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한국경제, 가지 않은 길

박봉규 건국대 석좌교수
입력일 2016-10-06 15:43 수정일 2016-10-06 17:02 발행일 2016-10-07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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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규 석좌교수
박봉규 건국대 석좌교수

지금 우리는 경제개발을 시작한 이후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새 길을 개척해 나가야 할 운명에 처해있다. 우리가 당연시 해 왔던 상식이 통째로 무너지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경제가 당연히 성장하는 것인 줄 알았다. 6~7%의 성장은 당연한 것이고 여건이 좋으면 10%도 넘보았다. ‘국제시장 세대’가 겪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맨손으로 시작하더라도 자신만 부지런하면 대학에 다니고, 결혼하고, 집 한 채 장만해 아이들을 기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공식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성장률은 3%에도 못 미치고 잠재성장률은 더욱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

인구는 늘어나는 것인 줄만 알았다. 인구가 계속 증가한다는 가정 아래 모든 정책이 수립되었다. 하지만 생산가능 인구는 이미 감소하기 시작했고 총인구의 감소도 멀지 않았다. 인구감소로 모든 산업이 타격을 받는다. 골목상권과 자영업자들은 직격탄을 맞을 것이며 인구가 먼저 줄기 시작할 지방은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다.

국내시장이 위축되면 우리 기업들은 해외수요를 찾아 국내를 떠날 것이고 당연히 고용사정은 더 나빠진다. 생산가능인구의 감소는 상품 생산능력의 감퇴와 함께 생산성 향상에도 애로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대기업이 성장하면 일자리가 생기고 내 주머니도 두둑해지던 시절이 이제는 옛날 이야기가 되었다. 낙수효과는 사라졌고 잘나가는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 간에 양극화도 심화되었다. 최근 몇 년간 무역의 절대규모도 줄고 있다.

우리 산업 경쟁력은 떨어지는 반면 해외시장 여건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어 수출이 옛날처럼 성장을 이끌기도 어려워 보인다. 경제규모가 계속 커지던 시절과는 달리 한정된 파이를 둘러싸고 경쟁이 심화되면 각 분야에서 갈등 또한 커질 수밖에 없다.

오르는 물가를 잡는 것이 정부의 중요한 정책목표이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디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물가는 올라가는 것이라는 원칙에 맞춰져 있던 우리 삶을 새로운 여건에 적응시키는 것이 만만한 일이 아니다. 일본은 벌써 20년째 물가를 올리지 못해 안달이다.

우리 사회의 복지체계는 1차적으로 가족 또는 회사가 부담하는 형태였다. 그러나 가정경제가 어려워지고 가정이 해체되면서 가족이 최후의 보루 역할을 못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회사에 대한 기대도 빠른 속도로 무너지고 있다. 결국 그 책임을 국가가 떠안아야 하지만 국가 역시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 못하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여건이 엄청나게 변했다. 문제는 이런 변화가 장기적 추세이며 다시 옛날로 돌아가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여건이 변하면 정책도 수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지난날의 성공경험에 빠져, 과거 정책을 조금씩 수정해 가면 결국 좋아질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있다.

아니다.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과 이를 운영하는 정책에서의 새판 짜기가 필요하다. 통계숫자 중심에서 실질적인 삶의 질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위주로, 기업소득 증대를 통한 낙수효과에서 가계와 근로소득 증대를 통한 내수촉진으로, 수출 위주에서 내수와 수출의 균형으로, 승자독식과 각자도생에서 사회안전망의 확충과 복지제도의 정비를 통해 함께 가는 경제로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정책전환은 두려운 일이다. 이를 반대하는 이해집단을 설득하는 일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해야만 할 일이다. 길이란 처음부터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다. 새 길을 만드는 것이 바로 정부가 존재하는 이유다.

박봉규 건국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