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경색] 유동성 무제한 공급 방침에도 금융회사 담보 소진 “어떡해”

유혜진 기자
입력일 2020-04-05 17:15 수정일 2020-04-05 17:48 발행일 2020-04-06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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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채·정부 보증채 담보 RP 발행 여력 소진
“안정펀드 돈대랴 회사 살리랴” 증권사 시름

시중에 돈을 풀어도 돈이 돌지 않는다. 중앙은행은 금융회사들이 발행한 환매조건부채권(RP)을 무제한 매입하기로 했고, 이어 비은행 금융기관에 유동성 공급을 검토하고 있다.

그런데 어디인가 막혀 있는 ‘신용경색’이 일어나고 있다. 저금리와 양적완화로 경제주체들이 돈을 구하기 쉬운데도, 코로나19 공포로 소비와 생산에 이은 투자가 멈춘 탓이다. 경제가 유동성 함정에 빠져 있다. 그래도 돈을 풀어야 버틸 수 있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은행은 금융회사들의 국채와 정부보증채 등을 담보로 금융회사에 유동성을 무제한 공급 중이다. 하지만 금융회사들이 한은에서 돈을 더 빌릴 여력이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금융회사들이 한은에 맡길 만한 우량 채권을 이미 다른 용도 담보로 많이 소진한 탓이다. 한은이 유동성을 무제한으로 푼다고 발표한 뒤 첫 RP 입찰(2일)에서 금융회사들의 요청 자금 규모가 크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증권사도 돈줄 막힌 회사 중 하나인데, 증권사가 찍어낸 기업어음(CP)은 채권안정펀드 매입 대상에서 빠졌다. 채안펀드는 은행·증권·보험사를 거느린 금융지주를 내세워 총 20조원 규모로 꾸려진다.

이태훈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은행이 채안펀드 자금 대부분을 지원할 것”이라며 “산업은행이 20%, 나머지 시중은행이 40%를 댈 전망”이라고 추정했다. 그러면서 “증권사나 보험사 여력은 많지 않다”며 “금융지주 단위로 출자하는 과정에서 그 계열 증권사는 하나도 못 보탤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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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협약한 비중으로 10조원 조성할 때 기준자료: 금융위원회

채안펀드 20조원 가운데 8조원을 5대 금융지주, 그 중에서도 은행들이 책임질 것이라는 얘기다. 2008년 전 세계 금융위기를 겪었을 때에는 은행이 채안펀드 출자 80%를 차지했다. 당시 산업은행 20%, 시중은행 60%다.

이번 채안펀드 규모가 작게 시작한 까닭 또한 금융회사 여력이 부족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1차 조성분 3조원이 지난 1일 납입됐다.

회사채 시장도 얼어붙었다. 국내에서 회사채에 직접 투자하는 개인은 드물다. 금융회사가 떠안아야 한다. 은행 말고 다른 금융권은 돈이 부족하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채권을 누가 사줄 것이냐”면서 “한은이 좀 더 발권력을 동원해야 하지 않느냐는 얘기가 시장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증권사들은 채안펀드와 더불어 증권시장안정펀드(다함께코리아펀드)에도 돈을 대야 한다. 증안펀드는 산업은행과 5대 금융지주를 비롯한 23개 금융기관, 한국거래소 같은 증권유관기관이 총 10조7000억원 규모로 출자한다.

유혜진 기자 langchemist@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