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비바100] 한·일 상호 인식의 덫… 콤플렉스 넘어 미래로

“무조건적인 비판에서 벗어나 ‘비판의 격’ 높이고 건설적인 미래지향적 파트너십 구축해야”‘일본’에 관해 웬만해선 균형 감각을 지키기가 쉽지 쉽다. 시류에 편승한 ‘국뽕’ 서적들이 많은 이유다. 서울대 동양사학과 박훈 교수의 위험한 일본책은 그런 면에서 상당히 균형적이다. 저자는 ‘비판을 위한 비판’을 경계한다. 일본에 대한 비판도 한 차원 높일 때가 되었다고 말한다. ‘일본’이기에 무조건 거부하는 태도를 바꿔, 이제 미래지향적으로 봐야 할 때라고 촉구한다위험한 일본책|박훈|어크로스◇ 시대에 뒤처진 ‘민족주의’저자는 최근 다시 만연하는 ‘민족주의’에 선을 긋는다. 더 이상 도움 되지 않는 시점이 되었다고 말한다. 예전의 민족주의가 한국인을 단결시키고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면, 지금은 배타적이고 폐쇄적으로 만들 뿐이라고 꼬집는다. 특히 과학이나 학문과 다른 쪽으로 오용되고 있다고 비판한다.저자는 특히 우리가 극복해야 할 민족주의의 한계로 ‘반일’을 든다. 일본을 공격하는 것이라면 다소간의 과장이나 왜곡, 은폐와 날조까지도 눈감아 주는 ‘반일무죄(反日無罪)’를 성토한다. 오류를 알면서도 못 본 척 하고, 문제가 생기면 “아니면 말고” 식으로 빠지는 무책임을 강하게 질타한다.◇ 비슷한 듯 다른 한국과 일본저자는 ‘소용돌이 속의 한국, 상자 속의 일본’이라 표현했다. 조선이 역동적이고 신분제 역시 유동적이었던 반면 도쿠가와 시대 일본은 상자 속에서 자기 ‘분수’를 지키며 살아가는 사회였다는 것이다. ‘한국은 문(文)·일본은 무(武)의 나라’라는 평가도 부정한다. 젊은 사무라이들이 학문에서 돌파구를 찾아 정치화되었고, 이것이 메이지유신의 촉매제가 되었다고 말한다.저자는 일본은 ‘민란(民亂)’이 없는 나라, 한국은 ‘민심(民心)’의 나라라고 정의한다. 일본은 격동의 19세기에도 난(亂)이라 할 만한 시위가 거의 없었고, 20세기 이후로도 수 십만 명이 모인 시위는 손에 꼽을 정도였던 반면 조선은 ‘여론정치의 나라’ 답게 ‘천심(天心)’인 민심이 세상을 지배하는 사회였다고 말한다.일본은 순위 매기기를 좋아하는 나라다. 스모에서 시작된 ‘방즈케(番付)’가 확산되어 ‘거짓말 방즈케’나 양처(良妻)·악처(惡妻) 순위까지 나올 정도다. 근대 일본이 세계 최강국을 꿈꾸었던 것도 순위 매기기와 무관치 않다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저자는 그런 ‘방즈케의 요술’을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일본에 대한 ‘얕은 지식’과 ‘얕은 비판’2019년 7월에 수출규제 문제로 불거졌던 한일 갈등은 4년 가까이 지난 올 4월부터 해소 국면으로 접어들었다.저자는 우리가 일본에 대한 높은 관심에 비해 일본에 관한 지식은 얕고 편견이 강하다고 지적한다. 일본이 원래 후진국인데 어쩌다 서양문물을 빨리 받아들여 우리를 앞서게 되었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저자는 “쓰라린 식민지 역사에 대한 보상 심리가 깔린 주장”이라며 “일본은 이미 도쿠가와 막부 때부터 획기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었다”고 반박한다. 실제로 일본은 전 세계 은 생산량의 3분의 1을 맡으며 떼 부자가 되었고, 눈부신 농업 발달로 안정적인 자급자족이 가능했다.특히 메이지 이전부터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교육·출판업이 발달하는 등 어느 정도 준비된 상황에서 서양을 맞았다. 저자는 또 메이지유신에 대한 편견을 지적하면서, 메이지 시대에 일본을 강하게 만든 힘 중 하나로 ‘국민 통합’을 들었다. 처형 당해 마땅한 적의 장수를 구명해 치안을 맡기며, 반란의 주범을 사면해 요직을 추증하고 동상을 세워 추념했다. 메이지 시대를 여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던 가쓰 가이슈도 권력욕을 내려놓고 스스로 권좌에서 물러나는 용단을 보였다.◇ 두고두고 아쉬운 만민공동회와 의회 설립 무산저자는 한국인들이 별 근거도 없이 ‘과대평가’와 ‘자기폄하’ 사이를 수시로 오간다고 지적한다. 과대평가의 대표사례로 ‘국민 설화’를 들며 “자칫 ‘국민 마약’이 될 수 있다”고 꼬집는다. 일본과 비슷한 주장이면 ‘친일사학’으로 폄훼하는 문제도 지적한다. 자기폄하의 패배주의와 열등 콤플렉스 같은 열패감에 우리가 더 ‘위대한 역사’에 환호하는 것일 지 모른다고 말한다.그는 조선이 ‘자강(自强)’을 못 이룬 것을 통탄하며 “개화파가 수구파 이상으로 분열한 탓이었다”고 비판한다. 구한 말 외교력 부재에도 아쉬움을 토로한다. 1896년 5월 모스크바에서의 러시아 니콜라이 2세 대관식 때 청과 일본이 대규모 축하 사절단을 보내 전략적 조약을 체결할 동안, 가장 러시아의 도움이 절실했던 우리는 10명 만을 보내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한다.저자는 특히 관민 개혁운동 ‘만민공동회’의 붕괴를 못내 아쉬워했다. 대한제국은 당시 니시-로젠 협정으로 일본과 러시아로부터 주권과 독립을 확인받아 ‘자주적 근대화’의 기회를 얻었다. 개혁파 정부와 독립협회는 의회 설립법도 공포했다. 하지만 고종이 의회설립을 백지화시키면서 근대화의 마지막 기회는 무산됐다. 그 때 의회가 세워졌다면 을사보호조약도, 한국 병합도 그렇게 간단하게 이뤄지지 못했을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무시’와 ‘두려움’의 사이한일 양국 간 정치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 간 문화교류는 꾸준히 이어져 왔다. 사진은 한일문화교류센터가 주최한 한일 지역간 문화교류 행사 모습.저자는 우리가 일본을 너무 일찍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정말로 극일(克日)을 원한다면 계속 도전자의 자세로 일본을 더 공부하고 식견을 더 높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를 통해 ‘근대와 자주’라는 시대정신을 체현한 이승만과 김구, 안중근 등 1870년대 생 젊은 활동가들도 개항 이후 한 동안은 일본이 한국 개화파의 친구였음을 인정했다 “개항 후 한국 근대사의 좌절을 모두 일본 탓으로 돌리는 ‘일본 환원주의’도 수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저자는 “한일관계 교착은 ‘해결 방식’을 몰라서가 아니라 ‘해결할 의지’가 없어서” 라고 강조한다. 한국 근대사가 모두 일본 제국주의 침략과 음모, 치밀한 기획의 산물이라는 ‘과대평가’를 교정하지 않으면 우리 스스로를 무능력자로 만들 뿐이라고 비판한다. 우리야말로 제국주의와 식민 지배를 않고도 선진국이 된 거의 유일한 나라라는 자부심을 가질 만 하다고 말한다.일본은 한국이 늘 자신들 밑에 있어야 한다는 묘한 심리와 함께 근대화 이후 지나치게 자국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조선이 스스로를 동국(東國), 동번(東藩)이라 부르며 현실적 인식을 했던 반면 일본은 자신이 세계 7대 강국이라며 ‘대국(大國) 일본’의 환상을 놓지 않았다. 그 현실적 공허함을 채워줄 대상이 조선이었기에 조선은 소국이어야 했다. 저자는 일본이 이런 한국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더 성숙해져야 하며, 한국 역시 일본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콤플렉스를 넘어 미래로 일본 국민의 95%가 천황제에 찬성한다. 저자는 최근 국내에서의 ‘일왕’ 논란과 관련해 “적국이 아니라면 그 나라 호칭을 불러주는 것이 성숙한 자세”라고 말한다. “중국까지 황제 부활을 시도하던 때는 우리는 한 치의 미련도 없이 왕정을 폐지하고 당당히 공화국을 수립했던 나라”라며 “애초에 이런 시대착오적 역사 감각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일축한다.일제 잔재 처단의 차원에서 일본식 용어부터 몰아내자는 운동이 전개된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것을 촉구하는 공문이나 구호에도 온갖 일본산 표현들 투성이었다. 저자는 “이런 말을 쓰면 우리의 민족정신이 훼손되는가”라고 되묻는다. 그는 “한국은 전 세계에서 식민 종주국에 사과를 요구하고, 그것을 외교문제로 삼고 있는 유일한 나라”라며 “지금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사과하라’ 보다는 식민주의라는 ‘괴물’에 대한 공동의 투쟁을 촉구하는 것이 훨씬 좋은 전략일 것이라고 조언한다.◇ 아키히토 상황의 한국방문 가능할까1998년 10월에 전격적으로 발표된 '김대중·오부치선언'은 한일 관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김대중 대통령과 일본 오부치 게이조 수상이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는 모습.(사진=e영상 역사관 캡처)저자는 식민지 문제가 국제사회 공감을 끌어내기 쉽지 않은 이슈라고 말한다. 열강들이 대부분 과거 식민지 문제의 공범이기 때문이다. 야스쿠니 신사 문제도 간단치 않다고 말한다. A급 전범들 위패를 빼고 국립묘지화할 경우 자칫 우리만 국제적으로 고립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미국과 중국은 ‘전쟁 행위’만을 문제삼고 있기 때문이란다.저자는 식민 지배를 통렬히 사죄하고 미래 파트너십을 약속한 1995년 무라야마 담화와 1998년의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일본에 거듭 상기시킬 것을 강조한다. ‘혐한(嫌韓)’ 타개를 위해 아키히토 상황의 한국 방문도 제안한다. 그는 직계조상인 간무(桓武)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 후손이라고 발언한 바 있고, 무령왕릉 방문도 희망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저자는 “실타래처럼 얽힌 한일 관계는 논리가 증거 싸움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며 정치적으로 대범하게 풀 것을 촉구했다. 그러려면 양국과 세계 이목을 집중시킬 상징적 이벤트가 필요하다. 저자는 “아키히토 상황이 조상을 찾는 것을 계기로 두 나라가 대범하게 현안을 처리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비판하되 경쟁적 협력관계로지난 13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25주년 기념식에서 유흥수 한일친선협회 회장, 가와무라 다케오 일한친선협회중앙회 회장을 비롯한 내빈들이 착석해 있다.(연합)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일본 국회에서 “50년도 안된 불행한 역사 때문에 1500년 교류와 협력의 역사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연설했다. 저자는 “우리는 옛 식민 종주국에게 사과를 받아낸 거의 유일한 나라”라며 이 선언문의 핵심도 ‘자신감’이었다고 강조한다. 당시에도 위안부나 독도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김 대통령은 ‘죽창가’를 부르지 않았다.저자는 “김대중 계승자들은 도대체 무엇을 계승하고 있는가”라며 1998년처럼 한국이 다시 자신감을 갖고 한일관계를 리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일본 제국주의의 과거를 끊임없이 비판해야 하지만, 그 목적은 두 나라가 자유와 민주, 법치와 평화의 세계로 가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민족주의 선동을 위한, 정치적 이득을 위한 일본 비판은 이제 거둘 때라고 말한다.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2023-10-21 07:00 조진래 기자

[갓구운 책] 정년을 1년 남기고 사표를 던진 남자는 무엇으로 살까

퇴직, 나로 살아가는 즐거움(유인창 지음, 페이퍼로드 펴냄, 1만5800원)국내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2023년 한국 직장인이 체감하는 평균 퇴직연령은 약 49.3세다. 취업연령은 높아지고 퇴직연령은 낮아지는 최근, 도서 시장에서는 하나같이 똑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자기계발서들이 범람한다. ‘누구든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직장인의 삶을 그만두면 자유롭고 행복한 일상을 살아갈 것’이라는 게 그 책들의 골자이다.그러나 이 책들이 간과한 것은 하나 있다. 책을 읽는 모든 독자가 직장을 그만두고 경제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이다.든든한 뒷배도, 묵직한 재물도 없는 평범한 퇴직자. 그들의 삶은 과연 어떻게 흘러갈까?오랜 세월 ‘문화일보’에서 기자로 근무한 저자는 정년을 1년 남기고 사표를 던졌다.“그 나이에 왜? 얼마나 남았다고.”저자가 사표를 제출했을 때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말 그대로 1년 더 월급을 받고 정년 면직되는 편이 훨씬 합리적일텐데, 그는 뭐가 급하다고 성과급까지 내던지며 퇴사했을까?저자는 퇴사를 결심한 자신의 마음가짐을 ‘로마로 진군하기로 결정한 카이사르의 결정’에 비유한다. ‘모아놓은 돈도 얼마 없는 주제’에 지금까지의 인생과 과거를 부정하고 퇴직을 결심한 그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그는 책에서 퇴직은 바로 스스로를 위한 일상, 자기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살아가고자 함이었다고 담담하게 밝힌다. 퇴사가 답답한 현실로부터의 도주가 아니다. 오히려 다른 인생을 살기 위한 도전이었다는 것이다.당연하게도 그 도전은 쉽지 않다.재력이 든든하지 않은 퇴직자는 일상에서 늘 불안에 시달린다. 프리랜서로 살게 되자 버는 돈이 줄었고, 이전처럼 벌기 위해서는 몸이 혹사해야 했다. 돈의 문제, 경제적 어려움, 불규칙하게 바뀐 일상. 이는 퇴직을 결정했거나 앞둔 사람이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문제다.저자는 이러한 사실을 외면하지 않고, 허풍으로 감추지도 않는다. 도리어 진솔하게 어려움을 토로하며 ‘돈이 많았으면…….’이라는 넋두리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저자는 당당하게 말한다. 자신은 시간과 감정의 자유를 얻고자 안정된 월급을 교환했을 뿐이라고, 그 교환이 꽤 수지가 맞는 장사였다고.천직이라 생각했던 기자가 되었으나 자긍심이나 뿌듯함은 일찍이 사라졌다. 남은 것은 관성에 의한 잿빛 일상과 타성에 젖은 빛바랜 마음이다. 그리하여 퇴직했을 때, ‘기자’라는 두 글자를 삶에서 완전히 지웠을 때, 지은이는 잊고 있던 얼굴을 되찾았다. 텅 빈 시간에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을 채웠고, 그 성찰을 통해 되찾은 것은 다채롭고 풍부한 감정이었다.저자의 목표는 명확하다. 아름다운 할아버지가 되는 것, 나로 살아가는 인생 실험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평생 살림에 전념한 적이 없던 중년 남성이 요리에 도전하고, 늘 무뚝뚝한 얼굴에 미소를 그려보고, 그간 참기만 했던 취미 생활에 전념해보기도 하고, 앞으로의 할 일을 정리하여 하나하나 달성하기도 한다.꾸밈없이 담백한, 불안하지만 꽤 편안한 퇴직 후 인생 이야기. 이 책은 본인의 삶을 화려하게 포장하고 그 거짓된 아름다움으로 관심을 끄는 세간의 에세이와는 차원이 다른, 진정한 의미로서의 ‘에세이’다.이형구 기자 scaler@viva100.com

2023-10-19 11:37 이형구 기자

[비바100] 반성하는 보수, 변화하는 진보… 그들은 달랐다

독일 의회 전경. 독일 정치는 좌우 정당 간 연정(聯政)의 역사다.(연합)저자는 ‘전범국가’에서 ‘1등 모범국가’로 탈바꿈한 독일에서, 특히 독일의 정치에서 배워야 할 것이 많다고 지적한다. 그는 “지금 대한민국에는 독일처럼 제대로 된 진보도, 제대로 된 보수도 없다”고 일침을 가한다. 서로를 존중하는 정치와 포용력 넓은 사회의 안정이 선행되어야 그 바탕 위에 지속적인 성장이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발전 모델로 ‘조화로운 발전, 포용적인 사회’를 든다. 독일은 어떻게 1등 국가가 되었나|김종인|오늘산책◇ 전후 독일을 만든 세 명의 위인들독일의 역대 총리들. 왼쪽 상단 첫번째가 아데나워 초대 총리, 두번 째가 에르하르트 총리다. 아데나워는 대통령이 되면서 에르하르트에게 총리직을 물려준 이후 경제에 관한 한 일체 간섭하지 않아 ‘라인강의 기적’을 함께 만들어 냈다.저자는 “오늘의 독일은 아데나워와 비스마르크, 에르하르트 세 사람이 상징하는 각각의 구성 성분이 어울려 만든 나라”라고 단언한다. 비스마르크가 독일의 근대를 완성한 사람이라면, 아데나워는 독일의 정치 외교적 기반을 다져 현대 독일을 만들었다. 에르하르트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독일 경제를 일으켜 세우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아데나워에게 배울 점은 ‘인내의 리더십’이 꼽힌다. 그는 친서방 정책을 확고히 뿌리내리게 해 먼 미래 ‘독일 통일’의 기반을 다졌다. 과거는 반성하되 당당함을 잃지 않았다. 73세인 1949년에 서독 총리에 취임한 그는 14년 재임 기간 내내 언제나 대화와 타협으로 합의를 이끌어 냈다. 결론을 내기까지 지겨울 정도로 끝까지 토론하며 노력하는 독일 정치의 기본문화를 만든 것이다.비스마르크에 대해 저자는 “반 민주주의자였지만 정치적 현실주의자였다”고 평가한다. 그는 역사상 대표적인 보수 정치인이었지만 좌파 아젠다를 모두 끌어가 선수를 쳤다. 사회연금, 의료보험, 실업급여 등의 기틀을 확립해 ‘독일 사회국가’의 근간을 다졌다. 오스트리아와 프랑스, 러시아, 영국 등 주변국과 의견조율에 탁월한 역량을 발휘해 ‘외교의 신’으로 추앙받았다.에르하르트는 독일의 2대 총리였지만 아데나워 정부의 경제부장관으로 더 이름을 떨쳤다. ‘독일을 먹여 살린 사람’이다. 연합국 점령군이 독일을 3류 농업국가로 만들려 하자, 자유시장경제의 전환을 주장해 관철시켰다. 사사건건 대립한 아데나워도 경제만큼은 그에게 일임했다. 각자의 책임과 역할을 존중하며 경쟁하고 협조했다. 저자는 이것이 독일 정치의 힘이라고 말했다.◇ ‘보수’라고 자랑하지 않는 독일 보수독일 바이마르공화국 헌법 제1조는 ‘독일은 공화국이며 국가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이다. 우리 헌법 1조와 판박이다. 대통령에게 권한을 주어 총리와 ‘견제와 균형’을 이루게 했고 여성에 참정권을 주었다. 언론과 출판·집회의 자유도 보장했다. 하지만 그 탓에 히틀러가 합법적으로 집권할 수 있었다. 독일의 뼈를 깎는 반성과 성찰은 이런 모순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되었다.독일의 보수 정당도 ‘반성’에서 시작됐다. 2차 대전 후 보수의 ‘보’자도 꺼내기 힘든 때 그들은 전통을 중시하고 개인과 가족 지역공동체를 소중히 여기면서 국가주의적 사고관을 배격하는 보수적 가치관의 ‘기독교’를 피난처로 선택했다. 나치에 가장 저항한 세력도 기독교였다. 그런 사람들이 ‘기독교’ 이름을 붙여 만든 정당이 독일의 최대 보수정당인 CDU(기독민주당)이다.저자는 “독일은 연합을 통해 과반을 만들어냄으로써 대의민주주의를 실천해 왔다”고 강조한다. 2등 정당이 연립정부의 마법을 발휘해 총리를 배출하고 집권당이 될 수 있는 것이 독일 내각제의 최대 장점이라고 말한다. 그런 기초 위에 CDU는 SPD(사회민주당)의 사회주의적 공약에 맞서 ‘사회적 시장경제’를 표방하며 경제 민주주의와 사회적 시장경제를 모토로 내세웠다.저자는 “독일의 보수는 한국의 보수보다 훨씬 더 진중한데도 스스로를 보수라고 칭하지 않는다”며 “제대로 된 보수라면 사회의 조화와 안정을 먼저 도모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보수주의는 정치의 기본”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한국의 보수는 ‘반공’ 밖에 없는 ‘적대적 보수’에 불과하다고 깎아 내린다.◇ ‘변해야 산다’는 것을 깨달은 독일 좌파독일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지난 1970년 폴란드 뱌르샤바의 유대인 추념비 앞에서 무릎 꿇고 사과하는 모습.(연합)저자는 “좌파들은 악랄한 세력이 사라지면 세상이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라 믿는 경향이 있다”며 독일의 진보정당 SPD도 마찬가지였다고 전한다. 나치 청산에 강경했던 슈마허 당수는 나치 정권에 협조했던 자들까지 포괄해 새 정당을 만든 CDU를 혐오했다. 하지만 1949년 총선에서 그가 보수정당에 패한 이유 중 하나가 그런 사회주의적 색채를 지우지 않았다는 점이다.슈마허는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옛 사회주의 노선에 집착했다. 1961년 총선부터 SPD가 CDU보다 더 높은 지지율을 얻은 비결이 바로 ‘변화’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보수당이 권력에 위한 사이에 SPD는 계획경제와 국유화를 버리고 CDU의 간판인 ‘사회적 시장경제’ 실현을 약속했다. 오랜 보수 정권에 지쳐있던 국민들은 다시 지지를 보였고 1969년 진보정당은 집권에 성공한다.독일의 총리 빌리 브란트는 1970년 폴란드 뱌르샤바의 유대인 추념비를 찾아 쏟아지는 비 속에 무릎을 꿇고 눈물로 사과했다. 나치의 죄악을 대신해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저자는 이렇듯 SPD가 150년도 넘은 정당이지만 오늘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혁신하는 과정을 거치는 중이라며 “부럽다”고 했다.◇ 우파와 좌파가 공동정부를 구성하는 나라독일 정치는 연정(聯政)의 역사다. 지금까지 네 번의 대연정이 있었다. 1957년 총선에서 CDU는 전체 497석 중 270석을 차지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를 ‘단독 과반’이었다. 하지만 아데나워는 단독내각 대신 연정을 택했다. 내각의 일부까지 맡겨 정치적 합리성을 발휘했다. 어디서 어떻게 만날 지 모르니 서로 ‘정치적 금도’를 지키고 존중하는 관계가 일상화될 수 밖에 없다그런 면에서 저자는 우리 정치권이 ‘내각제 포비아(공포증)’에 걸린 듯 하다고 꼬집는다. 그는 “한국의 진보와 보수정당은 처참하게 몰락했다. 경기장을 바꿀 생각은 않고 선거제도 같은 부수적인 것만 바꾸려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는 이념을 뛰어넘는 결합까지 단행할 줄 아는 것이 독일식 내각제”라며 “정치는 타협이고 협상”이라고 강조한다.◇ 독일의 노동정책독일은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원칙이 지켜지는 나라다. 최저임금과 임금협상이 산업별로 이뤄진다. 그럼에도 기업 규모나 지역에 따라 임금 차이가 별로 없다. ‘포괄 단체협약 시스템’ 덕분이다. 그런 독일의 노동개혁을 이끈 ‘어젠다 2010’을 만든 것이 SPD 소속 슈뢰더 내각이다. 소득세율 인하, 엄격한 실업급여, 의료보험 축소, 연금 지급시기 연기 등 ‘좌파 정책’이 아니었다.독일에서는 노조가 산별로 구성되어 개별 기업 단위의 파업이 어렵다. 조합원 4분의 3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독일 노동운동의 아버지라 불리는 한스 뵈클러 초대 노총의장은 당초 강경파였으나 노사를 설득해 ‘협조적 조합주의’를 만들어냈다. 저자는 독일 노동 정책이 유연한 것은 정치 시스템 자체가 포용적이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통일을 원한다면 독일처럼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순간. 갑작스럽게 찾아온 장벽 붕괴지만 독일은 마치 준비해 왔다는 듯 슬기롭게 통일을 완성했다.(연합)혹자는 독일 통일을 ‘벼락같이 찾아온 통일’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저자는 서독이 통일을 감내할 ‘돈’을 준비했었고, 생각이 다른 동독을 포용할 자세가 되어 있었다고 말한다. 서독은 당시 10대 1의 교환가치였던 양 국의 마르크를 일대 일로 통합해 동독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외교적 노력도 성공적이었다. 친미 노선이면서도 소련과 동구권 공산국가들에게 적대적이지 않았다.당시 동독의 경제규모는 서독의 10분의 1 정도, 소득은 2분의 1 정도였다. 현재 남북한 경제규모는 거의 60배, 소득 격차는 20~30배에 달한다. 저자는 “북한 지역이 일정한 경제적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최대한 지원하되 통일이 운명적으로 다가오는 순간에 대비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말한다.저자는 우리의 ‘햇볕정책’에 대해 실패한 통일정책이라고 비판한다. 햇볕정책이 베낀 독일의 ‘동방정책’은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가 있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동방정책에 반대했던 CDU도 국민들이 SPD에 정권을 넘겨주자 SPD의 13년 집권 내내 동방정책에 대한 쓸데 없는 정치적 공격을 자제했다. 그렇게 1990년 독일은 통일을 이루었다.◇ 헌법·의회민주주의·정당정치의 ‘표준’을 만든 나라저자는 독일의 최대 수출품목을 ‘법’이라고 말한다. 우리 제헌헌법도 바이마르 헌법을 가장 많이 참조했고, 내각책임제의 산물인 헌법재판소 역시 독일에서 수입한 것이라고 전한다. 독일 헌재는 법률이 의회를 통과해 시행되기 전이라도 위헌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심지어 재판에 대해서도 위헌 여부를 판단한다. 헌재의 권위를 국민 모두가 존중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독일은 근대국가 최초로 국고보조금 제도를 도입한 나라다. 다만, 정당이 자체 확보한 자금 혹은 법률이 정한 일정 한도를 넘을 수 없다. 연방정부와 지방정부가 공동 부담한다. 정당의 정치 재단 지원금은 정당 지원 예산보다도 더 많다. 국고보조금 중 30% 이상을 정책연구소에 투입토록 한 우리와 달리 독일 정치재단은 예산도 국가에서 따로 지원받아 철저히 독립적으로 운영된다.재단 이사장도 정당에서 내려보내지 않고 재단 이사회에서 자율 결정한다. 우리처럼 당내 여론조사 기관도 아니다. 저자는 우리의 국고보조금 30% 지원 제도의 전면적인 개선을 촉구한다. 돈을 주는 쪽에 종속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당의 자체 수입보다 국고보조금이 훨씬 더 많은 경우가 허다한데다, 의석 수를 기반으로 하니 신생 정당이 생겨날 수 없는 구조라고 비판한다.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2023-10-14 07:00 조진래 기자

한성일이 만난 사람 책 출간, 출판기념회 열어

한성일이 만난 사람 출판기념회한성일 목요언론인클럽 회장, 중도일보 입사 34년차 맞아 한성일이 만난 사람 발간매주 월요일자 중도일보 9면에 연재됐던 126명의 인터뷰 모음집10월18일 오후 2시부터 5시 오페라웨딩 3층에서 출판기념회“지면에 나와주신 한 분 한 분과의 만남은 저의 마음에 큰 공명을 심어주었습니다. 저 또한 지역사회의 일원으로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삶을 살 것을 다짐해봅니다.”현직 기자인 한성일 목요언론인클럽 회장이 중도일보 입사 34년차를 맞아 그동안 인터뷰했던 인물들을 모아 사회의 다양한 분야 모범적 리더들의 사람책 이야기인 한성일이 만난 사람을 발간했다.중도일보 매주 월요일자 9면에 연재됐던 컬러면 통판 와이드 인터뷰 지면 ‘한성일이 만난 사람’이 연재된지 5년째로, 한성일 회장은 ‘한성일이 만난 사람’ 이전인 10여년 전부터 ‘피플라이프’와 ‘휴먼스토리’를 통해 500여명을 인터뷰해 왔다. 이번 책에는 최근에 인터뷰했던 인물들 126명이 담겨있다.출판 기념회는 10월18일 오후2시부터 5시까지 오페라웨딩 3층에서 열린다.한성일 회장은 “제가 1990년 대학을 졸업하던 해 친정아버님(한희봉 전 중리중학교 교장선생님)께서 중도일보 공채 6기 기자 시험 공고가 났다고 시험 보라고 권해주셨다”며 “제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영원한 저의 멘토님인 제 친정아버님의 권유에 따라 대전고에서 국어, 영어, 상식, 논문 네 과목의 필기시험을 치르고 면접을 거쳐 제 생애 첫 직장인 중도일보 편집국 공채 6기로 입사한 지 어느덧 33년 5개월의 세월이 흘렀다”고 말했다.한 회장은 “대학 졸업하던 첫해 첫 직장으로 중도일보에 입사해 오늘에 이르기까지 제 청춘을 다 바친 제 인생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사랑하는 직장”이라며 “그동안 중도일보 독자님들과 신문사 선후배님들께 받은 깊은 사랑에 이 자리를 빌어 깊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또 “학부에서는 국문학(문학사)을 했고, 석사와 박사과정에서는 언론정보학(신문방송학. 문학석사)과 정치언론국제학(정치학박사)을 했으니 전공과 적성에 가장 잘 맞는 천직이라는 생각 속에 기자라는 한 길을 걸어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 회장은 이어 “‘한성일이 만난 사람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사회적 지도층을 찾아가 사회적 약자를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는 삶을 조명하고, 그 분들이 지도층에 오르기까지 히스토리를 재조명해 미니 자서전을 써보자는 취지가 있었다”고 말했다. 한 회장은 “각자의 분야에서 맡은 바 소임을 다하면서, 더불어 사는 사회에 봉사와 기부를 통해 헌신하시는 분들을 만나 뵐 때마다, 제 자신이 큰 감명을 받았다”며 “그 분들의 삶을 재조명해 중도일보 지면을 통해 사회의 등불로 소개할 수 있는 큰 영광을 누렸고, 제 직업의 소중함과 감사함도 아울러 느끼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한 회장은 “제 생애 최초의 이 책은 저 개인에게도 영광이지만 제 책에 나오신 사회 각계각층 오피니언 리더분들이 새롭게 조명 받으셨으면 한다”며 “이 분들은 사회적 성공을 떠나서 지역사회에 봉사의 손길을 아끼지 않은 분들로, 때로는 역경을 이겨내고 자신의 분야에 도전해 성취해 내는 삶을 그려낸 감동의 미니 자서전”이라고 말했다.한 회장은 “이 책이 지역사회에 한 줄기 빛과 같은 작은 희망과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책이 되기를 바라면서 다시 한번 도움을 주신 분들께 고마운 마음을 전해드린다”고 말했다.김원식 중도일보 회장은 “중도일보가 창간 72주년을 맞아 한성일이 만난 사람을 출간했다”며 “‘한성일이 만난 사람’은 지난 10여년 동안 매주 중도일보 지면을 통해 지역과 공동체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 넣어주셨던 분들과의 대화를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낸 것”이라고 말했다.유영돈 중도일보 사장은 “그동안 성원을 보내주신 고마운 분들을 모시고 한성일이 만난 사람 출판기념의 자리를 함께 하고자 한다”며 “부디 오셔서 축하해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이상기 전 한국기자협회장은 “출판기념회가 성황을 이루고 책 속 인물들의 삶이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길 기원한다”고 전했다.한편 한성일 회장은 충남대 국어국문학과 학사와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문학석사(김수환 추기경의 언론관과 언론활동에 관한 연구), 한남대 정치언론국제학부 대학원 정치학박사(허위조작정보 규제에 관한 연구)로, 1990년 중도일보에 편집국 공채 6기로 입사해 편집국 편집위원 겸 국장, 목요언론인클럽 회장, 지역정책포럼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장인평 기자

2023-10-10 14:55 장인평 기자

[비바100] 그래도 살기를, 그래도 푸르르기를 바라며 “살람!” 박노해 사진에세이 ‘올리브나무 아래’

박노해 사진에세이 ‘올리브나무 아래’(사진제공=느린걸음)“그래도 살아야 한다” “그래도 푸르러야 한다” 1980년대를 뜨겁게 살던 얼굴 없는 시인이자 노동운동가는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낡은 필름 카메라를 동반자 삼아 지도에 없는 길로 떠돌았다. 척박하고 가난하며 분쟁으로 신음하는 땅을 떠돌며 유랑자로 살기를 20여년, 그 세월 동안 생채기가 난 몸과 마음, 지친 걸음으로 찾아도 늘 푸르고 강인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가 있다. 그 나무는 지친 그의 기댈 곳이 돼 주었고 다시 일어서 걸을 힘을 주곤 했다.   올리브나무 아래|박노해 글·사진(사진제공=느린걸음)박노해 시인이자 사진작가의 여섯 번째 사진에세이 ‘올리브나무 아래’는 제라시, 알 자지라, 팔레스타인,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등을 떠돌며 만났던 올리브나무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다.이스라엘의 폭탄 투하로 그을리고 불타버린 몸통에서 새잎을 틔우고 그 아래 천국으로 간 이들을 품은 나무가 있고 아픈 엄마 대신 흙마당을 쓸고 닦는 소녀가 주는 물로 자라나는 나무도 있다.낙오된 어린 양을 찾아 안고 오는 소년이 잠시 숨고를 수 있는 자리를 내어주고 열두살 소년 마흐무드를 비롯한 아이들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로 함께 하면서 성장의 동반자가 되기도 한다.오랜 전쟁으로 파괴된 땅에서도 가장 먼저 싹을 틔우고 십자가가 녹슬어 부러져도 그 자리를 지키는가 하면 폭격 속에서도 살아남아 죽은 이들의 묘비를 어루만지며 명복을 빌기도 한다.붉은 석양이 질 때면 한그루 한그루를 순례하며 하루의 생을 정리하는 노인에게도, 올리브나무와 대화하며 ‘살아내는’ 어머니에게도, 양떼를 몰다 광야를 뛰노는 아이들에게도, 분쟁의 폭음이 난무하고 대대로 일궈온 밭에도 허가증을 받아야만 갈 수 있는 시대를 살면서도 담소를 나누며 느긋한 시간을 보내는 농부들에게도, 이 시대 최악의 건축물인 이스라엘 분리장벽에 저항과 해방의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들에게도 올리브나무는 ‘희망’이다. 언제 전쟁이 시작될지 모를 분쟁지역에서 만난 올리브나무, 그에 기대 살아가는 사람들은 박노해 작가의 표현처럼 “난폭한 권력과 안주한 세력”으로 매일이 불안해도 지금을 살아내는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박노해 사진에세이 ‘올리브나무 아래’(사진제공=느린걸음)전쟁과도 같은 삶 가운데서 매일을 살아내는 어른들, 날로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 던져진 아이들, 그렇게 소원해지기만 하는 사람들, 갈라치기와 혐오 등으로 누군가를 겨누는 칼끝과 독설…. 이들이 난무하는 시대는 “사는 게 다 그렇지” “세상이 다 이렇고 인간은 이런 것”이라는 자포자기, 불안감, 상실감, 고독, 무력감, 우울감 등을 더 두텁게, 더 짙게, 더 모질게 적층시켜 간다. 박노해 사진에세이 ‘올리브나무 아래’(사진제공=느린걸음)그럼에도 전쟁으로 파괴된 척박한 땅에 뿌리 내려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으며 1000년 동안 제 자리를 지켜온 올리브나무처럼 이 사회에는 오롯이 자신으로 서기 위해 제 길을 걷은 이들이 있다.  그 묵묵한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나라를, 세계를 지키며 “온몸으로 자신의 시대를 살아내듯”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유실수이자 오래 살아남은 올리브나무는 우리를 닮았다.“나 여기 서 있다” “그렇게 살아가는 거지요” “성실하고 부드럽고 끈질긴 걸음으로 자신의 일을 하고 자신의 길을 간다” “네 뒤에는 우리가 있어” “누가 돌봐주지 않아도 스스로 강인하고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올리브나무처럼” “삶은 그래도 살람(Salam), 평화이다” “이것도 희망이라고…. 그래, 이것이 희망이라고” 등 각 에세이에는 저마다가 처한 상황에 따라 가슴에 새겨질 문장들로 빼곡하다.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사진에세이 속, 박노해 작가가 직접 찍고 인화한 작품들은 서촌에 자리잡은 라 카페 갤러리에서 진행 중인 동명 전시 ‘올리브나무 아래’(2024년 8월 25일까지)에서도 만날 수 있다.   2010년부터 시작해 38만명이 다녀간 라 카페 갤러리의 22번째 전시로 37점의 사진이 지금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나무는 나무를 부른다. 숲은 숲을 부른다. 오랜 기억과 투혼을 이어받은 후대가 힘차게 자라나는 땅에서, 희망은 불멸”이라고 위안을 전한다. 매 시즌 직접 농가에서 공수한 제철 과일로 만든 ‘계절담은차’는 덤이다. 박노해 사진에세이 ‘올리브나무 아래’(사진제공=느린걸음)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3-10-09 18:00 허미선 기자

[비바100] 일론 머스크, 광적인 'X'사랑… 괴짜인가, 천재인가

“혹시 저 때문에 감정 상한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네요. 저는 전기차를 재창조 했고 사람들을 로켓에 태워 화성으로 보내려 해요. 그런 제가 차분하고 정상적인 친구일 거라고 생각하셨나요?” 서문에 적힌 일론 머스크의 말이다. 상상하는 모든 것을 현실로 만드는 ‘시대의 혁신가’인 그를 지탱한 것은 ‘강박 장애’와 ‘하드코어(hardcore) 마인드’였다. 이 책은 머스크의 ‘준(準) 자서전’이다. 전기 작가인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머스크를 2년 동안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고 한다.일론 머스크|월터 아이작슨|21세기북스◇ 학대 받던 어릴 시절의 트라우마머스크의 아버지 에롤 머스크는 ‘카리스마 넘치는 몽상가 혹은 불한당’이라는 양면적 평가를 받는 사람이었다. 본인은 “아이들을 강하게 키우려 매우 엄격했다”고 하지만 머스크는 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겪어야 했다. 그는 자신을 키운 것이 ‘역경’ 이었으며 덕분에 리스크를 두려워 않는 사람이 되었다고 말한다.어린 시절 그의 유일한 심리적 안식처는 ‘독서’였다. 달에 범죄자들을 보내 식민지를 건설한다는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이 가장 좋아했던 책이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소설들도 그의 상상력을 키웠다.◇ 인터넷 물결 위에 올라타다인터넷 광풍에 매료된 머스크가 동생 킴벌과 일군 첫 사업체가 ‘집투(ZIP2)’였다. 사업체 전화번호로 길을 알려주는 모델이었다. 하지만 곧 좌절을 맛본다. 투자한 벤처캐피탈이 그를 CTO(최고기술책임자)로 빼고 전문 경영인을 영입한 것이다. 사업은 인기를 끌었으나 의욕을 잃었다. 결국 27세에 2200만 달러를 받고 발을 빼게 된다.1999년에 그는 ‘엑스닷컴’을 창업한다. 뱅킹과 디지털 구매, 신용카드, 투자와 대출 등 원 스톱 서비스가 가능한 온라인 은행이라는 파괴적 혁신을 꿈 꾸었다. 이 때부터 ‘x.com’은 그의 시그니처가 된다. 하지만 순탄치 않았다. 공동창업자마저 그에게 용퇴를 요구했다. 그 때 경쟁자 피터 틸을 만나 ‘페이팔’로 합병하게 된다. 하지만 그가 욕심을 낼수록 내부 반발은 격화되었다. 2002년에 이베이에 매각되었고 그는 2억 5000만 달러의 투자수익을 챙긴다.◇ ‘로켓 맨’의 화성 탐사계획2002년 5월에 스페이스X를 설립한 머스크는 이듬해 9월 첫 로켓 발사와 2010년 화성 무인 탐사선 발사라는 당찬 목표를 제시한다. 우주항공업계 부품이 자동차보다 10배나 높다는 사실에 경악하곤 비용통제에 전념한다. 결국 스페이스X 로켓 구성품의 70%가 자체제작된다. 이를 계기로 엔지니어들에게도 ‘광적인 긴장감’을 강요하게 된다.2004년에 NASA와 2억 2700만 달러 계약을 따냄으로써 그의 우주 사업은 도약의 계기를 맞는다. 그러나 로켓 발사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2006년 3월에 첫 발사된 ‘펠컨 1호’는 연료 누출 사고로 공중 폭발했고, 2008년 세 번째 발사까지 계속 실패하자 적자가 눈덩이처럼 커졌다. 그럼에도 그는 “6주 후에 네 번째 발사를 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그런데 이런 황당함이 오히려 조직에 낙관적인 분위기를 확산시켰다. 순식간에 절망과 패배의 분위기가 결의로 가득차게 된다.마침 ‘페이팔 마피아’ 피터 틸이 2000만 달러를 투자한 덕에 네 번째 발사 자금을 조달한다. 마침내 2008년 9월 28일, 최초의 민간 제작 로켓이 새 역사를 썼다. 곧 이어 우주정거장을 12회 왕복하는 16억 달러 계약을 NASA와 체결하면서 파산을 면한다. 그는 자신의 컴퓨터 로그인 패스워드를 ‘ilovenasa’로 변경했다. 이후 무인궤도 진입 후 지구로 안전하게 귀환시키는, 어떤 민간기업도 성공하지 못했던 미션을 2010년 6월에 성공한다.◇ 혁신적인 전기차 ‘테슬라’리튬이온 배터리 전기차는 누구도 생각 못한 아이디어였다. 문제는 ‘비용’이었다. 초기 버전의 제작비가 대당 7만 달러 이상이었다. 하지만 그는 상용화 모델 ‘로드스터’의 개발을 추진키로 하고, 초기 자금 조달을 조건으로 ‘테슬라’의 이사회 의장을 맡는다. 그는 ‘대량생산’ 밖에 길이 없다며 밀어 부치면서 모든 공정에 간섭했고, 2006년에 드디어 시제품을 내놓는다.하지만 자금사정은 빠르게 악화되었다. 공급 체계가 문제였다. 일본에서 배터리 셀을 만들어 태국에서 팩으로 조립하고 영국에서 새시에 조립하는 방식이 물류는 물론 현금흐름 문제를 불렀다. 초기 로드스터 제작에 최소 14만 달러가 들었다. 10만 달러에 팔아야 적자만 쌓일 뿐이었다. 때 마침 다임러가 5000만 달러의 지분을 인수해 주지 않았다면 테슬라는 붕괴될 운명이었다.머스크는 곧바로 6만 달러 짜리 4도어 세단의 대량생산을 추진한다. ‘모델 S’였다. 차체를 최대한 얇게 만들기 위해 배터리 팩을 차량 바닥에 배치하는 등 모델 S는 ‘게임 체인저’가 된다. 자동차가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가 되었다. 지속적인 업 그레이드를 통해, 오래 굴릴수록 성능이 더 좋아지는 전기차가 창조된 것이다.◇ 머스크 만의 생산 알고리즘머스크가 자신만의 생산 알고리즘 완성을 위해 강조하는 다섯 가지 계명이 있다. 첫째, 모든 요구사항에 의문을 제기하라. 특히 법무당국이나 안전당국의 요구사항은 절대 거부한다. 둘째, 부품이든 프로세스든 가능한 최대한 제거하라. 셋째, 단순화하고 최적화하라. 넷째, 속도를 높여 주기를 단축하라. 마지막은 ‘자동화’다.때로는 몇 가지 부수사항을 수반한다. 모든 기술 관리자는 실무경험을 갖춰야 한다. 일을 방해하는 ‘동지애’는 경계 대상이다. 틀려도 괜찮지만 잘못된 것을 우겨선 안된다.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팀원에게 부탁하지 말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생기면 경영진보다는 실무 선임자를 만나고, 특히 ‘광적인 긴장감’을 늘 유지해야 한다.사진 왼쪽부터 빌 게이츠, 일론 머스크, 제프 베조스◇ ‘필생의 라이벌’ 이마존의 제프 베조스두 사람은 닮았다. 열정과 혁신, 의지력으로 세상을 흔들었다. 가능성을 의심하는 사람을 경멸한다. 다만, 베조스가 체계적이라면 머스크는 본능적이다. 리스크를 무시하고 몰아붙인다. 베조스도 아이작 아시모프와 로버트 하인리히를 탐독하며 자랐다. 고교 졸업식 때 “태양계 행성들을 식민지로 만들어 지구를 구하자”고 연설했다. 2000년에는 우주기업 ‘블루 오리진’을 창업했다.둘이 우주사업을 놓고 다투기 시작한 것은 머스크가 2013년에 케이프커내버럴의 유서 깊은 39번 발사대를 임대하자 베조스가 소송을 제기하면서 부터였다. 머스크는 “이쑤시개 하나도 궤도에 올려놓지 못한 블루 오리진이?”라며 조롱했다. 베조스가 2015년 11월에 우주공간의 시작이라는 62마일 상공까지 로켓을 올렸을 때도 그는 “우주 관광객에게나 재미있는 일”이라며 폄하했다.2021년 4월 스페이스X가 블루 오리진을 제치고 우주비행사를 달에 보내는 계약을 NASA에서 따내자 경쟁은 다시 불 붙었다. 위성통신 회사를 둘러싸고도 맞붙었다. 2021년 여름까지 스페이스X는 2000개에 달하는 스타링크 위성을 궤도에 배치했다. 베조스도 2019년 프로젝트 ‘카이퍼’를 발표했지만 2021년 말까지 발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빌 게이츠와 자선활동머스크는 2022년 초에 자선기금을 설립하고 57억 달러를 기부했다. ‘기부왕’ 빌 게이츠가 그를 찾았으나 둘은 당장 부딪쳤다. 게이츠는 “배터리로는 결코 대형 트럭의 동력을 공급할 수 없으며, 태양 에너지는 기후 문제의 주요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했다. 머스크가 화성에 과도하게 열중하고 있다면서 “지구 내 문제부터 해결하자”고 몰아 세웠다.머스크는 “(게이츠의) 대부분 자선활동은 허튼 수작”이라고 쏘아 부쳤다. 그는 자선활동 보다 에너지의 지속가능성과 우주 탐사, 안전한 인공지능을 추구하는 회사들에 투자하는 것이 인류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위험한 인공지능머스크는 “우리가 미리 안전장치를 해 놓지 않으면 인공지능 시스템이 인간을 대체해 인류를 멸종시킬 수 있다”면서 뜻을 같이 하는 샘 울트먼과 비영리 인공지능연구소 오픈AI를 공동 설립한다. 2018년에 그와 결별하고 ‘엑스닷에이아이’라는 자신의 새로운 챗봇 회사를 설립한다.그는 “챗봇과 AI 시스템이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에 넘어가면 정치적으로 세뇌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럼에도 오픈 소스형 비영리회사로 세워진 오픈AI가 마이크로소프트가 통제하는 폐쇄 소스형의 최대 영리회사가 되었다며 비판했다. “인류가 만든 가장 강력한 도구인 AI가 무자비한 기업 독점의 손아귀에 들어갔다”고 비난했다.◇ 논란을 빚은 트위터 인수그에게 트위터는 ‘놀이터’였다. 트위터 이사회가 먼저 손을 내밀자 이사회에 합류했다. 하지만 이내 기본 철학 부문부터 견해가 다름을 알게 된다. 그는 트위터가 사용자들의 발언을 제한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과하게 많다고 비판했다. “테슬라에는 200명인 엔지니어가 여기엔 왜 2500명이나 있느냐”고 따졌다.혁신적 금융 소셜 네트워크의 잠재력을 트위터에서 발견한 그는 결국 적대적 인수합병에 나선다. 거센 반발이 일었으나 주당 54.2달러에 지분 100%를 인수하겠다고 선언했다. 광고 의존도를 90%에서 45%로 줄여도 2028년까지 매출을 5배나 늘릴 수 있다고 호언했다. 우여곡절 끝에 총 440억 달러에 트워터 인수에 성공한다.이곳에서도 그는 직접 회사를 운영하길 원했다. 가장 먼저 2000명이 넘는 엔지니어들의 ‘살생부’를 만들었다. 90% 이상을 해고한다는 목표가 정해졌고 세 차례에 걸친 대학살이 펼쳐진다. 결과적으로 약 75%가 감원되었다. 이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2023-10-07 07:00 조진래 기자

데뷔작 ‘레드, 블랙’부터 최근작 ‘7부작’까지 욘 포세, 노벨 문학상 수상

2023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노르웨이의 욘 포세(연합/AFP)‘보트하우스’(Naustet), ‘멜랑콜리아’(Melancholia), ‘아침 그리고 저녁’(Morgon og Kveld), ‘이름’(Namnet), ‘기타맨’(Gitarmannen), ‘3부작’(Trilogien), ‘7부작’(Septologien) 등의 노르웨이 작가이자 극작가 욘 포세(Jon Olav Fosse)가 2023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스웨덴 한림원은 욘 포세를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하며 그의 작품들을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목소리를 부여한 혁신적인 희곡과 산문”(for his innovative plays and prose which give voice to the unsayable)이라 평했다.앤더스 올슨(Anders Olsson) 노벨문학위원회 위원장은 “그는 40여편의 희곡을 비롯해 소설, 시, 에세이, 아동문학, 번역서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고 있다”며 “포세는 노르웨이 언어(노르웨이 공식어 중 하나인 뉘노스크)와 자연에 뿌리를 두고 모더니즘의 예술적 기법들을 혼용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글을 쓴다”고 밝혔다. ‘헨릭크 입센의 재림’ ‘21세기의 사뮈엘 베케트’로 불리는 욘 포세는 한림원의 심사평처럼 “절제된 언어와 행동을 통해 인간의 불안과 심리적 모호함을 드러내는” 뛰어난 극작가이자 시인이기도 하다. ‘소파 위의 소녀’(Jenta i sofaen), ‘라일락’(Lilla) 등 그의 뉘노스크 어 희곡은 1000회 이상 무대에 오르며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헨리크 입센(Henrik Johan Ibsen) 다음으로 가장 많이 상연됐다고 알려진다.2023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노르웨이의 욘 포세ⓒ Tom A. Kolstad(사진제공=문학동네)“7살 때 당한 생사를 넘나드는 사고에 대한 경험이 창작에 영향을 미쳤다”는 욘 포세는 1959년 노르웨이 서해안의 헤우게순(Haugesund)에서 태어나 1983년 소설 ‘레드, 블랙’(Raudt, Svart)으로 데뷔했다.이후 ‘닫힌 기타’(Stengd Gitar), ‘보트하우스’ ‘병수집가’(Flaskesamlaren1991), ‘납 그리고 물’(Bly og Vatn), ‘아침 그리고 저녁’ ‘그리고 우리는 결코 헤어지지 않으리’(Og aldri skal vi skiljast), ‘이름’(Namnet), ‘누군가 올거야’(Nokon Kjem Til a Komme)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발표했다.“삶을 조종하는 것은 정체성이 아니라 여러 가지 관계들”이라고 강조하곤 하는 욘 포세는 1998년 뉘노르스크 문학상, 1999년 도블로우그상, 2003년 노르웨이 예술위원회 명예상 및 프랑스 국가공로훈장(Ordre national du Merite), 2010년 국제 입센상, 2014년 유럽연합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2014년 발표한 소설 ‘3부작-잠 못 드는 사람들(Andvake)/올라브의 꿈(Olavs draumar)/해질 무렵(Kveldsvævd)’은 2015년 북유럽 문학의 최고 영예인 북유럽 이사회 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3부작’ 이후 희곡에 매진하던 그가 2019년부터 집필해 완간한 장편소설 ‘7부작’도 다양한 문학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 중 6, 7편의 영어 번역본은 2022년 부커 상(International Booker Prize) 인터내셔널 부문 후보 그리고 2023년 전미 비평가 협회상 소설 부문(2023 National Book Critics Circle Award in Fiction) 최종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수상 소식을 전해 들은 그는 전화로 “벅차고, 조금 두렵다. 다른 무엇보다 문학이기를 목표로 하는 문학에 주는 상이라고 여긴다”는 수상소감을 전했다. 수상소감을 전하던 당시 운전 중이었던 욘 포세는 “냉정을 유지해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노벨상 시상식은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롬에서 열리며 욘 포세는 상금으로 1100만 스웨덴 크로나(한화 약 13억 4992만원)를 받는다.민음사는 욘 포세의 대표작으로 1995년과 1996년에 각각 출간됐던 ‘멜랑콜리아 I-II’ 합본판을 10월 20일 경 출간할 예정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노르웨이 문학 중 가장 뛰어난 작품에 수여하는 순뫼레 문학상과 노르웨이어를 빛낸 가치 있는 작품에 수여하는 멜솜 문학상 수상작으로 노르웨의 출신의 화가 라스 헤르테르비그의 비극적 일생을 담는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3-10-06 00:32 허미선 기자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 "내년 키워드는 '화룡점정'… AI시대 일수록 인간의 역할 중요"

김난도 서울대 교수(사진=미래의 창)매년 한 해의 소비 트렌드를 전망해 온 김난도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가 내년 키워드로 AI시대 일수록 인간의 역할이 중요해진다는 의미의 ‘화룡점정’을 꼽았다.김 교수는 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신간 ‘트렌드 코리아 2024’ 간담회에 참석해 내년 키워드로 화룡점정을 의미하는 ‘드래곤 아이스’(DRAGON EYES)를 제시했다. 아무리 인공지능 시대라도 작업의 완성은 결국 인간의 손길이 닿아야 한다는 뜻이다.그는 “인공지능이 민첩하게 결과물을 만들어 내지만 완성도는 아직 사람이 봐줘야 하는 단계”라며 “결과물의 80%는 기계가 하더라도, 나머지 20%는 사람이 손봐줘야 한다”고 말했다.그러면서 그는 AI에 원하는 답을 얻어내기 위해 인간의 역량이 더욱 중요해짐을 의미하는 ‘호모 프롬프트’를 내년의 주요한 트렌드 중 하나로 꼽았다.김 교수는 또 2024년의 주요 트렌드 중 하나로 ‘분초 사회’를 꼽았다. 이는 ‘1분 1초’가 아까운 세상, 시간의 가성비가 중요해진 사회적 경향을 의미한다. 그는 “요즘은 한 가지 일만 하지 않고, 동시에 여러 개의 일을 한다. 시간을 금같이 나눠 쓰는 사람이 많다”며 “예전에는 돈과 시간 중 돈이 중요했다면 요즘은 돈과 시간이 비슷하게, 또는 시간이 더 중요해지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또 다른 주요 트렌드로 ‘육각형 인간’이 꼽혔다. 육각형 인간은 외모, 학력, 자산, 직업, 집안, 성격 등 모든 것에서 하나도 빠짐이 없는 사람을 뜻한다. 김 교수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강박적인 완벽함이 드러난 트렌드라고 소개했다.그는 “예전에는 개천에서 용 나는 성장 서사가 유행했다. 그러나 지금은 환생, 빙의 등을 통해 처음부터 모든 걸 갖춘 주인공이 활약하는 서사가 웹소설 등에서 주류를 이룬다. 요즘은 고진감래의 과정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했다.이밖에도 김 교수는 △AI 기술을 토대로 한 소비자 맞춤형 서비스 ‘버라이어티 가격전략’ △여섯 시 정각이 되면 퇴근해 자녀와 함께 보내는 아빠들인 ‘요즘남편 없던 아빠’ △재미를 좇는 일이 일상이 된 ‘도파밍’ △저예산과 유동적 전략으로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도해보는 ‘스핀오프 프로젝트’ △나의 가치관과 취향을 오롯이 반영하는 콘텐츠 등을 소비하는 ‘디토소비’ △유목민적 라이프스타일을 구가하는 ‘리퀴드 폴리탄’ △돌봄의 시스템화를 추구하는 ‘돌봄경제’를 내년에 떠오의 주요 트렌드로 꼽았다.이형구 기자 scaler@viva100.com

2023-10-05 17:29 이형구 기자

[책갈피] 당신의 선택이 커피대신 홍차라면, '이 책'은 필수!

홍차와 함께하는 명화 속 티타임 | Cha Tea 홍차 교실 지음 | 박지영 옮김 | 1만4000원.(사진제공=북드림)고소한 향이 일품인 커피가 몸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굳이 ‘볶아서 태운 콩을 우려서 마시다니’라고 타박하지 않더라도 커피의 카페인이 체질상 맞지 않는 사람들에게 대체제로 녹차와 홍차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그렇다면 당신에게 밀크티를 마실때 우유를 먼저 넣는지 아니면 홍차를 먼저 우리는지를 묻는다면? 북드림 출판사의 ‘홍차와 함께하는 명화 속 티타임’에서는 오후의 달콤한 홍차 한 잔에 시대적 계급이 엄연히 존재함을 알려준다. 부제인 ‘17세기부터 19세기 빅토리아 시대까지,홍차 문화를 한눈에 보다’란 부제에 맞게 도자기가 귀한 시대에 뜨거운 홍차를 넣기보다 찬 우유를 먼저 타 깨짐을 방지했던 에피소드가 나오기 때문이다.이 책에서는 한 가지 주제에 그림 한 점과 글 한 편을 묶어, 차와 관련된 60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앳 홈, 애프터눈 티, 애프터 디너 티 등 여러 형태의 차 모임부터 티컵, 티볼, 티스푼, 티포트 등 차 마시는 데 필요한 다기를 필두로 동인도 회사, 만국 박람회 등 차와 관련된 역사적 단체와 사건과 당시의 티 에티켓까지 매우 다양하다. 글 한 편의 분량이 2~3쪽이라 쉬는 시간이나 티타임에 가볍게 읽을 수 있고 그림 한 점을 보고 글 한 꼭지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유럽의 차 문화와 에티켓만 소개할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후의 차 모임인 애프터눈 티에서는 논쟁이 될 만한 주제, 듣는 사람까지 지치게 하는 푸념은 금기시되었다. 다기를 뒤집어 상표를 확인하는 행위도 주인이 준비한 다기에 값을 매기는 비매너인건 작금의 시대애도 통하는 예의범절이다.차에 얽힌 세계사를 알아가는 재미도 있다. 18세기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대도시를 중심으로 엄청난 수의 공장이 들어섰고, 장시간 노동에 시달린 노동자들의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 수단은 술. 단순한 기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책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 녹아든 것이다. 알콜중독으로 인한 사회문제가 대두되자 이 과정에서 홍차가 술을 대신할 음료로 떠오른것.가장 대중적인 사랑을 받고있는 얼 그레이티의 탄생에는 당시 영국 정치의 현실이 녹아있다는 점에서 가독성을 높인다. ‘홍차와 함께하는 명화 속 티타임’속 명화들 속에는 아름다운 다기와 디저트가 가득한 티 테이블, 차를 마시는 사람들의 화사한 옷차림, 그들을 둘러싼 아늑한 실내나 꽃이 가득 핀 정원, 햇살 가득한 야외 까지 붓으로 묘사된 차의 문화를 눈으로 훑는 것만으로도 힐링타임을 만끽할 것이다.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2023-10-02 14:18 이희승 기자

[책갈피] 매순간 10리터의 피, 땀, 눈물로 얼룩진 전세사기 분투기 ‘루나의 전세역전’

루나의 전세역전|홍인혜 글·그림|정민경 감수(사진제공=세미콜론)그야 말로 고군분투다. 엄연히 피해자임에도 자괴감과 자책이 휘몰아치고 비난의 대상이 될까 두려움이 앞서 차마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채 전전긍긍했다. ‘루나의 전세역전’은 카피라이터 출신의 만화가이자 시인인 루나(Luna) 홍인혜가 직접 체험한 전세사기 피해를 해결하는 과정을 담은 생생한 분투기다.그 시작은 3년을 거주하던 집에서의 갑작스런 퇴거요청이었다. 가스유출을 핑계로 강제 퇴거되면서 사람과 세상에 대한 신뢰를 잃은 것으로도 모자라 더한 고난이 몰려들었다.  루나의 전세역전|홍인혜 글·그림|정민경 감수(사진제공=세미콜론)꼼꼼하게 따져보고 입주한 새 전세집, ‘경매예정’을 알리는 임차인 통지서, 적지 않은 내 돈이 얽혀 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던 시간 끝에 결국 잡혀버린 경매일, 세입자의 전세금보다 순위가 앞선 집주인의 체납세금, 경매 입찰을 위해 예고도 없이 들이닥치는 낯선 사람들, 고통을 공유하기에는 더 불안하게만 하는 지인들의 걱정스러운 말들, 경매 유찰과 낙찰 그리고 중단, 급기야 날아든 공매 통지서….매일을 이사 전날처럼 불안에 떨면서도 직장생활을 유지하며 신체적, 정서적으로 피폐했던 시간들을 보내다 결국 어떤 전문가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가 집주인이 되기 위해 했던 고군분투가 고스란히 담겼다.상식을 기대할 수 없는 집주인의 뻔뻔함과 안하무인이 난무하고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었으며 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었던 그 시간의 매순간에는 10리터의 피, 땀, 눈물이 스며들었다.부동산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이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그림이 곁들여진 설명과 말도 안되는 사기꾼의 악행에도 스스로의 일상을 지키고자 마음과 정신줄을 다잡는 루나의 고군분투는 이 책의 백미다. 부동산 사기가 판을 치지만 그 어떤 상식도 통하지 않고 어떤 누구, 나라 및 해당기관과 법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시대다. 결국 ‘결자해지’의 각오로 임해야하는 각자도생의 시대에서는 그렇게 누군가의 체험도 내 이야기가 될지도 모를 불행에 대한 대비책 중 하나가 된다.그럼에도 주목해야할 것은 모든 사건이나 사례들이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참고할 것은 참고하되 자신의 일에 맞는 해결책은 스스로 공부하고 발품을 팔아야 해결이 가능해 진다. 그 어떤 지혜와 지식도 결국 어떻게, 어디까지 활용하느냐는 스스로에게 달렸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3-10-01 11:51 허미선 기자

[책갈피] 저마다의 커피, 그 안에 담긴 저마다의 이야기 ‘나만 알고 있는 당신의 커피’

사진출처=픽사베이토종 밤꿀 한 숟갈, 에스프레소 샷 3개, 무지방 우유 70~80ml로 낸 거품 그리고 표면을 거의 덮을 정도의 시나몬가루. 매일 아침이면 밤새 그 속도가 느려졌을지도 모를 신체와 정신을 깨우는 커피가 있다.이는 빈 속에 진한 아메리카노, 에스프레소를 들이켜다 위장 장애를 얻으면서 수차례의 시행착오와 변화를 거듭한 끝에 만들어낸 것이다. 유난히 추웠던 한겨울, 몸을 녹이라며 밤꿀 차를 내어준 한 예술가의 호의에서 영감을 얻은 이 레시피는 수십년 간 매일의 하루를 시작할 에너지가 돼 준 ‘동반자’와도 같다.피곤한 날에는 연거푸 한잔을 더 마시기도 하는데 너무 지친 날에는 이 마저도 입맛을 되살리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니 이 커피는 매일 아침의 루틴인 동시에 컨디션과 건강 상태를 가늠하는 주치의(?)이기도 했다.나만 알고 있는 당신의 커피|조엘 글, 아토(소형섭) 사진(사진제공=크레파스북)호주 로컬 카페에서 커피를 배우고 경험하는 ‘골드코스트 한달살이’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 조엘(Joel Park)이 쓴 글에 대학도 자퇴하고 호주에서 11년째 살고 있는 아토(소형섭)의 사진을 곁들인 ‘나만 알고 있는 당신의 커피’는 이 같은 저마다의 커피에 담긴 삶 이야기다.공부도 뒷전인 조엘이 여행자의 삶을 살다 한국에서 시작한 사업에 실패하고 다시 방문한 호주의 골드코스트에 카페를 열면서 만난, 커피 없이는 못사는 호주 사람들의 이야기가 ‘골드코스트, 절망과 기회를 만나다’ ‘커피를 만드는 시간, 커피를 마시는 삶’ ‘커피와 함께 하는 삶, 커피잔에 담긴 이야기’ 3개 섹션에 나눠 담긴다.책은 ‘서른 중반 골드코스트 정착’을 꿈꾸며 발 디딘 호주에서 최저시급 20달러짜리 동네 카페에서 조엘이 몸소 겪은 호주인들의 성향, 커피 라이프 등과 골드코스트 카페 창업 과정으로 시작한다.전세계를 덮친 코로나19로 사라져버린 동업자, 그 위기가 기회로 작용하며 흥했던 카페사업 등 저자의 골드코스트 생활 속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겼다.전동차를 타는 은퇴한 작가 브라이언, 사채업자 존, 중년의 백발 은행원 소냐, 노쇠한 할아버지 세르지오, 커피 한잔이 350만원까지 치솟은 베네수엘라에서 온 후안, 서핑에 진심인 네이슨, 용역업체 사장 사이먼, 직원이 된 단골손님 멜라니, 레지던트 나타샤, 하드 워커 앤드류, 보석상의 조엔, 중국 이민자 쿠이니 가족과 애니, 여전히 신혼같은 노부부 로버트와 빅토리아, 노숙자 자넷, 블루칼라(Blue Collar) 노동자 토니와 클라우스, 회계사 존, 부동산 중개업소와 레스토랑 사장 이합, 아부다비에서 온 자예드, 아시안 정서를 이해하고 언어를 구사하는 올리, 일본인 모모, 태국여자 팍시….그들이 먹고 마시는 다양한 플랫 화이트와 차이 라테, 라테아트가 필수인 피콜로, 초콜릿 가루를 뿌린 카푸치노, 프렌치 토스트, 아몬드 라테, 지밀모카와 스매시드 아보카도, 프레틴 볼, 빅 브레키, 바닐라 라테, 골드코스트롤, 버터 밀크 프라이 치킨버거 등.그렇게 ‘나만 알고 있는 당신의 커피’는 커피 책처럼 보이지만 사람 이야기이자 창업자이며 한 인간으로서 그곳을 사랑하고 배우며 살아가는 이의 일상이자 삶의 여정이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3-09-29 18:00 허미선 기자

올 2분기 월 평균 서적 지출액 10% 이상 감소, 40대 가구만 1만원대

사진출처=픽사베이월 평균 서적 지출액의 감소세가 심화되고 있다. 올 2분기 월 평균 책 구입비용이 1만원을 넘은 경우는 가구주 연령이 40대인 가구가 유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29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가구주 연령이 40대인 가구의 월평균 도서 지출액은 1만 7475원으로 지난해(1만7455원) 동기대비 0.1% 늘었다. 이를 제외한 39세 이하 가구에서는 도서지출비로 1만원도 채 소비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전체 가구의 월평균 도서 지출액은 8077원으로 지난해(9011원) 동기대비 10.4% 감소했으며 39세 이하 가구는 월 평균 서적 지출 비용이 9033원으로 지난해(1만3701원) 보다 34.1%나 줄었다. 2000년대 중반까지 2만원대를 유지했던 39세 이하 가구의 2분기 책 구입비는 2012년 2분기(1만 9668원)부터 1만원대로 떨어지면서 꾸준히 감소세를 기록하더니 올 2분기 1만원대까지 붕괴됐다.이는 전반적인 독서율 감소와 종이책을 비롯해 이북, 오디오북, 유튜브 등 플랫폼 다각화로 인한 독서의 개념이 확장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지난해 11월 서울시민 1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서울기술연구원)에 따르면 10대의 19.6%, 20대의 13.5%가 유튜브 등 동영상을 보는 것도 ‘독서’라고 답했다. 통계청의 ‘월평균 서적 지출액’은 오롯이 종이책 구입만을 반영한 수치로 이북, 오디오북 등은 ‘문화 서비스 지출’에 속한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3-09-29 14:31 허미선 기자

[비바100] 색깔, 상징이 되기까지…

(사진출처=게티이미지)20년차 CMF(Color, Material, Finishing) 디자이너가 전하는 9가지 색깔에 관한 이야기다. 이들 컬러가 어떻게 탄생했으며, 어떻게 인간과 어울려 의미와 가치를 부여받고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감성 있게 소개한다. 저자는 코코 샤넬의 말을 인용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색은 당신에게 잘 어울리는 색”이라고 전한다.컬러 인사이드|황지혜|크레타◇ 천박하고 매혹적인 컬러 ‘레드(RED)’레드의 상징 ‘페라리’저자는 레드가 가장 천박할 수도, 가장 매혹적일 수도 있는 컬러라고 말한다. 강인한 생명력, 열정과 사랑, 권력, 분노와 수치 등 다양한 이미지를 갖는다. 이집트인들은 생명·승리의 의미로 붉은 황토를 몸에 발랐고, 르네상스기에는 권력을 상징했다. 프랑스혁명 후로는 자유와 혁명을 상징한다. 앙리 마티스는 대표작 붉은 방에서 작품 전체를 강렬한 레드 원색으로 표현하기도 했다.최초의 손목시계를 만든 ‘까르띠에’는 진한 레드로 제품의 전통과 권위를 살렸다. ‘페라리’는 다소 어두운 ‘로소 스쿠테리’부터 시작해 9개의 대표 레드 컬러를 운영하며 차별화된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영국의 국가 상징 색은 높은 채도의 ‘칠리 레드’다. 국기 ‘유니언잭’에도 칠리 레드가 있다. 십자군 전쟁 때부터 국가 상징 색으로 사용되었다. 1854년 앤 여왕이 영국 상선의 깃발 컬러로 공표하면서 공식화되었다. 영국의 명물 공중전화 박스와 이층 버스도 모두 레드 컬러다.◇ 깊고 넓은 컬러 ‘블루(BLUE)’조니워커 블루라벨블루는 이성적이고 중립적이며 깊고 넓다. ‘깨진 얼음의 색’으로, 자연에서 재현하기 어려운 컬러로 여겨졌다. 지금은 유엔과 유럽연합, 유네스코, 나토 등 국제기구를 대표하는 색으로 자리잡았다. ‘울트라마린’과 ‘코발트 블루’는 특히 고가와 고귀함의 상징이다. 고호는 코발트 블루를 사용해 ‘별이 빛나는 밤’ 같은 명작을 탄생시켰다. 삼성의 컬러도 블루다. 2005년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블루블랙폰’을 시작으로 ‘페블 블루’ 등 제품의 컨셉과 소재에 최적화된 새로운 블루 컬러를 계속 만들어내고 있다.조니워커는 라벨 컬러에 따라 서로 다른 풍미와 품질, 캐릭터를 갖는다. 블루라벨은 그 중 최고급 프리미엄 라인업으로 맛과 향, 목 넘김 등 모든 면에서 독보적이다. 유럽에서 블루가 비범함과 월등함을 상징하듯이, 조니워커 블루라벨도 스카치 위스키계의 왕 중의 왕으로 평가받는다. 지금도 다양한 에디션 제품으로 높은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스타벅스의 컬러 ‘그린(GREEN)’그린 컬러를 선택하며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한 스타벅스그린은 생명의 탄생에서 죽음까지, 대자연의 시작과 끝이 담긴 컬러다. 편안함과 조화, 균형을 상징한다. 고대 로마에서는 그린이 미의 여신 비너스를 의미했다. 중세에선 부유층의 컬러였다. 20세기 들어선 반 공산주의 녹색당이나 환경운동을 상징했다. 이슬람권에서는 유토피아를 상징하는 가장 신성한 컬러다.그린 컬러의 세이렌 로고로 유명한 스타벅스는 창사 40주년을 맞은 2011년부터 지금의 디자인 로고와 그린 컬러를 사용 중이다. 매장 인테리어도 그린을 5% 정도 비율로 사용한다. 이탈리아의 명품 브랜드 ‘보테가 베네타’는 한 동안 진부하다는 평가를 받다가 ‘페러킷(parakeet)’이라는 원색의 파격적인 그린 컬러를 선택한 이후, 젊고 혁신적이며 긍정적인 이미지로 쇄신했다.◇ 테니스공의 색깔? ‘엘로(YELLOW)’따뜻하고 부드러우며 낙관적이지만 시기와 질투, 탐욕을 의미하기도 하는 컬러다. 1만 7000년 전 그려진 프랑스 라스코 동굴의 말이 노랑으로 채색되었을 만큼 역사가 깊다. 고호는 해바라기 작품에서 해바라기는 물론 배경의 벽과 테이블까지 모두 채도를 달리 한 옐로로 칠했다. 이마트나 노브랜드, 이케아 등도 친근하고 즐거운 이미지의 옐로를 브랜드 아이덴티티로 착용하고 있다.카카오의 옐로도 눈길을 끈다. 블랙에 가까운 다크 브라운과 옐로의 배색이 명시성과 가독성을 한층 높였다. ‘옐로캡’은 뉴욕 맨해튼의 명물이다. 가장 눈에 띄는 옐로 컬러로 차량 색을 통일하고 운전기사에게도 옐로 점포를 입혔다. 테니스공도 옐로다. 100여 년 동안 사용되던 화이트 고무공이 컬러 TV 보급을 계기로 위기를 맞자 국제테니스연맹이 지금의 색깔로 바꾸었다. 이 컬러가 그린이냐 옐로냐는 논쟁이 지금도 뜨겁다. 현재 공식화된 컬러명은 ‘옵틱 옐로(Optic yellow)’이다.◇ 에르메르가 만든 컬러 ‘오렌지(ORANGE)’주황색을 글로벌 컬러로 만든 에르메스.주황은 미각과 후각을 자극하는 가장 상큼한 컬러다. 인도에서는 ‘영성의 컬러’로 통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빛의 찰나를 표현해 화가들은 ‘최적의 컬러’라고 평가한다. 높은 가시성 덕분에 구조용 비행기와 구명조끼, 블랙박스 등 위급 상황에도 적극 활용된다. 미국에서는 재소자 의복의 색상이다. 도주 시 눈에 잘 띄기도 하지만 활력과 긍정적인 사고를 고양시킨다는 이유에서다.에르메스(Hermes)는 오렌지 컬러에 첫 유명세를 안긴 브랜드다. 그레이스 켈리 모나코 왕비가 애용했던 ‘켈리백’에 이어 지금은 최상급 악어가죽으로 일주일에 12개만 만든다는 수제 ‘버킨백’으로 오렌지 원색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존재감이 적은 오렌지 컬러를 국가의 상징으로 사용하는 나라가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다. 스페인과 카톨릭에서 독립시켜 준 민족의 영웅 오랑주(orange) 가문에 대한 존경심이 바탕이 됐다. 오렌지를 형용사로 ‘좋다, 훌륭하다’는 최상급으로 사용할 정도다.◇ BTS의 상징 색 ‘보라(VIOLET/PURPLE)’BTS 멤버 ‘뷔’의 바이올렛 컬러 마스크보라는 변화무쌍한 역동적 가치를 지녔다. 블루에 가까운 바이올렛, 레드에 가까운 퍼플로 나뉜다. 퍼플은 럭셔리를 대변하는 컬러였다. 퍼플 염료 1g 제조에 1만 마리 달팽이가 필요했다고 한다.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는 “바이올렛이야 말로 대기의 진정한 색”이라고 극찬했다. 100여 점의 워털루 다리 연작을 남겼는데 한결같이 보라 색채다. 패션 디자이너 안나 수이는 의상과 액세서리, 화장품, 향수에 이르기까지 퍼플만을 모티브로 삼는다. 그의 퍼플은 특히 수 많은 브랜드와의 협업으로 더욱 빛난다.최근에 보라는 ‘BTS의 컬러’로 완전히 재해석되고 있다. 2016년 공식 팬 미팅 때 팬들이 응원 봉에 보라색 비닐봉투를 씌워 흔드는 퍼포먼스를 보인 이후 바이올렛 보라는 BTS를 상징하는 컬러가 되었다. BTS는 삼성전자나 아모레퍼시픽과 스타벅스 맥도날드 등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을 이어가고 있는데, 해당 기업들은 그 때마다 자신들의 색깔을 내려놓고 퍼플을 채용한다.◇ 마니아를 가진 색 ‘핑크(PINK)’핑크는 마니아 층을 가진 컬러다. 로맨틱하고 부드러운, 꿈과 낭만의 색이다. 원래 ‘소년의 컬러’로 인식되다가 미국 34대 대통령 아이젠하워의 영부인 마미가 취임식 때 핑크 색 원피스를 입은 이후로 여성스러움을 상징하는 컬러로 바뀌었다. 코코 샤넬이 질투했다는 스키아파렐리는 1938년에 헐리우드 여배우 메이 웨스트의 몸매를 본 딴 향수 ‘쇼킹 핑크’로 파장을 일으켰다. 소심하고 차분했던 핑크의 이미지를 파괴적이고 개성 넘치는 컬러로 탈바꿈 시켰다. 초현실주의 예술가들과의 콜라보도 왕성하게 펼쳤다.화가 르누아르는 잔 사마리의 초상에서 밝은 옐로에서 핑크로 자연스럽게 번져가는 화법으로 핑크의 사랑스러움을 극대화했다. 핑크 컬러가 주는 진정성과 안정감은 스위스의 페피콘 교도소에도 접목되었다. 심리학자의 조언에 따라 교도소 30개 방을 모두 쿨 다운 핑크로 칠했다. 우리나라에서도 2011년 송파 경찰서 유치장에도 벽면을 핑크와 그린 컬러로 꾸미는 시도가 있었다.◇ 카리스마 넘치는 ‘블랙(BLACK)’남성의 전유물이었던 블랙을 여성의 컬러로 만들러 준 샤넬의 ‘리틀 블랙 드레스’.블랙은 어두움과 죽음, 악의 색깔이었다. 하지만 많은 아티스트와 디자이너들은 블랙이 모든 컬러를 압도하는 강렬한 카리스마 컬러라고 평가한다. 저자는 블랙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단 번에 바꾼 인물로 코코 샤넬을 든다.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블랙을 ‘리틀 블랙 드레스’ 하나로 오늘날 여성의 컬러로 만들어 주었다고 극찬한다. 롤스로이스의 ‘고스트 블랙 배지’는 최고급의 럭셔리한 가치와 의미를 담았다. 가장 짙은 블랙을 만들려고 45㎏의 페인트를 투입해 다섯 시간 동안 장인이 손으로 직접 광택을 낸다고 한다.99.965%의 빛 흡수율을 지닌, 세상에서 가장 짙은 블랙이 ‘반타블랙(VantaBlack)’이다. 이 신비로운 컬러의 독점권을 사들여 완벽한 어둠과 무를 표현한 이가 인도 출신의 영국 예술가 아니쉬 카푸어다. 미국 시카고 밀레니엄 파크에 설치된 ‘클라우드 게이트’는 거대 조형물을 현존하는 가장 짙고 완벽한 블랙으로 덮어 초현실적 분위기를 창조해 냈다.◇ 가장 완벽한 색 ‘화이트(WHITE)’저자는 화이트를 “태초의 색이자 가장 완벽한 색”이라고 말한다. 16세기에 한 때 슬픔과 애도를 상징하는 ‘과부’의 컬러였으나 지금은 어느 나라에서든 공통적으로 밝음과 빛, 평화와 저항의 상징이다. 흰 리본은 여성폭력 추방운동을 뜻하며, 흰 장미는 히틀러의 나치 정권에 맞서 싸우다 희생된 백장미단 ‘바이세 로제’의 상징이다.2001년 애플의 디자이너 조너선 라이브가 ‘미니멀리즘의 끝판 왕’ 아이팟을 솔리드 화이트 색상으로 선보였다. 스티브 잡스가 다양한 컬러로 출시할 것을 원했지만 그가 고집을 부려 화이트 단 하나의 컬러 모델로 내 놓아 대박을 쳤다. 화이트의 백미는 웨딩 드레스다. 1813년 프랑스 패션잡지 여성과 패션에서 처음 선보였고, 1840년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앨버트 왕자와 결혼식 때 흰색 공단에 레이스가 달린 드레스를 착용하면서 오늘날 화이트 웨딩드레스의 시초가 되었다.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2023-09-23 07:00 조진래 기자

[비바100] "한계를 두려워 않고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는다"… '후츠파' 정신무장, 작지만 강한 나라

(AFP=연합)이스라엘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나라다. 세계적인 스타트업의 산실답게 젊고 에너지가 넘치는 나라지만 우리가 모르는 오랜 역사와 관습의 나라이기도 하다. 이스라엘 대사를 역임했던 저자는 우리가 아는 이스라엘과 실제 이스라엘 사이의 큰 간극을 설명한다. 그들의 국민성, 전통과 관습, 창의력의 원천 등을 세밀하게 소개한다. 시중의 그 어떤 책들보다 이스라엘을 제대로 알려주는 책이다.7가지 키워드로 읽는 오늘의 이스라엘|최용환|세종서적◇ 시오니즘과 분쟁의 역사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영토 변화 흐름.‘시오니즘’ 운동은 오스트리아 언론인 테오도르 헤르츨로부터 시작됐다. 그는 1897년 스위스 바젤에서 첫 시오니스트 총회를 열어, ‘약속의 땅’인 에레츠 이스라엘(팔레스타인)로 돌아갈 것을 선포했다. 1904년 44세에 사망한 그는 오늘날 ‘나라의 선지자(호제 하 메디아)로 추앙받는다. 그의 유해는 건국 이듬해인 1949년 예루살렘으로 옮겨졌다.유엔은 1947년 팔레스타인 영토 분할 안을 결의했다. 55%의 땅을 유대인들에게 할당한 이 결의안은 이 지역 미래의 큰 분수령이 됐다. 예루살렘은 1949년 휴전협정 때 동쪽은 요르단, 서쪽은 이스라엘이 나눠 관할하게 된다. 하지만 예루살렘의 상징은 ‘동 예루살렘’이었다. 특히 동남쪽의 ‘성전산’은 3대 종교의 공통적인 성지로, 누구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곳이었다.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는 1988년에야 독립국가 선언과 함께 이스라엘을 인정한다. 서안과 가자 지구 두 곳에는 8m의 장벽이 쳐져 있다. 환경은 척박하고 자원은 부족한데 인구는 많고 사회 인프라는 취약하다. 특히 가자 지구는 이슬람 저항운동 세력 ‘하마스(HAMAS)’가 통치하며 이스라엘을 위협하고 있다. 이스라엘 가정마다 ‘마마드’라는 자체 대피공간이 의무화되었을 정도다. 하마스는 “동 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의 수도”라며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디아스포라와 이민이스라엘의 초특권층 하레디. 이들은 복장 등 확연히 구분되는 삶을 산다. 최근에는 병역 면제 혜택 등에 대해 비판을 받고 있다.이스라엘 정부는 1999년부터 해외 젊은 유대인들의 모국 방문 프로그램 ‘타글리트’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이렇게 돌아온 유대인들을 ‘올레(귀환자)’라고 부른다. 매년 2만 5000명 씩, 25만 여명이 2008년부터 10년 동안 돌아왔다. 이들의 최대 어려움은 ‘언어’다. 새롭게 히브리어를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사춘기 자녀들은 학교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호소한다고 한다.이스라엘 인구는 꾸준히 증가세다. 1990년대 소련 붕괴 때는 40여 만명의 구소련 유대인들이 몰려왔다. 합계출산율 3명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대로면 2~3년 내 인구 1000만 명 시대를 맞게 된다. 2065년이면 방글라데시에 이어 세계 2위 인구밀도 국가가 유력시된다. 때문에 일부에선 인구 폭발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민이 어려운 나라’가 된 이유 가운데 하나다.이 곳 유대인들은 종교적으로 네 그룹(하레디, 다티, 마르소티, 힐로니)으로 나뉜다. 초정통파 종교인 하레디(Haredi)는 확연히 차별화되는 그룹이다. 출신 지역별로는 9~10세기 라인강 유역에 살던 ‘아시케나지(Ashkenazi)인’들이 가장 영향력 있는 집단이다. 역대 총리들과 미국의 유대인들이 대부분이 이들이다. 최근에는 현지 태생의 유대인 ‘사브라’가 주도세력으로 급부상 중이다.이스라엘 국적의 팔레스타인계 아랍인들도 20%에 이른다. 1948년 건국 때 살고 있던 아랍인이라는 뜻에서 ‘48 아랍인’이라고 부른다. 이스라엘의 빈곤층 비율은 17% 수준으로 OECD 평균인 12%보다 높다. 특히 아랍계는 47% 정도가 빈곤하게 살고 있다. 전반적으로 풍요로운 경제발전 상황에서도 그룹간 격차 해소 문제는 이스라엘의 난제 중 하나다.◇ ‘작은 나라, 강한 군대’이스라엘의 주력부대. 속정속결의 전투력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이스라엘 특유의 엘리트 양성 시스템은 군에서 시작된다.이스라엘은 ‘전쟁 중인 국가’다. ‘짜할(Zahal)’이라고 불리는 방위군이 17만~18만 명 정도로 알려졌다. 예비군도 46만~47만에 이른다. 짜할의 특장점은 ‘신속성’이다. 반드시 전쟁에 이겨야 하기에 속전속결이다. 그래서 공군력을 활용한 선제 기습공격에 능하다. 2000㎞까지 날아가 적국 원자로 건설현장을 공습하기도 했다. 사이버전이나 고도의 심리전에도 능하다.‘난공불락의 파수대’ 뜻의 ‘탈피오트(Talpiot)’는 이스라엘이 자랑하는 엘리트 양성 프로그램이다. 매년 상위 1~2%의 과학영재 고교생 50명 정도를 선발해 장교로 양성해 6년 동안 특수기관 등에 복무케 한다. 전역 후가 보장되기에 경쟁이 엄청나다. 전문 정보요원을 키우는 하바찰롯(Havatzalot), 통신정보 수집과 비밀암호 해독 특수부대 ‘쉬모네 마타임(일명 8200부대)’도 유명하다.남성은 26세 이하면 30개월 복무를 한다. 27세 이상이거나 해외 이주자는 6~12개월 정도 짧다. 여성은 26세 이하면 24개월만 복무한다. 임신했거나 하레디 자녀, 아랍계 국민은 면제된다. 군 내 3분의 1이 여성인데, 최근에는 비행 조종사나 전투병과에도 진출하고 있다. 남부 사막지대의 이집트 시나이반도 국경 전투부대 ‘33보병대대’에는 여성이 3분의 2나 된다.이스라엘에는 크게 세 종류의 정보 보안기관이 있다. 해외에서 정보수집과 비밀공작을 맡는 ‘모사드(Mossad)’가 가장 유명하다. 창설 70여 년 동안 책임자가 13명에 불과할 정도로 장수직이다. 집요함으로 특히 명성이 자자하다. 유대인 학살범 아돌프 아이히만을 십 수년 추적 끝에 아르헨티나에서 압송해 법정에 세운 사례는 ‘용서도 없고 잊지도 않는다’는 그들의 정서를 잘 보여준다.◇ 창업 정신과 ‘후츠파’엘빗 시스템즈 '수직 이착륙 무인 항공기'이스라엘에서 ‘후츠파(Chutzpah)’란 원래는 무례함, 당돌함, 후안무치함 등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이는 말이다. 하지만 외부에서는 이스라엘의 성공 비결이자 발전의 원동력으로 평가된다. 한계를 두려워 않고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는 정신이 후츠파 덕분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그러나 이스라엘에서는 유대인에게 이 단어를 함부로 사용하지 말라고 조언한다.USB 플래시 드라이버, 자율주행 차량의 차선 인식장치, 캡슐형 내시경, 무인 항공기, 심지어 방물토마토까지 이스라엘의 산물이다. 무려 6000~7000개의 스타트업이 활동 중이다. 인구 1500명 당 하나 꼴이다. 자율주행 기술의 모빌아이, 인공지능 칩 제조사 하바나 랩 등 대박 난 스타업들도 많다. GDP 대비 RD 투자 비율이 2019년 기준 4.93%로 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최근에는 국가 슬로건이 ‘스타트업 국가에서 두뇌국가로’로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전반의 디지털화는 매우 열악한 편이다.최근에는 두뇌유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스라엘을 떠나 해외로 이주한 사람을 ‘요르딤(yoredim)’이라고 하는데 의사와 과학자, 이공계 교수, 하이테크 엔지니어 등이 상당수에 달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이스라엘에서의 삶의 질이나 사회 전반의 인프라가 OECD 국가들보다 뒤진다고 불만이 많아 주로 미국과 캐나다, 유럽 국가들로 이주한다.◇ ‘창의력 교육’과 토론 문화이스라엘은 공교육보다 가정에서 이뤄지는 사교육이 창의력의 발판이라는 평가를 많이 듣는다.이스라엘 사람을 ‘ASRAELI’라고 표기한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Informal), 직선적이며(Straightforward), 위험을 감수하고(Risk-taking), 야망에 가득차 있으며(Ambitious), 기업가 정신이 뛰어나고(Entrepreneurial), 목소리가 크며(Loud), 상황대처에 능하다(Improvisational)는 뜻이다. 여기에 창의력도 상당히 높게 평가받는다.하지만 정작 이스라엘 안에선 공교육 수준이나 방식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이 많다. 학생들의 객관적 학력 수준도 그다지 높은 편이 아니다. 정작 창의력을 기르는 이스라엘 교육의 핵심은 ‘가정교육’에 있다. 밥상머리 교육이 매 주말마다 가족이 함께 하는 샤밧(안식일) 저녁식사를 통해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많은 가정에서 자녀가 어릴 때부터 자기 생각을 거리낌 없이 말하고 표현하도록 장려한다. 목표에 이르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문제들의 해결 방법을 찾는데 교육의 큰 비중을 둔다. 친구나 동료를 뜻하는 유대인 교육방식 ‘히브루타’는 짝을 이뤄 주제를 정해 토론함으로써 생각하는 힘을 키우고 깊어지게 하는 전통적인 교육 방식이다.◇ 조약 없는 영혼의 동맹 미국이스라엘 임시정부가 1948년 5월 14일 독립과 건국을 선포하자 11분 만에 전격 (임시)승인했을 정도로 미국은 대표적인 친 이스라엘 국가다. 지금도 매년 40억 달러 수준의 군사·경제적 지원을 한다. 서로를 ‘동맹’이라고 부르지만 동맹조약 체결 없이 ‘특별한 동맹’, ‘인지적 동맹’이라 부른다. 이스라엘은 미국 입장에서 지역안보와 국익 수호를 위해 중동에서 가장 전략적 가치를 지닌 곳이다.두 나라는 신앙으로 다져진 연대의식을 자랑 한다. 두 나라가 신앙적으로 ‘운명공동체’라고 믿는다.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기독교인 연합’은 반 유대주의에 맞서는 대표적인 친 이스라엘 기독교 조직이다. 하지만 미국 내 유대인들이 모두 이스라엘을 무조건 지지하지는 않는다. 이스라엘의 인권 탄압을 비판하는 그룹들도 적지 않다.다수의 미국 유대인은 진보적 성향의 민주당에 우호적이다. 2020년 대선에서도 75%가 민주당의 조 바이든을 지지했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스라엘이 지금처럼 이슬람 국가들과 관계 개선을 확대해 나간다면, 이슬람에 적대적인 미국 내 일부 강성 기독교인들이 이스라엘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고 전망한다.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2023-09-16 07:00 조진래 기자

[비바100]등단 40주년 ‘인생’ ‘허삼관 매혈기’ 등의 위화 작가 “제 ‘인생’이 ‘인생’만으로 살아가는 건 아니에요!”

위화 작가(사진=허미선 기자)“제 작품 중 ‘인생’(活着, 연간 판매량 160만부) 외에 중국 내에서 연간 100만권 이상 팔리는 책은 지난해부터 ‘제7일’(第七天)이에요. 그리고 세 번째가 ‘가랑비 속의 외침’(在細雨中呼喊)이죠. ‘가랑비 속의 외침’은 굉장히 오래된 책인데도 상반기에만 29만권이 판매됐다고 해서 저조차도 놀랐습니다. 특히 ‘제7일’과 ‘가랑비 속의 외침’은 젊은 친구들, 00년생 이후 출생 독자들이 굉장히 좋아한다고 하더군요.”장예모 감독이 영화화한 ‘인생’(1993), 한국배우 하정우의 감독 데뷔작 ‘허삼관매혈기’(許三觀賣血記, 1995)의 위화(餘華)가 등단 40주년을 맞았다. 12회를 맞은 서울국제작가축제(13일까지 서울 노들섬) 개막 강연 등의 참가를 위해 내한한 위화는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추대되는, 중국 현대문학 3대 거장 중 한 사람이다.그의 대표작 ‘인생’의 중국 판매부수는 2000만부, 올 상반기만도 87만부가 팔려나가는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 셀러다. 1983년 단편 ‘첫 번째 기숙사’ 이후 중단편소설을 주로 발표하던 그는 1991년 첫 장편소설 ‘가랑비 속의 외침‘을 시작으로 ’인생‘ ’허삼관 매혈기‘ ’제7일‘(2013), ’형제‘(兄弟, 2000), ‘원청’(文城, 2021) 등을 선보였다. 위화 작가(사진제공=푸른숲)“40년 인생을 돌이켜 보면 저는 그다지 노력하는 작가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작품 수가 많질 않잖아요. (한국방문과 몽골 도서전 참가 등) 여행을 끝내고 돌아가면 작품을 좀더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중국에서는 ‘살아가는’(인생의 원제 活着) 때문에 위화도 ‘살아가는’ 거라고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에요.”그의 말처럼 ‘인생’만으로 자신의 ‘인생’을 이어가지 않는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한국에서 10만부, 25만부가 각각 팔려나간 ‘인생’과 ‘허삼관 매혈기’는 각각 42개, 33개 언어로 번역돼 전 세계에서 읽히고 있다. 장편소설 데뷔작으로 최근 중국 MZ세대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가랑비 속의 외침’을 비롯해 ‘제7일’, 프랑스·독일 등 유럽에서 강세를 보이는 ‘형제’ 등이 20여종 안팎, 최근작 ‘원청’도 18개 언어로 번역돼 출간됐다.  “중국의 어떤 관계자도, 저 스스로도 등단 40주년인 걸 몰랐어요. 다시 한번 한국 그리고 (‘인생’ ‘허삼관 매혈기’ ‘원청’ 등의 출판사) 푸른숲의 굉장한 우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잊은 부분들까지 푸른숲에서는 다 기억하고 있거든요.”최근 중국 MZ세대들 사이에서 역주행 중인 ‘제7일’ ‘가랑비 속의 외침’에 대해 위화는 “읽어본 사람들이 몇몇 대사들이나 문장들을 SNS에 올려 이 책을 추천해서 인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예를 들어 ‘제7일’에 ‘초인종이 울렸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걸 900만 독자들이 이 책은 꼭 읽어봐야 한다고 추천했죠. 또 한 가지는 두 책이 모두 젊은 사람들의 이야기라 공감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7일’은 10년 전, ‘가랑비 속의 외침’은 31년 전 젊은이들의 생활과 성장 이야기를 다루고 있거든요. 아마도 그런 것들이 지금 읽어도 공감하며 감명을 느끼는 게 아닐까 싶어요.” 이어 “지난해 12월 한국 방문 당시 감염된 코로나19 후유증으로 불면증에 시달리고 집중력까지 떨어져 지금은 거의 쓰지 못하고 있지만 차기작으로 두 작품을 동시에 집필하고 있다”는 위화는 “하나는 ‘원청’처럼 긴 작품으로 절반 정도를 썼고 또 다른 하나는 비교적 짧은 작품으로 코믹한 내용”이라고 귀띔했다.위화 작가(사진=허미선 기자)“제 작품 대부분이 고단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주인공이었는데 비교적 길지 않은 작품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죠. 드디어 소설에 나오는 유쾌하고 재밌는 삶을 살게 되겠구나 싶지만 장편소설은 또 다시 고단한 삶을 사는 이들의 이야기여서 극과 극을 오가고 있습니다.”한국 기자들과의 만남 내내 유쾌하고 열정이 넘쳤던 그는 “책의 판매량은 저에겐 책을 쓸 수 있는 기회”라며 “도서 판매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제 작품을 선보일 수 없기 때문”이라고 출판계의 위기를 짚기도 했다.“도서 판매량이 점점 더 안좋아지고 있어요. 사람들은 책 보다는 SNS를 즐기거나 드라마를 보는 데 더 충실하거든요. 예전에는 프랑스에서 제일 먼저 책이 나오곤 했어요. 원래 작년에 프랑스에서 나오기로 했던 책들이 시간을 끌고 끌고 끌다가 겨우 출판된다고 알고 있어요. 외국에 책을 내기로 해서 선인세를 받고 계약을 했음에도 출판이 안되고 있다는 소식들이 많이 들려오기도 합니다. 굉장히 걱정스럽습니다.”이어 “유럽, 미국에서의 출판 계획들이 많이 틀어지고 있다. 비유를 하자면 100권의 소설 출판을 계획하던 출판사가 줄이고 줄여 50권 정도를 내는 모양새”라며 “한국도 예외는 아니라고 출판계 지인에게 들었다. 한국 역시 소설 출판이 굉장히 줄고 있다고 들었다”고 부연했다.위화 작가(사진=허미선 기자)출판계가 전세계적으로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한국 정부가 출판계에 대한 지원을 삭감하는 등의 정책들을 세우고 있다는 데 대해 위화는 “기존에 한국정부에서는 출판에 굉장히 많은 지원을 했다고 들었다. 그래서 부러운 마음도 가지고 있었는데 아쉽다”고 털어놓았다.“중국은 그 어떤 출판사나 잡지사도 정부에서 지원을 해주지 않았어요. 그런데 최근 10여년 동안 출판계에 대한 보조금, 지원금 등이 조금씩 늘고 있어요. 최근에는 매년 정부가 500만 위안을 지원하는 잡지사도 생겨났죠.”그는 “한국에 보조금이 있었을 때 중국 출판계는 전혀 지원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에서 지원금이 점점 끊겨가고 있고 중국에서는 많은 지원제도를 마련하기 시작했다”며 “문화와 출판은 어느 나라든 정부의 지원이 굉장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종이책은 우리가 얼마나 읽었는지를 알 수 있어요. 절반을 읽었다면 절반을 읽었음을 느낄 수 있거든요. 페이지를 넘기는 맛이 있어 내가 얼만큼을 읽었는지 느낄 수 있죠. 하지만 전자책 등은 그런 재미를 느끼기가 쉽지 않아요. 예를 들어 ‘안나 카레니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홍루몽’ 등 페이지가 많은 책들을 예로 들자면 도무지 진도가 나가질 않아요. 늘 그 페이지가 그 페이지 같은 느낌이랄까요. 비록 같은 내용이라도 읽을 때의 느낌은 완전히 다르죠.”위화가 매해 후보로 이름을 올리는 노벨문학상 발표가 10월 5일로 예정돼 있다. 수상 가능성 기대감에 대한 물음에 위화는 유쾌한 대답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저를 제일 사랑해주시는 한국에서도 상 하나를 못받았는데 무슨 노벨상이에요!”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3-09-11 18:00 허미선 기자

[비바100] 인류, 별안간 수명연장의 시대

(사진출처=게티이미지)저자는 ‘장수비전펀드’의 설립자다. 그는 이 책에서 일관되게 ‘역(逆) 노화’의 실현 가능성을 주장한다. 우리는 지금 ‘장수혁명’이라는 과학적 패러다임의 전환기에 와 있다고 말한다. 나이 들수록 더 젊어져, 멀지 않아 30대의 몸으로 200세까지도 살 수 있다고 자신한다. 심지어 ‘영생(永生)’이 가능한 시대까지 얘기한다. 그 근거는 ‘기술’이다. 노화 속도보다 더 빠른 과학과 기술의 진보 덕분에, 생각보다 빨리 노화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이 올 수 있다고 낙관한다. ‘젊게 오래사는 시대’가 곧 온다는 것이다.역노화(젊게 오래 사는 시대가 온다)|세르게이 영|더퀘스트  ◇ 급격한 수명 연장 가능하다저자는 “미래에는 ‘유전병’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태아 때부터 검사·치료 하는데다 각종 신체기능이 업그레이드 되기 때문이란다. 전염병과 정신병도 없을 것이라 자신한다. 슈퍼 컴퓨터와 인공지능 덕분에 이젠 급격한 수명연장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 몸 안에 심장과 폐, 신장, 췌장을 대체할 기계장치를 설치해 5~10년 주기로 정기점검하게 될 날이 올 수도 있다고 예견한다.위험한 일은 로봇과 기계가 대신할 것이기에 사고사도 거의 없을 것이라 한다. ‘아바타’가 있고, 사망 전에 뇌를 디지털화해 클라우드에 백업 해 놓기에 이별의 느낌도 지금과 사뭇 다를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의학·기술의 진보 속도가 노화 속도보다 빠르다면 ‘무한히 살 길’도 열릴 것이라고 말한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도 10년 내에 그런 기반을 다질 시기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 낙관했다.◇ 노화는 이제 ‘치료 가능한 질환’(사진출처=게티이미지)노화는 유전체 불안전성, 텔로미어 마모, 후성유전적 변화, 단백질 항상성 상실, 영양소 감지 능력 저하, 미토콘드리아 기능 이상, 세포 노화, 줄기세포 고갈, 세포 간 소통 변화 등에서 온다. 단백질 교차결합도 주름과 동맥경화, 백내장, 심부전 등 다양한 노화 징후를 보여 준다. 노화는 한 때 ‘피할 수 없는 현실’ 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가역적 질환’으로 인식되어 가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유전자 외에도 ‘후성유전제’ 내의 화학적 변화가 인지기능 저하나 알츠하이머, 에이즈 등 각종 질환과 노화의 특징을 알려주어 치료 가능성을 높여준다. 실제 나이보다 젊게 느끼는 ‘심리적 연령’도 실제 생물학적 연령에 영향을 미친다. 스스로 젊다고 생각하는 집단은 비만과 고혈압 당뇨병 발병률이 적고, 폐와 근육 기능은 더 좋으며, 인지력이나 수면의 질도 더 좋다고 한다.◇ 장수를 둘러싼 오해와 4가지 혁신기술저자는 “장수에 이르는 최선의 방법은 ‘다시 젊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생체시계를 되돌리는 것이 가능할지 모른다. ‘육체 복제’를 통해 근육과 장기 조직 복구 및 재생 가능성이 속속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장수 가능성을 잘 믿지 않는다. “몸만 고생이지”라는 생각, “오래 살면 뭐해? 인구 과잉인데”하는 생각, 그리고 장수 가능성 자체를 믿으려 하지 않는 생각 탓이다.하지만 그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수명을 비약적으로 연장시킬 기회가 열리고 있다”고 말한다. 다양한 혁신 기술들이 축적되고 있어 곧 세상을 크게 변화시킬 결과가 급격히 나타날 것이라고 확언한다. 우려와 달리 장수혁명이 세계의 ‘인구 균형’을 안정화시킬 것이라고 말한다. 유전공학과 재생의학, 헬스케어 장비, 건강 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을 그 배경으로 든다.◇ 장수 혁명의 최전선 기술 ‘유전공학’(사진출처=게티이미지)인간 게놈 프로젝트 덕분에 인간은 무엇이든 유전공학으로 치료할 길을 얻고 있다. 170달러면 자가 진단 CRISPR 키트를 구매할 수 있고 CRISPR-Cas9 같은 유전자 편집 기술로 건강한 유전자를 주입해 필요 단백질을 만들 수도 있다. 최근에는 유전자와 후성유전체를 둘 다 조절하는 방법이 개발되어 건강 장수의 길이 더 넓어졌다. 특정 암세포만 공격하는 CAR-T세포치료법은 생존율이 80%에 달한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장수 유전자 프로젝트 덕분에 심혈관계 질환과 알츠하이머, 제2 당뇨, 종양 등 노화 관련 질환에 강한 것으로 추정되는 유전자들이 여럿 발견되었다. 여러 유전자를 동시에 바꾸는 기술도 발전하고 있다. 유전공학 연구 비용도 크게 떨어질 것이라, 미래에는 유전공학으로 단 숨에 병을 고치는 비용이 한 사람의 평생 치료비보다 저렴해 질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재생의학 “완전한 인공심장도 멀지 않았다”줄기세포 치료는 체내의 손상된 조직은 물론 신경계까지도 복원시켜 준다. 이제 우리 몸은 원래의 장기, 고쳐진 장기, 교체된 장기로 이뤄진 ‘인체 2.0’으로 거듭날 전망이다. 줄기세포 치료법은 그러나 아직은 임상시험 단계이다. 현재 미국 FDA 승인을 받은 줄기세포 치료업체는 10곳 정도이다. 저자는 그럼에도 심각한 신경 질환에 효과적인 줄기세포 치료가 많이 나올 것이라고 낙관한다.출생 때 수 천 달러, 보관비로 매년 200달러를 내면 자녀의 제대혈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시대다. 줄기세포 치료법은 척추나 당뇨, 알츠하이머 치료에도 도움이 된다. 조만간 3D 바이오 프린팅 기술이나 바이오 리액터 등 새로운 이종 장기이식 기술로 복제한 맞춤형 인공 장기도 부작용 없이 이식받는 날이 도래할 전망이다. 완전한 인공 심장도 이제 꿈이 아니라고 저자는 자신한다. ◇ 장수혁명의 핵심 ‘헬스케어’와 ‘건강진단’(사진출처=게티이미지)‘조기 진단’은 장수 혁명의 핵심이다. 착용형·섭취용·매립형 휴대 장비들이 ‘신체인터넷’에 연결되어 암이나 심혈관 질병으로 인한 조기사망을 급격히 줄여 줄 것이다. 이런 ‘선제적 의료’가 보편화되어, 예방 가능한 질병 때문에 일찍 죽는 사람이 더는 없어질 전망이다. 저자는 그때까지 20년도 남지 않았다고 말한다. 비싸고 위험한 ‘생체검사’ 대신 소변이나 타액 등으로 종양이나 전염병 흔적을 빨리 찾아내는 ‘액체 생검’도 이미 사용 초기 단계이다. 면 봉에 묻힌 타액으로 질병의 유전자 소인을 확인하고, 0.02% 이하의 DNA로 각종 위험성 돌연변이를 찾아내는 유전형질분석 검사 서비스도 가능해졌다. ‘후성유전체’ 진단·치료법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수 많은 스타트업이 그 힘이다.◇ 정밀의학으로 스스로 건강관리 한다 세계적 정밀의학센터인 ‘휴먼롱제비티’는 “암이나 심장마비, 뇌졸중 같은 질병들을 80%까지 탐지해 내는 기술이 눈 앞에 와 있다”고 밝혔다. 단 한 사람만을 위한 약도 개발된다. 정밀의학으로 스스로 건강을 관리하는 것도 가능해 진다. MIT공대·구글의 인공지능 솔루션은 유방암과 폐암, 폐렴, 알츠하이머를 98% 정확도로 진단한다. ‘원격의료’는 사망률과 병원 재 방문율을 낮춰준다.정밀의학이 변화시킬 다음 영역은 ‘의료보험’이다. 보험료 청구 비용이 줄고 그 이득을 고객들이 향유하게 된다. 맞춤형 정밀의학이 보편화되면 대형 제약사의 행보가 바뀌고 업계 양상을 변화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저자는 “머지않아 건강 증진, 생산성 증대, 의료비용 감소, GDP 상승, 정부의 사회 프로그램 지출 절감을 실현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200세 이후의 삶(사진출처=게티이미지)저자는 양자 컴퓨터와 범용 인공지능 덕에 인간 장수의 ‘퀀텀 점프’가 가능하다고 자신한다. 많은 장수전문가들도 수십 년 내로 범용인공지능이 나와, 양자 컴퓨터와 범용인공지능이 합쳐져 영생(永生)도 가능해 질 것이라고 호언한다. 저자는 “인간의 생물학적 영생 도달시점은 알 수 없지만, 그때는 아마도 인간과 기계가 하나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진화하는 ‘생체공학 장기’ 덕분이다.미래에는 지름 50~100나노미터 로봇이 몸 안을 돌아다니며 모든 형태의 진단과 유지, 수리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혈액을 따라 움직이며 암까지 제거할 수 있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뇌-기계 인터페이스’다. 손 하나 까딱 않고도 정보를 보내고 주변 환경을 조정할 수 있게 된다. ‘희대의 천재’ 일론 머스크가 세운 ‘뉴럴링크’ 등이 이 분야에서 새로운 역사를 써가고 있다.◇ 젊고 오래 살고 싶은 사람이 실천해야 할 10가지저자는 “더 오래 살고 싶다면 장수 생활습관을 지금 당장 실천하라면서 ‘장수 생활 습관 10가지’를 소개한다. 정기적인 종합 건강검진이 첫째다. 시중의 자가 진단기기도 유용하다. 다음은 흡연과 음주, 지나친 당 섭취 등 ‘나쁜 습관’ 끊기다. 약물중독과 음주 운전, 운전 중 한눈 팔기 같은 ‘어리석은 짓 않기’도 강조한다. 이른 시간에 먹고 끼니 줄이기, ‘음식=약’이라는 생각도 필수라고 한다.필수 비타민이나 오메가3 등 보조제 섭취도 권한다. 규칙적인 운동을 중심으로 한 ‘일어나기’와 ‘충분한 수면’도 건강 장수에 필수라고 말한다. 매사에 느긋하고 명상을 생활화할 것도 조언한다. 마지막은 ‘생각으로 젊어지기’다. 매사에 긍정적이고 감사하는 마음가짐을 지니라고 말한다.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2023-09-09 07:00 조진래 기자

[비바100] 위화, 정지아, 버나딘 에바리스토, 은희경, 박상영 등 노들섬 다리 건너, 언어의 다리를 건너 ‘2023 서울국제작가축제’로!

2023 서울국제작가축제에 참가하는 위화ⓒ푸른숲(왼쪽)과 정지아ⓒ이대진(사진제공=한국문학번역원)하정우가 매료돼 영화로까지 제작했던 ‘허삼관매혈기’(許三觀賣血記)을 비롯해 ‘인생’(活着), ‘제7의 인생’(第七天), ‘원청’(文城) 등의 중국 현대문학의 거장 위화(餘華), 흑인 여성 최초로 부커상을 수상한 영국 소설가 버나딘 에바리스토(Bernardine Evaristo), 이상문학상 수상자 은희경, ‘아버지의 해방일지’ ‘빨치산의 딸’ 등으로 오영수·이효석 문학상을 수상한 정지아,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1차원이 되고 싶어’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등의 박상영…. 늘어놓는 것만으로도 국내외 문학계의 대단한 이름들이 한국 서울의 노들섬으로 모여든다. 2006년부터 격년 혹은 매년 치러진 서울국제작가축제(이하 작가축제, 9월 8~13일 서울 노들섬)가 12번째 교류의 장을 펼친다. 그간 작가축제에는 58개국, 215명의 작가가 다녀갔고 올해도 9개국의 10명 해외작가와 한국작가 14명이 만난다. 2023 서울국제작가축제 포스터(사진제공=한국문학번역원)곽효환 한국문학번역원장은 “한국문학이 세계문학과 서울을 무대로 교류하는 토대를 만든다는 첫 마음은 변하지 않고 있다”며 “다녀간 작가들이 한국문화와 한국에 대해 인식하고 그것들이 여러 가지 글 속에 녹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털어놓았다.“작가축제를 준비하면서 3년의 팬데믹을 겪었기 때문에 그 후에는 모든 게 축복처럼 찾아올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역설적으로 새로운 낯선 장벽과 경계를 마주하고 있죠. 세계화 시대 때 말했던 경계와 장벽을 허무는 일들이 팬데믹을 거치면서 오히려 새롭게 강화되고 그 속에서 개개인은 미로와 같은 단절과 고립을 겪고 있습니다. 더불어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는 계속되는 갈등 등 우리를 새롭게 감싸고 있는 것들 속에서 작가축제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했어요.” 그 고민 끝에 설정한 올해의 주제는 ‘언어의 다리를 건너’(Crossing the Bridge of Language)다. 이번 축제에서는 ‘언어의 다리를 건너’라는 주제 하에 13개의 강연, 대담, 공연, 전시 등이 치러진다. 8일 개막식에서는 위화와 정지아가 축제의 주제인 ‘언어의 다리를 건너’로 강연을 한다. 이 자리에서는 강연을 비롯해 각자의 발제에 대한 소감과 작품 집필에 대해 이야기한다. 더불어 전통소리를 비롯해 뮤지컬 ‘서편제’ ‘곤투모로우’ 등으로 다양하게 활약하고 있는 국립창극단원이자 소리꾼인 김준수가 축하 무대를 꾸린다. 9일부터는 매일 국내외 작가가 짝을 이뤄 사회문제를 풀어내는 대담이 열린다. 진은영과 흑인 여성 최초의 부커상 수상자 버나딘 에바리스토가 ‘사회적 참사와 소수자’(9일), 은희경과 미국의 앤드루 포터가 ‘기억과 시간’(10일), 김금희와 마르타 바탈랴가 ‘돌봄과 연대’(11일), 임솔아와 카메룬의 자일리 아마두 아말이 ‘혐오’(13일), 전성태와 이라크의 아흐메드 사다위가 ‘청년과 노동’(13일)을 주제로 의견을 나눈다.2023 서울국제작가축제에 참가하는 버나딘 에바리스토ⓒJennie Scott(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금희ⓒ.blossom_creative, 은희경, 박상영ⓒ김봉곤(사진제공=한국문학번역원)일대일 대담을 비롯해 작가들의 토론도 이어진다. 김희선, 황모과 작가, 뉴욕 타임스 선정 최고의 SF도서 ‘더 메모리 시어터’(The Memory Tgeater’의 스웨덴 작가 카린 티드베크가 ‘장르픽션’(9일), 최은영·서효인·웬디 어스킨이 ‘문학이 공간을 이해하는 방식’(10일)에 대해 토론의 자리를 갖는다.11일에는 ‘대도시의 사랑법’으로 부커상 국제부문 후보에 오른 박상영을 비롯해 백은선, 영국의 올리비아 랭이 ‘나로부터 비롯되는 창작의 어려움과 즐거움’을, 12일에는 정지돈, 유수연, 싱가포르의 그레이스 치아가 ‘뉴미디어 시대의 독자와 독서 경험’을 이야기한다.대담과 토론을 비롯해 참가 작가를 대표하는 문장을 타이포그래피로 표현한 ‘독자의 시선’(13일까지 노들섬 노들 갤러리 2관) 전시회, 웹툰 ‘정년이’를 창극으로 변주한 남인우 연출이 위화와 정지아 작가의 작품을 재해석해 판소리로 선보이며 버나딘 에바리스토·백은선·앤드루 포터·진은영의 작품을 라이브 연주에 맞춰 낭독하는 자리도 마련된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3-09-06 18:00 허미선 기자

[브릿지 신간] 정성장 <왜 우리는 핵보유국이 되어야 하는가>

논란의 한 가운데 있는 신간이다. 매우 공격적으로 “우리 역시 핵을 보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책이다. 저자는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 겸 한국핵자강전략포럼 대표로 활동 중이다. 그는 이 책에서 “지금은 한반도 안보전략 대전환의 시기이며, 북한의 핵 도발에 맞서 우리도 핵으로 무장해야 한다”며 ‘중도적·초당적 핵자강론’을 펼친다.저자는 비핵과 평화를 추구하며 북한을 설득해 왔지만 돌아온 것은 ‘북한 핵과 미사일 고도화’라고 꼬집는다. 2016년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을 계기로 이제 북한 핵무기가 생존용·협상용이 아닌 실제 심대한 위협이 되었다며 “비핵화가 물 건너간 이상,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려면 우리 역시 핵무장(핵자강)을 해 ‘핵 균형’을 유지할 수 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핵무장에 대한 국민들의 거부감도 확연히 낮아졌다고 주장한다.저자는 ‘핵 균형’만이 한반도에서의 핵전쟁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막아줄 것이라고 말한다. 북한의 오판에 의한 핵 사용과 핵전쟁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한다. 한국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어야 북한도 우리에게 핵무기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핵무기로 북한을 공격하기 보다는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억제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한다.이는 일부 극우 세력의 ‘핵무장 담론’과는 결을 달리 하는 주장이다. 저자는 “합리적인 보수와 진보의 핵자강 담론은, 핵을 보유하되 외부로부터 심각한 군사적 공격 또는 핵공격을 받기 전까지는 먼저 핵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핵 선제 불사용(No First Use, NFU)’ 원칙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한다.저자는 북한의 핵무기 사용 시나리오도 예측해 보인다. 남북한 간에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경우, 북한은 한국의 동부 지역을 전술핵무기나 소형화된 핵무기로 공격할 가능성이 크다고 점친다. 서울에서 먼 지방 도시들을 먼저 핵무기로 공격함으로써 한국 정부의 항복을 받아내려 할 수 있다는 것이다.저자는 거듭 자체 핵 보유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단기간 내에 그것이 쉽게 달성될 수 없다는 사실도 인정한다. 저자는 그런 면에서 한국의 자체 핵 보유에 대한 현 정부의 의지가 매우 약하다고 평가한다. 최소한 현 정부가 한미원자력협정이라도 개정해 우리가 일본 수준의 핵 잠재력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저자는 담대하고 통찰력 있는 지도자와 초당적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자국의 안보를 계속 외국에 의존하는 것은 매우 무책임하고 위험한 태도라며, 어떻게 해서든 국제사회를 설득하고 우리가 치러야 할 비용을 최소화할지 고민하고 해결책을 만들어 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저자는 “차기 정부에서는 반드시 핵자강을 추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려면 초당적 협력과 함께 미국의 용인이 필수라고 말한다.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스콧 스나이더 미국외교협회 미한정책국장이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 위협이 현실화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미국 정부도 결국 한국의 핵무장을 인정하게 될 것”이라고 밝힌 것을 언급하며 그 가능성에 기대를 보인다.저자는 우리가 지금까지는 핵 비확산체제 수호국으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지켜 왔던 만큼, 우리가 핵을 갖더라도 외부의 제재 강도는 높지 않을 수 있다고 전망한다. 유력한 국가들과 맺은 협력 관계를 무기로, 이들 나라가 자국에까지 해를 끼치게 될 정도로 한국에 강력하게 제재를 밀어붙일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한다.저자는 우리의 자체 핵무기 보유가 주변국들로부터 우리를 지킬 최후의 수단이라고 말한다. 더 나아가 북한 및 주변국들과 대등한 호혜협력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갈 외교 안보적 자산이 될 것이며 그로 인해 지속 가능한 평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다시 불러들이려면 무엇보다 지금은 핵 균형이 필요한 때라고 지적한다.저자는 마지막으로,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이 ‘실현 불가능한 목표’라고 미리 단정하고 포기하지 말자고 말한다. 우리가 언제까지 핵을 머리에 이고 북한의 핵 위협 아래서 살아야 할 것이냐고 되묻는다. 일본이 핵무장을 결단할 때 우리만 따라가지 못해 결국 동북아 유일의 비핵국가로 남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조기에 일본 수준의 핵 잠재력부터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우리가 핵을 보유하는 것이 진정 전쟁을 막아줄 수 있는 것인지, 오히려 전쟁의 위험을 더 키우는 악수가 될 것인지 예단하기는 쉽지 않다. 그 가능성이 얼마나 될 지도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그런 현실적 고민과 우려, 그리고 우리가 무얼 해야 하는 지 대안을 알고 싶다는 한번 꼭 읽어볼 필요가 있는 책이다.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2023-09-05 14:19 조진래 기자

[비바100] 활활 타오르다 연기처럼 사라진 인류의 흑역사

한 때 영욕(榮辱)의 현장이었다가 지금은 폐허가 되어 버린 ‘불가사의한 40곳’을 소개한 책이다. 애초부터 사라질 운명이었거나, 세상의 변화에서 도태되었거나, 시간의 무게에 그대로 잠식된 곳들이다. 버림받고 소외되고, 사람이 더 이상 살 수 없는 장소들의 지명사전이자 우리가 잊고 내버려둔 추억의 이야기이기도 하다.아이티 상수시 궁전◇ 독재자 영웅의 꿈 ‘아이티 상수시 궁전’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아이티는 지금도 정치 부패와 조직 폭력이 만연하다. 아이티의 전설적인 건축물이 ‘근심 걱정이 없는’이라는 뜻을 지녔던 ‘상수시 궁전’이었다. 아이티의 왕이자 혁명의 영웅 ‘앙리 크리스토프’가 거처하던 곳이다.크리스토프가 가장 집착했던 프로젝트가 ‘요새 궁전’을 짓는 것이었다. 1810년에 공사 시작 직후에 그는 앙리 1세로 즉위했고, 이 궁전을 서인도에서 가장 웅장한 건물로 짓길 원했다. 하지만 공사는 길어졌고, 왕은 독재자로 변해 살다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상수시 궁전은 1842년 지진으로 완전히 파괴되어 도저히 복구가 어려운 처지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서인도 제도의 아름다운 작은 섬 ‘몬트세랫’◇ 마이클 잭슨의 녹음 스튜디오 ‘폴리머스’ 1980년대 록과 팝 음악 팬들은 ‘몬트세랫’을 기억할 것이다. 서인도 제도의 작은 이 섬에 1979년 ‘AIR 스튜디오’가 들어섰다. 비틀스 프로듀서 조지 마틴의 녹음 스튜디오였다. 앨튼 존과 마이클 잭슨, 듀란 듀란, 다이어 스트레이츠 같은 유명 가수들이 이곳을 찾았고 1989년 봄에는 롤링 스톤스가 ‘스틸 휠즈’를 제작했다. 이 앨범이 AIR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마지막 음반이었다.그 해 9월 허리케인 ‘휴고’가 섬을 참혹하게 망가뜨렸다. 섬 전체 건물의 85%가 파괴되었다. 1995년 7월에는 350년 동안 잠들어 있던 수프리에르헬스 화산이 폭발했고 한 달 후에도 격렬한 두 번째 분출이 있었다. 1997년에는 더 강력한 폭발이 이어져 몬트세랫의 수도 플리머스는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이 되고 말았다.◇ 영화 007 속 명소 그곳 ‘크라코’이탈리아 바실리카타 지역의 ‘크라코’는 해발 300m가 넘는 점토와 바위 언덕 꼭대기에 들어선 중세 마을이다. 남북의 강 사이에 위치한 덕에 농업 도시 겸 군사 정착지로 번성했다. 하지만 끊임 없는 가뭄과 기근, 홍수, 지진에 시달렸다. 1956년에는 전염병까지 돌았고 1963년에는 격렬한 지진이 강타했다. 1040년에 노르만인들이 지었던 요새 건물은 이제 텅 빈 건물 잔해만 남았다.아름다운 이 마을은 ‘그리스도는 에볼리에서 멈추었다’라는 영화 덕분에 1979년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2008년 제임스 본드 영화 ‘007, 퀀텀 오브 솔러스’의 일부가 이곳에서 촬영된 이후부터 건축물 보호 노력이 시작되고 있다. 하지만 지질적으로 너무 불안정하고 지진과 산사태 위험이 여전해 현재는 커다란 스크린 속 배경으로 등장하며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골격만 앙상하게 남은 웨스트피어.◇ 날개 잃은 바다 위 나비 ‘웨스트피어’17세기 말에 “바닷물이 통풍치료제”라는 헛소문이 돌면서 영국 남부의 평범한 어촌 브라이트헬름시가 사치스런 해안 휴양지 ‘브라이턴’으로 다시 태어났다. 1823년에 이곳 최초의 부두인 ‘체인피어’가 지어졌고 1869년에는 주철 기둥 위에 400m짜리 구조물을 올린 고급스런 바다 위 산책로 ‘웨스트피어’가 세워졌다. 풍광이 너무 아름다워 ‘바다 위 나비’라는 극찬을 받았다.당시만 해도 검증되지 않은 건축 방식이었다. 하지만 곡선형 주철 벤치에 2000명이 앉을 수 있고, 무굴제국 건축 양식을 흉내 낸 로열 파밀리온과 동양풍 키오스크를 갖춰 연간 방문객이 60만 명을 넘을 정도였다. 그러나 태풍과 불안정한 구조에 2003년의 방화 사건까지 더해져 운명을 다하게 된다.◇ ‘일본의 하와이’ 하치조로열 호텔일본 도쿄에서 287㎞ 떨어진 섬 ‘하치조지마’는 목가적인 아열대 화산섬이다. 무성한 녹음에 바다는 맑고 푸르다. 오키나와나 하와이까지 갈 필요없이, 열대에서 짧은 휴가를 즐기기에 이상적인 곳이었다. 1964년 전까지 일본 당국이 휴가를 국내에서 보내라고 명령한 덕분에 ‘일본의 하와이’로 널리 사랑 받았다.1963년에는 바로크 양식의 하치조로열 호텔도 호화롭게 세워졌다. 고대 그리스 조각상과 분수로 꾸민 정원은 베르사유 궁전에 뒤지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이 점점 부유해지고 해외여행이 쉬워지면서 태양과 서핑을 찾는 사람들은 ‘진짜 하와이’를 찾게 되었고 이곳은 2006년에 문을 닫게 된다.전쟁의 참화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니코시아 국제공항 내부.◇ ‘아프로디테의 탄생지’ 니코시아 국제공항지중해의 아름다운 섬 키프로스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태어난 곳이다. 동·서양의 교차로이자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가 만나는 매혹적인 땅이다. 모래사장 바닷가에서 1년 중 300일 이상 햇빛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그렇기에 이 섬의 1만 년 역사는 피비린내 나는 정복과 전쟁으로 얼룩져 있다. 수도 서쪽에 1930년대에 지어진 니코시아 국제공항은 가장 생생한 증인이다.키프로스는 1960년 영국에서 독립했지만 1974년 그리스와 튀르키예 민족 간 긴장이 끝내 폭발했다. 그리스 민족주의 진영이 쿠테타를 일으키자 튀르키예가 무력 침공했다. 공항 관제탑과 이착륙장도 폭격을 당했고 결국 UN 군이 개입해 비무장 완충 지대인 ‘그린 라인’을 설정했다. 하필 공항은 그 한 가운데 위치했다.◇ ‘카멜롯의 저주’ 카멜롯 테마파크영국에서 ‘아서왕’은 전설이다. 앵글로색슨 침략자를 물리치려 12차례나 전투에 나선 강력한 전사로 그려진다. 랭커셔 주는 왕의 충성스런 기사였던 랜슬럿이 그곳에서 성장했다는 구전을 바탕으로 1983년 테마파크 ‘카멜롯’을 세워 ‘마법 왕국 카멜롯’이라 홍보했다.관광객들은 멀린의 마법사 학교에 입학하거나 뤄터래프팅 기구를 타며 스릴을 즐겼다. 한창 때는 한 해에 100만 명이나 찾았다. 하지만 2012년 런던 하계올림픽과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 60주년 경축 행사 유치전에 실패하면서 다시는 문을 열지 못했다. 근처 고속도로에서 보이던 카멜롯의 상징 ‘롤러코스터’ 마져 2020년 2월에 마지막으로 분해되었다.발라클라바 잠수함 기지 외부◇ 크리미아 전쟁의 흔적 ‘발라클라바 잠수함 기지’1853년부터 1856년까지 크리미아 반도에서 유럽 연합군과 러시아간 크리미아 전쟁이 벌어졌다. 당시 혹독한 겨울 추위를 피하려 눈과 입 구멍을 제외하곤 머리 전체를 덮는 양모 모자 ‘발라클라바’가 크게 유행했다. 그 이름을 딴 지역이 냉전 시기에 소련의 극비 잠수함 기지로 쓰였다.1957년에 소련은 산 밑으로 120m를 파 핵 추진 잠수함을 최대 9기까지 정비할 터널 공간을 구축했다. 소련이 해체되어 반도가 우크라이나로 넘어간 후에도 기지에는 잠수함이 주둔했다. 1993년 기지가 퇴역한 후 우크라이나는 이곳에 2003년부터 박물관을 열어 대중에 공개했다. 하지만 2014년 러시아가 다시 반도를 합병하면서 러시아 국방부가 통제하면서 푸틴의 초상화가 관광객들을 맞고 있다.◇ 열차의 무덤이 된 ‘우유니 소금사막’19세기 말에 불리비아를 착취했던 영국은 칠레 북부에서 볼리비아 수도 라파스를 잇는 철도를 건설했다. 광대한 소금 평원 ‘살라르데 우유니’의 우유니 역은 비료와 폭약 원료였던 초석이나 질산나트륨을 실어 나르는 요충지가 되었다. 이 주변을 차지하려는 전쟁 끝에 볼리비아는 칠레에 져 핵심광물지인 이곳을 잃어 ‘영해’ 없는 내륙국가가 되었다.볼리비아는 이후 칠레와 협정을 맺고 1889년 해발고도 최대 3962m의 산악지형에 철도를 부설했고 우유니는 다시 신흥 도시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 직전, 초석을 대체할 인공 질산염이 개발되면서 이 지역은 급격하게 쇠퇴한다. 우유니에서 1.6㎞ 정도 떨어진 외곽에 막다른 철도와 녹슨 증기기관, 텅 빈 무개화차와 객차 등 한 때 철도 전성기의 자취가 덩그러니 남아 있다.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2023-09-02 07:00 조진래 기자

[비바100] 인류가 뿌린 '굶주림의 씨앗'

(사진출처=게티이미지)저자는 “20세기 이후 기아(飢餓)는 대부분 전쟁과 권력투쟁 등 인위적인 원인으로 일어났다”고 말한다. 이제 날씨나 농업 생산성, 농지 부족이 더 이상 기아의 원인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제는 전 세계가 점점 더 전쟁의 위기, 세계 분단의 위기, 지구 온난화 위기, 자원 위기 등 기아가 일어날 만한 인위적인 요인들을 점점 더 갖춰가고 있다는 사실이다.식량위기, 이미 시작된 미래|루안 웨이|미래의창◇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가져온 식량위기(사진출처=게티이미지)저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농업’과 ‘식량’이라는 새로운 영역까지 공격을 확대한 ‘새로운 전쟁’의 서막이라고 강조한다. 러시아가 철수하고 평화가 찾아온다 해도 ‘식량위기의 시대’는 이미 한 걸음씩 다가오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러시아가 곡물 주 공급국에서 부수적인 공급국으로 전락하고 우크라이나 역시 농업 부흥과 곡물 수출 회복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우려한다.화학비료 조달 문제와 지구 온난화 가속화와 함께 인구 증가도 큰 문제다. 세계 인구는 2050년에 50억에 달해 지금보다 20억 명분의 식량을 더 확보해야 한다. 저자는 “이대로 가면 전 세계 기아 인구가 10억, 20억 명으로 치솟을 지 모른다”며 “식량이 제약 없이 세계적으로 거래되는 안정적인 환경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한다.◇ 침략당한 세계의 빵 바구니세계에서 가장 무역 거래량이 많은 곡물이 ‘밀’이다. 2020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서 수출되는 밀은 5532만 톤으로 전체의 28%에 달한다. 두 나라가 약 50개 개발도상국 밀 수입량의 30% 이상을 맡는다. 가격도 미국산에 비해 한 때 30%까지 저렴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2022년 3월에 밀 가격은 톤당 400달러를 훌쩍 넘기며 6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쌀 가격을 넘어섰다.우크라이나는 영양분이 가득한 흑토 ‘체르노젬’이 전 국토의 70%에 이른다. 2010년 이후 곡물 수출에 집중한 덕분에 밀과 옥수수, 해바라기(착용유)의 60~90%를 수출한다. 소련은 한 때 곡물 순수입국이었으나 푸틴의 농업 진흥 정책과 곡물의 전략적 수출 상품화 덕분에 이제는 세계 3위 밀 생산국 및 세계 최대 밀 수출국으로 군림하고 있다.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흑해 봉쇄로 상황이 급변했다. 데이비드 비즐리 WFP(세계식량계획) 사무총장은 “이미 81개국에서 2억 7600만 명이 급성 기아에 직면하고 있다”면서 “우크라이나 분쟁이 수습되지 않으면 81개국에서 새로운 급성 기아가 4700만 명 발생해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위험한 기아 리스크를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육류 소비 확대가 기아를 만든다(사진출처=게티이미지)옥수수는 연 2.7%씩 생산량이 늘면서 2020년 세계 곡물 생산량 약 30억 톤 가운데 11.6억 톤으로 밀과 쌀을 제쳤다. 대두 생산도 연 3.7%씩 늘어 3.5억 톤에 달했다. 사료 작물 폭증은 급속한 육류생산 확대를 불렀다. 2020년 세계 육류 생산량은 40년 전보다 2.5배 폭증했다. 연평균 2.3%로 인구 증가율(1.7%)를 웃돌았다. 인류의 음식이 곡물과 채소에서 육류로 확대되기 시작한 것이다.중국의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다. 육류 생산 규모에서 세계 최대다. 특히 돼지고기는 생산 비중은 1980년 83.1%에서 2020년에 54.6%로 크게 떨어졌지만 아직도 4113만 톤을 생산해 2018년 시장점유율이 44.8%에 달했다. 2020년 중국에서 사육하는 돼지는 4억 마리 이상으로 전 세계의 약 40%에 달했다.문제는 중국 양돈 기업들이 비싼 국산 사료를 피해 저렴한 수입 옥수수와 수수, 보리 등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곧 사료 곡물의 한계에 다다르고, 결국 육류를 대신할 인공 육 개발 및 양산화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지구 온난화가 몰고 올 또 다른 위기(사진출처=게티이미지)주식 곡물의 생육은 기온과 강우량에 큰 영향을 받는다. 화학비료의 이용이나 가축의 트림과 분뇨 등은 온실가스 발생원이 되어 지구 온난화를 가속화시킨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2014년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온실가스 중 공업은 21%, 전력과 열 생산은 25% 정도인데, 농업과 그 외 토지 이용도 24%에 이른다. 이 중 농업 분야만 약 10%를 차지했다.농업 분야 온실가스 발생원 가운데는 토양에서 서식하는 미생물이 발생시키는 일산화질소가 39.1%로 가장 크다. 가축의 트림(메탄가스)가 38.8%에 이른다. 세계적으로 약 15억 마리의 소가 사육되는데. 이들이 뿜는 트림이 자동차 15억 대가 내뿜는 오염과 유사하다고 한다. 인류가 식량 생산을 위해 농업을 확대할수록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된다는 딜레마에 직면한 것이다.이상고온과 가뭄 탓에 유럽 등지에서는 농축산물 생산량 급감이 우려되고 있다. 지구 전체 물의 2.5%에 불과한 담수 부족이 큰 문제다. 게다가 하천처럼 쉽게 사용 가능한 담수는 0.008%에 불과하다. 해수면이 1m 상승하면 쌀 생산량이 최대 290만 톤 줄 수 있다고 한다. 담수를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이유다.◇ 바이오 연료, 식량인가 연료인가저자는 세계 농업 문제는 곡물 과잉생산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미국 EU 호주 등 농업 강국이 극진한 농업 지원책을 펼친 탓이라는 것이다. 자국 농업 보호를 위한 이들의 새로운 전략이 ‘바이오 연료’다. 바이오 에탄올은 미국과 브라질이 과점하고 있다. 미국이 55%, 브라질이 29%다. 바이오 디젤은 유럽이 35%를 점유한다. 모두 공급 과잉 곡물과 유량 작물이 많았기 때문이다.바이오 에탄올을 최초로 자동차에 이용한 것은 브라질이다. 현재는 순수 휘발유 자동차 운행이 금지될 정도다. 사탕수수에서 추출해 2000년대 초 바이오 연료 생산과 소비 세계 1위에 올랐다. 심각한 자동차 대기오염의 해법으로 바이오 연료에 눈을 돌린 미국은 옥수수로 만든 바이오 에탄올로 자국 농업 보호와 에너지 안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게 된다.바이오 연료의 최대 과제는 ‘식량과의 경쟁’이다. OECD-FAO는 2030년 바이오 연료에 사용되는 밀은 전체 생산량의 1.2%, 옥수수는 13.7%, 식물 기름은 13.5%, 사탕수수는 무려 22.0%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저자는 “연료가 식량을 침식하는 상황이 계속될 것”이라며 “인류는 이제 결정할 때가 다가왔다”고 말한다. ◇ 기아를 초래한 강대국의 논리(사진출처=게티이미지)심각한 식량난을 겪고 있는 아프리카의 진짜 문제는 ‘곡물 증산’ 보다 ‘곡물 수입’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경제성장이 둔화된데다 자급자족형 농업을 배제시켰던 식민지 경제구조가 여전한 탓이 크다. 서구 국가들은 아프리카 국가들을 잉여 곡물의 배출구 정도로 여겼던 것이다.저자는 “아시아의 식량 증산 경험이 아프리카에 전수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시아 국가들처럼 곡물 등의 식량 생산을 늘리지 않으면 빈곤에서 탈피해 진정한 경제 발전을 이루기 어렵다고 진단한다. 지금처럼 귀중한 외화를 도시 인구의 음식을 위해 소비하지 말고, 아시아처럼 국내 인프라 정비와 공업화, 교육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그는 아프리카가 빈곤을 해소하고 지속 성장하려면 식량 자급률을 높이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며 “이제라도 저가 수입 곡물의 유입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곡물 원조가 아니라, 생산성 향상을 위한 자금과 기술, 그리고 자재라고 강조한다.◇ 화학비료 쟁탈전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화학비료 수급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3대 화학 비료인 질소와 인산, 칼륨의 원료와 생산은 러시아와 동맹국 벨라루스의 비중이 높다. 특히 인산과 칼륨은 원료 주 생산지가 두 나라인데, 서방의 경제 제재로 많은 나라들이 수급 차질을 빚고 있다. 화학비료 가격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역사적인 고점 수준에 도달했다.화학비료 수출 세계 3위 나라인 중국도 변수다. 화학비료 과다 사용으로 환경이 파괴되어 공급 과잉분을 수출로 돌리면서 화학비료 수출국이 되었지만 ‘2060년 탄소 중립 달성’을 공언한 이후 2021년 10월부터 다시 수출을 줄이고 있다. 저자는 중국의 비료 수출도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고 우려했다.화학비료는 곡물보다 수급 조절이 어렵다. 저자는 “화학비료의 생산과 유통은 세계 농업 생산과 식량의 안정적 공급을 지탱하는 매우 중요한 과제”라며 유엔과 선진국이 효과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2023-08-26 07:00 조진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