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규제완화, 운전면허만은 예외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 겸 김필수 자동차연구소 소장
입력일 2016-09-25 13:57 수정일 2016-09-25 16:57 발행일 2016-09-26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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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수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 겸 김필수 자동차연구소 소장

지난 정부에서 자동차 운전면허 간소화라는 이름으로 변경한 국내 자동차 운전면허시험 제도는 현 시점에서 분명 실패작이라 할 수 있다. 최근 학과시험의 일부를 떼어 기능시험을 강화하는 조치를 취했지만 미봉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 운전면허 제도는 OECD국가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론적으로 단 이틀이면 취득할 수 있는 초고속 면허이기 때문이다. 선진국은 점차 강화하는 추세인 데 반해 우리는 더욱 간소화하고 있다.

재작년 제주도 등에 중국 관광객이 몰리면서 동시에 관광비자로 국내 운전면허를 취득하는 중국인이 5000명을 넘자, 중국 정부에서는 우리 정부에 운전면허 제도 강화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졸속으로 면허를 취득해 중국 면허로 바꾸는 일이 반복되자 중국 정부가 나서서 이에 대한 규제를 요청한 것이다. 우리 정부가 이를 묵살하자 작년 말부터 상해시 등 주요 지자체에서 관광비자로 취득한 국내 운전면허를 인정하지 않기 시작했다. 우리 수준을 가늠하는 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중국은 운전면허 취득에 걸리는 기간이 보통 6개월이며 비용도 상당한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관광객은 자국 면허 취득이 까다로운 탓에 한국에서 관광을 겸한 목적으로 운전면허를 취득해왔다. 이들은 귀국 후 자국 필기시험만 통과하면 면허증으로 교환해 주는 점을 악용해온 것이다.

호주나 독일 등은 정식 운전면허 취득에만 약 2년이 소요된다. 예비면허나 준면허 등 다양한 규제를 통해 완벽한 운전자를 선발한다. 운전면허가 생명을 담보로 하는 자격증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률적 규제완화 정책에서 자동차만큼은 제외해야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정부 당시 운전면허 제도개선 작업이 진행 중인 가운데 대통령은 담화를 통해 운전면허시험을 엄격한 방식으로 수정 보완하는 일을 백지화했다.

최근 초보운전자들의 운전행태를 보면 여러 문제가 드러난다. 면허를 취득했지만 길거리에서 운전을 할 준비가 돼있지 못하다. 차량 기본 기능 숙지는 물론 운전방법이나 비상조치는 고사하고 주차도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들이 길거리로 나오면서 사고 가능성을 크게 높이고 있다.

이들이 도로 상에서 운전조치를 제대로 못해 심각한 다중 교통사고가 발생한다면 과연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인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그동안 우리는 아니면 말고 식의 행정 행태를 너무 많이 목격해왔다. 정책입안자들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그 후유증을 모두가 국민이 부담하고 기회를 놓쳐 우리의 먹거리를 놓친 경우도 많았다.

자동차 운전면허제도는 생명을 담보로 한다는 측면에서 다른 정책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대안 없이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이유다. 지금부터라도 해외 선진국을 벤치마킹해 한국형 모델을 정립해나가야 한다. 이런 상태가 지속한다면 해외 국가에서 우리 면허를 인정하지 않고 국제 면허를 인정하지 않는 사례도 늘어날 전망이다. 이 경우에도 책임을 지는 당국자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아니면 말고 식의 낡은 구태를 버리고 의무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국민을 생각하는 제도를 만들어내길 바란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 겸 김필수 자동차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