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분노의 심리학

한상우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입력일 2016-07-27 16:07 수정일 2016-07-27 16:07 발행일 2016-07-28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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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우교수
한상우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화가 났음에도 자신이 화가 났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왜냐하면 겉으로는 화를 내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들은 화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기가 죽어 있고 복종적인 태도를 보인다. 현실에서 화를 내지 않았지만 이들의 마음 속에는 화와 분노가 숨겨져 있다. 

사람들은 보통 분노를 두 방향으로 표현한다. 자신 밖으로 폭발하기도 하고 자신 안으로 폭발하기도 한다. 안으로 폭발하는 분노는 우울증을 일으킨다. 나는 나쁜 놈이다, 내가 못나서 이런 대우를 받는다, 나는 그렇게 무시당해도 싼 놈이다 하는 식의 자기비하로 나타난다. 이런 사람들은 왜 자신의 화를 표현하지 못하는 걸까? 그것은 분노와 죄책감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죄책감이 분노의 표현을 가로막아 버린다. 대부분 이들의 죄책감은 부모와 연관되어 있다. 분노의 화살을 어머니나 아버지에게 쏘면 큰 죄가 되므로 그 죄책감이 두려워서 자기를 쏘는 것이고 자기를 쏘는 편이 훨씬 안전하기 때문이다. 이런 성향이 점점 심해지면 자살까지 가기도 한다.

반대로 분노가 밖으로 향할 땐 엉뚱한 대상에게 터지기도 한다. 부인이나 아이들같이 만만한 대상에게 화를 낸다. 때로는 직장의 부하가 분노 표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는 내 마음 속 부모에 대한 분노가 주변 사람들에게 이동(Displacement)한 것이다. 선생님에게 매 맞은 아이가 선생님 구두를 발로 차는 것이나 남편이 미운 부인이 시누이를 비난하는 것이 이동이다. 이동이란 심리현상은 합리적이지 못한 현상이지만 우리 마음 속에서 흔히 발생한다.

마음 속에 숨겨진 표현되지 못한 화는 편집증을 만든다. 사람들이 자기를 모략하고 자기를 시기할 거라는 생각에 시달린다. 이는 자기 분노를 상대방에게 투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적 분노가 클수록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도 크다. 그래서 생존을 위해 모든 촉각을 곤두세우고 의심한다. 편집증적인 사람 중에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많은 이유는 살아남기 위해서 철저하게 준비하고 자기의 힘을 기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성공해 보아도 마음 속의 분노하는 심리적 아이는 늘 억울하고 우울하다. 왜냐하면 자신의 분노의 뿌리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해결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분노 처리는 우리 인생의 큰 숙제다. 마음 속에 숨어 있는 화와 분노는 무의식에 머물러 있어서 이성적 사고의 영역 밖에 있기 때문에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 분노의 뿌리에 대한 자기 발견 혹은 자기 이해만이 분노의 뿌리를 치유하는 효과를 나타내며 이것에 이르는 것을 통찰이라 한다. “아하! 내 안에 이런 아이가 있었구나, 형만 편애하는 부모에 대한 분노와 형에 대한 질투심에 빠진 아이가 있었구나, 그래서 남들에게 인정받으려 했고 버림받을까봐 두려워 했구나” 하는 자기 발견이 통찰인 것이다.

사실 마음 속의 분노하는 심리적 아이는 유년기에 만들어진 하나의 허상일 뿐이다. 유년기 시절 마음의 상처를 받고 만들어진 심리적 아이가 무의식 속에 살아남아 있는 것이다. 실상은 더 이상 상처 받지도 받을 필요도 없는 늠름한 어른인 자기가 실상이다. 그런데도 실상인 어른이 허상인 마음 속의 아이의 감정에 지배당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을 발견하는 것이 통찰이다. 심리적 허상은 그것이 허상이라는 사실을 내가 깨닫는 순간 무력하게 사라지게 돼 있다.

한상우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