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증세원칙에 대한 합의

박봉규 건국대 석좌교수
입력일 2016-08-01 15:17 수정일 2016-08-01 15:18 발행일 2016-08-02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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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규 석좌교수
박봉규 건국대 석좌교수

과연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인가? 우리 모두가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기초생활 보장과 사회적 안전망이 갖추어져야 하는가, 이를 위한 재정소요는 얼마나 되며 현재의 조세제도 아래에서 이를 조달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가, 어렵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나라의 조세체계는 조세부담율과 재정지출이 모두 낮은 전형적인 ‘저부담 저복지’ 상태에 있다. 낮은 법정세율과 다양한 감면 제도로 인해 개인과 법인의 실효세율은 명목 세율에 비해 낮은 수준이며 이러한 혜택은 주로 대기업과 고소득자에 집중되어 과세의 공평성을 저해하고 있다.

반면 재정지출 구조는 높은 국방비, R&D지출을 비롯한 경제사업비 비중의 과다, 낮은 공공부조와 사회보험 사각지대의 존재로 인해 복지 관련 지출의 비중은 낮다. 조세와 재정의 재분배 기능이 매우 취약해 조세와 이전지출을 통한 빈곤율 감소 내지는 소득 불평등 완화 효과도 미미한 수준이다.

복지 증대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조세체계로서는 복지국가 실현에 필요한 재정지출을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복지 증대 시 기채가 불가피하게 되고 이는 다시 재정 건전성의 위협과 후세대에 대한 부담 증가로 귀결된다.

지금의 ‘저부담- 저복지’ 수준을 적어도 ‘중부담 - 중복지’ 수준으로 올려 내수진작을 통해 경제를 성장시키고 국민의 삶의 질도 높여야 한다는 데에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가고 있다. 누진과세를 통해 공평과세와 조세정의를 실현하고, 촘촘한 사회안전망의 구축을 통해 분배와 성장의 선순환을 모색하지 않으면 경제의 장기안정적 성장은 물론이고 증대하는 사회갈등과 양극화를 해소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증세는 힘든 일이다. 일반 원칙에 대해서는 그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다가도 막상 자기이해가 걸리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태도가 돌변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지난 번 연말정산 파동에서 보았듯이 세금인상은 민감한 사안이다. 국민들에게 인기도 없는 정책이다.

증세를 추진한 정권은 예외 없이 다음 선거에서 패배한 역사적 전례가 이를 말해준다. 그러나 어려운 일이라도 꼭 가야만 하는 길이라면 팔을 걷어 부치고 국민을 설득하고 추진하는 것이 지도자의 책무요, 후손들에 대한 의무이다.

무엇보다 단계적 증세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1단계에서는 세율의 재조정과 각종 조세특례제도의 폐지를 통해 실효세율을 높여야 한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2008년 수준으로 환원하고 가진 자에게 유리하게 운용되고 있는 다양한 특례제도와 감면제도의 재정비가 필수적이다. 이와 병행해 세출 면에서도 관습적으로 해마다 지출되고 있는 분야에 대한 지원 필요성을 재검토하여 세출구조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2단계에서는 자산소득과 금융소득에 대한 과세강화와 같은 추가세원을 발굴하는 것이다. 고소득 자영업자와 전문직 종사자에 대한 과표 현실화를 추진하자. 자산소득에 대한 종합과세와 같은 세원의 신설도 검토하자. 동시에 세원을 넓힌다는 원칙아래 높게 책정된 각종 면세한도를 낮추어 많은 국민들이 얼마 씩이라도 세금을 내게 하자. 이를 통해 시민으로서의 책무에 동참하게하고 세금에 대한 감시기능도 강화되도록 하자.

이와 같은 조치로도 재정수요가 부족하면 마지막 단계로 지출내용에 대한 국민적 이해를 바탕으로 부가세 인상과 같이 간접세를 더 걷는 방안을 추진하도록 하자.

박봉규 건국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