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영화 ‘서울의 봄’서 공정과 정의를 생각하다

송남석 기자
입력일 2023-12-25 08:18 수정일 2023-12-25 14:32 발행일 2023-12-25 99면
인쇄아이콘
2023111901001288600055161
송남석 산업IT국장

지난 칼럼에서 영화 ‘서울의 봄’이 대박 날수록 불편한 이유를 정리해봤다. 역사를 다룬 영화가 진정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 맞는 진실규명이 필수다. 그러나 ‘서울의 봄’은 대중적 흥행에도 불구하고 진실규명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란 과제를 남겼다. 예상대로 ‘서울의 봄’은 24일 1천만명 관람객을 돌파했다. 이제는 ‘불편하다’는 생각을 넘어 우리 사회는 ‘과연 공정했는가’ 또는 ‘정말로 정의로왔는가’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먼저 전두환은 ‘서울의 봄’의 역사적 배경인 1979년 12·12 군사반란과 이듬해 5·18 광주민주화 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했다. 이어 이른바 체육관 선거를 통해 1980년 8월27일 제11대 대통령에 당선됐고, 이어 8차 개헌을 거친 1981년 2월25일 제12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대통령을 두 번이나 역임한 전두환이 내건 기치는 정의사회 구현이었다. 정의라는 단어가 이렇게까지 희화화될 수 있는지 연구대상이다.

노태우는 친구인 전두환이 일으킨 12·12 군사반란이 성공할 수 있도록 자신이 맡고 있는 최전방 부대인 9보병사단 병력을 이동시켰다. 9보병사단 병력의 이동이 없었다면 전두환의 12·12 군사반란은 성공할 수 없었다. 만약 북한군이 9보병사단의 병력이동을 틈타 도발했다면 대한민국 역사는 뒤바뀌었을 것이다. 노태우는 9보병사단 병력을 이동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정무장관, 체육부장관, 내무부장관을 거쳐 제12대 국회의원과 제13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과연 정의를 얘기할 수 있을까.

“광주는 총기를 들고 일어난 하나의 폭동이야”(2003년 2월 전두환), “민주주의의 아버지가 누구인가, 저는 우리 남편이라고 생각한다”(2019년 1월 전두환 부인 이순자), “문화혁명 때 수천만명이 희생당하고, 엄청난 걸로 말하자면 우리 광주사태는 아무것도 아니야”(1995년 10월 노태우), “아버지가 만든 민주화와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이 주인의식을 갖고 참여하는 것이었다”(2016년 4월 노태우 장녀 노소영) 등의 망언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공정했는가.

12·12 군사반란 당시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호위하던 김오랑 중령은 반란군의 총탄을 맞고 숨졌고, 그 충격으로 실명한 김 중령의 부인은 1991년 실족사했다. 반란군을 진압하던 장태완 수경사령관의 아들은 1982년 할아버지 산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정병주 사령관은 1987년 신군부 만행을 증언한 다음 해에 양주시 송추계곡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뒤늦었지만 반란군에 맞서 육군본부 B2벙커를 지키다 전사한 정선엽 병장과 김오랑 중령은 지난해 12월 전사 재심사에서야 ‘순직자’에서 ‘전사자’로 인정됐다. 무려 43년 만이다.

이런 가운데 군사반란 당사자와 자녀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전두환은 통장에 29만원 밖에 없다면서도 측근들과 함께 여행과 골프를 즐겨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전두환 아들 전재국씨는 2019년에만 부동산 시행 등으로 수백억원의 차익을 거뒀고, 해외에서 1조원대 부동산 사업을 벌일 만큼 재력을 자랑하고 있다. 전두환의 손자 전우원씨는 지난 3월 “아버지(전재용)와 새어머니(박상아)가 출처 모를 검은돈을 사용하며 삶을 영위하고 있다”고 주장하지 않았는가. 전두환은 자신이 내야 할 추징금 2205억원 중 922억원은 납부하지 않은 채 2021년 11월 사망했다.

노태우의 장녀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은 지난 2015년부터 연간 임대료가 8억원이 넘는 국내 초호화급 호텔 빌라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낸 임대료만 70억원에 달한다고 하니…. 뿐만 아니라 노 관장은 스위스 은닉계좌가 발견돼 구설에 오른 바도 있다. 이에 비하면 운전기사와 비서를 상대로 갑질은 애교로 보일 정도다. 노태우의 장남 노재헌 변호사 역시 비자금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노태우는 지난 2012년 6월 아들이 결혼한 1990년 사돈인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 회장에게 건넨 비자금 230억원을 찾아 달라는 내용의 진정서를 검찰에 제출하기도 했다. 아들 부부가 파경을 맞게 되자 맡겼던 비자금을 회수하려 한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특히 노 변호사는 노태우가 검찰에 진정을 내기 직전인 2012년 5월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3개의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한 것이 드러나 비자금과 연관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영화 ‘서울의 봄’ 이후의 상황은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게 전개됐다. 그나마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법 개정뿐이다. 지난 2020년 6월 발의된 이른바 ‘전두환 추징 3법’은 일부 의원 등의 반대로 국회에 계류 중이다. 추징 3법은 공무원범죄몰수법·형사소송법·형법 등 3개 법률에 대한 개정안으로, 전두환이 사망했더라도 소급하면 가능할 수도 있다. 1995년 12월에 제정된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역시 소급입법을 허용했다. 결국 공은 다시 국회로 넘어갔다. 어쩌면 이번 국회가 해야 할 마지막 소명일 수 있다. 한 참 늦었지만, 이제라도 공정과 정의가 살아 있음을 보고 싶다.

송남석 산업IT국장 songnim@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