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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재곤의 증시산책] 금투세가 협치의 물꼬를 틀까

국회가 불통에서 소통으로 작동할때 협치와 민생, 증시는 살아난다.(사진=연합뉴스)‘협치(協治)’는 폭염에 녹아버렸나. ‘여야정 민생협의체’를 만든다고 하니 그나마 기다린다. 제22대 국회가 개원한지 3개월여 지났다. 여전히 협치실종 상태다. 오는 18일 거대야당 더불어민주당의 새 대표 체제가 발족한다. 정국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설 계기가 될 게다.용산 대통령실도 발전적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협치가 절실하다. 불통의 시간이 길수록 민생은 더 어두워진다. 합의 가능한 법(정책)도 먼지만 쌓이고 있다. 민생우선의 상식적 출발선에서 양보와 조율을 거쳐 타협의 산물을 도출해야 한다.▶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가 여야정 민생협치의 시험대에 올랐다. ‘친일파 밀정’이슈로 들끓는 2024년 광복절. 이날 오후 일단의 주식투자자들은 여의도 민주당사 앞에서 금투세 폐지 집회를 연다. 대통령실도 여당인 국민의힘도 금투세를 지우려고 한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금투세가 시행되면)주식시장 큰손들이 이탈할 가능성이 높고 이에 따라 1400만 개미투자자들이 피해를 볼 것”이라며 금투세 폐지에 목청을 돋운다.금투세는 국내 상장주식 및 관련 펀드 등의 양도차익으로 금융소득이 연간 5000만원을 넘기면 과세(세율 22%, 3억원 초과시 27.5%)되는 제도다. 당초 2023년 도입하기로 당시 여야정이 합의했으나 2025년1월로 유예됐다. 정부와 여당은 최근 증시 일시 폭락사태가 일자 금투세 폐지 논의에 다시 불지폈다.▶일차적으로 일단 공은 입법권을 장악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으로 넘어왔다. ‘조세정의’ ‘부자감세’라는 주장을 펴면서 금투세 시행을 견지했던 민주당은 현재 다소 복잡한 입장이다. 당장 이재명 당 대표 후보는 전당대회 과정에서 금투세 과세기준을 연간 투자소득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인상하자는 의견을 내놨다. 당내 의견도 엇갈린다.“우리나라 주식시장의 불안정성과 취약성이 개선되지 않는 한 금투세 도입은 미루는 것이 맞다” “시행시기를 재유예하면 금투세 부과대상이 되는 부자에게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 부자감세 정책에 민주당이 동의해서는 안된다” “전대에서 지도부가 구성되고 나면 지도부를 중심으로 당의 총의를 확인하는 작업을 해야만 한다” 등 금투세 이슈가 민주당내 정책·노선갈등의 심지가 되는 조짐마저 엿보인다.제3당인 조국혁신당은 12일 금투세 폐지에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국회에서 9월안에 금투세 시행여부를 결판내자고 제안했다.▶이재명 2기 체제가 출범하면 금투세에 대한 민주당내 이견은 교통정리가 된다. 여당 및 정부를 향해 공식적인 대안을 제시, 협의에 나선다. 이 때부터 공은 다시 윤석열 정권으로 넘어간다. 정치공학적으로 볼 때 민주당이 금투세 폐지 카드를 꺼낼 확률은 희박하다. 시행시기 재유예, 과세구간 완화 등 2개의 카드중 하나거나 이를 혼용한 대안을 내밀 것으로 조심스럽게 예상한다. 제21대 국회 막바지에 국민연금개혁안에 대해 나름 의미있는 양보안을 제시했던 경우와 비슷하게 중도외연확장을 위한 ‘변화된’모습을 보일 소지가 크다. 근래 ‘먹사니즘’에 한층 방점을 두고 있어 더욱 그렇다. 문제는 용산과 국민의힘이다. 전례를 비춰볼 때 윤 대통령이 그 중심에 있다.대통령실은 최근 “정부가 제안한 금투세 폐지방침에 대해 국회에서 전향적 자세로 논의해 달라”고 촉구한 바 있다. ‘폐지방침 전향적 논의’에서 윤 대통령은 속내를 보여줬다. 폐지외엔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행간의 의미를 담았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이 동의하지 않고서는 폐지는 불가능하다. 일단 국회의 논의과정에서 용산을 설득할 묘수를 찾아야 한다. 협치의 묘수를 혹 찾았을 때 대통령실의 반응이 마지막 관문이다.금투세 해법이 협치정국의 단초가 되기를 바란다. 협치는 이해당사자간 만족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주고 받는 과정에서 결실을 맺는 것이다.▶주식투자자들은 계산에 밝다. 매매수수료 0.001%라도 아끼려고 거래 증권사를 바꾼다. 금투세 논의과정에서 용산과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중 어느 곳이 협치의 정신을 발휘했는 지, 협치의 파괴자인 지를 따져 볼게다. 전격폐지와 전면시행만이 선택지가 아니라면 제3의 대안을 찾는 지혜가 요구되는 시기다. 시장은 불투명성을 경계한다. 진정한 협치는 민생을 위해 권력과 권한을 나누는 것을 전제로 출발한다. 이럴 때 주식시장은 안정된다.명재곤 기자 daysunmoon419@viva100.com

2024-08-13 11:13 명재곤 기자

[기자수첩] ‘코리아 디스카운트’ 심화시키는 두산 합병

정은지 산업IT부 기자최근 두산그룹이 발표한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의 합병 계획이 한국 경제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 계획은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과 주주가치 보호를 둘러싼 첨예한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정재계는 물론 금융감독당국의 이목까지 집중시키고 있다.특히 이번 사안은 흑자 기업과 적자 기업 간 논란의 여지가 있는 합병 비율과 총수 일가의 지배력 강화 의혹, 그리고 일반 주주들의 거센 반발 등 한국 기업 지배구조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이는 단순한 기업 합병을 넘어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점을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고 있다.가장 큰 쟁점은 합병 비율이다. 흑자 기업인 두산밥캣과 적자 기업인 두산로보틱스의 합병 비율이 1대0.63으로 책정된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잘 익은 사과 한 개와 상한 사과 반 개를 맞바꾸는 것과 다름없다. 주주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을지는 더 의문이다.‘등주고비(燈主考比)’란 사자성어가 떠오른다. 밝은 빛(두산밥캣의 실적) 아래서 평가해야 할 기업의 가치를 의도적으로 어둡게 만들어 평가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두산의 이같은 결정은 소위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주 저평가)’를 심화시키는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한국 기업들의 지배구조와 주주 친화적 정책에 의구심을 품게 되면, 결국 한국 경제 전체가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두산그룹은 지금이라도 합병 계획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단기적인 총수 일가의 이익보다는 모든 이해관계자의 장기적인 이익을 고려하는 결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는 두산그룹뿐만 아니라 한국 재계 전체가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기업 지배구조를 갖추는 계기가 될 것이다.정은지 기자 blue@viva100.com

2024-08-13 06:56 정은지 기자

[기자수첩] 못 믿을 정부 미분양 통계...누굴 믿어야하나?

문경란 건설부동산부 기자최근 서울, 수도권을 중심으로 부동산 시장이 뜨겁다. 주택 공급 부족 우려에 전셋값이 치솟고 매매가격까지 들썩이면서 2020~2021년 ‘미친 집값’ 수준을 상회하는 거래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동안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던 미분양 아파트도 속속 완판(100% 계약 완료)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실수요자들은 또 마음이 조급해진다. 시장에선 ‘패닉 바잉(시장 심리 불안으로 무리하게 구매하는 행위)’ 상황이 재현될 가능성도 예상되고 있다.주택 수요자들은 주택 매수를 위해 원하는 지역의 인허가, 입주물량, 미분양 통계 등 다양한 통계를 살펴본다. 특히 미분양 통계는 수요자들이 청약, 주택 매수 여부를 결정하는 판단의 근거로 활용하는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 그러나 정부에서 발표하는 이러한 통계가 정확한 내용이 아니라면 어떨까?특히 시장에선 건설사업 주체의 자발적 신고로 집계되는 미분양 통계에 대한 불신이 크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6월 전국 미분양 가구수는 7만4000여 가구로 집계됐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건설사가 신고하지 않은 미분양 물량을 포함해 실제 미분양 가구수는 10만 가구에 이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현재 미분양 통계는 건설사나 시행사가 기초자치단체에 1차로 데이터를 보고하면, 광역자치단체를 거쳐 국토교통부에 최종 보고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지는데 미분양을 숨기거나 수치를 왜곡해도 별다른 제재가 없다. 오히려 미분양 가구수는 ‘영업비밀’로 여겨지고 있다. 국토부 역시 건설사 혹은 해당 지역에 대한 ‘낙인 효과’를 유발할 수도 있는 만큼 신중한 입장이다.드디어 시장이 기다리던 공급 대책이 나왔다. 그러나 부실한 통계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정책에 얼마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정부가 내놓은 정책이 국민들의 신뢰를 얻으려면 통계의 투명성은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문경란 건설부동산부 기자  mgr@viva100.com

2024-08-11 14:05 문경란 기자

[기자수첩] 2년만에 들통난 벤츠의 거짓말…퇴색한 '삼각별'의 의미

천원기 산업IT부 차장“배터리 셀 공급업체에 대해서는 소비자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이 말은 2년 전 독일 메르세데스-벤츠에서 당시 부사장을 맡고 있던 크리스토프 스타진스키가 한 말이다. 최근 차량 화재로 ‘전기차 포비아’ 논란의 중심에 선 EQE를 출시하며 했던 말인데, 신뢰할 수 없는 중국산 배터리가 탑재되는 것에 대한 질문에 이런 답변을 내 논 것이다. “안전성과 품질에 대한 보증은 벤츠가 한다”며 걱정하지 말라는 투였다. 그는 당시 벤츠의 전기차 개발 총책임자이기도 했다.그런데 이 말은 결국 지킬 수 없는 약속이 됐다. 더 충격적인 건 벤츠가 그동안 거짓말을 해왔다는 사실이다. 화재는 내연기관차도 난다. 수만개의 부품이 조합되다 보니 화재는 피할 수 없다. 그것이 전기차라고 해서 다르진 않다. 하지만 거짓말은 다르다. 벤츠는 차량 가격이 1억원이 넘는 EQE에 CATL의 배터리셀이 탑재된다고 했다. CATL은 중국 배터리업체이긴 하나 나름 시장에선 이름이 알려진 곳이다. 중국이란 거대 내수시장이 뒷배가 되긴 하지만 세계 점유율 1위 업체다. 그러나 EQE에 탑재된 배터리는 CATL이 아닌 파라시스였다. 우리나라에선 소위 ‘듣보잡’으로 불린다. 관련업계 종사자조차 파라시스라는 업체를 이번에 처음 들었을 정도다. 그래서 인지는 알 수 없으나 벤츠는 이번 화재가 나기 전까지 이 사실을 감추고 있었다. 아니 속이고 있었다. 파라시스는 중국에서도 결함 논란으로 폐업 직전까지 몰린 업체라고 한다.우리나라는 믿었던 벤츠에 발등을 찍혔다. 자국 독일보다 한국에서 벤츠가 더 많이 팔린다. 우리나라는 전세계에서 벤츠가 가장 많이 팔리는 국가 중 세 번째다. 벤츠의 엠블럼인 ‘삼각별’은 한국인의 가슴을 뜨겁게 했다. 육지, 바다, 하늘 등 모든 영역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삼각별의 의미는 가슴을 웅장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배신과 무책임이다. 벤츠는 EQE 화재가 났을 당시에도 파라시스 배터리라고 고백하지 않았다. 파라시스 배터리 탑재된 사실은 소당방국 등 우리정부가 화재 원인을 조사하면서 밝혀냈다.천원기 산업IT부 차장 1000@viva100.com

2024-08-09 06:15 천원기 기자

[기자수첩] '금투세' 폐지, 정치권의 현명한 판단 필요

류용환 금융증권부 기자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시행을 앞두고 투자심리 위축 등을 우려하는 부정적인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최근 정부는 국내 투자자 보호, 자본시장 발전 등을 위해 금투세를 폐지하는 방향을 담은 세법개정안을 내놓았다. 여야 논의를 거쳐 도입을 앞둔 과세제도를 정부가 공식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수 의석을 가진 더불어민주당의 동의가 필요한 상황이다.내년 1월 시행을 앞둔 금투세는 국내 주식·채권·펀드·파생상품 등 금융상품 수익이 연 5000만원을 초과할 경우, 초과분의 대해 22%를 징수하도록 하는 과세 방안이다.여야 합의로 2020년 12월 관련 법안이 가결되면서 2023년 시행될 예정이었으나, 2022년 12월 제도 미비 등을 이유로 2년 유예됐다. 내년 1월 금투세법 시행되면 세수 확대가 예상되지만, 투자심리 위축 등 주식시장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대만은 주식양도소득세를 1989년 시행했다. 상장주식에 대한 과세로 금투세와 유사한 구조였는데 시행 직후 한달 동안 주가지수가 40% 가까이 하락하는 등 부작용 때문에 1990년 폐지 수순을 밟았다.이복현 금융감독원 원장은 금투세 도입과 관련, “특정 이슈가 이념이나 정파 간 소모적인 논쟁 대상이 돼서는 안된다”며 부정적 의견을 밝혔고, 김병환 금융위원회 위원장도 인사청문회 당시 “금투세는 자본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금투세 시행 시 투자재원 감소 등을 우려한 국내 16개 증권사 대표들 역시 ‘원점 재논의’를 요구했다.금투세 폐지나 재논의 등에 대한 최종 결정은 국회로 넘어갔다. 자본시장 발전과 증시 안정을 위해서라도 정치권의 현명한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류용환 기자 fkxpfm@viva100.com

2024-08-07 09:05 류용환 기자

[데스크 칼럼] 고트를 만든 '개와 늑대의 시간'

허미선 선임기자드디어 ‘골든 그랜드슬램’을 완성했다. 5번째 도전에서야 이룬 업적이었다. 통산 99번의 투어 우승, 4대 메이저대회(호주오픈·프랑스오픈·윔블던·US오픈) 우승으로 일찌감치 그랜드슬래머에 등극했지만 ‘하늘에서 낸다’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만은 유독 쉽지 않았다. 프로 데뷔 후 라이벌을 바꿔가며 승승장구했고 여전히 메이저 대회마다 어린 테니스 천재들과 결승을 치르는 최고령 선수. 이미 고트(GOAT·Greatest Of All Time, 역대 최고 선수)였던 그는 4일(이하 현지시간) 2024 파리올림픽 테니스 단식 결승전이 벌어지는 스타드 롤랑가로스에서 끝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2008년부터 무려 5번째 도전이었고 그 상대는 불과 한달 전 윔블던대회 결승에서 패한 혈기왕성한 라이벌이었다. 그렇게 세르비아의 노박 조코비치는 카를로스 알카라스를 상대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간 젊은 선수들의 혈기왕성한 도전, 어쩔 수 없는 체력의 열세, ‘나이’를 들먹이는 ‘은퇴’ 압박, 오래도 외롭게 한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 등에도 그는 ‘핑계’를 찾기보다 ‘방법’을 모색하며 끝내 숙원인 ‘골든 그랜드슬램’을 이뤄냈다.한국 양궁의 맏형 김우진은 그 어렵다는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발전을 치르며 3연속 올림픽 출전, 남자 단체전 3연패, 2024 파리올림픽 2관왕을 달성했음에도 4일 롤랑가르드에서 4.9mm 차이로 개인전 금메달을 목에 걸고서야 “이제는 ‘고트’라는 단어를 얻었다. 이제는 조금은 고트라 봐도 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이로서 남자양궁 최초 3관왕, 양궁 그랜드슬램(올림픽,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대회), 올림픽 금메달 5개로 한국 선수로는 최다 기록을 거머쥔 그 역시 ‘은퇴’ 압박에서 자유롭지 않다. 잇단 언급에 단호하게 “은퇴는 없다”고 응수한 그는 “(오늘의 금메달도) 내일이면 지나간 메달”이라며 여전히 앞으로 나아갈 의지를 다졌다.한편에서는 같은 나라 선수들끼리 치른 결승전에서 일방적인 응원과 야유가 쏟아지는 진풍경(?)도 연출됐다. 여자탁구 결승전에서 맞붙은 중국의 천멍과 세계랭킹 1위 쑨잉사. 일방적인 응원에도 금메달은 천멍이 목에 걸었다. 국가와 팬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던 10, 20대에는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다 서른이 다 돼서야 가능성을 현실로 만든 그는 2021년 도쿄 올림픽에 이어 2024 파리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거머쥐었다.이번 올림픽에서 자주 언급되는 단어는 단연 ‘고트’다. 역대 최고 선수. 이는 누군가의 잣대가 아닌 선수 스스로가 세운 기준을 충족해서야 갖게 되는 칭호다. 이 칭호를 얻기까지의 여정에는 그 결과를 알 수 없는 불명확함 속에서도 치열하게 노력하고 차근차근 준비하며 고독하게 보낸 저마다의 ‘개와 늑대의 시간’(L‘heure entre chien et loup)들이 존재했다.이는 비단 운동선수들 뿐 아니다. 학교, 직장, 외교, 인간관계 등 사회생활 속에서 늘 겪게 되는 것들이다. 핑계 보다는 방법을 모색하며 저마다가 보낸, 밤의 짙은 푸른색과 낮의 짙은 붉은 색이 만나는 저 너머로 다가오는 실루엣이 적인지 내 편인지 분간이 어려운 시간들은 존중받아 마땅하다.허미선 선임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8-06 14:13 허미선 기자

[새문안通] 허준과 허임

조선 제14대 임금이었던 선조는 평생 두통에 시달렸다. 어의 허준은 선조를 치료하기 위해 갖은 약재를 썼지만 잘 낫지 않았다. 허준은 침을 잘 놓는 허임을 왕에게 추천했다. 허임의 침 치료를 받은 선조는 오랜 두통이 호전된 것으로 전해진다.조선시대 의인(醫人)들은 재주가 달랐다. 약을 잘 쓰는 약사(藥師)가 있는가 하면 침과 뜸으로 치료하는 침구사(鍼灸師)들이 각자 고유 영역에서 활약했다.한약은 먹고 살기도 힘든 백성들에겐 사치였다. 민초들의 아픈 몸을 치유하는 대표적인 수단은 침과 뜸이었다. 실력 있는 침구사라면 침 한 쌈과 뜸 한 줌으로 웬만한 병은 다 치료할 수 있었다. 수 천년의 세월을 지나며 임상경험이 축적된 동양 의술의 효험은 작지 않았다.요즘은 한의사들이 약사와 침구사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우리나라 침구사 자격은 1953년 한의사 제도가 신설되고 1962년 의료법이 개정되면서 폐지됐다. 현재 침·뜸 행위는 한의사 자격증 소지자만이 시술할 수 있다.많은 한의사들은 침·뜸보다는 한약 처방 위주로 환자를 치료한다. 침 치료는 수가가 낮고, 한약은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것이 많지 않아 가격이 비싼 현실과 무관치 않다.한의대 교육과정에는 침술이 포함돼 있지만, 한의대생들은 침술보다는 본초학과 방제학 공부에 더 심혈을 기울인다. 침구학에 뜻이 있는 일부 한의사들은 침·뜸술을 배우기 위해 자신의 신분을 감춘 채 실력 있는 민간 침구사들을 찾아다니기도 한다.의료법이 개정된 지 62년 만에 그 많던 침구사들은 의료현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침구사법 제정을 위해 평생을 바치다 2021년 작고한 구당(灸堂) 김남수 옹의 제자들과 소수의 침쟁이들이 음지에서 근근이 명맥을 잇고 있을 뿐이다.-珍-

2024-08-06 10:22 새문안通

[기자수첩] 환경부 소속기관 악습 근절, 김 장관이 나서야

곽진성 정치경제부 기자올해 환경부 소속·산하기관서 각종 비위가 잇따르고 있다. 성희롱과 직장내 괴롭힘 등 범죄로 연결될 수 있는 사안이 일부 포함돼 있다는 것은 걱정의 온도를 높인다. 환경문제를 다루며 탄탄하게 다져온 중앙행정기관의 신뢰성이 속출하는 비위로 인해 금이 갈까 염려스럽다.환경부 산하기관에서 발생하고 있는 성 관련 범죄와 직장내 괴롭힘이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은 불편한 진실이다. 그럼에도 이 같은 사안이 근절되지 않은 채, 현재형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 개탄스럽다.환경부 본부에서 떨어진 일부 소속 기관, 그리고 일부 산하기관의 기강해이는 심각해 보인다. 상식이 비상식이 되는 분위기 속 성희롱 같은 범죄가 고개를 드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반말과 갑질이 내재된 풍토에서 직장 내 괴롭힘 같은 악습이 자라난다는 것은 아닌지 곱씹어볼 일이다.과연 이 같은 악성 비위를 연례적인 성폭력, 성희롱 예방교육이나 갑질예방 교육만으로 근절할 수 있을까. 환경부 차원의 적극적 의지가 없다면 문제 해결은 요원할 것이다.소속기관 등은 상대적으로 환경부 본부로부터 떨어져 있어 감사 등에서 사각지대가 엿보인다는 점이 우려된다. 그렇기에 비단 감사관실에, 운영지원부서에만 떠맡길 일이 아니다. 환경부 수장인 김완섭 장관부터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소속기관·산하기관의 실태를 바로 들여다봐야 한다. 성범죄·갑질 피해 공무원의 SOS는, 부처의 위기 시그널이라는 인식으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적극적 의지를 갖고 실태조사와 신고기간을 운영하고, 주요 비위가 발생한 유역청 등 소속기관에 대해 수시로 감사와 조치에 나서는 결기가 필요하다. 소속·산하기관의 잘못된 행위를 바로 잡는 회초리를 지금 바로 들어야 할 때다.곽진성 정치경제부 기자 pen@viva100.com

2024-08-05 14:36 곽진성 기자

[기자수첩] 진정성, 구영배가 보여야 할 때

장민서 생활경제부 기자“기회를 준다면 100% 피해복구 할 수 있다.”지난달 30일 국회 정무위원회 현안 질의에 참석한 구영배 큐텐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티몬·위메프 정산 대금 지연 사태가 발생한 지 22일이나 지나서 모습을 드러내서 한 말이었다.이른바 티메프 사태의 피해는 점점 커지고 있다. 지난달 31일 기준 티몬과 위메프의 판매대금 미정산 규모는 2745억원이다. 하지만 6~7월 거래분까지 포함하면 1조원까지 불어날 것으로 추산된다.현재 이 사태의 중심에 있는 구 대표를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 지 의구심이 든다. 위메프의 판매자 정산 대금 지연이 알려졌을 때만해도 큐텐은 ‘전산 시스템 오류’라고 이유를 대며 보상안으로 무마시키려 했으나 며칠 뒤 거짓으로 밝혀졌다. 화가 난 소비자들이 위메프와 티몬 본사를 점거했을 때에도 계열사 대표와 본부장을 내세워 진화시키려 했을 뿐 정작 구 대표 본인은 일부 매체에 문자 메시지를 보내 “국내에 체류하며 수습책을 마련하고 있는 중”이라고만 전할 뿐이었다.뒤늦게 낸 입장문에서도 “그룹 차원에서 가용 가능한 모든 자원을 동원하고, 개인 재산도 활용해서 티몬과 위메프 양사의 유동성 확보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며 해결에 나서는가 싶었으나 불과 반나절만에 티몬·위메프가 기업회생을 신청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이번 사태는 큐텐의 물류 자회사 큐익스프레스 나스닥 상장이라는 그의 과욕이 빚어낸 참사라고 할 수 있다.구 대표는 이 사태를 제대로 직시하고 있을까. 더 이상 무책임한 모습이 아닌 사태를 해결하려는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할 때다.장민서 생활경제부 기자 msjang@viva100.com

2024-08-04 14:03 장민서 기자

[기자수첩] 막말은 의원님이, 부끄러움은 국민이

권새나 정치경제부 기자“정신 나간”, “개판” 국민의 대표로 선출된 22대 국회의원들의 본회의장 발언이다.더불어민주당 김병주 의원은 대정부질문 중 여당인 국민의힘의 지난 논평에서 ‘한미일 동맹’ 표현을 쓴 것을 지적하며 “정신 나간 국민의힘 의원들”이라고 말했다. 당시 본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됐고 김 의원은 사과를 거부하며 결국 본회의가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국민의힘 강민국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채상병특검법 재표결 이후 방청석이 소란스럽자 국회의 대표이자 입법부의 수장인 우원식 국회의장을 향해 “개판”이라고 말하며 논란이 됐다. 막말뿐 아니라 고성과 삿대질이 오고가기도 했다. 다른 이념을 가진 이들을 향한 일말의 예의와 품격은 찾아볼 수 없었다.과거 “초등학교 반상회에 가도 이렇게 시끄럽지는 않다”라는 김진표 전 국회의장의 질책이 떠오르는 순간이 반복됐다. 여야의 강대강 대치로 ‘최악’이라 평가받은 21대 국회와는 조금 다를까 싶었던 기대가 무너지는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이 같은 언행에 부끄러움은 국민의 몫이 됐다. 더는 국민의 대표로 내세우고 싶지 않고, 국회의원을 믿고 싶지 않다는 목소리도 나온다.물론 다른 이념을 가진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민생을 위한 ‘최선의 정치’를 하는 데 어느 정도의 정쟁은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언제나 선을 넘는 막말과 상대를 조롱하는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8월 시작과 함께 야당은 민생지원회복지원금법과 노란봉투법을 본회의에 올리고, 여당은 또다시 필리버스터로 저지할 방침이다. 부디 이번 본회의에서는 여야가 서로를 존중하며 국민의 대표로서의 품격을 지키기 바란다.권새나 정치경제부 기자 saena@viva100.com

2024-08-01 14:05 권새나 기자

[기자수첩] 국회의원 월급 992만2000원의 가치

빈재욱 정치경제부 기자‘992만2000원’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이 최근 한 방송프로그램에서 밝힌 국회의원으로서 처음으로 받은 월급이다. 화제가 됐지만 사실 포털 검색을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는 정보다.국회의원들과 만나 얘기하면 심심치 않게 듣는 얘기가 있다. 국회의원을 하기 전에는 훨씬 많은 돈을 벌었다는 것이다. 국회의원이 되니 지갑을 열어야 하는 경우도 많아진다고 한다.각 분야의 전문가급이 정치 영역으로 넘어오는 경우가 많다 보니 국회의원이 되기 전과 후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벌어들이는 돈이 적다고 속마음을 털어놓는다.흔히 월급만큼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면 ‘밥값’을 못한다는 표현을 쓴다. 많은 월급을 받아도 그만큼 기대를 충족하면 밥값을 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요즘 국회의원들은 밥값을 하지 못하고 있다.정치에서 갈등은 불가피한 면이 있지만 22대 국회에선 갈등을 줄이려는 최소한의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여야 합의’라는 단어는 사라진 지 오래고 각자가 사회 속에서 필요로 하다고 보는 법안만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4박5일 필리버스터라는 전무한 일이 벌어졌지만 국민들로부터 관심받지 못했다. 거대 야당의 양보 없는 입법 독주, 소수 여당의 타협 없는 자세는 국민에게 밥값을 못한다는 말을 듣기에 충분하다.조만간 ‘노란봉투법’, ‘25만원지원법’이 본회의에서 처리될 전망이다. 이번부터라도 본회의 상정-필리버스터-필리버스터 종결 동의안 통과-표결의 악순환이 아닌 대화와 협상을 통한 정치의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그렇게 해야 국회의원들이 밥값을 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을까.빈재욱 정치경제부 기자 binjaewook2@viva100.com

2024-07-31 14:17 빈재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