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뜨는 협업전문회사와 벤처연합의 조건

이석원 벤처스퀘어 편집장
입력일 2017-09-04 17:01 수정일 2017-09-04 17:33 발행일 2017-09-05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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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원 벤처스퀘어 편집장

“통합 법인은 압도적 국내시장 지배력을 바탕으로 모바일 비즈니스를 선도할 글로벌 모바일 C2C(개인간거래) 기업으로 성장하겠다.” 

11번가 빅딜 같은 대기업 얘기가 아니다. 9월 4일 모바일 중고마켓인 번개장터와 모바일 중고거래 컨시어지 서비스인 셀잇이 합병을 선언하면서 장원귀 퀵켓 대표가 꺼낸 말이다. 이에 따라 양사는 10월까지 합병 절차를 마무리하고 퀵켓이 셀잇을 흡수 합병하게 된다. 

합병 효과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양사의 서비스를 합산한 앱 누적 다운로드 수는 1100만건에 달한다. 월 사용자 수도 310만명 규모. 연말이 지나야 시너지 효과를 확인할 수 있겠지만 18조원대에 이르는 국내 중고 거래 시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전망이다. 

물론 퀵켓이나 셀잇은 각각 네이버와 카카오가 지분을 보유한 곳이지만 중소기업의 기본 체력을 불리려는 노력은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정부도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중소기업 간 협업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구현하겠다는 취지로 협업전문회사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협업전문회사는 중소기업끼리 공동 출자해 규모화를 돕는 제도다. 대기업의 특정 업종 지원만 일방적으로 막기보다 중소기업이 손잡고 공동 판로를 개척하거나 연구 개발, 인력 개발 등 모든 부문에서 협업하는 협업전문회사를 선정해 창업 수준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다. 정부 지원 사업 선정에서 우대하거나 지방자치단체나 중앙정부, 공공기관까지 우선구매제도 적용 대상도 확대한다. 그 뿐 아니다. 공동 행위에 대해서 공정거래법상 담합 금지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 등 제도적 장벽도 없앤다.

지난 7월 아산나눔재단과 캠퍼스서울이 발표한 스타트업코리아!정책제안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스타트업은 2016년 기준으로 지난 2011년보다 8% 성장한 9만 6000개로 몸집을 불렸다. 펀드 조성액 역시 2012년보다 무려 41%나 늘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사정이 조금 딱하다. 창업 중 생계형 비중이 63%에 달하는 것. 그 뿐 아니다. 매년 창업 기업이 쏟아지지만 매출 20%가 넘는 고성장 기업은 매년 4%씩 줄어들고 있다. 결국 스타트업을 포함한 중소기업은 양적 팽창보다 질적 성장을 고민해야 할 시점을 맞았다.

물론 이를 위해 가장 좋은 건 창업 인프라나 진입, 투자 환경 등 기반 여건이 선순환되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정부의 규제 완화도 이 같은 진입 환경을 개선하는 효과를 줄 수 있다. 우버 같은 모델이 한국에서 창업할 수 없어선 곤란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해외 스타트업 사례에서 볼 수 있듯 M&A 등이 지금보다 더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국내 스타트업 투자 회수 유형 비중을 보면 IPO가 27%인 반면 M&A는 3%에 불과하다. M&A 같은 중간 회수 시장이 발전하지 않으면 민간 투자금은 상장 전 후기 성장 기업에만 몰리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의미는 앞선 예에서 볼 수 있듯 스타트업간 인수합병이 장기적인 성장을 장려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퀵켓과 셀잇은 각각 모바일 중고마켓과 중고거래라는 유사 업종간 합병이다. 이를 통해 성장 속도를 높이는 롤업 전략, 특정 기업이 같은 산업 분야에 속한 규모가 작은 여러 기업을 인수합병하는 전략은 이미 해외에선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정부의 협업전문회사 우대 방침 역시 이 같은 정책적 지원의 일환이다. 협업전문회사가 주목받을 이유다. 다만 이미 해외에서도 지적된 것처럼 이 같은 협업전문회사가 퀵켓과 셀잇처럼 실제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는 동종이 아닌 M&A나 무분별한 규모 확장의 일환이어서는 곤란할 것이다. 말 그대로 합병의 조건은 ‘협업’이어야 건전한 생태계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이석원 벤처스퀘어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