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카카오뱅크가 바꾼 '돈의 본질'

정인호 GGL 리더십그룹 대표
입력일 2017-08-30 14:24 수정일 2017-08-30 14:25 발행일 2017-08-31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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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호 GGL 리더십그룹 대표

인터넷전문은행 카카오뱅크가 출범하자마자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출시 5일만에 고객 100만명과 대출액 3230억원을 넘겼으니 시중은행이 지난해 1년 동안 모바일뱅킹 등으로 15만개의 계좌를 만들어 준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수준이다. 또한 카카오뱅크는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최저·최고 대출이자를 제공하고 있으며 가입자를 대상으로 카카오톡 이모티콘을 증정하는 등 자사 플랫폼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돈은 다음과 같은 속성을 지닌다. 첫째가 희소성이다. 아무 데서나 쉽게 구할 수 있다면 누가 애써 일하겠는가. 둘째는 대체 가능성과 통일성이다. 똑같은 모양과 형상을 지닌 것들로 계속 공급이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는 이동성이다. 표상하는 가치(액면가) 대비 무게가 가벼워야 가지고 다니기에 편하다. 대표적인 금속 화폐가 여기에 해당된다. 넷째는 구별성이다. 쉽게 진위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내구성이다. 쉽게 변하거나 손상되지 않아야 한다. 이러한 속성으로 인해 지금의 화폐가 돈의 대명사로 입지를 확고히 해왔다.

그런데 K뱅크에 이어 카카오뱅크가 출범하면서 돈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화폐 대부분이 이제는 실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 아버지 세대가 공유하는 추억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아마도 월급봉투에 대한 기억일 것이다. 급여명세서가 겉면에 인쇄돼 있던 그 월급봉투에는 한달 급여가 고스란히 현금으로 담겨 있었다. 요즘은 이런 풍경을 찾아보기 어렵다. 대부분의 수입은 숫자 형태로만 표시돼 통장에 축적되거나 카드 사용 등에 따라 발생하는 마이너스 숫자들을 메우느라 디지털 형태로 소진될 뿐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화폐의 90%가 이렇게 디지털화된 숫자에 불과하다. 결국 화폐의 전통적 속성인 통일성, 구별성, 내구성의 의미가 완전히 무너졌다.

인터넷뱅킹의 출현은 눈에 보이는 유형적 가치를 단순히 숫자에 불과한 디지털화된 화폐로 전화시켜 화폐의 가상성을 가속화시킨다. 송금하는 것이 이모티콘, 기프티콘 날리듯 하니 돈이 아니라 머니티콘 같다. 월급봉투를 보고 지난 시간 노동의 대가를 추억하는 것은 이제 상상 속에서나 가능해졌다. 결국 돈이야말로 정말 숫자, 이모티콘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지금으로부터 5000년 전부터 예견됐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사용한 점토판(Clay Tablet)을 보면 “돈은 금속이 아니다. 돈은 그것이 어떤 형태든 무언가에 새겨진 신뢰다”라고 새겨져 있다. 이 점토판은 돈의 본질적 형태가 ‘정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따라서 돈이란 교환을 활발하게 해 주기 위해 필요한 매개 수단에 불과하다. 어떤 것이 그 역할을 잘 수행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신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화폐의 본질을 곱씹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직시해 보자는 것이다. 오늘날 개인과 개인의 연결은 공동체가 아니라 화폐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단순히 화폐의 생산이 목적이며 화폐를 통해서만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다. 이러한 당신에게 묻고 싶다. 피 땀 흘려 일하는 경제 활동의 목적이 삶의 질이나 행복추구가 아니라 숫자와 이모티콘에 불과한 자본의 축적이 목표인가를.

정인호 GGL 리더십그룹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