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한류,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우(愚)를 범하지 말자

한승범 맥신코리아 대표
입력일 2016-09-04 15:48 수정일 2016-09-04 15:50 발행일 2016-09-05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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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범 맥신코리아 대표

문화체육관광부가 얼마전 차세대 한류를 이끌 소위 ‘한류기획단’을 발족시켰다. 정부와 민간 협력을 통해 한류를 지속가능하게 발전시키겠다는 취지이다.

한류기획단에는 화장품 업체 아모레퍼시픽과 대형 연예기획사 3사(SM·YG·JYP), 방송3사(KBS, MBC, SBS), 방송협회가 모두 참여한다. 또한 한국벤처투자, 코로롱인터스트리, 한국무역협회, CJ E&M 등 25개 민간 분야별 대표 기업이 이름을 올렸다. 정부 주요 부처 장·차관들도 상임위원으로 참가한다.

정부가 한류기획단을 발족시킨 배경에는 일본, 중국, 아시아 국가들을 넘어 유럽, 미주로까지 그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는 한류를 발판으로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 시장 공략을 강화하겠다는 속셈이 담겨있다.

하지만 입장을 한번 바꿔서 생각해보자.

미국 정부가 할리우드의 메이저 7대 영화사(워너브라더스, 월트디즈니, 소니 픽처스, 파라마운트, 21세기 폭스, 유니버셜스튜디오, MGM)와 3대 방송사(NBC, CBS, ABC), 그리고 미국의 3대 자동차회사(GM, 크라이슬러, 포드), 애플과 같은 IT기업을 모두 연결하는 ‘할리우드 기획단’을 만든다고 상상해보자. 취지는 할리우드의 전 세계적인 대중문화 지배력을 바탕으로 미국 상품의 세계시장 점유율 확대를 꾀하는 것이다. 덤으로 미국 국무부, 재무부, 에너지부, 국토안보부 등 연방정부의 고위관료들이 할리우드기획단에 대거 참여한다.

만약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한다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타의 나라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 미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것은 물론이고, 미국 대중문화에 종속되는 것을 우려한 반미시위가 전 세계에서 폭발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다.

한류가 성공했던 초창기에 “정부가 한류가 뭔지 몰라 개입을 안 해서 한류가 성공했다”는 농담이 대중문화계에 떠돈 적이 있다. 이 같은 농담에는 강한 교훈이 담겨져 있다. 바로 ‘문화는 그것을 소비하고 향유하는 이들의 자발성에 의해 확산된다’는 점이다.

우리 대중문화계가 스스로 만들어낸 한류에 정부가 어떤 식으로든 숟가락을 얹어 인위적인 시도를 하는 순간 한류는 그 자생력을 잃고 만다.

더욱이 문화의 특성상 한류가 해외각국에서 확산될 수록 현지에 ‘혐한류’ 혹은 ‘반한류’ 분위기도 함께 조성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실제로 아시아의 많은 나라에서 한류에 자국의 문화가 종속되는 것에 대해 심각할 정도로 우려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가 직접 나서서 한류를 무기로 자국 상품을 홍보하는 것은 그야말로 불난 곳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한류에 있어서 정부의 역할은 감독이다. 여러 이해 당사자들 간의 갈등을 해결해 주고 뒤에서 응원하면 된다. 감독이 선수로 직접 뛰며 스타 욕심을 내면 축구단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 된다. ‘한류기획단’은 정부가 나서서 지금까지 진행한 한류 진흥 정책 중 최악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 자명하다. 한마디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우(愚)를 범하는 셈이다. 제발 지금이라도 루비콘 강을 건너지 말기를 바란다.

한승범 맥신코리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