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혈세만 낭비, 허울뿐인 KRX 석유시장

양진형 한국석유유통협회 상무
입력일 2017-09-21 15:32 수정일 2017-09-21 15:35 발행일 2017-09-22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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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형 한국석유유통협회 상무

MB정부 때부터 추진해 온 소위 석유정책 삼총사는 이미 수명을 다했다. 고유가 시절, 석유시장을 잡겠다며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해왔던 알뜰주유소와 혼합판매, 석유전자상거래 정책이 사실상 유명무실화됐다. 특히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정책으로, 출범 당시부터 논란이 거셌던 석유전자상거래는 예상했던 대로 정부의 혈세만 축내고 있는 상황이다.

당초 석유전자상거래 시장(이하 KRX 석유시장)의 개설 취지는 외국에서 싼 기름을 수입, 국내 주유소에 공급하는 것이었다. 정부는 국내 석유사업자들의 KRX 석유시장 참여가 부진하자 석유제품 관세 3%와 석유수입 시에 부과되는 부과금 ℓ당 16원 환급, 경유에 바이오 디젤 혼합의무 면제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했다. 이로써 석유수입업자들은 리터당 50원 정도의 가격 경쟁력을 확보, 한때 국내 시장의 10%까지 잠식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이 일부 수입업자에게만 적용되는 형평성의 문제가 대두되자 관세면제와 바이오 디젤 혼합의무 면제는 폐지되고 석유 수입부과금 환급은 ℓ당 8원으로 줄였다가, 현재는 경쟁매매시 8원, 협의매매시 4원의 혜택을 주고 있다. 이렇게 혜택이 줄어들자 석유수입사들은 칠팔월 뙤약볕 호박잎처럼 생기를 잃어 버렸다.

석유공사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석유수입사들이 해외에서 들여온 석유는 11만 배럴에 그쳤다. 휘발유는 전혀 없고 경유는 9만9000배럴, 등유는 1만6000배럴에 그쳤다. 같은 기간 경유 내수 소비량이 8218만 배럴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수입 경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0.12%에 불과했다.

하지만 수입사들이 올해 상반기 KRX 석유시장을 통해 구매한 석유는 163만3861 배럴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 석유의 대부분은 국내 정유사가 매도한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기간 석유수입사가 매도한 물량이 38만 배럴임을 감안할 때 나머지 130만여 배럴이 장외거래를 통해 주유소에 판매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 7월만 보더라도 수입사는 24만8000 배럴을 KRX 시장에서 구매했지만 매도량은 5만6000배럴에 불과하고, 나머지 19만2000배럴을 장외에서 판매했다.

문제는 허울뿐인 수입사가 정유사 공급물량으로 거래하면서도 정부의 석유수입부과금 환급 혜택을 받고 있어 국민의 혈세만 낭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석유수입사 KRX 거래물량이 사실상 정유사로부터 공급받은 물량이기 때문에 정유사 과점시장의 경쟁을 유도해 기름 값을 안정화시키겠다는 정부의 취지는 이미 퇴색하고 말았다,

이렇듯 수입사 물량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정유사의 팔을 비틀어 유지되고 있는 석유전자상거래 제도는 사실상 심폐기능(시장기능)이 정지되어 산소호흡기(정부보조)로 유지되는 환자와 다를 바 아니다.

정부는 제도를 위한 제도에 혈세를 낭비하며 석유시장을 왜곡시킬 것이 아니라, 지난 70년 가까이 석유유통을 책임지고 있는 석유대리점 업계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지난 3년간 KRX 석유시장 유지를 위해 1000억원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규모로 석유대리점에 각종 세제혜택 등을 지원하여 바잉 파워를 길러준다면, 국내 석유시장은 소비자의 후생을 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다.

양진형 한국석유유통협회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