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큰 정부'가 기억해야 하는 것들

이창민 한양대 교수
입력일 2017-08-27 15:20 수정일 2017-08-27 15:22 발행일 2017-08-28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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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새 정부 국정 100대 과제가 발표됐다. 경제 분야 1순위는 일자리 창출이었다. 새 정부는 작은 정부가 아니라 국민이 필요로 하는 일을 하는 정부를 지향한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도 있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번 정부는 큰 정부를 지향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한국사회가 직면한 저성장, 양극화, 고령화 등과 40대의 진보적 성향을 고려할 때 ‘큰 정부’에 대한 요구가 강해질 가능성이 있다. 선거와 여론의 힘이 존재하는 이상 정책화될 가능성도 높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사회가 무엇을 고민해야 할지는 생각해봐야 한다.

큰 정부는 진보·복지, 작은 정부는 보수·성장이라는 고전적 전선이 한국에서는 좀 복잡하다. 큰 정부는 공공영역이 커짐을 의미하는데 관료주의, 공공부문 비효율성 문제가 따라붙는다. 기존에 고착화된 관중심의 질서와 사고방식도 있다. 진보적이라고 다 큰 정부를 지지하지도 않고, 보수적이라고 다 공공부문 개혁을 지지하지 않는다.

우선 큰 정부를 추구하려면 시장에 대한 깊은(?) 불신을 희석시켜야 한다. 스웨덴이든 독일이든 미국이든 경제 질서의 근간이 시장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시장의 승자독식(Winners take all)을 해결해야 하는 건 당위이고, ‘큰 정부’는 ‘어떻게’ 해결하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면 중소기업 정책금융이다. 우리나라가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이 적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돈은 정부 호주머니에서 나오더라도, 지원할 기업을 잘 선택하고, 지원한 후 잘 챙기고, 최종적으로 투자한 돈을 잘 회수해야 한다. 이 지난한 과정을 다 관료와 공공기관이 책임질 수 없다. 이스라엘 요즈마 펀드 같은 정부가 마중물을 대고 시장이 행동을 담당하는 정책 아이디어가 이미 많이 나와 있다. 정부와 시장이 만나는 정책에 집중하면 좋다.

또 ‘인사가 만사’라지만 아닐 수도 있다. 모든 정부가 인사에 공을 들이지만 착각은 생각이 비슷한 장관을 앉히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다. 특히 ‘큰 정부’를 추구하는 정부는 더 조심해야 한다. 정부의 개입을 증가시키려면 그 제도설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훨씬 더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큰 정부가 좋은 명분에도 불구하고 잘 이루어지지 않는 건 다 이유가 있다. 이 정부의 경제장관들만 슈퍼맨은 아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경제부처 공무원들은 이미 일을 충분히 많이 하고 있다.

인사문제가 나온 김에 요직에 시장전문가들 등용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우리나라 공공부문과 사적부분, 정부와 시장은 인사철에는 완전히 따로 논다. 정부 정책은 정치인, 관료, 교수 들 만의 영역이 아니다. 은퇴 후에 ‘관이 민’으로 이동하는 거 말고, 현직에서 ‘민이 관’으로 이동하는 실험도 좀 많이 해보자. 지혜와 경험의 교류일분만 아니라 소모적인 감정 대립을 푸는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다.

문재인대통령은 지난 달 ‘작은 정부’에 대한 맹목적 믿음을 바꿔야 한다는 언급을 했다. 새 정부는 작은 정부가 아니라 국민이 필요로 하는 일을 하는 정부를 지향한다고도 했다. 시장에 대한 맹신은 좋을 거 없다. 중요한 건 국민이 필요한 일을 정부가 ‘어떻게’ 잘 하느냐다. 지혜로운 ‘큰 정부’는 ‘작은 정부’와 만날 줄도 알아야 한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