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은퇴 준비, 지금도 늦지 않다

김경철 액티브시니어 연구원장
입력일 2017-09-17 15:05 수정일 2017-09-17 15:18 발행일 2017-09-18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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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철 액티브시니어 연구원장

2000년대 초, 실버산업을 살펴보기 위해 필자는 일본 장수촌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100세가 넘은 할아버지가 언론사 기자와 인터뷰하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그때 그 할아버지는 “기자 양반, 재수 없으면 나처럼 오래 사니까 지금부터 계획을 잘 세워야 해”라고 말씀하셨다. 사연인즉 이렇다. 할아버지는 60세에 퇴직을 하였는데, 그동안 못 다닌 여행이나 실컷 해보자는 생각에 여행을 하면서 지냈다. 여행을 다니다 보니 어느 새 칠십이 되었다. 칠십이 되고 나니 “이제 곧 죽을텐데 뭐 더 할 일이 있겠어? 그냥 살다가 죽는 거지” 하며 살았는데, 팔십이 되고 구십을 넘어 100세를 훌쩍 넘기고 말았다. 돌이켜 보니 은퇴 이전은 나름 알차게 살았는데, 은퇴 후 40년은 헛되게 낭비했으니 기자에게 그렇게 살지 말라는 충고였다. 

당시에는 그저 남의 나라 노인네 얘기이려니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이로부터 10년 후 필자도 퇴직을 하게 되었다.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다. 부친께서는 아시안게임이 열리던 1986년에 교육공무원으로 정년퇴직을 하시고, 남해안 고향마을에 살고 계셨다. 당시 공무원 박봉을 쪼개어 필자를 서울까지 유학을 보내셨다. 필자의 은퇴 얘기를 들은 부모님은 이렇게 젊은데 벌써 퇴직이라니 깜짝 놀라셨다. 한참 후에 마음을 추스르고 당신의 은퇴 후 생활에 관한 두 가지 얘기를 털어 놓았다.

첫 번째가 ‘이렇게 내가 오래 살 줄 꿈에도 몰랐다’. 당시 65세로 정년퇴직 하셨으니 잘 살아야 10년이고 길어도 15년, 80세를 넘기지 않으리라 생각하셨단다. 그런데 아직도 건강하니 “이렇게 오래 살 줄 정말 꿈에도 몰랐다”고 하셨다. 90대 초반까지는 문화 해설사, 예절학교장, 노인대학 학장, 멋진 노인 대상 수상, 방송 출연 등 보람 있고 건강한 노후를 보내셨고, 지난해 96세로 퇴직 30주년을 맞았다.

두 번째는, ‘지금 새로 시작해도 결코 늦지 않다’. 88서울올림픽이 열리고 난 뒤 마이카 붐이 불기 시작했는데 마침 일시금으로 받은 퇴직금도 있고해서 어머니께서 읍내 병원이나 시장에라도 편하게 다닐 수 있게 자동차를 사자고 무척이나 졸랐다고 한다. 대중교통이 불편한 시골에 사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나이가 이제 70이고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운전면허가 뭐냐?” 며 한마디로 거절하셨단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그 당시에 이렇게 오래 살 줄 알았더라면 운전면허를 취득하였을 것이다, 그때 내 스스로 늙었다고, 운전을 하기엔 늦었다고 포기한 것이 가장 후회스럽다”고 하시며, 무슨 일이든지 지금 다시 시작해도 결코 늦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 주셨다.

필자는 부모님의 이 두 가지 조언을 가슴에 새기면서 은퇴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60세 이후의 인생을 덤 혹은 여생이라 생각하고 준비를 하지 않는다. 수명이 갑자기 늘다 보니 100세 시대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은퇴 후에도 30~40년, 길게는 살아온 세월만큼 더 살아야 하는 시간을 덤 혹은 남아 있는 자투리 인생으로 생각해서는 아니 된다. 지금 새로 시작하거나, 준비해도 결코 늦지 않는 100세 시대에 살고 있음을 반드시 유념하자.

김경철 액티브시니어 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