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사이드] 연극 ‘맨 끝줄 소년’의 클라우디오, 맨 앞줄 소년 전박찬과 맨 뒷줄 소년 안창현 “우리 또 만나게 되겠죠?”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19-10-25 20:00 수정일 2019-10-25 23:30 발행일 2019-10-25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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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대표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 연극 '맨 끝줄 소년', 고(故) 김동현 연출, 손원정 드라마터그 의기투합작
2015년 한국 초연부터 클라우디오로 함께 한 전박찬과 새로 합류한 안창현, 박윤희, 우미화, 김현영, 이동영, 이승혁 등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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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맨 끝줄 소년’ 클라우디오 역의 안창현(왼쪽)과 전박찬(사진=강시열 작가)

“처음 더블캐스팅을 제안받았을 때는 물음표였다가 (번갈아 무대에 설 사람이) 안창현 배우라는 얘기를 듣고 두 팔 벌려 환영했어요.”

연극 ‘맨 끝줄 소년’(11월 17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재연까지 원캐스트로 클라우디오로 무대에 올랐던 전박찬은 새로운 클라우디오 안창현에 대해 이렇게 전했다. 2013년 ‘천국으로 가는 길’에서 남자와 소년으로 한 무대에 올랐던 두 사람은 5년만에 같은 역으로 만났다.

스페인 대표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Juan Mayorga)의 동명 작품을 바탕으로 한 ‘맨 끝줄 소년’(12월 1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은 언제나 맨 끝줄에 앉는 소년 클라우디오(전박찬·안창현, 시즌 합류 순)와 문학교사 헤르만(박윤희)의 개인교습을 통해 미묘하게 상상과 현실을 오가며 인간의 욕망과 결핍, 창작욕구 등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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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맨 끝줄 소년’ 클라우디오 역의 전박찬(사진=강시열 작가)

고(故) 김동현 연출, 손원정 드라마터그가 의기투합한 2015년 초연, 2017년 재연에 이어 세 번째 시즌에서도 클라우디오로 함께 하고 있는 전박찬은 새로 합류한 안창현에 대해 “안 지는 오래됐는데 5년 전 작품에서는 주고받는 대사도 없어서 ‘어떤 배우인가’ 생각하는 시간이었다”며 “반면 이번엔 늘 연습실에서, 개인적인 시간을 함께 하며 극에 대해 고민하고 서로 궁금한 것들을 알아가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맨 앞줄 소년 전박찬, 맨 뒷줄 소년 안창현

“재연 당시 공연을 볼 때도 그랬고 이번 연습 때도 늘 생각했던 게 저도 늘 맨 끝줄, 정확하게 얘기하면 맨 뒷자리 창가에 앉았어요. 클라우디오처럼 누군가를 보려고가 아니라 제가 안보이니까요.”

안창현은 극 중 클라우디오와 비슷한 나잇대의 스스로에 대해 “관찰도 가끔 하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조금 다른 의미의 맨 끝줄 소년이었다”고 회상하며 “이 아이와 다른 점이 있다면 굉장히 밝고 쾌활했고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클라우디오와는 전반적으로 다르지만 스스로 관계의 문을 닫는, 그래서 차갑다는 느낌을 주는 면에서 비슷한 것도 같아요. 저 스스로는 밝으려고 노력하지만 혼자 있을 때는 좀 차가운 면이 있거든요. 클라우디오와는 좀 다른 느낌이지만 사람 관찰은 저도 재미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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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맨 끝줄 소년’ 클라우디오 역의 안창현(사진=강시열 작가)
그리곤 “한국에서는 맨 뒷줄에 앉는 학생들에 대해 문제아, 일진 등의 이미지가 강한 것 같다. 저 역시 그랬지만 개인적으로는 맨 끝줄이 포근함을 주는 자리, 나만의 공간 같은 느낌”이라며 “사실 제일 안보이는 데는 맨 앞자리”라며 웃었다. 

“우리나라 선생님들은 맨끝 줄에 있는 사람들을 늘 주시하시잖아요. 그렇다고 늘 시선을 받고 있는 데 대한 불편함은 없었어요. 그 시기가 딱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전 ‘맨 끝줄 소년’을 하면서 옛날 생각이 자꾸 나요.”

클라우디오와 닮은 점 그리고 ‘맨 끝줄’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안창현에 전박찬은 “전 중고등학교 내내 맨 앞줄에 앉았다”며 “맨 앞줄에 앉아 있어도 너무 평범해서 아무도 저를 보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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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맨 끝줄 소년’ 클라우디오 역의 전박찬(사진=강시열 작가)
“게다가 말도 없고 내성적이고…존재감이라곤 없었어요. 연극이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보니 지금은 제 안에 있는 아이들(?)이 나오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굉장히 내성적이죠. 어려서는 더 심했어요. 학교에서 선생님이 시키는 건 다 하는 학생이었죠. 절대 선생님께 맞거나 교무실에 불려가 꾸지람을 들은 적도 없었어요.”

그리곤 “클라우디오를 만나 청소년기의 저를 떠올리면서 재밌었던 건 저 역시 그 당시에는 아무 것도 재미가 없었다는 사실”이라며 “수학 학원도 열심히 다녔다”고 덧붙였다.

“학교를 다니고 애들이 축구하면 축구하고…그 시절에는 연극 보기, 그거 하나만 재밌어 했던 것 같아요. 결국 클라우디오가 글쓰기에 보이는 뜨거움을 보면서 연극을 보려고 교복을 입은 채 대학로를 돌아다니던 시간, 그때 가졌던 열정들이 떠올라요. 그래서 클라우디오를 더 안아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뭔가 하나를 발견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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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맨 끝줄 소년’ 클라우디오 역의 안창현(왼쪽)과 전박찬(사진=강시열 작가)

 “연극영화과를 간다고 했을 때 다들 ‘네가?’라고 의아해 하며 보나마나 안될 것이라는 시각이 대부분이었다”는 맨 앞줄 소년이었던 전박찬도, “저 역시 그래서 연극영화과에 합격하자마자 당당하게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 자랑을 했다”는 맨 뒷줄 소년이던 안창현도 클라우디오를 닮은 ‘맨 끝줄 소년’이었다.

“초연 당시 김동현 연출님, (현재의 연출인) 손원정 드라마트루그께서 함께 고민하시면서 ‘맨 끝줄 소년’은 맨 끝줄 사람들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라고 하셨어요. 결국 맨 끝줄 소년에 국한되지 않고 극중 모든 인물, 이 극을 소설 혹은 공연으로 본 독자와 관객이 함께 나아가는 의미로 쓰여진 게 아닌가 싶어요.” ◇문화와 예술 그리고 수학, 결국 관점의 문제

“예술론이나 문학론은 후아나(우미화) 대사 중에 좋은 게 많아요. 후아나가 던져주는 것들을 클라우디오로 만나게 되죠. 클라우디오가 헤르만 선생님을 만나 대화를 나눌 때도 개인적으로는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있어요. 하지만 예술론이든 문학론이든 ‘동의한다, 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관점의 문제 같아요.”

후아나의 “중요한 건 문학은 아무 것도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거야. 우리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지 못한다고” “내 전시회도 마찬가지야. 예술은 아무 것도 가르쳐주지 않아” 등과 헤르만의 “윤리 수업이 아니야. 작문 수업이라고” 등 대사를 통해 전해지는 극중 문학론과 예술론에 대해 전박찬은 “관점의 문제”라고 표현했다.

안창현 역시 “문화, 문학, 예술 등은 정답이라는 게 없다”며 “이 작품에서 얘기되는 예술론 역시 동의나 비동의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동의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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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맨 끝줄 소년’ 클라우디오 역의 안창현(왼쪽)과 전박찬(사진=강시열 작가)

“문학과 예술은 정답이라는 게 없지만 클라우디오가 좋아하는 수학은 맞고 틀리고가 정확하잖아요. 작가가 문학·예술과 수학을 일부러 묶지 않았나 싶어요. 수학 보다 문학과 예술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되거든요.”

이렇게 전한 안창현은 “저 스스로도 열려 있는 것 같다 ‘난 상징을 몰라. 나한테 사과는 사과야’라는 헤르만 선생님 같은 사람도 있고 사과를 상징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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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맨 끝줄 소년’ 클라우디오 역의 안창현(사진=강시열 작가)

“후아나의 ‘문학은 아무 것도 가르쳐 주지 않아’라는 대사를 통해 배우 안창현으로서 받은 질문들이 있어요. ‘그럼 뭘 가르쳐주지?’ 등을 저도 생각하고 관객들도 같이 생각해주시면 좋겠어요.”

◇서로에 대한 고마움 “우리 또 만날 수 있겠죠?”“정말 해주고 싶은 말은 ‘난 정말 네가 부러워’예요. 그리고 잘 하고 있고 너무 고맙다.”

안창현에 대해 이렇게 전한 전박찬은 “같은 인물로 같이 고민하는 순간들이 너무 귀하다”고 속내를 전했다. 이어 “진짜 좋아하는 사람한테만 하게 되는 말인데 ‘시간이 지나 또 다른 작품으로 만날 거니까 열심히 살자’고 얘기하고 싶다”고 말을 보탰다.

전박찬의 말에 안창현은 “20대 중반이던 5년 전 ‘천국으로 가는 길’ 때도 형이 ‘꾸준히 하고 있다면 우리 언젠간 무대에서 다시 만날 거라고 얘기해주셨다”며 “진짜 열심히 하다 보니 만났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오늘도 형이 ‘또 만나자’ 해주셨으니 우리 관계가 여기서 끝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형을 보고 있으면 늘 배우는 것들이 생기곤 해요. 이런 말을 하려니 부끄러워요. 하지만 진심인데요…전박찬 배우님의 존재 자체가 되게 힘이 되고 어떨 땐 위로가 되기도 했어요. 너무 고마운 것들이 많아서 말로 표현이 어려울 정도로 존재 자체로 고마워요.”

◇“늘어가는 주름과 흰머리만큼 책임질 수 있는 삶”을 꿈꾸는 전박찬, “묵직한 사람”이고 싶은 안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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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맨 끝줄 소년’ 클라우디오 역의 안창현(왼쪽)과 전박찬(사진=강시열 작가)

“꿈이라기 보단 늘 고민하는 지점이에요. 어떤 배우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될지가 더 큰 것 같아요. 직업은 배우지만 저는 삶을 살아야하는 인간이잖아요. 요즘 정립되기 시작한 게 ‘매 순간 순간에 진실로, 최선 다해 살자’예요. 배우생활을 하면서도 일관되게 적용되는 부분이죠.”

꿈이자 고민에 대해 이렇게 전한 안창현은 “앞으로도 지금 해왔던 것처럼 빛이 나고 싶다고 바라기보다 늘 가던 길을 묵묵히 가다보면 빛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그런 생각으로 오래 가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제 고등학교 선배님이신 이순재 선생님처럼요. 반짝하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굉장히 묵직하고 흔들리지 않는 배우이자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전박찬은 “제가 언제까지 연극을 하고 배우를 하게 될지 혹은 언제까지 살지는 아무도 모른다. 계속 고민하지만 잘 모르는 것 같다”며 꿈에 대해 밝혔다.

“이제 주름도, 흰머리도 늘어요. 언제까지 제가 배우를, 연극을 할 수 있을지, 어떤 사람이 될지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것과 똑같은 것 같아요. 자꾸만 늘어가는 주름과 흰머리만큼 책임질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고 싶어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