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지혜로운 삶은 준비에 달려 있다

정보철 이니야 대표
입력일 2016-09-28 15:14 수정일 2016-09-28 15:15 발행일 2016-09-29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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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철 주간
정보철 이니야 대표

수년전 얘기다. 딸아이를 설득했다. 성적에 맞춘 대학을 가는 대신 재수를 권유했다. “정시를 보지 않는 게 좋겠다.”

명문대학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필자의 뜻은 단 한가지였다. 삶의 의미를 가르치고 싶었다. 딸아이는 고등학생시절 공부에 소홀했다. 수능을 며칠 앞둔 날에도 남이섬에 놀러갈 정도로 태평스런 아이였다. 그런데 수능에서 의외로 높은 점수가 나왔다. 울먹이는 딸아이에게 처음으로 쓰디쓴 소리를 했다. “성적에 맞춰 대학을 들어가는 것은 네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삶이 그런 식으로 이해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다.”

지혜로운 삶, 그것은 다른 게 아니다. 준비에 달려 있다. 준비된 상태, 즉 지혜를 얻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게 아니다. 대단한 시간과 공부를 요구하지 않는다. 두 가지만 놓치지 않으면 된다. 그것은 멀리 보는 안목과 일상에서의 수련이다. 이를 사자성어로 표현하면 ‘심모원려’(深謀遠慮)‘와 ‘사상마련(事上磨鍊)’이다.

심모원려는 기원전 중국 진나라의 과오를 다룬 사상가 가의의 과진론에서 나온 말이다. 심모(深謀)는 깊은 책략이고 원려(遠慮)는 멀리 보는 안목이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일순간의 쾌락이나 욕망을 쫓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양명학의 창시자 왕양명은 사상마련(事上磨鍊)을 주장했다. 쳇바퀴 돌듯 이어지는 일상 속에서 자신을 갈고 닦으라는 의미이다. 사람들은 일상적이며 흔한 것들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간과하고 넘어간다. 허나 반복된 업무 속에서 매몰되다 보면 타성에 젖어 아무 것도 익히지 못한다. 수련은 산속 깊은 곳에서 따로 시간을 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지하철로 출퇴근하면서 독서로 자신을 갈고 닦는 것처럼 일사 속에서 자신을 갈고 닦는 것이다.

이와는 다른 각도로 준비된 상태를 만드는 핵심 요소가 있다. 사상마련이 외형적 부문이라면 이는 내면적 부문을 지목한다. 그것은 바로 성(誠)이다. 말(言)하면 이루어진다(成)는 정성 성(誠)이다. 중국의 고전 중용(中庸)에서는 성을 살려는 의지의 발현(性)으로 본다. 살려는 의지는 만물이 작동하는 원리이다. 성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세상은 삶이 진정 살아 있는 세상이다. 성은 정성으로, 성실로 이해할 수도 있다. 정성과 성실은 그러니까 모든 일의 근원이다. 성이 없으면 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성이 부족하면 일시적으로 삶을 유지할 수는 있을지 모르나 삶을 유지하는 근원적인 작용과 위배되므로 결국 망하게 된다.

한시도 쉼 없이 작동하는 성의 움직임에서 빠뜨려서는 안 될 것이 하나 있다. 시(時)를 주시해야 한다. 관리학에서는 일몰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오늘의 일은 반드시 해가 지기 전에 완성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고 싶지 않더라도 해야 할 일은 반드시 마무리져야 한다. 봄에 씨를 뿌려야지 가을에 씨를 뿌리고 수확하려는 짓은 지혜롭지 못한 어리석은 일이다. 시의 개념에 어긋나는 자는 충분히 준비했다고 할 수 없다.

다시 강조하지만 준비는 지혜이다. 철저한 준비로 세상을 열려는 것이 지혜이다. 내가 딸아이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것 역시 준비하는 삶, 지혜로운 삶이다.

정보철 이니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