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뮤지컬

[人더컬처] 운명처럼 뮤지컬 ‘일테노레’와 윤이선을 만나다! 서경수 “늘 무대 위 진실된 순간들을 꿈꿔요”

뮤지컬 ‘일테노레’ 윤이선 역의 서경수(사진제공=오디컴퍼니)“이 작품을 리딩하는 첫날 딱 깨달았어요. 운명이다. 내게 운명 같은 작품이다. 그냥 심장이 요동치고 뭔가 노력하지 않아도 저 밑에서부터 가늠할 수도 없고 형언할 수도 힘들 만큼 어마무시한 것들이 솟구쳤거든요.”서경수는 뮤지컬 ‘일테노레’(Il Tenore, 5월 19일까지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를 ‘운명’이라고 정의했다. 지난해부터 연습과 12월 초연, 올해 3월 개막한 앙코르 공연까지 1년여를 조선 최초의 성악가 윤이선(홍광호·박은태·서경수)으로 무대에 오르고 있는 그는 ‘앞으로 꼭 하고 싶은 작품’에 대한 질문에도 “이 작품을 함께 하지 못했다면 ‘일테노레’와 윤이선이 됐을 것”이라고 답하기도 했다.◇온몸이 요동치는 음악들로 ‘꿈꾸는 사람들’ 우리처럼! 뮤지컬 ‘일테노레’ 윤이선 역의 서경수(사진제공=오디컴퍼니)“연습하면서 또 공연하면서 갈고 닦은 걸 얼마나 잘 보여줄까 보다 이 사람들과 다 같이 또 한번 할 수 있다는 데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배우로서, 인간으로서 정말 오랜만에 정적이면서도 유약한, 그를 딛고 성장하는 롤을 맡은 것 같아요.”뮤지컬 ‘일테노레’는 한국 최초의 오페라 공연인 베르디의 ‘춘희’(라 트라비이타)를 비롯해 비제의 ‘카르멘’을 무대에 올린 연출자이자 성악가인 의사 이인선에서 영감받아 꾸린 작품이다.1930년대 일제강점기를 예술의지로 관통한 이들을 다룬 이 작품에서 그는 이인선을 모티프로 극화한, 조선 최초의 오페라 테너를 꿈꾸는 윤이선으로 살며 “행복하다”고 했다. “그래서 너무 행복했고 그만큼 더 아픈 시간들도 있었지만 결국 공연은 사람들과 하는 작업이잖아요. 휴앤윌 작곡가님들이 쓰신 것들을 함께 맞추고 새롭게 만들어내는, 생명력을 불어넣는 과정을 함께 한 이 사람들이 너무 좋아요. 진짜 욕심 부리면 ‘정말 이대로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아하게 됐습니다.”윤이선을 비롯해 대학생들의 항일운동모임인 ‘문학회’ 리더이자 오페라 공연을 준비하는 독립운동가 서진연(김지현·박지연·홍지희), 건축학도이자 적극적인 독립운동가로 오페라 공연의 무대디자인을 맡은 이수한(전재홍·신성민) 등의 꿈과 사랑 그리고 독립 의지에 대한 이야기다.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번지점프를 하다’ 등의 작가이자 작곡가 윌 애런슨(Will Aronson)과 작가이자 작사가 박천휴의 콤비작으로 전통 클래식 사운드, 19세기 오페라 미학을 바탕으로 창작한 가상의 오페라 ‘꿈꾸는 사람들’을 만들어 가는 여정을 따른다.뮤지컬 ‘일테노레’ 윤이선 역의 서경수(사진제공=오디컴퍼니)‘어쩌면 해피엔딩’ ‘데스노트’ ‘신과함께-저승편’ ‘미세스다웃파이어’ 등의 김동연 연출작으로 오페라 아리아를 뮤지컬적으로 재해석하고 고전적인 가사를 붙인 넘버와 음악들이 18인조 대편성 오케스트라 선율에 실린다.“듣는 순간 몸이 요동 쳐요. 그 정도로 음악이 좋아요. 밝은 노래도 슬프고 너무 벅차서 막 소용돌이가 치는 것 같달까요. 뭔가 좀 새롭고 리듬보다는 어떤 선율이 심장을 울리다 보니 연습실에서는 매일이 눈물바다였어요. 인물, 극, 장면 등의 방향성을 형들(홍광호·박은태), 진연들(김지현·박지연·홍지희)과 얘기하면서 ‘너무 사랑해서 말을 못할 만큼’의 감정이 북받쳐서 갑자기 눈물이 막 쏟아지곤 했어요.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울컥해요.”그는 가장 좋아하는 넘버로 “윤이선이 마지막으로 불러주려고 했던 극 중 극인 ‘꿈꾸는 자들’의 맨 마지막 노래와 극을 여는 ‘새로운 세상’”을 꼽으며 “사실 주로 하던 발성이 아니어서 고민이 깊었다”고 토로했다.뮤지컬 ‘일테노레’ 윤이선 역의 서경수(사진제공=오디컴퍼니)“그래도 어느 정도 노력하면 되지 않을까, 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발전 속도가 굉장히 더뎠거든요. 성악 뿐 아니라 해부학적인 레슨까지 좀 다양하게 받았고 지금도 받는 중입니다. 조심스럽지만 그렇게 발전하는 느낌을 어느 만큼씩은 받고 있어서 매일 고민하면서도 너무 행복합니다.”◇“더 이상 못하겠다”는 순간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다그는 윤이선과도 같았다. 딱히 꿈을 꾸거나 하고 싶은 일이 있다기 보다는 “무슨 일을 하든 돈을 벌 자신이 있었고 어마무시한 생존본능을 가지고 있어서 ‘나는 절대 굶어 죽지 않아’라는 식으로 그냥 살았다.” 자연스럽게 기회가 돼 발을 들인 뮤지컬 역시 ‘내 꿈이야, 내 길이야’ 해서 시작한 건 아니었다. “어떤 계기가 있어서 ‘더 이상 (뮤지컬은) 못하겠다’는 마음을 먹었을 때가 있었어요. 불과 5년도 안됐어요. ‘썸씽로튼’(2020년, 2021년)을 할 때니까 진짜 최근이죠. 그렇게 마음을 먹고서야 알겠더라고요. 내가 진짜 뮤지컬을 사랑하는 애구나. 진짜 안해야겠다 마음먹었더니 희열에 가득 찬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어요. 내가 얼마나 열심이었는지 얼마나 뮤지컬을 사랑하는지….”뮤지컬을 그만두고 공부를 더 하겠다는 그를 다시 뮤지컬 무대로 등을 떠민 이는 어머니였다. 그리고 그때부터 완전 달라졌다. 뮤지컬에 대한 사랑을 각인한 그때부터 서경수는 “흐르는 강물, 날리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눈앞에 놓인 것에 최선을 다하자는 주의에서 어떻게 해야 더 발전하고 더 많은 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생각하면서 전진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뮤지컬 ‘일테노레’ 윤이선 역의 서경수(사진제공=오디컴퍼니)“사실 막 두드리면 깨질까 두려웠는데 그때부터는 하고 싶으면 무조건 들이대자 생각했어요. ‘잃을 게 뭐가 있냐’ ‘창피할 것도 없다’는 마인드가 장착됐달까요. 이전엔 그런 마인드가 100이었다면 지금은 2, 300은 된 것 같아요.”그래서 윤이선이 처음 오페라를 접했을 때의 감정은 그에게도 오롯이 전달되는 것이었다.“방어기제가 강하게 발동해 다치고 싶지도, 목매고 싶지도 않다고 생각하다가 제가 뮤지컬을 이렇게나 좋아한다는 사실을 점점 더 깨닫게 되면서 저에게도 (윤이선이 오페라를 처음 접했던) 그런 순간들이 있었거든요. 뭐랄까 전구가 켜지듯 심장에 확 불이 켜지는 그런 순간이요. 그 느낌과 비슷하지 않을까 했죠.”◇오롯이 사랑, 귀감이 되는 홍광호·박은태, 영감덩어리 서진연들 김지현·박지연·홍지희span style="font-weight: normal;"뮤지컬 ‘일테노레’ 윤이선 역의 서경수(왼쪽)와 서진연 홍지희(사진제공=오디컴퍼니)“제가 윤이선을 연기하면서 중점을 두는 건 오롯이 사랑이에요. 윤이선이 생각하는 서진연에 대한 마음이 어느 정도일까를 가장 많이 고민했던 것 같거든요. 표면적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건 사실 오페라죠. 꿈에 대한 이야기고 희망과 간절함, 절실함 등이 표현돼요. 하지만 결국 사랑도 그 꿈 안에 있는 것 같아요. 오페라라는 꿈을 더 간절하고 행복하게 꿀 수 있었던 이유는 서진연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그런 순간들이 더 많이 담길 수 있도록 여전히 노력 중”이라는 그는 “홍지희 배우는 가장 단단한 서진연, 박지연 배우는 가장 단단해 보이지만 유약한 면이 많은 서진연 그리고 그 중간이 김지현 배우의 서진연”이라고 표현했다.“홍지희, 박지연, 김지현, 이 세 서진연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합니다. 서진연이, 그를 연기하는 세 배우가 제 영감이에요. 영감이 둥둥 떠다녀요. 진짜 살아 있는 영감이죠. 그래서 너무 행복해요.”그에게도 윤이선의 서진연과도 같은 존재는 있다. 망설임도 없이 “엄마, 형, 형수님, 조카들, 저희 가족”이라 답한 그는 “너무 당연한,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 강조했다.“너무나 당연하지만 이들이 없으면 와르르르 무너지잖아요. 그래서 가족은 저의 원동력이자 기둥이자 삶의 바탕이죠. 더불어 친구들, 사람들…제가 사랑하는 소중한 사람들과 소중한 순간들을 더 나누고 싶어요.”그는 “윤이선이 극 중에서 형을 그리워하고 우러러 보는 것처럼 저 역시 그렇다”며 “저희 형한테는 다 줄 수 있고 너무너무 사랑하는 존재라 윤이선이 형을 떠올릴 때마다 형과의 순간들이 떠올랐다”고 털어놓았다.뮤지컬 ‘일테노레’ 윤이선 역의 홍광호(왼쪽)와 서진연 김지현(사진제공=오디컴퍼니)“윤이선이 형을 떠올리는 넘버를 부를 때 저에게 형이 없다고 생각하면 더 슬프고 감정이입이 되고 했어요. 저희 형도 공부를 엄청 잘했고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했던 사람이에요. 그렇다고 부담감에 휩싸여 있거나 압박감을 갖고 막 괴로워한다기 보다는 해낼 수 있게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저와 저희 형과 같았죠.”윤이선으로 번갈아 무대에 오르고 있는 박은태와 홍광호에 대해서는 “귀감이 된 존재”라며 “서로 정말 많이 의지하고 도움을 주면서 함께 작품을 만들어 온 사람들”이라고 밝혔다.“박은태 형님은 제일 통통 튀고 홍강호 형님은 굉장히 무게감이 있고 그 와중에 또 엄청 귀엽기도 해요. 저는 진짜 모르겠어요. 너무 안정적이고 특징있는 두 형님을 보면서 처음엔 ‘망했다’ 생각한 적도 있어요. 그래도 막연하게 ‘나는 내 색깔이 있어’라고 버티다 깨달았죠. 그냥 주어진 안에서 최선을 다한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게 아니라 노력의 기준점을 좀 더 높여야 한다는 걸요.”그렇게 “노력이라는 단어의 기준치를 높여 더 많이 배우고 더 넓게 바라보고 더 많은 걸 습득하면서 차근차근 다시 쌓아가보자 라는 생각으로 천천히 자존감과 자신감을 되찾았다”며 “결국 사람들을 보고 자극 받아 지금까지 온 것 같다”고 고백했다.뮤지컬 ‘일테노레’ 윤이선 역의 박은태(오른쪽 아래부터 시계반대방향으로), 서진연 박지연, 이수한 전재훙(사진제공=오디컴퍼니)“제 주변이 다 그래요. 2, 3년 간 혼자 활동하다 외로울 찰나 저희 (김)준수 대표님이랑 대기실에서 얘기하다가 (팜트리아일랜드에) 소속되면서 더 행복해졌어요. 김준수라는 사람이 얼마나 대단하고 좋은 사람인가를 알게 됐고 저희 가족들인 (손)준호형, (김)소현·(정)선아 누나, (진)태화형까지.”◇더 할 나위 없는 지금 “늘 무대 위 진실된 순간들을 꿈꿔요”“특히 과거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 물론 그 과거가 제 인생의 영양분이고 지금의 저를 만들었죠. 하지만 지금에 집중하면서,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면 안되니 30% 정도는 자력으로 살아남을 수 있게끔 미래에 대한 대비도 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저희 어머니가 늘 말씀하시듯 ‘인생은 마라톤’이니까요. 천천히 행복하게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하면서 미래를 바라보며 걸어가고 싶어요.”인터뷰 내내 “행복하다”는 말을 마침표처럼 되뇌던 17년차 배우 서경수는 “지금을 놓칠까봐 과거도, 미래도 많이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라고 털어놓았다. 최근 몇년 간 TV나 영화, OTT 등 다양한 매체로 활동영역을 넓혀가는 배우들이 늘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뮤지컬에서도 배워야할 게 아직도 많아서 여력이 없다”고 밝혔다.“아직도 뮤지컬 오디션을 처음 봤을 때를 생각하면 아찔하거든요. 낯선 환경,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의구심이 커서 도전하지 못하는 게 커요. 예전처럼 ‘뮤지컬만 할 거야’는 아니에요. 기회가 주어진다면 또 모르죠. 하지만 전 여전히 무대가 너무 좋아요. 노래도 너무 좋아하고 춤도 너무 좋아하고 연기도 할 수 있고…무대 위에서 라이브로 하는 것도 너무 좋아요.”서경수는 ‘일테노레’를 하면서 “어떤 것도 안보려고 한다”며 “보시면서 정말 좋은 작품이다. 그리고 동료들끼리 정말 행복하게 공연하는 게 느껴진다. 그냥 이거면 충분한 것 같다”고 전했다.뮤지컬 ‘일테노레’ 윤이선 역의 서경수(사진제공=오디컴퍼니)“윤이선을 하면서 더 선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윤이선으로 살면서 제 스스로가 믿어지지 않는 순간들이 몇 번 있었거든요. 윤이선은 안했을 것 같은 행동들 등에 변화가 생겼죠. 무대 위에서만, 껍데기만 달라지는 게 아니라 진짜 일상에서 변화해야 겠다는 생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이는 그가 무대를 대하는 자세와도 맞닿아 있다. 그는 “어떤 무대든 다 똑같다. 진실된 순간이 찾아올 수 있게끔 단 하나도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일념 하에 무대에 오르고 있다”고 털어놓았다.“죽을 때까지, 항상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이잖아요. ‘이 정도면 됐지’라는 마음을 떨쳐내고 계속 발전해 나가면서 무대 위에 생명력이 존재하게끔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해요. 지금처럼 차츰차츰 성장하면서 동료들과 진실된 순간을 같이 한번 만들어 나가자, 그거면 충분합니다. 더 할 나위가 없어요.”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5-17 18:00 허미선 기자

[B그라운드] 현대인들의 하수구 같은 욕망들, 어쩌면 오컬트! 양정웅 연출, 황정민의 연극 ‘맥베스’

연극 ‘맥베스’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뱅코우 역의 송일국(왼쪽부터), 레이디 맥베스 김소진, 맥베스 황정민, 양정웅 연출(사진제공=샘컴퍼니)“제가 고전극을 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어릴 때 선배님들이 하던 고전극들을 보고 자라고 공부하면서 정말 기본이라는 걸 배웠기 때문입니다. ‘맥베스’는 그 의미가 함축돼 있는 작품이죠. 그래서 우리 후대들이 해석하고 공부할 거리가 너무 많아요. 그래서 한번 해보고 싶었습니다.”‘오이디푸스’ ‘리차드3세’에 이어 ‘맥베스’(Macbeth, 7월 13~8월 18일 국립극장 해오름)로 무대에 돌아올 황정민은 10일 서울 중구 소재의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고전의 힘을 강조했다. 더불어 “관객들에게도 고전극들이 정말 재밌고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게 우리가 하자 했다”고 전했다.연극 ‘맥베스’ 맥베스 역의 황정민(사진제공=샘컴퍼니)황정민은 맥베스라는 인물에 대해 “한 마을의 영주였는데 ‘당신이 왕이 된다’는 그 말도 안 되는 예언에 현혹돼 탐욕과 욕망의 끝으로 가는 인물”이라며 “그냥 구청장이었는데 대통령이 되려는 인물”이라고 비유했다.“그 탐욕의 끝으로 내달리며 결국 자기 무덤을 파게 되는, 죽음을 앞에 두고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는 인물이죠. 몇백년 전에 셰익스피어라는 사람이 요즘에 나와도 될 법한 얘기를 써서 관객들과 소통했다는 게 신기하고 지금까지 계속 화두가 된다는 게 할수록 재밌습니다.“‘서울의 봄’ ‘아수라’ 등에서 욕망의 끝으로 내달리는 인물들을 연기해온 황정민은 “맥베스로서는 또 다른 욕망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하면할수록 어렵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다”며 “어떤 식으로 관객들한테 보여줄지 저 역시 스스로한테 기대 중”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희곡을 바탕으로 한 ‘맥베스’는 스코틀랜드의 장군 맥베스(황정민)가 ‘왕이 될 것’이라는 마녀들의 예언에 현혹돼 권력을 좇다 파국에 이르는 여정을 담고 있다. 그 여정에는 레이디 맥베스(김소진)의 부추김, 덩컨 왕(송영창)을 비롯해 위협이 되는 뱅코우(송일국), 맥더프(남윤호)와 그 가족들을 몰살하는 광기 그리고 그들에 대한 죄책감과 두려움들이 함께 한다.‘파우스트’ ‘오이디푸스’ ‘리차드3세’ ‘로미오와 줄리엣’ ‘해롤드 앤 모드’에 이은 샘컴퍼니의 6번째 연극 ‘맥베스’는 ‘파우스트’ ‘코리올라누스’ ‘페리클래스’ ‘로미오와 줄리엣’ ‘해롤드 앤 모드’ 등의 양정웅 연출작으로 ‘오셀로’ ‘레드’ ‘가족이라는 이름의 부족’ 등의 여신동 무대미술 및 조명디자이너가 힘을 보탠다.칼을 휘두러 정적들을 몰살시키며 왕관을 차지한 맥베스와 그를 부추긴 레이디 맥베스를 시각화한 포스터는 이와이 슌지가 극찬한 세계적인 아트 디렉터 요시다 유니 작품이다. 세계적인 아트 디렉터 요시다 유니의 작품인 연극 ‘맥베스’ 포스터(사진제공=샘컴퍼니)양정웅 연출은 ‘맥베스’에 대해 “20년만에 도전하는 작품”이라며 “셰익스피어스러운 아름다운 대사와 압축된 완성도를 내는 이 마지막 비극을 전통에 가깝게,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으면서도 현대적인 미장센과 함께 멋있게 만들어 볼 예정”이라고 밝혔다. “욕망의 끝으로 달려가는 인물들, 그 욕망의 끝을 통해 얻어지는 상실감과 죄책감 그리고 양심의 문제 등 인간의 원형을 너무 잘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죠. 현대인 역시 그렇게 유사한 욕망들과 죄책감, 양심의 문제 속에서 얼마나 허덕이는지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많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제 삶을 또 반추하면서 셰익스피어의 언어와 문학적 수사,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인간 본성의 표현들을 잘 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연극 ‘맥베스’ 양정웅 연출(사진제공=샘컴퍼니)이어 무대에 대해 “여신동 감독과 매 장면 시그니처가 될 수 있도록 시각적인 장면들을 연구 중”이라며 “굉장히 현대적인 비주얼로 꾸미고 있다”고 귀띔했다.“맥베스만의 욕망을 가득 모아놓은 창고처럼 현대적인 분위기를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폐허 속 하수구 같은 기괴한 공간, 마녀와 어마어마한 유령의 등장 등 장르로 치면 오컬트입니다. 오컬트적이고 판타지적인 요소들로 현대인들의 하수구 같은 욕망들을 표현해보고자 합니다.”올 여름에는 양정웅 연출, 황정민, 김소진, 송일국 등의 ‘맥베스’를 비롯해 동아연극상 수상자이자 대한민국 연극계의 산 역사와도 같은 배우들 24명이 의기투합한 손진책 연출의 ‘햄릿’(6월 9~9월 1일 홍익대학교 대학로아트센터 대극장), 세계적인 연출가 사이먼 스톤과 전도연, 박해수 등의 ‘벚꽃동산’(6월 4~7월 7일 LG아트센터 서울 시그니처홀) 등 대극장 연극들이 관객들을 만날 채비에 한창이다.치열한 여름 대극장 연극 열전에 대해 황정민은 “늘 부담이 있다”면서도 “근데 중요한 건 연극이라는 작업은 오히려 저 개인에게는 힐링의 시간이고 공간이라는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저한테는 너무너무 행복한 시간이에요. 물론 영화를 찍을 때도 행복해요. 하지만 결이 다른 것 같거든요. 오롯이 배우로서 힐링하고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느낌은 다르니까요. 늘 부담을 느끼면서도 관객분들을 빨리 만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담이 좀 덜 되기도 하죠.”송일국은 연극하는 소감에 대해 “오늘 제작 발표회를 하는 이 장소(국립극장 하늘극장)가 제가 첫 연극을 했던 장소다. 제 배우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라며 “제가 봤던 작품 중 인생작이 2016년 우리 ‘맥베스’가 공연될 해오름 극장에서 했던 ‘햄릿’이었다”고 털어놓았다.“(김성녀·박정자·손봉숙·손숙·유인촌·윤석화·전무송·정동환·한명구) 선배 배우들이 빈 객석을 등지고 서 있는 마지막 장면에 제가 목 놓아 울었어요. 그 배우들이 살아온 삶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어요. 배우만 느낄 수 있는 그 감정이 있거든요. 빈 객석을 바라봤을 때의 두려움, 설렘, 긴장감 등 그 짧은 시간에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이 지나가면서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런 무대에 제가 발을 디디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설레고 영광스럽습니다.” 연극 ‘맥베스’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뱅코우 역의 송일국(왼쪽부터), 레이디 맥베스 김소진, 맥베스 황정민(사진제공=샘컴퍼니)황정민은 제작발표회 말미 지난 3월 15일 폐관한 학전과 김민기에 대한 애끓는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1994년 학전의 ‘지하철 1호선’으로 데뷔해 지금까지 배우의 길을 걸어왔다. 그는 “제가 지금까지 열심히 일하며 허투루 하지 않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 학전”이라며 “얼마 전 TV 프로그램(SBS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에 나왔듯 (김민기) 선생님은 늘 스스로를 ‘뒷것’이라 얘기하셨다. 그런 겸손함을 배워왔기 때문에 샘컴퍼니에 소속된 젊은 후배들을 열심히 뒷바라지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얘기를 잘 안 하려고 해요. 그래서 SBS 다큐멘터리도 안봤어요. 마음이 너무 아파서 못 보겠더라고요. 하지만 결과가 그렇게 된 거니 어쩔 수 없는 거고 선생님의 그 정신을 제가 계속 잘 품고 있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5-11 17:30 허미선 기자

[B그라운드] 살아 있지만 죽은, 죽은 채로 살아 있는 사령들의 연극 ‘햄릿’, 삶에 대한 철학적 고찰

연극 ‘햄릿’ 출연진과 창작진(사진제공=신시컴퍼니)“지난번에는 죽음을 바라보는 인간의 내면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엔 살아 있는 채로 죽어 있는 또 죽은 채로 살아 있는 듯한 비존재의 존재인 사령들의 연극으로 만들어 봤습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 자체가 모호하기 때문에 그 미로 속을 배우들과 잘 해치면서 만들고 있죠.”손진책 연출은 24명의 배우들과 한창 준비 중인 연극 ‘햄릿’(6월 9~9월 1일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연극 ‘햄릿’ 손진책 연출(사진제공=신시컴퍼니)“삶과 죽음은 하나라는 생각으로 그 경계를 한번 더 적극적으로 허물어보자 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배우들을 사령들처럼 연결하고 무당 개념의 배우 1, 2, 3, 4가 건너와 그들을 보게 했죠. 그만큼 삶을 어떻게 진지하게 살아야 하는지를 추궁함으로서 삶을 반추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이어 손 연출은 “진실을 묵살하고 비겁하게 산다면 그건 살아도 죽은 거고 곧바로 죽음을 맞을지언정 진리를 따르며 제대로 존재하는 것이 사는 것”이라며 “진실을 비겁하게 외면하지 않고 떳떳하게 살아남는 사르트르 식 실존주의의 원형을 풀어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연극 ‘햄릿’ 포스터(사진제공=신시컴퍼니)“삶과 죽음의 경계를 자유스럽게 넘나들 수 있는 건 예술밖에 없습니다. 삶과 죽음에 경계가 없다면 삶 자체가 다시 보이지 않을까, 그래서 어쩌면 인간이 어떻게 삶을 극복하고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해보고 싶었어요.”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햄릿’은 2016년 이해랑 연극상 수상자 9명(김성녀·박정자·손봉숙·손숙·유인촌·윤석화·전무송·정동환·한명구, 이하 시즌합류·가나다 순)의 배우가 론칭해 2022년 햄릿 강필석과 오필리어 박지연을 영입한 데 이어 또 다시 공연을 준비 중이다.지난 시즌 함께 한 강필석과 김성녀·박정자·손봉숙·손숙·전무송·정동환·김명기·길해연·이호철에 햄릿 역에 이승주, 오필리어 역에 f(X) 루나 그리고 김재건·길용우·남명렬·박윤희·박지일·양승리·이충주·이호재·이항나·전수경·정경순·정환이 새로 합류했다.손진책 연출은 강필석과 이승주의 햄릿에 대해 “외향적 사유형과 내향적 사유형, 아폴론과 헤르메스적인 인물”이라고 표현했다.“니체가 (1872년 출판해 바그너에게 헌정한) ‘비극의 탄생’(Die Geburt der Tragodie aus dem Geiste der Musik)에서 아폴론적 인물과 헤르베스적 인물로 분류합니다. 이를 빌자면 외향적 사유형의 강필석은 아폴론적 인물이고 내향적 사유형인 이승주는 헤르메스적인 햄릿이 아닐까 생각합니다.”더불어 박철호 드라마트루기의 말을 빌어 강필석은 “그리스 조각같은 햄릿” 그리고 이승주는 “슬픈 코러스의 선율이 흐르는 햄릿”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리곤 “강필석 배우는 대사의 파워나 정교함이 그리스 조각을 보는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면 이승주 배우는 슬픈 코러스의 노래를 연상시키는 햄릿”이라고 부연했다.연극 ‘햄릿’의 햄릿 역 이승주(왼쪽)와 강필석(사진제공=신시컴퍼니)2016년 초연부터 세 번째까지 함께 하고 있는 손숙은 “이 작품을 하면서 고전의 힘이라는 게 이렇게나 크다는 걸 새삼스레 느끼고 있다”며 “너무 무궁무진해서 세번을 했지만 50%나 이해했나 싶을 정도”라고 털어놓았다.“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런 세계들이 있다는 것 그래서 고전은 하면할수록 재밌고 깨달아 간다는 느낌입니다. ‘햄릿’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이야기 같아요. 여기 등장하는 모든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 하나하나를 보는 재미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5-10 21:17 허미선 기자

[비바100] 익숙하지만 낯선, 가장 비극적인 결말로 가는 지금! 매튜 본의 ‘로미오와 줄리엣’

매튜 본의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장면.(사진제공-LG아트센터)“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제가 앞으로 선보여야 할 작품으로 자주 언급되곤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 작업을 꽤 오랫동안 미뤘죠. 오페라, 발레, 영화, 공연 등 다양한 매체에서 이미 많이 다뤄진 작품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언젠가는 이 놀라운 프로코피예프 음악을 기반으로 (제 댄스컴퍼니) 뉴 어드벤처스만의 작품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죠.”세계적인 안무가 매튜 본(Matthew Bourne)의 말처럼 영국 거장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로미오와 줄리엣’(Romeo and Juliet)은 다양하게 창작되고 변주되며 소비돼 왔다. 한국은 물론 전세계 곳곳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은 끊임없이 무대에 올려지고 변주되는 작품이다. 하지만 그 주체가 매튜 본일 때는 좀 다른 기대를 가지게 된다. ‘로미오와 줄리엣’ 안무가 매튜 본.(사진제공=LG아트센터)“해답은 간단했습니다. 젊은 무용수들, 모든 부문의 젊은 창작자들에게 초점을 맞춘 프로젝트를 만들었죠. 어린 두 남녀가 겪는 궁극의 첫사랑을 그린 작품을 만들기 위해 젊은 세대의 말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재능과 그들의 시각에서 영감을 얻어야 했어요. 새로운 세대를 위한, 또 새로운 세대에 관한 ‘로미오와 줄리엣’이죠.” 매튜 본은 남성무용수들로만 표트르 차이콥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의 ‘백조의 호수’(The Swan Lake)를 꾸리고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현대적 뱀파이어 이야기로, 오페라 ‘카르멘’은 자동차 정비소를 배경으로 한 ‘카 맨’으로 변주하는 등 고전을 혁신적으로 재해석하며 명성을 쌓아온 안무가다. ‘백조의 호수’ ‘카르멘’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비롯한 ‘호두까기 인형’ ‘신데렐라’ ‘레드 슈즈’ 등 고전은 물론 동명 영화를 바탕으로 한 ‘가위손’, 뮤지컬 ‘올리버’ ‘메리 포핀스’ 등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영국 최고 권위의 올리비에 어워드 최대 수상자(9회)이자 미국 토니상 최우수 안무가상, 최우수 연출가상 등 40여개의 글로벌 시상식 수상자로 이름이 불렸다. 매튜 본의 ‘로미오와 줄리엣’ 포스터(사진제공=LG아트센터)“셰익스피어 작품에서 셰익스피어를 들어내는 작업”의 연속이었던 ‘로미오와 줄리엣’(5월 8~19일 LG아트센터 서울 시그니처홀)은 셰익스피어 작품의 정수로 여겨지는 시에 가까운 ‘대사’ 보다 음악에 집중한 작품이다. 작곡가 테리 데이비스와 15인조 앙상블이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Sergei Prokofiev)가 남긴 51개의 오리지널 스코어 중 30곡을 추려 순서를 재배치고 5곡의 신곡을 추가해 변주한다. “저에게는 프로코피예프의 믿을 수 없는 악보가 있었어요. 정말 현대적인 영화음악과도 같고 많은 부분에서 환상적인 댄스음악이죠. 그 음악을 대본으로 활용했어요. 셰익스피어의 원작처럼 첫사랑이 서사의 중심이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지만 그대로 따라가지는 않습니다. 현재 혹은 근미래를 배경으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결말로 가는 곳곳에 예상치 못한 놀라움이 숨어있죠.”원작에서 원수 집안의 자녀로 파티에서 운명적으로 만나 사랑에 빠졌던 로미오와 줄리엣은 ‘문제아’로 낙인찍힌 청소년들을 ‘교정’이라는 명분 아래 감금하는 상상의 공간 ‘베로나 인스티튜트’에서 조우한다. 새하얀 타일로 둘러싸여 경비원들의 규율과 통제가 삼엄한 베로나 인스티튜트에 대해 매튜 본은 “이곳은 소년원일까요? 학교? 감옥? 병원? 아니면 모종의 잔혹한 사회 실험이 자행되고 있는 곳? 이는 관객들의 몫으로 남겨뒀다”고 밝혔다.“공연의 배경은 ‘그리 멀지 않은’ 미래의 어떤 지점으로 특수한 역사적 배경이나 맥락도 없습니다. 어쩌면 이 청년들이 갇힌 이유는 그들이 사회가 장려하는 가치에 순응하지 않아서가 아닐까요? 전복적으로 보이는 행위를 ‘정상화’하기 위해 또는 부모에게 창피한 존재여서 그 곳으로 보내진 것은 아닐까요?”이처럼 상징적인 베로나 인스티튜트를 배경으로 어린 연인의 비극적 로맨스와 더불어 약물중독, 트라우마, 우을증, 학대, 성 정체성 등 현대 젊은 세대가 맞닥뜨린 갈등과 혼란을 담는다. 매튜 본의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장면.(사진제공-LG아트센터)“뉴 어드벤처의 ‘로미오와 줄리엣’에는 때로 보기 힘든 장면들이 있습니다. 특히 줄리엣의 참혹한 이야기가 그렇죠. 하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현실과 그 비극적 결과를 직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매우 심각하고 현대적인 주제들을 정직하게 다루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죠. 이 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 것이 놀랍지 않을 만큼 추하고 유혈이 낭자하고 원초적입니다.”이는  죽음도 갈라놓지 못한 순정, 극단적 선택, 여성을 대하는 방식 등 지금 시대에 자칫 오해하기 쉬운 이야기의 변주 이유기도 하다. 그가 “그 어떤 버전보다도 비극적이며 어쩌면 원작보다 가슴이 미어질지도 모를” 변주를 통해 “자신 안의 악마와 싸우는 강한 줄리엣, 경험이 부족하고 별난 로미오, 동성 커플, 감정적 깊이가 있는 악당 그리고 폭력과 그 결과에 대한 진실된 묘사”가 탄생했다.로미오 역의 파리스 피츠패트릭(Paris Fitzpatrick), 로리 맥클로드(Rory MacLeod), 잭슨 피쉬(Jackson Fisch)와 줄리엣 모니크 조나스(Monique Jonas), 브라이어니 페닝턴(Bryony Pennington), 한나 크레머(Hannah Kremer) 등 매튜 본의 ‘로미오와 줄리엣’에는 젊은 무용수들이 대거 발탁됐다. 이에 대해 매튜 본은 “그들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진심으로 듣고 싶었다”며 “오늘날 세계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과 젊은이들만이 가져올 수 있는 에너지와 통찰력을 원했다”고 이유를 밝혔다.매튜 본의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장면.(사진제공-LG아트센터)매튜 본은 가장 좋아하는 장면으로 ‘역사상 가장 긴 키스신’이 포함된 ‘발코니 듀엣’과 마지막을 꼽았다. 발코니 듀엣에 대해 매튜 본은 “캐릭터들이 진정한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첫 순간”이라고 전했다. “젊은 사람들이 사랑에 빠질 때는 매우 강렬해요.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그 젊은 감정과 흥분을 포착해 관객들이 청소년 시절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를 기억하기를 바랐습니다. 첫사랑은 때때로 어색하고 탐구와 발견의 흥분으로 가득하죠. 서로에게서 한 순간도 손을 떼지 못하고 끝없이 서로를 더듬으며 첫 키스로 나아가잖아요.”이에 “볼이나 입술에 가볍게 입 맞추는 흔한 방식이 아닌 도전적인 안무를 선보이고자 무용 역사상 가장 긴 키스신을 만들었다”며 “두 사람이 영원히 끝나길 원치 않는 순간, 관객들 모두가 간직한 그런 청춘의 추억을 포착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매우 생생하고 충격적인 장면”이라는 마지막 장면에 대해서는 “플롯에 큰 반전을 가미한 비극적인 사건들이 펼쳐진다. 지극히 현실적이며 깊은 감동을 준다”고 귀띔했다.매튜 본의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장면.(사진제공-LG아트센터)익숙한 고전의 재해석으로 무용은 어렵다는 편견을 깨는 데 힘을 쏟아온 그는 “많은 이들이 일종의 비밀 언어를 이해하거나 많은 정보를 미리 읽지 않으면 이야기를 따라갈 수 없을 것이라고 두려워한다. 하지만 저의 작업 방식은 사전 지식 없이도 따라갈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제 일이에요. 관객도 그들의 본능을 믿어야 합니다! 옳고 그름은 없어요. 각 개인이 보는 것뿐이죠.”LG아트센터를 시작으로 부산 드림씨터어(5월 23~26일) 그리고 중국 상하이, 베이징, 광저우, 타이베이, 가오슝 등 투어 후 매튜 본은 여름 뮤지컬 ‘올리버!’의 새로운 프로덕션 연출과 하반기 새로운 캐스트들과 꾸릴 ‘백조의 호수’로 행보를 이어간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5-08 18:30 허미선 기자

[비바100] ‘천개의 파랑’ 박천휘 작곡가 “0과 1로 이뤄진 세상, 천천히 그리고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

‘천개의 파랑’ 작곡가 박천휘(사진제공=서울예술단)“제가 제일 처음 만든 곡이 콜리의 노래였어요. 소설 속에서 콜리가 세상에 처음 눈을 뜨는 순간이죠. 콜리는 칩이 잘못 끼워져 학습기능이 있는, 다른 로봇들은 1000개 단어밖에 모르는데 얘는 그 이상을 알고 싶어하는 로봇이에요. 그런 콜리가 다른 로봇들과 같이 화물차를 타고 가다가 처음으로 하늘을 보고는 ‘찬란하다’라는 말을 하는 장면이 있어요. 그 장면을 노래로 만든 넘버죠.”‘천개의 파랑’(5월 12~26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의 박천휘 작곡가는 “넘버를 쓸 때 순서에 상관없이 제일 잘 보이는 것, 제일 정확하게 보이는 것부터 쓴다. 그러면 나머지 곡들도 블록처럼 끼워 맞춰지기 시작하기 때문”이라며 “이 작품에서는 바로 이 장면이었다”고 밝혔다.“이 곡을 제일 먼저 쓰면서 고민은 로봇이 노래를 한다는 자체였어요. 과연 어떤 목소리로 노래할 것인지,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가 가장 큰 과제였어요. 전자음악을 하긴 해야하는데 로봇처럼 딱딱한 노래나 디지털 음악, 사이버 음악이어야 하나…(노래를) 안할 수는 없는데 어느 정도로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죠.”◇로봇 콜리가 처음 본 세상, 0과 1 그리고 ‘도’ ‘레’‘천개의 파랑’ 포스터(사진제공=서울예술단)“그렇게 고민하다가 생각난 게 0과 1이었어요. 이제 막 눈을 뜬 로봇인 콜리에게는 다 0과 1일 거예요. 그래서 음계의 시작점인 ‘도’ ‘레’로 음악을 만들어봐야겠다 했죠. 사실 ‘도’ ‘레’만은 아니에요. 도미, 도파, 레파 등 그 위에 ‘미’ ‘파’도 짚었으니 정확한 의미의 ‘도’와 ‘레’만은 아니죠. 사실은 굉장히 많은 것들이 있지만 딱 두 개 음만을 가지고 왔다갔다는 하는 것처럼 구현된달까요.”이는 ‘뱀프’(Vamp)라는 작법으로 심플한 리듬 패턴을 반복해 멜로디 라인을 구성하는 방식이다. 박천휘 작곡가는 “그 부분이 노래 전체에 계속 나오며 지배한다”며 “반복되는 모티프가 지배하는 건데 ‘천개의 파랑’에서 0과 1이 모티프”라고 부연했다.“모든 곡을 쓸 때의 제 스타일이에요. 맨 앞에 있는 단순한 2~4마디 정도의 반주를 만들고 그 위에서 모든 걸 해보죠. 모티프적인 작곡인데 그 모티프는 인물의 감정이 핵심입니다. 콜리가 노래를 하기 위한 감정의 핵심은 무엇일까 고민했죠. 얘는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세상을 처음 봤어요. 흔들리는 차 안에서 본 하늘도 같이 흔들렸을 거예요.”그 흔들림과 그런 하늘을 보면서 느꼈을 콜리의 흥분된 상태 등을 음악으로 표현하기 위해 떠올린 모티프가 디지털의 이진법을 구성하는 숫자 0과 1이었다. 이 모티프는 박천휘 작곡가의 표현대로 “콜리의 노래 뿐 아니라 이후의 다른 곡에서도 모티프로 사용하는 식으로 인물들의 인과성을 만들고 서로를 연결시키는 일종의 퍼즐놀이”다.“뮤지컬 음악은 결국 연결돼요. 반복을 왜,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죠. 극적인 상황이 달라짐에 따라 같은 음악이 어떻게 반복되는지를 계산하는 게 뮤지컬 작곡의 핵심이라고 저는 생각하는 것 같아요.”‘천개의 파랑’은 펜타곤 진호와 오마이걸 효정의 뮤지컬 데뷔작이기도 하다. 왼쪽부터 연재 역의 서연정·효정, 콜리 진호·윤태호(사진제공=서울예술단)‘천개의 파랑’ 뿐 아니라 그가 넘버를 꾸린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작은 아씨들’ ‘트레인스포팅’ 등 역시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렇게 반복되는 멜로디와 속도의 변화로 변주되는 넘버들의 핵심은 오롯이 인물의 감정, 상황의 변화다. “이 작품은 콜리가 추락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해 추락으로 끝나요. 빨리 달려야만 하지만 다리가 아픈 투데이를 위해 스스로 추락하는 걸 선택하죠. 맨 마지막에 그 첫 추락이 또 나와요. ‘천개의 파랑’에서 보여주는 3번의 추락을 음악적으로 어떻게 다르게 보여줄까 고민이 많았어요. 반주 형태가 다를 뿐 멜로디는 같아요. 떨어지는 추락의 순간은 찰나잖아요. 그 찰나의 순간에 콜리는 하늘을 봐요. 처음처럼. 마지막으로 보는 것도 하늘이고 이 아이가 보는 그 순간을 아름답게 표현하기 위해서 그 주변의 음악을 만드는 거죠.”‘천개의 파랑’ 박천휘 작곡가(사진제공=서울예술단)◇영상과 퍼펫의 조화로 엮어낼 인간과 로봇, 동물의 연대 “제가 여태까지 했던 작품 중 가장 위험한 작품인 걸 처음부터 알았어요. 제 의도들이 음악적 반복, 변주 등을 통해 얼마나 잘 표현될지 저도 기대 중입니다.”박천휘 작곡가가 이렇게 밝힌 ‘천개의 파랑’은 천선란 작가의 동명소설을 서울예술단이 무대화한 작품이다.펜타곤 진호와 오마이걸 효정의 뮤지컬 데뷔작으로 박천휘 작곡가를 비롯해 김태형 연출, 김한솔 작가, 김혜림 안무가, 박동우 무대디자이너, 고동욱 영상디자인, 이지형 퍼펫디자이너 등이 의기투합했다.‘천개의 바랑’에서 퍼펫은 “로봇을 표현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박천휘 작곡가는 “콜리가 로봇처럼 보이는 순간 이 작품의 맛이 안 살 것”이라며 “SF장르로 정확하게 가버리는 순간 뮤지컬로는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SF와 뮤지컬은 상극인 장르거든요. 뮤지컬은 노래를 한다, 서정적인 정서를 표현한다는 약속이 있는 판타지인 반면 SF는 영화 등의 매체에서 실제적으로 구현되는 데 익숙한 장르거든요. 그래서 SF라는 장르에 집착하는 순간 노래를 하면 안되게 돼버려요. 그래서 퍼펫이 적절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사실 이 작품의 장르는 SF가 아닌 것 같아요.”빠르게 기술들이 진보하는 미래, 경마장에도 사람들이 다칠까 혹은 무거워 한껏 달리지 못하는 말들이 더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도록 휴머노이드 기수가 도입됐다. 더불어 화재 진압을 위해 인간대원들의 안전장비 보다는 로봇들에 더 많은 예산을 쏟아 붓는 시대를 배경으로 그 기술들과 미래가 배제하고 지나쳐버림으로서 희미해진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다.‘천개의 파랑’ 연습현장(사진제공=서울예술단)한때는 최고 몸값을 자랑했지만 관절을 심하게 다쳐 빨리 달릴 수 없게 된 경주마 투데이, 누군가의 우연과 실수로 인지학습능력 칩이 장착돼 투데이의 고통이 느껴져 스스로 낙마하는 통에 하반신이 부서져 버린 휴머노이드 기수 콜리(윤태호·진호, 이하 가나다 순), 로봇 분야의 천재지만 넉넉지 않은 집안사정으로 꿈을 접어야만 하는 연재(서연정·효정), 어릴 적 병으로 장애를 갖게 돼 휠체어를 탄 은혜(송문선), 낡은 방화복 차림으로 화재현장에 출동했다 죽음을 맞은 남편에 대한 애도를 끝없이 반복하는 은혜와 연재의 엄마 보경(김건혜)….소외되고 상처입고 약해진 이들이 하반신이 부서진 채 버려진 콜리, 안락사를 당하기 직전의 투데이와 깊은 교감을 나누면서 연대하는 이야기다. 마냥 슬플지도 모를 상황에 처한 이들의 이야기지만 ‘천개의 파랑’은 때로는 쾌활하고 또 때로는 밝다. 미래의 이야기지만 차갑기 보다는 온기가 스며있기도 하다. ‘천개의 파랑’ 콜리 역의 진호(왼쪽)와 연재 효정(사진제공=서울예술단)“로봇인 콜리의 음악이 처음에는 되게 전자음악처럼 시작해요. 그 아이가 알고 있는 1000개의 단어들을 뱉어내는 자체도 한음의 멜로디를 쓰죠. 반주는 화려하지만 얘가 부르는 노래는 처음엔 진짜 로봇처럼 시작해요. 그리곤 바로 되게 서정적인 노래가 나와요. 콜리가 말을 달리면서 느끼는 감정들이 변주되죠.”투데이와 함께 하는 기쁨에 쓰이는 멜로디가 고통의 노래로도 변주되는 음악에 대해 “전자적인 요소와 인간적인 요소를 모두 써서 표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마지막 경주에서만큼은 가장 인간적인 합창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부연했다.“오히려 가장 아날로그스러운 사람의 목소리 합창이 위주가 된 그런 노래로 마지막 콜리와 투데이의 경주, 말에서 추락하는 콜리를 표현하고 있죠. 모든 음악이 세 번째 나오는 콜리의 추락, 그 한 순간을 위해 달려가는 느낌이에요. 그 한 순간의 꼭짓점을 위해 모든 음악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 순간 콜리의 희생에 약간 종교적인 느낌도 나는 것 같아요. 로봇이 희생을 한다는 게 되게 아이러니하잖아요.”극 중에는 크리스마스 합창, 박천휘 작곡가의 표현처럼 “경건하고 웅장한 성가 혹은 크리스마스 음악 느낌을 살린” 장면도 등장한다. “보경이 사고를 당하는 장면에 쓰이는 이 음악은 무반주 느낌의 크리스마스 합창”으로 표현된다. “아이러니죠. 어떻게 보면 가장 성스러운 순간에 보경은 끔찍한 사고를 당해요. (생존율) 3%, 그 가능성 때문에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게 되고 아이들을 얻게 되고 또 그 남자를 잃게 되고 콜리가 서로 미안해서 말하지 못하던 세 모녀의 연결고리가 되는 과정이 한 자리에서 일어나요.”◇단 3%의 가능성,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이 만드는 희망‘천개의 파랑’ 연재 역의 연정(왼쪽)과 콜리 윤태호(사진제공=서울예술단)“사실 ‘천개의 파랑’은 콜리의 눈으로 본 세상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콜리라는 인물 자체가 로봇이라기보다는 그냥 백지장 혹은 아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저는 이 얘기를 처음 보자마자 영화 ‘이티’(E. T)가 떠올랐어요. 아무 것도 모르는 어떤 매개체에 의해 가족이 변하는 이야기, 걔가 건네주는 아무 것도 모르는 순수한 희망 같은 그런 이야기요.”최첨단 기술이 일상이 되고 로봇들이 등장하는, 인간마저도 인간답지 못한 세계에서 희망과 연대를 이야기하는 ‘천개의 파랑’ 음악에 대해 박천휘 작곡가는 “좀 다양한 속도의 음악을 만들려고 했다”고 털어놓았다.“달리는 말, 바쁜 현대인들의 삶 등이 경마라는 걸로 알레고리(말하고자 하는 바를 그대로 드러내지 않고 다른 것에 빗대어 설명하는 방식)화된 작품이라는 생각도 들거든요. 그래서 천천히 달리기, 우리는 천천히 달리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 작품의 중요한 메시지 같아요.”이 메시지는 막바지에 배치된 ‘천천히’에 담긴다. 박천휘 작곡가는 “음악적으로도 같은 테마가 빠르게, 느리게 속도를 달리하며 변화된다”고 전했다. 더불어 킬링넘버로는 콜리의 이름을 지어주는 ‘브로콜리’를, 가장 좋아하는 넘버로는 1막 마지막 곡인 보경의 ‘3%의 가능성’을 꼽았다.‘천개의 파랑’ 작곡가 박천휘(사진제공=서울예술단)“쇼 스토퍼(Show Stopper, 극 진행과 상관없이 화려하고 신나는 장면) 같은 ‘브로콜리’는 C-27이던 로봇이 왜 콜리라는 이름을 가지게 됐는지를 보여주는 넘버예요. ‘콜리’라는 이름이 반복되는, 아예 신나려고 작정하고 쓴 노래죠. 중간에 프로그래밍하면서 복잡한 음악도 나오고 재밌어요.”그가 가장 좋아하는 넘버로 꼽은 ‘3%의 가능성’은 보경 역의 김건혜 서울예술단원이 “노래를 받자마자 다 외워졌다”면서도 “도무지 이어지질 않아서 저는 미쳐가고 있는데 노래는 듣기에 너무 편하고 드라마가 되게 많이 들어 있어서 한동안 멘붕에 빠져 있을 정도”라고 호소했던 곡이기도 하다.“사실 노래라는 건 기본적으로 반복이에요. 모든 노래는 반복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거든요. 반복을 안 하는 음악이라는 걸 별로 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보경의 이 노래를 만들면서는 좀 다르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우리가 살아 있는 매 순간이 이렇게 다 다른데 멜로디를 한번도 반복하지 않으면 어떨까 싶었어요. 그런데 그게 레치타티보(Recitativo) 같지 않고 노래 같이 들리면서도 후크가 되는 딱 한 부분만 반복을 쓰는 노래를 만들어 볼 수 있을까…그냥 또 도발적인 제 질문이었어요.”그는 “멜로디를 일부러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틀어서 조금씩 바꿨다”며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순간이 지나가는 것처럼 뭔가 박자도 엇박이고 음정에도 약간 이상한 도약이 있다”고 설명했다.“이 곡을 쓰면서 많이도 울었어요. 3%의 가능성이지만 가능성이 있다는 건 희망이라고 말하고 있거든요. 희망이라는 건 그런 거잖아요. 사실 연재, 은혜, 보경 등이 투데이에게 주려고 하는 건 겨우 두주의 삶이에요. 근데 그 두주의 삶이 있기에 그 다음에 희망을 걸게 되는 것 같아요. 두주 후에 투데이가 살아날 수도 있잖아요. 작지만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이 희망을 만드는 것이고 그것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천개의 파랑’은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는 이 순간에 대한 이야기죠.”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5-06 18:30 허미선 기자

[비바100]브로드웨이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마크 부르니 연출과 제이슨 하울랜드 작곡가 “화려하게! 섬세하게! 더 비극적으로!”

지난 3월 29일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 개막한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제이슨 하울랜드 작곡가(왼쪽)와 마크 브루니 연울(사진제공=오디컴퍼니)“뮤지컬 ‘위대한 개츠비’를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왜 지금 이 작품을 하냐’였어요. ‘위대한 개츠비’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만들어졌어요. 작품의 배경이 되는 1920년대 사회를 살펴보면서 그들 역시 (1918년 시작된 스페인 독감) 팬데믹 직후였다는 게 눈에 띄었습니다. 그렇게 1920대 상황과 지금이 겹쳐 보이면서 공통점이 굉장히 많다는 걸 발견했죠. 관객들도 두 시대를 비교하면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지금’ 올리게 됐습니다.”작곡가 제이슨 하울랜드(Jason Howland)는 ‘지금’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 3월 29일~4월 24일 프리뷰, 4월 25일부터 본공연 브로드웨이 씨어터)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밝히며 “(관객들이 두 시대를 비교하면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작품의 음악을 만드는 시작점이기도 했다”고 부연했다.한국의 오디컴퍼니 신춘수 대표가 브로드웨이에 올린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중 제이 개츠비 역의 제레미 조던(왼쪽)과 데이지 뷰케넌 에바 노블자다(사진제공=오디컴퍼니)뮤지컬 ‘위대한 개츠비’는 ‘일 테노레’ ‘드라큘라’ ‘데스노트’ ‘지킬앤하이드’ ‘스위니토드’ ‘닥터 지바고’ 등의 한국 제작사 오디컴퍼니가 브로드웨이에 올린 작품이다.2020년 작가진 구성을 시작으로 2021년 대본과 음악 초고 완성, 2022년 내부 리딩에 이은 두 차례의 29시간 리딩과 워크샵, 2023년 뉴저지 페이퍼밀 플레이하우스에서의 월드 프리미어 공연을 거쳐 2024년 3월 29일 브로드웨이에 입성했다.마크 브루니(Marc Bruni) 연출의 설명처럼 “1925년 출간된 F. 스콧 피츠제럴드(F. Scott Fitzgerald)의 아주 유명한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원작으로 한다.”“큰 꿈을 가지고 있는 남자에 관한 이야기죠. 이 원작을 뮤지컬화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것을 이 상징적인 이야기와 결합할 방법을 찾아내는 작업이었습니다.”신흥부자들의 웨스트 에그(West Egg)와 대물림해온 전통적인 부자들이 사는 이스트 에그(East Egg), 마주 보는 두개의 반도가 미묘한 기류를 형성하던 1920년대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한다.지금은 남의 부인이 된 전 연인 데이지 뷰케넌(에바 노블자다 Eva Noblezada)을 되찾기 위해 악착같이 부를 축적해 매주 화려한 파티를 열어 부를 과시하는 제이 개츠비(제레미 조던 Jeremy Jordan)의 이야기다. ‘위대한 개츠비’는 그의 삶을 통해 1차 세계대전 후 찾아온 물질적 풍요 속에 드러나는 미국 사회의 치부, ‘아메리칸 드림’의 실체를 꿰뚫는다.오디컴퍼니 대표인 신춘수 프로듀서에 따르면 ‘위대한 개츠비’는 “프리뷰 첫주부터 ‘밀리언 클럽’(주당 매출 100만불 이상)을 달성했다.” 브로드웨이에서 밀리언 클럽은 극장주와의 계약에서 작품의 폐막 여부를 결정짓는 상징적인 수치이기도 하다.공연예술의 메카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막을 올린 ‘위대한 개츠비’에는 젊은 관객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29일까지(현지시간) 매회차 대부분 티켓이 팔려나갔다.지난 3월 29일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 개막한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제이슨 하울랜드 작곡가(사진제공=오디컴퍼니)“인물들의 내면을 음악으로 밖으로 끌어내는 데 중점을 뒀어요. 더불어 굉장히 화려하고 볼거리가 많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사치스러운 1920년대 파티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 파티와 캐릭터들이 당시에 가지고 있었을 감정의 대비를 염두에 두면서 음악을 썼어요. 화려한 파티와 캐릭터들의 내면이 잘 융화되면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음악이 필요했죠.”제이슨 하울랜드가 전한 이 화려하고 신나는 파티 분위기는 2막 중반부까지 이어진다. 당시를 풍미했던 재즈, 스윙과 현대적인 팝 음악을 매시업해 19인조 라이브 오케스트라가 선사하는 음악, 규범을 거부하는 여성을 지칭하던 플래퍼(Flapper)들이 추는 찰스턴 댄스(Charleston Dance)와 현대적 요소들이 결합한 안무, 관객들의 흥까지 끌어올리는 탭댄스, 스타일리시한 의상 등으로 자아내는 파티 분위기는 브로드웨이의 그 어떤 작품보다 화려하다.지난 3월 29일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 개막한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마크 브루니 연출(사진제공=오디컴퍼니)마크 브루니 연출은 “관객들이 1920년대 파티에 직접 가 있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더불어 이 화려한 파티의 구현은 극 후반에 몰아치는 비극의 극대화를 위한 배치이기도 하다.마크 브루니 연출은 “이 작품은 비극적인 사건의 연속이다. 어둡게 변하는 순간부터는 다시 밝아질 수가 없다”며 “그래서 가능할 때까지 등장인물들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했다”고 전했다.“그렇게 행복했다가 더 이상 행복한 삶을 살 가능성이 사라져버렸다고 생각했을 때부터가 비극의 시작이거든요. 개츠비는 이룰 수 없을지도 모를 꿈과 목표를 위해 계속 노력하고 노력하는, 될 때까지 도전하는 인물입니다. 개츠비 뿐 아니라 등장인물들 모두가 ‘나는 아직도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능한 길게 끌어가다가 비극의 싹을 틔우는 거죠.”이는 이 작품의 바탕에 깔린 아메리칸 드림의 허망함과도 궤를 같이 한다. 마크 부르니 연출의 말처럼 “실현이 안될 수 있음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뿐이다.”그럼에도 따라붙는 비극은 “파티가 화려하게 구현될수록 극대화된다.” 이는 마크 브루니 연출이 꼽는 “한국의 신춘수 프로듀서가 브로드웨이 제작자와는 남달랐던 차별점” 중 하나이기도 하다.“극 중 개츠비가 매주 주최하는 파티는 감히 누구도 베끼거나 재현할 수 없을 만큼 웅장하고 볼거리가 많아요. 원작 소설에는 다루지 않는 내용으로 이 사람이 얼마나 부자인지를 가늠하게 하죠. 이 작품을 디벨롭하는 과정에서 신 대표님이 늘 했던 말이 ‘더 크게, 더 화려하게, 더 웅장하게, 더 압도적으로 만드세요’였어요. 그래서 저희 창작진들은 정말 원없이 할 수 있었죠.”브로드웨이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중 제이 개츠비와 데이지 뷰캐넌(사진제공=오디컴퍼니)거대한 스케일의 파티 장면과 더불어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비극, 그 비극을 풀어내는 섬세함”도 마크 브루니 연출이 꼽는, 한국 프로듀서가 이끄는 ‘위대한 개츠비’만의 차별점이다. “2막에서 등장인물들에게 벌어지는 일들로 이 작품이 얼마나 비극적인지를 관객들이 잘 느낄 수 있도록 끌고 가야 했죠. 그 비극의 느낌을 섬세하게 살리는 것 그리고 우리가 상상만하던 1920년대의 웅장함과 화려함의 구현이 차별점입니다.”브로드웨이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공연장면(사진제공=오디컴퍼니)이에 동의를 표한 제이슨 하울랜드 작곡가는 오디컴퍼니 ‘위대한 개츠비’의 차별점으로 “여성 캐릭터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했다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원작 소설의 화자가 닉 캐러웨이(노아 리케츠 Noah J. Riketts)다 보니 대부분의 독자들이 그 사람의 시선과 해석에 따라 인물들을 이해하게 되죠. 여성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감정을 느끼지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어요. 하지만 저희 작품에서는 여성들이 직접 노래하며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도록 했죠. 1920년대라는 시대의 범주 안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요.”브로드웨이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공연장면(사진제공=오디컴퍼니)2021년 원작소설의 저작권 보호기간(사후 70년)이 만료되면서 오디컴퍼니의 ‘위대한 개츠비’ 뿐 아니라 적지 않은 프로덕션들이 공연을 준비 중이다. “저희 버전의 ‘위대한 개츠비’가 브로드웨이에서 오래오래, 상연할 수 있을 때까지 상연되기를 바랍니다. 원작소설의 저작권 보호기간이 만료되면서 보다 다양하게 각색된 ‘위대한 개츠비’가 이런 저런 형태로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렇지만 지금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라와 있는 ‘위대한 개츠비’는 저희 작품뿐입니다.”뉴욕=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4-30 07:00 허미선 기자

[비바100]브로드웨이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프로듀서 신춘수 “원작에 충실하지만 충실하지만도 않아요!”

브로드웨이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의 신춘수 프로듀서(사진제공=오디컴퍼니)“원작에 충실하지만 충실하지만도 않아요. 원작이 가진 주제의식과 씁쓸한 아이러니는 가져가면서 저희만의 유니크한 특별함을 얹었거든요. 저희만의 특별함이란 씁쓸한 아이러니를 더 깊게 하고 비극을 더 비극적으로 대비시키는 화려하고 웅장한 파티신이죠. 더불어 뮤지컬과 원작의 가장 큰 차이점은 관점이에요.”글로벌 공연예술의 메카인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3월 29일(현지시간) 프리뷰를 거쳐 4월 25일 정식 오픈한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 브로드웨이 씨어터)의 신춘수 프로듀서는 원작 소설과 뮤지컬의 차이점을 “화려함과 관점”으로 꼽았다.브로드웨이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중 제이 개츠비 역의 제레미 조던(왼족)과 닉 캐러웨이 노아 리케츠(사진제공=오디컴퍼니)“소설은 닉 캐러웨이(노아 리케츠)가 화자다 보니 그가 바라본 인물들의 이야기죠. 하지만 저희 뮤지컬은 제이 개츠비(제레미 조던 )를 비롯해 데이지 뷰케넌(에바 노블자다 )도, 조던 베이커(사만다 폴리)도 자신의 목소리로 심정과 자신의 이야기를 해요. 이에 닉만이 아니라 데이지, 조던, 톰 뷰캐넌(존 스트로제스키) 등이 바라본 개츠비를 표현할 수밖에 없어요. 그걸 흡인력 있는 음악으로 무대화한 거죠.”‘위대한 개츠비’는 뮤지컬 ‘일 테노레’ ‘드라큘라’ ‘데스노트’ ‘지킬앤하이드’ ‘스위니토드’ ‘닥터 지바고’ 등의 오디컴퍼니 대표이기도 한 한국의 신춘수 프로듀서가 2500만 달러를 들여 제작한 브로드웨이 뮤지컬이다. 그 중 절반 이상을 투자해 단독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린 신춘수 대표는 브로드웨이를 비롯한 미국은 물론 전세계 권리를 소유하고 있다.브로드웨이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공연장면(사진제공=오디컴퍼니)1925년 출간된 F. 스콧 피츠제럴드(F. Scott Fitzgerald)의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마크 브루니(Mark Bruni) 연출, 제이슨 하울랜드(Jason Howland) 작곡가, 케이트 케리건(Kait Kerrigan) 작가, 음악감독 다니엘 에드먼즈(Daniel Edmonds), 의상디자이너 린다 조(Kinda Cho) 등이 의기투합한 작품이다.뮤지컬 ‘뉴시스’ ‘보니 앤 클라이드’ ‘웨스트사이드스토리’ 등과 TV시리즈 ‘슈퍼걸’ ‘스매시’, 영화 ‘더 라스트 파이브 이어’ 등의 제레미 조던(Jeremy Jordan)이 제이 개츠비,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 뮤지컬 ‘미스사이공’에서 투이 역의 홍광호와 호흡을 맞췄던 에바 노블자다(Eva Noblezada)가 데이지 뷰케넌을 연기한다.브로드웨이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의 신춘수 프로듀서(사진제공=오디컴퍼니)2020년 작가진 구성을 시작해 2021년 대본과 음악 초고 완성, 2022년 내부 리딩에 이은 두 차례의 29시간 리딩과 워크샵, 2023년 뉴저지 페이퍼밀 플레이하우스에서의 월드 프리미어 공연을 거쳐 2024년 3월 29일 브로드웨이에 입성하기까지 꼬박 4년여가 걸렸다.프리뷰 첫주부터 ‘밀리언 클럽’(주당 매출 100만불 이상)을 달성하며 흥행 순항 중이지만 신 프로듀서는 여전히 살얼음판에 서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제작비 상승으로 티켓 값이 오르면서“100만불 클럽 달성이 예전처럼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의 주당 제작비는 90만불, 신춘수 프로듀서의 귀띔처럼 “100만불이면 손익분기점을 막 넘어선 정도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의 신춘수 프로듀서(사진제공=오디컴퍼니)더불어 몇주 이상 달성이 안되면 극장주 단독으로 ‘폐막’을 결정할 수 있는 100만 달러 매출은 냉혹한 브로드웨이에서 공연을 지속할 수 있는 생명선이기도 하다.매주 10억원 이상의 제작비가 빠져나가고 매주 ‘밀리언 클럽’을 달성해야 하는 상황, 매일이 살얼음판인 시간 속에서도 “안심할 수는 없지만 큰 기대를 가질만한 분위기와 긍정적인 신호”를 감지 중인 신춘수 프로듀서는 향후 미국 투어와 영국, 호주, 한국 등의 공연을 논의하고 있다.한국 공연은 “전혀 다른 공연이 될 것”이라는 신춘수 대표는 그 이유를 한국 배우들로 꼽았다.섬세한 감정 표현, 대사나 노래, 인물 등 뒤에 숨겨진 함의, 관객을 설득시키는 개연성 등을 만들어내는 데 탁월한 한국 배우들로 인해 “보다 업그레이드 될 것”이라는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이루지 못한 사랑, 자신이 가진 것을 과감하게 던져버리지도 못하면서 갈구하는 자유와 용기, 부자를 매혹시키며 부려보는 신분 상승의 욕심, 진정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 등 각자 ‘결핍’을 채우기 위해 절실하게 애쓰는 ‘위대한 개츠비’의 인물들은 이 작품의 브로드웨이 성공으로 ‘일 테노레’ 등 한국 창작뮤지컬의 브로드웨이 진출을 꿈꾸는 신춘수 프로듀서를 닮았다.더불어 이 작품으로 브로드웨이에 본격 데뷔하는 작가 케이트 캐리건, 의상디자이너 린다 조, 음악감독 다니엘 에드먼즈, 7명 배우와도 닮았다.“결국 원작이 말하고자 했고 저희 뮤지컬이 고수하고 있는 이 아름다운 비극을 통해 저마다의 ‘결핍’으로 꾸는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죠. 그 아메리칸 드림이 현대를 관통할 수 있도록 표현방법을 달리 했을 뿐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하는) 그 부분은 관객들 몫으로 열어두고 있습니다.”뉴욕=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4-30 07:00 허미선 기자

[B그라운드] 한국화된 사이먼 스톤, 전도연, 박해수의 연극 ‘벚꽃동산’…사람 그리고 모두의 이야기

연극 ‘벚꽃동산’ 창작진과 출연진. 왼쪽부터 무대 디자이너 사울 킴, 이현정 LG아트센터장, 사이먼 스톤, 전도연, 박해수, 손상규(사진=허미선 기자)“체호프의 작품, 특히 ‘벚꽃동산’은 무대에 올리기도, 그 의미를 잘 전달할 수 있는 사회를 찾기도 굉장히 어려운 것 같습니다. 과거와 전통, 혁신, 세대 간 갈등, 멜랑콜리한 점에서 오는 희망과 절망 등 이 작품이 가진 것들은 그만큼 급변하는 사회를 바탕으로 해야 하거든요. 한국이 가장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더 디그’(The Dig) 등의 영화감독이자 영국 내셔널씨어터,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 등과 협업한 연출가 사이먼 스톤(Simon Stone)은 연극 ‘벚꽃동산’(6월 4~7월 7일 LG아트센터 서울 LG시그니처 홀)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연극 ‘벚꽃동산’ 포스터(사진제공=LG아트센터)“한국은 외부적인 시선으로 보기에 굉장히 짧은 시간에 경제성장을 이뤘어요. 경제 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죠. 이 역시 굉장히 짧은 시간에 이룩했어요. 그 모습이 ‘벚꽃동산’에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벚꽃동산’의 한국화 이유를 이렇게 전한 사이먼은 “격동기를 맞던 시기의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이 한국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무려 27년만에 전도연을 무대에 오르게 한 연극 ‘벚꽃동산’은 ‘갈매기’ ‘바냐 아저씨’ ‘세 자매’에 이은 안톤 체호프(Anton Chekhov)의 4대 희곡 중 하나로 극의 배경인 1860년대, 그가 대본을 집필한 1905년 급변하던 러시아의 시대상이 고스란히 담겼다.어린시절의 추억이 서린 벚꽃동산까지 경매에 붙여야할 지경까지 몰락해 6년만에 고향에 돌아온 귀족 류보비 안드리예브나 라네프스카야(류바), 지속적으로 재정위기를 타파할 방법을 제안하지만 누구도 들어주지 않아 미칠 지경에 이르는 농노의 자식이자 신흥사업가 로파힌 예르몰라이 알렉세예비치 중심으로 펼쳐지는 풍자극이다.급변하는 사회상과 그에 따른 갈등, 혼란 등은 라네프스카야와 로파힌을 비롯해 라네프스카야의 딸 아냐, 수양딸 바랴, 그의 오빠 레오니드 안드레예비치 가예프, 사회주의에 심취한 만년 대학생이자 가정교사 페차 등 벚꽃동산 처리를 두고 저마다의 의견만을 개진하며 기묘한 관계로 얽히고설키는 상징적인 인물들 속에 담긴다.LG아트센터가 제작하는 ‘벚꽃동산’은 ‘메디아’ ‘입센 하우스’ ‘예르마’ 등 고전의 재해석에 탁월한 사이먼 스톤이 연출을 비롯해 각색까지 맡는다. 2024년 한국을 배경으로 하면서 캐릭터들도 류바는 송도영(전도연), 로파힌은 황두식(박해수), 가예프는 송재영(손상규), 아냐는 강해나(이지혜), 바랴는 강현숙, 트로피모프는 변동림(남윤호) 등으로 한국화해 변주된다.연극 ‘벚꽃동산’ 사이먼 스톤 연출(왼쪽부터)과 전도연, 박해수, 손상규(사진=허미선 기자)사이먼 스톤의 한국행에는 “무엇보다 독특한 위상의 한국 배우들”이 큰 몫을 했다. 그는 “2002년 멜버른 필름 페스티벌에서 아직 유명하지 않았던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를 보면서 한국 영화에 빠져들었다”고 털어놓았다.“그때부터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영화는 한국영화라는 생각을 갖게 됐죠. 한국 영화는 예술성과 상업성이 잘 어우러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배우들의 재능 같기도 합니다. 어떤 것들은 좀 이상하다 싶은데 배우들이 채우면서 좋은 영화로 만들거든요.”그는 “그렇게 제가 동경했던 배우들이 바로 옆에 있다는 게 너무 영광”이라며 “지금 제가 세계 최고의 행운아라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놓았다.연극 ‘벚꽃동산’의 박해수(왼쪽)와 전도연(사진=허미선 기자)“희극과 비극을 오가는 건 결코 쉽지 않은데 한국 배우들은 엄청나게 비극적인 상황에 젖어 있다가도 갑자기 웃음이 나는 희극으로 잘 넘어가는 재능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장르를 넘나드는 배우들이 저에겐 너무나 훌륭하게 다가왔죠.”사이먼 스톤은 전도연 캐스팅에 대해 “한국의 메릴 스트립이 필요했다”며 “이 작품에서 류바는 굉장히 어려운 역할이다. 어떤 걸 하더라도 사랑스럽고 매력적으로 보여야 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전도연 배우의 많은 영화들을 봤는데 나쁜 역할도, 선한 역할도 매력적이었어요. 그런 요소들을 이미 갖고 계셔서 (류바 역에) 굉장히 적합하다고 생각했죠. ‘벚꽃동산’이 담고 있는 당대 귀족층,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요소들은 보통 사람들의 고민과는 조금 다를 수 있어서 인간적인 면모로 관객들과 커네션을 구축해야 하거든요. 이에 가장 적합한, 정교한 배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박해수에 대해서는 “전세계에서 제일 좋아하는 배우”라며 “강렬한 느낌도 있지만 그 안에는 굉장히 연약함도 담고 있는 등 굉장히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다”고 이유를 밝혔다.“연약함과 강함을 오갈 수 있는 능력이 굉장히 뛰어나죠. ‘벚꽃동산’ 초반에 로파힌은 자신감도 없고 초조해 하는 인물이었어요. 그러다 작품 말미에는 굉장히 강렬한 인물로 부상하죠. 그걸 박해수 배우가 누구보다 잘 할 수 있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벚꽃동산’은 전도연이 ‘리타길들이기’ 이후 27년만에 서는 무대 복귀작이기도 하다. 2021년 사이몬 스톤이 연출한 ‘더 디그’를 인상 깊게 봤다는 전도연은 “장르적으로 연극이기는 하지만 ‘벚꽃동산’은 도전이라기보다 제가 해보지 못한 수많은 것들을 하는 과정 중 하나”라며 연극무대에 선뜻 오를 수 없었던 데 대해 “두려움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온전히 나를 관객에게 다 드러낼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어요. 이 작품 출연제의를 받고도 어떻게 하면 거절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메디아’라는 작품을 영상으로 보고는 배우로서 피가 끓었어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출연을) 결정했습니다.”연극 ‘벚꽃동산’ 손상규(왼쪽부터), 전도연, 박해수(사진=허미선 기자)박해수는 “사이먼과 처음 만나 저희 얘기를 많이 꺼내봤다. 저 박해수, 제 아버지 등 배우 각자가 꺼내놓은 이야기를 사이먼이 종합해줬다”며 “그렇게 ‘벚꽃동산’의 신흥세력과 가진 것을 지켜내려는 세력을 몰락해 가는 기업과 자수성가한 사업가로 대체해 조금은 더 우리 근처의 이야기들을 가져왔다”고 전했다. 손상규는 자신이 연기할 송재영에 대해 “나쁘기 보다는 무력한데 어떻게 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며 “굉장히 성공했던 집의 사람으로서 성공하지 못할 바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는 사람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고 전했다.전도연은 “사회 변화, 개혁 등은 어떤 건물이 갑자기 없어지고 갑자기 새로운 게 나타는 것들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개혁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사람이 바뀌어야 이 사회가 바뀌죠. 정체된 인간들과 변화하는 것에 대한, 한국적인 정서로 바뀌었지만 글로벌하게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4-26 18:30 허미선 기자

[비바100] 비로소 진짜 나를 찾아서! 존 노이마이어의 ‘인어공주’

함부르크 발레단에서 초연된 존 노이마이어의 ‘인어공주’ 중 인어공주와 왕자(사진제공=국립발레단)“많은 발레 작품의 주제가 사랑이에요. 다양한 사랑을 형태를 담고 있는데 ‘인어공주’ 이야기의 주제는 굉장히 독특합니다. 아름다운 존재인 인어가 자기 세계를 벗어나길 갈망하거든요. 그 갈망의 원인은 사랑이죠. 공주는 자신의 세상을 벗어나 희생과 고통을 선택하죠.”세계적인 안무가 존 노이마이어(John Neumeier)가 전한 ‘인어공주’의 사랑, 그 마지막은 물거품이 돼 허망하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출발점에 선다. 사랑에 목맸지만 사랑받지 못했고 그렇게나 벗어나고 싶던 진짜 자신을 인정하고서야 자유를 얻는다. 그렇게 ‘인어공주’는 그리고 안데르센은 비로소 진짜 나를 찾아 떠나는 여정의 출발점에 설 수 있게 된다. 국립발레단 ‘인어공주’ 포스트(사진제공=국립발레단)‘인어공주’(The Little Mermaid, 5월 1~5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가 세계적인 안무가 존 노이마이어와 발레리나 출신의 강수진 단장이 이끄는 국립발레단에 의해 변주된다. 함부르크 발레단 예술감독이자 수석안무가 존 노이마이어가 안무를 비롯해 무대, 조명, 의상까지 직접 디자인한 작품으로 국립발레단의 200회 정기공연이다. 2005년 안데르센 탄생 200주년을 맞아 로열 덴마크 발레단에서 제작·초연한 작품으로 덴마크 여왕 마르그레테 2세에 헌정됐다. 200회 정기공연으로 신작 ‘인어공주’를 선택한 데 대해 강수진 국립발레단장은 “저는 훌륭한 안무가들과 많은 작품들을 하면서 성숙하는 과정을 겪었다. 특히 현존하는 레전드 안무가 존 노이마이어와의 작업을 통해 얼마나 성숙할 수 있는지를 국립발레단원들에게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존 노이마이어가 변주한 ‘인어공주’의 특징은 안데르센의 분신 같은 캐릭터 시인과 인어공주의 꼬리를 표현한 바지 의상이다.  “자신의 왕국과 세계를 벗어나 사랑을 선택하는 모습이 이 이야기의 굉장히 아름다운 지점 중 하나예요. 이 이야기에서 느낄 수 있는 건 내가 아무리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상대가 나를 사랑할 책임은 없다는 겁니다. 저는 ‘인어공주’가 안데르센의 자서전처럼 느껴졌어요. 그의 불행한 사랑에서 따온 이야기거든요.”그래서 극의 시작은 안데르센이 사랑하는 연인이자 시인인 에드바드와 헨리에트의 결혼식이다. 연인이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모습에 흘린 안데르센의 눈물이 추억과 몽상의 바다로 이끈다. “그 눈물방울이 바다로 들어감으로서 시인의 영혼을 상징하고 체화할 수 있는 인어라는 존재가 탄생하게 되죠.” 함부르크 발레단에서 초연된 존 노이마이어의 ‘인어공주’ 중 2막 인어공주와 시인(사진제공=국립발레단)그리고 그 마지막에 안데르센은 존 노이마이어 말처럼 “작품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며 초월한 존재가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안데르센의 ‘인어공주’와는 끝도, 시작도 다르다. 인어공주의 바지의상은 일본의 전통극 ‘노’ 중 ‘하카마’에서 영감받은 것으로 인어공주의 움직임을 극대화한다. 이는 사랑을 위해 선택한 인간세계에 살면서 인어공주가 느끼는 불안정하고 격동적인 감정과 심리상태를 표현한다. “훈련을 위해 토슈즈를 신는 소녀들을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인어공주도 토슈즈를 신는데 굉장히 어려워하거든요. 그 아픔을 극복하며 굉장히 아름답고 강인한 모습을 표현하죠. 인어공주는 굉장히 어려운 역할이에요. 무용수는 긴 바지를 입고 있지만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은 듯 유려하고 우아하게 움직일 수 있어야 하거든요. 게다가 안무 중에는 발리를 비롯한 아시아 전통춤의 일부도 있죠.”국립발레단 ‘인어공주’의 존 노이마이어 안무가(왼쪽)와 강수진 국립발레단장(사진제공=국립발레단)덴마크에서 시작해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모스크바, 베이징 등의 발레단과 ‘인어공주’를 오려온 존 노이마이어는 “나라에 따라 변화를 주는 것이 아니라 매번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자 노력한다”고 전했다.“그것이 작품에 대한 저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무용수와 진실함을 추구하고자 애씁니다. 진실함이 있어야 관객들이 진정으로 볼 수 있고 감동받을테니까요. 그렇게 새로워질 ‘인어공주’를 통해 관객들도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신의 삶을 반추해 보기를 바랍니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4-24 18:00 허미선 기자

임세미, 연극 ‘꽃, 별이 지나’ 캐스팅… 진선규·이희준·김지현과 호흡

임세미가 3년 만에 연극 무대에 선다.소속사 눈컴퍼니는 “임세미가 연극 ‘꽃, 별이 지나’에 합류한다”고 22일 밝혔다.‘꽃, 별이 지나’(작/연출 민준호, 안무 김설진)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픈 선택에 대해서 인지하고, 이겨낼 수 있는 힌트를 주고 싶은 마음으로 만들어진 연극으로,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공연배달서비스 간다가 20주년을 기념해 선보이는 신작이다.임세미를 비롯해 배우 김지현, 진선규, 이희준 등이 출연한다.임세미는 미호(김지현·정연·조혜원)의 친구이자 희민(이희준·김대현)의 여자친구 ‘지원’을 연기한다. 지원은 어린 시절 겪은 마음의 상흔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로, 임세미는 특유의 세심하고 깊은 내면 연기로 무대를 채우며 관객들에게 울림을 안길 예정이다.임세미는 그동안 드라마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여신강림’, ‘위기의 X’, ‘방과 후 전쟁활동’, ‘최악의 악’, ‘원더풀 월드’, 영화 ‘딸에 대하여’ 등에서 탁월한 연기력으로 자신만의 입지를 굳혀왔다. 연극 출연은 ‘도둑놈 다이어리’, ‘그와 그녀의 목요일’, ‘완벽한 타인’에 이어 이번이 네 번째다.연극 ‘꽃, 별이 지나’는 오는 6월 8일 서경대학교 공연예술센터 스콘1관에서 개막한다.김세희 기자 popparrot@viva100.com

2024-04-22 15:41 김세희 기자

[B그라운드] 연극 ‘실종법칙’에서 사라진 건 ‘유진’뿐일까?

연극 ‘실종법칙’ 황수아 작가(왼쪽부터), 민우 역의 심완준, 유영 노수산나·금조(사진=허미선 기자)“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유영과 민우가 굉장히 날선 대화를 이어가면서 민우의 가난한 환경 등 겉으로 보이는 상황들을 힐난하고 상처되는 말들을 하는 등 예의 없는 태도들로 일관해요. 극 진행과 더불어 이 모습들이 파국으로 치닫는 부분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연극 ‘실종법칙’(5월 12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의 황수아 작가는 극의 메시지를 “인간에 대한 예의”로 꼽았다.연극 ‘실종법칙’ 포스터(사진제공=예술의전당)연극 ‘실종법칙’은 2023년 제7회 미스터리 스릴러전, 제23회 월드 2인극 페스티벌 선정작이다.승진을 앞두고 사라진 대기업 직원 유진을 찾아나선 언니 유영(금조·노수산나, 이하 가나다 순)과 심완준의 설명처럼 “평범한데 평범하지 않고 찌질하지만 유진이를 아주 사랑하는 작가지망생”인 남자친구 민우(심완준·이형훈)가 나누는 날선 대화로 이어가는 작품이다.서로를 의심하며 나누는 대화 속에서 드러나는 진실과 반전에 중점을 둔 작품으로 202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 당선자 황수아 작가, ‘리처드 3세’ 등의 문새미 연출 등이 참여했다.금조는 사진이 연기하는 유영에 대해 “자존심은 강하고 자존감은 낮은, 그리고 겉으로 보이는 것에 굉장히 집착을 하는 인물”이라고 소개했다.“연기를 하면서는 유영 나름의 정당성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정상적인 범주에 있는 인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리플리 증후군이 아닐까 생각했죠. 거짓된 말들을 굉장히 많이 하는데 그 말을 하는 순간의 유영만큼은 정말 진실이라고 믿고 진심으로 모든 대사들을 뱉으면서 캐릭터를 만들었습니다.”또 다른 유영 역의 노수산나는 “유영이 민우에 대한 편견으로 날선 말들을 많이 한다. 그런 유영을 어떻게 이해하고 공감할지 고민이 많았다”며 “연출님의 조언으로 좀 더 많이 요약하고 불안해하는, 경계심이 많은 인물로 캐릭터화시켰다”고 밝혔다.연극 ‘실종법칙’ 공연장면(사진=허미선 기자)무대는 연극에서 한 인간의 자아 혹은 내면 등으로 주로 상징되는 다수의 의자들이 널부러져 있고 냉장고를 옷장으로 쓰는 등 극 중 유영이 힐난하는 민우의 열악한 환경을 위한 장치들로 꾸렸다. 홍수아 작가는 “민우가 처한, 해가 들지 않고 곰팡이가 가득한 지저분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주인집 짐까지 일부 쌓아놓고 사는가 하면 청결과는 거리가 먼, 방값이 싸면 뭐든 하는 민우의 상황들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이 작품은 실종을 파헤치는 작품이지만 결국 ‘실종’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그 개념이 우리 뒤통수를 치는 이야기입니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4-21 11:25 허미선 기자

[B사이드] 연극 ‘엠. 버터플라이’ 배수빈, 삼위일체 르네들과 전혀 다른 송 릴링들

연극 ‘엠. 버터플라이’ 르네 역의 배수빈(사진=이철준 기자)“연습실에서 가장 화두가 됐던 건 ‘왜 송이 사과를 안 할까’였어요. 한 사람의 인생을 저렇게 휘둘렀으면 미안하다고 할 법도 한데…. 그런데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르네와 같은 세월을 바친 거잖아요. 굳이 사과할 필요는 없었던 거죠. 서로 간의 니즈가 맞았고 ‘너도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척 넘어간 거잖아’가 송의 생각이지 않았을까 싶어요.”연극 ‘엠. 버터플라이’(M Butterfly 5월 12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르네 갈리마르(배수빈·이동하·이재균, 이하 가나다 순) 역의 배수빈은 송릴링(이하 송, 김바다·정재환·최정우, 이하 송)과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연극 ‘엠. 버터플라이’ 공연장면. 송 릴링 역의 김바다(왼쪽)와 르네 역의 배수빈(사진제공=연극열전)“서로 굳이 사과를 할 영역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습실에서 난상토론 끝에 이같은 결론을 내렸고 배우들 저마다가 자신만의 입장, 노선 등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지금도 그러고 있죠.”배수빈은 “진짜 이 사람이 원하는 건 뭐였을까,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는데 이 사람이 이렇게 하는 행동에는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 등에 대한 궁금증을 계속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연극 ‘엠. 버터플라이’ 르네 역의 배수빈(사진=이철준 기자)“개인의 욕망이었을까 아니면 정말 어떤 책임감이었을까, 아니면 무지였을까…그런 생각들이 계속 교차했던 것 같고 지금도 그래요. 어떨 때는 정말 무지하게, 또 어떤 회차는 정말 욕망만 채우기 위해 달려볼 때도 있어요. 그럼에도 보시는 분들마다 가져가시는 부분이 다를 것 같아서 그런 재미가 크죠.”◇삼위일체 르네들, 놀랄 만큼 다른 송들“이번 작품에서 (이)동하, (이)재균 배우와 르네를 분석하면서 정말 많이 배웠어요. 저렇게 해도 되는 구나 싶고. 뭔가 안 풀린다 싶으면 셋이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저마다가 해결한 부분은 공유를 해주기도 하고 너무 좋은 경험이었죠.”자신과 번갈아 르네를 연기 중인 이동하·이재균에 고마운 마음을 밝힌 배수빈은 “그렇게 사랑이 바탕에 깔린 존재 자체에 대한 문제라는 데 합일점을 찾았고 마지막에는 거의 한몸이었다”고 털어놓았다.“재균 배우가 너무 고마운 게 정말 많은 실험과 시도를 해줬어요. 머리가 깨질 때까지 부딪히고 부서져 주니 저 역시 열심히 할 수밖에요. 재균 배우가 정말 다양한 실험을 많이 하면 그걸 동하 배우가 정리해서 만들고 저는 ‘내가 한번 해볼게’라며 실행하고. 그렇게 한몸이 돼 르네를 만들어 갔어요. 너무 고맙고 미안하기도 하고…두 배우랑 함께 해서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더불어 송 역할의 김바다, 정재환, 최정우에 대해서는 “송의 행동들이 가스라이팅인지 사랑인지 이용하는 건지에 대해 고민하고 난상토론을 벌였고 저마다가 전혀 다른 인물을 표현 중”이라고 밝혔다.연극 ‘엠. 버터플라이’의 전혀 다른 르네와 송릴링.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배수빈·김바다, 이동하·최정우, 이재균·정재환(사진제공=연극열전)배수빈은 “(김)바다 배우는 ‘나를 그냥 나로, 있는 그대로 제대로 봐 달라’는 욕망이 큰 송”이라고 “(최)정우 배우는 되게 퓨어한 면이 있는 송”이라고 표현했다.“되게 깨끗하게 받아들이는 송이라 이용을 해도 별로 이용하는 것 같이 안 보인달까요. 그래서 배신감이 더 클 때도 있죠. (정)재환 배우는 가스라이팅의 느낌이 강해요. 그런데도 또 가스라이팅이 다는 아니라는 느낌도 들고…세 배우의 노선이 너무 달라서 깜짝 깜짝 놀랄 때도 많아요.”◇부서지고 깨지며 “재밌는 작품을 많이 하고 싶어요”연극 ‘엠. 버터플라이’ 공연장면(사진제공=연극열전)“연극의 장막과도 같은 무대 장치로 저는 더 명확해진 것 같아요. 훨씬 더 르네의 머릿속에 있는 느낌이랄까요. 박상봉 디자이너님이 구현하신 그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죠.”이렇게 전한 배수빈은 요즘 가장 가슴을 울린 대사로 “사랑은 판단력을 흐리고 두 눈을 감기고 얼굴마저 바꿔 놓습니다”와 더불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봐달라는 송의 절규에 답하는 르네의 “나는 당신을 알아”로 꼽았다.“그 뒤의 ‘마음 한구석으론 내내 알고 있었어. 내 행복은 한 때고. 내 사랑은 기만일 뿐이라는 걸. 하지만 외면하고 또 외면했지. 그래야 기다림을 견딜 수 있으니까’까지가 너무 좋아요. 도대체 이 사람은 어디까지, 언제부터 안 건가 싶거든요.”연극 ‘엠. 버터플라이’ 르네 역의 배수빈(사진=이철준 기자)이어 배수빈은 “앞으로도 진짜 재밌는 작품을 많이 하고 싶다”며 “좀 뻔한 느낌 없이 다른 모습들을 보여드리면서”라고 바람을 전했다.“그러려면 재균 배우처럼 정말 부서지고 깨져야 할 것 같아요. 그렇게 저를 부실 수 있는 작품이 있으면 머리 깨지게 한번 들어가 보고 싶어요. 여러 가지 사는 얘기들도 더 다양한, 새로운 분들과 같이 만들고 싶기도 합니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4-19 18:15 허미선 기자

[비바100] 연극 ‘엠 버터플라이’ 르네 배수빈 “사랑, 존재 대 존재의 충돌 그리고 욕망”

연극 ‘엠. 버터플라이’ 르네 역의 배수빈(사진=이철준 기자)“극 중 ‘사랑은 판단력을 흐리고 두 눈을 감기고 얼굴마저 바꿔 놓습니다’라는 르네 대사가 저는 너무 좋아요. 어떻게 보면 사랑도 우리가 막연하게 원하는 것들을 충족시켜주는 판타지가 아닌가 싶거든요. 누구라도 그걸 깨지 않고 그냥 계속 가져가고 싶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 역시도 그렇고.”배수빈은 자신이 연기하는 연극 ‘엠. 버터플라이’(M Butterfly 5월 12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의 르네 갈리마르(배수빈·이동하·이재균, 이하 가나다 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연극 ‘엠. 버터플라이’ 르네 역의 배수빈(사진=이철준 기자)연극 ‘엠 버터플라이’는 1964년 문화대혁명을 앞두고 전운이 감도는, 동서양 간의 식민의식과 우월주의 등이 팽배하던 때의 중국 베이징을 배경으로 프랑스 영사관 직원 르네 갈리마르가 신비로운 중국의 경극배우 송릴링(이하 송, 김바다·정재환·최정우)에 빠져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데이비드 헨리 황(David hery Hwang)이 프랑스 외교관 버나드 브루시코와 경극배우 쉬 페이푸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대본을 집필해 1988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됐다.지난해 11월까지 공연되며 꾸준히 사랑받았던 작품으로 한국에서는 2012년 첫 선을 보인 후 2014년, 2015년, 2017년에 이은 다섯 번째 시즌이다. 송이 자신에게만 털어놓은 비밀을 철썩같이 믿는 르네와 살기 위해 연인을 속이면서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봐주기를 바라는 송. 두 사람이 서로에게서 늘 꿈꿔왔던 순종적이고 완벽한 연인,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주고 무례하고 지옥 같은 이 체제에서 구원해줄 사람을 갈구하며 파국으로 치닫는 사랑이야기이자 욕망에 대한 비극이다.◇누구나 가지고 있는 환상과 욕망, 그걸 지키고 싶었던 이들의 이야기연극 ‘엠. 버터플라이’ 공연장면. 르네 역의 배수빈(왼쪽)과 송 릴링 김바다(사진제공=연극열전)“그렇게 원하는 대로 끌고 가고 싶어하는 게 르네라는 생각이 들어요. 르네는 사실 알았을 수도 있어요. 송이 여자든 남자든 상관없었을 수도 있어요. 그럼에도 ‘당신이 (내가 원하는 완벽한 연인의 역할) 그걸 해준다면 나는 그걸 당신으로 인정하겠어’라면서 계속 그 생활을 유지했던 게 아닐까 싶어요. 어차피 인간은 이기적이잖아요. 챙길 거 챙겨가면서 꿈을 꾸고 싶었던 건 르네나 송이나 다 똑같았던 것 같아요.”이어 배수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간다. 어느 때는 비즈니스가 우선이다가 스스로의 꿈을 쫓기도 하면서 밸런스를 맞추면서 가려고 하는 게 인간”이라며 “그래서 이 극이 힘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연극 ‘엠. 버터플라이’ 르네 역의 배수빈(사진=이철준 기자)“그렇게 이해도 됐다가 안타깝기도 했다가 바보 같기도 했다가…이런 지점들이 좀 맞닿아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 작품이 그저 단순한 사랑 얘기라고만 하기 어려운 게 그 지점 같아요.”배수빈 역시 “처음 연습실에서는 배우들하고 사랑에 집중해서 좀 찾아가 보려고 했다”며 “하지만 결국엔 마지막에 르네가 죽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를 찾다 보니 오롯이 사랑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물론 사랑은 밑바닥에 깔려 있어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싶었을 뿐이죠. (20여년이라는) 그들의 세월이 사랑을 증명해 주기도 하잖아요. 결국 저마다의 욕망, 니즈, 환상을 쫓아가는 인간들의 이야기죠. (저마다가 쫓는) 그것의 부서짐들이 결국 르네도 송도 파국으로, 급기야 죽음으로까지 가게 하는 힘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이렇게 저렇게 사랑만 해보려고 많은 시도를 해봤지만 결국 존재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지는 작품이더라고요.”연극 ‘엠. 버터플라이’ 르네 역의 배수빈(사진=이철준 기자)◇르네의 모든 것 송, 존재 대 존재의 격돌“사실 이 작품의 가장 큰 뼈대는 권력에 대한 욕망 같아요. 당시 서양인들이 동양을, 남자가 여자를 바라보는 시선 등이 강화됐을 때 그 시대에 맞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관계의 전복에 대한 희열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집안 좋은 아내와의 관계에서도, ‘승진’을 미끼로 쥐락펴락하는 상사와의 관계에서도 늘 우위에 서지만은 못했던 르네에게 송은 배수빈의 말처럼 “모든 것”이었을지도 모른다.“저도 르네였다면 그러지 않았을까 생각은 합니다. 꿈에 그리던 누군가를 만났잖아요. 내 모든 것들을 받아주는 그런 사람을 만난다면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요. 최대한 유지하고 싶었을 거예요.”이어 배수빈은 “르네는 굉장히 센스티브한 사람”라며 “어릴 때부터도 이성에 대한 두려움 등이 대본에 좀 있다. 오페라를 좋아하는 것도 사실은 마크처럼 일반적인 남자의 이유와는 달리 분위기나 에티튜드, 느낌, 정서, 취향 등을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사람”이라고 부연했다.“그걸 억누르고 살아야 하다 보니 생기는 그반대급부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극 중 정육점집 아들이 오페라를 보고 느낀 희열은 신분 상승에 대한 강력한 욕망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결국 이 작품은 존재 자체에 대한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죠. 르네와 송이 존재 대 존재로 부딪혀 욕망과 환상, 그것을 실현해주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인정하거나 밝히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에 대한 문제요.”연극 ‘엠. 버터플라이’ 르네 역의 배수빈(사진=이철준 기자)이어 “결국 꿈에 그리던 완벽한 존재를 취하고 싶고 마음대로 누리고 싶은 권력욕이나 욕심에 집중했다”는 배수빈은 “그거까지 건드리지 못한다면 이 공연은 겉핥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그것을 뚫고 들어갔을 때야만 마지막에 내(르네)가 스스로 나비부인이 돼 갈 수 있는 힘이 좀 생긴다는 걸 느꼈습니다. 르네와 송은 시대적 상황, 정치적·외교적 문제들이 맞물린 큰 사건의 인물들처럼 보이죠. 하지만 누구나 원하는 걸 취하고 싶고 마음대로 누리고 싶은데 마음대로 안될 때가 있잖아요. 그렇게 ‘엠 버터플라이’는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작품 같아요. 옛날 작품이고 이야기지만 지금 사람들에게 잘 맞는 주제를 가지고 있달까요.”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4-19 18:00 허미선 기자

[비바100]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 피에르 하도권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지 마!”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 피에르 역의 하도권(사진제공=앤드마크)“피에르 넘버 중 ‘Dust and Ashes’라는 곡의 가사들이 너무 좋아요. ‘돌아본다. 좋은 사람으로 살았나? 충분히 사랑했나?’ 그 가사를 처음 봤을 때 제가 느낀 감정을 관객한테 전달하고 싶어요.”하도권은 출연 중인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Natasha, Pierre The Great Comet of 1812, 6월 16일까지 유니버설아트센터) 그리고 자신이 연기하는 피에르(케이윌·김주택·하도권, 이하 시즌 합류·가나다 순)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피에르 대본을 보면서 정말 많이 울었어요. 서사 때문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감정들이 뭔지 알겠더라고요. 그 감정을 어떻게 전달할까, 어떻게 하면 관객분들이 알아봐주실까를 고민했고 굉장히 심플하게 생각했죠. 그럼에도 전달이 어려운 게 저희 작품의 구조 같아요.”뮤지컬 ‘그레이트 코멧’ 피에르 역의 하도권(사진제공=쇼노트)더불어 ‘Dust and Ashes’ 중 ‘오늘이 나의 끝이라면 난 잠든 채 죽네’ ‘사랑하기 전엔 우린 잿더미 속 잠든 아이, 사랑에 빠지면 깨어나’에서 느껴지는 피에르의 깊은 쓸쓸함들, 하지만 사랑을 한다면 다시 깨어난다는 희망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 가사들을 통해 피에르는 말하죠. 죽고 싶지 않고 다시 살고 싶다고. 다시 산다면 사랑을 하고 싶다고. 나는 이렇게 살아남아 누군가한테 위로를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됐으니 당신들도 이런 희망을 보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어. 힘들고 어려워도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지 마! 그렇게요. 그래서 마지막 넘버 ‘The Great Comet of 1812’ 중 ‘다시 뛰네 새로운 삶 향해’라는 마지막 가사를 노래할 수 있는 것 같아요.”◇악단장이자 복잡한 피에르를 위한 피, 땀, 눈물span style="font-weight: normal;"뮤지컬 ‘그레이트 코멧’ 피에르 역의 하도권(사진제공=쇼노트)“악단장이자 복잡한 피에르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줄여갈까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어요. 거기서 제가 얻은 답은 ‘각 신의 감정에 충실하자’였어요. 그 신에 쓰이는 에너지만큼, 쌓인 만큼의 감정을 고스란히 그냥 전달하자 했죠.”올해로 20주년을 맞은 하도권이 2016년 ‘왕의 나라’ 이후 8년 만에 “운명처럼 놓여진” 무대복귀작 ‘그레이트 코멧’은 레프 톨스토이(Leo Tolstoy)의 ‘전쟁과 평화’(Война и мир)를 바탕으로 한 성스루(노래로만 꾸린) 뮤지컬이다. 나폴레옹의 침공으로 불안한 1812년 모스크바를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에서 하도권은 삶에 회의적이고 무기력한 귀족 피에르를 연기한다.“피에르가 1막에서는 무력해요. 굉장히 자조적이죠. 그런데 2막에서는 변해요. 나 자신에 대해서는 의미가 없었는데 나타샤를 바라보면서 내가 누군가한테는 위로를 줄 수 있다 데 희망을 보는 거죠. 가사가 굉장히 직관적이에요. 나타샤를 보면서 사랑과 연민을 느낀다거나 눈물을 애써 참고라는 가사가 있거든요.”그의 설명처럼 피에르는 마냥 무기력하고 회의적인, 극 중 인물소개 넘버 가사처럼 “혼란스럽고 어정쩡한” “돈은 많은데 안 행복한 유부남”이다. 자신의 친구이자 헤픈 아내의 동생이기도 한 매력적인 젊은 군인 아나톨(고은성·셔누·정택운)에 빠져들어 상처입은 나타샤(박수빈·유연정·이지수)에게 연민을 느끼며 그의 유일한 희망이 되어주기로 마음먹는 인물이다.극 내내 객석과 무대를 오가며 관객들과 소통하고 즐기는 등장인물들 중 유일하게 무대 중앙의 악단석에 붙박이처럼 존재하는 악단장이자 삶에 대한 회의감에 침잠하는 무기력한 귀족이다.뮤지컬 ‘그레이트 코멧’ 피에르 역의 하도권(사진제공=쇼노트)20년 전 데뷔작인 ‘미녀와 야수’의 팀장이었던 지금의 쇼노트 대표, 부대표와의 인연으로 “운명처럼 작품에 놓이게 된” 하도권의 복병은 아코디언이었다. 그는 극 등장부터 마지막까지 연주하는 아코디언에 대해 “피아노를 좀 칠 수 있으면 연주에 별 문제가 없겠다 저도 생각했는데 아예 별개의 악기”라고 토로했다.“악보를 받아봤더니 사기였어요. 너무 어려운 작품이더라고요. 피아노도 너무 어렵고 아코디언은 더 어려웠어요. 피아노처럼 생겼지만 아코디언은 풍금처럼 바람이 들어가야 소리가 나요. 왼손으로는 코드랑 베이스를 쳐줘야하고 오른손으론 건반을 치는데 거리감, 감각으로 연주해야 하죠. 시선이 가는 순간 이미 틀린 거예요. 제가 그동안 했던 모든 뮤지컬의 연습 과정, 노력과 땀을 다 합친 것보다 ‘그레이트 코멧’이 요구하는 땀과 노력은 더 컸어요.”◇아코디언과의 고군분투 “저를 피에르화시켰죠”span style="font-weight: normal;"하도권(사진제공=앤드마크)“피아노 4마디를 외워서 치게끔 손으로 익히는 데 8시간이 지나도 안 되더라고요. 틀림없이 열심히 하는데 안되니까 미칠 노릇이었죠. 그 시간이 되게 고통스러웠어요. 그런데 지금 보면 연습을 하면서 그 고통스러웠던 시간들이 저를 피에르화시켜줬던 것 같아요. 혼자서 감당해야하는 그 외로움과 쓸쓸함, 두려움들이 피에르에 묻어나게끔 되더라고요.”집 앞에 연습실을 대여해 “잠을 줄여가며 거의 밤새도록 연습했던” 그는 “보통 2시간을 연습하면 성취할 수 있는 성과물이 있는데 아코디언은 그게 안됐다”고 털어놓았다.“피에르라는 역의 특성이 아무리 익숙해도 극장에 가는 순간부터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어요. 끝까지 집중하지 않으면 자칫 실수가 나올 수 있거든요. 온 세포를 다 깨우고 임하다 보니 뭘 다른 걸 하거나 애드리브 등은 꿈도 못꾸죠.”그렇게 어렵게 연주할 수 있게 된 아코디언이지만 무대 위의 그는 여전히 누구든 마지막까지 건드려서는 안되는(?) 피에르다. 그는 “모든 출연진이 신나게 뛰어다니고 관객들과 소통할 때도 피에르는 무대에서 어떤 누구와도 눈 마주치는 일 없이 존재하면서 에너지를 쓰고 있다”며 “마지막 커튼콜에서까지 퇴장음악을 솔로로 연주해야하다보니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고 전했다.“피에르의 넘버가 많지는 않지만 정말 섬세해야하고 연기적으로도 그래요. 기량이나 테크닉적으로 소화해낼 수 있는 넘버들이 아니거든요. 섬세하게 켜켜히 쌓아가지 않으면 그 넘버가 표현이 안돼요. 특히 마지막 넘버 ‘The Great Comet of 1812’은 잔잔한 호수에 돌 하나를 탁 던지고 그 울림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그 전에 뭔가가 놓이면 그 흐름이 깨지거든요. 조심스럽게 밟아가야 하는 넘버들이라서 성악적인 테크닉이나 기량 보다는 연기적 집중력이 더 필요한 역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저마다의 그레이트 코멧을 찾아서!뮤지컬 ‘그레이트 코멧’ 피에르 역의 하도권(사진제공=쇼노트)“마지막 넘버 ‘The Great Comet of 1812’에서는 ‘당신들이 두려워하는 저 혜성들이 나는 두렵지 않다’고도 하죠. 그 혜성에 대한 의미는 각자의 몫인 것 같아요.”그 혜성이 “누군가에게는 내게 닥친 고난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지금 와 있는 행복일 수도 있다. 그게 때로는 두려울 수도, 버거울 수도, 환희로 가득 찰 수도 있다” 전한 하도권은 “하지만 피에르는 새로운 삶을 향해서 가겠다고 말한다”고 털어놓았다.하도권(사진제공=앤드마크)“힘들어 주저앉거나 망가지고 조각 나 있는 사람들한테 말하고 싶었어요. 절대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조각나 있는 상태로 끝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슬퍼하는 상태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걸어가야 회복할 수 있다고. 그래야 새로운 삶을 맞이할 수 있다고요.”그렇게 저마다의 그레이트 코멧을 찾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피에르를 연기하는 하도권의 ‘그레이트 코멧’은 “동료 배우들”이다. “연습 때도 그렇고 지금도 마지막 넘버를 할 때 무대를 한 바퀴 돌면서 나오거든요. 그때 동료들이 아카펠라로 합창을 해줘요. 그때 저를 바라보면서 노래해주는 그들이 저한테는 그레이트 코멧이에요. 그 사람들한테 굉장히 에너지를 많이 받고 기쁘거든요.”이어 피에르로서의 크레이트 코멧에 대해서는 “여전히 찾아가는 중”이라며 “단편적으로 보면 나타샤가 될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고 부연했다.“피에르가 나타샤에게 갖고 있는 감정은 단순하게 연인으로서만은 아니거든요. 어떨 때는 키다리 아저씨 같은 느낌도, 인생을 살아온 선배로서 주고 싶은 조언들도, 용기를 주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그리곤 “원작에서는 피에르랑 나타샤가 결혼하지만 저희 작품에서는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이라며 “그럼에도 나타샤를 이성적인 감정으로만 바라보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어려움은 없다”고 털어놓았다.“피에르가 1막부터 2막 엔딩까지 성장해 나가는 과정이 그레이트 코멧이 아닐까 생각해요. 금방 사라지는, 굉장히 찰나인 그 순간이 사람을 변화시키잖아요. 그런 터닝 포인트, 저마다의 그레이트 코멧을 찾으셨으면 좋겠어요.”◇전혀 다른 나타샤와 아나톨들뮤지컬 ‘그레이트 코멧’ 출연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나타샤 역의 박수빈·유연정·이지수, 아나톨 셔누·정택운·고은성“배우마다 특성이 다 달라요. 저는 기술적인 연기를 하지 않아요. 할 줄도 모르고 배운 적도 없으니까요. 음정, 박자, 가사 등 약속은 정해져 있지만 저마다가 던져주는 에너지가 조금씩 달라요. 그래서 매번 기대가 돼요. 오늘은 저 친구가 어떤 호흡을 나에게 던져줄까를 열어놓고 기다렸다가 그에 맞춰 나가요. 살아 있는 것처럼 매 공연이 다르죠.”그게 “무대가 주는 장점이자 재미”라는 그는 “(박)수빈은 굉장히 섬세하고 감정을 절제하는 나타샤”라고 전했다.하도권(사진제공=앤드마크)“이지수 나타샤는 굉장히 강하게 표현할 때가 있어요. 그 폭이 굉장히 크죠. 연기의 그 다이내믹이 너무 재밌어요. (유)연정이 나타샤는 굉장히 딥하게 들어갔다가 또 굉장히 밝게 빠져나와요. 그런 타이밍을 맞추는 재미가 있죠.”아나톨 중 고은성에 대해서는 “정말 베테랑”이라며 “너무나 안정감이 있는 아나톨이다. 초연을 했던 데서 오는 바이브, 극 전체를 완전히 아우르는 포스가 있다”고 밝혔다.“셔누는 순수함이 있어요. 아나톨의 그 양아치스러움 안에 갖고 있는 순수함이 있어요. 안 그럴 것 같은 사람이 양아치이고 그 날티를 퓨어하게 표현하니 굉장히 새롭죠. 레오(정택운)는 굉장히 가볍다가 또 갑자기 훅 무거워지는 매력이 있어요.”하도권은 “저는 연기를 전공한 사람이 아니고 그래서 기술적으로 연기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저와 만나는 부분이 없는 배역은 제가 움직이질 못한다”고 털어놓았다.“입도 뻥끗 할 수가 없어요. 그렇게 제 안에 있는 경험, 정서와 만나는 작업들을 주로 해오고 있는데 언젠가는 소진이 되겠죠. 하지만 늘 새로운 연기를 하고 싶어요. 시청자들이나 관객들이 이번엔 어떤 연기, 배역을 할까 기대감을 주는 배우이고 싶어요.”그는 “지금까지는 배우가 전부인 것처럼 살아왔다. 하지만 피에르를 만나면서 배우가 전부는 아니라는 걸 느꼈다”고 고백했다.“제 삶의 한 부분인 거죠. 그래서 꼭 배우가 아니더라도 하도권으로서의 삶이 앞으로 살아가면서 누군가한테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어딘가에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요즘 해요.”◇배우 20년 “지금까지처럼 놓여진 곳에서 최선을 다해!”하도권(사진제공=앤드마크)“노래 가사 같아요. 연습 내내 배우생활을 하면서 쉼 없이 달려왔는데 진짜 좋은 배우로 살았나, 충분히 사랑했나 질문했죠. 명쾌하게 답을 못 줬어요. 자신이 없더라고요.”서울대 성악과 출신으로 “남의 나라 말로 노래하며 답답함을 느껴” 뮤지컬 ‘미녀와 야수’ 앙상블로 무대에 올랐던 하도권은 올해로 데뷔 20주년을 맞는다.그렇게 뮤지컬 앙상블로 연기를 시작해 ‘햄릿’ ‘아가씨와 건달들’ ‘엘리자벳’ ‘레미제라블’ 등을 비롯해 일본의 유명 극단 ‘사계’ 단원으로 ‘오페라의 유령’ ‘라이온킹’ 등에 출연했던 그는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 이석준, ‘펜트하우스’ 시리즈의 마두기, ‘스토브리그’ 강두기 등으로 대중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20년차 배우다. 그 20년을 피에르의 “돌아본다”는 가사처럼 스스로를 돌아봤다는 하도권은 “저는 부족함도, 실수도 많은 사람”이라고 고백했다.“그럼에도 어떤 한 사람에게 살아갈 용기를 줄 수 있게 된 피에르를 보면서 위로받을 수 있었죠. 저도 연기를 통해 혹은 배우가 아닌 삶을 통해 누군가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앞날에 대한 생각들을 하게 되더라고요. 지나간 날을 돌아보면 사실 자신 없어요. 하지만 앞날에서는 누군가에게 위로를, 용기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연습을 하면서, 무대에서도 여전히 되게 고통스러운 시간이 저를 피에르화시킨 것 같아요. 그래서 너무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작품이고 배역이죠.”뮤지컬 무대를 떠나기 직전이던 2014년 마지막 오디션 작품이자 역할이었던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콰지모도를 여전히 꿈꾸고 있는 그는 지난해 여름 뮤지컬 마니아들에게 사랑받는 ‘섹시동안클럽’(이하 섹동클, 최민철·최수형·문종원·양준모·조순창·김대종·하도권)에 ‘인턴사원’으로 이름을 올렸다.“너무 많이 사랑해주셔서 올 10월 충무아트센터에서 4일간 ‘섹통클’ 공연을 합니다. 매 회차 다른 콘셉트죠. 색동클도 최선을 다해 재미있는 공연을 준비하고 있으니 기대해 주세요.”무대를 “고향 같은 곳”, 매체는 “저를 세상에 알려준 저의 본업”이라고 표현한 하도권은 “그렇지만 병행한다는 건 제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라고 털어놓았다.“저는 선택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놓여지는 사람이니까요. 기회가 주어진다면 놓여진 그 곳에서 또 최선을 다할 겁니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4-15 18:30 허미선 기자

[비바100] 셰익스피어와 벤자민 브리튼, 한국의 첫 ‘한여름 밤의 꿈’에서 만나다

오페라 ‘한여름 밤의 꿈’(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동명 희곡에 에른스트 폰 지멘스 음악상 수상자이자 도이치 그라모폰 명예의 전당 헌액자인 벤저민 브리튼(Benjamin Britten)이 작곡한 아리아로 꾸린 현대 영어 오페라 ‘한여름 밤의 꿈’(A Midsummer Night’s Dream, 4월 11~14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이 한국 최초로 무대에 오른다.1960년에 초연된 현대 영어 오페라로 한국 첫 공연은 볼프강 네겔레(Wolfgang Nagele) 연출, 펠릭스 크리거(Felix Krieger) 지휘로 꾸린다. 아버지의 뜻에 따르는 결혼을 하지 않으면 사형을 당하던 아테네를 배경으로 두 쌍의 연인이 얽히고설키며 펼쳐지는 왁자지껄 소동극이다.서로 사랑하지만 아버지의 결혼 강요로 야반도주를 강행하는 헤르미아(Hermia)와 라이샌더(뤼산드로스 Lysander), 헤르미아의 아버지가 결혼상대로 점찍은 명문가 자재로 도망친 연인을 찾아나선 드미트리어스(데메트리오스 Demetrius), 자신에겐 관심도 없는 그를 사랑해 무작정 따라나선 헬레나(Helena). 오페라 ‘한여름 밤의 꿈’ 연습현장(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하지만 요정들의 잇단 실수로 헤르미아와 결혼하려 야반도주를 한 라이샌더도, 그들의 추격에 나선 드미트리어스도 엉뚱하게도 헬라나를 사랑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각 로랜스다.여기에 인도 소년을 두고 부부싸움이 잦아진 요정들의 왕과 왕비 오베른(Oberon)과 티타니아(Titania), 결혼을 앞둔 테세우스(Theseus)와 아마존의 여왕 히폴리타(Hippolyta), 오베른의 수하이자 장난꾸러기 요정으로 좌충우돌 4각 로맨스의 원흉인 퍽(Puck), 테세우스 왕의 결혼식날 공연될 연극 ‘피라모스와 티스베’ 출연배우지만 퍽의 장난질에 당나귀 머리 남자로 변해 티타니아와 사랑에 빠지는 보텀, 코믹 캐릭터인 마을 장인들 등의 이야기도 재미를 더한다.상황을 수습하려는 오베른 왕의 명령을 수행하던 요정 퍽이 잇달아 실수를 저지르며 꼬일 대로 꼬여버린 사랑이야기라는 서사의 큰 줄기는 그대로 따른다. 오페라 ‘한여름 밤의 꿈’이 원작과 다른 점은 중점을 두는 인물이다. 원작이 히폴리타와 테세우스에 초점을 맞췄다면 오페라는 요정들의 왕과 왕비인 오베른과 티타니아를 전면에 내세운다.더불어 ‘한여름 밤의 꿈’은 한국에서는 그 무대를 쉽게 볼 수 없는 카운터테너가 주역인 작품이다. 카운터테너가 연기하는 요정들의 왕 오베른이 이야기를 이끈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오베른과 티타니아는 티타니아를 숭배하던 인도 왕비의 아들을 시종으로 두고 싶어 하는 오베른에 죽을 듯 싸워대는 부부다.이들 역시 퍽의 실수에 우여곡절을 겪다 결국 서로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요정들의 왕 오베른은 이 캐릭터로만 8번이나 무대에 올랐던 카운터테너 제임스 랭(James Laing)과 처음으로 이 작품에 출연하는 장정권이, 그의 아내인 티타니아는 소프라노 이혜정·이혜지가 번갈아 연기한다.오페라 ‘한여름 밤의 꿈’ 연습현장(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장정권의 전언에 따르면 오베른은 “티타니아와 죽을 듯 싸우면서도 시기와 질투, 젊은 연인들을 이어주려는 따뜻한 마음, 모든 역경과 고난을 행복과 평화로 만들고자 하는 너그러움 등을 가진 캐릭터다.”‘한여름 밤의 꿈’의 또 다른 특징은 아이돌그룹 신화의 멤버이자 ‘헤드윅’ ‘시라노’ ‘썸씽로튼’ ‘서편제’ ‘젠틀맨스 가이드’ ‘에드거 앨런 포’ 등의 뮤지컬배우이기도 한 김동완이 처음으로 오페라에 도전한다는 것이다. 오페라 데뷔작에서 김동완이 연기하는 퍽은 오베른의 수하로 ‘처음으로 눈에 띈 이를 사랑하게 되는’ 마법꽃 심부름을 번번이 실수하는 통에 한바탕 소동극을 만들어내는 요정이다.애초부터 잘 알려진 셀러브리티로 캐스팅하려고 했다는 최상호 국립오페라단장이자 예술감독의 귀띔처럼 “노래 없이 내레이션으로만 표현하는, 혼자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좌충우돌하는 캐릭터로 영국식 영어가 중요하다.” 이에 영국식 영어를 따로 배우기도 한 김동완은 퍽에 대해 “엉망진창, 혼돈, 모자람 그 자체”라고 소개했다.오페라 ‘한여름 밤의 꿈’ 연습현장(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오페라 ‘한여름 밤의 꿈’이 가진 최고 미덕은 문학거장 셰익스피어의 이야기와 더불어 현대음악의 거장 벤저민 브리튼의 음악이다. 김동완의 설명처럼 “오페라를 잘 모르는 저 같은 사람에게도 굉장히 변칙적이고 지루할 틈이 없는 음악”이다. 지휘자 펠릭스 크리거는 “벤저민 브리튼 음악은 낯설고 어렵지만 사이사이 빛나는 무언가가 있다. 현대음악이지만 전통적인 작법을 쓰고 있고 멜로디 역시 아름답고 사랑스럽다”고 설명했다.엘리자베스 의상을 입고 있는 티타니아, 전형적인 영국군 헬멧을 쓰거나 승마바지, 베네치아 스타일의 망토와 가면 등을 쓴 오베르 그리고 티타니아를 둘러싼 어린이 합창단 의상은 1600년대 셰익스피어가 이 작품을 쓰던 시대의 동인도 회사 관련 이미지를 불러온다. 그 중 소녀들이 입는 간호사복, 오베른과 티타니아가 죽도록 싸우는 계기가 된 인도 소년 등은 영국 역사 중 식민활동의 상징이기도 하다.제목처럼 ‘한여름 밤의 꿈’ 속처럼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서 사랑하면서도 죽도록 서로를 할퀴는 오베른과 티타니아, 타의에 의한 방해에도 사랑을 굳건히 지켜가는 뤼산드로스와 헤르미아, 데메트리오스와 헬레나의 변화가 흥미롭다. 더불어 글로만 읽었던 이야기들이 음악으로, 무대로 옮겨졌을 때 벌어지는 상황, 새로움 등은 덤이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4-10 18:30 허미선 기자

[비바100] 그 존재마저 희미해진 이들의 연대, 그래서 다정할 미래…연극 ‘천 개의 파랑’

연극 ‘천 개의 파랑’(사진제공=국립극단)국립극단 74년 역사상 로봇 배우의 첫 등장이다. 연극 ‘천 개의 파랑’(4월 16~28일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으로 국립극단의 로봇 배우 ‘콜리’가 무대에 데뷔한다. 연극 ‘천 개의 파랑’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기술들이 진보하는 미래를 배경으로 그 기술들과 미래가 배제하고 지나쳐버림으로서 희미해진 존재들을 직시하는 천선란 작가의 동명 SF소설을 바탕으로 한다. 천선란 작가의 '천 개의 파랑' 원작소설(사진제공=허블)5월에는 서울예술단이 이 소설을 바탕으로 창작가무극 ‘천 개의 파랑’(5월 12~26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초연을 준비 중이니 비교해보는 재미도 쏠쏠할 전망이다. ‘천 개의 파랑’은 경마장에도 사람들이 다칠까 혹은 무거워 한껏 달리지 못하는 말들이 더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도록 휴머노이드 기수가 도입된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한편에서는 소방서도 인공지능(AI) 로봇들이 주축을 이루고 인간 소방관들에 대한 예산이 줄면서 낡은 방화복을 입고 불과 맞서다 죽음을 맞이하는 시대에 소외된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다. 2023년 국립극단 작품개발사업인 ‘창작공감: 연출’ 공모 선정작으로 ‘햄버거를 먹다가 생각날 이야기’ ‘어부의 핵’ ‘마운트’ 등 로봇을 통해 고도화된 기술, 초연결세계로 발생할 현상들을 다뤄온 장한새 연출, ‘왕서개 이야기’ ‘붉은 낙엽’ 등의 김도영 작가 등이 함께 한다. 한때는 최고 몸값을 자랑했지만 관절을 심하게 다쳐 달릴 수 없게 된 경주마 투데이, 어릴 적 병으로 장애를 갖게 돼 휠체어를 탄 소녀 은혜(류이재), 누군가의 우연과 실수로 인지학습능력 칩이 장착돼 투데이의 고통이 느껴져 스스로 낙마하는 통에 하반신이 부서져 버린 휴머노이드 기수 콜리(김예은과 로봇 콜리), 로봇 분야의 천재지만 넉넉지 않은 집안살림에 꿈을 접어야만 하는 연재(최하윤), 낡은 방화복 차림으로 화재현장에 출동했다 죽음을 맞은 남편에 대한 애도를 끝없이 반복하는 은혜와 연재의 엄마 보경(김현정)…. 이처럼 소외되고 상처입고 약해진 이들이 하반신이 부서진 채 버려진 콜리, 안락사를 당하기 직전의 투데이와 깊은 교감을 나누면서 연대하는 이야기다. 달릴 때 가장 행복했던 투데이의 안락사 논의를 알게 된 은혜와 연재, 동물을 치료하는 의사 복희(허이래), 경마장 직원 민주(윤성원) 등은 투데이를 다시 주로에 세우기 위해 의기투합한다. 연극 ‘천 개의 파랑’(사진제공=국립극단)인간이 설 자리를 침략(?)하는 로봇과 기술, 어쩌면 우리가 상상하는 디스토피아는 ‘연대’를 통해 인류만 중시하던 때보다 훨씬 다정하고 따스해질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게 하는 이야기다. 안락사 위기의 경주마 이름이 ‘투데이’인 것도, 그와 깊이 교감하며 다시 세우기 위해 연대하는 이들의 사연들도 의미심장하기만 하다. 브로콜리 색의 몸통을 가져 '콜리'로 불리는 C-27은 인간 배우 김예은과 145cm의 키, 브로콜리 색 몸통, LED 얼굴, 스피커를 장착한 가슴 등을 가졌고 상반신, 팔, 손목, 목 등 관절을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반자동 퍼펫 형태의 로봇 배우 콜리가 함께 무대에 올라 연기한다. 연극 ‘천 개의 파랑’(사진제공=국립극단)국립극단 관계자에 따르면 “연출적 의도에 따라 두 배우는 번갈아 혹은 함께 연기한다.” 오작동을 대비하는 콜리의 커버 배우도 준비 중이라는 연극 ‘천 개의 파랑’은 애초 4일 개막 예정이었으나 2일 리허설 중 로봇 배우의 기술적 오류가 발견돼 16일로 연기됐다. 콜리의 기술적 오류을 개선하고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열흘 간 연극 관계자 및 기술자들은 비상체제에 돌입한다. 이 과정 또한 인간과 로봇의 연대일지도 모른다. 원작소설의 출발점이었던, 천선란 작가가 스마트폰 메모장에 적어둔 “우리는 모두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문장을 되새기면서. 좀 천천히 가도 괜찮다고 토닥이고 위로하면서.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4-03 18:00 허미선 기자

[B그라운드] 죽음과 삶은 다른 곳에 있지 않다! 국립무용단 ‘사자의 서’

국립무용단 신작 ‘사자의 서’ 출연진과 창작진. 왼쪽부터 망자 역의 조용진, 안무·연출의 김종덕 단장, 황진아 작곡가, 회상 속 남자 역의 최호종(사진=허미선 기자)“(죽은 사람이 겪는) 49일의 여정을 통해 죽음이 삶의 끝이 아니라 일상이 중첩된 결과물임을, 망자가 느끼는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의 단계를 거치는 과정을 통해 우리가 올바른 삶을 살았는지 되돌아보는 시간과 자신의 삶을 다시 설정하는 계기를 가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구성했습니다.”김종덕 국립무용단장 겸 예술감독은 3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열린 신작 ‘사자의 서’(死者-書, 4월 25~27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기자간담회에서 작품에 대해 이렇게 소개했다.‘사자의 서’ 연습 중인 망자 역의 조용진(사진=허미선 기자)‘사자의 서’는 김종덕 단장이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어렵고 힘든 시기에 우연히 관람하게 된 대만작가 차웨이 차이(Charwei Tsai, 蔡佳葳)의 ‘바르도’(Bardo)에 영감받아 기획하고 안무·연출까지를 맡은 국립무용단의 신작이다.국립무용단원 50여명 전원이 출연하는 ‘사자의 서’는 파드마삼바바가 남긴 티베트 불교의 경전 ‘티베트 사자의 서’(Tibetan Book of the Dead)에서 영감받은 작품으로 ‘의식의 바다’ ‘상념의 바다’ ‘고요의 바다’ 3개장으로 구성된다. 김종덕 단장이 안무와 연출, 작곡가이자 무용가인 김재덕(1, 2장)과 거문고 연자주 겸 작곡가 황진아(3장)가 음악을 담당하고 국립무용단원 조용진이 망자, 최호종이 회상 속 남자로 무대에 오른다.염라대왕 앞에서 기다리는 망자들을 이미지화한 벽과 하늘에 매달린 영혼들, 상주들이 땅을 치고 통곡하듯 24명의 무용수가 바닥을 치는가 하면 저승으로 가는 길을 찾는 망자가 7분가량 솔로무를 선보인다.이번 안무에 대해 김 단장은 “얼굴의 표정이나 미장센에 의존하기 보다는 움직임의 질감을 가지고 작품을 끌고 갈 건인지를 집중적으로 고민했다”고 털어놓았다.“그간 저희 레퍼토리는 전통의 재구성에 가까운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여기에 동시대성을 강화시켜 현대예술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 (임기인) 3년의 목표입니다. 음악 역시 한국적 정서나 비트, 박자를 가지고 있지만 굉장히 현대적인 것들이 잘 결합돼 있죠.”3장의 음악을 담당한 황진아 작곡가는 “가장 어려운 지점은 삶과 죽음이 다른 곳에 있지 않음을 음악적으로 표현하는 것이었다”고 털어놓았다.국립무용단 신작 ‘사자의 서’ 연습장면(사진=허미선 기자)“죽음은 망자에게도 큰 이벤트지만 주변인들에게도 큰 이벤트인 것 같습니다.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은 것처럼 음악 안에서 굉장히 상반된 것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곡을 만들어내죠. 감정적으로는 그리움이라는 정서를 다각적으로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단순히 보고 싶은 마음 뿐 아니라 원망, 회상에서 만나는 기쁨 등이 담긴, 공간으로 본다면 검은 강이 흐르는데 꽃이 펴 있고 바람도 불고 온기도 있는 아이러니한 풍경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이에 “3장의 첫 번째 음악은 디스토피아 같지만 유토피아 같은 풍경을 만들려고 노력했고 마지막 곡은 온전히 망자의 감정선을 따라가려고 했다”며 “현악기, 피아노, 신디사이저, 퍼커션 등 친숙한 악기지만 연주법을 다양하게 하려고 노력했다”고 부연했다.국립무용단 신작 ‘사자의 서’를 연습 중인 회상 속 남자 역의 최호종(사진=허미선 기자)“현악의 경우 피치카토(Pizzicato, 현을 손가락으로 퉁겨 연주하는 주법)를 좀 넣었고 자연스럽게 들어가는 숨소리 등을 굳이 지우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숨소리가 ‘죽음’이라는 주제와 만나면서 새로운 시너지를 낼 거라고 생각하거든요.”김 단장은 안무가로서 동작 구성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를 “반복, 변화, 발전, 해체”로 꼽았다. 그는 “이를 통해 주제를 강화하면서 동작을 더 입체적으로 변화, 발전시키는 것이 제 안무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최호종은 “한 역할은 죽음을 통해 삶을 바라보고 또 다른 역할은 삶을 통해 죽음을 마주하게 되는 것 같다”며 “다르면서도 통일성을 만들기 위해 조용진 선배와 끊임없이 소통 중”이라고 밝혔다.조용진은 “다른 인물처럼 보이지만 언어적 몸짓이나 춤에 겹치는 동작들이 있다. 그런 부분들이 하나의 인물로 표현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김 단장은 “조용진씨는 움직임 자체가 세련된 무용수다. 망자로 보기에는 세련된 몸이지만 음악에 본인의 춤을 녹여는 데 굉장히 설득력 있게 잘 소화했다”며 “최호종씨는 평소 되게 얌전한데 움직임에 있어서는 굉장한 폭발력을 가진 무용수”라고 평했다.“죽음을 이야기 하는 게 아니라 역설적으로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이야기하고자 했습니다. 더불어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는지, 올바르게 가고 있는지 자기 성찰을 하고 삶을 리셋하는 과정으로 삼으시면 좋겠습니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4-03 17:45 허미선 기자

[人더컬처] ‘거미여인의 키스’ 몰리나 정일우 “무대에 오르며 사랑하며 배우며, 꾸준히 노력하는 수밖에!”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몰리나 역의 정일우(사진제공=스튜디오252)“여성스럽게 보이려고 하기 보다는 몰리나가 가진 유약함, 정말 유리알같이 깨질 것 같은 캐릭터를 표현하려고 했어요. 그러다 보니 걸음걸이나 손동작, 말투 등이 더 몰리나스러워지지 않았나 싶어요.”연극 ‘거미여인의 키스’(Kiss of The Spider Woman, 3월 31일까지 예그린씨어터)에서 스스로를 여자라고 믿는 몰리나로 분하고 있는 정일우는 “영화 ‘대니쉬걸’(The Danish Girl)의 에디 레드메인(Eddie Redmayne)을 참고했다”고 털어놓았다.“에디 레드메인이 연기하는 캐릭터(풍경화가 에이나르 베게너)가 결혼하고 나서 성 청체성을 깨달아는 이야기인데 그가 표현하는 디테일들이 몰리나랑 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더불어 장국영 배우의 ‘패왕별희’도 참고하면서 제가 가지고 있는 섬세함과 예민함 등 몰리나와 비슷한 결들을 끄집어내 표현하고 있죠.”연극 ‘거미여인의 키스’에서 몰리나로 무대에 오르고 있는 정일우(사진제공=레드앤블루)연극 ‘거미여인의 키스’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빌라 데보트 감옥의 작은 감방을 배경으로 스스로를 여자라고 믿는 몰리나(이율·전박찬·정일우, 이하 시즌합류·가나다 순)와 정부에 저항하는 정치범 발렌틴(박정복·차선우·최석진)의 이야기다.아르헨티나 작가 마누엘 푸익(Manuel Puig)이 1976년 발표한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1985년 영국 런던 브러시 시어터에서 연극이 초연됐다. 같은 해 영화로도 만들어져 칸영화제와 미국·영국 아카데미에서 몰리나 역의 윌리엄 허트(William Hurt)가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1992년에는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 이듬해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로 만들어져 무대에 오르기도 했던 ‘거미여인의 키스’는 한국에서2011년 초연된 후 2015년, 2017년에 이어 새로운 프로덕션으로 6년 만에 돌아왔다.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몰리나 역의 정일우(사진제공=스튜디오252)“감사하게도 같은 시기에 세편 정도의 연극에서 출연제의를 받았어요. ‘거미여인의 키스’나 몰리나는 제가 기존에 하지 않았던 극이자 캐릭터여서 주변에서는 만류하는 분위기였죠. 고민하던 차에 (드라마 ‘해치’로 인연을 맺었고) 이전 시즌에서 발렌틴을 연기했던 정문성 형에게 조언을 구했어요. 형이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작품’이라고 ‘하고 나면 많은 걸 느끼고 배울테니 네가 꼭 도전해보면 좋겠다’고 얘기해주셔서 용기 내 도전하게 됐죠.”그 과정은 그의 표현대로 “험난했다.” 두달 반가량 매일을 지하철로 혜화동을 오가며 고민하고 연습했다. 뭔가 풀리지 않거나 고민이 깊어질 때면 박제영 연출에게 새벽이고 밤이고 전화를 걸어 “엄청 괴롭히면서” 무대에 오를 준비를 했다.“가장 큰 고민은 ‘몰리나의 사랑은 뭐지?’였어요. 이 친구가 가진 사랑은 이성 간 사랑이나 호기심에서 시작한 사랑이 아니라 다른 차원의 것 같았거든요. 멘붕이 온 상태에서 정문성 형이랑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죠. 형의 ‘모성애에 가까운 사랑이지 않겠냐’라는 말을 듣는 순간 정답이 되겠더라고요. 발렌틴이 부족한 걸 채워주려고 애쓰고 그를 위해 희생하는 몰리나의 사랑이 제가 어머니께 받는 것과 굉장히 비슷했거든요.”치열한 고민 끝에 몰리나로 무대에 오르고 있지만 정일우는 “워낙 대사량이 방대하다 보니 죽을 만큼 부담감이 커서 지금도 매 공연 전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리딩을 하고 무대에 오른다”며 “완성됐다고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매회 부족한 걸 찾아내고 채워넣으면서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그게 연극의 의미라고 생각해요. 매 공연 100%에 가까운 완성도를 보여드리려고 노력하지만 사실 100% 만족은 어려워요. 매회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죠. 그게 굉장히 힘든 부분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성장할 수 있지 않나 싶어요.”연극 ‘거미여인의 키스’에서 몰리나로 무대에 오르고 있는 정일우(사진제공=레드앤블루)정일우는 몰리나를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기도 했다”며 “저는 굉장히 겁이 많고 항상 걱정이 앞서는 사람이다. 겉으로는 당당하고 괜찮은 척 하지만 혼자 있을 때는 동굴 속으로 파고들어가는 사람이라 항상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고 털어놓았다.“그래서 몰리나가 굉장히 부럽기도 해요. 저 역시 가식적으로 행동하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는 제약들이 많거든요. 그런데 몰리나는 굉장히 자유로워요. 심지어 1960년대에 이렇게까지 깨어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놀라워요. 부럽기도 하고 몰리나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도 들죠. 그처럼 살아가고 싶기도 해요. 관객분들 역시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연극 ‘거미여인의 키스’는 2인극으로 두명의 배우가 온전히 끌어가는 이야기다. 상대 배우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몰리나가 되기도 한다는 정일우는 “최석진 배우의 발렌틴은 극 ‘T’(MBTI 중 감정 보다는 사고하는 유형)”라고 밝혔다.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몰리나 역의 정일우(사진제공=스튜디오252)“박정복 배우는 초반에 굉장히 날카롭다가 후반부로 가면서 굉장히 부드러워져요. 저를 안아주는, 오빠 같은 발렌틴이죠. 반면 차선우 배우는 오히려 제가 안아주고 싶은 동생 같은 모습이 있어요.”타고난 본성, 스스로의 정체성에 당당하고 충실한 듯 보이지만 내면의 상처, 비밀 등을 숨기고 있는 몰리나 그리고 신념과 혁명을 위해 원초적 본성을 절제하는 듯 보이지만 억압 속에서 결국 본능에 충실하게 돼버리면서 고뇌하는 발렌틴.극과 극처럼 보이지만 결국 어이진, 저마다의 다름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기꺼이 보듬는 두 사람의 연대이자 사랑이야기다. 두 사람처럼 극과 극의 성향이지만 친해진 경우가 있냐는 물음에 정일우는 “이민호”를 언급했다.“저와는 정말 다른 스타일이에요. (이)민호는 정말 남자 같거든요. 저는 좀 섬세하고 여성스러운 부분이 있는 것도 같아요. 함께 여행을 가면 요리는 제가 다 해주고 챙겨주곤 하죠. 반면 민호는 터프하지만 은근히 챙겨줘요. 그 마음이 되게 따뜻한 친구죠.”그렇게 정반대인 두 사람이 가까워질 수 있었던 건 “생사를 함께 나누면서”다. 정일우는 “배우가 되기 전부터 친구라 굉장히 많이 기대는 편”이라며 “얘기를 많이 하지 않아도 통하는 그런 친구”라고 털어놓았다.“하지만 만나면 혹은 제 연극을 봤다면 분명 뭐라고 할지 상상이 돼요. ‘거기서 왜 그렇게 연기를 하냐’는 둥 막 뭐라고 했겠죠. 그러면서도 저희는 항상 열심히 서로를 응원해 주는 사이예요.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그런 감동이랄까요.”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몰리나 역의 정일우(사진제공=스튜디오252)정일우는 “다시 한다고 해도 몰리나”라고 단언할만큼 몰리나에, ‘거미여인의 키스’에 빠져 있었다. 그는 “연극을 많이 한 건 아니지만 그날 공연을 잘하면 좀 개운하고 성취감도 느끼곤 했는데 이 작품은 그런 게 전혀 없다”고 토로했다.“굉장히 마음이 먹먹해져요. 공연 끝나고 나서도 그게 해소가 잘 안 되더라고요. 그날의 공연이 끝나도 굉장히 마음이 가라앉아요. 공연 끝날 때까지 그러지 않을까 싶어요. 이 작품의 여운이 꽤 오래 가지 않을까, 어떻게 빠져나가야 하나 미리부터 걱정을 하고 있죠.”정일우는 벌써 데뷔 20주년을 앞둔 중견(?) 배우다. 그는 “일하면서 관계자분들께 ‘시장이 좋다’는 말은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며 “다들 영화며 드라마 제작편수가 줄었다고들 하시지만 10년 전이랑 비교해보면 비슷한 수준”이라고 짚었다.연극 ‘거미여인의 키스’에서 몰리나로 무대에 오르고 있는 정일우(사진제공=레드앤블루)“그래서 사실 배우도 잘 인내하고 버티는 게 살아남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무작정 기다리기보다는 분명 무언가를 찾아서 할 것들이 있다고 믿으면서요. 그 안에서 최선을 다 하다 보면 또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이어 그는 “꾸준히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정일우는 “벌써 20년 가까이 이 일을 해올 정도로 배우라는 직업을 사랑한다”며 “제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끝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배우는 어쩔 수 없이 평가를 받는 직업이잖아요. 운만으로는 한계가 있죠. 비슷비슷한 작품에서 출연제의는 계속 들어오긴 할 거예요. 하지만 그렇게만 한다면 결국 뒤처질 수 밖에 없죠. 각자 스타일대로 노력해야 하고 저 역시 그러고 있습니다.”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몰리나 역의 정일우(사진제공=스튜디오252)정일우는 연극에 대해 “앞으로도 기회만 주어진다면 계속 하고 싶다”며 “이순재 선생님께서 ‘거침없이 하이킥’ 때부터 무대에 서라고 말씀해주셨다”고 밝혔다.“이전 작품(‘엘리펀트 송’)은 매번 와서 봐주시기도 했어요. ‘무대에 서지 않는 배우는 배우로 치지 않는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 무대에서 2시간가량을 끌고 갈 수 있는 역량을 키워나가고 또 거기서 새로운 걸 느끼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면서 배우로서 살아있다고 느껴지거든요. 그래서 저는 기회만 된다면 평생 무대에 서고 싶어요.”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3-29 18:00 허미선 기자

탄탄하고 정교한 드라마가 전하는 진한 울림…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이 지난 5일 개막해 순항 중이다.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은 극작가 겸 작사가 브라이언 요키와 작곡가 톰킷이 10년에 걸쳐 완성한 작품으로 2009년 브로드웨이에 입성했다. 당시 토니어워즈 11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며 주요 3개 부문(음악상, 편곡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 2010년에는 뮤지컬로는 이례적으로 퓰리처상 드라마 부문을 수상하며 ‘브로드웨이 역사상 가장 완벽한 뮤지컬’이라는 평가를 받았다.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은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지만 내면에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굿맨 패밀리’ 가족 구성원들의 아픔과 화해, 그리고 사랑을 그린다. 과거의 상처로 인해 16년째 양극성 장애를 앓고 있는 엄마 다이애나, 그런 엄마로부터 소외감을 느끼는 딸 나탈리, 다이애나를 헌신적으로 사랑하며 흔들리는 가정을 지켜내려 노력하는 아빠 댄, 다이애나의 곁을 떠나지 못하는 아들 게이브까지 호전되지 않는 여러 상황들로 인해 가족들은 저마다 한계에 다다르며 괴로워한다. 그러나 위태로웠던 가족들은 서로의 상처를 진심으로 바라보기 시작하고 작게 피어나기 시작한 희망을 붙잡으려 한다.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은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다이애나와 그녀의 병이 온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을 탄탄하고 정교한 드라마로 풀어냈다. 창작진들은 실제 양극성 장애를 앓고 있는 환자와 가족들이 충분히 수긍할 수 있을 만큼의 완성도를 위해서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작품을 다듬어 왔다.드라마뿐만 아니라 록을 포함한 재즈, 컨트리, 발라드 등의 다양한 장르의 음악으로 이루어진 넘버들 역시 스토리 전개와 극적 갈등에 힘을 실어주며 극의 몰입도와 완성도를 높인다.역동성을 가득 담은 무대와 다채로운 조명도 눈길을 끈다.3층 철제 구조물로 이루어진 무대는 굿맨 패밀리 집의 단면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각 층마다 나뉘어 있는 공간을 통해 다른 장소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사건을 한눈에 보여준다. 극의 상징과도 같은 여인의 눈은 다이애나의 심리와 가족들의 절망감을 나타내고 다채로운 조명도 각 장면마다 캐릭터들의 심리상태를 반영하여 인물들을 보다 깊이 있게 표현해 준다.드라마와 음악, 그리고 무대 장치까지 이 모든 것들은 조화롭게 이루어져, 가족 구성원의 이야기를 함축적으로 나타내며 더욱 입체적인 감동을 선사한다.연출은 뮤지컬 ‘판’, ‘원더보이’의 연출과 뮤지컬 ‘반 고흐와 해바라기 소년’, 연극 ‘비너스 인 퍼’의 협력 연출 등을 통해 폭넓은 작품 스펙트럼을 보여준 박준영 연출이 맡았다. 박준영 연출은 ‘넥스트 투 노멀’ 초연 당시 조연출부터 시작해 지난 시즌에는 협력 연출로 참여한 바 있다.음악은 이나영 감독이, 안무는 박은영 감독이 맡았다.신화숙 기자 hsshin087@viva100.com

2024-03-26 11:43 신화숙 기자

무대 위 ‘벤자민 버튼’ 김재범·심창민·김성식

뮤지컬 ‘벤자민 버튼’ 출연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벤자민 버튼 역의 김재범·심창민·김성식, 블루 루 모니에 이아름솔·박은미·김소향(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로 유명한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F. Scott Fitzgerald)의 단편소설 ‘벤저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을 바탕으로 한 뮤지컬 ‘벤자민 버튼’(Benjamin Button, 5월 11~6월 30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이 개막을 알리며 캐스팅을 발표했다.‘벤저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은 데이비드 핀처(David Fincher) 감독, 브래드 피트(Brad Pitt)와 케이트 블란쳇(Cate Blanchett) 주연의 동명영화(한국 개봉명 ‘벤자민 버튼의 시간을 거꾸로 간다’)로도 만들어져 사랑받았던 단편소설로 나이가 들수록 어려지는 남자의 이야기다.뮤지컬 ‘벤자민 버튼’ 포스터(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19세기 말~20세기 초 미국을 배경으로 벤자민 버튼과 그가 삶의 스윗 스팟(Sweet Spot)으로 확신하는 재즈클럽 가수 블루 루 모니에를 통해 기쁨과 사랑, 상실의 슬픔, 모든 것의 주체는 육체가 아닌 영혼이라는 깨달음, 시간도 초월하는 삶의 소중한 가치 등을 아우른다.2021년 CJ문화재단의 창작뮤지컬 지원 프로그램 스테이지 업 선정작으로 동방신기 멤버 심창민(최강창민)의 뮤지컬 데뷔작으로 그는 70세 노인의 외모로 태어나 점점 어려지는 벤자민 버튼을 연기한다.벤자민 버튼은 심창민과 더불어 ‘아트’ ‘웨스턴스토리’ ‘아가사’ ‘사의찬미’ ‘곤 투모로우’ ‘스모크’ ‘아마데우스’ 등 무대를 비롯해 드라마 ‘슈룹’ ‘형사록’ ‘닥터 슬럼프’, 영화 ‘인질’ 등으로 눈도장을 찍은 김재범과 JTBC ‘팬텀싱어’ 시즌3에서 3위를 차지한 레떼아모르(길병민·김성식·박현수) 멤버이자 ‘레미제라블’ ‘마타하리’ ‘닥터 지바고’ ‘레베카’ 등의 무대에 올랐던 김성식이 번갈아 연기한다.벤자민 버튼이 평생을 바쳐 사랑하는 블루 루 모니에는 ‘마리 앙투아네트’ ‘프리다’ ‘모차르트’ 등의 김소향, ‘인사이드 윌리엄’ ‘식스 더 뮤지컬’ ‘이프덴’ ‘하데스타운’ 등의 이아름솔, ‘몬테크리스토’ ‘판’ ‘빨래’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등의 박은미가 트리플 캐스팅됐다.‘서편제’ ‘베르테르’ ‘모래시계’ ‘미친키스’ ‘남자충동’ 등의 조광화 연출이 대본까지 집필한 창작뮤지컬로 ‘북경의 남쪽’ ‘콩칠판 새삼륙’ ‘순수의 시대’ 등의 이나오 작곡가가 넘버를 꾸린다. 더불어 ‘난쟁이들’ ‘아마데우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등의 채한울 음악감독, 박스 오브제를 활용한 무대로 새로움을 선사할 정승호 디자이너, 배우와 퍼펫의 교감으로 신선함을 전할 오브제 아티스트 문수호 작가 등 내로라하는 창작진들이 의기투합했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3-25 17:42 허미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