한 실수도 하면 안되겠다는 마음에 이 마디를 할 때는 이걸 꺼내고 이 말을 할 때는 이걸 꺼내는 식으로 완벽하게 세팅을 해놓고 들어갔죠. 하지만 재연을 하면서는 정서와 느낌은 지키되 표현은 정해놓지 말고 느끼는대로 충만하게 해보자 마음 먹었어요. 가방 안에서 꺼내는 연장의 순서도 그날그날 다르고 어떤 때는 3개를 한꺼번에 꺼내기도 해요. 놓는 위치도 다르죠.”◇꼭 짚어야 할 말들에 대한 고민“재연 처음 연습을 시작할 때 (박선희) 연출이 두 가지 측면에서 다르게 해보고 싶다는 말을 했어요. 초연에서 너무 감정을 과잉으로 쓴 것 아니냐, 대본을 번역하고 윤색하는 과정에서 오역까지는 아니지만 해석의 오류가 있는 부분을 손보면 좋겠다, 두 가지였죠.”이어 김수현은 “그래서 초연에서 빼고 갔던 대사 추가가 많았고 수정도 좀 있었다”며 “같은 내용이라도 의미하는 바가 뭔가 고민하는 건 괜찮은데 말 자체가 ‘이게 지금 뭐라는 거야’ 하는 건 없기를 바랐다”고 털어놓았다.“혹시나 놓치고 가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어 초연 때부터 원 대본을 그때그때 참조해서 보기도 했어요. 영어 잘하시는 분께 묻고 또 물어서 제 대사만이라도 단어 느낌을 좀 바꾸고 싶었어요. 관객 입장에서는 확 다르게 인지되는 건 아닌데 켜켜이 쌓여서 다가가기를 바랐거든요.”그리곤 “예를 들면 생각보다 말이 엄청 분절돼 있다. 대본 원본에도 띄어쓰기가 굉장히 많다”며 “영어 잘하는 분들을 몇분 모셔서 ‘시적으로 얘기하는 거냐’ 물었더니 ‘일상적으로 말하는 방식’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어 “무슨 의도인지 계속 띄어서 시 쓰듯 써둔 대본이라 우리 말로 번역하니 다 쪼개져 버렸다”고 덧붙였다.연극 ‘킬롤로지’ 알란 역의 김수현(사진=강시열 작가)“말마다 쉬어가라는 건지, 접속사를 붙여야할지…초연 때도 매일 카페에서 다시 대본을 보면서 말의 의도가 관객들에게 좀 더 편하게 다가가게 조사나 어미를 좀 수정해서 연결시켜야 하지 않나 고민이 많았어요. 옳고 그름의 판단보다는 각자 선택의 문제였죠. 그래서 전 의미가 같아서 붙는 건 끝에 마무리를 안 짓는 방식으로 손을 봤어요. 너무 끊어서 갈 수는 없어서 ‘~했는데’ ‘~했지만’ 식으로 뒷문장으로 넘겨 붙였죠.”그리곤 첫 대사를 예로 들었다. 김수현은 “첫 대사가 ‘제가 살해할 사람을 기다립니다’인데 원 대본은 ‘살해’라는 단어를 강조하기 위해서 맨 뒤로 빠져있다. ‘저는 기다립니다, 살해할 사람을’ 식”이라고 전했다.“그걸 살리고 싶었어요. 게다가 ‘살해’는 우리가 편하게 쓰는 말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전 기다립니다, 죽일 사람을’로 바꿨죠. ‘출입통제했다고 사인해주세요’를 ‘사인해주세요, 출입통제했다고’도 그래요. 대본 자체가 중언부언하다 보니 꼭 짚어야 할 중요한 말들이 흘러가는 경우들도 있어요. 말은 편하게 하면서도 의미는 받아들여질 수 있기를 바랐죠.”연극 ‘킬롤로지’ 알란 역의 김수현(사진=강시열 작가)◇여전한 질문 “설탕 세 스푼” 그리고 어쩌면 완벽한 환상“데이비가 죽고 다시 살아났을 때 관객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게 해야하는 건지…. 알란의 상상이라고 받아들이도록 해야하는지 명쾌하게 살아있다고 생각하게 둬도 좋은 건지, 작가가 일부러 헷갈리게 해둔건지…고민이 너무 많았고 지금도 그래요. 그 상태로 뒤로 가다 보면 아들 데이비를 만나 ‘설탕 3스푼’을 맞닥뜨리게 되죠.”이렇게 토로한 김수현은 아빠 알란을 자신이 일하는 병원에서 만난 데이비가 “아빠 지금도 차에 설탕 3스푼 넣어요?”라고 묻는 장면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했다.“뭘 표현하려고 느닷없이 ‘설탕 3스푼’이라고 한 건지, 작가가 무슨 생각으로 쓴 건지 여전히 어렵다”고 말을 보탰다. “설탕 세 스푼은 할 때마다 온전히 느껴보자 하는데도 여전히 명확히 잡히질 않아요. 이번 공연에서 데이비의 첫 장면에서 처음 깨달은 게 있어요. 막연하게 알란의 증언 속에서, 알란이 아는 범위 내에서 사실에 기초한 데이비를 만들었다고 생각했어요. 알란이 묘사하는 데이비는 일생에 딱 한번 보고 만들어낸 알란의 환상이지만 그래도 데이비의 첫 장면 정도는 되도록 실제로 접했고 들었던 충격적 사건들이 녹아 있는 완전한 사실을 단순히 그렸다고 생각했죠.”그리곤 “그런데 ‘그게 그 사람을 본 마지막이었어요. 그 뒤로 오랫동안’이라는 데이비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자니 ‘그럼 이것(데이비의 첫 장면)도 사실이 아니잖아’라는 생각이 들면서 완벽한 환상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고 부연했다.연극 ‘킬롤로지’ 중 아들 데이비 이주승과 아빠 알런 김수현(사진제공=연극열전)이어 “그렇게 ‘그 뒤로 오랫동안’ 하고 나서 데이비는 노숙자처럼 돼서 나타난 저(알란)를 만난다”며 “그래서 ‘설탕 세 스푼’에 생각이 많아졌다”고 덧붙였다. 독백 위주로 풀어가다 대화를 하는 듯한 장면인가 하면 서로의 독백이 묘하게 맞아 떨어지는가 싶기도 하다.“알란이 만들어낸 환상이던 흐름에서 그 장면은 유독 데이비가 주도하거든요. 데이비가 만들어낸 아빠에 대한 환상인가 싶다가 알란이 만들어낸 환상에 오류가 있나 싶기도 해요. 일부러 만들었다면 데이비에게 뭘 느끼거나 느끼게 하고 싶은 건지 혹은 관객들에게 뭘 설득하려고 한건가…너무 어려운 문제죠. 현실적으로 진짜 오랜만에 만난 부자지간이어도, 환상이라고 해도 말이 되는 교집합이면 좋겠다 싶었어요.”◇괴로워할 만한 말들, 외면하게 되는 행복한 단어들 연극 ‘킬롤로지’ 알란 역의 김수현(사진=강시열 작가)“머리를 기대오는 따뜻한 (아내) 캐롤의 무게, 옆방에서 잠든 아기 때의 데이비 숨소리 등 저를 안심하게 하거나 따뜻한 말들은 지금의 고통에서 잠깐 잠깐 빠져나가는 수단으로 느껴져요. 그래서 그 본질보다는 오히려 저를 괴롭히는 말들로 다가오죠. 스스로를 벌준다는 느낌으로 생각을 끌고 가는 것 같아요. ‘묵직하게 짓누르는, 나를 잡아주는 따뜻한 무게’도 따뜻하다는 느낌보다는 그걸 못해줘서 지금의 비극적 상황이 된 것이라는, ‘중압감’에 무게를 두게 되거든요.”이렇게 전한 김수현은 “관객들에게 이런 일을 겪었다고 얘기를 해주면서도 고민이 많다”며 “한없이 고통스럽게 표현할 것인지, 최대한 덤덤할 수 있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공연을 하면 할수록 숙제처럼 어려워지는 것들 투성이”라고 토로했다.“제가 괴로워할 만한 말들, 감정이 벅차오르는 순간들이 있는데 공연마다 달라요. 어떤 때는 처음 데이비를 인지했다고 느끼고 발견한 장면에서 감정들이 훅 밀려와요. 어떨 때는 막연하게 있다가 ‘난 그걸로 충분해’라는 마지막 말 직전에 훅 밀려오기도 하죠.”연극 ‘킬롤로지’ 알란 역의 김수현(사진=강시열 작가)그 순간들에 대해 “대부분 스스로를 벌주는 듯한 장면이나 말들”이라고 덧붙인 김수현은 “(폴의 집에 난입했다가 붙잡혀 서게 된) 법정에서 ‘난 죽일 수가 없었다’ ‘누군가는 폴의 전부를 사랑했을테니까. 어떤 사람이든’이라는 부분에서도 그렇다”고 예를 들었다.“본능적으로 되게 비겁한 변명이라고 느껴져서 말할 때 되게 불편해요. 그래서 아들에 대한 미안함과 그로 인한 죄책감 등을 떠올리면서 저에게 고통을 주면 마음이 좀 나아져요.”◇아버지 그리고 아들, 관계 맺기의 본질 “관계 맺기의 종류는 다르지만 엉망진창인 관계라는 본질은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알란과 데이비, 폴과 그의 아버지, 폴과 입양한 아들 에단 등 여러 형태의 부자에 대해 김수현은 이렇게 의견을 밝혔다.“사실 초연 때는 저희들끼리도 ‘폴의 아빠가 뭐가 문제야?’라는 논란이 많았어요. 정의롭고 올바른 말만 하는 아빠잖아요. 한 사람의 독백에 의해 관객에게 어떤 아빠였을지를 추정하게 하는 극이다 보니 틈틈이 묘사가 들어가는데 독백하는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묘사하느냐에 따라 달라져요. 하지만 결국 인간적으로 관계 맺기에 실패한 건 똑같죠.”그리곤 “데이비가 8살 여자아이를 만나 자전거를 뺏고 그 꼬마의 아빠와 실랑이하는 장면을 묘사할 때 그 아빠가 무서우면서도 딸 앞이라고 잘난척한다는 말이 그렇게 괴롭다”고 털어놓았다.“저는 결혼도 안했고 아이도 없으니 그 아빠의 입장을 100% 이해하지는 못해요. 제 안의 한 구석에서는 ‘경험도 안해봤는데’ ‘더 알아야 할 수 있는 거 아냐’ 라면서 계속 싸워대서 너무 괴롭기도 해요. 하지만 저도 아들 입장이고 어려서 저보다 나이 많은 어른들이 보호해줬을 때의 느낌을 알고 있어요. 진짜 무한신뢰를 주는데 데이비는 그걸 처음 보자마자 죽은 거잖아요. 알란으로서는 ‘그런 걸 못해줬나’ 싶어서 너무너무 괴롭죠.”◇관객의 소중함 “매일 매일 깨닫고 있죠”연극 ‘킬롤로지’ 알란 역의 김수현(사진=강시열 작가)“관객 피드백 중 제일 많은 건 좋아했던 단어들에 대한 아쉬움이에요. 예를 들어 환상 속 데이비의 대사 중에 ‘날씨가 추웠는데 코 끝이 찡하더라고요’가 ‘추워서 혼났는데 아빠는 어떨지’로 바뀌었어요. 추운 날씨 얘기를 하며 아빠를 보고 울컥한 감정을 중의적으로 표현했는데 그냥 날씨 얘기로 끝나버리죠. 마지막 데이비의 대사도 ‘이게 공평해?’에서 ‘이게 말이 돼?’로 바뀌고….”관객들이 전하는 재연의 아쉬움을 언급한 김수현은 초연과는 달라진 무대 위 기둥에 대해서도 설명을 보탰다. 그는 “기둥을 세우자는 논의의 시작은 관객과의 거리 좁히기”였다고 귀띔했다.“애초 이 대본을 읽었을 때 관객과의 거리가 좀더 가깝길 바랐어요. 사적인 이야기를 일대일로 전하는 것처럼 관객들을 끌어들이고 싶은데 무대 자체가 넓고 확실히 분리돼 있어서 말을 자꾸 쏘게 되는 게 아쉬웠거든요. 그래서 벽을 경사지게도 해보고 뒤를 막아보고도 했지만 결국 무대는 그대로 써야한다는 결정을 내렸어요. 그래서 기둥을 세워 시각선을 완전 좁혀보자 했죠.”하지만 기둥을 세움으로서 캐릭터 간의 거리까지 멀어져 또 다른 고민을 야기시키기도 한다. 김수현은 “거리가 멀어져서 집중이 좀 힘들어졌다”며 “기둥 뒤에 앉아있기는 한데 귀를 더 바짝 기울이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그 과정 속에서 김수현은 “학교 다닐 때부터 수도 없이 배워온, 배우·희곡과 함께 연극의 3대 요소로 꼽히는 관객의 소중함을 체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연극 ‘킬롤로지’ 알란 역의 김수현(사진=강시열 작가)“제작진이나 배우들이 관객들을 아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일이에요. 우리 의도와는 상관없이 관객이 보는 시각이 완전히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있고 그를 알아감으로서 새삼 고민해야할 부분들이 생겨나곤 하거든요. 관객들이, 그들의 시각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매일매일 깨닫고 있죠.”◇손을 잡아준다는 것“극 중 ‘내가 손을 잡아줬더라면 될 수도 있었던 데이비를 상상한다’는 말을 할 때면 항상 제(알란)가 지금까지 겪은 고통의 모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로 인해 벌어진 일, 그에 대한 후회 등으로 너무너무 고통스럽죠.”그럼에도 이 극이 전하고자하는 메시지에 대해 김수현은 “잘 살자”라며 “세상 안에서 많은 문제들이 일어나지만 본질적으로는 사람의 문제”라고 밝혔다.“항상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하다 보면 결국 ‘우린 왜 이렇게 살고 있는거지’라는 질문을 하게 되거든요. 그 연장선상에서 인간이 인간답게 관계 맺기를 하면서 살아가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진짜 어렵구나를 깨닫게 되는 것 같아요. 어려서는 못느꼈는데 생존을 위해 우뚝 서야하는 시점이 오면 이해관계가 너무 복잡해지거든요. 너무 이상적인 말이라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가장 작은 단위의 가족이라도 서로 손을 잡아주면 좋겠어요.”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19-10-21 15:00 허미선 기자

[B그라운드] ‘보더라인: 경계에서’ 안무가 왕헌지·세바스티앙 라미레즈 “자유롭지만 절제된”

2019 스파프 초청작 ‘보더라인: 경계에서’의 안무가 왕헌지(왼쪽)와 세바스티앙 라미레즈(사진제공=PRM)“자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작품이에요. 우리는 자유를 원합니다. 하지만 자유에는 항상 제한이 따르죠. 오히려 박스 안에 갇혔을 때 안정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어요. 철제 프레임을 통해 그런 문제를 다루고자 했습니다.”18일 서울 종로구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로비에서 기자들을 만난 안무가 왕헌지(왕현정)는 2019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초청작 ‘보더라인: 경계에서’(10월 19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 대해 이렇게 소개했다.2019 스파프 초청작 ‘보더라인: 경계에서’(사진제공=PRM)“자유를 원하지만 어느 정도는 자기만의 틀 안에 갇혔을 때 기분이 좋은지도 몰라요. 전통적인 틀에 갇힌 게 아닌가 싶기도 하죠. 메탈 큐브로 표현되는 추상적인 형상을 통해 자유롭게,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왕헌지의 설명에 공동안무가 세바스티앙 라미레즈는 “무대 위 메탈 큐브는 공연 전체에 걸쳐 이동한다. 저희만의 추상적인 세계를 그려보고 싶었다”고 말을 보탰다. 그리곤 ‘보더라인: 경계에서’에 대해 라미레즈는 “개인을 탐구하는 작품”이라며 “각 개인의 삶, 경험, 감정 등을 탐구하고 사회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연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2019 스파프 초청작 ‘보더라인: 경계에서’(사진제공=PRM)‘보더라인: 경계에서’는 2013년 초연된 작품으로 힙합과 발레, 아크로바틱, 공중 퍼포먼스 등을 활용해 중력을 거스르는 작품이다.고대 비극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로 알려진 무대장치의 활용이 돋보이는 극으로 무용 테크닉과 조종 기술의 상호작용으로 표현되는 방식이다.이는 이 시대 사람들의 관계를 반영한 것으로 비보잉의 윈드밀, 통으로 이어진 하의, 공중 퍼포먼스 등을 통해 사회적 소속감과 자유로운 상태를 넘나들며 다양한 메시지를 전한다.“중력을 넘어서는 윈드밀은 기존의 어떤 박스 안에 갇혀 있다 빠져나가는 것, 하늘을 날면서 벗어나는 것을 표현할 수도 있어요. 하늘을 나는 것으로 초월적인 느낌, 시적 이미지 등을 부여하죠. 이를 통해 관객들이 꿈꿀 수 있도록 해드리고 싶었어요.”이렇게 설명한 라미레즈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통해 새로운 것, 색다른 기술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소화한 상의와 통으로 연결되는 의상을 겹쳐 입은 하의에 대해 왕헌지는 “하의를 통해 천사의 느낌 그리고 종파에 소속된 인식을 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사회 안에 속했다 빠져나오고 다시 들어갔다 나오는 과정을 의상 변화를 통해 표현하고 있어요. 다리가 보이지 않도록 처리한 것도 그런 효과를 위해서죠.”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19-10-19 16:06 허미선 기자

[B그라운드]‘잊혀진 땅’ 장 미셸 드우프 연출 “체르노빌 사람들의 세계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평행”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소재로 한 포인트제로 인형극 ‘잊혀진 땅’ 장 미셸 드우프 연출(사진제공=PRM)“인형은 보이지 않은 방사능을 표현하면서 평행세계를 그려보기 위한 아이디어였어요. 예를 들어 인형과 사람이 하나로 움직이면서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 유령의 세계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평행으로 보여주죠.”18일 서울 종로구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로비에서 기자들을 만난 2019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초청작 ‘잊혀진 땅’(10월 18~20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의 장 미셸 드우프(Jean-Michel d’Hoop) 연출은 ‘체르노빌 원전사고’라는 묵직한 소재를 인형극으로 풀어낸 데 대해 이렇게 전했다. 이어 “우리 배우들은 인형과 같이 등장한다”며 “배우와 인형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극으로 배우가 특별히 숨지 않는다”고 부연하기도 했다.체르노빌 원전사고를 소재로 한 포인트제로의 인형극 ‘잊혀진 땅’(사진제공=PRM)“게다가 인형은 배우가 할 수 없는 걸 할 수 있어요. 두 개의 스토리를 동시에 진행시킬 수도 있고 사람이 할 수 없는 말을 인형은 할 수 있죠. 상스러운 말을 해도 인형은 용납이 되는 분위기거든요. 인형으로 정치적이거나 혁명적일 수도 있고 자유롭게 표현이 가능하죠.”‘잊혀진 땅’은 2018년 벨기에 포쉐극장 초연된 포인트제로의 인형극이다. 연출을 비롯한 제작진들은 벨라루스,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1986년 원전사고로 페허가 돼버린 도시 체르노빌에 살던 이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 인터뷰를 바탕으로 꾸린 ‘잊혀진 땅’은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방사능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철학적이며 시적으로 풀어낸다.“배우들, 제작진 등과 함께 체르노빌에 3번을 갔어요. 벨라루스, 우크라이나에 살고 있는 체르노빌 피해자들을 만나면서 기분이 이상했어요. 자연은 아름다웠고 방사능은 전혀 느낄 수 없었지만 유령이 사는 데 같았죠.”체르노빌 원전사고를 소재로 한 포인트제로의 인형극 ‘잊혀진 땅’(사진제공=PRM)당시의 분위기는 장 미셸 연출의 전언처럼 “체르노빌 상황인 세상의 종말, 타고 남은 재, 더러움 등을 상징하는 검은 바닥”, 인형과 사람의 일체 등으로 “비판적이고 시적이며 정치적이고 철학적으로” 무대 위에 재현된다.장 미셸 연출은 “아내와 책을 읽다가 체르노빌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며 “유럽에는 체르노빌 아이들을 받아 한달 가량 같이 지내면서 건강을 회복시키는 홈스테이 프로그램이 있다. 그 프로그램으로 우리 집에 머물던 체르노빌 아이와 대화를 하면서 많은 정보를 얻기도 했다”고 제작 계기를 털어놓았다.“생각보다 체르노빌 사고를 주제로 다룬 작품이 별로 많지 않아요. 벨기에에는 아예 없죠. 생각보다 체르노빌 사건을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체르노빌 원전사고를 소재로 한 포인트제로의 인형극 ‘잊혀진 땅’(사진제공=PRM)‘잊혀진 땅’에는 체르노빌 상황을 상징하는 검은 바닥을 비롯해 의자, 꽃, 골조만으로 이뤄진 집, 죽은 사람·동물 등의 시체들 등이 등장한다. 이들 중 꽃에 대해 장 미셸 연출은 “장면마다 변하면서 다양한 상징들을 가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졸고 있는 할아버지를 깨우는 할머니의 꽃은 집안을 장식해요. 결혼식을 올리기도 하죠. 그 꽃은 즐거운 일상의 상징입니다. 반면 마지막의 꽃은 죽음, 장례식 등을 의미하죠. 무덤에 꽃을 뿌리며 죽음을 상징합니다.”체르노빌 원전사고를 소재로 한 포인트제로의 인형극 ‘잊혀진 땅’(사진제공=PRM)이어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로 “마지막에 등장하는 네 거인의 의미”라고 전하며 “관객마다 정말 다양한 해석들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어떤 사람들은 의사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방사능 물질이라고도 해요. 또 몇몇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이라고 하거나 경찰이라고도 하죠. 정말 다양한 해석들이 가능해요. 그들에 대해서는 제한하지 않고 가능성을 열어두고자 합니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19-10-19 15:00 허미선 기자

[B코멘트] 연극 ‘알리바이 연대기’ 김재엽 연출·남명렬·정원조 “달라진 사회 그리고 관객들”

연극 ‘알리바이 연대기’. 왼쪽부터 정원조, 남명렬, 김재엽 연출(사진제공=국립극단)“전체적으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코멘터리를 추가했습니다. 한국 전쟁 당시 거창, 노근리 양민 학살사건이나 금강산댐 건설을 위한 모금운동, 전교조의 모토 등등 젊은 관객 분들께 낯설거나 멀게 느껴지는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서 초연에 비해 각주를 추가했습니다.”연극 ‘알리바이 연대기’(11월 10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 대해 김재엽 작·연출은 5년 전과 달라진 점에 대해 이렇게 전했다. ‘알리바이 연대기’는 혜화동 1번지 4기 동인으로 ‘생각은 자유’ ‘병동소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육혈포 강도’ ‘록앤롤’ 등의 김재엽 작·연출작으로 그와 그의 아버지 이야기다.연극 ‘알리바이 연대기’ 김재엽 작·연출(사진제공=국립극단)연극 ‘알리바이 연대기’는 2013년 초연된 후 2014년, 올해까지 남명렬, 정원조, 전국향, 이종무 등 같은 출연진으로 꾸린 작품이다. 아버지 김태용(남명렬)의 개인사와 그를 이해하기 위해 되짚는 재엽(정원조), 그 삶의 궤적들에 스며든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다. ◇달라진 관객, 다르게 다가오는 극 중 순간들“그리고 초연에 없었던 노무현 대통령의 이미지 영상이 추가됐습니다. 실제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이틀 전에 노무현 대통령 탄핵이 있었어요. 초연에는 넣지 않았지만 지금은 시간적 거리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서 영상 스케치를 해보았습니다.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세 발 자전거도 이번에 새롭게 만든 장면입니다.”더불어 5년 전과 달라진 점에 대해 “새로운 관객을 맞이한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작품 내용이 대한민국 현대사를 관통하다 보니 현재적 관점에서 역사가 끊임없이 재해석될 수 있다”며 “오늘의 관객 여러분들께서 동시대적인 감수성으로 작품을 어떻게 바라보게 되실지 궁금하다”고 전했다. 아버지 김태용 역의 남명렬 역시 “개인적인 느낌보다는 관객들의 느낌이 중요할 것 같다”고 밝혔다.“소극장 판, 백성희장민호극장과 명동예술극장의 관객층이 조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메시지 메시지보다도 연극을 삶의 쉼표처럼 느끼는 관객들이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 되길 바랍니다. 공연이 끝나고 명동길을 거닐며 곱씹는 연극이 되면 좋겠어요.”연극 ‘알리바이 연대기’ 남명렬(사진제공=국립극단)재엽을 연기하는 정원조는 5년 전과 다르게 다가오는 부분에 대해 “아버지가 병상에서 한 대사 중 ‘누가 옳은 사람인지 모르겠다’가 최근에 부쩍 와 닿는다”고 설명했다. “관객 여러분도 저희 작품을 보시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 어떤 게 옳은지에 대한 고민을 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span style="font-weight: normal;"연극 ‘알리바이 연대기’ 정원조(사진제공=국립극단)◇김재엽 작·연출, 남명렬, 정원조가 전하는 ‘나만의 알리바이?’‘알리바이 연대기’ 속 아버지는 일본에서 태어나 한국 대구에서 사는 경계인이었다.아버지는 ‘자신만의 알리바이’로 굴곡진 현대사를 관통하면서 어린 치기에 저질렀던 실수와 요행, 가장으로서 해야 했던 선택 등으로 삶의 궤적들을 진행시켰다. 그렇게 진행된 할아버지의 역사는 아버지에게, 아들에게, 손자에게로 흘러간다. 그렇게 한 사람의 개인사는 저마다의 ‘알리바이 연대기’인 셈이다. 이에 김재엽 작·연출, 남명렬, 정원조에게 ‘나만의 알리바이’에 대해 물었다.김재엽 작·연출은 “대학시절 학생회 활동을 책임지기로 약속했다가 고민 끝에 약속을 깨뜨리고 연극 동아리 활동에 매진하게 됐다”며 “그때 많은 동료들을 실망시키고 혼자 하고 싶은 일만을 선택했던 순간이 기억난다”고 밝혔다.“‘알리바이’이기 때문에 ‘지금은’ 말할 수 없습니다.”남명렬의 대답에 정원조는 “거짓말을 잘 못하는 편이다. 치밀한 성격도 못된다”며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 알리바이를 만들 기회가 없었다”고 털어놓았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19-10-18 21:00 허미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