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탈출! 자영업] ① 임대료 폭등 부르는 '환산보증금' 없애야

강창동 기자
입력일 2018-01-02 07:00 수정일 2018-01-02 07:00 발행일 2018-01-02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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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들을 둘러싼 사회경제적 환경은 온통 지뢰밭이다. 내수부문의 장기불황이 이어지고 있다는 게 첫 번째 장애물이고, 경제활동인구 4명중 1명이 자영업을 할 정도로 과당경쟁이 벌어지는 게 두 번째 장애물이다. 여기에 원자재비, 인건비, 임차료 등 필수 비용이 올라 휴일없이 일한다고 해도 소득이 임금근로자의 60% 수준에 그치고 있다. 가게 주인이 지출해야 하는 판매관리비 중 임차료(월세)는 파괴력에 있어 다른 비용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막강하다. 월세가 일시에 2∼3배 오르면 임차인은 장사를 접을 정도로 타격이 크지만 임대인의 이런 횡포는 실정법상 전혀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임대인의 탐욕을 만족시켜주는 발판이 바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하 상가임대차법)이다. 

정부,최저임금인상대책마련YONHAPNO-3433
(연합)

◇환산보증금 넘어서면 法도 나몰라라= 상가임대차법은 2001년 만들어졌다. 1991년 일본에서 만들어진 차지차가법(借地借家法)을 본떠 골격을 짠 법이다. 법 제정 당시 쟁점은 △계약기간을 보장하는 문제 △임대료 인상수준을 규제하는 문제 △임차권 보호의 범위 △건물주 교체나 재건축 등의 사유발생시 기존 임대차계약의 효력 △권리금의 제도화 등 다섯가지로 요약된다. 이 중 계약기간을 5년간 보장하는 조항과 임대료 인상폭을 9% 이내로 규제하는 조항을 명시했다. 임대인의 계약갱신 거부나 지나친 임대료 인상으로 임차인이 내쫓기는 상황을 막기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임차권 보호의 범위를 환산보증금 이내의 점포에만 한정, 실효성이 크게 떨어졌다. 환산보증금이란 월세의 100배 금액과 임대보증금을 합친 액수로 제정 당시 서울기준 2억4000만원이었다가 현재 4억원으로 상향 조정됐다. 임대인과 임차인의 갈등은 주로 상권이 발달해서 월세가 높은 지역에서 빈발하므로 환산보증금 이하의 동네상권에서만 적용할 수 있는 상가임대차법은 애당초 ‘반쪽짜리’ 법률일 수 밖에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서울 강남 상권 중에는 전체 상가의 절반에 가까운 45.5%(2014년 기준)가 법 적용에서 제외되는 실정이다.

법 제10조에는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이 규정돼 있다. 갱신을 거듭하면 최장 5년은 한곳에서 장사할 수 있도록 했다. 환산보증금을 초과하는 점포의 임차인도 갱신요구권이 있다. 하지만 무용지물이다. 임대료를 대폭 인상하거나, 재건축을 빌미로 점포를 비우라고 할 경우 환산보증금을 초과한 임차인은 현행법 아래서는 대항할 방법이 없다. 사실상 기간의 제한이 없는 일본의 차지차가법에 비하면 ‘무늬만 임차인 보호’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법 제11조에는 ‘차임 등의 증감청구권’이 명시돼 짐짓 임차인 보호에 충실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차임이나 보증금을 임대인이 올릴 경우에는 9%를 넘을 수 없다는 규정이다. 하지만 법 2조(적용범위) 규정에 따라 환산보증금을 넘는 가게는 제외된다. 서울 4억원, 수도권 3억원 등으로 정해진 환산보증금을 초과하는 점포의 임차인은 매년 계약갱신 때마다 가슴을 졸여야 하는 상황이 재연된다. 박주영 숭실대 벤처중기학과 교수는 “상가임대차법이 임차인 보호에 충실하려면 환산보증금 규정을 삭제하고 계약갱신요구 기간도 5년에서 무기한으로 늘리며, 차임 증액도 현행 9%에서 절반이하로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차인 보호 집중한 선진국들= 일본·영국·프랑스 등 선진국들은 임대차 관련 법률을 만들 때 대원칙을 설정했다. 임차인 보호가 무엇보다 우선한다는 원칙이다. 일본의 차지차가법이 대표적이다. 일본은 80년대말 부동산 가격이 폭등, 소상공인들이 가장 큰 고통을 겪었다. 이에따라 일본 정부는 1991년 기존의 차지법과 차가법을 통합, 강력한 소상공인 보호법인 차지차가법을 탄생시켰다.

이 법의 대전제는 ‘모든 임차인을 약자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임대인은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기간이 만료돼도 계약갱신을 거절할 수 없으며 해약통고를 할 수 없도록 제도화했다. 계약기간도 30년이란 긴 시간을 보장하지만 기간만료에도 갱신요구권을 행사할 수 있어 사실상 무제한 임차할 수 있다.

일본을 관광하다보면 한 곳에서 50년, 100년 장사했다는 우동집, 라멘집, 양갱집을 흔히 볼 수 있다. 이영덕 한솥도시락 회장은 “일본에서 3,4대를 잇는 가게들이 나올 수 있는 바탕에는 법률가들의 강력한 소상공인 보호정신을 반영한 차지차가법이 있다”고 했다. 차지차가법을 지지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장인정신이 어우러지면서 500년 넘게 가업을 이어온 ‘토라야양갱’ 같은 소상공인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영국도 1954년 제정한 임대차법에 따라 임대차 기간을 14년 미만으로 정하고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최소 7년의 기간을 보장해주고 있다. 프랑스도 임대차 관련 법에서 임대차 기간을 9년으로 정하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의 확산 = 상가임대차법의 맹점 탓에 서울 수도권 곳곳에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의 가로수길, 경리단길, 북촌, 서촌, 삼청동길, 성수동 등지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개성있는 가게들이 한곳에 모여들면서 상권을 형성하고, 여기에 소비자들의 발길이 부쩍 늘어나면서 황금상권으로 탈바꿈한다. 이를 기화로 건물주들은 임대료를 마구 올려버리고, 감당이 안되는 임차인들은 하나둘씩 월세가 싼 곳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게된다. 개성이 넘치던 상권이 무미건조한 상권으로 되돌아간다. 전형적인 젠트리피케이션의 공식이다.

서울 서촌은 볼거리가 많은 지역으로 언론에 자주 노출되면서 시민과 관광객들이 부쩍 늘었다. 상권 활성화에 따라 임대료가 지난 5년간 전용면적 33㎡ 기준 40만∼50만원에서 최대 150만원까지 치솟았다. 이곳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3년 사이 서촌 지역 점포 중 임차인이 바뀐 곳이 70%가 넘는다”고 말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마침내 지방으로 번지고 있다. 볼품없는 골목시장이었던 대구 방천시장에 ‘김광석거리’가 등장하면서 상인들은 대부분 떠나고 비싼 임대료를 감당할 만한 고깃집, 주점들이 터를 잡았다. 부산의 전포카페거리도 양상은 비슷하다. 전통시장도 젠트리피케이션의 예외 지역이 아니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지방자치단체 등이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정책자금을 쏟아부었지만 정작 가장 큰 수혜자는 시설 현대화로 건물 가치가 급등한 건물주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상인들은 “상가임대차법의 핵심 조항 몇 개만 손봐도 젠트리피케이션은 일어날 수 없는데, 국회에서 마냥 시간을 질질 끄는 속셈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분통을 터뜨린다.

강창동 유통전문 대기자·경제학박사 cdkang19880@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