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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그라운드] 연극 ‘실종법칙’에서 사라진 건 ‘유진’뿐일까?

연극 ‘실종법칙’ 황수아 작가(왼쪽부터), 민우 역의 심완준, 유영 노수산나·금조(사진=허미선 기자)“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유영과 민우가 굉장히 날선 대화를 이어가면서 민우의 가난한 환경 등 겉으로 보이는 상황들을 힐난하고 상처되는 말들을 하는 등 예의 없는 태도들로 일관해요. 극 진행과 더불어 이 모습들이 파국으로 치닫는 부분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연극 ‘실종법칙’(5월 12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의 황수아 작가는 극의 메시지를 “인간에 대한 예의”로 꼽았다.연극 ‘실종법칙’ 포스터(사진제공=예술의전당)연극 ‘실종법칙’은 2023년 제7회 미스터리 스릴러전, 제23회 월드 2인극 페스티벌 선정작이다.승진을 앞두고 사라진 대기업 직원 유진을 찾아나선 언니 유영(금조·노수산나, 이하 가나다 순)과 심완준의 설명처럼 “평범한데 평범하지 않고 찌질하지만 유진이를 아주 사랑하는 작가지망생”인 남자친구 민우(심완준·이형훈)가 나누는 날선 대화로 이어가는 작품이다.서로를 의심하며 나누는 대화 속에서 드러나는 진실과 반전에 중점을 둔 작품으로 202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 당선자 황수아 작가, ‘리처드 3세’ 등의 문새미 연출 등이 참여했다.금조는 사진이 연기하는 유영에 대해 “자존심은 강하고 자존감은 낮은, 그리고 겉으로 보이는 것에 굉장히 집착을 하는 인물”이라고 소개했다.“연기를 하면서는 유영 나름의 정당성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정상적인 범주에 있는 인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리플리 증후군이 아닐까 생각했죠. 거짓된 말들을 굉장히 많이 하는데 그 말을 하는 순간의 유영만큼은 정말 진실이라고 믿고 진심으로 모든 대사들을 뱉으면서 캐릭터를 만들었습니다.”또 다른 유영 역의 노수산나는 “유영이 민우에 대한 편견으로 날선 말들을 많이 한다. 그런 유영을 어떻게 이해하고 공감할지 고민이 많았다”며 “연출님의 조언으로 좀 더 많이 요약하고 불안해하는, 경계심이 많은 인물로 캐릭터화시켰다”고 밝혔다.연극 ‘실종법칙’ 공연장면(사진=허미선 기자)무대는 연극에서 한 인간의 자아 혹은 내면 등으로 주로 상징되는 다수의 의자들이 널부러져 있고 냉장고를 옷장으로 쓰는 등 극 중 유영이 힐난하는 민우의 열악한 환경을 위한 장치들로 꾸렸다. 홍수아 작가는 “민우가 처한, 해가 들지 않고 곰팡이가 가득한 지저분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주인집 짐까지 일부 쌓아놓고 사는가 하면 청결과는 거리가 먼, 방값이 싸면 뭐든 하는 민우의 상황들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이 작품은 실종을 파헤치는 작품이지만 결국 ‘실종’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그 개념이 우리 뒤통수를 치는 이야기입니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4-21 11:25 허미선 기자

[B사이드] 연극 ‘엠. 버터플라이’ 배수빈, 삼위일체 르네들과 전혀 다른 송 릴링들

연극 ‘엠. 버터플라이’ 르네 역의 배수빈(사진=이철준 기자)“연습실에서 가장 화두가 됐던 건 ‘왜 송이 사과를 안 할까’였어요. 한 사람의 인생을 저렇게 휘둘렀으면 미안하다고 할 법도 한데…. 그런데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르네와 같은 세월을 바친 거잖아요. 굳이 사과할 필요는 없었던 거죠. 서로 간의 니즈가 맞았고 ‘너도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척 넘어간 거잖아’가 송의 생각이지 않았을까 싶어요.”연극 ‘엠. 버터플라이’(M Butterfly 5월 12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르네 갈리마르(배수빈·이동하·이재균, 이하 가나다 순) 역의 배수빈은 송릴링(이하 송, 김바다·정재환·최정우, 이하 송)과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연극 ‘엠. 버터플라이’ 공연장면. 송 릴링 역의 김바다(왼쪽)와 르네 역의 배수빈(사진제공=연극열전)“서로 굳이 사과를 할 영역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습실에서 난상토론 끝에 이같은 결론을 내렸고 배우들 저마다가 자신만의 입장, 노선 등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지금도 그러고 있죠.”배수빈은 “진짜 이 사람이 원하는 건 뭐였을까,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는데 이 사람이 이렇게 하는 행동에는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 등에 대한 궁금증을 계속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연극 ‘엠. 버터플라이’ 르네 역의 배수빈(사진=이철준 기자)“개인의 욕망이었을까 아니면 정말 어떤 책임감이었을까, 아니면 무지였을까…그런 생각들이 계속 교차했던 것 같고 지금도 그래요. 어떨 때는 정말 무지하게, 또 어떤 회차는 정말 욕망만 채우기 위해 달려볼 때도 있어요. 그럼에도 보시는 분들마다 가져가시는 부분이 다를 것 같아서 그런 재미가 크죠.”◇삼위일체 르네들, 놀랄 만큼 다른 송들“이번 작품에서 (이)동하, (이)재균 배우와 르네를 분석하면서 정말 많이 배웠어요. 저렇게 해도 되는 구나 싶고. 뭔가 안 풀린다 싶으면 셋이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저마다가 해결한 부분은 공유를 해주기도 하고 너무 좋은 경험이었죠.”자신과 번갈아 르네를 연기 중인 이동하·이재균에 고마운 마음을 밝힌 배수빈은 “그렇게 사랑이 바탕에 깔린 존재 자체에 대한 문제라는 데 합일점을 찾았고 마지막에는 거의 한몸이었다”고 털어놓았다.“재균 배우가 너무 고마운 게 정말 많은 실험과 시도를 해줬어요. 머리가 깨질 때까지 부딪히고 부서져 주니 저 역시 열심히 할 수밖에요. 재균 배우가 정말 다양한 실험을 많이 하면 그걸 동하 배우가 정리해서 만들고 저는 ‘내가 한번 해볼게’라며 실행하고. 그렇게 한몸이 돼 르네를 만들어 갔어요. 너무 고맙고 미안하기도 하고…두 배우랑 함께 해서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더불어 송 역할의 김바다, 정재환, 최정우에 대해서는 “송의 행동들이 가스라이팅인지 사랑인지 이용하는 건지에 대해 고민하고 난상토론을 벌였고 저마다가 전혀 다른 인물을 표현 중”이라고 밝혔다.연극 ‘엠. 버터플라이’의 전혀 다른 르네와 송릴링.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배수빈·김바다, 이동하·최정우, 이재균·정재환(사진제공=연극열전)배수빈은 “(김)바다 배우는 ‘나를 그냥 나로, 있는 그대로 제대로 봐 달라’는 욕망이 큰 송”이라고 “(최)정우 배우는 되게 퓨어한 면이 있는 송”이라고 표현했다.“되게 깨끗하게 받아들이는 송이라 이용을 해도 별로 이용하는 것 같이 안 보인달까요. 그래서 배신감이 더 클 때도 있죠. (정)재환 배우는 가스라이팅의 느낌이 강해요. 그런데도 또 가스라이팅이 다는 아니라는 느낌도 들고…세 배우의 노선이 너무 달라서 깜짝 깜짝 놀랄 때도 많아요.”◇부서지고 깨지며 “재밌는 작품을 많이 하고 싶어요”연극 ‘엠. 버터플라이’ 공연장면(사진제공=연극열전)“연극의 장막과도 같은 무대 장치로 저는 더 명확해진 것 같아요. 훨씬 더 르네의 머릿속에 있는 느낌이랄까요. 박상봉 디자이너님이 구현하신 그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죠.”이렇게 전한 배수빈은 요즘 가장 가슴을 울린 대사로 “사랑은 판단력을 흐리고 두 눈을 감기고 얼굴마저 바꿔 놓습니다”와 더불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봐달라는 송의 절규에 답하는 르네의 “나는 당신을 알아”로 꼽았다.“그 뒤의 ‘마음 한구석으론 내내 알고 있었어. 내 행복은 한 때고. 내 사랑은 기만일 뿐이라는 걸. 하지만 외면하고 또 외면했지. 그래야 기다림을 견딜 수 있으니까’까지가 너무 좋아요. 도대체 이 사람은 어디까지, 언제부터 안 건가 싶거든요.”연극 ‘엠. 버터플라이’ 르네 역의 배수빈(사진=이철준 기자)이어 배수빈은 “앞으로도 진짜 재밌는 작품을 많이 하고 싶다”며 “좀 뻔한 느낌 없이 다른 모습들을 보여드리면서”라고 바람을 전했다.“그러려면 재균 배우처럼 정말 부서지고 깨져야 할 것 같아요. 그렇게 저를 부실 수 있는 작품이 있으면 머리 깨지게 한번 들어가 보고 싶어요. 여러 가지 사는 얘기들도 더 다양한, 새로운 분들과 같이 만들고 싶기도 합니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4-19 18:15 허미선 기자

[비바100] 연극 ‘엠 버터플라이’ 르네 배수빈 “사랑, 존재 대 존재의 충돌 그리고 욕망”

연극 ‘엠. 버터플라이’ 르네 역의 배수빈(사진=이철준 기자)“극 중 ‘사랑은 판단력을 흐리고 두 눈을 감기고 얼굴마저 바꿔 놓습니다’라는 르네 대사가 저는 너무 좋아요. 어떻게 보면 사랑도 우리가 막연하게 원하는 것들을 충족시켜주는 판타지가 아닌가 싶거든요. 누구라도 그걸 깨지 않고 그냥 계속 가져가고 싶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 역시도 그렇고.”배수빈은 자신이 연기하는 연극 ‘엠. 버터플라이’(M Butterfly 5월 12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의 르네 갈리마르(배수빈·이동하·이재균, 이하 가나다 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연극 ‘엠. 버터플라이’ 르네 역의 배수빈(사진=이철준 기자)연극 ‘엠 버터플라이’는 1964년 문화대혁명을 앞두고 전운이 감도는, 동서양 간의 식민의식과 우월주의 등이 팽배하던 때의 중국 베이징을 배경으로 프랑스 영사관 직원 르네 갈리마르가 신비로운 중국의 경극배우 송릴링(이하 송, 김바다·정재환·최정우)에 빠져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데이비드 헨리 황(David hery Hwang)이 프랑스 외교관 버나드 브루시코와 경극배우 쉬 페이푸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대본을 집필해 1988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됐다.지난해 11월까지 공연되며 꾸준히 사랑받았던 작품으로 한국에서는 2012년 첫 선을 보인 후 2014년, 2015년, 2017년에 이은 다섯 번째 시즌이다. 송이 자신에게만 털어놓은 비밀을 철썩같이 믿는 르네와 살기 위해 연인을 속이면서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봐주기를 바라는 송. 두 사람이 서로에게서 늘 꿈꿔왔던 순종적이고 완벽한 연인,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주고 무례하고 지옥 같은 이 체제에서 구원해줄 사람을 갈구하며 파국으로 치닫는 사랑이야기이자 욕망에 대한 비극이다.◇누구나 가지고 있는 환상과 욕망, 그걸 지키고 싶었던 이들의 이야기연극 ‘엠. 버터플라이’ 공연장면. 르네 역의 배수빈(왼쪽)과 송 릴링 김바다(사진제공=연극열전)“그렇게 원하는 대로 끌고 가고 싶어하는 게 르네라는 생각이 들어요. 르네는 사실 알았을 수도 있어요. 송이 여자든 남자든 상관없었을 수도 있어요. 그럼에도 ‘당신이 (내가 원하는 완벽한 연인의 역할) 그걸 해준다면 나는 그걸 당신으로 인정하겠어’라면서 계속 그 생활을 유지했던 게 아닐까 싶어요. 어차피 인간은 이기적이잖아요. 챙길 거 챙겨가면서 꿈을 꾸고 싶었던 건 르네나 송이나 다 똑같았던 것 같아요.”이어 배수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간다. 어느 때는 비즈니스가 우선이다가 스스로의 꿈을 쫓기도 하면서 밸런스를 맞추면서 가려고 하는 게 인간”이라며 “그래서 이 극이 힘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연극 ‘엠. 버터플라이’ 르네 역의 배수빈(사진=이철준 기자)“그렇게 이해도 됐다가 안타깝기도 했다가 바보 같기도 했다가…이런 지점들이 좀 맞닿아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 작품이 그저 단순한 사랑 얘기라고만 하기 어려운 게 그 지점 같아요.”배수빈 역시 “처음 연습실에서는 배우들하고 사랑에 집중해서 좀 찾아가 보려고 했다”며 “하지만 결국엔 마지막에 르네가 죽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를 찾다 보니 오롯이 사랑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물론 사랑은 밑바닥에 깔려 있어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싶었을 뿐이죠. (20여년이라는) 그들의 세월이 사랑을 증명해 주기도 하잖아요. 결국 저마다의 욕망, 니즈, 환상을 쫓아가는 인간들의 이야기죠. (저마다가 쫓는) 그것의 부서짐들이 결국 르네도 송도 파국으로, 급기야 죽음으로까지 가게 하는 힘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이렇게 저렇게 사랑만 해보려고 많은 시도를 해봤지만 결국 존재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지는 작품이더라고요.”연극 ‘엠. 버터플라이’ 르네 역의 배수빈(사진=이철준 기자)◇르네의 모든 것 송, 존재 대 존재의 격돌“사실 이 작품의 가장 큰 뼈대는 권력에 대한 욕망 같아요. 당시 서양인들이 동양을, 남자가 여자를 바라보는 시선 등이 강화됐을 때 그 시대에 맞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관계의 전복에 대한 희열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집안 좋은 아내와의 관계에서도, ‘승진’을 미끼로 쥐락펴락하는 상사와의 관계에서도 늘 우위에 서지만은 못했던 르네에게 송은 배수빈의 말처럼 “모든 것”이었을지도 모른다.“저도 르네였다면 그러지 않았을까 생각은 합니다. 꿈에 그리던 누군가를 만났잖아요. 내 모든 것들을 받아주는 그런 사람을 만난다면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요. 최대한 유지하고 싶었을 거예요.”이어 배수빈은 “르네는 굉장히 센스티브한 사람”라며 “어릴 때부터도 이성에 대한 두려움 등이 대본에 좀 있다. 오페라를 좋아하는 것도 사실은 마크처럼 일반적인 남자의 이유와는 달리 분위기나 에티튜드, 느낌, 정서, 취향 등을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사람”이라고 부연했다.“그걸 억누르고 살아야 하다 보니 생기는 그반대급부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극 중 정육점집 아들이 오페라를 보고 느낀 희열은 신분 상승에 대한 강력한 욕망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결국 이 작품은 존재 자체에 대한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죠. 르네와 송이 존재 대 존재로 부딪혀 욕망과 환상, 그것을 실현해주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인정하거나 밝히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에 대한 문제요.”연극 ‘엠. 버터플라이’ 르네 역의 배수빈(사진=이철준 기자)이어 “결국 꿈에 그리던 완벽한 존재를 취하고 싶고 마음대로 누리고 싶은 권력욕이나 욕심에 집중했다”는 배수빈은 “그거까지 건드리지 못한다면 이 공연은 겉핥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그것을 뚫고 들어갔을 때야만 마지막에 내(르네)가 스스로 나비부인이 돼 갈 수 있는 힘이 좀 생긴다는 걸 느꼈습니다. 르네와 송은 시대적 상황, 정치적·외교적 문제들이 맞물린 큰 사건의 인물들처럼 보이죠. 하지만 누구나 원하는 걸 취하고 싶고 마음대로 누리고 싶은데 마음대로 안될 때가 있잖아요. 그렇게 ‘엠 버터플라이’는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작품 같아요. 옛날 작품이고 이야기지만 지금 사람들에게 잘 맞는 주제를 가지고 있달까요.”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4-19 18:00 허미선 기자

[비바100] 19세 대학생 남편, 34세 요리사 아내…"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 VS "여자라고 무시하지 말아요"

운영은 여자가 해도 앞에 나서는 건 남자여야 했던 당시 일본 시대상을 반영한 ‘칼과 풋고추’의 한 장면. (사진제공=웨이브)웨이브에서 독점공개한 ‘칼과 풋고추’를 맛으로 표현한다면 가볍게 마실 수 있는 일본식 된장국인 미소시루다. 칼칼한 고추를 송송 썰어 넣고 깊은 맛의 된장을 진하게 풀어 두부, 호박을 비롯해 냉장고에 남아 있는 채소를 잔뜩 넣고 끓이는 한국식과는 전혀 다른 맛이랄까. 미역과 버섯을 조금 넣는 게 다인 다소 밍밍한 미소시루는 한국처럼 진한 맛은 없지만 오래 끓이지 않아도 된장국으로서의 임무를 다한다. 밥을 씹으며 입 속에 가든찬 아밀라아제의 끈끈함을 깔끔하게 씻어내는 용도로 미소시루만한 국물도 없다.일본드라마 ‘칼과 풋고추’는 ‘이치카의 요리첩’이란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 듯 음식을 소재로 한다. 전쟁직후 1951년 교토를 배경으로 노포요리집 ‘쿠와노키’의 장녀 이치카(카도와키 무기)는 고작 한달 만에 과부가 됐다. 등나무꽃이 흐트러지게 핀 동네 입구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눴던 남편은 결혼과 동시에 참전해 사망했다. 사실상 부부로서의 인연은 없었다.대학생 남편과 요리사 지망생 아내의 나이 차이는 무려 15살. 작품의 오프닝 장면을 눈여겨 보길 권한다. (사진제공=웨이브)이치카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호텔 요리사로서의 꿈을 가지고 있다. 전통적인 일본요리에 호텔에서 배운 서양요리를 접목해 퓨전 음식을 만드는 게 그의 유일한 꿈이다. 데릴사위를 들여 가업을 잇는 건 당시 일본 사회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여동생 후타바(모모타 가나코)가 야마구치 호텔의 차남과 결혼을 하기로 하면서 한시름 덜었는데 정작 상견례 자리에 나타난 이는 삼남인 19살 아마네(사쿠마 류토)다. 고작 19세로 대학생인 그는 집안의 정략결혼에 끌려온 모양새지만 표정의 변화가 없다. 10살이나 연상인 후타바를 아내로 맞이해야 하는 상황에서 되려 당황한 건 예비처가 식구들이다.늘 걱정과 참견을 달고 사는 고모와 평생 그 성격에 시달려 매사에 조용하기만 한 엄마 역시 가업을 이어야 하는 이 상황에서 어려도 너무 어린 사위가 뭔가 미덥지 않다. 게다가 말을 가려하지 않는 성격으로 쿠와노키의 상견례 음식을 맛보고는 “뭔가 부족하다”고 평한다. 이에 이치카가 발끈 하면서 두 집안은 사돈이 아닌 악연이 될 지경이다.그릇을 내오고 음식의 기본 재료를 다듬는 게 다인 여성이 주방에서 오롯이 제 몫을 하는 모습은 ‘칼과 풋고추‘에서 신문에 대서특필될 정도로 화제가 된다. (사진제공=웨이브)‘칼과 풋고추’의 전개는 정작 새신부가 되어야 할 여동생 후타바의 야반도주로 전환점을 맞이한다. 매사에 활발하고 성격좋은 그는 ‘쿠와노키’의 주방에서 일하는 신타로(마모루)와 남매처럼 자랐는데 정략결혼을 앞두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게 되면서 사랑의 도피를 감행한다. 편지 한장 달랑 두고 집안을 떠난 여동생을 대신해 15살이나 연상인 이치카가 아마네의 신부가 된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의 집안에서는 결혼을 물릴 생각이 없었고 그렇게라도 교토에서 유명한 노포의 명맥을 아들이 이어가길 바란다. 사실 ‘쿠와노키’는 과거의 명성을 뒤로한 채 점차 줄어드는 손님에 고군분투 중이다.요리사였던 이치카의 아버지가 죽은 뒤 ‘쿠와노키’의 주방을 맡았던 후지와라(오노 타케히코)는 실력은 좋지만 새로운 시도를 거부하는 인물. 전쟁이 끝나고 점차 서양사람들이 늘고 외국 물자가 들어오며 다양한 음식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기존 메뉴를 고집하며 새로운 요리를 내놓지 않는다. 극 중 기성세대로 치부되는 후지와라는 결국 “침몰하는 배에는 있지 않겠다”며 쿠와노키를 떠나고 이치카가 주방을 맡으며 점차 본격적인 재미에 돌입한다.서양요리를 사랑하지만 자신의 뿌리인 일본 요리의 기본 ‘맛’을 잃지 않으려는 역할은 선 굵은 연기를 주로 맡아온 카도와키 무기가 열연한다. (사진제공=웨이브)총 10부작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다소 뻔한 전개를 가지고 있지만 그 과정이 따스하고 정감있다. 안방관객들은 이치카가 남성 위주로 돌아가는 요리사의 세계에서 일취월장하는 모습을 눈여겨보게 된다. 요리에 대한 열정은 있지만 가족의 식사 외에는 관여할 수 없는 당시 시대상에서 그는 되려 아침에는 학교에 가고 저녁에는 쿠와노키의 운영을 돕는 ‘어린 남편’에게 시대를 앞서간 자극을 받는다.그는 “여성들도 당당히 자신의 직업을 가져야 한다” “언젠가는 여성주방장이 탄생될 것”이라며 이치카의 전남편이 남긴 식칼을 적극적으로 쓰게 만든다. 사실 그는 1년 안에 쿠와노키가 정상화되지 않으면 처가를 허물고 거기에 본가의 호텔을 지을 거란 속셈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짝사랑했던 동급생이 형수가 되고 조카가 태어나면서 자포자기 심정으로 교토로 내려왔던 것. 하지만 요리에 열정적이고 매사에 포기를 모르는 이치카를 보면서 점차 변화하게 된다.극 중 호텔의 헤드 셰프인 타지마(나카무라 아오이)는 이치카의 도전을 늘 지지해준다. 마지막 요리 대결에선 직접 조수로 나서며 치정과 불륜에서 한 걸음 벗어난 캐릭터를 완성한다.(사진제공=웨이브)보자마자 먹고싶은 요리는 없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에피소드들이 되려 심금을 울린다. 무엇보다 쟈니스 소속의 무서운 신예 사쿠마 류토가 보여주는 산뜻한 연기와 기모노가 잘 어울리는 카도와키 무기의 원숙한 내공은 배우들의 다른 작품을 찾아보고 싶게 만들 정도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2024-04-17 18:00 이희승 기자

[비바100]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 피에르 하도권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지 마!”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 피에르 역의 하도권(사진제공=앤드마크)“피에르 넘버 중 ‘Dust and Ashes’라는 곡의 가사들이 너무 좋아요. ‘돌아본다. 좋은 사람으로 살았나? 충분히 사랑했나?’ 그 가사를 처음 봤을 때 제가 느낀 감정을 관객한테 전달하고 싶어요.”하도권은 출연 중인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Natasha, Pierre The Great Comet of 1812, 6월 16일까지 유니버설아트센터) 그리고 자신이 연기하는 피에르(케이윌·김주택·하도권, 이하 시즌 합류·가나다 순)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피에르 대본을 보면서 정말 많이 울었어요. 서사 때문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감정들이 뭔지 알겠더라고요. 그 감정을 어떻게 전달할까, 어떻게 하면 관객분들이 알아봐주실까를 고민했고 굉장히 심플하게 생각했죠. 그럼에도 전달이 어려운 게 저희 작품의 구조 같아요.”뮤지컬 ‘그레이트 코멧’ 피에르 역의 하도권(사진제공=쇼노트)더불어 ‘Dust and Ashes’ 중 ‘오늘이 나의 끝이라면 난 잠든 채 죽네’ ‘사랑하기 전엔 우린 잿더미 속 잠든 아이, 사랑에 빠지면 깨어나’에서 느껴지는 피에르의 깊은 쓸쓸함들, 하지만 사랑을 한다면 다시 깨어난다는 희망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 가사들을 통해 피에르는 말하죠. 죽고 싶지 않고 다시 살고 싶다고. 다시 산다면 사랑을 하고 싶다고. 나는 이렇게 살아남아 누군가한테 위로를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됐으니 당신들도 이런 희망을 보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어. 힘들고 어려워도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지 마! 그렇게요. 그래서 마지막 넘버 ‘The Great Comet of 1812’ 중 ‘다시 뛰네 새로운 삶 향해’라는 마지막 가사를 노래할 수 있는 것 같아요.”◇악단장이자 복잡한 피에르를 위한 피, 땀, 눈물span style="font-weight: normal;"뮤지컬 ‘그레이트 코멧’ 피에르 역의 하도권(사진제공=쇼노트)“악단장이자 복잡한 피에르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줄여갈까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어요. 거기서 제가 얻은 답은 ‘각 신의 감정에 충실하자’였어요. 그 신에 쓰이는 에너지만큼, 쌓인 만큼의 감정을 고스란히 그냥 전달하자 했죠.”올해로 20주년을 맞은 하도권이 2016년 ‘왕의 나라’ 이후 8년 만에 “운명처럼 놓여진” 무대복귀작 ‘그레이트 코멧’은 레프 톨스토이(Leo Tolstoy)의 ‘전쟁과 평화’(Война и мир)를 바탕으로 한 성스루(노래로만 꾸린) 뮤지컬이다. 나폴레옹의 침공으로 불안한 1812년 모스크바를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에서 하도권은 삶에 회의적이고 무기력한 귀족 피에르를 연기한다.“피에르가 1막에서는 무력해요. 굉장히 자조적이죠. 그런데 2막에서는 변해요. 나 자신에 대해서는 의미가 없었는데 나타샤를 바라보면서 내가 누군가한테는 위로를 줄 수 있다 데 희망을 보는 거죠. 가사가 굉장히 직관적이에요. 나타샤를 보면서 사랑과 연민을 느낀다거나 눈물을 애써 참고라는 가사가 있거든요.”그의 설명처럼 피에르는 마냥 무기력하고 회의적인, 극 중 인물소개 넘버 가사처럼 “혼란스럽고 어정쩡한” “돈은 많은데 안 행복한 유부남”이다. 자신의 친구이자 헤픈 아내의 동생이기도 한 매력적인 젊은 군인 아나톨(고은성·셔누·정택운)에 빠져들어 상처입은 나타샤(박수빈·유연정·이지수)에게 연민을 느끼며 그의 유일한 희망이 되어주기로 마음먹는 인물이다.극 내내 객석과 무대를 오가며 관객들과 소통하고 즐기는 등장인물들 중 유일하게 무대 중앙의 악단석에 붙박이처럼 존재하는 악단장이자 삶에 대한 회의감에 침잠하는 무기력한 귀족이다.뮤지컬 ‘그레이트 코멧’ 피에르 역의 하도권(사진제공=쇼노트)20년 전 데뷔작인 ‘미녀와 야수’의 팀장이었던 지금의 쇼노트 대표, 부대표와의 인연으로 “운명처럼 작품에 놓이게 된” 하도권의 복병은 아코디언이었다. 그는 극 등장부터 마지막까지 연주하는 아코디언에 대해 “피아노를 좀 칠 수 있으면 연주에 별 문제가 없겠다 저도 생각했는데 아예 별개의 악기”라고 토로했다.“악보를 받아봤더니 사기였어요. 너무 어려운 작품이더라고요. 피아노도 너무 어렵고 아코디언은 더 어려웠어요. 피아노처럼 생겼지만 아코디언은 풍금처럼 바람이 들어가야 소리가 나요. 왼손으로는 코드랑 베이스를 쳐줘야하고 오른손으론 건반을 치는데 거리감, 감각으로 연주해야 하죠. 시선이 가는 순간 이미 틀린 거예요. 제가 그동안 했던 모든 뮤지컬의 연습 과정, 노력과 땀을 다 합친 것보다 ‘그레이트 코멧’이 요구하는 땀과 노력은 더 컸어요.”◇아코디언과의 고군분투 “저를 피에르화시켰죠”span style="font-weight: normal;"하도권(사진제공=앤드마크)“피아노 4마디를 외워서 치게끔 손으로 익히는 데 8시간이 지나도 안 되더라고요. 틀림없이 열심히 하는데 안되니까 미칠 노릇이었죠. 그 시간이 되게 고통스러웠어요. 그런데 지금 보면 연습을 하면서 그 고통스러웠던 시간들이 저를 피에르화시켜줬던 것 같아요. 혼자서 감당해야하는 그 외로움과 쓸쓸함, 두려움들이 피에르에 묻어나게끔 되더라고요.”집 앞에 연습실을 대여해 “잠을 줄여가며 거의 밤새도록 연습했던” 그는 “보통 2시간을 연습하면 성취할 수 있는 성과물이 있는데 아코디언은 그게 안됐다”고 털어놓았다.“피에르라는 역의 특성이 아무리 익숙해도 극장에 가는 순간부터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어요. 끝까지 집중하지 않으면 자칫 실수가 나올 수 있거든요. 온 세포를 다 깨우고 임하다 보니 뭘 다른 걸 하거나 애드리브 등은 꿈도 못꾸죠.”그렇게 어렵게 연주할 수 있게 된 아코디언이지만 무대 위의 그는 여전히 누구든 마지막까지 건드려서는 안되는(?) 피에르다. 그는 “모든 출연진이 신나게 뛰어다니고 관객들과 소통할 때도 피에르는 무대에서 어떤 누구와도 눈 마주치는 일 없이 존재하면서 에너지를 쓰고 있다”며 “마지막 커튼콜에서까지 퇴장음악을 솔로로 연주해야하다보니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고 전했다.“피에르의 넘버가 많지는 않지만 정말 섬세해야하고 연기적으로도 그래요. 기량이나 테크닉적으로 소화해낼 수 있는 넘버들이 아니거든요. 섬세하게 켜켜히 쌓아가지 않으면 그 넘버가 표현이 안돼요. 특히 마지막 넘버 ‘The Great Comet of 1812’은 잔잔한 호수에 돌 하나를 탁 던지고 그 울림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그 전에 뭔가가 놓이면 그 흐름이 깨지거든요. 조심스럽게 밟아가야 하는 넘버들이라서 성악적인 테크닉이나 기량 보다는 연기적 집중력이 더 필요한 역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저마다의 그레이트 코멧을 찾아서!뮤지컬 ‘그레이트 코멧’ 피에르 역의 하도권(사진제공=쇼노트)“마지막 넘버 ‘The Great Comet of 1812’에서는 ‘당신들이 두려워하는 저 혜성들이 나는 두렵지 않다’고도 하죠. 그 혜성에 대한 의미는 각자의 몫인 것 같아요.”그 혜성이 “누군가에게는 내게 닥친 고난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지금 와 있는 행복일 수도 있다. 그게 때로는 두려울 수도, 버거울 수도, 환희로 가득 찰 수도 있다” 전한 하도권은 “하지만 피에르는 새로운 삶을 향해서 가겠다고 말한다”고 털어놓았다.하도권(사진제공=앤드마크)“힘들어 주저앉거나 망가지고 조각 나 있는 사람들한테 말하고 싶었어요. 절대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조각나 있는 상태로 끝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슬퍼하는 상태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걸어가야 회복할 수 있다고. 그래야 새로운 삶을 맞이할 수 있다고요.”그렇게 저마다의 그레이트 코멧을 찾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피에르를 연기하는 하도권의 ‘그레이트 코멧’은 “동료 배우들”이다. “연습 때도 그렇고 지금도 마지막 넘버를 할 때 무대를 한 바퀴 돌면서 나오거든요. 그때 동료들이 아카펠라로 합창을 해줘요. 그때 저를 바라보면서 노래해주는 그들이 저한테는 그레이트 코멧이에요. 그 사람들한테 굉장히 에너지를 많이 받고 기쁘거든요.”이어 피에르로서의 크레이트 코멧에 대해서는 “여전히 찾아가는 중”이라며 “단편적으로 보면 나타샤가 될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고 부연했다.“피에르가 나타샤에게 갖고 있는 감정은 단순하게 연인으로서만은 아니거든요. 어떨 때는 키다리 아저씨 같은 느낌도, 인생을 살아온 선배로서 주고 싶은 조언들도, 용기를 주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그리곤 “원작에서는 피에르랑 나타샤가 결혼하지만 저희 작품에서는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이라며 “그럼에도 나타샤를 이성적인 감정으로만 바라보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어려움은 없다”고 털어놓았다.“피에르가 1막부터 2막 엔딩까지 성장해 나가는 과정이 그레이트 코멧이 아닐까 생각해요. 금방 사라지는, 굉장히 찰나인 그 순간이 사람을 변화시키잖아요. 그런 터닝 포인트, 저마다의 그레이트 코멧을 찾으셨으면 좋겠어요.”◇전혀 다른 나타샤와 아나톨들뮤지컬 ‘그레이트 코멧’ 출연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나타샤 역의 박수빈·유연정·이지수, 아나톨 셔누·정택운·고은성“배우마다 특성이 다 달라요. 저는 기술적인 연기를 하지 않아요. 할 줄도 모르고 배운 적도 없으니까요. 음정, 박자, 가사 등 약속은 정해져 있지만 저마다가 던져주는 에너지가 조금씩 달라요. 그래서 매번 기대가 돼요. 오늘은 저 친구가 어떤 호흡을 나에게 던져줄까를 열어놓고 기다렸다가 그에 맞춰 나가요. 살아 있는 것처럼 매 공연이 다르죠.”그게 “무대가 주는 장점이자 재미”라는 그는 “(박)수빈은 굉장히 섬세하고 감정을 절제하는 나타샤”라고 전했다.하도권(사진제공=앤드마크)“이지수 나타샤는 굉장히 강하게 표현할 때가 있어요. 그 폭이 굉장히 크죠. 연기의 그 다이내믹이 너무 재밌어요. (유)연정이 나타샤는 굉장히 딥하게 들어갔다가 또 굉장히 밝게 빠져나와요. 그런 타이밍을 맞추는 재미가 있죠.”아나톨 중 고은성에 대해서는 “정말 베테랑”이라며 “너무나 안정감이 있는 아나톨이다. 초연을 했던 데서 오는 바이브, 극 전체를 완전히 아우르는 포스가 있다”고 밝혔다.“셔누는 순수함이 있어요. 아나톨의 그 양아치스러움 안에 갖고 있는 순수함이 있어요. 안 그럴 것 같은 사람이 양아치이고 그 날티를 퓨어하게 표현하니 굉장히 새롭죠. 레오(정택운)는 굉장히 가볍다가 또 갑자기 훅 무거워지는 매력이 있어요.”하도권은 “저는 연기를 전공한 사람이 아니고 그래서 기술적으로 연기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저와 만나는 부분이 없는 배역은 제가 움직이질 못한다”고 털어놓았다.“입도 뻥끗 할 수가 없어요. 그렇게 제 안에 있는 경험, 정서와 만나는 작업들을 주로 해오고 있는데 언젠가는 소진이 되겠죠. 하지만 늘 새로운 연기를 하고 싶어요. 시청자들이나 관객들이 이번엔 어떤 연기, 배역을 할까 기대감을 주는 배우이고 싶어요.”그는 “지금까지는 배우가 전부인 것처럼 살아왔다. 하지만 피에르를 만나면서 배우가 전부는 아니라는 걸 느꼈다”고 고백했다.“제 삶의 한 부분인 거죠. 그래서 꼭 배우가 아니더라도 하도권으로서의 삶이 앞으로 살아가면서 누군가한테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어딘가에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요즘 해요.”◇배우 20년 “지금까지처럼 놓여진 곳에서 최선을 다해!”하도권(사진제공=앤드마크)“노래 가사 같아요. 연습 내내 배우생활을 하면서 쉼 없이 달려왔는데 진짜 좋은 배우로 살았나, 충분히 사랑했나 질문했죠. 명쾌하게 답을 못 줬어요. 자신이 없더라고요.”서울대 성악과 출신으로 “남의 나라 말로 노래하며 답답함을 느껴” 뮤지컬 ‘미녀와 야수’ 앙상블로 무대에 올랐던 하도권은 올해로 데뷔 20주년을 맞는다.그렇게 뮤지컬 앙상블로 연기를 시작해 ‘햄릿’ ‘아가씨와 건달들’ ‘엘리자벳’ ‘레미제라블’ 등을 비롯해 일본의 유명 극단 ‘사계’ 단원으로 ‘오페라의 유령’ ‘라이온킹’ 등에 출연했던 그는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 이석준, ‘펜트하우스’ 시리즈의 마두기, ‘스토브리그’ 강두기 등으로 대중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20년차 배우다. 그 20년을 피에르의 “돌아본다”는 가사처럼 스스로를 돌아봤다는 하도권은 “저는 부족함도, 실수도 많은 사람”이라고 고백했다.“그럼에도 어떤 한 사람에게 살아갈 용기를 줄 수 있게 된 피에르를 보면서 위로받을 수 있었죠. 저도 연기를 통해 혹은 배우가 아닌 삶을 통해 누군가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앞날에 대한 생각들을 하게 되더라고요. 지나간 날을 돌아보면 사실 자신 없어요. 하지만 앞날에서는 누군가에게 위로를, 용기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연습을 하면서, 무대에서도 여전히 되게 고통스러운 시간이 저를 피에르화시킨 것 같아요. 그래서 너무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작품이고 배역이죠.”뮤지컬 무대를 떠나기 직전이던 2014년 마지막 오디션 작품이자 역할이었던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콰지모도를 여전히 꿈꾸고 있는 그는 지난해 여름 뮤지컬 마니아들에게 사랑받는 ‘섹시동안클럽’(이하 섹동클, 최민철·최수형·문종원·양준모·조순창·김대종·하도권)에 ‘인턴사원’으로 이름을 올렸다.“너무 많이 사랑해주셔서 올 10월 충무아트센터에서 4일간 ‘섹통클’ 공연을 합니다. 매 회차 다른 콘셉트죠. 색동클도 최선을 다해 재미있는 공연을 준비하고 있으니 기대해 주세요.”무대를 “고향 같은 곳”, 매체는 “저를 세상에 알려준 저의 본업”이라고 표현한 하도권은 “그렇지만 병행한다는 건 제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라고 털어놓았다.“저는 선택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놓여지는 사람이니까요. 기회가 주어진다면 놓여진 그 곳에서 또 최선을 다할 겁니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4-15 18:30 허미선 기자

[비바100] 외람되지만… 배우 김금순을 모른다고요?

전 세계 19개 영화제에 초청돼 총 8관왕을 기록하며 이미 작품성을 인정받은 ‘정순’은 배우 김금순의 첫 장편데뷔작이다. (사진제공=(주)디스트리뷰션 )서울 근교 소도시의 한 공장. 같은 임시직이지만 자식 뻘 보다 어린 20대 젊은 남성을 관리직으로 모시며(?) 명령을 받아야 한다. 극 중 정순(김금순)은 곧 결혼을 앞둔 딸을 둔 평범한 중년이다. 헤어진 남편을 닮아 무뚝뚝한 딸은 근처 폐차장에서 일하며 밝은 옷이라고는 잘 입지않고 또래다운 즐거움도 누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근면한 예비사위를 만나 곧 가정을 꾸릴 예정으로 노느니 집 근처 공장에 야간근무를 나선다. 배우 김금순의 첫 장편 영화인 ‘정순’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중년여성이 결코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을 거라 생각한 범죄에 노출되면서 닥친 일상을 그린다. 디즈니 플러스 ‘카지노’에서 한국에서 도망 온 범죄자, 영화 ‘잠’에서 신 들린 무당, ‘브로커’의 영아 밀매꾼 그리고 ‘LTNS’의 연상 바람녀까지 배우 김금순의 필모그래피는 그야말로 다채롭다.중년의 남녀가 비밀스러운 관계를 즐기며 침대에서 모바일 카메라로 솔직한 사진과 동영상을 찍는다. 그 순간이 공개되면서 바뀌는 남녀의 차이는 단지 성별의 문제가 아니다. (사진제공=(주)디스트리뷰션 )“영화 ‘정순’은 제가 가장 사랑하는 작품이에요. 그간 현장에서 1회차 혹은 2회차 정도로 짧게 촬영하고 사라졌다면 사실상 제가 주인공인 첫 영화니까요. 무엇보다 감독님 미팅 전에 시나리오를 읽고 소재나 주제가 마음에 와닿아 무조건 한다고 했습니다.”수락을 위해 나간 자리에는 20대 초반의 앳된 정지혜 감독이 해맑게 웃고 있었다. 2017년 독립영화 ‘면도’를 시작으로 ‘매형기’ ‘버티고’를 만든 그는 자신이 실제 근무했던 공장에서의 경험, 거기서 만난 이모님들을 주인공으로 시나리오를 써내려갔다. 극 중 배경이 되는 식품공장에는 암묵적으로 이상한 서열이 존재한다. 쉽게 그만두고 마는 젊은이들보다 경력도 연륜도 흥도 더 많은데 신입과 비슷하거나 더 못한 곳에 배치받는 게 익숙하다. 포식자는 운영자의 총애를 받는 관리자 도윤(김최용준)으로 호감있는 여성에게는 편한 부서를 제안하고 헤어지거나 마음에 안들면 힘든 곳으로 돌리며 일명 ‘현대판 의자왕’으로 불린다.“앳된 얼굴 감독님을 보는데 ‘어떻게 이렇게 묵직한 중년 여자의 스토리를 쓰셨을까’란 생각이 스치더라고요. 미디어 성폭행, 즉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많은 조사를 한 게 대화할수록 느껴졌습니다.”극 중 딸 역할을 맡은 윤금선아와는 실제 아이를 둔 엄마라는 공통점으로 빠르게 친해졌다고. 실제 너무 닮은 모습에 영화를 보는 재미를 더한다. (사진제공=(주)디스트리뷰션 )정순은 비슷한 나이대의 영수(조현우)가 신입으로 들어와서도 평소와 같은 일상을 보낸다. 그저 많이 웃고 간식을 하나라도 더 나누면서 쉬는 날엔 동료들과 등산을 간다. 그러다 영수의 결핍에 기꺼이 손을 내밀며 어렵사리 둘은 연인이 된다. 하지만 둘 사이의 농밀한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영수에 의해 공장 사람들에게 공유되면서 정순의 삶은 그야말로 산산조각난다. 이에 김금순은 “나이를 먹을수록 지나가는 아주머니나 할머니를 보면서 내 모습이 투영될 때를 느낀다. 가끔은 너무 수다스럽고 뭔가 외로운 감정들이 보일 때가 있다. 솔직히 더한 노출이 있었어도 했을 거다. 가슴노출도 불사하겠노라 감독님께 말씀드렸는데 관객들을 배려해 요구하지 않으신 게 아닐까”라며 밝게 웃었다.사과를 하기 위해 찾아온 전 연인이자 가해자의 민낯을 빤히 보는 정순. 용서만이 답이 아님을 그는 뒤늦게 깨닫는다.(사진제공=(주)디스트리뷰션 )도윤의 무시와 조롱에 홧김에 공개한 영수의 휴대폰 속 정순은 그가 사는 달방 모텔에서 드라이빗을 마이크 삼아 간드러지게 노래를 부르고 있다. 검은 속옷을 입고 춤을 추는 모습이 매끈한 몸매는 아니지만 육덕진 매력이 화면 가득 담긴다. 김금순은 “노출신이 있는 걸 알고 일부러 살을 찌우진 않았다. 다만 배우로서 해야 할 기본 관리는 포기한 채 촬영한 장면”이라고 수줍어했다. 총 25회차. 감독의 고향이기도 한 경상도 양산의 한 공장과 모텔은 영화 스태프들이 “김금순의 화양연화를 담겠다”는 일념 하에 조명부터 미술, 음악과 소품까지 디테일함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는 후문이다. 그래서일까. ‘정순’은 제23회 전주국제 영화제의 대상, 같은 해 부산독립영화제를 섭렵한 뒤 제17회 로마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까지 거머쥐며 화제를 모았다. 중학교 때부터 연극반 활동을 하고 결혼 전까지 무대에 선 김금순은 결혼과 동시에 10년의 경력단절을 겪었다. 이에 “그 시간이 정말 소중한 게 쥐어짜도 안 나오는 연기가 있기 마련인데 나는 저절로 나오는 뭔가가 있다”고 단언했다.“사실 감독님 복이 유독 많은 게 저예요. 배우는 무서워서 못하겠다는 마음이 들면 안되거든요. 그래서 시나리오가 들어오면 항상 용기를 내요. 해내야지 밥을 먹고 살잖아요. 두 아들이 제 직업을 이해해주고 응원해주니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요. ‘정순’을 찍으며 딸이라도 그랬겠지만 평생 공부해야 할 성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했습니다.”가해자들에 대한 고소를 취하한 정순은 조금씩 삶의 주체를 자신의 의지로 바꿔나간다. 이에 그는 “숨지 않고 결국 끝까지 살아나가는 여성상, 그 엔딩이 주는 희망이 좋았다”고 강조했다. (사진제공=(주)디스트리뷰션 )김금순의 매력은 강렬한 눈매를 다양하게 변주하는 데 있다. 때론 소녀같다가도 털털하기 그지없고 또 순박한 감정을 여지없이 표출해낸다. ‘브로커’를 함께 찍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그의 연기를 보고는 “아이유랑 투샷을 준비했는데 등장 자체만으로 이미 캐릭터를 완성했다”며 나머지 촬영을 중단시키기도 했다. 자잘한 전사를 드러내기보다 신 자체를 씹어먹은 배우의 카리스마를 극찬했다고. “여든 일곱 되신 엄마가 저에게 늘 하신 말이 있어요. ‘좋아하는 거 다 하고 살라’고. 돌이켜보면 그 시대에 이미자 선생님의 노래를 늘 틀어놓으며 제 안의 끼를 자극하셨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이 영화의 주제인 ‘끝에는 늘 희망이 있다’는 걸 최대한 많은 관객들이 확인해주셨으면 합니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2024-04-15 18:00 이희승 기자

[B그라운드] '영잘알' 조지 밀러 감독, "시네마 진수 보여줄 것"

내한 간담회 갖는 조지 밀러 감독.(연합)“한국은 도시마다 영화제가 있다면서요?”영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를 연출한 조지 밀러 감독이 처음으로 한국땅을 밟았다. 15일 서울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의 푸티지 상영 후 내한행사가 열렸다.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문명 붕괴 45년 후 황폐해진 세상에 던져진 퓨리오사(테일러 안야 조이)의 생존기를 담은 작품.2015년 개봉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프리퀄로 제77회 칸영화제(2024) 비경쟁부분에 공식 초청됐다. 거장 감독의 포부와 연륜은 역시 남달랐다. 발전하는 영화 기술에 기대기 보다는 직접 카메라를 들고 영화 특유의 카체이싱 장면을 찍었다.“이런 영화일수록 똑같은걸 반복하거나 답습하면 안돼니까요. 무엇보다 이번 작품은 18년의 이야기를 담으면서 공통점과 독특함을 모두 담으려고 노력했다. 사람간의 상호 작용이 있는만큼 단순히 황야 위의 추격신만 있지 않습니다.”그는 지구에 닥친 기후위기를 예로 들면서 “우리가 겪는 일들이 이야기에 포함된다. 영화는 궁극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에서 느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관객들이 봐야지만 존재 이유가 있다. 개봉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아주 멋진 경험”이라고 밝혔다.1979년 ‘매드맥스’를 시작으로 ‘매드맥스2’(1981) ‘매드맥스3’(1985)를 선보인 조지 밀러 감독은 지난 2015년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를 선보인 이후 약 9년 만에 다시 한 번 ‘퓨리오사: 매드 맥스 사가’를 내놓으며 45년의 세계관을 관객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호주에서 후반 작업을 마친 뒤 오는 5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2024-04-15 13:57 이희승 기자

[B그라운드] 공동집행위원장의 정치색 논란? 세월호 특별전 준비… 올해도 전주국제영화제는 '선을 넘지'

정준호 전주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이 3일 오후 서울 용산구 CGV용산점에서 열린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발표 기자회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제 25회 전주국제영화제가 침몰하는 부산국제영화제도 못해 낸 ‘세월호 특별전’으로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우뚝 선다. 그간 여러 영화제에서 세월호의 비극을 다룬 영화를 상영하긴 했어도 특별전을 여는건 최초다. 3일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발표 기자회견에는 우범기 조직위원장, 민성욱·정준호 공동집행위원장, 문석·문성경·전진수 프로그래머, 박태준 전주프로젝트 총괄 프로듀서, 허진호 감독이 참석했다.올해 영화제에서는 지난해보다 15편 줄어든 43개국 232편(해외 130편·국내 102편)이 관객과 만난다. 개막작은 미야케 쇼 감독의 ’새벽의 모든‘이다. 일본 작가 세오 마이코의 같은 제목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는 이 영화는 PMS(월경전증후군)를 겪는 후지사와, 공황장애를 앓는 그의 동료 야마조에를 중심으로 두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폐막작은 카직 라드완스키 감독의 ’맷과 마라(Matt and Mara)‘다. 결혼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마라와 자유로운 영혼의 작가 매트와 재회한다는 스토리를 담았다.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그날을 기억하고 희생자들을 다시 한번 추모하는 ‘코리안시네마: 세월호 참사 10주기 특별전’이 예정되어 있어 의미를 더한다. 세월초 참사로 딸을 잃은 아버지의 절절한 마음을 담은 신영수 감독의 영화 ‘목화솜 피는 날’을 비롯해 윤솔지 감독의 다큐멘터리 ‘침몰 10년, 제로썸’과 옴니버스 다큐멘터리 ‘세 가지 안부’ 등이 상영된다.3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고사동 전주영화제작소에서 열린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발표 기자회견에서 우범기 조직위원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연합)이날 정준호 공동집행위원장은 얼마전 국민의힘 경기 화성을 한정민 후보와 찍은 사진에 대해 “사람을 좋아하고 사회 생활을 하다보니 영화제 집행위원장이라는 신분에도 지인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면서 “내 정치적 색을 드러낸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헤어지기 전에 사진을 찍자고 했고 그걸 본인이 SNS에 올린 게 선거운동처럼 나갔다. 내가 우유부단한 것”이라고 해명했다.여러 우려의 시각이 많았지만 공동집행위원장이자 배우로서 그의 인맥은 영화제를 향한 정부 지원 예산이 삭감되는 현실 속에 단비같은 존재다. 이날 정준호는 “지난해 직접 찾아뵌 많은 분이 후원회에 참가해 주셨고 올해도 힘든 시기에 도움을 주셨다. 무엇보다 지자체의 전폭적 협조로 전주시가 별도 추진하고 있던 관광사업 등과 연계했다”며 “덕분에 영화제 규모를 축소하지 않고, 기존 축제의 외형을 유지하는 수준 이상으로 영화제를 꾸릴 수 있게 됐다. 축제다운 축제를 기대해 달라”고 자평했다.최초 공개되는 월드 프리미어 영화만 82편으로 전체 편수는 지난해 42개국 247편(해외 125편·국내 122편)보다 15편 정도 줄었으나 정부 지원 예산이 대폭 삭감된 여건을 고려할 때 큰 차이 없이 열리는것. 이에 조직위원장인 우범기 전주시장은 “전주영화제가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영화제로 자리잡았다”고 강조했다.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는 오는 5월 1∼10일 전주 영화의 거리를 비롯해 전주시 일대에서 열린다.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2024-04-04 18:12 이희승 기자

[비바100] 봄비 오는 날 꼭 봐야하는 영화를 꼽자면! '레이니 데이 인 뉴욕'

액자식 구성으로 영화 속 촬영장면을 넣은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의 한 장면. (사진제공=그린나래미디어)유복한 집안에 재즈와 영화를 좋아하는 남자가 있다. 아이비리그가 주는 압박이 싫어 적당히 부자에다 수준도 높은 대학교로 편입해 캠퍼스 생활을 즐기고 있다. 영화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의 개츠비(티모시 샬라메)는 자신과 취향이 같은 완벽한 여자친구 애슐리(엘르 패닝)를 만나는 게 유일한 낙이다. 미국에서 알아주는 은행장 딸이지만 순진하기 그지없는 그와는 영화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으로 사랑에 빠졌다.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두 사람 사이는 학교 신문 취재로 뉴욕에 가면서 미묘한 균열이 인다. 개츠비의 고향이기도 한 그 곳은 세계의 메트로폴리탄이자 모두가 동경하는 곳. 하지만 애슐리는 뭔가 익숙하면서도 불편한 기색을 띤 남자친구의 표정을 살필 눈치는 없다.누가 봐도 세련된 프레피룩의 전형을 보여주는 티모시 샬라메는 개봉직전 감독 논란에 다른 출연 배우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출연료를 기부해 눈길을 끌었다. (사진제공=그린나래미디어)뉴욕에 가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원래는 친구가 가기로 했던 유명 감독이자 학교 선배인 폴라드(리브 슈나이더) 인터뷰가 담당자의 풍토병으로 인해 취소될 위기에 처한 것.대타지만 감독의 골수팬인 애슐리는 취재를 핑계로 연인인 개츠비의 고향에서 오붓한(?) 데이트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기로 한다.   결론만 말하자면 핑크빛으로 시작한 영화는 축축하고 현실적인 마무리를 향해 치닫는다. 성장통을 겪은 어린 연인들의 아픔을 딛고. 마침 뉴욕에는 봄비가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시기다. 길가만 걸으면 자신의 흑역사를 아는 동창들이 그야말로 득실거리고 있다. 그들에게 개츠비는 고향을 떠나 성공대로인 아이비리그를 박차고 낭만을 찾아 떠난 히피적인 존재다. 부자 아버지와 우아한 어머니 그리고 곧 집안좋은 형수와 결혼을 앞둔 형을 기꺼이 등진다. 이 지점에서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은 우디 앨런 감독 작품답게 수다스럽고 온갖 푸념과 각종 에피소드들이 넘쳐난다. 유독 뉴요커의 일상에 재즈의 자유분방함과 주인공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도시적으로 녹여내기로 유명한 감독은 20대의 방황하는 감정을 핀셋으로 정확히 집어낸다.화면이 바뀌어 길에서 동창을 만난 개츠비는 억지로 영화 촬영장에 끌려간다. 대사 없는 역할로 졸업영화의 대타로 출연하러 갔더니 전 여친의 귀엽고 수줍었던 여동생 챈(셀레나 고메즈)이 주인공이다. 자신의 집안과 친했던지라 어렸을 때부터 봐 왔던 두 사람은 흡사 남매 사이인데 첫 촬영부터 키스신을 찍으란다.세월이 흘러서인지 챈은 애슐리와의 관계를 제법 촌철살인으로 짚어낸다. 연인의 존재를 밝히는 언니의 전 연인이자 짝사랑했던 상대가 뭔가 이용당하고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사실 영화의 비극은 일찌감치 시작됐다.다양한 배우들이 아무리 작은 역할이라도 나오는 게 우디 앨런 감독 영화의 재미. 주드 로과 레베카 홀의 분량이 아쉬울 정도다. (사진제공=그린나래미디어)그저 자신이 졸업했던 학교의 신문사 인터뷰라 응했던 감독은 애슐리의 순수한 열정에 감격해 자신만의 고민을 스스럼없이 털어놓는다. 사실 그는 세상의 찬사에도 엄청난 압박과 우을증으로 괴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나의 신작을 평가해 달라”고 끌려간 시사회에서 소개받은 시나리오 작가 테드(주드 로)도 어리고 예쁜데 열정적이기까지 한 대학생 기자에게 끌린다. 하지만 테드는 함께 영화를 시사하던 중 신경쇠약으로 자리를 박차고 나간 감독을 찾으러 갔다가 아내(레베카 홀)의 바람을 마주한다. 그 사이 세계적인 배우 베가(디에고 루나)마저 풋풋한 애슐리의 매력에 빠져 레드카펫 행사에 대동시킨다. 문제는 아무 정보도 없이 점심에 이어 저녁 약속을 바람 맞은 개츠비가 TV생방송을 통해 ‘바람둥이 배우의 뉴페이스는 누구인가?’란 스포트라이트를 통해 연인을 접했다는 사실이다. 가장 돌을 던지고 싶은 애슐리 역할을 얄밉게 해 낸 엘르 패닝. (사진제공=그린나래미디어)사실 그는 모르지만 이 상황을 지켜보는 챈은 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비도 오고 촬영도 펑크난 무명배우지만 우연히 자꾸 스치는 언니의 전남친이 여자친구에게 휘둘리는 모습에 뭔가 부아가 치민다. ‘레이니 데이 인 뉴욕’에서 20대 청춘의 발랄함을 기대했다면 사실 오산이다.영화의 말미, 이상하게 냉랭했던 개츠비와 엄마의 사연이 이 영화의 화두로 부각된다. 단순히 부자의 화해라고 하기엔 애매모호한 엄마의 사연은 미국 주류라 불리는 Wasp(백인, 앵글로 색슨, 신교도)의 치부를 꼬집는다.멕시코 국민배우 디에고 루나가 순진한 여대생을 꼬시는 장면은 미디어가 소비하는 각종 스캔들을 가늠하게 만든다. (사진제공=그린나래미디어) 예정된 집안 행사에 바쁜 실제 연인을 두고 우연히 만난 절세미녀를 대동하고 온 개츠비는 그제서 돈과 교양이 넘치는 엄마의 과거를 알게 된다. 누구보다 속물적이라 여겼던 엄마의 조언에 개츠비는 드디어 애슐리를 버린(?)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 속 대사처럼 그 곳에 오롯이 존재하는 챈과 운명같처럼 조우한다. 현재 웨이브, 쿠팡 플레이, 넷플릭스에서 공개되곤 있지만 2017년 말 크랭크업 후 우디 앨런의 양녀 성추행 논란과 미투운동의 여파로 미국 및 대부분 국가에서 상영조차 못하고 있다 티모시 샬라메의 굳건한 팬덤으로 한국이 몇 안되는 개봉국가가 됐다. 무엇보다 올초 ‘웡카’의 흥행과 ‘듄: 파트2’의 기세에 발맞춰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이 지난 3월 재개봉하면서 극장가는 그야말로 ‘티모시 풍년’ 시절에 돌입했다. 극 중 그가 비에 젖어 챈의 집에서 쓸쓸하게 치는 피아노 곡은 무한반복으로 보고 싶을 지경이다. 굳이 영화로 보지 않아도 된다. 구간 반복, 안방에서 보는 재미는 바로 거기에 있으니까.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2024-04-03 18:30 이희승 기자

[비바100] 그 존재마저 희미해진 이들의 연대, 그래서 다정할 미래…연극 ‘천 개의 파랑’

연극 ‘천 개의 파랑’(사진제공=국립극단)국립극단 74년 역사상 로봇 배우의 첫 등장이다. 연극 ‘천 개의 파랑’(4월 16~28일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으로 국립극단의 로봇 배우 ‘콜리’가 무대에 데뷔한다. 연극 ‘천 개의 파랑’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기술들이 진보하는 미래를 배경으로 그 기술들과 미래가 배제하고 지나쳐버림으로서 희미해진 존재들을 직시하는 천선란 작가의 동명 SF소설을 바탕으로 한다. 천선란 작가의 '천 개의 파랑' 원작소설(사진제공=허블)5월에는 서울예술단이 이 소설을 바탕으로 창작가무극 ‘천 개의 파랑’(5월 12~26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초연을 준비 중이니 비교해보는 재미도 쏠쏠할 전망이다. ‘천 개의 파랑’은 경마장에도 사람들이 다칠까 혹은 무거워 한껏 달리지 못하는 말들이 더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도록 휴머노이드 기수가 도입된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한편에서는 소방서도 인공지능(AI) 로봇들이 주축을 이루고 인간 소방관들에 대한 예산이 줄면서 낡은 방화복을 입고 불과 맞서다 죽음을 맞이하는 시대에 소외된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다. 2023년 국립극단 작품개발사업인 ‘창작공감: 연출’ 공모 선정작으로 ‘햄버거를 먹다가 생각날 이야기’ ‘어부의 핵’ ‘마운트’ 등 로봇을 통해 고도화된 기술, 초연결세계로 발생할 현상들을 다뤄온 장한새 연출, ‘왕서개 이야기’ ‘붉은 낙엽’ 등의 김도영 작가 등이 함께 한다. 한때는 최고 몸값을 자랑했지만 관절을 심하게 다쳐 달릴 수 없게 된 경주마 투데이, 어릴 적 병으로 장애를 갖게 돼 휠체어를 탄 소녀 은혜(류이재), 누군가의 우연과 실수로 인지학습능력 칩이 장착돼 투데이의 고통이 느껴져 스스로 낙마하는 통에 하반신이 부서져 버린 휴머노이드 기수 콜리(김예은과 로봇 콜리), 로봇 분야의 천재지만 넉넉지 않은 집안살림에 꿈을 접어야만 하는 연재(최하윤), 낡은 방화복 차림으로 화재현장에 출동했다 죽음을 맞은 남편에 대한 애도를 끝없이 반복하는 은혜와 연재의 엄마 보경(김현정)…. 이처럼 소외되고 상처입고 약해진 이들이 하반신이 부서진 채 버려진 콜리, 안락사를 당하기 직전의 투데이와 깊은 교감을 나누면서 연대하는 이야기다. 달릴 때 가장 행복했던 투데이의 안락사 논의를 알게 된 은혜와 연재, 동물을 치료하는 의사 복희(허이래), 경마장 직원 민주(윤성원) 등은 투데이를 다시 주로에 세우기 위해 의기투합한다. 연극 ‘천 개의 파랑’(사진제공=국립극단)인간이 설 자리를 침략(?)하는 로봇과 기술, 어쩌면 우리가 상상하는 디스토피아는 ‘연대’를 통해 인류만 중시하던 때보다 훨씬 다정하고 따스해질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게 하는 이야기다. 안락사 위기의 경주마 이름이 ‘투데이’인 것도, 그와 깊이 교감하며 다시 세우기 위해 연대하는 이들의 사연들도 의미심장하기만 하다. 브로콜리 색의 몸통을 가져 '콜리'로 불리는 C-27은 인간 배우 김예은과 145cm의 키, 브로콜리 색 몸통, LED 얼굴, 스피커를 장착한 가슴 등을 가졌고 상반신, 팔, 손목, 목 등 관절을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반자동 퍼펫 형태의 로봇 배우 콜리가 함께 무대에 올라 연기한다. 연극 ‘천 개의 파랑’(사진제공=국립극단)국립극단 관계자에 따르면 “연출적 의도에 따라 두 배우는 번갈아 혹은 함께 연기한다.” 오작동을 대비하는 콜리의 커버 배우도 준비 중이라는 연극 ‘천 개의 파랑’은 애초 4일 개막 예정이었으나 2일 리허설 중 로봇 배우의 기술적 오류가 발견돼 16일로 연기됐다. 콜리의 기술적 오류을 개선하고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열흘 간 연극 관계자 및 기술자들은 비상체제에 돌입한다. 이 과정 또한 인간과 로봇의 연대일지도 모른다. 원작소설의 출발점이었던, 천선란 작가가 스마트폰 메모장에 적어둔 “우리는 모두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문장을 되새기면서. 좀 천천히 가도 괜찮다고 토닥이고 위로하면서.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4-03 18:00 허미선 기자

[비바100] 영화 '댓글부대'에서 홍경이 다.했.다에 토 달 사람?

영화 ‘댓글부대’속 팹택 역할로 열연한 배우 홍경.(사진제공=매니지먼트 mmm)“시나리오 안에서 서스펜스가 느껴졌어요. 제가 채워나갈 수 있는 무언가가 많아 보이는 캐릭터였달까요. 팹택은 외부활동이 거의 없고 친구들과의 관계가 전부인 애인데 그런 선입견을 벗어난 연기를 하고 싶었습니다.”영화 ‘댓글부대’에서 팹택으로 분한 홍경에게 소재의 예민함을 묻자 미학에 대한 믿음을 내놨다. 지난달 27일 개봉한 영화 ‘댓글부대’는 실제 기자출신인 장강명 작가가 여론조작에 대한 사실적인 취재를 바탕으로 현실에서 있을법한 에피소드를 녹여낸 동명 소설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대기업 비리에 대한 기사를 쓴 후 정직당한 기자 임상진(손석구)에게 온라인 여론을 조작했다는 익명의 제보자가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안국진 감독과의 작업에 대해 그는 “이렇게 가보고 저렇게도 튀어보고 하는 게 좋았다. 영화적인 체험과 경험을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말했다. (사진제공=매니지먼트 mmm)대중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존재가 자명하게 드러난 상황에서 한국사회의 고질병이기도 한 정경유착과 그에 휘둘리는 언론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낸 영화라 출연을 망설였을 법도한데 기우였다.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안국진 감독의 차기작인 ‘댓글부대’에서 홍경은 ‘댓글’을 조작하는 팀 알렙의 일원인 팹택을 연기했다. 배우가 되기를 꿈꾸며 수도 없이 본 다양한 국적의 영화들 중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손가락 안에 꼽는 최애작이었던 만큼 출연을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96년생 홍경’은 MZ다운 당당함으로 “모든 세대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중심축, 그래서 각 나이대의 연대의식에 매료됐을 뿐”이라고 말했다.다수의 취향보다 소규모 모임에서 안정을 찾는 전형적인 마이너 취향인 팹택은 얼굴에 주근깨가 가득하고 누구보다 패셔너블하다. 촬영 전 의상팀이 남자라면 주저할 게 뻔한 핑크 크롭티를 제안하자 흔쾌히 입고 그 옷에 어울릴 법한 선글라스를 쓰고 출연할 정도로 역할에 빠져 들었다.온라인 여론 조작을 주도하는 리더 찡뻤킹(김성철)과 스토리 작가이자 ‘댓글부대’의 제보자 찻탓캇(김동휘)이 진중함과 의심 사이를 오고 갈 때 홍경은 팹택이 지닌 장난끼와 은근한 관종끼를 스크린에 흘리며 ‘댓글부대’의 비극을 형광색으로 물들인다. 젊은이의 표상이라고 하기에 이들의 대화는 반이 욕설, 그리고 반은 서로에 대한 비판이다. 불안한 미래와 비루한 현실 속에서 세 사람의 우정은 굳건히 유지될 수 있을까. (사진제공=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세 친구들이 모여사는 집은 정말 구조가 이상한데 실제 감독님이 친구들과 살던 집을 고스란히 재현했다고 해요. 집안 맞은편에 대관람차의 네온사인이 가득 들어오는 현란한 조명은 실제 크기에 맞췄고요. 캐릭터들의 취향을 살린 세트장에서 촬영하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이번에 깨달았죠.”손석구와는 넷플릭스 ‘D.P’에 이어 두 번째 호흡이지만 한 장면도 마주치진 않는다. 다만 그는 스크린 속 손석구의 연기를 보고 “탄복했다”고 표현했다. “선배님의 팬보이예요.(웃음) 같은 작품을 두번 했다는 게 진심으로 저에게는 소중한 경험이거든요. 편집돼 아쉽긴 하지만 넷이서 촬영한 적이 있어요. 그때 어떤 식으로 연기를 하는지 그리고 궁금한 점을 모두 물어볼 수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좋은 아이디어를 내고 분위기를 이끄는 법을 많이 배웠죠. ‘삼세번’이란 말도 있으니까 세 번째에는 함께 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댓글부대’에서는 세 친구들의 우정이 마냥 끈끈하지만은 않다. 용돈벌이로 시작한 댓글 아르바이트로 무고한 여대생이 자살한 순간 세 친구는 저마다의 이유로 무너진다.최근 영화 홍보를 위해 유튜브 예능 ‘짠한형 신동엽’에 출연한 그는 유난히 반짝거리는 바지 때문에 많은 이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사진제공=매니지먼트 mmm)“가짜뉴스가 사실이 된다는 것 그리고 거기에 달리는 의견이 많고 각종 정보가 넘쳐나는 걸 마냥 나쁘게 보지만은 않습니다. 대립되는 의견이 나올수록 한편으론 건강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그럴 때일수록 분별력을 갖춰야 된다는 다짐을 더 많이 하게 되죠.”그간 홍경은 데뷔 이래 정의로운 형사, 군대 괴롭힘 가해자, 성소수자와 지적장애인까지 다양한 매체와 장르를 넘나들며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그는 “이걸 했으니 다음엔 저걸해 볼까라는 생각은 아예 안 한다”면서 “단지 그 역할의 감정을 굉장히 솔직하게 오래 들여다 본다. 두려움이 느껴져도 호기심을 불러내는지를 보는 편”이라고 고백했다.고등학교 2학년때 영화 ‘다크나이트’를 본 후 충격과 감동을 받아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다는 20대 후반의 홍경은 이어 “한 분야를 지독히 파는 것에 대한 동경이 있다. 지금은 모든 걸 흡수하는 단계일 뿐”이라며 자신의 연기인생에 겸허한 속내를 밝혔다.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2024-04-01 18:30 이희승 기자

[人더컬처] ‘거미여인의 키스’ 몰리나 정일우 “무대에 오르며 사랑하며 배우며, 꾸준히 노력하는 수밖에!”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몰리나 역의 정일우(사진제공=스튜디오252)“여성스럽게 보이려고 하기 보다는 몰리나가 가진 유약함, 정말 유리알같이 깨질 것 같은 캐릭터를 표현하려고 했어요. 그러다 보니 걸음걸이나 손동작, 말투 등이 더 몰리나스러워지지 않았나 싶어요.”연극 ‘거미여인의 키스’(Kiss of The Spider Woman, 3월 31일까지 예그린씨어터)에서 스스로를 여자라고 믿는 몰리나로 분하고 있는 정일우는 “영화 ‘대니쉬걸’(The Danish Girl)의 에디 레드메인(Eddie Redmayne)을 참고했다”고 털어놓았다.“에디 레드메인이 연기하는 캐릭터(풍경화가 에이나르 베게너)가 결혼하고 나서 성 청체성을 깨달아는 이야기인데 그가 표현하는 디테일들이 몰리나랑 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더불어 장국영 배우의 ‘패왕별희’도 참고하면서 제가 가지고 있는 섬세함과 예민함 등 몰리나와 비슷한 결들을 끄집어내 표현하고 있죠.”연극 ‘거미여인의 키스’에서 몰리나로 무대에 오르고 있는 정일우(사진제공=레드앤블루)연극 ‘거미여인의 키스’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빌라 데보트 감옥의 작은 감방을 배경으로 스스로를 여자라고 믿는 몰리나(이율·전박찬·정일우, 이하 시즌합류·가나다 순)와 정부에 저항하는 정치범 발렌틴(박정복·차선우·최석진)의 이야기다.아르헨티나 작가 마누엘 푸익(Manuel Puig)이 1976년 발표한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1985년 영국 런던 브러시 시어터에서 연극이 초연됐다. 같은 해 영화로도 만들어져 칸영화제와 미국·영국 아카데미에서 몰리나 역의 윌리엄 허트(William Hurt)가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1992년에는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 이듬해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로 만들어져 무대에 오르기도 했던 ‘거미여인의 키스’는 한국에서2011년 초연된 후 2015년, 2017년에 이어 새로운 프로덕션으로 6년 만에 돌아왔다.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몰리나 역의 정일우(사진제공=스튜디오252)“감사하게도 같은 시기에 세편 정도의 연극에서 출연제의를 받았어요. ‘거미여인의 키스’나 몰리나는 제가 기존에 하지 않았던 극이자 캐릭터여서 주변에서는 만류하는 분위기였죠. 고민하던 차에 (드라마 ‘해치’로 인연을 맺었고) 이전 시즌에서 발렌틴을 연기했던 정문성 형에게 조언을 구했어요. 형이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작품’이라고 ‘하고 나면 많은 걸 느끼고 배울테니 네가 꼭 도전해보면 좋겠다’고 얘기해주셔서 용기 내 도전하게 됐죠.”그 과정은 그의 표현대로 “험난했다.” 두달 반가량 매일을 지하철로 혜화동을 오가며 고민하고 연습했다. 뭔가 풀리지 않거나 고민이 깊어질 때면 박제영 연출에게 새벽이고 밤이고 전화를 걸어 “엄청 괴롭히면서” 무대에 오를 준비를 했다.“가장 큰 고민은 ‘몰리나의 사랑은 뭐지?’였어요. 이 친구가 가진 사랑은 이성 간 사랑이나 호기심에서 시작한 사랑이 아니라 다른 차원의 것 같았거든요. 멘붕이 온 상태에서 정문성 형이랑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죠. 형의 ‘모성애에 가까운 사랑이지 않겠냐’라는 말을 듣는 순간 정답이 되겠더라고요. 발렌틴이 부족한 걸 채워주려고 애쓰고 그를 위해 희생하는 몰리나의 사랑이 제가 어머니께 받는 것과 굉장히 비슷했거든요.”치열한 고민 끝에 몰리나로 무대에 오르고 있지만 정일우는 “워낙 대사량이 방대하다 보니 죽을 만큼 부담감이 커서 지금도 매 공연 전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리딩을 하고 무대에 오른다”며 “완성됐다고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매회 부족한 걸 찾아내고 채워넣으면서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그게 연극의 의미라고 생각해요. 매 공연 100%에 가까운 완성도를 보여드리려고 노력하지만 사실 100% 만족은 어려워요. 매회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죠. 그게 굉장히 힘든 부분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성장할 수 있지 않나 싶어요.”연극 ‘거미여인의 키스’에서 몰리나로 무대에 오르고 있는 정일우(사진제공=레드앤블루)정일우는 몰리나를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기도 했다”며 “저는 굉장히 겁이 많고 항상 걱정이 앞서는 사람이다. 겉으로는 당당하고 괜찮은 척 하지만 혼자 있을 때는 동굴 속으로 파고들어가는 사람이라 항상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고 털어놓았다.“그래서 몰리나가 굉장히 부럽기도 해요. 저 역시 가식적으로 행동하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는 제약들이 많거든요. 그런데 몰리나는 굉장히 자유로워요. 심지어 1960년대에 이렇게까지 깨어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놀라워요. 부럽기도 하고 몰리나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도 들죠. 그처럼 살아가고 싶기도 해요. 관객분들 역시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연극 ‘거미여인의 키스’는 2인극으로 두명의 배우가 온전히 끌어가는 이야기다. 상대 배우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몰리나가 되기도 한다는 정일우는 “최석진 배우의 발렌틴은 극 ‘T’(MBTI 중 감정 보다는 사고하는 유형)”라고 밝혔다.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몰리나 역의 정일우(사진제공=스튜디오252)“박정복 배우는 초반에 굉장히 날카롭다가 후반부로 가면서 굉장히 부드러워져요. 저를 안아주는, 오빠 같은 발렌틴이죠. 반면 차선우 배우는 오히려 제가 안아주고 싶은 동생 같은 모습이 있어요.”타고난 본성, 스스로의 정체성에 당당하고 충실한 듯 보이지만 내면의 상처, 비밀 등을 숨기고 있는 몰리나 그리고 신념과 혁명을 위해 원초적 본성을 절제하는 듯 보이지만 억압 속에서 결국 본능에 충실하게 돼버리면서 고뇌하는 발렌틴.극과 극처럼 보이지만 결국 어이진, 저마다의 다름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기꺼이 보듬는 두 사람의 연대이자 사랑이야기다. 두 사람처럼 극과 극의 성향이지만 친해진 경우가 있냐는 물음에 정일우는 “이민호”를 언급했다.“저와는 정말 다른 스타일이에요. (이)민호는 정말 남자 같거든요. 저는 좀 섬세하고 여성스러운 부분이 있는 것도 같아요. 함께 여행을 가면 요리는 제가 다 해주고 챙겨주곤 하죠. 반면 민호는 터프하지만 은근히 챙겨줘요. 그 마음이 되게 따뜻한 친구죠.”그렇게 정반대인 두 사람이 가까워질 수 있었던 건 “생사를 함께 나누면서”다. 정일우는 “배우가 되기 전부터 친구라 굉장히 많이 기대는 편”이라며 “얘기를 많이 하지 않아도 통하는 그런 친구”라고 털어놓았다.“하지만 만나면 혹은 제 연극을 봤다면 분명 뭐라고 할지 상상이 돼요. ‘거기서 왜 그렇게 연기를 하냐’는 둥 막 뭐라고 했겠죠. 그러면서도 저희는 항상 열심히 서로를 응원해 주는 사이예요.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그런 감동이랄까요.”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몰리나 역의 정일우(사진제공=스튜디오252)정일우는 “다시 한다고 해도 몰리나”라고 단언할만큼 몰리나에, ‘거미여인의 키스’에 빠져 있었다. 그는 “연극을 많이 한 건 아니지만 그날 공연을 잘하면 좀 개운하고 성취감도 느끼곤 했는데 이 작품은 그런 게 전혀 없다”고 토로했다.“굉장히 마음이 먹먹해져요. 공연 끝나고 나서도 그게 해소가 잘 안 되더라고요. 그날의 공연이 끝나도 굉장히 마음이 가라앉아요. 공연 끝날 때까지 그러지 않을까 싶어요. 이 작품의 여운이 꽤 오래 가지 않을까, 어떻게 빠져나가야 하나 미리부터 걱정을 하고 있죠.”정일우는 벌써 데뷔 20주년을 앞둔 중견(?) 배우다. 그는 “일하면서 관계자분들께 ‘시장이 좋다’는 말은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며 “다들 영화며 드라마 제작편수가 줄었다고들 하시지만 10년 전이랑 비교해보면 비슷한 수준”이라고 짚었다.연극 ‘거미여인의 키스’에서 몰리나로 무대에 오르고 있는 정일우(사진제공=레드앤블루)“그래서 사실 배우도 잘 인내하고 버티는 게 살아남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무작정 기다리기보다는 분명 무언가를 찾아서 할 것들이 있다고 믿으면서요. 그 안에서 최선을 다 하다 보면 또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이어 그는 “꾸준히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정일우는 “벌써 20년 가까이 이 일을 해올 정도로 배우라는 직업을 사랑한다”며 “제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끝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배우는 어쩔 수 없이 평가를 받는 직업이잖아요. 운만으로는 한계가 있죠. 비슷비슷한 작품에서 출연제의는 계속 들어오긴 할 거예요. 하지만 그렇게만 한다면 결국 뒤처질 수 밖에 없죠. 각자 스타일대로 노력해야 하고 저 역시 그러고 있습니다.”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몰리나 역의 정일우(사진제공=스튜디오252)정일우는 연극에 대해 “앞으로도 기회만 주어진다면 계속 하고 싶다”며 “이순재 선생님께서 ‘거침없이 하이킥’ 때부터 무대에 서라고 말씀해주셨다”고 밝혔다.“이전 작품(‘엘리펀트 송’)은 매번 와서 봐주시기도 했어요. ‘무대에 서지 않는 배우는 배우로 치지 않는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 무대에서 2시간가량을 끌고 갈 수 있는 역량을 키워나가고 또 거기서 새로운 걸 느끼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면서 배우로서 살아있다고 느껴지거든요. 그래서 저는 기회만 된다면 평생 무대에 서고 싶어요.”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3-29 18:00 허미선 기자

[비바100] 81년생 장재현 감독이 쏘아 올린 'K오컬트'의 힘… "더더더더 파고들것"

지난 21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장재현 감독은 “슬픔은 좋아하지만 어둠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두운 세계관에 빛을 보는 그런 느낌이 좋은 것 같다”는 연출관을 밝혔다.(사진제공=쇼박스)조용하고 풍족한 시골에서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학교 진학을 위해 근처 소도시로 이사를 했어도 밝고 따듯한 가족애는 변하지 않았다. 스스로 “늘 행복했던 그때의 기억이 되려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에 끌리게 만든 것 같다”고 웃음짓는 장재현 감독은 올해 첫 1000만 영화 ‘파묘’를 만든 장본인이다. 손익분기점인 330만명이 넘고서부터 고향에 “영주의 아들” “영화 ‘파묘’의 히딩크”라는 문구가 담긴 플래카드가 곳곳에 걸리면서 화제성을 실감했다고. 풍수와 무속신앙을 결합한 이 작품 이전에 ‘검은사제들’ ‘사바하’ 등 다소 어두운 소재의 영화를 만들어왔던 그는 “당연히 이 세상에 신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며 출발점을 알렸다. 교회 집사지만 무속신앙이나 타 종교를 다루는 것에 거부감이 없는 이유도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장재현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인 ‘검은 사제들’은 악령에 지배당한 사람들과 사제들의 구마의식을 한국식으로 풀어냈다는 극찬을 받으며 당시 545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두 번째 작품인 ‘사바하’는 신흥 종교 비리를 밝히려는 목사가 마주하는 미스터리한 일들을 그렸다. 다음은 불교만 남은 거냐는 질문에 장 감독은 “단정지을 수 없지만 뭐든 특정 종교를 두고 작업하진 않는 편”이라고 강조했다.개봉 31일 만에 올해 첫 1000만 영화에 등극한 ‘파묘’의 공식 포스터. (사진제공=쇼박스)그가 정의내린 ‘과학적으로 해명할 수 없는 신비적, 초자연적 현상’은 사회적으로 ‘오컬트’라고 정의되고 있다. 공포를 기반으로 한 그 오묘한 장르에 빠진 건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으로 충만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이다.“사랑이 워낙 충만한 분위기에서 자란 탓에 괴상하고 기이한, 흉칙한 것의 세계에 되려 빠져 든거죠. ‘파묘’는 결국 땅에 묻힌 상흔의 역사로 귀결되는데 우리 민족의 한은 파면 팔 수록 구한말 일제치하와 겹치더라고요. 극 중 ‘여우가 범의 허리를 잘랐다’는 대사도 나오지만 일제가 우리나라의 정기를 끊기 위해 우리 땅 곳곳에 쇠말뚝을 심어뒀다는 설을 믿는 입장이라 시나리오로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파묘’에는 여러 매체에서 스치듯 등장했던 여러 일제 잔재의 흔적이 나온다. 일본 무사 다이묘의 묘사를 기반으로 은어와 참외, 음양사와 더불어 풍수와 굿에 씐 한국식 묫바람, 동티, 대살굿 등이 그렇다. MZ무속인으로 분한 김고은과 이도현이 극 설정상 나이와 경력이 한참 위인 풍수사 상덕(최민식)과 장의사 영근(유해진)과 허물없이 지내는 장면은 바뀐 시대상을 반영한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죽은 자에게 전하는 예의와 위로’를 행하는 사람들이다.배우들의 남다른 호흡에 극찬을 이어가던 그는 “무대인사에서 ‘할꾸’(할아버지 꾸미기), ‘최꾸’(최민식 꾸미기)란 유행어를 탄생시킨 건 평생 잊지못할 감동”이라면서 “극의 긴장감을 풀어주는 베테랑의 모습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사진제공=쇼박스)영화의 시나리오를 한창 써내려갈 무렵 우연히 천안에 위치한 독립기념관에서 캐릭터의 이름을 따오며 ‘파묘’ 버전 이스터 에그(작품에 숨겨진 메시지나 기능)에 불을 지폈다. 땅신에게 던지는 이순신이 새겨진 100원짜리가 원래는 10원짜리라는 점 그리고  이장을 의뢰한 사람이 묵던 서울 플라자 호텔이 과거 조선총독부 자리를 보여주기 위한 명당이라는 점이 각종 SNS를 뜨겁게 달궜다.“영화를 재밌게 봤으니까 더 알고 싶은 건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걸 의도하고자 했던 경우는 단 한번도 없어요. 단지 이런 반응들이 영화의 생명력을 길게 가져가는 것 만큼은 확실해요. 감사할 따름이죠. 무엇보다 ‘파묘’는 그동안 관객들이 본 적 없는 걸 보여주겠다는 마음으로 장르적 재미를 살리는 데 95%이상 집중했달까요? 영화란 어두운 극장에서 사람들이 모여 보는 거란 걸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지금의 OTT시대가 오기 전까지 수많은 경험을 해온 최민식, 유해진 선배님들이 무대인사를 돌 때 ‘그래, 이 맛에 영화하는거야’라고 하시는데 뭔가 울컥하더라고요.”한편 중국에서는 불법 사이트를 통해 관람한 후 얼굴에 한자를 새기는 행위를 매우 모욕적이고 굴욕적인 행위라고 비난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사진제공=쇼박스)고무적인 건 ’파묘’의 해외 반응이다. ‘파묘’의 흥행세는 한국을 넘어 전세계가 주목하는 모양새다. 지난달 28일 인도네시아에서 개봉해 200만 관객을 돌파했고 호주, 싱가포르, 북미 및 영국까지 140여개국에 팔리며 ‘K오컬트’ 장르를 전파하고 있다. 장 감독은 “‘파묘’를 찍으며 그동안 1000번도 넘게 보고 지금도 시간날 때마다 틀어놓는 영화 두편을 살짝 오마주했다는 점이 가장 기쁘다”는 속내를 밝히며 소년처럼 미소지었다. 주인공은 공포 스릴러의 원조 ‘엑소시스트’와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의 ‘드라큘라’다. “볼 때마다 감탄하는 장면이 있어요. 드라큘라가 박쥐로 변신한 때를 놓치지 않고 십자가를 박는데 그때 대사가 ‘십자가를 정복한 지 1000년이 넘었다’예요. 그리곤 (십자가를) 불태워 버리죠. 그래서 일본 귀신이 자신을 공격하는 묘벤저스에게 ‘금강경을 외운 지 500년’이라는 장면을 찍을 때 너무 행복했습니다. 바운더리가 좁은 사람이라  계속 이 장르를 할 것 같아요. 다만 더더더더더 깊게 들어갈 것 같습니다.”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2024-03-25 18:30 이희승 기자

[문화공작소]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콰지모도 정성화 “300회 넘은 윤형렬, 1000회 넘은 타이거, 갈 길이 멉니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콰지모도 역의 정성화(사진제공=마스트인터내셔널)“이 작품이 워낙 오래되다 보니 1000회를 넘게 공연한 타이거라는 친구가 있어요. (콰지모도 역의) 윤형렬 배우도 이번에 300회를 넘겼어요. 이 작품에는 정말 존경스러운 사람이 많구나 싶고 이 친구들에 비하면 저는 가야할 길이 먼 것 같습니다.”서울 공연의 막바지, 지방 출격을 앞둔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Notre-Dame de Paris, 3월 24일까지 세종문화회관, 3월 29일~4월 7일 부산 소향씨어터 신한카드홀, 4월 12~21일 계명아트센터, 4월 26~28일 이천아트홀 대공연장, 5월 3~5일 광주예술의전당 대극장, 5월 10~12일 세종예술의전당)에서 콰지모도(윤형렬·양준모·정성화, 이하 시즌합류·가나다 순)로 분하고 있는 정성화는 “가야할 길이 멀다”고 털어놓았다.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콰지모도 역의 정성화(사진제공=마스트인터내셔널)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는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Victor Hugo)가 1831년 발표한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리카르도 코치안테(Riccardo Cocciante) 작곡, 뤽 플라몽동(Luc Plamondon) 작사로 넘버를 꾸려 무대화한 작품으로 1998년 파리에서 초연됐다.전세계 23개국, 9개 언어로 공연돼 1500만명 이상의 관객들을 만난 작품으로 한국에서는 2005년 프랑스 오리지널 내한공연으로 처음 무대에 올랐다.2005년을 시작으로 2006년, 2014년, 2015년, 2020년, 2021년, 2022년 프랑스 오리지널 프로덕션이 무대에 올랐고 2012년에는 영어로 공연되기도 했다. 한국어 버전으로는 7번째 시즌으로 6년 만에 돌아왔다.1482년 프랑스 파리, 종교가 권력이던 시대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집시여인 에스메랄다(정유지·솔라·유리아)와 그녀에 빠져든 노트르담 대성당의 종지기 콰지모도, 그 성당의 부주교이자 권력자인 프롤로(이정열·민영기·최민철), 근위대장 페뷔스(김승대·백형훈·이재환) 세 남자가 펼치는 사랑과 욕망의 대서사시다.거리의 음유시인 그랭구와르(마이클리·노윤·이지훈)가 화자(話者)로 나서 추한 외모로 집시에도 버림받은 멸시의 대상인 콰지모도, 종교와 에스메랄다를 향한 욕망으로 번뇌하는 프롤로, 약혼자가 있으면서도 다른 사랑을 갈구하는 페뷔스의 에스메랄다를 둘러싼 엇갈림 그리고 클로팽(박시원·장지후·김민철)이 이끄는 집시들의 자유에 대한 갈망, 편견에 대한 저항의 몸부림 등을 전한다.“이 작품에서는 댄서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어요. 너무너무 힘든 부분들을 매 공연 죽을 듯이 소화해 내거든요. 옆에서 보고 있자면 안쓰럽기도 하지만 위대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안무 자체가 굉장히 어렵거든요. 그들과 같이 연습을 하다보면 태릉선수촌에 와 있는 느낌이죠. 너무 존경스러운 친구들과 같이 하고 있구나 싶어 매일 반성하면서 공연하고 있습니다.”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에 콰지모도로 출연 중인 정성화(사진제공=마스트인터내셔널)정성화는 자신이 표현하는 콰지모도에 대해 “그 인물 자체가 가지고 있는 충격적일 정도의 추한 이미지 전달과 연민의 정이 느껴지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공연이 끝날 때쯤에는 너무 불쌍해서 나라도 사랑해주고 싶다고 할 정도로 연민의 정이 느껴지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캐릭터를 구축해 왔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에스메랄다를 향한 사랑에 빠지게 되는 계기와 가장 깊게 사랑에 빠지게 되는 시기 등에 대해 다름대로 고민했어요.”그리곤 “‘아름다워’(Belle)를 부르면서 사랑에 빠지고 그녀를 집으로 초대하는 노래(Ma maison c‘est ta maison 내 집은 너의 집, 내 집은 그대의 집)를 했을 때 사랑이 깊어지다가 그녀를 감옥에서 구해주면서 사랑이 절정에 이르게 된다”며 “그 과정을 관객분들께 충분히 이해될 수 있게 표현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을 보탰다.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에 콰지모도로 출연 중인 정성화(사진제공=마스트인터내셔널)정성화는 ‘노트르담 드 파리’에 앞서 빅토르 위고의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한 뮤지컬 ‘레미제라블’ 2012년 초연과 2015년 재연의 장발장으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유난히 인연이 잦은 빅토르 위고에 대해 정성화는 “그의 작품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인물 묘사”라고 꼽았다.“책인데도 ‘레미제라블’도 그렇고 ‘노트르담의 곱추’도 그 인물이 어떻게 생겼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가 굉장히 명확히 드러나거든요. 그분의 작품들이 사랑받은 이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노트르담 드 파리’가 사랑과 욕망 이야기라면 ‘레미제라블’은 그 시절을 사랑하는 이들의 배고픔, 권력자들의 욕망 등이 표현된 작품이죠.”2022년 윤제균 감독의 뮤지컬 영화 ‘영웅’에 안중근으로 출연했던 그는 “한국에서 뮤지컬 영화는 여전히 불모지”라며 “우리나라에서도 분명히 뮤지컬 영화가 잘 되는 날을 있을 거라는 꿈을 꾸면서 살고 있다”고 전했다.뮤지컬 ‘영웅’과 안중근은 그의 대표작이자 캐릭터다. 그는 “이미지가 강하다보니 그가 방송에서 부른 ‘춤을 춰요 에스메랄다’에 대해 ‘에스메랄다 일어나, 독립운동해야지’라는 것 같다는 분들도 있었다”며 “내 눈높이에서 표현한 것과 관객들이 받아들이는 것이 다를 수 있다는 걸 깨닫고 반성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대표작이 있음에도 다른 작품을 했을 때 그 작품이나 인물이 생각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배우의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연을 많이 했지만 ‘이 정도면 됐다’라고 생각한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드라마 ‘카이스트’로 좀 알려지고 나서 한동안 일이 끊긴 적이 있어요. 배우라는 생활 자체가 발전을 거듭하지 않으면 끝난다는 걸 깨달았죠. 그때부터 20년 동안 발전을 계속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때도 절실했지만 지금도 계속 절실하게 하고 있습니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3-21 18:00 허미선 기자

[비바100] 과일을 영화로 맛 '보는' 일 만큼은 거.부.한.다

한국 영화계 전설인 윤정희가 15년만에 스크린에 복귀해 화제를 모았던 ‘시’의 한 장면. 배우 역시 알츠하이머 투병 중이었던 사실이 나중에야 알려지졌다.(사진제공=파인하우스필름)외손자의 아침밥을 챙기는 게 하루 일과 중 가장 중요한 미자(윤정희)는 중풍걸린 노인을 간병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생활은 비루해도 소박하게나마 일상을 즐기고 호기심 많은 성격의 소유자인 그는 일부러 시간을 내 동네 문화원에 등록한다. 요즘 정신이 예전같지 않아서다. 시를 외우고 쓰게 되면 매번 깜박하고 뭘 잃어버리는 데 작게나마 도움이 될 거란 생각이다. “여러분은 살면서 이 사과를 몇번이나 봤어요? 1000번? 1만번? 아닙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이 사과를 한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어요. 관심을 갖고 대화하고 싶어서 사과를 오래도록 지켜보며 무슨 말을 하나 귀 기울여 보고 주변에 깃드는 빛도 헤아려 보고 그러다 한입 깨물어 보기도 해야 진짜로 본 거예요.” 실제 김용택 시인이 강사로 등장해 읊는 이 대사는 미자의 영혼을 울린다. 그렇게 시작된 시 쓰기는 쉽지않다. 사과는 늘 미자의 곁에 있었다. 국가보조금을 받으며 어렵사리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사과 한알만큼은 먹고 살았다. 중학생이 되어 말수도 적어지고 늘 퉁퉁거리던 손자의 비밀을 알게 된 것도 그 즈음이다. 마지막 수업까지 시 한편을 작성해 내야 하는 미자의 시상은 같은 학교의 여학생에게 한 손자의 ‘몹쓸 짓’으로 인해 처참히 깨진다.고소와 더불어 합의를 요구하는 피해자 부모의 말이 귀에 들리지 않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그런 엄청난 일에 순하고 정 많은 손자가 연루됐다니 분명 나쁜 친구들이 시켰거나 그 역시 피해자였을지 모른다고 미자는 생각했다. 하지만 진실은 거칠고 때론 잔인하다. 손자의 범죄사실을 확인한 그는 늙고 비루한 몸이어도 수컷 본능을 주체 못하던 노인(김희라)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한다. 굴욕의 순간이 지나고 돈을 요구하는 미자에게 노인은 기가 찬다. 중풍 걸린 노인의 입장에서 미자의 몸은 돈을 주고서라도 취할 존재가 아니었다. 그저 자신보다 약자인 그를 유린하고 반항조차 못하는 상황을 보고 싶어했으리라. 하지만 미자는 달랐다. 그렇게 받은 돈으로 합의금을 해결하고 손자의 죄는 법의 테두리 안에 맡긴다. 자신의 정신이 흐릿해져 갈지언정 세상 순리를 거스르고 싶지 않은 한 인간의 자존감이 그렇게 자살한 학생의 세례명을 딴 ‘아녜스의 노래’를 완성한다. 실제 모녀 케미스트리를 자랑한 극 중 문소리와 김태리의 즐거운 한 때.(사진제공=메가박스플러스엠)또 한편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기존에 보지 못한 모녀관계가 그려진다. 엉뚱하지만 늘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던 엄마(문소리)가 갑자기 집을 나갔다. 자신이 당당히 대학을 붙은 직후였다. 그리고 연락조차 되지 않는다. 이럴수가. 혜원(김태리)는 그렇게 엄마한테 버려졌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고향을 떠났지만 도시의 삶은 녹록치 않다. 졸업 후 준비하던 임용고시에 남자친구만 합격하고 혜원은 떨어진다. 도망치듯 고향으로 돌아오니 어린 시절 친구들이 그대로 그곳을 지키고 있다. 서울에서 번듯한 회사에 취직했던 재하(류준열)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농사를 짓고 있다. 그를 짝사랑하는 은숙(진기주)는 읍내 작은 은행의 직원이다. 간만에 뭉친 세 친구는 어린시절 틈날 때면 혜원의 엄마가 만들어주던 음식을 함께 추억한다.사계절 자연 속에서 직접 만든 음식은 소박하기 그지없다. 감자빵, 팥시루떡, 겨울 배추국, 알싸한 막걸리. 과거의 기억과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힐링 음식 속 토마토는 극 중 혜원의 상황과 묘하게 닮아있다. 고등학교 시절 혜원은 나무 그늘에서 맛있게 토마토를 먹는다. 마당 한켠에 심은 토마토 가지에는 휘어질 정도로 주렁주렁 열매가 달려있다. 엄마는 다 먹은 토마토를 다시 밭에 던지며 “내년에도 또 자랄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 쉽게 키울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병충해를 견뎌야 하고 햇볕에 탈 수도 있으며 비가 조금이라도 많이 오면 채 열매를 맺지못하고 꽃이 떨어져 버린다. 하지만 비닐하우스가 아닌 노지 토마토는 단단하기 그지없다. 그 고난을 겪으며 열매를 맺은 토마토의 단 과즙처럼 세상에 나와 실패와 상처를 겪어도 다시 일어나길 바라는 엄마의 바람이 듬뿍 담겨있다. 개봉 당시 임순례 감독은 “최대한 촬영 기간을 줄일 수도 있었지만 각 계절의 정수를 정확하게 보여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사계절 촬영을 주장했다. 배우들과 스태프 모두 우리 영화만 찍는 것은 아니니 어려움이 많았지만 특수한 사정에 적극 동의해줬다”며 고마움을 전했다.어쩌면 이제 과일은 ‘혀가 아닌 눈‘으로 보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13일 기준 사과 도매가격은 처음으로 10kg당 9만원대를 기록했다. 1년 만에 2배 넘게 뛰었다. 지난달 사과 물가 상승률은 71.0%, 역대 세 번째로 70%를 넘는 수치다. 배는 61.1% 상승해 1999년 9월(65.5%) 이후 24년 5개월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사과·배 등의 과일을 대체할 수 있는 참외, 토마토 등 과채류 공급이 풍부해지면 과일 수요가 분산돼 가격이 다소 낮아질 가능성도 있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에그플레이션(기후 변화나 전쟁, 국제 유통질서의 혼란 등에 의한 농산물 가격 상승이 전체적인 물가 상승을 선도한다는 뜻)은 사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최근 ‘농업관측 3월호’ 보고서에서 일조 시간 부족으로 주요 과채류 출하가 감소함에 따라 가격이 작년 같은 달보다 오를 것이라고 진단했다. 농경연은 이달 토마토와 대추방울토마토 도매가격이 2만 3000원(5㎏)과 2만 4000원(3㎏)으로 1년 전보다 43.9%, 11.2% 각각 상승할 것으로 전망한 상태다.‘사과가격 얼마까지 오르나…’(연합)과일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상황에서 떠오르는 건 통조림이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속 황도 통조림은 지구멸망의 시대, 과일을 구할 수 없는 설정으로 관객의 시선을 끌었다. 생명을 구하는 직업을 가진 명화(박보영)는 모든 건물이 무너진 상황에서 남편 민성(박서준)과 살아남는다. 현실에서는 그저 복도식 서민 아파트로 무시받았지만 그들이 사는 황궁 아파트는 살아남은 부자들이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지상낙원이다. 다들 황궁 아파트로 몰려들 때 바리케이트를 치는 건 영탁(이병헌)의 몫이다.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식량을 분배하고 생존룰을 제시하는 인물로 입주민들에 의해 만장일치로 대표가 됐다. 명화는 추위에 떠는 한 소년과 모피로 온 몸을 휘감은 엄마를 몰래 집안으로 들인다. 이 모자의 눈을 피해 민성은 시계를 팔고 물물교환으로 어렵사리 황도 통조림을 구해온다. 이번 한번만 눈 꼭 감고 우리끼리 먹자는 민성과 그래도 외부인들에게 나눠줘야 한다는 명화의 실랑이도 잠시 화면은 국물까지 들이켜는 소년의 모습을 비춘다. 아마도 민성 역시 저 황도가 먹고 싶었을텐데 기회는 없었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급하게 캔을 따고 아내의 입에 한입 넣어준 순간 눈치없는 아이가 방문을 열며 명화를 부른다. 얼마전 아이를 잃은 명화는 본능적으로나 직업적으로나 생명과 공존을 최우선하는 캐릭터다. 살기 위해 점차 변해가는 남편을 바라보는 불안한 시선 끝에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배우 엄태구가 뜯고 있는 뼈다귀를 슬쩍 훑는다. 운 좋게 배회하던 돼지를 사낭했을 법도 하지만 엄태화 감독은 브릿지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관객의 상상에 맡기겠지만 시나리오 상에선 동물은 아니었다”는 말로 섬뜩함을 더했다.본론으로 돌아와 복숭아는 그냥 먹어도 맛있는 과일이다. 6~8월 여름에 주로 생산되며 수분이 많고 당분, 유기산, 비타민 A, 펙틴 등 영양 성분도 풍부하다. 알칼리성 식품으로 면역력을 키우고 식욕을 북돋아 주며 위·장·눈 건강, 독성 제거 등의 효능도 탁월해 통조림, 주스, 잼 등으로 가공해 섭취하기도 한다. 모든 과일은 제철에 생으로 먹는 게 제 맛이다. 하지만 천정부지로 치솟는 과일 값에 통조림 과일만큼 반가운 존재도 없다. 더이상 비싸지지 않고 마음 놓고 과일을 집어드는 그 날이 빨리 오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2024-03-14 18:00 이희승 기자

[비바100] '감독 하정우'는 장준환의 뒤를 이을 '저주받은 걸작'을 일찌감치 내놨다!

감히 이 영화는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급으로 회자될 엄청난 작품임에 틀림없다. 최근 개봉 21년 만에 할리우드 리메이크작을 확정지은 ‘지구를 지켜라’는 난해하고 기괴한 연출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 작품. 외계인으로 인해 지구가 위험에 처할 것이라 믿는 병구(신하균)는 외계인을 처단한다는 명목하에 주변 인물들을 살해하는 내용을 기괴하고 난해하게 그렸다. 괴랄하고 귀여운 승무원들 중 가장 인상깊은 연기는 기장으로 나온 한성천이다. 한국인이라면 결코 소화할 수 없는 헤어스타일로 등장, 이후 하정우 영화의 페르소나라 할 정도로 끈끈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사진제공=CJ 엔터테인먼트)이른바 ‘저주받은 걸작’으로 불리는 장준환 감독의 데뷔작으로 할리우드 버전은 그리스 출신인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이 메가폰을 잡는다. 그간 영화 ‘송곳니’ ‘더 랍스터’ ‘킬링 디어’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가여운 것들’ 등을 연이어 선보이며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는 스타 감독이 어떤 변주를 내 놓을지 기대되는 가운데 ‘롤러코스터’ 역시 그 궤를 이을 것으로 보인다.차이점이 있다면 장준환 감독은 이후 화제작 ‘1987’을 내 놓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면 ‘롤러코스터’는 충무로에서 ‘최연소 누적관객수 1억명 돌파’라는 타이틀을 가진 하정우의 첫 연출작이라는 점이다. 전작이 초짜 감독의 기발함으로 정의된다면 후자는 연기로 평단과 대중성을 잡은 배우의 발랄한 연출력이 돋보인다. 화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하정우 감독은 직접 포스터를 그리기도 했다. (사진제공=CJ 엔터테인먼트)류승범의 경험담에서 출발한 ‘롤러코스터’는 비행기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 블랙 코미디다. 일본에서 촬영을 마치고 귀국 하는 길에 태풍 볼라벤을 만나 세 차례나 정도 착륙 실패를 겪고 무사히(?) 제주도 공항에 착륙한 선배의 경험담을 흘려듣지 않은 하정우는 곧 시나리오 작업에 돌입한다. 출연한 배우들은 모두 학교 동문인 중앙대 연극학과 출신이 대부분이지만 그간 작품에서 쌓은 인연들도  대거 출연해 보는 맛을 더한다.영화는 한류스타 마준규(정경호)가 서둘러 한국행 비행기를 타러 가면서 시작된다. ‘육두문자맨’이라는 욕쟁이 캐릭터로 한국을 넘어 일본을 사로잡은 그는 걸그룹 멤버와의 열애설로 곤욕을 치루고 있다. 고작 1시간 거리의 비행이지만 사실 그는 결벽증과 비행공포증, 편집증까지 지니고 있다. 조용히 아무도 몰래 한국에가 연인 수영을 달래야 한다. 하지만 비행기의 분위기가 묘하다. 대학시절 “얼굴로 성공할 사람은 너 밖에 없다”며 일찌감치 하정우의 ‘찜’을 받은 걸로 알려진 정경호. 그의 반듯한 이미지를 딛고 개그도 되고 인간적인 역할의 포문을 연 작품은 사실상 ‘롤러코스터’라고 봐야한다. (사진제공=CJ 엔터테인먼트)그가 탄 바비항공사의 직원들은 흔히 볼 수 있는 스튜어드와 스튜어디스지만 뭔가 비밀스럽다. 그들은 웃으며 복화술로 손님을 욕하고 커텐 뒤에서 몰래 와인을 마신다. 하필 귀국행 비행기 안에는 양다리를 걸친 승무원도 있다. 복도에서 마주친 그는 거침없이 따귀를 날리고 기체가 흔들리는 사이에 하이힐로 발등을 밟으며 응징에 나선다. 그 살벌한 상황에서도 일본 스튜어디스(고성희)에게 눈길을 가는 건 타고난 바람둥이여서일까. 뭔가 아슬아슬한 분위기 속에서 비행기에 탄 부류는 다양하다. 닭살 신혼부부와 채식을 강요하는 오지랖 스님, 타 항공사 회장과 깐깐한 여비서 등이 기류 난조와 더불어 마준규의 신경을 긁는다.결국 이 비행은 안전한 착륙을 하지만 결국 사망자를 낸다. 지금은 일상이지만 이때만 해도 생소했던 AI 안경을 착용한 회장이 기내에서 능글맞게 “공주님”이라고 내뱉는 대사는 이후 벌어진 땅콩회항과 더불어 시대를 내다본 연출력이 아닐까 싶다. (사진제공=CJ 엔터테인먼트)‘롤러코스터’의 재미는 진상손님과 정상 승객의 구분이 아니라 기내의 안전을 책임지는 직원들의 민낯이다. 기장은 음주운행을 하고 부기장은 팬티차림을 한 채 오토운행으로 비행기를 몬다. 꽁초를 문 그들과 달리 전자담배를 입에 문 수석 사무장과 손님에게 제공되는 와인을 병째로 마시는 모습은 ‘정말 저럴까?’라는 의문 대신 낄낄거리게 되는 마법을 발휘한다. 다시봐도 재미있는 부분은 당시 정경호의 짝사랑 상대였던 소녀시대 수영의 이름이 극 중 마준규의 현재 연인 이름이라는 사실이다. 정경호는 2012년 SBS ‘한밤의 TV연예’에 출연해 당시 MC였던 수영을 언급하며 “군 생활을 하면서 모든 걸그룹이 힘이 됐다. 그 중에서 소녀시대 멤버 수영이 가장 큰 활력소가 됐다” 고백하며 숨겨준 마음을 고백했는데 이 작품은 전역 후 첫 작품이다. 그들은 몇번의 열애설을 부인해 오다 2014년 공식 연인임을 선언했다.최규환 배우가 적재적소에 터트리는 진상연기는 직업이 기자인점에서 의미심장하다.사진제공=CJ 엔터테인먼트)무엇보다 이제는 ‘범죄도시’ 시리즈의 주연이자 제작자로 이름을 높인 마동석과 ‘초롱이’ 캐릭터로 대중성을 확보한 고규필의 남다른 ‘싹’을 볼 수 있다는 게 ‘롤러코스터’가 가진 장점이다.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로 하정우와 인연을 맺은 김성균이 일등석 똥남으로 등장한 부분은 짧지만 중독성 강한 병맛을 남긴다. 안과의사로 나온 이지훈의 개그감은 이후 오라메디 CF로 이어질 정도로 큰 화제를 모았다. 기류 이상으로 기절한 열혈팬(황정민)의 배를 보고 복수가 찼는지 확인하는 장면 등을 보는 내내 낄낄거리게 되는 건 한번만 봐서는 알아 챌 수 없는 ‘하정우식 유머’다. 막상 들을 땐 ‘어디에서 웃어야 하지?’라고 멍한 표정을 짓다가 집에 와서 웃음이 터지게 되는 마력의 개그감이다. 소란이 가득한 비행기 안에서 바비항공의 로고는 하정우의 매니저이자 그가 자신의 에세이에서 소개하고 자신의 그림으로도 여러 번 등장한 인물이다. 시대를 관통하는 주제나 세상을 바꿀 주제가 아니더라도 하정우가 추구하는 영화적 시선은 늘 사람을 향해 있다. 그의 첫 연출작 러닝타임은 94분. 5억원의 저예산으로 27만명을 모았으며 모든 수익은 공평하게 1/N을 했다고 알려진다. 감독으로서 하정우는 두 번째 영화 ‘허삼관’으로 웃음과 감동의 휴먼 코미디를 내놨으며 곧 골프를 소재 한 ‘로비’로 관객을 찾을 예정이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2024-03-13 18:30 이희승 기자

[비바100]“지금이야 말로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 뮤지컬 ‘파과’

뮤지컬 ‘파과’ 투우 역의 김재욱(왼쪽부터), 조각 차지연, 류 최재웅(사진제공=Page1)구병모의 장편소설 ‘파과’가 뮤지컬로 무대에 오른다. 제목 파과는 부서진 혹은 흠집이 난 과일(破果)과 여자 나이 16세(破瓜)를 이르는 말로 상품가치가 없는 과일과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이팔청춘이라는 극과 극의 의미를 가진다. 뮤지컬 ‘파과’(3월 15~5월 26일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는 ‘곤 투모로우’ ‘차미’ 등의 제작사 페이지원이 선보이는 4년만의 신작으로 ‘순신’ ‘서편제’ ‘더 데빌’ ‘아마데우스’ ‘헤드윅’ ‘지저스크라이스트수퍼스타’ ‘잃어버린 얼굴 1895’ 등의 이지나 연출작이다.이지나 연출을 비롯해 ‘넥스트투노멀’ ‘스프링어웨이크닝’ 등의 이나영 작곡가·음악감독, ‘맥베스’ ‘비더슈탄트’ ‘셰익스피어인러브’ 등의 서정주 무술감독, 국립극장의 ‘여우락 페스티벌’을 비롯해 연극 ‘82년생 김지영’, 무용극 ‘호동’ 등의 박은혜 무대 디자이너 등 창작진들이 의기투합했다. 뮤지컬 ‘파과’ 연습 중인 조각 역의 구원영(왼쪽)과 차지연(사진제공=Page1)65세의 여성킬러 조각(爪角, 구원영·차지연, 이하 가나다 순)을 통해 부서지거나 흠집이 난 채 잊혀진 존재, 농익다 문드졌지만 여전히 은은한 단맛이 남아 있는 과일, 화려하게 불타오르다 사라져버진 불꽃놀이, 설탕 한 스푼에서 한껏 부풀어 오르다 눅진해져버리는 솜사탕과도 같은 것들에 대해 다룬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변화를 마주하게 된 조각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다룬 원작의 여정을 그대로 따르는 ‘파과’에 대해 이지나 연출은 “나이듦에도 아직 살아있는 단맛을 은유하는 인간에 대한 찬양, 지독히 스산한 사랑이야기 같은 조각의 인생을 담아내고 싶었다”고 밝혔다.잔혹하고 냉혹한 킬러였던 조각이 그저 스쳐지나가는 인연인 줄 알았던 투우(김재욱·노윤·신성록)를 만나면서 나이듦, 연민, 망설임 등의 낯선 감정들을 처음 마주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뮤지컬 ‘파과’ 연습 중인 투우 역의 노윤(왼쪽부터), 신성록, 김재욱(사진제공=Page1)‘파과’ 관계자는 “평생 외면하고 억눌러 왔던 인간으로서의 희로애락이라는 감정 자체를 처음 마주하고 인정하며 ‘변화’하는 조각의 장면 장면들이 내레이션을 통해 표현된다”며 “그렇게 변화하는 조각의 감정이 관전 포인트”라고 전했다.나이가 들면서 마주하는 변화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 조각, 그 변화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투우, 변화의 발단이 되는 류와 강 박사(박영수·지현준·최재웅) 등의 관계를 통해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런 조각의 변화를 이끄는, 인생의 분기점이 되는 영향을 주는 류와 강 박사를 한 배우가 연기하는 것도 눈여겨볼 설정이다.이지나 연출은 “이번 작품에서는 ‘뮤지컬은 이래야 한다’라는 기존의 법칙을 최대한 피하고 강력한 액션이나 내레이션 등 뮤지컬 무대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유니크한 시도, 변칙을 주는 다양한 도전들을 통해 우리나라 작품만이 할 수 있는 새로운 문법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전했다.뮤지컬 ‘파과’ 연습 중인 류 역의 지현준(왼쪽부터), 박영수, 최재웅(사진제공=Page1)넘버는 ‘죽음의 향기’ ‘싱싱한 과일’ ‘봄날의 햇살’ ‘날 기억할까’ ‘살리는 자와 죽이는 자’ ‘너의 선택’ ‘보통의 나날’ ‘한순간의 꿈’ ‘방역업자에게 은퇴란 없다’ ‘지키고 싶은 것’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 등 록발라드, 팝 등이 포함된 다양한 장르의 26여곡에 이른다.관계자 전언에 따르면 “세련되고 뮤지컬 음악같지 않은” 넘버들 중에는 이지나 연출, 정재일 작곡의 총체극인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넘버를 변주한 ‘남겨진 나를 본다’ ‘류를 떠올리다’ 그리고 조각 역의 차지연이 작곡한 ‘흔적만 남은 칠판’도 있다.  이나영 작곡·음악감독이 이끄는 8인조 오케스트라는 매회 무대에 올라 피아노, 첼로, 비올라 등 클래식악기부터 드럼, 퍼커션, 일렉트릭 기타까지를 활용하며 다채로운 선율과 넘버별 다른 분위기를 선사한다.뮤지컬 ‘파과’ 연습 중인 어린 조각 역의 유주혜(왼쪽)와 이재림(사진제공=Page1)냉혹한 킬러이자 묘한 인연으로 얽힌 조각과 투우의 시점을 시각화한 어둡고 높은 수직 벽체, 계단과 난간으로 이루어진 다층 구조물을 중심으로 한 무대도 볼거리다. 차갑고 날카로우며 어둡고 무거운 철재가 작품 전반의 느와르적 정서를 표현한다는 박은혜 무대 디자이너는 “매시 재질의 이동 벽체들과 회전무대를 이용해 한 무대에서 서로 다른 시간의 이야기가 구현되거나 과거의 시간으로 전환 될 수 있도록 했다”고 전했다.조각과 투우 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는 파과(破瓜)처럼 찬란하게 빛났던 시절이 있다. 풋풋하다 향긋해지고 한껏 물이 오른 시절을 지나 결국 썩어 문드러지는 파과(破果)처럼 누구나 나이가 든다. 그 변화를 맞이하는 태도는 결국 저마다의 몫이다. 그리고 그 변화의 순간들이 이어진 지금은 소설 속 문구이자 뮤지컬 ‘파과’의 마지막 넘버처럼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3-13 18:00 허미선 기자

[B그라운드] 굳이 '아역'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될, 미래의 스타!

= 배우 쿠로카와 소야(오른쪽), 하이라기 히나타가 21일 서울 용산구 CGV 용산점에서 열린 영화 ‘괴물’ 주연 배우 내한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되도록 친절한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히이라기 히나타), “지금은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쿠로카와 소야)31만 명을 동원한 영화 ‘괴물’의 주역들이 한국을 찾았다. 21일 오전 용산아이파크몰 CGV에서 영화 ‘괴물’의 두 아역배우 쿠로카와 소야와 히이라기 히나타의 내한 기자간담회가 열렸다.“현장에서 많이 싸웠지만 지금은 왜 싸웠는지 모른다. 하지만 카메라가 돌아가면 바로 화해했다”는 쿠로카와 소야.(연합)극중에서 쿠로카와 소야는 비밀이 많은 미나토 역을, 히이라기 히나타는 아이들에게 은근한 따돌림을 받는 요리’ 역을 맡아 연기를 펼쳤다. 쿠로카와 소야는 ‘괴물’이 영화 데뷔작이다. 두 살 어리지만 일찍 데뷔한 히이라기 히나타는 현지에서 드라마와 연극에 출연하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에 의해 발탁, ‘괴물’을 들고 생애 첫 칸 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등에 참석했다. 한국에서의 남다른 흥행세에 한파를 뚫고 진행된 이번 행사는 이례적으로 두 배우만 참여해 진행되는 사실상 첫 행보다. 서울 내한 소식이 정해진후 무대인사 암표 티켓이 등장하고 김포 공항에 팬들이 몰리는등 남다른 인기를 증명하고 있다. ‘괴물’은 몰라보게 바뀐 아들의 행동에 이상함을 감지한 엄마가 학교에 찾아가면서 의문의 사건에 연루된 주변 사람들 모두가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게 되는 이야기다.이날 쿠로카와 소야는 “한국에서 더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봐주셨으면 한다”는 속마음을 전하면서 “공항에 온 팬들을 보고 ‘이런 일이 나에게 있을 수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기뻤다”고 미소지었다.하이라기 히나타, 한파 녹이는 귀여움.(연합)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해 간장 게장을 처음으로 맛 본 이들은 입을 모아 “여행을 와서 맛집과 거리를 걷고싶은 도시”라며 한국에 대한 설렘을 숨기지 않았다. 영화 관계자들과 꽃살을 맛있게 먹었다는 히나타와 달리 소야는 “계란찜은 집에서도 해 먹고 싶더라”고 말해 취재진들의 웃음을 자아냈다.이어 가장 마음에 드는 신에 대해 “학교에서 싸운 두 사람이 하교하며 화해를 한 후 신발 한 짝을 나눠신은 신”이라고 밝혔다. 히나타는 “뭔가 희망을 제시하는 엔딩 신”을 꼽았다. 극중 ‘누가 괴물인가?’를 되묻는 서사에 대해 어떤 어른이 되고 싶냐는 심오한 질문을 받자 긴 시간 심사숙고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앞서 밝힌 대답에 취재진들의 탄성이 이어지기도 했다.지난달 화상으로 만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캐릭터에 대한 설명을 다 하지 않았음에도 표현을 잘 하고, 대본을 한번 읽으면 모두 외울 정도로 뛰어났다. 지금까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그런 아역들”이라는 말로 쿠로카와 소야와 히이라기 히나타의 앞날을 기대했다. 촬영에 앞서 성교육 공부를 포함해서 LGBTQ(성 소수자를 포괄적으로 이르는 말)를 담당하는 전문가에게 배우는 물론 스태프까지 교육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괴물’은 12월 현재 전국 극장에서 절찬리에 상영되고 있다.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2024-03-13 12:44 이희승 기자

[비바100] 영화 '파묘'의 파죽지세 흥행을 보니 생각나는 영화 '유령'

2023년 1월 18일 개봉한 역사, 첩보, 스릴러 장르 영화 ‘유령’의 한 장면. (사진제공=CJ ENM)영화 ‘파묘’의 흥행세가 거세다. 파죽지세로 극장가를 점령하더니 1000만 영화 ‘서울의 봄’과 비교되는 모양새다. 삼일절 연휴간 압도적인 수치로 관객들을 모으며 11일 만에 600만 관객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지난 22일 개봉한 ‘파묘’는 거액의 돈을 받고 수상한 묘를 이장한 풍수사와 장의사, 무속인들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담은 오컬트 미스터리 영화다. 영화계에서는 묫자리, 이장, 풍수지리, 무속 신앙 등으로 무장한 ‘파묘’가 올해 첫 번째 1000만 영화가 될 수도 있다는 관측을 조심스레 내놓고 있다.비수기로 통하는 2~3월 극장가의 오랜 공식을 깬 일등공신은 새로운 2030과 이에 익숙한 50대 이상까지 폭넓다. 무엇보다 영화 곳곳에 심어져 있는 항일 메시지가 관객층의 폭을 넓혔다는 평가다. 극 중 최민식, 유해진, 김고은, 이도현의 이름은 상덕, 영근, 화림, 봉길이다. 풍수사 상덕과 장의사 영근이 함께 탄 차번호 뒷자리는 0815. 무당 화림과 신제자 봉길이 탄 차번호 뒷자리는 0301, 시신을 옮기는 운구차의 차번호 뒷자리는 1945로 광복의 해를 뜻한다. 발빠른 네티즌들은 “상덕은 임시정부 국무위원인 김상덕과 연결된다. 영근은 독립협회에서 활동한 고영근, 화림은 조선의용군 부대장이었던 이화림과 상하이 의거 후 25세의 짧은 생을 마감한 윤봉길이 맞다”며 흥행에 불을 지폈다. 설경구가 쓴 모자 각도, 비오는 풍경, 빨간 립스틱 등 미장센 하나까지 지나치게 아름다운 것도 어쩌면 그간 항일영화가 보여준 춥고 투박한 감정에 어울리지 않은 것일까. (사진제공=CJ ENM)무덤에서는 절대 나오면 안되는 ‘험한 것’이 나오면서 벌어지는 일제시대의 비극은 자연스럽게 다른 ‘항일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그 중 이해영 감독의 ‘유령’은 설경구, 이하늬, 박소담, 박해수, 서현우 등 ‘스타군단’들의 출연에도 고작(?) 66만명 이라는 아쉬운 성적으로 일찌감치 OTT행을 확정지었다. 하지만 만듦새와 배우들의 열연만 보더라도 ‘흥행은 신의 영역’이라는 업계 속설이 마냥 야속하기만 하다.티빙, 왓챠, 웨이브에서 볼 수 있는 ‘유령’은 1933년 일제강점기 경성을 배경으로 한다. 항일조직 ‘흑색단’의 스파이인 유령은 성별도 나이도 아무도 모르는 스파이다. 아무리 모진 고문을 해도 잡혀온 독립운동가들은 모두 입을 다문다. 어쩌면 이들조차 누가 유령인지도 모르는 것 같다. 이에 새로 부임한 경호대장 카이토(박해수)는 총독 암살 시도를 막기 위해 덫을 치기로 결심한다. 외딴 섬에 불려진 이들은 황당할 뿐이다. 총독부 통신과 감독관 쥰지(설경구), 암호문 기록 담당 박차경(이하늬), 정무총감 비서이자 애인인 유리코(박소담), 암호 해독 담당 천계장(서현우)는 모두 무죄를 주장한다.개성과 연기력을 겸비한 배우들의 변신과 첩보전의 긴장감을 담은 ‘유령’의 공식 포스터. (사진제공=CJ ENM)영화는 한국인 어머니를 둔 쥰지와 그의 경쟁자 카이토의 묘한 감정 사이로 여러 복선을 교차시킨다. 그 중 유리코는 알리바이가 확실하다. 변태 총감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그는 엘리트 가문 출신인 차경과 묘한 기싸움을 한다. 기필코 살아나가 동지들을 구하고 총독 암살 작전을 성공시켜야 하는 ‘유령’과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이들 사이에서 배경이 되는 호텔은 그로테스크하기 그지 없다. 뭔가 비밀을 숨기고 있는듯한 천계장의 존재는 감초 이상이다. 당시에는 드물게 혼자 살며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로 영화에서 유일한 코믹함을 담당하지만 괴랄한 죽음으로 폭소를 자아낸다. 자신이 갇힌 것도 모자라 자리를 비운 사이 새로운 애첩이자 비서(비비)가 채용됐다는 사실에 결국 폭발한 유리코는 ‘유령’의 본격적인 활약을 알린다.설경구는 “캐릭터가 가진 컬플렉스, 부모의 혈통,정체성의 혼란등을 보며 유령으로 보이고 싶었다”고 당시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속내를 밝히기도. (사진제공=CJ ENM)영화에는 카메오라고 부를 수 없는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이솜, 이주영, 김종수의 묵직한 연기가 항일영화 특유의 벅차오르는 감정에 기름을 붓는다. 무엇보다 ‘독전’ ‘경성학교:사라진 소녀들’ ‘천하장사 마돈나’ 등의 이해영 감독 특유의 섬세한 연출력이 단연코 빛난다. 부드러운 손길은 아니지만 툭툭 친 어깨 토탁임에 눈물이 쏟아지는 묘한 연대감이 후반부에 가득하다. “나라 팔아 먹은 사람은 그렇게 다치지 않아요, 지키려는 사람이 다치지”라며 부상당한 유령을 단번에 간파하는 수녀의 짧은 대사도 결정적인 한방이다. 소품 하나하나에도 캐릭터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자기애가 강한 천계장의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 (사진제공=CJ ENM)중국 작가 마이자의 소설인 ‘풍성’을 원작으로 한 ‘유령’은 이미 중국에서 ‘바람의 소리’로 한 차례 영화화된 바 있다. 그렇다고 ‘나이브스 아웃’(2019)이나 ‘오리엔트 특급살인’(2017) 같이 관객의 추리를 유도하는 연출을 기대하면 곤란하다. 이 감독은 “유령의 탈을 쓴 사람을 보는 다양한 시각을 담고 싶었다. 동시에 대의를 위해 싸우는 스릴과 쾌감을 전달하고자 남성과 맞붙어도 지지않을 배우들의 액션을 살리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 아리송한 말은 ‘유령’을 직접 보고 다시 읽는다면 무릎을 ‘탁’치게 될 스포일러다. “성별의 대결로 보이길 원하지 않았다. 흡사 계급장을 떼고 붙는다는 말처럼 ‘여성이어서’ 또는 ‘여성임에도 불구하고’라는 전제를 달지 않는, 몸과 몸, 기와 기가 부딪혀 땀 냄새, 피 냄새가 물씬 났으면 했다”는 연출의도를 간파한다면 누가 유령인지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다.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2024-03-06 18:30 이희승 기자

[비바100] 배우 금해나에게는 단단한 '金'이 있다

키 172cm의 큰 키를 가진 그는 ‘킬러들의 쇼핑몰’에서 대역없이 모든 액션을 소화하며 전에 없는 여성 캐릭터를 완성했다.(사진제공=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디즈니플러스 드라마 ‘킬러들의 쇼핑몰’ 오디션 공고를 발견하고 배우 금해나는 “유레카”를 외쳤다. 평소 약속시간보다 한 시간 정도 먼저 도착해 늘 근처에 있는 서점을 방문한다는 그는 마침 지인을 기다리다 원작 소설을 재미있게 읽은 터였다. 중국인 여성 킬러 소민혜를 뽑는 오디션장에서 주어진 대본은 총 네장. 그 중 한 신만 대사가 있었기에 대부분의 배우들은 타고난 신체능력을 발휘하는 데 혈안이 돼 있었다. 하지만 금해나의 선택은 달랐다. 중국인이 절대 발음하지 못하는 한국어가 있듯 한국인이 결코 따라하지 못하는 발음을 우선적으로 익혔다. 우회적으로 돌아가느니 정공법을 택한 그의 결단은 옳았다. 원작에서 민혜는 같은 조직의 동료들조차 두려워하는 최상위 레벨의 킬러다. 그렇게 그는 완벽한 한국어를 구사하지만 일부러 중국어 발음을 살린 대사로 오디션장을 휘어잡았다. 대본의 말 맛을 살리니 금해나가 가진 긴 팔다리가 주는 시원한 액션미가 돋보이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지난달 공개된 이 작품은 4주간 한국 디즈니플러스 TV쇼 부문 1위를 차지하고 일본, 홍콩 등 아시아 5개국에서 톱 10에 진입하며 금해나의 존재감을 부각시켰다.(사진제공=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요즘 현대무용을 배우는 중인데 민혜를 연기한 배우가 저인 줄 모르고 어떤 수강생이 ‘킬러들의 쇼핑몰’을 보고 머리를 잘랐다고 하는 거예요. 작품의 화제성을 실감한 순간이었죠. 킬러지만 살인도 귀엽고 유쾌하게 보였으면 해서 일부러 눈썹 위로 앞 머리를 자르는 처피 뱅 (Choppy Bang)을 선택했는데 통한 것 같은 짜릿함을 만끽했달까요.”‘킬러들의 쇼핑몰‘은 삼촌 진만(이동욱)이 남긴 위험한 유산으로 인해 수상한 킬러들의 표적이 된 조카 지안(김혜준)의 생존기다. 진만에 의해 킬러가 된 민혜는 조직의 룰에 반대되는 것을 알면서도 결국 약자의 편에 선다. 총알 마저 피해다니는 1급 킬러로 속도가 빠르고 격투 기술 중 강도가 센 그래플링(Grappling)을 구사하며 남자들마저 가뿐히 제압한다. 그는 “체력이 떨어지면 작품에 피해가 가니까 일부러 기초훈련을 독하게 했다”며 “구보와 줄넘기를 기본으로 무에타이를 익힌 (김)혜준씨와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신음으로 대화한 사이”라고 밝게 웃었다.한창 촬영 중 원작 소설 2권이 출시됐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현장에서 다들 ‘이러다 시즌 2가는 거 아냐?’는 말을 많이 나눴다”면서 “솔직히 ‘살인의 추억’에서 박해일 선배님같은 마음으로 연기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자세히 안 나오는데 민혜의 엔딩도 확실하지 않다”고 강조했다.서른살에 연기를 그만두고 호주로 떠났다는 그는 “연기를 관두려고 마음을 먹자 되려 해외 영화제를 비롯해 러브콜이 많아졌다. 1 년전에 출연한 작품들이 수상을 하더니 주인공 역할이 주어지기도 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사진제공=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사실 ‘킬러들의 쇼핑몰’은 금해나를 극한의 외로움으로 몰고 간 작품이다. 훈련이 없는 날에도 일부러 액션스쿨에 나가 무술 감독에게 카메라 앞에서 구사 할 수 있는 모든 연기적 합을 훈련받았다. 화면에는 멋지게 나와도 정작 실제 싸움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동작은 일부러 피했다. 공개 직후 ‘저 캐릭터가 중국인이 아니라고?’ ‘여성이 할 수 있는 극한의 액션’ ‘소민혜의 연기 보려고 본방 사수’ 등 뜨거운 반응이 줄을 이었다.극 중 죽을 고비를 넘기고 킬러가 된 민혜의 운명이 ‘이 배역이 내 인생에서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는 불안함과 맞닿으면서 잠시도 쉴 수가 없었다고. 속리산 깊은 산 속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그는 자신의 이름 뜻이기도 한 ‘밝은 해가 뜨는 순간’을 늘 동경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게 즐거워 아이돌을 꿈꿨지만 인연이 닿는 기획사마다 노래보다 연기를 권했다.“20대에 방황을 많이 했죠. 연기를 학문적으로 연구해 보고 싶어서 대학에 진학했고 극단생활을 시작했어요. 그때도 연기가 아닌 조연출과 기획, 시나리오를 쓰며 배우를 바라보는 밖의 시선을 더 오래 경험했죠. 그런 시간이 쌓이니 예민하게 굴지 말자는 인생 지론도 생겼습니다. 하지만 30대가 되니 들어오는 배역이 한정적이고 누군가의 엄마 혹은 전문직 팀장같은 역할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마음이 조급했던 것 같아요.”S급 킬러로 거듭나는 소민혜의 전사는 짧지만 비밀스런 과거사가 등장하며 시즌2에 대한 문의가 쇄고 하고 있는 상태다. (사진제공=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금해나는 곧 영화 ‘우리는 천국에 갈 순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로 색다른 매력을 뽐낼 예정이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의 이유미가 주연을 맡은 퀴어영화로 그는 조연으로 출연한다. 기회가 된다면 오래 준비해온 가수로서의 꿈을 접지 않고 자신이 출연하는 작품의 OST를 불러보고 싶다는 그는 “지금 소속사가 없는 상태라 혼자 열심히 오디션을 보고 있다. 한국의 양자경이나 우마 서먼으로 불리는 그날까지 연기하고 싶다”고 강조했다.“되도록 휩쓸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이 저에겐 있거든요. 같이 연기한 배우분들은 모두 작품이 직업이 되는 사람들인데 제 삶이 그걸 자꾸 따라가게 되면 균형을 잃더라고요. 영어를 잘 하진 않지만 한국에서 촬영한 외국 감독님의 작품이 제 필모그래피에 꽤 되거든요. 지금같이 한국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뻗어나갈 때 게을리하지만 않으면 기회는 꼭 온다고 봅니다. ‘킬러들의 쇼핑몰’처럼요.”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2024-03-04 18:30 이희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