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김영란법, 뭣이 중헌디?'… 고사위기에 몰린 문화예술계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입력일 2016-09-07 16:47 수정일 2016-09-09 20:49 발행일 2016-09-08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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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9월 28일. 그 이름도 찬란한 ‘김영란법’이 드디어 이 한반도 땅에 그 무시무시한 위용을 드러낸다. 3-5-10!! 무슨 숫자 게임이 아니다.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 10만원의 상한선. 공직자 뿐 아니라 언론사·사립학교·사립유치원 임직원, 사학재단 이사진 등이 부정한 청탁을 받고도 신고하지 않거나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에 상관없이 1회 100만원(연간 300만원)이 넘는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형사처벌하도록 하는 바로 그 법률이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라는 정식 명칭이 있지만, 이 법안의 발의자인 김영란 전 대법관의 이름으로 더 유명한 이 법은 한국 사회에 등장하자마자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지난 7월에는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까지 거쳐야할 정도로 논란이 거셌다.

하지만 갖가지 논란에도 불구하고 김영란법은 결국 시행 초읽기에 들어갔고 한국사회에 매머드급 영향력을 발휘할 전망이다. 이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높은 분들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계도 그 서슬퍼런 칼날을 피해갈 수 없다.

식사와 선물 등 모든 접대와 청탁이 제재 대상이 됨에 따라 문화예술계, 특히 연예계의 고질적인 접대 관행은 달라질 수밖에 없게 됐다. 참으로 오랜 업무패턴이었던 영화, 음반 등의 마케팅에 기자, 방송국PD나 기타 평론가를 향한 각종 초대권, 식사접대 등 물량공세는 소리소문없이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심지어 방송채널사용사업자들까지 포함되기 때문에 CJ, 네이버 등 일부 문화콘텐츠 관련 미디어채널 및 종사자들마저 김영란법의 후폭풍을 온몸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연예산업 관계자들에게 호의로 또는 판촉용으로 제공되던 영화시사회, 가요콘서트 초대권은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티켓 값이 선물 상한액인 5만원을 넘어서는 뮤지컬, 클래식음악계는 문화 접대 목적으로 전체 티켓판매량의 20% 가량을 차지하는 기업들의 구매가 중단되는 직격탄을 맞게 될 것이다. 이미 올 연말에 예정된 각종 뮤지컬, 클래식공연의 매출이 급감하기 시작해 김영란법 대란은 현실이 되고 있다.

법 시행 이후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명시되지 않는 이상 당분간 기업은 물론 문화상품을 구매하는 개미군단마저 사태를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 삼간 태운다는 옛 속담이 괜한 말이 아니었음이 실감난다.

가뜩이나 허약한 체질의 우리 문화예술계, 대중문화산업은 김영란법의 여파로 올 연말을 심란하게 보내야 한다. 일부에서는 공짜 표 남발과 부정청탁 방지의 긍정적 측면도 얘기하지만 문화예술로 먹고 사는 이들에게는 청천벽력일 뿐이다.

아직 주먹구구식으로 마케팅을 해야 하는 연예계나 문화접대비의 비중이 기업 전체 접대비의 1%에도 못 미치는 현실에서 연예산업과 문화예술계까지 김영란법의 올가미를 굳이 씌워야 하는지는 좀더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미래의 문화산업이 피어나기는커녕 발목 잡는 법 때문에 고사하는 위기를 맞게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소잃고 외양간을 고치기 전에 명확한 가이드라인과 보호장치가 필요하다. 호의적인 관행을 고려해 문화 접대에 한해서 예외 규정을 두거나 티켓 등의 선물 상한액을 높여야 한다.

정책담당자들에게 이말을 꼭 전 해주고 싶다. “김영란법, 뭣이 그리 중헌디?”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