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치열한 경쟁이 영웅을 낳는다

최승노 자유경제원 부원장
입력일 2016-09-19 16:00 수정일 2016-09-19 17:21 발행일 2016-09-2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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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 넣는 골키퍼’ 김병지 은퇴를 보며… 유럽으로 진출하는 골키퍼는 왜 나오지 않을까
최승노 자유경제원부원장
최승노 자유경제원 부원장

K리그의 레전드 골키퍼 김병지 선수가 은퇴했다. 1992년부터 23년 동안 그가 남긴 기록은 엄청나다. K리그 700경기 출장, 228경기 무실점, 45세 최고령 출전 등 실로 화려하다. 그는 이운재와 함께 라이벌을 이루며 한국 축구 역사에서 골키퍼의 전성기(1995~2009년)를 이끌었다. 두 명의 걸출한 스타가 있었기에 축구팬들은 경기를 즐기고 환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뒤를 이을 뛰어난 골키퍼가 나오지 않고 있다. 유럽으로 진출하는 골키퍼는 왜 나오지 않는 것일까? 다른 포지션과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바로 골키퍼에 외국인 선수를 금지하는 규정 때문이다. 특별히 골키퍼를 예외로 둘 이유가 없는데도 말이다.

스포츠는 이제 글로벌 시대다. 뛰어난 성적을 내는 구단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의 국적은 다양하다. 국적을 가려서 쓰지 않는다. 프리미어 리그를 보면 세계 올스타팀 간의 경기라는 느낌이 들 정도다. 우리 대표팀도 해외파가 주축을 이룬다.

과거 외국인 골키퍼와의 주전경쟁은 국내파 골키퍼들의 실력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다. 김병지와 이운재는 1990년대 러시아 출신의 신의손(사리체프)을 비롯한 외국인 골키퍼들과의 치열한 경쟁 압력 덕분에 탄생했다.

당시 신의손의 활약이 워낙 대단했던 관계로 상당수 구단들이 외국인 골키퍼를 영입했다. 국내 골키퍼들의 위기감은 컸다. 주전을 다 내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런 긴장감 속에서 경쟁을 견뎌내다 보니 뛰어난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국내 골키퍼를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1998년 외국인 선수를 금지하는 규정이 만들어지면서 경쟁의 압력은 낮아졌다. 뛰어난 외국인선수를 들여오면 국내 골키퍼가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생각은 지나치게 지금 한 순간 만을 생각하는 단순한 사고다. 경쟁을 통해 시간을 두고 뛰어난 선수가 나오고 해외로 진출하는 선수까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그 당시 신의손의 활약 덕분에 국내 골키퍼의 역할과 직업이 다양해졌다. 골키퍼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골키퍼 전담 코치’라는 새로운 보직까지 생겼다. 그 이전에는 국내 구단에 없던 직책이었다. 골키퍼로 은퇴한 선수들이 새로 일할 수 있는 직업이 생긴 것이다.

2002년 히딩크는 우리에게 큰 교훈을 남겼다. 연고주의와 온정주의에서 벗어나 세계의 높은 수준에 맞서야 함을 일깨워 주었다. 수준 높은 팀과 싸워야 실력이 향상된다는 점을 보여줬다.

뛰어난 선수는 전담 코치 등 체계적인 육성 만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치열한 주전경쟁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 순간에는 위기라고 느끼지만 그런 경쟁하는 구도가 만들어져야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 난세에 영웅이 나오듯이. 김병지 처럼.

최승노 자유경제원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