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참을 수 없는 영웅호색의 가벼움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입력일 2016-07-07 16:10 수정일 2016-07-07 16:12 발행일 2016-07-08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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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 하루가 멀다 하고 연예인, 스포츠스타 등 능력자들(?)의 성 관련 불상사가 터지고 있다. 개그맨 유상무, 이주노 성추행 파문에 이어 대표적인 한류스타 JYJ 박유천의 엽기적인 화장실 성폭행 고소사건, 홍상수 감독·김민희의 뷸륜행각 등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더니 급기야 바다 건너 메이저리거 강정호마저 성폭행에 연루돼 곤욕을 겪고 있다. 예부터 영웅은 호색이라 했다. 하지만 과연 그래야 하는 걸까?

진시황제, 로마의 시저, 백제 의자왕 등 여성편력은 야사 뿐 아니라 정사에도 오르내린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유명인사들인 빌 클린턴, 타이거 우즈, 휴 헤프너, 마약왕 구즈만 등도 진정한 ‘영웅’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희대의 ‘호색한’으로 각인돼있다. 이미지로 먹고 사는 유명인들이 갑작스런 성추문으로 유명을 달리하는(?) 일련의 현상에 메스를 대 환부를 도려내야 하는가? 아니면 그들만의 리그에서 이루어지는 불상사들이니 그저 참을 수 없는 본능의 가벼움 쯤으로 바라만 봐야할까?
인기 연예인, 스포츠스타들은 대중이 열렬하게 보내는 박수 덕분에 지금과 같은 영광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하지만 요즘 보면 그들 곁에는 공인으로서의 책임의식을 일깨워준 이들이 거의 없었던 모양이다. 사실 공인의 책임의식이라는 건 그다지 거창한 의미도 아니다. 그들이 과연 정치인이나 공무원처럼 높은 도덕의식이 요구되는 공인에 해당하는지 여부도 여전히 논란거리다. 대중의 눈길에 노출된 이들의 책임의식은 그들의 모든 부귀영화를 가져다준 대중의 존재를 철저히 자각하고 그에 한없이 감사하는 작은 일에서 시작된다. 동시에 대중을 무서워해야 하는 것이다. SNS가 발달한 세상에서는 조심해야 할 일이 더욱 많아질 수밖에 없다. 전직 대통령마냥 “왜 나만 가지고 그래”라고 푸념할 일이 아니다. 푸념을 제대로 늘어놓기도 전에 푸대접이 시작되는 시대기 때문이다. 박유천의 맞고소도 강정호의 항변도 그저 대답 없는 메아리일 뿐이다. 이들에게 무작정 돌을 던질 수는 없다. 그저 능력자들의 본색이 드러나는지 안드러나는지의 차이에 불과하다. 결국 처절한 자기성찰이 필요하다.
약 10년 전 개그맨 리마리오가 말했다. “본능에 충실해!!” 그러나 그 때도 틀렸고 지금도 틀렸다. 영웅본색은 영웅호색이 아니다. 본능에 충실했던 영웅들의 안타까운 최후가 이를 충실하게 대변하고 있다. 물론 황진이를 대하던 서경덕 선생처럼 마냥 초연하게 지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을 수 있는 미덕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안중근 의사가 누구인지 몰라도 그다지 상관없다. 마이너리그로 강등되어도 너그러이 이해한다. 하지만 대중의 사랑을 하루아침에 가볍게 만드는 성관련 루머들은 참을 수 없는 본능의 가벼움을 절실히도 깨닫게 한다. 그 가벼움 위에 대중을 향한 영웅의 ‘자각’과 ‘감사’가 실릴 때에야 비로소 무게감을 가지게 될 것이다. 동물적인 본능을 잠시 내려놓아야 한다. 자신의 인기와 영광이 어디서부터 비롯됐는지 깨닫고 그 깨달음에 언제나 고개를 숙일 수 있는, 무겁고 오래가는 ‘영웅’의 탄생을 기대해본다.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