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맛있는 혹은 드라마틱 ‘조선’…‘조선 왕실 로맨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19-10-30 07:00 수정일 2019-10-30 07:00 발행일 2019-10-3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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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상대적으로 풍부하게 남아 있는 사료들을 재료 삼아 다양한 변주가 가능한 시대, 조선
콘텐츠 모더레이션(Moderation) 혹은 베리에이션(Variation) 시대에 발맞춘 책들
10월 들어 ‘조선 왕실 로맨스’와 '수요미식회' '한국인의 밥상' '한국기행' 등에 등장했던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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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의 인문·교양·사회·학문적 접근이 아닌, 흥미를 끌 수 있는 역사서들이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조선은 상대적으로 풍부하게 남아 있는 사료들을 재료 삼아 다양한 변주와 재정비가 가능한 시대다. 역사 왜곡과 지나치게 가벼운 접근 등에 대한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도 없지 않지만 ‘조선’이라는 시대는 바야흐로 콘텐츠 큐레이션(Curation), 모더레이션(Moderation) 혹은 베리에이션(Variation)의 시대에 꽤 어울리는 소재이자 스토리텔링 재료다.

이에 역사를 소재로 한 영상 콘텐츠 중 대부분이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최근 양세종·김설현·우도환을 주연으로 내세운 JTBC ‘나의 나라’는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를 배경으로 변혁기 사람들이 꿈꾸는 저마다의 ‘새로운 세상’에 대해 풀어간다.

조선의 끝, 죽었던 왕이 되살아나고 굶주림으로 좀비가 돼 버린 이들의 비밀을 파헤치는 미스터리 스릴러인 김은희 작가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은 수많은 논란을 야기시켰지만 2020년 3월 시즌 2 론칭을 확정했다.

조선 최고의 매파당을 소재로 왕실암투와 로맨스를 엮은 JTBC ‘조선혼담공작소 꽃파당’, 조선시대 미스터리한 과부촌에 여장을 하고 잠입한 전녹두(장동윤)와 예비 기생 동동주(김소현)의 유쾌한 로맨스 KBS2 ‘조선로코-녹두전’ 등 드라마 뿐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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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조선'을 소재로 한 문화 콘텐츠들(사진제공=넷플릭스, JTBC, KBS, HJ컬쳐, PL엔터테인먼트, 네오프로덕션)

뮤지컬 ‘세종, 1446’(12월 1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은 훈민정음 창제를 비롯한 국토확장, 과학 및 천문학의 발전, 인쇄술 발전 등을 이루며 위대한 성군으로 평가받는 세종대왕이 아닌 인간 이도(박유덕·정상윤, 이하 가나다 순)로서 본래 제자리가 아니었던 왕위에 올라 겪어야 했던 번민과 애민 정신을 다루고 있다.

 

희대의 악녀로 평가받는 장희빈의 아들이자 조선 20대왕 경종(성두섭·에녹·정동화)과 훗날 영조가 되는 연잉군(박정원·신성민·홍승안) 그리고 그들의 기록자인 사관 홍수찬(김종구·정민·주민진) 이야기 뮤지컬 ‘경종수종실록’(2020년 1월 12일까지 대학로 티오엠 1관), 조선시대 시조를 현재의 랩으로 풀어낸 뮤지컬로 재연 소식을 전한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 등 공연계도 흥미롭게 풀어낸 ‘조선’ 콘텐츠가 주목받고 있다.  

드라마, 영화, 공연 등 문화 전반에 스며든 ‘조선’ 콘텐츠 큐레이션 및 배리에이션 행렬에 출판계도 합류했다.  ‘어렵고 고루하다’는 편견을 깬 역사서들이 서점가와 독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 10월 들어 그 행렬에 새로 합류한 책이 ‘조선 왕실 로맨스’와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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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실 로맨스 우리가 몰랐던 조선 왕실의 결혼과 사랑 이야기 |박영규 지음(사진제공=옥당북스)

‘조선 왕실 로맨스’는 유발 하라리의 전쟁문화사 ‘극한의 경험’, 닐 맥그리거의 ‘독일사 산책’, 리처드 도킨스의 ‘ 진화론 강의’, 찰스 디킨스의 ‘영국사 산책’ 등 다소 무겁고 어려운 역사·인문서를 출간하던 출판사 옥당의 신간이다.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조선 왕 시크릿 파일’ ‘에로틱 조선’ 등의 박영규 역사전문작가가 꾸린 ‘조선 왕실 로맨스’는 조선시대 왕들의 사랑과 결혼을 유형별로 나눠 담았다.

사랑하는 아내와 적지 않은 자식이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사랑에 빠지지만 분란도 없고 원망도 받지 않는 타고난(?) 사랑꾼 세종, 단 한 여자만을 사랑한 정조, 여자를 권력 유지수단이자 비서로 거느렸던 광해군 등 왕은 물론 왕실, 사대부, 종친 등 왕실을 배경으로 한 사랑과 결혼 이야기가 담겼다.

세종, 정조, 광해군을 비롯해 ‘직진형 순정남 태조 이성계’ ‘읍소형 비운남 정종 이방과’ ‘전투형 뒤끝남 태종’ ‘막무가내형 난봉꾼 양녕대군 이제’ ‘결벽형 도도남 문종 이향’ ‘자유분방형 괴팍남 세조 이유’ ‘열두 살에 아비가 된 소년 예종 이황’ ‘호색형 열정남 성종 이혈’ ‘광기형 냉혈남 연산군 이융’ ‘야누스형 배신남 중종 이역’ ‘마마보이형 유약남 명종 이환’ ‘순애보형 집착남 선조 이연’ ‘의심형 지질남 인조 이종’ ‘공처가형 청순남 현종 이영’ ‘승부사형 열혈남 숙종 이순’ ‘외골수형 비련남 영조 이금’ ‘곁눈질 형 의존남 고종 이형’ 등 그 사랑유형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제목들의 조선 왕 로맨스로 빼곡하다.

   

왕 뿐 아니라 ‘조선판 로미오와 줄리엣’ 세조의 딸과 김종서의 손자, 세종 아들들의 쉽지 않은 ‘왕자들의 사랑’, 한 여자와 두 번 결혼한 제안대군 이현, 자유연애를 꿈꾸던 박어을우동, 두 여자를 동시에 사랑해 파국으로 치달은 중종의 부마 조의정 등 막장 아침연속극부터 치정극, 달콤한 로맨틱 코미디, 가슴 아픈 멜로 등 그 장르도 다양하다.

저자 박영규의 전언처럼 왕실사람들의 결혼 문제와 사랑이야기는 조정의 역학관계, 권력의 구도, 죽는 자와 죽이는 자의 관계 등에 영향을 미친다. 이에 ‘조선 왕실 로맨스’는 역사에 꽤 중요한 요소인 셈이다. 드라마를 보듯 읽다 보면 역사적 사건과 순간의 원인, 진행과정 그리고 결과가 한줄로 엮이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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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 일제강점기 소중히 지켜낸 우리 요리 |이용기 지음(사진제공=라이스트리)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은 일제강점기 재야 지식인 이용기 선생이 집대성한 요리책이다. 1924년 발행된, 말 그대로 조선에 둘도 없는 단 하나의 최신 요리책으로 tvN ‘수요미식회’의 제육볶음 편, KBS ‘한국인의 밥상’ 속풀이 한솥 편, EBS ‘한국기행’ 여름 김치 편 등에 등장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1936년 발행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 3판을 토대로 복간한 도서로 오탈자, 목차 페이지 오류, 띄어쓰기 등도 원서 그대로 적용했다. 가로가 아닌 세로로 읽게 돼 있는 책은 ‘손님대접하는 법과 상차리는 법’이라는 제목의 첫장부터 본론을 시작한다.

 

손님대접법과 상차리는 법을 비롯해 상극이 되는 음식들, 아해밴이가 못먹는 것들, 우유먹는 법 이후에는 밥 짓는 법부터 장·식초·술·김치 담그는 법, 국, 탕, 누룩, 장아찌, 떡, 국수, 만두, 전, 나물, 찌개, 낌, 구이, 적, 회, 편육, 어채, 묵, 선, 포, 자반, 볶음, 조림, 쌈, 무침, 젓갈, 죽, 미음, 옹이, 차, 청량음료, 타락, 두부, 화채, 숙실과, 유밀과, 다식, 편, 당전과, 정과, 감정, 미시, 엿 등 만드는 법, 기름과 양념이 되는 각색가루, 소스, 소금 등 만드는 법과 사용법 등이 담겼다. 더불어 서양요리, 일본요리, 중국요리 등 타국의 요리법도 소개된다.

그림 하나 없이 세로 읽기와 구어들, 낯선 음식명 등의 향연으로 해독이나 조리법 연구가 쉽지는 않다. 그럼에도 생각지도 못한, 전혀 알지 못했던 조선시대 다양한 조리법과 맛내기 비법이 흥미롭다. 조선시대에 활용됐던 수프, 미트볼, 케이크, 애플넛 샌드위치, 도넛, 커리, 아이스 커피, 아이스티, 각종 파이 등 서양요리와 유홍채, 연와탕, 해삼탕, 스기야기, 스시, 미소시루 등 중국·일본 요리 레시피는 신기할 지경이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