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끝이 좋아야 모든 게 좋은 거다

이해익 경영컨설턴트
입력일 2016-08-25 15:35 수정일 2016-08-25 15:35 발행일 2016-08-26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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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익 경영컨설턴트

제왕과 CEO의 은퇴나 그 자리의 이양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제왕과 CEO란 위치가 무릇 영욕(榮辱)의 정상(頂上)에 있기 때문이다. 제왕의 죽음 역시 긴장감도는 역사적 이벤트다. 위대한 정복자 알렉산더대왕이 33세의 젊은 나이로 갑자기 숨을 거두게 되었다. 측근이 두려워 떨며 아뢰었다. “폐하! 후계자는 누구로 하오리까?” 대왕이 가까스로 대답했다. “가장 지혜롭고 강한 자로다.” 적임자가 하라는 뜻이다. 어차피 결국은 꾀 많고 강한 자의 것이니까.

그는 20세의 젊은 나이로 BC336년 마케도니아의 왕위에 올랐다. 그런 후 재위 13년만에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에 이르는 대제국 건설에 성공했다. 그의 문화사적 업적은 대제국에 그리스문화와 오리엔트문화를 융합시킨 새로운 헬레니즘 문화를 이룩한 데 있다. 반면에 중국을 61년이나 다스린 최장수군주였던 청나라 강희제의 경우는 어떤가? 강희제는 죽어가면서도 신하의 손바닥에 사력을 다해 ‘十四(십사)’를 붓으로 적어주었다. 24명의 아들 중 열네번째를 후계자로 점찍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넷째 아들에게 매수된 신하가 ‘十(십)’자를 혀로 핥아 지워버렸다. 후계자와 나라는 편할 날이 없었다. 그래서 위대한 알렉산더 대왕의 마지막 대답이 종소리 울림처럼 큰 여운이 있어 음미해보고 싶다. 영원한 은퇴, 영원한 자리이양일 수밖에 없는 죽음 앞에서도 더욱 위대했기 때문이다.

첫째, 곰곰이 생각해보면 유언은 무용지물이다. 제왕의 자리는 물질처럼 나누어 가질 수 없는 유일한 권력이다. 어차피 역사는 가장 강하고 지혜로운 자의 편이다. CEO의 이양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떠나는 CEO는 새로운 CEO등장에 어줍잖은 영향력 행사를 가해서는 안된다. 참다운 리더는 육성되고 점찍거나 해서 세습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공정한 기회의 훈련과 업적을 통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인재를 키웠다는 착각을 하지 않는 게 현명하다.

둘째,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후계자란 없다. 후임자가 있을 뿐이다. 후계자란 말 속에는 전임자 입장에서 그의 생각과 취향을 따라주기 바라는 어리석은 욕심이 묻어있다. 그러나 세상이 어디 그럴 수 있는가. 떠나는 리더는 자기 시대의 마침표만 잘 찍으면 된다.

“知止常止 終身無恥(지지상지 종신무치) 끝낼 바를 알아 마땅히 잘 마무리하면 평생 부끄럼을 당하지 않는다. ”명심보감의 가르침이다. 퇴계는 늙어 병들자 머무르던 여러 제자들은 돌려보냈다. 미리 철저히 떠날 준비를 마쳤다.

셋째, 은퇴나 자리를 넘겨주는 일은 열성을 바쳐 해왔던 일의 끝이다. 하지만 그 끝은 동시에 또 다른 시작이어야 한다. 영원한 은퇴인 죽음조차 새로운 차원으로 진입한다고 믿는 것이 영적 존재인 인간의 참 모습이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은 은퇴이후를 너무나 멋지고 아름답게 꽃피웠다. ‘실패한 대통령’이란 평가가 미국 역사상 ‘최고의 전직 대통령’으로 거듭난 정치가가 되었다. 겸손하게 평화의 중재, 빈곤과 질병 퇴치에 헌신했기 때문이다.

끝이 좋아야 모든 게 좋은 거다. 임기를 끝내가는 이들이 명심하면 좋겠다.

이해익 경영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