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ir Paly 인터뷰]연극 ‘맨 끝줄 소년’ 전혀 다른 클라우디오 전박찬과 안창현 “단단하거나 단정하거나”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19-10-23 15:30 수정일 2019-10-24 10:23 발행일 2019-10-23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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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거북이’ ‘천국으로 가는 길’ ‘스탈린에게 보내는 연애편지’ 등으로 유명한 스페인 대표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 연극 '맨 끝줄 소년'
고(故) 김동현 연출, 손원정 드라마터그 의기투합한 2015년 한국 초연부터 클라우디오로 함께 한 전박찬과 새로 합류한 안창현, 박윤희, 우미화, 김현영, 이동영, 이승혁 등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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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맨 끝줄 소년’ 클라우디오 역의 전박찬(왼쪽)과 안창현(사진=강시열 작가)

“클라우디오의 ‘이제 알았어요’라는 같은 한 마디도 호흡이 굉장히 달라요. 미묘하죠.”

24일 개막을 앞두고 있는 연극 ‘맨 끝줄 소년’(12월 1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의 클라우디오 전박찬과 안창현은 “미묘하게 다르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전박찬은 “헤르만 선생님이 수업에서 ‘왜 그런지 모르겠어?’라고 묻는 장면에서 하는 클라우디오의 대답”이라며 “안창현 배우는 바로 캐치한다면 저는 좀 더 고민하고 캐치한다”고 부연했다.

“굉장히 미묘한데 다른 느낌을 줘요. 안창현 배우도 고민의 시간을 가지고 대답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달라졌어요. 그게 굉장히 잘 어울리죠. 서로에게 맞는 호흡들이 새로 생겨난 것 같아요.”

이어 “(손원정) 연출님도 저희에게 전혀 다른 디렉션을 하신다”며 “처음엔 ‘나도 저렇게 했으면 하시는 건가’ 좀 헷갈렸는데 아니었다. 다른 클라우디오를 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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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맨 끝줄 소년’ 클라우디오 역의 전박찬(사진=강시열 작가)

연극 ‘맨 끝줄 소년’은 ‘다윈의 거북이’ ‘천국으로 가는 길’ ‘스탈린에게 보내는 연애편지’ 등으로 유명한 스페인 대표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Juan Mayorga)의 동명 작품을 바탕으로 한다.

언제나 맨 끝줄에 앉는 소년 클라우디오와 문학교사 헤르만의 개인교습 과정을 통해 미묘한 상상과 현실의 경계, 인간의 욕망과 결핍, 창작욕구 등을 아우른다.

2015년 고(故) 김동현 연출, 손원정 드라마터그가 의기투합해 초연됐고 2017년 재연에 이어 세 번째 시즌을 맞는다. 초연부터 클라우디오, 헤르만 선생님으로 호흡을 맞춘 전박찬과 박윤희를 비롯해 안창현이 새로운 클라우디오로 합류했다.

“24일이 굉장히 기대된다”는 전박찬은 “관객 속에 섞여서 안창현 배우가 하는 클라우디오를 볼 수 있다”며 소감을 전했다.

“제가 하는 역을 다른 몸으로 본다는 게 재밌는 경험 같아요. 오히려 객관적으로 보는 시점이 생겼죠. 저 혼자 할 때는 보이지 않거나 고집하던 시각들, 표현들, 선택들을 마주하는 순간들이 많아서 재밌어요. 사실 미안함도 있어요. 3번째 공연이다 보니 이미 어떤 것들은 많이 정해져 있어서 그 안에서 자신만의 것을 만들어 내야하니까요.”

미안함을 전하는 전박찬에 안창현은 “이미 응축된 고민의 덩어리들에 제 생각을 섞거나 새로운 감각으로 접근하면서 빠르게 스며들었다”며 “힘들다기 보다 그 안에서 저만의 호흡을 찾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이미 클라우디오 자체인 형이 있으니 연습과정 중에 ‘내가 잘 움직이고 있구나’ 식으로 이유나 정당성을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서로에 대한 부러움…단단한 전박찬, 단정한 안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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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맨 끝줄 소년’ 클라우디오 역의 안창현(사진=강시열 작가)

“형의 클라우디오는 꽉 찬 단단함이 있어요. 말의 단단함, 화술의 단단함…매력적이죠. 연습실에서도 그렇지만 무대에서 특히 그래요. 확 와닿는다고 할까요.”

전박찬이 연기하는 클라우디오의 매력으로 “단단함”을 꼽은 안창현은 “형은 세 번째다 보니 문득 보이는 여유들이 있다”며 “형을 보면서 ‘저 때는 나도 여유를 가질 수 있겠구나’를 미리 인지할 수 있어서 좋다”고 덧붙였다. 전박찬은 안창현과 함께 한 연습에 대해 “깜짝 놀랐던 시간들”이었다고 표현했다.

“저도 나름 초재연을 하면서 많은 시도들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안창현 배우는 정말 새로운 시도들을 하더라고요.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선들을 제시하죠. 그래서 어떤 것들은 ‘나 이거 좀 쓸게’라고 양해를 구하고 도움을 받기도 했어요. 한달 넘는 연습 동안 함께 하면서 부럽다는 생각을 했죠.”

이어 “초재연을 하면서 고민들이 컸고 재공연 때는 많은 부분들을 바꿔내야 했다. 정신없이 달리던 초연과는 다른 호흡이 필요했기 때문”이라며 “안창현 배우는 이미 정해진 틀 안에서 찾아내야할 것들이 있어서 힘들 텐데도 빠른 속도로 잘 해내고 있어서 부러움을 느끼고 있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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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맨 끝줄 소년’ 클라우디오 역의 안창현(왼쪽)과 전박찬(사진=강시열 작가)

“첫 런(처음부터 끝까지 공연과 똑같이 하는 연습)을 지켜보면서 참 단단하구나 싶었고 ‘단정한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한테는 없는 단정함으로 빠른 속도로 클라우디오와 그의 글쓰기에 접근하는 걸 보면서 부럽더라고요.”

◇전혀 다른 클라우디오, 새로 추가된 네 줄의 대사

“처음엔 클라우디오가 본 걸 글로 쓴 것을 표현하는 데 힘든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말들이지만 글이고 또 말처럼 들려야하기도 하죠. 어떤 때는 글이 아니고 현실의 대화인가 싶기도 하고…. 그렇게 왔다갔다하는 호흡을 연구하는 게 힘들었던 것 같아요.”

이렇게 토로한 안창현에 전박찬은 “사실 저도, 안창현 배우도 아직까지 모르겠는 게 많아서 계속 고민하고 얘기 중”이라며 이번에 새로 추가된 대사에 대해 언급했다.

“원작에는 있지만 저희 초재연 공연에서는 빠졌던 대사들이 이번에 추가됐어요. 저에게도, 안창현 배우에게도 처음 주어진 네줄짜리 대사들로 같이 고민 중이에요. 친구 라파네 집안을 돌아다니면서 거실, 책꽂이, 책, 앨범, 서재, 부부의 침실과 욕실 등을 들어가면서 하는 대사들이죠. 저는 초재연을 하면서 했던 것들이 있다 보니 어찌해야할 바를 모르겠더라고요.”

이렇게 전한 전박찬은 “거기서 안창현 배우가 굉장히 희한한 순간을 만들어냈다. 은밀하고 재밌다”며 “스스로 ‘난 왜 저렇게 못하지’ 싶으면서도 재밌었다”고 귀띔했다.

“안창현 배우한테서 빛이 났어요. 정말 따라할 수 없는 장면이어서 같이 고민하면서 제 식으로 풀어내려고 노력 중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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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맨 끝줄 소년’ 클라우디오 역의 전박찬(사진=강시열 작가)

전박찬이 극찬하는 장면에 대해 안창현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던 것 같다. 제가 만든 동선 안에 대사가 자연스럽게 잘 맞물렸다”며 “이런 저런 시도를 하던 중에 연출님이 포착하시곤 ‘더 이상한 자세를 해봐’라고 하셨다. 그렇게 찾아졌는데 저 스스로도 재밌다”고 털어놓았다. 

안창현의 설명에 전박찬은 “그 순간이 정말 강렬하다. 많은 걸 하지 않는데 많은 게 보이는, 부러운 지점”이라고 말을 보탰다.

“안창현 배우가 하는 그 장면에서는 연출님의 코멘트가 거의 없는데 저한테는 말씀하시더라고요. ‘딱 그것이라면 너나 나나 알 거다’라고요. 다 다르지만 유독 다른 장면이죠. 쉽게 설명하면 같은 에어리어지만 몸의 위치나 표현방식이 달라요. 안창현 배우가 앉아서 시작한다면 저는 서서 시작하죠.”

◇상상과 현실, 그 경계 “보는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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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맨 끝줄 소년’ 클라우디오 역의 안창현(사진=강시열 작가)

“클라우디오의 작문이 보고 들은 걸 그대로 썼는지, 어떤 제스처나 표정만 가지고 말을 따와서 쓴 픽션인지는 늘 고민하고 얘기하는 부분들 같아요. 시작부터 지금, 공연이 끝날 때까지 계속 고민하고 얘기하지 않을까 싶어요.”

클라우디오의 작문 형태로, 상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에 대해 “끝날 때까지 고민하게 될 문제”라는 안창현에 전박찬은 “보는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권리”라고 말을 보탰다.

“저희 둘도 가끔 그런 얘기를 해요. 보고 쓴 거냐, 상상한 거냐 아니면 창작이냐. 어떤 부분은 명확하게 정할 수 있거나 정해야만 해요. 하지만 또 어떤 부분은 마음껏 상상하도록 관객에게 맡겨둘 수 있는 것 같아요. 클라우디오의 작문은 처음부터 소설이 아니었어요. 작가지망생도 아니었죠. 헤르만 선생님이라는 제1독자가 원하는 것, 가르쳐 주는대로 쓰잖아요. 그러다 보니 헤르만 선생님이 얘기하는 좋은 소설이 된 것 같아요.”

전박찬의 말에 재연 당시 관객으로 ‘맨 끝줄 소년’을 봤던 안창현은 “저도 관객으로 봤을 때는 제가 원하는대로 상상했던 것 같다”며 “저와 같이 본 사람들도 다 달랐다”고 전했다.

“막상 공연에 참여하면서 대본을 읽어보니 관객으로 볼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더 보였어요. 하지만 ‘이건 이거야’라는 강요는 좋지 않은 것 같아요. 작품 자체가 관객들로 하여금 상상하게 하고 스스로 선택하게 하거든요. 약속된 것들을 제외하고는 일부러 어떤 의도를 넣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죠.”

이어 “관객으로 공연을 봤을 때 이미지적으로 남았던 건 다른 사람들이 자고 있을 때 샤막(Shark-Tooth Curtain, 무대 장치나 무대 효과를 위하여 설치하는 그물 모양의 막) 뒤에서 클라우디오가 집안을 둘러보는 장면”이라며 “저도 같이 둘러 보는 느낌이 들어서 두근거렸다”고 털어놓았다. 이에 전박찬은 “이제는 볼 수 없습니다”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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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맨 끝줄 소년’ 클라우디오 역의 안창현(왼쪽)과 전박찬(사진=강시열 작가)

“모든 대사와 장면들은 그대로인데 재연까지는 샤막에서 바쁘게 움직였어요. 무대 가장 깊숙한 공간이다 보니 은밀함이 있었지만 굉장히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부분들도 있었죠. 게다가 그 신을 만들었을 때는 2015년이고 지금은 2019년이잖아요.”

더불어 “클라우디오가 집안을 돌아다니는 건 글을 쓰기 위한 건데 자칫 범죄처럼 느껴지거나 위험한 패티시 혹은 관음증처럼 느껴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연습 중 무대 앞으로 나와도 보고 들어가기도 하면서 찾아낸 것들 중 선택을 했다. 새로운 지점들이 생기면서 장단점도 생겼다”고 변화 과정을 설명했다.

“이 장면에서 아무 것도 표현하지 않고 담담하게, 정말 글을 쓴다는 마음으로 5문장들을 말해요. 원래 있던 5문장을 다르게 다룬다고 할까요. 사실 배우들은 뭔가를 표현하고 그 표현이 객석에 잘 전달되는 순간들이 너무 좋아요. 하지만 초연에서 4년이 지났고 한국 사회에도 많은 문제들이 있었죠. 미투, 세월호를 비롯한 참사들을 겪으면서 연극들이 바뀌었다고 생각해요. 소소한 변화지만 좋다, 나쁘다의 문제라기 보다 2019년에는 맞지 않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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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font-weight: normal;">연극 ‘맨 끝줄 소년’ 클라우디오 역의 전박찬(사진=강시열 작가)

◇관계들, 계약으로 맺어진 헤르만·후아나 그리고 미묘한 에스테르

“가장 명확하게 보이는 건 클라우디오와 헤르만 선생님의 관계죠. 그리고 평범해보이지만 소통이 안되는 헤르만과 후아나(우미화) 부부와 클라우디오의 글에서 보여지는 라파 아버지(이동영)와 에스테르(김현영)의 대화 단절이 미묘하게 닮아 있어요.”

인물들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전한 안창현은 “저는 관계에 대해 정의 내리기 보다 글쓰기를 통해 헤르만과 좀 더 가까워지고 반전처럼 후아나를 만나게 되는 데 집중한다”며 “글을 쓰는 데 있어 헤르만 선생님이 마지막에 원했던 반전, 예상 못했던 결말로 가기 위한 시도나 행위”라고 부연했다.

“클라우디오라는 인물 자체가 관계 맺기에 수월한 친구는 아니에요. 아픔과 상처로 인해 스스로 관계를 닫는 인물이죠.”

전박찬은 “클라우디오와 헤르만은 이상하게도 거래 관계”라며 “클라우디오는 작문을 제출하고 책을 받고 작문에 대한 지도를 받는 거래로 이뤄진 관계”라고 말을 보탰다.

“후아나 대사 중에 ‘너는 헤르만을 참 많이 닮았어’라는 말이 있어요. 정말 끔찍한 얘기죠. 클라우디오 입장에서 따라가다보면 그 순간에 들리는 그 대사가 굉장히 끔찍해요. 그 다음에 ‘너도 책 읽고 글 쓰는 걸 좋아하지? 블행해질거야’라는 끔찍한 대사가 따라오거든요. 이 대사 전까지 헤르만과는 거래 관계 같아요.”

이렇게 설명한 전박찬은 “후아나도 인간적으로 맺은 관계라기보다는 작품, 소설을 완성시키기 위한 거래”라며 “두 사람(헤르만과 후아나)과는 이를테면 인물과 인물의 거래라기 보다 작가와 독자의 거래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극 중에는 다양한 관계들이 등장하죠. 제 입장에서 가장 미묘한 건 에스테르와의 만남 같아요. 클라우디오가 에스테르를 여자로 바라본다는 오해의 소지가 상당부분 있거든요. 그런데 클라우디오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어머니에 대한 결핍이 있는 아이잖아요. 친구 집에서 어머니를 봤는데 그 동안 겪어보지 못한 감정, 공기, 따스함을 가졌을 것 같아요. 글 안에서 키스하는 장면도 써내려가지만요.”

그 장면에 대해 전박찬은 “그 부분도 실제 있었던 일인지 상상인지는 보는 분들이 생각하기에 따라 달라진다”면서도 “(키스장면이) 실제라 하더라도 저는 클라우디오가 에스테르에게 가진 감정이 순수하게 보이기를 추구하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섬뜩함과 불쌍함, 그 균형을 위한 클라우디오의 근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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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맨 끝줄 소년’ 클라우디오 역의 안창현(왼쪽)과 전박찬(사진=강시열 작가)

“클라우디오의 근육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물리적인 의미가 아닌, 말의 근육과 몸의 근육 등이요. 그 근육들이 잘 잡혀 있을 때 과하거나 모자라지 않게 무대에서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이렇게 전한 전박찬은 “이 작품이 관객들과 만나기 어려워지는 건 감정이입을 크게 하는 순간 균형이 깨져 버리기 때문”이라며 “이입되는 감정들은 가둬두고 클라우디오가 쓴 글로 나눠야 한다”고 토로했다. 이어 “초연 당시 어떤 관객분이 저의 클라우디오에 대해 ‘사이코패스 같다’고 하셨다. 저 역시 동의 했다”며 “잘못이나 반성 같은 깨달음이라기 보다는 제가 생각하는 클라우디오의 순수한 면이 너무 덮여버리는 데 대한 동의였다”고 털어놓았다.

“당시의 저에 대해 동료나 선배들이 농담처럼 ‘숭악하다’ ‘음흉하다’ ‘음란하다’라고 하셨어요. 제가 몸을 날다람쥐처럼 썼던 것 같아요. 좋게 얘기하면 유연하고 나쁘게 얘기하면 마구마구 휘젓는 움직임이랄까요. 침대에 누워서 다리를 두 번씩 들고 그러다 보니 클라우디오라는 인물을 자칫 더 위험하게 보이게 하거나 다른 매력으로 접근하게 되는 지점들이 생겼던 것 같아요. 3번째 클라우디오를 만나고 안창현 배우가 깨끗하게 표현하는 것들을 보면서 자극을 받죠. 관객에게 제가 생각하는 클라우디오를 제대로 전달하려면 어떻게 해야할지를 다시 고민에 빠졌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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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맨 끝줄 소년’ 클라우디오 역의 안창현(사진=강시열 작가)

그리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침대에 눕습니다”라는 전박찬에 안창현은 “저는 저만의 표현으로 눕습니다”라고 차별점을 설명했다. 보지 않은 상태에서는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두 클라우디오의 차별점에 대해 전박찬은 “물리적으로 무대에서 눕는 행동은 제가 하는데 안창현 배우는 다르게 눕는다”고 눙친다.

“그래서 저는 많이 순화했다”는 전박찬에 안창현은 “제가 공연과 대본을 봤을 때는 ‘숭악하다’기 보다는 섬뜩한 부분은 있었다”며 “마지막 부분은 사실 좀 놀랐다”고 말을 보탰다.

“순박한 걸 절대 놓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에요. 그 순박함이 제 장점 중 하나인 것 같기는 해요. 연출님께서 ‘창현이는 소름끼칠 정도로 섬뜩하거나 눈물 날 정도로 불쌍한 걸 잘하는 것 같아’라고 하셨어요. 중요한 건 클라우디오는 그 중간을 해야한다는 거죠. 중간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흔들리는 순간 아무 의도 없이 바라보는데도 ‘무섭다’거나 ‘너무 불쌍하다’고 느끼시는 것 같아요.”

그리곤 “너무 무섭다거나 불쌍하다는 말을 한 100번은 들었다”는 안창현에 전박찬은 “저 역시 300번은 들은 디렉션”이라며 “이 작품이 그래서 어려운 것 같다”고 동의를 표했다.

“별 것 안하는데도 불쌍해 보이고 무서워 보이고 하거든요. 그렇지 않아야만 완성되는 장면들이 너무 많아요. 아무 것도 안해야 하지만 또 뭔가를 쌓아가야하는 그런 장면들이죠. 연출님께서 ‘속은 채워 가둬두고 겉으로는 단단하게 하라’고 말씀하시는데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철저하게 계산해서 가두는, 쉽지 않은 그 과정을 견뎌내고 연습실에서 쌓았던 시간들을 무대 위에서 할 때 관객들도 동의하시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관객들에게 동의 받는 “클라우디오의 근육이 중요하다”고 다시 한번 강조하는 전박찬에 안창현은 “스스로도 명확하지 않아서 힘들지만 연습을 통해 단련돼야 할 것 같다. 그러면서도 익숙해지지 않고 그 순간 살아 있으려고 애쓰고 있다”고 동의를 표했다.

◇전박찬의 에스테르와의 만남, 안창현의 헤르만 선생님과의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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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맨 끝줄 소년’ 클라우디오 역의 안창현(왼쪽)과 전박찬(사진=강시열 작가)

“공연 때마다 다른데 요즘에는 에스테르를 만나는 장면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사실 지금 가장 어려운 장면이기도 해요.”

최근 가장 와닿는 장면에 대한 질문에 전박찬은 “모든 장면 장면들이 다 소중하고 중요해서…”라는 전제를 달며 “마지막 에스테르와의 만남”이라고 답했다.

“사실 ‘맨 끝줄 소년’은 후안 마요르카 작품 중 가장 쉽게 쓰여진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작품은 ‘이게 뭐야’ 싶은 경우가 있는데 ‘맨 끝줄 소년’은 큰 상징이나 어려운 건 존재하지 않아서 잘 따라가다 보면 즐길 수 있는 정도거든요. 재공연 때는 후아나를 만나는 장면이 그랬는데 이번에는 에스테르를 만나는 그 마지막 장면이 가장 신경이 쓰여요. 매일 매일 바꿔서 뭔가를 하는데 매번 다른 감각들이 다가오는 게 참 신기하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고 그래요. 그래서 지금은 그 장면이 되게 좋아요.”

안창현 역시 “모든 장면이 다 소중하다”며 “처음부터 중요하게 생각했고 요새 들어 점점 재밌어지는 부분들이 헤르만 선생님과 만나는 부분들”이라고 밝혔다.

“요새 들어 엄청 재밌기 시작하더라고요. 런을 돌 때마다 미묘하게 바꿔가면서 한 다양한 시도들로 더 찾아지는 것들이 있거든요. 클라우디오의 글을 말로 읽는 것도 재밌지만 헤르만 선생님의 문학수업이 좋고 중요하게 느껴져요. 대화라기 보다는 헤르만 선생님이 거의 다 얘기하시죠. 그 말 속에서 들리는 의미들이 어느 순간 더 잘 들리고 흡수되기 시작한 것 같아요.”

◇상상과 현실이 만나지는 순간들, 독자 그리고 2019년의 관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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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맨 끝줄 소년’ 클라우디오 역의 전박찬(사진=강시열 작가)

“클라우디오의 글쓰기는 헤르만 선생님이 30분을 주면서 지난 주말에 대해 서술하라는 데서 시작됐어요. 헤르만 선생님한테 ‘다른 사람 보여주라고 쓴 게 아닌데요’라던 클라우디오가 ‘다른 사람 보여줘도 돼요’라고 하면서 독자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 같아요. 선생님과 문학수업을 하면서 작가로서 글 쓰는 데 대한 재미와 흥미가 생기고 스스로를 존재하게끔 하는 이유가 생겨나지 않았나 생각해요.”

이렇게 설명한 전박찬은 “글을 잘 썼으니 보여주라는 게 아니라 더 잘 쓰기 위한 선생님과의 순간”이라며 “순수한 작문에서 소설로 가는 과정에서 상상과 현실이 만나는 순간들처럼 독자들이 누릴 수 있는 몫으로 넘기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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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맨 끝줄 소년’ 클라우디오 역의 안창현(사진=강시열 작가)

글을 쓰는 클라우디오가 독자들을 염두에 두기 시작하는 것처럼 전박찬과 안창현 역시 무대에서 관객을 만나고 소통한다. 이에 안창현은 헤르만의 대사 “질문이 독자들 마음에 꽂혀야 돼. ‘어떻게 될까?’ 독자에게 쉴 틈을 주어서는 안 돼. 긴장을 유지시켜야 돼. 작가가 독자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면 독자는 자기 마음을 줘. 사람들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해. 이야기 없는 인생은 아무런 가치가 없어”라는 대사를 인용했다.

“실질적으로 공연을 하면서 그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클라우디오)가 쓴 글을 통해 관객들이 더 듣게 되고 집중하게 되고 긴장을 유지하면서 흐름이 끊기지 않게 따라와 주면 좋겠어요.”

전박찬은 세 번째 클라우디오와의 만남에 대해 “사회도, 관객도 바뀌어서 고민이 많았다. 시대와 맞닿는 지점을 잡아가는 과정을 보냈다”고 털어놓았다.

“위치도, 말도 바꿔내고 하는 건 2019년 관객들과 만나기 위해서였어요. 그리고 무대 위에 선 우리도 지금을 같이 살고 있잖아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