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금융 민영화] "23년만에"… 우리금융, IMF 상흔 완전 탈피

이지은 기자
입력일 2021-12-14 13:26 수정일 2021-12-21 15:20 발행일 2021-12-16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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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우리은행장(왼쪽 세번째)이 지난 2019년 1월 14일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에서 열린 우리금융지주 출범식에서 현판 점등식을 마친 뒤 기념촬영 하고 있다. (사진 제공=연합뉴스)

우리금융그룹이 공적자금이 투입된지 23년만에 완전 민영화에 성공했다. IMF로 인한 구조조정을 통해 꾸려진 우리금융지주는 한국 금융사의 아픈 손가락과도 같다. 정부의 공적자금 회수과정에서 우리금융지주는 자회사가 분리매각되거나 지주사가 해체되는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총 6번의 시도 끝에 민영화 라는 숙원을 이뤄낸 우리금융지주의 파란만장 23년사를 되짚어본다.

예금보험공사는 지난 8일 유진프라이빗에쿼티 등 5개사에게 잔여 지분 9.33%를 양도하고 공적자금 8977억원을 회수했다. 이로써 예보의 보유 지분이 5.8%로 내려오며 우리사주조합(9.8%)이 우리금융지주의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지난 10일 “고객과 주주들 덕분에 23년 만에 완전 민영화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며 그룹 임직원들에게도 별도의 격려 메일을 발송해 기쁜 소감을 전했다.

◇산산조각난 대마불사 신화…합병을 통해 탄생한 한빛은행

손 회장이 언급한 23년 전은 IMF를 계기로 한국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 인수합병을 한 뒤 이듬해 한빛은행으로 새출발을 알린 시기를 일컫는다. 한빛은행이 출범한 1999년은 금융권에 만연했던 대마불사의 신화가 산산조각난 해였다. 당시 금융권에는 소매금융보다 기업금융을 더 많이 취급하는 은행은 탄탄한 자본을 보유하고 있고 절대 도산하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자리해있었다.

그러나 기업들의 줄파산으로 인해 금융권에도 위험이 전가되기 시작하자 정부는 구조조정의 칼을 꺼내들었다. 당시 정부가 제시한 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8%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많은 은행들이 시중에서 사라졌다. 이 과정에서 자기자본비율이 3.28%까지 떨어졌던 상업은행과 부채를 안고있던 한일은행은 합병을 선택하게 된다.

두 은행은 합병을 통해 총 자산이 105조원에 달하는 ‘슈퍼뱅크’로 재탄생했다. 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역시 10% 이상으로 높아졌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부실한 점 투성이였다. 당시 두 은행의 무수익여신은 총자산의 6.9%인 4조 4000억원에 달했고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한빛은행은 부실채권을 털어내려면 7~8조원 정도가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정부의 지원을 요청했다. 정부는 예금보험공사를 통해 3조 3000억원을 지원했다.

합병 후에도 상황이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다. 결국 정부는 2001년 우리금융지주를 출범 결단을 내린다. 한빛은행을 포함한 5개금융자회사(한빛·평화·경남·광주은행과 하나로종금)가 독자적으로 생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정부는 우리금융 쪽에 금융자회사를 이전하고 한빛증권, 비씨카드 등 9개 사를 손자회사로 편입시켜 우리금융지주를 출범시켰다. 우리나라 최초의 금융지주사는 정부가 공적자금 회수를 위해 내린 결정을 통해 반강제적으로 첫 발을 내딛었다. 이후 한빛은행은 우리은행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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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자금 회수를 위한 5차례의 도전…우리금융지주 해체되는 아픔도

지주사 출범 이후부터 정부의 우리금융지주 민영화를 위한 지난한 도전이 시작됐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우리은행에 투입한 공적자금만 12조 7663억원에 달했다. 이후 정부는 2010년 4월까지 우리금융지주 주식에 대한 공모와 4차례 블록세일을 통한 갖은 노력 끝에 공적자금을 3조 6000억원 회수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예금보험공사의 지분율은 여전히 59.68%에 달하는 상태였다.

지지부진한 결과가 거듭되자 정부는 2010년부터 무려 다섯차례에 해당하는 경영권 매각을 시도했다. 그러나 2010년부터 시작된 일괄 지분 매각 시도는 예비 입찰서를 제출한 기업이 전무하거나 유효경쟁이 불성립한다는 이유로 세차례 모두 실패하게 된다.

이에 일괄 지분매각이 어렵다고 판단한 정부는 2014년 우리금융지주를 우리은행, 증권계열, 지방은행계열 3그룹으로 나누고 분리매각을 시도한다. 이 과정서 지주사는 해체되고 경남은행은 BNK금융, 광주은행은 JB금융에 인수된다. 증권계열은 NH금융지주가 인수를 했다.

지주사 해체 후에도 정부의 민영화시도는 지속됐다. 지난 2015년 정부는 다섯번째 매각절차에 나섰다. 예보는 보유하고 있는 우리은행 지분 48.1% 가운데 30%를 투자자에게 4~8% 나눠주는 과점주주 매각방식을 시도했다. 이로 인해 정부는 투입했던 공적자금의 83%에 달하는 2조 4000억원을 회수하게 됐다.

◇23년만의 민영화, 관치·구조조정 아픔 씻어낸 우리금융지주

정부의 계열사 분리매각이 우리은행에게 아픔만을 가져다 준 것은 아니다. 계열사를 매각하는 과정을 통해 내실을 다진 우리은행은 2018년 정부의 결단으로 해체를 맞았던 우리금융지주의 부활을 시도하게 된다. 7개의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던 우리은행은 자회사에 대한 자본출자 비율을 제한한 은행법으로 인해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출자한도 제한이 없어지면 M&A를 통한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는 것도 금융지주사 출범 결심의 이유였다.

이같은 결심에 힘입어 2019년 우리은행이 우리금융지주로의 도약에 성공하자 임직원들은 한마음 한 뜻으로 민영화에 힘을 보태기 시작했다. 손태승 회장은 무려 16차례에 걸쳐 자사주 10만 3126주를 매입했다. 이원덕 우리금융 수석부사장 등 임원 11명 또한 자사주 1만 7000주를 매입하며 민영화를 위한 의지를 다졌다. 우리은행 노사 또한 직원의 자사주 매입을 지원하는 우리사주 제도를 운영했다.

23년의 노력 끝에 지난 9일 우리금융지주는 완전 민영화에 성공했다. 정부의 지분 매각 노력과 임직원들의 땀방울이 결실을 맺은 셈이다. 이로써 우리금융지주는 IMF부터 시작된 관치와 구조조정의 상흔을 씻어내는데 성공했다.

이지은 기자 jelee0429@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