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고속도로 주유소, ‘최저가 판매’ 최선 아니다

양진형 한국석유유통협회 상무
입력일 2016-10-03 15:19 수정일 2016-10-03 15:50 발행일 2016-10-0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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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형 한국석유유통협회 상무

고속도로 주유소의 기름 값이 착해졌다. 착해도 너무 착해져서 문제다. 주변 국도변 주유소와 비교하면 리터당 많게는 200원 가량 차이 나는 곳도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추석 연휴 전국 고속도로 주유소는 두 줄로 길게 늘어선 차량으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주유량 또한 연료탱크를 가득 채워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이다. 예전에는 ‘고속도로 주유소의 기름 값은 비싸다’는 인식이 팽배해, 응급처치로 2~3만원 만 주유하고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국도변에서 보충해 가는 게 관례였다.

그동안 고속도로 주유소에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정부 정책에 따라 2012년 2월부터 고속도로 주유소를 알뜰주유소(이하 ex-oil)로 전환해 온 도로공사는 김학송 사장이 취임하면서 기름 값 인하를 위한 드라이브를 본격적으로 건다. 기름을 싸게 구매하기 위해 전체 물량의 30% 정도를 자체적으로 공동구매 하고, 셀프주유기 확대(15곳) 및 가격이 쌀 때 기름을 많이 확보할 수 있도록 유류탱크 용량 증설 등을 추진했다. 그 결과 2014년 8월부터 전체 ex-oil에 더 낮은 가격으로 유류를 공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160여개 ex-oil에 매일 최저가 판매 경쟁을 시키고, 공사 홈페이지에 가격을 공개토록 했다. 인근 국도변 최저가 판매 주유소 보다 더 싸야한다는 가이드라인도 제시했다.

또한 ex-oil 운영자들은 연말마다 공사로부터 경영평가를 받는데 이때 기름 사입과 판매가격 부문이 80%를 차지하도록 했다. 이 평가 자료는 향후 ex-oil 임대계약 체결 시 중요한 요소로 작용된다. 이 평가에서 최하위 5등급을 연속 2회 받으면 바로 계약이 해지되기 때문에 ex-oil은 평소 피 튀기는 가격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 것이다.

그러나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있듯이 지나치면 항상 부작용이 따를 수밖에 없다. 우선 도로공사의 최저가 정책으로 국도변 주유소 즉 골목상권의 초토화다. 힘센 공룡인 도로공사가 발톱을 세워 먹잇감을 채가는 바람에 주변 주유소들은 그야말로 곡(哭)소리가 나고 있다.

실제로 유가정보 사이트인 오피넷 9월 21일자 충북 청주시 청원구를 검색해 보면 최저가 판매 1위부터 5위까지가 ex-oil이다. 총 66개 주유소 중 ex-oil이 9개인데 최저가 판매 12위 안에 모두 랭크돼 있다. 1개 ex-oil의 영향권에 있는 국도변 주유소를 10개로 잡을 경우, 전국적으로 1600여 주유소들이 아사 직전에 있다 할 것이다. 한국주유소협회에 따르면 최근 주유소간 과당경쟁과 정부의 지속적인 기름 값 인하정책으로 휴업하는 주유소가 급증하고 있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고속도로변 주유소들로 보인다.

두 번째 부작용으로는 공사의 우월적 지위에 짓눌려 숨소리조차 크게 낼 수 없는 ex-oil 운영자(임대사업자)들의 경영상 애로다. ex-oil은 판매량 중 25%는 석유공사에서, 나머지 25%는 도로공사로부터 의무구매토록 하고 있다. 나머지 50% 물량은 주유소가 석유시장에서 재량껏 구입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공사의 기름이 시장가에 비해 비싼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공급은 비싸게 하면서, 판매는 최저가로 경쟁시키다 보니 국제유가 상승 시에 상당수 ex-oil 운영자들이 적자를 보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지막 부작용으로는 인근 국도변 주유소들이 생존 차원에서 가짜석유 판매 등 부정유통 유혹에 빠져들 수 있다는 점이다. 석유품질을 관리하는 한국석유관리원에 따르면 국내 가짜석유 유통으로 인한 탈세액은 연간 1조에 달하는데 자칫하면 공기업이 정상적인 주유소를 생존 위기의 벼랑으로 몰아 탈세를 조장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따라서 도로공사는 국도변 주유소와 ex-oil 운영자도 함께 상생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격 정책을 개선해야 한다.

양진형 한국석유유통협회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