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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거물이 된 '괴물'에 맞선 천재 변호사의 복수활극, 도진기 신작 ‘복수법률사무소’

도진기 작가(사진제공=황금가지)전직 부장판사이자 현직 변호사로 2014년작 ‘유다의 별로’ 한국추리문학대상을 받은 도진기 작가의 신작 ‘복수법률회사’가 출간됐다.  도진기 작가는 한국추리문학대상 수상작인 ‘유다의 별’을 비롯해 변호사 고진을 내세워 ‘붉은 집 살인사건’ ‘라 트라비아타의 초상’ ‘정신 자살’ ‘악마는 법정에 서지 않는다’로 이어지는 ‘고진 시리즈’와 백수 탐정 진구를 주인공으로 한 ‘순서의 문제’ ‘나를 아는 남자’ ‘가족의 탄생’ ‘모래바람’ ‘세 개의 잔’ 등 ‘진구 시리즈’를 집필했다.‘복수법률사무소’는 도진기 작가의 첫 웹소설 연재작으로 4개월간 네이버에서 연재된 원고지 6000여매가 3권의 책으로 묶였다. 자살로 위장된 아버지 죽음의 진실을 밝히고자 이름도, 과거도 지운 젊은 변호사 윤해성이 이제는 테슬라를 위협하는 한울모터스라는 글로벌 자동차기업의 총수가 된 양다곤 회장에 복수하는 법정극이다.  복수법률사무소|도진기 지음(사진제공=황금가지)윤해성은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을 중심으로 최연소 사무장 전기호, 베일에 가려진 여직원 방수희와 조력하고 양다곤 회장을 비롯한 권력자들에 맞서는 도시 활극이기도 하다.   이준기 주연의 회귀물 ‘어게인 마이 라이프’, 송중기를 이탈리아 마피아 변호사를 내세운 ‘빈센조’, 수임료 단돈 1000원을 외치는 남궁민의 ‘천원짜리 변호사’ 등 최근 주목받고 있는 다크 히어로 법정극들과 결을 같이 하는 것처럼 보인다. 더불어 웹을 기반으로 소설, 만화, 드라마, 영화, 출판 등으로 변주되는 콘텐츠 흐름에도 발맞춘 듯 보이기도 한다. 여타 법정극들과의 차별점에 대해 황금가지의 김준혁 편집자는 “도진기 작가님이 워낙 법률 전문가다 보니 ‘복수’라는 결말로 가기 위한 법정공방에서의 전문성이 도드라진다”며 “주변 인물들의 법률문제를 해결해주거나 복수를 위해 그 대상인 양다곤 회장을 법리적 변칙으로 돕는 등의 과정이 디테일하게 그려진다”고 밝혔다.  ‘복수법률사무소’는 작가 스스로 “제 작품의 주제를 굳이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도시모험’쯤”이라고 한 말에 가장 충실하게 그러면서도 가장 정확하고 디테일한 법적 지식으로 무장했다. 김준혁 편집자는 “웹소설이나 웹툰이 책으로 출간되는 트렌드와도 결이 좀 다르다. ‘복수법률사무소’는 웹소설로 썼지만 출판에 더 가까운 작품”이라고 귀띔했다“도진기 작가님은 원래 출판소설을 쓰던 사람으로 웹소설 방식이 낯설 수 있죠. 웹소설 중 추리물은 인기가 별로 많지 않아요. 복기해야 하는 작품들 보다는 순간 즐기고 넘길 수 있는 콘텐츠들을 선호하거든요.”영상화에 대해서는 “출간된 책이 영상제작사 등에 발송된 상태”로 “작가님도 영상화를 염두에 두고 집필한 작품이라서 그 가능성을 가늠 중”이라고 알렸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2-12-08 18:30 허미선 기자

[B그라운드] 한국문학번역상 수상자들의 이구동성 “한국문학 붐, 지금처럼만 건전하고 견실하게!”

5일 한국문학번역원은 ‘2022 한국문학번역상’ 수상자를 발표했다.(사진=허미선 기자)“현재 미국 내에서는 한국문학 붐이 상당히 진행되고 있어요. 한국문학이 건전하고 견실하게 추세를 가지고 가고 있다고 생각해도 될 것 같습니다.”5일 서울 종로구의 한 음식점에서 진행된 2022 한국문학상 기자간담회에서 영어권 번역대상 수상자인 마시 카라브레타 칸시오 벨로(Marci Calabretta Cancio-bello)는 미국 내 한국문학 붐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한국문학번역대상은 지난해까지와는 달리 올해부터 언어 파급력과 한국문학 수용도를 기준으로 3개 그룹으로 나눠 심사를 진행했다. I그룹(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 II 그룹(러시아어, 아랍어, 베트남어, 일본어, 중국어) 작품은 각각 4년, 5년 주기로 심사해 번역대상 수상자를 선정하며 III 그룹(I, II 그룹에 속하지 않은 언어권)은 언어권별 누적 출간 종수를 반영해 수상주기를 결정한다.올해는 2021년 5개 언어권에서 출간된 54종의 번역서를 대상으로 1차 외국인 심사, 2차 내국인 심사를 거쳐 번역대상 4인(작품 3종), 번역 신인상 문학부문 9인, 웹툰과 영화 부문 각 4인, 공로상 1인의 수상자를 선정했다.2022 한국문학번역상 영어권 번역대상 수상자 마시 카라브레타 칸시오 벨로(사진=허미선 기자)I 그룹 번역대상은 지난해 제프리 프레스(Zephyr Press)에서 이원 시인의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The World Lightest Motorcycle)를 공동번역해 영어권에 소개한 고은지와 마시 카라브레타 칸시오 벨로(이하 마시)가 수상했다. II 그룹은 중국어권에 한국의 근현대를 대표하는 이태준, 박완서, 손창섭, 오정희, 이청준, 천운영, 공선옥, 정찬의 단편소설이 실린 ‘한국문학전집(2)’를 대만 맥전출판사에서 번역출간한 유신신, III 그룹은 인도네시아어로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을 번역출간한 잉리아나 탄이 번역대상을 수상했다.기자간담회에는 영어권 수상자인 마시를 비롯해 중국어권 수상자 유신신, 공로상 수상자인 일본의 김승복 쿠온 대표의 대리수상자인 사사키 시즈요가 참석했다.마시는 “미국은 유명인이 주도하는 문화가 굉장히 강하다”며 “그래서 BTS(RM·진·슈가·제이홉·지민·뷔·정국) RM이 읽을 만한 책들(리딩리스트)을 공개했을 때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같은 책들이 미국에서 굉장히 크게 주목을 받았다”고 전했다.“K드라마, ‘기생충’, BTS 등 모든 한국 예술이 번역되면서 한국문학도 호응을 얻은 측면도 있어요. 그렇게 대중문화 관련 번역서가 미국 내 한국문학 붐의 한축을 이루고 있고 조금 더 고급문화로 이원 시인의 작품이라든가 최돈미 시인이 번역한 김혜순 시인의 작품 등이 또 다른 축을 이루고 있죠. 문학의 변화를 선도하는 것은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고 여러 언어권을 넘나드는 번역도 미국의 문학계에서는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칩니다.”이렇게 전한 마시는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Pachinko)를 예로 들었다. 그는 “이민진 작가의 영어소설 ‘파친코’가 드라마로 제작돼 여러 언어로 번역돼 시청됐다”며 “이를 통해 한국계 미국인의 서사가 한국어를 비롯한 다른 언어로 번역돼 출간되고 다른 매체를 관통하는 것도 미국에서는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밝혔다.“미국 출판사들은 단순하게 요즘 한국문학이 주목받는다는 이유로 한국작가의 작품을 발굴해 번역출판하지 않아요. 대단히 신중하게 시간과 공을 들여 번역출판할 책들을 선정합니다. 최첨단을 달리는 한국 문학에서 영감을 얻고자 하는 출판사들이나 작가들도 많죠. 작은 소규모 독립 출판사들이 리스크 테이킹을 하면서 한국 문학계의 트렌드가 되는 작가들의 작품을 출판하고 그것이 많은 인기를 얻음으로서 대규모 출판사들도 점점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2022 한국문학번역상 중국어권 번역대상 수상자 유신신(사진=허미선 기자)중국어권 수상자인 유신신은 “대만은 한국과 사회적, 정치적으로 비슷해서 한국 서적이 많이 출판되고 있다”며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이 결혼한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고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 ‘댓글부대’ 등은 젊은이들이 좋아한다”고 전했다.“대만에서의 한국문학 번역출판 수량이 수직상승하고 있어요. 최신 베스트셀러 뿐 아니라 몇 년 전 호평받은 책까지 수입해 출간하는 독립출판사도 있죠. 더불어 한국의 영화, 웹툰 등도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일본도 뛰어넘었죠. 한국문학 번역가도 전보다 크게 증가했어요. 한국 문학 붐 초창기에는 대부분 저에게 번역의뢰가 왔었다면 이제는 젊은 층으로 분산되고 있죠. 그럼에도 저는 일년에 4종의 책을 번역하고 있어요. 다른 분들 번역 수량까지 고려하면 크게 증가했죠.”사사키 시즈요는 “일본 내 한국문학 붐의 큰 전환점으로 여겨지는 작품은 ‘82년생 김지영’이고 다음 붐을 이끌어가는 것은 50만부 이상이 팔려나간 김수현 작가의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다”라고 밝혔다.“2020년부터 힐링 에세이가 인기여서 일본에서도 3, 4권이 번역돼 1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습니다. 힐링 에세이가 인기를 끄는 가운데 2022년에는 시가 급부상하고 있고 SF소설, 입문서 등으로 장르가 확대 중이죠. 김승복 대표와 K북 진흥회가 2019년부터 진행 중인 K북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출판사 수치도 이를 증명합니다. 2019년에는 19개 출판사가 방문했고 코로나 팬데믹으로 2년간 온라인으로 진행하다 3년만에 오프라인으로 치러진 올해 페스티벌에는 47개사가 다녀갔죠.”2022 한국문학번역상 공로상 수상자인 쿠온출판사 김승복 대표를 대리해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사사키 시즈요(사진=허미선 기자)이어 “일본에서 가장 인기있는 작가는 한강으로 ‘채식주의자’를 비롯해 6권이 번역출간됐다. 올해는 시집도 출판됐는데 시집이 잘 팔리지 않는 일본에서 쿠온출판사 책들 중 가장 빠르게 2쇄를 찍었다. ‘한강’이라는 이름만 보고도 책을 사는 일본 사람들이 생겨날 정도로 인기”라고 부연했다.“한강 작가를 비롯해 정세랑, 김혜란, 박민규, 김연수, 장강명 등의 작품 서너권이 계속 출판 중이죠. 일본에서는 마치 일본 책을 읽듯 한국 작가의 작품을 읽고 있어요. 드라마, 영화, K팝 뿐 아니라 한국 요리, 식품들 등이 슈퍼에 진열되는 수준이 됐죠. 그만큼 한국문화와 한국문학이 친숙해졌죠,”이어 “한국어를 배우려는 젊은 사람들도 늘고 있고 그들이 실력을 키워 번역가가 되려고 하고 있다. 더불어 대행 번역사가 많아진 것도 한국 문학 정착 요인 중 하나가 된 것 같다” 덧붙이며 일본 내 한국문학 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좋은 작품을 계속 출판할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많은 출판사들에서 아직 알려지지 않은 매력적인 한국 작품들이 더 많다는 걸 계속 알리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저희도 그런 것들을 발굴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상황이죠. 또 번역가가 되고자 하는 이들이 좋은 작품을 찾아서 역으로 출판사에 제안하는 흐름도 만들어지고 있어서 일본 내 한국문학 붐은 계속 이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2-12-05 21:11 허미선 기자

사람을 존중하는 ‘서비스 만점’ 식당 '밀라노 기사식당' 이야기

은평구 위치한 ‘밀라노 기사식당’의 글 쓰는 쉐프 화제 ‘밀라노 기사식당’ 책 출간 후 ‘청년 도전사업’을 주제로 박정우 대표가 강연을 하고 있다 lt;사진gt;사람을 존중하는 식당, ‘밀라노 기사식당’이 화제다. 이 식당은 은평구 증산동 재개발 지역의 침체한 상권에서 시작됐다.더욱이 창업 시기는 코로나19가 대 유행한 2020년 8월이다. 힘들다는 말조차 나오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시기를 맞아 어느 날 가게 쉐프 박정우 대표는 한 손님이 남기고 간 빈 그릇을 SNS에 올렸다.그 ‘빈 그릇 이야기’가 예상치 못한 반향을 일으켰고 공간을 채웠던 사람들의 사연이 모여 한 권의 책이 탄생했다. 어서 오세요, 밀라노 기사식당입니다가 바로 그것이다.책의 저자 글 쓰는 쉐프 박정우 대표는 유재석이 이끄는 방송 프로그램 식스센스3에 별난 조합 식당으로 출연하는 등 SNS에서 화제가 돼 2022년 초 손님이 몰려들기 시작했지만, 그의 선택은 반대였다.식당운영을 주 6일제에서 ‘주 5일제’로 바꾸고, 줄 서는 맛집을 포기하고 ‘완전예약제’를 실시해 불필요한 줄서기를 없애서 급하게 먹고 가는 손님이 없도록 배려했다.그 과정에서 한 번 온 손님이 단골이 되고, 그 손님이 또 다른 손님을 데려와서 단골이 되는 동화 같은 실화 이야기가 탄생 됐다. 손님을 존중하는 밀라노 기사식당의 이야기는 코로나19 대유행을 겪어 힘들어하는 많은 이들에게 큰 감동이 되고 있다.박 대표는 “은평 재개발 지역인 증산동이란 성공 확률이 없는 상황에서 버티어 냈던 원동력은 한 분 한 분의 손님이었다”라며 “레스토랑을 찾아오는 손님에게 포기하지 않는 응원을 받아 9회 말 2아웃이라도 역전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됐다”라고 출간 배경을 소개했다.밀라노기사 식당에 들어서면 계산대에 크게 쓰인 ‘친절·위생·봉사’라는 글씨를 발견하게 된다. 처음부터 실내장식을 그렇게 하려던 것은 아니고 기사식당이라는 이미지를 주기 위해 써넣은 것인데, 막상 하고 보니 그 글대로 행동하는 박 대표의 모습에서 서비스와 신뢰를 바탕으로 한 가게 운영의 기본을 엿볼 수 있다.박 대표는 책 출간 후 청년 대상으로 동기부여 강연을 하고 있다. 박 대표는 “손님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가게를 운영하면서 손님에 대한 글을 쓰고, 손님으로 오신 분이 책을 내주고 또 다른 기회를 만들어주었다”라며 “출간 후 ‘청년 도전사업’을 주제로 한 강연요청을 받고 한창 진행 중이다”고 밝혔다.박 대표가 강사로 참여 중인 은평 청년오랑 ‘청년 도전사업’에서는 ‘사람을 존중으로 대하는 자세’에서 출발한 박 대표의 철학을 가게 운영 서비스와 신뢰라는 테마로 풀어내 청년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위기’를 ‘기회’로 만든 박 대표의 스토리는 비단 식당경영에만 적용되진 않을 것이다. 박 대표는 ‘인생도 돈보다 사람이다’라는 진정성을 생각하며 이 시대 청년과 소상공인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기 위해 오늘도 팬(pan)과 펜(pen)을 든다.장인평 기자 jip309@viva100.com

2022-12-05 16:55 장인평 기자

[브릿지경제 신간(新刊) 베껴읽기] <솔로 사회가 온다> 아라카와 가즈히사, 나카노 노부코

사람들은 왜 점점 혼자의 삶을 선택할까? 이 책의 화두다. 초고령사회 일본에서 고령화 만큼이나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는 ‘솔로화’에 관해 저자들이 내놓는 입체적인 분석과 전망이 돋보인다. 우리 역시 솔로화에서 자유롭지 못할 전망이다. 저자인 아라카와 가즈히사는 독신연구가 겸 마케팅 디렉터, 나카노 노부코는 뇌과학자다. 두 사람은 2040년에 일본 인구의 절반이 솔로가 되는 ‘솔로 시대’가 될 것이라며, 어떻게 슬기롭게 혼자 살아갈 것인가에 관해 조언을 준다.* 2040년 일본 독신자가 인구의 절반 - 저자들은 2040년이면 일본 인구의 47%가 독신자로 채워질 것이며, 64세 이하 기혼자 가운데는 31%가 독신자가 차지할 것이라 예측한다. 결혼을 하더라도 만혼이거나 이혼이 늘어 필연적으로 독신 인구가 늘어날 것이고, 결국 결혼의 장점을 의심하는 시대에 본격적으로 돌입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연예는 하고 싶지만, 결혼은 별개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지배적이 된다는 것이다.* 고령자보다 독신자가 더 많은 사회 - 젊은 세대 중에서도 솔로가 늘면서 일본은 2040년 15세 이상 인구 약 1억 명 가운데 독신이 4600만 명, 기혼자가 5200만 명으로 예상된다. 3900만 명의 고령자보다 독신이 4600만 명으로 더 많아진다. ‘고령 국가’가 아니라 ‘독신 국가’가 된다는 얘기다. 고령 솔로 남성은 490만 명, 고령 솔로 여성은 1260만 명에 이른다. 최근에는 ‘생애(평생) 미혼율’이란 말이 ’50세 때 미혼율‘로 바뀌었다고 한다. 50세가 넘어서도 결혼할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 항의를 한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 50세 넘어 결혼하는 비율은 1%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남성 3명 중 1명, 여선 5명 중 1명은 생애미혼이라고 한다.* 일본 남성 중 300만 명은 배우자 못 찾아 - 결혼에 있어 남성들 사이에서도 격차가 벌어지는 사회가 도래한다. 남성은 여러 번 결혼하는 사람과, 한 번도 결혼하지 않는 사람으로 나뉘게 된다. 남성은 재혼 상대로 초혼 여성을 찾고, 재혼 여성은 재혼 남성을 고른다. 아라카와는 이를 ‘시간차 일부다처제’라고 부른다. 이혼과 재혼을 반복하는 사람은 몇 번이고 결혼하고, 한 번도 결혼 못하는 사람은 계속 못하게 된다는 얘기다. 이미 일본에서는 300만 명의 남성이 결혼 상대가 없다. 확연한 남초 현상 때문이다. 2030 남성도 이미 145만 명이 남아 돈다. 75세가 넘으면 여성 인구가 더 많아져 결국 홀로 남겨지는 남성이 3000만 명을 웃돌 전망이다.* 홀로 있고 싶은 사람이 40% - 이혼 증가 역시 독신인구가 늘어나는 원인 중 하나다. ‘특수 이혼률’은 이혼 건수를 결혼 건수로 나눈 것인데 최근 15년 동안 35% 정도였다. 저자들에 따르면 솔로 선호도가 높은 비율이 40% 정도로 나타났다. 반대로 모두와 함께하고 싶은 사람은 60%였다. 결혼 의욕이 낮고 혼자 있는 시간을 편안하게 느끼는, 어쩌면 평생 솔로일지도 모를 ‘진짜 솔로’가 20%였다. 현재 독신이지만 결국 결혼해 기혼자가 될 ‘사이비 솔로’가 40%로 가장 많았다. 결혼은 했지만 사실은 솔로가 좋아 이혼과 재혼을 반복하는 ‘그림자 솔로’는 배우자가 있는 60% 가운데 20%였다. 유배우자 가운데 3분의 1이 그림자 솔로라는 뜻이다.* 결혼해도 고독사 하는 현실 - 저자들은 솔로 중에서도 ‘셰어 하우스’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한다. 왁자지껄하거나 불이 켜져 있으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아주 캄캄하고 아무도 없어 쥐 죽은 듯 조용한 방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고독사 하는 사람의 대다수는 이전에 기혼자였던 사람이다. 현재 고독사 하는 75세 이상 사람들은 일본에서 거의 모든 사람이 결혼했던 ‘개혼(皆婚)’ 시대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이제는 ‘결혼 안하면 고독사 한다’가 아니라 ‘결혼해도 고독사 한다’가 된다. 저자들은 “결혼은 의무가 아니므로 고독사가 두렵다고 무리하게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조언한다.* 가족 시장의 쇠퇴, 솔로 시장의 확대 - 지금까지 고도성장기의 소비를 지탱한 것은 주부를 비롯한 이른바 ‘가족 시장’이었다. 가족의 경제권을 어머니가 쥔 가족시장이 전체의 40%를 차지했다. 지금까지는 경제가 부부와 가족 중심으로 돌아갔다는 얘기다. 그러나 앞으로는 인구의 40~50%를 독신이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40%가 독신이고, 독신자(사이비 솔로와 진짜 솔로)들이 소비활동을 하는 ‘독신 시장’이 존재한다. 결혼 했지만 혼자 있고 싶어 하는 그림자 솔로까지 포함하는 ‘솔로 활동 시장’이 엄청나게 확대되고 있다. 이제 남성이 홀로 갈 만한 곳은 온천과 페스티벌이나 라이브 공연장 밖에 없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솔로 남성의 외식비가 한 가족 외식비 2배 - 독신 남성들 소비 가운데는 식비가 압도적이다. 반면에 독신 여성은 집세가 가장 많은 비중이다. 독신 남성의 외식비는 일만의 2배 가까이 된다. 특히 34세 이하 독신 남성의 엥겔 계수가 매우 높다. 35세 독신 남성은 술과 음료, 도시락이나 주먹밥 등 조리식품에 대해 실제 금액 기준 가족 이상으로 소비한다. 34세 이하 독신 여성도 일가족보다 외식에 많은 돈을 쓴다. 반대로 말하면, 결혼을 하면 혼자 살 때 외식에 소비한 금액의 절반을 절약할 수 있다는 의미다. 여성의 남성화도 이슈다. 여성은 서서 먹는 소비 가게에 혼자서는 갈 수 없다는 기존의 고정관념이 바뀌고 있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혼밥’도 일종의 치유행위다 - 고독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카노는 “혼자 있음으로써 치유되는 상처도 있다”며 고독에 관한 지나치게 부정적인 생각을 경계한다. 혼밥 역시 스트레스 받는 사람에게 치유 행위로 기능 한다는 것이다. 일본과 미국 중국 한국 고등학생의 점심·저녁 혼밥률을 비교해 보니, 함께 식사하는 것은 중국인뿐이었다고 한다. 점심과 저녁 모두 남자와 여자 모두 평균 6% 안팎만 혼밥을 했다. 일본은 점심에 남자가 14%, 여자가 3% 가량 혼밥을 하지만 저녁은 남자와 여자가 각각 19%, 15%에 달했다. 한 동안 ‘화장실 식사’가 화제였던 일본에서도 이제 혼밥은 일반화되었다. 한국의 경우 점심 혼밥은 남자와 여자가 각각 2%, 1% 수준에 그쳤지만 저녁 혼밥은 15%, 13% 수준으로 껑충 뛰었다.* 선택적 고독과 배제에 의한 고독 - 나카노는 ‘선택적 고독’과 배제에 의한 고독을 말한다. 전자는 매우 사치스럽고 경제력을 필요로 하는 사치로서의 고독인 반면, 후자는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해 생기는 고독이다. 이에 아라카와는 “혼자 있는 사람을 무조건 외롭다고 보아선 안된다”며 “이는 역설적으로 매우 위험한 생각”이라고 말한다. 혼자 있는 편이 훨씬 고독하지 않을 수 있고, 모두와 함께 있더라도 자신의 의지대로 타인과 대화할 수 없는 수동적 상태에 놓인다면 고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사실 가장 큰, 최악의 고독은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음에도 ‘굉장히 고독하다’고 느끼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숨은 고독’, 소통이 단절된 고독이다.* 결혼 후 5년 안에 사랑이 식는다. 왜? - 여성에게 결혼과 출산은 큰 부담이다. 특히 출산은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연애 기간이 끝나고 서로 이성의 상태로 돌아갔을 때 상대가 여전히 멋있다고 생각되지 않으면 마음이 흔들린다. 그래서 가장 많이 이혼하는 시기가 결혼한 지 5년 미만일 때라고 한다. 나카노는 그 이성의 마취가 빠르면 수 개월, 길어야 4년이라고 전한다. 아라카와는 “마취가 풀린 이후에도 부부관계를 이어가는 것은 애정이 아이에게 옮겨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바람 피우는 기혼자가 남녀 모두 30% 정도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를 소개한다. 애인이 있는 사람으로만 한정해도, 이 비율은 남녀 모두 30%라고 한다.* 남성 이혼과 자살의 높은 상관관계 - 흔히 자살률은 실업률과 관련이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자살률과 이혼율의 상관관계를 조사해 보니, 여성과 달리 남성이 0.92로 매우 높은 상관 관계를 보였다고 한다. 이혼하면 거의 대부분 자살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남성의 이혼과 자살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 조사 결과는 결국 ‘남성은 이혼을 견뎌낼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반대로 여성은 이혼율과 자살률이 전혀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0.49로 딱 균형 수준이었다. 그래서 여성의 기대수명이나 생애주기가 남성보다 더 높게 나타나는 것일 수도 있을 듯하다.* 솔로 여성은 돈, 솔로 남성은 로맨스 - 솔로 남녀는 기혼 남녀에 비해 압도적으로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 혼자가 좋아서 솔로다. 솔로 남성보다 솔로 여성이 더 비율이 높았다. 아라카와의 조사에 따르면 솔로 여성은 압도적으로 사랑보다 돈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41.4%로 솔로 남성의 21.0%보다 월등했다. 솔로 남성(29.8%)은 기혼 여성(32.4%)과 비슷하게 돈보다 사랑을 믿는다고 답했다. 뇌과학자인 나카노는 “여성이 남성을 고를 때는 ‘전대상피질‘이라는 전두엽의 일부가 활성화되는데, 이곳은 모순을 찾아내는 곳”이라며 “여성은 남성이 (돈과 같은)자원을 자신과 아이에게 나눠줄 사람인지를 판별하려 한다”고 설명한다.* 솔로 남성의 불행도는 40대가 정점 - 아라카와의 2020년 조사에 따르면, 거의 전 연령대 기혼 남녀는 절반 이상이 주관적으로 행복감을 느낀다. 특히 40대 솔로 독신 남녀의 불행도가 가장 높았다. 5년 가량 동일한 조사를 진행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불행도가 거의 동일하게 높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40대에 불행도가 정점을 찍고, 나이가 들면서 점점 내려갔다. 정점은 46세였다. 그 나이 쯤이면 몸 상태가 안 좋아지고, 남녀 모두 호르몬 균형이 달라지면서 지금까지 정상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었던 부분들에 대한 조절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저자들은 분석한다.* 인스타그램 사진으로 아는 ‘자기 긍정감’ - 아라카와의 조사에 따르면 기혼 남녀는 ‘자기 유능감’이 마이너스(남 -1.6, 여 -7.3)다. 하지만 ‘자기 긍정감’은 29.8과 38.7로 높게 나타났다. 솔로 남성은 자기 유능감은 16.8로 웬만했으나 자기 긍정감은 10.4에 불과했다. 솔로 여성은 13.8과 13.5로 비슷했다. 그는 인스타그램 사진만 봐도 자기 긍정감 정도를 알 수 있다고 단언한다. 자기 긍정감이 높고 행복도 최고조인 여성의 인스타그램 사진에는 어딘가에 반드시 자기 모습이 찍혀 있다고 한다. 얼굴이 아니라면 뒷 모습이나 손, 그림자라도 들어가 있다. 사람들에게 ‘좋아요’를 받고 싶다는 표현이라고 한다. 반대로 자기 긍정감이 없는 남성의 인스타그램은 물건 사진으로 가득하다. 자긍감 낮은 사람에게 아라카와는 ‘90번의 셀피 챌린지’를 추천한다. 90번 셀피를 찍다 보면 화장법이나 사진 찍는 법이 크게 달라지고 특히 점점 자기가 예뻐보이는 각도를 찾아감으로써 자긍심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남성은 연애, 여성은 일이 자기 긍정감 - 아라카와가 자기 긍정감이 낮은 사람과의 높은 상관성이 있는 인자만 골라냈더니 꽤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남성은 연애에 자신이 없다거나 외모에 자신이 없다, 이성에 고백을 받아본 적이 없다 등의 답변이 나왔다. 여성은 일의 평가는 능력주의가 좋다든가, 지기 싫다. 부업 또는 겸업을 원한다는 답이 많을수록 자기 긍정감이 낮게 나타났다. 자기 긍정감의 축이 남자는 연애, 여자는 일이라는 것이다. 남성은 사실 연애나 이성에 자신이 없어 자기를 긍정할 수 없는 것으로 해석된다. 여성도 열심히 일한다든가, 인정받고 있다는 대답을 해놓고는 사실은 인정받지 못한다는 생각한다.* 결핍감을 채우고 행복해지기 위한 ‘에모 소비’ - 저자들은 솔로 남녀의 결핍갑을 채워주는 것이 ‘소비’라고 말한다. 돈과 시간을 들여 자신의 행복을 손에 넣는 일을, 감정(emotional)’의 파생 신조어 ‘에모이’에서 따와 ‘에모 소비’라고 한다. 물건 소비의 ‘소유가치’가 이제는 어떻게 그것을 사용할지가 가치화되는 ‘사용가치’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경험 소비’에서 ‘에모 소비’로 이동하면 경험 소비의 체험 가치는 시간 가치로 바뀌고, 그 체험으로 그 사람의 시간이 어떤 가치를 지니게 되었는지를 묻게 된다는 것이다. 에모 소비를 통해 정신 가치를 확인하는 셈이다. 솔로는 마음의 결핍감을 메우려 성취감을 얻으려 한다. 쓸데없이 돈이나 시간을 낭비하는 듯 보여도 그들은 조금은 아깝다거나 낭비라고 생각 않는다. 오히려 돈과 시간을 들여 마음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30년째 이어오는 ‘연애 강자 3할의 법칙’ - 연애 잘하는 사람은 전체의 30%에 불과하다는 이른바 ‘연애 강자 3할의 법칙’이 있다. 일본 인구문제연구소에 따르면 연애하는 비율은 여성이 더 높다. 미혼 남녀 중 남성이 더 많아 비율적으로 그런 것도 있지만, 자신을 솔로라 속이고 불륜남을 포함해 30%의 연애 강자 남성이 혼자서 여러 여성과 교제하기 때문이란다. 아라카와는 “약 30년 전부터 연애하는 미혼 남녀는 평균 30%였다”고 전한다. 지금까지 한 번도 여자 친구를 사귄 적이 없는 남성이 30% 정도 존재하는 한편으로 30%의 연애강자는 연애 상대를 몇 번이나 바꾸는 ‘승자 독식’이 빚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젊은 남성들이 어제 오늘 갑자기 초식남(남성이 여성에게 관심을 갖지 않고 초식동물처럼 온순하게 취미에만 몰두하는 현상)이 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만나는 ‘연애 동질혼’이 대세 - 부부 1000쌍을 조사했더니, 기혼 남녀 모두 연애 강자 비율은 30%였다. 바람 피우는 비율도 미혼, 기혼 남녀 모두 약 30%였다. 기혼자의 경우 부부가 연애 강자와 연애 약자 중 어떤 조합으로 이뤄졌는지 조사해 보니 강자와 강자, 중간과 중간, 약자와 약자의 조합이 가장 많았다. 아라카와는 이를 ‘연애 동질혼’이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차지하는 비율이 48%였다고 한다. 반면에 연애 약자 여성이 중간 또는 강자인 남성과 결합한 비율은 24%, 약자 남성이 중간 또는 강자 여성과 맺은 비율은 28%에 그쳤다고 한다.* 연애 강자는 연봉도 높다? - 이 조사에 따르면 연애 강자는 남녀 모두 30%인데 그 중 절반인 15% 정도만 연애 강자와 결혼했다. 또 연애 강자 여성이 속한 가구 연봉이 가장 높고, 연애 약자 여성이 속한 가구 연봉이 가장 낮았다. 아라카와는 “외모와 경제력의 완벽한 교환”이라고 분석했다. 반대로 말하면. 인기 없는 남성이라도 경제력이 있으면 인기 많은 여성과 결혼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아라카와는 또 “연애 강자란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며 그 비율이 30% 정도이고, 나머지 70%는 수동적 성격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부성과 모성이 있어야 결혼도 가능하다 - 기혼자의 특성 가운데 하나가 부성과 모성의 결합이다. 부성 혹은 모성이 강한 사람을 나누어 1000쌍의 부부가 어떻게 짝을 이루는지 조사해 보니, 부성과 모성을 모두 가진 사람끼리 짝을 이룬 비율이 30%로 가장 높았다. 아빠다운 남성-엄마다운 여성 조합은 환상에 불과하며, 사실은 부성과 모성을 모두 가져야만 원활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개개인을 모두 조사했더니, 모두 부성보다 모성을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성이 너무 세면 공동생활에 안 맞고, 모성이 강해야 결혼생활에 적합함을 말해 준다. 남녀 모두 젊을수록 부심이 약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아라카와는 “부성적 특성이 사라지면 결혼 안해도 괜찮다는 풍조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독신은 기혼자보다 부성, 모성 모두 조금씩 낮았다.* 일본여성 초혼 연령대는 여전히 60% - 만혼(晩婚)이 일반화된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40세가 넘어 결혼하는 사람이 늘었기 때문에 평균치가 높아졌을 뿐, 실제로는 기혼 여성의 60%가 20대에 초혼을 한다고 한다. 전략적 결혼이 아니라, 경제력과 관계없이 결혼하는 사람도 많다는 것이다.* 고정관념 위협의 무서움 - 성격 테스트를 하면, 사람들은 거기서 말하는 자기 성격에 의존하게 된다. 이를 ‘고정 관념 위험’이라고 한다. 사회로부터 그런 위협 메시지를 계속 받아, 그것이 자기 개성의 일부처럼 되어 버린다. 혈액형에 따라 성격을 일률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 보다 더 심각한 것은 ‘성별’이다. ‘여자는 수학이나 물리에 약하다’ 같은 선입견이다. 무서운 ‘심리적 속박’으로, 스스로에게 저주를 내리는 위험한 인식이다. 저자들은 “외로운 사람은 이런 성격일 것이라고 단정하거나, 결혼 못하는 사람은 이렇다 식으로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는 고정 관념 위협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코로나 이혼’ 증가가 의미하는 것 - 일본에서는 코로나 펜데믹의 영향으로 재택 근무나 자택 대기가 늘면서, 같은 공간에서 쭉 함께 있는 것을 힘들어 하는 부부가 늘고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코로나 이혼이 늘고 있다는 보도가 있는데, 중국 역시 이혼 부부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마스크를 싫어하는 서양인, 선글라스가 무서운 일본인 - 코로나로 인해 마스크를 늘 착용하다 보니 상대 표정을 보지 못한 채 의사소통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잦다. 일본인은 감정을 눈으로 표현하고, 서양인은 입매로 표현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감정을 드러낼 때 일본인은 눈, 서양인은 입 모양을 바꾼다는 것이다. 아라카와는 캐릭터 조형에서도 그런 경향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입모양으로 이모티콘의 표정을 표현하는 서양과, 눈에 초점을 맞춰 표현하는 일본이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다사(多死) 사회 일본, 솔로화는 절망적 미래 아니다 - 인구 동태는 ‘다산다사-다산소사-소산소사-소산다사’ 순서로 변한다. 모든 나라가 ‘다산소사’ 단계에서 폭발적으로 인구가 는다. 일본은 ‘소산소사’에서 ‘소산다사’로 향하는 과도기다. 지금까지 일본이 검토해 온 저출생 대책은 기혼 부부에게 아이를 낳게 하는 데만 집중되어 왔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저자들은 “이론상으로 부부를 한 쌍 늘리면 아이 수는 두 명 증가한다”며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려면 결혼을 장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은 저출생 보다는 ‘엄마 감소’가 문제라고 말한다. 바뀔 리 없는 사회를 바꾸려 하지 말고, 상황을 받아들이고 불가피한 미래를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해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이들은 “솔로 사회, 개인화하는 사회가 결코 절망적인 미래가 아니다”라며 “결혼하고 아이 낳아 기르는 사람이나 연애하는 사람은 언제든 있을 것이며, 각자에 맞는 새로운 공동체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2022-12-03 09:00 조진래 기자

[비바100] 주변 정리를 위해서는 '뇌'부터 챙겨라!

(사진제공=와이즈베리)디지털 시대, 정보와 선택의 과부하에 시달린다면 ‘정리하는 뇌’의 일독을 권한다. 유명 유튜버 ‘라이프해커 자청’이 자신의 인생을 바꿔준 책으로 유튜브에서 소개한 ‘정리하는 뇌’는 뇌 신경과학, 인지심리학, 행동경제학 등 다양한 분야의 최신 연구들을 토대로 머릿속에서 시작해 가정, 비즈니스, 시간, 사회 및 인간관계를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최근 몇 년간 인기 유튜브의 저서나 추천책이 베스트셀러 차트에 진입하며 ‘유튜버 셀러’의 힘을 입증되고 있는데 ‘정리하는 뇌’ 역시 그 수혜를 톡톡히 받았다. 자청의 경우 ‘역행자’를 쓴 유명 작가임과 동시에 절판되거나 인기가 없던 책들 조차 재출간시켜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릴 만큼 출판계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인물이다. 이 책에 대해 그는 “과학과 실험을 바탕으로 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심리학 도서”라고 밝히고 있다. 600페이지에 육박하는 두께를 보노라면 읽을 엄두가 나지 않을 수도 있다. 대니얼 J. 레비틴은 서두에 밝힌 ‘디지털 시대, 정보와 선택 과부하로 뒤엉킨 머릿속과 일상을 정리하는 기술’을 부제로 정해 수천개의 정보를 보고 읽고 선택해야 하는 현대인의 일상에 경고를 보낸다.선택의 폭이 넓을수록 저자는 “충동조절능력이 떨어지고 판단력도 저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의 뇌는 하루에 특정 개수 만큼의 판단만 내릴 수 있게 구성돼 있어서 그 한계에 도달하면 중요도에 상관없이 더 이상 판단을 내릴 수 없게 된다”면서 “우리 뇌에서 판단을 담당하는 신경 네트워크는 어느 판단이 더 우선적인지 따지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이어 정보홍수 속에서 주의력이 갈피를 잡지 못할 때 우리가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행동이 바로 멀티태스킹이라고 지적한다. 사회 문화적 분위기 역시 멀티태스킹을 부추기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 여러 개를 동시에 진행하는 것 자체가 결국 중요한 결정에 대한 에너지를 뺏는다는 걸 간과하지 않는다. 분량은 부담스럽지만 의식적으로 정리하는 법을 뇌에 인지한다면 지난 시간들보다 훨씬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음을 강조한다. 뇌를 속이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정리하는 뇌’는 바로 과학적으로 뇌를 속이거나 정면으로 대응해 삶의 질을 높이는 점을 자세히 기술한 책이다. 단언컨대 50페이지 전까지는 각주도 많고 쉽게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는다. 뇌와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면 한번에 한 가지씩 집중할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하는 법을 과학적으로 소개한다. 과학적, 의학적 설명이 넘쳐나지만 이 책에서 강조하는 정리의 기술은 문제를 세분화하고 5분 안에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소화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확신이다. 내가 하는 일은 필요가 있어서 하는 일이고 뇌의 과부하를 위해 메모를 통해 기억보다 뇌의 아웃소싱을 하면 일을 수월하게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정리하는 뇌’의 예시는 신경과학자로 오랜 시간 일 해온 저자의 생생한 경험담이 녹아있어 가독성을 더한다. 한번 읽어서 이해가 된다면 굳이 정리할 주변 사항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서너번을 읽는다면 인생의 방향이 바뀌는 느낌이 들 것이다.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2022-12-01 18:00 이희승 기자

[신간]터지는 카피에는 법칙이 있다-'요즘 카피 바이블'

요즘 카피 바이블 (김시래 지음, 스몰빅인사이트 펴냄)광고카피의 기본은 팔리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팔리는 카피란 어떤 것일까? 이를 알기 위해선 시대의 트렌드를 먼저 읽어야만 한다.지금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욕망을 알아야 그들의 관심을 끌고 지갑을 열도록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광고카피 작법서들이 구태의연한 카피 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멋진 인사이트를 그럴싸한 문장에 녹이면 사람들이 반응할 거라 착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런 광고의 시대는 끝났다.광고계에 ‘인사이트’의 열풍이 불었던 시절이 있다. 마케팅의 실체는 제품이 아니라 인식이라는 것이다.남대문 시장에서 살 수 있는 만 오천 원짜리 티셔츠와 오만 원짜리 나이키 티셔츠의 차이는 어디에서 올까? 바로 나이키 로고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이다. 소비자들에게 브랜드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 준다면, 제품의 질과 상관없이 팔려나간다는 것이 ‘인사이트 광고 이론’의 핵심이다.아직도 많은 대기업들은 자사의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서 힘을 쓰고 있다.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이고 수많은 예산을 광고에 쏟아붓는다. 하지만 지금 시장을 지배하는 ‘젊은 기업들’은 더 이상 인사이트 광고에 돈을 낭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금의 소비자에게 광고란 돈을 내고서라도 보고 싶지 않은 귀찮은 존재일 뿐이기 때문이다.눈에 띄지 않으면 지나쳐버릴 것이고, 관심을 끌지 않으면 스킵해 버릴 것이다. 이런 소비자를 공략하는 방법은 딱 두 가지뿐이다. 빠르고 분명하게 각인시키거나, 스스로 찾아보도록 유도하거나.먹히는 카피를 쓰기 위해서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것과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을 분간할 수 있어야 한다. 달라진 것은 광고의 방식이다. 스마트폰의 보급과 함께 이제는 누구나 손에 광고 단말기를 하나씩 들고 다닌다. 마음만 먹는다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 원하는 사람에게 당신의 광고를 노출할 수 있다. 불특정 다수에게 무분별하게 노출되는 TV 광고, 옥외 배너, 전단 광고 시절에 사용하던 광고 방식을 답습한다면 그 누구도 설득하지 못할 것이다.반면,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소비자들은 이득이 있어야 움직인다. 모두가 하는 일에 뒤처지기 싫어하며, 본인이 특별한 존재이기를 원한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능을 정확히 짚어내면서, 한 명의 개인에게 딱 맞는 메시지를 제시하라. 그 한 줄의 카피는 1초 안에 소비자의 머리에 달라붙어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소비자들은 이제 수많은 취향과 관심사로 파편화되었다. 유명 연예인보다 스몰 인플루언서가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듯, 수많은 예산이 들어가는 TV 광고보다 적은 예산이 들어간 온라인 타깃 광고가 더 확실한 매출을 보장한다. 마찬가지로, 이제 광고카피는 광고 전문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온라인 광고와 SNS의 힘을 빌린다면 누구라도 광고 전문가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다만, 이를 위해선 ‘요즘 카피’의 법칙을 알아야만 한다. 이 책에서는 지금 온라인에서 소비자들의 마음을 훔치고 있는 수많은 카피들을 유형별로 분석하여 소개한다. 팔고자 하는 물건의 성격에 따라, 원하는 광고의 방향성에 따라 이 책에 수록된 카피를 베껴 쓰고 바꿔 써 보자.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요즘 소비자의 지갑을 저격하는 카피를 손쉽게 뽑아낼 수 있을 것이다.이 책은 30년 차 광고 전문가가 알려주는 ‘요즘 카피 작법서’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수많은 유명 광고를 만들어낸 저자가 전장의 한복판에서 정리해 낸 마케터의 생존 가이드다.격변하는 마케팅의 변화 속에서 혼란에 빠져 있는 전문 마케터는 물론이고 자신의 상품을 알리고자 하는 소상공인들까지, 이 책에서 알려주는 궁극의 카피 작업을 몸에 익힌다면 누구라도 1초 안에 고객을 설득하고 그들의 마음을 훔칠 수 있을 것이다.저자는 중앙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서 광고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 석사를 거쳐 호서대학교에서 정보경영학 박사를 취득했다. 광고업계에 뛰어들어 농심기획 대표이사, 제일기획 The south 본부장, SK MC 광고총괄본부장, 서울시 마케팅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삼성생명 ‘브라보 유어 라이프’, S-Oil ‘좋은 기름이니까’, 코레일 ‘당신을 보내세요’, 해찬들 ‘맛있게 맵다’ 등의 광고 캠페인을 통해 국내 광고업계의 황금기를 이끌었으며 대한민국 광고대상에서 대상, 동상, 특별상을 수상했다.현재는 동서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객원교수, 성균관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롯데 자이언츠 마케팅 자문위원, 부산시 도시브랜딩 마케팅 자문위원, 부시기획 전략대표, 애드미션 전략헤드 등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생각의 돌파력', '벽이 문이 되는 순간',  '설득의 12가지 법칙' 등이 있다.신화숙 기자 hsshin087@viva100.com

2022-12-01 16:24 신화숙 기자

[브릿지경제 신간(新刊) 베껴읽기] <천원을 경영하라> 박정부

‘국민가게’ 다이소의 창업주 박정부 회장이 들려주는 실패와 성공의 자서전이다. 마흔 다섯의 늦깎이 창업자가 어떻게 1000원 짜리 물건을 팔아 연 매출 3조 원 대 기업을 일굴 수 있었는지 알게 해 주는 책이다. 1000원의 가격보다 최소 2배의 품질이 나와야 매장에 물건을 내놓았다는 그의 집요한 품질경영 마인드는 큰 귀감이 된다. 그의 소박한 꿈은 ‘한 번 온 고객이 다시 방문하는 것’이다. “영원히 1000원짜리 상품을 팔겠다”는 박 회장은, 야외에 온 가족이 함께 다이소 제품을 경험할 수 있는 ‘가족쇼핑공간’을 만드는 ‘소박한’ 꿈을 꾸고 있다.* 1000원의 ‘힘’ - 저자는 ‘1000원’의 특별함을 얘기한다. 많이 사용하다 보니 다른 지폐에 비해 너덜너덜하고 험한 꼴을 많이 보는 지폐지만, 마치 굳은 살이 박이고 손일 많이 하신 어머니의 주름진 손과 같다며 애정을 드러낸다. 천 원이야 말로 성실함이 무엇인지, 땀이 무엇인지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에게 천 원이란 매 순간 흘려야 하는 땀방울이고, 그 땀방울이 만든 성실함이자 정직함이란다. 기술이나 요행으로 되는 일이 아니며, 정직하지 않고 성실하지 않다면 절대 얻을 수 없는 성취라는 것이다.* 가장 정직한 돈 ‘1000원’ - 저자는 “고객의 입에서 ‘이게 어떻게 1000원이지’하는 탄성이 절로 흘러나올 때 비로소 회사의 가치가 구현된다”고 말한다. 행인에게 1000원과 신상품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하고, 만일 1000원을 선택하면 그 상품은 가성비가 떨어진다고 보고 원점에서 다시 개발한다고 한다. 놀라운 가치로 고객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주는 것이 저자가 추구하는 다이소의 진짜 모습이다. 현재 다이소에선 1000원 상품이 51%에 달한다. 그 돈으로 1만 5000개 상품을 살 수 있다. 2000원 이하는 80%다. 2만 4000여 가지 물건을 살 수 있다. 아무리 비싸도 5000원을 넘지 않는다. 오늘날 3조 원의 매출을 지탱해 주고, 1500여 개 점포를 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1000원 1장’에 충실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가격은 지키고 품질은 올린다 - 다이소는 20년 넘게 면봉과 종이컵, 물병, 주방 고무장갑 등 주요 생필품의 가격을 1000원으로 유지하고 있다. 500원과 1000원, 1500원, 2000원, 3000원, 5000원 등 가격은 딱 6가지다. 2008년 금융위기 때도 아무리 원부자재 값이 올라도 균일가를 유지하며 품질은 더 좋게 개선했다. 저자는 “인플레이션으로 1000원이 100원 가치도 안된다 해도, 그 가치에 맞는 상품을 계속 개발하는 것이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며 “균일가는 아성다이소의 핵심 사명”이라고 말한다. 원가가 올랐다고 상품 가격을 덩달아 올리기보다는 유통과정의 거품을 없애고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자신들의 몫이라는 것이다. 그는 지금도 “마진 최소화를 통한 박리다매 전략으로 어려운 인플레이션 시대를 이겨가겠다”고 힘주어 말한다.* ‘마진’이 아니라 ‘만족’이 먼저다 - 다이소의 초창기 마진률은 1~2%였다. 대부분 기업이 제품 원가에 적정 이윤을 붙여 판매가를 결정했지만, 반대로 소비자가 만족할 만한 판매가격을 먼저 결정한 후 상품을 개발했다. ‘싸고 좋으면 고객은 반드시 온다’는 확신이 있었다. 복잡함을 빼고 소비자가 진정한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속성만 남기고는 원가를 높이는 불필요한 것을 제거했다. 제조업체 공장을 찾아가 생산 단계 축소나 라인 신설 등 가격을 낮출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찾았다. 가격보다 최소 2배 이상의 가치를 갖는 제품을 만들어줄 곳을 찾아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루미낙’이라는 고품질 브랜드의 프랑스 ‘아크’사를 찾아가 유리잔을 30센트에 맞춰달라고 해 ‘메이드 인 프랑스’만 표기해 팔기도 했다. 다이소의 목표는 ‘이윤 극대화’가 아니라 ‘고객만족 극대화’다.* 마흔 다섯에 창업전선에 뛰어들다 - 저자는 1980년대 중반에 불어닥쳤던 민주화 열풍에 ‘선의의 피해자’였다. 저자가 다니던 공장에 노조가 결성되고 투쟁과 파업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생산 책임자였던 그에게 모든 책임이 부과됐다. 견디기 힘든 모멸감을 참다 못해 마흔 다섯의 나이에 사표를 썼다. 마침 동생이 하던 일본 해외연수 사업을 돕다가 아성다이소의 전신인 ‘한일맨파워’를 설립하게 된다. 대기업의 일본 연수를 돕는 일이었으나, 일본을 속속 경험하면서 점차 자신이 젊었을 때 꿈꿨던 ‘무역상’의 희망을 되살리게 된다.* 첫 납품 불량에서 얻은 일생의 교훈 - 연수사업과 무역을 병행하다 일본의 한 주류 도매업체로부터 첫 주문을 받았다. 고객 사은품으로 제공할 유리 재떨이 5000개였다. 우여곡절 끝에 납품을 마쳤으나 담배 불에 재떨이가 깨지는 불량이 나왔다. 후공정 열차리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가격만 생각하다가 품질을 마지막까지 체크하지 못한 실수였다. 몇 푼 아끼려다 불량이 나왔고, 그로 인해 전량 폐기라는 결과가 빚어졌다. 첫 거래에서 단단히 신고식을 치른 그는 다시 한번 ‘작은 것 하나하나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작은 실수와 무식함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뼛속 깊이 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열정에는 유효기간이 없다” - 일본에 100엔숍이 생기던 당시, 저자도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당시엔 대부분 주문상품을 한꺼번에 현지 창고에 배달했는데, 저자는 직원을 일본에 상주시켜 직접 통관 후 각 매장까지 일일이 배달해 주었다. 그러면서 주문했던 상품에 문제는 없었는지, 소비자 반응은 어땠는지를 꼼꼼히 체크했다. 사업 시작 후 6개월 정도가 지나자 드디어 단독으로 컨테이너 1대를 채울 만큼의 물량을 확보했다. 자식과 가정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강박감, 더는 물러날 곳이 없다는 절박감, 여기서 실패하면 끝이라는 생각들이 앞에 놓인 일에 초집중하게 만들었다. 그는 “내게 열정이란 간절함이었고, 더는 물러날 곳이 없는 이의 초집중 같은 것이었다”고 회고한다. 그러면서 “간절하기만 하다면, 열정에는 만기도 유효기간도 없다”고 말한다.* 한국 최초의 균일가숍을 구상하다 - 저자는 당시 우리보다 월등히 국민소득이 높은 일본이, 우리 돈 1000원에 불과한 100엔짜리 상품으로 알뜰소비를 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이내 미국 스페인 등에서 이미 균일가 시장이 활성화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일상 소모품은 저렴하고 알뜰하게 구매하는 합리적 실용적 소비문화가 형성된 덕분이었다. 외형이나 자존심보다는 가격 대비 품질과 실속을 훨씬 중시하는 현명한 소비자들이 급증하는 추세였다. 자연스럽게 저자는 우리나라 최초의 균일가숍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어 1992년에 ‘아성산업’을 설립한다. 어머니가 지어준 아성(亞成)은 ‘아시아에서 성공하라’는 뜻이었다. 뒤늦게 창업한 아들이 성공하길 바라는 어머니의 기원과 염려가 담긴 사명이었다.* 야노 회장과의 운명의 만남 - 저자는 한일맨파워 설립 후 1년 정도 후인 1988년에 오사카에서 열린 100엔숍 연합회 행사장에서 야노 히로타케 다이소산교 회장을 처음 만났다. 당시만 해도 일본 다이소는 큰 회사가 아니었다. 야노 회장은 7번의 사업을 실패하고 8번째 좌판부터 다시 시작해 재기 중이었다. 그는 “또다시 실패하면 할복자살하고 말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고 다닐 정도로 지독한 사람이었다. 특히 물건 보는 눈이 까다롭기로 유명했다. 다행히 그의 요청으로 아성산업이 다이소에 물품을 공급하기 시작하면서 일본 다이소도 무섭게 성장한다. 1991년 일본 경제의 거품이 꺼지며 ‘잃어버린 10년’의 장기불황이 시작된 것도 일본 소비자들이 저가 생활용품을 찾는 계기가 되었다.* 독점공급 요청… 헷징으로 선택한 한국 출점 - 다른 업체들이 100엔이라는 판매가에 맞추려 더 싼 제품을 찾아 다닐 때, 저자는 더 좋은 제품을 찾아 세계를 누볐다. 덕분에 품질만큼은 어디에도 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덕분에 야노 회장과의 협업도 25년이나 가능했다. 야노 회장이 견디기 힘든 몹쓸 소리를 할 때도 저자는 ‘언젠가 일본 다이소보다 더 나은 균일가숍을 내겠다’며 스스로를 담금질했다. 다이소산교와 거래를 시작하고 5년쯤 되었을 때부터 야노 회장은 아성 제품을 다이소에 독점 공급해 달라고 요청했다. 배타적 거래를 요구할 만큼 제품력을 믿는다는 얘기였지만, 거래가 깨졌을 때의 리스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최소한의 비상대책이 필요했다. 저자는 헷징책의 하나로 드디어 한국에 균일가숍을 차리는 방안을 찾게 된다.* 조기 성공 한국형 균일가숍 - 1997년 천호동에 문을 연 13평 규모의 아스코이븐프라자가 한국형 균일가숍의 시작이었다. 일본 경험 덕분에 성공 자신감도 컸다. 1호점을 낸 지 4년만인 2001년 초 100호점을 돌파했다. 그 과정에서 야노 회장의 지분투자도 받게 된다. 당초 독점 공급을 요청받았을 때 최소한의 안전 장치로 한국 균일가숍에 대한 지분투자를 요청했던 것이 3년이 지나 성사된 것이다. 다이소산교는 아성산업에 4억 엔을 투자해 34% 지분을 얻었다. 그리고 양 측은 아스코이븐프라자라는 어려운 이름 대신 ‘다이소’ 브랜드를 쓰기로 한다. 나중에 저자는 “100호점이나 낸 브랜드를 다이소로 덜컥 변경한 것은 성급한 판단이었던 것 같다”고 토로한다. 그 만큼 이 이름 때문에 큰 곤욕을 치러야 했다.* “아성다이소는 일본기업이 아닙니다” - 2013년쯤 ‘다케시마 후원기업’이라는 리스트가 돌면서 아성다이소는 일본 국적 기업 논란에 휩싸인다. 논란을 잠재우려 독도사랑운동본부와 후원계약을 맺었더니 이번에는 일본 네티즌들이 들고 일어났다. 저자는 “다이소산교는 단지 전략적 사업 파트너일 뿐”이라고 선을 긋는다. ‘다이소’라는 브랜드명을 사용한 것이 오해를 불렀다고 설명한다. 다이소산교가 지분을 이유로 경영에 참여하거나 매장운영에 관여한 일이 전혀 없다고 항변한다. 브랜드 사용료 지불도 없고, 한국의 ‘아성다이소’에 대한 의장등록도 아성산업이 갖고 있다고 말한다. 주요주주이기에 판매수익금 배당은 있었지만 지금까지 3회 정도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나마 투자를 받은 후 10여 년은 고작 1~2% 이익을 남기다 보니 배당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고 한다.* ‘1000원’을 위한 ‘1000억원’의 투자 - 아성다이소는 2000년 초 100개 안팎이던 매장 수가 2008년에는 500개를 돌파할 정도로 성장을 지속했다. 하지만 물류비용 증가로 영업이익률이 1%대로 떨어졌다. 1000원대 가격 유지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저자는 역발상으로 1200억을 투자해 용인시 남사읍에 연면적 3만 2000평, 축구장 15개 크기의 초대형 최첨단 물류창고를 짓기로 경정한다. 초기엔 애물단지였다. 땅을 파다 바위층이 발견되어 공사기간이 늘어 비용이 추가됐다. 완공 후에는 운영 시스템을 몰라 물류대란까지 야기했고 덕분에 2013년에 26억의 영업손실을 냈다. 실적이 안 좋은 직영점 중심으로 한 대대적인 구조조정 덕분에 가까스로 다시 매출 성장세가 이어졌다. 그리고 4년 후 저자는 2025년까지 물류역량을 확보한다는 목표 아래, 수출까지 고려해 부산에 남사 보다 2배 많은 2500억을 들여 부산 물류허브센터를 추가 건립키로 결정한다. 축구장 20개 크기로 처리물량도 남사의 최대 2배다.* ‘마진’ 보다 ‘업의 본질’에 충실한 역주행 회사 - 아성다이소는 가격을 먼저 정하고 상품을 구현한다. 마진을 생각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기업이 추구하는 방향과는 반대이기에 ‘역주행 기업’이라 불린다. 1997년 첫 매장 오픈 후 연평균 20~30%씩 성장했다. 남사물류센터 완공 이듬해인 2014년에 매출이 1조원을 넘었고 2018년에 2조원, 2021년에는 3조원을 달성했다. 매월 600개 이상의 신상품을 개발하고 전국 1500여 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성공 요인을 균일가 가격정책, 상품개발능력, 물류센터 등으로 흔히 설명하지만 저자는 “‘생활용품 균일가숍’이라는 업의 본질에 충실했던 것이 가장 핵심 성공요인”이라고 말한다. 균일가 사업의 핵심은 상품과 가격이며, 늘 고객을 중심에 놓고 어떤 상품과 가격으로 고객을 만족시킬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한 덕분이라는 것이다.* 일본에 건전지를 반 값에 팔다 - 일본 편의점과 100엔솝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상품 중 하나가 건전지였다. 편의점에서 1개에 100엔, 100엔솝에선 2개 묶음으로 100엔에 팔렸다. 저자는 국산 건전지를 한 묶음에 4개씩 100엔에 팔기로 한다. ‘썬파워’(현재 벡셀)가 처음에는 난색을 표했으나 함께 공장과 현장을 돌며 머리를 맞댄 끝에 단가를 맞췄다. 문제는 품질이었다. 일본 건전지시험연구소에 성능 분석을 의뢰해 보니 대부분 일제보다 수치가 낮았다. 추가 품질 보완을 거쳐 만족스러운 품질을 얻자 곧바로 100만 세트를 발주했다. 한국 건전지가 처음 일본에 수출된 것이다. 일본 소매시장에서는 난리가 났다. 특히 편의점은 직격탄을 맞았다. 하지만 갑자기 폭발 등 석연치 않은 품질 문제가 불거졌다. 특허 소송까지 휘말리며 한 동안 제품 생산이 멈추기도 했다. 그렇지만 지금도 건전지는 다이소의 효자상품으로 제 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상품에 ‘혼’을 담아라 - 소비자들은 균일가와 저가를 동일시한다. ‘저가는 곧 싸구려’라는 인식이다. 저자는 “아성다이소의 모토는 고객에게 놀라운 가치로 감동을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렴한 가격에 신뢰할 수 있는 품질과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뒷받침한다. 늘 “상품에 혼을 담으라”고 강조한다. 상품 하나 하나에 정성을 들여야 원하는 상품이 나오지, 대충 만들면 쓰레기밖에 안된다고 말한다. 집중과 몰입이 없으면, 즉 혼을 불어넣지 않으면 불량품이 나올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한 번도 이 상품을 팔아 얼마를 넘겨야지 하는 생각으로 설계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좋은 물건을 볼 때마다 어떻게 하면 이 상품을 1000원에 팔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철저한 품질관리와 디자인 관리가 그래서 필수다. 특별히 광고도 하지 않는다. 오로지 상품력으로 승부를 건다. 가격 할인이나 끼워 팔기, 판촉 행사도 없다. 그저 입소문이 최고의 광고라고 생각한다. 매장이 곧 광고다.* ‘다이소 팬덤’을 만들어내다 - 다이소 쇼핑의 재미에 푹 빠진 이들을 ‘다이소족’이라고 부른다. 다이소만 보면 무작정 들어가 매장을 배회하는 ‘다이소 증후군’,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다는 ‘다이소 개미지옥’이라는 말도 생겼다. ‘다이소 털이범’이란 커뮤니티도 생겼다. 3000원짜리 미니 세탁기 장난감을 소주와 맥주를 섞어 폭탄주를 만드는 ‘소맥 제조기’로 활용하는 고객도 있다. 어린이를 위한 기획 상품이 창의적으고 능동적인 고객들 덕분에 ‘다이소 팬덤’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다이소 고객의 30%는 20대다. 30대가 25%, 10대와 40대가 각각 20%다. 50대 이상은 5% 정도다. 젊은 세대는 다이소를 ‘탕진잼(탕진과 재미)의 최고 성지’로 받아들인다. 적은 돈으로 맘껏 쇼핑을 즐기며 스트레스를 푼다. 다이소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와 인지도가 가장 높은 MZ세대는 다이소를 ‘굿즈 맛집’으로 여긴다. 다이소는 10대 알파세대의 천국이기도 하다. 용돈으로 구매할 상품이 넘치기 때문이다.* 건설업 외도, 그 실패의 값진 교훈 - 2000년대 초반 물류창고 부지가 개발 계획에 의해 수용되고 대토로 상업용지를 받은 일이 있었다. 그러자 엉뚱한 욕심에, 손 쉽게 돈 버는 주변을 보고는 팔자에도 없는 건설업에 뛰어들었다. 회사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고민하던 차에, 사업 다각화의 대안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시행사를 만들어 아파트를 짓고 직접 분양까지 했으나 결과는 참혹했다. 간신히 분양은 마쳤지만 상가 미분양에는 도리가 없었다. 그 동안 벌어뒀던 돈을 다 까먹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이었다. 저자는 그후 건설 관련 사업은 모두 정리하고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그 단 한번의 외도와 실패를 통해 ‘한 눈 팔지 않고,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는 큰 교훈을 얻게 된다. 이것이 곧 그의 좌우명이 되었다. MA 등으로 몸집을 불리는 것도 경영전략의 하나겠지만, 핵심사명을 한 순간도 잊지 않는 ‘본질 경영’의 중요성을 체득한 큰 계기가 되었다.* 문제도, 해법도 항상 ‘매장’에 있다 - 13년 동안 생산현장의 책임자로 지냈기에 저자는 누구보다 현장의 중요성을 잘 안다. 그래서 늘 현장을 챙기라고 말한다. 상품개발도, 물류배송도 모두 현장에서 이뤄진다는 것이다. 저자는 “현장이 알려주는 사소한 징후나 전조증상을 방치할 때 문제가 일어난다”고 말한다. 때문에 그가 자주 하는 매장 순회는 순회 건강검진과 같다. 그는 매장을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사나운 개가 지키는 주막에는 손님이 없어 술이 시어진다’는 구맹주산(拘猛酒酸) 고사성어를 언급한다. 불친절한 직원, 무관심한 직원이 모두 손님을 몰아낸다는 것이다. 물류센터에 세차시설을 갖춰 무료로 세차하라고 한다. 다이소 브랜드를 달고 다니는 동안은 다이소의 얼굴이니, 늘 깨끗하고 청결하라는 주문이다. 매장도 매일 갈고 닦으라고 채근한다. 상품 진열과 정리정돈, 서비스 등 기본이 잘 지켜지는 매장이 고객이 자주 가고 싶은 매장이라는 것이다.* 상품 1개 불량은 고객에게 100% 불량이다 - 제조업체는 대량생산 과정에서 불량 하나 정도는 으레 나오는 것으로 생각한다. 저자는 “1000원짜리 상품은 있지만 1000원짜리 품질은 없다”고 말한다. ‘싸기 때문에 품질이 나빠도 된다’는 이야기는 통하지 않는다. 구매한 상품 1개가 불량이면 고객에게는 100% 불량이라는 것이다. 비싼 제품이 불량이면 고쳐서 쓰지만, 싼 제품이 불량이면 쓰레기 취급을 받는다고 말한다. 특히 회사 전체의 신뢰를 무너트리는 일이라고 질타한다. 매장은 품질이 고객에게 전달되는 최후 관문이라며, 매일 아침 매장 담당자들이 ‘최후의 품질 검사원’이 되어 철저히 불량품을 골라내라고 독려한다. 저자는 “우리 균일가 업의 철학은 ‘하나’를 파는 것”이라며 “우리는 그 하나가 불량이 되지 않도록 철저히 검사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성비 가심비를 뛰어넘는 ‘체감품질’ - 다이소는 2016년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가성비’와 ‘상품구성’에선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디자인에서 아쉽다는 평가를 받았다. 즉시 저자는 그 해를 ‘디자인 원년’으로 선포하고, 트렌디한 컬러를 보강하고 상품 패키지를 좀 더 직관적으로 디자인하는 변신을 꾀했다. 특히 고객이 모양이나 기능, 사용법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패키지에서부터 감동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디자이너가 상품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며, 상품개발부와 디자인부서를 같은 공간에서 일하도록 했다. 저자는 “품질이란 가성비와 가심비가 모두 충족된 상태”라고 말한다. 패키지 하나에도 고객이 감동할 고객 체감 품질, 고객 감동 품질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추구하는 품질이란 가격에 비해 최소한 2배 이상의 가치를 제공하는 것, 그래서 한번 온 고객이 다시 방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판매품질의 향상이야 말로 아성다이소의 지속가능한 원동력”이라고 자부한다.* “MA 보다는 중기와의 상생협력” - 저자는 고객의 요구와 직원 및 협력업체가 모두 만족할 때 비로소 ‘품질’이 만들어진다고 믿는다. 무엇보다 협력업체와의 상생을 중요시한다. 협력업체가 실수했을 때 거래 중단이 가장 손쉬운 해법이지만, 오히려 머리를 맞대고 문제 핵심을 파악하고 개선 방안을 찾도록 노력한다. 그에게 제조업체는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할 동료이자 파트너’다. 다이소 상품이 저가라 대부분 중국산으로 오해하는 이들이 많지만, 사실은 국내 협력업체 제품이 전체의 70%를 차지한다. 업체당 연평균 거래액이 2017년 기준으로 10억 1000만 원에 이른다. 다이소가 성장할수록 국내 중소기업도 동반성장하는 구조다. 어느 거래처보다 많은 물량을 구매해주고, 창업 이후 변함없이 100% 현금결제해 준다. 거래 국내 제조업체만 900곳이 넘는다. 그래서 아성다이소는 그 흔한 인수합병도 생각하지 않는다. 고마운 중소기업들과 상생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사회적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보이게 일하고 소통하라” - 다이소에선 소통과 협력이 필수다. 앞 뒤 공정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로 보이게 일해야 누구에게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어떤 도움을 주어야 할지 알 수 있다. 저자는 “보이게 일하는 것이야말로 소통과 협력의 시작”이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다이소 본사 사무실에는 파티션이 없다. 회장실과 대표이사실 외엔 임원실도 없다. 회장실도 문이 늘 열려있다. 보이게 일하는 것 다음으로 중요한 것으로 저자는 ‘주변에게 느끼게 일하는 것’을 꼽는다. 서로를 보는 것이 소통의 시작이라면, 상대의 일과 고민을 느끼는 것은 협력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또 직원들에게 “이유를 답으로 말하지 말라”고 말한다. 안 되는 이유는 넘치도록 많기 때문이란다. 이유를 대면서 문제가 생긴 순간을 넘어가려는 것은 일을 안 하겠다는 것과 같다며 책망한다. 그는 “일의 답은 문제해결이고 성과를 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국민가게’, 다음은 ‘가족 복합쇼핑몰’ - ‘국민가게 다이소’는 고객이 지어준 이름이다. 꼭 필요한 생활용품처럼 꼭 필요한 국민가게가 되라는 의미였다. 아성다이소 임직원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고객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행복산업’이라고 믿는다. 힘들어 하는 국민들에게 다이소가 힘이 되어주는 가게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저자가 꿈꾸는 미래의 다이소는 가족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건전한 쇼핑 공간이다. 교외 넓은 매장에서 그동안 개발한 모든 상품을 진열해놓고 마음껏 취향대로 고를 수 있는 즐거움을 선사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동안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상품들도 너무 많고, 무엇보다 나들이의 즐거움과 휴식을 한 번에 해결하면서 온 가족이 함께 쇼핑을 레저처럼 즐길 수 있도록 해 주고 싶단다. 건강하고 기성비 높은 라이프스타일을 가족 모두에게 제공하는 그런 복합공간을 만들어가는 것이 저자의 작은 소망이다.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2022-11-27 11:25 조진래 기자

[비바100] ‘파친코’의 출발점! 이민진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 재출간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이민진 저(사진제공=인플루엔셜)윤여정, 이민호 등의 출연으로 주목받았고 김민하라는 걸출한 신인을 탄생시킨 애플플러스의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는 이민진 작가의 2017년작인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한다. 그 ‘파친코’의 출발점인 이민진 작가의 2007년작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Free Food for Millionaires)이 재출간된다. 절판돼 구하기 어려웠던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은 그의 대표작이 된 ‘파친코’를 비롯해 현재 집필 중인 장편소설 ‘아메리칸 학원’으로 이어질 ‘코리안 디아스포라 3부작’의 출발점이다.199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하고도 로스쿨 진학도, 좋은 일자리 제안도 마다하고 백화점 점원으로 일하는 재미교포 2세 케이시 한을 중심으로 그의 엄마 리아 조, 친구 엘라 심의 이야기다.능력을 증명해도 성별, 피부색, 인종, 학벌 등으로 여전히 차별받는 한국계 미국인 케이시, 자신의 자식들이 의사, 변호사 등 미국 내 엘리트로 자리잡고 한국인과 결혼하길 바라는 전형적인 미국 이민 1세대인 아버지, 케이시의 아버지가 바라는 삶을 살고 있는 친구 엘라, 절망적으로 얽히는 케이시의 엄마 리아 등을 통해 미국인에도 한국인에도 속하지 못하고 여전히 경계에서 서성이는 이들의 고뇌와 아픔을 풀어낸다.여전한 편견과 차별에 따른 절망, 그에 대한 분노,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딸로서의 죄책감 등으로 얼룩진 채 살아가는 케이시, 가부장적인 남편에 순종하는 현모양처였지만 다른 남자의 아이를 유산한 리아, 미국 내 한국인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한국인 남편과 이혼하고 진정한 사랑을 찾는 엘라까지 세 여자의 고군분투를 비롯해 그 주변인들의 삶을 통해 미국 내 빈부격차, 세대 갈등, 문화 차이, 인종차별 등을 다루고 있다.재출간을 앞둔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의 이야기들은 2007년작이지만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으로 아시안 혐오 범죄가 늘면서 더욱 심해진 편견과 차별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불어닥친 K콘텐츠 강풍으로 어디선가는 환영받는 극과 극의 현실에서도 유효하다. 비단 미국 뿐 아니다. 하루 한번씩은 인종차별적인 폭언을 견뎌야 한다는 프랑스 파리에 사는 한국인 파티셰, 폭우로 중지된 칠레 산티아고 에스타디오 모누멘탈에서 열린 K팝 콘서트에서의 한국인 혐오 혹은 조롱 증언들 등 현실은 이방인에게 여전히 냉혹하고 적대적이다. 그럼에도 그에 맞선 한국인들의 고군분투 역시 계속되고 있다. 이민진 작가 역시 출간 당시에는 “사람들이 케이시 한을 불편해 했지만 이제는 그들이 제 시대를 만나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초기작이다 보니 어디로 튈지 모를 시점들, 매끄러운 연결이나 촘촘한 관계성 유지 보다는 순간 상황들을 서술하는 데 충실한 묘사 등이 불편하거나 집중도를 떨어뜨릴 수는 있다. 하지만 탁월한 재능의 소유자이자 젊은 지식인이며 독립적인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 속 케이시는 이제 세월이 흘러 50세 안팎 중년이 됐다. 당시에도 울분을 토했던 그가 맞닥뜨린 2022년의 미국은 어떤 모습일까. 그 상상만으로도, 그런 현실 속에서도 서로를 보듬고 치유하며 깨달아가는 새로운 삶의 방식도 흥미롭다. 그렇게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은 기시감 속에서 혼란스러우면서도 서로를 보듬고 연대하는 2022년 케이시들의 이야기가 된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2-11-24 18:00 허미선 기자

[B그라운드] ‘문학의 정의’ 그리고 ‘한국어 글쓰기’의 확장 이끌 KL웨이브와 디아스포라 웹진 ‘너머’

곽효환 한국문학번역원장(사진제공=한국문학번역원)“문학을 소설, 시, 희곡, 비평, 아동문학 등으로 나누는 건 20세기적 구분입니다. 앞으로의 문학은 문자로 이뤄진 예술 텍스트 모두를 아울러야 하죠. 더불어 한국문학번역원이 해야할 일은 1차원적인 한국문학번역 출판 뿐 아니라 한글로 글쓰기의 확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곽효환 한국문학번역원장이 강조한 문학의 정의 그리고 한국어 글쓰기 확장의 전초기지가 될 한국문학 번역포털 KL웨이브(Korean Literature WAVE)와 디아스포라 웹진 ‘너머’(nomo)가 동시 출범했다.KL WAVE 메인화면(사진제공=한국문학번역원)곽효환 원장은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KL웨이브에 대해 “한국문학 번역 교류에 대한 모든 것”이라며 “한국문학 번역 교류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정책적으로 지원하며 교류나 커뮤니티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작가, 출판사, 언론, 독자 등 자신이 참여하는 부분만 알고 있다”고 밝혔다.“정보 기대치의 해소를 목표로 B2B와 B2C 기능을 겸하고 있습니다. 한국 출판사와 해외 출판사, 에이전시, 지원기관 등이 이 플랫폼을 통해 한국문학 번역 출판에 대한 저작권 정보를 공유하죠. 한국문화번역원이 거래 중인 3000여개를 비롯한 해외 출판사에 한국문학 정보를 바로 확인하고 컨택해 지원 시스템까지 연결될 수 있도록요. 한국문학번역원과 대산문화재단이 가진 500~600개의 해외출판이 안된 원고를 공개해 전세계 어디서든 출판이 가능하도록 할 예정입니다.”KL웨이브를 통해 원스톱으로 해외출판이 이뤄지게 하는 이유에 대해 곽 원장은 “K콘텐츠가 각광받으면서 한국문학 번역에 대한 관심도 많아지고 있다”며 “관심이 계속되고 있지만 한국문학에 어떤 작품이 있고 뭘 어디서 살 수 있는지 모르는 해외 출판사, 누가 어떤 작품에 관심이 있는지 알고 싶은 국내 출판사의 정보 기대치를 해소하기 위해서”라고 털어놓았다.KL웨이브에서는 작가, 작품, 번역에 대한 정보 제공을 비롯해 현지 리뷰, 기사 등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 곽 원장은 “한강 작가의 작품세계, 해외 번역작품 목록, 현지 리뷰, 기사 등을 한눈에, 실시간으로 보여드리려고 기획 중”이라며 “번역가에 대한 정보, 성과 등도 볼 수 있다”고 부연했다.“현재의 KL웨이브에는 저희가 보여드리고 싶은 정보의 30% 정도가 탑재돼 있습니다. 큰틀의 윤곽을 잡은 상태로 3~5년 후에는 한국문학번역에 대한 모든 정보를 여기서 확인하실 수 있도록 할 겁니다.”디아스포라 웹진 ‘너머’ 메인화면(사진제공=한국문학번역원디아스포라 웹진 ‘너머’에 대해서는 “세계 곳곳 어디에나 교포들이 살고 있고 외국인이지만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사람들도 있는, 디아스포라 시대를 살고 있다”며 “그런 시대에 한국어로 글쓰는 이들을 수용하기 위한 장”이라고 밝혔다.“재외동포, 조선족, 고려인, 자이니치 등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타국에 이주해 정착했으나 여전히 한국인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가거나 한국어로 글을 쓰는 작가들, 탈북자, 외국인인데도 한글로 글쓰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죠. 그들을 수용하는 디아스포라 웹진 ‘너머’는 한국어와 한국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 것입니다.”곽효원 원장은 “디지털 시대는 과거와 달리 웹진을 통하면 전세계에서 한글로 글을 쓰고 문학하는 분들을 실시간으로 확인이 가능하다. 그런 이들의 문학활동을 활성화하고 한국문학의 필자와 독자를 늘려갈 계획”이라고 밝혔다.“번역이라는 한축과 한글로 문학하기로 완성될 이것이 궁극적인 신한류죠. 한글로 문학하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해 신한류가 완전히 뿌릴 내릴 있도록 토대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KL웨이브와 ‘너머’ 모두 완성형이 아닌, 독자·필자·출판사 등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같이 만들어나가는 완성 지향형 플랫폼이죠.”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2-11-19 17:00 허미선 기자

[브릿지경제 신간(新刊) 베껴읽기] <지구를 구할 여자들> 카트리네 마르살

이 책의 부제는 ‘유쾌한 페미니스트의 과학기술사 뒤집어 보기’다. 인류 과학기술의 역사에서 여성이 역할을 한 사례들을 매우 디테일 하게 정리했다. 바퀴 달린 여행 가방부터 쇼핑 카트, 전기 자동차, 현대식 보행기 등 인류의 삶을 편하게 만들어 준 발명품에 숨어 있는 여성의 노력과 성과를 담았다. 더불어 남성 중심의 노동시장 구조에서 소외되고 있는 여성의 일자리 문제 등 빠르게 디지털화되어 가는 사회 속에서 겪는 여성들의 깊은 고민이 함께 담겨 있다.* 가방에 ‘바퀴’ 다는데 무려 5000년 - 버나드 섀도우는 가족과 함께 가방 산업에 종사하는 40대 남자였다. US 러기지의 부사장이던 그는 가족과 함께 휴가를 보내고 오던 중 공항에서 직원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바퀴달린 팰릿을 이용해 무거운 기계를 옮기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는 곧 옷장의 바퀴 4개를 떼어 여행가방에 고정해 보았다. 그가 발명 특허를 낸 것은 1972년이었다. 바퀴 가방 아이디어를 상업화해 성공한 첫 인물이었다. 슬로베니아 남부에서 발견된 인류 최초의 바퀴가 5000년만에 실용화된 것이다. 섀도우는 미국의 많은 백화점에 이 제품을 소개했지만 처음에는 모두 거절당했다. 여행 가방은 들고 다니는 것이지, 끌고 다니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내 백화점 체인 ‘메이시스’의 부사장 제리 레비의 눈에 띄었고 이제 바퀴 없는 여행 가방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바퀴 달린 여행 가방 특허는 이미 존재했다. 존 앨런 메이라는 여성이 새도우보다 약 40년 앞서 그런 가방을 팔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도 이 여행 가방은 하나도 팔리지 않았다.* 여행 가방에도 ‘젠더’ 이슈가 있었다 - 저자는 여행 가방이 시장 저항에 부딪힌 것은 ‘젠더’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바퀴 달린 여행가방의 진가를 못 알아 본 것은 당시 ‘남성성’과 맞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진정한 남자는 가방을 직접 든다’라는 무척이나 자의적인 개념이 자리잡았던 것이다. 이런 유치한 생각에 전 세계 산업을 뒤집을 상품의 잠재력을 알아보지 못한 셈이다. 바퀴 달린 여행가방에는 ‘기동성’이라는 여성의 꿈이 담겨 있었다. 여성이 남성 호위 없이 여행하는 게 당연시된 것이다. 하지만 새도우의 초기 모델에도 문제가 있었다. 길이가 긴 쪽 한편에만 바퀴가 달려 불안정했다. 1980년대 초반에야 덴마크 가방 회사 ‘카발렛’이 길이가 짧은 쪽에 바퀴를 달아 문제를 해결했고, 이후 가방 산업의 거인인 ‘샘소나이트’가 원래의 바퀴 위치를 고수한 덕에 이 형태가 표준이 되었다. 그러다 1987년에 미국의 항공기 조종사 로버트 플라스가 현대식 기내용 가방을 발명했다. 그는 섀도우의 가방을 옆으로 돌리고 크기를 줄임으로써 마침내 가방 산업에 혁명을 일으켰다.* 더 많이 담아 팔 수 있었던 ‘쇼핑 카트’ - ‘캐리어’는 현대적 대중관광이 시작된 19세기 말에 처음 등장했다. 혁신적 기술은 가방 맨 위에 달린 손잡이였다. 가방을 한 손으로 들게 된 것이다. 1940년대 영국 신문에서도 바퀴를 가방에 적용한 제품 광고를 찾아볼 수 있지만, 정확히는 ‘휴대용 짐꾼’이라는 도구였다. 바퀴 달린 이 장치를 끈으로 여행 가방에 매달아 가방을 굴릴 수 있었다. 당시에도 여성만이 여행가방을 굴린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섀도우보다 훨씬 이전에 바퀴달린 여행 가방이 제작되었으나 영국 여성을 위한 저렴한 틈새 상품이었고 인기를 끌지 못했다. 여성과 짐의 문제를 깊이 고민하던 실번 골드먼은 1930년대에 자신의 식료품 가게에서 식료품을 사는 사람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데 주목했다. 특히 그들이 장바구니에 담기는 만큼만 상품을 산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는 새도우보다 40년 앞서 바퀴를 떠올렸고 세계 최초의 쇼핑 카트를 개발해 자기 가게에 도입했다. 하지만 많은 남성은 이를 개인적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여전히 카트를 미는 것이 ‘힘 센 남자’답지 못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자동차 최초의 장거리 운전자는 여성 - 1888년 8월 베르타 벤츠는 10대 두 아들과 함께 새벽에 창고에서 남편 카를 벤츠가 만든 ‘말 없는 마차’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그리곤 자신의 어머니가 사는 포르츠하임까지 90km를 번갈아 운전했다. 이것이 4행정 가솔린 엔진과 실린더가 한 개 달린 세계 최초의 자동차였고, 그녀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자동차를 장거리 운행한 사람으로 기록됐다. 로마제국이 여성의 마차 이용을 금지함으로써 교통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때부터 여성은 향락적이며 따라서 차량을 운전할 능력이 없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으나 그녀가 그런 편견을 깬 것이다. 이 차는 출력이 0.75마력 정도였지만 시속 16km의 속도로 달렸다. 도중에 제동장치가 닳아버리는 바람에 신발공에게 부탁해 급히 제동장치에 가죽을 덧댐으로써 세계 최초의 브레이크 패드까지 발명하게 된다. 벤츠는 독일보다 프랑스에서 더 인기가 많았다. 이후 뮌헨에서 열린 독일제국 기술박람회에서 돌풍을 일으켰고 이후 상업적 생산이 본격화된다.* 전기차는 애초부터 숙녀용? - 자동차 주문 제작 당시만 해도 3분의 1 차량이 전기를 이용했다. 미국은 그 비율이 더 높았다. 휘발유 자동차는 시동 걸기도 힘들고 소음도 컸다. 때문에 휘발유차는 모험가 남성의 차로 인식되었고, 운전석에서 시동을 걸 수 있고 조용하고 관리도 쉬운 전기차가 더 여성에게 맞는 차라는 인식이 커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휘발유차가 속도를 따라잡았고, 전기차는 더 느리고 안정적인 선택지가 되었다. 1990년 즈음에는 전기차보다 휘발유차가 더 빨리 가속되고 브레이크도 더 안전했다. 전기차는 배터리 문제로 그리 멀리까지 달리지 못했다. 그래서 더더욱 여성에게 적합하다고 여겨졌다. 획기적인 ‘모델 T’로 자동차 대중화를 연 자동차 왕 헨리 포드도 아내에게 전기차를 사 줄 정도였다. 갈수록 전기차는 여성을 염두에 두고 개발되었다. 천장이 달린 최초의 자동차도 전기차였다. 비를 피하고 머리 모양을 온전히 유지하고 싶어하는 여성들의 욕구를 만족시켰다. 그래서 ‘숙녀용 차’라고 불렸다. 일론 머스크가 전기차를 대중화하기 전까지 전기차는 더 이상 남자다워지지 않았다.* 첫 상업적 전기차 만든 ‘캐딜락’ - 헨리 릴런드는 1900년대 초반 럭셔리 휘발유차인 캐딜락 모터 컴퍼니의 CEO였다. 그는 어느 날 절친인 바이런 카터와 차를 타고 가다가 길에서 휘발유차 시동을 걸지 못하는 여성을 도와주게 된다. 하지만 크랭크가 거꾸로 돌면서 턱을 치는 바람에 친구는 사망하게 된다. 릴런드는 이에 크랭크 없이 운전석에서 안전하게 시동을 걸 수 있는 전기차 시동장치 개발에 성공한다. 1912년 마침내 캐달락은 세계 최초로 전기 시동장치와 전등을 정착한 전기차 모델 3.0을 선보였다. 새 시동 장치는 계기판이나 바닥의 버튼 또는 페달로 작동할 수 있었다. 캐딜락은 모든 모델에 전기 시동장치를 도입했고 많은 회사들이 뒤를 따랐다. 당시 엔지니어였던 찰스 F. 케터링이 발전기 기능을 겸한 전기 시동장치를 개발한 덕분이었다. 휘발유차의 이점과 전기차의 편안함이 더해진 이 모델을 계기로 휘발유차에는 전기장치가 점점 더 많아졌다. 이런 변화는 운전을 상류층의 사치스러운 취미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활동으로 탈바꿈시켰다. 남성과 여성의 경계를 재설정하면서 모두를 위한 새로운 시장이 만들어 졌다.* 여성에게 움직임의 자유를 안겨준 ‘라텍스 거들’ - 에이브럼 스파넬은 라텍스 제품을 생산하고 있었다. 여성의 몸을 모래시계 형태로 조여주는 ‘라텍스 거들’은 여성의 몸을 날씬하게 만들어 줄 뿐아니라 몸을 굽혀 신발 끈을 묶을 수 있게도 해 주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1941년 12월 일본군이 고무 주산지인 영국령 말라야를 침공하자 미국이 합성고무 생산을 늘리기 시작했고, 스파넬은 미 해병대에 구명정과 미 공군용 헬멧을 제조하기에 이른다. 이후 그는 자신의 회사 ILC에서 거들을 생산하던 조직을 ‘플라이텍스’로 바꾸고 거들과 브래지어를 생산해 더 큰 성공을 거둔다. 플레이텍스는 여성 속옷과 동의어가 되었다. 미국과 소련의 달 탐사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이번에는 우주복 개발사업에 뛰어든다. 달의 밝은 쪽 온도는 섭씨 120도, 어두운 쪽은 영하 170도까지 떨어지기에 특수한 옷이 필요했다. NASA의 경쟁 입찰에서 ILC는 여성 재봉사들이 손으로 직접 기워 만든 부드러운 우주복으로 최종 사업자에 선정됐다. 우주복 한 벌을 만들려면 4000개의 천을 21겹으로 겹쳐야 했고, 특히 우주복에 핀을 꽂으면 아무리 작은 구멍이라도 치명적이었기에 ILC의 우주복은 기적과 같았다. 나사는 지금도 재봉사를 고용하고 있다고 한다.* 세계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래머는 ‘여성’ - 컴퓨터는 당초에 여성에게 적합하다고 여겨진 극소수의 과학 관련 직업 중 하나였다. 처음부터 지위가 무척 낮은 직업이었다. 8~10시간 동안 자리에 앉아 같은 계산을 반복해야 했다. 19세기가 시작할 무렵까지는 젊은 남성들의 전유물이었으나 이내 고용주들은 남성 대신 여성을 고용하면 절반으로 비용을 절약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대단한 지성이 필요하지도 않다고 여겼다. 1900년대에 점점 더 많은 여상이 주직에 나서면서 컴퓨터 산업은 더욱 여성 중심적으로 변해 갔다. 암호 해독 같은 일은 앨런 튜닝 같은 천재적인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다 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폴란드 수학자 마리안 레예프스키가 독일의 ‘에니그마 암호’를 푸는 데 성공한다. 전쟁 때 거대한 암호 해독기를 작동하는 사람도 주로 여성이었다. 이들 엔지니어는 결국 세계 최초로 프로그래밍 가능한 전자 컴퓨터를 개발했고. 이들은 세계 최초의 프로그래머가 되었다. 그후로도 오랫동안 프로그래밍은 지시를 따를 능력만 있으면 되는 직업으로 여겨졌다. 그것 역시 여성이 잘하는 일이었고, 사회는 그런 ‘저숙련’ 노동을 하는 여성들에게 임금을 적게 주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실리콘밸리가 영국에 없는 이유 - 1960년대 중반 쯤부터 프로그래밍 산업이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곧 남성들이 컴퓨터에 관심을 갖게 장려하는 제도가 공식화된다. 이미 프로그래밍 방법을 알던 여성들은 자기 상사가 될 젊은 남성들을 교육하는 일을 맡게 된다. 승진 기회가 주어지지 않게 되자 여성들은 이 산업에서 우르르 떠나기 시작했다. 영국의 젊은 사업가 스태퍼니 셜리는 이를 사업기회로 삼아 1964년에 여성 프로그래머에게 재택 근무 기회를 주는 ‘프리랜스 프로그래머’를 세워 기업용 소프트웨어를 만들기 시작한다. 1990년 상장 때 이 회사 기업가치는 23억 파운드에 달했다. 젊은 남성들은 컴퓨터 작업에 별 관심이 없었다. 영국 정부도 젊은 남성에게 대한 투자를 늘렸다. 1980년대 중반부터 컴퓨터 종사 여성은 전 세계적으로 감소하기 시작했다. 프로그래밍은 남성 중심의 지위 높은 고임금 분야로 변했다. 2017년 한 구글 엔지니어는 “여성은 원래 IT업계와 적합하지 않다”는 메모를 작성했다가 해고되는 등 이 분야의 여성 편견은 여전하다. 저자는 “기술과 여성이 양 극단에 있다는 오해를 하고 있다”고 일침 한다.* 현대식 보행기, 여성에 불리한 금융 여건 - 아이나 비팔크는 스웨덴 간호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안된 21살에 소아마비에 걸렸다. 간호사 대신 병원의 정형외과 병동에서 상담사로 일하게 된 그녀는 41세 되던 해 디자이너인 군나르 에크만에게 ‘바퀴 달린 보행 보조기’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바퀴 네 개와 손잡이, 브레이크, 그리고 물건 올릴 선반과 함께 접어 차에 실을 수 있게 해 달라고 주문했다. 첫 현대식 보행기였다. 그전에도 유사한 보행 보조기 특허가 여럿 있었지만 그녀의 발명품은 전 세계 수많은 노인들에게 전에 없던 새로운 자유를 안겨주었다. 현재 전 세계 보행 보조기 시장 규모는 약 22억 달러에 이른다. 그는 보행기로 벌어들인 돈을 스페인 코스타의 한 스웨덴 교회에 기부했다. 특허도 내지 않았다. 현 시세로 약 750파운드의 돈과 특정 제조사의 판매량에 2%의 로열티를 받기로 했다. 저자는 “지금까지도 금융 시스템은 조직적으로 여성의 아이디어를 배제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현재 여성 사업체의 약 80%가 필요한 신용 대출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영원한 신용경색’ 속에 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극단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 - 많은 여성이 미용실과 카페. 탁아소 같은 덜 진지하다고 여겨지는 사업을 시작하면서 종종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큰 돈이 필요한 경우 더더욱 그렇다. 투자나 보증 받는 사람은 보통 여성이 아니며, 만약 여성이라도 백인이 대부분이다. 과거 고래잡이는 투자 위험은 크지만 수익성이 꽤 높았다. 막대한 이익이 날 가능성을 보고 태어난 사업이 바로 벤처 캐피탈이었다. 현대에 와서는 실리콘밸리가 그 전형이다. 테크 사업가와 벤처 투자자 간 동맹은 오늘날 디지털 경제의 핵심이 되어 세상을 바꿔 놓았다. 투자자들은 페이스북 같은 무시무시한 성장 잠재력을 원한다. 하지만 오늘날 영국에서는 벤처 캐피탈 자금의 1% 미만이 여성 창업 스타트업으로 흘러 든다. 2019년 스웨덴의 벤처 캐피탈에서도 1%가 겨우 넘는 금액이 여성 창업회사에 투자되었다. 유럽연합의 다른 국가들에서도 창업자가 모두 남성인 테크 기업이 벤처 캐피탈 자금의 93%를 가져간다. 미국에서는 벤처 자금의 3% 미만이 여성 창업 기업에 돌아간다. 미국에 있는 사업체 중 거의 40%가 여성 소유라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충격적이다.* 인플루언서 등의 ‘화려한 노동’ - 스무살의 카일리 제너는 세 가지 색조의 립스틱과 립스틱 키트로 대박을 치고 회사를 6억 달러에 매각했다. 2018년 포브스는 그녀를 세계 최연소 자수성가형 억만장자로 선정했다. 2010년대는 소셜 미디어로 여성이 지배하는 경제를 탄생시켰다. 그 10년 동안 전문 블로거와 엄마 사업가, 인플루언서, 인스타그램 스타들이 여성의 사업적 성공을 이뤘다. 많은 여성이 ‘프로슈머’가 되어 자기 회사를 차렸다. 인플루언서와 인스타그램 사용자들이 프로슈머였다. 여기에 기술 발전으로 집에서 회사를 설립운영하는 게 쉬워져 여성 사업가가 더 늘어났다. 저자는 여전히 애플이나 구글 같은 주요 테크 기업들의 여성 직원 수는 충격적일 만큼 적지만, 그래도 많은 경제가 점점 더 소비 중심으로 바뀌면서 여성화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화려한 노동(Glamour labour)’은 2010년대에 여성 인플루언서들이 개척한 노동 유형을 가리키는 용어가 되었다. 화장과 스타일링, 운동, 눈썹 문신, 그 외 신체적 자아를 가상의 자아와 어울리게 만들려는 노력이 이러한 노동에 속한다. 소비자 권력도 생겨났다. 여성이 실제로 소유한 최초의 경제권력 중 하나였다.* 체스는 이겨도 청소는 못하는 인공지능(AI) - 인간을 닮은 기계를 발명하려 할 때 인간의 신체는 종종 무시된다. 문제는 우리의 ‘젠더’ 관념에서 비롯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대개 정신을 남성적인 것으로, 신체를 여성적인 것으로 상정한다는 것이다. 1997년 체스 챔피언 카스파로프를 패배시켰던 IBM의 슈퍼컴퓨터 ‘딥 블루’의 가격은 무려 1000만 달러였다. 지금은 그런 앱을 스마트폰에서 다운받는다. 기계에게 고등수학과 체스를 가르치기는 무척 쉽지만 운동은 어렵다. AI는 사고능력은 훌륭하지만 손가락을 움직이는데 서툴다. 인간은 20만 년 동안 예측 불가능한 환경을 본능적으로 쉽게 처리해 가며 생존해 왔다. 기계에는 이런 이점이 없다. 공장 일은 로봇이 인간에게서 가장 쉽게 빼앗을 수 있는 일이었다. 이제 기계가 복잡한 의학적 진단을 내릴 수 있을 만큼 큰 발전이 이뤄졌지만, 로봇은 여전히 일상적인 일을 제대로 못한다. 저자는 생각하는 기계를 만들 때 우리는 그 기계를 남자에 맞춰 만들었다며, 인공지능 분야에서 여성이 더 많았더라면 많은 것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한다. 오로지 이성적인 사고만이 세계를 돌아가게 한다고 믿는 잘못된 젠더 관념이 문제였다는 것이다.* ‘제2의 기계 시대’에는 젠더 이슈를 - 우리는 제2의 기계 시대를 살고 있다. 이 시대는 트럭 운전사와 패스트푸드 점원 뿐아니라 변리사나 경영 컨설턴트까지 사라지게 만들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경제는 세 집단으로 나뉠 예정이다. 엘리트 집단은 이미 엄청난 부자들로 기술 발전의 결과 덕문에 더욱 부유해질 것이다. 그 밑의 집단은 엘리트들에게 다양한 개인 서비스를 팔면서 생계를 꾸리는 사람들이다. 마지막은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사람들이다. 유발 하라리는 이 집단을 ‘쓸모 없는 계층’이라고 했다. 저자는 “제2의 기계 시대는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규모의 대량 실업을 일으킬 것”이라며 여성의 관점에서 이 시대를 봐야 할 이유라고 말한다. 사회의 기술적 변화를 제대로 다루지 않으면 수많은 삶이 파괴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로봇이 노동시장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주제로 컨퍼런스가 열리지만, 보통 젠더 이슈는 끼지 못한다. 젠더 관념이 노동 시장 조직방식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데도. 저자는 “여성과 남성이 하는 일이 다른 것이 오늘날 경제의 작동 방식”이라며 “오늘날 여성은 주로 여성과 일하고 남성은 남성과 주로 일한다고 지적한다. 일반적으로 여성은 서비스 부문에서 남성은 주로 제조부문에서 일하는데 이것이 2020년의 코로나 펜데믹으로 여성이 심각하고 빠르게 타격을 입은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한다.* AI가 일자리 빼앗는 미래를 막으려면 - 저자는 경제를 돌아가게 하는 것은 인류의 근력과 이성적 사고력 뿐만아니라 보이지 않는 ‘관계 경제’와 ‘돌봄 경제’ 같은 소프트한 부분이 많지만 사람들이 대부분 그것을 여성적인 것으로 여긴다고 꼬집는다. 그는 돌봄과 감정, 관계에 로봇이 서툴기에 인간이 특화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분야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러면서 기계의 능력이 미치지 못할 세 분야를 예시한다. 인간이 망설임 없이 행하는 여러 신체 행위, 인간의 창의력, 그리고 감정 지능이 필요한 업무다. 그런 관점에서 간호사와 유치원 교사, 정신과 의사, 사회복지사를 대체할 기계는 조만간 등장하지 않을 것이라 예측했다. 또 여성 보다 남성 중심 산업이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길 가능성이 더 높다며 두 가지 해법을 제시했다. 지금보다 훨씬 많은 여성이 남성 중심 산업의 일자리에 도전하는 것, 그리고 여러 직업을 평가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1차 기계 시대에 영국이 기술 혁명 방해꾼들을 무력으로 제거했다면, 2차 기계 시대에는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고 창조성과 인간관계를 북돋는데 더욱 전념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기계를 과대평가하기 보다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한 탓에 로봇이 일자리를 전부 훔쳐 갈 것이라고 너무 쉽게 믿었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어쩌면 로봇 신기술은 우리 인간성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더 인간적으로 만들어줄 잠재력이 있다”고 말한다.* 여성을 무시 말아야 미래가 있다 - 16세기 말 유럽에서 기상 이변 피해의 책임을 묻는 ‘마녀사냥’이 있었다. 17세기 초까지 거의 100만 명이 처형을 당했다. 희생자는 대부분 가난하거나 남편을 여윈 여성들이었다. 저자는 기후변화가 지금도 가장 심각한 혁신이 문제이자 여러 젠더 관념과 얽힌 문제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기후 변화를 부정하는 남성 대다수가 기후 운동의 유명한 여성들을 경멸한다. 이는 ‘이성애자 백인 남성성’이라는 자신들의 브랜드가 지배하던 화석 연료 기반의 현대 산업 사회를 기후 운동이 위협하고 있다는 인식과 관련이 깊다. 이들은 화석연료가 사라지면 남성성도 같이 사라진다고 생각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는 “여전히 자연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우리의 여성성과 남성성 개념에 얽혀 있다”며 우리 삶의 방식을 발명하는 동시에 개혁할 것을 강조한다. 저자는 우리가 기술적 존재인 동시에 자연적 존재이며, 앞으로 이 두 가지를 통합하는 것이 우리 핵심 과제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기술의 역사에 여성이 가진 도구를 포함하면, 여성 혹은 여성을 상징하는 것을 더 이상 무시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서사 전체가 달라지게 될 것이라고 확언한다. ‘발명의 어머니’가 돌아올 시간이라며, 여성성·남성성이라는 성별 고정관념 때문에 발명 자체가 늦어졌던 과오를 되풀이해선 안된다고 강조한다.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2022-11-19 09:00 조진래 기자

강병철, 새 시집 ‘다시 한판 붙자’ 출간

한 평생을 ‘국어 교사’이자 작가로 살아온 ‘교사시인’ 강병철이 교단을 떠난 후 유년시절의 ‘추억’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당대 시대의 배경과 함께 담아낸 시집 ‘다시 한판 붙자’(말벗)‘를 최근 펴냈다.강 시인의 이번 시집 다시 한판 붙자는 고향 충남 서산과 사춘기 서울 유학 시절을 살아냈던 ‘사람들’과 그에 얽힌 신산하고 서해 낙조 같은 아스라한 추억이 주요한 바탕이 되고 있다. 특히 고향은 이 시집의 중요한 사건적 정서적 배경이 되고 있다.저자는 고향의 풍경에 대해 “서해안 바닷가에서 유년을 보냈다. 떡갈나무 언덕을 넘자마자 푸른 물결과 개펄이 번갈아 나타나던 그 자리이다”라고 묘사했다.이어 “새우젓 배 타는 어부들은 드물었고 대부분 고샅에 허리 굽힌 채 농사를 짓던 그 마을이다. 나는 백사장에서 씨름판 벌이던 벗들이 오구르르 떠나면 혼자 남아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며 저물녘까지 먹하니 앉아있었다”며 “그리고 건너편 격렬비열도 어디쯤에서 맞은편 소년을 바라보는 또 다른 눈동자를 떠올리곤 했다”고 적었다.이 같은 고향에 대한 저자의 기억과 그 공간에서 신산한 삶을 살아낸 이웃들의 기억은 이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이자 시선이다. 누구에게나 고향과 추억, 유년시절은 평생의 정서적 재산이 되지만 수줍음 많고 눈 맑고 감수성 풍부한 저자에게는 당시 군부독재의 정치적 억압, 인권·사회적 후진성, 경제적 빈곤과 뒤섞여 신산한 삶을 살아내는 이들에 대한 연민과 애정이 시선이 오롯이 담겨있는 살아있는 과거다. 그래서 이 시집은 우리 선조들에 대한 존경을 담은 ‘헌시’이기도 하다.저자는 이번 시집에서 살아있는 과거를 시에 담아내며 ‘이야기시’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역사성을 띤 인물과 구어와 사투리를 잘 살린 산문적인 문체, 형식에 매이지 않는 시 구성으로 인생을 따스한 시선으로 관조하며 이야기시로서의 완성도를 높였다.하지만 시집 다시 한판 붙자에 나오는 사람들은 단지 저자의 자기 이야기의 추억 속 인물에만 그치는 것이 아닌 경제·사회·역사적 맥락 속에서 갈등하고 부딪치는 문학평론가 최두석이 설파한 리얼리즘시론의 당대의 전형성을 획득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시집을 읽고 나면 군부독재의 폭압과 가난, 인권적 억압을 겪으며 헤쳐 온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 누이들의 모습을 신산하지만 따스하게 만날 수 있다.이영숙 문학평론가(시인)은 “나고 자라 현재까지 경험한 이야기가 시적 대상이 되다 보니 자기 이야기 속에는 ‘자기’가 직간접적으로 겪은 남의 이야기가 더 많이 자리하게 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이어 “스승 김종철이 말한 ‘자기 이야기’란 강병철이 순간을 미학적 관점으로 접근하는 객관적 서정보다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신과 연계되는 주관적 서사에 더 치중했다는 의미를 포괄한다”고 말했다.이영숙 평론가는 “강병철은 자신의 어머니를 포함해 여성이 겪은 부당한 생의 차별과 질곡을 그려내면서도 직접적으로 인습이나 제도를 비판하지 않는다”며 “시적 대상을 선악으로 가르지 않으며, 누구의 편을 들지도 않는다”고 덧붙였다.이 평론가의 이 같은 해설은 저자가 부조리한 제도로 억압받고 불의에 의해 탄압받은 이들을 시속에서 그저 ‘보여줌으로써’ 연민의 시선으로 옹호하면서도 억압 세력을 목소리 높여 적나라하게 비판하지 않으면서 선악의 이분법을 조심스레 피해간다는 설명이다.이 평론가는 “유의미한 가치가 있는 어떤 이야기만이 문학의 범주에 들 수 있다. 한국전쟁 직후 태어나 빈곤과 독재, 5·18이라는 전대미문의 폭력과 광기, 신자유주의라는 미증유를 고루 경험하고 근래 일선에서 물러난 시인에게 유의미한 가치란 무엇일까”라며 “강병철이 시집에서 보여주듯 순진무구했던 유년기와 이웃의 아픔을 머금은 개인사, 사건과 사고를 내포한 사회사, 역사적 진실이라는 시대성 같은 것이 아닐까”라고 설명했다.이 시집은 1부 가슴둘레 검사, 2부 아부지 꿈, 3부 취한 스승과 취한 제자, 4부 소년공에게 등 모두 4부로 구성돼 있다.작가 강병철은 현재 간척지가 된 서해안의 바닷가에서 태어났으며 열세 살부터 서울 유학 생활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유년일기, 하이에나는 썩은 고기를 찾는다, 꽃이 눈물이다, 호모중딩사피엔스, 사랑해요 바보몽땅 등을 발간했다.소설집으로는 비늘눈, 엄마의 장롱, 초뻬이는 죽었다, 나팔꽃 등이 있으며 성장소설로 닭니, 꽃 피는 부지깽이, 토메이토와 포테이토가 있다. 산문집으로 선생님 울지 마세요, 쓰뭉 선생의 좌충우돌기, 선생님이 먼저 때렸는데요, 우리들의 일그러진 성적표 등을 냈다. 2001~2010년 청소년 잡지 미루의 발행인을 역임하기도 했다. 현재는 36년 국어교사 생활을 정년 퇴임한 이후 폭풍 집필 중이다.이원배 기자 lwb21@viva100.com

2022-11-18 17:09 이원배 기자

[비바100] 청어, 후추, 굴이 그려진 그림을 보면 '경제'가 보인다고?

그림으로 배우는 경제사 부의 절대 법칙을 탄생시킨 유럽의 결정적 순간 29|이강희 |1만8500원. (사진제공=인물과사상사)코로나 19로 인해 인구가 감소하고 현물이 아닌 코인이 거래되는 세상이다. 다독가라면 튤립 버블과 후추가 부의 흐름을 바꿨고 경제에 관심이 높다면 메디치 가문 정도는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20년 가까이 금융계에 몸담고 있는 저자 이강희는 ‘그림으로 배우는 경제사’를 통해 드러나 있는 ‘부의 법칙’에 집중한다. 무엇보다 이 책의 재미는 그 이면에 세계경제를 움직인 ‘알맹이’에 있다.저자는 “부의 법칙을 알고 준비한 15세기 메디치가, 19세기 로스차일드가가 부를 거머쥘 수 있었던 것도 누구보다 재빠르게 그것을 먼저 포착했기 때문”이라면서 역사가 가진 부의 반복을 강조한다.실제로 17세기 네덜란드 경제를 파탄 직전까지 몰고 갔던 튤립 버블은 2018년 금융 버블과 닮았다. 19세기 중국과 영국의 무역 수지의 불균형에서 초래된 아편전쟁은 오늘날 세계 여러 나라가 벌이는 협상 테이블을 떠올리게 한다. 또 영국의 청교도혁명과 명예혁명은 ‘과세’, 즉 세금 문제를 둘러싼 지배층 간의 이해관계에서 시작했는데 이는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부자 감세에 대한 비판이 연상된다. 1부에는 ‘부의 지도를 그린 재화’에 대한 소개가 담겨있다. 유럽 귀족들이 열광했던 굴은 루이 14세가 즐겨먹던 음식이다. 20년간 베르사유 궁전을 짓느라 국고를 탕진했던 무능한 왕이었지만 중상주의를 펼치며 국부를 성장시킨 그의 눈에 들기 위해 신선한 굴의 확보는 곧 충성 맹세나 다름없었다. 날 것을 즐기지 않는 유럽사람들 중 프랑스는 유독 굴에 열광하는데 이 책에서는 그 배경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소개하며 가독성을 높인다. 150년 전까지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스위스가 용병으로 이름을 떨친 배경도 흥미롭다. 식량을 생산하기 어려운 자연환경은 그들의 노동력을 토지를 약탈하는 영주들에게 제공함으로써 가족과 조국을 지키는데 충성하게 만들었던 것.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걸었던 그들의 용맹함은 신뢰의 상징으로 자리잡았고 교황청 근위대는 스위스 용벙에게만 맡기는 전통이 생겨났다.혹자는 이런 내용들에 불멸의 인기만화인 ‘먼나라 이웃나라’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림으로 배우는 경제사’에는 명화들이 대거 등장한다는 차별점을 가지고 있다. 하네스 페르메이르의 ‘델프트의 풍경’과 당시 네덜란드에 막대한 부를 안겨준 청어를 연결지어 소개하는 식이다. 이 그림에 그려진 배는 당시 청어 조업에 나갔던 ‘부스’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네덜란드는 청어산업 덕분에 북유럽을 넘어 유럽 경제의 패권국가로 군림하게 된다. 존 에버렛 밀레이가 그린 유명한 ‘오필리아’는 19세기 런던 예술가들의 뮤즈였던 엘리자베스 시달이 모델이었으나 젊은 나이에 아편 중독으로 세상을 뜬 비극을 아우른다. 가난한 무명화가 였던 로세티를 사랑했지만 그가 유명해지면서 여러 추문에 얽히자 당시 진통제로 쉽게 처방되던 아편으로 아픔을 달래다 결국 과다복용으로 죽게된 이 사건은 신사의 나라 영국이 가장 더러운 전쟁에 개입하게 된 사회적 배경을 극명하게 설명한다. 중국에서 차를 사들이며 은으로 지불하던 영국이 무역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인도산 아편을 밀매하게되면서 드러난 서구 열강의 발톱은 홍콩식 자본주의로 이어지는 점도 흥미롭다. 역사는 무수히 반복된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부터 오늘날 가상자산의 등장까지 지금의 유럽 경제를 만든 다양한 사건이 ‘그림으로 배우는 경제사’에 담겼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2022-11-17 18:00 이희승 기자

[브릿지경제 신간(新刊) 베껴읽기] <헌법의 자리> 박한철

제5대 헌법재판소장을 지낸 저자의 헌법과 헌법재판소, 그리고 헌법재판에 관한 기록이다. ‘시민을 위한 헌법 수업’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일반인들에게 헌법과 헌법의 가치 그리고 그것이 적용된 헌재 판결 내용을 소개함으로써 헌법에 관한 이해를 돕고자 쓴 책이다. 대한민국 헌정사 최초 정당 해산부터 두 차례 대통령 탄핵, 낙태죄 사건까지 주요 사건들의 행시 논쟁점과 헌재 판단의 근거를 소상하게 적었다. 무명무실해진 국회선진화법 사례 등을 통해 우리 정치권에 대한 아픈 비판과 충고도 곳곳에 담았다.* “헌법은 정치 세력간 타협의 산물” - 저자는 헌법이 태생적으로 미래의 정치질서를 대상으로 하기에 그 개념이 추상적일 수 밖에 없어 개방적이고, 사회 구성원이 대화와 타협을 통해 구체화하기 때문에 역동적이고 형식적이라는 의미에서 정치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치적 규범인 헌법을 심사 기준으로 삼기에 헌재의 판단은 본질적으로 정치적 성격을 띨 수 밖에 없고, 헌법재판소의 최종 판단이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다 해도, 심사 기준이 법규범으로서의 헌법이라는 점에서 헌법재판은 법적 판단이며 궁극적으로 사법 가능에 해당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우리 헌법재판소가 헌법 해석을 통해 최종적 가치판단과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분쟁을 종국적으로 해결하고 사회통합에 기여해 왔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치의 과도한 사법화 현상에 따른 부담 증가와 이로 인한 문제점도 지적되고 있다고 토로한다.* 헌법적 가치질서 침해를 막는 헌법재판 - 헌법은 기본적으로 ‘정치적 통일을 형성하고 국가적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지도 원리를 규정하고 있는 국가의 법적 기본질서’다. 무엇보다 헌법은 권력을 제한하고 합리화하는 것, 자유로운 정치적 생활과정을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한 나라의 최고가치로 존중되어야 할 최고 규범이라는 얘기다. 헌법은 그 자체가 목적적 규범이 아니라 국민 생활의 안정과 기본권 보호라는 지극히 중요하고 현실적인 목적을 지닌 생활규범이다. 저자는 “역사적 경험에 비춰볼 때, 국가권력의 남용에 의한 기본권 침해와 헌법적 가치질서의 붕괴가 문제”라며 “국가권력의 남용, 즉 통치권과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이 과잉행사로 헌법적 가치질서가 침해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제도적 수단이 헌법재판”이라고 강조한다. 우리 헌법재판소도 헌법 제6장에 근거해 1988년에 설치된 헌법기관으로, 헌법 적용에 있어 독점적 결정권한을 갖는 사법 재판기관이다.* 헌재의 역할은 사회통합의 나침반 - 저자는 자본주의 한국사회에서 다양한 사회갈등이 심화되고 있음에도 국회와 정치권이 손을 높은 채 경쟁적 포퓰리즘과 편 가르기 극단적 대결로 ‘정치 실종 시대’를 맞았다고 비판한다. 이에 문제와 갈등을 극단적 파행 상태로 만들고, 모든 것을 헌법재판소와 사법 영역에 떠맡기는 ‘정치의 과도한 사법화 현상’이 초래되었다고 지적한다. 결국 사법에 대한 국민 신뢰가 저하되고, 헌법 시스템의 악화와 훼손, 국가 공동체 위기라는 악순환이 발생할 가능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꼬집는다. 이런 상황에서 헌법재판소는 헌법이 지향하는 가치를 철저히 구현해 갈등을 최종적으로 조정하고 해결해 사회통합에 기여해야 강조한다. 보다 적극적인 헌법 해석을 통해 헌법이 갈등 해결의 수단이자 목표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고, 단계적 가치판단에 있어 헌법을 준거의 틀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통합의 나침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종적 가치판단 기관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해 미래지향적 파단을 해야 할 것이란 얘기다.* 제대 군인 가산점 제도(1999.12.23) - 제대 군인에게 6급 이하 공무원 채용 때 과목별 득점에 만점의 5%(2년 이상 복무) 또는 3%(2년 미만 복무) 가산점을 주는 것이 여성이나 신체장애인의 평등권과 공무담임권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위헌 결정한 사건이다. 헌재는 1961년부터 40년 가까이 시행된 이 제도가 아무런 재정적 뒷받침 없이 제대군인을 지원하려다 결과적으로 사회적 약자들의 희생을 초래했으며, 특히 ‘여성과 장애인에 대한 차별금지와 보호’에도 저촉된다고 판단했다. 제도 폐지는 여성 고용정책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여성과 장애인이 공직사회에 적극 진출할 기회를 제공하는 계기도 되었다. 7급 여성 합격자 비율이 1995년 1.5%에서 2015년에는 37.4%까지 상승했다. 7.9급 공무원을 시작으로 외교관 법조인 등 다른 공직에 진입하는 비율도 크게 늘었다. 여성 공무원 비율은 50%에 육박하며 양성평등의 새 문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다. * 수도이전 사건(2004.10.21) - 서울시 공무원 등이 “국회가 헌법 개정 절차도 없이 신행정수도 관련 특별조치법을 만들어 수도 이전을 추진했다”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노무현 정부가 신행정수도를 충청권에 건설해 대한민국 수도를 이전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이 법에 위헌결정을 내렸다. 서울이 수도라는 것은 ‘불문의 관습헌법’이므로 국민투표를 거쳐야 하는 ‘헌법 개정’이 없는 한 헌법으로서 효력을 갖는데, 신행정수도법은 ‘법률 제정’ 형태이므로 국민의 국민투표권을 침해한 것이라 판단했다. 서울이 수도라는 점은 ‘관습헌법으로 성립된 불문헌법’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반사이익을 기대했던 충청권 반발이 거셌다. ‘관습헌법’을 둘러싼 비판도 거셌다. 정치권은 이후 이해관계에 따라 여전히 수도 이전 문제를 제기한다. 저자는 “문화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만들어 내거나 그들의 사전 합의가 필요한 것이지, 특정 정치지도자 혼자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님을 확인시켜 준 사건”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성문법은 불문법에 의해 보완이 필요하다”며 성문법과 불문법의 조화를 강조한다.* 호주제 사건(2005.2.3) - 호주를 정점으로 ‘가(家)’라는 관념적 집합체를 구성하고 이를 직계비속 남자를 통해 승계하는 호주제가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결정한 사건이다. 호적부는 이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폐지되고 2008년부터는 개인별로 신분관계를 공시하는 가족관계등록부로 전환되었다. 헌재는 “호주제가 성 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에 기초한 차별로써, 호주승계 순위와 혼인 시 신분관계 형성, 자녀의 신분관계 형성에 정당한 이유없이 남녀를 차별하는 제도”라고 판단했다. 호주제가 가족 내에서 존엄한 인격체로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가’의 유지와 계승을 위한 도구의 존재로 취급하고 있다고 보았다. 이는 혼인과 가족생활을 어떻게 꾸려나갈 것인지에 관한 개인과 가족의 자율적 결정권을 존중하라는 헌법 제36조 제 1항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이 결정으로 호주제는 1960년 민법 시행 이후 45년 만에 폐지되고 ‘양성 평등사회’의 법적 기반이 마련되었다. ‘자(子)는 부(父)의 성과 본을 따르고…’라는 민법 제781조 제1항도 개정되었고, 여성에 대해 6개월 간 재혼금지 기간을 둔 민법 제811조는 폐지되었다.* 시각장애인 안마사 독점 사건(2008.10.30) - 시각장애인에 한해 안마사 자격을 부여한 보건복지부령 ‘안마사에 관한 규칙 제3조 제1항’을 헌재는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2003년 헌법소원심판 때는 위헌결정이 났으나 이후 국회가 2006년 의료법을 개정해 시작장애인에게만 안마사 자격제도의 줄 근거를 마련한 탓에 다시 헌법소원이 제기되었다. 우리 헌법 제11조 제1항 전문에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헌재는 그러나 시각장애인에 대한 복지 대책이 시급한 현실에서 안마사가 시각장애인이 선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직업이라고 판단했다. 또 이것까지 비시각장애인에게 허용하면 시각장애인 생계 보장 대안이 충분치 않다며 이들을 우대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저자는 “시각장애인에게 안마사라는 직업을 독점하게 한 것은 사회적 약자를 특별히 배려한다는 의미가 있지만, 다른 이해관계자들에게 초래하는 불평등한 처우를 어떻게 정당화할지에 대한 고민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어 “스포츠 마사지나 피부 미용 마사지 등 비시각장애인에게 허용되지 않는 안마의 경계가 모호해 발생하는 마사지업계의 소모적인 갈등과 규범 괴리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근원적인 정책 수립 및 입법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친일 재산 환수 사건(2011.3.31) -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에서 과거사 청산을 위해 친일 행위로 축적한 재산을 국가로 귀속시키도록 한 조치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결정한 사건이다. 2005년 12월에 법이 제정됨에 따라 친일본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가 대상자들의 재산을 국가로 귀속시키자 그 후손들이 헌법소원을 제기했지만 청구가 기각됐다. 헌재는 입법 목적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특히 이 법의 귀속 조항이 입법 목적 달성의 적절한 수단이 된다고 보았다. 반민족규명법이 정한 친일반민족행위 중 사안이 중대하고 범죄가 명백한 4가지 행위만을 재산귀속 대상을 한정했고, 후에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한 사실이 입증되면 귀속을 막을 수 있도록 ‘선의의 제3자’ 보호조항 같은 예외조항도 두었다고 판단했다. 이런 귀속 조항이 ‘피해의 최소성’ 원칙에 반하지 않으며 특히 과거사 청산의 정당성 등을 고려할 때 ‘법익의 균형성 원칙’에도 부합한다고 본 것이다. 이 결정으로 친일 재산 환수 작업이 지속되었고, 1000억 원 이상의 토지가 국가로 귀속되었다. 저자는 이 판결이 우리 헌법 전문에 담긴 3.1 운동 정신을 계승해 역사적 정의를 실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긴급조치 사건(2013.3.21) - 민주화 이후 과거사 진상규명 움직임에 따라 긴급조치 위반 사건에 대한 재심이 속속 개시되면서, ‘유신헌법’에 의해 이뤄졌던 과거 긴급조치의 위헌여부 문제가 제기되었다. 당시 긴급조치 위반으로 실형을 받았던 청구인이 30년 후인 2009년 서울고등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2010년에는 유신헌법 제35조와 긴급조치 제9호의 위헌성을 판단해 달라며 헌법소원심판까지 청구했다. 헌재는 유신헌법 위반자를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 구속 압수 수사할 수 있도록 한 긴급조치 1호와 이를 위반한 자를 심판하기 위해 설치했던 비상군법회의 조직법인 긴급조치 제2호는 목적의 정당성과 방법의 적절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학생의 모든 정치 관여를 금지하고 소속 학교를 휴업 폐쇄할 수 있도록 한 긴급조치 제9호도 헌법상의 자기책임 원리에 위반된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이 결정의 가장 큰 의미는 외형상으로는 당시 유신헌법에 법적 근거를 두고 있었더라도, 현행 헌법에 비추어볼 때 실은 위헌적 행위이며 그런 전체주의적 인권침해는 용납될 수 없음을 확인했다는 점이다. 위헌결정 후 국가 대상 형사보상금 청구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줄을 이었다. 아무리 무소불위 권력이라도 헌법보다 상위에 있을 수는 없다는 헌법 원칙이 확인된 것이다. 저자는 “정의롭지 못하고 정당하지 않은 법률을 헌재가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에 대한 판결이었다”고 평가했다. *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2014.12.19) - 헌법 제8조 제4항은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는 정부가 헌재에 정당해산을 제소할 수 있으며, 정당은 헌재 심판에 의해 해산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민주적 기본질서에는 기본권의 존중, 권력분립, 의회제도, 복수정당제, 선거제도, 사유재산제도 등이 모두 포함된다. 2013년 대한민국 정부는 국무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피청구인의 해산 및 피청구인 소속 국회의원에 대한 의원직 상실을 구하는 심판을 처음으로 헌재에 청구했다. 헌재는 통합진보당의 목적과 활동이 헌법상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며 정당 해산과 함께 소속의원직 상실을 판결했다.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해 활동한 사람들이 주축이 된 통진당 주도세력의 형성 과정, 대북 자세, 활동 경력, 이념적 동일성 등을 기초로, 이들이 북한을 추종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통진당의 목표는 일차적으로 폭력으로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최종적으로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것으로, 이는 우리 헌법상 민주적 기본질서에 반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석기 의원 등 130명이 2013년 참석한 회합도, 전쟁 발발시 북한에 동조해 대한민국 내 통신 등 기간시설을 파괴하고 폭력을 실행하려는 목적의 내란 관련 회합이라고 보았다. 이 결정으로 통진당 잔여재산은 국고에 귀속됐고, 유사한 대체정당 창당도 금지되었다. * 간통죄 사건(2015.2.26) - 개인의 자유가 중시되는 요즘에는 이슬람 국가와 북한, 필리핀 등 일부와 미국의 일부 주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국가가 간통죄를 형사처벌 않는 추세다. 성적 사생활 영역에 국가 공권력이 개입하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논리다. 이 사건은 간통 및 상간 행위를 2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한 형법 제214조 간통죄가 헌법에 위배된다고 결정한 사건이다. 헌재는 이 전까지 4차례에 걸쳐 이 조항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선고했었지만 이번에는 다른 판단을 했다. 재판관 5명은 성적 자기결정권 등을 고려할 때, 이 조항은 더 이상 국민의식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과잉금지 원칙을 위배해 성적 자기결정권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위헌의견을 보인 1인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국가 형벌권의 과잉행사가 헌법에 위반된다고 보았다. 또 다른 1인은 징역형으로만 응징토록 한 것은 책임과 형벌 간 비례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저자는 “간통죄의 종국적 폐지와 폐지에 따른 보완대책은 국회에서 국민여론 수렴과 논의를 거쳐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 그럼에도 국회가 이런 고려 없이 2016년 1월 6일 법률 13719호로 형법에서 간통죄를 삭제 폐지했다”며 아쉬워했다.* 대통령 탄핵 사건(2004.5.14/2017.3.10) - 우리 헌정사에 대통령 탄핵심판은 두 차례 있었다. 헌재에서 기각된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탄핵심판은 사실관계가 비교적 단순했다. 국회 탄핵소추 의결의 절차상 하자, 적법 절차 원칙 위배 여부 등과 같은 절차적 쟁점이 주된 문제였다. 반면 대통령 박근혜의 탄핵심판은 절차적 쟁점과 함께 대통령의 직권남용, 비밀엄수 의무 위배, 공무원 임면권 남용 여부 등과 같은 실제적 쟁점이 문제 되어 재판관 8대 0 전원일치 의견으로 대통령 파면이 결정되었다. 노무현의 경우 선거가 임박한 때 기자회견에서 특정 정당을 지지하고, 선거법을 관권선거 시대의 유물로 폄하하고, 헌법상 허용되지 않은 재신임 국민투표를 제안한 것 등이 공무원의 선거중립의무와 대통령의 헌법수호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대통령직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로 중대한 법 위반으로 보진 않았다. 반면 박근혜는 비밀 문건을 유출해 국가공무원의 비밀 엄수 의무를 위반했고, 특정 인물의 사익 추구를 돕는 과정에서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으로 기업들에게 특정 재단에 대한 출연을 요구하는 등 현행법을 심각하게 위반했다고 보았다. 다만,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한 생명권 보호 의무 위반은 그 자체로 소추 시유가 될 수는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저자는 “두 탄핵 사건에서 보여준 헌재의 명확한 메시지는 ‘최고권력자인 대통령도 결코 헌법과 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는 헌법적 확인과 선언이었다”고 말한다. * 양심적 병역 거부 사건(2018.6.28) - 양심적 병역거부란 자신의 신념을 이유로 전쟁 참가, 무지 소지 등 병역의무의 이행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 사건은 입영 회피자를 3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한 병역법 제88조 제1항과 이 조항의 전제가 되는 ‘병역의 종류’를 한정적으로 열거하는 병역법 제5조가 헌법에 위배되는지가 쟁점이었다. 이전에도 여러 차례 헌법 소원이 제기되었지만 그때마다 헌재는 합치 결정을 선고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병역법 제5조가 대체복무제도를 규정하지 않아 양심적 병역 거부자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보았다. 헌법상 보호되는 양심은 사회 다수의 정의관이나 도덕관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으며, 오히려 헌법에 의해 보호받는 양심은 이른바 소수자의 양심이 되기 마련이라고 보았다. 특정 종교나 교리를 특별취급하는 게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되었으나 헌재는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인정한다 해도 양심적 병역 거부자의 병역의무를 전적으로 면제하는 것은 아니라고 반박했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는 단순히 군 복무의 위험과 어려움 때문에 병역 의무 이행을 회피하려는 다른 병역 기피자와는 구별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체복부제처럼 국방의 의무와 양심의 자유를 조화시킬 수 있는 ‘제3의 길’이 있다면 국가는 그 길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결정 이후 병역법이 개정되어 2019년에는 ‘대체역의 편입 및 복무 등에 관한 법률’도 만들어졌다.* 낙태죄 사건(2019.4.11) - 낙태는 모체 밖에서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시기에 태아를 인공적으로 모체 밖으로 배출하는 행위를 말한다. 우리나라는 1973년 모자보건법 제정으로 제한적이나마 합법적 낙태의 길이 열렸지만, 태아가 임부 신체의 일부이고 태아의 생명권은 임부의 자기결정권과 충돌한다는 점에서 논란이 여전했다. 2012년에 재판관 4(합헌)대 4(위헌) 의견으로 낙태죄가 합헌임을 인정했던 헌재는 2019년에는 4(헌법 불일치)대 3(단순 위헌)대 2(합헌)의 의견으로 낙태죄가 헌법 불일치임을 선고했다. 위헌결정에 필요한 6인 정족수를 넘겼기에 위헌결정이 선고됐다. 헌법불일치는 선고 이후 입법자의 법률 변경 때까지 잠정적으로 해당 법률이 존속하는 형태의 위헌결정이다. 헌재는 임신한 여성이 임신을 유지 또는 종결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이 조항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해 ‘침해의 최소성’을 갖추지 못했고, 법의 균형성 원칙에도 위배되어 과잉금지 원칙을 위반했다고 보았다. 특히 임신 22주 내외부터는 태아의 독자적인 생존이 가능하다며, 이때까지의 낙태에는 국가가 생명 보호의 수단 및 정도를 달리 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불합치결정에 따라 2021년 1월 1일 형법상 낙태죄는 폐지되었다. 하지만 국회와 행정부는 헌재가 제시한 2020년 12월 31일까지 해당 법률을 개정해야 함에도 이를 방치해, 처벌 대상이 되어야 할 낙태죄(임신 22주 이후의 낙태 등)까지 처벌하지 못하게 되는 ‘입법 공백’ 사태를 빚었다. 저자는 “국회가 입법기관으로서 역할과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라고 질타했다.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2022-11-11 08:30 조진래 기자

[비바100] 천하양분(天下兩分), 대분열의 시대를 대처하기 위해 알아야 할 ‘2023 한국경제 대전망’

'2023 한국경제 대전망' 집필진은 2023년 키워드를 ‘천하양분’(天下兩分)으로 꼽았다(사진제공=21세기북스)합종연횡(合縱連橫)의 시대에서 천하양분(天下兩分), 대분열의 시대가 예고되고 있다. 2016년부터 매년 출간돼 온 ‘한국경제 대전망’이 출간됐다. 2023년을 내다보고 그 대책을 제안하는 ‘2023 한국경제 대전망’은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이근 석좌교수를 중심으로 모인 50여명의 경제전문가 네트워크인 경제추격연구소에서 매년 출간하는 경제전망서다.경제추격연구소장인 지만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근 이사장을 비롯해 류덕현 부소장인 현 중앙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박규호 한신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등 26명의 경제전문가들이 진단하고 예측한 2023년은 천하양분, 대분열의 시대다.지만수 소장이 9일 열린 출간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전했듯 “학술적인 글이 아닌 경제전문가들이 집단지성을 발휘해 다가올 불확실성을 풀어냄으로서 위기의 거친 파도를 헤쳐나가는 데 도움을 주려는 취지”로 엮었다.지 소장은 “지난해 2022년을 ‘합종연횡’으로 예측했고 2023년은 그 결과 어느 일방이 승리나 패배하는 상황이 아닌, 세계가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천하양분’되는 대분열의 시대가 될 것”이라며 “두 개 시장을 중심으로 적립(摘粒)되는 양상은 반도체 및 배터리 공급망 분리, 첨단기술 교류 및 협력의 단절, 중미 진영 구축, 경제 제재,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대만 위기 등에서 그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른 진영화의 결과는 한쪽의 고립이 아닌 양분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2023 한국경제 대전망|경제추격연구소 편저, 이근 감수(사진제공=21세기북스)이어 “진영만 나뉘는 게 아니라 정책까지도 양분될 것”이라며 “세계가 하나의 같은 정책을 펼치기 보다 미국처럼 인플레이션 대응을 정책 최우선 순위로 삼을 것인지, 중국이 취하는 성장이나 금융시장 안정 중시를 따를지로 양분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근 서울대 경제학부 석좌교수는 “이제는 ‘G2’(Group of 2)가 아니라 ‘S2’(Split of 2) 시대”라고 진단했다. ‘2023 한국경제 대전망’은 ‘인플레이션 시대의 자산 시장’ ‘미중 갈등 속 국내외 경제 전망’ ‘경제 구조 개혁과 정책 과제’ ‘2023년 교차점에 선 산업과 기업’ 4개장에 40년만에 찾아온 인플레이션과 채권시장, 냉각기의 부동산시장, 가상자산 및 메타버스 등에 대한 현상과 예측 그리고 그에 대응까지를 제안하고 있다.지켜볼 지점은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이 어느 시점에서 정점을 찍을까와 하향 조정 시기다. 언제 정점을 찍을지, 그 정점이 얼마나 유지될지, 하향 시점은 언제일지를 가늠하고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그 가늠과 준비에 따라 투자자들의 투자도, 기업들의 전략도, 정부 정책들도 성패가 갈리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에 움츠러든 시기에 어떻게 행동하고 투자하고 전략을 수립하고 정책을 세우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도출되기 때문이다. 지만수 소장은 “2023년 내내 안좋은 추이는 아니다”라며 부동산 시장을 예로 들어 “하락세 보다는 일종의 거래위축 상황에 더 가깝다. 지금의 하락세가 시작될 수도, 멈출 수도 있는 시기”라고 의견을 전했다.이에 정부와 정치계는 “중대한 진전 보다는 작은 진전이라도 만들어서 정책능력을 증명해야하는” 시험대에 오르는 시기다. 분열된 시장에서 어떤 정책들을 세울 것인지, 글로벌 추세인 탄소중립, 경제 안보 등 새로운 트렌드를 어떻게 국내 정책에 반영해 제도화 할 것인지가 큰 과제로 던져진 셈이다. 지 소장의 제언처럼 “분열된 시장은 관점을 바꾸면 미국기업이 나가고 없는 중국시장, 중국이 못들어가는 미국시장은 우리의 가능성이다.”“양자택일 등 단면적이고 이분법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회로 전환시키기 위해 움직여야할 때입니다. 그간 한국 기업들은 분리, 불확실한 시장에서 잘 적응해 헤쳐나가는 능력과 역동성을 입증했어요. 추격국가에서 선도국가로 넘어가는, 빠른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위상이 바뀌고 있고 바뀌어야 합니다.”이어 “더 나아가 기업과 정부정책 역시 선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의견을 밝힌 지만수 소장은 “이미 선도하고 있는 반도체, 한류를 중심으로 한 콘텐츠 및 문화의 능력을 다른 분야에서도 이용할 수 있는 생태계 구축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그렇게 2023년은 “선도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선도자의 생태계를 만드는 노력” 그리고 천하분열의 시대, 복합적인 위기를 불확실성이자 어려운 상황으로 인식하기 보다 ‘기회’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 해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2-11-10 18:00 허미선 기자

[브릿지경제 신간(新刊) 베껴읽기] <한국이 열광할 세계 트렌드 2023> 코트라

KOTRA(대한무역진흥공사)가 매년 발간하는 베스트 셀러 2023년 판이다. 해외 각 지역에 파견된 코트라 조직에서 현지의 주목할 만한 트렌드를 소개해 늘 큰 반향을 일으킨 책이다. 아직 국내에는 전혀 소개되지 않았거나 매우 낯선 제품과 서비스를 매년 발굴, 소개해 주어 찾는 이들이 많다. 글로벌 비즈니스를 꿈꾸는 이들의 필독서이기도 하다. 올해는 예년과 달리 제품 위주에서 벗어나 주요 트렌드별로 묶어 이채롭다. 메타와 대체불가토큰, 로보틱스, 에너지, 푸드를 비롯해 기술과 사회, 자연, 그리고 친구 등의 테마를 다루었다.* MZ세대 향한 일본 새 쇼핑 트렌드 ‘메타커머스’ - 메타버스 공간에서 상품을 판매하는 새로운 E-커머스가 오프라인 점포와 전자상거래에 이은 제3의 판매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MZ세대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전 세계 메타버스 시장 규모는 2021년 460억 달러에서 2028년에는 5000억 달러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기업들도 이에 글로벌 메타버스 플랫폼에 가상매장을 구축하거나 메타커머스를 위한 새로운 프로젝트를 속속 도입 중이다. 섬유전문 상사인 토요시마는 포켓RD와 협업해 아바타가 입는 가상의 옷과 실제 인간이 착용하는 옷을 동시에 제작 판매한다. 로손은 오프라인 매장에서 파는 상품을 가상매장에 전시하고 이곳에서 촬영한 사진으로 오리지널 패키지 상품을 만드는 제작 체험을 진행했다. 어패럴 기업 빔스는 아바타 의류뿐 아니라 의류와 잡화 등도 함께 판매한다. 특정 시간대에는 실제 직원이 아바타와 함께 고객을 실시간 응대한다. 다이마루 마쓰자카야 백화점은 가상매장에서 2700개 음식을 선보였다. 사용자가 가상공간에서 3D 형태의 맥주로 건배하거나 3D 디저트로 생일을 축하하고 즐길 수 있게 했다. 100명 이상을 초대해 메타버스 연회도 열어 주었다. 가상 공간의 상업시설인 소라노우에 쇼핑몰은 편리한 쇼핑은 물론 인기 캐릭터 숍과 함께 대형 홀과 스튜디오, 전시홀 등을 구비하고 있다.* 싱가포르, 의료시장 화두로 떠오른 ‘디지털 헬스케어’ - ‘뉴 헬스 이코노미’의 시대다. 싱가포르에서도 디지털 의료 솔루션이 탄생해 주목된다. 이 나라의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은 2022년에 4억 3150만 달러 정도인데 2026년에는 6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싱가포르 정부의 이니셔티브인 ‘스마트 네이션’ 가운데 텔레헬스가 있다. 환자와 의료 제공자의 효율성을 동시에 높일 수 있는 원격 케어다. 환자가 의료기관에 가지 않고 온라인 상담으로 원활하게 통합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는다. 2015년 설립된 스타트업 닥터 웨니웨이의 ‘DA앱’이 대표적이다. 환자들이 비대면 화상회의로 의사와 상담하는 디지털 플랫폼이다. 사용자가 어디에 있든 5분 이내에 진료와 처방을 받아 몇 시간 안에 약을 받을 수 있다. 3000명의 지역보건의와 전문의로 구성된 강력한 의료팀을 기반으로 사용자가 200만명이 넘는다. 진료뿐 아니라 홈케어 서비스. 만성질환 관리 프로그램, 정신건강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싱가포르국립대 의과대학은 학생들이 헤드셋을 쓰고 복잡한 수술환경을 시뮬레이션하는 혁신 VR시스템 ‘PASS-IT’을 2020년에 개발했다. 지금은 마이크로소프트의 ‘홀로렌즈2’ 시스템을 실습에 활용하는 중이다. 싱가포르에서 가상·증강현실이 아닌 혼합현실(MR)로 묘사되는 홀로그램 기술이 의대생 및 간호대생 양성 교육과정에 공식 통합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 기술은 의료에서 중요한 올바른 ‘손의 느낌’을 발달시키고 메스와 바늘 같은 의료도구를 실제 다뤄보는 경험을 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에서 명동떡볶이가 NTF 시장에 - NTF(대체불가토큰) 시장은 2021년 177억 달러가 거래되어 1년 새 214배나 증가했다. 2025년에는 800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말레이시아에서도 디지털 아트 작품을 중심으로 성장하던 NTF 시장이 미디어 부동산에 이어 FB(식음료) 시장에까지 파급됐다. 대표 주자가 ‘명동떡볶이’다. 사업가 빈센트 루아가 2014년 세운 한식 프랜차이즈 식당으로, 현재 50개 매장에 이어 곧 20곳을 더 열고 인도네시아 진출도 추진 중이다. 이 회사는 ‘포키’라는 NTF 캐릭터 970개를 선보여 히트를 쳤다. 포키는 엘리트. 트렌드세터, 언유주얼, 페이스본 등 4등급으로 구분해 각 레벨 별로 다른 혜택이 부여된다. NTF 시장 진출을 계기로 디지털 고객 서비스를 대폭 확대해 가고 있다. 특히 고급 식자재를 사용한 NTF 소비자 전용 프리미엄 메뉴가 큰 호응을 얻었다. 2021년 11월에는 NTF 콘셉트의 레스토랑도 오픈 했다. 내부를 미래지향적으로 디자인했고, NTF 소지자를 위한 전용 메뉴와 별도 식사공간도 갖췄다. 명동떡볶이 영향으로 말레이시아 FB시장에서는 NTF 제작 기업이 줄을 잇고 있다고 한다. 에이디부처앤드스테이크는 예술가와 협업해 NTF 마케팅을 펼치고 있으며, 타이거맥주와 크림드라크림 등은 관련 컬렉션과 콜라보 매장을 선보였다. 말레이시아 내 이런 열풍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덕분이다. 정부는 인터넷과 스마트폰 보급률 90%를 기반으로 ‘말레이시아 디지털 이코노미 블루프린트’ 정책을 추진 중이다. 정부가 나서서 암호화폐와 NTF의 합법화를 촉구할 정도다. 다만, 금융 규제기관인 중앙은행과 증권거래위원회는 아직 회의적인 입장이다.* 조리로봇이 따라하는 뉴욕 셰프의 손맛 - 로봇 도입은 초기 패스트푸드 체인점이 중심이었으나 최근에는 작은 규모의 레스토랑까지 속속 가세하고 있다. ‘미소로보틱스’는 미국 요식업계 자동화 부문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업이다. 2016년 세계 최초의 상업용 주방 자동화 로보틱 기업으로 출범해 2018년 햄버거 패티 조리 로봇 ‘플리피’로 주목을 끌었다. 이후 빠른 튀기기가 가능한 플리피2와 치킨용 플리피2윙스, 식재료 보관에서 튀김 양념 믹싱까지 가능한 플리피라이트까지 내놓았다. 플리피2와 플리피윙스2의 월 사용료는 3000달러부터다. 미 전역에 350여 매장을 가진 패스트푸드 체인 ‘화이트캐슬’은 2020년 대형 사업자로는 처음으로 식당에 플로피 시리즈를 도입했다. 멕시칸 패스트푸드 체인 ‘치폴레’도 올해 3월에 플리피라이트를 들여 토르티야 칩 조리를 테스트 중이다. 미소로보틱스가 ‘랜서월드와이드’와 협업해 올해 선보이기로 한 자동음료준비기기 ‘시피’는 벌써 큰 관심을 모은다. 고객 주문가 접수되면 컵 사이즈와 정확한 양의 얼음과 음료를 골라 주고, 음료 그루핑 기능까지 갖췄다. 피자 조리용 로봇기업 ‘피크닉’의 피자 스테이션은 모듈식으로 조작되어 시간당 최대 100판의 피자를 준비할 수 있다. 로봇 셰프들은 모든 식재료를 정량으로 제공하기 때문에 식재료 낭비를 줄일 수 있고 특히 음식 맛을 일정하게 유지한다는 게 장점이다. 실리콘밸리에서 만든 서빙 로봇 전문기업 베어로보틱스의 ‘서비’는 카메라와 레이저 센서 기술로 100% 자율주행하고, 4시간 충전에 12시간 운행이 가능하다. 한편 코카콜라는 2019년 커피를 만들어주는 바리스타봇 ‘브리고’를 49억 달러에 인수하는 등 글로벌 식품 및 요식기업들도 로봇기업 인수로 새로운 시대를 대비하고 있다.* 화이트다이아몬드가 된 홋카이도의 눈 - 일본 홋카이도에는 수시로 엄청난 폭설이 내려 지역을 마비시킨다. 그런데 일본의 한 석탄단지에서 그 눈을 이용해 친환경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등 다양한 효과를 봐 주목을 끈다. 삿포로 북쪽 비바이 시는 제설 공공비용 부담이 연간 5억 엔에 이르자 산학관 협력 공동연구기관인 ‘비바이시 자연에너지연구회’를 통해 2008년에 눈을 에너지원으로 활용한 화이트데이터센터 구상에 착수했다. 24시간 365일 가동되어 엄청난 전기를 소비하는 데이터센터는 늘 내부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따라서 서버 냉각이 필수인데 여기에 눈을 이용한 전기에너지가 안성맞춤 이었다. 눈으로 냉각한 부동액을 순환해 실내온도를 28도로 유지케 한 것이다. 2021년에는 눈 에너지를 활용해 이산화탄소 배출 제로를 목표로 하는 ‘화이트데이터센터 ’ 설립을 위한 사업화에 착수했다. 도쿄와 비교해 냉방 비용을 55% 절감하고 전체 전력 사용량을 30~50%나 줄일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센터는 눈으로 내부 열을 냉각하는 데 그치지 않고 폐열을 활용한 농산물과 해산물 양식에도 도전해 성과를 거둔다. 2023년부터는 일반에 100% 친환경 희목이버섯, 토마토, 양성추 등을 본격 판매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양식장 온도를 따뜻하게 조정해 난류 어종인 장어 양식 실험도 진행 중인데, 내년까지 연간 30만 마리 출하가 목표다. 이렇게 얻은 수익으로 센터 운용비용을 충당하겠다는 복안이다.* 홍콩의 실험실에서 탄생한 ‘미래식량’ - 먹거리 생태계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착한 소비’와 관련해 최근 홍콩에서 미래식량으로 급성장한 ‘세포배양 수산물’이 큰 인기다. 현지 푸드테크 기업인 ‘어반트미트’는 2018년부터 세포 기술 연구에 집중해 왔다. 창업자인 캐리 찬은 2019년 생명공학 전문가인 마리오 친 박사와 세포배양 수산물을 개발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회사는 세계 최초의 세포배양 생선 부레(Fish Maw) 프로토타입을 탄생시켰다. 생선 부레는 전복 해삼 상어지느러미와 함께 중국 요리의 4대 보물로 불리는 진귀한 식재료다. 어류를 도살하는 대신 이들의 몸에서 줄기세포를 채취해 세포만 분리한 후 영양분이 공급되는 배양기에 배양하는 방식으로 만든다. 기존 부레와 맛은 비슷하면서 실제 어류에서 채취한 풍부한 단백질과 칼슘 인 같은 영양소를 제공할 수 있다. 뼈와 비늘을 손질할 필요도 없어 조리과정도 편리하다. 개발 초기에는 1파운드 생산에 900달로 가량의 막대한 비용이 들었다. 홍콩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의 생산 부레요리보다 2배나 비쌌다. 그러나 생산규모 확대 등으로 1파운드 생산비용을 70달러까지 줄였다. 싱가포르로 생산기지를 옮기면 14~18달러 까지 더 낮출 수 있을 전망이다. 싱가포르식품청도 2020년 세계 최초로 배양 닭고기의 안전성을 확인하고 판매 승인을 내 준 바 있다. 하지만 배양 생선이나 배양 육류에 관한 규정이 아직 미비해 관련 제품 판매에 대한 입법 논의, 안전성 평가 기준 마련 등의 절차부터 선행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건물도 인쇄한다” 건물 3D 프린팅 기술 - 프랑스 낭트 소재 95㎡ 규모 공공주택 이누바(Yhnova)는 3D 프린팅 기술로 지은 세계 최초의 집이다. 이제 3D 프린터로 기하학적 모형의 입체물질을 인쇄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최근에는 3D 프린터로 인쇄한 가정집까지 미국 주택시장에 등장했다. 83~185㎡ 크기 주택을 45만~75만 달러에 판다. 기존 건축방식에 비해 훨씬 적은 인력으로 더 빠르고 정교하게 지을 수 있다. 최근 민간에 판매할 수 있는 3D 프린팅 주택 시대를 연 주인공은 제이슨 밸러드와 알렉스 르룩스다. 이들이 텍사스에 2017년 설립한 ‘ICON’은 미국과 멕시코에 24개 이상의 3D 프린팅 주택을 건설했다. 최근 4억 5100만 달러 투자를 유치해 내년부터는 수 천 채 공급을 꾀한다. ICON의 거대한 3D 프린터 이름은 벌컨(Vulcan)이다. 라바크리트라는 시멘트 혼합물을 층층이 짜내며 집의 골격을 구축하는 특별한 시공법으로, 일반 신축 건물보다 20~30% 저렴함 비용으로 단 며칠 만에 278㎡ 규모의 집을 지을 수 있다. 미 항공우주국 NASA도 이 기술을 인정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가까운 미래에 과학자들이 화성에 착륙해 거주할 때를 대비해 관련 기술을 지원하고 있다. 달 탐사를 위한 우주 기반 건축 시스템 개발의 일환으로 프로젝트 올림퍼스도 진행 중이다. 미 국방부와는 3D 프린팅 군용막사 계약을 체결했다. 3D 프링팅 주택은 저소득층 주택난을 해소할 최적의 방안으로 부상했다. 빈곤층에 집을 지어주는 ‘해비타트’도 3D 프린팅 주택에 주목해 2021년에 불과 28시간 만에 110㎡의 3D 프린팅 주택을 지었다. 아직 보편적인 규정이나 표준이 없어 지붕을 기존 건축 방식으로 짓는 등 한계는 있지만, 미국 정부가 3D 프린팅 제조 프로세스에 관한 국가표준을 설정하는 등 지원에 나서고 있어 주목된다.* 사이버폭력 필터링 시스템 ‘보디가드’ - 프랑스의 스타트업 보디가드(Bodyguard)는 2018년 온라인 플랫폼의 혐오 및 증오 표현을 실시간으로 필터링 하는 시스템을 발표했다. 자체 알고리즘으로 온라인 사이트 내 댓글을 15~20초마다 점검하고 트위터 유튜브 등에 올라온 고객계정의 멘션을 분석한 후 감지된 혐오와 증오 표현을 완화하거나 덮거나 삭제한다. 전체적인 내용상 맥락과 맞춤법에 따른 오류 판단, 메시지 대상을 고려한 말의 뉘앙스까지 분석한다. 계속적으로 생산되는 신조어와 기본 및 변형 이모티콘까지 모두 분석이 가능하다. 그러면서 사용자의 데이터는 따로 수집하지 않는다. 사이버 폭력으로 감지될 수 있는 내용의 영역도 계속 업데이트하고 성소수자나 직장 괴롭힘 내용까지 감지한다. 스팸과 공과, 사기성 콘텐츠도 오염성 메시지로 구분한다. 2017년 설립 후 한 동안 무료앱을 제공해 오다 2021년부터 기업 대상 B2B 방식의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했다. 구독제 형태로 기업들의 플랫폼이나 SNS를 실시간으로 관리해 준다. 여기서 분석된 데이터는 이후 커뮤니티 행동 방식과 트렌드 분석에 사용된다. 그룹엠시스 등 방송국과 미디어 그룹이 주 고객이다. 개인 사용자를 위한 가족용 프로그램은 여전히 무료다. 미성년 자녀에게 사이버 폭력이 감지될 경우 부모에게 연락이 가게 하고, 부모가 자율적으로 문제 멘트를 삭제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 90%의 혐오 표현 삭제에 성공했으며, 오류 확률은 2~3%에 불과하다고 한다.* 노인과 간병인 고충을 헤아린 ‘스마트 기저귀’ - 고령화에 따라 성인용 기저귀 사용량이 늘고 있다. 대만의 2020년 판매량은 5억 8000만개로 2000년에 비해 4배 이상 증가했다. 대만의 다신바이오테크놀로지(다신바이오)는 고령자 전동휠체어나 전동스쿠터 산업에 비해 크게 관심을 받지 못하던 스마트 기저귀 시장을 주목했다. 가장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던 부분은 신체 착용부인 기저귀컵이었다. 의료용 항균 실리콘을 사용했고, 겉싸개는 원적외선 게르나늄 성분을 함유한 원단을 사용했다. 배설물을 음압으로 흡입해 오물통으로 내려 보내고, 세정수통에 있는 물을 온수 처리한 다음 기저귀컵 노즐로 분사해 씻겨 주도록 했다. 세정 과정이 끝나면 온풍으로 수분기를 제거해 준다. 자동 비데기와 비슷한 원리다. 세정수통과 오물통의 용량은 각각 5리터다. 오물통은 밀폐로 설계해 냄새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했고, 활성탄 필터를 내장해 한 번 더 냄새를 잡았다. 세정수통에 부착된 터치 스크린 패널을 통해 수온이 적정값에 맞게 유지되도록 했다. 이상이 발생하면 경보로 알려준다. 메인 화면에는 대소변 배설 횟수와 용량이 표시되며 상세 내역 버튼을 누르면 대소변 날자 시간 등을 확인할 수 있다. 관련 데이터는 환자의 상태 파악에 활용된다. 환자의 섭취량과 배설 상황을 원격 모니터링할 수 있다. 배설 루틴이나 배설량에 이상이 발생하면 조기에 감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다신바이오는 현재 실외에서도 위생적인 배변 관리가 가능한 휠체어용 스마트 기저귀를 개발 중이다.* 죽음을 맞는 새로운 방법 ‘데스테크’ - 저스틴 크로는 파팅스톤(Parting Stone)이라는 혁신적 유해보관법을 개발해 히트를 쳤다. 유해를 가루 형태가 아닌, 40~60개의 돌멩이로 만든다. 유골을 굳히는 과정은 도자기 제작 과정과 유사하다. 더 부드러운 가루로 정제한 후 소량의 결합제를 첨가해 점토와 유사한 물질로 만든 뒤 가마에 구워 광택을 낸다. 보관이 편리한데다 직접 돌멩이를 만지는 촉각적인 기억 경험을 주어 마음의 안정을 준다. 여행을 다니면서도 함께 한다는 기분이 든다. 자신의 유해로 만든 돌멩이를 친구들에게 나눠주라는 유언도 나오고 있다. 서비스 비용은 995달러(약 130만원) 수준이다. 유해 도착 시점에서 최종 제작까지 10주 가량 걸린다. 최근에는 반려동물로 사업 대상도 확장 중이다. 코로나 계기로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대비하는 경향이 더욱 강화되면서 유사한 데스테크 기업들도 늘어나고 있다. 에테르네바(Eterneva)는 고인의 재를 이용해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모양과 색상을 직접 선택하고, 고인의 이름을 새겨 의미를 더한다. 가격은 3000달러에서 5만 달러까지 다양하다. 제품을 받기까지 10~12개월이 걸린다. 반려동물을 위한 서비스도 제공한다. 케이크(Cake)는 죽음을 계획하는 데 필요한 모든 도구를 공급한다. 유언 작성도구, 온라인 추모 공간 생성도구와 전문가 경험, 노하우, 풍부한 정보도 함께 제공한다. 트러스트앤드윌(Trust Will)은 유언 신탁 후견 같은 법률 서비스를 제공한다. 비용을 대폭 낮춰, 법류 전문가 도움 없이 직접 유언장을 작성하는 것도 가능하다. 리턴홈(Return Home)은 화장이나 매장이 모두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보고 시신을 아예 퇴비화한다. 유골을 흙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기존 화장법에 비해 10%의 에너지만을 사용한다. 시신은 한 달 이내에 모두 흙으로 바뀐다. 두 번 째 달에는 흙을 그대로 둬 숨을 쉴 수 있도록 하는 레스팅 단계를 거친다.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2022-11-05 09:00 조진래 기자

[비바100] 유태인에게 '하브루타'가 있다면 한국엔 OOOO가 있다!

밥상머리 인문학|오인태|가격=2만 2000원. (사진제공=궁편책)제목 ‘만’ 보면 따분할 것 같은데 펼쳐보면 사진이 예술이다. 정갈한 소반 위에 차려진 한끼 밥상과 곳곳에 보이는 레시피를 보면 영락없는 요리책이다. 그런데 시인이자 교육자인 오인태, 길어야 한장 반짜리 그의 글을 보면 에세이가 따로 없다.신간 ‘밥상머리 인문학’은 까도 까도 나오는 하얀 속살에 눈이 아려지는 것도 잠깐 볶을수록 캐러멜라이징된 특유의 단맛을 가진 매력적인 채소 양파 같은 책이다.교사, 장학사, 교육 연구사, 교육 연구관을 거쳐 지금은 지리산 청학동에서 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인 그는 이미 수십 권의 저서를 낸 베스트셀러 작가다. 임재해 민속학자는 책의 추천사에 “‘무엇을 먹는가’ 보다 ‘어떻게 먹는가’가 밥상 문화에서 중요한 것처럼 ‘무엇이 되는가’보다 ‘어떻게 사는가’가 인생살이에서 더 중요하다. 인문학의 핵심 질문이 이 책에 담겨있다”고 적었다. 잘 차려진 인문학 한상을 읽으면 포만감을 느낄 거란 그의 극찬은 ‘밥상머리 인문학’을 정의하는 중요한 키워드다.사계절 목차로 나뉜 제철 요리들은 저자가 평소 직접 차리고 찍어 온 사진들로 이루어져 있다. 밥상에 깃든 추억과 인생의 즐거움, 쓸쓸함 그리고 여러 학문적 지식들이 촘촘하게 교차된다. 가지나물 비빔밥을 소개하면서 누이 넷을 두고 늦둥이로 자신을 낳아 기르신 어머니를 추억하고 송잇국을 끓이며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더듬는다.연포탕은 사람이 가진 그릇의 크기로 해석된다. 자신의 역량에 모자란 자리에서 별 다른 실수 없이 능력을 보여준다면 ‘저 자리에 있기는 아까운 사람’이라고 아쉬워 한다는 것. 더불어 권위를 우선시하고 최악의 상급자가 되는 길임에도 성공을 위해 내달리는 요즘 사람들에 대한 우려가 전복죽을 통해 펼쳐지기도 한다.오인태 시인은 오는 11월 18일 진주에서 ‘밥상머리 인문학’의 출판기념회를 연다.(사진제공=궁편책)수많은 제자들을 가르치고 수백 곳에서 강연을 해왔던 저자는 정작 자신이 하지 못했던 ‘밥상머리’ 교육에 대한 뒤늦은 참회도 밝힌다. 두 아이가 커가면서 머리를 맞대고 밥 먹는 회수가 현저히 적었던 미안함이 ‘밥상머리 인문학’을 탄생시킨 자양분이 됐다. 이렇게라도 아이들에게 남기고픈 인문학의 정수가 페이지 곳곳에 가득하다.투박하지만 손때 묻은 개다리 소반은 이 책의 두 번째 주인공이다. 조선시대 전통 가옥에서 음식을 얹어 나르거나 방에 놓고 식탁으로 사용했던 소반은 한 사람이 하나의 상을 사용했기 때문에 크기가 작은데 저자가 찍은 사진에는 많아야 그릇 5개가 올라간다. 그나마도 그릇의 한켠이 상 너머로 삐죽 빠져 나온다. 그래서 더더욱 소박한 한끼 밥상이 느껴진다. 인문학을 기본 주제로 풀어내지만 ‘밥상머리 인문학’은 저자가 책으로 만든 사모곡을 보는 느낌이다.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타고난 달변가에 깊은 학문을 가졌던 아버지와 풍족하지 않은 살림에도 아침밥은 꼭 지어 먹이셨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한 가득이다. 저자는 “어머니는 밥상에 차려내는 음식으로, 아버지는 그 밥상을 대하는 자세로 우리들을 가르치셨다”고 유년시절을 회상한다. 그 맛의 기억이 시인 오인태를 만들었고 한권의 책으로 엮였다. 누군가에게는 동질의 그리움이,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경험이 될 귀중한 지혜가 이 책에 녹아있다.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2022-11-03 18:00 이희승 기자

[브릿지경제 신간(新刊) 베껴읽기] <우리는 모두 조금은 이상한 것을 믿는다> 한국 스켑틱

누구나 한 번쯤 믿어봤거나 아직도 믿고 있을 법한 기괴한 현상과 믿음의 사실 여부를 추적한 책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거의 신봉하디 시피 하는 MBTI, 아직도 폭 넓은 지지를 받고 있는 ‘혈액형 성격론’, 미확인비행물체(UFO)나 심령사진, 예지몽(豫知夢)처럼 과학의 영역에 도전하는 이상 현상들에 관해 다양한 과학적 근거로 반론을 펼치며 그런 주장들이 사실이 아님을 주장한다. 스켑틱협회는 초자연적 현상과 사이비과학, 그리고 모든 종류의 기이한 주장들을 과학적 관점에서 검증하는 비영리 과학 교육기관이다.* 너무 복잡한 인간, 너무 단순한 MBTI -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은 캐서린 쿡 브룩스와 그녀의 딸 이사벨 브릭스 마이어스가 칼 융의 심리학 이론을 참고해 독자적으로 만든 성격 이론 및 검사법이다. 객관적 데이터를 통해 검증되었기 보다는 내적 추론을 통해 탄생한 이론인 만큼 많은 한계가 존재한다. 성격은 인간의 외적 특성이 아닌 내적 특성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성격은 또 일반적이고 안정적인 경향성으로, 일반적으로 별다른 일이 없을 때 나타나는 사고와 행동의 패턴을 말한다. 성격과 행동 사이에는 괴리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16개 유형으로 인간의 성격을 범주화한 MBTI는 지나치게 단순하다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중요한 오류 가운데 하나는 서로 다르지 않은 특성들을 다른 것처럼 취급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감각과 직관을 상반되는 특성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건강과 행복, 인간관계 등을 가장 중요하게 예측하는 성격 특성인 신경증(부정적 정서성, 정서적 불안정성)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도 맹점이라고 지적한다. 저자는 “사람은 ‘자기실현적 예언을 하는 존재’”라며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믿는 내용에 따라 실제로 그런 사람이 될 가능성이 있음을 중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MBTI를 비롯해 사람이 성격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려는 시도, 혹은 한 가지 행동을 보면 열을 알 수 있다는 얘기 등은 과학적 근거가 빈약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혈액형으로 사람의 성격을 특정 지을 순 없다 - 우리는 오랫동안 사람의 피가 성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믿어왔다. 최근에는 혈액형별 식이요법까지 나와, 혈액형에 따라 먹거나 먹지 말아야 하는 음식을 설명한다. 일각에선 궁합과 직업 선택, 성격에 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도 있다. ‘혈액형 성격론’은 1927년 일본의 후루카와 다케지의 연구에서 시작됐다. 이후 노미 마사히코 부자가 ‘혈액형 인간학 연구소’를 세워 자칭 과학적 연구에 매진했다. 성격심리학자 한스 J.아이젱크도 외향성과 신경증적 경향에 초점을 맞춘 ‘2-요인’ 성격 모델을 만들어, 현재 ‘정신증적 경향성’이라는 제3의 요인을 추가해 널리 이용되고 있다. 이들 연구에 따르면 B형 인구 비율이 높을수록 신경증적 경향도 비례해 증가한다. 저자는 그러나 이런 내용이 대부분 모호하고 과학적으로 검증이 불가능하며, 모순점도 발견된다고 말한다. 어떤 이는 AB형을 ‘호감형’이라고 하지만 어떤 이는 정 반대로 ‘트집쟁이형’이라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이런 연구들의 문제점은 크게 세 가지로 지적된다. 우선, 가족 구성원을 표본으로 함으로써 간편함에 기대어 확증편향에 빠지기 쉽다. 다음으로, 통계분석이 이뤄지지 않았거나 부적절한 통계적 기준이 적용된다. 마지막으로 표본의 크기가 작아 효과가 정말 존재하더라도 감지하는데 한계가 있다. 저자는 혈액형과 성격은 관련이 없으며, 자칫 그런 추론을 믿는 정도에 따라 심각한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과학적 증거’라는 미명아래 ‘근거 없는 믿음’을 끊임없이 조장함으로써 이득을 보는 이들이 있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피가 사람 성격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유전 때문이지 혈액형 때문이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물고기 자리’는 정말 이타적인가 - 1972년부터 2008년 사이에 1~2년 간격으로 실시된 종합사회조사(GSS)는 별자리와 관련한 점성술의 주장들을 반박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GSS는 미국 성인 5만 3000명의 데이터를 확보했는데, 데이터 품질이 우수하고 접근이 쉽고 포괄 범위가 넓어 널리 활용된다. 이 데이터를 보면 ‘사자자리는 성욕이 높고 처녀자리는 성욕이 낮다’는 점성술사들의 주장이 틀림을 알 수 있다. GSS의 별자리별 1년의 섹스 횟수 통계를 보면, 별자리에 따라 성욕이 크게 다르다는 점성술 사이트의 주장과 다르다. 점성술사들은 ‘물병자리 사람들은 애인이나 배우자에 충실하고 헌신적인 반면 사자자리는 바람 피우려는 성향이 강하다’고 말하지만, GSS에 드러난 별자리별 차이는 우연 정도의 수준을 넘지 않았다. 게자리나 천칭자리, 황소자리가 타인과의 유대관계가 깊고 헌신적인 반면 쌍둥이자리와 사수자리는 성격이 맞지 않을 경향이 평균보다 높고 속박당하길 꺼리는 성향이라고 하지만 이 역시 큰 차이가 없었다. 정치성향 상 처녀자리는 보수적, 천칭자리는 정치적 극단주의, 사수자리는 어느 정도 보수적이라고 하지만 별자리에 따라 자신이 진보, 중도, 보수에 해당한다고 보는 비율은 통계적으로 유의한 수준이 아니었다. 양자리가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반면 게자리나 처녀자리, 천정자리, 물병자리.물고기자리는 자신을 희생하고 남을 기꺼이 돕는 쪽이라고 하는데 이 역시 통계적인 뒷받침을 받지 못했다. 별자리를 바탕으로 각 개인의 성격을 유의하게 예측할 순 없다는 것이다.* ‘운명론’을 믿어야 하나 -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운명 또는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개인의 운명은 보다 크고 웅장한 세계의 운명과 어떤 식으로든 맞춰져 있다고 믿는다. 일부는 우주 역시 어떤 신비로운 방식을 통해 미리 예정된 어떤 최종 목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믿기도 한다. 이런 믿음은 때때로 인생의 가혹한 경험들을 완화시켜 준다. 하지만 과학은 운명을 결정하는 힘이나 이미 예정된 목표가 존재한다는 어떤 증거도 찾아내지 못했다. 과학 어디에도 우리 인간이 필연적으로 등장할 수 밖에 없었다는 증가는 없다. 운명론 혹은 목적론의 진짜 문제는 만약 진심으로 그것을 믿는다면 개인의 행동이 미리 결정된 최종 목적에 어떤 영향도 줄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어떤 인생을 살든, 그 사람의 삶은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된다는 말이다. 내가 큰 잘못을 저질러도 그 최종 결과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귀찮게 책임감 있는 인간이 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저자는 “장기적인 형이상학적 목표, 목적, 운명 같은 것이 존재할 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이 실재한다는 경험적이고 객관적인 증거는 없다”면서 “아마도 우리의 인생과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은 운명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선택일 것”이라고 단언한다.* 휴대폰은 암을 유발할까 - 휴대폰이 뇌종양이나 안구암 등을 유발하며, 특히 한창 성장 중인 아이들에게 더 위험하다는 보도가 많다. 저자는 “휴대폰이 암을 유발한다는 것은 아무 근거 없는 두려움”이라고 단언한다. 휴대폰의 전자기파가 암을 유발한다는 증거는 ‘눈꼽 만큼’도 없다고 말한다. 자외선과 X선, 감마선 등 일부 전자파는 암과 관련이 있는 것은 맞다. 이런 유형의 전자기파는 우리 몸 속 분자들의 공유결합을 파괴할 수 있어 위험하다. 하지만 그 외 나머지 모든 유형의 전자기파는 그저 분자나 원자의 열 교란을 활발하게 만들 뿐 다른 일은 하지 못한다. 가시광선의 경우 암을 유발하지 않는다. 저자는 휴대폰 전자기파의 에너지와 교류전력 전자기파의 에너지가 매우 낮다는 사실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휴대폰의 전자기파는 공유결합을 파괴하거나 약화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만일 2.5kJ/mol 전후의 에너지 전달만으로 생명체의 분자가 손상을 입는다면, 생명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란 얘기다. 공유결합을 파괴하려면 이보다 10배에서 50배 정도의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암은 개별 세포의 유전에 문제가 생기는 질병인데, 가스레인지 곁에 있을 때나 햇빛 아래 서 있을 때 정도의 작은 온도 증가로는 암을 유발할 수 없다”고 말한다. 휴대폰에선 1~2 와트의 전자기파가 나오는데 그 중 대부분은 사방으로 흩어지고 일부는 중계기로 향한다며, 이런 열로 암이 유발하리라 믿는 것은 무리라고 말한다. 결국 휴대폰 전자기파가 우리 몸에 미칠 수 있는 효과는 체온을 높이는 것 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음식으로 뇌를 고칠 수 있을까 - 저자는 “전문가나 전문 의사가 아닌 ‘카이로프렉터’들이 식품과 영양에 관해 불균형적이고 잘못된 정보로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톰 오브라이언은 ‘당신은 뇌를 고칠 수 있다’라는 저서에서 우리 몸이 끊임없이 오래되고 손상된 뉴런을 제거하고 새로운 뉴론을 생성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치매는 신경세포의 손상에 의한 것이라 아직 치료법이 없다. 해마나 후각 연합 영역에서 새로운 신경세포가 생긴다는 연구결과가 있었지만, 이들은 뇌의 극히 일부이며 이마저 확실히 입증된 것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밀가루의 글루텐이 독극물인 것처럼 말하기도 하는데, 저자는 밀가루에서 단백질만 추출한 글루텐이 어떻게 혈당을 설탕보다 빨리 올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냐고 반박한다. 면역계가 밀과 글루텐 분자를 공격해 ‘셀리악병’ 같은 염증을 유발한다고 하지만 저자는 “면역세포가 우리 몸을 공격해 일어나는 자가면역질환은 알레르기 아토피를 포함해 70종이 넘으며, 글루텐으로 인한 셀리악병은 그 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말한다. 특정 물질에 알레르기가 있는 경우만 피하면 된다는 것이다. 한국인 중 셀리악병 관련 유전자를 보유한 사람은 5% 미만이며 지금까지 딱 한 명만 보고되었다고 한다. MSG는 신경을 흥분시키고 뇌를 망가트린다는 독설에 대해서도 저자는 “뇌의 신경세포는 잠잘 때도 0.01초 단위로 흥분한다. 흥분하지 않을 때는 죽었을 때 뿐”이라고 꼬집는다. 그들이 찬양하는 비타민 D가 글루탐산보다 수 백배 독성이 강하다는 사실도 모르고 하는 엉터리 말이라고 비판한다. 정작 그들은 음식의 글루탐산으로 뇌세포가 손상될 수 있음을 증명하려 했지만 실패했음을 인정했다고 말한다.* UFO에 관한 세 가지 가설 - UFO(미확인비행물체)의 신봉자인 레슬리 킨은 “UFO 목격담의 90~95%는 설명가능한 현상”이라고 말한다. 뒷받침하려는 동영상들도 많다. 하지만 저자는 세 가지 가설을 언급한다. 첫째, 카메라 렌즈 효과나 착시, 풍선 등 ‘평범한 지상 현상’일 수 있다는 것이다. 2004년 샌디에이고 부근에서 알렉스 디트리히 중령이 찍었다는 동영상이 대표적이다. 제트기 동체에 카메라 포드를 부착해 미 해군 첨단 적외선 전방 조준 시스템으로 찍은 이 영상들은 흔히 FLIRI나 GIMBAL, Go Fast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FLIRI’는 미 해군도 조작이 아니라 ‘진짜’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전문가인 믹 웨스트는 영상 속 비행체가 접시 모양인 것은 카메라 렌즈의 반사광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영상 재생 속도를 반으로 줄이자 비행체의 비범했던 움직임도 아주 평범해졌다. GIMBAL 영상도 물체 회전이 의도되지 않은 카메라 효과이고, 비행접시는 멀어지는 비행체의 엔진이 뿜어내는 적외선 섬광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두 번째는 러시아나 중국 정찰기 또는 생소한 물리학과 공기역학적 특성의 드론 같은 ‘평범하지 않은 지상 현상’일 가능성이다. 전문가들은 목격자들 증언처럼 24km 높이에서 몇 초만에 해수면으로 내려가고 갑자기 회전하거나 음속 폭음 없이 음속장벽을 깨는 것은 아무리 뛰어난 외계문명이라도 현재의 물리학이나 공기역학적으론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진짜 ‘비범한 고등 외계 현상’일 가능성이다. 최소 1조 개의 은하, 총 10의 23제곱의 별이 있을 것으로 추산되는 광활한 우주에는 실제 지적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 은하에만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문명이 335개에 이른다고 한다. 하지만 거리가 10만 광년, 너비가 5만 광년인 우리 은하 상황을 감안하면, 이런 소수의 문명과 접촉할 확률은 천문학적으로 낮다. UFO가 외계 지적 생명체라는 가설도 사실일 가능성이 극히 떨어진다. 결국 증거의 부재는 지구에 외계 지적 생명체가 없다는 증거가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텅빈 지구’ 속으로의 환상 여행 - 지구가 속이 빈 공이며, 그 안에서 문명이 번성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1600년대 중반 아타나시우스 카르허가 쓴 지하세계라는 책이 이런 믿음을 확산시켰다. 그는 지구 안이 커다란 벌집처럼 복잡한 굴과 연결통로, 심연 등으로 얽혀 있다고 상상했다. 30년쯤 뒤 영국 천문학자 에드먼드 헬리도 “비어 있는 지구 속에 또 다른 속이 빈 구체들이 들어있다”고 주장했다. 혜성 주기를 예언한 천문학자의 말이었기에 모두 혹했다. 1818년에 미 육군장교 출신의 존 클리브스 시머스는 아예 지구 속 탐험의 후원자를 찾았다. 미국 상하원에 탐험대 조직을 위한 청원서까지 제출했고 제임스 맥브라이드 같은 부자 학자가 지원자로 나섰다. 저자는 그러나 이런 주장이 지구가 평평하다는 주장만큼이나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일축한다. 천문학자들도 중력과 원심력 때문에 두 개의 껍질로 분리된 세계가 만들어진다는 주장은 난센스라는 것이다. 지구 속 주민들도 아래로 잡아당기는 중력 때문에 지구 중심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지구 밀도 계산에서도 지구 공동설을 뒷받침할 수치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지구 공동설은 종교로까지 확산됐다. 지구 속에 또 다른 태양이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한 극지 탐험가가 1947년 북극의 작은 구멍을 통해 지구 속을 비행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그러나 모두 사실무근으로 드러났고, 이후 많은 과학적 실험을 통해 지구공동설은 사실이 아님이 확인되었다. 사실 행성 내부 구조를 연구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가장 깊은 광산 깊이도 고작 4km에 불과하다. 지구 핵을 곧장 통과하는 직선 터널을 뚫고 지구 반대편까지 가려면 그 길이만 1만 2875km에 이른다.* 과학은 ‘예지몽’을 어떻게 설명하는가 - 꿈에서 미래를 본 적이 있다며 ‘예지몽’을 믿는 이들이 많다. 링컨 대통령이 자신이 죽는 꿈을 꾼 지 2주 만에 암살당했다는 얘기가 대표적이다. 1960년대 과학자들이 큰 수술을 받은 환자들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환자들의 꿈에 각자의 불안이 반영되는 경향이 있음을 확인했다. 과학자들은 링컨이 실제로 재임 기간 동안 수차례 암살 협박에 시달렸다는 점을 들어, 링컨의 꿈이 기이한 것이 아니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저자는 예지몽 같은 초자연적인 현상과 관련해, 특이한 사건이더라도 발생 기회가 많으면 발생 가능성이 높다는 ‘대수의 법칙’을 얘기한다. 복권 당첨 확률은 수백만 분의 일이지만 규칙적으로 당첨자가 나오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복권을 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수면에 대한 과학적 연구와 통계학은 불안과 대수의 법칙을 예지몽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그리고 대수의 법칙에 따르면 수많은 예견 중 소수만이 옳은 것으로 판명된다고 말한다. 1927년 대서양 무착륙 단독 비행에 성공한 찰스 린드버그가 1932년 아이를 유괴 당하자, 하버드 대학의 심리학자 헨리 머리는 이 사건을 예지몽 연구와 연계시켜 범인을 찾는 실험을 했다. 아이는 나무 근처 구덩이에 묻혀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예지몽을 꾸었다는 약 1300명의 예견을 취합해 보니 5%만이 아이 사망을 암시했고, 그 중 4건만이 나무 근처에 아이가 묻혔다고 언급했다. 사다리나 협박 편지, 몸값과 관련된 진짜 예견은 하나도 없었다. 예지몽은 초자연적 힘이 아닌, 일반적인 능력이라는 것이다.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은 꿈이 미래를 알려준다고 믿었지만 저자는 “초자연적 현상을 믿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수면과학은 악몽”이라고 말한다.* 뇌의 전기자극과 유체이탈 경험 - 올라프 블랑케 연구팀은 2002년 네이처에 43세 스위스 여성 우뇌에 전기자극을 주어 유체이탈경험을 유도한 결과를 발표했다. 우측 측두엽 간질로 인한 복합 부분 발작을 겪던 이 환자는 뇌 표면에 직접 전기자극을 주자 유체이탈을 경험했다고 한다. 침대에 누워있는 자신을 내려다보았는데 다리와 몸 아래 쪽만 보이더라고 했다. J.M. 홀든 연구팀은 이에 “진짜 유체이탈경험과 혼동해선 안된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몸 일부분만 본 경우는 전형적인 사례가 아니며, 환자의 경험이 비현실적이고 단편적이며 왜곡되었고 환상적이라고 했다. 진짜 유체이탈경험은 환상적으로 느껴지기 보다 현실처럼 느껴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자도 유체이탈경험을 일으키는 것으로 발견된 뇌 영역이 이전에 보고된 수많은 과학 문헌 내용과 일치하며, 더 깊은 정보를 제공하느냐가 중요하다고 거든다. 이전에 발표된 특발성 유체이탈 경험자에 대한 수많은 신경학 논문은 두정엽과 측두엽, 후두엽 연결 부분의 교란을 계속해서 암시했다. 이는 개인에 따른 다양한 ‘전정 감독’의 교란, 수면에 빠질 때 일어나는 유체이탈경험과도 일치하며 두정엽이 연관되었을 가능성을 거듭 암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유체이탈경험처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면, 다른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유체이탈경험의 실제성을 관찰하고 통제된 방법으로 엄격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직도 긍정적인 결과는 보고되지 않고 있다고 덧붙인다.* ‘심령사진’의 숨겨진 비밀 - 최초의 심령사진은 150년 전 미국에서 등장했다. 사진사였던 윌리엄 멈러가 찍은 사진에 죽은 사람의 모습이 나타난 것을 계기로 그는 ‘심령사진사’로 이름을 떨친다. 심령론자들은 사후에 영혼이 현세에 계속 남아있다고 믿으며 영매(靈媒)가 영혼과 인간의 매개자로 혼령을 불러낼 수 있다고 말한다. 멈러는 사기혐의로 재판에 회부되었고, 사진 속 유령들이 당시 생존해 있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사진 조작 의혹이 확증되었다. 하지만 심령사진 열풍은 영국으로 이어졌다. 런던에서 사진사 프레더릭 허드슨이 전문사진관을 세워 매일같이 심령사진을 찍어댔다. 그의 사진 속 유령은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랑 하는 사람들과 비슷했다. 하지만 곧 속임수의 단서들이 발견됐다. 이중노출 기법으로 사람들을 속인 것이다. 허드슨은 사진 속 이중노출의 흔적들이 영혼들의 힘에 의해 우연히 발생한 것이라고 반박했고, 실제 강령회에서 살아있는 유령이 나타나는 상황을 재현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초자연현상 연구자 엘리너 시지윅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사진사와 영매의 결탁을 찾아낸 것이다. 시지윅은 허드슨이 유명 마술가게에서 만든 카메라 안에 숨겨진 장치로 감광판에 유령 이미지를 드러나게 했다가 카메라가 노출되면 감쪽같이 사라지게 만들었다고 폭로했다. 영매들이 심령사진사들과 속임수에 사용하던 방법들도 공개했다. 이후 프랑스 미국 등지에서도 가짜 심령사진사들이 창궐했다가 거짓이 탄로나 망신을 당했다. 셜록 홈즈를 쓴 코난 도일도 심령론에 심취해 자신의 책을 통해 심령사진을 적극 옹호하기도 했다. 저자는 “수많은 사기행각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것은, 조사관들조차 현장에만 가면 속임수를 바로 잡아낼 수 있으리라 착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속임수를 밝혀내지 못하면 속임수가 없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는 것이다.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2022-10-29 09:00 조진래 기자

[비바100] ‘나’에서 시작하는 ‘쿨한’ 놀이, 일상, 세상 그리고 마케팅! ‘친절한 뒷담화 2023’

사회의 변화 속도는 점점 가속도가 붙고 있다. 특히 2020년부터 장기화된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은 기술의 발전을 앞당겼고 라이프스타일을 파격적으로 변화시켰다. ‘친절한 트렌드 뒷담화 2023’는 3년 전부터 10월이면 출간되는 라이프스타일 인사이트다. 글로벌 광고대행사 이노션의 싱크탱크인 인사이트전략 1, 2팀과 데이터인사이트팀에 근무하는 18명의 컨설턴트가 사회 변화와 현상을 분석한 결과물이다. 책은 ‘놀이’ ‘일상’ ‘세상’ ‘마케팅’이라는 4개 파트에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변화의 원인과 시사점 그리고 활용가치를 나눠 담는다. ‘놀이’ 파트에서는 새로운 핫플레이스가 된 팝업스토어에 대한 ‘팝플레이스: 시간제한플레이’, 달라진 정보탐색 트렌드를 담은 ‘핫플 내비게이션: 요즘 찐핫플 탐색법’, 일상이 콘셉트인 Z세대들의 성향을 분석한 ‘컨행일지: Z세대 컨셉 놀이’, 변화된 술 문화와 그에 따른 대응책까지를 아우르는 ‘MZ의 주류사회: 취향에 취하다’를 다룬다.친절한 트렌드 뒷담화 2023|이노션 인사이트그룹 지음(사진제공=싱긋)‘일상’에서는 팬데믹 시대와 위드 코로나 시대, 갓생 트렌드, 셀프시대, 사이드 프로젝트, ‘세상’에서는 짠테크, 버추얼 유튜버, 패션계에서 주목받는 X세대, 아트테크 열풍, ‘마케팅’에서는 명품 브랜드의 FB, 멤버십 구독서비스, 퍼포먼스 마케팅, 친환경 마케팅의 현상과 원인 그리고 향후 방향성까지를 아우른다.‘팝업스토어’라는 키워드 언급량, 연령대별 검색량, 상위 20위 연관어 등 다양한 데이터를 통해 현상을 분석하고 그 예가 되는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 청담, 진로 두껍상회 강남, LG전자의 금성오락실 성수, 현대자동차의 팰리세이드 하우스, 디올 성수와 29맨션, 프로젝트렌트1호점, 가나 초콜릿하우스 등을 소개한다.더불어 ‘핫플레이스는 몸소 체감할 수 있는 트렌드의 바로미터’라며 플랫폼화, 디지털 연결성으로 발전할 팝업스토어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식이다. 세 번째 ‘친절한 트렌드 뒷담화’의 또 다른 특징은 브랜드 인덱스를 조사·분석해 꾸린 ‘스페셜 리포트’다. 2023년을 아우를 키워드로 ‘쿨함’(Cool)으로 정의하고 그 의미 탐색과 그에 해당하는 유명인, 산업분야, 브랜드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까지를 꼼꼼하게 풀어낸다.‘신뢰도 높은 리뷰’ ‘내 삶의 완벽한 주인공’ ‘믹솔로지’ ‘취향존중’ ‘나 자신을 위한 목표’ ‘셀프사회’, 워라벨의 회색지대로 나만의 콘텐츠를 만드는 ‘사이드 프로젝트’, ‘개인화에서 초개인화’ 등에 대해 얘기하는 ‘친절한 트렌드 뒷담화 2023’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나 자신’ ‘직접 체험’처럼 보이기도 한다. 2023년 트렌드의 핵심은 ‘나’로서 접근하는 ‘쿨한’ 놀이와 일상 그리고 직접 체험하고 판단해 소비하는 세상과 마케팅일지도 모른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2-10-27 18:00 허미선 기자

[브릿지경제 신간(新刊) 베껴읽기] <플레이 나이스 벗 윈> 마이클 델

‘델 테크놀로지’ 창업주이자 회장인 마이클 델에 관해 의외로 국내에선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경영서적에서도 유독 그의 사례는 흔치 않다. 그래서 본인이 직접 쓴 이 책은 마이클 델이라는 경영인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혁신적 성장을 위해 상장기업을 비상장기업으로 과감히 전환한 이야기,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과의 피를 말리는 경영권 다툼, 단순 조립 컴퓨터 회사를 첨단 기술 인프라기업으로 탈바꿈시킨 그의 짧지 않은 역사를 소상히 볼 수 있다. 10대의 대학 자퇴생 창업가에서 불패의 리더로 성장한 마이클 델의 38년 비즈니스 혁신 로드맵을 확인해 보자.* 컴퓨터 분해가 취미였던 아이 - 마이클 델은 삼 형제 중 둘째였다. 어머니의 재능과 호기심을 물려받은 그는 일찍부터 컴퓨터에 남다른 관심과 재능을 보였다. 그는 ‘애플Ⅱ’라는 컴퓨터 모델을 출시한다는 기사에서 애플의 공동창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이 “PC는 작고 신뢰할 수 있고, 사용하기 편리하면서 비싸지 않아야 한다”고 한 말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겨 버린다. 당시 소비자가격이  지금가치로 5000달러의 초고가였지만, 부모를 졸라 14세 때 기어이 자신이 저축해 모은 돈을 합해 애플Ⅱ를 손에 넣게 된다. 물건이 도착하자 그는 곧장 컴퓨터를 분해했다. 이후 컴퓨터를 잘한다는 소문이 퍼졌고 델은 개발자 등과 컴퓨터에 푹 빠지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워즈니악을 만나게 된다. 워즈니악은 “사람들이 PC를 통해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될 것”이라며 그를 감동시켰다. 5년 후 델은 그와 스티브 잡스와 친구가 된다. 1981년에 IBM이 PC 5150을 앞세워 PC시장에 진출하면서 그는  PC가 미래의 대세가 될 것이라고 굳게 믿게 된다. 텍사스주립대 의대에 합격했지만 그는 이미 컴퓨터에 너무 깊이 빠져 있었다.* 10대부터 기업가정신을 보여주다 - IBM PC는 출시와 동시에 엄청나게 팔려 나갔다. 어마어마한 주문 탓에 지역 소매점들은 극심한 물량 부족을 호소했다. 델은 이 때 공급이 여유있는 도시에서 여러 대 PC를 구입한 후 물량이 달리는 다른 도시에 가져다 파는 사업을 펼친다. 10대 말에 그는 거의 매주말 비행기를 타고 다니며 손쉬운 차익 거래를 했다. 컴퓨터를 직접 개조해 팔기까지 했다. 업그레이드 된 그의 PC는 빠르게 팔려 나갔다. 신문광고까지 내면서 구매요청이 쇄도했다. 이때부터 ‘IBM과 경쟁하고 싶다’는 포부를 갖게 된다. 의대 진학보다 컴퓨터 사업에 올인하기로 결심한다. 1984년 고교 학기말 시험을 2주 남긴 시점에 그는 ‘델 컴퓨터 코퍼레이션’, 비공식적 상호 ‘PC’s 리미티드‘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세운다. 불과 19살, 회계가 뭔지도 모르는 대표가 된 것이다. * 바쁘게 성장하는 청년 CEO - 델은 영업 시작 9달 만에 8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1986년 첫 해 매출은 3300만 달러에 달했다. 주문조립식으로 PC를 만들어 그날 출고하는 델의 방식을 모방하는 기업이 속출했지만 유일하게 델만 성공했다. 소매점보다 훨씬 싼 가격으로 직접 PC를 판매하고, 고객들이 원하는 주변기기까지 제공하는 비즈니스 모델 덕분이었다. IBM 제품의 성능을 개선하고 가격을 낮춘 것이다. 사무실에 침대를 두고 하루 16시간 일을 했다. 1985년 6월에는 ‘터보’라는 이름의 첫 델 제품을 선보였다. 인텔의 8088 CPU와 640킬로바이트의 램, 360킬로바이트의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장착한 제품을 통신판매와 전화주문으로 795달러에 팔았다. 비슷한 사양의 IBM 컴퓨터는 1500~2500달러였다. 델은 이후 잇달아 저가형 컴퓨터와 빠른 컴퓨터, 고성능 컴퓨터 등 세 종류의 제품을 선보이며 두각을 나타냈다. 회계문제 해결방안을 찾지 못해 더듬거리긴 했지만 성장속도는 빨랐다.    * 마침내 회사에 ‘델’ 이름을 걸다 - 회계와 투자 유치 등의 문제로 한창 골머리를 앓을 때 델은 리 워커라는 조력자를 만난다. PS’s 리미티드의 사장직을 맡은 그는 CFO와 최고회계책임자 부부를 경질하는 것부터 시작해 회사를 개방적이고 합리적으로 재구축해 갔다. 특히 그동안 등한시했던 품질관리에 전력을 기울여 ‘작지만 빠른’ 기업 이미지를 완성해 갔다. 무료방문 서비스가 큰 인기를 끌면서 커다란 도약의 발판도 마련하면서 투자은행들이 전화를 걸어오기 시작했다. 1987년 10월 19일 ‘블랙 먼데이’의 대폭락 사태에도 끄덕 없었다. 델은 기업공개를 생각하게 된다. PS’s 리미티드로 상장을 할 순 없었기에 영국 브런치에서 인지도를 높여가던 ‘델 코퍼레이션’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붙힌 이름으로 상장을 결정한다. 델의 기업공개 소식에 IBM은 불쑥 경고장을 날렸다. 델이 자신의 특허를 침해했으니 상장 중지를 명령하는 내용증명이었다. 특허에 아무런 지식이 없던 델은 우여곡절 끝에 IBM측과 특허 사용료 계약을 맺고 마침내 IPO를 진행하게 된다. 그리고 주당 8.5달러에 나스닥에서 ‘DELL’이라는 이름으로 상장됐다.  * 경영위기 속 3년 만에 다시 CEO로 복귀하다 - 델은 2004년 7월에 케빈 롤린스에게 CEO 자리를 물려주었다. 그 해 델은 이익이 15%나 급증했고 2005년 1월 PC시장 점유율은 18.2%에 달했다. 2월에는 포춘의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1위 기업’에 선정됐다. 하지만 9월부터 상황이 급변했다. 매출의 60%인 PC와 노트북 부문의 이익에 이상이 생겼다. 휴렛팩커드 레노버 같은 경쟁기업이 맹추격하는 가운데 컴퓨터 산업의 중심이 노트북 쪽으로 빠르게 이동하며 델의 주문제작 방식이 경쟁력을 잃게 되었다. 고객들은 제품 자체보다 서비스와 솔루션에 더 관심이 많았다. 마이클 델은 결국 2007년에 CEO로 복귀했고, 즉시 14억 달러에 데이터스토리지 기업인 이퀄로직을 인수하고 페로시스템즈, 컴펠런트, 인사이트원  같은 스토리지와 시스템 관리, 클라우드 등 소프트웨어 기업을 속속 사들였다. 다행히 2012 회계연도에 델은 사상최대 매출과 이익, 영업이익, 현금흐름과 주당순이익을 실현한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에선 실패했다. 2018년엔 시장점유율이 10.5%로 하락하고 수익도 다시 감소했다. 언론은 델이 여전히 PC를 만드는 기업이고, PC는 죽어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주가도 계속 하락했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상장기업에서 비상장기업으로 전환을 모색하다 - 델의 2대주주였던 사우스이스턴에셋매니지먼트의 CIO(최고투자책임자) 스탤리 케이츠가 델을 비공개 기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0년 닷컴버블 붕괴 이후 금리 하락 때 잠시 얘기가 나왔었는데, 실버레이크파트너스라는 사모펀드의 에곤 더반을 만나면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델이 비공개기업으로 전환하고 상장폐지하려면 모든 주식을 사들여야 했다. 250억 달러의 엄청난 자금이 필요한 것으로 추정됐다. 마이클 델은 상장기업에 가해지는 단기성과 압박 등을 받지 않는 비공개기업에 매력을 느꼈지만, 주주들은 가능한 가장 높은 가격에 자기 주식을 사주기를 바랐다. 델은 사외이사들이 허락하지 않으면 어떤 외부인과도 더 이상의 논의를 하지 않겠다는 신중론을 폈다. 다행히 이사회도 비공개기업으로 전환을 긍정적으로 보았다. 곧 비공개 전환을 검토하기 위해 이사회로부터 완전하고 독점적인 권한을 위임받은 특별위원회가 꾸려지고, 알렉스 만들이 의장에 올랐다.* 스마트폰이 PC를 대체할 수 없을 것이란 확신 - 마이클 델은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사모펀드와 함께 델을 인수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누군가 회사를 가로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더구나 특별위원회가 임명한 전문가들은 델의 경영상태를 매우 비관적으로 평가했다. JP모건은 엄청난 시가총액, 악화되는 PC 시장 리스크, 최근의 실적 악화 등을 이유로 델 인수에 관심을 가질 투자자가 있을 지 의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매사에 낙관적인 델은 회사의 가능성을 더 크게 보았다. 당시 가장 전망 좋은 상품이었던 스마트폰과 태블릿도 감히 PC를 대체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비즈니스 시장에서 PC의 가치는 견고하다고 확신했다. 고객들은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읽고, PC로 일할 것이라고 믿었다. 델은 비공개기업으로 전환해야 회사의 기업가 정신에 활기를 불어넣고, 더 시장점유율을 확대하고, 연구개발 투자와 영업 역량을 강화해 혁신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야 PC와 서버의 가격 결정을 보다 공격적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전환 비용이 많이 들어가겠지만 훨씬 더 많은 이득을 낼 수 있다고 확신했다.* 시작부터 난항인 가격 협상 - 델은 KKR과 실버레이크파트너스에 회사의 모든 재무상황을 공유하고 그들에게 예비제안서를 제출했다. KKR은 델과 사우스이스턴이 보유한 지분을 제외한 모든 발행주식에 주당 12~13달러 정도의 매수가격을 제시했다. 델에게는 5억 달러의 추가 투자를 요청했다. 실버레이크는 별도로 델의 보유 주식 외 모든 발행주식에 주당 11.22~12.16달러를 제시했다. 델은 양 측에 더 좋은 제안을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기업인수에 성공한 당사자가 지불할 가격에 당시 회사 지분의 15.7%에 해당하는 자신의 주식을 넘기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다 블룸버그 통신이 ‘델이 사모펀드와 인수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보도를 하면서 상장폐지 계획이 대중에게 알려지게 된다.* 누군가 델을 가로챌 수도 있다? - 가격협상이 수개월 째 지연되면서 델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인수자 후보를 찾았다. 그러다 실버레이크와 13.65달러에 합의한다. 분기별 정기 배당금을 계속 지급한다는 데도 동의했다. 알렉스는 특별위원회를 대표해 이사회에 제안 수락을 권고했고 만장일치로 승인이 났다. 실버레이크는 총 244억 달러에 차입 매수하는 방식으로 델의 비공개기업 전환을 공식화했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대규모 기업인수지만 위험하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도 “대단한 도박”이라고 했다. 마이클 델을 겨냥한 온갖 험담이 쏟아졌다. 사우스이스턴은 “델의 정확한 가치는 주당 23.72달러”라며 델이 회사를 망쳤다는 인식을 심어주려 했다. 휴렛팩커드는 “델이 장기간의 불확실성과 변화에 직면할 것”이라며 이제 자사 제품을 구매하라고 노골적으로 나섰다. 그런 사이에 블랙스톤과 칼 아이칸이 레이더에 포착된다. CNBC는 칼이 1억 주, 이해관계가 없는 전체 주식의 약 6%에 달하는 지분을 긁어모았다고 보도했다. 사우스이스턴이 보유한 8.5%보다 조금 적은 규모였다.* 문제를 일으키는 기회주의자 칼 아이칸 - 저자는 행동주의 투자자라고 불리는 칼 아이칸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무엇이든, 무슨 말이든 기꺼이 하는, 권모술수에 매우 능한 기업 사냥꾼’이라고 폄하한다. ‘문제를 일으키는 기회주의자’라고 깎아 내린다. 칼은 델의 특별위원회에 자신이 발행주식의 최대 25%까지 인수할지 모른다고 통보해 왔다. 델을 그대로 상장기업에 남겨두라는 압박이었다. 나중에는 주당 15달러에 58% 지분을 인수할 의사가 있으며, 나머지는 상장 주식으로 그대로 둘 것이라고 말했다. 블랙스톤 역시 델을 상장기업으로 그대로 두는 조건으로 회사 전체 지분을 주당 14.25달러에 현금 또는 일부 주식으로 매입할 뜻을 내비쳤다. 칼은 블랙스톤과 힘을 합칠 수 있다는 등 특유의 언론 플레이로 압박했다. 칼은 델의 표현대로라면 ‘자신은 욕심 많은 해적이 아니고, 주주 권리를 위해 싸우는 외로운 십자군처럼 보이도록’ 포장했다. 칼은 사우스이스턴과 연합해 델을 회사에서 퇴출시킬 원대한 계획을 짜는 것 같았다. 실제로 칼과 사우스이스턴은 주주들에게 주당 12달러의 현금이나 추가 주식을 주고 싶다고 말하면서  총회에서 자신들이 지명할 이사들의 명단을 공개할 의도를 보였다. * 칼 아이칸과의 갑작스런 담판 - 델은 칼이 회사를 인수해 키우고 싶어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모든 수단으로 압박해 델 측의 인수 제안 가격을 높여 자신을 더 부자로 만들려는 생각 밖에 없다고 확신했다. 진위를 알고 싶었던 델은 어느 날 칼에게 전화를 해 칼의 집에서 갑작스럽게 저녁 약속을 잡게 된다. 칼은 자신이 프린스턴에 합격해 학비의 절반을 포커 게임에서 이겨 충당했으며, 철학을 전공했다가 뉴욕대 의대를 2년 다니다 군에 입대해 25세 때 월스트리트에서 주식중개인으로 일했다는 개인사를 털어 놓았다. 델은 단도직입적으로 칼에게 회사를 통제할 계획이 있는 지 물었지만 답을 듣지 못한다. 대신 주당 14달러가 적당할 것이란 얘기만 들었다. 델은 “당신이 회사를 망하게 할 것”이라고 쏘아 부쳤다. 그날 만남에서 델은 칼이 회사에 관해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자신감을 얻었다. 만남 이틀 후 델 이사회는 만장일치로 주주들에게 델 측의 제안을 받아들이라고 권고했다. 이후에도 칼은 주당 14달러에 주식을 인수하기 위해 52억 달러의 자금을 모으려 투자은행과 협력할 것이라는 등의 언론 플레이를 지속했다. 하지만 델과 특별위원회의 비밀 공모설을 걸어 그가 제기한 소송이 기각되면서 칼은 계획에 큰 차질을 빚게 된다. * ISS와의 담판 ‘게이더스버그 전투’ - 델은 메릴랜드주 게이더스버그에서 유력 의결권 자문기구인 ISS 경영진을 만나 설득했다. 자신이 회사 설립 이후 줄곳 회사 발전 방향을 제시해 왔으며, 점점 더 빨라지는 PC 산업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회사의 변화를 이끌어 왔으며, 칼이 델의 가치를 높게 주장하지만 이는 진실을 왜곡하는 것이며, 그들이 내세우는 새 경영진도 허구라고 주장했다. 다행히 ISS는 델의 주주들에게 거래에 찬성하라고 권고했고, 또 다른 의결권 자문기구인 글래스루이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여전히 과반 이상의 승인은 미지수였다. 주총이 다가오면서 블랙록과 뱅가드그룹 등이 반대에서 찬성으로 돌아섰지만, 이번엔 ‘발행주식 중 소수 주주의 과반이 찬성해야 한다’는 특별 규정이 발목을 잡았다. 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결국 주총은 연기되었다. 당시 찬성 주식은 5억 3900만, 반대 주식은 5억 4100만 주였다. 델이 승리하려면 이해관계가 없는 독립적인 주식 14억 7628만 8661주의 절반보다 1주 많은 7억 3800만 주 이상을 확보해야 했다. 1억 9900만 주가 더 필요했다. 델은 특별규정 수정을 특별위원회에 줄기차게 요청했다. 그리고 결국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주식을 반대표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걸고, 주당 인수 가격을 13.75달러로 인상하겠다고 최후 통첩을 날렸다.* 세계에서 가장 큰 스타트업 - 2013년 8월 2일 주총에 앞서 특별위원회는 주당 13.75달러라는 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투표하지 않는 주주들의 표는 반대와 같다는 기존의 투표 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이대로는 결과가 뻔했다. 델은 승부수를 던졌다. 자신이 거래에 투입하기로 한 주식의 가격을 낮춤으로써 기존 가격에 0.08 달러의 특별 추가배당금을 지급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렇게 되면 주당 인수 가격이 13.83달러가 된다. 여기에 더해, 거래가 성사되지 않으면 실버레이크는 위약금을 4억 5000만 달러가 아니라 1억 8000만 달러만 받겠다고 했다. 그 대가로 특별위원회의 투표 규정을 바꿔달라고 맞섰다. 결국 특별위원회는 승인을 했고, 칼 아이칸은 델과 실버레이크를 고소했다. 칼은 그 와중에 사우스이스턴으로부터 추가로 400만 주를 사들여 개인 지분을 거의 9%까지 높였다. 웃돈을 주고 자기 주식을 사가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결국 칼은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 하지만 그는 거래가 성사되던 날에 즉시 보유주식을 팔아 수천만 달러의 이익을 챙겼다. 이제 ‘델 코퍼레이션’은 세계에서 가장 큰 스타트업이 됐다.* 엄청난 사업확장, 좌절, 그리고 변화와 혁신 - 델은 1991년에 5억 4600만 달러 매출로 포춘 500대 기업 목록에 490위로 입성했다. 델의 나이 불과 26세였다. 1993년 1월에는 매출이 10억 달러를 돌파했다. 하지만 빠른 성장 탓에 회사가 흔들렸다. 유동성과 수익성, 성장의 순서라야 했는데 오로지 성장, 성장 뿐이었다. 빠른 성장에 모든 것이 덮혀져 있었다. ‘성장통’은 1994년 1분기에 극명하게 나타났다. 수익이 48%나 하락하고 두 번째 증자도 포기해야 했다. 구형 노트북 수리와 새 모델의 폐기로 발생한 손실이 2000만 달러가 넘었다. 변화가 필요했다. 엄청난 수익성을 자랑하는 서버 사업이 타깃이었다. 경쟁사인 컴팩도 여기서 생기는 막대한 수익으로 PC 적자를 메워가고 있었다. 이내 썬마이크로시스템즈를 제치고 전문가용 워크스테이션 시장에서 점유율 1위에 올랐다. 온라인 구매와 델의 통신 판매는 완벽한 조합이었다. 1996년부터는 웹사이트에서 PC와 노트북을 팔아 하루 온라인 매출이 100만 달러에 달했다. 1994년부터 1996년까지 델은 정말 엄청난 속도로 성장했다. * 스티브 잡스와의 깊은 인연 - 1980년대와 1990년대 회사가 한창 성장할 때 델은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를 알게 됐다. 게이츠는 사업 파트너이자 협력자였다. MS가 델 컴퓨터의 운영체계(OS)를 만들었다. 잡스는 함께 사업하고 싶어하는 창업자 동료로 가까워 졌다. 잡스는 델의 PC에 자신의 운영체계를 사용하도록 델을 설득하기도 했다. 잡스와는 사업자 관계로는 발전하지 못했지만, 가끔 오랫동안 산책하며 일과 인생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이였다. 언론들은 그런 둘을 숙적으로 몰아갔다. 1997년 가을에 애플이 파산 직전까지 간 때가 일화 때문이다. 한 행사 사회자가 델에게 “당신이 애플의 CEO라면 무얼 할 것인가”라고 물었고 델은 “회사를 청산하고 주주들에게 돈을 나워줄 것”이라고 웃으며 답했다. 거두절미 “델이 애플이 문을 닫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달되면서 난처한 상황이 만들어 졌다. 화가 날 법 했지만 잡스는 델에게 이 메일로 “CEO는 품위가 있어야 해요. 그게 당신 견해가 아니란 걸 알아요”라고 점잖게 꾸짖었다. 잡스는 이후 한 행사에서 커다란 델의 사진을 거대한 과녁과 오버랩하면서 “기다려 친구야”라고 유쾌하게 받아 쳤다.* 사상최대 규모의 ‘프로젝트 에메랄드’ - 2013년 10월 30일 비공개기업으로 전환한 이후 델은 과거보다 더 빠르고 기민해 졌다. 가장 효율적인 시점에 회사의 중요한 결정을 실행할 수 있었다. 매 분기마다 점유율을 높여갔고 더 빠르게 채무를 갚아 나갔다. PC와 스마트폰은 델의 말처럼 대체제가 아니었다. PC는 여러 이유로 가장 일하기 쉬운 도구였다. 하지만 델은 PC를 넘어서는 더 큰 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소프트웨어 시장이었다. 총 수익이 15~20%인 PC와 달리, 그 보다 훨씬 많은 소프트웨어가 들어가는 스토리지 어레이의 수익은 60%에 달했다. 2000년대 말 델은 PC를 더 비싼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를 판매하기 위한 잠재적인 미끼상품으로 생각하기에 이른다. 델은 실제로 델 테크놀로지스를 PC를 넘어서는 기업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일을 했다.* EMC와의 역사적 합병 - 가상화 분야에서 탁월한 경쟁력을 가진 강소기업 VM웨어를 인수한 EMC와의 합병이 백미였다. 강력한 하드웨어-소프트웨어 데이터저장시스템을 가진 EMC와 델은 2001년 10월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델로선 급성장하는 서버 사업에 EMC의 고성능 저장장치를 추가하는 것이었고, EMC로선 보다 많은 고객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강력한 유통 채널을 얻는 효과가 있었다. 여기에 VM웨어의 가상화 역량은 PC와 서버에서 스토리지, 네트워킹, 보안에 나아가 클라우드까지 확대됐다. 델과 조 투치 EMC 창업자와의 두터운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한 합병이었다. 당시 EMC의 시가총액은 590억 달러에 달했다. 60대 초반이던 조는 확실한 후계자만 있다면 물러나고 싶어 했다. 문제는 시스코시스템즈와 휴렛팩커드가 동시에 EMC를 탐내고 있었다는 점이다. 특히 HP의 맥 휘트먼은 델보다 먼저 합병 얘기를 꺼냈고 성사 직전까지 갔었다. 주식 맞교환 방식으로 추진되던 이 딜은 그러나 막판에 HP가 EMC보다 5% 더 프리미엄을 요구하는 바람에 깨져 버렸다. 덕분에 2015년 10월 12일 델과 EMC는 ‘델 테크놀로지’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기업이 되었다. 45억 달러 자본금의 델이 670억 달러 기업을 인수한 것이다. 채권 발행으로 엄청난 자금을 조달해야 했지만, 델의 서버 사업과 EMC의 스토리지 사업의 결합은 거대한 인프라를 만들어냈다. 2018년 1분기에 세계 서버시장에서 델은 50% 이상 매출 신장 속에 1위 HP를 제쳤다. 합병과 함께 따라온 VM웨어의 81% 지분은 ‘노다지’였다. 2018년 중반까지 1년 동안 81억 달러의 매출과 33억 달러의 잉여현금흐름을 만들어 냈다. 그 해 중반까지 합병을 완료하기 위해 떠안았던 부채의 상당 부분도 바로 상환됐다.* ‘데이터 대폭발’을 준비하는 기업 - “우리는 델을 필수적인 IT 인프라 기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델 만의 독특한 시장 포지션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마이클 델은 이렇게 말했다. 조립 PC를 만들던 델이 이제는 IT 인프라 분야를 주도하는 기업이 된 것이다. 지금은 다시 공개기업으로 전환했지만, 비공개 기업 전환을 선언한 후 8년 동안 델의 지분가치는 625% 늘었고 기업 가치는 1000억 달러 이상으로 증가했다. 2013년에 사망선고가 내려질 뻔 했던 그 회사가. 델은 델 테크롤로지스의 성장과 성공만큼 흥미로운 것이 혼란스러울 정도로 엄청난 기술의 발전 가능성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것을 ‘빅 데이터 세계에서 캄브리아 시대의 대폭발’이라고 표현했다. 델은 “디지털의 미래는 함께 작동하는 클라우드의 집합”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상당한 자원을 클라우드 구축에 투입한다. 델은 40억 달러 이상을 연구개발에 투자한다. 기술은 불과 같다 생각한다. 우리를 따뜻하게 만들어주고 길을 밝혀주기 때문이다.* 25억 달러를 기부하다 - 델이 아내인 수잔과 함께 만든 ‘마이클앤드수잔델재단’은 미국과 인도, 남아프리카의 도시빈곤 지역에서 교육과 건강, 가족의 경제적 안정을 개선하는데 헌신하고 있다. 처음에는 델의 주식을 팔아 재단을 지원했으나 이제는 17억 달러 정도의 기금으로 투자를 통해 운영되고 있다. 기술지원 프로젝트와 임팩트 투자로 늘어난 재단의 지출 금액도 19억 달러를 넘어섰다고 한다. 델 부부는 이 재단에 25억 달러를 기부했다. 재단은 미국에서 델 장학금 프로그램을 만들어 저소득 중고생들이 대학에 갈 수 있도록 지원한다. 남아프리카에서는 ‘델 영 리더스 프로그램’을 추진한다. 매년 세계적으로 35만 명의 저소득층 대학생들이 학사 학위를 받을 수 있게 지원하는 게 일차 목표다. 인도 도시지역에서는 소액금융을 지원한다. 수백 만의 인도 가정들이 지원을 받았다. 재단은 매년 300만 저소득 가구의 재정적 안정성을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잡고 있다. 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2022-10-22 08:30 조진래 기자

[비바100] "일은 하되 책임은 NO" MZ세대도 '라떼'가 된다! '트렌드 코리아 2023'

트렌드 코리아 2023 지은이 김난도, 전미영, 최지혜, 이수진, 권정윤, 이준영, 이향은, 한다혜, 이혜원, 추예린|가 격 1만 9000원.(사진제공=미래의 창)한번은 들어봤을 황금돼지와 백말띠의 해를 넘어 곧 검은 토끼의 해다. 매년 대한민국의 소비문화를 한 권의 책으로 엮은 ‘트렌드 코리아 2023’가 내놓은 내년 전망이다. 다소 모호하고 장난스런 말장난 같지만 요즘 사람들의 행동 패턴을 날카롭게 분석한 그 간의 시리즈답게 변화의 속도가 더욱 빨라진 한국 사회의 단면이 이 책에 녹아있다.올해 10대 트렌디 상품으로 선정된 ‘K-콘텐츠, 비대면 플랫폼, 캐릭터 기획 식품, 상담 예능, 친환경 포장, 제로음료, 이색 주류, 셀프사진관, 새치샴푸, 도심 근교 대형 카페’는 역시나 누구든 한번쯤 소비나 경험으로 이어진 광범위함이 눈에 띈다. 부정적인 전망이 압도적인 내년에는 “무엇이 반복되고 무엇이 달라질 것인가를 구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이 책은 소개하고 있다. 지난 17일 교보문고가 집계한 베스트셀러 순위에 따르면 ‘트렌드 코리아 2023’은 9주 연속 1위를 지키던 김훈의 소설 ‘하얼빈’을 따돌리고 1위를 차지했다. 주요 독자는 트렌드에 민감한 30~40대로 구매 연령대별로 살펴보면 30대가 32.9%, 40대가 29.7%를 차지했다. 책을 구매한 10명 가운데 6명은 30~40대인 셈이다.15년째를 맞는 ‘트렌드 코리아 2023’는 졸업시험을 앞두고 ‘과수석의 요점정리 노트’를 몰래 보는 느낌이다. 정답이 모두 담겨 있지는 않지만 적어도 과락은 면하는 일목요연함이 최대의 장점이랄까. 한해가 저물어가는 시기에 올해의 빅테이터를 모아 내년의 트렌드를 가늠할 수 있는 건 ‘트렌드 코리아’가 가진 최대 장점이다.출판을 기념해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난도 교수는  ‘교토삼굴’(狡兎三窟)이라는 말을 예로 들며 “교활한 토끼는 굴을 3개 파 놓는다. 내년은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고 리스크를 관리해야 하는 해가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김 교수가 밝힌 내년의 트렌드를 모두 아우르는 중심 키워드는 ‘평균 실종’이다. 책에서는  불황과 코로나19로 인한 양극화·N극화·단극화가 평균에 가까운 사람들을 사라지게 만들고 있다고 설명한다.‘짠테크’와 ‘스몰 럭셔리’가 공존하는 양극화 시장을 전망하며 저자는 “대중 시장이 흔들리면서 대체 불가능한 탁월함·차별화·다양성이 필요한 시장으로 바뀌고 있다. 초개인화 사회가 도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체리슈머(알뜰 소비 추구), 뉴디맨드 전략(불가항력적인 수요 창출), 디깅모멘텀(좋아하는 것에 아낌없이 과몰입), 알파세대(2010년 이후에 태어난 디지털 세대), 공간력(경제 재개에 맞춰 중요해지는 공간의 힘) 등을 10대 트렌드로 함께 꼽았다. 이렇게 10개 키워드의 알파벳 머리글자를 단 내년의 트렌드는 ‘래빗 점프’(Rabbit Jump)다.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도 이제 라떼가 될 시기가 멀지 않았다. 이 책은 2010년 이후 태어난 ‘알파세대’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부제인 ‘Rabbit Jump’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 높이와 넓이를 가늠할 수 없는 그들의 시대가 곧 펼쳐질테니.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2022-10-20 18:00 이희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