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세계 자랑할 해저터널 만들자

김종대 전 동국제강 상무
입력일 2017-09-18 14:37 수정일 2017-09-18 14:38 발행일 2017-09-19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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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 동국제강 상무
김종대 전 동국제강 상무

취업시즌이다. TV화면을 가득 채운 청년들의 구직 행렬이 너무 길다. 보는 이들도 안타깝다. 갈수록 청년 실업이 늘고, 교회나 불당에는 간절한 기도행렬이 넘쳐난다. 일본에서는 취업 시즌이 되면 많은 젊은이들이 간몬(關門)터널을 찾아간다. ‘관문을 도보로 건너면 취업과 결혼 등 인생의 관문을 잘 넘을 수 있다’는 속설 때문이다. 

한국의 통영터널에도 유사한 스토리가 있다. 통영터널 입구에 부착된 용문달양(龍門達陽)이란 고사성어가 말해주듯 ‘잉어가 거친 여울목 물살을 거슬러 오르면 용이 된다’는 의미는 취업을 앞둔 이들에게 솔깃한 위안 장소가 될 만하다. 통영해저터널은 경남 통영시 당동에서 미수 2동을 연결한 국내 하나뿐인 해저터널이다. 1927년도에 착공해 5년 만에 완공됐다. 동양 최초의 바다 밑 터널이지만 아쉽게도 일본 기술로 만들어졌다.

길이 483m의 통영터널이 완공되자 일제는 한국으로부터 갖가지의 수탈 통로로 삼았다. 당시는 토목기술이 시원치 않았으므로 건설 과정은 전근대적이다. 판대목(통영반도와 미륵도 사이의 좁은 해협) 양쪽에 방파제를 설치하고 바닷물 유입을 우선 차단했다.

방파제 공간에 거푸집을 만들어 콘크리트를 타설하는 방법으로 터널을 구축했다. 그 과정에서 강제 동원된 많은 한국인들은 인명 피해를 입었지만 구체적인 사고 내용과 기록이 없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통영터널은 바닷물이 스며들고 노후화되어 1967년 충무교의 완공을 계기로 차량통행이 금지됐다. 지금은 사람만 다닐 수 있는 관광자원으로 쓸쓸하게 남아 있다.

일본 간몬터널은 해협의 바다 밑에 철도터널과 국도터널을 만들었다. 간몬터널 서쪽에는 간몬교가 해먹처럼 걸려 있다. 간몬 철도터널은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을 지상에서 미리 만들어 바다 밑에 장착시켰다. 터널의 전체길이는 약 3600m. 그 중 해저부분은 1140m이다. 1936년에 착공해 8년만인 1944년에 개통했다. 일본 최초의 해저 터널이며 세계 최초의 해저 철도터널이기도 하다. 간몬 국도터널은 1939년에 착공하여 제2차 세계대전을 거쳐 1958년에 완성되었다. 무려 19년이나 공사를 진행했다. 간몬교는 길이 1068m나 되는 대형 현수교다. 이곳에 투입된 철강재는 모두 신일본제철과 신호제강에서 공급했다. 직경 67㎝의 케이블 1162m, 교각을 떠받치는 154본의 스트랜드는 일본 철강산업의 위상을 보여준다. 전체 케이블의 중량이 5080톤인 것으로 보아 와이어 로프 등의 철강재가 5000톤 이상 사용된 걸작이다.

지리적 여건상 우리나라는 더 많은 해저 터널이 건설되어야 한다. 세월호 사건 이후로 서남쪽의 섬을 잇는 해저터널의 건설 방안이 공개됐었다. 목포에서 해남과 보길도를 잇고 추자도를 거쳐 제주까지 17㎞의 해저터널을 건설하자는 방안이다. 이 해저 터널이 완공된다면 기존의 고속 철도와 연결하여 서울에서 제주까지 단 2시간 28분 만에 갈 수 있다. 물류산업에서도 큰 경쟁력을 갖게 된다. 꼭 해저 터널이 아니더라도 섬과 육지를 잇는 연육교 등의 건설은 과감히 추진해야 한다. 우리 기술로 만든 해저 터널이 하나도 없는 국가라는 손가락질을 언제까지 받고 살아야 하는가.

김종대 전 동국제강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