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뮤지컬

[B그라운드] 청춘, 성장 그리고 저마다의 발버둥…뮤지컬 ‘4월은 너의 거짓말’

뮤지컬 ‘4월은 너의 거짓말’ 출연진(사진=허미선 기자)“이 극에서 말하고 싶은 주제가 ‘발버둥’이라고 (추정화) 연출님이 말씀을 해주셨어요. 누구에게나 발버둥을 쳤던 순간들이 있잖아요. 저희의 연습 기간 역시 순간순간이 발버둥이었던 것 같습니다.”뮤지컬 ‘4월은 너의 거짓말’(8월 25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축구에 열정적인 와타리 료타(김진욱·이재진·조환지 이하 료타, 가나다 순)를 연기 중인 조환지는 작품의 주제를 ‘저마다의 발버둥’이라고 밝혔다.뮤지컬 ‘4월은 너의 거짓말’ 아리마 코세이와 이야노조 카오리 배우들(사진제공=EMK컴퍼니)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4일 열린 프레스콜에서 조환지는 “더불어 청춘의 연속이었다”며 “연습 막판까지 발버둥을 쳤던 것처럼 무대 위에서도 발버둥을 칠 예정이니 수많은 저희 청춘들의 순간들을 지켜봐시면 좋겠다”고 덧붙였다.“저희가 드릴 수 있는 청춘의 에너지, 기운 등을 받고 극장을 나가시면서 ‘나도 저랬던 시절이 있었지’라고 회상하시길 바랍니다. 더불어 지금 청춘이신 분들이라면 저희의 큰 에너지를 받는 순간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최근 일본 공연계를 휩쓴 트렌드는 2.5차원 뮤지컬(2.5次元ミュ-ジカル)이다.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을 무대로 실사화하는 트렌드로 뮤지컬 ‘4월은 너의 거짓말’도 아라카와 나오시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다.2011년부터 2015년 고단샤의 ‘월간 소년 매거진’에서 연재됐던 작품으로 2015년 TV애니메이션, 이듬해 영화로 개봉해 사랑받았다. 토호가 제작한 ‘4월은 너의 거짓말’은 ‘지킬앤하이드’ ‘데스노트’ ‘드라큘라’ ‘웃는 남자’ ‘마타하리’ ‘엑스칼리버’ ‘몬테크리스토’ 등으로 한국에서 유독 사랑받는 프랭크 와일드혼(Frank Wildhorn)이 넘버를 꾸리고 ‘가구야 공주 이야기’ ‘메리와 마녀의 꽃’ 등의 일본작가 사카구치 리코가 대본을 집필해 지난해 5월 일본에서 초연됐다. ‘인터뷰’ ‘스모크’ ‘프리다’ 등의 추정화 연출이 합류해 6월 28일 개막한 한국과 더불어 웨스트엔드에서도 동시에 공연된다.불운을 겪는 피아노 신동 아리마 코세이(김희재·윤소호·이홍기, 이하 코세이, 가나다 순)와 천재 소녀 바이올리니스트 미야노조 카오리(이봄소리·정지소·케이, 이하 카오리)가 음악으로 교감하며 성장하는 이야기다. 코세이, 카오리와 더불어 코세이의 친구이자 카오리의 짝사랑 상대 료타, 코세이와 료타의 소꼽친구 사와베 츠바키(박시인·황우림) 등 저마다의 꿈을 향해 내달리며 발버둥치는 청춘들의 성장극이다.‘4월은 너의 거짓말’은 지난해 ‘모차르트!’에 이은 트로트 스타 김희재의 두 번째 뮤지컬이자 유재석의 ‘놀면 뭐하니?’ WSG워너비(윤은혜, 나비, 이보람, 코타, 박진주, 조현아, SOLE, 소연, 엄지윤, 권진아, 흰, 정지소) 멤버, ‘더 글로리’의 문동은(송혜교) 아역으로 이름을 알린 정지소의 뮤지컬 데뷔작이다.뮤지컬 ‘4월은 너의 거짓말’ 공연장면(사진=허미선 기자)김희재는 강압적인 엄마의 교육방식, 그런 엄마의 죽음으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피아노 신동 코세이를, 정지소는 피아노 연주를 꺼리는 코세이가 다시 음악을 할 수 있게 손을 잡아주는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카오리를 연기한다.“데뷔하던 고등학교 때부터 뮤지컬을 꿈꿨다”는 정지소는 “상수, 하수, 1번, 2번, 3번, 4번 등 모든 게 헷갈리는 상황에서 짧은 시간 안에 무대에 올라야 했는데 선배님들 덕분에 빠르게 적응해 행복하게 공연 중”이라고 꿈을 이룬 소감을 전했다.김희재는 ‘4월은 너의 거짓말’에 대해 “공연이 끝나고 ‘힘들다’ 보다는 ‘되게 오늘 즐거웠다’는 느낌이 많이 드는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이어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애니메이션도, 원작도, 영화도 두 번 정도씩 봤다”며 “여러 번 보면서 코세이가 가진 트라우마를 어떻게 나한테 대입해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털어놓았다.“저는 어려서 트로트 신동으로 사랑받았지만 코세이는 천재 피아니스트지만 사랑을 받기 보다는 질타와 채찍질을 당하면서 어두운 부분이 많았어요. 저는 좋아하는 트로트를 하면서 굉장히 박수를 많이 받고 신났던 경험이 많았죠. 그래서 코세이를 이해하기 위해 마냥 행복만 하지는 않았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끄집어내면서 대입하려고 노력했습니다.”뮤지컬 ‘4월은 너의 거짓말’ 주요 출연진들이 프레스콜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허미선 기자)이른 나이에 뮤지컬 무대에 데뷔해 눈길을 끌었던 윤소호는 “같은 트라우마라도 10대가 느끼는 감정은 굉장히 다른 것 같다”며 “이 친구(코세이) 역시 피아노를 치는 아티스트지만 배우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과는 또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그 다름과 트라우마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고 밝혔다.카오리 역의 이봄소리는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보이지 않는 아픔들에 굉장히 밀접한 작품”이라며 “신체적·정신적 장애에 갇히지 않고 혹은 누가 더 안쓰럽다 느끼기 보다는 서로가 서로에게 구원의 존재가 돼 트라우마를 이겨낸다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서로가 서로를 성장시켜줄 수 있는 굉장히 좋은 친구가 되고 결국엔 받아들일 죽음과 그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마음을 주는, 굉장히 따뜻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무대도 벚꽃이 날리는 굉장히 예쁜 모습으로 기억되게끔 하지만 단지 예쁜 모습으로만 남는 것이 아닌, 결국 두 캐릭터가 같이 성장해 나아갔음을 전하고 싶은 작품이에요.”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7-05 18:00 허미선 기자

[비바100] “왜 가난하고 그래”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 편’

뮤지컬 ‘젠틀맨스가이드: 사랑과 살인편’ 2021년 공연장면(사진=브릿지경제 DB, 쇼노트 제공)지독히도 가난하지만 사랑에도, 세상에도, 삶에도 순수했던 청년 몬티 나바로(김범·손우현·송원근, 이하 시즌합류·가나다 순)가 런던 최고의 귀족 다이스퀴스 가문의 8번째 백작 후계자였음을 알게 되면서 이야기는 좌충우돌 블랙코미디가 된다. 1900년대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몬티 나바로와 다이스퀴스 가문 사람들(이규형·정상훈·정문성·안세하), 연인 시벨라 홀워드(류인아·허혜진)와 결혼상대 피비 다이스퀴스(김아선·이지수) 등이 펼쳐가는 블랙코미디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 편’(7월 6~10월 20일 광림아트센터 BBCH홀)이 돌아온다.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 편’(사진제공=쇼노트)2018년 초연 후 2020, 2021년 재삼연에 이은 네 번째 시즌으로 지난 6월 16일(현지시간) 제77회 토니어워즈(Tony Awards)에서 뮤지컬 부문 의상 디자인상을 수상한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 브로드웨이씨어터) 린다 조의 대표작이기도 하다.처음엔 그저 다이스퀴스 소유의 은행 취직이면 됐다. 하지만 마뜩찮게 지위와 권력, 부를 거머쥔 다이스퀴스가문 사람들이 조상들까지 단체로 등장해 ‘왜 가난하고 그래’를 돌림노래처럼 불러대며 조롱하는가 하면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연인 시벨라는 다이스퀴스 가문의 8번째 백작 후계자라는 말을 한껏 비웃으며 부잣집 남자와의 결혼에 열을 올린다.팔을 뻗기만 하면 구할 수 있었던 에제키알 다이스퀴스 목사를 해치우는 선택을 하면서 몬티의 다이스퀴스 백작 후계자 퇴치작전은 본격화된다. 이 퇴치작전은 몬티의 고군분투와 각종 다이스퀴스를 연기하는 배우의 노고로 완성된다. 혼자서 15~20초 안에 변신해 9명의 다이스퀴스를 연기하는 배우의 변화는 ‘젠틀맨스 가이드’의 백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스케이트장에 얼음구멍을 내거나 향수로 벌떼의 공격을 받게 하거나 운동기구 무게를 늘리고 소품 총에 실탄을 장전한다. 그렇게 바람둥이 애스퀴스, “남자가 더 좋아”를 외치며 몬티에게 호감을 보이는 헨리, 보디빌더 바톨로뮤, 발연기 배우 레이디 살로메가 죽음을 맞는 가운데 가장 큰 웃음을 자아내는 이는 단연 자선사업가 레이디 히아신스다. 자선사업 거리를 제안하며 이집트로, 인도로, 아프리카로 보내고 또 보내도 몇 번이고 살아 돌아오는 히아신스는 1인 9역을 소화하는 다이스퀴스 배우들의 매력이 응집된 캐릭터다.이후 벌어지는 현재 하이허스크 성의 주인인 애덜버트 백작과의 마지막 사투, 사랑하는 연인 시벨라와 결혼상대로 적합한 피비 다이스퀴스의 밀고 당기기도 흥미롭다. 그렇게 몬티가 “언젠가는 지렁이도 걷게 될지”라는 시벨라의 비아냥을 딛고 백작이라는 지위를 얻는 과정은 폭소를 자아내지만 마냥 웃어도 되나 질문하게 한다.뮤지컬 ‘젠틀맨스가이드: 사랑과 살인편’ 2021년 공연장면(사진=브릿지경제 DB, 쇼노트 제공)재기발랄함과 촌철살인과도 같은 통쾌함 그리고 둘 다 가질 수 있다는 욕심,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얻게 된 백작이라는 지위, 이를 지키기 위한 마뜩찮은 선택, 새로운 백작 몬티를 노리는 또 다른 다이스퀴스 후계자의 등장 등에 대한 씁쓸함이 공존하는 그야말로 ‘블랙 코미디’다. ‘젠틀맨스 가이드’는 ‘구미호뎐’ 시리즈, ‘고스트 닥터’ ‘로스쿨’ ‘꽃보다 남자’ 등의 김범, BL드라마 ‘나의 별에게’ 시리즈, ‘행복배틀’ ‘금수저’ 등과 연극 ‘테레랜드’ 등의 손우현의 뮤지컬 데뷔작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오페라의 유령’ ‘레드북’ ‘이프덴’ ‘서편제’ 등의 송원근과 몬티 나바로를 번갈아 연기한다.2024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 편’ 출연진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몬티 나바로 역의 송원근·김범·손우현, 1인 9역을 소화할 다이스퀴스들의 안세하·정문성·정상훈·이규형(사진제공=쇼노트)9개의 역할을 소화하며 ‘젠틀맨스 가이드’의 백미를 책임질 다이스퀴스들로는 초연부터 함께 한 ‘삼식이 삼촌’ ‘카지노’ ‘해피니스’ ‘슬기로운 감빵생활’ ‘몬테크리스토’ ‘스위니토드’ ‘팬레터’ 등의 이규형과 2020년 재연 무대에 섰던 코믹 연기의 대가 정상훈이 다시 돌아온다. 더불어 2021년 3연의 ‘셰익스피어 인 러브’ ‘사의찬미’ ‘어쩌면 해피엔딩’ ‘헤드윅’ ‘감사합니다’ ‘신성한, 이혼’ ‘모범형사’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리즈 등의 정문성이 다시 무대에 서며 드라마 ‘킹더랜드’ 등과 뮤지컬 ‘할란카운티’ ‘사랑의 불시착’ ‘올슉업’ 등의 안세하가 다이스퀴스들로 새로 합류한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7-03 18:30 허미선 기자

[비바100] ‘벚꽃동산’ 박해수 “내가 샀어요, 아물지 않은 상처의 공간, 순간을 이겨내는!”

‘벚꽃동산’ 박해수(사진제공=LG아트센터)“처음엔 ‘내가 샀어요’라는 대사가 좀 부담스럽고 긴장됐어요. ‘벚꽃동산’에서 남자배우가 할 수 있는 가장 잘 알려진, ‘햄릿’의 ‘죽느냐 사느냐’와도 같은 대사거든요. 이 독백을 잘해야겠다는 부담이 컸는데 지금은 좀 많이 내려놨어요. 매회, 순간순간 달라지거든요.”박해수는 연극 ‘벚꽃동산’(Вишнёвый сад, 7월 7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시그니처홀) 출연을 처음 알리면서 설렘과 부담을 토로했던 대사 “내가 샀어요”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어떤 때는 울컥하기도 하고 또 다른 때는 울분이 되기도, 자극이 되기도 해요. 그 상대도 어느 날은 강현숙(최희서)이고 어느 날은 송도영(전도연)이 되고 또 어떤 때는 변동림(남윤호)이 되기도 합니다. 그 순간에, 대사 자체에 충실하려고 하죠.”‘벚꽃동산’ 박해수(사진제공=LG아트센터)그렇게 변화를 꾀한 ‘내가 샀어요’에 대해 박해수는 “사실 그건 제(황두식)가 과거에 얽매여 인정받고 증명해보이고 싶은 이 집안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제일 많이 드러나는 대사”라고 말을 보탰다. “(황두식이 ‘내가 샀어요’라고 한) 벚꽃동산은 제가 가장 사랑했던 공간이고 유년기의 내 모든 추억 속에 있던 곳이고 내 아버지가 그 사람들한테 두드려 맞는 걸 내 눈으로 본 공간이기도 해요. ‘지울 수 없는 상처, 지울 수 없는 그리움’이라는 대사가 잘 표현하고 있죠. 저는 그 공간에 매여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 공간, 순간을 이겨내는 의미의 대사가 ‘내가 샀어요’죠.”◇나와 맞닿은 황두식, 아버지를 떠올리는 순간들‘벚꽃동산’ 박해수(사진제공=LG아트센터)“황두식이라는 이름도 제가 지었어요. ‘식’자가 꼭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밥은 먹고 살아라’라는 바람이 담기기를 바랐거든요.”고전의 현대화에 탁월한 사이먼 스톤(Simon Stone)의 ‘벚꽃동산’은 안톤 체호프(Anton Chekhov)의 동명 유작을 한국화한 작품이다.어린시절의 추억이 담긴 벚꽃동산까지 경매에 붙여야할 지경까지 몰락해 6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귀족 류보비 안드리예브나 라네프스카야(류바)는 거대기업의 송도영(전도연)으로, 이 재벌가의 재정위기를 타파할 방법을 끊임없이 제안하지만 누구도 들어주지 않아 미칠 지경에 이르는 농노의 자식이자 신흥사업가 로파힌 예르몰라이 알렉세예비치는 송씨 집안 운전수의 아들로 자수성가한 신흥사업가 황두식(박해수)으로 변주된다.2024년 한국을 배경으로 송도영과 황두식을 비롯해 기업대표이자만 ‘낭만’이 우선인 송재영(손상규), 집안사업을 지키고자 고군분투하며 두식과 미묘한 관계를 이어가는 입양한 딸 강현숙(최희서), 영화감독을 꿈꾸는 둘째 딸 강해나(이지혜)와 이상주의자 변동림(남윤호) 등이 급변하는 사회상과 그에 따른 갈등, 혼란 등을 풀어낸다.연습 초반 사이먼 스톤은 배우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들로 캐릭터의 면면을 구축했다. 황두식 또한 박해수의 개인사에서 비롯한 “갖춰진 틀 안에 제가 들어가는 게 아닌, 저와 맞닿은 캐릭터”다.“특히 아버지에 대한 부분이 와닿아요. 황두식의 아버지처럼 폭력적이거나 술주정뱅이는 아니었지만 어린시절의 아버지는 거대하고 무서웠고 목소리도 크고 되게 우람하셨거든요. 그런 모습 뒤에 숨겨진 아버지의 작은 모습을 봤을 때를 사이먼과 얘기한 적이 있어요. 그런 아버지에 대한 황두식의 인정욕구가 제가 가진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이먼이 생각하는 스스로의 아버지에 대한 인정욕구도 분명 있죠.”‘벚꽃동산’ 박해수(사진제공=LG아트센터)이어 “연기를 하면서 아버지 얼굴이 떠오를 때가 있다”며 “황두식 뿐 아니라 모든 캐릭터들이 가진 결핍들은 배우에게서 가지고 왔다. 그래서 배우들도 좀 더 외롭고 감정들을 더 많이 느낄 수 있는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사이먼이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아요. ‘오징어게임’ ‘유령’ 등 저 뿐 아니라 ‘벚꽃동산’ 출연진들의 작품들을 거의 다 볼 정도죠. 사이먼이 사람을 잘 관찰하는데 저한테서는 피지컬과 아우라가 있는 동시에 되게 연약한 면이나 쉽게 흔들리는 듯한 모습을 본 것 같아요.”이어 “K콘텐츠 발전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는데 ‘한국은 독보적인 스타일의 영화, 드라마가 있다’ ‘한국 배우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연기를 잘한다’고 하더라”고 말을 보탰다.“제가 생각하는 K콘텐츠의 강점은 수준높은 시청자들과 관객들이죠. 그 잣대가 저희를 열심히 안할 수 없게 만들거든요. 배우인 저 역시 연기를 잘하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죠.”◇두 여자, 복잡한 존재 송도영과 강현숙‘벚꽃동산’ 박해수(사진제공=LG아트센터)“둘 다 사랑에 대한 부재가 있어요. 어쩌면 가장 외로운 사람들일 수도, 송가네의 이방인일 수도 있는 사람들이죠. 둘 다 그 아픔이 존재하는 결핍이 있어요. 그 사이에 분명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을 거예요. 감정적인 연인 사이의 교류는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뭔가 모르게 ‘인테리어 디자인을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다’ 같은 얘기를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존재죠.” 연인이라고 할만큼 뜨겁진 않지만 그렇다고 차갑지만도 않은 강현숙에 대해 박해수는 “감정적 동질감”을 언급했다.“고독한 한 남자가 성공 후 모든 걸 다 정리한 상태에서 진짜 좋아하는 걸 알게 됐다고 고백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그렇게 고백하는 순간 내가 몰랐던, 오래된 사랑을 하고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되게 아프더라고요.”그렇게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얘기를 고백하는 사이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감정들의 복합체다. 현숙과 더불어 아버지에 의한 동시에 아버지를 향한 폭력이 난무하던 공간, 그 안에서 황두식이 느꼈을 모멸감 안에서 처음으로 다가온 따뜻한 송도영 또한 두식에겐 복잡한 존재다. 그 송도영은 “제가 접한 첫 여성성이고 엄마의 부재에서 오는 그리움을 사랑이라고 믿었던 존재”리며 “동경하고 흠모하는 대상”이다.“송도영이 ‘몸을 숙인다’라는 대사가 있어요. 처음엔 고개를 숙여 상처를 닦아 주는 건가 했는데 ‘몸을 숙인다’는 대사를 쓴 이유가 있을 것 같았어요. 어떤 체취로 다가오는 느낌 같아요.그 사람의 기억 속에서 엄마의 품 같기도 하고 사랑이었을 것도 같고…시간이 오래 지나면서 꿈을 이루는 동안 힘이 될 정도였으니까요. 엄마였다가 여자였다가 그 어떤 공간이었다가 향기였다가…하나로 규정짓기 어려운 존재죠.”‘벚꽃동산’ 박해수(사진제공=LG아트센터)송도영을 연기하는 전도연에 대해 “감히 설명할 수 없는, 너무 다채로운 매력들을 가진 분”이라며 “현장에서 순간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털어놓았다.“함께 무대에서 연기하고 있는 순간이 너무 행복하고 감사해요. 그 순간에는 전도연과 박해수가 아닌 송도영과 황두식으로 있지만요. 공연의 질이나 연기자로서 무대에 위 뿐 아니라 공연 전과 끝난 후의 과정들, 배우들과 스태프들을 사랑하고 챙기는 모습들에서 많이 배우고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내년 ‘벚꽃동산’의 호주 공연을 위해 스케줄을 조율 중이라는 박해수는 이정효 연출의 ‘자백의 대가’ 출연을 고심 중이다. 이 작품에는 ‘벚꽃동산’에서 호흡을 맞추고 있는 전도연도 안윤수 역 물망에 올라 다시 한번 두 사람의 재회를 기대하게 한다.◇송씨 일가를 향한 절실한 설득, 결국 ‘사랑’span style="font-weight: normal;"‘벚꽃동산’ 박해수(사진제공=LG아트센터)“송도영이 아이에 대한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고 그걸 듣는 황두식 장면이 좋아요. 그때의 그 공간이 되게 좋거든요. 도영이 자신의 깊은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을 제(두식)가 뒤에서 지켜보는 장면인데 정말 많은 생각들이 오가요.”이어 “이 순간 진짜 아픈 사람한테 내가 기업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는 죄책감이 들 때도 있고 조금만 빨리 만났으면 저 사람을 구원했을 수도 있겠다도 싶고 다른 세상이나 시대에서 태어났더라면 좋았을 텐데 싶고…복잡한 감정들을 담은 이 대사가 저한테는 제일 두식스러웠던 말 같다”고 덧붙였다.‘벚꽃동산’ 박해수(사진제공=LG아트센터)극 중 황두식은 파산 위기에 처한 송씨 일가를 살릴 방도를 끊임없이 설명하고 설득한다. 하지만 낭만만을 찾는 송재영과 “나는 잘 몰라요”로 일관하는 송도영, 이상만을 부르짖을 뿐 실천을 두려워 하는 변동림 등은 그의 물질적 욕구를 비웃을 뿐이다.“현실 감각이라곤 없고 뜬구름을 잡고 있는 이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는 절실한 이유는 ‘사랑’이에요. 이 가족에 대한 그리고 유년 시절 내 고통이 섞여 있는 이 집안에 대한 사랑이죠. 언젠가 도연 선배님이 ‘이 중에서 이 집을 가장 사랑할 수 있는 건 두식이겠다’고 얘기하시는데 저한테도 확 와닿았죠.”‘벚꽃동산’ 박해수(사진제공=LG아트센터)이어 “물론 욕심도, 욕망도 조금은 있었을 것”이라며 “그럼에도 절실하게 그들을 설득한 이유는 진심으로 살리고 싶어서 같다”고 부연했다.“힘든 시기에 희망을 갖게 했고 구원했던 이 집을 구원할 수 있는 게 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아요.”◇두식과 동시에 느끼는 공허함, 발전의 원동력 “사이먼이 얘기하고자 하는 의도 자체가 어떤 약속이나 정보 전달보다는 서로에 대한 믿음과 관찰에 있었던 것 같아요. 서로에 대한 믿음이 조금 실수를 하거나 계획하지 않더라도 그 순간들을 만들어내 내죠. 처음엔 사이먼의 방식에 긴장이 더 많이 됐는데 이제는 되게 자유로워졌어요.”그렇게 서로를 관찰하고 믿음을 키워가면서 박해수는 “모든 배우들을 정말 사랑하게 하게 됐다”며 “그들 하나하나와 함께 온전히 숨 쉬고 있을 때가 진짜 살아 있다고 느껴지고 소중해진다”고 털어놓았다.“처음엔 에너제틱했어요. 모두가 뾰족뾰족하게 부딪히곤 했죠. 하지만 지금은 여전히 실수를 하고 자연스럽지 않기도 한데 서로를 보듬어주는, 서로의 에어백이 돼주는 느낌이에요. 무대에 올라가 있는 순간은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는데 내려오면 또 그렇게 외롭고 공허할 때가 많아요.”어떤 캐릭터를 받아들인 자신의 몸을 통로 삼아 관객들에게 인물의 감정과 작품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행위의 끝은 늘 공허함과 박탈감이다.“온전히 이 작품을 위해 살아가지만 결국 어느 순간에는 끝나는 시점이 오거든요. 또 새로운 만남과 선택을 받아야 하는 배우로서 이별을 맞아야 한다는 데 박탈감이 없지 않아요. 그리고 이 감정들은 배우로서 늘 가져야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일상적이고 관성적으로 임하기 보다는 온 마음과 정성을 쏟아야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거든요. 계속 느낄 수밖에 없고 느껴야만 하는 것 같아요.”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7-03 18:00 허미선 기자

[비비100] ‘햄릿’에 ‘지금 대한민국’을 더해! 공주가 된 국립극단 ‘햄릿’

연극 ‘햄릿’(사진제공=국립극단)손진책 연출, 배삼식 작가, 이호재, 전무송, 박정자, 손숙, 김재건, 정동환, 김성녀, 길용우, 손봉숙, 남명렬, 박지일, 정경순, 길해연, 이항나 등 베테랑 배우들과 젊은 햄릿 강필석·이승주, 오필리어 에프엑스(fx) 루나, 호레이쇼 박윤희와 정환, 레이티즈 이충주·양승리 등 젊은 배우들이 함께 꾸리는 ‘햄릿’ 공연이 한창인 때 또 하나의 ‘햄릿’(7월 5~29일 명동예술극장)이 무대에 오른다.2001년 정진수 연출의 원작 그대로의 ‘햄릿’, 2007년 독일 만하임 국립극장 예술감독을 역임한 옌스-다니엘 헤르토크 연출로 칼 대신 총을 든 ‘테러리스트 햄릿’에 이은 국립극단의 세 번째 ‘햄릿’이다. 연극 ‘햄릿’(사진제공=국립극단)이번엔 공주 ‘햄릿’이다. 마냥 착하고 아름답기만 한 공주가 아닌 악에 받쳐 미쳐가는 청춘이다. 2020년 국립극단 창립 70주년 기념작으로 제작됐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영상으로만 관객들을 만났던 작품으로 햄릿 공주 역의 이봉련이 2021년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 연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손진책 연출의 2022년 ‘햄릿’에서 호레이쇼로 출연했던 김수현이 표현하는 클로디어스도 볼거리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정진새 작가가 각색하고 부새롬 연출이 윤색까지 도맡았다. 지금 시대에는 이해할 수 없지만 대단한 원작이기 때문에 그대로 수용하기 보다는 동시대 관객들과의 소통을 위해 파격적으로 각색된 ‘햄릿’이다.지금과는 맞지 않는,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적 요소 등은 왕위계승자 햄릿을 ‘공주’로 설정하면서 변주된다. 검투에 능한 해군 장교 출신의 당연한 왕위계승자 햄릿 공주와 선왕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조사위원회를 거쳐 왕위를 계승한 클로디어스(김수현), 그와의 재혼으로 딸 햄릿을 광기로 몰아넣는 거트루드(성여진), 햄릿이 사랑하는 오필리어(류원준), 충신이자 친구 호레이쇼(김유민) 등 같은 등장인물이지만 복수극 보다는 청춘의 기록에 집중한다.극은 클로디어스와 햄릿을 통해 국가 개발과 경제 발전을 주도했던 기성세대와 그들이 다진 선진국 주역으로 살아가는 동시에 그들이 만들어지고 심화된 부조리에 부서져 가는 젊은 세대의 간극을 부각시킨다. 더불어 선과 악의 명백한 경계도 없다. 연극 ‘햄릿’(사진제공=국립극단)햄릿과 갈등한다고 무조건 악인으로 그려지기 보다는 그들의 선택과 결단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인물들 저마다가 추구하는 명분과 사리를 통해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심리와 본성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편향된 진상조사로 진실을 왜곡하거나 일면만을 부각시키며 반복되는 진상조사위원회, 그에 미쳐가는 젊은 세대 햄릿과 스스로가 계획한 음모에 파국을 맞는 클로디어스 등을 통해 혐오와 갈라치기로 얼룩진 ‘지금 대한민국’을 담는다. 극 중 연극배우의 대사처럼 “시대의 거울”로서 “예나 지금이나 본성을 거울에 비쳐 옳은 것은 옳은 대로, 어리석은 것은 어리석은 그대로 보여주면서 시대의 본질을 생생하게 나타내는 일”인 연극 ‘햄릿’은 서울 공연을 시작으로 세종예술의전당(8월 9일~10일), 대구 수성아트피아(8월 16일~17일) 등 전국투어에 나선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6-24 18:00 허미선 기자

[DIMF2024+B그라운드] 2024 딤프 개막작 ‘홀리데이’…마돈나 히트곡들에 실린 여자들의 우정

2024 딤프의 개막작인 ‘홀리데이’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창작진과 배우들. 왼쪽부터 배성혁 딤프 집행위원장, 나단 기셰 연출, 루이즈 역의 줄리엣 베하르, 베로니카 파니 델레이그, 수잔 마를렌 샤프, 니키 하모니 디봉그 베리(사진=허미선 기자)“이번 축제에서 강조하는 슬로건은 정서적인 면에서 ‘굉장히 따뜻하고 아름다운’ 그리고 ‘홀리데이’처럼 ‘추억이 있는’입니다. 한국 뮤지컬의 트렌드를 못따라간다고 할 수도 있지만 뮤지컬로 행복한 도시를 강조하고 있죠. 이번 축제에서 뮤지컬로 가족이나 연인이 행복한 시간을 가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21일 개막을 앞두고 대구 북구 소재의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기자들을 만난 배성혁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6월 21~7월 8일 Daegu International Musical Festival, DIMF, 이하 딤프) 집행위원장은 ‘따뜻함’과 ‘행복’을 강조했다.2024 딤프의 개막작인 ‘홀리데이’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배성혁 딤프 집행위원장(왼쪽)과 나단 기셰 연출(사진=허미선 기자)뮤지컬로 행복한 도시를 꿈꾸는 딤프의 문은 프랑스 뮤지컬 ‘홀리데이’(Holiday, 6월 21~23일 대구오페라하우스)가 연다. 팝스타 마돈나(Madonna)의 히트곡 19곡을 넘버로 꾸린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기업의 상속녀인 프랑스계 미국인 루이스(줄리엣 베하르 Juliette Behar)가 14년 간 만나지 못한 세 친구 베로니카(파니 델레이그 Fanny Deleigue), 수잔(마를렌 샤프 Marlene Schaff), 니키(하모니 디봉그 레비 Harmony Dibonguq-levy)를 어린시절 방학이면 모여들었던 추억의 장소로 초대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지난해 9월 프랑스 파리 초연 후 북유럽 및 라스베이거스 투어 중이던 ‘홀리데이’는 딤프를 위해 일정까지 조율해 한국 관객들을 만난다.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나단 기셰(Nathan Guicher) 연출 및 작가는 “한국에 대해, 특히 K팝 팬인 제 딸에게 긍정적인 얘기를 많이 듣고 있던 중 한국에 공연할 기회가 생겨 기꺼이 투어 일정을 조율했다”며 “듣던 대로 한국의 좋은 점들을 직접 보게 돼 기쁘다”고 소감을 전했다.“에디트 피아프(Edith Piaf)라든지 위대한 가수들이 많은데 왜 마돈나냐”는 질문에는 “워낙 마돈나의 빅팬이기도 한데다 에디트 피아프나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에 관한 뮤지컬은 이미 있지만 마돈나는 처음이어서 선택했다”고 털어놓았다.이번 ‘홀리데이’는 프랑스 버전과는 달리 규모를 키우고 영어로 대사와 노래를 하는 등 변화를 맞는다. 이 변화에 대해 배성혁 위원장은 “어린 아이가 나오는데 미성년자의 해외 공연 절차가 까다로워 함께 하지 못하고 영상으로 표현한다”며 “한국에 올 때는 댄스를 보강하고 영상으로만 출연하던 남자 캐릭터들을 배우들이 직접 연기한다”고 설명했다.나단 기셰 연출은 “이 작품을 전세계에 알리고 보다 많은 관객들을 만나기 위해 영어 버전으로 재제작했다”며 “루이스 역의 줄리엣 베하르와 베로니카 파니 델레이그는 미국계 프랑스인으로 캐스팅했고 니키와 수잔 역의 하모니 디봉그 레비와 마를렌 샤프는 (영어로 공연해야하는) 딤프를 위해 새로 캐스팅한 배우들”이라고 전했다.2024 딤프의 개막작인 ‘홀리데이’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배우들. 왼쪽부터 루이스 역의 줄리엣 베하르, 베로니카 파니 델레이그, 수잔 마를렌 샤프, 니키 하모니 디봉그 베리(사진=허미선 기자)루이스 역의 줄리엣 베하르는 “방학 때마다 모이는 여자들의 우정을 좀 중시하고 싶어서 제목도 ‘홀리데이’라고 지정했다”며 “마돈나 특유의 스타일을 좀 더 잘 표현해 어린시절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여자들의 우정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밝혔다.베로니카 역의 파니 델레이그는 “마돈나의 히트곡이 한 두 곡이 아니지만 가사를 다르게 함으로써 다른 느낌을 내고 전달할 수 있었서 영광”이라고 한국 무대에 서는 소감을 밝혔다. 이어 수잔 역의 하모니 디봉그 레비는 “마돈나는 화려한 옷들과 소품 등 팝의 여왕으로서의 면모가 많이 알려져 있지만 굉장히 인간적이고 파워풀한 여성으로 느껴졌다”고 털어놓았다.“그 모든 것이 진정한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수잔 역을 연기하면서 저 스스로도 굉장히 많은 변화를 겪고 있죠.”대구=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6-21 19:00 허미선 기자

[비바100] 유명작, 대작 보다는 알토란! 열여덟 딤프의 도발 “파격 할인, 공짜 뮤지컬, 이래도 안보실 거예요?”

제18회 개막작 ‘홀리데이’ 공연장면(사진제공=딤프사무국)“이번 딤프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의 퀄리티가 굉장히 높아요. 굉장한 오리지널 배우들이 오거나 엄청난 제작비를 들인 블록버스터 작품들은 없지만 글로벌 트렌드를 알 수 있는 7개국의 작품들 25편이 공연됩니다. 개막작인 프랑스 뮤지컬 ‘홀리데이’(Holiday)는 처음 해외에서 공연되는데다 불어가 아닌 영어 버전이죠. 일본에서 한창 유행 중인 2.5차원 뮤지컬을 영상화한 ‘진격의 거인’도 선보입니다.”열여덟이 된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6월 21~7월 8일 Daegu International Musical Festival, DIMF, 이하 딤프) 배성혁 집행위원장은 올해의 행사에 대해 이렇게 전했다.제18회 딤프 공동 폐막작인 미국의 ‘싱잉 인 더 레인’ 공연장면(사진제공=딤프사무국)유명작이나 거대 자본이 투입되는 블록버스터 보다는 국제 뮤지컬 트렌드,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새로운 작품 발굴, 인재 및 작품 개발을 위한 창작지원 등을 위해 시작한 축제의 초심에 집중한 프로그램으로 배 위원장은 “이제 10년차를 맞은 뮤지컬 스타도, 창작지원작도 전체적으로 업그레이드됐다”고 귀띔했다. 2006년 프리(Pre) 축제로 시작해 18년 간 21개국 361개 작품으로 240여만여명의 관객을 만난 올해 딤프에서는 역대 최다인 25편(공식초청작 9개, 창작지원작 6개, 대학생뮤지컬페스티벌 9개, 특별공연 1개)의 뮤지컬이 85회에 걸쳐 공연된다.개막작인 ‘홀리데이’는 팝스타 마돈나의 히트곡 19곡들로 넘버를 꾸린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작년 가을 프랑스에서 첫 선을 보인 따끈따끈한 신작으로 마돈나 음악의 매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불어가 아닌 영어 버전으로 공연된다.제18회 딤프 공동 폐막작인 중국 ‘비천’ 공연장면(사진제공=딤프사무국)폐막작은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를 바탕으로 무대화한 미국의 ‘싱잉 인 더 레인’(Singing in the Rain)과 홀로 귀중한 벽화를 지켜낸 수호자의 이야기를 담은 대서사시 중국의 ‘비천’(飛天)이다. ‘비천’은 70여명이 무대 안팎에서 활약하는 블록버스터 뮤지컬로 적극적인 참가 의지를 밝혀 극적으로 초청무대를 꾸린 작품이다. 더불어 한국에서는 첫선을 보이는 네덜란드 뮤지컬 ‘슬랩스틱-스케르조’(Slapstick Scherzo), 영국 웨스트엔드의 1인극 ‘더 라이온’(The Lion), 일본에서 2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이슈몰이 중인 2.5차원 뮤지컬 ‘진격의 거인-더 뮤지컬’이 CGV에서 단독 상영된다.제18회 딤프에서 영상으로 선보일 일본의 2.5차원 뮤지컬 ‘진격의 거인’공연장면(사진제공=딤프사무국)더불어 ‘투란도트’ 이래 11년만에 딤프가 직접 제작한 ‘애프터 라이프’(After Life), 지난해 창작뮤지컬상을 수상한 ‘왕자대전’ 그리고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한 무대에 오르는 특별공연 ‘드리머스’(Dreamers), 딤프와 대구시립극단이 공동 제작한 ‘미싱링크, 어느 사기꾼의 이야기’(Missing Link) 그리고 역대 최고 작품이 지원한 창작지원작으로 선정된 ‘민들레 피리’ ‘반야귀담’ ‘사운드 뮤지컬 모글리’ ‘페이지나’ ‘시지프스’ 이미지너리‘ 등도 만날 수 있다. 성재준 연출과 박현숙 작곡가가 의기투합한 ‘애프터 라이프’는 평화롭지만 누군가에겐 답답한 감옥과도 같은 사후세계인 파라다이스 빌리지를 배경으로 한다.‘미싱링크, 어느 사기꾼 이야기’는 오랑우탄의 머리뼈를 인류 조상의 화석이라고 속인 희대의 학술 사기 ‘필트다운 사건’을 모티프로 한 작품이다. ‘프랑켄슈타인’ ‘벤허’ ‘비밀의 화원’ ‘삼총사’ ‘잭더리퍼’ 등의 이성준 음악감독이 함께 하며 제1회 DIMF 뮤지컬스타 대상 수상자인 조환지가 타이틀롤인 존 허스트를 연기한다. 올해부터 문화체육부장관상으로 격상된 ‘DIMF 대학생뮤지컬페스티벌’. 사진은 지난해 대상을 수상한 청강문화산업대학 공연 장면(사진제공=딤프사무국)문화체육부장관상으로 격상된 ‘DIMF 대학생뮤지컬페스티벌’에서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정된 순천향대학교의 ‘브로드웨이 42번가’, 경성대학교 ‘헤어스프레이’, 단국대학교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중악대학교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청운대학교 ‘형제는 용감했다’, 백석대학교 ‘록시’(Roxie), 상해시각예술대학교 ‘버터블라이’, 대구과학대학교 ‘내 마음의 풍금’, 계맹대학교 ‘눈이 지고 피는 꽃’ 등 9편이 공연된다. 이번 딤프의 키워드는 ‘가족’ 그리고 어려운 경제 상황으로 공연문화 향유가 쉽지 않은 시대를 고려한 ‘파격적인 할인’이다. 개막작 ‘홀리데이’는 4인 가족 9만원대, 공동폐막작인 ‘비천’은 4인 가족 VIP티켓이 7만원 선이다.올해로 18회를 맞은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사진제공=딤프사무국)올해로 16년째 이어지고 있는 이벤트 티켓 ‘만원의 행복’도 어김없이 돌아온다. 대구지역 창작뮤지컬 활성화를 위한 ‘뮤지컬 인큐베이팅사업’ 중 하나인 리딩공연 ‘꿈을 헤매는 미아’ ‘애기나리의 모험’ ‘화림’ ‘흑치마’ ‘히든러브’ 5개 작품 역시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한데 어우리지는 감동의 ‘드리머스’, 지난해 우승팀이 예선에서 일찌감치 탈락하거나 지원도 못할 정도로 업그레이드된 대학생뮤지컬페스티벌의 9개 작품은 무료로 보실 수 있습니다. ‘이래도 안보실 거예요? 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할인율을 높이고 무료 공연도 늘렸습니다. 이래도 안보실래요?”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6-19 18:30 허미선 기자

유승호 ‘엔젤스 인 아메리카’로 첫 연극무대 선다!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 공연장면(브릿지경제 DB, 국립극단 제공)국민남동생 유승호가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Angels in America, 8월 6~9월 28일 LG아트센터 시그니처홀)로 무대 신고식을 치른다. 소녀시대 수영의 연극 데뷔작 ‘와이프’를 비롯해 ‘그을린 사랑’ ‘튜링머신’ ‘언체인’ ‘조지아 맥브라이드의 전설’ ‘녹천에는 똥이 많다’ 등의 신유청 연출작으로 뮤지컬 ‘스쿨 오브 락’ ‘썸씽로튼’을 비롯해 ‘보헤미안 랩소디’와 ‘스파이더맨’ ‘데드풀’ 시리즈의 황석희 번역가가 함께 한다.밀레니엄 직전의 세기말을 배경으로 사회적 소수자가 겪는 차별과 혼란을 혼돈과 공포, 현실과 환상을 교차시키며 풀어가는 문제작이다. 1991년 초연된 토니 커쉬너(Tony Kushner) 작품으로 1993년 브로드웨이에 입성해 퓰리처상, 토니상, 드라마데스크상 등을 수상했다. 한국에서는 정경호 주연으로 2021년 파트1, 2022년 파트 2를 초연했다.‘엔젤스 인 아메리카’로 연극무대에 데뷔하는 유승호(사진제공=YG엔터테인먼트)이 작품에서 유승호는 북동부 특권층을 일컫는 와스프(White Anglo-Saxon Protestant, WASP, 백인 앵글로-색슨 개신교도) 출신의 동성애자이자 에이즈환자인 프라이어 월터를 연기한다. 미 연방 제2항소법원의 유대인 사무직원 루이스 아이언슨은 드라마 ‘펜트하우스’, 연극 ‘어나더 컨트리’, BL드라마 ‘연애지상구역’ 등의 이태빈과 뮤지컬 ‘앤’ ‘오즈’ 등의 정경훈이 더블캐스팅됐다.배우 이효정과 ‘삼남매가 용감하게’ ‘멜로가 체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아빠는 딸’ 등의 이유진 부자가 함께 무대에 오르는 것이‘엔젤스 인 아메라카’의 또 다른 이슈다.이효정은 실존 인물을 극화한 악마의 변호사지자 보수주의 정치계 유력인사 로이 콘으로, 이유진은 몰몬교도로 성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미국 연방 제2항소법원 수석 서기관 조셉 피트로 호흡을 맞춘다. 조셉 피트는 이유진과 ‘광염소나타’ ‘마마돈크라이’, 화가시리즈 ‘모딜리아니’ ‘에곤 실레’ ‘아르토, 고흐’ ‘천사에 관하여: 타락천사 편’ 등의 양지원이, 로이 콘은 이효정과 ‘브라더스 까라마조프’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 등의 김주호가 번갈아 연기한다.‘빙의’ ‘그녀는 예뻤다’ 등 고준희와 ‘시지스프’ ‘여고괴담’ ‘히든’ 등 정혜인이 조셉 피트의 아내로 약물중독자 하퍼 피트로 연극에 데뷔한다.무대와 매체를 오가며 활약 중인 전국향이 초연에 이어 조셉 피트의 어머니 한나 피트로 다시 돌아오며 방주란이 새로 합류했다. 태항호와 민진웅이 드래그퀸 출신의 흑인 혼혈 간호사 벨리즈에 더블캐스팅됐고 ‘스카펭’ ‘앨리스 인 베드’ ‘파우스트 엔딩’ 등의 권은혜가 프라이어에게 신의 계시를 전하는 천사로 초연에 이어 다시 무대에 오른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6-19 12:02 허미선 기자

K뮤지컬 가능성 증명 중! ‘위대한 개츠비’, 토니어워즈 의상 디자인상 수상

브로드웨이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가 연달아 수상소식을 전하고 있다(사진제공=오디컴퍼니)한국 제작사 오디컴퍼니의 신춘수 대표가 단독 프로듀서로 나선 브로드웨이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 브로드웨이씨어터)의 수상소식이 이어지고 있다.‘위대한 개츠비’는 16일(현지시간) 뉴욕 링컨 센터(Lincoln Center for the Performing Arts)에서 열린 제77회 토니어워즈(Tony Awards)에서 뮤지컬 부문 의상 디자인상을 수상했다. 2014년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 편’에 이은 의상디자이너 린다 조의 두 번째 토니상 수상이다. 한국계 미국인 디자이너인 그는 ‘위대한 개츠비’를 위해 350여벌을 디자인한 것으로 알려진다.이는 10일(현지시간) 제68회 드라마 데스크 어워즈(Drama Desk Awards) 최우수 무대디자인상(폴 테이트 드푸), 한달여의 팬투표(5월 3~6월 2일)로만 수상작(자)를 선정하는 제21회 씨어터 팬스 초이스 어워즈 9관왕(최우수 작품상, 극본상, 음악상, 무대디자인상, 의상디자인상, 남우주연상 외)에 이은 쾌거다.제77회 토니어워즈 의상상을 수상한 린다 조(사진제공=오디컴퍼니)3월 29일(현지시간) 프리뷰를 거쳐 4월 25일 정식 오픈한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는 프리뷰 첫주부터 ‘원 밀리언 클럽’(주당 매출 100만 달러 이상)을 달성하는가 하면 정식공연 3주만에 주당 매출액 128만 달러(한화 18여억원)를 돌파하며 순항 중이다. 6월 16일까지 9주 연속 원 밀리언 클럽을 달성 중인 ‘위대한 개츠비’는 1925년 출간된 F. 스콧 피츠제럴드(F. Scott Fitzgerald)의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한다.신춘수 프로듀서를 비롯해 마크 브루니(Mark Bruni) 연출, 제이슨 하울랜드(Jason Howland) 작곡가, 케이트 케리건(Kait Kerrigan) 작가, 음악감독 다니엘 에드먼즈(Daniel Edmonds), 뮤지컬 ‘타이타닉’ 등의 무대디자이너 폴 테이트 드푸(Paul Tate Depoo), 의상디자이너 린다 조 등이 의기투합한 작품이다.1918년 시작된 스페인 독감 팬데믹 직후인 원작의 시대와 포스트 코로나를 겪고 있는 지금과의 공통점을 찾는 데서 시작한 작품으로 지금은 남의 부인이 된 전 연인 데이지 뷰케넌(에바 노블자다 Eva Noblezada)을 되찾기 위해 악착같이 부를 축적해 매주 화려한 파티를 여는 제이 개츠비(제레미 조던 Jeremy Jordan)의 이야기다.신흥부자들의 웨스트 에그(West Egg)와 대물림해온 전통적인 부자들이 사는 이스트 에그(East Egg), 마주 보는 두개의 반도가 미묘한 기류를 형성하던 1920년대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한다. 꿈을 위해 파국으로 치닫는 개츠비의 삶을 통해 1차 세계대전 후 찾아온 물질적 풍요 속에 드러나는 미국 사회의 치부, ‘아메리칸 드림’의 실체를 꿰뚫는다.  ‘위대한 개츠비’는 당시를 풍미했던 재즈, 스윙과 현대적인 팝 음악을 매시업해 19인조 라이브 오케스트라가 선사하는 음악, 규범을 거부하는 여성을 지칭하던 플래퍼(Flapper)들이 추는 찰스턴 댄스(Charleston Dance)와 현대적 요소들이 결합한 안무, 관객들의 흥까지 끌어올리는 탭댄스, 당시를 고증하면서도 스타일리시한 의상 등 마지막 비극을 위한 화려한 볼거리로 무장했다.2020년 작가진 구성을 시작으로 2021년 대본과 음악 초고 완성, 2022년 내부 리딩에 이은 두 차례의 29시간 리딩과 워크샵, 2023년 뉴저지 페이퍼밀 플레이하우스에서의 월드 프리미어 공연을 거쳐 2024년 3월 29일 브로드웨이에 입성했다.‘위대한 개츠비’ 오프닝 나이트인 4월 25일 커튼콜(사진제공=오디컴퍼니)‘위대한 개츠비’ 관계자는 “브로드웨이 공연이 오픈런(Open Run, 폐막일을 정하지 않고 공연하는)이라 수익이 나지 않으면 언제든 막을 내릴 수 있는 시스템이다. 제작비가 90만 달러에 이르는 ‘위대한 개츠비’는 ‘원 밀리언 클럽’을 유지해야만 수익 발생하는 구조”라며 “현재 11월 공연까지의 티켓을 판매 중인데 내년 봄 공연까지로 기간을 연장해 오픈할 예정”이라고 알렸다.올해 토니어워즈 최고 뮤지컬(Best Musical)은 12개 부분 후보에 올랐던 ‘아웃사이더’(The Outsiders), 최고 리바이벌 뮤지컬(Best Revival Musical)은 1981년 초연됐던 ‘메릴리 위 롤 얼롱’(Merrily We Roll Along)이 수상했다. 올해 최고 이슈작이었던 ‘아웃사이더’는 S.E. 힌튼의 원작 소설(S. E. Hinton)과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동명 영화(1983)를 무대에 올린 작품이다. 할리우드 배우 안젤리나 졸리와 그의 막내딸 비비안이 프로듀서로 참여하고 동명 영화의 주인공이었던 맷 딜런이 공연을 관람해 이슈가 되기도 했던 작품이다.‘아웃사이더’는 이번 토니어워즈에서 최고 뮤지컬상을 비롯해 조명상(Best Lighting Design of a Musical. Brian MacDevitt and Hana S. Kim), 음향상(Best Sound Design of a Musical, Cody Spencer), 연출상(Best Direction of a Musical, Danya Taymor)을 거머쥐었다. 특히 이 작품의 조명디자이너 김하나 디자이너가 수상자로 이름을 올려 눈길을 끌기도 했다.‘메릴리 위 롤 얼롱’은 스티븐 손드하임(Stephen Joshua Sondheim) 작품으로 ‘해리포터’ 시리즈로 친숙한 ‘다니엘 래드클리프’(Daniel Radcliffe)가 타이틀롤을 맡았다. 이 작품은 남우주연상(Best Performance by an Actor in a Featured Role in a Musical, 다니엘 래드클리프)와 편곡상(Best Orchestrations)을 수상했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6-17 17:45 허미선 기자

[B그라운드] 연극 ‘햄릿’ 손진책 연출 “가장 단순한 원, 그 안에서 펼치는 삶과 죽음 그리고 씻김”

연극 ‘햄릿’ 공연장면(사진=허미선 기자)“이 연극은 배우 4명이 이승에서 배를 타고 죽음의 강을 건너 사령들이 있는 곳으로 와 ‘햄릿’을 하고 공연이 끝난 후 다시 배를 타고 죽음의 강을 건너 이승으로 돌아가는 구조입니다. 그런 구조를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물어보자는 데 초점을 뒀죠.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 혼돈을 안개비로 씻김하는 걸로 끝냈습니다.” 연극 ‘햄릿’(9월 1일까지 홍익대학교 대학로아트센터 대극장)의 손진책 연출은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홍익대학교 대학로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열린 프레스콜에서 이렇게 밝혔다.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희곡을 무대에 올린 연극 ‘햄릿’은 손진책 연출, 배삼식 작가 그리고 2016년 이해랑연극상 수상자인 9명의 원로 배우들이 의기투합해 초연한 작품이다.연극 ‘햄릿’ 공연장면(사진=허미선 기자)이번 ‘햄릿’은 2022년 젊은 햄릿 강필석, 오필리어 박지연, 호레이쇼 김수현 등과 재연에 이은 세 번째 시즌이다.이호재, 전무송, 박정자, 손숙, 김재건, 정동환, 김성녀, 길용우, 손봉숙, 남명렬, 박지일, 정경순, 길해연, 이항나 등 베테랑들과 재연의 강필석을 비롯해 햄릿 이승주, 오필리어 에프엑스(fx) 루나, 호레이쇼 박윤희와 정환, 레이티즈 이충주·양승리 등 젊은 배우들이 함께 무대를 꾸린다.  지난 시즌과는 전혀 다른 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이번 ‘햄릿’의 특징은 극도로 단순한 무대다. 기울어진 바닥에 원과 사각형, 공간을 분리하는 유리 그리고 의자가 전부다. 연극 ‘햄릿’ 공연장면(사진=허미선 기자)이에 대해 이번 시즌에 새로 합류한 이태섭 무대디자이너는 “제가 제시한 10여개의 디자인 중 연출님이 결국 선택한 건 빈 공간이었다”며 “도시의 유리 건물과 전광판 등을 소재로 아주 미니멀하게 구성을 했다”고 설명했다.“우리의 삶도 결국 연극에 불과하다는 의미로 극장이 다 노출돼 있습니다. 더불어 첫 장면과 마지막이 정확하게 일치되면서 이 연극이 끝나듯 우리의 삶도 역시 연극처럼 끝나간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죠.”손 연출은 “이태섭 무대디자이너가 제시한 10여 가지 콘셉트 중 가장 심플한 원 하나를 선택했다”며 “그 속에 연극을 한번 넣어보자 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보이는데 가장 단순했으면 했다”고 말을 보탰다.연극 ‘햄릿’ 출연진(사진=허미선 기자)“그래서 원 하나에 의자를 오브제로 선택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본질만 갖고 하고 싶은 욕심이 생겨요. 가능한 한 잔가지를 줄이자 생각했죠. 배우들에게도 리얼한 연기를 하지 말라고 해요. 본질만 갖고 한번 승부해 보자, 본질만 찾아가 보자는 데 초점을 뒀죠. 그렇게 삶과 죽음 그리고 그 본질이 뭐냐 라는 데만 집중했습니다.”그는 “연극이라는 것은 하면 할수록 두렵다. 때로는 거의 공포에 직면할 정도로 두렵다”며 “더불어 항상 완성도를 향해 끝없이 다가가는 여정”이라고 털어놓았다.“완성도를 향해 다가가면 또 저만큼 멀어집니다. 그럼에도 완성도를 향해 계속 나가는 것이 창작의 세계고 연극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 공연까지 배우들이 자가발전해 작품 스스로에 완성도가 생기도록,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6-14 18:00 허미선 기자

[비바100]연극 ‘벚꽃동산’ 전도연 “감히 기대 이상, 해보지 않은 선택들을 꿈꾸며!”

연극 ‘벚꽃동산’으로 27년만에 무대에 선 전도연(사진제공=LG아트센터)“감히 기대 이상인 것 같습니다. 사실 제 머릿속으로는 이 정도의 그림이나 상상을 하지 못했었던 것 같아요. 공연 열흘 전에 세트가 옮겨진, 제가 서야할 무대를 객석에 앉아서 봤어요. 제가 하는 작품이긴 하지만 놀랍고 궁금하고 기대도 되고…제가 생각했던 이상인 것 같습니다.”연극 ‘벚꽃동산’(Вишнёвый сад, 7월 7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시그니처홀)으로 ‘리타길들이기’ 이후 27년 만에 무대에 오르는 데 대해 전도연은 “기대 이상”이라고 소감을 전했다.◇성의 있는 거절 위해 본 ‘메디아’로 “그의 ‘벚꽃동산’이 궁금해졌어요”연극 ‘벚꽃동산’ 송도영 역의 전도연(사진제공=LG아트센터)LG아트센터 2024년 레퍼토리인 연극 ‘벚꽃동산’은 안톤 체호프(Anton Chekhov)의 동명 유작을 바탕으로 사이먼 스톤(Simon Stone)이 연출은 물론 대본까지 집필했다.사이먼 스톤은 ‘더 디그’(The Dig), 입센의 ‘야생오리’(The Wild Duck)를 기반으로 한 ‘나의 딸’(The Daughter), ‘더 터닝’(The Turning) 등의 영화감독이자 영국 내셔널시어터,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 ITA 등과 협업해 ‘메디아’(Media), ‘입센하우스’(Ibsen House), ‘예르마’(Yerma) 등을 선보인 연출가다.출연 제의를 받고 ‘벚꽃동산’ 원작을 읽은 전도연은 “재미가 없어서” 거절을 결정했었다. “거절에도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국립극장 영상 레퍼토리 ‘엔톡 라이브 플러스’(NTOK Live+) ITA Live로 사이먼 스톤의 ‘메디아’(Media)를 접하면서 “그의 ‘벚꽃동산’이 궁금해졌다.”어린시절의 추억이 남아있는 벚꽃동산까지 경매에 붙여야할 지경까지 몰락해 6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귀족 류보비 안드리예브나 라네프스카야(류바), 지속적으로 재정위기를 타파할 방법을 제안하지만 누구도 들어주지 않아 미칠 지경에 이르는 농노의 자식이자 신흥사업가 로파힌 예르몰라이 알렉세예비치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풍자극은 그의 손을 거쳐 한국화됐다.2024년 한국을 배경으로 거대기업의 송도영(전도연)과 송재영(손상규), 송씨 집안 운전수의 아들로 자수성가한 신흥사업가 황두식(박해수), 집안사업을 지키고자 고군분투하며 두식과 미묘한 관계를 이어가는 입양한 딸 강현숙(최희서), 영화감독을 꿈꾸는 둘째 딸 강해나(이지혜)와 이상주의자 변동림(남윤호) 등이 급변하는 사회상과 그에 따른 갈등, 혼란 등을 풀어낸다.◇이해받기 어려운 송도영, 누구나 겪고 있는 시간연극 ‘벚꽃동산’ 공연장면(사진제공=LG아트센터)“송도영은 누구든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인물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 역시 ‘이렇게까지 해도 괜찮을까요’라는 생각을 했죠. 좀 당황스러웠어요. 제일 이해가 안 됐던 건 나의 상처와 고통, 아픔을 딸들한테 고스란히 표현하고 전가한다는 게 좀 납득이 안 됐어요.”하지만 공연 후 가졌던 관객과의 대화에서 “저희 엄마랑 너무 닮았다”는 한 관객의 고민을 접하면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저도, 제 딸도 겪을 수 있고 누구나 겪고 있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연극 ‘벚꽃동산’ 송도영 역의 전도연(사진제공=LG아트센터)“그런데 생각해보면 부모들은 상처나 아픔, 치부 등을 보이고 싶어 하지 않지만 자식들도 어느 순간에는 알게 되잖아요. 송도영은 단편적으로 한번에 보여지기 때문에 되게 불편할 수 있죠. 하지만 세상에 전무하거나 아주 이해 못받는 캐릭터는 아니구나 싶어요.”1월 29일부터 일주일 간 사이먼 스톤과 전 출연진이 모여 진행한 “일주일 내내 막말 대잔치여서 당황스러웠던” 그래서 “토론이 아닌 낯선 형식에 제 이야기를 많이 하지 못했던” 워크샵에서 쏟아낸 이야기들은 고스란히 캐릭터와 이야기들에 스며들어 대본화됐다.“개인적이거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혹은 닮은 사람들 등에 대해 계속 이야기를 나눴어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할지, (얘기되는 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한번도 해본 적 없는, 좀 당황스러운 작업에 자극받아 다음날부터는 류바라는 캐릭터에 대한 생각들을 털어놓았어요.”류바에 대한 전도연의 생각은 “여리고 상처를 잘받으며 계속 도망 다니는 인물”이었다. 남편과의 사별, 아들의 죽음, 어린 남자친구와의 헤어짐 등에서 도망치는 류바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어”라는 대사를 언급한 전도연은 “저 역시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고 부연했다.“사이먼이 인물이나 대사 속에 넣었는지 모르겠지만 저도 작은 변화를 되게 두려워하는 사람이에요.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서 많은 일들이 벌어지겠지만 제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상처 받는 데 힘들어하는 모습들은 저랑 좀 닮아 있다는 얘기를 했죠.”◇전도연의 송도영, 지독히도 사랑스러운!연극 ‘벚꽃동산’ 공연장면(사진제공=LG아트센터)그렇게 워크샵 기간 동안 배우들이 털어놓은 이야기들로 완성된 송도영은 모든 가족원들 앞에서 딸의 남자친구에게 키스를 하고 “나는 세월을 비껴갔는데”라거나 “아직도 빛나지 않아?” 등 스스로를 향한, 전도연의 표현을 빌자면 “낯 뜨거운”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인물이다. “사이먼이 나를 사랑스럽게 봤구나 이런 생각도 했어요. ‘캐릭터에 너희들이 투영됐기 때문에 편안하게 할 수 있을 거니까 대본이 늦게 나와도 걱정하지 마’라고 했거든요. 처음에는 송도영에 도대체 내 어디가 투영됐는지, 왜 이런 모습을 나에게서 봤을까 했는데 제가 표현할 수 있는 것과 원작 속 류바 캐릭터의 공통되는 점을 가져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구체적으로 ‘이렇다’ 얘기한 건 아니지만 사이먼은 류바가 사랑스러움으로 납득되는 캐릭터로 보여지길 바랐던 것 같아요.”연극 ‘벚꽃동산’ 공연장면(사진제공=LG아트센터)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라도 그 말을 당사자 스스로가 내뱉었을 때는 오만하게 느껴지거나 불편한 분위기를 자아내곤 한다. 하지만 전도연을 통하면 이상하리만치 다른 뉘앙스, 분위기가 되곤 한다.“전도연 이즈 뭔들” “전도연이 연기를 잘하는 건 모두가 아는 거고 그걸 뽐내거나 보이고 싶어서 연기를 하는 건 아니에요” “전도연 연기 진짜 잘하더라는 얘기는 오래 전부터 들어서 저한테는 어떤 자극이나 감흥도 되지 않아요”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이지만 본인 입으로 내놓기 쉽지 않은 이 말들도 전도연이어서 밉지 않다. 그렇게 원작의 류바를 바탕으로 한 송도영은 전도연을 만나면서 지독히도 사랑스럽고 그래서 어떤 행동이나 상황도 납득시키며 극 중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는 인물로 변주됐다.전도연은 가장 좋아하는 장면으로 둘째 딸 해나의 생일파티로 꼽았다. 그리곤 “뜨거움으로 시작해 되게 차가움으로 끝난 그 장면이 이 가족의 끈끈함을 짧게 보여주는 것 같아서 굉장히 강렬하게 느껴진다”고 이유를 밝혔다.“사이먼 스톤의 ‘벚꽃동산’ 메시지는 열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황두식이 ‘새 시대가 올 거야’라고 하는데 그 새 시대가 무엇인지 저희들도 궁금했어요. 모두가 오기를 바라는 ‘새 시대’지만 각자가 바라는 이상향은 다르잖아요. 그렇게 스스로가 생각하는 ‘새 시대’를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고 있죠. 저도 새로운 시대가 왔으면 좋겠는데 그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는 모르겠어요. 그저 엄마의 마음으로 아이들에게는 지금 우리보다는 더 나은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것 같아요.”◇각자가 꿈꾸는 새 시대, 결국 관객의 몫 “매일이 마지막인 것처럼”연극 ‘벚꽃동산’으로 27년만에 무대에 선 전도연(사진제공=LG아트센터)“27년간 공연을 할 생각을 못했던 건 갇혀 있었기 때문이고 갇혔다는 건 두려움 때문이에요. 그래서 여전히 관객과 시선을 맞추거나 무대를 즐기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이제부터라도 눈 마주칠 수 있는 용기를 가지려 노력해 보려고 해요.”“여전히 관객과 시선 맞추기가 어렵다”는 전도연에게 ‘벚꽃동산’은 그렇게 “장르적으로 연극이기는 하지만 ‘도전이라기보다 제가 해보지 못한 수많은 것들을 하는 과정 중 하나”다.LG아트센터에 따르면 ‘벚꽃동산’은 2025년 해외 투어를 목표로 전도연을 비롯한 전 출연진과 논의를 진행 중이다.“첫 무대부터 마지막 무대 같았고 매 공연이 마지막 무대인 것 같아요. 아직까지 7월 7일 마지막 공연은 사실 감히 상상조차 안돼요. 다만 마음껏 뭔가 풀어놓고 연기할 수 있는 즐거움을 느낀다면 앞으로 저에게 폭넓은 선택들이 있지 않을까 기대가 돼요. 저 LG에서 또 러브콜을 받았습니다. 다른 것들도 경험해보고 싶어요.”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6-12 18:47 허미선 기자

[人더컬처]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박천휴&윌 애런슨 “누구나 언젠가는 이방인!”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창작콤비 박천휴(왼쪽)와 윌 애런슨(사진제공=CJ ENM)“한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너무 상투적으로 표현하지는 않는, 조금은 이질감이 드는 정서가 아마 저희의 유니크하다면 유니크한 세계가 아닐까 생각해요.”최근 뮤지컬 ‘일테노레’ 초연을 마치고 ‘어쩌면 해피엔딩’(Maybe Happy Ending, 6월 18~9월 8일 예스24 스테이지 1관) 한국공연 5번째 시즌과 10월 브로드웨이 공연 준비에 한창인 박천휴 작가는 윌 애런슨(Will Aronson) 작곡가와 만들어가는 작품세계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창작을 같이 하기 전부터 친구였어요. 취향이나 당장 큰돈을 벌기보다 우리가 하고 싶은 걸 하자는 가치관이 비슷한 것 같아요. 그렇게 존경심이 들고 자연스럽게 어울리다 보니 서로에게 예술적인 혹은 문화적인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좋은 음악, 영화, 소설 등을 함께 향유하며 토론하다 보니 자연스레 창작 파트너로서의 색이나 성격이 형성된 것 같아요.”◇근미래부터 1930년대, 1970년대 경성으로의 여정, 그 끝은 지금의 내 이야기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창작자 박천휴(사진제공=CJ ENM)“저희에게는 한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게 되게 중요해요. 한국을 배경으로 하지 않는다면 이야기를 쓸 원동력이 잘 안 생기거든요. 지금까지의 작품은 물론 연말에 나올 신작 ‘고스트 베이커리’도 한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요.”미국 뉴욕에서 친구로 만나 동명 영화를 무대로 옮긴 ‘번지점프를 하다’를 시작으로 ‘어쩌면 해피엔딩’ ‘일테노레’(Il Tenore)까지 호흡을 맞춘 두 사람은 뮤지컬 마니아들 사이에서 ‘윌앤휴’(WillHue)로 불리며 사랑받는 창작자들이다.“한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정서 자체만으로 보면 묘하게 어딘가 서양문화와 한국문화가 섞인 듯한 느낌을 받으실 거예요. 음악 스타일도 그렇고 한국 창작자와 미국 창작자가 협업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녹아드는 것들을 유니크하다고 생각해주시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박천휴의 전언처럼 “뉴욕에 오래 살고 있는 한국인, 한국에서 활동하는 미국인으로서 느끼는 약간의 이방인 혹은 외국인의 정서, 거기서 오는 어떤 외로움 그리고 이중문화적인 성격들”은 고스란히 작품 속에 녹아들어 유니크한 세계를 구축하곤 한다.윌 애런슨은 “유니크하다는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식상하지 않은, 가까운 미래나 1930년대, 1970년대 등 좀 색다른 배경의 이야기를 쓰는 것을 좋아하고 저희의 목표이기도 하다”고 털어놓았다.“친숙하지 않은, 지금의 환경과 좀 다른 곳으로 갔다가 결국엔 지금의 현실로 돌아오게 만드는 것이랄까요. 친숙하지 않은 것에서 친밀한 것을 찾아내는 경험을 추구하는 것 같습니다. 관객분들이 극장에서 공연을 보고 떠나실 때 익숙하진 않지만 그 경험이나 감정 속에서 지금의 현실과 접점을 찾기를 바라고 있죠.”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창작진 윌 애런슨(사진제공=CJ ENM)근미래의 한국, 제주를 배경으로 한 ‘어쩌면 해피엔딩’이 그렇고 일제강점기 경성을 배경으로 서양고전 장르인 오페라를 소재로 한 ‘일테노레’가 그렇다. 그리고 올 연말 선보일 ‘고스트 베이커리’ 역시 1970년대 서울을 배경으로 양과자점에 대한 꿈을 키우는 여성의 이야기다. “사실 공연을 본다는 행위 자체가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돌아보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극장이라는 곳에서 2, 3시간 동안 다른 인물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삶이라는 게 저런 거지’ ‘나도 저럴 수 있지’ 혹은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등의 의미를 찾게 되거든요. 그게 공연을 보는 즐거움이기도 한 것 같아요. 1930년대, 1970년대 경성이든, 2060년 근미래든 호기심을 가지고 함께 떠났다가 결국 ‘이건 내 얘기’라고 느끼게 만드는 게 저희의 목표죠.”◇‘음악사랑’ 교집합이 만들어낸 ‘어쩌면 해피엔딩’의 재즈, ‘일테노레’ 오페라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창작콤비 박천휴(왼쪽)와 윌 애런슨(사진제공=CJ ENM)“음악을 사랑하는 게 저희의 공통점이에요. ‘어쩌면 해피엔딩’의 올리버가 처음엔 트럼본을 연주하는 설정이기도 했어요. 윌이 고등학교 때 재즈밴드활동을 하며 트롬본을 연주했고 저는 재즈라는 장르 자체를 굉장히 좋아해서 대학교 때 트럼본을 연주하는 사람이 주인공인 단편소설을 쓰기도 했죠.”박천휴의 말처럼 그렇게 두 사람이 좋아하는 음악과 창작활동, 경험 등 교집합은 ‘어쩌면 해피엔딩’에 자연스레 녹아들었다.“해피엔딩인 내밀한 사랑이야기를 써보자”는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한 ‘어쩌면 해피엔딩’은 박천휴가 좋아하던 영국 록밴드 블러(Blur, 데이먼 알반·알렉스 제임스·그레이엄 콕슨·데이브 로운트리) 보컬 데이먼 알반(노래Damon Albarn)의 솔로곡 ‘에브리데이 로봇’(Everyday Robots)에서 영감받으며 본격화됐다.“다양한 인간 군상을 로봇에 비유한 노래인데 그 안에 어떤 외로움의 정서가 짙게 느껴졌어요. 문득 되게 인간적인 이야기를 로봇들을 주인공으로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죠.”그렇게 ‘로봇이 주인공인 작은 이야기’라는 아이디어는 윌과 공유되며 낡아서 버림받은 헬퍼봇들의 사랑이야기로 완성돼 무대에 올랐다. ‘일테노레’ 역시 “클래식을 전공하고 독일에서 오페라를 공부한 윌의 장점을 극대화해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면 좋겠다는 마음을 늘 가지고 있었다”는 박천휴의 바람에서 시작됐다.“그걸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떠올리다 보니 한국에서 최초로 오페라를 공연한 사람을 찾아보게 됐고 윌이라면 이 이야기를 음악으로 너무나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게 작품마다 음악적 장르가 중요한 소재로 들어갔던 것 같아요.”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창작자 박천휴(사진제공=CJ ENM)윌 애런슨은 “사실 ‘일테노레’ ‘어쩌면 해피엔딩’ 뿐 아니라 뮤지컬적으로나 음악적으로 특별하고 유니크한 장르를 만들어내는 자체를 굉장히 좋아한다”며 뮤지컬 ‘스위니 토드’(Sweeney Todd: The Demon Barber of Fleet Street), ‘하데스타운’(Hades Town), ‘헤어스프레이’(Hair Spray), ‘광장의 불빛’(The Light in the Piazza) 등을 예로 들었다. “이들의 음악들은 완전히 다른 세계죠. 음악을 들으면서 뭔가 유니크한 세상 속으로, 이야기나 캐릭터들에도 빠져드는 느낌이거든요. 박천휴 작가와 일을 할 때도 그런 유니크한 세계를 구현하고 싶어서 사운드, 이미지, 이야기를 고민해요. 단지 음악 뿐 아니라 특정한 세계에 빠져들 수 있게끔 스토리, 캐릭터 등 전반적인 구성에 대해 생각하죠.”◇브로드웨이 입성 앞둔 한국 창작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창작진 윌 애런슨(사진제공=CJ ENM)“한국에서 트라이아웃 공연을 하고 2016년 말 뉴욕에서 업계 관계자들만을 모시고 낭독공연을 진행했어요. 그 낭독공연 다음날 제작자 제프리 리처드(Jeffrey Richards)로부터 ‘브로드웨이로 가져가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죠.”‘비틀주스’(Beetlejuice), ‘매디슨카운티의 다리’(The Bridges of Madison County) 등의 제프리 리처드는 토니어워즈를 8회나 수상한 브로드웨이 대표 제작자다. 박천휴가 언급한 제프리 리처드의 제안 후 2020년 트라이아웃 공연을 했고 그해 말 정식으로 무대에 오르기로 했던 계획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무기한 연기되기에 이르렀다. 이후 두 번의 워크숍을 거쳐 드디어 올해 10월 브로드웨이에 입성한다.“브로드웨이 프로덕션의 설정도 같아요. 한국의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올리버의 옛주인인 제임스도 한국인이죠. 주인공들이 로봇이다 보니 연기할 배우들의 인종을 특정하진 않았지만 제임스는 무조건 동양인이어야 한다는 건 변함 없어요. 올리버가 재즈음악을 좋아해서 재즈 레코드가 등장하고 반딧불이나 아날로그 정서들도 게속 유지되죠. 올리버도 소년스러움이 강조되는 역할 그대로 가고 그 이미지에 맞는 대런 크리스(Darren Criss)라는 배우가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됐죠.”“무대가 좀 커지다 보니 좀더 미래적이게 느껴질 수는 있을 것”이라는 박천휴의 말에 윌 애런슨은 “비주얼적으로 다른 점은 (올리버와 클레어가 옛 주인인 제임스가 살고 있는) 제주도로 가는 길”이라며 “한국에서는 터널로 가는데 미국에는 터널이 없기 때문에 페리를 타고 간다는 설정 하나가 다르다”고 귀띔했다.“한국에서는 제임스가 재즈가수까지 같이 연기하지만 브로드웨이 버전에서는 분리시켰어요. 그래서 음악적으로 좀 달라지는 것들이 있죠. 한국버전에서만 들을 수 있는 음악이 있고 미국 버전에서는 4곡 정도가 달라집니다.”‘◇차기작 ‘고스트베이커리’ 그리고 이방인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창작자 박천휴(사진제공=CJ ENM)“1970년대를 배경으로 돈도, 명예도, 친구도, 연애도 필요 없이 오로지 한국 최고의 양과자점을 만들어 성공하겠다는 꿈밖에 없는 여주인공 순희의 이야기예요. 가진 돈을 탈탈 털어서 몇십년 동안 비어 있던 허름한 가게를 빌려 양과자점을 차리는데 거기서 예상치도 못한 아주 고집센 누군가가 살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두 사람의 차기작으로 올 연말 공연될 ‘고스트 베이커리’에 대해 이렇게 전한 박천휴는 “저희가 좋아하는 ‘스위니토드’나 ‘하데스타운’ 같은 다크한 아이디어들이 있었지만 밝고 따뜻한 작품들을 먼저 선보이게 됐다”며 “이 작품은 이전작들보다는 좀더 어른스러운 느낌들이 있고 후반부에는 다소 어두운 면들도 나오게 된다”고 털어놓았다.이에 윌 애런슨은 “초반에는 우리도 어두운 걸 해볼까 하는데 결국 이런저런 따뜻한 감성이 들어가게 된다”고 말을 보탰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창작진 윌 애런슨(사진제공=CJ ENM)“인생이라는 게 슬픈 일도 있지만 즐거움도 포함하고 있잖아요. 재밌고 즐겁기도 하지만 반면 슬프고 어둡기도 한 면면들을 담고 있다 보니 처음에는 어떤 장르를 써보자 했다가도 결국 모든 감정을 포함하는 작품으로 완결이 되더라고요.”이에 대해 박천휴는 “전작인 ‘일테노레’ 중 ‘인생은 되게 비극적이지만 딱 그만큼 아름답다’는 대사가 저희가 이야기나 음악을 만들 때의 생각과 비슷한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미국인인 윌 애런슨이 한국에서 뮤지컬 창작자로 활동하면서, 한국인인 박천휴가 미국에서 오래 생활하면서 느낀 ‘이방인’으로서의 감정들은 두 사람이 추구하는 유니크한 세계의 바탕이기도 하다. 이에 박천휴 작가는 ‘일테노레’ 중 오랫동안 넣고 싶었지만 결국 들어가지 못한 “꿈이 멀리 있는 사람은 모두가 이방인이네”라는 대사를 언급했다.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창작콤비 윌 애런슨(왼쪽)과 박천휴(사진제공=CJ ENM)“그런 정서를 저희가 공유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아날로그도 결국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데 대한 그리움이잖아요. 그런 것들이 작품에 녹아난 게 아닌가 싶어요.”윌 애런슨은 “모두가 어떤 순간에는 ‘나 혼자’라고 느낄 때가 있다”며 “실제로 외국에서 이방인인 채로 혼자 있을 때 그런 느낌이지만 ‘이방인’임을 깨달아서 좋은 점도 있다”고 밝혔다.“누구나 느끼는 감정이지만 집 혹은 익숙한 데서는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모를 때가 있어요. 그런데 막상 혼자이거나 이방인이라는 감정을 느낄 때 혹은 외국에 혼자있을 때는 ‘내가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알겠다’ 싶어지거든. 설명 혹은 근거가 생긴달까요. 그래서 집에서 멀리 떨어지거나 혼자 있는 시간이 되게 가치 있는 것 같아요.”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6-01 17:17 허미선 기자

[人더컬처] 차범석 탄생 100주년 연극 ‘활화산’ 윤한솔 연출 “원작 그대로도 지금과 공명할 수 있기를!”

50년만에 다시 무대에 오르는 ‘활화산’ 윤한솔 연출(사진제공=국립극단)“첫 인상은 이랬어요. 여성을 어떤 변화의 주체로 내세워 새마을운동을 선전하기 위한 목적극이었음을 알게 되면서 흥미로웠어요. 또 하나는 1974년에 정권의 특정 사업을 선전하기 위해 만든 공연의 선전성, 프로파간다가 2024년에도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어떤 지점에서 가능한지 궁금했어요. 지금의 관객들에게 프로파간다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을 갖춰야 하는지 질문을 시작했죠.”윤한솔 연출은 1974년 초연 후 50년만에 무대에 오른 차범석 희곡의 연극 ‘활화산’(6월 17일까지 명동예술극장) 극화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한국적 사실주의의 거장 차범석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활화산’은 그가 오십줄에 들어서던 1973년 집필해 이듬해 이해랑 연출과 백성희, 장민호, 손숙, 신구 등의 출연으로 국립극단 제67회 정기공연으로 초연됐다.연극 ‘활화산’ 공연장면(사진제공=국립극단)급진적인 경제개발 계획이 추진되던 때의 농촌 마을, 한때는 떵떵거리던 양반가문이었지만 쇠잔해 가는 이씨 문중 이야기다. 빚까지 내야하는 분수에 넘치는 일이 돼 버린 허례허식, 시대착오적인 가부장제와 구습 등에 맞서 팔을 걷어 부친 며느리 정숙(강민지), 천지분간 못하고 큰소리만 치는 남편 상식(구도균), 그런 그를 못믿으면서도 지원하는 집안의 수장 이노인(정진각)과 그의 아내 심씨(백수련) 등의 이야기다. “원작상 4, 5막이 되면 과거 모습에 젖어 몰락해 가던 집안이 정숙에 의해 변화하기 시작해요.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새마을운동의 어떤 기조들을 정숙이 계속 얘기해요. 자료조사를 하다 보니 당시 대통령 혹은 정부 문건에 나오는 단어들과 문장들이 정숙의 입에서 나와요.”그렇게 전반부 사실주의적으로 펼쳐지던 극은 2막부터 전혀 다른 양상을 띤다. 세상의 변화, 집안의 변화를 극 형식 변화를 통해 보여줌으로서 다른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연극 ‘활화산’ 공연장면(사진제공=국립극단)“마지막 장면은 집단 광기 같은 걸 좀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정숙의 이야기는 옳아요. 아무리 옳아도 결국 누군가는 소외되죠. 변화를 위해 또 누군가는 배제돼야 하는 과정들이 현대사회에서는 어떻게 읽힐지 궁금했던 것 같아요. 현대 희곡이 재밌는 건 당시 시대상들을 담은 상황이나 장면들을 2020년대에 맞게 수정하지 않아도 공명하게 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다는 겁니다. 시대착오적인 인식들이 발생하는 지점들을 그대로 두는 기법으로 접근한 것 같아요.”이번 ‘활화산’에서 눈에 띄는 인물들은 한국전쟁으로 전사한 장남의 남겨진 4남매 중 어린 원례(장호인), 식(박은경), 길례(서예은)다.윤 연출은 “처음 읽었을 때 제 시선을 끌었던 것 중 하나가 그 아역 세명이었다”며 “거기서 벌어지는 일들을 목격하게 되는 인물들인데 계산해보면 지금의 386세대 또래”라고 설명했다.연극 ‘활화산’ 공연장면(사진제공=국립극단)“그 아이들의 세대를 봤을 때 여러 가지 생각들이들어서 눈여겨 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아이들이 무대 위에서 어른들의 행동들이나 상황들을 관찰하고 적극적으로 반응하게 해보자 했죠.”윤한솔 연출에 따르면 초연 당시 ‘활화산’에 대한 혹평은 굉장했다. 그 혹평의 대부분은 예술의 도구화에 대한 것이었다. 이는 윤 연출이 하고 싶었던 “개인들만 남은 지금 사회에서 집단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프로파간다가 가능할까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었다.50년만에 다시 무대에 오르는 ‘활화산’ 윤한솔 연출(사진제공=국립극단)“변화의 중심인 여성이 지금도 달라지지 않은 당대 정치, 구습 등에 대한 비판들을 하죠. 일종의 도화선이 되는 사건, 목적으로서 목적을 달성하게 하려는 연출이었어요. 새마을운동을 언급하진 않지만 ‘우리도 저렇게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하게 하죠 하지만 정작 제가 하고 싶었던 건 ‘바뀌어야 한다’ 뒤에 ‘그런데’가 붙는 거였어요.”정숙이 변화를 주장하는 장면에 차분한 목소리로 녹음한 정숙의 내레이션을 시차를 두고 동시에 진행시킨 것도 그래서다. 프로파간다를 위한 연설과 그 연설에 감동하는 대중들을 표현한 이 장면은 변화에 대한 질문들이 이어지길 바라는 연출 의도이기도 하다.“광기 어린 장면에서 흐르고 있는 대사들을 좀 천천히 다시 들어보게 하는 거죠. 무슨 말을 어떻게 하는지, 그 말들이 장면에서 어떻게 광기로 변모되고 있는지, 집단적인 움직임에 내가 동의하고 동참하는 과정들을 들여다보게 함으로서 개혁과 세상이 변화하는 양상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생각할 수 있었으면 했어요. 그렇게 공연이 끝나고 극장문을 나서면서 마지막 광기를 어떻게 읽어야 하고 그 광기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배제되는지 등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를 바랐습니다.”‘더 발전할 수 있다’거나 ‘우리가 해야 한다’ 등의 논리와 그 논리에 깔린 저의, 그렇게 설득된 대중들이 어떤 식으로든 움직인 결과가 ‘지금’이다. 변화 과정에서 이어지는 질문과 그 지점들을 눈여겨 봐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신문 기사의 한 문장을 곁들인 데 대해 윤 연출은 “그게 희망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털어놓았다.“스스로 살고 있는 이 시대에 대한 알 수 없는 지점에 대한 질문이 너무 궁금했던 것 같아요. 사회 문제를 얘기하는 동시에 내가 그 사회의 일부인지를 의심하게 되는 그 지점이요. ‘이 사회가 이렇다’고 얘기할 때 나도 그 일부인지를 서로 의심하게 되고 혹시나 아닐지도 모른다는 공포 같은 게 생기는 감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키스 역시 관계라는 측면에서 처음 회복되는 장면인데 어색해요. 혼란스럽게 하는 거죠. 그렇게 원작 그대로 2024년에 물음표를 던지는 겁니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5-31 18:30 허미선 기자

[B코멘트] 연극 ‘연안지대’ 김정 연출 “내 이름이 모두의 이름, 내 아버지가 모두의 아버지가 되는 ‘지금’ 여정”

연극 ‘연안지대’ 김정 연출(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전쟁이나 어떤 거대한 재난 혹은 폭력으로 인해 희생된 사람들은 그 실체들이든 이미지들이든 사라져가잖아요. 결국 남는 것은 무엇인가 했을 때 벽에 새겨지지도 않은 채 없어져 버린 이름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지점에서 ‘내가 살아 있었다’ ‘내가 사람이었다’ ‘내가 존재했었다’고 이 문화 혹은 사회에 남길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이름 아닌가 싶어요.”연극 ‘연안지대’(6월 14~30일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의 김정 연출은 극 중 ‘이름’의 상징성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그는 “아무리 강하고 약한 인간이라도 모두에게 남는 것은 결국 이름뿐”이라며 “그 이름들이 서서히 시간이 지날수록 사라지고 또 다른 희생자들이 그 이름을 밀어내곤 한다”고 부연했다.연극 ‘연안지대’ 연습 장면(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이 극에서는 조제핀(조한나)으로 대표되는, (떠돌며 전화번호부에 사라져버린 이름을 적고 부르며) 이름을 간직하려는 의지를 가진 혹은 누군가를 잃어버린 사람들로 인해 호명되어지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원작에 있는 이름들을 하나도 빼지 않고 다 외워서 부르고 있죠. 그것이 멀리서부터 누군가에게 불려져 무대로 찾아왔을 때 주는 이상한 소름돋음이 있더라고요.”이어 “그 부분들이 작가의 머릿속에서 써낸 게 아니라 주변 사회에서의 조각들을 가지고 와 모든 배우들과 토론하고 같이 만드는 작업 과정에서 나온 굉장히 중요한 장면”이라고 말을 보탰다.연극 ‘연안지대’는 ‘화염’ ‘숲’ ‘하늘’로 이어지는 와즈디 무아와드(Wajdi Mouawad) 전쟁 4부작 중 첫 번째 작품이다. 이 4부작 중 ‘화염’은 연극으로, 드니 빌뇌브(Denis Villeneuve) 감독의 영화로 소개됐던 ‘그을린 사랑’의 원작이기도 하다.연극 ‘연안지대’ 포스터(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와즈디 무아와드는 레바논 태생의 캐나다 극작가로 그 스스로가 레바논 내전으로 프랑스, 캐나다 등을 떠돌며 겪었던 전쟁의 상흔들을 고스란히 담은 작품들로 주목받았다.‘연안지대’ 역시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아버지 이스마일(윤상화)의 죽음, 그 아버지의 시신을 묻을 땅을 찾아 떠난 아들 윌프리드(이승우)의 여정을 따른다.“극 중 제 아버지를 죽게 만든 아이 아메(이미숙)가 ‘어차피 그런 것들은 다 잊혀지고 우리 이름까지도 다 불태워질 것’이라면서 무너지는 장면이 있어요. 한데 모여 떠돌아다니는 아이들도 결국은 자신있어서가 아니라 겁이 나기 때문에, 언젠가는 본인들도 부모들, 친구들처럼 사라져 버릴 거기 때문에 붙드는 것 같아요.”그 여정 중 마주하는 전쟁의 참상, 전쟁에 내몰린 이들의 상실감과 죄책감, 죽은 아버지가 남긴 편지를 통해 알게 된 진심 등으로 상처 받은 이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으며 위안받고 성장하는 이야기다“사실 모여있다고는 하지만 이들도 폭탄 한번 터지면 끝나요. 오히려 그렇게 소란스럽게 모여 다니다 보면 이 사회에서 언제든 제거될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되잖아요. 그렇게 한치 앞도 모르는 아이들, 가장 약한 존재들이 뭉쳐 다니며 아버지가 묻힐 땅을 찾는 여정에서 성장하는 이야기 같아요. 그래서 놀랍죠. 굉장히 현재성이 느껴진달까요.”존재조차 희미했던 아버지의 죽음을 마주하고 장례를 치르겠다고 길을 떠난 윌프리드의 개인사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그 여정 중에 만나는 엄마 잔(최나라)과 아버지 이스마일의 사랑, 엄마의 친척들과 영화감독(강신구), 저마다의 사연들로 몰려 다니는 조제핀, 아메, 시몬(윤현길), 사베(공지수), 마시(정연주) 등을 통해 전쟁의 참상, 사회적 문제를 아우르다 또 다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연극 ‘연안지대’ 연습 장면(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이 여정에 대해 김정 연출은 “로드무비라는 것은 뭘 잃은 채 힘들거나 포기하고 싶은 혹은 내 한계로부터 도망가고 싶은 경험들을 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며 “심지어 좋은 곳으로의 여행이 아닌, 척박하고 파괴되고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아주 공포스러운 곳으로 가는 윌프리드가 죽어서야 만난 아버지를 절대로 놓지 못하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그래서 배우(이승우)랑 상의 끝에 (아머지 이스마일의 시체 더미를) 내려놓지 말자고 했어요. 한번 안은 아버지를 내려놓지 않는 상징이 굉장히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렇게 품에 안았던 더미를 풀어헤칠 때야 문드러진 존재로서 아버지를 만나게 되는, 그제야 아버지를 만져주는 아들의 행위가 굉장히 중요했죠.”김 연출은 “우리나라 장례 문화라는 게 사람을 보내는 느낌이 들지 않는, 되게 처참하다는 생각을 한다”며 “결국 저 외롭고 쓸쓸하고 조막만해져 문드러져 버린 존재를 눈물로, 노래로, 울음으로 혹은 외침으로 보내주는 이 행위 자체가 이 연극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을 보탰다.연극 ‘연안지대’ 연습 장면(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더불어 전쟁으로 희생된 모든 사람들에 대한, 치러야할 장례가 얼마나 많은가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아요. 결국 (이스마일의 시체를 감싼) 이 더미 자체가 모두의 아버지가 돼 가는 과정이거든요. 처음엔 윌프레드의 아버지였지만 아이들이 저마다의 상처를 밖으로 내놓는 순간부터 개인의 아버지가 아닌 모두의 아버지죠.”이어 “연습은 뼈로 하고 있지만 실제 무대에서는 문드러진 어떤 상태, 누구든 죽으면 그렇게 될 말라붙은 미라 같은 형태의 소품이 등장할 것”이라 귀띔했다.연습실에서 활용하고 있는 전신 해골이든, 실제 무대에 올려질 미라 형태의 소품이든 누군가로 특정할 수 없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사실 엄청 고민을 했어요. 그냥 더미로 충분한가, 사람으로 할까…결국 그 더미를 풀어헤쳤을 때 실체가 나오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좀 번거롭고 어려울 수도, 다소 충격적일 수는 있죠. 하지만 공격적이고 그로테스크하더라도 그건 실체이기 때문에 극 진행과정에서 접한 수많은 증언들로 흔들리는 관객들을 파고들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래야 다음 단계로 갈 수 있겠다 싶었죠.”그리곤 “거기서부터 윌프리드는 개인 윌프리드가 아니라 돌아가신 분들을 장례치러주고 대신 울어주는 어떤 존재”라며 “그 여정을 통해 심플하고 원시적인 힘이 있는 작품이 됐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개인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하고 나약한가, 그렇기 때문에 얼마나 보호해야 되는가를 두고 우리는 계속 싸워 왔어요. 하지만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그런 싸움이 되기도 전에 이미 돌아가신 분들, 희생자들이 굉장히 많잖아요. 그런 분들을 과거로부터 한 사람 한 사람 불러와서 배우들과 스태프들, 심지어 이 공연을 보러오신 관객분들 앞에서 장례를 치러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여러 사람의 상징화가 아니라 눈 앞에 실존하는 어떤 앙상한 존재의 장례요.”연극 ‘연안지대’ 출연진과 김정 연출(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이어 “그런 면에서 와즈디 무아와드도 이 작품을 쓴 게 아닐까 생각한다” 밝힌 김정 연출은 “우리의 아픔을 대신 느껴주고 누군가는 객석에서 눈물을 흘리고 마음 아파 하는 자체가 우리가 강렬하게 링크돼 있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저마다 떠올리는 사람도 다 다를 거예요. 각자의 유전자, 시선 안에서 저마다의 시신을 안고 장례를 치러주는 그런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사회적인 폭력, 재난 혹은 전쟁이라는 것이 왜 불필요하고 사라져야 하는지에 대한 얘기는 결국 단 한 사람의 존재가 얼마나 귀한가, 그 한 사람을 위해 울어줄 수 있는 사회가 얼마나 중요한가인 것 같거든요.”하지만 “지금은 말로서, 이성으로, 논리로서, 구조로서 그런 얘기를 하거나 감각하기 어려운 세상”이라며 “그래서 연극 무대에서 눈앞에 실제로 들이밀어서 이렇게 나약해진 존재가 얼마나 귀중했는지, 우리가 얼마나 울어줄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인지를 일깨우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연극 ‘연안지대’ 연습 장면(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이스마일은 외롭디 외롭고 초라한 삶을 대표하는 개인이에요. 어쩌면 완전히 구석진 데 존재했다 사라져간 개인을 대표하는 인물이죠. 영웅적인 서사가 아니에요. 홀로 슬픔 속에 떠돌아다니다 외롭게 벤치에 앉아서 똥오줌을 지리고 죽어버린 아버지에 대한 얘기죠. 그런 인물, 가장 보잘 것 없이 보이는 삶을 가장 소중하게 장례치러주는 것이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입니다.”이는 어쩌면 길고도 긴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 이태원 참사, 어지럽고 첨예한 갈등, 갈라치기와 가짜뉴스가 판치는 사회상 등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지금에 절실하게 필요한 여정인지도 모른다.“모든 이슈들이 들끓고 있는 이 한국 사회, 서울 한복판에서 개인의 장례를 치른다는 것이 얼마나 의미 있는지 그리고 연극의 방식으로,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 방식인 누군가의 눈물로, 외침으로, 비명으로 한다는 것이 너무 중요하죠. 저희 모두에게 필요한 과정인 것 같아요.”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5-31 18:00 허미선 기자

[B그라운드] 출판도시에서 문화예술 복합 도시로의 첫발! 2024 파주페어 북앤컬처

한국의 에든버러를 꿈꾸는 ‘2024 파주페어 북앤컬처’의 출발을 함께 할 배우 손준호·김소현(왼쪽부터), 오장환 총괄프로듀서, 송승환 총감독, ‘친정엄마와 2박 3일’ 강부자, 윤후덕 국회의원, 낭독공연에 참여할 길해연, 개막공연을 이끌 오만석, 고영은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사진제공=축제사무국)“파주출판도시를 책과 문화예술 복합도시로 만들기 위해 지난 2년 동안을 아주 열심히 달려왔습니다.”고영은 뜨인돌 대표이자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은 28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서울클럽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2024 파주페어 북앤컬처’(Paju Fair_BookCulture PFBC 9월 6일~9일 파주출판도시 일대, 이하 북앤컬처)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북앤컬처는 책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문화예술창작콘텐츠 발굴 및 글로벌 시장 진출 등을 위한 축제로 한국의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Edinburgh International Festival)을 꿈꾸며 9월 론칭을 준비 중이다.공연 한류의 원조 격인 넌버벌 퍼포먼스 ‘난타’ 제작자이자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총감독인 송승환 PMC프로덕션 대표가 총감독으로 페어를 이끈다. 송승환은 “출판도시라는 특성을 가진 이곳에서의 페어는 책을 원천소스 삼아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 발표하고 연구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라고 밝혔다.“책을 안읽는다, 책의 위기라고들 합니다. 그래도 우리 작가들은 계속 좋은 책을 쓰고 있고 그 책 안에는 무궁한 콘텐츠의 원천 소스가 있죠. 그것들을 발굴해 연극, 뮤지컬, 영화, 음악으로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국내는 물론 세계시장에 유통시키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큰 목표입니다.”한국의 에든버러를 꿈꾸는 ‘2024 파주페어 북앤컬처’의 오장환 총괄 프로듀서(왼쪽부터), 송승환 총감독, 고영은 이사장, 윤후덕 국회의원(사진제공=축제사무국)이 페어에서는 송승환이 제작한 가족뮤지컬로 노벨상 수상작을 원작으로 한 ‘정글북’을 비롯해 ‘스위니토드’ ‘엑스칼리버’ ‘베어더뮤지컬’ ‘몬테크리스토’ 등의 원미솔 음악감독이 이끌고 오만석, 김소현·손준호 등이 출연하는 개막공연 파크 콘서트 ‘북스 어라이브!’(Books Alive!), 故 최인호 작가 10주기를 기념하는 뮤지컬 ‘겨울나그네’, 고혜정 작가의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무대에 올린 강부자·윤유선 주연의 연극 ‘친정엄마와 2박 3일’ 등이 공연된다. 더불어 배우 양희경, 정동환, 서현철, 길해연이 각각 위영금의 ‘밥 한번 먹자는 말에 울컥할 때가 있다’, 김훈의 ‘개’, 박지리 ‘3차 면접에서 돌발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 최은영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를 낭독공연으로 선보인다.공모를 통해 선정한 퍼포먼스 쇼케이스, 북마켓, 스트리트 퍼포먼스, 한국 대표 작가들이 꾸리는 아트마켓, 작가들과 함께 하는 북토크, 출판사와 콘텐츠 제작자·저작권 에이전시를 연결하는 ‘IP 비즈 네트워킹’ 등 다양한 교류의 장(場)이 마련될 예정이다.“공식명칭으로 ‘북앤컬처’를 붙이기 전까지는 이 행사를 ‘에든버러 프로젝트’라고 했습니다. 한류의 물꼬를 튼 송승환 감독님의 ‘난타’가 에든버러를 통해 전세계로 알려졌고 그 페스티벌에서 배울 점이 아주 많기 때문입니다.”출판도시에서 콘텐츠 도시로 거듭나기 위한 첫발을 내딛는 ‘북앤컬처’는 고 이사장은 “이를 위해 3가지 내부 방침을 정했다”고 말을 보탰다.한국의 에든버러를 꿈꾸는 ‘2024 파주페어 북앤컬처’에 참여할 배우 손준호(왼쪽부터), 김소현, 강부자, 길해연, 오만석(사진제공=축제사무국)“첫 번째는 재정 자립입니다. 에든버러 축제의 재정 자립도는 97% 이상입니다. 비용 대부분이 기업과 개인 후원 그리고 관람비로 충당하고 있고 지자체(지방자치단체) 지원 비율은 2% 내지 3%에 불과합니다. 북앤컬처는 5년 이내에 재정 자립을 이룰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이어 “예산은 15억원 정도로 올해 페어의 공연은 전체 무료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유료화될 가능성이 높다”며 “페어를 지속적으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재정 자립은 반드시 필요하다. 개인이나 기업의 후원, 참가 단체들의 참가비 그리고 공연관람료 등을 통해 5년 내에 재정자립을 이룰 예정”이라고 덧붙였다.“중앙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이 3분의 1, 기업 및 개인 후원이 3분의 1, 파주 출판도시재단 및 여러 단체들의 자부담과 티켓 판매로 3분의 1 정도 재원을 확보하고자 합니다. 두 번째 내부방침은 최소 3년 이상의 중장기 계획 수립입니다.”이에 대해 고 이사장은 “해마다 수많은 축제들이 열리지만 대부분 몇 개월 전에야 부랴부랴 서둘러 준비하는 경향이 많다. 북앤컬처는 지속가능성을 우선 가치로 삼을 것”이라고 부연했다.“세 번째는 파주 주민 참여 비율을 20% 이상으로 높이는 것입니다. 지역 축제가 성공은 주민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인구 50만인 에든버러 축제의 시민 참여율은 70%가 넘습니다. 이에 올해 7월 말까지 가칭 ‘파주페어 시민지원팀’을 1차로 1000명 정도 구성해 출범시킬 계획입니다.”윤후덕 국회의원은 “이 축제야 말로 현재와 미래 삶의 질을 높이고 많은 일자리 창출 등 먹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더불어 K콘텐츠가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페어의 의미를 짚었다. 송승환 감독은 “5년간의 마스터플랜을 짰다”며 “그 안에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축제의 지속가능성을 강조했다.“물론 올해부터 큰 성과가 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에든버러가 80년이 돼갑니다. 호주의 아들레이드 프린지 페스티벌도 60년이 돼가죠. 북앤컬처는 이제 첫해입니다. 최소 5~10년 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세계적인 공연 마켓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5-30 23:37 허미선 기자

[비바100] 격동의 러시아, 2024년 대한민국으로 치환되다! 사이먼 스톤과 전도연·박해수의 ‘벚꽃동산’

연극 ‘벚꽃동산’ 중 류바를 한국화한 송도영을 연기할 전도연(왼쪽)과 로파힌 황두식 역의 박해수(사진제공=LG아트센터)세계적인 영화감독이자 연출가, 작가, 배우이기도 한 사이먼 스톤(Simon Stone)과 ‘칸의 여왕’ 전도연, OTT 콘텐츠에서 종횡무진 활약 중인 박해수가 안톤 체호프(Anton Chekhov)의 유작 ‘벚꽃동산’(Вишнёвый сад, 6월 4~7월 7일 LG아트센터 서울 시그니처홀)으로 만난다.사이먼 스톤은 ‘더 디그’(The Dig), 입센의 ‘야생오리’(The Wild Duck)를 기반으로 한 ‘나의 딸’(The Daughter), ‘더 터닝’(The Turning) 등의 영화감독이자 영국 내셔널시어터,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 ITA 등과 협업해 ‘메디아’(Media), ‘입센하우스’(Ibsen House), ‘예르마’(Yerma) 등을 선보인 연출가다. 연극 ‘벚꽃동산’ 각색과 연출을 맡은 사이먼 스톤(사진제공=LG아트센터)‘벚꽃동산’은 ‘갈매기’ ‘바냐 아저씨’ ‘세 자매’에 이은 안톤 체호프의 4대 희곡 중 하나이자 그의 마지막 희곡이다. 체제전복으로 급변하던 극의 배경인 1860년대, 그가 대본을 집필한 1905년 러시아의 불안한 시대상이 고스란히 담겼다.어린시절의 추억이 남아있는 벚꽃동산까지 경매에 붙여야할 지경까지 몰락해 6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귀족 류보비 안드리예브나 라네프스카야(류바), 지속적으로 재정위기를 타파할 방법을 제안하지만 누구도 들어주지 않아 미칠 지경에 이르는 농노의 자식이자 신흥사업가 로파힌 예르몰라이 알렉세예비치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풍자극이다.급변하는 사회상과 그에 따른 갈등, 혼란 등은 류바와 로파힌을 비롯해 라네프스카야의 딸 아냐, 수양딸 바랴, 그의 오빠 레오니드 안드레예비치 가예프, 사회주의에 심취한 만년 대학생이자 가정교사 페차 등 벚꽃동산 처리를 두고 저마다의 의견만을 주장하며기묘한 관계로 얽힌 상징적인 인물들 속에 담긴다. 사이먼 스톤이 각색과 연출을 맡은 이번 ‘벚꽃동산’의 특징은 한국화다. 러시아가 아닌 2024년 한국을 배경으로 캐릭터들도 류바는 송도영(전도연), 로파힌은 황두식(박해수), 가예프는 송재영(손상규), 아냐는 강해나(이지혜), 바랴는 강현숙(최희서), 트로피모프는 변동림(남윤호) 등으로 한국화된다. 한국화에 대해 지난달 23일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사이먼 스톤은 “체호프의 작품, 특히 ‘벚꽃동산’은 무대에 올리기도, 그 의미를 잘 전달할 수 있는 사회를 찾기도 굉장히 어렵다”며 “과거와 전통, 혁신, 세대 간 갈등, 멜랑콜리한 점에서 오는 희망과 절망 등 이 작품이 가진 것들은 그만큼 급변하는 사회를 바탕으로 해야 하기 때문인데 한국이 가장 적합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연극 ‘벚꽃동산’ 중로파힌을 한국화한 황두식 역의 박해수(왼쪽)과 류바 송도영 역의 전도연(사진제공=LG아트센터)그의 설명처럼 한국은 “외부적인 시선으로 보기에 굉장히 짧은 시간에 경제성장을 이뤘을 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나라”이며 “좀체 찾기 어려운 ‘벚꽃동산’의 배경으로 삼기에 매우 적합한 사회”다. 사이먼 스톤이 “어떤 걸 하더라도 사랑스럽고 매력적으로 보여야 하는” 류바를 한국화한 송도영은 전도연이 연기한다. 그를 “한국의 메릴 스트립”이라고 극찬한 사이먼 스톤은 “류바는 ‘벚꽃동산’이 담은 당대 귀족층,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요소들을 대변하는 보통 사람들의 고민과는 조금 다른 인간적인 면모로 관객들과 커넥션을 구축해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어려운 역할”이라고 소개했다.연극 ‘벚꽃동산’ 중 류바를 한국화한 송도영을 연기할 전도연(왼쪽)과 로파힌 황두식 역의 박해수(사진제공=LG아트센터)‘리타길들이기’ 이후 27년 만에 무대에 오르는 전도연은 온전히 스스로를 관객에게 드러내는 데 대한 두려움을 언급하며 “거절을 위해 사이먼 스톤 연출의 ‘메디아’를 보다가 배우로서의 피가 끓어” 출연을 결정했다.사이먼 스톤이 “전세계에서 제일 좋아하는 배우”라고 꼽은 ‘오징어게임’ ‘수리남’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슬기로운 감빵생활’ ‘유령’ ‘야차’ ‘파우스트’ ‘낫심’ 등의 박해수는 변화의 주체인 황두식(로파인)으로 무대에 오른다. 농노의 자식으로 태어나 자신감 없고 초조해 하던 황두식은 후반부로 갈수록 강렬한 변화를 이끈다.  이번 ‘벚꽃동산’은 극 중 인물로서 뿐 아니라 배우이자 인간으로서 가진 출연진들의 사적인 이야기와 특성들에서 출발했다. 배우 각자가 털어놓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사이먼 스톤이 종합해 변화를 꿈꾸는 신흥세력은 자수성가한 사업가로, 지금을 지켜내려는 세력들은 몰락해 가는 기존 기업으로 대체되며 우리 주변의 이야기로 변주된다. ‘벚꽃동산’ 중 로파인이 막바지에 하는 “내가 샀습니다”라는 대사에 대한 로망을 밝힌 박해수는 “지금의 우리가 겪고 느낄 수 있는 정서들은 여전히 찾는 중”이라고 전하기도 했다.전도연은 “사회 변화, 개혁 등은 어떤 건물이 갑자기 없어지고 갑자기 새로운 게 나타는 것들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개혁이라고 생각한다”며 “정체된 인간들과 변화하는 것에 대한, 한국적인 정서로 바뀌었지만 글로벌하게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밝혔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5-29 18:30 허미선 기자

[비바100] 말랑말랑 톡 쏘는 ‘젤리피쉬’ 작가 벤 웨더릴 “자신이 선택한 사랑을 할 자격에 대하여”

연극 ‘젤리피쉬’ 작가 벤 웨더릴(사진제공=스튜디오 야간)“이 이야기가 다운증후군 혹은 장애를 가진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로 일반화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그네스와 켈리라는 두 개인이 인생에서 아주 큰 변화를 겪고 있음을, 그 과정에서 어떤 감정적 경험을 하며 갈등을 겪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사람의 사랑이야기 보다는 모녀, 그 두 사람의 이야기죠.”한국에서의 작품개발 쇼케이스를 위해 내한한 작가 벤 웨더릴(Ben Weatherill)은 연극 ‘젤리피쉬’(Jelly Fish)에 대해 “두 모녀 이야기”라고 정의했다. 그는 데뷔작 ‘치킨 더스트’(Chicken Dust)를 시작으로 ‘젤리피쉬’ 그리고 영국 윈저 로열 시어터에서 이안 멕켈런(Ian Mckellen) 주연으로 상연된 ‘프랭크와 퍼시’(Frank and Percy)까지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주목받는 작가다.연극 ‘젤리피쉬’ 작품개발 쇼케이스 공연 장면(사진제공=스튜디오 야간)그의 두 번째 작품 ‘젤리피쉬’는 다운증후군을 가진 스물일곱 켈리(백지윤)와 그런 그의 곁을 지켜온 엄마 아그네스(정수영) 이야기다. 재단법인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과 연극 ‘비 Bea’ ‘튜링머신’ 등의 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이 협업해 작품개발 쇼케이스로 선보이는 ‘젤리피쉬’의 켈리는 실제 다운증후군 발레리나 백지윤이 연기한다. ‘나무 위의 군대’ ‘아몬드’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온 더 비트’ ‘아들’ 등의 민새롬 연출이 이런저런 실험 중인 작품으로 이번 작품개발 쇼케이스는 배우들을 비롯해 스태프들과 프롬프터 배우 등이 극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형식의 극이다.연극 ‘젤리피쉬’ 작품개발 쇼케이스 공연 장면(사진제공=스튜디오 야간)바다를 산책하고 승진에 기뻐하며 꽤 평화로웠던 모녀의 일상에는 켈리가 장애인이 아닌 아케이드 직원 닐(김바다)과 사랑에 빠지면서 갈등이 불거진다. 두 사람이 연인이 되고 결혼해 출산을 하는 과정에서 두 사람의 사랑은 엄마 아그네스의 반대와 더불어 사기나 범죄, 소아성애, 변태 등 취급을 하는 세상의 편견을 맞닥뜨린다. 2018년 영국 런던 부시 시어터 초연에 이어 영국 내셔널 시어터, 호주 뉴시어터 등 무대에 올랐던 ‘젤리피쉬’의 시작은 영국 맨체스터에서 ‘크로커다일’이라는 작품 중 춤을 추는 작은 역할로 출연한 다운증후군 예술가 사라 고디(Sarah Gordi)였다.연극 ‘젤리피쉬’ 작가 벤 웨더릴(사진제공=스튜디오 야간)“이 사람을 위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에서의 공연을 보면서 그때로 돌아간 타임머신을 탄 듯한 경험을 했죠. 하지만 사라 고디 자체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재능 있고 멋있는 사람을 위한 공연을 만들고 싶었어요. 극 중 켈리의 발랄함, 유머, 넘치는 에너지 등 정도만 사라 고디에서 가져왔을 뿐 그 사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오히려 매일 해안가를 걸으며 조개를 비롯한 이것저것을 줍는 엄마와 딸 이야기를 담은 책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죠. 첫 장면에서 켈리가 죽은 게를 가지고 노는 장면 등이 그래요.”제목 ‘젤리피쉬’에 대해 “보기엔 말랑말랑한데 톡 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해파리가 이 작품과 이 작품을 관통하는 메시지에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다” 부연한 그는 “제가 비장애인이기 때문에 이 이야기에 접근하는 데서 조심스러웠다. 최대한 진정성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그래서 영국에 있는 발달장애인, 인지장애인을 돕는 자선단체에서 충분히 자문을 받으면서 대본을 썼어요. 이 작품의 정서가 장애인과 그 가족에 대한 연민이기 보다는 공감이기를 바랐습니다. 사실 ‘젤리피쉬’라는 작품이 어떤 답이나 교훈을 주기를 바라진 않았어요. 모든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이 선택한 사랑을 할 자격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죠. 그에 대한 답은 관객분들이 공연을 관람하고 스스로 생각해 보시기를 바랐습니다.”다운증후군을 가졌지만 누구보다 당당하고 일에 적극적이며 유머러스한 켈리, 그를 보살피고 보호하느라 지치고 예민해져 버렸지만 누구보다 딸을 사랑하는 엄마 아그네스, 켈리를 사랑해 연인이 됐지만 불쌍한 장애인 등쳐먹는 사기꾼, 변태, 소아성애자라는 세간의 시선으로 갈등하는 닐, 퀴즈를 좋아하는 여자를 위해 퀴즈쇼 출연까지 감행하는 도미닉(김범진)까지.“이 4명의 캐릭터 모두가 자신의 입장과 생각이 있어요. 그것 자체로도 괜찮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작가인 저도 누가 맞다고 말하기가 어려운 것 같거든요. 관객분들께서 이 공연을 보고 어떤 대답을 얻어가지는 못하시더라도 자신의 선입견을 깨는 경험을 하시기를 그리고 모든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이 선택한 사랑을 할 자격이 있는가라는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을 생각해보시기를 바랍니다.”연극 ‘젤리피쉬’ 작품개발 쇼케이스 공연 장면(사진제공=스튜디오 야간)이후 ‘젤리피쉬’ 행보에 대해 벤 웨더릴은 “연극과 더불어 영화화를 위해 시나리오를 썼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 겹치면서 다소 지연 중”이라며 “이 작품이 다양한 포맷으로 변주되거나 다른 버전으로 만들어지는 것도 굉장히 재밌는 경험이 될 것”이라고 털어놓았다.“다양한 포맷이나 버전으로의 변주도 좋지만 장애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장애인들이 함께 참여하는 작품들이 영화든 연극이든 뮤지컬이든 다양한 분야에서 많이 만들어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5-27 18:00 허미선 기자

[B코멘트]뮤지컬 ‘파가니니’ 콘의 마지막 7분 “그날그날 감정 담은 즉흥 선율”

뮤지컬 ‘파가니니’ 중 니콜라 파가니니 역의 바이올리니스트 콘(사진제공=HJ컬처)“1층에서 ‘악마의 트릴’ 후 ‘라 캄파넬라’가 끝나자마자 밴드 반주가 잦아들면서 바이올린 솔로 즉흥연주가 시작돼요.” 니콜로 파가니니(Niccolo Paganini)가 실제로 즐겨 연주했던 주세페 타르티니(Giuseppe Tartini)의 ‘바이올린 소나타 4번 악마의 트릴’(Violin Sonata No.4 ‘Les trilles du diable’)로 시작해 7분간 바이올린 연주가 이어진다.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 ‘악마’의 반영이기도 한 서정적이다 빨라지는 ‘악마의 트릴’ 후 연주되는 파가니니의 대표곡인 ‘라 캄파넬라’(La Campanella)와 ‘카프리스 24번’Caprice No.24) 사이에는 다양한 곡과 주법들로 꾸린 즉흥연주가 자리 잡는다.뮤지컬 ‘파가니니’ 중 니콜라 파가니니 역의 바이올리니스트 콘(사진제공=HJ컬처)‘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 불렸던 파가니니(콘·홍석기·홍주찬, 이하 시즌합류·가나다 순)의 생애를 다룬 뮤지컬 ‘파가니니’(Paganini, 6월 2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는 마지막 이 연주가 백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극을 관통하는 “그 누구도 아닌 파가니니로 살겠다”는 의지와 “잊으셨나본데 난 파가니니입니다”라는 자긍심이 응축된 이 장면은 파가니니의 여러 가지 연주기법과 스타일의 음악을 통해 그를 바라보는 관객들의 시선 역시 다양하게 해석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구성됐다.그 중 즉흥연주는 2019년 초연 당시 50회를 혼자 소화했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뮤지컬 배우 콘(KoN, 본명 이일근)이 자처한 콘셉트다.“파가니니가 살던 시기에 클래식 아티스트들은 즉흥연주를 즐겨했어요. 베토벤도, 모차르트도 그랬죠. 그를 오마주해 바치는 뜻으로 즉흥연주를 넣었어요. 뮤지컬은 N차 관람도 많아서 즉흥연주는 유일무이, 휘발되는 단 한번의 그 연주가 그날의 공연을 특별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매회 바꾸겠다고 했고 지금도 그러고 있죠.”이어 “클래식 음악사에서는 작곡가가 포커스냐, 연주자가 포커스냐를 두고 벌이는 파워게임이 계속 됐다”며 “연주자에 포커스를 둔 게 재즈다. 악보에 별 게 없고 연주자의 즉흥이 중요한 장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클래식은 학문화가 잘된, 작곡가에 포커스를 둔 음악이죠. 작곡가의 의도를 충실하게 구현하는 연주자가 대단하다고 평가받았지만 비르투오소(Virtuoso) 시대에는 연주자들이 그 능력을 인정받기도 했어요. 파가니니는 그런 비르투오소 시대를 연 선지자죠.”실제로 협주곡 내 ‘카덴차’(Cadenza 악곡이나 악장의 마침 직전에 연주자의 기교를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구성된 화려하고 자유스런 무반주 부분)에서 특정 악장의 머티리얼(Material)을 가지고 연주자의 기량을 발휘하기도 하는 경우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뮤지컬 ‘파가니니’ 중 니콜라 파가니니 역의 바이올리니스트 콘(사진제공=HJ컬처)“실제로 파가니니가 마차를 타고 다니면서 유럽 곳곳에서 연주할 때 대부분이 무반주였어요. 기타나 피아노처럼 화성악기가 아닌 선율악기 바이올린으로 무반주 연주 뿐 아니라 동물소리 등을 내기도 했죠. 그때 공연을 본 사람의 ‘바이올린 한대로 오케스트라 소리를 냈다’는 후기가 남아있을 정도로 대단한 연주였어요. 저는 클래식을 전공했지만 재즈, 집시, 포크, 현대음악, 전자 바이올린 등까지 아우르면서 즉흥연주에 익숙해요. 그 경험이 이 작품에서 유용하게 쓰이고 있죠.”주법적 측면에서도 클래식 뿐 아니라 재즈·집시·포크·탱고 기법, 현대음악의 음향적 변주까지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다. 그는 “클래식에서는 잘 안쓰는, 두드리거나 뜯는 연주법을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운용 중”이라고 밝혔다.“파가니니는 당연히 악마가 아니죠.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루치오 아모스(김경수·백인태·윤형렬)나 콜랭 보네스(이준혁·기세중·김준영)를 비롯해 사람들이 그의 연주를 듣다가 ‘파가니니가 악마일 수도 있다’는 의심이 들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노래 가사 중 ‘찢어지는 선율’처럼 틀에서 벗어나는 거칠고 기괴하거나 그로테스크한 사운드를 일부러 넣기도 하죠.”뮤지컬 ‘파가니니’ 중 니콜라 파가니니 역의 바이올리니스트 콘(사진제공=HJ컬처)‘록클래식’이라는 정체성에 걸맞게 “록비트랑 어우러지는 음악적 시너지를 내기 위해 좀더 과격한 연주로 임팩트를 줄 때도 있다.”활을 일부러 세게 누르거나 동작을 크게 하는 등 현대음악, 집시, 재즈, 일렉트로닉 바이올린 등 클래식 외적인 데서 체득한 테크닉들은 “파가니니는 악마일지도 모른다”는 의심과 두려움으로 이어진다. “헝가리 길거리에서 집시들이랑 즉흥으로 연주하며 놀다 보면 소리는 분명 거칠어요. 그럼에도 오히려 감정에 호소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거든요. 클래식이 은유법이라면 집시나 재즈는 직설화법이 매력적이죠. 이 즉흥연주가 정말 좋은 건 배우로서 쌓아가던 감정들을 그날그날 전혀 다르게 담을 수 있다는 거예요. 재즈나 집시 쪽 즉흥연주보다 뮤지컬을 할 때 감정의 스펙트럼이 훨씬 넓거든요.”그 다채로운 마음에 입각한 7분 남짓의 연주는 파가니니 역할의 의상에도 영향을 미쳤다. 콘은 “7, 8분 연주하고 나면 혈액이 몰려서 팔이 엄청 부풀어 오른다”며 “1막에서 한줄로 연주할 때는 우아한 연미복을 입지만 즉흥연주에서 팔이 조이지 않는 베스트를 입는 이유”라고 밝혔다.“그 즉흥연주는 바이올린 연주로 대사를 치고 노래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세상에 ‘봐라! 이게 내 음악이다’ ‘내가 악마인지 아닌지 들어 봐!’ 등 독백도 하고 노래도 하고 마음을 담아 표현하고 있거든요.”어떤 때는 슬픔이, 또 어느 회차는 억울함이 커 그 감정을 마지막 7분 중 즉흥연주에 녹여내기도 한다. 그는 “어떤 날은 샬롯 드 베르니에(성민재·유소리)가 너무 눈에 밟혀서 그의 솔로 넘버를 머티리얼로 삼아 변주하기도 한다”며 “또 어떤 때는 ‘난 살고 싶어’가 마음에 깊이 남아 파가니니 솔로 넘버를 변주하기도 한다”고 털어놓았다.“극 초 술집을 뛰어다닐 때 했던 ‘악마의 트릴’을 두배 빠르게 변형하거나 이 작품에 나오진 않지만 파가니니의 잘 알려지지 않은 곡을 가져오기도 해요. 예를 들어 ‘바이올린 협주곡 2번 나단조’ 1, 2악장이요. ‘라 캄파넬라’는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협주곡 2번 나단조’ 마지막 론도 악장의 주제를 기반으로 해요. ‘바이올린 협주곡 2번’ 1악장은 오디션 볼 때 짧게 불리기도 하죠. 이 사실을 아는 분들은 반가울 거고 또 몰라도 좋을 거예요.”뮤지컬 ‘파가니니’ 중 니콜라 파가니니 역의 바이올리니스트 콘(사진제공=HJ컬처)때로는 멜로딕하게 시작해 변주하기도 하고 활로 둥둥치기도 하는가 하면 오디션 장면의 새소리, 고양이소리, 황소소리를 차용해 즉흥으로 연주하기도 한다. 그는 “오디션을 보면서 샬롯에게 황소소리를 시키는데 저음을 글리산도(Glissando, 높이가 다른 두 음 사이를 급속한 음계에 의해 미끄러지듯이 연주하는 방법)로 표현한다. 그걸 즉흥으로 가져와 느리고 진한 글리산도를 여러 개 반복하기도 한다”고 전했다.때로는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ff) 등 파가니니에 지대한 영향을 받은 후대 작곡가들의 레퍼토리를 따오기도 한다.“즉흥연주는 파가니니, 더불어 파가니니를 연기하는 제 마음 속에 가진 것들을 보여주는 장면같아요. 하면할수록 소재가 고갈되기 보다는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발휘하게 되죠. 100번이든 1000번이든 새로운 즉흥연주를 선보일 자신있어요. 극 중 ‘잊으셨나본데 난 파가니니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요.”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5-24 19:00 허미선 기자

[비바100] 50년만의 국립극단 ‘활화산’…과잉된 사실주의, 시대착오적 연출과 표현으로 맞이할 ‘현자타임’

50년만에 무대에 오르는 차범석 탄생 100주년 연극 '활화산'.(사진제공=국립극단)“당시 선전극으로서 어쩌면 도구화된 예술을 비틀어 보여 주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때 비틀어 보여 주는 방식을 각색과 윤색 없이 원작을 그대로 가져가면 당시 과하게 작품과 사회상에 도입된 국가 체제 선전의 양상을 더 적나라하게 문제의식으로 끌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판단했죠.”지금 ‘활화산’(5월 22~6월 17일 명동예술극장)인 이유에 대해 이렇게 전한 윤한솔 연출은 “(‘활화산’ 쓰여진 1973년) 당시 희곡에서 여성 서사가 녹아 있는 점도 흥미로운 지점”이라며 “이 여성이 소위 당시 지도자로서의 박정희 표상으로 도구화된 점도 재밌었다”고 덧붙였다.50년만에 무대에 오르는 차범석 탄생 100주년 연극 '활화산'.(사진제공=국립극단)한국적 사실주의의 거장 차범석 탄생 100주년을 맞아 ‘활화산’이 50년만에 무대에 오른다. ‘활화산’은 차범석이 오십줄에 들어서던 1973년 집필해 이듬해 이해랑 연출과 백성희, 장민호, 손숙, 신구 등의 출연으로 국립극단 제67회 정기공연으로 초연된 작품이다.윤한솔 연출이 차범석 작가의 모든 작품을 읽고 직접 선택한, 무려 50년만에 다시 무대에 오르는 작품이다. 급진적인 경제개발 계획이 추진되던 때의 농촌 마을을 배경으로 한때는 떵떵거리던 양반가문이었지만 쇠잔해 가는 이씨 문중 종가의 이야기다. 분수에 넘치는 일이 돼 버린 허례허식, 시대착오적인 가부장제와 구습 등에 맞서 팔을 걷어 부친 며느리 정숙(강민지)으로부터 변화는 시작된다. 허름한 작업복을 입고 직접 돼지를 키우며 가문을 일으켜 세우려는 정숙, 정숙의 만류에도 축산조합장 선거에 나섰다 고배를 마시며 집안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상식(구도균), 집안의 수장 이노인(정진각)과 그의 아내 심씨(백수련) 등의 이야기다. 한국적 사실주의 거장의 희곡을 50년 만에 꺼내든 윤한솔은 ‘파수꾼’ ‘나는야쎅쓰왕’ ‘아무튼백석’ ‘두뇌수술’ ‘텃밭킬러’ ‘원치않은, 나혜석’ ‘치정’ ‘자전거도둑헬멧을쓴소년’ 등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가볍고 과잉되지만 극장 문을 나서면서 혹은 시간이 흐른 뒤 자꾸만 마음이 무거워지는 독특한 무대 언어로 문제의식을 표현하는 연출이다. 50년만에 무대에 오르는 차범석 탄생 100주년 연극 ‘활화산. 사진은 1974년 공연장면(사진제공=국립극단)‘활화산’ 역시 원작 그대로를 살리되 다양한 오브제, 인물들의 비중 조절 등 특유의 연출로 급변하는 사회의 일꾼들이 넘쳐나던 시대의 비논리적이고 막무가내로 발산되던 과잉 에너지, 지금의 사람들에겐 지극히 시대착오적인 문제의식 등을 강조할 예정이다.국립극단 관계자는 “원작 희곡에서는 큰 비중이 없던 세 아이들의 시선에서 보여주는 장면들이 군데군데 배치돼 있다”고 귀띔했다. 이는 “체제 하에 움직이는 어른들의 세계를 다소 시대착오적으로 보여주고 싶다는 윤 연출의 의도가 반영된 연출적 요소”이자 “과잉된 사실주의 연기로 오히려 어색함을 느끼게 만들고자 하는 포부”가 담긴 연출 중 하나이기도 하다. 50년만에 무대에 오르는 차범석 탄생 100주년 연극 '활화산' 정숙 역의 강민지(왼쪽)와 상식 구도균(사진제공=국립극단)‘스고파라갈’ ‘만선’ ‘기후비상사태’ ‘차이아메리카’ ‘전쟁터를 훔친 여인들’ 등의 강민지, ‘정의의 사람들’ ‘함익’ ‘옥상 밭 고추는 왜’ ‘헨리4세’ 등 ‘과잉된 사실주의 연기’의 달인인 구도균 등이 50년만의 ’활화산‘에 불을 붙인다.과하게 시대착오적인 연출과 표현으로 ‘현자타임’(현실자각타임)을 선사할 ‘활화산’에 등장하는 다양한 오브제들 중 인터미션 후 무대 중앙에 자리잡을 “규모가 좀 과하다 싶을 정도의 거대한 돼지 동상”이 볼거리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5-22 18:30 허미선 기자

[B그라운드] 심창민의 ‘늦바람’, 김재범의 ‘눈물’, 김성식 ‘퍼펫과의 쉽지 않은 동행’ 뮤지컬 ’벤자민 버튼‘

뮤지컬 ‘벤자민 버튼’ 출연진(연합)“사실 저도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늦바람’이라고 밖에 설명을 드릴 수가 없더라고요.”동방신기 멤버 심창민은 데뷔 21년만에 뮤지컬에 처음 도전한 이유를 “늦바람”이라고 표현했다.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16일 열린 뮤지컬 ‘벤자민 버튼’(Benjamin Button, 6월 30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프레스콜에서 심창민은 “최근 많은 아이돌그룹 멤버분들께서 뮤지컬에 도전하는데 저는 기회가 닿지 않았었고 연이 안됐다”며 “소설로도 영화로도 제작됐던 이 콘텐츠가 너무 매력적이라 도전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뮤지컬 ‘벤자민 버튼’에서 벤자민 버튼으로 번갈아 무대에 오르는 심창민(왼쪽부터), 김성식, 김재범(연합)“주변 분들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는데 조광화 연출님과 함께 하면 굉장히 많이 배울 수 있는, 귀한 작업이라고 제 친구 조규현이 얘기했줬어요. 아무래도 뮤지컬은 처음이다 보니 연습에 시간을 최대한 많이 할애하려고 해봤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뮤지컬이라는 작업은 정말 많이 어렵고 고되고 힘들고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해서든 이 멋진 제작진, 배우들과 호흡하고 싶어서 최대한 노력했죠. 이 작품을 통해 많은 걸 배울 수 있었고 관객분들께 전해드리고 싶었던 삶의 스윗 스팟(Sweet Spot)을 저 역시 찾은 것 같아요.”뮤지컬 ‘벤자민 버튼’은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로 유명한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F. Scott Fitzgerald)의 단편소설 ‘벤저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을 바탕으로 한다.데이비드 핀처(David Fincher) 감독, 브래드 피트(Brad Pitt)와 케이트 블란쳇(Cate Blanchett) 주연의 동명영화(한국 개봉명 ‘벤자민 버튼의 시간을 거꾸로 간다’)로도 만들어져 사랑받았던 단편소설로 70세 노인의 외모로 태어나 나이가 들수록 어려지는 벤자민 버튼(김재범·심창민·김성식)의 이야기다.19세기 말~20세기 초 미국을 배경으로 벤자민 버튼과 그가 삶의 스윗 스팟으로 확신하는 재즈클럽 가수 블루 루 모니에(김소향·박은미·이아름솔)를 통해 기쁨과 사랑, 상실의 슬픔, 모든 것의 주체는 육체가 아닌 영혼이라는 깨달음, 시간도 초월하는 삶의 소중한 가치 등을 아우른다.오브제 아티스트 문수호 작가의 퍼펫으로 나이 변화를 표현하고 ‘알로하 나의 엄마들’ ‘북경의 남쪽’ ‘콩칠판 새삼륙’ ‘순수의 시대’ 등의 이나오 작곡가가 넘버를 꾸린 극으로 ‘서편제’ ‘베르테르’ ‘모래시계’ ‘미친 키스’ ‘남자충동’ 등의 조광화 연출이 대본까지 집필했다.뮤지컬 ‘벤자민 버튼’은 퍼펫으로 나이의 변화를 표현한다(연합)퍼펫을 활용한 데 대해 조광화 연출은 “벤자민 버튼의 이야기는 무척 매혹적이지만 무대에서 할 수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며 “전 연령대를 보여줘야 의미가 있는 작품인데 무대에서는 CG를 쓸 수도, 특수분장으로 계속 얼굴을 바꿀 수도 없었다”고 전했다.“영국의 ‘워호스’를 보면서 퍼펫도 그냥 물체가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체로 보일 수 있겠구나, 내면이 있고 감정을 보이는 인물이 될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퍼펫으로 벤자민 버튼의 나이 변화를 보여주면 공연에서도 가능하겠다 싶었죠. 정말 완전한 생명체를 만들고 싶어서 출발했지만 인간의 섬세함을 따라갈 수 없는 지점들이 있어서 약간의 거리를 두고 나이를 대변하는 약속의 장치이자 놀이성의 장치로 활용했습니다. 배우들은 오히려 좀 자유로워져서 정서에만 몰입할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았죠.”또 다른 벤자민 버튼 역의 김재범은 “처음 대본을 받고 한번에 후루룩 다 읽었다”며 “제가 나이가 들어가다 보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고 털어놓았다.뮤지컬 ‘벤자민 버튼’ 블루 루 모니에 역의 이아름솔(왼쪽부터), 김소향, 박은미(연합)“나이가 들어가면서 겪게 되는 어긋남 등이 굉장히 가슴에 훅 쑥 들어오더라고요. 거꾸로 나이를 먹으면서 벤자민이 블루와 만나는 순간이 서른다섯이잖아요. 둘이서 딱 정확하게 같은 나이가 됐을 때죠. 그런 것들이 되게 가슴 아프면서도 간만에 되게 따뜻한 대본을 봐서 행복했습니다.”블루 루 모니에 역의 김소향은 “관객들에게 늙어간다는 것에 대해 많은 것을 공감하고 나누고 싶었다”며 “이 공연을 하면서 함께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주름이 하나씩 늘어간다는 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그리고 그것을 함께 나눌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받은 인생인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블루가 마지막으로 부르는 ‘불안에의 초대’라는 노래가 있어요. 대본을 읽음녀서 그 노래 하나만을 보고 이 공연을 택하고 함께 만들었죠. 이 노래를 부르기 위해 2시간 가까이 달려온다고 생각하면서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가사가 정말 아름답거든요.”벤자민 버튼 역의 김성식은 퍼펫과의 쉽지 않은 동행에 대해 털어놓았다. 김성식은 “퍼펫에서 빠져나오는 게 어려웠다”며 “퍼펫과 저, 그리고 합쳐지는 부분과 다시 빠져나오는 게 쉽지 않았다”고 토로했다.“어느 순간에는 저대로 하고 있고 또 어떤 때는 퍼펫에 사로잡혔어요. 연출님께서 정서에 더 깊이 다가가라고 말씀해주신 덕분에 길을 찾을 수 있었고 지금도 공연하면서 퍼펫과 친해지는 중이죠. 사실 아직도 완벽하게 합이 맞는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계속 맞춰가다 보면 관객들께 더 깊은 정서를 보여드릴 수 있는 순간들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합니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5-17 23:54 허미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