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모차르트와 오펜바흐, 18세기와 19세기 그리고 풍자와 낭만…오페라 ‘돈 조반니’와 ‘호프만의 이야기’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19-10-24 07:00 수정일 2019-10-24 11:58 발행일 2019-10-24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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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Board]모차르트와 오펜바흐, 18세기와 19세기 그리고 풍자와 낭만…오페라 ‘돈 조반니’와 ‘호프만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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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왼쪽)와 오페라 ‘돈 조반니’(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 세종문화회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와 ‘샹젤리제의 모차르트’로 평가받는 자크 오펜바흐(Jacques Offenbach) 대표작들이 관객들 만날 채비 중이다. 18세기와 19세기를 대표하는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Don Giovanni, 10월 30~11월 2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와 탄생 200주년을 맞은 오펜바흐의 ‘호프만의 이야기’(Les Contes d Hoffmann, 10월 24~27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가 풍자와 낭만으로 무장하고 무대에 오른다.

‘돈 조반니’는 ‘피가로의 결혼’ ‘코지 판 투테’와 더불어 ‘다 폰테 3부작 중’ 하나로 모차르트와 성직자 출신의 이탈리아 대본가 로렌초 다 폰테(Da Ponte, Lorenzo)가 의기투합한 작품이다. 프랑스 대혁명 2년 전인 1787년 프라하에서 초연된 ‘돈 조반니’는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바람둥이 돈 조반니(이하 조반니, Don은 귀족들에 붙이는 호칭, 여자 귀족 앞에는 Donna를 붙인다)에 당시 신분제의 부조리와 귀족들의 타락, 사회의 부패상 등을 반영해 비판하고 풍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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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돈 조반니’ 출연진(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유쾌한 풍자와 더불어 ‘카탈로그의 노래’(Madamina, il catalogo e questo), ‘거기서 그대 손을 잡고’(La ci darem la mano),  ‘내 연인을 위로해 주세요’(Il mio tesoro intanto), ‘저 악당은 나를 배신했지만’(Mi tradi quell‘alma ingrata) 등 경쾌하고 아름다운 아리아로 유명한 작품이다.

호색한 귀족 조반니와 하인 레포렐로, 귀족 여인 돈나 안나와 돈나 엘비라(이하 돈나 생략) 그리고 시골처녀 체를리나가 엮어 가는 사회풍자극이다. 
조반니는 사회적 지위와 매력적인 외모를 무기 삼아 수천명의 여자들을 유혹해 순간의 쾌락을 즐기는 귀족이다. 약혼자로 위장해 여자의 침실로 숨어들었다 여자의 아버지를 죽이고 줄행랑을 치는가 하면 결혼식까지 올리고는 돌연 사라져 버리고 시골마을 결혼식에서 신부를 빼돌리는 등 조반니가 지나간 자리에는 피해 여성들이 잔재처럼 남는다.
이번 ‘돈 조반니’는 서울시오페라단 이경재 예술감독이 연출했고 마에스트로 마시모 자네티(Massimo Zanetti)가 이끄는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연주한다. 이경재 예술감독은 “자유를 추구하는 조반니의 행적을 통해 등장인물 각자가 가진 도덕과 규범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볼 것”이라고 연출의도를 밝혔다. 
바리톤이 타이틀롤인 몇 안되는 오페라 중 하나로 미국 샌프란시스코 오페라단 한국 최초 상근단원인 한규원과 독일 드레스덴 국립극장 등의 무대에 올랐던 정일헌이 조반니로 번갈아 무대에 오른다. 주인 조반니에 대한 증오를 불태우는 하인 레포렐로는 모차르트·마리아 칼라스 국제 콩쿠르 우승자로 독일 뉘른베르크, 비스바덴 등과 JTBC ‘팬텀싱어’ 멘토로 활약하기도 했던 베이스 손혜수와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 영국 로얄 오페라하우스, 프랑스 니스 오페라, 독일 쾰른 오페라 극장 등에서 주역으로 무대에 올랐던 심기환이 더블캐스팅됐다.
한국을 대표하는 소프라노 성악가들이 조반니의 여자들로 대거 출연한다. 돈나 안나는 이상은과 권은주, 돈나 엘비라는 오희진과 정주희, 체를리나는 강혜정과 손나래가 번갈아 연기한다. 안나의 아버지로 조반니를 응징하는 기사장에는 베이스 손철호, 약혼자 돈 오타비오에는 테너 허영훈과 선태준, 체를리나의 남편 마제토에는 바리톤 김경천 등이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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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
오펜바흐의 ‘호프만의 이야기’는 독일 낭만주의 대문호 E.T.A 호프만의 단편소설 ‘모래사나이’ ‘고문관 크레스펠’ ‘잃어버린 거울의 형상’ 세편을 바탕으로 꾸린 옴니버스식 연애담이다. 호프만의 이루지 못한 올림피아, 안토니아, 줄리에타와의 사랑이야기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포함한 5막짜리 오페라 판타지다. 
1881년 파리 오페라 코미크 극장에서 초연돼 사랑받은 ‘호프만의 이야기’는 풍자나 사회 비판 보다는 낭만적이고 대중적인 이야기들로 꾸린 오페레타를 주로 작곡하던 오펜바흐가 말년에 작곡한 유일한 오페라다. 당시 유행하던 낭만주의와 서정성을 담고 있으면서도 사회가, 혹은 그 시대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요구하는 부조리하고 폭력적인 모습들에 대한 신랄한 풍자도 돋보이는 작품으로 로시니는 오펜바흐에게 ‘상젤리제의 모차르트’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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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 창작진과 출연진들(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

가장 유명한 뱃노래 ‘사랑의 밤’(Nuit d’amour)을 비롯해 ‘비둘기는 날아갔네’(Elle a fui, la tourterelle), ‘아! 우리 둘이 함께하는 삶이여’(Ah, vivre deux!), 숲속의 새들(Les oiseaux dans la charmille) 등의 대표 아리아들이 유명 성악가와 마에스트로 등에 의해 연주되고 불린다.

오페라 ‘마농’으로 국립오페라단과 인연을 맺은 뱅상 부사르(Vincent Boussard) 연출과 세바스티안 랑 레싱(Sebastian Lang-Lessing) 지휘자, 소프라노 크리스티나 파사로이우(Cristina Pasaroiu)가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춘다.

지휘자 세바스티안은 “오펜바흐의 ‘호프만의 이야기’는 제 마음 속 깊이 자리 잡은 작품”이라며 “오펜바흐는 홀로 프랑스로 이주했고 유태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데서 저와 공통점이 있다. 그의 작품을 맡을 때마다 고향으로 돌아간 느낌”이라고 밝혔다. 이어 “오펜바흐는 오페라 코미디, 오페레타 등을 많이 만들었는데 말년에 진지한 오페라를 만든 것이 ‘호프만의 이야기’다. 스스로의 삶에 대한 레퀴엠”이라고 덧붙였다. 
“제가 연주자들에게 이 작품에서 중요하게 가져가야할 의미는 예술가로서 우리 자신 반추할 기회라고 말한 바 있어요. 유령스럽고 프로이트적인 꿈의 세계, 초현실과 현실 등을 오가며 어느 상태인지 불분명하게 가고 있어요. 매일 걸어가는 여정과도 맞닿아 있죠.”
이어 “인간의 사랑으로 성장하지만 실연으로 더 성장한다는 굉장히 독일스러운 말이 있다”며 “인간에게 고통이 있어야 성장한다. 예술가로서 겪고 있는 경험들이 고통스럽지만 성장의 밑거름이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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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
뱅상 연출가는 ‘호프만의 이야기’에 대해 “오펜바흐가 마무리 짓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작품”이라며 “어떤 레치타티보를 쓸 것인가 드라마터그를 어떻게 구성할지 가능성을 열어 두고 세바스티안과 공유 중인데 미완성 작품이라 매우 복잡하고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번 ‘호프만의 이야기’는 풍부한 음악적·연극적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며 “현실과 초현실, 코믹과 비극 등 작품이 가진 모든 요소들을 잘 아우를 것”이라고 연출의도를 전했다.
이번 ‘호프만의 이야기’에서 가장 눈여겨 볼 것은 최대 1인 4역을 소화하는 성악가들의 연기 변신이다. 호프만 역의 장 프랑수아 보라스(Jean-Francois Borras)와 국윤종과 엄마 목소리 김윤희를 제외한 성악가들이 최소 두 개 이상의 캐릭터를 연기한다. 크리스티나 파사로이우와 윤상아가 호프만의 연인 스텔라를 비롯해 꿈 속의 사랑 올림피아·안토니아·줄리에타를, 양준모가 린드로프·코펠리우스·미라·다페르투토를, 위정민이 앙드레·고슈닐·프란츠·피티키나초, 김정미가 니클라우스·뮤즈 등을 소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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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

‘마농’에 이어 ‘호프만의 이야기’로 한국 관객을 만나는 크리스티나는 “소프라노이자 인간으로서 ‘호프만의 이야기’는 큰 도전과제”라며 “육체적, 심리적으로 고도의 집중력을 요할 뿐 아니라 꼼꼼한 뱅상 연출의 미장센을 맞추기도 쉽지 않다. 더불어 퀵체인지, 라이트 콜로라투라 (Coloratura), 리딩 소프라노 등 다양한 레인지의 보컬을 요하기도 해서 어렵다”고 전했다

국윤종은 호프만 역할에 대해 “5막에 걸쳐 사랑과 재탄생에 대한 예술가의 여정을 그린 캐릭터다. 2, 3, 4막에서는 편집증 증세, 메시아 증후군 등 자기분열을 통해 성장과정을 거친다”며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고 눈 돌릴 수 없게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1인 4역에 도전하는 양준모 역시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악마 역할 등 미묘하게 다른 부분들 있다”며 “각각 캐릭터와 음악적 표현이 달라서 많은 집중력을 요하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