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지원제도의 실효성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23-12-26 14:17 수정일 2023-12-26 14:19 발행일 2023-12-27 19면
인쇄아이콘
20231114010004030_1
허미선 문화부장

“한국 미술계, 아티스트 지원제도는 너무 잘돼 있고 후해요.”

유럽에서 젊은 작가들을 발굴해 그들의 실험을 지원하고 전시까지를 기획하는 공간의 대표이기도 한 큐레이터는 부러움을 전하면서도 “하지만 그걸로 끝나는 단발성”이라고 짚었다. 대부분의 지원제도가 그렇다. 작가들이 지속적으로 예술 활동을 펼칠 수 있는 지원이 아닌 하룻밤 꿈처럼 소비되는 단발성인 경우들이 대부분이다. 
더불어 견고한 학연, 혈연 등이 작용하는 인맥지원도 어려움이다. 특정한 누군가의 자식, 제자 등을 지원 대상으로 고려해달라거나 반대로 누구는 안된다 등 사공들이 적지 않다. 다양한 인연으로 엮인 이들의 ‘민원’이 빗발치는 통에 오죽하면 “이들을 달래고 설득할 인사가 필요한 지경”이다.
연극, 뮤지컬, 무용 등 공연예술의 지원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연출, 작가, 작곡가, 제작사 등에 따른 ‘사단’이 암암리에 존재한다. 제작 시스템이나 시장은 이미 선진화됐지만 ‘가난’이 훈장과도 같은 예술지향주의, 의리 등을 앞세운 극단 마인드는 여전하다. 이 간극은 ‘상업연극’이라는 기묘한 용어를 만들어냈고 고질병과도 같은 임금체불 등의 사태를 자아내곤 한다. 차별성을 찾아보기 힘든, 비슷비슷한 지원제도의 산재, 이해관계에 따른 지원 등은 공연예술 분야에서도 풀어야할 숙제다. 
정확히 가려운 곳이 어디인지를 가늠하는 데이터 및 조사·연구·분석도 여전히 아쉽다. 공연예술 관련자들이 오래도록 지적해온 ‘작가 부족’ 현상은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전통적인 기승전결을 갖춘 스토리텔링 뿐 아니라 전혀 달라진 무대 예술에 걸맞는 작가 발굴 및 작법 개발 등의 지원이 필요한 때다. 
연간 공연예술 제작편수는 여전히 적지 않다. 이들 중 고르고 골라 몇몇 작품을 지원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한번의 지원으로 지속가능한 작품으로 자리매김하기란 쉽지 않다. 결국 지속가능성의 문제다. 
실효성있는 지원의 바탕은 제도화다. 매년 수편의 공연예술 분야를 지원하는 2023 창작산실 홍보대사인 차지연은 막 개발되기 시작한 작품에 대한 배우들의 관심을 호소했다. 그의 말처럼 배우들의 관심과 참여의지는 매우 중요하다. 창작 초기 단계에서 배우들의 기여도는 결코 적지 않기 때문이다. 
차지연을 비롯해 전미도, ‘레미제라블’ ‘오페라의 유령’ 등 남자 배우들의 무대 위 워너비 배역은 물론 드라마에서까지 맹활약 중인 최재림 등 창작산실 선정작의 초기개발단계부터 함께 한 작품들은 꽤 오래도록 공연되고 있다. 
이에 브로드웨이는 창작 초연 배우들의 기여도를 존중해 그들의 이름까지 대본에 표기하는 사례들도 적지 않다. 창작개발 초기 단계의 작품에 창작진들이 원하는 배우를 캐스팅할 수 있는 지원제도도 갖추고 있다. 현장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에 기여한 이들을 어떻게 존중할 것인지 등까지 고려하는 세심하고도 지속가능한, 효율성을 갖춘 지원제도의 구축, 개선이 필요한 때다.
허미선 문화부장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