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가짜석유 근절 위해’ 근본 해법 찾아야

양진형 한국석유유통협회 상무
입력일 2016-06-29 11:15 수정일 2016-06-29 11:32 발행일 2016-06-29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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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형 한국석유유통협회 상무
양진형 한국석유유통협회 상무

가짜석유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최근 해외에서 수입한 석유중간 제품에 등유를 혼합해 만든 가짜경유(520만ℓ, 58억 원 상당)를 유통시킨 조직이 적발됐다. 또 이달 초에는 경유에 등유를 섞어 만든 가짜경유 27억 원 상당을 건설현장 덤프트럭에 판매한 일당이 검거되기도 했다.

가짜석유란 하나의 석유제품에 또 다른 제품을 혼합해 제조하는 것을 말한다. 가짜석유가 끊이지 않는 근본 원인은 석유제품의 용도에 따라 차등하게 부과되는 세금차이 때문이다. 현재 휘발유에는 60%, 경유에는 50%, 등유에는 17% 정도의 세금이 붙어 있다. 반면, 세탁 용도로 사용되는 용제에는 세금이 전혀 붙지 않는다.

가짜석유를 제조하는 데는 전문기술도 필요 없어 휘발유에 용제를 1:1로 섞으면 가짜휘발유가 되고 이를 정상가로 판매하면 세금차이 만큼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또한 경유에 등유를 섞어 가짜경유로 판매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가짜석유를 제조해 판매할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국내 석유제품의 품질을 관리하는 한국석유관리원에 따르면 가짜석유로 탈루되는 세수가 연간 1조 6000억에 달한다.

가짜석유는 이렇듯 국가재정에 악영향을 주는 것 이외에도 환경오염 및 소비자 차량 수명단축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왔다. 지난 2011년 수원에서는 가짜석유를 몰래 팔던 주유소가 폭발, 4명이 사망해 국민의 안전을 직접 위협하기도 했다.

현재 가짜석유 제조자 및 판매자에게는 징역 5년 이하 또는 2억 원 이하의 벌금이, 가짜석유제품임을 알면서 사용한 소비자에게는 최고 3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정부는 그동안 가짜석유를 취급하는 주유소와 사람들에 대해 처벌을 강화해 왔지만 정상궤도를 벗어난 불법행위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가짜석유는 사람이 직접 맛을 보거나 만져볼 수가 없어 식별이 어렵고, 또한 점조직으로 움직여 적발이 어렵다. 이러한 가운데 가짜석유 제조자들은 첨단 디지털 기기를 활용해 갈수록 지능화되고, 대형화되고 있다. 그동안의 단속과 처벌을 통한 가짜석유 근절 방식에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이러한 방식에 대한 보완과 함께 가짜석유가 난무할 수밖에 없는 생태환경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우선 석유제품 간 차등하게 부과되는 세금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또한 용제와 같이 가짜석유의 제조에 사용되는 원료에 과세를 하고 나중에 환급해 주는 방안도 고민해 봐야 한다. 국가재정을 관리하는 기재부나 국세청 입장에서는 번거로운 일이겠지만 세수확보와 석유유통질서 확립을 위해서는 효과적인 방안이라 생각한다.

두 번째는 가짜석유 유통을 뒷받침하고 있는 무자료거래 업자들을 뿌리 뽑아야 한다. 현재 국내 600여 개의 석유대리점들이 있는데 이 중 매년 약 200여개가 1년 내에 신규 등록과 폐업을 반복하며 세금을 탈루하고 있다. 이들 유령 대리점들이 가짜세금계산서를 유통시켜 탈루한 세액만도 연간 5600억 원에 이르고 있다. 이들을 퇴출시키기 위해서는 석유대리점의 등록 요건 개선과 정기적인 현장 실태조사, 그리고 강력한 세무조사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현재 과포화 상태에 이른 주유소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전국에는 1만2000여개의 주유소가 있는데 전문가들은 적정 수준을 8000 여개로 보고 있다. 한계에 이른 4000개의 주유소들이 경영악화로 문을 닫을 처지지만 토양오염 복원 비용(최소 1억 원 이상)이 없어 폐업을 못하고 있다. 이러한 주유소들이 임대, 재 임대 형태로 유지되면서 가짜석유 제조·유통의 주축이 되고 있다. 영업을 하지 않는 상당수의 주유소들이 폐허 상태로 방치돼 주변 토양을 오염시키고 있어 환경적으로도 큰 골칫거리다. 따라서 이들 한계 주유소들의 원만한 구조조정과 퇴출을 위해 정부, 국회, 업계 간에 어깨를 맞대고 해법을 찾아야 할 시점이다.

양진형 한국석유유통협회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