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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부동산 양극화 더 이상 방치 안된다

채훈식 건설부동산부장한쪽에서는 국민평형 아파트가 60억원에 거래되며 ‘평당 2억 시대’를 열고 있지만,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은 더 이상 꿈이 아닌, 손에 닿지 않는 신기루가 되고 있다. 이게 지금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의 현주소다.실제 전국 아파트 시장의 양극화가 끝없이 심화되고 있다. KB부동산의 9월 월간 주택시장 동향에 따르면, 상위 20%의 아파트 가격은 12억6035만원, 하위 20%의 가격은 1억1689만원이다. 이를 나눈 5분위 배율은 무려 10.8에 달해, 2008년 통계 집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불과 10년 전 5.0이었던 이 배율이 두 배 이상 커진 것은, 그만큼 고가 아파트로의 자산 집중과 서민들의 소외가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특히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베일리 단지에서 국민평형(전용면적 84㎡) 아파트가 60억원에 거래됐다. 평당 1억7600만 원. 6개월 전만 해도 40억원대였던 이 아파트가 이제는 20억원 더 치솟은 것이다.이와 같은 초고가 아파트의 폭등은 ‘똘똘한 한 채’에 대한 수요가 집중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다주택자 규제가 강화되면서 여러 채를 보유하기보다, 투자 가치가 높은 고가 아파트 한 채에 자산을 집중하는 전략이 부동산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분양시장에서도 이러한 양극화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8월 전국 미분양 주택은 6만7550가구로 전월보다 5.9%(4272가구) 줄었지만, ‘악성 미분양’으로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지난달 1만6461가구로, 전월보다 2.6%(423가구) 늘었다. 13개월 연속 증가세다. 고가 아파트는 연일 거래가 이어지지만, 서민들이 살 수 있는 중저가 주택은 미분양 상태로 남아 있는 이 현실이야말로 부동산 시장의 심각한 불균형을 보여준다.부동산 양극화는 단순한 자산 불균형을 넘어 서민들의 삶을 위협하는 사회적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똘똘한 한 채’로 부유층은 자산을 불리지만, 서민들은 그 아파트를 구경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심지어 젊은 세대들은 주거 사다리를 오르기도 전에 포기하는 현상이 늘고 있다. ‘영끌’로도 집을 마련하기 어려운 현실에, 청년들은 내 집 마련 대신 전세와 월세에 머물며 불안한 미래를 견뎌야 한다.정부는 이제 이 문제를 더 이상 방관해서는 안 된다. 부동산 양극화는 단순한 시장 논리로 해결할 수 없는 복합적인 사회 문제다. ‘똘똘한 한 채’ 현상이 부동산 시장을 왜곡하며 투기적 수요를 촉진하고, 서민들의 주거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정부는 고가 아파트에 대한 투기 수요를 억제하고, 서민들이 실질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주택을 대폭 확대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서민들의 주거 불안 문제를 해결하려면 중저가 아파트의 공급을 늘리고, 교통망과 같은 인프라를 개선해 서민들이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서울에만 집착하는 투자 심리를 분산시키기 위해 수도권 외곽과 지방의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부동산 시장의 양극화는 단순한 자산 격차를 넘어, 서민들의 삶의 질을 위협하는 심각한 사회 문제다. 정부는 지금 당장 결단을 내려야 한다. 더 이상 부동산 시장을 투기 자본의 장으로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양극화의 악순환을 끊고 서민들이 안정적인 주거 환경 속에서 삶을 계획할 수 있도록,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채훈식 건설부동산부장 chae@viva100.com

2024-10-01 14:11 채훈식 기자

[데스크 칼럼] 인류 마지막 산업혁명

송남석 산업IT국장“사람의 손이 닿지 않아도 베틀의 북이 천을 짜고, 현악기 리라가 스스로 연주 된다. 가정에서는 사람들이 하인을 둘 필요가 없어지고, 주인에게는 노예 없어도 살아갈 수 있는 시대가 온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신의 저서 ‘정치학’에서 그렸던 이른바 ‘자동노예시대’에 대한 갈망이었다. 물론 그 전제로, 다이달로스(그리스 신화 속 장인)가 만든 동상이나, 헤파이스토스(대장장이 신)가 만든 제기처럼 도구들이 명령을 받거나 주인의 뜻을 스스로 헤아려 일하는 경우로 단정했지만 말이다.2400년 전,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들은 스스로 작동해서 올림포스산 위에 있는 신들의 회의 장소로 들어갔다”고 적었다. 마치 오늘날 자동화, 혹은 인공지능(AI)시대의 단면이 떠오를 법한 문장이다. 어쩌면 그는 헤라 여신이 천마를 몰고 신전에 들어설 때 자동으로 문이 열리는 장면이나 호메로스 ‘일리아스’의 한 구절, 혹은 그 보다 더 편한 세상을 꿈꿨는지 모를 일이다.인류 문명의 발전은 산업혁명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방향성은 죄다 편리와 효율이었다. 후대 학자들이 인류의 삶을 뒤흔든 거대한 변화의 물결들을 차수로 구분해놓은 지점도 같은 결이다. 지금까지 인류 문명은 총 네 차례의 커다란 차수 변화가 있었다. 증기기관을 기반으로 한 기계화를 시작으로 전기를 기반으로 한 대량생산, 컴퓨터를 기반으로 한 지식정보, 초연결을 기반으로 한 데이터 혁명이 그것이다. 이른바 1~4차 산업혁명이다.4차 산업혁명기에 살고 있는 현대 인류는 지금 5차 산업혁명기를 논하고 있다. 물론, 사탕보다 달콤한 문명의 이기에 대한 기대감과 인류 스스로 진화할 수 있는 마지막 산업혁명이란 불안감을 동시에 갖고 있다. 어쩌면 이후에는 산업이란 구분 자체가 사라지거나 인간이 아닌 기계가 스스로 차수를 더해가는 진화를 거듭할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어찌됐든, 아리스토텔레스가 꿈꿨던 상상은 이제 인공지능 기술을 타고 범용인공지능(AGI) 시대를 향하고 있다. 그리고 불과 수년 내 현실화될 공산이 크다. 그 시기를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향후 5년 후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3년 내로 각각 압축을 장담하고 있다. 미래학자이자 컴퓨터 과학자인 레이 커즈와일은 “2029년이면 AI가 인간 지능에, 2045년에는 인류 지능을 넘어선 것”이라고 설파하고 있다.그 요체는 수년 내 정점을 찍을 것으로 보이는 AI 기술이고, AGI와 ASI(초인공지능)로의 경쟁적 진화를 가리키고 있다. 이런 흐름은 지난 2022년 챗GPT 탄생 이후, ‘미래’ 혹은 ‘5차 산업혁명’이란 포장 아래 ‘째깍째깍’ 익어가고 있다. 아직까지 실체에 대한 확실한 정의는 없지만, 5차 산업혁명은 인간과 AI가 공존하는 세상, 즉 휴먼테크놀로지(Human technology)시대로 압축돼 가고 있다.이쯤에서 몇 가지 의문이 생긴다. 기원전 아리스토텔레스가 상상했던 완전 ‘자동노예’ 탄생을 목전에 둔 지금 인류를 본다면 과연 탄복할까. 우리는 과연 올바른 좌표를 향하고 있는 것일까.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 자칫, 우리 모두가 인공지능을 너무 쉽게 자동노예와 등치시키는 순진함, 아니 치명적인 오류에 대한 걱정이다. 5차 산업혁명을 놓고 ‘인류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산업혁명’이란 표현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송남석 산업IT국장 songnim@viva100.com

2024-09-25 06:58 송남석 기자

[데스크 칼럼] 이유 있는 '대출규제 엇박자'

정경진·금융증권부장금융당국이 가계부채 문제를 놓고 오락가락 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정책 실패를 지적하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가계부채 관리 정책의 총사령탑인 금융위원회는 제 목소리를 내지 않는 가운데 산하 기관인 금융감독원이 전면에 나서 은행권을 압박하는 방식으로 대출시장을 흔들면서 논란을 키웠다. 하반기 들어 가계대출 관리 총대를 멘 이복현 금감원장은 은행의 대출관리를 전방위로 압박하면서 그의 입이 ‘부동산 시장의 최대 리스크’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다.급기야 금융위와 금감원이 가계부채 정책을 놓고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지난 6일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F4 회의)’를 마친 뒤 가계부채 관련 브리핑을 열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인식 차이는 없다”면서 수습에 나섰다.김 위원장은 또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 강화 기조는 확고하다. 주택시장이 계속 과열되고 가계부채가 빠르게 증가할 경우 준비하고 있는 추가 관리수단을 과감하게 시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당국의 대출관리 정책이 혼선을 빚으면서 대출 실수요자들까지 피해를 입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 가운데 향후 정책 방향을 규제 중심으로 일관성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돌이켜보면 연초부터 이뤄진 당국의 엇갈린 행보는 의도된 측면이 있다.작년 말 태영건설 워크아웃 사태로 위기론이 불거진 부동산 프로젝프파이낸싱(PF) 시장은 부동산 시장 규제를 풀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발등의 불이었다. 집값이 하락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부동산 PF 위기론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다.금융권의 부동산 PF 대출 잔액이 작년 말 135조원을 넘은 상황에서 부동산 침체로 주요 건설현장에서 미분양이 속출하고, 건설사들의 자금난도 심화하면서 중소형사를 중심으로 줄도산이 이어지자 돈을 빌려준 금융사로 위기가 전이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당국은 저축은행 등 2금융권을 중심으로 PF 부실 관련 충당금을 관리기준 이상으로 쌓도록 유도하는 등 안전장치를 만들었다. 하지만 충당금 확보는 근본적인 해결방법이 될 수 없고, 결국 부실 PF사업장을 가려내서 정리해야 하는데 시장에 미칠 충격파 때문에 연착륙 방안을 모색해왔다.당국은 우선 부동산 경기를 부양시켜 PF 위기를 일부라도 해소하기 위해 연초부터 정책성 대출금리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한편 은행권에도 대출금리 인하를 유도해 대출 수요자들에게 부동산에 투자할 기회를 열어줬다.대출 규제 완화로 부동산 거래가 늘어나기 시작하자 서울 주요 지역을 중심으로 집값이 급등했다. 지난 7월 예정됐던 2단계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도 불분명한 이유로 9월로 연기하면서 조급해진 대출 수요자들을 자극하자 늘어나는 가계대출 규모는 매월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가계대출 급증세를 어느 정도 용인하면서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도록 유도해 PF 위기를 지연시키려고 했던 당국의 의도는 어느 정도 목표를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늘어난 가계부채가 새로운 당면 과제가 됐다.당국은 이제 더 이상 집값이 오르고 가계부채가 늘어나는 상황을 방치할 수 없는 한계점에 직면했다. 그동안 정부 정책에 부응했던 국민들이 희생양이 되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없는 것도 현실이다.정경진·금융증권부장 ondam@viva100.com

2024-09-10 09:02 정경진 기자

[데스크 칼럼] K정치를 위하여

권순철 정치경제부장바야흐로 전 세계에서 K열풍이 불고 있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 대한 자긍심에 지나치게 도취해 K열풍을 과대평가한다는 비판도 있다. 그렇지는 않다. 한국이라는 좁은 땅 덩어리에 있을 때는 K열풍이 실감이 나지않지만 막상 해외에 나가면 누구나 한국의 위상과 K열풍을 실감한다.우선 그 중에서도 K팝, K드라마 등 지구촌 곳곳에서 방영되고 있는 K콘텐츠가 눈에 띈다. 한국의 대중음악인 K팝은 BTS(방탄소년단), 뉴진스 등 아이돌그룹이 뛰어난 가창력, 화려한 퍼포먼스 등으로 전 세계 팬들을 사로잡고 있다. 기생충, 오징어게임 등 드라마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유튜브, TV를 통해서 지구촌 어디서나 볼 수 있다.이런 한류 열풍을 타고 K푸드 또한 호평을 받고 있다. 특히 K라면·떡볶이·김밥 등은 외국인들이 주머니걱정을 하지 않고 먹을 수 있다. 이외에도 K열풍은 K뷰티, K패션, K방산 등 다양하다.이 같은 K열풍을 있게 한 것은 K경제다. 한국 경제는 짧은 산업화 역사 속에서도 고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휴대폰, 자동차 등 ‘메인드 인 코리아’ 제품은 전 세계인들이 사용하고 있다.한국은 2023년 기준으로 경제 규모(GDP) 면에서 이탈리아, 캐나다에 근접하고 있으며, 경제 발전 수준(1인당 GDP) 면에서는 일본과 이탈리아 수준이다.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전 세계 14위(1조7000억달러)로 주요 7개국(G7) 국가 중 영국(3조3000억달러), 프랑스(3조달러), 이탈리아(2조3000억달러), 캐나다(2조1000억달러)를 뒤쫓고 있다.‘대한민국’이라는 브랜드 가치가 시나브로 높아졌는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내세우기 부끄러운 것들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정치다. 다른 분야에 비해 유독 정치만은 답보상태거나 후퇴하고 있다는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최근의 우리 정치 모습은 이를 반영한다. 지난 22대 국회 개원 이후 지금 까지 쟁점 법안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등 거대 야당의 강행처리, 소수 여당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국민의힘의 윤석열에 대통령에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건의, 국무회의서 대통령 재의요구권 건의 및 의결, 윤 대통령 거부권 행사, 법률안 폐기가 이어지고 있다.어렵게 성사된 한동훈 대표와 이재명 대표의 여야대표 회담도 각자 자기 주장만 했을 뿐 재정법안에 대한 합의는 없었다.정당뿐 아니라 시민사회단체들은 보수, 진보진영으로 나뉘어 임정법통론, 건국절 논쟁 등 이미 헌법과 역사교과서 명시된 정리된 문제들을 다시 들춰내고 있다.이쯤 되면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한국의 경제는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며 후진적인 우리 정치행태를 비판한 것이 생각난다.우리 정치도 국격과 경제수준에 맞게 전 세계의 모범이 될 수 없을까.한국정치를 선진화하기 위해서는 우선 진보, 보수이념 대립을 해소해야 한다. 동서냉전 이후 ‘탈이데올로기 시대’가 된지 오래됐지만 아직도 보수와 진보를 나뉘어 사활을 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 같은 이념적 대립이 청산된다면 여야 또는 정부여당과 야당의 협치의 틀을 마련할 수 있고,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민생정치에 매진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다가올 미래사회를 발빠르게 준비해야 한다. 인공지능(AI) 도입, 이상기후 대비 등 급변하는 전 세계적 변화에 한국이 낙오되지 않도록 정치권에서 적극 뒷받침해야 한다.이렇게 되면 전 세계인들도 우리 정치를 K정치로 칭하며 배우는 날이 올 것이다.권순철 정치경제부장 ikee@viva100.com

2024-09-03 14:24 권순철 기자

[데스크 칼럼] 사과값과 추석 민심

이형구 생활경제부장사과는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과일이다. 보통 사과는 가을부터 봄까지 가장 흔하게 일상적으로 먹을 수 있는 과일로 풍부한 비타민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겨울에 우리의 건강을 지켜주는 역할도 해준다.사과가 흔하다고 해서 또 쉽게 먹을 수 있는 과일이라고 해서 귀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온갖 수입 과일이 차고 넘쳐난다고 해도 우리 문화권에서 수입 과일이 사과를 대체할 수는 없다. 사과는 명절 차례상은 물론 제사상에도 절대로 빠져서는 안 되는 전통적인 제수용 과일이기 때문이다.그러고 보면 사과는 단순한 먹거리를 뛰어 넘어 우리의 문화와 절대로 분리될 수 없는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국민과일’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사과가 ‘국민과일’이라는 점은 소비량에서도 알 수 있다. 지난해 사과는 국민 1인당 연간 11㎏을 먹어 감귤(11.8㎏)에 이어 두 번째로 소비가 많았다.이처럼 친숙한 사과가 지난해부터 ‘금사과’가 됐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추석을 2주 앞두고 사과(홍로) 도매가격은 전년도 같은 기간보다 102.5%나 올라 꼭 두 배가 됐다. 이 같은 현상은 올해 설까지 이어졌다. 설을 앞두고 사과 값이 전년도 설에 비해 97%나 올랐다. 사과가격 상승은 비단 사과가격 상승에만 그치지 않고 대체재 역할을 하는 다른 과일의 가격까지 끌어 올렸다. 실제로 사과와 함께 우리 국민이 가장 많이 먹는 감귤 가격은 올해 해 설 직전인 지난 2월 8일 기준으로 전년보다 67.8%나 급등했다.과일물가의 상승은 전체 소비자 물가를 끌어 올렸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월 소비자물가상승률에서 ‘과일’의 물가상승 기여도는 0.4% 포인트로 나타났다. 이는 1월 물가상승률(2.8%) 가운데 과일만으로 전체 인플레이션의 7분의 1을 끌어올렸다는 걸 뜻한다. 그리고 이처럼 과일가격 폭등에서 시작된 밥상물가 상승은 설 명절 민심을 악화시켰다. 지난 4월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한 원인에 급격한 밥상 물가 상승이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그런데 추석 명절을 3주 앞둔 상황에서 또 다시 밥상 물가가 들썩이고 있다. 한국물가협회는 최근 전국 주요 전통시장의 28개 차례용품 가격을 조사했더니 4인 가족 기준 올해 추석 차례상 예상 비용이 28만7100원으로 지난해 추석 때보다 9.1% 상승했다고 밝혔다. 28개 품목 중에서 23개 가격이 올랐는데 도라지, 고사리, 곶감, 대추, 밤, 배는 1년 전보다 20% 이상 상승했다. 지난해 ‘금사과’ 사태를 불러 일으킨 사과값은 올해 8월 10㎏ 기준 5만4000원으로 지난해보다 33% 가량 떨어졌지만 예년과 비교하면 여전히 10% 이상 비싸다.제수용품은 아니지만 배추, 무 등 한국인의 밥상에 필수적인 채소 가격도 고공행진하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배추 한 포기 소매가격은 26일 기준 7419원으로 지난해 같은 날(5414원)보다 37% 올랐으며, 무 한 개는 3960원으로 역시 지난해보다 31.9% 올랐다.명절 민심은 상차림을 하는 주부의 장바구니 물가에서 나온다. 당장 팍팍한 살림살이 속에서 추석명절을 지내야 하는 서민들은 물론이고 정부와 여당을 위해서라도 올해 추석에는 지난해 추석처럼 ‘금사과’ 사태가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한다.이형구 생활경제부장 scaler@viva100.com

2024-08-27 14:01 이형구 기자

[데스크 칼럼] 청년들은 또 '영끌'을 고민한다

채훈식 건설부동산부장서울 강남에서 시작된 부동산 가격 상승세가 이제 서울 외곽과 수도권으로 도미노처럼 번져가고 있다.정부는 집값 안정을 위해 공급 확대를 약속했지만, 이러한 대책들이 실제로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해 보인다. 쓰러져가는 도미노를 멈추기에 너무 늦은 것은 아닌지, 국민들의 불안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최근 발표된 8·8 공급대책에도 불구하고 집값 상승세는 멈추기는커녕 오히려 가속화되고 있는 현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한국부동산원의 8월 둘째 주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값은 전주 대비 0.32% 상승하며 5년 11개월 만에 최대폭 상승을 기록했다. 이 상승세는 서울에만 그치지 않고 인천, 경기 등 수도권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수도권 아파트값은 0.18% 상승해 전주 대비 상승폭이 더욱 커졌다.이러한 현상은 공급 확대가 단기적으로는 집값 안정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시켜준다.정부는 지난 6월, 대출 한도를 줄이는 ‘2단계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의 시행을 두 달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같은 연기는 시장에 불필요한 혼란을 초래했고, 많은 사람들은 이를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라’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그 결과, 7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8000건을 넘어서며 6월의 거래량을 초과했고, 현재의 추세가 지속된다면 9000건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정부의 공급 대책이 장기적으로는 집값 안정에 기여할 수 있을지 몰라도, 당장의 시장 안정화에는 분명한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부동산 시장은 경제적 요소뿐만 아니라 심리적 요소에도 크게 좌우되기 때문에, 집값이 계속 상승하는 상황에서는 ‘지금 사지 않으면 영원히 집을 가질 수 없다’는 공포심이 팽배해지기 마련이다. 이러한 심리는 패닉바잉을 부추기며, 특히 20대와 신혼부부 같은 젊은층이 부모의 도움과 대출을 통해 무리한 매수를 시도하게 만든다.올해 들어서만 집값이 억 단위로 상승하면서 젊은층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들은 집값이 더 오르기 전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매수에 나서고 있지만, 이는 결국 더 큰 부담과 불안을 안겨주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과거에는 무일푼으로 상경해 작은 단칸방에서 시작해 점차 넓은 집으로 이사 가는 자수성가의 이야기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넓은 집으로의 이사는 고사하고, 서울 진입조차도 어려운 현실이 되면서, 젊은이들의 꿈과 포부가 일찍부터 좌절될까 걱정스럽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젊은 세대는 점차 더 큰 불안과 실망 속에 빠지게 될 것이며, 이는 사회 전반에 걸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부동산 시장의 안정을 위해서는 보다 일관되고 신뢰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국민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시장의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는 대책이 시급하다.채훈식 건설부동산부장 chae@viva100.com

2024-08-20 14:02 채훈식 기자

[데스크 칼럼] 삼성전자 ‘HBM 역전’은 진행형

“삼성전자가 엔디비아의 퀄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는 이유는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적층 방식에 있다. 엔디비아는 삼성에 설계변경을 요청했다.” 올 상반기 국내외 반도체업계를 관통하는 최대 이슈였다. 아직까지도 삼성은 엔디비아가 요구하는 HBM 품질 대응에 실패했고, 지금도 그 연장선상이다. 그래서였을까. 지난 5월, 삼성전자는 전영현 부회장을 반도체사업(DS부문) 수장에 깜짝 위촉했고, 시장은 삼성의 ‘승부수’로 읽었다.당연히 글로벌 반도체시장의 관심은 국내를 향했다. 블룸버그는 올해 상반기 삼성 HBM3E(5세대) 제품이 엔비디아 퀄 테스트(품질 검증)에 떨어졌다거나, HBM3E 8단 제품이 퀄 테스트를 통과해 4분기 중 공급된다는 냉온탕 오보를 날렸다. 하지만 퀄 테스트는 아직 진행 중이고, 제품 공급 시기 역시 미정이란 게 정설이다.삼성은 왜, 엔디비아의 입맛을 맞추지 못한 채 외신의 입방아에 오르내릴까. 반도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D램을 쌓아올리는 방식 자체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고 본다. 삼성전자가 필름 압착방식을 사용한다면, SK하이닉스는 D램 사이에 EMC를 주입해 열과 압력을 가해 굳히는 방식으로 HBM을 만든다. 적층(쌓아 올리는) 혹은 접합방식의 차이란 지적이다.우선 SK하이닉스는 어드밴스드 몰디드 언더필(MR-MUF)을 활용, 얇은 칩 적층 시 발생하는 휨 방지를 위해 액체 형태의 EMC(에폭시 밀봉재) 보호재를 써 한번에 굳히는 방식을 쓴다. 마치 도자기처럼 응고 작업을 통째로 하는 만큼 군데군데 열 방출구멍이 있어 발열이 크지 않고 전기도 적게 쓰는 장점이 있다. 엔디비아가 요구하는 품질 수준에 부합한다.이에 반해 삼성전자는 어드밴스드(Advanced) 열압착 비전도성 접착 필름(TC NCF) 기술을 써, 업계 최초의 12단 HBM3E를 개발했다. D램 사이 범프가 놓인 곳에 필름을 하나씩 끼워 열압착 본딩으로 칩을 붙이는 방식이다. 좀 더 수작업에 가까운 방식이지만, 높이 올려도 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발열과 전기 사용량이 단점이다.바로 이 차이가 삼성전자 HBM이 엔비디아 품질 테스트를 못 넘는 이유란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하지만 진짜 주목하는 부분은 삼성전자가 NCF 소재 두께를 낮춰 업계 최소 칩 간 간격인 ‘7마이크로미터(um)’를 구현, 8단과 같은 높이를 만들어 냈다는 부분이다. 특히 향후 글로벌 AI나 반도체 시장 진화 추세에 삼성의 적층 기술이 훨씬 더 유효할 가능성을 본 것이다.AI가 고도화되면 될수록 더 좋은 성능의 HBM 수요는 넘쳐 날 것이고, 지금보다 D램을 더 높이 쌓아 올려야 하는 필연이 뒤따른다. 빠르면 12단부터 HBM의 품질 기준이 발열에서 적층 쪽으로 기울 가능성을 염두에 둔 논리다. 이럴 경우 잘 휘지 않고 더 높이 쌓을 수 있는 삼성 식 적층이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물론, 최근 AI 거품론에 반도체업계 전반이 요동쳤지만, 시장은 ‘AI 거품’은 있을 수 있어도 ‘메모리 거품’은 없다고 단언한다. 그런 만큼 “현재에 안주하지 말고 차세대 모델을 치열하게 고민하자”는 HBM 절대 강자 최태원 회장의 최근 발언이 되새겨지는 요즘이다. HBM은 지금 적층 기술을 놓고 또 다른 진화의 길 위에 서 있다.송남석 산업IT국장 songnim@viva100.com

2024-08-14 06:03 송남석 기자

[데스크 칼럼] 고트를 만든 '개와 늑대의 시간'

허미선 선임기자드디어 ‘골든 그랜드슬램’을 완성했다. 5번째 도전에서야 이룬 업적이었다. 통산 99번의 투어 우승, 4대 메이저대회(호주오픈·프랑스오픈·윔블던·US오픈) 우승으로 일찌감치 그랜드슬래머에 등극했지만 ‘하늘에서 낸다’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만은 유독 쉽지 않았다. 프로 데뷔 후 라이벌을 바꿔가며 승승장구했고 여전히 메이저 대회마다 어린 테니스 천재들과 결승을 치르는 최고령 선수. 이미 고트(GOAT·Greatest Of All Time, 역대 최고 선수)였던 그는 4일(이하 현지시간) 2024 파리올림픽 테니스 단식 결승전이 벌어지는 스타드 롤랑가로스에서 끝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2008년부터 무려 5번째 도전이었고 그 상대는 불과 한달 전 윔블던대회 결승에서 패한 혈기왕성한 라이벌이었다. 그렇게 세르비아의 노박 조코비치는 카를로스 알카라스를 상대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간 젊은 선수들의 혈기왕성한 도전, 어쩔 수 없는 체력의 열세, ‘나이’를 들먹이는 ‘은퇴’ 압박, 오래도 외롭게 한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 등에도 그는 ‘핑계’를 찾기보다 ‘방법’을 모색하며 끝내 숙원인 ‘골든 그랜드슬램’을 이뤄냈다.한국 양궁의 맏형 김우진은 그 어렵다는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발전을 치르며 3연속 올림픽 출전, 남자 단체전 3연패, 2024 파리올림픽 2관왕을 달성했음에도 4일 롤랑가르드에서 4.9mm 차이로 개인전 금메달을 목에 걸고서야 “이제는 ‘고트’라는 단어를 얻었다. 이제는 조금은 고트라 봐도 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이로서 남자양궁 최초 3관왕, 양궁 그랜드슬램(올림픽,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대회), 올림픽 금메달 5개로 한국 선수로는 최다 기록을 거머쥔 그 역시 ‘은퇴’ 압박에서 자유롭지 않다. 잇단 언급에 단호하게 “은퇴는 없다”고 응수한 그는 “(오늘의 금메달도) 내일이면 지나간 메달”이라며 여전히 앞으로 나아갈 의지를 다졌다.한편에서는 같은 나라 선수들끼리 치른 결승전에서 일방적인 응원과 야유가 쏟아지는 진풍경(?)도 연출됐다. 여자탁구 결승전에서 맞붙은 중국의 천멍과 세계랭킹 1위 쑨잉사. 일방적인 응원에도 금메달은 천멍이 목에 걸었다. 국가와 팬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던 10, 20대에는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다 서른이 다 돼서야 가능성을 현실로 만든 그는 2021년 도쿄 올림픽에 이어 2024 파리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거머쥐었다.이번 올림픽에서 자주 언급되는 단어는 단연 ‘고트’다. 역대 최고 선수. 이는 누군가의 잣대가 아닌 선수 스스로가 세운 기준을 충족해서야 갖게 되는 칭호다. 이 칭호를 얻기까지의 여정에는 그 결과를 알 수 없는 불명확함 속에서도 치열하게 노력하고 차근차근 준비하며 고독하게 보낸 저마다의 ‘개와 늑대의 시간’(L‘heure entre chien et loup)들이 존재했다.이는 비단 운동선수들 뿐 아니다. 학교, 직장, 외교, 인간관계 등 사회생활 속에서 늘 겪게 되는 것들이다. 핑계 보다는 방법을 모색하며 저마다가 보낸, 밤의 짙은 푸른색과 낮의 짙은 붉은 색이 만나는 저 너머로 다가오는 실루엣이 적인지 내 편인지 분간이 어려운 시간들은 존중받아 마땅하다.허미선 선임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8-06 14:13 허미선 기자

[데스크 칼럼] 금감원이 대출금리 조정 기관인가

정경진 금융증권부장금융감독원은 1999년 1월 은행감독원, 증권감독원, 보험감독원, 신용관리기금 등 4개 감독기관을 통합해 설립된 무자본 특수법인이다. 금융위원회 산하 기관으로 금융기관에 대한 검사·감독 업무 전반을 담당하는 막강한 제재 권한을 갖고 있어 금융권에서는 저승사자로 불린다.별도 예산이 없는 금감원의 수입원은 피감 대상인 금융기관으로부터 거둬들이는 감독분담금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금감원이 금융권에서 받은 감독분담금은 올해 처음으로 3000억원을 넘었다. 그 분담금의 절반 이상은 은행권이다.금융기관이 매년 막대한 운영 부담금을 내는 것은 ‘건전한 신용질서와 공정한 금융거래관행을 확립하고 예금자 및 투자자 등 금융수요자를 보호함으로써 국민경제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금감원의 설립 취지에 부응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급증하는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은행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것을 보면 본연의 설립 취지와 역할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이 든다.이복현 금감원장이 이달 초 금감원 임원회의에서 “무리한 대출 확대가 안정화되던 가계부채 문제를 다시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 뒤, 이준수 금감원 부원장은 다음 날 17개 국내은행 부원장들을 불러 “무리하게 대출을 확대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해 달라”고 주문했다.은행들은 곧바로 대출금리를 잇따라 인상하면서 당국의 주문을 따랐다. 시중금리는 떨어지고 있는데 대출금리는 오르는 기이한 결과가 초래됐다. 연초에는 정반대 상황이었다. 당국이 비대면 대환대출을 시행하면서 은행들 간 금리인하 경쟁을 유도했다.사정이 이렇다 보니 은행권에서는 “기준금리는 한은이 결정하지만 대출금리는 금감원이 조정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금감원은 각 은행의 자체 가계대출 목표를 관리하면서 대출규제를 준수하고 있는 지 여부를 감독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은행의 대출금리를 좌지우지할 권한은 없다. 은행의 대출금리는 준거금리에 가산금리를 더하고 우대금리를 제하는 방식으로 결정된다. 가산금리와 우대금리는 은행마다 원칙과 영업전략이 있으므로 외부에서 관여할 수는 없는 영역이다.금융당국은 가계부채가 급증하는 것이 은행의 낮은 금리 탓이라고 판단하는 듯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갈팡질팡하는 금융정책과 정부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올 상반기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이 27조원 가량 늘어나며 3년 만에 가장 큰 증가폭을 기록한 것은 규제 완화로 정책금융 상품인 디딤돌과 버팀목 대출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국무총리와 대통령실, 여당 정치인들까지 나서 한은의 금리인하를 공개적으로 압박하고, 은행에도 대출금리 인하를 유도했다. 7월부터 시행될 예정이었던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도 불분명한 이유로 두 달 연기했다. 정부와 정치권이 연초부터 대출을 받아 집을 사라고 부채질한 결과로 발생한 가계대출 문제를 은행의 대출금리 인상 만으로는 해결할 수는 없다.연간 대출이자로 1000만원을 은행에 내더라도 집값이 5000만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하면 금리와 관계없이 집을 사려고 하는 게 당연한 대중의 심리다. 대출 수요자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줘 가계대출 급증 현상을 초래한 금융당국과 정부의 정책 방향 전환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정경진 금융증권부장 ondam@viva100.com

2024-07-30 14:16 정경진 기자

[데스크 칼럼] 의대 증원 얻고 신뢰 잃은 정부

권순철 정치경제부장지난 2월 20일 전공의들은 정부의 의대 증원 발표에 반발해 집단 사직서를 제출하고 병원을 떠났다. 전공의가 근무하는 주요 100개 수련병원 등에서 1만2000여명이 집단으로 그만둔 것이다.이에 정부는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들에 “관용은 없다”며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할 것을 단호히 천명했다.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지 일주일이 되던 2월 26일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3월부터는 미복귀자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최소 3개월의 면허정지 처분과 관련 사법절차의 진행이 불가피 하다”고 강조했다.정부가 정한 복귀 시한이 지난 3월 4일에도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불법적인 집단행동에 대한 정부의 대응 원칙은 변함이 없다”며 “오늘부터 미복귀한 전공의 확인을 위해 현장 점검을 실시해 법과 원칙에 따라 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5월 17일 중앙재난안전본부 브리핑에서는 “현장을 이탈한 전공의들은 5월 31일 까지 복귀하지 않으면 추가 수련을 마칠 수 없어 2025년에 전문의 자격을 취득할 수 없게 된다”며 으름장을 놨다.정부는 전공의들이 떠난 의료공백을 메우기 위해 응급진료 체계 지원·유지 등을 위해 막대한 혈세를 투입했다. 복지부는 건강보험 재정 1882억원과 예비비 등 수천억원을 쏟아부었다.이랬던 정부가 전공의들에 면죄부를 줬다. 정부의 강경기조는 하루아침에 바뀌었다.지난 8일 정부는 미복귀 전공의들에 대한 행정처분을 하지 않기로 했다. 행정처분 철회에 이어 이들이 오는 9월 전공의 모집에 응시하면 특례까지 적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사직 후 9월 전공의 모집에 응시하는 경우 ‘1년 내 동일 과목·연차로 응시’를 제한하는 지침을 예외적으로 적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이 같은 조치는 그동안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혀가면서 환자 곁을 지켜온 전공의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됐다. 정부는 이에 대해 ‘27년만의 의대증원(1509명)’이라는 큰 소득을 얻었기 때문에 이런 비판을 감수하겠다는 태도였다.하지만 정부가 뜻한 바를 이뤘다고 해서 미복귀 전공의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은 옳지 않다. 정책의 일관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전공의들이 추가로 양보를 요구할 경우 끌려다닐 수 밖에 없다.정부가 많은 것을 양보했음에도 불구하고 전공의들은 복귀시한으로 정한 지난 15일까지 대부분이 돌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이번 사태를 야기한 정부의 사과와 각종 행정명령의 철회가 아닌 취소 그리고 일부는 현재 논의되고 있는 ‘의료개혁 패키지’에 반대하며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더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의 유화정책이 사실상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최근의 의정갈등 형국을 보면 정부는 밀어붙이고, 전공의들은 계속 버티고 있는 가운데 기세등등했던 정부는 하나하나 양보하면서도 계속 끌려가는 형국이다. 하지만 정부의 양보에도 불구하고 의대증원 문제로 야기된 의정갈등의 해결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다.법으로 통치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가 정책의 일관성을 지키지 않으면 국민들로부터 정부는 신뢰를 받을 수 없다. 한번 신뢰를 잃은 정부는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다시 받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권순철 정치경제부장 ikee@viva100.com

2024-07-23 14:19 권순철 기자

[데스크 칼럼] 자영업, 과감한 구조조정 필요

이형구 생활경제부장소상공인·자영업자들의 상태에 빨간 불이 들어 오고 있다. 문을 닫는 자영업자들이 늘고 있으며, 자영업자들의 대출 연체율도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국세청 국세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폐업 신고를 한 사업자는 98만 6487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보다 11만 9195명 증가한 것으로, 지난 2006년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후 가장 많은 숫자다. 폐업 사유별로 보면 ‘사업 부진’이 48만2183명으로 가장 많았다.폐업자의 증가로 자영업자 수는 올해 1분기 약 2년 만에 마이너스(-9000명)로 돌아선 뒤 2분기 10만1000명 줄며 감소 폭을 키우고 있다. 특히 올해 2분기 고용원 없는 영세 자영업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만4100명 줄며 2015년 4분기(-11만8200명) 이후 8년 반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줄었다.올해 들어 소상공인·자영업자가 갚지 못해 지역신용보증재단이 대신 변제한 은행 빚도 1조원을 넘어섰다. 지난 1∼5월 지역신용보증재단의 대위변제액은 1조291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74.1% 급증했다. 대위변제는 소상공인이 은행에서 대출받도록 보증해 준 지역신보가 대출을 대신 갚아주는 것이다. 대위변제 규모가 커지는 건 그만큼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의 경영 상황이 악화일로에 있다는 방증이다.정부는 이같은 위기를 감지하고 지난 1일 임대료·전기료·인건비 부담 완화, 정책자금 대출 상환기간 연장 등 총 25조원 규모의 ‘소상공인·자영업자 종합대책’을 내놨다.하지만 이같은 방안을 통해 한계 상황에 몰려 있는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이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사업 궤도에 오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고금리와 내수 침체 양상이 당분간 지속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소상공인·자영업의 위기에는 경기뿐만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도 크다. 한국의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중은 31.3%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웃 일본보다 약 18% 포인트(p)나 높다. 실제로 한국의 소상공인·자영업자는 전체 사업체의 약 99%를 차지하고 있다. 경기상황이 좋지 않은 데다, 자영업자·소상공인이 넘쳐나니 연쇄 부실 위험에 대한 우려가 가시지 않는다.경제전문가들은 위기의 자영업자들의 회생과 지나치게 높은 자영업 비중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자영업자들에 대한 금융지원보다는 구조조정을 동반한 대대적인 채무 재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은은 최근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자영업 대출 증가는 회생불가 자영업자의 구조조정 지연 및 잠재부실을 이연·누적시키는 효과가 있다”며 “채무 상환 능력이 크게 떨어졌거나 회생 가능성이 없는 자영업자에 대해 새출발기금 등을 통한 채무 재조정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경쟁력을 상실한 자영업자에 대한 과감한 구조조정과 회생지원이 필요하다는 뜻이다.하지만 이같은 해법은 550만명에 달하는 자영업자들의 반발을 불러일으 킬 것이 분명해 정치권과 정부로서는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반드시 해야 하지만 인기 없는 정책인 셈이다.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수 있을까.이형구 생활경제부장 scaler@viva100.com

2024-07-16 14:02 이형구 기자

[데스크 칼럼] '강남불패' 신화의 이유

채훈식 건설부동산부장‘강남불패신화’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자고로 ‘신화’란 보편적 상징으로 인류의 공통된 심층의식에서 발로된 원형상징의 이야기이다.강남의 아파트값은 절대로 하락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하나의 신화가 되어 국민들에게 거의 보편적 사실로서 받아들여지면서 강남불패신화라는 참신한 단어가 생겨났다.강남은 언제부터 부동산 시장에서 홀로 우뚝 서 사람들에게 굳건한 믿음을 주게 된 것일까?1990년대 초, 1기 신도시가 개발되던 무렵에 강남은 한 차례 세대교체를 겪었다. 강남에서 자녀 교육을 끝낸 부모들이 낡고 비싼 강남 아파트를 팔고 신도시의 신축아파트로 옮겨갔다. 그 사이 젊은 세대들이 자녀교육을 위해 강남에 입성했다. 당시에는 강남과 신도시의 아파트 값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당시 신축이었던 신도시 아파트는 세월이 흘러 어느새 낡은 아파트가 됐고, 강남의 아파트는 그보다 더 낡았지만, 아파트의 나이는 입지 앞에서 그다지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즉, 강남불패신화는 입지불변의 법칙과 비슷한 맥락이다.정부는 강남 집값을 잡고자 여러 신도시를 세웠고, 많은 인구가 신도시로 이동했으나 결과적으로 몇십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강남의 집값은 여전히 건재하며, 집값 오르는 속도가 빨라 한 번 팔면 다시 사기 힘든 곳이 됐다.무엇보다도 강남은 그 자체가 프리미엄으로 여겨진다. 정부의 각종 규제에도 불구하고 가격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이런 과거의 경험은 사람들에게 강남 아파트 가격이 결국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을 심어줬다.‘강남중의 강남’으로 불리는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는 최고가를 써 내려가고 있다.압구정 한양 8차 전용 210㎡는 지난달 83억5000만원에 거래돼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다. 해당 평형 매물은 부동산 시장이 급등했던 2020년만 해도 47억원 대에 거래됐다. 4년 만에 36억원이 상승한 것이다. 지난 3월 강남구 압구정동의 구현대 6·7차(전용 245㎡)는 115억원에 거래되며 압구정동 100억 시대를 열었다.결론적으로, 강남불패신화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복합적인 요인들이 만들어낸 필연적인 결과이다. 교육, 교통, 인프라, 경제 중심지로서의 강남은 앞으로도 그 가치가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특성들을 고려할 때, 강남불패신화는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정부의 규제에도 불구하고 강남의 집값이 오르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강남의 입지와 가치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불변의 법칙과 같기 때문이다.투기세력을 때려잡겠다는 선포는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더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고자 하는 다수의 욕구를 제한하겠다는 것이며, 더 부유한 삶을 꿈꾸며 노력하는 이들의 의지를 꺾는 일이다. 이는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실행하기에는 바람직하지 않은 행위다.채훈식 건설부동산부장 chae@viva100.com

2024-07-09 14:08 채훈식 기자

[데스크 칼럼] '대왕고래 출현' 한 달, 포항 앞바다

송남석 산업IT부장1차 오일쇼크가 터져 배럴당 국제유가가 3달러에서 13달러로 4배 이상 폭등한 1973년. 그로부터 2년 후 희대의 사기 사건이 터졌다. 프랑스 국영 정유사 ‘엘프 아키텐(Elf Aquitaine)’에 낯선 인물 2명이 찾아와 굴착작업 없이 냄새만으로 석유를 발견하는 혁신기술이 있다는 솔깃한 제안과 함께 였다.특수 장비를 장착한 비행기를 타고 높은 고도로 올라가 석유냄새를 탐지하는 식이었다. 조작해 놓은 테스트 화면에 석유 매장 이미지가 떳고, 황당할 정도로 허술한 수법에 엘프아키텐의 경영진은 그 기술을 확신했다. 이후 4년간 10억 프랑(당시 2200억원)의 막대한 사업비가 사기꾼들 손에 넘어갔다.프랑스의 경영전략 컨설턴트 올리비에 시보니(Olivier Sibony)가 자신의 저서 ‘선택 설계자들’에 소개한 편향된 정보에 의지해 저지른 치명적 실수 중 한 예시다. 그는 “그들도 나름대로 다양한 펙트를 확인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이미 결론을 내려놓은 상태, 즉 ‘스토리텔링의 마법’에 빠져있었다”고 설파했다.최근 국내에서는 길이 30m, 체중 190~200톤. 역대 지구 상 모든 생물 중 가장 거대한 동물, 대왕고래가 화제다. 그것도 뜬금없이 2024년 6월, 동해 영일만 앞바다 위로 불쑥 솟아올랐다. 그 고래는 지난달 3일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서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 매장 가능성이 크다”는 물리탐사 인용 발표로 소환됐다.최대 추정 매장량 140억배럴. 21세기 최대 석유개발 사업이란 남미 가이아나 광구(110억배럴)보다도 많은 양이다. 여론의 스포트라이트는 물리탐사 용역업체 엑트지오를 향했지만, 논란만 키웠다. 1인 기업에 4년 법인 영업세 체납, 소재지가 가정집이라고 하니 그럴 법도 하다. 석유공사는 액트지오를 포함, 3개사가 입찰에 참여했다 면서도 명단과 평가, 선정 과정, 자문위원회 회의록 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하지만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착착’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12월부터 4개월간 1000억원 안팎의 예산을 투입, 7개 유망구조 중 1곳을 탐사 시추키로 했고, 노르웨이 시드릴사와 시추선 임대 및 다수의 용역 계약도 맺었다. 글로벌 메이저 석유기업과 접촉 중이란 김동섭 석유공사 사장은 최소 5차례 5천억원 이상의 탐사시추 재원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문제는 이런 국가적 사업에 충분한 과학적 검토나 준비가 있었느냐 하는 부분이다. 국민 여론도 비슷하다. 지난달 한국갤럽에 따르면 국민의 60%가 정부 발표를 ‘믿지 않는다’고 답했다. ‘신뢰한다’는 28%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동해바다의 황금을 무턱대고 묻어두자는 것만은 아니다. 국부를 떠나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라도 대왕고래의 꿈은 현실이 됐으면 한다.다만, 동해 앞바다에 뭍혀있다는 기름과 가스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치밀하게 검토한 뒤 시추해도 늦지 않다. 7번 시추보다 1~2번 시추로 결과를 낼 수 있다면, 그것이 국익에 더 부합하는 일 아닌가. 오늘이 대왕고래 프로젝트 부상, 한 달째 되는 날이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High Risk High Return)이라고 했던가…. 대왕고래에 우리가 너무 빨리 달아올랐다. 자칫 우리 스스로가 대왕고래란 스토리텔링의 마법에 걸려 있는 것은 아닌지도 되돌아 볼 때다.송남석 산업IT부장 songnim@viva100.com

2024-07-03 06:09 송남석 기자

[데스크 칼럼] 또 다시 불거진 사생활 무단도용

허미선 문화부장표절, 저작권 침해, 미투 등 잊을만하면 고질병처럼 불거지는 논란들이 있다. 충분한 동의 없는 사생활 및 사적 대화의 무단 도용 그리고 창작의 자유, 기묘하게 충돌하는 두 권리에 대한 공방 또한 그렇다. 충분히 동의되지 않은 채 차용돼 ‘예술작품’이 된 삶과 이를 차용해 이야기로 재구성한 예술가의 표현의 자유 등은 예술계가 늘 숙고하며 탐구 중이며 반드시 그래야 할 사안들이기도 하다.4년 전 김봉곤 작가는 지인들과 나눈 사적 대화를 동의 없이 인용해 구설에 올랐다. 이에 그는 사과와 동시에 그 내용이 담긴 출판물의 회수·환불조치를 알리는가 하면 그해 수상한 젊은작가상도 반납했다. 그리고 2024년 정지돈 작가가 또 다시 충분히 동의되지 않은 사생활 도용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그의 전 연인이라는 유튜버는 정 작가의 ‘야간 경비원의 일기’ ‘브레이브 뉴 휴먼’ 속 인물들에 자신의 내밀한 사생활과 연인 관계일 때 나눴던 대화의 일부, 가정사 등이 무단 도용됐다고 주장했다. 특히 ‘브레이브 뉴 휴먼’ 속 캐릭터는 같은 이름인데다 가족사마저 비슷하다고 강조했다.작가 고유의 ‘창작의 자유’와 실존 인물의 ‘명예 훼손’ 가능성이 충돌한 사건이 재발한 셈이다. 법학계에 따르면 “작가가 실화에 근거했다고 밝히지 않거나 제3자가 누구 이야기인지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유사하다면 명예훼손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며 “결국 작가가 최대한 허구성을 구현해야 법적 책임을 피해갈 수 있다.”충분히 동의되지 않은 사생활 도용에 대해 다수의 출판관계자들 역시 “당연히 잘못”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럼에도 사생활 및 사적 대화의 무단 도용과 창작의 자유가 충돌하는 논란은 잊을만하면 다시 불거지곤 한다.문학은 물론 공연, TV와 영화 등 영상 콘텐츠, 만화 등 모든 이야기는 ‘인간의 삶’을 재료로 한다. 창작자 스스로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의 삶을 통한 간접 경험이기도 하다. 이는 창작의 밑거름이 돼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곤 한다. 이에 이 같은 논란은 문학계 뿐 아니라 예술계에서 실재하고 있고 여전히 현재진행 중인 것들이기도 하다.예술의 소재가 되는 삶과 이를 차용해 예술로 끌어들이는 행위, 그 사이에는 ‘충분한 동의’가 부재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 삶과 행위의 무단 차용 여부는 폭로를 통해 격렬히 충돌하거나 어느 한쪽의 외면 혹은 자포자기로 흐지부지되곤 한다. 정 작가의 사생활 무단 도용 의혹을 제기한 유튜버 역시 처음 도용 사실을 인지했을 때는 지인의 “창작 권리랑 충돌해 법적으로 따지기 어렵다”는 전언에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다.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들 한다. 그렇게 누군가의 삶과 경험은 예술의 재료가 되고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곤 한다. 하지만 이들은 누군가의 고유성이자 정체성이며 숨기고 싶은 치부이기도 하다. ‘예술’을 위해 마구잡이로 침해돼서는 안될, ‘충분히 동의돼 인용 혹은 차용되고 윤리적으로 다뤄야 할’ 것들이다.법조계의 조언처럼 “프라이버시 침해로 인한 민법 750조 불법행위 사례로 재현의 윤리 및 취재 자료의 정당성은 여러 장르의 창작자들이 조심스레 다뤄야 하는 부분”이며 “결국 작가 윤리의 문제”다.허미선 문화부장 hurlkie@viva100.com

2024-06-25 14:10 허미선 기자

[데스크 칼럼] 재정준칙이 꼭 필요한 이유

권순철 정치경제부장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며 가장 뚜렷하게 바뀐 경제정책 기조는 바로 건전재정이다. 정부의 건전재정 정책 천명은 진보정부였던 문재인 정부와의 차별화도 염두에 둔 것이었다.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4월 국무회의에서 “전 정부에서 국가채무가 무려 400조원이 추가로 늘어났다”며 문재인 정부의 재정지출을 작심 비판했다. 윤 대통령은 “국가채무 증가로 인한 부담은 고스란히 미래세대가 떠안게 될 것”이라며 “방만한 지출로 감내할 수 없는 고통을 미래세대에 떠넘기는 것은 미래세대에 대한 착취”라고까지 했다.이 같은 정책기조에 따라 기획재정부는 지난해와 올해 사실상 긴축예산을 편성했다. 이 과정에서 연구개발(RD) 예산과 민간보조금이 대폭 삭감되고 각 부처 예산의 지출구조조정도 단행했다. 정부는 지난 3월에 발표한 내년도 예산편성 지침에서도 기존의 건전재정기조를 유지해 지출 증가를 최소화하기로 했다.하지만 정부는 건전재정기조를 천명하며 재정준칙을 제도화하자고 강조해왔지만 아직 지키지 못하고 있다.정부는 지난 총선 다음날인 4월 11일 국무회의를 열고 ‘2023회계연도 국가결산 보고서’를 심의, 의결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실질적인 재정 상태를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는 87조원 적자로 집계됐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3.9%였다. 정부는 재정준칙을 도입해서 관리재정수지의 적자 폭을 매년 GDP의 3%이내로 묶는다는 것이 목표인데, 이를 지키지 못한 것이다. 올해도 적자상태가 유지되고 있다. 정부가 지난 1분기에만 한국은행에서 33조원 정도를 빌려, 부족한 재정을 충당하기도 했다.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긴축’이라는 용어만 나와도 손사래를 치고 있다. 오히려 재정확장을 주장하고 있다. 지금은 정부여당의 반대로 한 발 후퇴했지만 지난 총선 때부터 전 국민에 25만원 민생지원금 지급 등 ‘돈을 더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때문에 이젠 우리나라에서도 선진국처럼 국가부채와 재정적자를 일정 수준 이하로 강제로 관리하는 재정준칙을 조속히 제도화해야 한다.독일은 통일 이후 국가채무가 급증하자 지난 2011년 헌법에 ‘부채 브레이크 조항’ 신설하는 등 가장 엄격한 재정준칙을 도입했다. 유럽연합(EU)은 지난 1991년 마스트리히트 조약에서 모든 회원국이 ‘국가채무 60%, 재정적자 -3%’를 충족하도록 했다. 미국은 1990년 예산집행법에 ‘페이고(pay-go, 버는 만큼만 쓰자)’ 원칙을 도입했다.재정준칙은 나라살림의 적자로 인한 재정적 부담을 사전에 방지하고 탄탄한 국가 신용도를 유지하고, 나아가 미래 세대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물론 재정준칙 도입 관련해서는 여야 정치권의 생각이 다르고, 경제학자 등 전문가들의 견해가 다를 수 있다.지금 국가채무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 선거 때마다 여야가 포퓰리즘 공약을 내세우고 정부가 선심성 예산을 편성해야 하는 상황에서 최소한의 견제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특히 최근과 같이 이상 기후 상황에서 물가 급등 등 얘기치 못한 추가 예산을 사용할 것에 대비해서도 건전재정은 필요하다.이번 22대 국회에서 재정준칙 도입을 골자로 하는 국가재정법개정안이 대승적 차원에서 반드시 통과되기를 바란다.권순철 정치경제부장 ikee@viva100.com

2024-06-18 13:51 권순철 기자

[데스크 칼럼] 택배 쓰레기

이형구 생활경제부장출·퇴근 할 때 나름 몸 생각을 해서 아파트 계단을 걸어서 오른다. 계단을 오르다 보면 택배상자가 문 앞에 놓여있지 않은 집을 찾기 어렵다. 종이박스와 비닐백, 스티로폼으로 포장된 택배상자가 집집마다 한 두개씩 쌓여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이 택배를 이용하고 있는 걸까.한국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국내 택배 물동량은 2012년 14억598만개에서 2022년 41억2300만개로 3배 가까이 급증했다. 환경부는 작년 물동량을 40억2329만개로 추산했는데 이를 주민등록 인구(5130만여명)로 나누면 국민 한 사람당 한 해 약 78개 택배를 주고받은 셈이 된다.한 해 수십억개에 달하는 택배 때문에 발생하는 폐기물량도 엄청나다.한국골판지포장산업협동조합에 따르면 택배에 많이 쓰이는 골판지상자를 생산하는 국내 기업은 2918곳, 골판지 포장 생산량은 66억1100만㎡이다. 골판지 포장 원재료인 골판지원지 국내 사용량은 533만2000여톤에 이른다. 택배에 쓰인 골판지 상자들이 그대로 버려진다고 하면 한해 수백만톤씩 폐기물이 발생하는 것이다.골판지뿐만 아니라 택배포장에 사용되는 스티로폼, 비닐백 등을 더하면 어마어마한 물량의 쓰레기가 택배에서 나오는 셈이다.이에 따른 환경문제도 심각하다. 환경부에 따르면 일회용 상자로 택배를 보낼 때 1회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이산화탄소 환산량으로 835.1g에 달한다.택배 탓에 발생하는 쓰레기가 워낙 많으니 이를 감축하자는 데는 누구도 이견을 달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정부는 올해 4월부터 시행하기로 한 택배 과대포장 규제 시행을 2년간 유예했다. 당초 4월 30일부터 시행하기로 한 택배 과대포장 규제는 ‘제품을 소비자에게 수송하기 위한 일회용 포장’은 포장공간비율이 50% 이하이고횟수는 1차례여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2018년부터 법제화가 추진돼 2022년 4월 30일 ‘제품의 포장재질·포장방법에 관한 기준 등에 관한 규칙’에 명시하기로 했지만, 계도기간을 부여해 2년간 단속을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환경관련 단체는 정부의 일회용품 감축정책이 후퇴했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하지만 관련업계에서는 애초에 당위성만 가지고 섣부르게 규제를 도입해,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일례로 신선식품의 경우 제품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보냉재가 필요한데 보냉재를 제품으로 볼 것이냐 포장재로 볼 것이냐 하는 문제같은 것이다. 포장재로 보면 포장공간 비율 50%이하를 맞추기 어렵고, 제품으로 간주하면 식품 배송 시 제품에 꼭 맞는 상자를 쓰는 대신 상자 빈 곳을 보냉재로 채워서 포장공간비율 규제에서 비껴갈 수 있다.과대포장 규제가 전 세계에서 한국이 처음으로 입법하는 사례이다 보니 정부와 입법 당국도 제도 시행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후문이다. 환경규제에 관해서는 선도적인 유럽연합(EU)도 2030년부터 제품과 택배 포장의 공간을 40% 이하로 제한하는 규제의 도입을 이제 검토할 정도로 이번 택배 과대포장 규제는 한국이 앞서가고 있다.이는 택배가 일상인 사회에서 택배 쓰레기를 제도 도입을 통해 줄이기 어려운 현실을 반증해준다. 택배 사용량을 줄이려는 시민들의 노력이 좀더 필요해 보인다. 마침 6월은 ‘환경의 날’이 있는 달이다. 이번 주말에는 온라인 쇼핑몰 대신 운동삼아 동네 시장이나 마트로 나가보자.이형구 생활경제부장 scaler@viva100.com

2024-06-11 14:11 이형구 기자

[데스크 칼럼] 하자 아파트 이참에 뿌리뽑자

채훈식 건설부동산부장건물의 안전성은 곧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다. 1970년 서울 마포구 와우아파트 붕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2014년 경주 마우나리조트 체육관 붕괴 등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대형참사는 부실공사, 불법 증·개축이 원인이었다. 2022년 광주 아파트 붕괴와 2023년 인천 아파트 주차장 붕괴 등 대형 참사가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에 시민들과 아파트 입주민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최근에도 신축 아파트 하자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 서울 강서 소재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 천장이 무너졌다. 전남 무안군의 한 신축 아파트에선 건물 외벽이 휘고 벽면이 뒤틀린 모습이 발견되는 등 다수의 하자가 발견됐다.수많은 대형 건설사들이 해외 수주로 국제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한창 건설 중인 아파트의 일부가 무너진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이미 실상을 알고 있던 관계자들은 터질 게 터졌다는 의견이다.국토교통부 하자심사분쟁조종위원회에 따르면 올 2월 기준 발생한 하자 분쟁건수는 4300건이다. 이는 지난 2014년(2000여건) 대비 2배 이상 급증한 것이다.건설사들의 하자 문제는 단순히 특정 요소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시공 관리, 자재, 설계, 인력, 감리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먼저 건설 현장에서 시공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작은 실수나 오류가 누적돼 큰 하자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현장 감독자의 경험 부족, 감독 소홀, 그리고 공사 기간 단축을 위한 무리한 작업 등이 원인으로 작용한다.또 비용 절감을 위해 저가의 저품질 자재를 사용하는 경우, 건물의 내구성과 안전성이 저하된다. 이러한 자재는 초기에는 문제가 없어 보일 수 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결함이 드러나고 큰 하자로 이어질 수 있다.설계 단계에서의 오류나 변경 사항이 시공 단계에서 제대로 반영되지 않을 경우에도 하자로 이어질 수 있다. 설계와 시공 간의 긴밀한 협력과 소통 부족이 주요 원인이다.숙련된 인력의 부족은 건설 품질 저하의 주요 원인 중 하나다. 경력이 짧거나 기술이 부족한 인력이 현장에 투입되면, 작업의 정밀도와 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부실공사를 줄이기 위해서는 각 단계에서의 철저한 관리와 협력이 필요하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건설 품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요구된다.건설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으나 안전에 관한 시스템과 의식 수준에 있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사고가 일어난 뒤 부랴부랴 수습하며 단기적인 해결책만 내놓아서는 언제나 제자리일 것이다. 안전하고 품질 높은 건축물을 제공함으로써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고, 건설 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정부도 건설 규제를 강화하고, 철저한 감독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위험성이 높은 아파트에 대해 전수 조사를 벌이고 건설계에 만연한 이권카르텔을 뿌리 뽑아야 한다. 이를 통해 건설사들의 부실공사를 방지하고 하자 발생 시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해 건설사들이 책임감 있게 공사를 수행하도록 유도해야 한다.채훈식 건설부동산부장 chae@viva100.com

2024-06-04 14:04 채훈식 기자

[데스크 칼럼] 이복현은 '샤워실의 바보'가 아니다

명재곤 금융증권부장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나름 결자해지하고 있지만 그래도 명쾌하지 않다. 앞뒤 계산이 치밀할 것 같은 검사출신인 그가 스스로를 옭아매지는 않았을 텐데 ‘공매도 6월 재개설’을 왜 꺼냈을까. 서울도 아닌 뉴욕에서.‘개인적 생각’이라고 단서를 달았지만 대통령실이 바로 나서서 이 금감원장의 발언을 반박하는 걸 보면 현 정권이 이 사단을 가볍게 보지는 않은 것 같다. 주식 공매도 금지와 재개는 금융위원회가 발표하는 게 지휘계통상 맞는 데 금감원장이 불쑥 던지고 파장이 일자 대통령실측이 급히 무마에 나서니 다소 묘할 수 밖에 없다.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인베스트 K-파이낸스’투자설명회 과정에서 던진 ‘6월중 공매도 일부 재개’ 발언이 파장이 일자 “전산시스템 구축등을 감안하면 내년 1분기 정도에 가능할 것”이라고 열흘여 지나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물러섰다.앞서 이 금감원장은 “개인적인 욕심이나 계획은 6월중 공매도 일부 재개를 하는 것”이라며 “6월 재개와 관련해 기술적·제도적 미비점이 있더라도 이해관계자 의견을 들어 어떤 타임 프레임으로 재개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을 시장과 소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증권가는 바로 들썩였다. 시장에서는 공매도 재개 우선종목에 대한 관측을 쏟아냈고 일반투자자들은 외국인 등과의 ‘기울어진 운동장론’을 앞세워 반대와 비판의 목소리를 키웠다.일단 이 금감원장의 발언은 ‘개인적 생각’으로 마무리됐다. 대통령실은 22일 “투자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질 때까지는 공매도를 재개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며 진화에 나섰다. 이 금감원장도 이후 “어쨌든 정부의 일관된 입장은 전산시스템 마련 이후 공매도 관련 의사결정을 하겠다는 것이고 그건 변함이 없다”고 원칙론적인 입장을 보였다.이런 기승전결이라면 대충 얼버무려 넘어가도 될 듯 싶지만 ‘기자의’ 개인적 생각은 다르다.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얼마 전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공매도 재개에 대한 이견이 노출되는 것에 대해 “특별히 말씀드릴 사항이 없다”면서 “금융위, 금감원, 거래소 3개 기관이 자기 역할을 해나가면서 최종 정책이 결정될 것이다”고 말했다. 3개 기관의 역할이 각각 있다는 것이다. 뉴욕 그 투자설명회에 정 이사장도 동행했다. 이 대목에서 이 금감원장의 ‘개인적 생각’은 자칫하면 ‘개인적 일탈’로 지적받을 수 있다.공매도 재개와 관련해 정책결정의 직제상 책임기관은 금융위이고, 전산시스템을 개발하고 운용하는 실무 책임자는 거래소이다. 물론 3자 협의아래 ‘용산’의 재가를 받아야 하지만.그런데 이 금감원장은 왜 뉴욕에서 ‘뜬금포’를 날렸을까. 그는 당시 공매도 외에 상법개정 논의, 횡재세 쟁점,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리스크 등에 대해 ‘개인적 생각’이라며 일부 이슈는 국회 영역이고 금융위의 소관임에도 나름 소신있게 입을 열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사건에 대해서도 ‘윤석열 사단’의 막내인 그는 일관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그래서 일각에서는 정부가 공매도 재개 조기화 시간표를 내부적으로 짜놓고 시장 여론을 가늠해보려고 슬쩍 흘린 게 아니냐고 보기도 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을 감안할 때 1400만 일반 투자자가 반대하는 공매도 재개를 금감원이 대통령실과 사전 논의도 없이 불쑥 던졌다고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금감원이 금융위는 건너 뛰어도 대통령실을 ‘패싱’하지는 못하지 않겠는가. 이복현 금감원장이 또 한명의 ‘샤워실의 바보’는 아닐 것이라는 전제에서다.명재곤 금융증권부장 daysunmoon419@viva100.com

2024-05-28 09:28 명재곤 기자

[데스크 칼럼] 금리와 돈길

송남석 산업IT부장금리는 돈의 길이고, 돈길은 금리란 강력한 물리력을 등에 업은 현실 권력이다. 물길(자연)이 중력의 골을 타고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이치라면, 금리와 돈길은 정 반대 결을 타고 났다. 하지만 우리네 삶은 돈길의 절대 영역이다. 두 길 간 공통점이 있다면 극도의 불안정과 한 자리에 오래 머무는 것을 싫어하는 천성을 타고 났다는 점이다.그래서 돈길에서 자유로운 현대인이 없다고 하는가 보다. 그런 돈길이 최근 5년 안팎 ‘고금리’ 아래 요지부동, 정체돼 있다. 곳곳에서 불거진 금리인하 시그널이란 ‘희망고문’만 벌써 1년째다. 그러는 새 우리 생활 역시 상당부분 굴절되고 있다. 지금 이 시간, 우리는 예측불허의 불안정한 돈길 위, 변곡점 위에 서 있다.시작은 코로나 팬테믹이란 돌연변이 등장이었고, 비틀어진 일상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낯선 한미 간 금리다. 양국 간 금리차가 역대 최대인 2%까지 벌어진 지도 꽤 됐다. 팬데믹 때 0.5%까지 떨어졌던 한국의 기준금리는 순식간에 3.5%까지 치솟은 뒤 11회 연속 동결 기조다. 반면 미국은 물가잡기란 미명 아래 2022년부터 11차례나 올렸다. 그 결과, 긴축 당시 0.00∼0.25%이던 미국의 기준 금리는 5.25∼5.50%까지 치솟았다. 돈길에 변화가 생기자 국내 자금이나 투자자들은 달러나 채권, 금 등 현물투자에서부터 미장이나 일장 참전 등 새 길을 찾아 헤매고 있다.물론, 예상했던 것 만큼 자본 이탈이 심각하지 않아 다행일 수 있겠지만, 우리 경제와 산업에는 격랑이 몰아쳤다. 지난해 9월, 원·달러 환율은 한때 1442.2원까지 폭등하는 등 요동쳤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1488원) 이후 13년 6개월여 만에 최고치다. 225조원 안팎으로 추산되는 기업들의 달러 빚은 당장 ‘독’으로 돌아왔고, 수입기업은 지금도 후유증에 몸살 중이다. 물론, 수출이 늘고 수입이 줄면서 11개월째 인위적 경상수지 흑자를 내고 있는 이면도 존재한다.이런 돈길의 흐름에 변화의 조짐이 감지된다. 이달 중순, 미국의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0.1%p 떨어지자 금리인하 기대감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금리 인상 가능성이란 역신호로 읽기도 한다. 하지만 코로나 3년 풀려나온 달러만큼 거둬들여야 한다는 논리가 아직은 대세인 듯 싶다.한은 금통위가 내일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결정한다. 시장의 관심은 단연 기준금리 인하 시점에 대한 메시지다. 경제 성장률과 물가 전망치가 절대 상수겠지만, 미국에 앞서 선제 금리 인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호전되고 있는 각종 지표와 시장 내 통화정책 전환에 대한 기대감이 그 배경이다. 어쨌든 현 시점에서 한국이나 미국이나 연내 금리인하론이 대세라는 것만은 부인하기 어려운 현실로 보인다. 전세계 경제가 올해 중 금리 변곡점, 혹은 전환기를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물이나 돈이 한 곳에 오래 고여 있으면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원리일까. 요즘처럼 환율이 뛰고 돈길이 밖을 향하면 고물가이고, 고물가는 다시 저금리의 물레방아를 돌려 순환하는 식이다. 그래서 경제가 지속적인 수축과 이완을 거듭하는지도 모르겠다. 갈수록 복잡다단해지는 시대다. 이제 돈길은 언제쯤 또 다른 물꼬를 낼까. 바로 지금이 돈길 격변기 아닐까.송남석 산업IT부장 songnim@viva100.com

2024-05-22 06:46 송남석 기자

[데스크 칼럼] 진정한 ‘멀티’, 결국 다양성과 자율성의 문제

허미선 문화부장결국 다양성과 자율성 그리고 독자성 부재 혹은 불허의 문제다. 뉴진스를 키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출신 제작자이자 자타칭 ‘뉴진스의 엄마’ 민희진 어도어(ADOR) 대표와 방탄소년단(BTS),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등의 빅히트엔터테인먼트(Big Hit Entertainment)를 시작으로 엔하이픈, 아일릿의 빌리프랩, 르세라핌의 쏘스뮤직, 세븐틴 등의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지코(ZICO)가 이끄는 케이오지(KOZ) 엔터테인먼트, 이타카홀딩스 등 다양한 레이블들을 산하에 둔 하이브 간 격전이 연일 화제다.최근 몇년 간 K팝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결의 열풍을 이끌며 급성장했다. 국가경제든 특정 시장이든 급격한 성장에는 늘 그렇듯 그 빠른 속도를 감당하지 못하고 불거지는 문제들이 생기게 마련이다. K팝 산업 뿐 아니다. 선진시스템인 브로드웨이 제작 시스템을 도입했지만 여전히 ‘알음알음’ 라인이 존재하는 캐스팅 문화, 배고파야만 한다는 비틀린 예술주의, 저작권과 창작권에 대한 인식부족, 가족주의와 감정에 호소하는 극단 마인드 등이 잔재처럼 남아 있는 공연계 역시 마찬가지다. 비슷한 극들이 양산되고 소수 배우들이 여러 작품에 동시 출연하는 등 다양성은 사라지고 기회의 균등을 해치는가 하면 임금체불 문제 등이 끊임없이 불거진다. 원작자나 초연에 참여했던 창작진이 해당 공연이 올라가는 사실도 모르는 심각한 저작권 침해, 창작진에 대한 예우 부재 등의 현상도 난무 중이다. 이 또한 성장통이자 필수불가결한 과정이기도 하다. 이는 현재 갈등이 불거진 하이브 뿐 아니라 지난해 초 SM엔터테인먼트 인수전을 벌인 카카오엔터테인먼트도 피해갈 수 없는 과정이다. 하나의 기업이 다양한 형태의 군소 레이블을 운영하는 하이브의 멀티레이블은 해외 음악산업에서는 꽤 오래도록 이어온 흔한 방식이다. 유니버설 음악이 그렇고 소니뮤직이 그렇다. 신생 레이블 론칭, MA, IP확보, 투자, 합작 등 어떤 방식으로든 다양한 레이블들을 산하에 둠으로서 사세를 확장하고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더불어 사업 공백기를 최소화한 수익 안정화 효과도 누릴 수 있다. 초기 회사의 수익 대부분이 방탄소년단에 ‘편중’돼 불거진 위기론을 타파하는 데도 꽤 유효한 전략이었다.다만 이는 모기업과 레이블 간 긴밀한 소통과 수평적 구조 그리고 레이블마다의 독자성, 다양성의 확보, 건전한 경쟁체제, 자율성의 허락이 전제돼야 한다. 현재 하이브와 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경영권 탈취 시도 및 배임 혐의, 이로 인한 대표직 해임 타탕성, 무속인의 경영 및 인사 논의 의혹, 아일릿의 뉴진스 표절, 그룹간 홍보 차별 및 뉴진스 홀대, 음반 사재기, 노예계약 등을 두고 벌이는 갈등은 진정한 ‘멀티’가 아닌 전제들이 부재해 벌어지는 부작용에 가깝다. 급기야 외신에서는 ‘K팝 가부장제’를 꼬집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지만 누가 옳고 그른지는 자극적인 언론전이나 대중과의 공감대 형성 싸움이 아닌 법정에서 가려져야할 일이다. 지금의 사태가 멀티레이블이라는 나름 선진적인 시스템의 안착 혹은 이를 뛰어넘는 새로운 체계 구축을 위한 ‘성장통’이 될지, 어설픈 ‘부작용’으로 끝날지는 이제부터의 행보에 달렸다. 언론과 대중들을 부추기기 보다는 본질적인 문제들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논의를, 그리고 두 측의 무차별 언론전에 무작위로 거론되고 있는 아티스트들에 대한 보호 체계를 가동시켜야할 때다 허미선 문화부장 hurlkie@viva100.com

2024-05-07 14:02 허미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