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프레스코화’의 앙쥴랭 프렐조카쥬 “이 세계 혹은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19-10-29 07:00 수정일 2019-10-28 20:08 발행일 2019-10-29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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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줄랭 프렐조카쥬(사진제공=LG 아트센터)

“제 작품 그리고 저의 예술세계에게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Existence’(존재 혹은 실존)입니다. 제게 예술과 창조는 우리 세계에 존재하는 방식인 동시에 우리 세계를 보여주는 저만의 방식입니다. 저는 창작 방식으로 존재하거든요.”

프렌치 모던 발레 ‘프레스코화’(La Fresque, 11월 1~3일 LG아트센터) 내한 공연을 앞둔 안무가 앙쥴랭 프렐조카쥬(Angelin Preljocaj)는 자신의 작품 세계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동화 ‘백설공주’를 변주한 ‘스노우 화이트’, 문학 거장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신약성서에 기록된 예수 탄생의 일화를 다룬 ‘수태고지’, 석가모니의 해탈 여정 ‘싯타르타’, 성경 마가복음 14장 22절 ‘이것은 나의 몸이다’를 기초로 한 ‘MC 14/22’ 등 이야기의 독창적 재구성, 아름다운 시퀀스 창조, 서사에 대한 탁월한 해석력, 세밀한 내면묘사, 촘촘한 스토리텔링 등으로 무장한 작품들로 20세기 이후 프랑스의 가장 중요한 안무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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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줄랭 프렐조카쥬의 신작 ‘프레스코화’ 중 Les guerriersⓒJean-Claude Carbonne(사진제공=LG 아트센터)

그는 정치적인 이유로 프랑스 망명을 감행한 알바니아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발레리노 로둘프 누레예프(Rudolf Nureyev) 사진에 매료되면서 발레 빠져들었다.

마치 탄광촌에서 발레리노의 꿈을 키우던 소년 빌리 엘리어트처럼 프렐조카쥬는 당시 ‘남자아이가 해서는 안되는 것’처럼 여겨지던 발레를 배우며 놀림거리가 되기도 했다.

17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클래식 발레를 시작한 그는 파리에서 카린 바에너(Karin Waehner)를 사사하며 현대무용으로 전향했다.

1980년대 뉴욕으로 건너간 그는 머스 커닝햄(Merce Cunningham)과 제나 로멧(Zena Rommett) 등을 사사했다. 

그 후 몽필리에의 도미니크 바구에(Dominique Bagouet) 무용단에서 무용수로 활동하다 1984년 몽필리에 댄스 페스티벌(Montpellier Danse Festival)에서 ‘Aventures Colonials’를 선보이며 안무가로 데뷔했다.

같은 해 선보인 ‘암시장’(Marche noir)이 바뇰레 콩쿠르(Concours de Bagnolet)에서 문화장관상을 수상하면서 안무가 데뷔와 더불어 명성을 얻은 프렐조카쥬는 다음해 랑스 샹파뉘-슈흐-마흔느(Champigny-sur-Marne)에서 자신의 무용단 프렐조카쥬 컴퍼니(Preljocaj Company)를 창설했다.

리옹오페라발레, 파리오페라발레, 뉴욕시티발레, 볼쇼이발레 등 세계적인 발레단 작품을 안무했고 2006년부터는 액상 프로방스에 건설된 프랑스 최초의 무용창작센터 더 파빌론 누아르(The Pavillon Noir)를 기점으로 ‘프렐조카쥬 발레’를 구축했다.

“파빌론 누아르는 저희 무용단을 위해서 지어졌습니다. 원래는 스튜디오(리허설룸)와 사무실만 있다가 극장을 새로 지었죠. 이 극장 신축으로 인해 우리 활동이 더욱 확장될 수 있었어요. 스튜디오에서 창작과 리허설을 하고 완성되면 근사한 극장으로 옮겨 공연합니다. 우리 작품 뿐 아니라 전세계의 다른 무용단을 초청하는 시즌제도 운영하고 일종의 기획(프로그래밍)을 하고 있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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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쥴랭 프렐조카쥬의 신작 ‘프레스코화’ 중 La FresqueⓒJean-Claude Carbonne(사진제공=LG아트센터)

지난 35년간 50여편의 작품을 발표한 프렐조카쥬는 무용계 최고 영예 중 하나인 ‘브누아 드 라 당스’(Benois de la Danse)와 ‘베시 어워드’(Bessie Awards) 등에서 안무상을 수상했고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la Legion d‘honneur)을 수훈했다. 한국에서는 1996년 ‘퍼레이드/장미의정령/결혼식’으로 첫 내한해 2003년 ‘봄의 제전’ ‘헬리콥터’, 2012년 ‘그리고, 천년의평화’, 2014년 ‘스노우 화이트’, 2016년 ‘갈라 프렐조카쥬’를 선보인 바 있다.

클래식발레와 현대무용의 파격적 조화로 현대무용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한 프렐조카쥬의 최신작 ‘프레스코화’는 중국 ‘아라비안나이트’로 불리는 ‘요재지이’(聊齋志이)에 수록된 ‘벽화’를 모티프로 한다. ‘벽화’는 중국작가 포송령(蒲松齡)이 민간에서 구전되던 귀신, 도깨비, 신산 등의 기묘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집필한 소설들 중 하나다.

주효렴과 맹룡담, 발길이 닿는 대로 움직이는 젊은 여행자들이 오래된 절 한쪽 벽의 그림 속 여인에 매혹돼 빨려 들어가 겪게 되는 이야기다. 몽환적인 중국 구전설화를 바탕으로 현실과 재현, 꿈과 현실 등의 경계에 대해 탐구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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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쥴랭 프렐조카쥬의 신작 ‘프레스코화’ 중 Cheveux fillesⓒJean-Claude Carbonne(사진제공=LG아트센터)

프렐조카쥬는 ‘프레스코화’에 대해 “파리의 시어터 드 라 빌(Theatre de la Ville)에서 젊은 관객들을 위한 새로운 발레 작품을 만들어 달라는 의뢰를 받아 꾸린 신작”이라며 “신작을 위해 남미,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등 전 세계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읽다가 찾아냈다”고 설명했다.

“정말 놀라웠어요. 이 이야기는 지금 우리에게도 일상적으로 펼쳐지는 일들과 매우 흡사하거든요. 바로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이죠. 이야기 속에서 한 남자는 그림 속으로 들어가요. 그 그림은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가상현실과 흡사하죠.”

그리곤 “오늘날 젊은 세대들은 가상현실에 열광하고 있다”며 게임 ‘포켓몬-고’를 예로 들었다. 프렐조카쥬는 “그것은 우리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벽화’ 역시 수백 년 전에 쓰여졌지만 우리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안무 의도를 전했다. 더불어 ‘시적(Petic)인 미장센’과 ‘머리카락’을 ‘프레스코화’의 주안점으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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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줄랭 프렐조카쥬의 신작 ‘프레스코화’ 중 LAFRESQUE-CGSⓒConstance-Guisset-Studio(사진제공=LG 아트센터)

“이 이야기가 시적(Petic)으로 보이길 바랐어요. 이에 ‘머리카락’에 대한 아이디어가 매우 중요했죠. 머리카락은 흔들리는 그 자체로 시적입니다. 게다가 매우 중요한 상징이기도 하죠. 고대 중국에서는 머리를 길게 풀어낸 여성은 자유롭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지만 만약 머리를 묶어 올렸다면 그녀는 이미 결혼했다는 뜻이죠. 극적 흐름에 머리카락이 중요한 상징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매우 재미있게 느껴졌어요.”

이어 프렐조카쥬는 “어떻게 우리가 머리카락으로 춤을 출 수 있을지,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다리나 팔, 몸 등이 아닌 머리카락을 무용수들이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고 부연했다.

“머리카락은 머리와는 독립적으로 움직입니다. 그래서 머리카락에 특정한 움직임을 주려면 특정한 포인트에서 움직임을 멈춰야 했죠. 그 특정한 포인트를 찾아내는 작업은 매우 창의적인 과정이었어요. 이제 이 머리카락 움직임을 지칭할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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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쥴랭 프렐조카쥬의 신작 ‘프레스코화’ 중 Ensemble robesⓒJean-Claude Carbonne(사진제공=LG아트센터)

머리와는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머리카락, 현실에서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간 남자 등 철학적 상징들과 현대적 감각으로 무장한 ‘프레스코화’는 현실과 꿈,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는 시간과 그에 대한 두려움 등 ‘경계’에 대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로 2019년 현재를 살고 있는 이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에 대해 프렐조카쥬는 ‘우주의 차원’을 언급했다.

“이 이야기는 우주의 ‘차원’이라는 교묘한 개념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 존재하지만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우리는 지금의 우리와는 다른 존재일 거예요. ‘프레스코화’에서 보여지는 그림은 그냥 그림과는 다른 그림이라는 걸 상상할 수 있어요. 다른 세계의 그림이죠. 우리가 보는 세계는 다른 세계에서 매우 느리게 흘러갈 수도 있어요.”

프렐조카쥬는 프랑스의 혁명적인 미술가 마르셸 뒤샹(Marcel Duchamp)의 “작품은 관객이 만들어간다”는 말에 동의를 표하는 예술가이기도 하다. 결국 ‘프레스코화’의 메시지는 그의 철칙처럼 ‘보는 사람’의 몫이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