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그라운드] ‘프레스코화’ 앙쥴랭 프렐조카쥬 “벽화 너머로! 관객과 함께 하는 여행”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19-11-01 15:00 수정일 2019-11-01 17:55 발행일 2019-11-01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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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기담집 ‘요재지이’ 중 ‘벽화’를 모티프로 한 ‘프레스코화’의 안무가 앙쥴랭 프렐조카쥬 그리고 벽 속 여인 클라라 프리셸과 벽 속으로 들어가는 남자 로랑 르 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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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스코화’의 안무가 앙쥴랭 프렐조카쥬(가운데)와 벽 속 여인 클라라 프리셸(왼쪽), 벽 속으로 들어가는 남자 로랑 르 갈(사진제공=LG아트센터)

“우리 삶에는 이해 못할 일들로 가득해요. 그리고 동화나 설화는 시대를 이야기하는 또 다른 방식이죠.”

중국 기담집 ‘요재지이’ 중 ‘벽화’를 모티프로 한 ‘프레스코화’(11월 1~3일 LG아트센터)로 한국을 찾은 안무가 앙쥴랭 프렐조카쥬(Angelin Preljocaj)는 10월 31일 오전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기자들을 만나 설화나 동화를 바탕으로 작품을 꾸리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프레스코화’의 원작인 ‘벽화’를 비롯해 설화, 동화, 종교적 이야기의 독창적 재구성, 아름다운 시퀀스 창조, 서사에 대한 탁월한 해석력, 세밀한 내면묘사, 촘촘한 스토리텔링 등으로 무장한 작품들을 선보여 왔다.

그 이유에 대해 프렐조카쥬는 동화 ‘백설공주’를 변주한 ‘스노우 화이트’를 예로 들어 “현대와 연관시킨다면 4, 50대 여인들이 본인의 아름다움, 젊음을 얘기하는 것들이 설화나 동화로 연관되는 지점”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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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스코화’의 안무가 앙쥴랭 프렐조카쥬(사진제공=LG아트센터)

그는 ‘프레스코화’ ‘스노우 화이트’를 비롯해 문학 거장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신약성서에 기록된 예수 탄생의 일화를 다룬 ‘수태고지’, 석가모니의 해탈 여정 ‘싯타르타’, 성경 마가복음 14장 22절 ‘이것은 나의 몸이다’를 기초로 한 ‘MC 14/22’ 등으로 20세기 이후 프랑스의 가장 중요한 안무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금과 맞닿은 16세기 이야기

“오늘날 점점 더 중요해지는 가상현실의 주제에 연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16세기 것이지만 요즘 이야기, 현대적인 면을 가진 오래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흥미로웠습니다.”

프렐조카쥬는 중국의 설화 ‘벽화’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전하며 “테마적으로 ‘프레스코화’는 가상현실, 요즘 젊은 층이 즐기는 ‘포켓몬 고’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며 “존재하지 않는 캐릭터를 좇는 가상현실과 게임적 측면이 젊은 층에게 접근성을 가진 작업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프레스코화’는 파리의 시어터 드 라 빌(Theatre de la Ville)에서 젊은 관객들을 위한 새로운 발레 작품을 만들어 달라는 의뢰를 받아 꾸린 2017년 작품이다. 이에 대해 프렐조카쥬는 “프랑스는 젊은 관객들이 현대무용에 관심이 많다. 실질적으로 국장 내 점유율 중 젊은 관객 비율이 높은 편”이라며 “이 작품의 음악을 그룹 에어(Air)의 니콜라스 고딘에게 요청했다. 그의 음악을 좋아하지만 무용은 잘 모르는 팬들을 유입해 확장하는 방식”이라고 밝혔다.

‘프레스코화’는 주효렴과 맹룡담, 발길이 닿는 대로 움직이는 젊은 여행자들이 오래된 절 한쪽 벽의 그림 속 여인에 매혹돼 빨려 들어가 겪게 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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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쥴랭 프렐조카쥬의 ‘프레스코화’ⓒJean-Claude Carbonne(사진제공=LG아트센터)

“드라마의 틀은 설화를 따르지만 춤은 움직임이라는 언어에 맞게 좀 더 시적으로 표현됩니다. 이야기는 감정을 느끼는 것이고 내러티브가 없는 편이어서 상징으로 많이 대체돼 있죠. 듀오댄스는 사랑이야기, 그룹댄스는 그 마을의 분위기와 의식적인 면을 많이 보여주고 있어요. 황금 갑옷을 입은 장군 장면은 상징적인 발레 신이죠.”

이어 “등장인물들을 미니멀하게 갈 수도 있었지만 벽화 뒤의 또 다른 세계를 상징할 수 있는 그룹의 존재가 이야기를 풍부하게 한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프렐조카쥬는 동양적 이미지와 미장센에 대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머리카락이었다. 동양적인 캘리그라피, 붓글씨에서 영감을 받는 상징으로 이 작품을 관통한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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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font-weight: normal;">‘프레스코화’ 벽 속 여인 클라라 프리셸(사진제공=LG아트센터)

◇벽화 속 여인, 벽화로 들어간 여행자 그리고 안무가 프렐조카쥬

“벽화 속 여인이 억압됐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남자가 자신의 세계에 들어와 사랑하다 떠난 후 혼자 남았을 때 자유를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벽 속 여인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 무용수 클라라 프리셸(Clara Freschel)은 “무용은 움직임으로 표현하는 작업이다. 그 움직임 속에서 무용수로서, 벽 속 여성으로서 모든 것을 찾아가는 여정”이라며 “프렐조카쥬가 원하는 정확한 에너지, 형태 등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연기했다”고 밝혔다.

무용수 로랑 르 갈(Laurent Le Gall)은 자신이 표현하는 벽화 속으로 들어간 남자에 대해 “작은 제스처로도 많은 것을 전달하는 역할이고 ‘프레스코화’는 섬세하고 시적인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부드러운 면과 강렬한 면을 다 가지고 있죠. 듀오로 이뤄지는 사랑 신은 부드러운 흐름과 둥글게 흘러가는 면을 강조하죠. 반면 현실 세계로 돌아왔을 때는 환상의 폭력성과 강렬함이 강조되죠.”

프렐조카쥬는 정확하고 섬세한 안무가다. 그는 “무용은 몸의 언어로 전달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디렉팅을 하는 편”이라고 스스로의 안무 스타일을 전하며 “글을 쓰는 작가가 세세하게 단어를 선택하듯 저 역시 사랑, 자유 등을 정확하게 표현한다. 동시에 어떤 부분에서는 무용수들과 함께 애기하며 찾아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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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쥴랭 프렐조카쥬의 ‘프레스코화’ⓒJean-Claude Carbonne(사진제공=LG아트센터)

프렐조카쥬의 말에 로랑은 “이번 작품을 통해 즉흥적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흥미로운 경험이었다”며 “앙쥴랭이 무용수들의 제안을 빠르게 잡아내 안무로 구성하고 만들어 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이것 그가 가진 뛰어난 능력”이라고 부연했다. 클라라 역시 “앙쥴랭과 작업하다 보면 움직임의 강렬함을 느끼게 된다”며 “천재와 작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을 보탰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그가 가진 몸 자체죠. 무용수에게 즉흥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여지를 주기도 하지만 그가 가진 몸의 움직임에서 특별함이 느껴지거든요. 양쥴랭이 가진 리듬감과 밀도는 대단해요. 연습을 하다보면 끝까지 밀어붙이곤 하는데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죠. 하지만 그 최대치 혹은 한계를 넘어서는 경험을 하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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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스코화’ 벽 속으로 들어가는 남자 로랑 르 갈(사진제공=LG아트센터)

클라라와 로랑의 말에 프렐조카쥬는 “창작을 할 때마다 무용수들이 새로운 것을 만들게 도와준다”며 “작품에 전념하고 집중하는 배우들에 저를 투영하게 되고 영감을 받게 된다”고 밝혔다.

“무용수들이 뮤즈와도 같아요. 창작 때뿐 아니라 이미 오래도록 공연된 레퍼토리 작업을 할 때도 그렇죠. 20여전 전에 만들어진 작품이라도 지금의 무용수들과 함께 하면 현대적 해석과 에너지, 감성이 나오거든요. 예전 작품이지만 현재성을 가지는 흥미로운 과정이죠.”

◇안무가 프렐조카쥬와 함께 하는 벽화 너머 세계로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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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스코화’의 안무가 앙쥴랭 프렐조카쥬(사진제공=LG아트센터)

“저는 ‘프레스코화’처럼 사진 한장에 발레에 빠져들었어요. 친구에게 빌린 책에 있던 발레리노 로둘프 누레예프(Rudolf Nureyev) 사진에 매료됐죠. 당시 전 유도를 배우고 있었는데 유도복을 입은 채 발레 클래스에 갔죠.”

벽화 속 여인에 매료돼 그 속으로 들어갔던 남자의 이야기 ‘프레스코화’처럼 안무가 프렐조카쥬는 그렇게 탄생했다. 그는 안무가로서 가장 필요한 덕목에 대한 질문에 “대답은 간단하고 아름다울 것”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저에게 필요한 건 몸과 시간과 건강이에요. 이것만 있다면 아름답고 미스터리한 순간을 찾아갈 수 있죠. 몸은 굉장히 유일하고 특별한 것입니다. 종종 잘못다루기도 하지만 무용수들과 작업하면서 그들의 몸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생각해 내죠. 처음 구상한 아이디어보다 한발 더 멀리 나아간 결과물을 만들게 되죠.”

그리곤 “첫 아이디어보다 멀리 나가지 못했다면 실패라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이며 “사진 한 장으로 발레와 무용에 빠져들었지만 단 한번도 후회한 적은 없다. 내 인생 자체가 그 춤에서 나왔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관객 여러분께 함께 여행을 하자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벽화를 넘어서는 순간 다른 세계, 다른 현실이 펼쳐질 것이고 다른 코드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춤을 표현되는 곳으로 관객을 데리고 가는 게 제 작업이죠. 보통은 한 나라의 한 도시에서 공연을 해요. 하지만 이번엔 서울과 대전, 부산까지 가게 돼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기차로 이동할 건데 영화 ‘부산행’처럼 마지막 기차를 타게 될 것 같아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