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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출장 떠나는 남편 보며 아내는 속으로 웃는다

엄마의 행복.(일러스트=백승민 기자 optimaporma@viva100.com)‘행복’을 수치화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저자는 ‘만족도’로 행복도를 평가한다. 무엇이 우릴 더 만족하게 만드는지 30년 넘게 과학적 탐구로 추적한 결과를 소개한다. 독일경제연구소(DIW)가 1984년부터 8만 4954명의 독일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64만 건의 설문조사 결과가 반영된 사회경제패널(SOEP, Socio-Economic Panel) 자료가 바탕이 됐다. 본심을 잘 숨기는 사람들이 언제 만족도가 높은지, 무엇이 삶의 만족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 지를 디테일 하게 알려준다.만족한다는 착각|마틴 슈뢰더|프런티어◇ ‘행복’보다 ‘만족’이 더 중요하다저자는 ‘만족’이 ‘행복’보다 더 의미 있는 측정 지표라고 말한다. 만족감을 느끼면 행복하다고 단언한다. SOEP 조사 결과, 독일인 중 절반 이상이 자기 삶의 만족도를 100점 만점에 80점 이상이라고 답했다. 평균 만족도는 70점 수준으로, 1인당 구매력이 2000 유로 수준인 부자 나라 중 중간 수준에 그쳤다. 남미인들은 가난해도 만족도가 높았다. 콜롬비아와 과테말라인들은 평균 80점 이상이다.저자는 사람이 자신의 만족도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단기적으로 만족도의 3분의 1, 장기적으로는 3분의 2까지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만족스런 삶을 살고 싶다면 사람들을 ‘장기적으로’ 만족시키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게 유용하며, 꾸준히 만족도를 얻으려면 ‘단기간에’ 도움이 되는 것을 아는 게 유용하다”고 조언한다.◇ 가정, 반드시 꾸려야 할까SOEP 조사에 따르면 65%의 부모가 자녀를 만족도의 핵심 요인으로 여겼다. 하지만 자녀가 만족도에 미치는 ‘기여도’는 낮았다. 저자는 “자녀를 원하는 것과 별개로, 자녀 자체가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신생아가 만족도를 높여주는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아이가 두 살이 된 직후부터 만족도가 떨어졌다. 여성이 남성보다, 특히 고소득 정규직 여성이 더 그러했다.30대 중반에 첫 자녀를 출산했을 때 남녀 모두 훨씬 만족도가 높아졌다. 그보다 젊은 부모는 불만족도가 높아지는 경향이 뚜렷했다. 저 학력자나 저 소득자라면 불만족도가 더 높아질 가능성이 컸다. 30대 초반에 부모가 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만족하는 경향이 높았다. 여성은 직장 생활 시작 후 6년 뒤에 첫 자녀를 출산하면 만족도가 더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저자는 결혼 적령기를 30대 중반으로 보았다. 30대 초반이나 그 이후에 결혼하면 만족도가 높았다. 일찍 결혼한 사람들은 불만족도가 훨씬 더 높았다. 결혼한 해에 만족도가 당연히 높았지만, 결혼 후에 매년 만족도가 떨어지다가 15년차 때 불만족도가 크게 높아졌다. 이혼 전까지 평균 혼인기간도 15년이었다. 최악은 ‘별거’였다.◇ 돈, 얼마나 벌어야 할까저자는 돈이 생각보다 삶의 만족도를 높여주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수준에 맞춰 생활방식을 바꾸고 익숙해 지기 때문이란다. 남성은 28~32세에, 여성은 22~28세에 직장생활을 시작하면 만족도가 가장 높았다. 빠를수록 불만족도가 높아졌다. 이에 저자는 자녀가 대학 졸업 때까지 부모가 충분한 시간을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한다. 직장부터 구하기 보다는, 배우는 데 시간을 더 들이는 게 낫다는 것이다.부자나라 국민들은 ‘비교’가 문제다. 남보다 훨씬 더 벌어야 만족도가 높아졌다. 부부 간에는 아내가 더 적게 벌 때 모두의 만족도가 높았다. 다른 조사에서도 아내가 남편보다 많이 벌 경우 부부의 불만족도가 약 8% 높아졌다. 남편이 더 많이 벌고 아내가 집안 일을 도맡는 불평등한 관계가 오히려 만족감을 높여준다는 것이다.남성은 자녀와 상관없이 근무시간이 길수록 만족도가 높았다. 다만, 기혼자는 9시간이 넘으면 만족도가 하락했다. 자녀 있는 기혼 여성은 남편이 집을 오래 비울수록 만족도가 높았다. 남편이 아내보다 4배 정도 노동시간이 긴 ‘불균형한’ 경제활동에 만족도가 가장 높았다. 실직자의 불만족도는 자발적 퇴사냐 아니냐에 따라 달랐다. 당연히 해고당한 사람은 매우 높았고, 자진 퇴사자는 덜 했다.◇ 관계, 친구는 많을수록 좋을까SOEP 연구에 따르면 자유시간은 하루 3시간이면 충분하다. 8시간 이상이 되면 자유시간이 전혀 없을 때와 같은 수준으로 만족도가 계속 떨어졌다. 주말에도 3시간을 넘기면 아무런 이득이 없었다. 휴가 기간도 1년에 최소 1주일 정도가 가장 적당했다. 휴가의 긍정적인 효과는 휴가 일수와 무관하게 직장에 복귀한 첫 주에 곧바로 사라졌다.친한 친구는 5명 정도일 때 가장 만족도가 높았다. 최소 한 달에 한 번 이상 만나는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만족도가 10점 이상 높았다. 온라인 친구를 만드는 소셜 네트워크는 만족도를 높이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실제 친구들을 대체하지 못했다. 저자는 “자주 사람을 만나면 무조건 삶의 만족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한다. 봉사 활동은 특히 만족도를 높여 준다. 50세 이상은 평균보다 2배 만족도가 올라갔다.◇ 집, 얼마나 넓어야 할까주거면적은 만족도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다만, 자녀가 없거나 자녀가 2명인 부부는 주거 면적이 넓어지면 만족도가 올라갔다. 경제적 여유를 인정받기 때문이다. 월세는 소득의 4분의 1을 넘기지 않는 게 좋다는 결과가 나왔다. 소득의 10%만 월세로 지출할 때 만족도가 가장 높았다. 소득의 45%를 월세로 내는 사람은 불만족도가 크게 높았다.‘독일’이라는 특수성도 있지만 어쨋든 SOEP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나이가 들수록 도시에 사는 것보다 시골에 사는 것이 낫다는 결론이다. 평생 시골에서 산 장·노년층의 만족도가 더 높았다. 대도시에서 40~60km 떨어진 시골로 이주할 때 만족도가 올라갔다. 청년은 대도시로 이주하면 만족도가 상승하는 반면 장·노년층은 대도시에 멀어질수록 만족도가 좀더 올라갔다.◇ 건강, 운동을 얼마나 더 해야 할까실제 건강한 것보다 건강하다고 ‘느끼는 것’이 삶의 만족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게 SOEP의 조사 결과다. 평소에 건강이 매우 안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매우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불만족도가 무려 42점이나 높았다. 늘 통증에 시달린 경우 불만족도가 25점 더 높게 나타났다. 질병과 통증이 삶의 만족도를 대폭 하락시키는 가장 큰 요인인 셈이다.노년의 삶은 ‘건강’에 좌우된다는 사실도 증명되었다. 노년기에도 자신의 건강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은 70대 중반까지 만족도가 떨어지지 않았다. 남성은 힘이 세고 키가 클수록 만족도가 올라갔다. 흥미롭게도 키가 큰 사람은 매력적이게 보이기도 하지만 돈도 더 많이 벌었다. 경험적 연구에 따르면 1㎝당 소득이 약 1%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남녀 모두 표준 체중보다 더 나갈 때 불만족도가 높았다. 다만, 여성은 비만일 때, 남성은 말랐을 때 더 괴로워했다.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실제 체중과 무관하게 스스로를 심한 비만으로 생각했다. 자기에게 더 엄격한 때문이다. 남녀 모두 체중이 줄였을 때 보다 늘었을 때 만족도가 높았다. 운동하는 사람들이 삶의 만족도가 높았지만, 자기 한계에 도전하려 운동하는 사람보다 재미나 보상을 위해 하는 사람의 만족도가 더 높았다.◇ 라이프스타일, 삶에 얼마나 영향 미칠까저자는 ‘삶의 만족도’가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자기 삶에 대한 통제력, 그리고 사교성이 만족도와 크게 연관이 있다고 강조한다. SOEP 연구 결과를 봐도, 자기 삶에 대한 통제력이 거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불만족도가 5점 정도 높았다. 저자는 “자신감과 통제력을 인위적으로 높이는 것만으로도 만족도가 높아진다”고 단언한다.저자는 고든 올포트와 워렌 노먼이 만든 5가지 성격 특성(개방성, 성실성, 외향성, 친화성, 신경증적 성향)과 만족도의 관계를 설명한다. 저자는 이 이론을 토대로, 경쟁에 매달리지 말고 무엇보다 자기 삶에 만족하라고 권한다. 특히 자신의 생활수준에 늘 만족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만족도가 11점이나 더 높았다며, 물질적 풍요는 삶의 만족도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왜 만족을 모를까어떤 사람이 나를 행복하게 해줄까? 저자는 반려자가 미래에 대해 강한 확신을 갖고 있다면 만족도가 2.4점 높아진다고 말한다. 반려자의 만족도가 높을 때 자신의 만족도 역시 추가로 높아진다며, ‘아내가 행복해야 인생이 행복하다’는 말이 정말 맞다고 강조한다. 특히 반려자가 늘 성실하거나 외향적인 경우 만족도를 약간 더 높여줄 뿐이지만, 늘 개방적이라면 삶의 만족도에 전반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소개한다.저자는 만족감을 높이는 궁극의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첫째, 자본주의는 가난한 사람들의 만족도만 높인다. 일단 형편이 나아지면 필요 이상의 물질적인 풍요는 만족도를 높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 종교 특히 불교는 고통을 감내하고 사람에게 이롭다. 만족도 데이터에 따르면 불교는 실로 엄청난 통찰력을 제공하는 것으로 평가받았다. 셋째, 만족을 구하려다 오히려 만족도가 떨어진다. 쾌락만 추구할 경우 한계효용까지만 만족도가 높아지고 습관화를 부른다는 것이다. 저자는 “오히려 타인을 돕거나 사심 없이 교류하는 것이 만족도를 크게 높이는 방법”이라고 말한다.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2024-02-17 07:00 조진래 기자

[비바100] ‘지금’ 나의 가족은…‘오늘, 가족이 되었습니다’

사진출처=픽사베이교집합이라곤 할머니 유미하마 마사코 뿐이다. 열일곱의 수험생 하나시로 가에, 원래는 유미하라 고타로였지만 지금은 여인이 된 히마리, 마흔여덟의 어른아이 같은 유미하마 리사코 그리고 마사코의 유언을 집행하는 곤노 다마키. 네 사람이 마사코의 유언 집행을 위해 니이가타에 있는 집에 모여들었다. ‘비짜루가 자란 정원’으로 제19회 전격소설대상 대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사쿠라이 미나의 ‘오늘, 가족이 되었습니다’는 유산을 상속받으려면 상속이 끝날 때까지 니이가타에 있는 집에서 함께 살아야 하는 이들의 이야기다. 마사코의 손녀인 가에는 열살이 되면서부터 남에게 기대 따위는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열일곱 소녀다. 구제불능 어른 중 상위 어쩌면 압도적인 1위에 빛나는 아빠는 마사코의 기대를 한몸에 받던 딸 아사미가 사랑의 도피를 감행했던 남자. 이 남자는 툭 하면 기어들어와 가에가 아르바이트로 모아 둔 돈을 귀신같이도 찾아내 탕진한다. 아사미가 죽고 혼자 살다시피하는 가에에게 아빠는 없느니만 못한, 남보다 못한 존재다. 오늘, 가족이 되었습니다|사쿠라이 미나 지음|박승희 옮김(사진제공=빈페이지)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벌써 고등학생” “아직 고등학생”이라고 칭하는 어른들에 의해 노숙자가 될 위기의 순간 가에 앞에 다마키가 나타나 유산상속 소식을 전한다. 그렇게 따라나서 도착한 니이가타의 집에는 할머니가 재혼한 상대가 데려온 딸 리사코, 전남편의 아들 고타로였지만 이제는 딸이 된 히마리, 8년 전부터 할머니와 함께 살아온 다마키 그리고 어느 날엔가 길에서 주워온 13세의 도도하고 예민한 고양이 리넨이 있다. 유산상속을 위해 모여든 이들에게 다마키는 상속받을 것들과 그 조건에 대해 피력한다. 가에는 1505만엔과 리넨을, 리사코는 16명과 분할 협의를 통해 6000여만엔 가치의 집을, 히마리는 집안 어딘가에 있을 1000만엔 가량의 3.5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물려받는다. 이를 물려받기 위해서는 유언 집행이 마무리되는 날까지 함께 살아야 한다. 이들이 유언을 따르지 않는다면 마사코의 전재산은 자선단체에 기부되도록 돼 있어 울며 겨자먹기로 함께 살게 된 이들은 서로가 달라도 너무 다른,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었다. 전혀 섞여 들 것 같지 않은 이들은 리사코 전 애인의 스토킹, 유산을 받게 됐다는 소식에 찾아와 “부모자식”을 운운하며 행패를 부리는 가에의 아빠, 히마리 가슴 한켠에 내내 담겨있던 기억, 할머니와 생각보다 깊게 이어져 있는 다마키의 병 등으로 변화를 맞는다. 6개월여를 한집에서 화내고 싸우는가 하면 위로하고 보듬으며 말 그대로 ‘부대끼며 지지고 볶는’ 일상을 보낸 이들은 할머니 마사코의 진심과 사랑을 깨닫는다. 그렇게 가족이 되는 여정을 담은 ‘오늘, 가족이 되었습니다’의 핵심 메시지는 사회에서 정해 놓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으로 들어올 수 없는 다마키의 치료를 논하는 중 가에의 외침에 고스란히 담겼다.“왜… 왜 그렇게 정해놓은 거죠? 가족이 뭔데요? 아니, 가족이 아니어도 만약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 병에 걸려서 이식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는데, 도너가 될 수 없다는 말인가요? 그건 이상하잖아요? 혈연이 아니면 가족이 아닌가요?”1인가구와 비혼주의의 급증, 하루가 멀다하고 바닥을 치는 출산율 등으로 ‘혈연’에 의거한 가족의 해체가 심화되고 있는 시대다. 친부모가 아이를 학대해 죽이거나 유산을 노린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는 뉴스가 그다지 놀랍지도 않은 시대가 된 지도 오래. 이에 혈연, 공식적인 서류 등으로 제한됐던 ‘가족’은 그 의미를 넓히거나 대체되고 있는 시대이기도 하다. 그런 시대의 가족은 어떻게 정의내려야 할까. 그렇게 ‘오늘, 가족이 되었습니다’는 묻는다. 저마다 삶의 여정을 보내고 있는 ‘지금’ 나의 가족은….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2-12 18:00 허미선 기자

[신간] 박선영 교수, ‘운명을 열어주는 퍼스널컬러’ 출간

박선영 국제대 뷰티아트학과 교수의 ‘운명을 열어주는 퍼스널컬러’. (북스타출판사)박선영 국제대 뷰티아트학과 교수의 신간 ‘운명을 열어주는 퍼스널컬러’가 북스타출판사에서 출간됐다.‘운명을 열어주는 퍼스널컬러’는 30여년 경력의 메이크업아티스트 및 스타일리스트 박선영 교수가 자신의 이미지메이킹 노하우를 집대성한 책이다.이 책은 퍼스널컬러를 이용한 이미지메이킹에 대한 심도 깊은 탐구와 자신만의 개성과 스타일을 찾아가는 여정을 제안하고, 시각적인 즐거움을 선사한다.특히 자신에게 어울리는 컬러를 찾아 일상에서부터 특별한 순간까지 모든 상황에서 자신감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다. △계절 타입별 스타일 가이드 △메이크업과 패션 이미지 스타일 전략 △성공적인 이미지메이킹을 위한 실용적 팁 △이미지 스타일링을 위한 조언도 제공한다.이 책은 퍼스널컬러를 통해 자신의 개성을 더욱 뚜렷하게 드러내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또 독자들이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을 발견하고, 그것을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해 보도록 독려한다.박 교수는 “운명을 열어주는 퍼스널컬러를 통해 독자들이 자신의 ‘나다움’을 소중히 여기고, 개성을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권새나 기자 saena@viva100.com

2024-02-07 17:01 권새나 기자

[비바100] 보인다… 어둡고 오염된, 무서움 감춘 북한

(사진출처=게티이미지)지난 해 남북한이 경쟁적으로 정찰위성을 쏘아 올리면서 한반도에서 때아닌 ‘인공위성 경쟁’이 치열하다. 국민대 교수인 저자는 관측위성을 통해 관찰한 한반도, 특히 북한의 다양한 실상을 전해 준다. 원래는 지구의 산림과 환경 변화를 관찰하고 기후변화에 따른 미래를 전망하다가 북한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가 위성 촬영을 통해 전하는 북한의 실태를 들어보자.우주에서 본 한반도|임철희|21세기북스◇ 인공위성으로 본 북한 사회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소셜미디어 X에 올린 한반도 야간 위성 사진.(사진출처=X 캡처)인공위성 사진에서 북한은 늘 남한보다 어둡다. 에너지 부족 탓이다. 북한의 에너지 자립도는 2017년 한 때 91.4%에 달했으나, 에너지 공급량은 2021년 현재 남한의 고작 4% 수준이다. 1인당 소비량은 0.47TOE로 남한의 7.9%로, 우리의 1960년대 후반 수준이다. 남북 간 1인당 에너지 소비규모 격차도 1990년 1.8배에서 2021년에는 12.6배로 확대되었다.현재 북한 인구는 약 2570만 명으로 추산된다. 평양이 300만 명을 넘었지만 그 외는 ‘100만 도시’도 없다. 청진이 65만, 함흥 54만, 원산 36만, 신의주 32만 정도다. 북한의 도시화율은 2023년 현재 63.2% 수준이다. 인공위성으로 보면 평양과 신의주, 남포, 원산 등에 인구가 몰린 양상이다. 북한은 2025년까지 매년 1만 세대씩 총 5만 호의 아파트 건설 계획을 진행 중이다.◇ 많은 광산과 환경 오염함경북도의 북한 최대 노천 철광석 광산 ‘무산광산’. (사진=VOAKOREA)북한은 광물자원이 풍부하다. 마그네사이트 매장량은 세계 1위, 텅스텐과 흑연은 세계 10위권이다. 우리가 많이 수입하는 철, 동, 연광의 매장량은 우리의 최대 100배 수준이다. 북한의 광업 비중은 2017년 기준 GDP의 11.7%로, 0.1%인 우리보다 월등하다. 광산은 총 728개로 추산된다. 금속광산이 260곳, 석탄광이 241곳, 기타 비금속 광산이 227곳이다. 광업은 늘 북한의 ‘희망’이다.함경북도의 ‘무산 노천광산’은 북한 최대 철광석 광산이다. 대북 제재에도 불구하고 광산과 채굴이 확대되는 게 위성으로 확인된다. 동아시아 최대 아연 매장지인 함경남도 검덕지구 광산들도 꾸준히 확장되고 있다. 문제는 석탄이다. 위성으로 보면, 무분별한 적치와 폐기물 방치가 환경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유명한 운선 금광광산에서도 광물 찌꺼기와 폐기물로 인한 하천 오염이 확인된다.◇ 폭발 위기의 백두산분화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는 백두산 천지.(사진출처=게티이미지)우주에서 관측한 백두산은 폭발 징후가 완연하다. 2002년부터 2009년까지 12㎝ 정도 융기했다 가라앉은 후 2015년에 다시 들썩였다. 2003년부터 정상의 나무들이 화산가스로 말라가는 현상이 포착되었다. 60℃ 전후의 천지 주변 온천 수온도 2015년에는 83℃까지 올랐다. 온천 화산가스의 헬륨 농도는 일반 대기의 7배에 달했다. 백두산의 분화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는 이유다.레이더 영상으로 지표면 변화를 분석하면 실제 분화 징후가 확인된다. 전문가들은 백두산의 지표 변위 등으로 볼 때, 지각 활동과 단층 움직임이 활발해 분화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저자는 “백두산 분화 활동이 더 거세져 이산화황 배출이 증가하면, 우리의 세계 최초 정지궤도 환경위성인 ‘천리안-2B’가 실시간으로 농도 변화를 관측해 미리 대비케 해 줄 것”이라고 말한다.◇ 민둥산 투성이 북한남북은 1965년 전후로 산림 녹화사업을 시작했지만 북한은 식량과 자원 부족으로 성과를 못내고 있다. 높은 산지에는 아직 숲이 남아있지만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 주변은 농경지나 황무지로 바뀌어 있다. 전략적 요충지인 강계시를 1988년과 2019년에 위성촬영해 보니 황색의 맨땅이 드러나 보였다. 탈북민들이 많이 거쳐 오는 제2의 국경도시 혜산시도 마찬가지였다.대체로 북한 산림의 20~30%인 200만~300만 ha가 훼손된 것으로 보인다. 서울 40배 면적의 산림이 1990년에서 2000년대 사이에 사라졌다. 그나마 김정은 정권이 ‘산림건설총계획’이라는 20년 장기 사업을 진행 중이다. 매년 서울의 3.3배에 이르는 20만 ha 이상을 조림하는 게 목표지만, 실제로는 4만~5만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확연한 기후변화 징후지난 100년 동안 전 세계 평균 기온이 1.09℃ 오를 때 한반도는 1.6℃나 올랐다. 북한은 평균 기온이 10년마다 0.45℃ 올라, 남한(0.36℃)를 압도했다. 황폐해진 산림 탓에 산사태와 홍수위험은 크게 높아졌다. 북한은 2021년 미국 국가정보국(DNI)이 꼽은 ‘기후변화대응 취약 우려국’ 11곳 가운데 하나다.미 항공우주국(NASA)의 MODIS 인공위성으로 보면, 북한의 지표면 온도 상승세가 확연하다. 북한은 도시 확장이 많지 않았다는 점에서, 명확한 기후변화의 시그널로 읽힌다. 기후변화 징후는 태풍 경로로도 확인된다. 과거에는 한반도 북부까지 올라온 적이 거의 없었으나 2010년대부터는 중국 지린성까지 북상했다. 2023년 ‘카눈’은 처음으로 한반도 중앙을 관통했다.◇ 북한이 옮겨주는 미세먼지석탄, 중유 등 화석연료를 많이 쓰는 북한의 초미세먼지 배출량은 36.5㎍/㎥로 한국(28.3㎍/㎥)보다 1.3배나 많다. 에너지 소비량은 우리의 25분의 1인데,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배출량은 2.3~2.6배다. 우리 수도권의 15%가 북한발 미세먼지라고 한다. 북한 전역의 초미세먼지 농도는 2015년에 평균 43.5였으나 2018년에는 42.7로 추정된다. 평양은 47.2로 서울의 2배다.같은 기간 초미세먼지 평균 추정치는 북한 전체가 41.8, 평양이 49.6이었다. 남한은 전체가 27.5, 서울이 25.5 수준이지만 지금은 모두 18㎍/㎥까지 개선되었다. 중국 중부와 만주, 요동의 초미세먼지 농도가 심해질수록 북한과 우리 미세먼지 농도도 올라간다. 인구 많은 평양, 조선·제련 산업이 주력인 남포, 최대 화력발전소가 위치한 평안남도 북창 등의 오염이 특히 심하다.◇ 식수원이 되지 못하는 강대동강, 압록강, 두만강, 청천강, 예성강 등 큰 하천들이 ‘식수원’ 기능을 못한다. 세계식수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안전하게 관리된 식수를 사용하는 인구가 10명 중 6명으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수준이다. 하수처리 비율도 14%에 불과해 주민 건강을 위협한다. 주요 하천들의 오염이 매우 심각해 각종 질병을 일으킨다.유엔환경계획과 북한이 공동 조사해 2012년 공개한 보고서에선 이미 대동강을 비롯한 주요 하천의 수질오염 문제가 심각함을 보여 주었다. 그나마 2022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보통강 수질개선을 주문한 것을 계기로 다양한 수질개선 대책이 추진되고 있다. 위성사진을 보면, 우리는 산업단지가 밀집된 낙동강 하류도 덜 혼탁한 느낌을 준다. ◇ 사라지는 갯벌북한 나선 철새보호구. (사진=람사르협약 홈페이지 화면 캡처)북한 서해안은 전체가 사실상 갯벌이다. 압록강 하구와 청천강 하구가 유명하다. 동해안에도 두만강 하구 갯벌이 있다. 청천강 하구 문덕 갯벌과 나선 철새보호구는 람사르습지로도 등재돼 있다. 하지만 대규모 간척으로 갯벌 환경파괴가 우려된다. 김일성은 1980년에 ‘먹는 문제’ 해결을 위해 30만 정보 간석지 개간을 지시했고, 김정은도 2016년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에서 간석지 개발을 역점과제로 꼽았다. 북한에선 총 12곳에서 주요 간척사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대계도와 홍건도가 가장 크다. 2010년 이후 개간한 면적이 서울의 3분의 1인 200㎢를 넘긴 것으로 추산된다. 2022년에 노동신문은 평안북도 월도 간척사업으로 900만 평의 새 땅이 확보되었다고 보도했다. 인공위성으로도 2010년대 이후 꾸준히 간척활동이 이뤄지는 모습이 촬영된다.◇ 핵실험은 주춤해도 우라늄 채굴은 여전북한 영변 핵시설 위성촬영 모습.‘영변’의 면적은 여의도의 3배가 넘는 8.9㎢다. 5MW 원자로와 핵연료 가공공장, 방사화학실허실, 우라늄 농축시설이 들어서 있다. ‘풍계리’에서는 여섯 차례 모든 핵실험이 이뤄졌다. 1000m 이상 산으로 둘러쌓인데다 암반 대부분이 화강암이라 방사선 누출 위험이 적다. 다만, 백두산 지하 마그마 지대와 인접해 화산폭발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제기된다.위성 촬영으로는 최근 핵실험장이 잘 사용되지 않는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황해북도 평산 광산에서는 대북 제재와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2년에도 우라늄 채굴에 따른 폐수노출이 확연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지하 갱도 확장이 지나치면 주변에 싱크 홀이 생기는데, 이 곳에서도 실제 관찰된다. 핵실험은 쉬어도 우라늄 채굴은 더 활발하다는 얘기다.◇ 곳곳에 산재한 정치범 수용소북한은 ‘정치범 수용소’의 존재 자체를 부인한다. 하지만 수감자만 20만 명으로 추산된다. 북한 전체 인구의 0.8% 수준이다. 사법절차 없이 살인과 고문이 자행되는 곳이다. 평안남북도, 함경남북도, 자강도 등 ‘험지’에 주로 위치해 10곳 정도가 운용되고 있다. 함경남도 요덕수용소는 큰 마을처럼 보이지만, 마을을 둘러싼 간 울타리가 위성으로 촬영되어 확인되었다.1급 정치범이 수용된다는 청진수용소는 자전거 제작 노동을 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16호 관리소’라 불리는 함경북도의 명간수용소는 동서 30km, 남북 20km로 세계 최대 규모다. 평안남도의 ‘14호 관리소’ 개천수용소는 교화가 불가능한 1만 5000명의 종신형 및 사형자들만 모아둔 완전통제구역이다. 위성에서 보면 ‘한남 더 힐’과 유사한 느낌을 주지만 탈출이 불가능한, 한반도에서 가장 무서운 공간이다.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2024-02-03 07:00 조진래 기자

[비바 2080] 늦은 '스타트업 창업'은 없다

잘 나가던 직장을 뒤로 하고 30대 후반이나 40대에 뒤늦게 창업해 위기와 실패를 딛고 성공한 늦깍이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판교에 위치한 국내 스타트업의 요람 ‘스타트업캠퍼스’ 전경.2022년 하반기부터 스타트업 시장은 ‘투자 혹한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뛰어난 기술력과 명확한 수익모델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며 시리즈 A 이상의 투자를 받은 기업들이 눈에 띈다. 특히 잘 나가던 직장을 뒤로 하고 30대 후반이나 40대에 뒤늦게 창업 전선에 뛰어들어, 위기와 실패를 딛고 성공가도를 달리는 ‘늦깍이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주목받고 있다. 임성준 스타트업 전문가가 최근 대기업을 이긴 한국의 스타트업을 통해 그런 기업들을 소개했다. 다소 늦은 창업에도 성공적인 스토리를 써가는 혁신가들을 소개한다.◇ 심성보 네이앤컴퍼니 대표 “세상의 모든 교통수단을 연결한다”네이앤컴퍼니는 2019년에 설립된 모빌리티 스타트업이다. 친 환경 MaaS(모바일 서비스) 플랫폼 ‘네이버스’를 운영하며 버스와 지하철, 공유 자전거, 전동 킥보드, EV 렌터카 등 친환경 이동 수단을 통합해 최적의 교통정보를 제공한다. 앱 하나로 목적지까지 끊김 없이 통합 이동 서비스가 가능하다. 현재 전국 80여 지역에 서비스된다. 사용자들의 교통비 절감을 위해 ‘리워드 토큰’도 제공한다. 향후 통합결제 기능까지 지원할 예정이다.창업자인 심성보 대표는 애널리스트 출신이다. 2014년에 테슬라를 처음 발굴해 투자했다. 그는 대중교통 이용자들의 최대 불만이 ‘비싼 교통비’임을 확인하곤, 국내 최초로 자동으로 대중교통 탑승 시간을 트래킹 해 2분당 1네이토큰(1원)을 제공했다. 모든 교통수단의 이동정보를 통합해 고객이 미처 알지 못했던 니즈를 충족시켜 주었다.네이버스의 핵심 기술은 딥 러닝을 기반으로 유저들의 이동 시간과 거리, 경로 등의 이동 패턴을 판단 및 예측하는 ‘패턴 태그’ 엔진이다. 휴대폰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센서 데이터와 공공 데이터 등을 수집해 알고리즘을 실행한다. 미션 형태의 적립과 챌린지 적립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해 일부 사용자는 월 9만 원 정도 혜택을 받는다고 한다. 그는 궁극적으로 대중교통의 무료화를 구상 중이다. 전국 18만 개 정류장에 광고를 판매해 그 수익을 다시 사용자들에게 할인 혜택 등으로 돌려줄 계획이다. 회사의 궁극적인 목표는 모빌리티를 구독형으로 전환해 MaaS의 통합을 완성하는 것이다.심성보 대표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처럼 자신도 10년 단위로 목표를 세워 실천 중이라고 말한다. 20대에 많은 경험을 쌓기 위해 20개 이상 아르바이트를 해 보았고, 30대에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사업 준비를 했고, 30대 후반에 간접 창업 경험을 했고, 40대에 사업에 큰 승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형 친환경 MaaS 플랫폼으로 올해 해외 진출도 준비하고, 2~3년 후에는 IPO도 추진 중이다. 그는 “50대에는 소셜 벤처 투자와 연쇄 창업을 통해 사회혁신을 이루고, 60대에는 장학 재단을 만들어 전국에 미니 도서관을 설립하고 싶다”고 밝혔다.◇ 윤경욱 스펙터 대표 “빛의 속도로 인재 검증 돕는다”사실 윤경욱 스펙터 대표는 서른 살이 되기도 전에 창업을 해 본 사람이다. 하지만 파산이라는 처절한 실패를 경험했고, 다시 일어나 이제는 어느 기업이든 도움을 요청하는 국내 최초의 인재 검증 플랫폼 ‘스팩터’를 창업해 주목을 받고 있다. 시리즈 A 투자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일본과 싱가포르, 베트남 등에서 본격적인 글로벌 파일럿을 시작할 예정이다. 아시아 지역에서의 돌풍이 기대된다.스팩터는 인재 검증을 위한 평판 조회 플랫폼이다. 채용 시장의 정보 비대칭 문제를 해결하고 기업과 구직자간 매칭을 돕는다. 기존 서비스와 달리, 지원자 검증에만 초점을 맞춰 전문화했다. 헤드 헌터 등 사람에게만 의존했던 평판 조회를 큰 비용 없이 객관적인 데이터로 가능케 했다. 평판을 데이터화하고 클라우드화 함으로써 언제든 평판 조회가 가능하다. 인당 평균 4개의 평판과 수십 개 객관식 문항으로 구성된 데이터를 분석해 공통 키워드를 추출하는 방식으로 측정을 한다. 구직자가 어떤 상황에서 최고의 퍼포먼스를 내는지, 어떤 성향인지 알아낼 수 있다.기업이 평판을 열람할 때마다 이용료를 받는다. 한 명 당 열람 비용은 약 3만 원. 지원자들은 전혀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 회사의 슬로건이 ‘10초 만에 평판 조회’일 만큼, 평판 DB 확보가 최우선 목표다. 현재 30만 개 이상의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는데, 100만 개가 1차 목표다. 궁극적으로는 80억 명을 DB화 한다는 비전과 나스닥 상장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지금은 신규지원자 평판 조회에 치중하지만 곧 경력 직원에 대한 데이터도 쌓을 예정이다.윤 대표는 컨설팅회사 ‘엑센튜어’ 출신이다. 그곳을 나와 의욕적으로 창업했던 회사가 법인 파산과 개인 파산이라는 참혹한 결말 속에 사라지는 혹독한 경험을 했다. 그 때 그가 얻은 교훈이 ‘준비가 덜 된 창업의 위험함’이었다. 윤 대표는 “준비가 안된 학생이나 예비 창업자들에게 창업을 독려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문제”라며 “‘일단 도전하라’는 말은,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이지 준비 없이 도전하라는 말이 아니다”라고 조언한다.◇ 이진 엘박스 대표 “최적의 법률정보를 제공한다”엘박스는 ‘리걸 테크(legal tech)’ 기업이다. 전국의 법원 판결문과 뉴스, 참고 문헌 등 법률 데이터 검색서비스를 제공한다. 국내 최다인 총 200만 건 이상의 판례 데이터 베이스를 기반으로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강력한 검색 기술을 갖췄다. 단순히 텍스트를 추출하는 1차 가공의 영역을 넘어, 판결문을 편집·가공해 차원이 다른 데이터를 만들어 낸다. 여기에 판사의 판결 성향 분석, AI 판사 판결 결과 예측 등 부가가치 높은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덕분에 국내 전체 변호사의 40% 수준인 1만 2000명의 변호사가 사용하는 서비스가 됐다.로스쿨이나 비영리 단체에는 자료를 무료로 제공한다. 매달 사용료를 지불하는 B2B 고객은 150곳이 넘는다. 서비스를 유료화하면서 판례 업로드에 대한 보상의 개념으로 포인트를 준다, 그러자 자신의 판례를 공유하는 변호사들이 늘어 파트너십이 더욱 확장되는 결과를 낳고 있다. 변호사들이 자기 시장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업무를 돕는 보완적 도구임을 인정한다는 얘기다. 한국의 경우 미국과 달리 판결문을 완전 공개하는데 어려움이 많기 때문에 자칫 확정되지 않은 판결문을 올리거나 하는 위험을 막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한다.이진 대표도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 출신이다. 당시 받던 연봉의 10분의 1 밖에 안되는 연봉이지만, 그는 변호사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서비스적 가치를 제공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글로벌 리걸 테크 기업인 ‘피스컬노트’가 불명확성을 낮추는 데 주력하는 반면, 엘박스는 이미 법률 분쟁이 벌어진 상황에서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당분간은 내수 시장에 주력하겠지만 역량을 어느 정도 갖추면 해외 진출도 추진할 계획이다.그는 후배 창업자들에게 “미래에 대한 낙관론과 비관론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보통은 단기적인 목표에서는 비관론적인 경향이 있지만, 먼 미래를 생각하면 다시 낙관론으로 전환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배상기 위허들링 대표 “이제 점심도 구독경제다”위허들링은 점심 구독 서비스 ‘위잇딜라이트’를 운영하는 푸드 테크 기업이다. HACCP(식품안전관리인증)을 받은 식품 제조업체 30여 곳과 파트너십을 맺고 밥과 샐러드, 샌드위치, 면류 등 매일 2~3가지 음식을 7000원 안팎에 제공한다. 앱에서 원하는 식사를 선택하고 구매하면 다음 날 점심 시간에 원하는 곳으로 전문 배송 기사들이 직접 배달해 준다. 1인분만 주문해도 무료 배송이다. 서울 15개 구와 경기도 판교를 기반으로, 서울 전역으로 서비스를 확대해 가고 있다. 신규 고객의 60% 이상이 기존 고객의 추천으로 이뤄졌다.위허들링이 스스로 평가하는 강점 중 하나가 ‘큐레이션’이다. 일반 식사를 타깃으로 시장에 진입해 B2C 구독 서비스를 하는 것은 위허들링 밖에 없다. 단순 샐러드가 아닌 일반 식사를 고객 맞춤형으로 제공하니 인기가 높다. 시장 규모는 샐러드 시장에 비해 수십, 수백 배에 이른다. 직원들이 매일 같이 먹으면서 음식 상태와 식감을 체크한다. 주요 타깃은 MZ세대 여성 직장인이다. 회원 가입 후 실제 유료 구독회원으로 전환되는 비율이 55%에 이른다. 다들 ‘레드 오션’이라고 하는 외식시장에서 일반 식사 ‘구독’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있다는 자부심이 강하다.배상기 대표는 “아직은 오피스 밀집지역을 타깃으로 하지만 점차 베드타운 지역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단순히 편리함을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건강한 식습관을 만들어 주고 싶은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2~3년 안으로 B2B 시장도 장악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보인다. 이제까지는 한 달에 약 20만 식 정도를 판매했으나 올해부터는 월 60만 식 이상이 목표다. 궁극적으로는 하루 10만 구독자 확보를 꿈꾼다. 배송 시스템과 효율적인 지역 관리 체제 구축도 병행할 예정이다.배 대표는 은행 개발자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뎌 10년 정도 컨설턴트로 일하다 창업 전선에 뛰어 들었다. 풍족한 연봉 보다는 신나게 일하기를 좋아하는 자신에게 일이 맞지 않았다. 자신이 주인공이고 싶은 끼를 감출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아마도 더 빨리 창업을 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창업에 있어선, 본인이 아니라 고객이 원하는 요구와 만족도가 가장 중요하다”며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고 조언한다.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2024-02-01 08:19 조진래 기자

[비바 2080] 100세 시대 신간…한가롭게 <뒤통수>

음주 운전하고도 걸리지 않았다고 자랑 하는 사람, 자기가 먹은 쓰레기도 안 치우고 가는 사람, 공공장소를 자기 공간 마냥 쓰는 사람, 줄 서 기다리는데 계속 뒤에서 불안하게 압박하는 사람, 앞 차에 양보하는데 미친 듯이 경적 울리는 사람, 습관적으로 새치기 하는 사람, 갑질·을질 하는 사람, 빌린 돈은 안 갚으면서 고급 외제차 타고 다니는 사람, 법인카드로 배 터지게 먹는 사람. 저자가 뒤통수를 한 대 후려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다.저자는 세상에 좋은 인연보다 나쁜 인연 ‘악연(惡緣)’이 더 많다고 말한다. “인생은 끊임없는 뒤통수의 연속”이라고 단언한다. “정말, 아직도 사람을 믿니?”라는, 영화 ‘오징어 게임’에서 할아버지로 분했던 배우 오일남의 대사를 상기시킨다. 그러면서 “세상을 너무 선하게 살면 힘든 경우가 많이 생긴다”며 이제 나쁜 사람과는 관계의 끈을 일찌감치 마무리하고 자기만의 출구 전략을 잘 세워보라고 조언한다.그는 “세상에 ‘인간 뻐꾸기’가 너무 많다”고 비판한다. 남의 둥지에서 제 새끼를 기르게 하며 뒤통수를 치는 인간들이 즐비하다는 것이다. 사랑과 희망 심지어 불안까지 조성해 상대방에게 자신의 이익을 철저하게 취하고는 그 결과에 대한 책임에서는 쏙 빠지는 부류의 인간들을 성토한다. 은퇴자들의 퇴직금을 노리는 ‘백세 뻐꾸기’, 젊은이들을 등쳐먹는 ‘청년 뻐꾸기’ 등은 상종 못할 인간들이라고 혀를 찬다.저자는 특히 “은퇴 시점이나 나이 들어서 맞는 뒤통수는 남은 삶에 치명적”이라며 ‘사람을 너무 믿지 말기 바란다“고 말한다. 타인의 돈과 행복을 빼앗아 재기도 못하도록 나이 든 사람에까지 뒤통수를 치는 인간들은 ‘뻐꾸기 인간’을 능가하는 ‘흡혈귀 같은 인간’이라며 경멸한다. “꼭 ‘설마…’ 했던 사람이 뒤통수를 친다”며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고 거듭 강조한다.그는 “뒤통수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냉철하고 똑똑한 사람들도 뒤통수를 맞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으며, 지인이나 친인척에게서도 언제든 뒤통수를 맞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뒤통수를 치고 다니는 이런 ‘좀비’들은 매우 사소하고 작은 뒤통수에 성공해 성공 확률을 확인하고 점차 발전해 끝내는 아주 큰 사기로 까지 발전한다고 지적한다.저자는 사업하는 사람들에게 “고객들의 뒤통수도 주의하라”고 조언한다. 고객은 항상 ‘헤어질 결심’을 하고 있으며, 헤어지면서 그 이유도 잘 설명해 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타이이 아닌 자신도 자신에게 뒤통수를 칠 수 있다며 각별한 주의와 각성을 당부한다.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아 엉뚱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 ‘셀프 뒤통수’ 얘기다.저자는 직장생활과 소규모 사업 등을 하며 겪었던 경험담을 기초로 이 책을 썼다. 뒤통수 맞지 않고 후회 없이 자신이 주인 되는 삶을 살 순 없을까 고민하다 이 책을 펴냈다고 한다. 요즘 같은 불확실한 시대에는 개인도 적극적으로 미래를 대비해야 하는데, 나이 들어 믿었던 사람들로부터 뒤통수를 맞아 재기불능의 상태에 빠지지 말 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썼다고 전한다.실제로 최근에 사람들의 불안함과 조바심을 파고들며 뒤통수를 치는 사례가 빈번하다. 고수익을 보장한다며 퇴직금을 탈탈 털어 달아나는 사기 사건이나 보이스 피싱 같은 범죄가 속출하고 있다. 나이 들어 이런 뒤통수를 맞는다면, 금전적 피해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려 비극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아 더더욱 주의가 요구된다.이 책은 작가가 겪었던 각종 경험과 애환, 일과 인간관계에 보여 온 기대와 실망에 관한 이야기다. 경영자과정 비전임 지도교수로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내용들도 포함시켰다고 한다. 지치고 고된 삶을 살아가는 독자들이 앞으로는 불안감과 후회로 점철된 삶이 아닌, 진정한 삶의 진짜 주인공으로의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썼다고 한다.저자는 “믿을 사람 아무도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세상은 아직 살 만한 곳이 아닐까.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이, 뒤통수를 맞을 가능성보다는 훨씬 높지 않을까 싶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 성공적인 삶을 살고 싶다면, 아직 펼쳐지지 않은 미래에 대해 가지는 과도한 불안과 걱정이 바로 또 다른 뒤통수일 수 있지 않을까.결국 ‘제 하기 나름’이다. 저자 역시 스스로 뒤통수를 맞기 않도록 주변을 잘 관리하고 시행착오를 줄이면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꿈꾸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늘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삶을 꿈꾸는 능동적이고 긍정적인 자세야 말로 삶에서 어설프게 뒤통수를 맞지 않는 가장 확실한 방법일 것임을 암시한다.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2024-01-30 08:30 조진래 기자

뉴시스 경제부, 통계로 미리 보는 핵심 키워드 7 출간

세종시에서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공정거래위원회, 통계청, 국세청 등을 담당하는 뉴시스 경제부가 신간 ‘통계로 미리 보는 핵심 키워드 7’(원앤원북스)를 내놨다.원앤원북스의 설명에 따르면 이 책은 뉴시스 경제부가 연재한 ‘세쓸통(세상에 쓸모없는 통계는 없다)’ 기사를 정리해 묶었다. 세쓸통은 ‘세상에 쓸모없는 통계는 없다’는 일념으로 통계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내 알기 쉽게 풀어내고자하는 의도의 기획연재이다.이 책에는 뉴시스 경제부 기자들이 세쓸통을 통해 통계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내 알기 쉽게 풀어낸 다양한 분야의 흥미로운 내용들이 담겼다. 경제 현안이나 사회적 관심사, 국제 정세, 평범한 이들의 먹고사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통계로 세상을 바로 보고 현상을 분석하며 다가올 미래를 예측해 보기위해 핵심 키워드를 7개로 정리해 엮었다.이에 책은 모두 7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전쟁발 에너지 대란)에서는 전쟁으로 요동친 국제 유가가 한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에 따른 공공요금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등을 다뤘다. 2장(고래 싸움에 무역 적자)에서는 한국의 무역수지 현황과 전망을 살펴보고 무역수지 적자의 원인은 무엇이고 흑자로 전환됐지만 이면에 숨겨진 진실들을 설명한다.3장(차세대 먹거리 산업의 현주소)은 첨단 기술 인재와 산업단지 현황, 신첨단산업의 미래를 전망한 내용이 담겼고 4장(고물가 ‘텅’장 시대)에서는 고물가 시대에서 서민들이 삶이 어떠한지를 보여준다. 런치 플레이션, 인건비, 서비스 물가 등에 이르기까지 일상 생활과 밀접한 통계를 바탕으로 현재 상황을 진단하고 해결 방안도 제시했다.이어 5장(일자리 세대 전쟁)에서는 청년과 중장년,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는 일자리 문제는 무엇인지, 그에 따른 해법을 다뤘다. 6장(나홀로 월세, 집값 꿈틀)에서는 고령화사회, 추락하는 합계출산율 등을 살펴보고 집값이 왜 흔들리는지 원인을 찾아보고 빈집 문제, 상속세 문제까지 진단해본다. 마지막 7장(더 글로리, 그리고 학교 참상)에서는 학교 폭력의 현재 상황과 학교 밖의 문제까지 보여주며 지속되는 학교폭력, 추락하는 교권, 사교육 심화에 이르기까지 교육 전반의 문제를 다뤘다.원앤원북스는 이 책에 대해 통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전문 지식이 없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들로 채워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문 용어들을 풀어 설명해 독자의 이해를 돕고 주제와 관련된 더 많은 정보를 독자 스스로 찾아보고 활용할 수 있도록 안내해준다고 덧붙였다.이원배 기자 lwb21@viva100.com

2024-01-29 00:30 이원배 기자

[비바100] 무심고 켜진 걱정, 오늘은 꺼두세요

우리가 하는 걱정 가운데 91%는 실제 일어나지 않는다. 걱정이 걱정을 낳는 것이다. 과도한 걱정은 또 다른 문제를 들춰내 더 많은 걱정거리를 안긴다. ‘~하면 어떡하지’라는 끊임 없는 걱정은 스스로를 망가뜨린다. 영국 심리학자인 저자는 이를 ‘파국적 걱정(catastrophic worrying)’이라고 정의했다. 이 책은 그렇게 삶을 소진시키는 불필요한 ‘걱정 습관’에서 탈출하는 법을 일러준다. 저자는 “걱정하는 습관은 후천적으로 학습된 것”이라며 만성적 고질병을 고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해 준다◇ ‘~하면 어떡하지…’저자는 “걱정이 걱정을 낳아 삶을 고통에 빠뜨리는 ‘파국적 걱정’은 인간을 통제불능 상태를 만든다”고 말한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내 천성이 그래”라며 자조하고 체념한다. 하지만 저자는 걱정이 ‘천성’이 아니라 ‘오래된 학습의 결과’라고 주장한다.걱정이 만성화된 ‘걱정꾼’들은 생전 처음 해 본 걱정에도 ‘~하면 어떡하지’라는 추론을 거듭한다. 상상에 불과했던 것을 현실로 탈바꿈시킨다. 지나치게 걱정이 많은 이들은 그 걱정으로 점점 더 고통을 받고, 감정은 더 부정적으로 변한다. 그리고는 스스로를 자책한다. 저자는 “대부분 걱정은 부정적 감정에서 나온다”며 “문제 해결에 대한 자신감을 키워준다면 파국적 걱정에 쏟는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고 조언한다.◇ “천성이 그렇다”는 잘못된 믿음만성적 걱정꾼들은 “나는 타고 나기를 걱정이 많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그런 유전자는 존재하지 않거나 기껏해야 미미한 수준이라고 단언한다.저자는 삶을 위태롭게 만드는 걱정의 원인은 애착과 연관된 양육 스타일, 부정적인 인생 사건, 뇌 기능 손상 등 크게 세 가지라고 말한다. 특히 거부적이고 변덕스런 부모의 일관성 없는 양육 방식이 불안정 애착과 회피 애착을 낳는다고 경고한다. 간섭이 심하고 가혹하고 통제적인 양육은 타인을 못 믿게 만들고 세상의 위험과 불확실성을 감당 못할 것이라 믿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자식을 위한다고 한 일이 자식을 망친다는 것이다.◇ 실제 위험보다 더 부풀려지는 ‘걱정’저자는 사람들이 유독 많이 하는 걱정거리를 크게 다섯 가지로 분류한다. 좋은 관계를 잃을까 봐, 불안한 느낌이 들어서, 내 꿈을 이루지 못할 것 같아서, 일에서 실수할까봐, 돈이 부족할까봐 등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사소한 걱정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고 지적한다. 최근에는 SNS 소셜 미디어가 특히 청소년들의 사회적 비교를 부추겨 고독감과 불안, 걱정을 심화시키고 있다며, 이런 총체적인 현상을 ‘SNS의 저주’라고 비판했다.◇ 악당 커플 ‘걱정’과 ‘불안’‘불안장애’ 진단을 받은 사람은 걱정 수준이 유의미할 정도로 높다. 불안장애는 비합리적인 신념을 낳아 특정 공포증이나 공황장애, 범 불안장애, 강박장애 등으로 나타난다. 걱정은 정말로 우리를 심신 모두 병들게 한다. 걱정이 많으면 불면증이 따르고, 수면의 질이 떨어진다. 불면증이 불안과 우울증, 양극성 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자살 등의 중대 위험 요인인 만큼, 불면증 치료가 곧 유용한 정신건강 예방책이 될 수 있다.◇ 걱정과 불안을 다스리는 법불안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진화한 감정이지만 사실은 모호함을 더 부정적이고 집요하게 해석하도록 우리를 잡아 끈다. 저자는 불안이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나타난다고 말한다. 하나는 ‘상태 불안’이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하루 이틀 정도 불안이 지속되는 경우다. 다른 하나는 ‘특성 불안’이다. 매일같이 또는 장기간에 걸쳐 경험되는 만성적인 불안이다. 강박장애나 공황장애, 범불안장애로 발전하기도 한다.저자는 불안 관리를 위한 10가지 과학적 조언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불안은 누구나 느끼는 정상적인 감정이며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고 이해하라. 불안은 나를 망칠 수 없다. 지금 느끼는 불안한 감정이 합당한지 검증해 보자. 불안을 조장하는 과도한 규칙에서 벗어나라. 회피하지 말라. 불안에 발목 잡히지 않는다는 마음가짐을 가져라. 용기를 내어 새로운 시도를 해 보라. 큰 그림과 계획을 짜 보라. 지인과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하라.’◇ 걱정이 습관이 되지 말아야파국적 걱정을 하는 사람들은, 걱정이 나쁜 일을 예방해 준다고 믿는다. 걱정했던 일이 안 일어났을 때 그렇게 느낀다. 그래서 “걱정은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걱정의 미신화’는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저자는 ‘걱정’을 자칫 ‘강박’이 될 가능성을 지적한다. 강박을 만족시키려 걱정거리를 더 샅샅이 찾는데 시간을 허비한다는 얘기다. 저자는 걱정거리를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파악했다. 중요하지 않은 걱정, 중요하면서 해결할 수 있는 걱정, 중요하지만 해결할 수 없는 걱정이다. 그는 걱정을 키워 강박에 이를 가능성이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걱정하는 내용이 아니라 걱정하는 일 그 자체”라고 지적한다.◇ 무심코 켜지는 ‘걱정기계’ 끄는 법걱정꾼들이 겪는 고통 가운데 하나는, 한번 걱정을 시작하면 멈출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과도한 걱정을 멈추지 못하게 만드는 두 가지 원칙을 소개한다. 하나는 목표지향적 원칙(GD, goal directed rule)으로, 활동의 목표를 정하고 들어가는 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중단지향적 원칙(FLS, feel like stopping rule)이다. 전적으로 자신의 느낌에 입각해 활동을 중단하는 방식이다. 걱정꾼들은 대개 목표지향적 원칙을 더 많이 사용한다.저자는 “‘걱정 습관’을 개선하려면 완벽주의자들에게 흔한 목표지향성이 약화된 중단지향적으로 전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FLS 원칙의 일상생활 적용 방법을 일러준다. 냉장고 등 눈에 잘 띄는 곳곳에 이 원칙이 적힌 종이를 붙이고 원칙대로 해 보라고 주문한다. 그리고 매일 새로운 중지 원칙 하나를 택한 후 그 원칙을 일상에 적용했을 때 달라진 점 등을 생각해 보라고 말한다.◇ 만성적인 걱정을 다스리려면병적인 걱정 성향을 줄이려면 가장 먼저 ‘걱정’을 제대로 파악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사소해 보여도 매일 떠오르는 걱정거리를 몇 주에 걸쳐 모두 적어보고 당시 기분도 함께 기술한다. 이후 걱정했던 일이 실제 일어났는지 체크한다. 이런 ‘걱정 일기’를 꾸준히 쓰다 보면, 걱정이 현실화될 확률이 매우 낮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또 어떤 상황에서 유독 걱정이 더 많아지는지, 그것이 합당한 것인지도 파악할 수 있게 된다.이어 ‘걱정 범주 워크 시트’를 작성한다. 중요하지 않은 걱정, 중요하고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걱정, 중요하지만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걱정을 나눠 생각을 한다. 이 연습을 마치면 아마도 많은 걱정거리가 ‘중요하지 않은 일’로 분류될 것이다. 해결된 걱정거리를 지워가다 보면, 나머지들도 사실상 벌어지지 않는 것 들임을 알게 된다. 다음은 더 넓고 긍정적인 관점에서 걱정을 바라보는 단계다. ‘이 일이 나를 더 강하게 거듭나게 해줄 것이다’, ‘다 잘 풀릴거야’ 같은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마음이 파국으로 치닫는 걱정을 내려놓게 해 준다.◇ 걱정의 장점만 취하면 살아가기저자는 걱정이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며, 유익한 기능도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걱정이 많은 사람들이 좋은 성과를 낸다는 연구 보고도 있다. 걱정은 미래의 중요한 사건들에 대한 생산적 계획을 세우게 해 주고, 위험한 결과를 예측하게 해 준다. 걱정이 감정의 완충제 기능을 한다는 보고도 있다. 최악의 상황을 미리 걱정하다가 실제로 좋지 않은 일이 벌어졌을 때, 오히려 안도한 경험을 다들 해 보았을 것이다.결국 걱정의 긍정적인 면을 강화하고 부정적인 면은 제거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걱정을 삶에 더 적응적인 활동으로 만들어야 한다. 먼저 부적응적인 원인, 특히 가까이 있는 원인과 함께 보다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원인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저자는 특히 관찰과 대응이 상대적으로 수월한 근거리 원인을 파악하는 데 집중할 것을 권한다. 공인된 치료사와 대면으로 진행되는 인지행동치료도 권한다.저자는 무엇보다 “~하면 어떡하지”라는 질문을 “그럼 이제 뭘 하면 되지?”라는 질문으로 바꿀 것을 주문한다. ‘걱정’ 대신 ‘현재’에 집중할 것을 권한다. 미래를 걱정하기 보다 지금 현재에 충실하고 집중하고 음미하라는 것이다. 그는 “현재에 감사하고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면서 더는 파국적 걱정의 노예로 살지 말라”고 조언한다.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2024-01-27 07:00 조진래 기자

[비바100] 좀 달라도… 우린 단일종이다

(사진출처=게티이미지)우리는 왜 ‘차이’를 ‘차별’ 할까? 이 물음에서 이 책은 시작한다.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함으로써 인종주의와 그에 따르는 혐오와 편견을 없애자고 호소한다. 나아가 ‘타자화’와 ‘비 인간화’를 극복할 합리적 대안으로, ‘함께 살려면 함께 가야 한다’고 촉구한다. “마음을 열고 나가 그들을 맞자”고 호소한다. 인디아더존스라는 제목은 짐작하듯이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서 따왔다. 다른 곳(Zones)이란 뜻도 되지만, 다른 공간에 뚝 떨어진 ‘존스(Jones)’를 상상케 한다.'인디아더존스(In The Other Zones)'|염운옥·조영태 외|사람과나무사이 ◇ 인종 그리고 인종차별염운옥 경희대 교수는 “인간은 모두 단일종 ‘호모 사피엔스’에 속한다”며 “따라서 인류를 인종으로 나누고 우열을 매겨 차별하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고 비판한다. 유네스코도 호모 사피엔스는 단일종이며 모든 인종은 평등하다고 했다. 염 교수는 “결국 우리는 이동하는 ‘호모 미그란스(Homo Migrance)’이자 호모 하브리두스(Homo Habridus), 즉 잡종인간”이라고 말한다.‘인종’이라는 개념은 유럽인들이 16세기 신 항로 개척기에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다른 인종으로 규정하면서 본격 부각되었다. 그러다 18세기에 스웨덴 생물학자 린네가 ‘호모 사피렌스’라는 이름과 함께 의도적으로 ‘위계’를 부여하면서 차이와 차별, 불공정과 불합리, 그리고 폭력과 학대가 인정되기 시작됐다. 그의 ‘백인 우월주의’는 극단적인 우생학자들의 출현으로 이어졌다.한국은 어떤가. 유엔이 ‘인종차별이 명백히 존재하는 나라’로 규정한 나라다. ‘다문화’라는 긍정적 표현이 편견과 조롱의 단어가 되었다. 이주 노동자들에게 지속해서 ‘느린 폭력’을 자행해 왔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염 교수는 “인종주의를 없애려면 우리의 인식, 우리 사회의 복합적·구조적 차별을 없애야 한다”면서 ‘나의 세계를 확장하는 용기’를 촉구한다.◇ 다양성의 시대의 생존법이주와 이민은 필연적으로 다양성을 만들어 낸다. 1990년에 세계 인구는 53억 명, 그 중 2.9%인 1억 5000만 명은 자신이 태어나지 않은 곳에서 살았다. 2020년에는 78억 명 인구 중 3.6%인 2억 8100만 명으로 불었다. 30여 년 동안 전 지구적으로 다양성이 그 만큼 커졌다는 의미다. 우리나라는 2021년 현재 해외 이주민이 198만 명으로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8% 정도다.한국의 최대 난제는 ‘인구 절벽’이다. 2020년부터 인구가 자연적으로 줄고 있다. 2023년부터 2033년까지 10년 동안 25~59세 생산가능인구가 327만 명이나 줄 것으로 관측된다. 조영태 서울대 교수는 “노동력이 줄면 내수시장 축소와 함께 잠재성장률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면서 “2030년쯤에는 우리 잠재성장률이 OECD 국가 중 최하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0.7을 위협받는 합계출산률로는 인구절벽을 막을 방법이 없다. 정년을 높이거나 이주민을 늘리는 방법이 있지만, 생산성 하락과 사회 여건 상 장기적인 대안으론 부족하다. 조 교수는 산업 구조 자체의 전면 개편을 촉구한다. 제조업 현장에 필요한 외국인 노동자로 인구절벽 문제를 해결하자는 틀에 박힌 구 시대적 논리에서 벗어나, 산업 구조 자체를 미래형으로 개조하자는 것이다.◇ 다양성과 공감, 그리고 행복장대익 가천대 석좌교수는 “인류는 과연 다양성을 키우는 방향으로 진화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서 “문명이야말로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 가운데 오직 인간 만이 만들어낸 놀라운 작품”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인류가 이러한 놀라운 집단을 이루고 살게 된 것은 인지적 공감, 보편적 윤리, 교육을 통한 공감을 통해 이른바 ‘공감의 원심력’을 키워온 덕분이라고 말한다.장 교수는 ‘다양성 지수’를 높일 수 있는 네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첫째, 공간 축에서 밀도를 높이는 것이다. 서울 수도권 이외 지역에 거점 지역을 정해, 보다 자족적인 도시로 만들자는 얘기다. 둘째, 시간 축에서 경쟁 밀도를 낮춘다. 고교 졸업 후 대학에 곧바로 가지 않고 취업을 하게 만드는 등 다양한 세상 경험으로 먼저 유도하자는 것이다.셋째, 역량 측면에서 밀도를 낮추자고 말한다. 대학입시나 직장 입사시험에 다양한 선발기준을 만들어 공정하게 평가하고 각자 능력을 인정받게 하자는 얘기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인종이 혼합되어 어우려져 사는 방향으로 인식을 바꾸도록 유도하자고 말한다. 어렸을 때부터 다인종 문화를 자연스럽게 경험케 하자는 것이다.◇ 미디어가 저해하는 다양성전통적인 미디어가 다양하고 이질적인 집단의 모습을 충분히 포괄적으로 그려내기는 어렵다. 영화에 얼마나 여성이 자주 노출되는 지를 바탕으로 성 평등 여부를 측정하는 ‘벡델 테스트’에 따르면 완전히 기대 밖이다. 오히려 소수 집단의 모습을 배제하거나 축소함으로써, 그 집단의 사회적 가치와 중요도가 ‘무시해도 좋을 만큼 미미하다’는 메시지를 던져 차별과 불평등을 키운다.2018년 제주도에 500명의 예맨 난민이 입국했을 때도 우리 미디어들은 ‘난민 쇼크’ 같은 자극적 제목으로 ‘난민 공포’를 부추겼다. 잠재적 테러리스트나 성 폭행범 같은 위험집단으로 몰았다. 민영 고려대 교수는 “미디어가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갈등의 원인을 제대로 짚어 합리적으로 해결되기 보다, 오히려 갈등을 과잉 재현해 피로감과 냉소를 유발한다”고 비판한다.민 교수는 특히 현대인들이 디지털 알고리즘에 지배당해 ‘필터 버블’이라는 울타리에 갇힐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며 우려했다. 미디어 이용자들도 이제 차이를 차별하는 미디어 메시지를 분별하고, 확증편향의 오류와 부작용을 성찰해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뉴스 미디어 역시 이분법에서 벗어나 다양한 의견을 매개하고 중재하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우리 사회의 인종주의와 낙인이수정 경기대 교수는 범죄심리학자답게 “다양성 수용의 문제가 자칫 ‘혐오 범죄’로 이어질까 우려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에 아직 반사회적 적대주의나 혐오행위를 제재할 수 있는 법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못하다고 비판한다. 혐오범죄방지법 등으로 일단 폭력 행위를 제재하고, 이후 차별금지법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염운옥 교수는 예맨 난민 사태를 언급하며, 이주 외국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사회적 시선부터 수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수정 교수도 이주 외국인 관련 사건이 순식간에 확대 재생산되며 ‘과잉 일반화’ 되는 점을 경계했다. 두 사람 모두 이주 외국인 범죄와 관련한 정확한 통계가 공개되고 효과적인 대책이 세워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해자 통계 뿐만아니라 피해자 통계도 함께 제공되어야 이 문제를 구조적이고 넓게 사안을 볼 수 있일 것이라고 말한다.염 교수는 우리가 외국인 노동자들을 단순히 ‘노동력’으로 취급해 온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리가 백인 외국인과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외국인을 같은 마음과 태도로 대하고 있는지 짚어볼 것을 촉구했다. 두 사람은 이제 이주민들과 손잡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어려워지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며 “이주민이나 그 자녀라도 한국 사회에서 내국인과 똑같은 교육을 받고 대한민국 구성원으로 상장할 수 있도록 우리 의식과 법, 제도를 하루 빨리 정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 생존의 필수조건 ‘다양성’장대익 교수는 “다양성도 진화하는 것이며, 학습해야 하며, 더 확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이미 다양성을 추구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강조했다. 조영태 교수도 “우리나라는 이동이 상대적으로 제한되었고 유교식 교육 시스템이 다양성 확산에 어느 정도 걸림돌로 작용한 측면이 있다”고 공감을 표했다. 장 교수는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감 지수’라며 “생존하려면 공감력을 키우는 것이 필수”라고 거듭 강조했다.조 교수는 생산 현장의 인력 부족 문제아 관련해 “외국인이 필요해 적극적으로 한국에 오게 했으면서도 정작 이주 외국인, 이주 노동자를 우리와 동등한 사람이 아닌 2등 국민으로 취급하며 차별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인구청이나 이민청 만드는 것 못지 않게 이민 관련 정책을 세심하게 손보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단지 제조업을 살리기 위한 수단 정도로 급하게 진행해선 안될 것이라는 얘기다.조 교수는 얼마 전 서울대가 내놓은 중장기 발전 계획 가운데 서울대 해외 분교 안을 높이 평가했다.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등에서 학생들을 잘 가르친 뒤, 대학원생으로 국내에 들어오게 하면 모두에게 이익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그는 “우리 Z세대나 알파 세대는 태생적으로 글로벌한데도 오늘날 교육현장에서는 그런 특성에 맞게 교육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장 교수도 “인간은 기본적으로 다양성을 싫어한다는 점부터 명확히 이해하고 배우는 일이 전제되어야 교육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2024-01-20 07:00 조진래 기자

[비바 2080] 100세 시대 신간… 강원국 <강원국의 인생공부>

이 책의 부제는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이다. 저자 강원국이 이 시대의 사표가 될 만한 15명을 직접 인터뷰해 그들이 전하는 삶의 철학과 원칙, 실패를 딛고 다시 도전해 일어선 용기의 메시지를 대신 전해 준다. ‘당신의 삶에서 배웁니다’라는 저자의 고백과 같은 메모에서 보듯이, 꽤 삶을 오래 산 사람들도 새겨 들을 만한 울림이 있다.◇ 유현준 ‘불안과 결핍을 딛고 만들어낸 소통의 공간’건축가 유현준을 있게 한 것은 아버지의 눈물이었다. 경제신문 기자였던 아버지가 내세울 것 없던 학벌 탓에 번번히 승진에서 누락되어 남몰래 눈물을 훔치는 것을 보고, 그는 이를 악물어야 했다. 아버지는 그가 판검사가 되길 기대했지만 수학이 싫었던 그는 어중간하게 건축학과를 지원했고 MIT와 하버드를 거쳐 세계적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의 건축 사무소에서 경력을 쌓았다.귀국 후 한 동안 일감이 없어 고생께나 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시작한 신문 연재를 계기로 2015년에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썼고 이른바 ‘대박’을 쳤다. 그는 “인생은 차선이 모여 최선이 되더라”고 말한다. 건축 설계만 고집하지 않고 세상과 타협하며 글을 쓴 덕분에 그는 ‘인문 건축가’라는 명성을 갖게 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말한다.유현준은 건축학을 ‘공간 연구를 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한다. 건축은 ‘관계’를 디자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들 사이를 좀 더 화목하게 만드는 공간 구조를 설계하고자 한다. 그는 “공통으로 머물 공간이 많아져야 소통이 이뤄지고 갈등이 완화된다”면서 벤치 하나만으로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1만 평짜리 하나 보다 가까이에 1000평짜리 공원 10곳을 만드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최재천 ‘젊은 날의 공허를 딛고 순수한 탐구열의 세계로’생태학자이자 동물행동학자인 최재천은 하버드에서 생물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최초의 한국인이다. 그런 그도 대학 본 고사에서 수학 문제를 거의 풀지 못한 수포자(수학포기자)였다. 어릴 때 꿈도 시인이나 소설가가였다. 어렵게 재수를 해 의예과를 지원했으나 2지망으로 동물학과에 붙었다. 처음에는 적응도 못하고 어려움을 겪었으나 우연히 하루살이 전문가인 조지 에드먼즈 교수의 현장 조교 역할을 맡아 따라다니다가 생물학에 눈을 뜨게 된다.공부도 않던 아들이 갑자기 유학을 가겠다고 하자, 여유가 없었던 아버지는 중도에 회사를 그만 두고 퇴직금을 받아 유학비와 등록금을 대 주었다. 이를 악물고 공부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버드에서 에드워드 윌슨 교수 밑에서 박사과정을 할 때, 남들이 하지 않는 분야를 연구하겠다며 민벌레 연구자가 된 인연으로 그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가 되었다. 2005년에는 윌슨 교수의 컨실리언스(consilience)를 통섭(通攝)이라고 번역해 출판하면서 큰 성공을 이루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길게 설계하고, 살다가 어려움이 생겨도 헤쳐나갈 수 있는 사람이 ‘통섭형 인재’”라고 말한다.◇ 최인아 ‘사랑하는 이에게 묻듯 자신에게 질문하는 사람’‘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는 카피로 유명한 최인아 전 제일기획 부사장. ‘유리천정’을 뚫고 삼성그룹 최초의 여성 부사장에 올랐던 그는 최고책임자 지위까지 오를 것이란 기대를 접고 느닷없이 은퇴를 선언한 후 두번 째 직장으로 ‘책방’을 선택했다. 그가 강남 한 복판에 세운 ‘최인아 책방’은 시작부터 달랐다. 일하는 사람을 위한 공간이 컨셉트였다. 애초부터 책만 팔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책을 중심으로 사람이 모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서점’이 아니라 ‘책방’이라고 이름 붙였다.그는 독자의 고민을 중심으로 책을 분류했다. 그리고 ‘생각의 힘’을 키우는 데 집중했다. 책을 읽은 독자들이 만나서 생각의 넓이와 깊이를 더할 수 있도록 공간을 제공했다. 그래서 슬로건을 ‘생각의 숲을 이루다’로 지었다. 회원제로 북클럽을 시작한 지 6년 만에 회원이 650명에 달했다. ‘책방 마님의 편지’를 통해, 어떤 책을 골랐고 어떤 점에서 읽어볼 만한 지를 알렸다. 저자들을 초청해 회원들을 위한 북토크 자리도 따로 제공했다. 그는 매사를 고민에서부터 출발하라고 얘기한다. 그러면서 “멘토를 꼭 주변에서 찾지만 말고, 책에서도 찾아보라”고 조언한다.◇ 박준영 ‘약자를 위한 재심을 내 운명과 같이’박준영은 국내 유일의 재심 전문 변호사다. 그에게 재심 변호를 부탁하러 오는 대부분은 사회적 약자다. 돈을 받지 않고 변론할 때가 많다. 본인 말대로 그는 ‘한번 만 더’ 인생을 살았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목포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했다가 군대 다녀온 것이 학력의 전부다. 늘 그를 믿고 지지해 준 어머니가 없었다면 일찌감치 꿈을 포기했을 수도 있었다.세 번의 도전 끝에 사법시험을 통과했고 사법연수원 턱도 가까스로 넘어섰다. 매달 카드 8개로 돌려막기 할 상황에서 공부가 될 리가 없었다. 학연도, 지연도 없던 그로선 건당 20만~30만 원의 ‘국선 변호인’이 돌파구였다. 그러다 ‘수원 10대 소녀 상해치사 사건’의 재심을 맡아 2013년에 범인으로 지목됐던 7명 전원의 무죄를 이끌어내면서 비로소 이름을 알렸다.그가 무죄를 받는 재심 사건은 10건이 채 안된다. 승소율 100%지만, 절박한 마음으로 그를 찾는 이들을 모두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유다. 그는 무죄를 선고 받기까지는 돈을 받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생계는 강연료로 채운다. 그는 모든 피의자에게도 진술거부권을 보장하자고 외친다. 약자를 배려하고 약자의 인권을 고민하면서 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박미옥 ‘형사계의 전설… 지금은 돈 안받는 책방 주인’박미옥은 국내 최초 강력계 여형사, 최초의 여성 강력계 반장이다. 일곱 남매 중 막내로 자유분방하게 자라온 덕에 경찰관 시험에도 도전할 수 있었다. 중도에 형사를 그만두고 스님이 될 꿈도 꾸었지만, ‘여자가 뭘 하겠어’ 하는 그릇된 생각을 바꿔 보겠다고 좌충우돌 하다 보니 33세에 강력계 반장을 역임하며 어느 새 ‘전설’이 되어 버렸다. 신창원이 여성들을 애인으로 삼아 도피행각을 벌이던 때에, 이를 단서로 잡아 그를 검거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그는 잘 나가던 직장에서 8년 일찍 명예퇴직을 했다. 경찰서장 자리가 보였으나, 자신의 삶과 시간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새로운 삶을 제주에서 보내기로 했다. 책 3000권 정도를 갖추고 책방을 열었다. 책방인데 책은 팔지 않는다. 돈을 받지도 않는다. 책을 읽다가 책 주인에게 자기 속내를 실컷 얘기하면 그만이다. 돈 안되는 책방이지만, 사람들을 만나 살아보자 하는 마음에 만든 공간이기에 최소한 10년은 더 해보고 또 다른 삶을 결정하겠다고 한다.◇ 노브레인 ‘무대를 불사르는 자유로운 영혼의 탈주자들’30년 가까이 흐트러짐 없이 함께 하는 밴드는 거의 없다. 노 브레인이 가능했던 것은 멤버들 특유의 ‘무소유’ 인식 덕분이었다. 법정스님이 말처럼 ‘내가 아무 것도 안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것도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1996년 밴드를 처음 결성한 후 극심한 경제난에 막노동을 포함해 온갖 허드렛일을 했지만, 음악을 할 수 있다면 그 조차도 좋은 경험이라 생각했다.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음악적 열정을 불살랐다. 소유에 대한 집착 없이 오로지 음악과 무대에만 집중했다.‘주류’에 들어가기 위해 억지로 노력하지 않았기에, 27년 동안 정체성 흔들림 없이 밴드가 유지될 수 있었다. 이들은 저작권부터 개인 활동 수입까지 모두 똑같이 나눴다. 20년 넘게 최근까지 그렇게 지냈다. 오히려 이들은 금전적인 문제 보다는 무대 자리 싸움이 더 큰 문제였다. 네 명 모두 곡과 가사를 쓰고 연주를 하니, 서로의 역할을 유연하고 자유롭게 만들 수 밖에 없었다. 보컬과 드럼이 각자 역할을 바꿔 공연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룹 이름 ‘노 브레인(No Brain)’은 그냥 뇌가 없는 혼수상태로 음악을 듣고 미친 듯이 놀아보자는 뜻이라고 한다.◇ 나태주 ‘살기 위해 썼고, 살아남기 위해 쓴다’‘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국민 애송시가 되어버린 이 짧은 시 덕분에 평범한 시골 초등학교 교사 였던 나태주는 ‘풀꽃 시인’이라는 애칭과 함께 ‘국민 시인’이 되었다. 그는 “시는 내가 쓰는 게 아니라, 시가 나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시인은 시가 잘 나오도록 잘 도와주는 사람이라며 “시는 ‘쓰다’,‘짓다’가 아니라 ‘낳는다’라고 표현해야 한다”고 말한다. 시 자체에 존경심을 넘어 어떤 경외감을 갖다는 느낌을 준다나태주는 교직생활 40년이 넘도록 늘 동심을 유지해 왔다. 두 차례 큰 깨달음 덕분이었다. 한 번은 장학사 시절에 어느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떠들고 뛰어 노는 것을 나무라자, ‘왜요. 저런 게 애들인데요’라고 말하던 교감 선생님에게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자신의 귀가 고장났다며, 애들이 뛰어 노는 소리가 즐겁게 들리지 않던 자신을 다잡았다고 한다. 정년을 6개월 앞둔 2007년에는 췌장염이라는 죽을 병을 앓다 간신히 살아났다. 이후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고, ‘나’보다 ‘네’가 더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2024-01-16 07:56 조진래 기자

[비바100] 인간사회 명운, 인구에 달렸다

(사진출처=게티이미지)고령화와 인구 폭발 등으로 인해 빚어지는 수 많은 현상들을 다각적이고 분석적으로 파헤친 책이다. 인구 구조 변화에 따른 대전환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 놀랍다. 인구 역학과 국제 정세의 상관관계 연구에 몰두해 온 저자는 출생과 죽음, 이주라는 3가지 키워드를 놓고 ‘지구 80억 인구 시대’에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제시해 준다. 책 곳곳에 한국의 사례가 언급되는 것을 보면서, 대한민국이 처한 심각한 인구통계학적 상황을 곱씹어보게 된다.80억 인류, 가보지 않은 미래|제니퍼 D. 스쿠바|흐름출판◇ 왜 지금 인구학인가세계인구가 80억 명을 넘어섰다. 20세기 100년 만에 16억 명에서 61억 명으로 급증했다. 21세기 들어선 부자나라와 가난한 나라 차이가 극명한 ‘차별적 인구의 시대’가 도래했다. 최빈(最貧)개도국에선 높은 영아 사망률에도 1분에 240명의 아이가 태어난다. 선진국에선 25명에 불과하다. 1950년에 47세 미만이던 전 세계 기대수명은 이제 남성이 70.8세, 여성은 75.6세에 이른다.유럽에선 이민자들 덕분에 인구가 순증 한다. 전 세계 난민은 8000만 명 정도다. 대도시로의 이동도 확연하다. 현재 도시 인구는 55%, 북아메리카는 82%에 달한다. 1000만 명 이상 메가시티가 40곳에 육박하고, 2000만 명 이상 메가시티도 증가 추세다. ‘경제성장 없는 도시화’로 지구가 ‘빈민가 행성’이 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세계 인구 증가의 98%는 개도국에서 일어나겠지만, 문제는 이들이 그만한 인구를 뒷받침할 능력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출생-사망-이주, 세계를 이해하는 키워드3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인구가 증가 중인 10개국은 니제르, 앙골라, 말리, 우간다, 콩고 등 모두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국가들이다. 이들은 20~30년 내에 엄청난 청년 집단과 대면하게 될테지만, 민주국가가 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중위연령이 29.5세까지 하락한 뒤 민주주의 국가가 될 가능성은 50% 정도, 15세까지 떨어지면 그 가능성은 8%까지 떨어진다는 연구보고가 있다.전 세계적으로 1960년대 10%에 불과하던 피임률이 2000년에는 55%까지 급증했다. 이란은 그렇게 강제적으로 20년 만에 평균 출산율을 5.5에서 2.0으로 떨어뜨렸다. 가임기 여성 피임률은 선진국에서 60%가 넘지만 가난한 나라에선 15%에 불과하다. 비정상적인 출생 성비는 출산율 감소와 여아 혐오가 낳은 결과다. 중국은 한 때 117.9까지 기록했었다. 저자는 “이런 남성 초과 성비는 폭력과 인신매매, 매춘, 심지어는 내전까지 촉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고령화는 재앙인가대략 세계 인구의 13~14%인 10억 명 이상이 60세 이상이다. 이 연령 집단은 매년 3%씩 증가한다. 선진국의 중위연령은 2035년이면 45세에 이른다. 여성들이 임신을 미루며 나타나는 저출산이 큰 이유다. 한국 여성의 첫 임신 나이는 평균 31세로 선진국 중 가장 높다. 저자는 “출산율을 높이려면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복합적인 압박을 제거해 주어야 한다” 말한다.최근에는 ‘미혼 출산’이 주목된다. OECD 국가의 미혼 출산 비율은 1970년 7.2%에서 2016년에는 40% 가까이로 높아졌다. 혼외출산을 터부시하는 일본과 한국은 2~3%에 불과하다. 미국이 1970년대 10%에서 지금은 40%에 이르는 등 전 세계적으로 혼외출산이 증가 추세다. 프랑스에서는 무려 60%에 이른다.저자는 고령화에 따른 경제적 충격을 완화하는 네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이민자 유입을 늘리거나, 은퇴 연령을 높이거나, 사회보장 혜택을 줄이거나, 더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다. 저자는 “노인들이 직장 생활을 연장하고 가정친화적 정책으로 여성들이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다면 경제활동참가율이 바뀔 수 있다”고 강조한다. 국가에서 노동 정년이 더 길어지고 자원봉사나 손주 돌봄 같은 일이 노인들에게 주어진다면 고령화 충격은 완화될 것이라고 말한다.◇ 죽음은 불평등하다질병과 죽음에 대한 통제력은 인류의 큰 힘 가운데 하나다. 2016년 기준으로 저소득 국가와 고소득 국가 간 기대수명의 격차는 18.1년으로 매우 크다. 사람이 얼마나 오래 안 아프고 건강하게 살다 죽을 수 있을지 보여주는 수치가 ‘건강보정기대수명(HALE)’인데, 2016년에 기대수명과 이 수치 간 차이가 여성 9.5년, 남성 7.8년이었다. 이 역시 선진국과 개도국 간 차이가 크다.저자는 “건강 지표를 보면 그 사회를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국민 건강이 열악해지면, 가계 차원에서 건강관리를 위한 비용이 늘어나고 결근 등으로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다. 국가 경제도 흔들린다. 건강과 사망률은 이주민, 그리고 환경 문제와도 교차한다. 살던 곳에서 쫓겨난 인구집단은 특히 질병 발생에 취약하다. 기대수명이 감소하거나 콜레라 같은 전염병 발생률이 갑자기 늘어난다면, 보건의료 기반을 다지는데 얼마나 투자했는지 되돌아 봐야 할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민, 받아들일 것인가이주는 출산, 사망과 함께 인구 변화의 중요한 요인이다. 하지만 가장 예측이 어렵다. 세계 경제 성장과 함께 많은 곳에서 기회가 창출된 덕분에 1949년 이후로 이주가 크게 늘기 시작했다. 전 세계 이민자의 3분의 2가 고소득 국가들로 옮겨갔다. 저소득 국가 이주자는 4%에 불과했다. 필리핀 같은 일부 국가에서는 이민자들이 보내준 송금이 국가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할 정도였다.원해서 이민을 가는 것 만은 아니다. 난민과 망명신청자, 실향민도 이민의 한 형태다. 인신매매 피해자의 절반이 성적 착취 노동자로 팔려가거나 강제 결혼당한다. 2018년의 인신매매 건수만도 4만 9000건이다. 분쟁과 폭력으로 인한 ‘국내’ 실향민도 2020년에만 5500만 명이었다. 전 세계의 1%가 분쟁과 박해로 고향을 떠나고 있다. 전 세계 난민의 3분의 2가 시리아와 베네수엘라, 아프가니스탄, 남수단, 미얀마 등 다섯 나라에서 나온다.저자는 ‘인간 우선의 이민 정책’을 강조한다. 캐나다나 미국, 영국, 호주, 독일 등이 모두 ‘기술 노동자’만을 받아들여 노동력 부족을 해소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이슬람 이민자들에까지 문호를 열 것을 촉구한다. 일본과 한국에도 보다 개방적일 것을 권고한다. 193개 유엔회원국이 서명한 ‘안전하고 질서 있는 정상적 이주를 위한 국제협약’에도 강제 구속력을 부여하자고 촉구한다.◇ 예정된 미래, 그러나 열린 결말저자는 “인구통계학적으로 ‘절호의 기회’는 15세 미만이 전체 인구의 30% 미만이고 65세 이상이 15% 미만일 때 시작된다”고 말한다. 이 때 중위인력은 26~40세 정도다. 이런 연령 구조에 따른 이익을 ‘인구배당효과’라고 부른다.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이 한 때 연간 7%에 가까운 성장률을 올릴 수 있었던 것도 이를 적절하게 활용한 덕분이었다. 반면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같은 여건에서 인적자본 투자를 않고 유리한 연령구조를 경제성장에 활용하지 못했다. 저자는 “기회는 준비된 자의 몫”이라고 말한다. 인구배당효과는 저절로 나타나지 않으며, 적극적인 초기 투자를 통해 확실한 기반을 다져 놓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급성장하는 아프리카 나라들 다수가 ‘일자리 없는 성장’을 하고 있으며, 고용 시장도 이들 청년층을 흡수하지 못해 문제가 더 심각해 질 것이라고 지적한다. 저자는 결국 “준비되지 않은 나라들은 인구배당효과가 가져온 그 기회를 활용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인구통계의 6가지 주의사항저자는 세계 인구 통계자료를 다룰 때 꼭 명심해야 할 6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인적자본이 곧 국가경쟁력임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앞으로 경제개발 수준이 높아지고 인구가 고령화하며 노동 수요가 증가하면, 고소득 국가들은 해외 이주자를 대량으로 끌어들이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셋째는 세계의 도시화다. 그는 “2050년까지 전 세계 인구의 70%가 도시에서 살게 될 것”이라며 도시가 모든 혁신과 자본, 인재, 투자를 끌어들이지만 그곳은 ‘승자독식의 세상’이라고 경고한다. 넷째, 고령층에 대한 재정지원과 조기 퇴직을 약속한 나라들은 결국 기존의 제도를 바꾸지 않을 경우 경제위기에 빠지고 출산율도 떨어질 것이라는 점이다.다섯째로 그는 “정책은 우리가 원하는 세계를 만들 수 없다”며 인구배당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성장의 기초를 놓을 정책들을 미리 마련해야 한다는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인구 격차가 국가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는 ‘중년층’이 많은 나라들이 결국 높은 경제성장과 평화의 인구배당 효과를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그렇게 세계는 불평등이 확대되고 깊어질 것이므로, 우리는 상호의존적이고 서로 연결된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2024-01-13 07:00 조진래 기자

[브릿지 신간] 구지은 <최초는 두렵지 않다>

이 책의 부제는 ‘구지은, 아버지 구자학을 기록하라’이다. 막내 딸이 아버지 고 구자학 전 아워홈 회장의 일생과 경영 철학 등을 정성껏 담아 헌정한 책이다. 저자 스스로 붙인 서문의 제목이 ‘창업가 구자학론’이다. LG가 일원임에도 전문경영인처럼 평생을 ‘최초’에 헌신했던 고인의 삶을 되돌아보고 그가 남긴 자취를 따라가 보는 책이다. ◇ 인간 구자학구 회장은 경남 지수면에서 LG 창업주 구인회 회장의 6남 4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해군사관학교를 나와 미국 오하이오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귀국 후 당시 삼성물산 소유였던 한일은행 행원부터 시작해 동양TV 이사, 금성사 상무, 금성통신 부사장을 거쳤다. 그리고 광업제련 대표를 시작으로 호텔신라 초대사장, 중앙개발(삼성물산)과 럭키(LG화학), 금성사(LG전자), 금성일렉트로닉(LG반도체), LG건설(GS건설)까지 30년 동안 CEO로 재직했다.미디어와 호텔, 레저, 화학, 반도체, 전자, 건설 등 모든 영역을 맡아 본 ‘전방위 CEO’였다. 신라호텔을 짓고 자연농원을 만들었으며, 화장품을 처음 해외에 수출하고 산유국에 석유화학 기술을 팔았다. 유럽에 TV 공장을 짓고 반도체 사업도 개척했다. 모두가 ‘처음’이었다. 저자는 “고인은 화학과 전자, 반도체, 건설까지 LG그룹의 핵심 기반을 다진 전설적인 경영자였다”면서 “한국 경제의 양대 산맥인 LG와 삼성을 오가며 새로운 ‘업’을 창출해낸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놀랍게도 구 회장은 70세 나이에 LG유통의 가장 작은 아워홈 사업부를 분사 독립해 설립했다. 그리고 작은 급식 사업부에 불과했던 회사를 조 단위 매출의 대형 종합식품기업으로 키워냈다. 매년 6월 일본에서 열리는 푸마 식품공업박람회에 90세가 다 될 때까지 참석할 정도로 열정을 보였다. ◇ 아버지 구자학생전에 구 회장은 ‘절약’을 늘 강조했다고 한다. 옛날 달력을 손바닥 크기로 잘라 뒷 면을 메모지로 쓰거나 보고서 이면지를 4분의 1 크기로 잘라 메모지로 쓰곤 했다. 구 씨 가문의 유교적 전통대로 엄격한 가풍에 충실했다. 특히 자식들을 직원들보다 더 엄격하게 대했다고 한다. 남 탓 하지 말고 책임감을 가지고 스스로 이겨내라고 가르쳤다.구 회장이 삼성가의 이숙희 여사와 결혼하게 된 것은 이병철 삼성 창업주와 구인회 LG 창업주의 각별한 인연 덕분이었다. 이 회장이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아들과 내가 가장 좋아하는 딸을 맺어주자”고 했던 언약을 지킨 것이다. 지수보통학교에서 만났던 지기가 사돈까지 된 것이다.구자학 회장은 미국 유학 시절부터 김치 담그는 유학생으로 이름을 날렸다. 맛이 너무 좋아 유학생 사회에서 인기가 대단했다고 한다. 종종 돼지갈비찜을 만들어 모임에 나가, 현지인들에게도 크게 어필했다고 했다. 저자는 “오래 전부터 아버지는 이미 아워홈을 업으로 할 운명이었던 것 같다”고 적었다.◇ 비즈니스맨 구자학삼성 이병철 회장은 사위의 인간 됨됨이와 사업적 능력을 많이 아꼈다고 한다. 새로 시작하는 일을 자주 그에게 맡겼다. 1964년에는 라디오서울과 동양TV의 이사를 맡겼고, 1973년에는 호텔사업을 시작하면서 만 42세 나이에 그를 호텔신라 사장직에 앉혔다. 이듬해에는 중앙개발 사장까지 겸직케 했다. 1976년에는 자연농원(현 에버랜드)를 만드는 일에도 참여시켰다.그가 고향인 LG로 돌아온 것은 1980년이었다. 그가 럭키의 대표이사에 취임했을 때, 안팎에서 ‘파격’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럭키는 그룹의 모체이자 핵심인 회사였기에, 삼성에서 오래 근무한 그에게 대표직을 내주었다는 것은 그를 인정하는 표시이자 더 큰 시험의 장이었다. 하지만 세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구 회장은 지금 LG화학의 ‘전설’이 되었다.1981년에 나온 국민 치약 ‘페리오’와 1984년 LG의 1호 화장품으로 선보인 ‘드봉’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이름도 그가 직접 지었다고 한다. 화장품 시장 진출에는 안팎으로 반대가 엄청났지만 그는 “치약 하나로는 기업도 클 수 없고, 나라도 클 수 없다”며 화장품이 피부보호제이자 건강용품이라는 논리로 밀어붙였다. 국내 화장품 시장을 양분 중인 LG생활건강의 시작이었다. 저자는 “아버지는 ‘기업은 상품이 아니라 산업을 만드는 것’이라고 늘 강조하셨다”고 회고했다.구 회장의 핵심 경영 철학은 ‘스케일 업’이었다. 그 첫 작품이 럭키였다. 그는 생필품만을 만들던 이 회사를 석유화학과 정밀화학, 유전공학까지 망라하는 대형 종합화학기업으로 키워냈다. 사표를 써놓고 투자제안을 할 정도로 모든 것을 스케일 업에 쏟아 부었다. 1986년 금성사 사장으로 취임한 뒤 창원 백색가전 공장을 2배로 키웠을 때도 똑같았다.구 회장은 소비자보다 시장을 먼저 찾는 사람이었다. 시장이 보이지 않으면 스스로 만들어 냈다. 당시로선 무모하다던 해외진출도 겁내지 않았다. 럭키 사장이던 1984년 사우디아라비아에 처음 진출했고, 유전공학이란 단어조차 생소했던 시절에 미국에 럭키바이오텍연구소를 만들어 LG바이오 사업의 시작을 알렸다. 1987년에는 국내 처음으로 서독에 컬러TV·VTR공장을 지었고, 1989년에는 베트남 공산화 후 첫 현지 진출을 이뤄냈다.◇ ‘맛 오너’ 구자학고희(古稀)를 맞은 구 회장은 LG유통의 식품사업부를 분리 독립해 아워홈을 설립했다. LG에서는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다. 오로지 혼자 힘으로 시작했다. 그룹 주력 사업의 기초를 일군 주역이었음에도 자산의 몫 하나 요구하지 않았다. 그룹의 오너 일가가 7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오너’가 된 것이다. 구 회장에게 아워홈은 ‘덕업일치’였다. 자신이 사랑 하는 ‘음식’으로 일종의 덕업일치 창업을 한 것이다. 분사 당시 2000억 원 규모에 불과했던 아워홈은 9년 만인 2009년에 매출 1조 원을 찍었다.그는 소문난 미식가였다. 자타가 공인하는 ‘맛의 달인’이었다. 돼지고기를 어떻게 삶았고 어떻게 숙성시켰는지, 생산은 왜 그렇게 말렸는지 등을 끊임없이 묻고 개선하려 했다. 토요일 점심이면 혼자 운전해 맛집 탐방을 다녔다. 저렴하고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만드는 일이야말로 ‘진짜’라고 여겼다. 싸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더 많은 사람들이 먹을 수 있게 하는 것, 이것이 아워홈이 존재하는 이유이자 철학이었다고 저자는 전한다.구 회장은 ‘소스의 시대’가 올 것임을 일찌감치 예견했다. 한식 메뉴는 아무리 정해진 레시피가 있어도 만드는 사람에 따라 맛이 들쭉날쭉인 때가 많은데, 그는 그 원인이 소스에 있다고 간파했다. 균일한 맛을 내는 한식 소스를 공장에서 대량 생산한다는 아이디어는 ‘혁신’이었다. 맛의 표준화, 조리 공정의 무인화 및 자동화는 급식을 ‘산업’으로 만든 ‘획기적 혁신’이었다. 그의 혀 끝에서 탄생한 대표 메뉴가 수제 햄 ‘샤퀴테리’와 묵은지·갈치김치·청잎김치, 아삭섞박지, 동치미물냉면, 진주식 속풀이국이다.구 회장은 일찌감치 ‘물류’의 개념을 도입했다. 물류 혁신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기도 전인 2000년대 초반에 직접 혼자 전국을 돌며 발 품을 팔아 14개 물류센터와 9개 제조공장, 4개 식재가공센터를 갖춘 명실상부한 종합식품기업을 일궈 냈다. 지금 아워홈은 업계에서 ‘물류사관학교’로 통한다. ◇ 구 회장의 경영 철학저자는 ‘학회장의 경영 플레이북’이라는 이름으로 구 회장의 평소 경영철학 19가지를 소개했다. 늘 탐구하고 배우려 했다는 의미에서 ‘학회장’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다.첫째, 남이 하지 않는 것, 못하는 것을 한다. 구 회장은 평생 이 만트라(주문)를 자신과 조직에 되뇌고 실천했다. 모든 것을 맨 땅에서 일궈야 했던 산업화 1세대로서 그의 ‘창의’에 대한 집념은 곧 생존을 위한 길이었다. 둘째, 최초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는 ‘최초’가 되는 두려움을 기꺼이 감당했다. 현상을 유지하려는 직원들은 엄하게 질책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없는 임원은 임원 자격이 없다고 했다.셋째, 필요하다면 주저 없이 크게 투자한다. 직원들이 재정 걱정을 하면 “돈 걱정은 하지 마라. 회사에 이익이 되고 새로운 것을 개발하기 위해 투자가 필요한 곳이라면 주저 없이 투자하라. 이익을 내서 갚으면 된다”며 독려했다. 넷째, 기업은 상품보다 산업을 만들어야 한다. 그는 언제나 시선을 최소 10년에서 20년 후에 두고 움직였다. 다섯째, 반대는 이기는 것이 아니다, 더하는 것이다. 그는 반대하는 사람에게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불러다 이해시키고 보완할 점을 경청했다.여섯째, 가봤냐, 써봤냐, 해봤냐, 먹어봤냐. 그의 지독한 ‘현장주의’를 상징하는 말이다. 그는 직접 보고 파악한 후 바로 결정을 내리곤 했다. 일곱째,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최고전문가다. 임원의 답이 충분치 않으면 그는 곧바로 실무자와 대화하거나 실무자를 참석시킬 것을 당부했다. 여덟째, 연구소부터 크게 만든다. 국내 최초로 유전공학 연구조직과 시업을 만든 것이 구 회장이었다. 2000년에 아워홈을 창업했을 때도 식품연구원부터 만들었다.아홉째, 사람 먹고 사는 일이 중하다. 그의 경영철학 기저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말 잘 사는 것, 건강하게 잘 먹었으면 하는 마음이 깔려 있었다. 마지막으로, 윗사람이 더 알아야 한다. 그는 맡기면 믿고 기다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직원들이 모른다고 해도 질책하지 않고 믿고 맡겼다. 그러면 언젠가는 성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기다려주었다.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2024-01-10 07:44 조진래 기자

[비바100] 사나우면서도 애처로운 얼굴들, 그 속에 담긴 내밀하고도 복잡한 오늘! 조지 오웰 ‘카탈로니아 찬가’

조지 오웰(가운데 가장 키가 큰 사람)의 스페인 내전 체험을 담은 ‘카탈로니아 찬가’가 김승욱 번역가 버전으로 출간됐다(사진제공=문예출판사)보수와 진보, 남과 여, 세대, 이념 등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진다. 야당 대표가 피습을 당하고 이를 둘러싼 음모론과 가짜뉴스가 판을 친다. 애초의 명분이나 변혁 의지는 사라지고 그저 저마다의 편만 존재하는 시대.자본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무정부주의, 파시즘 등이 어지러이 교차하던 스페인 내전(Guerra Civil Espanola, 에스파냐 공민 전쟁)처럼 저마다가 자신의 말만이 옳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누구 하나 들어주는 이들 없이 그저 자신들의 말만을 쏟아낸다.에릭 아서 블레어 (Eric Arthur Blair), 필명 조지 오웰(George Orwell)이 실제 스페인 내전에 참가해 겪었던 일들을 적은 ‘카탈로니아 찬가’(Homage to Catalonia)를 읽고 있자면 어쩔 수 없이 ‘지금’을 떠올리게 된다.‘중국의 붉은 별’ ‘세계를 뒤흔든 열흘’과 더불어 르포 문학의 3개 걸작으로 평가받는 ‘카탈로니아 찬가’가 ‘듄’ ‘19호실로 간다’ 등의 번역가 김승욱 버전으로 출간됐다. 더불어 작품의 의의와 한계를 아우르는 역사학자 임지현 교수의 해제 그리고 스페인 내전을 다룬 조지 오웰의 에세이와 시도 추가됐다.카탈로니아 찬가|조지 오웰 지음|김승욱 번역(사진제공=문예출판사)숨을 죽인 채 프롤레타리아(Proletarier)로 가장한 부르주아(Bourgeois)들, 손님들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는 노동자들, 극존칭들이 사라진 대화, 모든 계급이 사회적으로 완전히 동등해야한다는 주장, 자본주의의 톱니바퀴가 아닌 사람답게 행동하려 애쓰는 사람들, 추레한 군복과 전쟁 속에서도 담배 한 개비를 청하면 한갑을 굳이 통째로 안기며 발휘되는 특유의 솔직함과 넉넉한 인심….1936년 2월 총선거에서 마누엘 아사냐 디아스(Manuel Azana Diaz)가 이끄는 좌파 인민전선 내각이 성립되자 이를 반대하는 프란시스코 프랑코(Francisco Franco)를 중심으로 한 군부가 반란을 일으키면서 스페인 내전이 발발했다.이 내전을 온몸으로 겪은 뜨거운 참여자이자 그 내부의 병폐와 또 다른 계급의 존재를 목도한 냉철한 관찰자이기도 했던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 속 전쟁은 이랬다.영국인이지만 영국령의 인도에서 태어난 조지 오웰은 그 탄생부터 뜨거운 격정과 냉소를 동시에 장착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영국 남부의 예비학교 세인트 시프리언스(Saint Cyprian‘s)와 명문사립중등학교 이튼 칼리지(Eton College)에서 상류계급과의 심한 차별을 겪었다.대학진학 대신 선택한 미얀마에서의 경찰관 생활에서 영국 제국주의의 식민지악을 경험했는가 하면 파리 빈민가와 런던 부랑자들 사이에서 극빈생활을 체험하며 ‘파리와 런던의 바닥생활’을 집필하기도 했다.가진 자와 못가진 자, 식민국민과 제국주의 일원 등의 경계를 오가며 때론 격정적이고 때론 지독히도 냉철한 그의 정체성은 스페인 내전에 직접 참가해 만난 사람들, 결국 패배를 부른 내부갈등 등을 체험하며 적어내려간 ‘카탈로니아 찬가’에도 고스란히 반영된다.스페인 내전을 그 누구보다 격정적으로, 때론 유머러스하고 유쾌하게 하지만 지독히도 냉철한 관찰자의 시선으로 ‘카탈로니아 찬가’에 담았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자본주의, 자유민주주의 등 그 어떤 신념이든 절망이 되고 마는 과정을 담은 ‘카탈로니아 찬가’는 정치권력을 부패하게 하는 근본적 위험과 모순, 족쇄가 돼버린 왜곡된 전체주의를 동물에 빗댄 조지 오웰의 걸작 ‘동물농장’(Animal Farm)의 근간이었다.솔직함과 사나움의 공존. 사나우면서도 애처로운 얼굴들. 그가 스페인 내전 최전선에서 느꼈을 내밀하고도 복잡한 심정들은 어쩌면 대한민국, 더 나아가 2024년의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것일지도 모른다.석달째 이어지고 있는 가자지구 전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진짜 전쟁 뿐 아니다. 이념, 종교, 남녀, 세대, 갑을, 부자와 빈자 등 갈라치기의 횡행, 당파갈등, 만연한 혐오와 폭력, 핵심이 돼야할 명분과 정의를 잃어버린 채 자신만의 이득만을 앞세운 이해관계의 충돌….수없이 반복돼온 그리고 앞으로도 반복될 역사적 비극과 저마다의 정치 상황은 여전히 전쟁을 방불케 한다. 이 보다 더한 비극은 그 전쟁을 방불케 하는 시대가 반복되면서도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조지 오웰이 가졌던 격정과 그 뜨거운 만큼의 냉철함, 저 마다의 주관과 객관의 균형일지도 모른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1-08 18:00 허미선 기자

[비바 2080] 100세 시대 신간... 윤동한 <우보천리 동행만리>

창업 34년 만에 ‘매출 3조 신화’를 이룬 윤동한 한국콜마 창업주의 인문경영서다. 2016년에 출간한 인문학이 경영 안으로 들어왔다의 개정 증보판이다. 윤 회장은 이 책에서 ‘왜 인문학을 공부하느냐’는 물음에 “인생과 경영 모두 ‘얼마나 빨리 이루어 냈느냐’ 보다는 ‘얼마나 많이 담아냈느냐’에 달렸다”는 말로 대신한다. 이어 “진정으로 빨리 가는 삶은 오래가는 삶”이라고 강조한다. 오래 가면 함께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뿐만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뿐 아니라 임직원에 까지 독서를 통해 인문학적 소양을 넓히도록 독려한다. 2006년부터 임직원들과 함께 읽은 책을 쌓으면 백두산 높이(2744m)의 1.4배에 가깝다고 한다.◇ 오직 실력과 성실로 일군 ‘윤동한 신화’윤동한 회장은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그토록 원했던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지방대 출신이라는 한계도 그의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가난과 한계에 굴하지 않고 인생의 큰 그림을 그리며 앞으로 뚜벅뚜벅 제 길을 걸었다.윤 회장은 특히 직장 생활 초기부터 ‘창업’을 결심하고 모든 에너지를 그 쪽으로 집중했다. 그리고 오로지 실력과 끈기, 성실함으로 진검 승부를 펼쳐 창업 34년 만에 3조 원 매출이라는 ‘윤동한 신화’를 일궈냈다.비록 직원 3명으로 볼품 없이 시작했지만, 그는 누구도 생각 못했던 ODM(제조자개발생산) 비즈니스 모델을 화장품업계 최초로 도입해 혁신을 이뤄냈다. ODM은 제조업체가 제품의 개발부터 생산까지 책임지는 생산방식이다.단순한 하청 생산이 아니라 자체 기술로 자체 제품 생산체계를 갖춰야 가능한 방식이었다. 이것이 주효하면서 한국콜마는 이제는 누구나 함께 파트너로 삼고 싶어하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화장품·제약 회사로 우뚝 섰다.이 책은 그의 험난했지만, 충분히 신명 났던 자신의 창업 과정을 윤 회장 특유의 담담함으로 그려냈다. 더불어 경영 현장에서 직원들과 부대끼며 터득한 실전적 지혜와 리더십의 핵심 철학을 모두어 담았다.◇ ‘우보천리’의 경영 철학2015년에 매출 1조 원을 달성한 한국콜마는 중견기업으로서는 드물게 대기업 계열인 CJ헬스케어(현 HK이노엔)를 2018년에 인수했다. 그렇게 국내 10대 제약 기업으로 발돋움함으로써 화장품 기업이라는 외형에서 벗어났다.이 과정에서 중견기업과 대기업 계열사 간 화학적 융합을 이뤄내 경영인으로서도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한국콜마는 현재 미국콜마로부터 ‘콜마(KOLMAR)’ 글로벌 상표권을 인수해 전 세계 콜마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우뚝 섰다.윤동한 회장은 자신의 이런 놀라운 성공을 뒷받침한 경영철학을 딱 한마디로 ‘우보천리의 힘’이라고 정의했다. ‘소 걸음으로 천 리를 간다’는 뜻이다. 한 걸음 한 걸음 소처럼 우직하게, 하지만 묵묵히 정진하면서 100년 기업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야 말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영의 큰 원칙이라는 것이다. 한국콜마의 34년이 딱 그러했다.윤 회장은 ‘우보천리’가 결국 ‘동행만리’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고 보았다. ‘함께 가야 멀리 간다’는 지속경영의 철학이 접목됨으로서 결국 ‘좋은 사람이 오래 머무는 기업’이 탄생할 수 있다고 믿었다.실제 그의 경영 인생이 우보천리 동행만리였다. 그는 자신에게 닥치는 수 많은 난관과 장벽을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게 해 준 에너지의 원천’이었다고 말한다. 이런 긍정적인 마인드가 없었다면 한국콜마도 없었다.◇ 윤동한 회장이 말하는 ‘경영의 4가지 핵심’윤 회장은 이 책에서 그의 핵심 경영철학 4가지를 소개한다. 가치경영, 사람경영, 독서경영, 그리고 역사경영이다.‘가치 경영’은 흔들리지 않는 삶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처한 극한의 환경을 ‘타고난 운명’이라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신의 ‘흙수저’ 삶을 절대 원망하거나 남 탓을 하지 않았다. 받아들이고 극복했다. 오히려 삶의 에너지로 승화했다. 그는 “가난은 선택할 수 없었지만, 상황은 선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무리 나쁜 상황이라도 자발적으로 수용한다면 얼마든지 상황이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다고 강조한다.다음은 사람경영이다. 그는 특히 중소기업 CEO 들에게 이 분분을 각별히 강조한다. 자신이 실천했던 것처럼 ‘공동배움’을 적극 권장한다. 교육 인프라가 부족한 중소·중견기업 임직원들에게 “한국콜마의 ‘우보천리 상생드림 아카데미’를 벤치마킹해 인재육성 을 위한 교육의 장을 제공하라”고 권유한다.독서 경영에서는 인문학의 가치를 남달리 강조한다. 여기서 윤 회장은 다산 정약용의 가르침을 소개한다. ‘손해가 나더라도 옳은 길을 선택하면 반드시 이익으로 돌아온다’는 다산의 가르침을 믿고, 모든 임직원들이 독서를 통해 자기계발 뿐만 아니라 혁신과 변화를 주도하는 성장동력을 갖추도록 하자고 촉구한다.마지막은 역사 경영이다. 그는 특히 이순신 장군의 탁월한 리더십을 흠모했다. 나라로부터 아무 지원도 받지 못했음에도 ‘자력갱생의 정신’으로 군을 일으켜 세우고,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 하나됨을 이룬 그의 리더십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회장은 이에 서울여해재단을 통해 ‘이순신학교’를 건립하고 꾸준히 ‘이순신 전파 운동’을 이어가고 있다.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2024-01-08 08:39 조진래 기자

[비바100] "아! 잔혹한 인간" 동물들의 SOS

(사진출처=게티이미지)프랑스의 유명 생태운동가인 저자가 동물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오해와 진실’을 바로잡기 위해 쓴 책이다. 저자는 동물에 대한 우리의 편견이나 우월감을 바로잡고, 그들과 평화롭게 공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생물 다양성의 붕괴와 기후 위기 앞에서 동물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행위의 심각성을 깨닫는 것은 ‘윤리’의 문제이자 우리 모두의 ‘생존’의 문제라고 말한다.토끼는 당근을 먹지 않는다|위고 클레망|구름서재◇ 잘못 알고 있는 지식과 정보들우리는 ‘토끼’ 하면 ‘당근’을 떠올린다. 하지만 놀랍게도 토끼는 풀을 먹고 살지, 당근을 먹지 않는다. 누군가 토끼가 땅속에서 튀어나온 당근의 푸른 잎을 먹는 걸 보고 생겨난 오해일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1938년에 시작된 애니메이션 시리즈 벅스 버니에서 토끼가 내내 당근을 갉아먹고 있는 장면이 나왔던 까닭에 그런 오해가 진실로 둔갑한 부분도 있을 수 있다. 이렇게 우리가 동물에 대해 갖는 이미지는 현실과 거의 일치 않는 경우가 많다. 습관적으로 우리는 인간이 아닌 모든 것을 우리보다 열등한 것으로 간주하기 일쑤다. 자연에 대한 인식과 현실 사이에 스스로 ‘거리’를 만들어 간다. 이런 왜곡된 인식은 동물에 대한 무시와 혐오, 부당한 착취와 폭력, 학대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기 일쑤다.◇ 인간도 동물이다인간은 자신이 동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유일한 존재다. 그들과 다르고 특별하며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고는 다른 생명체들을 착취하고 파괴하는 행동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된다. 저자는 “종의 계층에서 우리가 절대 최상위에 위치할 순 없다”면서 “실제로 우리의 지능이 다른 종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할 근거도 박약하다”고 꼬집는다.동물행동학자 엠마뉘엘 푸이데바는 인간만이 도구를 사용할 줄 안다는 굳은 믿음에 의문을 제기한다. 충격적인 예로 ‘까마귀’를 든다. 까마귀는 자동차가 빨간 신호에 멈추면 물고 있던 딱딱한 견과류를 도로에 떨어트린다.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어 자동차가 지나가면 견과류가 부숴지고, 까마귀는 그제야 기다렸다는 듯이 내려와 잘게 부숴진 먹이를 주워 먹는다.저자는 인간이 ‘본능’을 지배할 수 있기에 동물을 넘어섰다는 믿음에도 메스를 가한다. 동물들 역시 공동이익이나 타 개체의 이익을 위해 행동할 줄 안다고 강조한다. 흡혈박쥐는 굶은 동료에게 삼킨 것의 일부를 토해내 나눠주고, 몽구스는 동료 구출 구조 작전까지 펼친다. 사하라 사막의 개미는 걸음 수를 셀 수 있고 서식지로 돌아가기 위한 궤도를 계산하고 지름길까지 찾는다.인간만이 언어를 사용하고 동료 말을 알아듣는 유일한 동물도 아니다. 니콜라 마테봉은 “모든 동물이 고유한 발성 특성을 가지고 있다”며 “종마다 가진 고유한 의사소통 방식을 모두 ‘언어’로 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심지어 범고래에게는 고유한 지역 방언도 있다고 한다. 저자는 “우리의 지능으로 다른 지능들의 복잡성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사진출처=게티이미지)◇ 야생동물에게 피난처가 있을까전 세계적으로 하루 2억 마리의 동물이 도축된다. 닭-돼지-양-소의 순이다. 한국에서도 2022년에 분당 2000마리 꼴로 소와 돼지, 닭이 도축되었다. 대부분 몸이 묶인 채 거의 산 채로 죽음을 맞는다. 잔혹하고 허점 투성이인 도살 규정이 문제다. 목 베인 소가 의식을 되찾는 장면들이 목격되고, 살아있는 동물이 죽은 동물을 못 보게 하는 규정도 지켜지지 않는다.사육 공장부터 처참하다. 더 이상 생산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날까지 강제수정이 되풀이된다. 기업형 양계장에서 닭의 생존 기간은 길어야 40일이다. 모두 일찍 죽도록 프로그램 되어 학대받는다. 짧은 주기로 수정을 하니, 어미 돼지는 제 자식인지도 모르고 잡아먹으려는 경우도 생긴다. 항생제 투여는 일상이다. 거의 모든 식용용 가축들이 평생을 갇혀 지내다 생을 마감한다.문제는 현재의 육류 소비량이 동물 친화적 축산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는 점이다. 육류 생산량을 줄이기 전에는 해결되지 못할 문제다. 여기서 이른바 ‘동물 착취의 역설’이 언급된다. ‘진지한 무지’와 ‘인지 부조화’에 더해 ‘나 혼자 육식을 끊는다고 뭐가 달라지나’ 하는 생각에 여전히 동물 도축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모두가 행복한 쇼는 없다서커스 동물들은 생애의 대부분을 폐쇄된 곳에서 비참하게 살아간다. 좁은 공간에 갇힌 동물들은 의미 없는 반복행동을 자주 하는데 전문가들은 이것이 ‘스테레오타이피(상동증)’라고 부른다. 조직적인 동물 학대로 인해 이들은 잡혀온 직후부터 심리적 파괴 과정을 거친다. 인간(사육사)에게 복종 않으면 처벌과 고통이 따른다는 사실을 이해할 때까지 이 과정은 반복된다. 사람들은 동물원 동물들이 행복하다 생각하지만 저자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동물원이 멸종위기의 종을 보호해 준다는 주장도 반박한다. 동물원은 자유를 박탈당한 야생동물을 전시해 돈 버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하는 곳이라며, 사실상 이 가운데 80%는 자연에서 사라질 위험이 없는 것 들이라고 말한다. 근친교배된 ‘백호’ 같은 동물은 이제 야생으로 되돌아 갈 수 없다.(사진출처=게티이미지)◇ 총소리를 멈춰라 생계용 식량을 얻기 위해 야생동물을 죽여야 하는 곳도 있다. 하지만 부유한 나라에서 사냥은 여가 활동일 뿐이다. 여전히 멸종 위기 동물들이 재미로, 합법적으로 사냥당하고 있다. 원칙적으로 보호동물에게 총을 쏠 수 없지만 이를 위반해도 징역형·벌금형 같은 유죄판결은 손에 꼽을 정도여서 매년 수천 마리의 동물이 죽은 채로 발견되거나 야생동물 보호센터로 보내진다.통합 보호지역에서도 노루나 사슴, 맷돼지 개체 수 조절을 핑계로 사실상 도살 행위가 허용되고 있다. 매년 사냥꾼들이 죽이는 동물의 80%는 ‘새’인데, 90% 가량이 양식장에서 사육되다가 사냥을 목적으로 풀려난다고 한다. 저자는 “이렇게 풀려난 동물이 야생동물과 접촉하면 잡종 교배로 이어져 자연 개체군을 약화시키고 질병을 확산하게 만들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베너리 사냥’이라는 것이 있다. 끝없는 추격 끝에 사살된 동물은 사냥개에게 먹이로 주어진다. 사슴은 머리와 뿔을 트로피로 만들어 전시된다. 옛 귀족들처럼 시대 의상을 차려 입은 참가자들에게는 ‘즐거움 지속’만이 유일한 규칙이다. 사냥당하는 동물 수가 많지 않으니 ‘조절’이라는 명분도 말이 안된다. 근처 농가에서는 소음에 고통받거나 인명 살상 피해까지 입는다. ◇ 모두를 위한 안식처를 찾아서지구 생태계의 75%가 인간의 활동으로 파괴되었다. 몇 십 년 안에 100만 종에 가까운 동식물이 사라질 위기다. 야생 지역이 경작지나 도시로 변해, 세계 야생 척추동물의 개체수는 1970년에서 2014년 사이에 60%나 감소했다. 육상 생물의 10~15%가 서식하는  아마존도 위기다. 2000년부터 2018년까지 프랑스 본토 면적이 사라질 만큼 빠른 속도로 삼림벌채가 진행되고 있다.살충제로 인해 지난 30년 동안 유럽에서 곤충 개체수는 75%나 줄었다. 조류 감소의 가장 큰 원인도 살충제다. 경관의 획일화도 서식지 파괴의 한 요인이다. 생물 다양성을 보존하기 위해 울타리와 휴경지 같은 다양한 서식지를 늘리지 않으면 농업 생산량은 줄 수 밖에 없다. 해결책은 농약 사용을 줄이고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재건하고, 특히 육류 소비를 대폭 줄이는 것이다.인간은 자연을 소유물로 생각하고, 공간을 마음대로 사용해도 된다고 여긴다. 경제적 이익이 생태계의 건강보다 먼저라고 보고  모든 환경을 식민지로 삼으면서 생물 다양성의 파괴를 부추긴다. 저자는 “다른 생명체를 위해 약간의 공간을 남겨두는 것으로도 충분히 재앙을 피할 수 있다”고 말한다. 과학자들도 지구 표면의 30% 정도는 보호되어야 한다고 말한다.프랑스에서는 국가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토지를 대신 매입해 야생동물들을 위한 평화구역으로 바꾸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아스파스(Aspas)’라는 곳이 있다. 덕분에 ’베르코르 야생보호지역‘이 빛을 볼 수 있었다. 이 단체는 프랑스 영토의 10%에서 자유로운 진화가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다. 현재 이 비율은 1% 미만이다.2020년 현재 내륙과 해안 수생태계의 16.64%, 연안 및 해양의 7.74%가 보호지역에 속해 있다. 하지만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20만 개가 넘는 보호지역 중 0.1%도 안되는 약 60개 지역만이 ‘그린 리스트’에 포함된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특정 지역 보호는 보호받지 않는 인접 지역에까지 긍정적인 확산 효과를 준다”고 말한다. 자치단체와 지방의회 행정에 적극 참여하는 것도, 적어도 해로운 개발계획을 막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강조한다.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2024-01-06 07:00 조진래 기자

[비바100] 현재 인구로는 '강원도' 아니라 '원춘도'가 맞아

옛 사회과 부도를 보는 느낌이다. 이른바 ‘데이터 지리학’을 연구하는 학계 전문가들이 모여 만든 책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지리·공간 정보 커뮤니케이터들이라고 부른다. 이 책은 21세기에 최적화된 대한민국 대표 지리부도라 해도 모자라지 않아 보인다.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과연 어떤 곳인지, 모두가 궁금해 하는 정보들을 소상하게 알려준다.지도로 읽는 대한민국 트렌드|장은미, 홍선희 외 3명|바른북스◇ ‘강원도’는 ‘원춘도’, 충청도는 ‘청충도’?1413년 조선 태종은 전국을 8개 도로 나눴다. 동부권 대표지였던 강릉과 원주의 앞 글자를 따 ‘강원도’가 탄생했다. 그런데 원주는 수도권에 가깝고 기업·혁신도시가 들어선 덕분에 인구가 속증한 반면 강릉은 계속 인구가 줄었다. 이제 강원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는 원주와 춘천이다. 강원도를 ‘원춘도’로 불러야 할 판이다.충주와 청주가 만난 ‘충청도’에서도 현재는 청주의 한 구가 충주 전체보다 인구가 많아져 ‘청충도’라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전주와 나주의 ‘전라도’도 이제 순천과 여수가 나주를 추월했다. ‘전순도’나 ‘전여도’라 불러야 할 지경이다.◇ 결혼은 영등포구, 이혼은 울릉군혼인율이 가장 높은 곳은 서울 영등포구다. 이어 화천군-평택시-하남시 순이다. 혼인율 최저는 순창군과 군위군이다. 평균 초혼 연령은 남자 33.4세, 여성 31.1세로 점점 높아지는 추세다. 서울 남자의 평균 초혼연령은 33.9세, 여자는 31.9세다.2022년 이혼율은 2.0으로 혼인율(1.8)과 별 차이가 없다. 울릉군(3.5)이 가장 높고 이어 옹진군(3.1), 정선군(3.0) 순이다. 이혼율이 가장 낮은 곳은 봉화군(1.1)이다. 혼인율과 이혼율 차가 큰 곳은 영등포구, 과천과 수원, 하남 순이다. 전북 장수군과 임실군, 경북 영덕군은 혼인비율보다 이혼비율이 더 높았다.◇ 출산율 최고 지역은 영광·임실합계출산율 추이. 자료=통계청출산율은 가임기(15~49세) 여성이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 수, 출생률은 인구 1000명 당 출생아 수다. 출산율이 최저인 서울은 출생률이 평균보다 높고, 출생률 최저인 전라북도는 출산율이 평균보다 높다. 출산율은 영광군과 임실군이 1.8을 살짝 웃돌며 최고다. 부산 중구와 서울 관악구, 대구 서구는 0.5 미만이다. 출생률 최고지역은 세종시(1.27)다.전라북도와 경상북도는 합계출산율이 전국 평균보다 높지만 출생률은 그에 못 미친다. 반면 부산과 대구는 서울처럼 두 가지 모두 낮다. 세종은 출산율(1.27)과 출생률(9.26)이 모두 전국 최고다. 하지만 이 역시도 OECD 평균 출산율 1.3명에는 못 미친다.◇ 1인 가구 가장 많은 곳은 관악구시군구 중 2020년 현재 1인 가구 최다 지역은 서울 관악구다. 20대와 30대 1인 가구가 가장 많다. 40대 1인 가구 최다 지역은 화성시와 부천시, 50대 이상은 부천시다. 대전 유성구와 동·서구는 20세 미만 1인 가구가 많다. 서울과 대전, 세종의 1인 가구 중 50%는 30대 이하인 반면 전라남도는 1인 가구 절반이 60대 이상이다. 전북과 경북, 경남, 강원은 60대 이상이 40%를 넘었다.전체 가구 대비 1인 가구 비중이 최고인 곳은 대전(36.3%)이다. 이어 강원도(35.0%), 서울(34.9%), 충북(34.8%), 충남(34.2%) 순이었다. 반대로 과천시는 1인 가구 비율이 가장 낮았다. 가족이 아닌 남남끼리 사는 5인 이하 ‘비 친족가구’는 화성시가 9257가구로 가장 많았다. 울릉군과 옹진군, 인천 중구는 그 비율이 5% 이하다.◇ 대단지 아파트는 남양주 다산동에2022년 말 현재 전국에서 1000세대 이상 대단지 아파트가 가장 많은 남양주시 다산동.2022년 말 현재 전국 1000세대 이상 대단지 아파트는 2414곳이다. 남양주시 다산동에 20곳, 서울시 노원구 상계동에 18곳, 인천시 연수구 송도동에 16곳이 있다. 150세대 이하 ‘나홀로 아파트 단지’는 839곳이다. 서울 서초동이 15개 단지로 가장 많고 방배동에 9개, 목동과 자양동, 삼성동에 8곳씩 있다. 오피스텔은 전체의 70.1%가 수도권에 있다. 서울에 29.9%, 경기와 인천에 29.5%, 10.8%가 위치한다. 44%가 도시철도 역 직선 거리 500m 이내에, 78%가 매출액 1000대 기업 본사와 직선거리 3km 이내에 있다. 70% 이상이 1인 가구다. 오피스텔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은 고양시 일산동구(17.1%), 가구 수가 가장 많은 곳은 서울 강서구(2만 8270가구)였다.◇ 수입차·친환경차 메카는?2023년 1월 현재 국내 등록차량은 2546만 6066대, 그 가운데 자가용이 2027만 8381대다. 운전면허가 가능한 만 18세 이상 기준으로 2.17명 당 차 1대 꼴이다. 수입차는 320만 671대로, 전체의 17% 정도다. 수입차 최다 등록 지역은 서울 강남구로 9만 7384대에 이른다.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부산 중구로 1.95명 당 1대 꼴이다.친환경 자동차는 2023년 1월 현재 전체 등록 차량의 6.4% 수준이다. 전기차(23.7%)보다는 하이브리드차(69.3%)가 많다. 비율은 제주도가 10.7% 정도로 가장 높다. 전기차 비율이 가장 높은 상위 세 지역은 제주(10.7%)와 인천(8.5%), 세종(8.3%)이다.◇ 바뀌는 과일 먹거리 주산지기후변화 탓에 감귤의 주산지가 머지 않아 진주나 고흥으로 바뀔 수도 있는 상황이다.우리나라 최대 곡창지대는 호남평야였다. 쌀 경지면적이 2021년 기준으로 7만 ha가 넘어, 전라북도 전체 논 면적의 57.4%를 차지했고 이 땅의 74%에서 쌀이 생산되었다. 하지만 이제 쌀 생산량은 전라남도-충청남도-전라북도 순이다. 귤은 제주, 사과는 영천, 포도는 김천이라고 했다. 하지만 기온 상승 탓에 국내 6대 과수 작물(사과 배 복숭아 포도 단감 감귤) 주산지가 충북·강원 등으로 북상 중이다. 사과와 복숭아, 포도 재배지역은 주는 반면 감귤과 단감 재배지역은 확대일로다. 이제 제주감귤이 진주·고흥 감귤이 되고, 영천사과가 대관령 사과가 될 판이다.◇ 전라남도 폐교 수 전국 최다학교용지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은 연세대·이화여대가 있는 서울 서대문구(12%)다. 서울 동대문구(9%)와 부산 영도구(7%)가 다음이다. 300가구 이상 주택에는 적정 학교부지 확보가 의무화한 탓에 서울과 서울 근처 신도시, 지방 광역시에서 비율이 높다.최근 저출산이 심화하면서 관련 규정이 완화되는 추세지만 다른 한편에선 학령 인구 감소로 인해 폐교되는 학교가 늘고 있다. 2022년 3월 기준 전국 폐교 수는 3896개에 달했다. 작은 농촌 학교가 많았던 전남이 839개로 최대다. 이어 경북(735개), 경남(582개), 강원(469개) 순이다.◇ 갈수록 줄어드는 소아과‘소아과 오픈 런’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전국에서 동네 병원은 물론 대학병원에서도 소아과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1000명 당 1세 전 사망자 비율이 ‘영아사망률’이다. 2021년 기준 2.4%로 낮은 편이지만 지역별 차이가 크다. 충북과 전남, 강원, 대구가 높고 충남과 경기, 서울, 세종이 낮다. 전남은 2019년 대비 2021년 영아사망률 증가 1위의 불명예도 안았다. 인구 증가율이 높고 일자리가 많은 지역의 영아사망률이 낮다.‘소아과 오픈 런’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소아과가 자취를 감추고 있다. 229개 시군구 중 소아과 전문의가 없는 곳이 문경시 등 34곳에 이른다. 반면 서울 강남구(160명)와 송파구(134명), 경기도 화성시(128명)는 소아과 전문의 ‘톱 3’ 지역이다.◇ 노년의 불청객, 치매와 고독사 2022년 4월 현재 남녀 60세 이상 치매 유병률 최고 지역은 곡성군(11.4%)이다. 이어 보성군(11.3%) 고흥군(11.0%) 순이다. 전국에는 치매안심센터가 본소 256개, 분소 217개 운영되고 있다. 중앙치매센터의 ‘치매 오늘은’ 사이트에는 전국 치매환자 유병 현황이 성별·연령별·중증도별로 제공된다.2022년 고독사 실태보고서를 보면, 고독사 발견 장소는 경기도가 1위, 서울이 2위, 부산이 3위다. 최근 5년간 고독사 비중은 매년 1% 내외다. 연평균 증가율은 제주가 38.4%로 가장 높았다. 이어 대전이 23.0%, 강원이 13.2%, 전남이 12.7%를 기록했다.◇ ‘골초 천국’ 강원·충북2021년 시도별로 강원도와 충북이 똑같이 21%의 최고 흡연율을 보였다. 충북은 청소년 흡연율도 7.3%로 가장 높았다. 강원의 청소년 흡연율은 6.1%였다. 흡연율이 가장 낮은 곳은 세종시(15.1%)였다. 전남도 외에는 광역시가 훨씬 낮은 흡연율을 보였다.국내 알코올 중독증 환자는 1만 9000명 안팎이다. 2021년 기준으로 고위험 음주율은 강원도 영월군이 19.6%로 가장 높았고 이어 강원도(14.4%), 인천(12.2%) 순이었다. 세종과 대전은 7.7%, 7.9%로 현저히 낮았다. 서울 강북구와 금천구가 13.3%, 13.2%에 달한 반면 광주광역시는 전혀 술을 안마시는 비율이 31%로 가장 높았다. 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2023-12-30 07:00 조진래 기자

[비바100] 쉼표까지 읽게 만드는 랭보의 마력, 마지막 산문시집 ‘일뤼미나시옹’

일뤼미나시옹|아르튀르 랭보|페르낭 레제 그림(사진제공=문예출판사)“환각적 이미지로 가득한, 관능적이고 재미있으면서 어둡기도 한 작품이며 인간사를 거울처럼 온전히 담고 있는 작품.”지난 11월 세종솔로이스츠가 주최하는 제6회 힉엣눙크! 뮤직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로 나선 역사학자이자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Ian Bostridge)는 아르튀르 랭보(Jean Nicolas Arthur Rimbaud)의 9개 연가시에 음악을 붙인 벤자민 브리튼(Benjamin Britten)의 ‘일뤼미나시옹’(Les Illuminations)에 대해 이렇게 소개했다.그의 무대에 감동 받아, 때마침 2023년의 마지막 달 랭보의 탄생 170주년을 맞아 출간된 마지막 미완성 산문시집 ‘일뤼미나시옹’을 받아들고는 꽤나 열심히 읽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의 문학세계를 이해해보겠다는 시도 자체가 오만이었을지도 모른다.‘일뤼미나시옹’의 시들은 저주받은 천재였고 당시에는 그 누구에게도 온전히 인정받지도 이해받지도 못했던, 그럼에도 삶의 의지가 견고했던 아르튀르 랭보가 연인이었던 시인 폴 베를렌(Paul-Marie Verlaine)과 영국에 머물던 때의 것들이 대부분이다. 더불어 1973~1875년 레딩, 샤르빌과 슈튜트가르트 등 유럽전역을 여행하면서 쓰여진 시들도 수록돼 있다.시인으로서의 명성, 아내와 자식들 등을 뒤로 한 채 랭보와 여행길에 올랐던 베를렌은 다툼 끝에 그에게 총을 쏴 2년 동안 수감됐다. 랭보가 감옥에서 2년여를 보내고 출소한 베를렌에게 ‘일뤼미나시옹’ 원고들을 맡기면서 1886년 5월 파리의 문학평론지 ‘라 보그’(La Vogue)에 처음 실렸고 그해 10월 책으로 출판됐다.이번에 출간된 ‘일뤼미나시옹’은 랭보 시의 원형은 물론 베를렌이 쓴 초판의 서문을 그대로 살리는 동시에 심도 깊은 각주, 입체주의 회화의 거장 페르낭 레제(Fernand Leger)가 ‘일뤼미나시옹’만을 위해 그린 그림 20점이 함께 수록됐다.베를렌이 쓴 초판 서문에 따르면 ‘일뤼미나시옹’은 “랭보가 자기 원고에 붙인 부제‘로 “영어의 ‘Illuminations’라는 영어에서 온 말로 즉 Coloured Plates라고 할 수 있다.” 연인인 동시에 동료 시인이었던 베를렌의 평처럼 170년이 흐른 지금에 봐도 세련되고 매력적인 시들이다. 하지만 어쩌면 어원이나 그 진화과정까지를 알아야만 이해가능할지도 모를 형용사의 사용, 오페라 작품이나 신화 속에서 그대로 가져오거나 응용하거나 연상시키는 적지 않은 고유명사, 하나하나 의미를 가진 듯한 무수히 많은 쉼표와 비약, 감히 그 뜻을 가늠하기 어려운 생략과 은유 등으로 꽉 들어차 있다.베를렌이 서문에 적은 것처럼 “의도적인 파격의 운문으로 된 짧은 작품들로 구성돼 있다. 여기에 핵심 주제는 없거나 아니면 적어도 우리가 발견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느껴지는 건 대홍수 뒤의 풍경을 ‘보석들은 땅 속 깊이 몸을 감추고 꽃들은 피어버렸다!’로 표현할 줄 아는 랭보의 남다른 감성과 전혀 이해할 수 없음에도 마음을 움직이는 시어들의 향연이다.간혹 시의 길이보다 번역자의 각주가 많은 아이러니 또한 지독히도 랭보다운 시집이다. 더불어 쉼표 하나에도 뭐가 들었을까를 집요하게 고민하게 하는 힘을 지닌 언어들이 꽤 오래도록 여운을 남기는 글들이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3-12-25 18:00 허미선 기자

'내가 너에게 있는 이유'...'따뜻한 시인' 이희주의 두번째 시집

‘내가 너에게 있는 이유’, 이희주 시집증권맨으로 정년 퇴직 후 얼마전 두번째 시집을 내놓은 이희주 전 한국투자증권 전무(61). 글 솜씨 좋은 증권맨으로 이름을 날렸던 그는 이미 지난 1989년 ‘문학과 비평’ 가을호에 시 16편을 발표하면서 등단한 시인이다. 충남 보령 출생으로 한양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한 이희주는 사실 시인보다는 증권맨이라는 독특한 이력으로 금융샐러리맨들에게는 더 잘 알려져 있다.그는 시인으로 등단하던 그 해, 한국투자증권의 전신인 한국투자신탁에 입사했다. 필기와 면접 등의 치열한 경쟁을 치룬 공채였다. 당시 투자신탁이 증권산업의 최대 큰 기관(손)이었던 걸 감안하면, 그 중 업계 1위인 한투에서 첫 사회생활을 했다는 자체가 특별한 스펙이다.이희주는 지난 2022년 겨울 한투증권 전무로 퇴사하기까지 영업점, 경제연구실, 마케팅부, 홍보실 등을 두루 걸치며 33년을 여의도 증권밥을 먹었다.감성이 깊고, 따뜻한 사람으로 모든 이와 잘 지냈던 그러면서도 초심을 간직한 그가 최근 두번째 시집 ‘내가 너에게 있는 이유’를 출간했다.‘시인동네 시인선’시리즈 222번째로 시집전문출판사 ‘문학의 전당’에서 나왔다. 직장인에서 시인 이희주로 귀환했음을 알리는 복귀작인 셈이다. 그의 길로 돌아갔다기보다는 원래 가야할 길을 더 익은 다음에 갔다고 보는 주변인들도 적지않다. 그만큼 그에겐 시라는 글이 더 어울렸다.‘내가 너에게...’는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존재에 대한 사유가 큰 줄기를 이룬다.“무슨 일 했는가 묻길래 증권회사에 다녔었다고 하니/자본주의의 꽃 아니냐며 돈 많이 벌었느냐고 묻는다/시를 썼다고 말하니 시를 읽어줄 사람이 있었겠느냐/시를 쓰다니 당신이 그럼 시인이었냐고 그가 묻는다”슬픈 질문이희주는 1990년대 초 현대문학, 작가세계, 현대시사상 등 시 전문지에 꾸준히 시를 발표하며 젊은 시인으로 문단에서 영역을 한뼘 한뼘 넓혔다. 1996년에는 첫 시집 ‘저녁바다로 멀어지다’를 선보였다. 이후 직장생활의 풍파에 묻힌 듯 그는 시단에서 잠적하다시피 했다. 이번 두번째 시집은 그가 시(詩)와 인(人)으로 건재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다.문학평론가 임지훈은 이번 시집에 대해 “ ‘내가 너에게 있는 이유’는 도시의 밤을 수놓은 혼자만의 불빛과 반짝이는 술잔들을 닮아 있다”면서 “세상에 삿된 깨달음을 진리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셀 수없이 많다. 다만, 그와 같이 스스로 번민하고 고뇌하며 함께 슬퍼하는 사람은 드물고 귀할 따름”이라고 평가했다.이희주 시인은 “나의 지난 직장생활이 순종적 삶이었다면 이제는 다시 반항하는 삶을 살기로 했다”며 “그 반항의 형식은 하이데거가 말한 것 처럼 언어가 존재의 집인 듯, 시인은 시를 통해 사람들에게 당신은 그저 그러한 존재자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임을 일깨워주는 일”이라고 밝혔다.‘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다’라는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이희주 시인의 시와 글과 삶길이 더욱 따뜻해지기를 바란다.명재곤 기자 daysunmoon419@viva100.com

2023-12-25 12:28 명재곤 기자

[비바100] 기다려주는 日, 25명… 못 기다리는 韓, 0명

일본은 29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그 중 25명이 자연과학 분야에서 나왔다. 이 책은 일본 기초과학의 ‘힘의 원천’을 추적 탐구한 결과물이다. 저자는 ‘과학기술 부국(富國)’이 되려면 정부의 리더십과 고도 인재, 기업을 통한 기술력이 절대적이라고 강조한다. 특히 ‘일관된 정책’과 ‘기다려주기’가 필수라고 말한다. 그는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실패는 능력부족 보다는 지속성 부족에서 오는 것”이라며 “지금까지 ‘따라가는’ 과학이었다면, 이제는 ‘앞서가는 기초과학 강국’이 돼야 한다”고 역설한다.◇ 일본 과학기술 발전의 원동력저자는 일본이 1945년 패전 이후 선진기술을 적극 도입하면서 모방과 흡수, 개량과 창조의 과정을 거쳐 과학 선진국이 되었고 그 덕분에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쏟아낼 수 있었다고 분석한다. 초중고 교과부터 과학기술을 가르치고 보급시키기로 일찌감치 결정했고, 일관된 정책추진에 과학기술 강국으로 자리매김 했다고 말한다. 일본 정부는 산-학-연 민간 실무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하는 각종 심의자문기구를 만들어 정치권이나 공무원들의 독주를 견제했다. 일관되고 지속적인 정책 추진이 최우선 목표였다.과학기술청은 정부-기업 간 긴밀한 협조를 위한 리더십을 발휘했고, 2001년에 총리직속으로 만든 종합과학기술회의(CSTP)도 지대한 역할을 했다. 여기에 자본력, 그리고 일본사회의 ‘기술자 우대 분위기’가 더해졌다. 1995년에 제정된 과학기술기본법도 5년에 한 번씩 과학기술 기본계획을 수립케 해 정책적으로 과학 분야를 집중육성하는 기본 틀을 다지게 해 주었다.◇ 민간·대학 연구개발(RD) 전폭 지원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일본 기업들도 기초연구 능력을 확충하고 연구개발의 세계화를 추진했다. 주로 전자와 바이오테크놀로지 중심으로 기초연구소 설립 붐이 일었다. 문부과학성은 2016년부터 대학 내 젊은 연구인재를 발굴하는 ‘탁월연구원제도’를 운영 중이다. 이들에게는 2년 동안 1200만 엔 한도의 연구비와 연간 200만~300만 엔의 연구환경 조성비가 5년 동안 지원된다.후지츠 같은 일반 기업도 ‘탁월사회인박사제도’를 도입해 석사과정 학생 중 희망자를 뽑아 박사과정 진학과 동시에 사원으로 채용해 연구에 전념케 돕는다. 일본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부터 물질과 에너지, 지구와 우주, 시간 및 공간과 생명 등을 집중 교육한다. 저자는 “일본은 실험 물리보다 이론물리에 강하다”며 “일본 연구자들의 오타쿠 같은 캐릭터와 맞아떨어지면서 국내에서의 이론 연구만으로도 노벨상을 수상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span style="font-weight: normal;"일본 이화학연구소에서는 최근 로봇을 이용한 재생의학 연구가 한창이다.◇ 일본 노벨상의 산실 ‘리켄’일본 기초과학의 중심에는 이화학연구소(理化學硏究所) ‘리켄(RIKEN)’이 있다. 이 민관 연구소가 출범하면서 일본의 과학기술 연구는 조직적으로 첫 걸음을 내디뎠다. 물리학자인 니시다 요시오 초대 연구소장은 젊은 연구자들이 세계 석학들과 만날 기회를 주고, 폐쇄적·연공서열적이던 연구 시스템을 혁파했다. 주임연구원 제도를 도입해 연구 테마와 예산, 인사권 등 전권을 부여해 독립된 연구를 보장해 주었다. 새 연구 계획 아이디어만 제시해도 즉시 일정액의 연구비를 제공받을 수 있게 했다.연구성과로 특허나 실용신안을 얻으면 기업 설립도 허용해 주었다. 특허권과 사용료는 연구소 자산으로 늘려 연구비용을 충당케 했다. 그 대표적인 기업이, 패전 후 페니실린과 비타민 제조에 성공하고 지금은 줄기세포를 연구 중인 ‘리코’이다. 자연과학에 관심 있는 연구자들이 돈이 없다거나 자리가 없다는 핑계로 연구를 포기하지 않도록 만든 것이다.◇ ‘천재’ 라기 보다 ‘오타쿠’가 대부분일본 노벨상 수상자들은 ‘천재’ 보다는 끈기 있게 집중력을 발휘하는 ‘오타쿠’가 대부분이다. 2002년에 화학상을 받은 학사 출신의 회사원 다나카 고이치 등이 그렇다. 일본 수상자들은 또 놀랍게도 모두 일본 국공립대학 출신들이다. 우리보다 인구가 2.5배가 많지만 유학생 수는 절반에도 못 미친다. 출신 고교도 제국대학 진학을 위한 기초교육기관인 구제고교 출신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젊었을 때부터 안정된 직위에 충분한 연구 환경을 갖춘 국립대학에서 끈질긴 연구가 가능했다.2002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다나카 고이치 선임연구원.일본 특유의 도제식 연구도 역할을 했다. 스승의 연구를 제자가 계승하는 학문적 연계성이 탁월하다. 4대째 학맥(學脈)의 문화는 한국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문부과학성은 2006년부터 박사 학위 취득 후 10년 이내의 젊은 연구자들을 선발해 임기 5년을 보장하는 ‘테뉴어트랙 보급 정착 사업’도 실시 중이다. 저자는 “이것이 진정한 기술과학의 인적 네트워크”라고 부러워 한다.◇ 기초과학 투자에 너무 늦은 한국우리나라는 2022년 기준으로 GDP 대비 RD 비중이 4.96%로 OECD 국가 2위다. 일본은 평균인 2%에도 못 미쳤다. 우리는 인구 1000명 당 연구원 수도 세계 1위다. 그런데 과학기술 분야에서 일본을 따라잡지 못한다. 저자는 그 이유로 크게 세 가지를 든다.첫째, 일본이 R, 즉 기초과학에 집중지원한 반면 우리는 산업계의 응용분야와 기술개발 D에 집중했다. 고도성장이 시급했기에 기초연구나 이론연구에 소홀했고, 특허출원도 반도체 통신 등 특정 산업에 편중되었다. 인재들은 의치한(의대 치해 한의대)과 ‘인 서울’ 대학에만 쏠리니 지역 기반 대학은 우수학생을 유치하기 어렵다. 우리도 2008년부터는 기초연구비가 응용연구비를 추월했지만, 순수기초 연구비 30%에 목적기초연구비가 60%다. 하고 싶은 연구보다 정부 연구프로젝트에 목을 맨다는 얘기다.둘째, 일본은 정부 RD를 구체적인 항목 지정 없이 대학에 블록 펀딩 형태로 지원한다. 정부는 연구 방향과 총액만 결정하고 나머지는 기관장에게 일임하니 중장기 과제에 집중할 수 있다. 일본은 또 2001년의 21세기 COE(Center of Excellence) 프로그램을 계기로, 상위 10여 개 대학에 지원을 집중한다. 세밀하고 투명한 운용한 덕분에 논란이나 반발도 없다.셋째, 과감하고 지속적인 연구비 투자다. ‘리켄’ 설립 때 일본에서는 “우리의 폐단은 너무 조급하게 성과를 요구한다는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됐었다. 이 때가 1917년이었다. 기초과학에 종사하는 연구자들이 생활문제로 연구를 포기하지 않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일찌감치 형성되었던 것이다.1949년에 일본 최초의 노벨상(물리학 부문)을 수상했던 유카와 히데키.◇ 우리에게 부족한 ‘기다려주는 문화’일본에는 몇 십 년짜리 지원사업이 많지만 우리는 대부분 1~3년짜리다. 그 안에 성과를 못 내면 연구비가 끊긴다. ‘정부가 관심을 갖는 순간 그 사업은 망한다’는 얘기도, 단기 성과를 요구받기 때문이다. 우리 기초과학 과제의 80%는 5000만 원 미만의 소액이다. 5대 1 정도의 경쟁률을 뚫고 수주해도 간접비, 인건비 등을 제하면 연구에 쓸 비용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나마 내년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주요 사업비가 25% 삭감된다.저자는 “일본은 30,40대 연구자들을 위해 ‘탁월연구원제도’에까지 예산을 쓰는데 우리는 오히려 성취욕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비판한다. ‘방향성 잃은 평등의식’도 비판한다. 우리는 인문 사회 자연과학 모든 분야에 골고루 예산을 나눠주어야 탈이 없다. 자유 공모는 5%에 불과하고 대부분이 기획과제다. 공무원들이 좋아하는 키워드가 들어가야 선정율이 높아진다. 기획서에 ‘화장’을 해 주는 브로커들이 판치는 이유다.◇ 우리나라는 어떻게 해야 하나어릴 때 꿈이 과학자라고 해도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면 이런 꿈이 물거품이 된다. 고 3 때까지 수능에 목숨을 거는 교육제도 탓이다. 저자는 “당장 돈이 안된다고 기초과학을 무시하면 영원히 ‘넘버 투’에 머물 것”이라고 비판한다. 연구자 도덕성도 꼬집는다. 작년에 문을 연 한전공대가 200억 연구프로젝트 사업비를 인건비로 전용해 물의를 일으킨 것이 우리의 현주소라고 비판한다.저자는 그러나 우리가 일본보다 늦은 1977년에야 기초과학 연구를 시작했고, 창의적 연구 진흥 사업이 시작된 것은 1996년임을 상기시킨다. 그는 “일본의 150년에 비해 이제 경우 30년을 넘긴 셈”이라며 “일본은 1868년부터 기초과학에 투자해 1949년에 첫 수상자 유카와 히데키를 배출했다”며 “우리도 너무 조바심낼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그러면서 일본 정부가 노벨 생리의학상을 주는 스웨덴 ‘카롤린스카연구소’에 일본학술진흥회 연락사무소를 두고 4,5명을 상주시켜 교류하고 게이오대학 등 다수 대학들도 MOU를 맺고 연구자들을 파견한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저자는 “우리는 충북도 교육감이 노벨상위원회 위원장과 면담하고 사진 찍는 게 전부”라며 “차라리 학생들을 10명 뽑아 보냈다면 이들이 더 큰 꿈을 갖고 돌아왔을 것”이라고 꼬집는다.표 노벨상에 근접한 한국 후보자들* 생리의학- 김빛내리 서울대 생명과학부 석좌교수. 마이크로 RNA(miRNA) 생성과정을 2006년 세계 최초로 밝혀냄.- 방영주 서울대 교수. 위암 임상 세계적 권위자. 위암의 표적항암제와 면역항암제 치료효과를 첫 입증.* 화학- 유룡 한국에너지공과대 교수. 나노다공성 물질 구조 규명. 구조규칙적 메조다공성 탄소합성법 개발.- 김기문 포항공대 화학과 교수. 2011년 논문 피 인용지수 세계 100대 화학자에 이름을 올림.* 물리학- 김필립 하버드대 물리학과 교수.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그래핀’의 물리전기적 특성을 최초로 밝힘,- 현택환 서울대 교수. 실온에서 온도를 서서히 올리는 방식으로 나노 입자를 균일합성하는 방법 개발.- 임지순 포스텍 석좌교수. 한국 물리학자 최초로 미국과학학술원 외국인 종신회원으로 추대됨.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2023-12-23 07:00 조진래 기자

[비바100] AI가 우울증 진단하고, 식물이 밤길 밝혀준다

(사진출처=게티이미지)미래 기술의 발전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일본의 닛케이신문은 매년 세계가 놀랄 만한 100개 기술을 선정해 발표해 왔다. 그리고 비즈니스 리더 800명에게 따로 설문조사를 해 기대치 순서대로 순위를 정해 공개하고 있다. 2030년까지 가장 기대가 되는 기술로 선정된 기술이 ‘완전 자율주행’이다. 2위는 산업 메타버스, 3위는 간호 로봇이다. ‘인간을 돕는 기술’이라는 공통점을 지녔다. 100개 기술 가운데 특히 2024년에 주목할 만한 미래기술로 부상하고 있는 새로운 기술들을 뽑아 소개한다.세계를 바꿀 테크놀로지 2024|닛케이BP|시크릿하우스◇ 인공지능(AI) 활용한 신기술▶이미지 생성 AI = 발주자나 설계자가 직접 그린 그림이나 문장을 이용해 대화하면 이미지가 자동생성되는 기술이다. 프리젠테이션이나 설계에 드는 노력을 획기적으로 줄여 준다. 건축 분야 생성형AI 서비스업체 ‘마인(mign)’이 지난 7월에 선보인 ‘아키텍쳐 디자인 봇’은 발주자에게 원하는 주택의 스타일이나 색상, 주변 환경 등을 묻고 그 답에 맞춰 건물 외관과 내관 이미지 4장을 만들어 준다. ‘오바야시구미’도 설계지원 툴 ‘아이콜브’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1주일 정도면 제안서를 뚝딱 만들어 낸다.인공지능을 이용해 우울증을 진단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어 주목을 끈다. 사진은 우울증 환자의 뇌 사진▶AI 우울증 진단 시스템 = 뇌의 한 영역과 다른 영역의 기능적 연결과 그 강도를 MRI(자기공명영상장치)로 측정하고 그 결과를 인공지능으로 분석해 우울증 진단에 활용하는 신기술이다. 데이터 진단을 지원하는 알고리즘도 프로그램 의료기기로 올해 3월에 승인되었다. 유효성 확인 결과, 민감도와 특이도 및 정확도가 모두 70% 안팎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히로시마대 정신신경과, 국제전기통신기초기술연구소, 진단치료기기 개발업체 XNef 역시 연초에 높은 진단 보조기능과 범용성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AI 생성 콘텐츠 탐지 = AI가 작성한 글이나 이미지를 AI가 탐지한다. 챗GTP 개발사인 오픈AI가 올 1월에 내놓은 ‘AI 분류기’는 1000자, 150~250 단어 문장에 대해 인공지능이 쓴 것인지를 판별한다. 아직 정확도는 떨어진다. 올 1월에 설립된 스타트업 ‘GTP제로’는 ‘AI detection’ 툴을 공개한 데 이어 5월에는 크롬 확장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구글 브라우저와 조합해 사용하면, 검색한 문장이 AI가 생성한 글인지를 자동 판정해 준다. 메릴랜드대학은 AI로 생성한 문서에 워커마크를 남기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딥페이크 찾아내기 = 인공지능을 이용해 실제로 비슷하게 만든 가짜 이미지나 동영상, 음성 등 이른바 ‘딥페이크’를 탐지해 음성 사기 등을 사전에 방지하도록 돕는 기술이다. 미국 플로리다대 연구진은 음성에서 발현되는 성대 모양을 추측해 가짜 음성을 판별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정확도 99.9%에 재현율 99.5%에 이를 정도라고 한다. 연구진은 역으로 그럴듯한 딥페이크 음성을 만들 수 있는지도 검토했으나, 계산에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되어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건축·토목 분야 신기술▶ 생물 발광 = 가로수나 관엽식물이 빛을 발산해 밤거리를 밝게 비춰준다. 반딧불이처럼 생물 발광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식물에 도입한 기술이다. 프랑스 스타트업 ‘우드라이트’가 생체 발광 유전자를 식물에 도입하는 생체 실험을 2021년에 마치고 2024년 시제품 완성을 목표로 진행 중이다. 전기를 절약할 수 있는데다 식물의 광합성 덕분에 도시 공해도 줄일 수 있다. 식물이기 때문에 100% 재활용도 가능하다. 다만, 은은한 빛을 비추는 수준이라, 어둠 속에서 책을 읽을 수 있을 만큼은 아니라고 한다.솔라로드웨이즈에서 제작한 태양광 도로.(사진제공=솔라로드웨이즈)▶ 태양광 발전 포장 = 태양광 패널을 노면에 접착하거나 포장에 매립하는 기술이다. ‘발전하는 도로’를 지향한다. 도로포장 업체‘도아도로공업’은 결정질 실리콘형 태양전지와 투명한 특수수지로 패널을 만들어 노면 위에 접착제로 붙이는 형태의 두께 6mm 제품을 선보였다. 대형차 주행에도 버틸 수 있는 내구성을 가진 태양광 패널을 구현하기 위해 검증 작업이 진행 중이다. 아직은 현행 도로법에 태양광 패널을 공공도로 노면에 설치할 수 없는데, 일본에서 도로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어 기대를 모은다.◇ 전기·에너지 미래기술▶ 차세대 전력반도체 = 전력 손실을 줄일 수 있는 차세대 소자다. 산화갈륨과 다이아몬드, 질화알루미늄 등을 재료로 사용한다. 2030년대에는 실리콘 전력반도체와 함께 이 분야 주역으로 기대된다. 산화갈륨 전력반도체가 가장 앞서 있다. 플로스피아와 노벨크리스털테크놀로지가 각각 소재 개발에 성공해 고내압 다이오드로 양산 실용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2030년 전기자동차의 모터 구동 인버터에 사용하는 것이 목표다. 그렇게 되면 GaN 전력반도체의 시장 규모를 단숨에 추월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고온 공학 시험 연구로 HTTR. 900도 이상의 고온을 추출할 수 있다.(사진제공=일본 원자력연구개발기구)▶ 고온가스로 = 750~900도 초고온 추출이 가능한 차세대 원자로다. 이산화탄소를 배출 않고 수소를 생산할 수 있어 제출산업 등 에서 활용이 기대된다. 흑연재를 감속재로, 헬륨 가스를 냉각제로 사용하고 연료로는 우라늄에 세라믹을 입힌 직경 약 1mm 피복관 연료 임자가 사용되어, 사고가 나도 방사성 물질을 가둬줄 수 있다. 다만, 대형화가 어렵고, 고온을 이용해 무탄소 수소를 대량으로 저렴하게 제조하는 기술은 아직 상용화가 요원하다. 일본 정부는 2035년 국내 1호기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모빌리티 혁신 기술미국 조비 에비에이션의 에어 택시 eVTOL. (사진제공=조비 에비에이션)▶ 에어택시 = 배터리로 구동되는 eVTOL(전동 수직 이착륙기)을 이용해 헬리콥터처럼 수직으로 상승 하강이 가능하다. 2025년 열릴 오사카·간사이 엑스포에서 상용 운항을 시작할 예정이다. 택시 요금보다 2~3배 비싸지만, 이동시간은 절반으로 줄여준다. 현재 상용 운항이 가능한 4인승 이상 기체 제작업체는 8곳 정도인데, 이미 세계 각국에서 600대 가량의 예약을 받고 있다. 전력 소모가 크고 1회 충전에 100km 정도 이동할 수 있어, 차세대 배터리 개발 및 가스 터빈 발전기 활용 등을 통해 400~1000km까지 늘리는 노력이 경주되고 있다. ▶ 자율항행 잠수함 = 심해를 자율 항행으로 조사할 수 있는 잠수정이다. 3000m급 심해 작업을 위해 해저 지형 관측 등 과학기술 조사나 자원 탐사 등을 담당한다. 가와사키중공업이 검사용 로봇 어뢰를 탑재한 ‘스파이스 원’을 영국에 납품해, 북해 유전을 비롯한 전 세계 해저 파이프라인 부설 해역에서 운용될 예정이다. 최대 4노트(시속 약 7.4km)로 목표물에 접근한다. 리튬이온 배터리로 구동되며, 1회 충전으로 최대 8시간을 항행해 30~40km의 파이프라인을 검사할 수 있다. ◇ 의료·건강/라이프·워크 스타일▶ 비강 투여형 제재 = 코를 통해 간편하게 투여할 수 있는 제재다. 2020년에 출시된 저혈당 응급치료제 ‘바크시미’ 비강분말제가 올해 3월 승인된 데 이어 경구용 독감백신 ‘플루미스트’ 비강 용액도 연내 출시 예정이다. 하마마츠 의과대학과 테이진파마가 공동 개량한 ‘옥시토신’ 비강 스프레이는 임상시험에서 유효성과 안전성이 입증되어 자폐 스펙트럼증 치료제로 기대를 모은다. 제약 스타트업 아큐리스파마는 간질환첩증 또는 경련발작 환자를 위한 항경련제 ‘디아제팜’ 비강 투여 스프레이 제재의 3상 임상을 미국식품의약국(FDA)에서 승인받는 등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일본 고베대는 MeDIP 측의 오퍼레이션 유닛을 이용해 수술로봇의 5G 원격조작 실증실험에 성공했다.(사진제공=고베대학)▶ 수술 지원 로봇 원격조작 = 멀리 떨어져 있는 지도의사가 현지 수술 지원로봇을 조작해 현지 수술자와 공동 수술을 하도록 돕는 기술이다. 완전 원격수술은 안정성 확보 등의 문제로 허용되진 않지만, 의사의 이동 부담도 줄고 지역 간 의료 격차 해소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는 200~300km 거리에서 부분적 원격수술이 이뤄지고 있다. 통신 지연이나 흔들림 등을 제어하는 게 관건이다. 현지에 숙련된 지도의사가 없을 경우 일반수술로 전환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스트레스 해소 앱 = 스마트 폰으로 개인의 기분전환을 해 주는 앱이다. ‘미 풀니스’는 이용자의 얼굴 영상 촬영으로 피로도를 판단해 폰 진동과 비주얼, 음악이 세트로 된 최적의 이용자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한다. 피부 상태 등으로 스트레스와 피로도를 추정하고, 피부색 변화에서 심박수와 심박 페이스를 읽는다. 체험자들을 대상으로 성과를 측정해 보니, 비 체험 그룹보다 스트레스가 유의미하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 이미 산후 케어 앱 등에도 채택되고 있다.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2023-12-16 07:00 조진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