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석유정책’의 대전환이 시급한 이유

양진형 한국석유유통협회 상무
입력일 2016-07-28 13:52 수정일 2016-07-28 13:52 발행일 2016-07-28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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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형 한국석유유통협회 상무

지금 우리의 ‘석유정책’은 안녕한가? 유감스럽지만 그 답은 ‘아니오’다. 석유산업은 1997년 석유산업 자유화 이후 철저한 시장경제 원리에 의해 작동돼 왔다. 그러던 국내 석유시장이 꼬이기 시작했다. 바로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부터다. 당시에는 국제유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아 물가안정을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11년 1월 물가장관 회의에서 “주유소가 묘하다”며 “여러 물가에 영향을 주는 기름 값의 경우 유가와 환율간 변동관계를 면밀하게 살펴 적정수준인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른바 ‘묘한 기름값’ 발언이다.

이 발언 이후 석유시장은 과거로 회귀했다. 당시 기재부 장관은 “국내 석유시장은 과점된 상태에서 가격 경쟁이 투명하지 않는 근본적 문제가 있다”고 발언했다. 또한 스스로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고 밝힌 산업부 장관은 “기름 값 원가 구성요인을 하나하나 뜯어보고 있다“며 정유사에 기름 값 인하를 압박했다.

여기에 공정위가 가세해 2011년 5월 정유사가 ‘주유소 나눠먹기’를 위한 담합을 했다며 정유 3사에 대해 과징금 2548억 원을 부과했다.(그러나 지난해 공정위 과징금 부과가 잘못됐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옴에 따라 공정위는 정유사가 기 납부한 과징금 외에 이자 수 백억까지 물어주게 생겼다.)

이러한 배경에서 2012년 4월 탄생한 정책이 바로 ‘석유제품시장 경쟁촉진 및 유통구조의 근본적 개선’이다. 그 핵심은 알뜰주유소 도입 및 확산, 석유전자상거래제도 도입, 혼합판매 활성화 등으로 소위 ‘삼형제’ 정책이라 일컫는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삼성토탈(현 한화토탈)을 국내 제5의 석유제품 공급사로 참여시키고, 석유공사를 유통업에 진출시키는 한편 석유수입사를 활성화시킨다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기존 정유사 중심의 석유유통시장을 주유소 중심으로 옮겨 유가인하 경쟁을 유도하겠다는 것이었다.

정부는 이러한 ‘삼형제’ 정책의 석유시장 안착을 위해 매년 수백억 원에 이르는 세금을 동원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지금 어떤가? 알뜰주유소는 그동안 투입된 정부의 인센티브를 고려할 때 유가인하가 미미하다는 평가가 나온 지 오래다. 이러한 가운데 알뜰의 주 공급사인 석유공사와 50% 의무구매 및 공급단가 인하를 둘러싸고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또한 일부 알뜰주유소의 제품에서는 가짜석유가 적발되는 등 관리에 많은 문제들이 드러나고 있다.

석유전자상거래제도 또한 마찬가지다. 유가인하를 위해 당초 외국에서 싼 석유를 수입해 주유소에 공급할 목적으로 개설됐는데 현재 수입석유는 미미하고, 대부분의 물량을 국내 정유사에 의존하고 있다. 게다가 협의매매가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러한 협의매매에도 리터당 4원씩의 세금이 지원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의 혈세만 낭비한 채 한국거래소만 살찌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혼합판매 활성화 정책도 일선 주유소들이 호응을 하지 않아 사실상 좌초되고 말았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동안 정부의 인위적인 시장왜곡으로 국내 석유시장이 아사 직전에 처했다는 점이다. 알뜰주유소에 도입에 따른 과당경쟁으로 기존 주유소들은 최소한의 이윤마저 얻지 못해 휴·폐업이 속출하고 있다.

수출시장 또한 어둡기만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석유가 ‘수출 1위’ 효자였지만 정유사의 석유수출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주요 수출시장이던 중국과 인도 등의 소비침체와 자국 내 정유 공장의 증설에 따른 영향이다. 게다가 조만간 중국산 기름이 국내로 역 수출될 수도 있다는 염려가 팽배하다. 중국에는 최근 하루 10만에서 20만을 생산해 낼 수 있는 소규모 민간 정유사인 ‘티폿(teapot = 찻주전자)’이 다수 건설돼 가동 중에 있다.

이제 석유정책은 MB정부가 석유업계에 낙인한 ‘주홍글씨’를 지우고, 시장에 맡겨두는 방향으로 대전환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내 석유산업도 조선이나 철강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

양진형 한국석유유통협회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