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데스크칼럼

[데스크 칼럼] 서희의 지혜

이형구 생활경제부장국립외교원 앞마당에는 거란의 장군 소손녕과의 협상을 통해 강동 6주를 확보한 서희의 동상이 있다. 아마도 서희의 사례가 한반도 역사상 최고의 외교 협상으로 꼽히기 때문일 것이다. 서희가 거란과의 협상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거란의 침공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서희는 거란이 일으킨 군사 80만을 보고 이는 고려 점령을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송나라와의 전쟁을 생각하고 송을 사대(事大)하는 고려를 사전에 정리하기 위한 목적임을 파악했다. 이에 서희는 소손녕에게 앞으로 송나라와의 외교관계를 단절할 테니 군사를 물리어 달라고 한다. 대신 본인은 얻어 낸 것 없이 빈 몸으로 조정으로 돌아갈 경우 송나라와의 친교에 적극적인 대신들이 본인을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니, 작은 선물로 임자 없는 땅인 강동6주에 고려의 군사가 들어가 점령하는 것을 묵인해달라 요구해 관철시킨다.서희는 상대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해 이를 받아들이면서 상대로부터 반대급부를 받아낸 것이다. 명분보다는 냉철한 현실감각과 유연성의 승리인 셈이다.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첫 회담이 조만간 이뤄질 전망이다. 첫 회담을 앞두고 양측이 물밑에서 의제 조율 등 실무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민생 문제를 포함해 논의할 만한 국정 현안이 산적해 있지만, 여야의 입장차가 현격해 합의가 쉽지 않아 보인다.당장 회담을 위한 준비회동을 놓고도 양측의 생각이 달라 엇박자를 내고 있다.또 회담이 열리면 가장 큰 의제로 논의되는 이 대표의 ‘전국민 1인당 25만원 지급’ 및 추경예산 편성 요구만 해도 여권은 “나라를 망치는 포퓰리즘 마약”에 비유하며 극력 반대하고 있다. 재정 건전성 저해를 우려하는 당국의 반대는 차치하고 전국민에게 현금을 나눠준다는 것 자체가 선별 복지를 주장하는 보수의 정체성과 결부돼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 ‘해병대 채상병 순직사건 특검’과 ‘김건희 여사 종합특검’ 등 휘발성 있는 정국 현안에 대한 여야 입장차도 현격하다.과거 대통령과 야당 대표 회담은 ‘만남에 의미를 둬야 한다’는 공허한 메시지를 남기고 돌아서는 걸 되풀이했다. 이 같은 ‘빈손 회담’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선 양측이 상대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상대가 원하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을 확실히 파악한 후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겠는 자세를 갖추지 않으면 협치를 위한 성과를 내기 힘들다.이를 위해 국정운영의 당사자인 윤 대통령부터 변해야 한다. 대통령이 내줄 것은 내주고 어떤 방식으로든 야당을 국정운영에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여야 간에 견해차가 크지 않은 사안부터 합의해 나가는 것도 검토해볼 만 하다.지난 총선에서 야당이 압도적으로 승리한 것은 정부와 여당이 국정 기조를 바꿔 대국민 소통의 폭을 넓히고 야당과 대화와 타협을 통해 협치를 모색하라는 요구였다. 여소야대 구도 아래에서 대통령과 정부가 야당의 협조를 구하지 못하면 제대로 국정을 운영할 수 없다. 당장 새 총리 인선부터 난관에 부닥치게 된다.이 대표도 전향적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다. 국회 다수당의 대표로서 국정운영의 동반자라는 자각을 갖고 당리당략을 떠나 국정 운영에 협조할 건 협조하겠다는 태도를 보일 때 국민의 지지도 커질 것이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서희의 지혜로 회담에 임하길 바란다.이형구 생활경제부장 scaler@viva100.com

2024-04-23 14:11 이형구 기자

[데스크 칼럼] 제동 걸린 尹정부 부동산정책

채훈식 건설부동산부 부장22대 4·10 총선에서 야권이 절대 다수당이 되면서 윤석열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도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커졌다. 차주단위 DSR 등 대출규제와 다주택자 취득세 중과 및 종합부동산세 중과 등이 완화되긴 힘들어졌고, 단기적으로 매수세가 위축될 가능성도 높아졌다.하지만 여당이 총선에 참패했다고 부동산 정책 환경이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2022년 5월 출범 이후 줄곧 ‘여소야대’라는 정치적 환경과 마주해 왔다. 고금리 장기화에 시장 침체가 계속되고 있어, 예전처럼 규제 더 강화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지난 2020년 총선에서도 민주당이 승리했지만, 선거 직후 집값은 가파르게 올랐다.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시장 흐름을 봐야 한다.부동산은 여러 가지 변수들로 움직인다. 변수로는 금리, 부동산 정책, 공급, 투자심리, 실물경기, 소득, 인구, 지역 개발 등이 있다.변수들도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화무쌍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부동산시장의 작동원리는 단순한 1차방정식이 아니라 고차방적식이다. 그래서 부동산시장의 흐름을 정확하게 읽어내고 전망하기란 쉽지 않다.인구 같은 변수는 장기간에 걸쳐 영향을 미치고 투자심리 같은 변수는 단기간 영향을 강하게 미치다가 사라지기도 한다. 어떨때는 공급이, 어떨때는 금리가 부동산 가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부동산 시장을 읽을 때는 이들 변수의 영향력 정도와 비중을 균형감 있게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특정 변수로만 부동산 시장을 볼 경우 편향적인 시각을 갖기 쉽고 투자에 실패할 수 있다. 예컨데 실물경기만 강조해서 분석한다고 가정하면 실물경기가 불황일 경우, 소득은 줄고 구매력이 낮아져서 부동산 가격하락 요인이 되기 때문에 부동산 가격이 내릴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하지만 다른 변수인 부동산 정책, 공급, 투자심리, 금리 등이 모두 상승요인이라면 어떻게 될까. 이럴 경우 부동산 가격이 내리기 보다 오를 수 있다.반대로 실물경기가 너무 좋아도 다른 변수들이 모두 하락요인으로 작용하면 부동산 가격이 떨어질 수 있다.지금은 부동산시장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금리다. 부동산을 살 때 대출을 많이 받다 보니 금융시장에 종속성도 강해지고 부동산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다.거래량도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거래량은 가격에 선행한다. 거래가 이뤄질수록 가격이 올라가는 구조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가격 변화와 함께 거래량의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실제로 거래가 이뤄지면 집주인들은 가격상승에 대한 기대로 호가를 올리거나 매물을 거둬들인다. 가격상승에 대한 기대가 매수 대기자들에게 까지 확산되면 매수자들은 추격 매수에 나서고 한두 건 거래가 되면 호가가 서서히 올라간다. 반대로 시장이 약세장으로 돌아설때도 거래량 침체가 먼저 온다. 집주인들이 먼저 급매물을 내놓지 않는다. 수요위축으로 거래가 뜸해지면 사정이 금한 집주인들은 싼 매물을 내놓는 구조다. 그래서 거래량 감소는 가격 하락을 예고하는 지표가 될 수도 있다.채훈식 건설부동산부 부장 chae@viva100.com

2024-04-16 14:48 채훈식 기자

[데스크 칼럼]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 돌잔치 패싱 왜?

우리금융지주 임종룡 회장이 지난날 회장에 취임한지 1년이 됐지만 대외 행사를 갖지 않고 조용히 지나갔다.우리금융내에서도 별다른 메시지를 내놓지 않았다. 임종룡 회장은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일 때, 금융위원장시절에는 취임 1년을 맞아 기자간담회 형식으로 소회와 비전을 피력했다. 우리투자증권 인수나 인터넷전문은행 추진 등 굵직한 업적을 내세우면서 관심을 끌었다.행정고시 합격(1981년)후 40년 넘게 행정부와 금융계에서, 전두환 정권에서부터 윤석열 정권에 이르기까지 쉼 없이 세상을 읽은 임 회장이다. 그런 그가 낙하산 관치인사 논란까지 야기하면서 입성한 우리금융에서, 아무런 일이 없듯이 취임 2년차를 맞는 게 오히려 생뚱맞은 느낌마저 든다.상당수 기업에서는 회장 취임 1년이 다가오면 어떤 행사를 꾸릴지 관련 파트들이 머리를 싸맨다.오너 회장일 경우는 초비상 사태다. 가장 기본은 경영실적 성과를 드러내는 것이고 미래비전을 제시하면서 안팎의 일체감과 지속성장성을 강조하곤 한다. 가령 우리금융의 경우, 행사를 준비한다면 조직체계상 장광익 브랜드·홍보부문 부사장이 콘텐츠를 책임질게다. 언론계 출신인 장 부사장은 임 회장과 학연을 넘어선 끈끈한 관계로 알려져 우리금융내 숨은 실력자로 꼽힌다. 장 부사장은 공개행사에서 다른 금융지주 회장들도 편하게 대한다는 전언이다.임 회장은 오너 회장은 아니지만 금융위원장 재임시 우리금융의 민영화를 설계했고, 회장 지휘봉을 잡고서는 금융지주 이사회 멤버를 자기 식으로 짰다. 우리은행의 ‘재주’ 때문에 우리금융이 ‘돈을 만지는 데’, 그럼에도 우리은행장은 이사진에서 배제됐다. 오너 회장이상의 사실상 단독 지휘체계를 구축했다. 때문에 임 회장의 한마디만 있었다면 돌 잔치에 초대할 손님들 명단도 짜고 잔치상에 내놓을 음식도 화려하게 장만할 수 있는데 그냥 흐지부지 넘어가 더 궁금증을 낳는다.임 회장은 취임사를 통해 ‘신뢰받는, 빠르게 혁신하는, 경쟁력 있는, 국민들께 힘이 되는 우리금융’이란 네 가지 경영 방향을 제시했다. 불과 1년여 사이에 눈에 띄는 성과를 창출하기가 쉽진 않겠지만 그래도 ‘패싱’한 것에 금융권 안팎에서는 고개를 갸우뚱거린다.사정이 이렇다 보니 장삼이사들은 임 회장과 은행권, 은행권과 윤 정권의 관계에서 이유를 찾기도 한다. 그 고리중 하나가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사태이다. 임 회장은 현 정권의 금융맨으로 비쳐진다. 정권 출범시 임 회장은 경제부총리 유력 후보로 거론됐지만 본인이 고사했다.정권이 은행의 공공성을 강조하면서 ‘상생금융’을 외칠 때 우리금융은 거의 정부측 입장에서 여타 은행을 난처하게 했다. 홍콩ELS사태로 곤경에 처한 정부가 4월 총선을 앞두고 판매사인 은행의 자율배상 선제추진을 요구하면서 은행을 압박할 때도 결과론적으로 그랬다. 대부분 은행은 배임 소지 때문에 법률자문을 거치면서 신중함을 유지했지만 우리은행이 선제적으로 자율배상 단행 의지를 불쑥 밝혔다. 임 회장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간 ‘교감 결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관료로서의 행정능력과 금융정책에 관한 전문성, 특별히 ‘적’을 만들지 않는 유연한 성품과 조용한 인간관계 형성 능력이 임 회장의 특장이라고 한다. 정치권에서는 4월 총선후 대통령실 개편과 경제부처 중심의 개각의 필요성을 거론한다. 호남출신 임 회장의 임기는 2026년3월까지다.명재곤 금융증권부장 daysunmoon419@viva100.com

2024-04-02 08:44 명재곤 기자

[데스크 칼럼] 과일값 쇼크와 햇살

송남석 산업IT국장지난해 전세계가 가뭄과 폭우·폭염·폭설 등 온갖 이상 기후로 홍역을 치렀다. 문제는 갈수록 정도가 심해지고 잦아지고 있다는 부분이다. 이제 웬만한 기상이변쯤은 아예 주요 뉴스 축에도 못 낄 정도다. 우리나라도 작년이 관측 이래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됐다. 올해는 계절의 초입부터 전국에 또 다른 이상기후가 나타나면서 일상을 흔들고 있다. 올해는 기온이 아닌 잦은 강우로 인한 2월 일조량 부족 문제가 불거졌다.당장 대표적인 봄꽃 축제인 진해군항제가 벚꽃 없이 개화했다. 지자체들이 기후 온난화로 빨라지는 개화기를 고려해 축제를 앞당긴 탓도 있겠다. 하지만 생물학자들이나 기상청은 일조시간 부족을 더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역대 가장 이른 3월 29일 개최하려던 ‘2024 경포벚꽃축제’가 일주일 연기됐다. 22일 열 예정이던 ‘대릉원돌담길 벚꽃축제’나 ‘2024 벚꽃과 함께하는 청주 푸드트럭 축제’도 미뤄졌다. 29일, ‘서울의 봄’을 열려던 ‘여의도 봄꽃 축제’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통상 우리나라는 진달래 필 무렵부터 아카시아 질 때까지(2월 중순~5월 중순)를 봄철로 친다. 건조한 날씨에 산림청과 소방청이 가슴을 졸인다는 시기지만, 올해는 걸핏하면 비가 내렸다. 3월 일조시간(태양의 직사광이 지표면에 비친 시간)이 작년보다 턱없이 부족했다. 최근 6개월 전국 누적 강수량은 504.7㎜로 평년(1991~2020년)의 150.6%에 달한다. 만성적인 봄 가뭄이 사라진 자리를 일조량 부족이 차지한 것이다. 모든 생물체는 이미 스트레스에 노출됐고, 식물들은 개화기를 저울질하고 있다.햇빛이 적게 들고 기온까지 들쭉날쭉 하다 보니, 과일이나 채소 할 것 없이 꽃 피는 시기를 헷갈려하는 것이다. 개화를 망설이는 철없는 꽃들은 작물의 수정과 열매 맺음에 결정타다.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올해 역시 초장부터 긍정적인 작황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한다. 사과나 배는 물론 딸기 토마토 과일과 고추 호박 같은 채소류 가격 급등이 우려된다. 물론, 여름과 가을철 생육환경도 중요하지만, 전문가들이 3말 4초 봄철 개화기 기상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곧 4월이다. 사과와 배, 복숭아 등 과일이 꽃 피는 시기다.작년 봄엔 이상고온이 올해 과일 가격을 직격했다. 대통령까지 나서 과일값 안정을 위한 특단의 조치를 주문했고, 정부는 바나나와 오렌지 등 열대과일을 수입해 시장에 풀고 있다. 하지만 사과·배 가격이 크게 내려갈 것으로 보는 이는 별로 없다. 사과 한 알에 5000원, ‘금사과’ 혹은 ‘애플리케이션(사과로 인한 물가상승)’이란 신조어가 현실 아닌가.과일값 관련, 올 봄 최대 상수는 일조량이다. 비단 농작물에만 미치는 이슈가 아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은 햇빛에 의지해서 살아간다. 햇살이 부족한 궂은 날씨는 동물을 넘어 사람들의 마음까지 어둡게 한다. 일조량이 많은 나라는 자살률이 낮고, 우울증 환자 또한 20%에 불과하다는 보고도 있다. 게다가 요즘을 흔히 뉴 노멀(new normal), 혹은 뉴 애브노멀(new abnormal) 시대라고 하지 않는가. 그렇지 않아도 온갖 새로운 가치와 기준에 불안해하는 요즘, 햇살마저 부족해지면 더 우울해지기 십상이다. 찬란한 햇살이 그리워지는 봄이다.송남석 산업IT국장 songnim@viva100.com

2024-03-27 06:29 송남석 기자

[데스크 칼럼] ‘몸빵’이거나 ‘돈 잔치’거나

허미선 문화부장‘몸빵’이거나 ‘흥청망청’이거나. BTS 등 K팝과 ‘오징어게임’ ‘기생충’ ‘미나리’ 등을 필두로 한 K콘텐츠 및 문화가 전세계적으로 사랑받으면서 한국을 찾은 이들이 부쩍 늘었다. 여행하고 싶은 나라나 도시에 한국, 서울 등이 상위권에 랭크되는 현상도 꽤 익숙해졌다. 명동, 서울 사람들은 듣도 보도 못한 맛집, 문화 등과 중국 및 동남아인들이 대부분이던 이전과는 달리 서울 곳곳에서 외국인 관광객을 목격하는 일은 이제 일상이다. 그 국적도, 인종도, 들리는 언어도 다양해 K컬처의 저력을 입증하기도 한다.  서울 뿐 아니라 부산이나 제주 등 지역관광을 꿈꾸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한국에는 서울 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 볼만하고 가볼만하며 먹을거리가 수두룩하다. 한국 사람들조차 그 진가를 알지 못하는 지역관광은 K컬처에 빠져 한국을 찾는 이들을 두번 세번 오게 할 수 있는 요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외국인 친구가 “서울 말고 가볼만한 데가 있어?”라고 묻는다면 선뜻 추천할 여행지는 많지 않다. 혹은 누군가 “한국이 관광대국이 될 수 있을까”라고 의견을 묻는다면 “그렇다”고 명료하게 대답하기란 쉽지 않다. 자국민과는 전혀 다른 외국인을 위한 여행지, 맛집 등 그 쏠림 현상은 여전하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가장 많은 곳은 여전히 서울의 명동이다. 게다가 이곳 물가가 심상치 않다. 기본 핫도그, 찐옥수수 등이 하나에 5000원이다.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한 ‘바가지’를 고발하는 뉴스에는 혀를 끌끌 찼지만 실제로 눈앞에서 확인하고 나니 “명동에서 제일 싼 집은 백화점 푸드코트”라는 웃픈 농담이 절로 나올 지경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한산하다 못해 나간 집 같던 명동거리가 외국인 관광객들로 넘쳐나지만 어쩐지 불안함과 걱정이 앞서는 건 그래서다. “서울 말고 다른 데”를 추천받으려는 친구에게 선뜻 어딘가를 말하기 어려운 것도 같은 이유다. 지역의 풍경이나 볼거리, 먹거리가 부실하거나 별로여서가 아니다. 여행을 만끽할 바다, 산, 강, 먹거리, 볼거리, 즐길거리, 특유의 문화, 특산물, 유서 깊은 축제 등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음에도 그곳에서의 이동이나 즐기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수도권과 대도시에만 몰려 있는 문화 기반시설, 교통·숙박 등 여행에 필요한 인프라 문제는 여전히 심화 중이기만 하다. 물론 잘 갖춰진 도시들도 있다. 하지만 몇몇 도시를 제외한 곳의 여행 인프라는 열악하기만 하다. 배차시간이 긴 버스나 아예 시내버스가 없어 도계, 시계를 넘나드는 시외버스 혹은 고속버스를 타야하는 곳도 있다. 나 홀로 여행일 때야 그 사정을 감내하고 주로 걷기로 이동하며 배짱이 여행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안전하면서도 1인이 머물 만한 숙박시설을 찾기란 쉽지 않다. 안전, 비용절감 등 어느 쪽을 선택하든 감내야할 것들이 적지 않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체력이 약한 어른들, 아예 걸을 수 없는 아이들, 장애인 등과 동반한 여행이라면 선택지는 몇 가지 없다. 거주지부터 여행 내내 자차를 이용하거나 여행지까지는 비행기·버스 등으로 여행지까지 가 렌트카를 이용하는 몇몇 사람의 ‘몸빵’ 혹은 여행 내내 택시를 이용하고 최고급 리조트에 묵는 등 ‘돈 잔치’ 말고는 방법이 없다. 4인 1박 2일 여행경비 200만원 남짓 중 비행기, 숙박을 제외한 비용 중 절반이 택시비일 정도다. 그 여행의 끝은 대부분 “차라리 동남아시아 패키지 관광을 가는 게 낫겠다”일 정도로 한국인에게도 쉽지 않은 여행을 말도 통하지 않고 그 문화마저 낯설 외국인 친구에게 추천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지역 볼거리, 축제 등을 개발하고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일도 중요하다. 하지만 기본이 되는 기반시설, 여행 인프라 구축이 우선이다. 아무리 좋은 콘텐츠도 그곳까지 가거나 머무는 것조차 어려움이 존재한다면 무용지물이다. 지역의 주요 관광지를 쉽게 오갈 수 있는 교통수단이라도 갖춰져야 지역 관광은 활성화될 수 있다. 오늘만 살 것 같은 관광정책 보다는 지속가능성을 담보한 장기적인 안목으로, 구태의연한 지역행정 차원 보다는 관광객 편의를 고려한 기본을 갖춰야 할 때다. 관광대국의 이상향은 외국인 뿐 아니라 자국민까지 찾거나 여행을 꿈꾸는 곳이 많아지는 것이다.  허미선 문화부장 hurlkie@viva100.com

2024-03-19 14:19 허미선 기자

[데스크칼럼] 트럼프 재집권 대비, 빠를수록 좋다

권순철 정치경제부장오는 11월 미국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공화당 후보인 도날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상승세가 무섭다. 지난 1월 15일 아이와주를 시작으로 한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 레이스에서 트럼프는 연승하면서 대규모 대의원이 걸린 지난 슈퍼화요일(5일) 선거에서서 마저 승리함으로써 사실상 공화당 대선후보로 확정됐다. 민주당 조 바이든 대통령도 초반부터 경쟁자들을 여유 있게 따돌리고 대선후보 자리를 거머쥘 것으로 예상된다.문제는 바이든-트럼프 두 전 현직 대통령이 다시 대결할 경우 트럼프 전 대통령이 우세할 수 있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NYT가 시에나대와 지난달 25~28일 유권자 98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결 시 트럼프 전 대통령이 48%의 지지율로 바이든 전 대통령(43%)을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여기에 1942년생인 바이든 대통령은 82세의 고령으로 인한 잦은 말실수 등 인지력과 건강상 리스크를 안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전쟁도 마이너스 요인이다.만약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하고 트럼프 정부 2기가 시작되면 미국의 정책도 바이든 정부 때와는 완전히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안보, 경제 등 전 세계에서 대미 의존도가장 높은 우리나라로서는 특히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우선 트럼프 집권 시 주한미군 주둔비용 등 한국의 방위비 부담을 늘리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정부 1기 때도 우리나라에 분담금 대폭 증액을 요구해 협상 타결까지 진땀을 뺀 적이 있다. 트럼프는 최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의 방위비 증액 압박 발언을 해 큰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또한 트럼프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다시 직접 대화를 추진할 수 있다. 이미 그는 김 위원장과 세 차례나 만난 적이 있다. ‘트럼프-김정은’ 대화채널이 가동되면 한미일 3각 안보동맹을 통해 북한을 압박하는 기존 한반도 정책과는 다른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경제정책에서도 바이든 정부와는 결이 다를 것으로 전망된다. 반도체 등 글로벌 공급망을 통한 대중국고립정책이 한층 강화 될 것이며, 대미수출 흑자국가들로부터의 수입품에 대한 관세 부과 등 미국 우선주의 정책이 확연히 드러날 것이다. 트럼프는 대통령 재임시절 유럽연합(EU)산 철강, 알루미늄 제품에 부과한 관세로 양측은 아직도 갈등을 빚고 있다. 트럼프 캠프에서는 미국의 무역적자 원인으로 우리나라의 자동차도 지목한 만큼 한국도 보편적 관세 대상국에 포함될 수도 있다.바이든 정부에서 인플레이션감축법(IR), 반도체지원법을 통해 한국 기업들을 옥죄고 있는 미국은 트럼프 2기 때는 한국기업들에 대해 추가적인 대미투자를 압박할 것으로 보이며, 현재의 보조금 혜택마저 줄일 가능성이 있다.이에 따라 우리 정부도 트럼프의 집권을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비공식적으로라도 정부합동 TF팀을 구성해야 한다. 안보, 통상 정책과 관련해 트럼프가 요구할 사항들을 시나리오별로 대책을 강구하는 한편 트럼프 인맥과도 탄탄한 네트워크를 형성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 한미는 오는 2026년부터 적용되는 한미방위비분담 협정 체결을 서두르고 있다. 가능하면 올해 안에 협정을 타결해야 할 것이다.권순철 정치경제부장

2024-03-12 13:51 권순철 기자

[데스크 칼럼] 사과가 사라진다

이형구 생활경제부장조만간 한국에서 붉은 사과를 찾아볼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사과 껍질이 붉게 변하는 건 9월 중순 이후 더위가 가시고 기온이 내려가며 사과껍질에 천연 색소인 안토시아닌 성분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사과의 안토시아닌은 낮기온이 20~25℃, 밤기온이 15~18℃ 가량으로 떨어졌을 때 가장 잘 생성된다고 한다. 하지만 온난화로 밤 기온이 올라가면서 빨간색으로 변하지 않고 녹색인 채로 남아 있게 된다.그런데 최근 기후 변화로 기온이 상승하면서 착색이 지연되고 껍질 색이 선명하지 않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 때문에 농촌진흥청은 최근 들어 ‘빨간 사과’가 아닌 황옥, 골든볼 등 ‘노란 사과’ 보급에 나서고 있다.나아가 온난화가 지금 같은 추세로 계속된다면 2100년에는 한반도에서 사과 재배가 아예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환경부가 지난 2020년 발표한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온실가스 감축이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아 현재 수준으로 배출이 지속됐을 때 80년 후인 2100년 한국의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1750년) 대비 4.7℃나 상승한다.이렇게 되면 2100년에는 한반도에서 사과 재배에 적합한 지역은 전체 농경지의 0%가 될 것으로 환경부는 예상했다. 재배 가능한 지역도 0.2%에 그친다. 국내산 ‘붉은 사과’는 말 그대로 씨가 말라 버리게 되는 셈이다.그리고 이 같은 현상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지난 2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농업 전망 2024’ 보고서에 따르면 사과 재배면적은 지난해 3만3800헥타르(㏊)에서 2033년 3만900ha로 연평균 1%가량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2033년까지 9년 동안 사과 재배면적 2900㏊(8.6%)가 줄어드는 것으로 축구장(0.714㏊) 4000개가 사라지는 셈이다.재배 면적 감소 탓에 사과 생산량은 올해 50만2000톤(t)에서 2033년 48만5000t 내외까지 감소할 것이라고 농촌경제연구원은 전망했다. 생산량 감소로 사과 소비도 줄어 1인당 사과(후지 상품) 소비량은 올해 9.7㎏에서 2033년 9.5㎏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사과뿐만이 아니다.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9489㏊이던 배 재배면적은 2032년엔 8700㏊까지 줄어들 전망이며, 배 생산량도 2023년 20만t에서 2032년엔 19만4000t으로 줄어들 전망이다.반면 ‘제주 감귤’은 ‘강원도 감귤’로 대체된다. 기후변화 전문가들은 현재 우리나라 귤(온주밀감)의 재배 적지는 제주지만, 2090년이 되면 제주는 한라산 산간을 빼곤 재배가 불가능해지고 대신 2030년대 전남 해안가를 시작으로 경남, 강원도 해안으로 재배지가 확대되면서 경북, 충북, 전북도 감귤 재배가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한다.실제로 2020년 기준 제주지역 노지감귤 재배 면적은 1만1234㏊로 2010년 1만8190㏊ 대비 38.2% 감소했지만, 제주를 제외한 타 지역 노지감귤 재배 면적은 2010년 63㏊에서 2020년 들어서는 109㏊로 10년 새 73% 늘었다.우리 후손들은 장차 차례상에 붉은 사과 대신에 감귤을 놓게 될 가능성이 높다.이형구 생활경제부장 scaler@viva100.com

2024-03-05 14:23 이형구 기자

[데스크 칼럼] 실현 불가능한 1기 신도시 재건축

이기영 건설부동산부장‘1기 신도시법’이라고 할 수 있는 노후계획도시정비특별법이 4·10 총선을 앞두고 본격화 하는 분위기다. 정부는 5월 선도지구 신청을 받기로 하면서 분위기를 띄우려고 하지만 시장 반응은 시큰둥하다.아무리 계산해봐도 지금 정부가 구상하는 조건으로는 실현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재건축에 따른 이익보다 손해가 더 큰데 누가 재건축에 동의하느냐다.지금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에서 재건축 성공여부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요건은 첫째로 분양가 수준, 두 번째로 공사비 수준, 세 번째로 기부채납 비율이다.일단 재건축 단지 주변 아파트 시세가 높아야 높은 분양가를 책정해 1차 사업성을 노릴 수 있는데, 현재 1기 신도시 가운데 가장 비싼 분당의 경우 3.3㎡ 분양가는 많이 받아봐야 4000만원이고, 평촌은 3000만원이다. 상대적으로 싼 지역인 일산이 2000만원대고 산본과 중동은 1000만원대다.가장 비싼 분당의 경우 84㎡ 분양가는 많아야 13억원이라고 할 수 있다.이번 특별법 적용으로 용적률 500%를 적용받았을 경우, 늘어나는 기부채납비율 중간치를 잡으면 약 180%의 용적률을 기부형태로 토해내야 하는데 반해, 기부채납 부분에 대한 공사비까지 부담하는 구조다. 현재 평균 공사비는 3.3㎡ 당 1800만원인데, 실제 공사가 들어가는 시점의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최소 2000만원은 넘는다고 봐야한다. 이러한 구조를 가지고 계산할 때, 4000만원의 비교적 높은 분양가로 계산해도 가구당 4억원 이상의 분담금을 물어야 한다. 여기에 초과이익환수액과 분양가상한제에 따른 분양가 조정분을 반영하면 분담금은 최소 4억원 이상 더 늘어날 것이다.아파트값이 비싼 분당이 이런데 그 외 1기 신도시들 입장은 어떻겠나. 더구나 1기 신도시를 제외한 지방의 구축 대단지 재건축은 과연 입이라도 뗄 수 있을지 의문이다.서울 노원구 상계동 재건축 아파트를 5억원에 샀지만, 재건축 분담금이 6억원 이상 나온다고 해서 급매로 내놓는 정도다.정부가 이런 계산 안하고 이 법을 내놓았을 리는 만무다. 결국 지금과 같은 재건축 방식은 전혀 실현 가능성이 없는 그야말로 총선용 공약(空約)이라고 밖에 해석이 안된다.앞으로 구축 단지들의 재건축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더 큰 사회문제가 될 것이 뻔하다.지금같은 기부채납 방식의 구조로는 특별법 적용이던 아니던 별 의미 없이 사업 추진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오죽하면 분양가가 7000만원 대인 강남지역 재건축을 위한 법이란 말이 나올까. 그런 강남도 분담금이 10억원을 웃도는 형편이다.선거를 앞두고 온갖 공약이 등장하지만, 이번 공약은 지나치게 포퓰리즘 측면이 있어 향후 후유증이 클 것으로 우려된다.진작 시간을 가지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궁리하고 대책을 마련했어야 했다. 그러나 이미 버스는 출발시켰으니 이를 어쩔꼬. 앞으로 나아가지도 되돌리지도 못할 이 특별법으로 부동산 시장은 더 시끄럽게 됐다.이기영 건설부동산부장 rekiyoung9271@viva100.com

2024-02-27 14:06 이기영 기자

[데스크 칼럼] 임종룡 회장이 그 결심을 한다면…

명재곤 금융증권부장“저와 저희 가족은 일상이 무너졌습니다. 일상이 무너지는 게 어떤 건지 짐작이 되시나요. 우선 자책을 합니다. 내가 왜 그랬을까. 내가 왜 사인을 했을까. 내가 왜 우리은행을 갔을까.” 수면제 없이는 잠들기 힘들다는 A씨(여 50대 서울거주)가 지난 15일 윤석열 대통령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에게 편지형태로 보낸 호소문의 한 대목이다.지난 2021년4월 A씨는 우리은행 모 지점에서 자신과 가족의 명의로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홍콩ELS)상품에 총 2억5500만원어치 가입했다. A씨는 당시 우리은행측이 상품의 위험성 고지나 모의실험결과 등은 설명하지 않고 불완전판매를 자행했다고 주장한다. 오는 5월에 만기가 돌아오는데 현 홍콩증시 상황이라면 원금의 50% 이상 손실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의 연봉이 2억4871만원이다.A씨는 최근 두 번째 절망감에 빠졌다고 토로한다. 역시 우리은행 때문이다. 금감원이 홍콩ELS사태의 배상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은행 5곳, 증권사 6곳을 대상으로 불완전판매 여부 등 현장검사를 진행중인데 ‘우리은행’이 제외됐다는 얘기를 듣고 분통을 터트렸다. “은행의 규모에 상관없이, 판매금액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작은 의심이라도 있다면 당연히 조사해야 한다”는 것이다.금감원은 검사인력이 적어서 상대적으로 홍콩ELS 판매액이 적은 우리은행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피해자 갈라치기’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홍콩ELS 가입자는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약 15만명. 가입자 모두의 목소리를 듣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금융위원장 출신이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우리은행을 검사대상에서 뺀 것에 세간의 오해와 의혹은 피어 오른다.윤 대통령은 올 신년사에서 ‘민생’을 강조했다. “모든 국정의 중심은 국민”이라며 “문제 해결을 위해 행동하는 정부가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금감원은 설마 홍콩ELS 가입금액이 적다고 해서 국민이 아니고 피해자가 아니라는 차별적 시각을 지니고 있는 건 아닌지, 우리은행의 홍콩ELS 판매금액이 적다고 해서 불완전 판매요소가 희박하다고 단정하는 게 아닌지 염려스럽다.한 금융 전문가는 판매금액이 많은 은행대신에 오히려 그 반대의 은행을 먼저 집중 검사하는 게 문제점과 해결책을 찾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고 꼬집기까지 한다. 형평성과 공정성, 효율성 차원에서 어떤 방식과 기준으로 행정력을 가동하는 게 나은지 금감원은 되돌아봐야 한다.현장검사도 없이 우리은행의 홍콩ELS 가입자들 배상기준이 타 은행 현장검사 기준을 바탕으로 확정된다면 A씨는 세 번째의 절망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국민 입장에서는 결국은 ‘나의 생활이 어떻게 나아졌는가’가 기본이 되기에 국민이 체감할 성과 도출에 더 뛰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 또한 윤 대통령의 말이다. 올해 은행권 순이익 1위를 목표로 삼은 우리은행이 차라리 세간의 비판과 억측을 해소하기 위해 현장검사를 자청한다면 A씨는 세 번째 절망만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은행측은 고위험 상품의 리스크를 알기에 홍콩ELS 판매고가 적었다고 강조한다. 임종룡 회장이 결심하면 역설적으로 우리은행의 리스크 관리 우수성이 더 빛날 수도 있다.명재곤 금융증권부장 daysunmoon419@viva100.com다음은 A씨 호소문 전문.윤석열 대통령님, 이복현 금감원장님께저는 2021년 우리은행 **지점에서 홍콩지수가 포함된 ELS에 가입하였고 현재 피해자가 되었습니다. 우리은행으로 인해 겪고 있는 피해자의 어려움을 알리고 싶던 차에 우리은행은 현장 조사를 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또다시 절망하게 되었구요.우리은행이 적법한 절차를 거쳐 정확한 설명을 이행한 후 고객 스스로 선택을 하게 했다면 그 결과는 선택한 고객 몫이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은행은 이런 적법한 절차와 상품소개, 위험성고지, 모의실험결과 등은 설명하지 않고 상품을 팔았습니다. 제게 상품을 팔 때, 적법한 절차를 지키지 않았고 필수설명은 단 한 개도 듣지 못했습니다. 이런 은행이 현장조사에서 빠진다는 게 말이 된다고 보십니까?이번 사태에서 우리은행은 판매금액이 다른 은행에 비해 적다는 이유로 불완전 판매요인이 있음에도 전혀 상관없는 듯 한 제스처를 취하고 있습니다. 저 같은 피해자들이 있는데 말입니다. 우리은행은 2019년 DLF(파생결합펀드) 사태에서 가장 많이 팔았다고 들었습니다. 그랬던 우리은행이 작게 팔았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은행보다 도덕적인 은행으로 포장되고 있는 상황이 이해가 안 됩니다.은행의 규모에 관계없이, 판매 금액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작은 의심이라도 있다면 당연히 조사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은행은 당연히 조사에 응해야 하구요. 정말 우리은행이 제대로 판매를 했다면 조사를 안 받을 이유가 있을까요? 조사후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팔았다는 게 드러나면 처벌을 받아야 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구요.이번 사태로 저와 저희 가족은 일상이 무너졌습니다. 일상이 무너지는 게 어떤 건지 짐작이 되시나요? 우선 자책을 합니다. 내가 왜 그랬을까, 내가 왜 싸인을 했을까, 내가 왜 우리 은행을 갔을까 등등등 이루 말 할 수 없는 후회와 자책으로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또 근 일 년 넘는 시간동안 제대로 푹 자본적이 없습니다. 수면제 없이는 잠을 이룰 수 없게 되었구요. 그리고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된 점이 가장 힘듭니다. 공공기관인 은행에서 우리 뒤통수를 쳤는데 제가 누구를, 어디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건강을 자신하면서 살았는데 몸도 마음도 피폐해진 탓에 얼마 전 쓰러져서 119타고 응급실도 다녀왔습니다.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진 거지요.제가 바라는 건 한가지입니다. 바로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요즘처럼 일상의 행복을 그리워 한 적이 없는 거 같습니다. 작은 일에 감사하고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평화롭게 지내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아울러 잘못을 저지른 우리은행이 강력한 제재와 처벌받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이 글을 읽어주실 윤석열 대통령님과 이복현 금감원장님께 간곡하고 피 토하는 심정으로 말씀드립니다. 제발 아무 힘없는 국민의 말에도 귀 기울여 들어주세요. 우리은행은 저보다 강력한 힘을 갖고 있어 저 혼자로는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두 분께서 저의 입장을 헤아려 주시고 살펴주셔야 이 사태를 제대로 해결해 나갈 수 있습니다. 저는 선하게 살아온 힘없는 국민입니다. 억울한 국민이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힘없는 자의 편이 돼 주시길 바랍니다.2024년 2월 15일우리은행 피해자 드림

2024-02-20 08:56 명재곤 기자

[데스크 칼럼] 민생의 봄, 멀었다

송남석 산업IT국장입춘(立春)과 구정(舊正)을 지나 꽃들의 향연이 시작되는 봄이 왔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봄의 소리 왈츠’, 뇌리(腦裏) 속엔 경쾌한 선율이 흐르고, 따스한 햇살 아래에 여울목 따라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 명랑한 산새들의 지저귐, 놀이터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깔깔대는 웃음소리, 산업현장의 ‘쿵 쾅’ 기계 돌아가는 소리까지…. 3월을 준비하는 2월은 역동과 생명의 기운을 품고 새 기운을 잉태하는 새로운 절기 맞이하는 달이다.하지만, 현실은 마냥 생명의 봄기운을 만끽하게 가만 놔두지 않는다. 설날 연휴 막바지부터 서울 수도권은 물론 전국 대부분이 온통 뿌옇게 퇴색했다. 잿빛 하늘 아래 연일 휴대폰을 울려대는 미세먼지 경보는 나들이객들의 설렘마저 앗아갔고, 그 자리는 초미세먼지용 마스크 몫일 듯 싶다. 봄의 환희와 역동을 가로막는 현실은 도처에 깔려 있다. 우리 사회의 미래 역동성을 잠식하듯 후행 하는 역사관과 답 없는 진영논리, 이익집단 간 끝없는 반목과 충돌, 저출산과 지역소멸, 파탄 난 경제와 피 말리는 취업전쟁 등등…. 온갖 악재 투성이다.그러는 사이, 민생경제는 그야말로 최악이다. 서민들은 보험과 적금까지 깨가며 근근이 생활하고 있는데 정부와 정치권은 해묵은 이념과 이권싸움에 혈안이다. 특히 올해는 선거까지 코앞에 있다 보니 정도가 훨씬 더 심각하다. 말라 비틀어져가는 경제나 비어가는 나라 곳간 쯤은 아랑곳하지 않는 포퓰리즘만이 난무한다. 아무리 현실이 힘들고 팍팍해도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란 희망이 있다면 그나마 견뎌낼 수 있겠지만, 그 조차 기대하기 어렵다. 국민들에게 미래에 대한 올바른 방향과 길을 제시해주는 것이 정치의 본질 아닌가.우리 앞을 가로 막는 난재들만 따져보자. 당장 의사들의 집단행동과 3월 춘투(春鬪)’, 4월 총선(總選), 그리고 공공요금 인상과 4대 연금개혁이 켜켜히 쌓여있다. 한 마디로 ‘첩첩산중’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정부와 국회는 민생을 도외시한 채 위정자들의 리그만을 살찌우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갈등 조정이나 타협보다는, 시민들을 유튜브나 광장으로 불러 모아 증오의 함성만 키워가고 있을 뿐이다. 정치권이 소화(消火)보다는 방화(放火), 편 가르기에 훨씬 더 익숙하니 어디 국민들이 불안해서 살 수 있겠나.‘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당나라 시인 동방규가 시 ‘소군원(昭君怨)’에서 읊었다는 심정이 이러했을까. 1천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계절은 어김없이 봄을 내어 주지만, 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봄은 그 때나 지금이나 매 한가지인 모양이다. 거꾸로 가는 경제와 팍팍해지는 민생에 마뜩한 퇴로는 없어 보인다. 평화에 대한 갈망마저 꺾이면서 마음은 되레 꽁꽁 얼어붙고 있다. 쾌활한 서울의 봄, 따뜻한 민생의 봄은 언제쯤 찾아올까.원래 고대 로마력에서는 3월(March)이 1년의 시작을 알리는 첫 달이었다고 한다. 전쟁의 신, 마르스(Mars)의 이름에서 유래됐지만 로마의 정치가이자 장군인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달력을 개정할 때 ‘January’(1월)를 첫 달로 하고 ‘February’(2월)를 두 번째 달로 지정하면서 March(3월)가 세 번째 달이 됐다고도 한다. 그래서일까. 3월의 시샘은 항상 이렇게 거칠기만하다. 올해도 3월의 봄은 저 만치 비켜서 있는 듯 하다. 겨울 코트나 패딩 대신 서둘러 봄옷을 꺼내 입고 싶다.송남석 산업IT국장 songnim@viva100.com

2024-02-14 06:27 송남석 기자

[데스크 칼럼] 고2 수학점수를 기억하시나요?

허미선 문화부장“고2 2학기 수학점수가 기억나시는 분 손 들어주세요.”800여명 관객 중 단 한명도 손을 들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중고등학교 때 공부 좀 해보겠다고 얼음물로 세수도 해보고 커피도 들이켜고 했던 기억이 있으신 분들 손 들어보세요.”이전 질문과는 달리 꽤 많은 이들이 손을 들었다. 가히 대한민국 멘탈 주치의라 할만하다. 지난 3일 ‘금쪽상담소’ ‘결혼지옥’ 등의 오은영 박사가 효성과 손잡은 8번째 컬처시리즈 ‘오은영의 토크콘서트 동행’에서 던진 질문에 대한 설명처럼 “우리는 결과 보다 과정을 기억한다.”“우리가 학창시절 공부하는 이유는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기 위함”이며 “우리가 더 오래 간직하는 건 결과 보다는 열심히 했던 기억”이고 “그 기억으로 지금의 삶을 열심히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어쩌면 모두의 학창시절은 어른들의 보호 아래 있을 수밖에 없는 ‘지금’에 충실하기 위해 애쓰는 시기였을지도 모른다. 그 시절 최선을 다해야 했던 ‘배움’으로 지금을 살아가는 힘을 얻는지도 모른다.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지금은 내일을 살아갈 힘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지금’이다.한국 더 나아가 아시아인 성악가로는 최초이자 유일하게 클래식 명가 도이체 그라모폰(Deuts che Grammophon, DG)에서 음반을 발매한 소프라노 박혜상은 1, 2세기에 살았던 세이킬로스가 죽은 아내 에우르테르페를 추모하며 적어 내려간 비문에서 영감 받아 두 번째 정규앨범 ‘숨’(Breathe)을 발매했다.이 앨범을 위해 2년 반이라는 준비의 시간을 가진 그는 산티아고 순례길에 올랐고 자각몽을 통해 물속에서 숨을 참으며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 살아있음을 절실하게 깨닫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그 경험 그리고 그 경험에서 얻는 평안함과 치유를 음악 애호가들에게 고스란히 전하기 위해 뮤직비디오와 앨범커버를 위한 수중촬영을 결정했다. 이를 위해 태국에서 프리다이빙 코스를 수료했고 공연을 위해 독일에 머물면서도 틈나는 대로 프리다이빙 코스를 밟으며 수중촬영을 했다. 뭘 이렇게까지 열심인가 싶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에 온전히 발 딛고 최선을 다하는 삶의 태도는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진다.지금을 살아가면서 대부분은 ‘행복 중압감’을 앓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행복해야만, 모든 것이 좋아야만, 많이 쥐어야만, 성공해야만, 안정적이어야만 잘 살아낼 수 있다고 믿고 있지만 인간의 회복력도, 삶의 의지도 의외로 강력하다. ‘지금’ 잘 살기 위해 매일 최선을 다하고 도전하고 실천하는 삶의 ‘공부’는 반드시 성공하지 않더라도, 행복하지 않더라도, 완벽하지 않더라도 중요하다. 현존하는 고대 그리스 악보 중 곡 전체가 온전히 남아있는 유일한 것이기도 한 ‘세이킬로스의 비문’은 그렇게 지금을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2024년을 맞으며 계획을 세웠지만 실천하지 못하고 음력설에 다시 새로운 마음을 다잡는 이들 모두의 ‘공부’에 대한 응원일지도 모른다. “살아있는 동안, 빛나라. 결코 그대 슬퍼하지 말라. 인생은 찰나와도 같으며. 시간은 마지막을 청할 테니.”허미선 문화부장

2024-02-06 13:46 허미선 기자

[데스크 칼럼] 선거 때문에 미룬 정책들, 총선이후엔 해법있나

권순철 정치경제부장윤석열 정부가 약속한 주요 국정과제 추진이 4·10 총선 이후로 미뤄지고 있다.국민 각계 각층에서 이해관계가 다르고 민감한 정책들이기 때문에 총선 전에 정책을 결정했다가는 거센 반발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총선 국면에서 민감한 이슈들을 피해보겠다는 전략으로, 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도 마찬가지다.대표적인 것이 노동·국민연금·교육개혁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월1일 신년사에서 “노동·연금·교육 ‘3대 개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며 강력한 추진 의지를 밝혔다.하지만 이들 정책들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구체적인 결정이 미뤄지기 시작했다. 우선 정부는 노동개혁과 관련해 ‘주 69시간 근로’ 논란을 일으켰던 근로시간 개편 방안을 아직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1월 근로시간 제도개편 보완 방향으로 주 52시간제 틀을 유지하되, 우선 적용업종·직종, 연장근로 관리단위 및 상한 등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노동부는 노사정 대화를 거쳐 올 상반기 안으로 구체적인 방안을 결정하겠다고 했지만 언제 결론이 날지는 불분명하다. 노동계의 한 축인 한국노총도 경사노위 대화에는 복귀하겠다고 했지만 현행 ‘주 52시간’ 근로시간 개편에는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됐던 국민연금 개혁안 결정도 하세월이다.담당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0월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을 발표했지만 핵심인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에 대한 구체적인 수치는 제시하지 않았다. 복지부의 설명은 연금개혁은 충분한 국민의견 수렴을 통한 사회적 합의가 중요한데, 그동안 연금개혁은 정부가 보험료율이나 소득대체율 수준을 먼저 제시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을 반복했으나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사실상 정부는 국회가 국민연금 개혁안을 결정하도록 지원만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총선을 앞두고 국회 연금개혁특위가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국회 연금개혁특위 활동시한은 21대 국회 마지막 날이 오는 5월 29일이지만,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로 22대 국회가 출범해야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그나마 교육개혁은 위의 개혁들 보다 낫다. 교육발전특구 설립을 통한 인재양성 및 지역경제 활성화, 영유아 보육과 교육을 함께 실현할 유보통합 통합 등 개혁의 밑그림은 제시됐다. 하지만 교육 관련 정책들도 각 이해관계자들이 이해가 얽혀 있어, 선거국면에서 강력한 추진이 쉽지 않다.이렇게 총선 6개월 전부터 정부의 주요 정책들은 총선을 의식해 결정이 보류되고, 총선 이후를 기약하게 됐다. 하지만 총선이 끝나고 이들 정책 결정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기대는 그야말로 ‘기대’에 그칠 수도 있다. 오는 4월10일 총선이 끝나더라도 22대 국회가 바로 개원되는 것은 아니다. 21대 국회의원 임기는 5월29일이다. 빨라야 새 국회 개원은 5월30일이다. 하지만 역대 국회 개원 상황을 보면 임기 시작 시점보다 훨씬 늦어질 가능성이 크다. 국회 개원 전에 여야 합의로 국회의장 및 부의장 선출, 상임위원장 배분 등 난제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여야 간의 주도권을 놓고 싸움을 하다 보면 7월 또는 늦으면 정기 국회를 코 앞에 둔 8월에야 원구성이 마무리될 수 있다.이후 곧바로 9월부터 정기국회가 시작되고, 10월 국정감사가 끝난 이후에나 국회 차원의 제대로 된 논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총선 전후해서 1년여 동안 시간만 낭비하고 주요 정책들이 표류할 수 도 있다.권순철 정치경제부장 ikee@viva100.com

2024-01-30 13:51 권순철 기자

[데스크 칼럼] 면세점·영화관 침체의 교훈

이형구 생활경제부장지난해 코로나19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이 선언된 후 거의 1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났지만 좀처럼 실적이 회복되지 않는 업종들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면세점과 영화관이다. 한국면세점협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국내 면세점 매출은 12조4512억원으로 집계됐다. 12월 매출 예상분까지 고려하더라도 지난해 매출액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여행 수요가 완전히 끊겼던 2020년 수준에 못 미친다. 국내 면세점 매출은 2009년 3조8000억원에서 계속 증가해 2016년 10조원을 돌파했고, 코로나 직전인 2019년에는 24조8586억원까지 성장했다.그러나 코로나로 하늘길이 끊기면서 2020년 15조원대로 급감했고 2021년과 2022년에는 각각 17조8000억원 수준에 머물렀다.지난해에는 본격적인 ‘엔데믹’으로 국내외 관광객이 회복 추세로 접어들었는데도 면세점 매출은 오히려 코로나 기간보다 못한 셈이다.업계는 실적 부진의 원인을 보따리상 감소와 중국인 단체관광객 유입 지연에서 찾고 있다.중국 내 경기 부진으로 구매력이 줄어든 데다 여행 트렌드가 단체관광에서 개별 관광 중심으로 바뀐 탓이다. 코로나 기간 4분의 1토막이 난 면세점 방문객 수는 절반 가까이 회복됐으나 매출은 코로나 때보다 못한 상황이다.영화관도 상황이 비슷하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영화관 전체 매출액 732억원으로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팬데믹 이전인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간 11월 전체 매출액 평균(1347억원)의 54.3% 수준에 그쳤다.영화계에서는 이처럼 영화관 부진의 원인으로 가격인상과 OTT의 성장을 꼽았다.코로나19 팬데믹 기간동안 영화관에 가는 대신 OTT 플랫폼으로 영화를 소비했던 관객들이 극장으로 되돌아 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되살아나지 않는 면세점의 실적이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과 이후의 세상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는 기간에도 우리는 이 역병이 멈추면 ‘일상’으로 되돌아 갈 수 있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역병이 잠잠해진 이후에도 우리가 이전에 알고 있던 ‘일상’은 돌아오지 않았다.과거 퇴근 후 직장 동료들끼리 모여 왁자지껄한 술자리를 가지며 하루의 스트레스를 날리던 풍경은 사라졌다. 이제 사람들은 거의 집에서 취미를 즐긴다. 홈카페, 홈트레이닝 등이 유행하고, 주말에 가족 연인과 함께 가던 영화관 나들이는 ‘넷플릭스’가 대체했다. 가족과 친지들이 함께 모여 떠나던 여행도 이제 혼자 혹은 둘이서 오롯이 떠난다. 면세점과 영화관의 침체는 바뀐 일상에서 어쩌면 필연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떠오르는 직업도 바뀌고 있다. 비대면 접촉의 증가에 따라 배달 라이더들은 이제 우리가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직업군이 된 반면, 과거 아파트 단지에서 흔히 만날 수 있었던 가정방문 학습지 교사는 더 이상 보기 힘들다.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세상은 우리에게 새로운 일상의 모습에 적응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그리고 이 속에서 살아남고 나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태도와 마음가짐을 리셋할 필요가 있다.이형구 생활경제부장 scaler@viva100.com

2024-01-23 14:09 이형구 기자

[데스크 칼럼] 모아타운 성공의 열쇠

이기영 건설부동산부장윤석열 정부가 신도시 신규지정보다 정비사업 규제완화를 통해 도심 아파트 공급을 확대하려는 것에 대해 전적으로 환영한다.지난 10일 정부가 내놓은 재개발·재건축 규제완화는 대못을 뽑는 차원으로 효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안전진단 규제철폐는 많은 정비사업 대상지의 추진 기폭제가 될 것이 분명하다.그러나 정비사업지구에서 가장 큰 장애는 안전진단보다 조합원들의 분담금과 직접 관련이 있는 사업성이다. 여러 아파트 공사현장이 공사비 갈등으로 공사중단 사태를 겪는 이유는 바로 사업성 문제다.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아파트 현장에 이어 현재 은평구 대저1구역과 송파구 잠실 진주아파트에서 같은 일이 일어났고, 많은 단지들이 사업성 문제로 추진이 중단된 상태다.지금 서울시는 오세훈표 주택정책이라고 하는 신속통합기획과 모아타운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 역시 사업성 측면의 허들에 막혀있다. 특히 재개발 여건이 더 떨어지는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모아타운의 경우 사업추진이 지지부진해, 오 시장 임기가 끝날 때까지 단 하나의 완성품도 나오기 어려운 상황이다.모아타운은 신·구 건축물이 혼재돼있어서 재개발이 어려운 10만㎡ 이내의 저층주거지 여러개를 하나의 그룹으로 묶어 대단지로 개발하는 사업이다. 모아타운으로 지정될 경우 용적률과 층고를 완화해주고 추진기간도 훨씬 단축된다.그러나 이러한 혜택에도 불구하고 모아타운 추진을 둘러싼 장애요소가 너무 많아 이렇다 할 실적을 보이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난해 7월에는 서울 핵심 모아타운 추진지역인 장위4동이 주민 설문조사를 통해 사업 추진을 중도 철회했다.현재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모아타운은 서울 전역에 80여개에 달하고, 2026년까지 총 100개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선정 이후에도 진행이 더디고 중도 포기하는 단지도 나타나고 있다.신통기획에 비해 모아타운의 사업성이 떨어져 조합원들의 동의를 받는 데 어려움이 큰 것이 저조한 원인이다.우선 모아타운에도 신통기획의 경우처럼 최고 용적률 700%에 35층 이상의 층고 혜택을 줘야만 사업성이 나와 조합원들이 찬성을 하고 사업 진행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또하나의 걸림돌은 조합설립을 위한 조합원 동의율 요건이 지나치다는 것이다. 모아타운의 조합설립을 위한 조합원 동의율은 80% 이상이다. 이는 일반 재개발 동의율 75%보다도 더 높다. 지난해 8월 서울시는 신통기획에서 재개발 정비계획 입안동의율을 현재 67%에서 50%로 낮추는 도시·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을 변경하기로 방침을 정했다.오히려 추진환경이 열악한 모아타운에 대한 조합원 동의율을 50%로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는 빠른 시간 내에 성과를 내기위한 필수 요건이다.이에 더해 모아타운 조합은 여러개의 모아주택 조합들이 모여있는 것이어서. 이해관계가 다른 조합의 연합이라고 할 수 있다. 조합들 간의 의견 조율 역시 서울시나 구청이 나서서 해결할 수 있는 방안 마련도 필요하다.사업성 확보와 요건의 합리적 기준이 모아타운 성공의 열쇠다.이기영 건설부동산부장 rekiyoung9271@viva100.com

2024-01-16 14:21 이기영 기자

[데스크 칼럼] '금투세 폐지' 두가지 의문

명재곤 금융증권부장한국예탁결제원의 ‘2022년12월 결산 상장법인 주식소유자 현황’에 따르면 개인 주식소유자는 중복치를 제외하면 1424만명. 성별로는 남성이 743만명, 여성이 681만명. 연령별로는 40대가 전체의 22.9%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50대(21.2%), 30대(19.9%), 20대(12.7%), 60대(12.4%) 차례로 집계됐다.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론이 1400만여 개미 표심(票心)을 얻기 위한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온)’성 정책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각에서 일고 있다. 금투세 폐지는 맞춤형 부자감세인가, 총선을 앞둔 선거용 카드인가, 아니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는 증시 활성화 대책인가. 여기에 불통과 혐오가 난무하는 현 정국에서 과연 금투세 폐지안이 국회 의결정족수를 넘어설 수 있을 지 태생적 의문을 낳는다.윤 대통령은 연초 “부자 감세 논란을 넘어 국민과 투자자, 우리 증시의 장기적인 상생을 위해 금투세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어디에서도 애드벌룬적 언급이 없었기에 말 그대로 ‘깜놀’이고 ‘갑툭튀’이라는 당혹감이 일고, 그런데 누구는 기대감을 갖는가 보다.금투세 골자는 주식과 채권, 펀드, 파생상품 등 금융투자와 관련해 국내에서 연간 5000만원 이상 수익을 얻으면 20%(지방세 비포함) 세금을 내는 것. 단순하게 주식투자자가 연 수익률 10%를 실현시 5000만원 수익을 내려면 투자자산이 5억원이 돼야 한다. 금융투자상품을 최소 5억원이상 지닌 이를 개미투자자로 분류할 수 있다면 윤 정부의 그 폐지정책은 4월 총선에서 소기의 표심을 받을 게다.‘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원칙아래 지난 2020년 말 여야 합의로 금투세 신설 소득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정부는 이때 금투세 과세대상을 15만여 명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윤 정부가 들어서면서 감세가 증시활성화책이라는 등식이 여론을 타면서 국회는 지난해 ‘밀당을 갖고’ 시행 시기를 기존 2023년에서 2025년으로 늦췄고, 그런데 지난 2일 윤 대통령은 금투세 자체를 폐지하겠다고 확 발표했다. 폐지시 3년간 약 4조원의 세금이 사라진다고 한다.금투세 폐지는 국회 의결을 거쳐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야당의 협조 및 동의가 절대 필요하다. 행정수반이 국회를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반드시 타파해야 할 ‘이념과 이권의 패거리 카르텔’의 대상으로 야당의 ‘86정치권’을 사실상 지목한 대통령 신년사를 감안할 때 이 게 과연 실현가능한 정책인가. 정권 출범후 1년6개월여 지났는데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의 소통이 없는 게 오늘 대한민국 모습이다.금투세 폐지를 위해 윤석열 정권이 획기적인 대야(對野)소통과 타협의 무대를 마련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희망고문’일 뿐이다. 용산이 차라리 총선 후에 증권거래세 축소방안 등과 함께 관련 세법을 종합적으로 발표했으면 진정성측면에서 지지도가 1점이라도 오를 수 있을텐데 말이다.명재곤 금융증권부장 daysunmoon419@viva100.com

2024-01-09 10:28 명재곤 기자

[데스크 칼럼] 부질없는 경제 예측과 고장난 시계

송남석 산업IT국장불확실성이 커질수록 미래를 예측하고자 하는 욕망은 더 커지나보다. 새해, 쏟아지는 뉴스나 유튜브나 신간들은 이런 욕구에 불이라도 지를 듯 러시다. 이른바 ‘천기누설(天機漏洩)’성 수요는 올해도 각종 예측과 분석, 전망들을 유인해 냈다. 하지만 이런 예측들은 대부분 무의미할 확률이 높다. 누군가 현물이나 가치의 폭락을 설파한다면, 분명 누군가는 여기에 대비하기 마련이다. 아무리 뛰어난 예측이라도 시점에 따라 결과 치는 달라는 법이다. 경제를 생물이라고 치는 이유다.흔히 요즘을 ‘뉴노멀(New Normal)을 넘는 ‘뉴 애브노멀(new abnormal)’ 시대 라고 한다. ‘신 혼돈’ 또는 ‘새로운 비정상’쯤 으로 해석되는 시사금융용어다. 시장의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극단으로 치닫는 이런 시기, 어떤 이는 주식을 사라고, 또 어떤 이는 채권을 사라고, 혹은 아파트를 사라고 부추긴다. 물론, 예측이 많으면 분명 ‘신기(神氣)’도 나온다. 고장 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정확히 맞는 것 처럼….대표적 사례로 1984년,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의 실험이 꼽힌다. 매체는 다국적기업 회장과 전직 재무장관, 옥스퍼드대 경제학과 대학원생, 런던 환경미화원 각 4명씩 총 16명에게 향후 경제성장률과 인플레율, 환율, 유가 등을 예측해달라고 했다. 얼마 후 적중률의 평균값은 환경미화원과 회장 그룹이 1위였다. 반면, 최고 정보를 갖고 있는 전문가들인 전직 재무장관 그룹이 꼴찌였다고 한다.무의미하다는 얘기다. 전문가란 이름으로 밥 벌어먹고 사는 이들의 혜안(慧眼)이란 게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앵글(angle)을 좀 더 망원(望遠)으로 놓고 보면 더 그렇다. 미국의 생물학자이자 인구학자인 폴 에를리히(1968년)가 펴낸 ‘인구폭탄’. 그는 인구 폭발로 곧 수억 명이 굶어 죽을 것이라고 결론 냈다. 또 전 세계 학계와 정·재계 저명인사들로 구성된 미래예측 모임 ‘로마클럽’이 1972년 발표한 ‘성장의 한계(The Limits to Growth)’라는 보고서는 2000년대 석유 고갈을 단언 했다. 지금쯤 인류는 다른 연료를 쓰고 있어야 옳다.20세기 굵직굵직한 사건들만 놓고 보자. 1920년대 미국 대공황이나 1970년대 석유파동, 1990년대와 2008년의 금융위기를 내다 본 전문가는 없었다. 미국에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가 혼쭐난 폴 크루먼.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뉴욕시립대 교수인 그는 “코로나19 이후라는 새로운 세계에서 (과거에 기반한)추론은 안전한 베팅이 아니었다”면서 “나는 틀렸다”고 고백하지 않았던가.지난해부터 정부와 한국은행, 민간 경제전문기관을 비롯한 각종 단체는 습관적으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내놓고 있다. 대략 1.8%에서 2.2% 사이다. LG경제연구원(1.8%)이 가장 낮게, 한국은행(2.1%)·한국개발연구원(KDI 2.2%)이 높게 봤다. 정부는 통상 이번 주 중 숟가락을 얹게 될거다. 하지만 올해는 전 세계가 선거의 해이고,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전쟁과 공급망 불안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이다. 요동칠 소재들도 넘쳐난다. 불안정성이 고조되는 시기, 우리는 그 어느 해보다 더 부질없는 부적(符籍)을 탐할지 모른다.그렇다고 해서 움츠러들 필요는 없다. 예측은 예측일 뿐, 미래는 우리의 선택과 의지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스 신화에 유명한 ‘피그말리온 효과’도 있지 않은가. 무작정 걱정만하기보다 도전정신이 더 필요한 때다. 희망을 품고 똘똘 뭉친다면 기회가 되지 말란 법도 없다. 영웅은 난세에 나고, 국제질서가 바뀌는 격변기 일수록 기회의 창은 넓어지기 마련이다.송남석 산업IT국장 songnim@viva100.com

2024-01-03 06:40 송남석 기자

[데스크 칼럼] 지원제도의 실효성

허미선 문화부장“한국 미술계, 아티스트 지원제도는 너무 잘돼 있고 후해요.”유럽에서 젊은 작가들을 발굴해 그들의 실험을 지원하고 전시까지를 기획하는 공간의 대표이기도 한 큐레이터는 부러움을 전하면서도 “하지만 그걸로 끝나는 단발성”이라고 짚었다. 대부분의 지원제도가 그렇다. 작가들이 지속적으로 예술 활동을 펼칠 수 있는 지원이 아닌 하룻밤 꿈처럼 소비되는 단발성인 경우들이 대부분이다. 더불어 견고한 학연, 혈연 등이 작용하는 인맥지원도 어려움이다. 특정한 누군가의 자식, 제자 등을 지원 대상으로 고려해달라거나 반대로 누구는 안된다 등 사공들이 적지 않다. 다양한 인연으로 엮인 이들의 ‘민원’이 빗발치는 통에 오죽하면 “이들을 달래고 설득할 인사가 필요한 지경”이다.연극, 뮤지컬, 무용 등 공연예술의 지원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연출, 작가, 작곡가, 제작사 등에 따른 ‘사단’이 암암리에 존재한다. 제작 시스템이나 시장은 이미 선진화됐지만 ‘가난’이 훈장과도 같은 예술지향주의, 의리 등을 앞세운 극단 마인드는 여전하다. 이 간극은 ‘상업연극’이라는 기묘한 용어를 만들어냈고 고질병과도 같은 임금체불 등의 사태를 자아내곤 한다. 차별성을 찾아보기 힘든, 비슷비슷한 지원제도의 산재, 이해관계에 따른 지원 등은 공연예술 분야에서도 풀어야할 숙제다. 정확히 가려운 곳이 어디인지를 가늠하는 데이터 및 조사·연구·분석도 여전히 아쉽다. 공연예술 관련자들이 오래도록 지적해온 ‘작가 부족’ 현상은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전통적인 기승전결을 갖춘 스토리텔링 뿐 아니라 전혀 달라진 무대 예술에 걸맞는 작가 발굴 및 작법 개발 등의 지원이 필요한 때다. 연간 공연예술 제작편수는 여전히 적지 않다. 이들 중 고르고 골라 몇몇 작품을 지원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한번의 지원으로 지속가능한 작품으로 자리매김하기란 쉽지 않다. 결국 지속가능성의 문제다. 실효성있는 지원의 바탕은 제도화다. 매년 수편의 공연예술 분야를 지원하는 2023 창작산실 홍보대사인 차지연은 막 개발되기 시작한 작품에 대한 배우들의 관심을 호소했다. 그의 말처럼 배우들의 관심과 참여의지는 매우 중요하다. 창작 초기 단계에서 배우들의 기여도는 결코 적지 않기 때문이다. 차지연을 비롯해 전미도, ‘레미제라블’ ‘오페라의 유령’ 등 남자 배우들의 무대 위 워너비 배역은 물론 드라마에서까지 맹활약 중인 최재림 등 창작산실 선정작의 초기개발단계부터 함께 한 작품들은 꽤 오래도록 공연되고 있다. 이에 브로드웨이는 창작 초연 배우들의 기여도를 존중해 그들의 이름까지 대본에 표기하는 사례들도 적지 않다. 창작개발 초기 단계의 작품에 창작진들이 원하는 배우를 캐스팅할 수 있는 지원제도도 갖추고 있다. 현장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에 기여한 이들을 어떻게 존중할 것인지 등까지 고려하는 세심하고도 지속가능한, 효율성을 갖춘 지원제도의 구축, 개선이 필요한 때다.허미선 문화부장 hurlkie@viva100.com

2023-12-26 14:17 허미선 기자

[데스크 칼럼] 영화 ‘서울의 봄’서 공정과 정의를 생각하다

송남석 산업IT국장지난 칼럼에서 영화 ‘서울의 봄’이 대박 날수록 불편한 이유를 정리해봤다. 역사를 다룬 영화가 진정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 맞는 진실규명이 필수다. 그러나 ‘서울의 봄’은 대중적 흥행에도 불구하고 진실규명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란 과제를 남겼다. 예상대로 ‘서울의 봄’은 24일 1천만명 관람객을 돌파했다. 이제는 ‘불편하다’는 생각을 넘어 우리 사회는 ‘과연 공정했는가’ 또는 ‘정말로 정의로왔는가’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먼저 전두환은 ‘서울의 봄’의 역사적 배경인 1979년 12·12 군사반란과 이듬해 5·18 광주민주화 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했다. 이어 이른바 체육관 선거를 통해 1980년 8월27일 제11대 대통령에 당선됐고, 이어 8차 개헌을 거친 1981년 2월25일 제12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대통령을 두 번이나 역임한 전두환이 내건 기치는 정의사회 구현이었다. 정의라는 단어가 이렇게까지 희화화될 수 있는지 연구대상이다.노태우는 친구인 전두환이 일으킨 12·12 군사반란이 성공할 수 있도록 자신이 맡고 있는 최전방 부대인 9보병사단 병력을 이동시켰다. 9보병사단 병력의 이동이 없었다면 전두환의 12·12 군사반란은 성공할 수 없었다. 만약 북한군이 9보병사단의 병력이동을 틈타 도발했다면 대한민국 역사는 뒤바뀌었을 것이다. 노태우는 9보병사단 병력을 이동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정무장관, 체육부장관, 내무부장관을 거쳐 제12대 국회의원과 제13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과연 정의를 얘기할 수 있을까.“광주는 총기를 들고 일어난 하나의 폭동이야”(2003년 2월 전두환), “민주주의의 아버지가 누구인가, 저는 우리 남편이라고 생각한다”(2019년 1월 전두환 부인 이순자), “문화혁명 때 수천만명이 희생당하고, 엄청난 걸로 말하자면 우리 광주사태는 아무것도 아니야”(1995년 10월 노태우), “아버지가 만든 민주화와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이 주인의식을 갖고 참여하는 것이었다”(2016년 4월 노태우 장녀 노소영) 등의 망언이 떠오른다.그렇다면 공정했는가.12·12 군사반란 당시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호위하던 김오랑 중령은 반란군의 총탄을 맞고 숨졌고, 그 충격으로 실명한 김 중령의 부인은 1991년 실족사했다. 반란군을 진압하던 장태완 수경사령관의 아들은 1982년 할아버지 산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정병주 사령관은 1987년 신군부 만행을 증언한 다음 해에 양주시 송추계곡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뒤늦었지만 반란군에 맞서 육군본부 B2벙커를 지키다 전사한 정선엽 병장과 김오랑 중령은 지난해 12월 전사 재심사에서야 ‘순직자’에서 ‘전사자’로 인정됐다. 무려 43년 만이다.이런 가운데 군사반란 당사자와 자녀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전두환은 통장에 29만원 밖에 없다면서도 측근들과 함께 여행과 골프를 즐겨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전두환 아들 전재국씨는 2019년에만 부동산 시행 등으로 수백억원의 차익을 거뒀고, 해외에서 1조원대 부동산 사업을 벌일 만큼 재력을 자랑하고 있다. 전두환의 손자 전우원씨는 지난 3월 “아버지(전재용)와 새어머니(박상아)가 출처 모를 검은돈을 사용하며 삶을 영위하고 있다”고 주장하지 않았는가. 전두환은 자신이 내야 할 추징금 2205억원 중 922억원은 납부하지 않은 채 2021년 11월 사망했다.노태우의 장녀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은 지난 2015년부터 연간 임대료가 8억원이 넘는 국내 초호화급 호텔 빌라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낸 임대료만 70억원에 달한다고 하니…. 뿐만 아니라 노 관장은 스위스 은닉계좌가 발견돼 구설에 오른 바도 있다. 이에 비하면 운전기사와 비서를 상대로 갑질은 애교로 보일 정도다. 노태우의 장남 노재헌 변호사 역시 비자금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노태우는 지난 2012년 6월 아들이 결혼한 1990년 사돈인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 회장에게 건넨 비자금 230억원을 찾아 달라는 내용의 진정서를 검찰에 제출하기도 했다. 아들 부부가 파경을 맞게 되자 맡겼던 비자금을 회수하려 한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특히 노 변호사는 노태우가 검찰에 진정을 내기 직전인 2012년 5월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3개의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한 것이 드러나 비자금과 연관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영화 ‘서울의 봄’ 이후의 상황은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게 전개됐다. 그나마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법 개정뿐이다. 지난 2020년 6월 발의된 이른바 ‘전두환 추징 3법’은 일부 의원 등의 반대로 국회에 계류 중이다. 추징 3법은 공무원범죄몰수법·형사소송법·형법 등 3개 법률에 대한 개정안으로, 전두환이 사망했더라도 소급하면 가능할 수도 있다. 1995년 12월에 제정된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역시 소급입법을 허용했다. 결국 공은 다시 국회로 넘어갔다. 어쩌면 이번 국회가 해야 할 마지막 소명일 수 있다. 한 참 늦었지만, 이제라도 공정과 정의가 살아 있음을 보고 싶다.송남석 산업IT국장 songnim@viva100.com

2023-12-25 08:18 송남석 기자

[데스크 칼럼] 총선, 관료 프리미엄은 없다

권순철 정치경제부장윤석열 정부 1기 내각 장관들과 용산 대통령실 참모진이 내년 4월 총선에 대거 출마할 예정이다. 역대 정권마다 총선에 장관들과 참모진이 등판했지만 이번에는 특히 많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이른바 ‘윤석열의 사람들’을 차출하는 것은 이번 총선을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윤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누르고 당선했지만 거대야당(168석)의 힘 앞에서 제대로 정책을 펼치지 못하고 2년여를 보내고 있다. 만약 이번 총선에서도 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면 남은 3년 임기 동안에도 ‘윤석열표’ 정책을 펼칠 수 없다. 때문에 윤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하며 현 정부의 정책철학을 잘 알고 있는 내각 출신들과 참모진이 비장한 각오로 총선판에 뛰어드는 것이다. 이들은 그동안 언론에 노출이 많이 됐기 때문에 인지도가 높고 비정치인 출신이 많기 때문에 유권자들에게 신선한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우선 방문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수원 출신으로, 경기 수원병에 출마가 유력하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고향인 충남 천안을에 출마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으로 거론되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지역구 출마를 배제할 수는 없다. 대통령실 출신으로 윤 대통령의 측근이자 검사 출신인 주진우 법률비서관은 부산 수영에, 강명구 국정기획비서관은 경북 구미을에 출마가 각각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하지만 각료와 대통령의 참모진 출신이라고 총선 승리의 보증수표는 아니다. 역대 정부를 봐도 그렇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선거구당 1명을 뽑는 소선거구제하에서는 지역구도가 상당히 영향을 미친다. 지난 2004년 총선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 후보로 나선 윤덕홍 전 교육인적자원부 장관(대수 수성을), 권기홍 전 노동부 장관(경북 경산·청도), 이영탁 전 국무조정실장(경북 영주)이 불모지에서 고배를 마셨다.비교적 정치색이 약한 서울·수도권과 충청권은 선거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에 따라 결과가 판가름 난다. 쉽게 말하면 ‘바람’이 어느 정당으로 부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 ‘바람’은 추상적인 신념이 될 수도 있고, 구체적인 정책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이번에 바꿔보자’ ‘새정치’ 등은 전자에 속하며 ‘무상급식’ ‘뉴타운 건설’ ‘재난지원금 지급’은 후자의 경우다.또한 선거에서 중요한 것은 ‘프레임’ 싸움이다. 이번 총선에서는 여당의 국정 안정론과 야당의 정권 견제론(심판론)이라는 거대한 판이 충돌한다. 여당은 과반수를 확보, 윤 대통령이 안정적으로 국정운영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면서 지지를 호소할 것이다. 반면 야당은 윤 대통령의 거센 정책 독주에 브레이크를 걸기 위해서 여소야대 상황을 만들어 달라고 외칠 것이다.이런 ‘바람’과 ‘프레임’ 속에서도 살아남는 후보들이 더러 있다. 이는 거시적 변수들보다 미시적 변수인 ‘인물론’이 먹힌 경우다. 지역을 대변할 만한 인물은 이 후보밖에 없다는 유권자들의 인식이 뇌리에 강하게 박힐 경우 이런 기적을 연출할 수 있다.민심은 항상 흔들리고 있다. 그래서 총선 전에 정확히 예측이 쉽지 않다. 여론조사도 민심의 일부만 전할 뿐이다. 다만 총선 결과를 놓고 분석할 때 적절하게 판타지를 가미해서 민심의 ‘준엄한 심판’이라고들 한다.권순철 정치경제부장 ikee@viva100.com

2023-12-19 14:12 권순철 기자

[데스크 칼럼] 유통·물류 하이브리드 시대

이형구 생활경제부장온라인 유통업체 아마존이 대형 물류업체 유피에스(UPS)와 페덱스를 제치고 미국 내 최대 운송업체로 떠오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에 따르면 아마존은 지난해 미국 내에서 52억개 가량의 소포를 운송한 데 이어 올해는 59억개 운송을 예상하고 있어 UPS를 제쳤다고 전했다. 아마존은 올해 들어 쇼핑 대목인 추수감사절(23일) 이전에 이미 소포 48억개 이상을 운송한 상태다. 반면 지난해 미국 내에서 53억개의 소포를 운송해 근소하게 아마존을 앞섰던 UPS는 올해 운송량이 지난해 수준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UPS의 올해 1∼9월 소포 운송량은 34억개였다. 아마존은 이미 2020년 소포 운송량 33억개를 기록해 페덱스(31억개)를 제쳤고 격차를 계속 벌려가는 상황이다.10년 전인 2013년만 해도 아마존이 UPS와 페덱스의 고객이었지만 이제 상황이 바뀐 셈이다. 불과 10년 만에 아마존이 UPS와 페덱스를 따라 잡을 수 있었던 비결은 자동화다. 미국의 기술전문 매체 와이어드에 따르면 아마존 배송 제품의 4분의 3은 로봇을 거친다. 아마존은 이를 위해 로봇 75만대를 운영하고 있으며 앞으로 100만대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아마존은 이같은 자동화를 바탕으로 배송 능력을 더욱 고도화하고 있다. 아마존은 올해 초 미국 내 당일 배송 시설 수를 두 배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이처럼 유통업체가 자체 배송을 바탕으로 물류업체와 경쟁하는 것은 미국 뿐만이 아니다. 국내 최대 온라인 유통업체 쿠팡은 물류 자회사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를 앞세워 국내 1위 택배업체 CJ대한통운을 맹렬히 추격하고 있다. 한국통합물류협회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CLS의 택배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12.7%에서 올해 8월말 24.1%로 2배 가까이 증가하며 택배업계 2위로 올라섰다. 반면 CJ대한통운 점유율은 2020년부터 50.1%에서 2022년말 40%, 올해 8월말 33.6%로 주저앉았다.쿠팡은 자사가 직매입한 상품이 아니더라도 쿠팡의 물류창고에 물건을 입고시키면 쿠팡이 포장과 배송, 재고관리까지 해주는 서비스인 ‘로켓그로스’를 올해 도입하면서 단기간에 시장점유율을 높일 수 있었다. 로켓그로스는 아마존의 ‘FBA(Fulfillment By Amazon)’을 벤치마킹 한 것으로 알려졌다.쿠팡이 이처럼 배송경쟁력을 강화하자 기존 유통업체들도 배송 경쟁력에 나섰다. 이마트 계열 SSG닷컴은 2021년부터 자동화율 80%를 자랑하는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 ‘네오’를 운영하기 시작해 현재 3개의 네오를 운영하고 있다. SSG닷컴은 네오 운영 노하우를 전국 이마트 PP센터(PickingPaking)에 이식한다는 계획이다. 롯데쇼핑도 최근 영국의 리테일 테크기업 오카도사와 합작해 부산에 최첨단 물류센터 고객풀필먼트센터(CFC)를 착공했다. CFC는 AI와 로봇을 활용해 하루 약 3만건의 배송물량을 처리할 수 있다. 롯데쇼핑은 향후 이같은 CFC를 6개로 늘린다는 계획이다.아마존·쿠팡 사례에서 보듯 이제 유통 경쟁력은 과거와 같이 좋은 입지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물류 경쟁력에 좌우되는 시대가 됐다. 그리고 이같은 물류 경쟁력은 AI와 로봇과 같은 첨단기술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유통업체들의 물류 기술에 대한 적극적인 연구와 투자가 필요할 때다.이형구 생활경제부장 scaler@viva100.com

2023-12-12 14:09 이형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