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패러디,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입력일 2016-06-09 16:18 수정일 2016-06-09 16:18 발행일 2016-06-1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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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루이비통, 프라다, 에르메스…. 이 세상의 모든 여성들, 심지어 그런 여성들에게 구애해야 하는 남성들까지도 열망하고 또 열망하는 명품 브랜드로 알려진 이름들이 요즘 수난과 비난을 동시에 겪고 있다. 명품 브랜드에 대한 패러디를 둘러싼 각종 분쟁들이 우리에게 안심과 근심을 한꺼번에 선사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양평의 어느 치킨집은 ‘루이비통닭’(LOUIS VUITON DAK)이라는 상호로 영업을 하면서 루이비통의 유사한 마크 및 ‘모노그램’과 동일한 패턴의 포장을 사용해 루이비통 본사로부터 사용금지 가처분을 당했다. 상호 사용 금지 및 위반시 1일당 50만원의 지급결정도 뒤따랐다. 
그러나 치킨집 사장님의 패러디 열정은 여기에 쉽게 굴하지 않았다. ‘Loisvui tondak’으로 상호를 바꾸고 일부 집기에 ‘cha’를 붙어 ‘Cha Loisvui tondak’으로 적으면서 가처분의 결정문에 의문의 1패를 안기려 노력했다. 
그러나 법원은 “비록 띄어쓰기를 달리했더라도 문자 표장을 이루는 알파벳이 완전히 동일하다”며 “바꾼 이름도 루이비통 상표를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상표가 갖는 식별력이나 명성을 손상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루이비통에게 불문의 1승을 안겨줬다. 
에르메스의 유명 핸드백인 ‘켈리백’, ‘버킨백’을 놓고 사진을 찍은 뒤 그 사진을 천, 나일론에 프린트해서 만든 가방 진저백도 브랜드의 집요한 공세를 피해가지 못했다. 국내의 모 업체가 1000만원대의 에르메스 명품 가방 스타일에 눈모양을 첨가한 속칭 ‘눈알 가방’ 유행도 10~20만원대 모방 제품임을 명시했음에도 에르메스의 부정경쟁 주장에 무릎을 꿇었다. 
반면 안동의 ‘버버리’ 찰떡, 악마도 입는다는 프라다를 맛갈지게 패러디한 ‘프라닭’ 치킨집, 마치 샤넬의 자매 치킨집 같은 ‘꼬꼬샤넬’은 해당 소송에서 이기거나 비교적 무난히 영업을 지속하고 있다. 
부정경쟁방지법상 부정경쟁행위는 기본적으로 ‘오인 가능성’을 요건으로 한다. 하지만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혼동 가능성 및 관련 시장의 경제적 가치 훼손 보다는 유명 상표가 가지는 좋은 이미지나 가치를 손상시키는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한다는 규정을 내세워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것이다. 
그 동안 일종의 패러디로 너그럽게 넘어가던 관행은 기존 상표법, 저작권법이 아닌 부정경쟁방지법 덕분에 바뀔 전망이다. 물론 위 판결들이 시사하는 바는 지식재산권 보호 측면에서 박수를 받을만 하다. 동일한 제품으로 혼동할 우려가 없고 타깃시장 및 소비자가 다르더라도 타인의 제품을 무단으로 사용한 행위는 부당하다고 브랜드의 소중한 가치를 지켜준 의미도 있다. 
하지만 엄연히 구별되는 업종인데다 경제적인 피해도 거의 없는 상황에서 무작정 모욕감을 줬다는 이유로 한바탕 웃음을 주던 패러디에 가혹한 철퇴를 가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동시에 명품 브랜드의 손을 쉽게 들어줘야 했던 것인지 의문도 든다. 
경쟁조차 안되는 소규모 패션업체, 영세한 치킨집의 패러디에 함께 웃으면서 훌훌 털고 용서할 수 있는 브랜드 대기업의 관용과 유머감각을 기대하기는 힘든 것일까? 웃음을 읽어버린 민족, 재치와 위트를 평가하지 못하는 사회 그리고 패러디의 종말은 바로 우리의 각박한 자화상, 무뚝뚝한 미래가 아닌가 싶다.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