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강남역 살인사건과 조현병

한상우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입력일 2016-05-29 10:14 수정일 2016-05-29 10:17 발행일 2016-05-29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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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우교수
한상우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강남 20대 여성 살인사건’ 피의자가 조현병 치료 사실이 드러나면서 우리나라 국민들이 커다란 심리적 충격에 휩싸인 가운데 이사건의 심각한 사회적 파장으로 정신질환에 대한 심각한 오해의 소지가 있어 국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알리는 것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오해는 이번 사건이 조현병과 정신질환을 가진 환자들에게 낙인을 찍게 된다는 점입니다. 피의자가 조현병(정신분열병)으로 치료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등에서 정신병자들을 사회와 격리해야 한다”는 식의 편견이 현실화 되고 있습니다.

조현병과 범죄의 일반적인 관계에 대해 알아보면, 조현병 환자들이 망상에 대한 반응이나 환청의 지시에 따라 기괴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범죄를 저지를 위험성은 일반 인구보다 낮으며 살인과 같은 극단적인 행동은 매우 드뭅니다. 조현병은 급성기에 환청과 망상에 의해 불안과 초조, 충동 조절의 어려움이 동반될 수 있으나 이는 적절한 약물치료를 통해 조절될 수 있으며, 꾸준한 유지치료로 상당부분 예방할 수 있습니다. 이 시기 이외에 조현병 환자들은 대체로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합니다. 일반적으로 범죄를 하려면 계획적인 생각과 행동이 필요한데, 조현병 환자는 범죄를 계획하는 데 필요한 계획능력이 일반인보다 현저히 부족합니다. 또한 대부분의 조현병 환자들은 공격적이지 않고, 반대로 수동적인 면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사건의 피의자를 조현병 환자의 일반적인 형태로 보기 어렵습니다. 현실에서 일반인들에 의해 더 많은 살인사건이 발생함에도, 정신질환자들의 범죄가 보도되는 과정에서 이들이 더 무섭고 위험한 인물이라는 뉘앙스가 대중들에게 전파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심해야 합니다.

보도에 따르면, 가해자의 경우 약물치료를 중단하고 가출을 하며 증상이 악화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자발적으로 투약을 원치 않는 성인을 가족이 억지로 투약하거나 행동을 제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몹시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의 치료와 관리, 그리고 병으로 인해 나타난 비극적 결과에 대해 환자와 그 가족의 문제로만 치부하여서는 안되며, 사회적, 국가적 테두리에서 보다 전문적인 돌봄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많은 환자들에서 특히 급성 악화기에 본인이 병에 걸렸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치료를 거부하기 때문에 가족이나 국가 기관 등에 의한 동의 입원 즉 강제 입원을 통한 치료가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현재는 강제 입원 이후 증상이 안정된 후에는 자의에 의해 입원 연장을 결정하며 6개월마다 국가에서 정한 심판위원회에서 입원적합성을 판단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5월 19일 정신보건법 개정법률안이 19대 국회를 통과하며 정신질환자의 강제 입원 절차가 강화되어서 정신질환자가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입원이나 약물치료를 하는 것이 더 어려워졌습니다. 이로 인해 환자의 인권과 치료, 환자가족과 정신보건 종사자 등을 비롯한 이들의 안전과 삶의 질에 문제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국가와 전문가 단체는 지속적으로 상의하고 노력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 오해는 재난이나 충격적 사건이 발생 했을 때 언론 보도로 인해 직접 피해자가 아닌 대다수의 국민들이 정신적 외상을 입게 되는 간접 피해를 막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번사건에서도 피해자의 남자 친구가 오열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선정적인 보도로 국민들의 마음에 정신적 외상을 유발할 가능성에 대해 재난정신의학자들이 유감을 표하고 있습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서는 재난이나 비극적인 사건들을 보도할 때에 국민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파급 효과 등을 고려한 언론 보도 가이드라인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약자에 대한 폭력으로 인해 전국민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부정확한 정보에서 기인하는 편견과 낙인은 또 다른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격과 혐오가 될 수 있습니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이 커지면 환자와 가족은 낙인으로 인해 질환을 인정하기 더 어려워지고 돌봄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숨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편견을 조장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은 물론 적극적으로 편견을 해소하기 위한 사회적 뒷받침이 필요합니다.

비극적인 상황 앞에서 분노의 대상을 찾고 서로에 대한 불신과 불안, 공포에 압도되기보다는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갖고 함께 애도하며, 사회적 안전망 구축을 위한 제도적 개선에 힘쓸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한상우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