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4차 산업혁명과 노동의 종말

윤기설 한국폴리텍대학 아산캠퍼스 학장
입력일 2016-09-21 16:17 수정일 2016-09-21 16:17 발행일 2016-09-22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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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설 한국폴리텍대학 아산캠퍼스 학장

요즘 은행 영업창구에 가면 과거보다 앉아있는 은행원들이 적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것이다. 그들이 하던 고객의 입출금 업무를 현금자동입·출금기나 인터넷뱅킹에 빼앗겨 은행원들이 옛날처럼 많이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기술의 발전이 은행의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몬 것이다. 20여년 전, 첨단기술이 만들어낼 디스토피아를 내다본 제레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은 현실화되는가.

영국 섬유노동자들은 19세기 초 방직기 사용이 늘면서 숙련공들의 일자리가 없어지자 공장에 불을 지르고 방직기계를 파괴하는 이른바 러다이트(기계파괴)운동을 전개했다. 19세기 후반 철도가 등장했을 때는 마차 주인들이 말이 빨리 달릴 수 있도록 좋은 채찍을 만드는 일에 몰두했다. 말이 빨리 달려야 자신들의 일거리가 철도에 그나마 적게 빼앗긴다고 생각한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혁명이 일어날 때마다 산업 종사자들은 삶의 존재가치를 높여준 일자리가 상실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떨며 집단으로 저항하거나 자구책을 마련했다.

하지만 고용시장의 역사적 흐름을 보면 1차 산업혁명 이후 지금까지 새로운 기술들은 인류가 걱정하는 것처럼 우리의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파괴할 정도로 파급효과를 미치지 못했다. 기존의 일자리가 없어지면 오히려 더 많은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 인류의 삶의 질을 윤택하게 만들어 온 게 사실이다.

4차 산업혁명의 도래가 이슈화되면서 또다시 일자리 증감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올해 초 스위스 다보스에서 개최된 세계경제포럼(KEF)은 4차 산업혁명이 고용시장의 대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예고했다. 여기서 발표된 ‘직업의 미래’ 보고서에 따르면 로봇과 인공지능의 보편화로 앞으로 5년간 선진국과 신흥시장을 포함한 15개국에서 일자리 716만 개가 사라지고, 202만여 개가 새로 생겨날 것으로 예측했다. 사라지는 일자리 가운데 90%가 사무·행정(475만개)과 제조·생산(160만개)에 집중될 것이란 전망이다.

이러한 예측이 현실화되면 사무·행정직 종사자들의 상당수는 조만간 실업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기술발전이 노동집약적 산업과 블루칼라 직종의 근로자를 길거리로 내몰았다면 이제는 사무직과 관리직 등 화이트칼라 계층의 일자리가 소멸돼 다른 직업으로의 대체가능성이 줄어들 것이란 분석이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은 일자리를 더욱 늘려 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빠른 기술진보는 기존 일자리의 소멸을 촉진할 수 있지만 동시에 새로운 일자리도 많이 생성될 것이란 전망이다.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은 제조업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해 스마트공장을 만들어냄으로써 제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프로젝트다. 컴퓨터나 단순 산업용 로봇을 이용하는 수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등을 통해 기업의 생산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그런데 AI가 고도화되고 자동화가 진행되면 일자리는 더욱 늘어난다는 분석이다.

일자리가 늘어날지, 줄어들지 명확히 예측하기는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4차 산업혁명에 필수적인 경쟁력 있는 제조업과 세계 최고 수준의 ICT 인프라를 보유한 국가여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데 정책적 역량을 결집한다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윤기설 한국폴리텍대학 아산캠퍼스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