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티브 시니어] 글쓰기로 나를 찾다

임병량 명예기자
입력일 2024-01-25 13:20 수정일 2024-01-25 13:21 발행일 2024-01-26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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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칼럼>
임병량 명예기자
임병량 명예기자

인생은 언젠가 마지막이 온다. 모임에 나가면 나이와 관계없이 먼저 간 친구들의 이야기가 화두다. 한마디 말도 없이 불의의 사고로 떠난 삶은 본인이나 가족, 모두에게 안타까움으로 전달될 뿐이다. 아무리 백세시대라고 하지만,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게 건강이다. 칠십을 훌쩍 넘기고 나서야 나를 찾기에 나섰다.

나를 찾는다는 일이 쉽지 않다. 지금도 내 마음 나도 모른다. 지난 학창 시절에는 공부 잘하는 학생, 직장생활은 관계를 잘한 동료, 퇴직 후에는 대중 앞에서 강의 잘하는 사람이 부러웠다. 이런 삶을 살기 위해 기준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다. 안개처럼 흐릿한 미래를 뚜렷하게 만들겠다고 자신을 혹사해서 미안하기도 했지만, 감사한 일도 많았다. 노후에 접어드니 글 잘 쓰는 사람이 다른 어떤 재능을 가진 사람보다 선망의 대상이 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글쓰기는 추억을 정리하고 내면을 표현해서 자신이 솔직해지는 길이다. 포장과 가면을 벗어버리고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다. 존재감을 알리고 경험과 지식, 삶의 지혜도 공유할 수 있다. 추억이 되살아나고 마음이 풍요롭다. 억압된 감정과 가슴의 응어리도 풀어준다. 인생이 차분하게 정리되면서 마음조차 가벼워진다. 돈 안 드리고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게 글쓰기의 장점이다.

글쓰기는 여전히 어렵다. 기사는 단편적이고 규격화된 틀 속의 글이고,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하는 기능이다. 이젠 틀 속에서 벗어나 진실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운 창작물을 생산하고 싶다. 내 생각과 느낌을 기록하고 싶다. 나를 찾아가는 길을 걷고 싶다. 사고의 영역을 넓혀 꿈과 공감의 글로 희망을 주는 노후생활이 바로 글쓰기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글감을 찾아 나선 곳이 현충원이다.

억압된 감정을 풀지 못하고 이슬처럼 사라진 애국자들이 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다. 그분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살면서도 자주 찾아뵙지 못해 항상 죄송한 마음이다. 올해 극장가에서 가장 인기를 누리고 있는 영화 <서울의 봄>, 주인공들이 이곳에 잠들어서 세상에 알려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개봉된 지 한 달 만에 천만 관객 수를 돌파할 정도로 인기를 누린 히트상품이다.

오마이뉴스 김 기자가 주관한 현충원 투어는 전국에서 모였다. 김 기자는 “정 병장은 제대 3개월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상관이 지시한 내용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김오랑 중령과 사망 일자가 같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목이 메 울컥했다. “40여 년이 지난 후에야 순직에서 전사로 바뀔 수 있었던 것은 역사의 진보입니다”라고 설명했다. 50여만 평의 넓은 묘역 지에 인적은 없고 칼바람 소리만 요란하다. 가끔 새때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까마귀도 그 내용을 아는지 공중에서 떼를 지어 날아든다.

글쓰기는 나를 탐색하는 출발점이다. 내가 누구이며 무엇을 원하고 하고 싶은 일이 어떤 것인지 발견할 수 있다. 미래를 풍요롭게 만들어 줄 적합한 도구가 글이다. 치유되지 않은 감정을 녹여준다. 안개처럼 흐릿한 미래를 뚜렷하게 하는 효과도 있다. 글쓰기는 어느 사회에서나 핵심이다. 책을 읽는 것은 다른 사람을 만나는 일이지만, 글을 쓰는 일은 나를 만나는 일이다. 이 게 글쓰기 이유다.

임병량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