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그라운드]모차르트 시대의 풍자와 냉소? 어쩌면 지금! 여기, 우리! 오페라 ‘돈 조반니’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19-10-30 19:00 수정일 2019-10-31 06:18 발행일 2019-10-30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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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돈 조반니’(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수천명의 여자들을 유혹하거나 욕보이고도 죄책감이라곤 없다. 같은 여자를 수차례 유혹하는가 하면 결혼식의 신부를 납치해 농락한다. 자신에게 상처 입은 여자의 시녀를 유혹하기 위해 자신의 시종과 옷을 바꿔 입고 다시 한번 여자를 상처입힌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의 오페라 ‘돈 조반니’(Don Giovanni, 10월 30~11월 2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는 당시 타락했던 귀족들, 신분제도의 부조리, 부패된 사회상 등을 반영해 풍자한다.

‘피가로의 결혼’ ‘코지 판 투테’와 더불어 다 폰테 3부작 중 하나로 모차르트와 성직자 출신의 이탈리아 대본가 로렌초 다 폰테(Da Ponte, Lorenzo)가 호흡을 맞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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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돈 조반니’(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프랑스 대혁명 2년 전인 1787년 프라하에서 초연된 자품으로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바람둥이 돈 조반니(한규원·정일헌 이하 조반니, Don은 귀족들에 붙이는 호칭, 여자 귀족 앞에는 Donna를 붙인다)를 비롯해 시종 레포렐로(손혜수·심기환), 귀족 여자 돈나 엘비라(정주희·오희진), 조반니의 침입으로 아버지 기사장(손철호)를 잃은 돈나 안나(이상은·권은주)와 약혼자 돈 오타비오(허영훈·선태준), 결혼식장에서 납치된 시골처녀 체를리나(강혜정·손나래)와 그의 남편 마제토(김경천) 등이 등장한다.

여자들을 희롱거리로 여기면서도 반성이라고는 할 줄 모르는 조반니, 그 주인의 악행에 분노하면서도 금화 3닢에 뒤치다꺼리를 마다하지 못하는 시종, 잇달아 유혹에 넘어가는 여자들, 끊임없이 덮치는 분노와 또 다른 피해로 상처투성이가 된 피해자, 여자를 소유물로 여기는 듯한 남자들 등이 끌어가는 프랑스 혁명 발발 직전의 이야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대를 닮은 풍경이기도 하다.

모차르트 시대의 풍자와 냉소적인 시각으로 무장한 ‘돈 조반니’에 대해 이경재 예술감독은 “바람둥이 조반니의 악행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 전개 속에는 주인공 외에도 7명의 인물들이 함께 한다”며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들은 각기 다르지만 그들 모두는 삶의 주인공”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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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돈 조반니’(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조반니 외의 다른 인물들이 그에 가리지 않고 저마다의 목적이 무대 위에서 보여지길 바랐습니다. 타이틀롤인 조반니의 짧은 아리아 두곡 외에 다른 등장인물들의 아리아가 10여곡이 넘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정의롭든 부조리하든 사회 현상은 한 사람에 의해서 불거지지 않는다. 실행하는 이가 있고 적극 동조하거나 보고도 못본 척 눈감는 혹은 이해관계에 얽힌 조력자들이 있고 피해자들이 있다. 그 역학관계는 당시 뿐 아니라 지금 이 시대에도 유효하게 작용한다. 모차르트 시대의 풍자와 냉소적인 시각으로 무장한 ‘돈 조반니’가 지금 사람들에게 던지는 경고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