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그라운드]‘잊혀진 땅’ 장 미셸 드우프 연출 “체르노빌 사람들의 세계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평행”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19-10-19 15:00 수정일 2019-10-19 15:21 발행일 2019-10-19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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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원전사고를 소재로 한 인형극 포인트제로의 '잊혀진 땅', 장 미쉘 드우프 연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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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원전사고를 소재로 한 포인트제로 인형극 ‘잊혀진 땅’ 장 미셸 드우프 연출(사진제공=PRM)

“인형은 보이지 않은 방사능을 표현하면서 평행세계를 그려보기 위한 아이디어였어요. 예를 들어 인형과 사람이 하나로 움직이면서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 유령의 세계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평행으로 보여주죠.”

18일 서울 종로구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로비에서 기자들을 만난 2019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초청작 ‘잊혀진 땅’(10월 18~20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의 장 미셸 드우프(Jean-Michel d’Hoop) 연출은 ‘체르노빌 원전사고’라는 묵직한 소재를 인형극으로 풀어낸 데 대해 이렇게 전했다. 이어 “우리 배우들은 인형과 같이 등장한다”며 “배우와 인형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극으로 배우가 특별히 숨지 않는다”고 부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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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원전사고를 소재로 한 포인트제로의 인형극 ‘잊혀진 땅’(사진제공=PRM)

“게다가 인형은 배우가 할 수 없는 걸 할 수 있어요. 두 개의 스토리를 동시에 진행시킬 수도 있고 사람이 할 수 없는 말을 인형은 할 수 있죠. 상스러운 말을 해도 인형은 용납이 되는 분위기거든요. 인형으로 정치적이거나 혁명적일 수도 있고 자유롭게 표현이 가능하죠.”

‘잊혀진 땅’은 2018년 벨기에 포쉐극장 초연된 포인트제로의 인형극이다. 연출을 비롯한 제작진들은 벨라루스,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1986년 원전사고로 페허가 돼버린 도시 체르노빌에 살던 이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 인터뷰를 바탕으로 꾸린 ‘잊혀진 땅’은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방사능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철학적이며 시적으로 풀어낸다.

“배우들, 제작진 등과 함께 체르노빌에 3번을 갔어요. 벨라루스, 우크라이나에 살고 있는 체르노빌 피해자들을 만나면서 기분이 이상했어요. 자연은 아름다웠고 방사능은 전혀 느낄 수 없었지만 유령이 사는 데 같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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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원전사고를 소재로 한 포인트제로의 인형극 ‘잊혀진 땅’(사진제공=PRM)

당시의 분위기는 장 미셸 연출의 전언처럼 “체르노빌 상황인 세상의 종말, 타고 남은 재, 더러움 등을 상징하는 검은 바닥”, 인형과 사람의 일체 등으로 “비판적이고 시적이며 정치적이고 철학적으로” 무대 위에 재현된다.

장 미셸 연출은 “아내와 책을 읽다가 체르노빌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며 “유럽에는 체르노빌 아이들을 받아 한달 가량 같이 지내면서 건강을 회복시키는 홈스테이 프로그램이 있다. 그 프로그램으로 우리 집에 머물던 체르노빌 아이와 대화를 하면서 많은 정보를 얻기도 했다”고 제작 계기를 털어놓았다.

“생각보다 체르노빌 사고를 주제로 다룬 작품이 별로 많지 않아요. 벨기에에는 아예 없죠. 생각보다 체르노빌 사건을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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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원전사고를 소재로 한 포인트제로의 인형극 ‘잊혀진 땅’(사진제공=PRM)

‘잊혀진 땅’에는 체르노빌 상황을 상징하는 검은 바닥을 비롯해 의자, 꽃, 골조만으로 이뤄진 집, 죽은 사람·동물 등의 시체들 등이 등장한다. 이들 중 꽃에 대해 장 미셸 연출은 “장면마다 변하면서 다양한 상징들을 가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졸고 있는 할아버지를 깨우는 할머니의 꽃은 집안을 장식해요. 결혼식을 올리기도 하죠. 그 꽃은 즐거운 일상의 상징입니다. 반면 마지막의 꽃은 죽음, 장례식 등을 의미하죠. 무덤에 꽃을 뿌리며 죽음을 상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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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원전사고를 소재로 한 포인트제로의 인형극 ‘잊혀진 땅’(사진제공=PRM)

이어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로 “마지막에 등장하는 네 거인의 의미”라고 전하며 “관객마다 정말 다양한 해석들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어떤 사람들은 의사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방사능 물질이라고도 해요. 또 몇몇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이라고 하거나 경찰이라고도 하죠. 정말 다양한 해석들이 가능해요. 그들에 대해서는 제한하지 않고 가능성을 열어두고자 합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